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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7.24 7.23 목요일 밤 : 휴가는 너무 짧아, 나아보려고 조식 왕창, 레트니 사드에 갔는데, 찜닭과 계란말이 해줌, 료샤는 착하다, 모나카 결과 6
  2. 2015.07.23 7.22 수요일 밤 : 비바람, 두셰브나야 꾸흐냐 허탕, 너무 힘든가보다, 마린스키 백조의 호수 짧은 메모, 료샤가 코르순체프와 슈클랴로프, 타이츠와 아랍팬츠에 대해 한 말 9
  3. 2015.07.23 백조의 호수 보러 옴, 마린스키 신관 카페에서 2
  4. 2015.07.22 7.21 화요일 : 시차 때문에 수면부족, 마린스키 토스카 짧은 리뷰, 민폐성인 카바라도시! 1
  5. 2015.07.22 토스카 보러 옴, 마린스키 신관, 막간 3
  6. 2015.07.21 고스찌에서 아주 늦은 점심과 메도빅, 맛있는 것를 먹으니 행복.. 6
  7. 2015.07.21 7.20 월 : 왜 힘들게 도착했는가, 네바 강변, 궁전광장, 마린스키, 라 바야데르와 슈클랴로프 아주 짧은 메모 4
  8. 2015.07.21 마린스키 카페에서 2
  9. 2015.07.20 블린과 사과에이드로 늦은 점심 먹는 중 4
  10. 2015.07.20 예약 포스팅 01. 아폴리나리 바스네초프의 그림 두 점 2
  11. 2015.07.20 잘 도착.. 6
  12. 2015.07.15 일년 전, 페테르부르크의 어느 거리에서 2
  13. 2015.07.14 더위 쫓으려고 겨울의 페테르부르크 사진 세 장 2
  14. 2015.07.11 추운 동네 보면서 더위 좀 쫓자 2
  15. 2015.07.09 세 그루 검은 나무 2
  16. 2015.07.08 아무 것도 안 하고 싶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저기 그냥 뒹굴고 싶다! 4
  17. 2015.07.06 접시에는 봄이! 당신 마음 속에도 봄이!
  18. 2015.07.03 서무의 슬픔 번외편 : 곱사등이 흑염소와 단추소년 다닐, 절세미인 미셴카(러시아 민담 패러디) 70
  19. 2015.07.02 미하일 바리쉬니코프 사진 세 장 2
  20. 2015.07.01 더위 달래려고, 여름 정원의 분수 9
  21. 2015.06.30 여름 운하의 오리들
  22. 2015.06.29 얼어붙은 겨울 운하 풍경 2
  23. 2015.06.28 잿빛 겨울의 예술 광장
  24. 2015.06.26 같은 곳 다른 느낌 2 :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 4
  25. 2015.06.26 서무의 슬픔 #26. 베르닌의 옛 여인 67

휴가는 너무나 빨리 지나간다 ㅠ 일요일 밤 비행기로 떠나니 진짜 얼마 안 남았다... 애초부터 7일짜리니 행복한 순간은 눈깜짝할새 사라지는 것이다.



어제까지 사흘 연속 공연 보고 오늘 내일은 공연이 없어 좀 여유가 생겼다. 이제 체력 모자라서 내내 공연 보려면 낮엔 아무 것도 안해야 되려나보다 ㅠ 한국에서도 비행기 타기 전까지 계속 과로한데다 와서도 공연과 산책, 나쁜 날씨로 많이 지쳤다.


감기 기운이 심해져서 아침엔 입맛 없지만 조식을 고칼로리로 많이 먹고 이럴때마다 나의 해법인 홍차에 꿀 잔뜩 타서 레몬즙 섞어먹기 시전. 꿀 넣으면 탄닌이 결정화돼서 안된다던데 난 그냥 마시련다.. 목 아프고 힘들때만 이렇게 먹는데 뭐.. 은근 효과도 있다(이건 옛날에 러시아에서 지낼때 알게된 것)






.. 이렇게 조식 왕창... 아프면 안되니까 꾸역꾸역 먹었다 헥헥


료샤와 레냐가 와서 같이 레트니 사드에 갔다. 날씨가 좋아서 차는 근처에 세워두고 판탄카 운하 따라 걸어서 갔는데 공원 좀 산책하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서 셋 다 비맞음 ㅠㅠ 차 있는 놈이랑 와도 소용이 없구나!!


비와서 급하게 나무 아래로 도피... 료샤가 옷으로 덮어씌워주어서 고마웠으나..


나 : 고맙긴 한데.. 레냐 씌워줘!


료샤 : 괜찮아, 레냐는!


나 : 뭐가 괜찮아 레냐는 아기인데! 감기 걸리면 우째!


료샤 : 레냐는 아들이고! 사내는 강하게!!


나 : 사내는 감기 안 걸리냐!!!


료샤 : 우린 이 정도 비는 그냥 맞고 다녀, 하도 비가 자주 와서.


레냐 : 맞아!! 우리는 비 안무서워! 쥬쥬는 비 맞으면 안돼. 아빠 옷 쓰고 있어.


나 : 고마워 ㅠ (근데 맘이 안 편해ㅠ)


그래도 곧 비가 그침..






료샤가 민망하다고 항상 툴툴대는, 내가 좋아하는 아폴로 조각 :)











공원에서 쉬다가, 오리에게 먹이 좀 준 후 걸어나와 료샤 차 타고 블라지미르스키 거리에 있는 대형 수퍼에 가서 장을 좀 봤다. 레냐가 한국밥 또 해달라해서.. 재료 사서 료샤네로 옴.


이번엔 너무 바빠서 식재료를 못챙겨온고로 제일 무난한 간장을 주재료로 달착지근하고 자극성 없는 찜닭 만들어줌. 흰밥이랑 계란말이 곁들임. 둘다 계란말이의 비주얼에 감탄 ㅋㅋ 오믈렛보다 근사하지? 찜닭도 인기만점.



밥먹고 차 한잔 마신후 나는 너무 피곤해서 한시간쯤 기절하듯 잤다. 깨고 보니 내 옆에 레냐도 누워 자고 있음 ㅋㅋ 원래 오후에 낮잠 잔다고 한다. 료샤는 오랜만에 오더니 자기랑 안놀아주고 잔다고 투덜대면서 폰으로 오락하고 있었음.. (그래도 착하다, 나 안 깨우고 담요도 덮어주고 ㅋㅋ)


참, 모나카는 료샤가 좋아했다. 레냐는 모나카 식감이 안 맞는듯 얀겐(ㅋ)만 계속 먹고 료샤는 모나카와 녹차의 조합이 맘에 든다며 계속 먹음. 너 맥심 모카골드 좋아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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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곤하게 자다가 전화벨 소리에 깼다. 광고전화 같아서 안받았다. 알람 때문에 전화 안 끄고 잤더니만 ㅜ 그래서 오늘도 6시간밖에 못 잤다.


비가 마구 쏟아지고 바람불고 완전히 을씨년스러운 페테르부르크 9월 하순 날씨였다! 너무 추워서 네프스키 대로의 자라 매장에 가봤다. 겉옷 사입을까 하고.. 환율 탓도 있겠으나 여기 매장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쌌다. 하지만 맘에 드는 게 딱히 없어 안 샀다.


두셰브나야 꾸흐냐에 점심 먹으러 갔으나 파티 예약이 있어 허탕침 ㅠ 데니스도 없었다 ㅠㅠ 겨울에 와야만 되는건가 ㅜ bravebird님도 허탕쳤다더니... 데니스, 백야에 보기로 했잖아요 엉엉


로모노소프 가게에 가서 찻잔 두세트, 머그컵 하나, 접시 하나를 지르고(환율 하락으로 정당화ㅠ), 너무 맘에 드는 푸쉬킨의 결투 찻잔이 새로 나왔으나 비싸서 포기.


이때 비가 마구 쏟아졌고 배도 고프고 어지러워서(징게르 카페에도 갔는데 자리 없었음) 말라야 모르스카야로 걸어와서 고골에 갔다. 보르쉬와 생선파이 먹었다. 전에 서무 시리즈에서 수도원 할머니가 만든 거랑 비슷하게 연어와 창꼬치고기가 들어 있었는데 담백하고 맛있었다.


사흘 내내 극장에 가다보니 저녁 먹을 시간이 없어서 아침은 호텔조식으로 간단히 먹고 늦은 점심 한끼만 잘 챙겨먹는다... 저녁은 극장 카페에서 조각케익 한개 먹는 식으로...


나오니 비가 더 많이 와서 무지 고생했다. 카메라 때문에 무거운 가방, 찻잔과 그릇 넣은 쇼핑백... 우산...


간신히 호텔로 돌아왔다. 피로누적과 수면 부족으로 너무 졸리고 힘들어서 그대로 쓰러져 40분쯤 잤다. 더 못 잔 이유는 5시에 료샤와 레냐가 왔기 때문이다. 반가운 재회...


료샤 차 타고 마린스키 신관 갔다. 그러나 빨간 민소매 원피스는 날씨 때문에 포기했다. 료샤가 옷이 아까우면 내일 입고 자기와 레냐에게나 보여달라고 한다. 레냐에겐 약혼자니까 보여주는데 왜 너에게까지!!!


오랜만에 마린스키 백조의 호수를 무대에서 봤다. 작년 봄에 왔을때 옥사나 스코릭과 데니스 로지킨 페어로 봤는데 오늘은 아나스타시야 콜레고바와 다닐라 코르순체프 페어였다. 오늘이 훨씬 나았다!!! 역시 코르순체프는 최고의 파트너이다! 콜레고바는 백조보다는 흑조가 더 나았는데, 백조 연기나 상체는 좀 아쉬웠지만 외모가 오딜에 잘 어울렸다.


리뷰는 나중에 따로... 짧은 메모만 먼저.


오랜만에 극장에 울려퍼지는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의 차이코프스키 백조를 들으니 가슴 뛰었다. 그리고 역시 마린스키 백조가 최고다!!!! 일일이 그려낸 나무와 숲 배경도 너무 반가웠다. 무수한 백조의 호수 버전이 있고 나름대로의 매력이 넘치지만 그래도 하나쯤은, 그것도 마린스키라면 이렇게 고전적이고 수공예 느낌 나는 무대 배경과 왕자가 로트바르트 날개 뜯어 처치하는 엔딩은 지켜야 한다!! 제발 고치지 말아요!!!!


역시나 3막에서 지그프리드와 오데트가 사랑의 힘으로 분연히 일어서고 지그프리드가 로트바르트 날개 뜯을때 나는 감동해버림... 어쩔수 없어... 이거야!! 비극 엔딩 좋아했던 건 어릴때야... 이때 차이코프스키 음악이랑 어우러지면 너무 설렌다고... 지그프리드야 로트바르트 날개 뜯어라!!


역시 코르순체프는 베테랑에 최고의 지그프리드 중 하나이므로 로트바르트 날개도 참 멋있게 잘 뜯었다. 그리고 1막 끝에서 오데트 허벅지에 올려놓기도 아주 훌륭해서 매우 흡족했다 :) 이거야 이거!!!


코르순체프도 이제 나이가 많아서 도약이나 주테는 힘도 딸리고 예전같진 않지만 그래도 파트너링은 역시 훌륭했다. 그리고 아무리 내가 슈클랴로프를 좋아하지만 이 사람은 키가 그리 크지 않다보니 동작의 남성적인 시원시원함이 좀 아쉬울때가 있는데 키크고 덩치 좋은 코르순체프가 긴 팔다리를 쭉쭉 뻗는 동작 하나하나가 매우 근사하고 우아했다. (이 우아함의 최고봉인 내 첫사랑 무용수 이반첸코를 토요일 해적의 콘라드로 볼 수 있어 기대 중.. 왕자 역이면 더 좋을테지만)


앞자리 앉은 사람들이 자꾸 공연 중에 핸드폰으로 사진찍고 뒤에 앉은 중국인 얼린이들이 자꾸 찡찡대서 매우 짜증났다. 사진 찍는 사람에겐 결국 안보인다고 한마디 했다. 레냐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 초집중하며 열심히 봤고 료샤는 전에 백조의 호수 보고 졸았던 전적이 있으나 이번엔 잘 참으며 봤다.


그건 그렇고 다 보고 나서 료샤가...



료샤 : 야! 저 남자는 슈클랴로프인가 뭔가도 아닌데 너 왜 이렇게 좋아해!! 막 사진찍고...


나 : 엥, 나 원래 옛날부터 코르순체프 좋아했어.


료샤 : 아주 왕자만 뚫어져라 보면서!!!


나 : 넌 왜 무대를 안보고 날 보냐!!!


료샤 : 민망하잖아! 왕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하얀 타이츠만 입고 나와!!! 근데 너는 아주 열심히 왕자만 보더라!! 타이츠 본 거지!!!


나 : 아니야!!!!! 코르순체프 좋아한다고!! 지그프리드 배역도 좋아해!!!! 타이츠는 어쩔수 없잖아, 이거 의상이 그런데...


료샤 : 너 누가 더 좋아! 오늘 나온 남자랑 슈클랴로프랑!!


나 : 어... 코르순체프는 무용수로서 좋아하는 거고 슈클랴로프는 무용수로서도ㅠ좋아하지만 예쁘기도 해서... 후자를 더...


료샤 : 그럴줄 알았어.


나 : 알면서 왜 물어봐!!


료샤 : 그놈이 오늘 안나와서 다행이다. 그럼 그 민망한 흰 타이츠 입고 추는 내내 더 뚫어져라 봤겠지!!


나 : 이미 그저께 라 바야데르에서 꽃돌이가 아랍팬츠 입고 날아다니는거 눈빠져라 봤네요! 그리고 내가 몇번을 말해!! 타이츠보다 아랍팬츠가 더 좋다니까!!


료샤 : 근데 그 잠옷바지 같은 옷은 왜 좋아하는 거야??


나 : 악!! 내가 좋아하는 의상을 잠옷바지라니...


료샤 : 좀 그래보이지 않아? 나도 옛날에 그런 잠옷 있었...


나 : 네가 입으면 잠옷 바지, 꽃돌이가 입으면 아름다운 무대의상!!!


료샤 :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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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백조의 호수 보러 마린스키 신관에 옴. 오늘의 백조는 아나스타시야 콜레고바, 왕자는 다닐라 코르순체프. 코르순체프의 지그프리드 오랜만이라 반갑다.


오늘 비도 오고 추워서 힘들었다. 깜박 잠들었다 나와서 오페라 글라스도 안챙김 ㅠ 앞줄이니까..


료샤랑 레냐도 같이 왔다. 레냐는 메도빅에 우유 드시고 있고(ㅎㅎ) 료샤는 샴페인에 연어 오픈샌드위치, 나는 차랑 딸기타르트 먹고 있음. 타르트 맛있네. 쓰는 동안 료샤가 내 타르트 절반 뺏어먹고는 내가 항의하자 샌드위치 절반 쪼개주고 있음. 나 연어는 익힌것만 먹는다고!!


몸이 너무 피곤하다.. 헥헥.. 백조랑 왕자 아다지오 때 졸면 어쩌지(아무리 많이 봐도 그 장면이 쥐약임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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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고스찌에서도 썼지만 시차 적응이 아직 안돼서 새벽 5시마다 깬다. 어젠 비행기때문에 피곤해서 다시 잘수 있었지만 오늘은 도저히 잠이 다시 안들어서 너무 힘들었다. 네시간 자고 다닐수는 없잖아 ㅠ 게다가 밤엔 꽤 추워서 감기 기운도 있다. 그 민소매 빨간 드레스 못 입어 엉엉...


조식 먹고 방에 돌아와 한시간 반쯤 더 잤다. 여전히 잠도 모자라고 두통이 너무 심했다. 3시반쯤 나와서 숙소랑 별로 멀지 않은 고스찌에 가서 밥과 차와 케익을 동시에 해결하고 천천히 운하 따라 걸어서 마린스키 신관에 갔다.


오페라는 발레만큼 좋아하지도 않고 특히 고음을 못견디는 편이라 자주 가진 않지만 유일하게 좋아하는 오페라가 토스카라서 이건 기회 될때마다 본다. 2월엔 미하일로프스키에서 봤다. 마린스키 토스카는 무대를 처음 보는 거였는데 오세티야 태생으로 국제적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마리야 굴레기나가 토스카 역이었다.


마린스키 토스카는 무대가 아주 차갑고 단순했다. 대리석을 형상화한 거대한 프레임을 만들고 그 안에 텅빈 무대를 만든다. 1막 교회 초상화도 2막 스카르피아 집무실도 3막 산탄젤로 성 난간도 같은 식이다. 그런데 나는 구식 관객이라 이런 오페라는 그냥 옛날식 배경이 더 좋고 이렇게 미니멀리즘으로 나오면 좀 썰렁하다는 생각이 든다 ㅠ 그런게 잘 어울리는 오페라도 있지만 오늘 토스카는 내 스타일의 무대 디자인은 아니었다.


굴레기나의 토스카는 좋았다. 드라마틱 소프라노인데 사실 나는 좀더 청아한 음색의 청순한 토스카를 선호하지만 그녀의 여왕같은 위엄과 표독스러움, 그리고 우아하고 풍부한 성량의 노래가 잘 어울렸다.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는 내가 좋아하는 얼마 안되는 소프라노 아리아인데(고음을 못 견뎌서ㅠ) 참 잘 불렀다. 첫 소절부터 눈물났다. 관객들 반응 뜨거웠고 브라보와 비스(앙코르)가 쇄도.. 그러자 진짜로 그 자리에서 앙코르로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다시 부름. 이거 앙코르로 다시 부르는거 처음 봤다.


스카르피아 역의 게보르그 아코퍈은 대머리 호색한 타입이었다. 자고로 악당 배역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토스카를 이렇게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리톤의 섹시하고 비열한 악당 스카르피아인데.. 외모 때문에 참으로 이입이 안됐지만 그래도 음색과 노래는 준수했다. 단 하나 아쉬운건 테데움 때 그 합창과 오케스트라가 너무 장중해서 이 사람 노래가 묻혔다 ㅠ 이거 아니야 엉엉... 내가 토스카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 스카르피아가 '가라 토스카~' 부르며 테데움과 어우러지는 건데 엉엉...


마리오 카바라도시 역의 막심 악쇼노프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어쩔수 없다 내 첫 카바라도시가 도밍고이므로 카바라도시로 나를 만족시키기란 어렵다 ㅠ) 오묘한 조화가 제일 나았고 별빛은 쏟아지고는 그저 그랬다. 나는 이 아리아를 너무 흐느끼며 부르는건 안좋아한다... 조금더 관조적이다가 절정에서 터져나오는 게 좋다.


그리고 예전에도 arts 폴더에 토스카 리뷰 쓸때 여러번 말했지만 나 이 캐릭터 싫어한다! 그야말로 민폐성인!!! 도밍고니까 그리고 별빛은 쏟아지고 아리아 때문에 좋아했지... 이놈의 화가자식 캐릭터 자체는 너무 짜증난다!!! 토스카 고생만 시키고.. 첨엔 그래도 봐줄만하다가 이자식이 고문실에서 나와서 상황 못가리고 나폴레옹이 이겻다며 스카르피아 앞에서 만세부를때 진짜 쥐어패고 싶다!! 토스카가 입막으며 제발 조용히 하라고 할때 그 마음이 내 마음!! (이거 볼때마다 토스카에게 대왕이입..) 이 망할놈의 카바라도시! 네가 머리 나빠서 토스카까지 죽은 거야!!

(그리고 스카르피아 죽은건 천벌이지만 그래도 난 스카르피아 좋아하니까.. 으음...)


오늘은 1막-2막-3막 순서대로 좋았다. 마린스키 토스카는 다른 버전보다 좀 길다. 근데 몸이 너무 피곤해서 2막에선 좀 졸렸다. 좋아하는 오페라인데..


내가 토스카에서 유일하게 못견디는 아리아는 바로 3막에서 카바라도시와 토스카가 죽기 전에 희망에 찬 앞날을 노래하는 부분인데 애초부터 오페라를 진짜로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멜로딕하지 않은 고음 위주 노래는 또 못 견디는 편이다 보니 이거 듣고 잇으면 지루해지면서 '그냥 빨리 총쏘고 끝내지ㅠ'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기까지...


그래도 이 오페라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리아 3종세트가 다 있다. 카바라도시의 별빛.. 토스카의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스카르피아의 가라 토스카~ 테데움.


다 보고 나서는 너무 춥고 피곤해서 버스 타고 돌아왔다. 긴 치마 입고 갔엇는데도 춥다. 감기 기운이 올라온다...


이제 자야겠다. 제발 시차 적응 좀 되기를. 새벽에 깨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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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5. 7. 22. 02:18

토스카 보러 옴, 마린스키 신관, 막간 russia2015. 7. 22. 02:18






마린스키 신관에 오페라 토스카 보러 옴. 1막 끝나고 휴식시간.


확실히 마린스키 신관이 음향도 좋고 오페라 무대에 적합한듯. 토스카 역의 구겔리나는 여왕님 포스, 카바라도시는 휘둘리는 청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배역인 스카르피아는 대머리라 슬프지만 목소리는 좋다. 토스카에서 제일 좋아하는 테 데 움도 장대했다(너무 장대해서 막판 스카르피아의 제일 근사한 부분인 '토스카 너로 인해 나는 신도 버렸다!'가 묻혀서 안 들리는 불상사가ㅠ)


두번째 벨 울려서 곧 들어가여 할듯. 어엉, 2막에서 스카르피아 죽어 ㅠ 구겔리나 음색이 아름다워서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부를때 근사할듯..






휴식시간, 오케스트라 핏의 악기들 :)














오페라는 발레만큼 애호가가 아닌고로 2층 사이드 뒷줄.. 유리지갑..






그래서 오페라글라스 매우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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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시차 때문에 네시간밖에 못자고 새벽에 깨서 괴로워하다 아침먹고 방에 돌아와 한두시간 더 자고 뻗어 있다가 아사 상태로 기어나왔다. 오늘 날씨 맑고 좋은데 컨디션때문에 날렸어 ㅠ

저녁에 마린스키 토스카 공연이 있어서 아주 늦은 점심과 차 한잔을 동시에 해결하려고 고스찌에 옴. 2월엔 수리중이라 닫혀 있었는데 다시 열었다. 우라!!


런치메뉴로 크랜베리 모르스, 바질페스토 얹은 토마토 샐러드, 오크로슈카(오이 크바스 냉수프), 창꼬치커틀릿 세트 먹음. 맛있다.. 맛있는 것을 먹으니 매우 행복.. 환율 덕에 이 세트가 8천원 미만..










그리고 지금은 차 한잔과 메도빅 먹으며 기운 차리는 중.. 토스카는 세시간짜리 공연이니 잘 먹고 가야 한다.. 아아 피곤해. 한국에서 너무 무리하고 왔나봐






여기 메도빅은 정말 맛있다. 그리웠어요..





이제 다 먹고 극장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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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주 파란만장하게 패테르부르크 숙소에 도착. 비행기 타기 직전 라운지에 아이패드 놓고온걸 알아채서 막 뛰고..


풀코보 공항에선 중국인 그룹관광객들이 너무 많은데다 검사대 직원이 러시아 스타일로 너무 느리고 여기에 특유의 관료제가 합쳐져서 한시간 넘게 걸렸다. 호텔 픽업 차가 한시간 지나면 요금이 두배가 되기에 엄청 걱정했는데(난 유리지갑 ㅠ) 간신히 간당간당하게 수속.. 짐 끌고 엄청 뛰어서 1분차이로 차 탔다 ㅠ 그 결과 가뜩이나 과로와 몸살 상태로 떠나왔는데 더욱 피로해짐.


7시간 좀 못되게 잤다. 여긴 춥다... 하지만 긴팔 티에 긴바지, 긴팔 짚업 입고 나왔더니 또 더워졌고.. 겉옷 벗으면 갑자기 바람주는등 이 동네의 전형적 초가을 날씨였다.. 이상저온 ㅠ


오늘은 숙소가 이삭 성당 근처라 푸시킨에겐 아직 인사하러 못가고 가까이에 있는 황제에게 먼저 갔다. 청동기마상. 그리곤 네바 강변을 좀 산책함















이번엔 노트북을 안가져와서 dslr 사진은 돌아가서 올리고 화질 안좋지만 아이폰(4ㅠㅠ) 사진만 몇장.. (그래서 꽃돌이의 아름다운 사진도 나중에..)


강변 걷다가 궁전광장 쪽으로 가서 잠시 앉아 있었다. 안녕, 천사..






예전에 about writing에 올린 미샤의 이야기인 illuminated wall에서 미샤는 이 천사가 꼭대기에 있는 알렉산드르 기념원주 주위를 돌며 춤을 춘다. 이곳을 비롯한 페테르부르크의 많은 장소가 내게는 그 아이와 연관되어 있다.





에르미타주 앞 분수..


그리고는 징게르 카페에 가서 블린과 사과에이드로 늦은 점심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약 두시간쯤 쉰 후 마린스키에 갔다. 버스 타기 애매해서 운하 따라 걸어감.


오늘은 마린스키 구관.











폰으로 찍어서 사진은 엉망이지만..


라 바야데르. 오늘 공연이 슈클랴로프의 이번 시즌 마지막 무대. 상대는 아나스타시야 마트비옌코가 니키야, 옐레나 옙세예바가 감자티였다. 리뷰는 나중에...


사심 넘치는 단평.


슈클랴로프는 3막이 최고였다(얜 원래 그렇다) 2막 솔로에서 살짝 삐끗하는등 컨디션 안좋았는데(최근 신작 연속, 투어로 그럴만도 했지만) 컨디션 안좋고 실수한다 싶으니까 이놈이 평소보다 더 빵긋빵긋 웃으며 눈부신 미모 대방출로 실수고 뭐고 혼미하게 만듬 ㅠㅠ


결론 : 미모 앞에 실수도 묻혀진다!


3막의 슈클랴로프 솔로르는 흠잡을데 없었고 역시 이 사람의 대표배역 중 하나라는것을 증명.


마트비옌코는 열심히 췄으나 내게 이 사람은 음악성이 좀 떨어지고 운동선수 같다.. 옙세예바는 감자티의 화려한 기교는 삐걱댔지만 연기는 좋았다.


커튼콜 때 슈클랴로프는 매우 눈부셨다.. 너무 이뻤다... 역시미의 결정체!!!


사족. 그의 아내 쉬린키나가 아기 낳고 첫무대인지 모르겠으나 망령 3인무로 나왔는데 꽃돌이가 자기가 받은꽃을 그녀에게 바쳐서 관객들 환호하고 쉬린키나는 감동해서 멍해져 있었음.. 예쁜 모습이긴 한데.. 야, 너 원래 네 꽃 파트너 발레리나한테 바쳤잖앗! 마트비옌코 줘야할거 아냐! 공연 끝났다고 파트너 니키야는 헌신짝이고 원래 아내에게 넙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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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5. 7. 21. 00:25

마린스키 카페에서 russia2015. 7. 21. 00:25





마린스키 극장 카페. 슈클랴로프 공연 보러 왔다. 엄청 졸리고 피곤하지만 무대 보면 괜찮겠지..




팸플릿이 이뻐지긴 했지만 왜 30루블에서 50루블로 오른거냐 ㅠ 난 예전게 더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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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 20. 20:02

블린과 사과에이드로 늦은 점심 먹는 중 russia2015. 7. 20. 20:02






우여곡절 끝에 잘 도착해서 돔 끄니기의 징게르 카페(cafe singer)에서 치킨버섯 블린과 사과에이드로 늦은 점심 먹는 중. 전에 먹었던 치킨감자블린은 계절 메뉴라 없다만 이것도 맛있네.. 사과에이드 아주 훌륭..






날씨가 추워서 긴팔 셔츠에 짚업 입고 나왔는데 더워져서 겉옷은 벗었다. 이거 먹고 숙소 들어가 쉬었다가 꽃돌이 공연 보러 가야겠다. 아랍 팬츠 입고 도약하는 솔로르 슈클랴로프는 언제나 최고.


그건 그렇고 서버 에러라면서 댓글에 답글이 안 달아진다 ㅠ 소중한 댓글인데 엉엉.. 글 달아주신 분들 모두 감사해요. 에러 풀리면 답글 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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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 포스팅 첫번째. 간만에 러시아 그림~

아폴리나리 바스네초프의 러시아 냄새 물씬 나는 그림 두 점.

이건 '노브고로드의 시장'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다 :0

 

 

17세기 스파스키 다리의 책 가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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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 20. 07:01

잘 도착.. russia2015. 7. 20. 07:01






자야겠다.. 비행기 탈때도, 내려서 수속할때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두번 다 엄청 뛰었다... 아 힘들어. 어서 자야겠다. 하여튼 무사 도착해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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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 15. 07:00

일년 전, 페테르부르크의 어느 거리에서 russia2015. 7. 15. 07:00

 

 

일년 전 이맘때, 페테르부르크.

고로호바야 거리와 그리보예도프 운하변 따라 쭉 걷다가 카잔 성당 쪽으로 나가던 길이었다.

 

사흘 동안의 바보사업 행사를 앞두고.. 이것만 잘 버티면 그래도 일요일에 다시 저 동네로 날아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사진 네 장 올려본다. 이 날도 햇살이 매우 뜨거웠다.

 

건물에 붙어 있는 녹색 간판은 '약국'

 

 

 

아주 맑고 찬란한 날이어서 그리보예도프 운하의 수면에 저렇게 건물이 거울처럼 비쳤다. 바람이 살며시 불어서 수면은 좀 흔들렸지만...

 

 

 

 

 

.. 이 동네 생각하면서 힘내서 행사 잘 마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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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더워졌다 헉헉..

일 때문에 정신 못차리고 더워서 울렁거리고... 헉헉.. 그래도 오늘을 버텨내야 해.

 

더위 쫓으려고 2월에 찍은 페테르부르크 사진 세 장.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안에서.

 

 

 

역시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그리고 얼어붙은 네바 강

 

 

 

네바 강. 스뜨렐까. 멀러 보이는 에르미타주. 조그맣게 보이는 금빛 쿠폴은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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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 11. 21:59

추운 동네 보면서 더위 좀 쫓자 russia2015. 7. 11. 21:59

 

 

사우나 같은 날씨 때문에 참 괴로운 여름날이다.

추웠던 때 사진 보면서 조금이라도 더위를 달래보는 중. 지난 2월 페테르부르크 갔을 때 찍은 사진 몇장.

이건 모이카 운하. 눈 꽁꽁~

 

 

 

역시 모이카.

 

 

 

이제부터는 얼어붙은 네바 강.

가운데는 이렇게 얼음이 깨져 있었다. 가운데로 보이는 건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와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사원.

 

 

 

더워서 그런지 얼음이 전부 빙수로 보인다...

 

 

 

 

 

 

 

마지막은 갈매기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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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 9. 22:57

세 그루 검은 나무 russia2015. 7. 9. 22:57

 

 

지난 2월 페테르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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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는 너무 바쁘고 피곤해서 어떻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저 저렇게 편안하고 아늑한 방에 틀어박혀 아무 것도 안 하고 뒹굴고 싶구나!!!!!

 

지난 2월, 페테르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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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페테르부르크.

말라야 코뉴셴나야 거리 지나가다가 발견한 음식점 간판.

(손으로 쓴 간판, 메뉴판을 좋아해서 이따금 이런 사진 올린 적 있다)

 

이렇게 씌어 있다.

 

접시에는 봄이! - 당신 마음 속에도 봄이!

비트 크림 리조또

뜨거운 글린트바인

 

* 글린트바인은 뱅 쇼, 핫 와인이다. 뜨겁게 데워서 향신료를 탄 와인... 이게 맛있긴 한데 난 한 잔 마시면 곧장 꿈나라로 가버리곤 했다.

 

저때 2월이라 페테르부르크는 아직 겨울인데다 꽤나 춥고 눈보라도 쳤었다. 봄을 갈구하는 메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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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무의 슬픔 시리즈를 왜 쓰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이 폴더 맨 앞에 있는 '서무의 슬픔 시리즈에 대해'  (http://tveye.tistory.com/3427)에도 나와 있고 이따금 에피소드들을 올리면서도 여러번 얘기한 적이 있다. 즉 서무 시리즈는 내가 원래 쓰고 있는 글에서 파생된 일종의 평행우주, 혹은 외전이다.

 

그런데 이 시리즈도 어느덧 30편에 가까워지다보니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게 되었고 마냥 웃기고 가볍게 쓰려고 했던 것이 자기 맘대로 증식해서 때로는 우울하기도 하고 때로는 진지하기도 한 이야기들이 툭툭 튀어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등장인물들도 많아지고 이들도 서로 관계를 맺다보니 가끔은 얘들이 이러이러하면 어떨까 하는 제2의 외전 생각이 또 들고.. 이렇게 새끼를 치고 또 새끼를 치고...

 

8편을 마친 후 등장인물 몇 명의 20문답을 번외편으로 올린 적이 있는데 이번 번외편은 그걸로 따지면 두번째이다. 이번 것은 러시아 민담 패러디이다. 패러디이면서 오마주이기도 하다. 사실 민담은 작가가 드러나 있지 않은데다 아주 원형적인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 어느 문화에서도 비슷비슷한 이야기들이 발견되곤 한다.

 

내가 이번 편을 쓰면서 주로 패러디하거나 오마주를 바친 이야기들은 모두 러시아 민담이다. 제일 유명한 건 물론 아파나셰프 판본의 러시아 민담이고, 또 우리나라에 번역된 황금가지판 러시아 민담도 있고, 그외에도 구전되는 민담들도 많다. 사실 러시아 민담, 특히 이반왕자와 불새 이야기는 나에게 아주 중요한 얘기였고 미샤를 주인공으로 하는 본편에도 여러번 변주되어 등장한다. (실지로 본편 우주에서 미샤는 이반 왕자와 불새를 안무하여 꽤나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예전에 다른 글들에서도 불새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여러 편 변주해서 쓰곤 했다.

 

이번 민담에도 이반왕자와 불새 모티프가 조금 들어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다른 민담들을 고루 섞었다. 아마 읽어보시면 러시아 민담이나 다른 나라 민담들에서 접해 익숙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추소년 베르닌의 이야기!! 그래서 등장인물들은 모두 서무 시리즈에 나오는 사람들이다. 아, 사람 아닌 배역도 있다. 곱사등이 흑염소 :) 제목을 보시면 알겠지만 이 제목과 '곱사등이 흑염소'란 배역 자체는 표트르 예르쇼프의 유명한 민담 동화인 '곱사등이 망아지'에서 따왔다.

 

블로그에서 불새나 이반 왕자와 불새, 곱사등이 망아지로 검색하면 이 주제에 대해 올린 각종 글이나 리뷰, 이미지 등이 나온다.

 

하여튼.. 나는 민담 애호가이다 보니 쓰는 게 재밌었는데 읽는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다 :) 그래도 재밌게 읽어주세요~

 

어쨌든 서무 시리즈에서 파생된 패러디라서 이 시리즈를 읽어야 등장인물들과 연결이 되어 이해가 잘 될 것 같다. 그리고 민담들을 패러디하고 변주하긴 했지만 그래도 서무 시리즈 얘기도 뒤섞여 있고 중간중간 내 식대로 바꾸거나 새로 만들어 넣은 부분들도 있다 :)

 

 

(이 시리즈는 아래 순서대로 읽기를 권장함~)

 

 * <서무의 슬픔> 시리즈에 대해 : http://tveye.tistory.com/3427
* 주요 등장인물 소개 + 시리즈 목차 : http://tveye.tistory.com/3428
* 에피소드 0. 다닐 베르닌의 새로운 임무 : http://tveye.tistory.com/3429
* 에피소드 1. 왕재수, 행동에 나서다 : http://tveye.tistory.com/3432
* 에피소드 2. 당직실의 귀신 : http://tveye.tistory.com/3437
* 에피소드 3. 버찌잼과 초콜릿 쿠키 : http://tveye.tistory.com/3444
* 에피소드 4. 공유지의 배추와 의전의 문제 : http://tveye.tistory.com/3451
* 에피소드 5. 무도회에 간 베르닌 : http://tveye.tistory.com/3458
* 에피소드 6.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 : http://tveye.tistory.com/3466
* 에피소드 7. 보고서의 악몽 : http://tveye.tistory.com/3478
* 에피소드 8. 새해 전야의 만두 소동 : http://tveye.tistory.com/3488
* 에피소드 9. 눈보라와 패딩 코트 : http://tveye.tistory.com/3524
* 에피소드 10. 벨라 등장! : http://tveye.tistory.com/3542
* 에피소드 11. 살구나무 거리에서 온 남자들 : http://tveye.tistory.com/3553
* 에피소드 12. 전설의 서무를 찾아서 : http://tveye.tistory.com/3563
* 에피소드 13. 검은 숲의 온천 요양소 : http://tveye.tistory.com/3580
* 에피소드 14. 한밤중의 침입자 : http://tveye.tistory.com/3599
* 에피소드 15. 우수 공산당원 연수 워크숍을 위해 막내가 준비해야 할 일들 : http://tveye.tistory.com/3615
* 에피소드 16. 짐꾼 베르닌과 빗, 물병, 목걸이의 비법 : http://tveye.tistory.com/3635
* 에피소드 17. 운수 좋은 날 : http://tveye.tistory.com/3661
* 에피소드 18. 메드베지에서 생긴 일, 알렉산드라 : http://tveye.tistory.com/3678
* 에피소드 19. 다닐 베르닌이 하를람피 푸고비체프가 된 사연 : http://tveye.tistory.com/3692
* 에피소드 20. 베르닌, 무대에 데뷔하다! :  http://tveye.tistory.com/3708
* 에피소드 21. 스페호프의 복수 : http://tveye.tistory.com/3726
* 에피소드 22. 흰머리천사날개풀과 파인애플 : http://tveye.tistory.com/3742
* 에피소드 23. 스네고로드 집단농장 : http://tveye.tistory.com/3766
* 에피소드 24. 시계탑 전망대에서 : http://tveye.tistory.com/3785
* 에피소드 25. 천하일미 요리대회(1부) : http://tveye.tistory.com/3800
* 에피소드 25. 천하일미 요리대회(2부) : http://tveye.tistory.com/3813
* 에피소드 26. 베르닌의 옛 여인 : http://tveye.tistory.com/3832
 
** 번외편. 등장인물 20문답 : http://tveye.tistory.com/3492, http://tveye.tistory.com/3493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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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무의 슬픔 series>

번외편 - 러시아 민담 패러디

 

 

 

 

서무의 슬픔

- 곱사등이 흑염소와 단추소년 다닐, 절세미인 미셴카 -

 

 

 

 

 

 

 

 

옛날 아주 오랜 옛날 러시아 어느 시골 마을에 마음 착한 소년이 살았어요. 소년의 이름은 다닐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어릴 때부터 사람들은 그를 단추라고 부르곤 했어요. 단추는 매우 가난했지만 사랑하는 부모님과 세 명의 아름다운 누이인 알렉산드라, 렐랴, 리자가 있어 언제나 행복했어요.

 

 

하지만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어요. 욕심 많은 지주가 부하들을 보내서 밭의 농작물들을 모조리 쓸어가 버렸고 늙으신 부모님은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어요. 돌아가시면서 부모님은 단추의 손을 꼭 잡고 부탁했어요.

 

 

“ 얘야, 다냐. 너는 우리 집안의 유일한 아들이니 부디 누이들을 잘 부탁한다. 그리고 말하는 짐승을 만나면 절대로 해치지 말고 잘 대해주거라. ”

 

 

단추는 훌쩍훌쩍 울며 꼭 그러겠다고 다짐했어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단추네 집 형편은 더욱 기울었어요. 아름다운 세 명의 누이 중 큰 누나인 알렉산드라가 남매들을 모아놓고 말했어요.

 

 

“ 밭일을 해봤자 또 지주가 와서 수탈을 해 갈 테니 농사는 그만두는 것이 좋겠어. 우리는 베를 짜고 수를 놓아서 시장에 갖다 팔고 다냐는 사냥을 해서 털가죽과 고기를 얻는 게 어떨까. ”

 

 

모두가 찬성했어요. 그래서 알렉산드라와 렐랴와 리자는 매일 베를 짜고 수를 놓았고 단추는 산속으로 사냥을 하러 다녔어요.

 

 

 

그러던 어느 날 단추는 사냥을 나갔다가 낭떠러지의 높은 바위 사이에서 풀을 뜯고 있는 커다란 곱사등이 흑염소를 한 마리 발견했어요. 염소는 많지만 흑염소는 드물었어요. 뿔도 아주 크고 멋있게 꼬부라진데다 새까만 털에도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것을 보니 잡을 수만 있다면 털가죽과 고기를 팔아서 당분간 배를 곯지 않고 지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단추는 화살을 쏘았지만 곱사등이 흑염소는 팔짝 뛰어오르더니 도망쳐버렸어요.

 

 

돌아온 단추가 그 얘기를 하자 막내인 리자가 툴툴댔어요.

 

 

“ 아이, 오빠는 화살 좀 잘 쏘지... ”

 

 

둘째 누이인 렐랴도 툴툴댔어요.

 

 

“ 오빠는 맨날 다람쥐나 토끼밖에 못 잡아오고... 흑염소를 잡아오면 얼마나 좋아! ”

 

 

하지만 큰 누이인 알렉산드라는 동생들을 나무라며 단추를 달래주었어요.

 

 

“ 우리를 위해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냥을 나가는 다냐에게 그런 말 하면 못써! 다냐, 흑염소는 날쌔서 화살로 잡기 쉽지 않을 테니 덫을 써보는 게 어떻겠니. ”

 

 

단추는 큰 누이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낭떠러지로 올라가 바위들 사이에 덫을 놓았어요. 다음날 낭떠러지로 가보니 과연 덫에 곱사등이 흑염소가 걸려 있었어요. 단추는 몹시 기뻤어요.

 

 

“ 와, 흑염소 가죽이랑 고기랑 뿔을 팔아서 빵도 사고 고기도 사고 기름도 사고 우리 누이들 예쁜 옷도 사줘야지!

 

 

그런데 그때 곱사등이 흑염소가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사람처럼 말을 하는 게 아니겠어요!

 

 

 

“ 저를 죽이지 마세요, 다닐. 저는 신령한 산짐승이에요. 저를 살려주시면 누이들도 좋은 신랑감을 얻게 해드리고 당신에게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미인을 얻게 해드리겠어요. ”

 

 

단추는 빵과 고기와 기름과 누이들의 예쁜 옷이 무척 아까웠지만 돌아가신 부모님이 말하는 짐승을 절대로 해치지 말라고 했던 것이 생각나서 흑염소를 덫에서 풀어주었어요. 덫에서 풀려난 곱사등이 흑염소는 수염을 쫑긋거리며 단추에게 와서 뿔을 비벼대며 감사의 인사를 했어요.

 

 

“ 고마워요, 다닐. 저를 살려주셨으니 보답을 하겠어요. 집에 돌아가면 매주 금요일마다 낯선 남자가 하나씩 집으로 찾아와서 누이들에게 구혼을 할 거예요. 그러면 거절하지 말고 누이를 시집보내도록 하세요. 절대로 외모나 행색으로 그들을 판단하시면 안 됩니다. ”

 

“ 하지만 우리 누이들은 정말 예쁜데. 알지도 못하는 남자들을 따라가지 않을 거야! ”

 

“ 누이들에게 직접 물어보세요. 구혼자가 마음에 든다고 하면 따라가게 하세요. 누이들을 모두 시집보내고 나면 다시 이 바위 앞으로 오세요. ”

 

 

단추는 좀 미심쩍었지만 고개를 끄덕였어요.

 

 

첫 번째 금요일이 되었어요. 노란 외투에 번쩍거리는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금발머리를 올백으로 빗어 넘긴 자그마하고 비쩍 마른 남자가 찾아왔어요. 안경까지 쓰고 있는데다 콧수염 때문에 얍삽해 보이는 인상이었기에 단추는 남자가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하지만 흑염소의 말을 생각하며 보드카를 대접했어요. 남자는 보드카를 한입에 털어 넣더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어요.

 

 

“ 안녕하시오, 다닐. 내 이름은 바냐 투레츠키요. 당신 누이 알렉산드라와 결혼하고 싶소. ”

 

“ 알겠어요, 알렉산드라에게 물어보겠어요. ”

 

 

놀랍게도 알렉산드라는 투레츠키를 보자마자 결혼을 승낙했어요. 그래서 알렉산드라는 투레츠키와 함께 당나귀를 타고 떠났어요.

 

 

두 번째 금요일이 되었어요. 키가 훤칠한 남자가 찾아왔어요. 이 남자는 외모는 그럴싸했지만 민망하게도 몸에 찰싹 달라붙는 하얀 타이츠와 블라우스를 입고 장화를 신고 있었어요.

 

 

“ 안녕하시오, 다닐. 내 이름은 가릭이라고 하오. 당신 누이 렐랴와 결혼하고 싶소. ”

 

“ 알겠어요, 렐랴에게 물어보겠어요. ”

 

 

렐랴도 가릭을 보자마자 결혼을 승낙했어요. 그래서 렐랴는 가릭과 함께 소를 타고 떠났어요.

 

 

세 번째 금요일이 되자 덩치가 크고 우락부락한 산적처럼 생긴 남자가 왔어요. 너덜너덜한 군복 차림에 수염까지 기르고 험상궂은 모양새였어요.

 

 

“ 안녕하시오, 다닐. 내 이름은 보랴라고 하오. 당신 누이 리자와 결혼하고 싶소. ”

 

“ 알겠어요, 리자에게 물어보겠어요. ”

 

 

단추는 귀염둥이 막내 누이인 리자를 저렇게 험상궂은 사내에게 시집보내기가 싫었어요. 하지만 리자는 웬일인지 보랴를 보더니 방긋방긋 웃으며 결혼하겠다고 나섰고 둘은 말을 타고 떠났어요.

 

 

다음날 단추는 낭떠러지 바위 앞으로 갔어요. 그러자 곱사등이 흑염소가 나타났어요.

 

 

“ 누이들을 모두 시집보내셨나요? ”

 

응, 근데 다들 수상쩍은 남자들이었어. 우리 누이들이 행복해야 할 텐데. ”

 

“ 누이들은 여왕처럼 살게 될 거예요. 자, 이제 당신 차례예요. ”

 

 

곱사등이 흑염소가 뿔 사이에서 두루마리를 하나 떨어뜨리더니 펴보라고 했어요. 단추가 두루마리를 펴보자 눈부신 미인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어요. 칠흑처럼 새까만 머리에 보석이 아로새겨진 왕관을 쓰고 금실로 수놓인 하얀 비단옷을 입고 눈처럼 새하얀 얼굴에 별처럼 반짝거리는 까만 눈, 장미꽃처럼 붉은 입술의 절세미인이었어요. 단추는 초상화를 보자마자 황홀해서 넋을 잃었어요.

 

 

“ 흑염소야, 흑염소야. 이 사람은 누구니? 어디로 가야 찾을 수 있니? ”

 

이 사람은 절세미인 미셴카예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죠. 그 미모에 반한 마왕 스페호프의 구애를 거절해서 세상 끝 왕국에 감금되어 있답니다. ”

 

“ 내가 미셴카를 구하고 말겠어! 그 세상 끝 왕국은 어디에 있니? ”

 

“ 그건 아무도 모른답니다. 그곳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세 개의 왕국을 먼저 찾아내야 해요. 이 공을 받으세요. 공이 굴러가는 방향으로 계속 가면 첫 번째 왕국에 도달하실 수 있어요. 그 이후는 하느님에게 맡겨야 해요. ”

 

“ 알겠어. 꼭 세상 끝 왕국을 찾아내서 미셴카를 구해 내고 말겠어! 고마워, 흑염소야. ”

 

“ 마음씨 착한 다닐, 당신은 친절하고 마음이 착하니 한 가지 선물을 드리겠어요. 제 뿔 사이에서 털을 하나 뽑아보세요. ”

 

 

단추는 흑염소의 뿔 사이에서 가장 길게 솟아 있는 까맣고 윤나는 털을 하나 뽑았어요.

 

 

“ 마음씨 착한 다닐, 세상이 무너지는 듯이 무섭고 슬플 때 그 털을 꺼내서 어루만지면서 이렇게 말하세요. ‘흑염소야, 흑염소야, 수틀리면 들이받는 흑염소 코즐로프야. 나에게 와주렴.’ 그러면 제가 나타날 거예요. 이제 세상 끝 왕국으로 떠나세요. ”

 

 

그리하여 마음 착한 단추는 곱사등이 흑염소와 헤어져서 세상 끝 왕국을 찾아 떠나게 되었어요.

 

 

 

 

*    *    *

 

 

 

 

단추는 흑염소가 준 공을 던졌어요. 공이 굴러가는 방향대로 걷고 또 걸었어요. 산 넘고 물 건너 계속 걸었어요. 신발이 닳고 옷이 해질 정도로 오래오래 걸었어요. 지치고 힘들 때마다 품에서 절세미인 미셴카의 초상화를 꺼내보며 다짐했어요.

 

조금만 기다려요, 아름다운 미셴카. 마왕의 손아귀에서 꼭 구해드릴게요! ”

 

 

그러던 어느 날 떼굴떼굴 굴러가던 공이 멈춰버렸어요. 아무리 굴려도 더 이상 굴러가지 않았어요. 그때 누더기와 넝마를 걸친 거지떼가 나타나 단추를 다짜고짜 꽁꽁 묶었어요. 아무리 단추가 자기는 수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소용없었어요. 낯선 놈이라면서 자신들의 소굴로 끌고 갔어요. 단추는 기가 막혔어요. 갖은 고생을 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웬 거지 도적떼의 소굴로 끌려오다니!

 

 

그런데 놀랍게도 거지 도적떼의 소굴은 겉모양만 허름할 뿐 안으로 들어가자 온갖 금은보화가 가득했어요. 거지들이 누더기를 벗자 안에 껴입은 비단옷이 나타났어요. 단추가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갑자기 거지들이 ‘왕비 마마!’ 하고 무릎을 꿇었어요. 보석으로 치장한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났어요. 단추는 자기 눈을 의심했어요. 그 여인은 큰 누이 알렉산드라였어요. 알렉산드라는 단추를 와락 껴안으며 너무나도 반가워했어요.

 

 

“ 다냐! 사랑하는 내 동생! ”

 

“ 누님!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

 

여기는 개방 왕국이란다. 내 남편 바냐 투레츠키가 다스리는 곳이야.

 

 

그때 바냐 투레츠키가 나타났어요. 여전히 노란 재킷에 번쩍번쩍하는 훈장들을 달고 머리를 올백으로 빗어 넘기고 있었어요. 하지만 안경을 벗자 세상에 그렇게 잘생긴 남자가 또 있을 수가 싶을 정도였어요. 투레츠키는 단추를 보더니 매우 기뻐했어요.

 

 

“ 어이, 처남! 멀리까지 와줘서 고마워! 술 한 잔 하지! ”

 

“ 반가워요, 바냐. 그런데 당신이 개방 왕국의 왕이었다니 몰랐네요. 여기는 허름해서 거지떼 소굴인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네요. ”

 

“ 에이, 그건 다 위장한 거지. 우리는 사실 교역과 상업으로 부를 축적했는데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 거지 소굴처럼 꾸미고 있는 거야. ”

 

“ 그랬구나... 여기가 세 개의 왕국 중 첫 번째 왕국인가요? ”

 

“ 응, 그렇지. ”

 

“ 그러면 세상 끝 왕국은 어떻게 가야 하나요? 절세미인 미셴카와 결혼하고 싶어요. ”

 

“ 글쎄, 나도 모르겠는데. 아마 우리 형님에게 가면 알 수 있을 거야. 오늘은 같이 술 마시고 맛있는 거 먹으며 회포를 풀고 내일 가도록 해. ”

 

 

그래서 단추는 투레츠키와 누이 알렉산드라와 함께 먹고 마시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요. 다음날 아침이 되자 투레츠키가 당나귀를 한 마리 끌고 왔어요.

 

 

“ 이놈이 길을 아니까 타고 가면 우리 형님의 왕국에 도착하게 될 거야. ”

 

“ 고마워요, 바냐. 알렉산드라랑 행복하게 사세요. ”

 

 

투레츠키는 단추에게 보석이 박힌 빗을 하나 건네주었어요.

 

 

“ 위기에 처하면 이걸 등 뒤로 던지도록 해. 부디 절세미인 미셴카를 꼭 찾기를! ”

 

 

단추는 빗을 품에 집어넣고 당나귀를 타고 떠났어요. 당나귀는 굉장히 빨랐어요. 바람처럼 달려가 사흘 만에 두 번째 왕국에 도착했어요. 당나귀가 단추를 내려놓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어요. 단추가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망토를 두른 건장한 남자들이 나타나 그를 꽁꽁 묶어서 끌고 갔어요.

 

 

끌려가면서 보니 주위에는 거대한 풍차들이 가득했고 푸르른 초원 위로 황금빛 소들이 풀을 뜯고 있었어요. 망토 두른 남자들이 단추를 파란색의 예쁜 지붕과 하얀색 칠이 된 벽이 기다랗게 뻗어 있는 자그마한 궁전으로 끌고 갔어요. 궁전 내부는 참으로 호화로웠어요. 단추가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남자들이 ‘왕비 마마!’ 하고 무릎을 꿇었어요. 예쁜 레이스 드레스에 장미꽃 장식을 달고 있는 미녀가 나타났는데 자세히 보니 둘째 누이 렐랴였어요. 렐랴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달려와 단추를 꼭 껴안았어요.

 

 

“ 다냐 오빠! 정말 보고 싶었어요! ”

 

“ 어, 렐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

 

여기는 풍차 왕국이에요. 내 남편 가릭이 다스리는 곳이에요.

 

 

그때 가릭이 나타났어요. 여전히 하얀 타이츠에 블라우스, 빨간 망토 차림이었지만 그렇게 우아하고 근사해보일 수가 없었어요. 가릭은 단추를 보더니 매우 기뻐했어요.

 

 

“ 어이, 처남! 멀리까지 와줘서 고마워! 술 한 잔 하지! ”

 

“ 반가워요, 가릭. 그런데 당신이 풍차 왕국의 왕이었다니 몰랐네요. 굉장히 유복한 왕국인가 봐요. ”

 

“ 응. 우리는 원체 땅도 기름지고 농사도 잘 되고 소들도 잘 커서 엄청 부자 왕국이야. ”

 

“ 그랬구나... 여기가 세 개의 왕국 중 두 번째 왕국인가요? ”

 

“ 응, 그렇지. ”

 

“ 그러면 세상 끝 왕국은 어떻게 가야 하나요? 절세미인 미셴카와 결혼하고 싶어요. ”

 

“ 글쎄, 나도 모르겠는데. 아마 우리 큰형님에게 가면 알 수 있을 거야. 오늘은 같이 술 마시고 맛있는 거 먹으며 회포를 풀고 내일 가도록 해. ”

 

 

그래서 단추는 가릭과 누이 렐랴와 함께 먹고 마시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요. 다음날 아침이 되자 가릭이 황금빛 소를 한 마리 끌고 왔어요.

 

 

이놈이 길을 아니까 타고 가면 우리 큰형님의 왕국에 도착하게 될 거야. ”

 

“ 고마워요, 가릭. 렐랴랑 행복하게 사세요. ”

 

 

가릭은 단추에게 보석 마개가 박힌 물병을 하나 건네주었어요.

 

 

“ 위기에 처하면 이걸 등 뒤로 던지도록 해. 부디 절세미인 미셴카를 꼭 찾기를! ”

 

 

단추는 물병을 품에 집어넣고 황금소를 타고 떠났어요. 황금소는 굉장히 빨랐어요. 바람처럼 달려가 엿새 만에 세 번째 왕국에 도착했어요. 황금소가 단추를 내려놓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어요. 단추가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조그만 날개가 달리고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사탕요정들이 나타나서 그를 꽁꽁 묶어서 끌고 갔어요.

 

 

끌려가면서 보니 주위에는 우유로 된 샘물과 포도주로 된 강이 흐르고 있었어요. 빵으로 만든 언덕과 과자집들이 즐비했어요. 나무에는 맛있는 음식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어요. 사탕요정들이 단추를 초콜릿과 딸기 사탕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궁전으로 끌고 갔어요. 궁전 내부는 참으로 호화로운데다 여기저기 맛있는 음식과 케익이 가득했어요. 단추가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요정들이 ‘왕비 마마!’ 하고 무릎을 꿇었어요. 천사처럼 조그만 날개를 달고 딸기 모양의 보석 팔찌를 찬 미녀가 나타났는데 자세히 보니 막내 누이 리자였어요. 리자는 방긋방긋 웃으면서 달려와 단추의 뺨에 뽀뽀를 했어요.

 

 

“ 어머 어머, 다냐 오빠!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

 

“ 어, 리자! 이게 어떻게 된 거야? ”

 

여기는 꿀 왕국이에요. 내 남편 보랴가 다스리는 곳이에요.

 

 

그때 보랴가 나타났어요. 군복 대신 곤룡포를 두르고 왕홀을 들고 있는데 그렇게 당당해 보일 수가 없었어요. 보랴는 단추를 보더니 매우 기뻐했어요.

 

 

“ 어이, 처남! 멀리까지 와줘서 고마워! 술 한 잔 하지! ”

 

“ 반가워요, 보랴. 그런데 당신이 꿀 왕국의 왕이었다니 몰랐네요. 사방에 맛있는 음식이 가득하네요. ”

 

“ 그렇지. 여기는 지상낙원이야. 배고픈 인민은 단 하나도 없어. 모두가 조금 일하고 많이 쉬고 맛있는 음식을 언제 어디서나 먹을 수 있어. ”

 

“ 그랬구나... 여기가 세 개의 왕국 중 마지막 왕국인가요? ”

 

“ 응, 그렇지. ”

 

“ 그러면 세상 끝 왕국은 어떻게 가야 하나요? 절세미인 미셴카와 결혼하고 싶어요. ”

 

“ 뭐라고? 세상 끝 왕국에 가겠다고? 음, 다른 사람 같으면 말렸겠지만 자네는 내 처남이니 도와주도록 하겠네. 오늘은 같이 술 마시고 맛있는 거 먹으며 회포를 풀고 내일 가도록 하게. ”

 

 

그래서 단추는 보랴와 누이 리자와 함께 먹고 마시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요. 다음날 아침이 되자 보랴가 백마를 한 마리 끌고 왔어요. 그리고는 청어 세 마리를 내밀었어요.

 

 

“ 내 말 잘 듣게, 다냐. 세상 끝 왕국은 검은 숲을 지나가야 하네. 이 백마가 숲을 통과하게 해줄 걸세. 숲을 지나면 수정과 황금으로 장식된 성이 나타날 것이네. 그러나 성문 앞에는 머리 셋 달린 무서운 괴물이 지키고 있다네. 괴물이 달려들거든 이 청어를 한 마리씩 던져주게. 그런 후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절세미인 미셴카를 찾아낼 수 있을 거야. ”

 

“ 고마워요, 보랴. 리자랑 행복하게 사세요. ”

 

 

보랴는 단추에게 은으로 된 목걸이를 하나 건네주었어요.

 

 

“ 위기에 처하면 이걸 등 뒤로 던지도록 해. 부디 절세미인 미셴카를 그 마왕 스페호프의 손아귀에서 꼭 구해내기를! ”

 

 

 

 

*    *    *

 

 

 

 

백마는 아흐레 밤낮을 달렸어요. 마침내 울창하고 어두컴컴한 검은 숲을 쏜살같이 통과하자 눈부신 햇살과 함께 이제껏 본 적도 없을 만큼 호화롭고 장대한 수정과 황금의 성이 나타났어요. 백마는 단추를 내려주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어요.

 

 

단추는 성벽을 돌아서 문 앞으로 갔어요. 과연 보랴의 말대로 무시무시하게 생긴 머리 셋 달린 괴물이 성문 앞을 지키고 있었어요. 금방이라도 시뻘건 입을 쩍 벌리고 달려들 기세였어요. 단추는 급하게 보랴가 준 청어 세 마리를 꺼내서 머리 하나당 한 마리씩 던져주었어요. 문지기 괴물은 청어를 쩝쩝 아작아작 씹더니 강아지처럼 온순해져서 금세 단추의 무릎 아래 납작 엎드렸어요. 그래서 단추는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어요.

 

 

성 내부는 굉장히 넓고 화려했어요. 나선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수정과 황금으로 장식된 홀이 펼쳐졌어요.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름다운 음악 소리를 따라가니 커다란 문이 나타났어요. 문을 밀자 붉은 벨벳 커튼이 나타났어요. 벨벳 커튼을 밀어젖히자 녹색 비단 커튼이 나타났어요. 비단 커튼을 열자 황금빛과 푸른빛으로 가득한 침실이 나타났어요. 햇살이 쏟아지는 창가에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미인이 앉아서 조그만 현이 달린 악기를 연주하며 나직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요. 칠흑처럼 새까만 머리에 보석이 아로새겨진 왕관을 쓰고 금실로 수놓인 하얀 비단옷을 입고 눈처럼 새하얀 얼굴에 별처럼 반짝거리는 까만 눈, 장미꽃처럼 붉은 입술의 절세미인이었어요. 바로 두루마리 초상화의 아름다운 미셴카였어요. 단추는 자기도 모르게 미셴카의 발 아래 넙죽 절을 했어요. 미셴카가 깜짝 놀라 악기를 내려놓고 눈을 동그랗게 떴어요.

 

 

“ 당신은 누구신가요? 여기는 세상 끝 왕국이라 인간의 몸으로 찾아올 수 없는 곳인데 어떻게 혈혈단신으로 여기까지 오셨나요? ”

 

“ 아름다운 미셴카, 저는 다닐이라고 해요. 수틀리면 들이받는 흑염소 코즐로프가 보여준 초상화에서 당신을 보고 반해서 여기까지 왔어요. ”

 

“ 아이 참, 어쩌려고 무모하게 여기까지 오셨나요. 여기는 무시무시한 마왕 스페호프가 지배하는 곳이에요. 인간들을 너무 싫어해서 보는 족족 잡아먹고 잔혹하게 죽이고 괴롭히고 수탈하는 간악한 마왕이에요. 당신을 발견하면 즉시 죽이려고 할 거예요. 어서 도망가세요! ”

 

안돼요. 저 혼자 도망갈 수는 없어요. 제가 죽더라도 당신을 마왕의 손아귀에서 구해드리고 말겠어요!

 

 

미셴카가 감동해서 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더니 단추의 뺨에 뽀뽀를 했어요. 단추는 너무 황홀해서 기절할 것 같았어요.

 

 

“ 고마워요, 다닐. 저를 구하러 여기까지 와 주시다니. 저는 벌써 3년째 여기 갇혀서 고통을 겪고 있어요. 스페호프는 마왕이기 때문에 인간의 힘으로는 무찌를 수가 없어요. 그를 없애는 방법을 알아내야 해요. 마침 오늘이 스페호프가 저에게 오는 날이에요. 마왕은 매달 마지막 주에 여기 와서 사흘 동안 머무르는데 당신은 그동안 제 옷장에 꼭꼭 숨어 계세요. 제가 마왕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보겠어요. 마왕이 이 방을 떠나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옷장에서 나오시면 안돼요. ”

 

“ 알겠어요, 미셴카.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옷장에서 나오지 않을게요. 그런데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실 수 없나요? 아흐레 동안 꼬박 달려왔더니 너무나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프네요. ”

 

 

미셴카는 과일과 고기와 빵과 주스와 보드카를 가져다주었어요. 단추는 먹고 마셨어요. 허기와 갈증이 가시자 단추는 너무나도 피곤했어요. 미셴카가 단추를 침대에 뉘어주고 부채질을 해주면서 머리를 빗겨주었어요. 미셴카의 손길이 너무나 부드러웠고 향기도 너무나 달콤해서 단추는 사르르 눈이 감겼어요.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갑자기 미셴카가 화들짝 놀라며 단추를 깨웠어요.

 

 

일어나요, 다닐! 스페호프가 오고 있어요. 창 너머로 벌써 날개 치는 소리가 들려와요. 어서 옷장으로 들어가세요!

 

 

단추는 후다닥 옷장으로 들어갔어요. 옷장은 단추의 시골집보다도 더 넓었고 화려한 의상들과 장식품이 즐비했어요. 단추는 미셴카의 아름다운 가운과 망토 사이에 몸을 숨기고 옷장 틈새로 바깥을 엿보았어요.

 

 

그때 푸드득푸드득 소리와 함께 타는 냄새와 피비린내와 금속 냄새가 진동을 하더니 마왕 스페호프가 창문으로 날아 들어와 거대한 검은 날개를 접으며 내려앉았어요. 그리고는 훌쩍 재주를 넘더니 인간 남자의 모습으로 변신해 곧장 미셴카의 허리를 낚아채고 입술이 떨어져라 키스를 했어요. 미셴카는 가만히 있었지만 얼굴에는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했어요. 단추는 너무나도 화가 나서 금방이라도 뛰쳐나가 마왕을 베어죽이고 싶었지만 미셴카와의 약속을 생각하고 꾹 참았어요.

 

 

입술을 뗀 스페호프가 코를 킁킁거리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쳤어요.

 

 

어디선가 인간 냄새가 나는군! 분명 어딘가 인간이 숨어 있는 거야! ”

 

 

미셴카가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어요.

 

 

“ 인간은 무슨! 아무도 제 곁에 못 오게 해놓고서 무슨 인간 냄새가 난다는 거예요! 아마 제 냄새겠죠! ”

 

“ 아니야! 너처럼 달콤하고 황홀한 꽃 냄새가 아니야! 이것은 러시아 촌놈 냄새야! 분명 어딘가 러시아 촌놈이 숨어 있는 거야! ”

 

“ 아유, 또 밖에 나가서 인간을 잡아먹고 왔군요! 자기가 풍기는 냄새잖아요! 저한테 올 때는 인간 잡아먹지 않겠다고 해놓고서! 미워요! ”

 

 

미셴카가 눈을 샐쭉하게 뜨더니 홱 돌아앉았어요. 마왕은 머리를 긁적이더니 고개를 끄덕였어요.

 

 

“ 그런가... 오다가 배고파서 몇 놈 잡아먹긴 했지. 약속은 무슨 약속! 뭐든 내 맘이지! 오늘따라 더 예쁘군. 그래, 오늘도 울고불고 말 안 듣고 결혼 안하겠다고 버둥거릴 생각이야? ”

 

“ 결혼이 무슨 필요가 있어요, 어차피 매일 당신 맘대로 하면서. ”

 

“ 그래도 데리고 노는 거하고 결혼은 사정이 다르지! 나는 우리 왕국의 제1후계자이지만 결혼을 하지 않으면 왕위를 물려받을 수 없단 말이야. 대대로 우리 마왕들은 세상에서 제일가는 미인과 결혼했지. 이 전통을 어길 수는 없어! 계속 이렇게 말을 안 듣고 고집을 부리면 이제 나도 어쩔 수 없지. 억지로 끌고 가서 결혼하든가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악마들에게 너를 제물로 바칠 수밖에!

 

 

미셴카의 얼굴이 새파래지는 것을 보니 결혼도 싫고 악마들에게 제물로 바쳐지는 것도 무서운 것 같았어요. 금세 큰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 맺히면서 ‘싫어요 싫어요’ 하고 울먹거리는 것을 보니 단추의 마음은 찢어질 것 같았어요. 그런데 미셴카가 울자 스페호프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더니 미셴카를 와락 껴안고 또 뽀뽀를 하면서 몸을 어루만졌어요.

 

 

나는 네가 울면 더 기분이 좋아. 밤새 울려주고 괴롭혀주겠다!

 

 

단추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뛰쳐나가려는 찰나 미셴카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어요.

 

 

“ 흑... 마왕님과 결혼하고 싶어도 믿을 수가 없어서 못한단 말이에요! ”

 

“ 아니, 그게 무슨 소리지? 정말로 나와 결혼하고 싶단 말이냐? 3년 내내 결혼 얘기만 나오면 거절하고 울고불고 소란을 피워놓고 나보고 그걸 믿으라고! ”

 

저는 고귀한 혈통에 우주에서 제일가는 미인이란 말이에요. 제 결혼 상대는 세상에서 제일 강한 남자여야 해요. 그런데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요. 저 같은 것이야 힘이 없으니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세상 어딘가에 당신보다 더 센 남자가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당신이랑 결혼해서 제 모든 것을 맡겼는데 갑자기 어딘가에서 더 강한 남자가 나타나서 당신을 한칼에 죽여 버리기라도 하면 전 어떻게 살아요! 흑흑, 생각만 해도 무서워요. 엉엉... 그래서 당신이랑 결혼하고 싶어도 못하겠다고요. ”

 

 

스페호프는 굉장히 좋아했어요. 껄껄 웃더니 미셴카를 무릎에 앉히고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어요.

 

 

“ 허허, 이런 바보 같으니. 실은 날 좋아하면서도 그런 두려움 때문에 계속 앙탈을 부렸단 말이냐! 역시 인간이라 어리석기 그지없구나! 이 세상에 나보다 강한 남자 따윈 존재하지 않아! 난 악마 왕국의 최고 후계자이며 불사의 마왕이야! 인간의 힘으로 날 죽일 수는 없지!

 

“ 그걸 어떻게 믿어요, 흐흑... 누가 와서 큰 칼로 당신을 뒤에서 찌르기라도 하면... 엉엉... ”

 

“ 하하하, 나는 악마의 가호로 무장한 몸이야! 인간의 칼은 내 몸에 들어가지도 않아! 나는 불사야! ”

 

“ 세상에 불사의 존재가 어디 있어요! 옛날에 우리 유모가 그랬어요, 악마도 모두 죽게 되어 있다고. 그런데 당신이라고 어떻게 안 죽어요! ”

 

“ 허, 그 유모가 좀 똑똑하군. 그렇지, 악마도 모두 죽게 되어 있지. 그러나 나는 내 죽음을 내 몸이 아니라 다른 곳에 숨겨놨기 때문에 그 어떤 공격을 당해도 죽지 않아. ”

 

“ 죽음을 어떻게 다른 데 숨길 수가 있어요? 거짓말. ”

 

“ 거짓말이라니! 감히 나를 의심하느냐! ”

 

“ 당신은 매일 약속도 안 지키고... 인간 안 잡아먹겠다더니 매일 잡아먹고, 절 때리지도 않고 귀여워해주겠다고 해놓고 툭하면 때리고 울리고 밤새 덮치는데 어떻게 믿어요, 엉엉... 죽음을 어떻게 다른 곳에 숨겨요. 그게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제가 어떻게 안심하고 당신이랑 결혼할 수 있겠어요! ”

 

“ 하하, 귀여운 것 같으니. 내가 사실을 말해주면 오늘 밤은 더 이상 앙탈하지 않고 고분고분하게 내 품에 안기겠느냐? 사흘 후에 나와 함께 악마 왕국에 가서 결혼하겠느냐? ”

 

“ 사실을 말해주면요. ”

 

내 죽음은 성 안의 호숫가 마당에서 놀고 있는 검은 오리의 심장에 숨겨져 있지. 그 오리를 죽여 심장을 꺼내 터뜨리지 않는 한 난 죽지 않아. 이제 마음이 놓였느냐?

 

“ 호숫가 마당에서 놀고 있는 검은 오리... ”

 

 

미셴카는 단추가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중얼거렸어요. 단추도 귀를 쫑긋 세우고 입안으로 몇 번이나 되풀이하며 외었어요. 미셴카가 더 이상 울지 않고 얌전해지자 스페호프가 좋아했어요. 미셴카를 끌어안고 침대로 갔어요. 밤새 마왕이 미셴카를 데리고 노는 동안 단추는 옷장 안에서 등을 돌리고 웅크린 채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소리를 죽여 엉엉 울었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미셴카를 구해줘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다음날 아침에 미셴카가 옷장 문을 열고 단추를 깨웠어요.

 

 

“ 일어나요, 다닐. 일어나요. 마왕이 나갔어요. 저녁에 다시 올 거예요. 어제 마왕이 자기 죽음에 대해 한 얘기를 들었나요? ”

 

“ 호숫가 마당에 놀고 있는 검은 오리요. 제가 지금 당장 가서 그 오리를 죽여 버리겠어요! ”

 

“ 안돼요. 저는 스페호프를 믿을 수가 없어요. 무작정 오리를 죽였다가 그게 아니면 돌이킬 수 없게 돼요. 일단 시험을 해봐야겠어요. 오늘 하루만 지켜봐주세요. ”

 

안돼요, 어제 당신이 그렇게 고초를 당했는데 오늘 또 그런 일을 겪게 할 수는 없어요! 지금 당장 오리를 죽여 버리겠어요!

 

“ 다닐, 제발 오늘 하루만 참아주세요. 저를 믿어주세요. ”

 

 

단추는 미셴카가 까만 속눈썹을 깜박거리며 부탁하자 마음이 약해져서 고개를 끄덕였어요. 둘은 손을 잡고 정원 안뜰의 호숫가로 갔어요. 오리들이 옹기종기 노닐고 있었는데 정말 검정 오리가 한 마리 있었어요. 단추는 단칼에 오리를 내리치고 싶었지만 미셴카는 오리를 붙잡더니 머리에 왕관을 씌워주고 목에는 금실로 수를 놓은 리본을 둘러주었어요. 그리고는 오리를 데리고 침실로 와서 비단 쿠션 위에 올려놓고 먹이를 주고 꽃다발을 바쳤어요.

 

 

오리가 배불리 먹고 잠이 들자 미셴카는 단추와 함께 식사를 하고 정원을 산책했어요. 단추에게 노래도 불러주었어요. 악기를 연주해 주고 천사처럼 춤도 춰주었어요. 단추는 돌아가신 부모님과 자기 누이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어요. 곱사등이 흑염소를 만났던 이야기도 해주었어요. 둘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그러다 어느 덧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어요. 미셴카가 화들짝 놀랐어요.

 

 

“ 다닐, 빨리 침실로 돌아가야 해요! 스페호프가 곧 올 거예요! ”

 

 

 

둘은 급하게 침실로 올라갔어요. 단추를 옷장에 숨긴 후 미셴카는 비단 쿠션을 자기 무릎에 올려놓고 오리의 털을 빗겨주고 노래를 불러주기 시작했어요. 그때 푸드득푸드득 소리와 함께 타는 냄새와 피비린내와 금속 냄새가 진동을 하더니 마왕 스페호프가 창문으로 날아 들어와 거대한 검은 날개를 접으며 내려앉았어요. 그리고는 훌쩍 재주를 넘더니 인간 남자의 모습으로 변신해 곧장 미셴카의 허리를 낚아채려다 오리를 보고는 멈칫했어요.

 

 

“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지? ”

 

“ 호숫가 마당의 검은 오리님이요. 마당에 놔뒀다가 누가 와서 심장을 꺼낼까봐 무서워서 여기 데려다 놓았어요. ”

 

“ 그 비단 쿠션과 왕관과 리본은? 노래를 불러주고 털까지 빗겨주다니. ”

 

“ 당신의 죽음을 숨겨둔 오리님인데 어떻게 그냥 내버려둘 수가 있나요. 받들어 모셔야죠. ”

 

 

스페호프가 껄껄 웃었어요. 미셴카를 와락 껴안더니 얼굴에 뽀뽀를 퍼부으며 허리가 끊어져라 웃어댔어요.

 

 

“ 하하하, 역시 인간이란 어리석다니까! 귀엽기도 하지.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다니! 이깟 하찮은 오리 따위에게 내 죽음을 숨겨놓을 리가 없거늘! ”

 

“ 뭐라고요? 또 저에게 거짓말을 하셨단 말이에요? 너무해요. 전 당신과 결혼하고 싶어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속마음을 다 얘기했는데... 냄새나는 오리까지 데려와서 제 비단 쿠션에 재워줬는데 정말 너무해요. ”

 

 

미셴카가 금세 눈물을 글썽거리며 돌아앉았어요. 마왕은 계속 웃어댔지만 미셴카가 흐느껴 울자 뺨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닦아 주었어요.

 

 

“ 뭘 그렇게 울어! 내가 그랬지! 울면 더 울려주고 싶다고! ”

 

“ 다 거짓말이었어... 당신이랑은 결혼 못 해요! 전 세상에서 제일 강한 남자랑 결혼해야 되는데. 이러다가 누가 와서 당신을 죽이면 난 불행해지겠지... 엉엉... ”

 

“ 허허, 귀여운 것 같으니. 좋아, 내가 사실을 말해주지. 내 죽음은 정원 제일 깊숙한 곳에 있는 오백년 묵은 참나무 안에 숨겨져 있지. 그 참나무를 베어 넘어뜨리지 않는 한 난 죽지 않아. 이제 마음이 놓였느냐?

 

“ 정원 제일 깊숙한 곳에 있는 오백년 묵은 참나무... ”

 

 

미셴카는 단추가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중얼거렸어요. 단추도 귀를 쫑긋 세우고 입안으로 몇 번이나 되풀이하며 외었어요. 미셴카가 더 이상 울지 않고 얌전해지자 스페호프가 좋아했어요. 미셴카를 끌어안고 침대로 갔어요. 밤새 마왕이 미셴카를 데리고 노는 동안 단추는 옷장 안에서 등을 돌리고 웅크린 채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소리를 죽여 엉엉 울었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미셴카를 구해줘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다음날 아침에 미셴카가 옷장 문을 열고 단추를 깨웠어요.

 

 

“ 일어나요, 다닐. 일어나요. 마왕이 나갔어요. 저녁에 다시 올 거예요. 어제 마왕이 자기 죽음에 대해 한 얘기를 들었나요? ”

 

“ 정원 제일 깊숙한 곳에 있는 오백년 묵은 참나무요. 제가 지금 당장 가서 그 나무를 베어버리겠어요! ”

 

“ 안돼요. 저는 스페호프를 믿을 수가 없어요. 무작정 나무를 베었다가 그게 아니면 돌이킬 수 없게 돼요. 일단 시험을 해봐야겠어요. 오늘 하루만 지켜봐주세요. ”

 

안돼요, 어제도 당신이 그렇게 고초를 당했는데 오늘 또 그런 일을 겪게 할 수는 없어요! 지금 당장 나무를 베어버리겠어요!

 

“ 다닐, 제발 오늘 하루만 참아주세요. 저를 믿어주세요. ”

 

 

단추는 미셴카가 까만 속눈썹을 깜박거리며 부탁하자 마음이 약해져서 고개를 끄덕였어요. 둘은 손을 잡고 정원으로 갔어요. 아주 깊이 들어가자 오백년 묵은 참나무가 있었어요. 단추는 도끼로 나무를 내리치고 싶었지만 미셴카는 나무에 금실로 수를 놓은 리본을 둘러주고 꽃다발과 보석을 잔뜩 쌓아놓았어요.

 

 

나무 그늘에 앉아서 미셴카는 단추와 함께 식사를 하고 차를 마셨어요. 둘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그러다 어느 덧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어요. 미셴카가 화들짝 놀랐어요.

 

 

“ 다닐, 빨리 침실로 돌아가야 해요! 스페호프가 곧 올 거예요! ”

 

 

 

둘은 급하게 침실로 올라갔어요. 단추를 옷장에 숨긴 후 미셴카는 ‘참나무야 참나무야 우리 마왕님을 지켜주렴’ 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그때 푸드득푸드득 소리와 함께 타는 냄새와 피비린내와 금속 냄새가 진동을 하더니 마왕 스페호프가 창문으로 날아 들어와 거대한 검은 날개를 접으며 내려앉았어요. 그리고는 훌쩍 재주를 넘더니 인간 남자의 모습으로 변신했어요. 하지만 미셴카의 허리를 낚아채지는 않고 빙긋빙긋 웃었어요.

 

 

“ 정원에 다녀왔는데 참나무에 리본을 둘러주고 꽃다발을 쌓아뒀더군. 내가 가져다줬던 금은보화도 전부 나무 아래 갖다놓고. 대체 왜 그런 거지? ”

 

“ 당신의 죽음을 숨겨둔 위대한 참나무님인데 어떻게 그냥 내버려둘 수가 있나요. 받들어 모셔야죠. ”

 

 

스페호프가 껄껄 웃었어요. 미셴카를 와락 껴안더니 온몸에 뽀뽀를 퍼부으며 허리가 끊어져라 웃어댔어요.

 

 

“ 하하하, 역시 예쁜 애는 미련하다니까!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다니! 그깟 썩은 나무 둥치 따위에게 내 죽음을 숨겨놓을 리가 없거늘! ”

 

“ 뭐라고요? 또 저에게 거짓말을 하셨단 말이에요? 너무해요. 전 당신과 결혼하고 싶어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속마음을 다 얘기했는데... 제 금은보화를 모두 바쳤는데 정말 너무해요. ”

 

 

미셴카가 금세 눈물을 글썽거리며 돌아앉았어요. 마왕은 계속 웃어댔지만 미셴카가 흐느껴 울자 뺨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닦아 주었어요.

 

 

“ 뭘 그렇게 울어! 내가 그랬지! 울면 더 울려주고 싶다고! ”

 

“ 당신은 어쩌면 이럴 수가 있나요! 당신이랑은 결혼 못 해요! 난 세상에서 제일 강한 남자랑 결혼해야 되는데. 이러다가 누가 와서 당신을 죽이면 난 불행해지겠지... 엉엉... 당신은 절 사랑하지 않는 게 분명해요!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고... 저 혼자 사랑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요, 흑흑... ”

 

 

미셴카가 목을 놓아 울자 마왕 스페호프는 달래보려고 애를 썼어요. 하지만 미셴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어요. 급기야 미셴카는 창가로 기어 올라가 바깥으로 몸을 내밀며 울부짖었어요.

 

 

당신이 이렇게 저를 속이고 절 믿어주지 않는다면 전 뛰어내려 죽어버리겠어요! 저를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결혼할 수는 없어요!

 

 

스페호프가 껄껄 웃었어요. 한 팔로 미셴카를 안아서 침대로 데려가더니 머리와 얼굴과 목에 뽀뽀를 했어요. 그리고는 결심한 듯 말했어요.

 

 

“ 네가 이토록 나를 사랑하니 사실을 말해주지. 그 누구에게도 말해준 적이 없는 비밀이야. 성 뒤에 있는 호수 한가운데 작은 섬이 있고 그 섬에는 천년 묵은 뱀이 한 마리 똬리를 틀고 있지. 그 똬리 아래 작은 상자가 있고 그 상자를 열면 검은 알이 하나 있는데 그 알을 깨뜨려 노른자를 뭉개지 않는 한 난 결코 죽지 않아. 이제 마음이 놓였느냐?

 

“ 호수 한가운데 작은 섬, 뱀, 상자, 검은 알... ”

 

 

미셴카는 단추가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중얼거렸어요. 단추도 귀를 쫑긋 세우고 입안으로 몇 번이나 되풀이하며 외었어요.

 

 

“ 그래. 이제 만족하느냐?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겠느냐? 이제 나와 결혼해 주겠느냐? ”

 

“ 네, 마왕님. ”

 

 

미셴카가 더 이상 울지 않고 얌전해지자 스페호프가 좋아했어요. 미셴카를 끌어안고 침대로 갔어요. 밤새 마왕이 미셴카를 데리고 노는 동안 단추는 옷장 안에서 등을 돌리고 웅크린 채 두 손으로 귀를 막고 ‘호수 한가운데 작은 섬, 뱀, 상자, 검은 알’을 수백 번 되풀이했어요.

 

 

 

 

*    *    *

 

 

 

 

다음날 아침에 미셴카가 옷장 문을 열고 단추를 깨웠어요. 사흘 밤 내내 마왕에게 시달려서 해쓱해진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어요.

 

 

“ 일어나세요, 다닐. 일어나세요. 시간이 없어요. 성 뒤에 있는 호수의 작은 섬으로 가서 천년 묵은 뱀의 똬리 아래 있는 상자를 찾아오세요. 저는 스페호프의 마법에 걸려 있어 성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답니다. 당신 혼자 가야 해요. 해가 지기 전까지 꼭 돌아오셔야 해요. 오늘 저녁에 스페호프가 저를 데리고 악마 왕국으로 가겠다고 했어요. 이번 기회를 놓치면 저는 악마 왕국으로 끌려가 스페호프와 결혼하거나 악마들에게 제물로 바쳐지게 될 거예요. 부디 저를 구해주세요, 다닐. ”

 

“ 걱정 마세요, 미셴카! 제가 반드시 상자를 찾아서 알을 깨뜨리겠어요! 당신을 그놈의 마수에서 구해내고 말겠어요! ”

 

“ 꼭 해가 지기 전까지 돌아와야 해요! 다닐, 사랑해요! ”

 

 

미셴카가 단추를 꼭 껴안더니 입술에 키스를 해 주었어요. 단추는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온몸이 흐물흐물해지는 것 같았어요. 아무 데도 가지 않고 미셴카를 꼭 껴안은 채 가만히 있고 싶었지만 간신히 무릎을 펴고 일어났어요. 그리고는 쏜살같이 성 밖으로 내달렸어요.

 

 

성 뒤에는 정말 거대한 호수가 있었어요. 헤엄을 쳐서는 도저히 섬까지 갈 수 없을 것 같았어요. 단추가 절망하며 탄식하고 있는데 호숫가로 집채만한 철갑상어 한 마리가 올라오더니 물었어요.

 

 

“ 다닐, 왜 그렇게 슬퍼하고 있나요? ”

 

“ 어떻게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니. 호수를 건너 섬에 가서 천년 묵은 뱀의 똬리 아래 있는 상자를 꺼내 알을 깨뜨려야 사랑하는 미셴카를 마왕의 손아귀에서 구해낼 수 있는데 호수를 건널 수가 없단다. ”

 

“ 마음씨 착한 다닐, 저는 당신이 구해준 곱사등이 흑염소 코즐로프의 사촌이랍니다. 제 등에 타세요, 섬까지 데려다 드릴게요. ”

 

 

단추는 물고기가 어떻게 흑염소와 사촌일 수 있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보는 대신 고마워하며 철갑상어의 등에 올라탔어요. 철갑상어는 물살을 가르며 헤엄쳐갔어요. 마침내 섬에 도착했을 때 철갑상어가 말했어요.

 

 

“ 상자를 찾아내면 곧장 여기로 와서 저를 부르세요. 건너편으로 데려다 드릴게요. ”

 

“ 고마워, 철갑상어야! ”

 

 

단추는 쏜살같이 달려서 섬의 한가운데 언덕으로 올라갔어요. 햇살 잘 드는 언덕 위에 눈처럼 새하얗게 빛이 바랜 시무시하고 거대한 뱀이 한 마리 똬리를 틀고 앉아 있었어요. 뱀의 위용이 너무나 당당해서 단추는 얼어붙었어요. 고향에서 흔히 보던 뱀 생각만 하고 작대기로 치워버려야지 하고 있었는데 과연 천년 묵은 뱀이라 그런지 작대기는 어림도 없었어요. 자칫 잘못하면 물려 죽거나 나무둥치 같은 몸뚱이에 휘감겨 죽을 것 같았어요.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두더지 한 마리가 단추에게 말을 걸었어요.

 

 

“ 다닐, 왜 그렇게 슬퍼하고 있나요? ”

 

“ 어떻게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니. 천년 묵은 뱀의 똬리 아래 있는 상자를 꺼내 알을 깨뜨려야 사랑하는 미셴카를 마왕의 손아귀에서 구해낼 수 있는데 뱀이 너무 크고 무서워서 상자를 꺼낼 수가 없단다. ”

 

“ 마음씨 착한 다닐, 저는 당신이 구해준 곱사등이 흑염소 코즐로프의 사촌이랍니다. 제가 상자를 가져다 드릴게요. ”

 

 

단추는 흑염소에게는 참 사촌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두더지는 천년 묵은 뱀 이 앉아 있는 쪽으로 가더니 잽싸게 땅을 파고 들어갔어요. 그리고는 한참 후에 머리와 콧등에서 흙을 마구 떨어내며 조그만 상자를 물고 왔어요.

 

 

“ 다닐, 상자를 받으세요. 그런데 열쇠가 없네요. 부디 알을 꺼내 깨뜨려서 절세미인 미셴카를 마왕의 손아귀에서 꼭 구하실 수 있기를! ”

 

“ 고마워, 두더지야! 은혜를 잊지 않을게! ”

 

 

단추는 상자를 들고 달려갔어요. 벌써 오후가 다 지나가고 있었어요. 호숫가로 달려가 목청껏 소리쳤어요.

 

 

“ 철갑상어야 철갑상어야! 나를 호수 저편으로 데려다 주렴! ”

 

 

철갑상어가 나타나 단추를 등에 태우고 물살을 가르며 헤엄쳐 갔어요. 마침내 호숫가에 도착했을 때 철갑상어가 단추를 내려주었어요.

 

 

“ 잘 가요, 마음씨 착한 다닐. 부디 절세미인 미셴카를 마왕의 손아귀에서 구해내길 빌어요! ”

 

“ 고마워, 철갑상어야! 이 은혜를 잊지 않을게! ”

 

 

단추는 상자를 가슴에 품고 정신없이 뛰었어요.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어요.

 

 

‘ 큰 일 났네, 미셴카가 반드시 해가 지기 전까지 와 달라고 했는데... ’

 

 

 

단추는 숨이 막히고 폐가 터질 만큼 미친 듯이 뛰었어요. 그러나 막 성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을 때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마왕 스페호프가 거대한 날개를 펄럭거리며 날아와 첨탑의 침실 창문에 내려앉는 것이 보였어요. 단추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정신없이 계단으로 달려 올라가려는데 미셴카가 구르듯 뛰쳐나왔어요. 빨간 실로 수를 놓은 모자 속으로 머리칼을 전부 감추고 볼품없는 루바슈카 셔츠와 모피를 덧댄 바지에 장화를 신은 채 뛰쳐나온 미셴카의 초라해진 모습에 단추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어요.

 

 

“ 아아, 미셴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왕관과 망토와 가운은, 그 화려하던 장신구는 다 어디로 갔나요? ”

 

“ 변장을 했어요! 마왕의 눈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려고요! ”

 

 

하지만 변장은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평민들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해도 미셴카는 여전히 세상에서 제일가는 미인이었어요. 오히려 허름한 옷차림 때문에 그 미모가 더욱 빛이 났어요. 미셴카는 다급하게 소리쳤어요.

 

 

“ 스페호프가 와요, 다닐! 상자! 상자를 찾으셨나요? ”

 

“ 네! 철갑상어와 두더지가 도와줘서 상자를 찾았어요! 그런데 열쇠가 없어서 상자를 열지 못했어요... ”

 

“ 상자를 꺼내보세요! ”

 

 

단추가 급하게 품에서 상자를 꺼내고 있는데 마왕 스페호프가 무시무시한 고함을 지르며 침실 창가에서 머리를 쭉 빼더니 날카로운 눈초리로 아래를 쭉 훑었어요. 마왕의 눈은 매처럼 예리했어요. 정원에 있는 미셴카를 순식간에 발견하고는 으르렁거리며 순식간에 지상으로 쇄도해 왔어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냐! 결혼식 준비를 하라고 했더니 이 초라한 넝마 쪼가리는 뭐냐! 당장 올라가서 곱게 치장하지 못하겠느냐!

 

싫어! 난 안 가! 너 같은 놈이랑 결혼하느니 죽어버릴 테야!

 

뭣이! 귀엽다 귀엽다 하고 봐줬더니 이 맹랑한 것이 머리끝까지 기어오르려고 해! 그렇게 변덕을 부려봤자 소용없어! 지옥불이 준비됐고 결혼식 만찬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

 

 

마왕이 갈고리 같은 손톱이 자라난 거대하고 무지막지한 손을 뻗어 미셴카의 모자를 홱 벗기더니 머리칼을 잡아챘어요. 미셴카가 질질 끌려가려는 것을 단추가 허리를 껴안고 자기 쪽으로 낚아챘어요. 그리고는 품에 지니고 있던 사냥칼을 꺼내 마왕 스페호프의 손을 내리쳤어요.

 

 

그 더러운 손 치워! 미셴카는 안 갈 거야!

 

“ 아니, 이놈은 뭐야! ”

 

“ 난 가브릴로프 숲에서 온 다닐이다! 미셴카는 너랑 결혼 안 해! 내가 구해줄 거야! ”

 

“ 어쩐지 계속 러시아 촌놈 냄새가 난다 했지! 어디서 굴러먹었는지도 모르는 촌뜨기 하룻강아지가 감히 나에게 대들다니! 너부터 잡아먹고 이 버릇없는 것을 지옥으로 데려가서 악마들에게 제물로 바쳐버리겠다! ”

 

 

스페호프가 시뻘건 입을 쩍 벌리며 불길을 내뿜고 날카로운 이빨과 뱀처럼 갈라진 혀를 드러냈어요! 미셴카가 단추의 손을 홱 끌어당기며 뒤로 물러났어요. 그리고는 바닥의 모래를 한 움큼 쥐어 마왕의 얼굴에 홱 뿌렸어요. 모래가 눈알에 들어가 박혀 스페호프가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미셴카는 단추의 손을 잡고 미친 듯이 뛰어서 정원의 수풀 사이에 숨었어요. 그리고는 다급하게 속삭였어요.

 

 

“ 다닐! 상자! 상자를 열어요! 알을 깨뜨려요! ”

 

 

단추는 급하게 상자를 꺼냈어요. 하지만 뚜껑이 꽉 잠겨 있었어요.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아무리 애를 써도 뚜껑이 열리지 않았어요.

 

 

“ 미셴카, 열쇠가 없어서 열리지 않아요! 어쩌면 좋죠? “

 

“ 이 세상에 열리지 않는 상자는 없어요, 잠깐만요. ”

 

 

미셴카가 루바슈카 자락을 여미고 있던 바늘을 뽑았어요. 그리고는 상자의 자물쇠에 바늘을 집어넣고 달칵거리며 이리저리 돌렸어요. 나직하게 노래를 부르면서 계속 바늘을 돌렸어요.

 

 

금바늘 은바늘 우리 어머니의 보석바늘아, 부디 나와 다닐을 마왕으로부터 구해주렴.

 

 

미셴카가 노래를 부르자 딸그락딸그락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바늘이 옆으로 빙그르르 돌아가더니 찰카닥 하면서 자물쇠가 열렸어요. 단추가 허겁지겁 뚜껑을 열려고 하는데 시커먼 그림자가 안개처럼 내리덮이더니 천둥 같은 고함소리가 들려왔어요.

 

 

여기 있었구나! 감히 어딜 도망치려고! 이제 악마 왕국으로 가자! ”

 

 

거대한 날개를 펼친 스페호프가 기다란 팔을 뻗어 미셴카를 낚아채더니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어요. 미셴카가 비명을 질렀지만 마왕의 본모습을 드러낸 스페호프는 너무 크고 무시무시하고 힘이 세서 손아귀에 꽉 붙잡혀 꼼짝달싹할 수가 없었어요. 단추는 소리치며 스페호프를 쫓아가려고 했지만 마왕은 점점 높이 날아올라갔어요. 미셴카가 스페호프의 손아귀에 붙들려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린 채 소리쳤어요.

 

 

다닐! 알을 깨뜨려요! 알을 깨뜨려요!

 

 

그제야 단추는 제정신이 들었어요. 상자 뚜껑을 활짝 열었어요. 커다랗고 새까만 알이 나타났어요. 단추는 알을 집어 들고는 목청껏 외쳤어요.

 

 

이 간악한 괴물아, 네 죽음이 여기 있다! 이제 사라져라! ”

 

 

끝없이 솟구쳐 올라가던 마왕 스페호프가 움찔했어요. 단추의 손에 들린 검은 알을 발견하고는 괴성을 지르며 쏜살같이 지상으로 하강하기 시작했어요. 마왕이 거의 다 내려왔을 때 단추는 있는 힘껏 알을 땅바닥에 집어 던졌어요. 철퍽 소리와 함께 까만 알이 산산조각으로 깨졌어요. 검고 자욱한 안개가 일었어요. 마왕이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곤두박질쳤어요. 굉음과 먼지구름이 일었어요. 단추가 어리벙벙해져 있는데 먼지구름과 안개 속에서 미셴카가 비틀거리며 달려와 단추를 와락 껴안았어요.

 

 

“ 다닐, 다닐... ”

 

“ 미셴카! 괜찮아요? ”

 

“ 네, 괜찮아요. 잘했어요! ”

 

“ 이제 마왕이 죽은 건가요? 이제 다 끝난 건가요? ”

 

 

미셴카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안개 속에서 끔찍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온통 시커멓고 시뻘겋게 변한 마왕 스페호프가 나타났어요. 두 눈에 번쩍거리는 횃불을 켜고 기어 다니며 발톱으로 땅바닥을 마구 파헤쳤어요. 갑자기 미셴카가 비명을 질렀어요.

 

 

다닐, 도망쳐요! 마왕이 죽지 않았어요! 알이 완전히 깨지지 않았어요!

 

“ 아니에요, 미셴카! 무슨 소리에요! 제가 알을 땅바닥에 메쳤어요! 산산조각 났어요! 여기 이렇게 껍데기들이 흩어져 있잖아요! ”

 

“ 노른자를 완전히 뭉개야 죽는다고 했어요! 노른자가 저기 있어요! 다 뭉개지지 않았어요! ”

 

 

미셴카의 말이 맞았어요! 알껍데기는 산산조각 났지만 노른자가 살아 있었어요. 절반밖에 뭉개지지 않았어요. 절반은 살아서 땅바닥에 둥그렇게 모여 있었어요. 단추가 달려가 노른자를 장화로 밟아 짓이기려고 했지만 그때 스페호프가 거대한 입을 쩍 벌리더니 두 개로 갈라진 혀를 날름거리며 노른자를 휙 쓸어서 집어삼켜버렸어요. 그리고는 부르르 떨더니 온몸에서 불꽃을 튀기며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어요. 두 배 세 배로 커지며 비늘과 가시를 마구 쏟아냈어요.

 

 

감히 날 속이다니, 이 요망한 것 같으니! 너부터 죽여 버리고 말겠다!

 

 

스페호프가 미셴카를 향해 달려들었어요. 단추가 뛰어올라 사냥칼을 휘둘렀어요. 마왕의 혀가 잘려 바닥에 툭 떨어지면서 피가 분수처럼 튀었어요. 마왕이 아픔으로 고함을 지르며 울부짖는 동안 단추는 미셴카의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어요. 미셴카가 소리쳤어요.

 

 

“ 우리 성문으로 나가요, 다닐! 검은 숲으로 가요! ”

 

“ 하지만 당신은 마왕의 마법 때문에 성을 나갈 수 없다고 했잖아요! ”

 

“ 이제 나갈 수 있어요! 알껍데기가 깨졌어요! 스페호프가 마지막 남은 노른자를 먹었어요, 자신의 죽음과 한 몸이 되었어요. 마법이 약해졌어요. 어서 뛰어요, 다닐! 마왕은 검은 숲 바깥으로 나올 수 없어요! 숲만 빠져나가면 돼요! ”

 

 

그래서 단추는 미셴카와 함께 달렸어요. 숨을 몰아쉬며 달리고 또 달려 성문을 빠져나왔어요. 그러자 머리 세 개 달린 문지기 괴물이 세 개의 입을 벌리고 괴성을 질렀어요. 미셴카가 공포로 비명을 질렀지만 괴물은 단추를 알아보고 꼬리를 치며 소리쳤어요.

 

 

“ 친절한 다닐, 청어 세 마리를 주신 다닐! 아름다운 미셴카! 내 등에 타요! 숲을 빠져나가게 해 드릴게요! ”

 

 

단추와 미셴카를 등에 태운 문지기 괴물이 쿵쿵거리며 달리기 시작했어요. 어둡고 울창한 검은 숲 깊숙한 곳까지 달렸어요. 그때 굉음이 들리고 하늘이 완전히 새까매졌어요. 마왕 스페호프가 거대한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고 있었어요. 불꽃과 우박이 비 오듯 떨어졌어요. 문지기 괴물이 소리쳤어요.

 

 

“ 붙잡히겠어요! 네 발로는 두 개의 날개를 이길 수가 없어요! ”

 

“ 다닐, 어떻게 하죠? 검은 숲을 빠져나가기 전에 스페호프에게 붙잡힐 것 같아요... ”

 

 

공포에 질린 미셴카가 울면서 단추를 꼭 껴안았어요. 그러자 단추는 품 안에서 뭔가가 가슴을 쿡쿡 찌르는 것을 느끼고 손을 집어넣어 보았어요. 보석이 박힌 빗이 잡혔어요.

 

 

“ 아, 투레츠키가 그랬지! 위기에 처하면 이걸 등 뒤로 던지라고! ”

 

 

스페호프가 끼르륵 소리를 내며 내려앉으려는 찰나 단추가 등 뒤로 보석 박힌 빗을 던졌어요. 그러자 순식간에 뾰족뾰족하고 거대한 가시나무들이 쑥쑥 자라나 하늘 끝까지 치솟았어요. 가시나무 넝쿨들이 끝없이 펼쳐졌어요.

 

 

“ 달려, 문지기야! 가시나무 넝쿨이 마왕을 막아주는 동안 검은 숲을 빠져나가야 해! ”

 

 

문지기 괴물이 더욱 빠르게 질주했어요. 단추는 미셴카를 꼭 껴안고 괴물의 등에 매달렸어요. 그러나 얼마 안 가서 다시 굉음이 들려왔어요. 가시나무 넝쿨들을 모조리 베어버린 마왕 스페호프가 거대한 날개를 퍼덕이며 등 뒤까지 쫓아왔어요. 불꽃과 우박이 비 오듯 떨어졌어요. 문지기 괴물이 소리쳤어요.

 

 

“ 붙잡히겠어요! 네 발로는 두 개의 날개를 이길 수가 없어요! ”

 

“ 다닐, 어떻게 하죠? 검은 숲을 빠져나가기 전에 스페호프에게 붙잡힐 것 같아요... ”

 

 

공포에 질린 미셴카가 울면서 단추를 꼭 껴안았어요. 그러자 단추는 품 안에서 뭔가가 가슴을 쿡쿡 찌르는 것을 느끼고 손을 집어넣어 보았어요. 보석마개가 박힌 물병이 잡혔어요.

 

 

“ 아, 가릭이 그랬지! 위기에 처하면 이걸 등 뒤로 던지라고! ”

 

 

스페호프가 끼르륵 소리를 내며 내려앉으려는 찰나 단추가 등 뒤로 보석 마개 박힌 물병을 던졌어요. 그러자 순식간에 거대한 호수가 나타나 그들과 마왕 사이를 가로막았어요. 거친 파도와 소용돌이가 집채보다 높게 일었어요.

 

 

“ 달려, 문지기야! 호수와 파도가 마왕을 막아주는 동안 검은 숲을 빠져나가야 해! ”

 

 

문지기 괴물이 더욱 빠르게 질주했어요. 단추는 미셴카를 꼭 껴안고 괴물의 등에 매달렸어요. 그러나 얼마 안 가서 다시 굉음이 들려왔어요. 호수의 물을 모조리 마셔버린 마왕 스페호프가 거대한 날개를 퍼덕이며 등 뒤까지 쫓아왔어요. 불꽃과 우박이 비 오듯 떨어졌어요. 문지기 괴물이 소리쳤어요.

 

 

“ 붙잡히겠어요! 네 발로는 두 개의 날개를 이길 수가 없어요! ”

 

아니에요, 조금만 더 달려요! 검은 숲이 끝나가고 있어요! 저 앞에 빛이 보여요! 숲이 끝나가고 있어요!

 

 

미셴카가 저 너머에서 스며들어오는 황금빛 햇살을 가리키며 소리쳤어요. 하지만 문지기 괴물은 땀과 거품을 토해내며 그만 주저앉고 말았어요.

 

 

“ 나는 더 이상 달릴 수가 없어요, 친절한 다닐, 아름다운 미셴카! 멈추면 마왕에게 잡힐 거예요. 빨리 뛰어요! 빨리 뛰어서 숲을 빠져나가요! ”

 

 

그래서 단추와 미셴카는 문지기 괴물의 등에서 뛰어내렸어요. 서로의 손을 꼭 잡고 검은 숲의 나무들 사이로 스며들어오는 햇살을 향해 달렸어요. 그러나 그 순간 마왕 스페호프가 검은 안개와 시뻘건 불길에 휩싸인 채 그들의 앞을 가로막으며 내려앉았어요. 입을 쩍 벌리며 잘려나간 혀 너머로 목구멍을 울려대며 소리쳤어요.

 

 

어딜 가려고! 하잘 것 없는 인간 따위가 감히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으냐!

 

 

단추는 사냥칼을 뽑아들려고 했지만 이미 마왕의 혀를 베느라고 내던져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무기가 없었어요. 당황한 단추가 허리춤을 뒤지는 순간 스페호프가 갈고리 같은 발톱을 모두 세우고 단추를 향해 쏜살같이 돌진해 왔어요. 미셴카가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어요.

 

 

“ 다닐! 안돼요! ”

 

 

그리고는 미셴카가 마왕과 단추 사이로 몸을 내던졌어요. 두 팔로 단추를 꼭 껴안고 땅바닥에 나뒹굴었어요. 검은 안개와 시뻘건 불길이 일었고 비늘과 우박이 마구 쏟아졌어요. 단추는 데굴데굴 구르면서 미셴카를 꼭 껴안았어요. 미셴카가 몸을 부르르 떨었어요. 스페호프가 다시 입을 쩍 벌리고 덮쳐왔어요. 그때 단추는 품 안에서 뭔가가 가슴을 쿡쿡 찌르는 것을 느끼고 손을 집어넣어 보았어요. 은 목걸이가 만져졌어요.

 

 

“ 아, 보랴가 그랬지! 위기에 처하면 이걸 등 뒤로 던지라고! ”

 

 

단추는 고개를 돌린 채 등 뒤로, 발톱을 세우고 달려드는 마왕 스페호프를 향해 은 목걸이를 내던졌어요. 그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새하얗고 새파란 불기둥이 치솟았어요. 한 줄기 불기둥이 마왕 스페호프의 날개를 꿰뚫고 지나가더니 눈이 멀 것 같은 빛살이 퍼져 나왔어요. 무시무시하고 처절한 비명 소리와 함께 마왕 스페호프가 몸부림쳤어요. 몸을 뒤틀더니 컥컥 하고 목구멍으로부터 반쯤 뭉개진 노른자를 토해냈어요. 자신의 죽음을 토해냈어요. 단추는 미친 듯이 달려가 노른자를 발로 마구 밟아 짓이겼어요. 노른자가 완전히 뭉개질 때까지 마구 짓이겼어요. 그 순간 마왕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세 차례 토해내더니 번쩍 하는 섬광과 함께 한 줌의 재로 화했어요.

 

 

단추는 너무나 기뻤어요. 박수를 치며 펄쩍 뛰었어요. 땅바닥에 웅크리고 누워 있는 미셴카를 안아 일으키며 소리쳤어요.

 

 

“ 우리가 해냈어요, 미셴카! 이제 다 끝났어요! ”

 

 

미셴카가 가냘픈 목소리로 속삭이듯 물었어요.

 

 

“ 다닐, 마왕이 정말 죽었나요? ”

 

“ 그래요! 노른자를 짓이겼어요! 마왕이 재로 변했어요! ”

 

“ 이제 저는 마왕에게서 풀려났나요? ”

 

“ 그래요! 당신은 이제 자유예요! ”

 

“ 고마워요, 다닐. 고마워요. ”

 

“ 이제 일어나요, 아름다운 미셴카! 검은 숲을 빠져나가요! 한 발짝만 나가면 돼요! 저랑 같이 가요! 저랑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아요! ”

 

“ 그래요, 다닐. 사랑해요. 저에게 입 맞춰 주세요. ”

 

 

그래서 단추는 미셴카의 입술에 키스를 했어요. 그런데 미셴카는 일어나지 않았어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고개를 옆으로 떨어뜨리고 꼼짝도 하지 않았어요. 놀란 단추는 미셴카를 껴안고 억지로 몸을 일으켰어요. 그러자 미셴카의 어깨와 등과 다리에 패여 있는 끔찍한 상처가 드러났어요. 마왕 스페호프가 단추에게 달려들었을 때 미셴카가 몸을 던져 막았기 때문이었어요. 단추를 구하고 대신 마왕의 갈고리 발톱에 온몸이 찢겨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것이었어요. 단추는 울부짖었어요.

 

 

미셴카! 안돼요! 안돼요! 제발 살아나요!

 

 

하지만 미셴카는 더 이상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어요. 완전히 숨이 끊어진 채 피투성이가 되어 단추의 품에 누워 있었어요. 단추는 너무나도 절망했어요. 목을 놓아 울었어요. 검은 숲의 모든 나무들이 가지를 내리고 잎사귀를 떨어뜨릴 정도로 슬피 통곡했어요.

 

 

 

 

*    *    *

 

 

 

 

 

단추는 차갑게 식은 미셴카의 이마와 입술에 키스를 하고 비처럼 눈물을 쏟으며 사흘 밤낮을 꼼짝도 하지 않고 검은 숲에 앉아 엉엉 울었어요. 세상이 무너지는 듯 무섭고 슬퍼서 울고 울고 또 울었어요.

 

 

사흘 째 되던 날 단추는 울다가 퍼뜩 흑염소의 말이 떠올랐어요.

 

 

‘ 마음씨 착한 다닐, 세상이 무너지는 듯이 무섭고 슬플 때 제 털을 꺼내서 어루만지면서 이렇게 말하세요. 흑염소야, 흑염소야, 수틀리면 들이받는 흑염소 코즐로프야. 나에게 와주렴. ’

 

 

단추는 급하게 품에서 새까맣고 윤이 나는 털을 꺼냈어요. 한 손으로 미셴카의 손을 꼭 쥐고 한 손으로 털을 어루만지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흑염소야, 흑염소야, 수틀리면 들이받는 흑염소 코즐로프야. 나에게 와주렴.

 

 

그러자 향긋한 풀 냄새와 함께 산들바람이 불어왔고 곱사등이 흑염소 코즐로프가 나타났어요. 단추에게 꾸벅 절을 했어요.

 

 

“ 오랜만이에요, 마음씨 착한 다닐. 세상 끝 왕국에서 절세미인 미셴카를 찾아내셨나요? ”

 

“ 찾아냈단다, 흑염소야. ”

 

“ 마왕 스페호프를 무찌르셨나요? ”

 

“ 무찔렀단다, 흑염소야. ”

 

“ 그러면 왜 저를 부르셨나요? 세상이 무너지는 듯 무섭고 슬퍼진 이유가 무엇인가요? ”

 

“ 어떻게 무섭고 슬프지 않을 수 있겠니, 마왕에게서 날 구해주기 위해 미셴카가 몸을 던졌단다. 가엾은 미셴카가 죽고 말았단다. 죽은 마왕이 미셴카의 혼을 데리고 지옥으로 함께 가버리고 말았단다. ”

 

“ 그럴 리가요, 마음씨 착한 다닐. 죽어버린 악마는 인간의 순수한 영혼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없답니다. 자, 미셴카를 안고 일어나세요. 저를 따라 한 발짝만 걸어 나오세요. 여기는 악마의 법도가 지배하는 검은 숲이랍니다. 숲에서 빠져나오세요. ”

 

 

그래서 단추는 차갑게 굳어버린 미셴카의 시체를 안고 일어나 비틀거리며 한 발짝 나아갔어요. 검은 숲에서 빠져나왔어요. 그 순간 그의 뒤에서 거대한 문이 닫히듯 안개가 내리덮였고 숲이 사라졌어요. 그들은 축축하게 젖은 검은 흙이 깔려 있고 푸른 잔디가 피어오른 따스한 언덕 위에 있었어요. 하지만 미셴카는 여전히 차갑게 굳고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숨이 끊어진 채 단추의 품에 안겨 있었어요. 흑염소가 다정하게 말했어요.

 

 

“ 이제 미셴카를 내려놓으세요, 마음씨 착한 다닐. ”

 

싫어, 그럴 수 없어. 미셴카를 내 품에서 떠나보낼 수 없어! 땅에 묻지 않을 거야!

 

 

단추가 고개를 저으며 흐느껴 울었어요.

 

 

“ 떠나보내려는 것이 아니에요. 미셴카를 당신에게 돌려드릴 거예요. 어머니 대지의 품에 절세미인 미셴카를 뉘어 주세요. ”

 

 

그래서 단추는 축축하게 젖은 검은 흙 위로 부드러운 푸른 잔디가 피어오른 언덕 위에, 어머니 대지의 품에 미셴카의 몸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어요. 그러자 곱사등이 흑염소 코즐로프가 미셴카의 코와 입술에 입김을 불었어요. 그리고 노래를 불렀어요.

 

 

생명이여 돌아오너라, 어머니 대지의 품에 안긴 미셴카의 몸으로.

혼이여 돌아오너라, 어머니 대지의 품에 안긴 미셴카의 가슴으로.

 

 

 

황금빛 햇살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어요. 따스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왔어요. 미셴카가 몸을 꿈틀거리더니 눈을 떴어요. 길고도 깊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어요. 그리고 단추를 바라보며 다정하게 미소를 지었어요. 단추는 너무나도 행복했어요. 미셴카를 일으켜 주었고 두 팔로 꼭 껴안았어요.

 

 

“ 이제 모든 게 다 끝났어요, 아름다운 미셴카! 마왕은 죽었고 마법도 사라졌어요. 당신은 자유예요. 이제 저와 함께 가요. 세 명의 누이들을 보러 세 개의 왕국으로 가요. 저와 함께 어디든 가요. 저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아요. 귀여운 아기들도 낳고 언제까지나 함께 행복하게 살아요. ”

 

 

단추가 기쁨에 겨워 청혼을 했어요. 그런데 죽음에서 돌아온 미셴카는 단추의 품에 안겨 행복해하다가 갑자기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어요. 눈을 내리깔더니 고개를 돌렸어요. 놀란 단추가 물었어요.

 

 

“ 아니, 왜 그러시나요, 아름다운 미셴카? 제가 혹시라도 잘못한 게 있나요? 저를 사랑하지 않으시나요? ”

 

아니에요, 다닐. 그게 아니에요. 저는 당신을 사랑해요. 제 모든 것을 전부 내줄 수 있을 만큼 사랑해요. 하지만 저는 당신과 결혼할 수 없어요. ”

 

“ 아니, 왜요? 왜 저와 결혼할 수 없나요? 당신은 귀족이고 저는 평민이기 때문인가요? 당신은 세상에서 제일가는 미인이고 저는 하잘 것 없는 사냥꾼이기 때문인가요? ”

 

“ 아니에요, 다닐. 당신은 귀여운 아기들을 낳고 행복하게 살자고 했어요. 저는 당신이 다 알고 있는 줄 알았어요. ”

 

“ 무엇을요? 제가 무엇을 다 알고 있는 줄 아셨나요? ”

 

“ 저는 여인이 아니에요, 다닐. 저는 당신과 같은 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어요. 저는 남자예요. ”

 

 

단추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어요.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미셴카를 멍하게 쳐다보았어요. 미셴카가 갈기갈기 찢어진 루바슈카를 걷어 올려 아직도 마왕의 발톱 상처가 선명하게 남아 있는 맨가슴을 보여 주었어요. 아무런 융기도 없이, 미끈하고 평평하게 뻗어 내린 눈처럼 하얀 몸을 보여주었어요. 단추는 헉 하고 숨을 들이쉬었고 자기도 모르게 눈을 돌렸어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어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어요.

 

 

“ 왜 그런 거예요? 왜 저를 속였나요? ”

 

“ 저는 속인 적이 없어요, 다닐. 전 당신이 아는 줄 알았어요. ”

 

“ 전 몰랐어요. 어떻게 알았겠어요! 당신이 이토록 아름답고 사랑스러운데 어떻게 남자라고 생각할 수 있었겠어요! ”

 

“ 사흘 밤 내내 스페호프가 저에게 왔었잖아요. 밤새 저를 안았어요. 옷장 속에서 저와 스페호프가 밤을 보내는 것을 두 눈으로 보지 않으셨나요? 제가 여인이 아니라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셨나요? ”

 

“ 아니요, 전 보지 않았어요. 확인하지 않았어요. 그 악독한 마왕이 당신을 괴롭히는 것을 차마 두 눈으로 볼 수가 없었어요. 등을 돌리고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있었어요. 하느님 맙소사...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요? 전 당신을 여인이라고 생각했어요. 여인이라 생각하고 사랑에 빠졌어요. 그런데 당신은 저를 속였어요!

 

 

단추는 놀라고 절망한 나머지 미셴카를 떠밀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어요. 탄식하며 흐느끼고 있는데 곱사등이 흑염소가 곁으로 다가와서 물었어요.

 

 

“ 왜 그렇게 울고 있나요, 마음씨 착한 다닐? 절세미인 미셴카를 당신의 품으로 돌려드렸는데 무엇이 또 그렇게 슬퍼서 울고 있나요? ”

 

흑염소야, 흑염소야. 너는 나를 속였어! 이 모든 게 다 너 때문이야! 넌 나에게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자를 얻게 해주겠다고 했어. 너의 말을 믿고 누이들을 시집보내고 세상 끝 왕국까지 와서 마왕을 무찔렀어. 아름다운 미셴카를 구했어. 그런데 미셴카는 여자가 아니었어! 나와 같은 남자였어! 너는 나를 속였어! 미셴카도 나를 속였어! ”

 

“ 아니에요, 다닐. 그렇지 않아요. 저는 당신을 속인 적이 없어요. 저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미인이라고 했어요. 여자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아름다운 미셴카도 당신에게 자기가 여자라고 말한 적이 없어요. 당신 혼자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에요. ”

 

“ 하지만 분명히 너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미인이라고 했잖아! ”

 

“ 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요. 아름다운 미셴카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미인이에요. 세상의 시작으로부터 끝까지, 저 사람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영영 없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당신에게 세상에서 제일가는 미인을 얻게 해드렸어요. 아름다움은 불공평한 것이며 칼날처럼 내리치는 무기이며 이성으로 재단할 수도 없고 세상의 질서로 규정할 수도 없어요. 당신은 어찌 저런 아름다움을 남자와 여자로 구분하려고 하시나요? 설령 미셴카가 마왕의 발톱에 상처를 입어 늙고 더러워지고 추해졌다 하더라도 그는 어머니 대지 위에서 영원히 아름답게 남을 거예요. 그가 당신을 향한 무한한 사랑으로 자신의 생명을 내던졌기 때문이죠. 그런데 당신은 오로지 미셴카가 여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등을 돌리려고 하는군요. 정녕 당신은 아름다운 미셴카를 사랑한 적이 없다는 말인가요? ”

 

 

단추는 뭐라고 항의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어요. 갑자기 가슴이 찌르는 듯 아파왔어요. 심장이 너무나도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단추가 물었어요.

 

 

“ 흑염소야, 흑염소야. 왜 이렇게 심장이 아픈 걸까? 마왕의 발톱에 상처를 입었던 건 아름다운 미셴카인데 왜 내 심장이 이렇게 아픈 걸까? ”

 

“ 글쎄요, 다닐. 그건 아름다운 미셴카가 당신을 위해 피를 흘렸기 때문이겠죠. 지금도 당신 때문에 심장에서 피를 흘리고 있기 때문이겠죠. ”

 

 

단추는 흙을 털고 일어났어요. 언덕 아래로 달려 내려갔어요. 미셴카가 나무 그늘 아래 웅크리고 앉아 있었어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흐느껴 울고 있었어요. 검은 흙과 푸른 잔디 위로 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세상이 끝난 듯 슬피 울고 있었어요. 단추는 무릎을 꿇었어요. 미셴카를 꼭 껴안았어요. 눈물로 축축하게 젖은 뺨에 입을 맞췄어요. 미셴카가 고개를 들어 단추를 바라보았어요. 울어서 새빨개진 눈으로 단추를 보면서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목소리를 짜내서 물었어요.

 

 

“ 왜 오셨나요, 다닐? ”

 

“ 당신과 함께 세상 어디든 가려고요. ”

 

“ 저랑 결혼할 수 없는데도요? 귀여운 아기들을 낳을 수 없는데도요? 저는 여인이 아니라 당신과 같은 몸인데도요? ”

 

상관없어요. 저는 당신과 함께 갈 거예요. 언제까지나 같이 있을 거예요. ”

 

“ 어쩌면 제가 당신과 함께 가지 않을지도 모르잖아요. ”

 

“ 함께 가 주세요, 아름다운 미셴카. 저는 당신을 사랑해요. 저와 함께 있어요. 언제까지나. ”

 

 

아름다운 미셴카가 손등으로 눈물을 쓱쓱 닦더니 활짝 웃었어요. 그래서 단추는 미셴카를 더욱 꼭 끌어안았고 입술에 키스를 했어요. 오래오래 키스를 했어요. 그리고 둘은 손을 꼭 잡고 함께 언덕을 걸어 내려갔어요.

 

 

 

 

 

FIN

- 2015. 6. 20 ~ 6. 23 -

 

 

 

..

 

 

이렇게 민담 패러디가 끝났습니다~

 

..

 

끝까지 민담 스타일로 갔다면 아이를 낳고 수염 사이로 술이 줄줄 흐를 때까지 잔치를 즐기는 걸로 끝났겠지만.. 그래도 이건 서무 시리즈에서 나왔으니까 마지막은 내 맘대로 바꿨음 :)

 

그리고 투레츠키의 개방 왕국은 전에 올린 에피소드 댓글에서 단추팬클럽분들과 얘기 나눈 무협외전 아이디어를 조금 집어 넣었다 :)

 

..

 

그럼 다음 이야기는 다시 서무 에피소드로...

 

..

 

댓글은 저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

 

 

:
Posted by liontamer
2015. 7. 2. 23:09

미하일 바리쉬니코프 사진 세 장 dance2015. 7. 2. 23:09

 

 

너무 힘든 하루였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위해 미하일 바리쉬니코프 사진 세 장

출처는 사진의 서명대로 Russian Imperial Ballet.

 

내가 좋아하는 연습실 사진 두 장과 도약하는 사진 한 장을 골라봤다.

 

당신 때문에 러시아어 전공하게 되었죠...

 

 

 

 

 

 

:
Posted by liontamer
2015. 7. 1. 13:26

더위 달래려고, 여름 정원의 분수 russia2015. 7. 1. 13:26

 

 

어느덧 7월.. 진짜 여름 ㅠㅠ

더위도 달래고 오후에 일할 기운도 얻을 겸, 페테르부르크 레트니 사드(여름 정원)의 분수 사진 몇 장 올려본다.

 

레트니 사드는 정말 아름답고 또 시원한 곳이다. 여기저기 서 있는 대리석 조각상들도 근사하고 녹음이 아름답고 그늘은 평화롭다. 분수와 연못도 좋다.

 

이전에 올렸던 이곳 사진들은 태그의 레트니 사드를 클릭하면 볼 수 있다.

 

 

 

 

 

 

 

 

 

 

 

 

:
Posted by liontamer
2015. 6. 30. 17:50

여름 운하의 오리들 russia2015. 6. 30. 17:50

 

 

작년 7월, 페테르부르크.

모이카 운하.

밤 9시 즈음이었던 듯.

 

 

 

청둥오리~~

 

 

 

 

운하 수면이 거울처럼 반짝였다.

백야 시즌의 페테르부르크는 정말 아름답다.

 

:
Posted by liontamer
2015. 6. 29. 13:15

얼어붙은 겨울 운하 풍경 russia2015. 6. 29. 13:15

 

 

페테르부르크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운하 중 하나인 겨울 운하(짐느이 까날). 이름이 겨울 운하이다.

에르미타주 박물관 사이에 있음. 아주 작은 운하이다. 에르미타주가 겨울 궁전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 듯.

 

작고 평온한 운하이다. 그 너머로는 네바 강이 그대로 보인다.

 

이건 지난 2월. 진짜 겨울의 겨울 운하 :) 꽁꽁 얼어붙었다.

 

 

 

 

 

 

 

 

태그의 겨울 운하를 클릭하면 날씨 좋았을 때 찍은 이 곳 사진과 눈에 덮인 풍경도 볼 수 있다.

 

:
Posted by liontamer
2015. 6. 28. 22:54

잿빛 겨울의 예술 광장 russia2015. 6. 28. 22:54

 

 

지난 2월, 페테르부르크.

 

날씨가 매우 궂은 날이라 러시아 박물관에 갔었다. 하늘은 흐렸고 곧 진눈깨비가 내리더니 이후 눈보라처럼 변했다.

 

여기는 그랜드 호텔 유럽과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러시아 박물관과 미하일로프스키 극장 사이에 있는 예술 광장. 푸쉬킨 동상이 서 있는 광장이기도 하다. 그 푸쉬킨 동상 사진은 전에 여러번 올린 적이 있다. 페테르부르크에 갈 때마다 거의 제일 먼저 들르는 곳이다. 푸쉬킨에게 먼저 인사하고, 그 다음에 청동기마상 쪽으로 가서 표트르에게 인사한다. 시인이 황제보다 먼저인 법이다!

 

이때 춥고 습하고 날씨 때문에 힘들었는데 막상 사진을 보면 또 좋아보인단 말이야... (그래도 페테르부르크의 눈 오는 날씨는 정말 괴로워 ㅠㅠ)

 

 

 

 

맞은편에 보이는 울타리와 건물이 러시아 박물관.

 

 

 

:
Posted by liontamer

 

 

같은 곳 다른 느낌 1(http://tveye.tistory.com/3829)에 이어...

이건 2013년 9월에 갔을 때.

이 날은 날씨가 아주 좋았음. 그리보예도프 운하와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 페테르부르크의 상징적 풍경 중 하나.

 

 

 

같은 곳에서 구도만 좀 다르게 찍음. 역시 2013년 9월... 이 날은 날씨가 흐렸음.

같은 곳이라도 느낌이 많이 다르다 :)

 

:
Posted by liontamer

 

본편의 패러디이자 장난거리로 시작했던 서무 시리즈가 이제 벌써 26편...

 

사실 0편이 있으므로 총 27편에 번외편 등장인물 20문답까지 하면 28편이나 된다... 게다가 며칠 전 번외편으로 러시아 민담 패러디를 하나 더 썼음. 음... 본편은 정말 언제 쓰지.. 본편은 겨우 100페이지 밖에 못 썼는데 ㅠㅠ 하여튼 힘빼고 놀면서 써야 술술 쓸 수 있긴 하다만... 본편은 그게 잘 안 되니 문제임.

 

하여튼 26편은 우리의 단추청년 베르닌의 과거를 좀 들춰보는 순간이다~ 그렇다고 과거 시점으로 서술되는 건 아니고... 단추에게도 꽃피는 봄날이 있긴 있었을까 ㅠㅠ

 

 

* 초반부에 나오는 '돌마'는 다진 고기와 야채를 포도 잎사귀에 돌돌 말아 쪄낸 일종의 고기 롤이다. 보통은 양배추로 말아서 만드는 롤인데(이건 여러 나라에서 다 먹는다) 양배추 롤은 '작은 비둘기'란 뜻의 '골룹츠이'라고 불린다. 나도 골룹츠이만 먹어보고 돌마는 안 먹어봄.

 

* 올랴, 올루슈카는 모두 올가의 애칭. 사셴카는 알렉산드라의 애칭이다.

 

 

** 지금까지의 줄거리와 이번 편 간략한 예고 **

 

1980년대 초 소련의 지방 소도시(..라고 쓰고 시골이라 읽는다) 가브릴로프의 보안위원회(KGB) 말단 행정직원이자 서무인 다닐 베르닌은 무시무시한 상사에게 시달리고 격무에 짓눌려 죽을 지경이다.  

이 와중에 모스크바에서 유명한 무용수 출신의 반동분자 정치범을 가브릴로프로 유배시키고, 베르닌은 엉겁결에 그를 감시하는 중책을 떠맡는다. 알고보니 그것은 싸가지 없는 젊은 예술가 녀석의 가정부이자 노예 노릇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가뜩이나 서무 업무로 들들 볶이느라 힘든 와중에 새로 온 녀석의 출퇴근 운전기사 노릇, 집안일, 밥해먹이기 등등 온갖 잡일에 시달리던 베르닌은 망할 놈의 반동분자를 왕재수라 부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왕재수도 나름대로 시골 생활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 중이다.

언제나처럼 바쁘게 일하는 와중에 베르닌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 그리고 다닐 베르닌은 추억과 혼란 속으로 빠져드는데... 

 


(이 시리즈는 아래 순서대로 읽기를 권장함~)

 

 * <서무의 슬픔> 시리즈에 대해 : http://tveye.tistory.com/3427
* 주요 등장인물 소개 + 시리즈 목차 : http://tveye.tistory.com/3428
* 에피소드 0. 다닐 베르닌의 새로운 임무 : http://tveye.tistory.com/3429
* 에피소드 1. 왕재수, 행동에 나서다 : http://tveye.tistory.com/3432
* 에피소드 2. 당직실의 귀신 : http://tveye.tistory.com/3437
* 에피소드 3. 버찌잼과 초콜릿 쿠키 : http://tveye.tistory.com/3444
* 에피소드 4. 공유지의 배추와 의전의 문제 : http://tveye.tistory.com/3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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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피소드 20. 베르닌, 무대에 데뷔하다! :  http://tveye.tistory.com/3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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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피소드 24. 시계탑 전망대에서 : http://tveye.tistory.com/3785
* 에피소드 25. 천하일미 요리대회(1부) : http://tveye.tistory.com/3800
* 에피소드 25. 천하일미 요리대회(2부) : http://tveye.tistory.com/3813 
 
** 번외편. 등장인물 20문답 : http://tveye.tistory.com/3492, http://tveye.tistory.com/3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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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무의 슬픔 series>

episode 26 

 

 

 

서무의 슬픔

- 베르닌의 옛 여인 -

 

 

 

 

 

 

그 날도 베르닌은 정신없이 일하고 있었다. 왕재수의 감시를 위해 오후마다 극장에 가는 것까지는 좋은데 일이 너무 밀려서 오전에는 정말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발따예프가 소리를 쳤다.

 

 

“ 다닐, 전화 좀 받게! 자네 찾는 전화야! ”

 

“ 어, 예. 누구인가요? ”

 

“ 몰라, 무슨 올가가 어떻고 하는데. ”

 

“ 엥, 그게 누구지? 업무 담당자들 중엔 그런 이름 없는데. ”

 

 

베르닌은 전화를 받았다.

 

 

“ 예, 다닐 베르닌입니다. ”

 

“ 다냐, 나야. ”

 

“ 나라고요? 누구신가요? ”

 

“ 나라니까, 올가. ”

 

“ 그러니까 올가가 누구신지... ”

 

“ 어머, 너 일부러 그러는 거니? 아니면 진짜 날 완전히 잊어버린 거야? 나 말이야, 올랴! 올가 유스코바. ”

 

 

베르닌은 하마터면 수화기를 떨어뜨릴 뻔 했다.

 

 

“ 뭐? 어... 아... 올가... 그 올가... 저... 올랴. 안녕. 저, 미안. 잊어버린 게 아니고 너무 오랜만이라 목소리를 못 알아들었어. ”

 

“ 하긴, 벌써 2년이 훨씬 넘었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

 

 

베르닌은 갑자기 입안이 바짝 마르는 느낌이 들었다. 꽉 막히는 목을 가다듬으며 웅얼거리듯 물었다.

 

 

“ 근데 어떻게 여기 번호는 알고 전화했어? ”

 

“ 예전에 네가 알려줬잖아. 야근하니까 못 나온다고 그냥 전화로 얘기하자고. 근데 번호는 똑같네. ”

 

아니, 그거 현관 대표번호였어... 민간인한테 우리 직통 번호는 못 알려주거든. ”

 

“ 흠, 너 여전하구나. ”

 

“ 어, 저... 올가... ”

 

 

잠시 베르닌은 올랴라고 불러야 할지 올가라고 불러야 할지 헷갈렸다. 하긴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니었다.

 

 

“ 무슨 일로 전화한 거야? 그때 이후로 연락 한 번도 안 했잖아. ”

 

“ 너 오늘 저녁에 시간 있니? 오랜만에 잠깐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서. 밥 같이 먹으면 더 좋고. ”

 

“ 아, 어... 저... 왜? ”

 

“ 꼭 이유가 있어야 되니? ”

 

“ 아니, 그게... 저... 우리는, 그러니까... 그때... ”

 

“ 나한테 중요한 일이 생겼는데 널 꼭 보고 싶어서 그래. 다냐, 안되겠니? 너 설마 아직도 나 보는 게 불편한 거야? ”

 

“ 어, 그런 게 아니고... 아니야. 저녁에 잠깐 보자. 어디로 가면 되니? ”

 

“ 난 직장이 천사 공원 쪽인데 너네 사무실은 신시가지 쪽이지? 넌 야근할 테니까 내가 그쪽으로 가야겠네. ”

 

“ 아니야, 나 요즘 오후엔 구시가지 쪽에서 업무 보고 있어. 천사 공원이면 가까우니까 그쪽으로 갈게. 6시까지 갈까? ”

 

“ 어머, 웬일로 네가 그렇게 이른 시간을 잡니. 또 그러다가 미루는 거 아니야? ”

 

“ 아니야, 맞춰서 갈 수 있어. 공원에서 6시에 보자. ”

 

“ 그래, 다냐. 있다가 봐. ”

 

 

전화를 끊고 난 후 베르닌은 한숨을 쉬었고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    *    *

 

 

 

 

오후에 그는 극장으로 갔다. 왕재수는 그야말로 회오리처럼 연습실을 누비고 다녔다. 신작 공연이 보름 정도밖에 안 남았기 때문에 무용수들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탈탈 털고 있었다. 그 와중에 원래 일정에 따른 공연들도 꾸준히 올라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도 챙기고 있었고 오디션으로 발굴한 2군, 3군 무용수들을 연습시키랴 교정해주랴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심지어 그렇게 바쁘면서도 스네고로드에서 데려온 나쟈를 일주일에 한 번씩 극장으로 불러와서 직접 지도를 하고 있었다!

 

 

베르닌은 극장에 도착하자마자 왕재수의 비서인 류드밀라에게 들러서 요즘 항상 던지는 질문을 했다.

 

 

“ 걔 점심 먹었어요? ”

 

“ 오늘은 먹었어요. 토냐네 어머니랑 할머니가 감독님 찾아왔거든요. 지난번에 화재 났을 때 토냐 구해준 거 고맙다고 맛있는 걸 바리바리 채운 바구니를 네 개나 들고 오셨더라고요. 그래서 다 같이 나눠먹었어요. ”

 

“ 아, 그랬구나. 토냐는 좀 어때요? 그때 다리 좀 다쳤잖아요. ”

 

“ 많이 좋아졌어요. 다음 주에는 복귀할 수 있을 것 같대요. ”

 

“ 진짜 다행이네요. ”

 

 

베르닌은 연습실로 갔다. 신작 연습이 아직 한창이었다. 왕재수가 프랑스어와 러시아어를 섞어가며 무용수들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베르닌은 하를람피 푸고비체프 시절이 생각났고 다시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하고 잠깐 아쉬워했다. 잠시 후 왕재수가 30분 휴식을 선언했다. 무용수들이 땀을 닦으며 물을 마시고 연습실 구석에 있는 바구니에서 초콜릿 바를 꺼내 먹었다. 베르닌은 오면서 사온 치즈 오이 샌드위치와 오렌지 주스를 들고 가서 왕재수에게 내밀었다.

 

 

“ 야, 먹어. ”

 

“ 나 배부른데. 아까 점심 많이 먹었어. 토냐 어머니가... ”

 

“ 그래도 먹어둬! 방금까지 소리 지르고 발 탕탕 구른 것만으로도 배 다 꺼졌겠다! ”

 

“ 아유 지겨워. ”

 

 

그래도 왕재수는 치즈 샌드위치를 받았다. 절반을 베르닌에게 주고 반만 먹었지만 주스는 다 마셨다. 무용수들은 거의가 나가고 없었다. 아마 차이카에 가서 숨을 돌리고 뭘 먹고 있는 모양이었다.

 

 

“ 나 오늘 저녁에 약속 생겼어. 너 오늘은 발레 공연 없잖아. 저녁밥 못 챙겨주니까 바이올린 아저씨랑 먹어. ”

 

“ 에이, 웬 약속... 로만은 오늘 오페라 공연 때문에 늦게 끝나는데. 할 수 없네, 굶어야지. ”

 

“ 야! 내가 안 챙겨준다고 저녁 굶으면 어떡해! ”

 

“ 저녁 한 끼 굶는다고 큰일이라도 생기냐? ”

 

생겨! 너는 생긴다고! 의사 선생님한테 이를 거야! 바이올린 아저씨한테도 얘기할 거야! 바퀴벌레 곱등이 뱀...

 

“ 이제 그거 안 통해! 너도 이제 뱀 못 주워와! 뱀 이제 겨울잠에서 다 깼어! 숲에서 막 꾸물거리면서 기어 다니고 돌아다녀! 낼름낼름... 으앙... ”

 

 

왕재수는 기세 좋게 소리치다가 갑자기 뱀이 날름거리는 모습이 상상됐는지 제풀에 소스라치면서 울먹거렸다. 아무리 잘난 척해도 역시 뱀은 무서운 모양이었다. 베르닌은 왕재수를 더 놀려주고 싶었지만 눈물이 글썽글썽한 얼굴을 보고 극장 감독의 체면을 생각해서 꾹 참았다.

 

 

“ 알았어, 뱀 안 주워올 테니까 밥은 꼭 먹어야 돼. 혼자라도 보랴네 식당에 가서 먹으면 되잖아. ”

 

“ 그 식당 저녁에 가면 사람 많단 말이야. 가뜩이나 며칠 전에 보랴가 요리대회 상 받아서 손님 더 터져나가. 그리고 너도 없으니까 오늘은 남아서 일하다가 로만이랑 같이 들어갈래. ”

 

“ 그러면 내가 보랴한테 전화해서 음식 좀 준비해달라고 할게. 약속은 6시니까 그 전에 내가 가서 포장해 갖다 주면 되잖아. 뭐 먹고 싶니? ”

 

“ 됐어. 나 그냥 토냐 어머니가 준 바구니에서 꺼내먹을게. 아직 이것저것 남았어. 무슨 햄도 직접 훈제해서 만들었다고 하고 도넛도 있고 말린 과일이랑 치킨 샐러드도 남았어. 그거 먹을 테니까 그냥 약속에나 가라. ”

 

“ 아직 시간 있어. 에휴, 그냥 가지 말까... ”

 

“ 왜? 무슨 약속인데? ”

 

어, 그게... 걘 왜 갑자기 나한테 전화를 한 걸까... 벌써 2년도 넘었는데. 별로 좋게 헤어지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전화해서 저녁에 보자고 하잖아. ”

 

“ 뭐, 옛날 애인이라도 되냐? ”

 

“ 어... 좀... ”

 

“ 그래도 애인이 있긴 있었구나. 로만이 전에 걱정하던데. 너 모태솔로 아니냐고. 나보고 발레리나들 소개 좀 시켜주라고 하더라고. ”

 

뭐가 모태솔로야! 진짜 그 바이올린 아저씬 저번에도 그러더니... 아니야! 나도 여자 친구 있었어! 나도 남잔데! 어휴, 정말... ”

 

“ 누가 너 남자 아니래? 근데 너 하도 책상물림에 여자 앞에 가면 버벅거리고... 저번에도 나타샤 온다고 해서 꾸며줬는데 굴러들어온 복도 걷어차고. 나 여기 온지 벌써 반년도 넘었는데 그 동안 너 여자랑 데이트 한번 안 했잖아. 주변에 여자들도 없고. 그러니까 당연히 그런 의심이 들지. ”

 

야! 다 너처럼 문어발 연애를 하는 줄 아니! 누가 그렇게 꾸준히 계속 옆에 애인이 있냐! 그것도 너처럼 동시다발적으로! 보통 사람은 연애를 했다가 안 했다가 한다고... 그나마도 잘 안 풀리는 경우도 많아! 그리고, 그리고... 너 알잖아. 난 서무인 거! 게다가 너 감시도 해야 하니까 엄청 엄청 바쁘고... 그래서 여자 사귈 시간은 하나도 없고... 흑... ”

 

 

새삼 서러워진 베르닌이 훌쩍거리자 왕재수가 당황한 듯 어깨를 으쓱했다.

 

 

“ 촌스럽게 왜 또 징징대는 거야. 알았어, 내가 몰라서 그랬어. 모태솔로 아니고 여자 친구 있었던 거면 다행이네 뭐. 여자야 또 생기겠지. 근데 그 옛날 여자가 갑자기 만나자고 한 거야? ”

 

“ 응. 근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나 진짜 일방적으로 차였거든. ”

 

“ 왜? 역시 너 키스 솜씨가 형편없어서...

 

야! 네가 나 뽀뽀하는 거 본 적이나 있어? 아무 것도 모르면서!!!! ”

 

“ 본 적 없으니까 지금까지의 행태로 판단하는 거지! 그리고 나 이런 쪽 아주 정확하거든! 대충 스타일이랑 골격구조랑 행동 패턴 보면 견적 나온단 말이야! 내가 여태 밤을 불태운 남자들이 몇인데... ”

 

난 남자랑 불태우지 않거든요!!!!

 

“ 여기서 중요한 건 상대가 남자니 여자니 하는 게 아니고 네가 뽀뽀를 잘 못할 거 같다는 거라고! ”

 

“ 우씨, 너 그렇게 나 무시할 거야! 어휴... 내가 아무리 올랴한테 그렇게 차였지만 뽀뽀 못해서 찼다는 말은 안 들었단 말이야! ”

 

“ 그럼 여자가 헤어지는 마당에 뽀뽀 못하니 어쩌니 그런 말을 하겠냐. 근데 그 여자 이름이 올랴야? ”

 

“ 응. ”

 

“ 뭐하는 여잔데? 왜 차였어? 뽀뽀 못하는 거 아니면 이유가 뭘까? ”

 

 

왕재수가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베르닌은 부아가 치밀었다.

 

 

“ 야! 넌 내 불행이 재밌냐! 여자한테 차였던 과거 얘기가 그렇게 듣고 싶냐고! 넌 우주 최고 꽃미남이니 뭐니 해서 차여본 적이 없으니 그런 슬픔 따윈 모르겠지! ”

 

“ 글쎄. 난 그렇게 대놓고 누구랑 사귀고 차고 그런 적이 별로 없어서. 그냥 자유로운 영혼이라. ”

 

“ 너 바이올린 아저씨랑 사귀잖아! 로만이 너 차면 안 슬프겠냐! 전에도 체육대회 때 그 아저씨한테 차인 줄 알고 울고불고 해놓고! ”

 

“ 아... 맞아. 흑... 그때 너무 속상했어. 엉엉... 로만은 그때 좀 너무했어. 나 버리는 줄 알고 너무 슬펐어. 엉엉... 로만이 이러다가 나 싫증났다고 차면 어떡하지? 더 어리고 더 날씬한 애 나타났다고 나 버리면... 으앙... ”

 

 

갑자기 왕재수가 바들바들 떨더니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냥 놔뒀다간 또 울음보가 터질 게 뻔했으므로 베르닌은 급하게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달랬다.

 

 

“ 아니야, 내가 농담한 거야. 그 아저씨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데. 전에 너 독사과 먹고 아팠을 때도 진짜 괴로워했어. 다이어트 안 해도 된다고, 사과파이 두 판 먹어도 괜찮다고 했어. 울지 마. ”

 

“ 로만이 나 버리면, 엉엉... 가뜩이나 시골이라 좋은 거 하나도 없는데 꼭 안아주는 로만까지 없으면... 어헝... ”

 

“ 야! 여자한테 차인 것도 나고 그 여자 만나러 가야 하는 것도 난데 왜 네가 울고 난리야! 어휴... 맨날 바이올린 아저씨 품에 안겨서 귀염 받고 희희낙락하는 놈이... 난 누구랑 뽀뽀해 본 게 언젠지도 모르겠다! ”

 

“ 그러니까 역시 그 올랴란 여자랑 뽀뽀도 제대로 못하고 차인 거구나... ”

 

“ 아니야! 뽀뽀까진 했어!! 근데 망할 놈의 국장 때문에 진도도 더 못 나가고 결국 뻥 차였다고. 에이... 그리고 나서는 너무 바빠서 여자 만날 시간도 없고... 인기도 더 없어지고... 아... ”

 

 

베르닌은 갑자기 자기 신세가 서러워서 한숨을 푹푹 쉬었다. 왕재수가 울던 것도 잊어버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 왜? 국장이 네 연애를 방해한 거야? 그래서 깨진 거야? ”

 

“ 응. 그게... 요원 연수받고 여기로 발령을 받았는데, 출근 며칠 전에 고등학교 동창이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료라면서 올랴를 소개해줬거든. 예쁘고 귀여워서 딱 내 타입이었어. 올랴도 나 싫지 않은 눈치여서 사흘 쯤 만나보다가 사귀기로 했거든.

근데 그러고 나서 곧장 내가 출근을 하게 됐는데... 알잖아! 우리 국장! 가뜩이나 나 들들 볶는데 그땐 더 심했거든. 신입이라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교육하고 설교하고 밤에는 계속 환영회에 술 파티에... 끝나면 도로 들어가서 일하게 만들고... 맨날 KGB 요원이 갖춰야 할 자세에 대한 설교에 서무의 역할에 대한 강의... 정말 꼬박 일주일 동안은 집에 들어가지도 못했어. 주말에는 쉬려나 싶었는데 신입이니까 국장이랑 간부들이 주최하는 무슨 등산 모임에 따라와야 한다는 거야. 그래서 새벽부터 산에도 가고, 뒤풀이한다고 낮술 먹고 계속 설교 듣고... 그리고는 쌓여 있는 서류철과 영수증 정리가 필요하니 월요일 오전까지 해치우라는 거야. 그래서 산에 갔다가 곧장 사무실로 가서 주말 내내 밤새고 영수증 정리하고... 올랴랑 데이트하기로 했던 건 다 물거품 되고.

올랴는 매일 전화해서 오늘은 만날 수 있느냐고 묻는데 난 일 때문에 안 된다고밖에 못하고... 다음날로 약속 미뤘다가 또 취소하고. 2주쯤 그러다가 도저히 안 될 거 같은 거야. 올랴도 너무 보고 싶고. 그래서 금요일 저녁에 잠깐 나갔다 온다고 하고 걔가 일하는 동네로 갔거든. 미안하니까 꽃도 사들고 갔는데... 올랴가 보자마자 날 찼어. 나 같은 남자 질린대. KGB랍시고 생색내는 거냐면서 그렇게 일만 하는 남자 재수 없대.

 

“ 으응, 그랬구나. ”

 

 

왕재수가 측은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베르닌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푸념했다.

 

 

“ 그러니까 다 국장 때문이야. 그 날도 올랴한테 차이고 너무 충격 받아서 보드카 병나발이라도 불려고 했는데 쌓아놓고 온 일 때문에 도로 사무실 기어들어가서 또 주말까지 야근하고... 그리고는 2년 반 동안 계속 들들 볶이고 서무 노릇하면서 과로에 시달리느라 다른 여자 만나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됐다고! 어쩌다 누가 여자를 소개해줘도 일 때문에 약속을 잡을 수도 없고 툭하면 취소되고... 흑흑... ”

 

음, 근데 올랴가 널 찼던 건 정말 뽀뽀 솜씨가 별로여서 그런 건 아닐까? ”

 

야! 너 진짜!

 

아니면 뽀뽀 다음에 아무 진도도 못 나가서 여자가 열 받았던 걸지도... ”

 

“ 으윽, 네 머릿속엔 맨날 그런 생각밖에 없냐! 남녀가 만나서 연애를 한다고 다 곧장 침대로 직행하는 건 아니라고!! ”

 

“ 2주 넘게 만났는데 아무 진도도 없었으면 그게 연애야? 그냥 탐색하는 거지. ”

 

그러니까 너는 모든 연애 = 잠자리라고 생각하잖아! 그거 아니란 말이야! ”

 

“ 그래? 그럼 연애가 뭔데? 나 그런 거 잘 몰라. ”

 

 

왕재수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장난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베르닌은 머리가 아팠다.

 

 

“ 뭐긴 뭐야! 서로의 신뢰를 얻는 과정이지! 마음을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고... 그게 선결돼서 마음이 깊어져야 관계도 진전되고... ”

 

“ 어... 관계가 진전된다는 게 같이 잔다는 뜻인 거지? ”

 

“ 하여튼, 그런 것도 포함해서... ”

 

“ 그런가. 첫눈에 맘에 들면 그 자리에서 끌어안고 뒹굴 수도... ”

 

“ 으윽, 그러니까 다 너 같은 게 아니라고!! 평범한 사람들은 안 그래! ”

 

“ 아휴 어려워. 하여튼 알았어! 옛날 여자 만나러 가게 돼서 나 저녁 못 차려준다는 거잖아. 잘 다녀오렴! 혹시 아냐, 그 올랴라는 여자가 앨범이라도 보다가 갑자기 옛 생각이 나면서 그러고 보니 그 다닐이라는 남자가 괜찮았는데 내가 왜 그랬을까 하며 후회하고... 요즘 애인도 없고 옆구리도 시리니까 한번 연락해볼까 했던 걸 수도 있잖아. 나쁠 거 없으니 한숨 쉬지 말고 가서 잘 해봐! 혹시 여자가 키스를 원하는 것 같으면 잘 좀 해보고! 다짜고짜 입술만 갖다 비비면 안 돼! 분위기를 잘 맞춰서... ”

 

 

베르닌은 이 녀석의 연애에 대한 얘기는 절대로 100% 전부 받아들여서는 안 되겠다고 다시금 다짐했다.

 

 

 

 

*    *    *

 

 

 

 

베르닌은 약속 시간보다 10분 먼저 공원에 도착했다. 점점 해가 길어지고는 있었지만 아직 3월이라 이미 석양이 내린 후였다. 그래도 날씨는 좀 풀렸기 때문에 공원에는 산책하는 사람들도 많고 학생들도 많았다. 한가운데에 있는 분수와 천사 조각상을 보니 맨 처음 올랴와 만났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그들은 천사상 아래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가브릴로프 젊은이들이 그렇듯이.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했지만 자꾸만 머리가 어지러웠고 가슴이 심하게 방망이질쳤다.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입사 후 업무에 시달리느라 제대로 된 데이트 한 번 해본 적이 없고 사실 학창 시절에도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타입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예전의 다닐 베르닌은 좋아하는 스타일의 여자를 보면 금세 마음을 빼앗기곤 했었다. 그리고는 심장이 뛰고 얼굴이 빨개지고 말을 더듬거리는 등 숙맥처럼 행동했다. 여자에게 마음을 고백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서 엄두도 못 내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올랴도 딱 그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예쁘장한 얼굴에 갈색의 긴 머리, 살짝 통통하면서도 볼륨 있는 몸매에 여성스러운 원피스를 즐겨 입었다. 첫눈에 가슴이 뛰었지만 언제나처럼 말을 더듬거리고 속내를 고백하지도 못했는데 다행히 그들을 소개시켜준 친구가 중간에서 열심히 노력해준 덕분에 사흘 만에 사귀기로 한 것이었다. 베르닌의 인생에서 그렇게 빨리 여자와 사귀게 된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하긴 그래서 그렇게 빨리 차인 걸지도 모르지만.

 

올랴와는 그야말로 속전속결로 사귀고 헤어진 거라서 아직도 그녀를 생각하면 머리가 멍해지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사실 상처를 입었다거나 원망하는 마음이 가득 찼다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고 그나마 야근 때문에 제대로 만난 건 며칠 되지도 않았다. 심지어 베르닌은 그때 자기가 사랑에 빠졌던 건지조차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냥 모든 게 너무 빨랐고 관계가 진전되기도 전에 아무런 준비조차 없이 모든 게 끝나버린 것이다. 마음을 정리할 겨를도 없었고 그런 마음이 있었는지도 헷갈렸다. 사실 그때는 너무 충격을 받아서 멍해졌다가 이어진 야근과 스페호프의 무시무시한 압박 때문에 올랴에 대해서는 완전히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거나 다름없었다. 혹은 그렇게 차였다는 충격 때문에 회피 모드에 들어갔던 것인지도 몰랐다.

 

 

‘ 근데 올랴는 왜 갑자기 날 보려고 하는 걸까? ’

 

 

베르닌은 하루 종일 그 질문을 백 번도 넘게 한 것 같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올랴의 목소리는 약간 긴장된 것 같기도 했고 살짝 흥분한 것 같기도 했다. 베르닌은 올랴와 사귀었던 짧은 기간 동안 그런 음성을 딱 한번 들어봤다. 그건 친구의 도움으로 사흘 만에 사귀게 되어 처음으로 올랴가 이런 말을 했을 때였다.

 

 

“ 다냐, 너 좀 귀여운 거 같아. 이제 사귀는 거니까 매일 만나. ”

 

 

잠시 베르닌은 눈을 감고 가슴을 진정시켰다. 분명히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를 생각하니 이상하게 다시 가슴이 뛰었다.

 

 

‘ 어, 이상하네. 내가 아직 올랴를 못 잊었나? 근데 내가 그렇게까지 걜 좋아했던 거 같지도 않은데. 그냥 충격만 좀 받았던 건데. 근데 올랴는 왜 그때랑 비슷한 말투로 전화를 했을까? 설마 그 자식 말대로 올랴가 갑자기 내가 그리워진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없잖아, 내가 누구처럼 무슨 꽃미남도 아니고 올랴한테 잘해준 것도 하나도 없고 맨날맨날 약속 펑크 내고 일만 하고 책상물림 짓만 했는데. 대체 무슨 일일까? 혹시 가족 중 누가 KGB 쪽에 입사를 하나? 아니면 체포됐나? ’

 

 

아무래도 마지막 가정이 제일 현실적인 것 같았기 때문에 베르닌은 최근 체포자 명단과 주요 감시 대상자들에 대해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하지만 가브릴로프는 평화로운 시골 동네였기 때문에 최근의 체포자 명단이라 해봤자 술 마시고 행패부린 남자 몇 명밖에 없었다. 주요 감시 대상자 1순위는 왕재수였고 나머지는 급진주의 서클 청년들 몇몇 뿐이었다. 혹시 그 서클에 올랴의 가족이나 지인이 있나 싶기도 했다.

 

 

생각에 잠겨 있는데 또각또각 소리가 들리더니 뒤에서 누가 그의 어깨를 살짝 쳤다. 그리고 낯익은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 다냐? ”

 

 

베르닌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올랴가 서 있었다. 금방 올 거라고 생각했으면서도 베르닌은 하마터면 침을 잘못 삼켜 기침을 할 뻔 했다.

 

 

“ 어... 올랴, 안녕. 빨리 왔구나. ”

 

“ 6시 정각인걸. 네가 의외네, 항상 늦었잖아. 많이 기다렸어? ”

 

“ 아니야, 나도 방금 왔어. 어, 저... 오랜만이네. 반가워. ”

 

“ 응, 나도 반가워. 어쩜, 너 하나도 안 변했구나. 새치만 좀 생겼네. 일이 힘든가 보구나. ”

 

“ 어, 으응... 너는 좀 달라 보이네. ”

 

“ 아, 그래. 머리 잘랐지. 그때가 언젠데. 저녁 먹었니? ”

 

“ 아, 아니... ”

 

“ 응, 난 있다가 또 약속이 있어서... 우리 간단하게 뭐 먹자. ”

 

“ 어, 그, 그래. 간단하게... 그러면 이 앞쪽에 있는 학교 카페에 갈까? ”

 

“ 거긴 너무 시끌시끌하잖아, 학생들도 많고. 포나르나야 거리 쪽에 있는 카페로 가자. 내가 자주 가는 데 있어. ”

 

“ 으, 으응... ”

 

 

올랴가 자연스럽게 그의 팔목에 손을 얹더니 앞으로 잡아끌었다. 베르닌은 당황해서 몸이 뻣뻣해졌다. 그녀는 곧 손을 치웠지만 베르닌은 머리가 멍해졌다. 여전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예전에도 그녀는 항상 앞서가곤 했다. 성격도 급한 편이었고 활달했다.

 

 

베르닌은 어색하게 올랴와 약간의 거리를 둔 채 나란히 걸었다. 2년 반 만에 본 올랴가 낯설게 느껴졌다. 긴 머리는 싹둑 잘라서 단발이 된데다 곱슬곱슬하게 변했고 화장도 훨씬 진해져 있었다. 구두 굽도 훨씬 높아진 것 같았다. 그리고 살이 많이 빠져서 갈대처럼 하늘하늘했다. 발레리나 정도야 물론 아니었지만 하여튼 예전보다 훨씬 마른 몸매로 변해서 더욱 낯설었다. 여전히 예쁘장한 얼굴이었지만 이제 소녀다운 분위기는 전혀 없었고 살짝 예리한 느낌도 들었다. 베르닌은 어느새 ‘예전에 통통할 때가 더 예뻤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고 자기도 모르게 한 손으로 입을 찰싹 때렸다.

 

 

“ 어머, 너 왜 그러니? ”

 

“ 아, 아니야. 날벌레가... ”

 

“ 아직 추운데 날벌레가 있어? 아, 다 왔다. 저기야. ”

 

 

올랴는 다시 그의 손목을 잡았다. 조그만 카페 입구로 그를 잡아끌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오래 잡고 있었다. 올랴의 손은 조그맣고 따뜻했고 살짝 촉촉했다. 갑자기 베르닌은 현기증이 났고 옛날 생각이 났다. 맨 처음 올랴의 손을 잡았을 때와 키스를 했을 때가 떠올랐다.

 

 

‘ 나 왜 이러지? 미쳤나봐. 너무 오래 여자를 안 만나서 그런가... ’

 

 

다행히 올랴는 그의 가슴이 두근 반 세근 반하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 듯 했다. 안쪽 테이블로 들어가 앉더니 곧장 베르닌에게 메뉴판을 보여주었다.

 

 

“ 너 뭐 먹을 거야? 난 여기 오면 항상 먹는 거 있어. 여기는 돌마가 맛있거든. 너도 먹어볼래? ”

 

“ 어, 그, 그래. ”

 

“ 마실 건? 난 탄산수. ”

 

“ 나, 나는 그냥 오렌지 주스 마실게. ”

 

 

올랴는 점원을 부르더니 ‘돌마 2인분, 탄산수 하나, 오렌지 주스 하나 주세요’ 라고 속사포처럼 주문을 했다. 잠시 후 음료수가 나오자 물을 한 모금 홀짝 마시고는 귓가에서 물결치는 머리칼을 뒤로 휙 넘기며 입술을 포르르 떨었다.

 

 

“ 아휴, 나 요즘 너무 바빠. 정신이 하나도 없어. 일주일 동안 살이 2킬로나 빠졌다니까. 하긴 너랑은 하도 오랜만에 봐서 그때에 비하면 더 빠졌겠다. 그땐 나 완전히 젖살이 포동포동했잖아. 어제 앨범 보다가 그때 사진들 보고 진짜 창피했어. 어휴, 어쩜 그렇게 토실토실하고 화장도 촌스러웠는지. ”

 

“ 어... 그때? 그때 괜찮았는데. 살찌지 않았었어. ”

 

“ 너 여전하구나. 이럴 땐 그때도 귀여웠지만 지금은 더 예쁜 것 같다고 하는 거야. ”

 

“ 미안해. ”

 

“ 뭐가 미안하니! 어휴, 넌 정말... 농담도 못 알아듣고. 답답해라. 하긴 뭐 그게 매력이었지. 그 동안 잘 지냈니? ”

 

“ 으, 으응... ”

 

“ 여전히 바쁜 거지? 너네 국장이 그렇게 직원들을 들들 볶는다며. 다들 혀를 내두른다고. 스페호프. ”

 

“ 응, 맞아. 그런데 용케 기억하네. 우리 국장에 대해서. 심지어 성까지. ”

 

“ 아, 잊어버렸었지. 근데 요즘 다시 알게 돼서. ”

 

 

그때 음식이 나왔다. 베르닌은 모스크바에서 공부하던 시절 이후로는 돌마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가브릴로프의 식당들에서는 양배추로 고기를 싸서 만든 일반적인 ‘골룹츠이’를 팔기 때문이다. 포도나무 잎사귀로 돌돌 말아놓은 고기 롤을 보자 학창 시절이 좀 생각났다.

 

 

“ 우리 동네에도 돌마 파는 데가 있는 줄 몰랐어. ”

 

“ 너 벌써 잊어버렸구나. ”

 

“ 뭐를? ”

 

“ 옛날에 우리 여기 같이 왔었어. 그때도 내가 돌마 주문하니까 네가 똑같은 말 했었어. ”

 

“ 그랬나... ”

 

“ 너 다 잊어버렸구나, 나랑 있었던 일은. 하긴 워낙 짧은 기간이었으니. ”

 

“ 아, 아니야. 안 잊어버렸어. 근데 이상하게 여긴 기억이 안 나네. ”

 

“ 응, 너 그때 엄청 바빴어. 야근하다가 잠깐 나온 거였거든. 주말에도 나가야 한다면서 정신 못 차리고 있었어. 밤도 샜다고 하고. ”

 

“ 그랬구나. ”

 

 

베르닌은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잠깐 입을 다물었다. 올랴도 조용해졌다. 둘은 가만히 나이프로 돌마를 썰었다. 잘게 다진 고기와 야채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먹어보니 촉촉했고 양념도 잘 되어 있었다. 분명 맛있는 것 같았지만 베르닌은 입안이 깔깔했고 자꾸 목이 막혔다. 용기를 쥐어짜내 ‘근데 왜 보자고 한 거야?’ 라고 물어보려는데 올랴가 불쑥 물었다.

 

 

“ 너는 어떻게 지내? 결혼은 안 했다는 거 알고. 여자 친구 있니? ”

 

“ 어... 저... 아니. 많이 바빠서... ”

 

“ 그렇구나. ”

 

 

올랴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생각에 잠긴 표정을 보자 베르닌은 더 이상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얘가 대체 왜 이러나 싶어서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갑자기 올랴가 방긋 웃으며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있잖아, 다냐. 나 결혼하거든. 다음 주에 결혼해.

 

 

베르닌은 하마터면 포크를 떨어뜨릴 뻔 했다. 자기도 모르게 컵을 들어 주스를 한 모금 마셨다. 멍해진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 어, 어... 그렇구나. 축하해. 다음 주면 진짜 얼마 안 남았네. ”

 

“ 응, 그래서 요즘 진짜 정신없어. 그래도 그전에 너 한 번 보고 싶었어. 전화해서 많이 놀랐지? ”

 

“ 어, 아니... 그냥... 어... 근데 왜 갑자기 내 생각이 난 거야? 우리는, 그러니까, 진짜 잠깐 봤었잖아. ”

 

“ 글쎄. 어제 사진첩 보는데 너랑 찍은 게 한 장 있더라고. 그래서 생각도 나고... 또 우리 그이가 사실은 너네 회사에서 일하거든. 그래서... ”

 

“ 아... 우리 회사? 가브릴로프 KGB?!! ”

 

 

베르닌은 두 번째로 깜짝 놀랐다.

 

 

“ 응. 몇 달 전에 우연히 알게 됐는데 잘 맞아서 결혼하게 됐어. 그이가 아마 너보다는 선배일 거야. 들어간 지 6년쯤 됐다고 했거든. 직급도 높고. 혹시 너랑 같은 부서일지도 모르겠다. ”

 

“ 어... 6년... 그러면 알렉산드라 선배 기수인데... 이름이 뭔데? ”

 

“ 세냐. 그러니까 세묜. 성은 모브린. ”

 

“ 아... 어... 모브린 선배구나... 나도 알아. ”

 

 

베르닌은 3차 충격으로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세묜 모브린이라면 알렉산드라의 동기이자 대외교류부의 주축 중 하나이며 스페호프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선배가 아닌가. 지난번 메드베지에서 타라카노프가 알렉산드라를 추행했을 때에도 동기를 옹호하는 대신 시류에 영합하는 행동에 앞장서고 베르닌에게도 그냥 넘어가라고 충고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스네고로드에 막내 직원들을 파견하라고 국장을 부추긴 적도 있기 때문에 베르닌의 마음속에서 세묜 모브린은 ‘능력 있을지는 모르지만 친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안 드는 작자’였다. 목구멍까지 ‘올랴, 왜 그런 놈이랑 결혼하니! 네가 아깝잖아!’ 라는 말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꾹 참았다. 올랴는 그런 그의 마음을 눈치 채지 못한 듯 활짝 웃었다.

 

 

“ 아, 너랑도 아는 사이구나. 하긴 같은 회사니까. 친해? ”

 

“ 아, 아니... 친하진 않아. 부서가 달라서. 그냥 부서 합동 회식 때랑 전체 회의 때 얼굴 보는 정도야. ”

 

“ 응, 그렇구나. 세냐는 동료들이랑 두루두루 친하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너하고도 친한가 했어. 우리 그이 성격 좋지? ”

 

“ 어... 응... 그렇다고들 하더라. 윗분들도 좋아하고. ”

 

“ 응, 능력도 있어서 그 동기들 중에 제일 먼저 진급했다고 하더라고. 재미있고 멋있어서 좋아. 근데 너 놀랐지? 몇 년 만에 연락해서 보자고 하고 뜬금없이 결혼한다 해서. ”

 

“ 으, 으응... 조금 놀랐어. 그래도 축하해. ”

 

 

올랴는 돌마를 다 먹고 물을 홀짝 마시더니 진지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 다냐, 사실은... 미안한데 오늘 보자고 한 건... 세냐가 질투심이 좀 많은 타입이야. 그래서 말인데... 뭐 너랑 세냐랑 친한 사이 아니라니까 굳이 이런 말 안 해도 될 것 같긴 하지만, 혹시나 해서 말이야. 너랑 나랑, 예전에, 그러니까 우리 잠깐 봤었잖아. 뭐 아주 짧은 기간이었고 별 일도 없었지만. 하여튼 그땐 나도 어렸고... 세냐가 우리 사이 의심할까봐. 미안해. 나 너무 웃기지? 그치만 혹시라도 네가 다른 경로로 전해 듣고 나랑 사귄 적 있다고 말해서 세냐 귀에 들어갈까 봐. 저, 오해는 하지 마. 네가 일부러 그럴 거라는 게 절대 아니고, 그냥 네가 무심코 그렇게 말했다가 세냐가 알게 되면 공연히 오해하고... ”

 

 

당차게 시작했던 올랴의 목소리는 갈수록 모기소리처럼 작아졌다. 얼굴이 빨개졌고 베르닌과 눈을 맞추지 못했다. 베르닌은 이미 3차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터라 이 4차 충격은 그저 귓가에 윙윙거리는 소음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올랴가 그렇게 얼굴이 빨개지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그는 허겁지겁 말했다.

 

 

“ 어, 그래그래. 나 이해해. 걱정 마. 세묜 선배한테 절대 말 안할게. 그리고 네 말이 맞아, 우리 진짜 별 거 아니었잖아. 얼마 보지도 않았고 진짜 아무 일도 없었는걸.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결혼 준비 잘 해. ”

 

“ 고마워, 다냐. 진짜 고마워. 미안해. 괜히 너 불러내서. 기분 나쁘지? ”

 

“ 아니야. 전혀 안 그래. 마음 쓰지 마. 괜찮아. ”

 

“ 너 진짜 착하구나, 다냐. 어제 집에서 사진첩 보다가 네 사진 한 장 나왔다고 했잖아. 세냐가 알아보고는 왜 네 사진이 있느냐고 물어보더라고. 깜짝 놀라서 그냥 옛날에 알던 친구라고 둘러댔어. 다 같이 콤소몰 행사 가서 찍은 거라고. 그래서 밤새 한잠도 못 자고 아침에 전화했던 거야. ”

 

“ 그랬구나. 그냥 전화로 얘기해도 됐을 텐데. ”

 

“ 너무 뜬금없을 것 같아서 그랬어. 참, 세냐랑 여기서 7시 반에 보기로 했거든. 사진 본 김에 너랑 잠깐 만나서 저녁 먹는다고 얘기해뒀어. ”

 

“ 엥, 의심할까봐 걱정된다더니 나랑 만난다는 얘길 세묜에게 한 거야? ”

 

“ 편한 사이라는 거 보여줘야 세냐가 의심을 안 하지. 그리고 세냐가 우리 친구였다고 하니까 그럼 오늘 잠깐 같이 보자고 그러더라고. 7시 반 다 됐네. 세냐 금방 올 거야. 우리 그냥 콤소몰 행사에서 만나서 친해진 거야. 그렇게만 말해줘, 응? ”

 

“ 으, 으응... ”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정말 모브린이 카페로 들어섰다. 올랴와 베르닌을 금세 발견하고는 여유 있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올랴를 껴안고 키스를 하고는 모브린이 베르닌에게 빙긋 웃으며 인사를 했다.

 

 

안녕, 다닐. 요즘 그 불여우 담당 업무 때문에 많이 바쁠 텐데 그래도 올루슈카 축하해주려고 나와 줘서 고마워. 얘기 들었지? 우리 다음 주에... ”

 

“ 아, 예... 결혼하신다고요. 축하드려요. 준비하시느라 많이 바쁘시겠네요. ”

 

“ 그래도 좋은 일이니까. 그래 오랜만에 본다더니 회포는 좀 풀었어? 어제 올랴 앨범에서 자네 사진이 나와서 처음에 내가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알아? 그래도 자네니까 망정이지 다른 남자 사진이었으면 나 분명히 질투했을 거야! 자네야 뭐 워낙 바른생활에 순진무구하니까. ”

 

“ 어... 네. 우리는, 그러니까, 콤소몰 행사에서 알게 돼서 친하게 지냈어요. 그런데 입사하고 나선 바빠서 연락이 끊겼어요. 세상이 참 좁네요, 선배님과 올랴가 결혼을 하고. 축하드려요. ”

 

“ 하하, 고마워. 우리 올루슈카가 진짜 귀엽지. 자네도 어서 좋은 여자 만나서 결혼해야 할 텐데. 올루슈카 친구들 중에 괜찮은 여자 있으면 다리 놔주라고 할게. ”

 

“ 예... 고맙습니다. ”

 

 

그때 올랴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테이블을 떠났다. 베르닌도 이제 가야 하지 않나 싶어서 눈치를 보고 있는데 모브린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 다닐, 올랴가 갑자기 불러내서 놀랐지? 친했어도 한동안은 연락 안 하고 지냈다며. ”

 

“ 어... 조금요. 결혼 얘기도 오늘 처음 들었어요. ”

 

“ 그래. 사실 올랴에겐 내가 자네 잠깐 같이 보자고 한 거였어. 자네 요즘 바쁜데 미안하긴 하지만. 그 앨범 보니까 내가 좀 불안한 게 있어서. ”

 

“ 어, 불안... 왜요? 저랑 올랴는 그냥 친구였는데. ”

 

“ 에이, 누가 그걸 모르나. 의심할 사람이 따로 있지 자네처럼 고지식한 친구를. 그게 아니고... 다닐, 이건 말이야, 사나이 대 사나이로서 부탁하는 건데. 난 우리 회사에서 올랴를 아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거든. 미안한데, 올랴에겐 꼭 비밀로 해줘. ”

 

“ 예?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뭘 비밀로 해달라는 말씀이신지. ”

 

나랑 알렉산드라 말이야. 우리 옛날 관계. 정리한지 오래됐지만 그래도 올랴는 모르니까. 올랴가 다 좋은데 여자 아니랄까봐 질투심이 좀 있거든. 괜히 알게 되면 맘 상하고 의심할 거야. 그러니까 자네도 꼭 모른 척 해줘. ”

 

 

베르닌은 눈을 둥그렇게 떴다.

 

 

“ 네? 알렉산드라... 우리 회사 알렉산드라 선배요? 옛날 관계요? 선배님이랑요? ”

 

“ 아, 자네 몰랐나? 에이, 그럼 괜히 얘기했군. 하긴 자넨 들어온 지 얼마 안됐으니... 젠장. 그래도 혹시나 다른 친구들이 얘기해서 자네가 생각 없이 올랴에게 옮길 수도 있으니... 나하고 사셴카 말야. 입사 동기잖아. 사내 커플이었거든. 처음에 일 년쯤 사귀었는데 회사 사람들이 거의 다 알았어. 뭐 깊은 관계는 아니었고, 그냥 국장한테 볶이니까 서로 동료 의식에 친해져서 사귄 거야. 진짜 별 거 아니었어. 그러다 둘이 자연스럽게 정리했거든.

근데 하여튼 이 얘기 올랴가 알면 질투할까봐. 사셴카가 좀 동안에 귀염상이잖아. 지난번에 올랴가 우리 집에서 놀다가 내 앨범에서 가을 체육 대회 사진을 본 거야. 그때는 사셴카가 우리 부서였잖아. 여직원은 걔 하나뿐이었고. 올랴가 우리 부서원들끼리 찍은 사진을 보고는 대번에 사셴카를 찍어내면서 꾸미면 예쁘겠다고, 여직원 하나라서 부서에서 인기 많겠다고, 나도 그런 거 아니냐고, 막 꽃 갖다 주고 초콜릿 사주는 거 아니냐고 농담을 하는 거야. 자네도 알잖아, 여자들이 그런 얘기 농담처럼 해도 다 뼈 있는 말이란 거. 그래서 자네에게 부탁 좀 하려고 같이 보자고 한 거야. 남자로서 이해하지? 올랴에게 비밀 지켜줄 거지? ”

 

 

베르닌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이 5차 충격 역시 생각 외였다. 이제 그는 더 이상의 충격을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고개를 급히 끄덕였다.

 

 

“ 네, 물론이죠. 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말 안 할게요. ”

 

“ 고마워, 다닐. 자네 역시 괜찮은 놈이야. ”

 

 

그때 올랴가 돌아왔다. 화장을 고치고 온 것 같았다. 베르닌은 급하게 일어섰다.

 

 

“ 저, 올랴. 나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아.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 ”

 

“ 어머, 다냐. 벌써 가려고? 세냐도 지금 왔는데. 술이라도 한 잔 같이 하면 좋을 텐데. ”

 

 

말과는 달리 올랴의 얼굴에는 안도의 기색이 역력했다. 모브린도 마찬가지였다.

 

 

“ 으, 으응... 나도 사실 할 일이 좀 있어서. 다음에 또 기회 되면 보자. 결혼 다시 한 번 축하해. 선배님, 이만 가볼게요. ”

 

“ 그래, 내일 회사에서 보자고. 잘 가. ”

 

 

베르닌은 이상하게 저려오는 다리를 약간 휘청거리면서 카페를 나섰다.

 

 

 

 

 

*    *    *

 

 

 

 

베르닌은 도저히 집으로 곧장 들어갈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정처 없이 쏘다니다가 시장 근처에 있는 선술집 겸 식당에 들어갔다. 술이라도 한 잔 마시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았다. 화가 나거나 우울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연속으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듯한 기분이 들 뿐이었다.

 

막 보드카를 주문하려는데 옆쪽 구석 테이블에서 낯익은 여자의 모습을 발견했다. 알렉산드라가 혼자 앉아 조그만 잔으로 보드카를 마시고 있었다. 보드카 병 하나가 그대로 옆에 놓여 있었고 안주도 없었다. 이럴 땐 모른 척 해야 하나 싶었지만 술도 약한 편인 알렉산드라가 맥주도 와인도 아니고 보드카를 연속으로 들이키고 있었으므로 걱정이 되어서 자기도 모르게 옆으로 갔다.

 

 

“ 저... 선배님. ”

 

 

알렉산드라가 깜짝 놀라서 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순간 베르닌은 모른 척 할 걸 그랬나 하고 후회했다. 알렉산드라가 눈물이 글썽글썽한 채 코도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멋쩍은 듯 손등으로 눈을 닦으며 종알거렸다.

 

 

“ 아, 다냐. 안녕. 보드카 오랜만에 마시니까 진짜 독하네. ”

 

“ 저녁은 드신 거예요? 안주도 없이. 술도 잘 못 드시면서. ”

 

“ 글쎄, 밥 생각이 별로 없어서. 넌 여기 웬 일이야? 너희 집은 신시가지 쪽이잖아. ”

 

“ 약속이 있어서 잠깐 근처에 들렀다가... ”

 

 

알렉산드라가 다시 눈가가 빨개지더니 기침을 했다. 빈속에 보드카를 마셔서 그런 것 같았다. 베르닌은 마침 다가온 점원에게 흑빵과 칼바사 햄, 오이 피클을 주문했다. 제일 빨리 나오는 안주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접시를 힐끗 쳐다보았지만 안주에는 손을 대지 않고 다시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베르닌은 잔을 뺏는 대신 흑빵에 햄 한 조각과 오이 피클을 얹어서 건네주었다.

 

 

“ 그러다 속 다 버려요. 이거 드세요. ”

 

“ 고마워. ”

 

 

알렉산드라는 기계적으로 샌드위치를 한 입 먹었지만 제대로 삼키지 못하고 기침을 했다. 보드카를 다시 한 모금 마시고는 코가 빨개지면서 다시 눈물을 줄줄 흘렸다. 베르닌은 왕재수가 생각났다. 왕재수도 보드카라면 한 모금만 마셔도 눈물이 나온다고 했다. 알렉산드라는 물을 마시고 간신히 진정되었다.

 

 

“ 아이, 왜 이러지. 미안해, 다냐. ”

 

“ 이제 술 그만 드세요. 어쩌자고 한 잔도 아니고 병으로 시켜서 안주도 없이 드시는 거예요. ”

 

“ 나 아까 너무너무 기분 나쁜 일이 있었어. 그래서 그랬어. 저, 다냐. 나 엄청 취했으니까 그냥 모른 척하고 집에 가렴. ”

 

“ 세묜 선배랑 얘기하시고 기분 상하신 거예요? ”

 

 

베르닌은 자기가 왜 그런 말을 불쑥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은 술 한 잔 안 마셨는데도. 아마 올랴와 보낸 시간 동안 너무 연속으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알렉산드라는 한 대 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고 눈을 깜박였다. 역시 취해서인지 뭐라고 변명을 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하게 대꾸했다.

 

 

“ 어, 맞아. 근데 너 어떻게 아니? 나랑 세묜이랑 얘기하는 거 봤어? ”

 

“ 아, 아니요. 그게 아니라... ”

 

 

베르닌은 더듬거리다가 마침 점원이 주고 간 잔에 보드카를 따라서 훌쩍 마셨다. 빈속도 아닌데 머리끝까지 금세 어질어질했다. 술기운에 그는 자기도 모르게 오늘 있었던 얘기를 늘어놓았다. 올랴와 사귀었다가 차인 것부터 시작해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는 얘기, 올랴가 자기를 불러낸 진짜 이유에 대해, 그리고 모브린을 잠깐 봤던 얘기도 했다. 모브린의 부탁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려고 했지만 알렉산드라가 가만히 듣고 있다가 불쑥 말했다.

 

 

“ 그 인간이 그랬구나, 나하고 있었던 일 약혼녀한테 얘기하지 말라고. 그래서 그 자식이 너 보러 나온 거였구나. ”

 

“ 어... 아... 저... 선배님, 전 두 분 일 몰랐어요. 진짜예요. ”

 

“ 응, 그게 벌써 몇 년 전인데. 진짜 웃기는 놈이야. 그때도 만사가 제멋대로에 딴 여자한테 양다리 걸쳐서 내가 그만 만나자고 했던 건데. 내가 미쳤다고 그런 얘길 하고 다니겠니. 헤어지고 나서도 두어 달은 진짜 못살게 굴었단 말이야. 그랬던 인간이 뭘 잘났다고. 같은 부서에서 얼굴 보면서 몇 년 같이 일한 것도 피곤했는데. 그래서 등록부서로 옮긴 게 차라리 편하기도 했었어. 근데 아까 퇴근 직전에 갑자기 우리 부서로 오더니 저녁 좀 같이 먹자는 거야. 싫다고 했더니 중요한 일이라면서 밥 먹기 싫으면 30분만 시간 내달라고... 그래서 업무 때문인가 싶어서 따라갔더니 그 개자식이 나보고 자기 다음 주에 결혼하는데 내 마음이 별로 좋진 않겠지만 축하해 달라면서, 신부가 혹시라도 의심하면 안 되니까 우리 과거에 대해 입 다물어달라는 거야. ”

 

“ 아... 올랴가 저한테 그랬던 것처럼... ”

 

“ 너무 어이가 없어서 왜 그런 걸 걱정하느냐고, 난 네 결혼에 관심도 없고 그런 얘기 떠들고 다닐 마음도 전혀 없다고 했더니 그 뻔뻔스런 자식이 나한테 그래도 아직 자기한테 미련이 약간 남아 있는 거 아니냐고. 그래서 결혼도 연애도 안 하고 있는 거 아니냐면서, 그래도 자기 결혼하게 됐으니까 이제 자기를 잊고 비밀도 지켜달라고, 좋은 사람 새로 만나라는 거야. 이제 나이도 많은데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냐면서. 아무래도 자기랑 헤어진 상처 때문에 남자를 못 만나는 거 아니냐고, 그래서 전에 타라카노프한테도 그렇게 결벽증으로 히스테리 부린 거 아니냐는 거야. ”

 

 

알렉산드라는 생각하면 할수록 분한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보드카를 다시 한 잔 꼴깍 삼키고는 기침을 하고 눈물을 쏟았다. 베르닌은 그녀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전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왜 그렇게 속이 상했는지 알 것 같았다.

 

 

“ 선배님, 그런 자식이 한 말 따위 신경 쓰지 마세요.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놈이에요! 그리고 타라카노프 그놈은 인간 말종이잖아요! 모브린 그 자식 그때도 재수 없게 굴더니... 그런 개자식은 바퀴벌레 곱등이 뱀 껍질처럼 하찮은 놈이니까 진짜 신경 쓸 필요 하나도 없어요. ”

 

“ 내가 남자를 만나든 말든... 결혼을 하든 말든 그건 내 사정인데 걸핏하면 다들 나한테 언제 결혼할 거냐고 하고... 그것도 그 철면피 같은 자식이... 어떻게 내가 그런 놈한테 미련이 있어서 남자를 못 만난다는 말을 할 수 있어... 결벽증이라니. 다냐, 여자가 서른 넘어서 결혼 못하면, 성희롱하는 거 대들면 결벽증인 거야? ”

 

 

알렉산드라는 억울하고 속상한 마음을 견디지 못하고 엉엉 울었다. 지난번 타라카노프 사건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괴로워했던 것도 얼마 안 됐는데 모브린 때문에 상처를 후벼 파고 소금까지 뿌린 격인 듯했다. 베르닌도 덩달아 마음이 아팠고 올랴 생각이 나면서 자기도 서러워졌다. 자기도 펑펑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차마 알렉산드라 앞에서 그럴 수는 없었다. 억지로 울음을 그치게 하느니 실컷 울게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잠자코 기다렸다. 손수건만 꺼내서 건네주었다.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던 손님들이 그들을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어떤 여자는 베르닌을 여자 울리는 나쁜 놈이라는 눈초리로 노려보며 수군거리기까지 했다.

 

 

잠시 후 알렉산드라가 좀 진정되었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더니 빨개진 눈으로 베르닌을 쳐다보며 잠긴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 고마워, 다냐. 맨날 이런 모습만 보이고. 미안해. ”

 

“ 아니에요, 울고 마음 푸는 게 훨씬 나아요. 저도 아까 올랴가 결혼한다고 하고 그게 세묜 선배라면서 저한테 비밀 지켜달라고 했을 때 진짜 충격 받았어요. 그땐 너무 놀라서 기분 나쁘거나 속상한 마음도 안 들었는데 이제 속상해요. 그리고 세묜 선배가 와서 그 얘기했을 땐 더 이상 거기 있고 싶지 않았어요. ”

 

“ 그러게... 너도 굉장히 놀라고 속상했을 텐데. 공연히 내가 이렇게 울고불고 해서 더 당황하게 만들었네. 미안해. 난 왜 항상 이럴까. 매사가 엉망이야. 그래도 사회 나와서 열심히 산 것 같은데 해놓은 것도 없고, 곁에 있어줄 사람도 없고... 다들 만만하게 보고... 돌아서면 매일 혼자고... 되는 일도 없고... ”

 

 

알렉산드라의 눈망울에 다시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베르닌은 원래 여자가 울면 당황하는 편인데다 친한 사이인 알렉산드라가 그러는 걸 보니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며 서툴게 위로를 했다.

 

 

“ 만만하게 안 봐요. 안 그래요. 다들 선배님 좋아해요. 모브린이랑 타라카노프 같은 놈들이 이상한 거예요. 혼자 아니에요. 진짜예요. ”

 

“ 흑, 고마워. ”

 

 

알렉산드라가 베르닌을 와락 껴안더니 흑흑 흐느껴 울었다. 지난번에 타라카노프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며 울었을 때도 느꼈던 거지만 알렉산드라는 굉장히 자그마했다. 품 안에 두 번 들어오고도 남을 것 같았다. 베르닌보다 두세 살 나이도 많았지만 울 때는 꼭 어린애 같았다. 하도 울어서 몸이 뜨끈뜨끈했다. 베르닌은 뜬금없이 왕재수 생각이 났다.

 

 

그 자식도 울면 이렇게 사모바르처럼 뜨끈뜨끈했지. 아플 때도 그랬지만. 구슬처럼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다 큰 자식이 꼭 애기처럼 우네 그랬는데 알렉산드라도 그렇구나... ’

 

 

울고 난 후 알렉산드라는 약간 술이 깼는지 깜짝 놀라면서 베르닌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빨갛게 부어오른 눈으로 베르닌을 쳐다보면서 사과했다.

 

 

“ 아, 미안해... 다냐, 내가 너무 취했나봐. 정말 미안. ”

 

“ 뭐가 미안해요. 괜찮아요. 근데 진짜 많이 취하신 것 같아요. 그만 일어나서 바람 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 으응... ”

 

 

알렉산드라가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베르닌은 그녀의 팔을 붙잡아 부축을 해주었다. 대신 계산을 했더니 점원이 보드카가 많이 남았다면서 가져가라고 했다. 그래서 보드카 병을 호주머니에 쑤셔 넣고 가게를 나왔다. 알렉산드라가 너무 비틀거렸기 때문에 베르닌은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 선배님, 집이 어디에요? 멀어요? ”

 

“ 아니야, 가까워. 여기... 시장 뒤... 괜찮아. 나 이제 갈게. ”

 

“ 집까지 데려다 드릴게요. 몇 번지에요? ”

 

“ 126번지... ”

 

 

알렉산드라는 취해서 그런지 거의 무의식적으로 대답을 했다. 베르닌은 ‘이렇게 술이 약하면서 왜 보드카를 마신 거예요! 어휴, 그 자식도 그렇고 정말... 술도 못 마시는 사람들이 뭘 믿고 이러는 거야!’ 하고 바가지를 긁고 싶었지만 상대가 왕재수가 아니라서 꾹 참았다.

 

 

다행히 126번지는 별로 멀지 않았다. 시장 뒷골목으로 들어가자 금방 건물이 나왔다. 베르닌은 알렉산드라를 부축해서 아파트로 올라갔다. 부축하는 게 너무 불편해서 마음 같아서는 왕재수에게 그랬듯이 들쳐 업고 가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여자인데다 알렉산드라가 놀랄 것 같아서 그럴 수는 없었다.

 

 

“ 선배님, 다 왔어요. 열쇠는 있어요? ”

 

“ 으응... 핸드백에... ”

 

 

알렉산드라가 주섬주섬 핸드백을 뒤졌다. 열쇠를 꺼내는가 싶더니 베르닌의 팔에 꼭 매달리며 잠깐 포옹을 하고 볼에 입을 맞췄다.

 

 

“ 고마워, 다냐. 나한테 다정하게 대해줬어. 고마워. 안 잊을게. ”

 

“ 선배님도 항상 저한테 잘 해주셨잖아요. ”

 

“ 내가 언제... 고마워. 내일 술 깨고 보면 되게 부끄럽겠다. ”

 

“ 저도 술 마실 거예요. 그럼 둘 다 하나도 생각 안 날 거예요. ”

 

“ 마시지 마. 머리 아플 거야. 고마워, 다냐. 잘 자. ”

 

 

베르닌은 알렉산드라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지켜본 후 아파트를 나왔다.

 

 

 

 

*   *   *

 

 

 

 

 

베르닌은 알렉산드라를 바래다 준 후 기분이 꿀꿀해져서 구시가지 골목을 정처 없이 배회하며 보드카 병나발을 불었다. 공무원이자 KGB 요원이 길에서 음주를 하며 늦은 밤까지 나돌아 다니는 것은 규정 위반이었지만 ‘다 집어치워’ 하고 투덜대며 술을 홀짝홀짝 마셨다. 저녁이라 해봤자 돌마를 약간 입에 댄 게 전부였기 때문에 금세 머리끝까지 술이 올라왔다.

 

 

캄캄한 골목을 돌아다니며 술을 마시다 보니 알렉산드라와 있었을 때는 그녀를 돌보느라 잊고 있었던 충격이 하나둘 되살아났다. 기분이 무척 좋지 않았다. 터무니없게도 올랴에 대한 배신감도 조금 들었다. 그리고 모브린의 멱살을 잡고 두들겨 패주고 싶었다. 알렉산드라가 안됐다는 생각이 들다가 자기도 안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자괴감이 들었고 점점 우울해졌다.

 

 

그는 밤 열한 시 즈음에 집으로 돌아왔다. 너무 취해서 머리가 빙빙 돌았고 속도 울렁거렸다. 두어 번 주저앉기도 했다. 간신히 엘리베이터 앞까지 왔는데 눈에 익은 뒷모습이 보였다. 왕재수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 어, 너 이제 들어오는 거야? ”

 

“ 으응... ”

 

“ 으윽, 술 냄새. 얼마나 퍼마신 거야! ”

 

“ 좀... ”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베르닌은 비틀거리며 들어갔다. 왕재수는 버튼을 누른 후 그의 팔을 잡아 주었다.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부웅 올라가자 베르닌은 어지러워서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눈치 빠른 왕재수가 짜증을 냈다.

 

 

야! 여기서 토하면 안 돼! 좀만 참아!

 

“ 안 토해... 우욱... ”

 

 

베르닌은 못 견디고 토해버렸다. 하필 왕재수의 신발 위에 토한 것 같았지만 앞이 잘 안 보였다. ‘아휴!’ 하는 소리가 들려온 걸 보니 맞는 것 같긴 했다.

 

 

 

눈을 떠보니 베르닌은 소파에 누워 있었고 이마에 미지근한 물수건이 놓여 있었다. 잠시 필름이 끊겼던 것 같았다. 다시 토할 것 같아서 억지로 일어났는데 화장실이 왜 이렇게 먼지 이해가 안 갔다. 집안 구조가 이상했다. 간신히 화장실로 가서 실컷 토했다. 그러고 나니 울렁거리는 건 가셨지만 머리가 너무 어지러웠다. 그때 왕재수가 와서 그의 팔을 붙잡고 욕실로 데려갔다. 젖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고 물로 입을 헹궈준 후 다시 부축을 해서 침실로 데려갔다.

 

 

“ 너 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

 

“ 많이 안 마셨어. 한 병도 안 마셨다고. ”

 

“ 한 병! 보드카가 맥주냐! ”

 

“ 넌 아무 거나 마셔도 취하는 주제에 뭘 안다고! 술 구별도 못하는 게! ”

 

“ 왜 몰라! 보드카 냄새가 코를 찌르는데! 아까 너 보자마자 어지러웠어! ”

 

 

툴툴대면서 왕재수는 그를 침대에 눕혔다. 베개를 머리 아래로 들이밀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어지럽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베르닌은 뭔가 낯선 느낌이 들었다. 베개의 느낌도, 침대의 느낌도 달랐다. 침실도 훨씬 넓은 것 같았다.

 

 

“ 어... 여기 너네 집이야? ”

 

“ 응. ”

 

“ 저... 나 그냥 소파에... ”

 

“ 그냥 있어. ”

 

“ 뜨보록도 못 올라오게 했잖아, 네 침대... 너랑 바이올린 아저씨의 보금자리라고. ”

 

“ 야! 멍멍이하고 사람하고 같냐! 시끄러워, 그냥 누워서 빨랑 자! 자면 술 깨겠지. ”

 

“ 그래도... 너도 자야 하잖아. 나 토해서 좀 나아졌어. 우리 집으로 갈게. ”

 

“ 시끄러워. ”

 

 

왕재수가 그의 셔츠 단추를 풀어주고는 불을 탁 꺼버렸다. 그리고는 침실을 나갔다. 베르닌은 뭐라고 웅얼대다가 다시 필름이 끊겼다.

 

 

 

 

*   *   *

 

 

 

 

 

두어 시간 후 베르닌은 술이 깨면서 퍼뜩 눈을 떴다. 온갖 숙취가 다 몰려왔다. 머리가 약간 어질어질하긴 했지만 그래도 속은 좀 진정된 것 같았다. 굉장히 목이 말랐다. 비틀거리며 문을 열고 나갔더니 거실 소파에 왕재수가 앉아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있었다. 베르닌을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 너 왜 나왔어. 누워서 자라니까. ”

 

“ 너무 목말라서. ”

 

 

왕재수가 냉장고로 가서 물병을 하나 꺼내주었다.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나자 좀 살 것 같았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왕재수가 혀를 찼다.

 

 

“ 고주망태가 돼서 들어온 걸 보니 여자랑 잘 안된 모양이구나. ”

 

“ 잘 되고 말고가 아니고... 으윽... ”

 

“ 그럼 뭐야? 결혼이라도 한대? ”

 

“ 엇, 너 뭐야, 어떻게 그렇게 잘 맞춰? 맞아, 결혼한대. ”

 

“ 으응, 그렇구나. 조용히 결혼할 것이지 뭐하러 옛날 남자한테 전화는 해대는지. 쪼잔한 여자구만. ”

 

“ 그게... ”

 

 

술이 깨면서 극심한 두통과 우울감이 몰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에 베르닌은 자기도 모르게 아까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털어놓았다. 왕재수는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하고 음악에 맞춰 휘파람을 불기도 하면서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대체로 왕재수는 그가 횡설수설하며 길게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면 중간에 말을 끊는 적이 별로 없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게 뻔했지만 베르닌은 어쨌든 가슴이 답답했으므로 왕재수가 듣든 말든 얘기를 줄줄 쏟아놓았다.

 

 

왕재수는 별로 위로를 해주지도 않았다. 그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했을 뿐이었다.

 

 

“ 그렇구나. 그런 게 걱정이 되는 거구나. 결혼할 사이에는 옛날 애인 얘기를 하면 삐치는 건가 보구나. ”

 

“ 그런 사람 많아. ”

 

“ 참 인생 피곤하게 사네. 안 그래도 신경 쓸 거 많은데. 다 정리했으니까 결혼하는 걸 텐데 옛날에 몇 명을 사귀었든 놀아났든 뭐가 그렇게 중요하담. ”

 

“ 그러게. 나도 그런 거 신경 안 쓸 텐데... 올랴는 신경 쓰였나봐. 모브린도... ”

 

“ 그 모브린인지 나발인지는 재수 없어. ”

 

“ 왜? 올랴는 괜찮고 모브린은 나쁜 거야? 둘다 똑같이 행동했잖아. ”

 

“ 올랴는 너한테 미안해했지만 그놈은 알렉산드라한테도 뻔뻔하게 굴고 너한테도 그렇게 굴었잖아. 거짓말도 하고. 지난번에도 성추행범 옹호하면서 잘난 척 했다며. ”

 

“ 아... 너 의외다. 그런 거 기억하는구나. 이름까지. ”

 

“ 네가 그때도 되게 씩씩거리면서 아까처럼 그랬잖아. ”

 

“ 내가 그렇게 얘기하면 다 기억해? ”

 

“ 네가 얘기하는 건 보통은 기억해. ”

 

기억만 하면 뭐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잖아! 밥 챙겨먹으라 해도 말 안 듣고 패딩 입으라 해도 안 입고 출근 날짜 줄이라 해도...

 

“ 그건 나에 대한 거고. 너에 대한 건 대충 기억해. ”

 

“ 엥? 감동받아야 하는 거야? ”

 

“ 이 멍충아, 맨날 징징대는데 어떻게 안 기억해! ”

 

“ 누가 누구 얘길 하는 거야! 어휴... 하여튼 나 너무 꿀꿀해. ”

 

“ 근데 뭐가 그렇게 꿀꿀하니. 올랴랑 다시 잘 될 거란 생각을 하고 갔던 건 아닐 거 아냐. 그렇게까지 좋아했던 것도 아니라며. 모브린은 재수 없는 놈이지만 원래 재수 없는 놈인 거 알았잖아. 알렉산드라는 좀 안되긴 했다. 그래도 넌 할 만큼 했잖아. 바래다주기도 하고. 네가 맨날 나한테 그랬잖아, 세상 일이 다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라며. ”

 

“ 나도 기대는 안 했어. 올랴 때문에 속상했지만 그건 뒤늦게 나타나서 그런 말을 하니까 그랬던 거 같아. 그리고... 이상하게 계속 마음에 남고 속상한 건 그런 게 아니고... 걔가 나 찰 때 그랬거든. 분명히 KGB 따위 너무 싫다고, 공무원 노릇하면서 KGB 완장 차고 생색내는 남자 질색이라고 했는데... 결국 결혼은 모브린이랑 하잖아, 똑같은 KGB인데... 그러니까 KGB가 문제가 아니고 사실 올랴는 내가 그냥 싫었던 거야. 근데 그게 되게 꿀꿀하단 말야. ”

 

“ 왜? 세상 사람이 다 너 좋아하란 법 있냐? 나 같은 우주 최강 꽃미남도 시기 질투하는 놈들에 싫어하는 놈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어떻게 모든 여자에게 다 좋다는 얘길 듣니. ”

 

아니야! 너는 그런 거 몰라! 너는 그래도 추종자들이 엄청 많잖아. 네가 손 하나 까딱하면 거의 다 넘어왔을 거 아냐. 넌 매력 없다고 차이는 게 뭔지 모른단 말이야. 나는, 나는 인기도 없고 지금까지 여자 친구도 몇 명 사귀어보지도 못했고 그나마도 몇 달 이상 간 적도 없단 말이야. 가끔씩 부모님 댁에 가면 언제 결혼하느냐고 다 걱정해. 나도 여름이면 스물아홉이 되고... 알렉산드라가 왜 그렇게 속상해하는지 나도 조금은 이해된단 말이야. 나처럼 여자한테 인기도 없는 책상물림 숙맥은 이러다가 결혼도 영영 못하고 끝까지 혼자... ”

 

 

왕재수는 물끄러미 그를 쳐다보았다. 까만 눈이 반짝거렸지만 장난기는 전혀 없었다.

 

 

“ 왜? 왜 그렇게 쳐다보는데? ”

 

“ 결혼 못할까봐 걱정돼서 그러는 거야? ”

 

“ 어... 꼭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좀 그런가봐. 나는 옛날부터 빨리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싶었어. 착하고 예쁜 여자랑 살면서 귀여운 아기도 낳고 그러고 싶었거든. 너는 대도시에서 와서 모르겠지만 여긴 보수적인 동네야... 빨리 결혼해서 가정 꾸리는 게 미덕이라고. ”

 

“ 레닌그라드도 그래. ”

 

“ 뭐가? ”

 

“ 빨리 결혼해서 빨리 가정 꾸리는 거. 그리고 레닌그라드는 전쟁 때 봉쇄로 남자들이 많이 죽었잖아. 그래서 결혼도 빨리 하고 이혼도 많이 해. 10대 때 결혼하는 애들도 많은 걸. ”

 

“ 거기도 그렇구나... 하여튼... 아까 알렉산드라가 울 때 나 되게 이입됐었어. 나도 뭐든 열심히는 했는데 남은 것도 없고 기껏 서무잖아. 옆에는 아무도 없고. 알렉산드라 데려다주고 나왔는데 길은 캄캄하고 춥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다 누구랑 같이 걸어가면서 깔깔 웃고... 갑자기 너무 우울했어. 이러다 정말 결혼도 못하고 끝까지 혼자 남을 것 같았어. 그런 거 너무 속상하잖아... 아무도 나 안 좋아하는 거. “

 

“ 애인이 안 생겨서 두려운 거야, 아니면 결혼을 못 할 거 같아서 두려운 거야? ”

 

“ 둘 다. 근데 특히 두 번째... 오늘은 그런 거 같아. ”

 

“ 그런가. 어렵네. ”

 

 

왕재수가 생각에 잠겼다. 베르닌의 곁에 앉더니 고개를 다시 갸웃했고 잠시 후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나는 그럴 일이 없을 텐데. ”

 

“ 뭐가? ”

 

“ 결혼. 난 결혼 같은 거 할 일이 없을 거 아니야. ”

 

“ 어... 왜 그렇게 생각해? 그렇게 인기 많으면서... 지금 극장에도... ”

 

“ 바보. 결혼은 법과 질서가 인정해야 이루어지는 거잖아. 일종의 체제라고. 남자와 여자가 결합해서 만드는 계약체. 그러니까 나는 죽을 때까지 그런 거 만들 일이 없을 거야. 애기는 더더욱. ”

 

“ 아... ”

 

 

베르닌은 말문이 막혔다. 그런 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갑자기 술이 완전히 깨는 것 같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왕재수가 연방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자신과 다른 이유가 단순히 예술가이기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도.

 

 

아마도 그는 마지막 생각을 입 밖에 냈던 건지도 몰랐다. 술기운에. 그것도 아니라면 언제나 그랬듯 그가 펼쳐진 책처럼 적나라하게 마음을 드러낸 표정을 지었던 것일지도. 왕재수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기 때문이다.

 

 

“ 그래봤자 다 똑같아. ”

 

“ 뭐가? ”

 

“ 세상 사는 거. 많이 피곤하고 덜 피곤하고의 차이지. ”

 

“ 엥, 네가 그런 말을 하니까 이상해. 철없는 놈이. ”

 

“ 들켰나. 내가 한 말 아니야. ”

 

“ 역시... 바이올린 아저씨로구만. 딱 나이 많은 아저씨가 할 법한 말이네. ”

 

“ 로만은 아니고. 뭐 아저씨는 맞네. ”

 

 

왕재수가 무의식적으로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더 이상 그 얘기는 하지 않았다. 하품을 하더니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몸을 축 늘어뜨렸다.

 

 

“ 나 잘래, 다닐. 너무 졸려. ”

 

“ 어, 그, 그래. 그럼 난 우리 집에 갈게. ”

 

“ 그냥 여기서 자. 너 아까 너네 집 현관이랑 거실에 엄청 토했어. 그거 치울 엄두 안 나서 우리 집으로 데리고 온 거야. ”

 

“ 어... 그랬구나. 치워야겠다. ”

 

“ 내일 치우고 지금은 자라. 술 퍼마셨잖아. 그래야 내일 아침에 나 태워다 주지. ”

 

“ 그러니까 결국 너 좋은 일 해달라고 돌봐준 거구나! ”

 

“ 응. 근데 너 이제 진짜 살 좀 빼... 무거웠어... 80킬로 넘는 거 같아. ”

 

 

베르닌은 최근 다이어트를 좀 해서 적어도 1킬로는 빠졌을 거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왕재수가 고개를 툭 떨어뜨리고 쌕쌕거리며 잠이 들었기 때문에 한숨을 쉬었다.

 

 

“ 뭐야, 이게. 울 때도 그렇고... 자는 것도 진짜 애기처럼. 순식간에 자네. ”

 

 

베르닌은 왕재수를 안고 침실로 갔다. 침대에 뉘어주고 이불을 덮어주자 왕재수가 눈도 뜨지 못하고는 희미하게 웅얼거렸다.

 

 

“ 아이, 술 냄새. 베개에 뱄어. ”

 

“ 미안해. 베개 바꿔줄게. ”

 

“ 됐어. 마시지도 못하는 거 대리만족이라도 할래. ”

 

 

왕재수는 곧 다시 잠이 들었다. 베르닌은 집으로 갈까 했지만 어쩐지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거실 소파로 가서 드러누웠다. 왕재수의 소파는 그의 집 소파보다 훨씬 넓고 푹신했다. 침대도 그랬다. 집도 훨씬 넓었다. 쿠션을 머리에 베고 눕자 온몸이 노곤해졌다.

 

 

‘ 토한 거 치우기 싫어서 여기서 자는 거야. 오늘만. 진짜야. 혼자 있기 싫어서 그런 거 아니야. 누구처럼 애기도 아닌데. ’

 

 

베르닌은 입 안으로 그렇게 중얼거렸고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FIN

- 2015. 6. 5 ~ 6.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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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26편은 좀 분위기가 가라앉았다만...

 

이번 편의 알렉산드라와 세묜 모브린은 18편 '메드베지에서 생긴 일, 알렉산드라'(http://tveye.tistory.com/3678)에 등장한 적이 있다. 그러고보니 알렉산드라가 나오는 글들은 거의가 좀 우울한 편이네.. 꼭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닌데 그렇게 됐다. 아무래도 알렉산드라는 서무 시리즈에서 코믹한 기운도 없고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라서 그런 것 같다.

후반부에서 왕재수가 하는 이야기들은 사실 본편 미샤와 맥이 많이 닿아 있다. 어쨌든 이 사람이 퀴어 캠프의 일원이자 억압된 소련 사회를 살아가는 인물인 것은 본편이든 서무 시리즈든 변함없는 사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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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 새로운 여자 캐릭터를 등장시킨다더니 이 모양이냐! 하고 야단치는 분들께 ㅠ 그래서 분위기 전환용으로 다음주에는 번외편으로 러시아 민담 패러디를 올리겠습니다~ 과연 단추는 번외편에서라도 미녀 군단의 사랑을 받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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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은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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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