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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신이 피곤할 때 이상하게 잘 써지는 서무의 슬픔 시리즈 ㅠㅠ

지난주에 러시아 다녀와서 원래 본편에 다시 매진하려 했는데 피곤하기도 하고 자꾸 스트레스를 받으니 집중이 안돼서 대신 서무 12편을 썼다 ㅜㅜ 12편에서는 특히 단추를 많이 괴롭히고 기분이 정화되었...(미안해 단추야)

 

서무 시리즈는 원래 매 에피소드마다 완결되는 옴니버스 형식인데 이번 10편은 9편(http://tveye.tistory.com/3524)과 내용상 연결되고 있다. 그러니까, 눈보라가 몰아치고 얼어붙은 강을 건너고 퐁당 빠지고 등등... 갖은 우여곡절 끝에 베르닌과 왕재수가 구출(?)해 온 강아지가 10편에도 나온다.

 

이미 왕재수 집사 노릇하느라 이골이 난 우리의 단추 청년 베르닌.. 과연 강아지의 집사마저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리고 얼음물에 풍덩 빠졌던 왕재수는 과연...

 

 

** 지금까지의 줄거리와 이번 편 간략한 예고 **

 

1981년 소련의 지방 소도시(..라고 쓰고 시골이라 읽는다) 가브릴로프의 보안위원회(KGB) 말단 행정직원이자 서무인 다닐 베르닌은 무시무시한 상사에게 시달리고 격무에 짓눌려 죽을 지경이다.  

이 와중에 모스크바에서 유명한 무용수 출신의 반동분자 정치범을 가브릴로프로 유배시키고, 베르닌은 엉겁결에 그를 감시하는 중책을 떠맡는다. 알고보니 그것은 싸가지 없는 젊은 예술가 녀석의 가정부이자 노예 노릇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가뜩이나 서무 업무로 들들 볶이느라 힘든 와중에 새로 온 녀석의 출퇴근 운전기사 노릇, 집안일, 밥해먹이기 등등 온갖 잡일에 시달리던 베르닌은 망할 놈의 반동분자를 왕재수라 부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왕재수도 나름대로 시골 생활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 중이다.

그러다 새해가 오고, 눈보라 속에서 얼어붙은 강을 건너다 베르닌과 왕재수는 길 잃은 강아지를 한 마리 구조한다. 그리고....


 

(이 시리즈는 아래 순서대로 읽기를 권장함~)

* <서무의 슬픔> 시리즈에 대해 : http://tveye.tistory.com/3427
* 주요 등장인물 소개 + 시리즈 목차 : http://tveye.tistory.com/3428
* 에피소드 0. 다닐 베르닌의 새로운 임무 : http://tveye.tistory.com/3429
* 에피소드 1. 왕재수, 행동에 나서다 : http://tveye.tistory.com/3432
* 에피소드 2. 당직실의 귀신 : http://tveye.tistory.com/3437
* 에피소드 3. 버찌잼과 초콜릿 쿠키 : http://tveye.tistory.com/3444
* 에피소드 4. 공유지의 배추와 의전의 문제 : http://tveye.tistory.com/3451
* 에피소드 5. 무도회에 간 베르닌 : http://tveye.tistory.com/3458
* 에피소드 6.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 : http://tveye.tistory.com/3466
* 에피소드 7. 보고서의 악몽 : http://tveye.tistory.com/3478
* 에피소드 8. 새해 전야의 만두 소동 : http://tveye.tistory.com/3488
* 에피소드 9 : 눈보라와 패딩 코트 : http://tveye.tistory.com/3524

** 번외편. 등장인물 20문답 : http://tveye.tistory.com/3492, http://tveye.tistory.com/3493

 

 

* 이 글을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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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무의 슬픔 series>

episode 10

 

 

서무의 슬픔

- 벨라 등장! -

 

 

 

 

 

전날의 눈보라 소동으로 늦잠을 잔 베르닌은 그만 지각을 했고 스페호프에게 불려가 엄청나게 꾸중을 들었다. 이미 전날 책상과 의자 아래가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2주일 간 1시간 초과근무 벌칙을 받은 상태에서 1주일간의 조기출근 벌칙이 추가되었다.

 

오후에 국장이 다시 그를 호출했다. 베르닌은 또 무슨 트집을 잡아서 벌칙을 주려나 하고 쭈뼛거리며 국장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스페호프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 자네 어째서 그 얘길 하지 않았나? ”

 

“ 무슨 얘길... ”

 

“ 그 불여우 말일세!! 입원했다는 얘길 조금 전에 들었네. 자네와 강을 건너다 빠졌다면서. 죽을 뻔했다고 말이지. ”

 

“ 아, 예... 죄송합니다. 그렇게 위험한 짓은 하지 않았어야... ”

 

“ 잘했네, 잘했어! 책상물림인 줄만 알았는데 자네가 알고 보니 배짱도 있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도 두텁구먼! 그 반동분자를 쥐도 새도 모르게 처치하려고 했다니...

 

“ 예? 처치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

 

“ 그렇지! 밖에서는 항상 그렇게 대답하게! 혹시라도 크레믈린에 있는 그 불여우의 후원자들이 알게 되면 자넬 죽여 버릴지도 모르니... 이 방은 안전하니 괜찮네. 우리 둘만 있을 땐 솔직하게 말해도 좋아. 그렇지 않아도 내가 그놈을 없애버리려고 지령을 내리려다 항상 망설였는데 자네가 어떻게 내 마음을 그렇게 잘 알고 시도를 했나! 정말 놀랍군, 고지식한 책상물림이었던 자네가 어엿한 암살 요원의 자질을 갖추게 되다니! 정말 잘했네. 눈보라 속에서는 흔적이 남지 않으니 강으로 가서 살얼음 쪽으로 몰고 가 빠뜨려 죽이려고 했던 전략은 아주 훌륭했네.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뭐 자네는 암살 훈련을 정식으로 받지 않았으니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네. 시도 자체가 훌륭한 일일세! 아아, 다닐. 난 사실 걱정하고 있었다네. 자네가 그 불여우에게 푹 빠져서 아침에 하고 저녁에 하고 밤에도 하고 당직실에서도 하면서 점점 반동분자 물이 들고 당에 대한 충성심을 저버리게 될까봐 늘 걱정이었네. 그런데 그건 기우였군! 자네는 그 불여우에게 잘해주는 척 하면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거였군! 앞으로도 그렇게 하게! ”

 

베르닌은 너무 놀라서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어버버 하고 말을 더듬었다.

 

“ 어... 저... 저 국장님, 그러니까... 지금... 제가 걜 죽이려고 했다고... ”

 

“ 내 앞에서는 숨기지 않아도 된다니까 그러는군. ”

 

“ 앞으로도 걜 죽일 기회를 노리라고... ”

 

“ 쉿,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일세. 난 원래 다른 요원을 투입하려고 했는데 비밀 유지를 위해서는 자네가 맡아주는 게 역시 안심이 될 것 같군. 하지만 조심해야 하네. 저 불여우는 워낙 뒤를 봐주는 윗분들이 많아서. 일단 지금은 한 발 물러서야 해. 애송이가 입원까지 했으니 분명 크레믈린에 정보가 들어갔을 거야. 한동안은 전처럼 잘 돌봐주는 척하게. 아침에 하고 저녁에 하고 밤에도 해주는 것도 계속하도록. 그러다 안전해지면 내가 다시 신호를 주겠네. 그때 그놈을 쥐도 새도 모르게...

 

“ 하지만... 우린 모스크바 본부도 아니고 살인면허 같은 것도 없고... 걔는 전혀 위험인물이 아닌데... ”

 

“ 그렇지, 항상 그렇게 얘기하도록 하게! 아아,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군. 드디어 자네가 행정의 기본을 익혔어. 행정의 기본이란 국가와 당에 충성하는 것이지! 체제에 거역하는 놈들을 가차 없이 처단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네. 기특하기도 하지. 상으로 아침에 내렸던 조기출근 벌칙은 면제해 주겠네. 그만 가보게. ”

 

 

 

베르닌은 무거운 마음으로 국장실을 나왔다. 조기출근 벌칙에서 면제된 것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국장이 그런 무서운 생각을 하고 있다니 너무나 놀라웠다. 혹시라도 국장이 자기에게 왕재수를 죽이거나 해를 끼치라고 명령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오금이 저렸다.

 

‘ 지금이 레닌 스탈린 시대도 아닌데 어떻게 사람을 암살하는 걸 저렇게 쉽게 얘기하지? 그것도 저 철딱서니 없는 애를... 싸가지 없긴 해도 나쁜 앤 아닌데... 강아지도 구해줬는데... ’

 

베르닌은 자리로 돌아왔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결국 그는 마음속으로 깊게 다짐했다. 국장이 혹시라도 정말로 왕재수를 죽이라고 하면 크레믈린에 있다는 그 아저씨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겠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그는 크레믈린에 있는 높은 분들에게 연락할 방법도 몰랐고 행여 안다 한들 그 대단한 사람들이 말단 직원인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일 리도 없었다. 정 안되면 바이올린 깡패에게라도 얘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쩐지 코즐로프를 떠올리자 좀 든든해졌다.

 

 

*      *      *

 

 

베르닌은 초과근무 1시간만 하고 퇴근했다. 왕재수를 보러 곧장 병원으로 갔다. 하지만 의사가 병실에 못 들어가게 막았다.

 

자니까 방해하지 마!

 

“ 어... 괜찮은지 확인만 하고 갈게요. ”

 

안 괜찮아! 얼음물에 빠져서 폐렴 도졌어. 애가 온종일 얼마나 아팠는지 알아! 간신히 재워놓은 거야. 부스럭거리면 또 깨니까 들어갈 생각은 하지도 마. ”

 

“ 그럼 병원에 오래 있어야 돼요? ”

 

“ 최소 사흘은 있어야 할 것 같으니 그렇게 알아. 내일까지는 면회 금지니까 와봤자 소용없어. 밖에서 병균 묻혀오면 어쩌려고! ”

 

“ 선생님, 저는 병균의 온상이 아닌데요... 손도 깨끗이 씻고 들어왔어요. ”

 

KGB 나부랭이는 전부 병균 박테리아야!

 

“ 그런 말씀 함부로 하지 마세요. 국장이 알면 잡아갈지도 몰라요. ”

 

아니 이놈이 어디서 감히 국장 운운이야! 여기가 무슨 KGB 고문실이라도 되는 줄 알아! 꺼져! ”

 

 

과연 노의사 스타브로프는 왕년에 시베리아 수용소 생활을 두 번이나 한 사람이라 KGB에 대한 증오가 어마어마했다. 베르닌은 오후에 국장이 했던 무서운 말을 떠올리자 풀이 죽었고 의사에게 대드는 대신 터벅터벅 병원을 나왔다. 왕재수가 생각보다 많이 아프다는 말에 기분이 좋지 않았고 강을 건너자고 했던 것에 가책을 느꼈다.

 

 

그는 아파트 옆에 있는 식료품 가게에 갔다. 웬일로 줄이 굉장히 짧아서 10분 만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까탈스러운 왕재수가 없으니 마음 놓고 느끼하고 기름진 음식을 해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돼지비계와 칼바사 햄을 샀고 정육점 아주머니에게 부탁해서 쇠뼈와 짜투리 고기를 싸게 얻었다.

 

 

집에 돌아와서 그는 돼지비계와 햄, 통조림 토마토, 버터 듬뿍, 야채 약간을 투하해 기름기가 둥둥 뜨는 살랸카 수프를 끓였다. 수프를 곁들여 흑빵에 버터를 무지무지 많이 발라서 그 위에 잼도 잔뜩 얹어 먹었다. 차에 설탕도 두 숟가락이나 녹여 마셨다. 왕재수가 봤다면 기절초풍할 저녁 식사였다.

 

에이, 그 녀석 없으니까 진짜 좋네. 나 먹고 싶은 대로 실컷 해 먹을 수 있고. 눈치도 안 보고. 식기들 일일이 안 차리고 냄비 째로 갖다놓고 먹어도 뭐라 하는 녀석 없고. 아이 평화로워. 아이 편해. 설거지도 내일 해야지! ”

 

저녁을 먹은 후 그는 짜투리 고기를 삶아 기름기를 제거하고 쇠뼈를 고아 국물을 냈다. 그리고는 혀로 입천장을 톡톡 치면서 강아지를 불렀다.

 

“ 벨라야! 우리 벨라, 이리 온. 맛있는 거 줄게~ 이리 와~ ”

 

이제나저제나 하며 침을 흘리고 있던 강아지가 꼬리를 치며 달려왔다. 얼음 위에서 발견했을 때는 거무스름한 색이었지만 따뜻한 물로 씻기고 말려주자 놀랍게도 강아지는 눈처럼 하얀 색이었음이 밝혀졌다. 그래서 베르닌은 강아지에게 하얀 털색을 따서 벨라라는 이름을 붙여주고는 간밤에도 한 침대에서 데리고 잤다. 의사는 강아지가 6개월 정도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귀여움을 받고 자란 강아지인지 낯가림도 없었고 베르닌을 졸졸 따라다녔다.

 

베르닌은 조그만 강아지가 추위에 떨며 고생했으니 몸을 보신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쇠뼈를 곤 국물에서 기름을 모두 걷어내고 후후 불어 식혀서 벨라에게 한 숟갈 한 숟갈 떠먹여 주었다. 벨라는 엄청 잘 먹었다. 삶은 고기를 찢어주자 순식간에 홀랑 먹어치우고는 베르닌을 숭배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배를 뒤집으며 발라당 드러누워 영원한 충성을 맹세했다. 강아지가 너무 귀여워서 베르닌은 잠자리에 들 때까지 벨라를 데리고 놀았다.

 

“ 우쭈쭈쭈, 우리 강아지~ 우리 벨라~ 엄마 아빠랑 헤어져서 슬프지? 내가 주인이랑 가족들이랑 다 찾아줄게~ 그때까지 나랑 있자~ 아 예뻐라~ ”

 

벨라는 혀로 베르닌의 뺨을 핥으며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래서 베르닌은 강아지의 온기 속에서 아주 기분 좋게 잠이 들었다.

 

 

*     *     *

 

 

다음날 베르닌이 돌아와 보니 벨라가 시무룩하게 몸을 말고 누워 있었다. 거실과 방 여기저기에 실례를 해놓은 것도 모자라 화분의 잎사귀도 몽땅 다 뜯어놓았고 휴지도 마구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벨라야, 왜 이랬니! 이러면 못써!

 

벨라는 하염없이 슬픈 눈망울로 베르닌을 바라보며 낑낑대더니 곧장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베르닌은 화를 내는 대신 어질러진 집을 모두 치웠고 벨라에게 밥을 준 후 도서관에서 빌려온 ‘개 기르는 법’이란 책을 꺼내보았다. 필요한 부분을 찾아내 소리 내어 읽었다.

 

 

개는 주인을 매우 따르는 동물이다. 집에 혼자 내버려두면 우울증으로 고통을 받는다. 여기저기 실례를 하거나 말썽을 부리며 주인의 관심을 끌려고 한다. 상태가 심해지면 늑대처럼 구슬프게 짖기도 하고 시름시름 앓게 된다.

 

 

베르닌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벨라가 불쌍했다. 가엾은 강아지를 집에 혼자 놔두면 안 되는 거였다. 그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 할 수 없지. 사무실에 데려가야지. ’

 

 

다음날 베르닌은 벨라를 몰래 사무실로 데려갔다. 벨라를 넣어둔 조그만 박스를 자기 의자 아래 감춰둔 채 일을 했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베르닌이 이따금 몸을 굽혀 박스 안에 있는 벨라와 놀아주었다. 밥도 주고 쓰다듬어 주기도 했다. 하지만 몇 시간 후 따분해진 벨라는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자꾸만 박스 바깥으로 기어나오려고 했다.

 

“ 쉿, 벨라... 조용히 해. 사람들한테 들키면 큰일나... ”

 

“ 끼이잉... 끼이잉... ”

 

“ 쉿... 조용히... ”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지나가던 리자가 낌새를 챈 것이다.

 

 

“ 다냐, 이게 무슨 소리에요? 어머낫, 강아지!

 

“ 리자... 제발 쉿... ”

 

“ 어머어머, 얘 진짜 귀엽다. 새로 들인 거예요? ”

 

“ 아뇨, 그게 아니고... 그저께 나랑 왕재수, 아니 미샤랑 강에 빠졌잖아요. 그때 구해준 강아지예요. 주인 찾을 때까지만 데리고 있는 건데... 너무 어려서 집에 혼자 놔두니까 힘들어하는 거 같아서 살짝 데려온 거예요. 근데 가만히 있으라고 해도 말을 안 들어요. ”

 

“ 개가 무슨 금붕어나 십자매예요? 박스 안에서 얌전하게 있게... 개는 산책도 시켜주고 놀아줘야 해요. 바깥 공기도 쐬어야 하고. 이렇게 가둬놓으면 병나요. 차라리 뒤뜰에 데려다놔요. 그 배추밭 옆에. 거기 바람막이도 있고 해도 잘 들어서 따뜻해요. ”

 

“ 뜰에 풀어놨다가 도망치거나 길을 잃으면 어떻게 해요. 가뜩이나 길 잃은 강아지인데... ”

 

“ 목줄 길고 느슨하게 매 주면 되죠. 이리 줘요, 내가 뒤뜰에 묶어 놓고 올 테니까. ”

 

“ 국장한테 들키면... ”

 

“ 경비원 아저씨한테 얘기해 놓을게요. 국장 오는 기색 있으면 경비실에 숨겨달라고... ”

 

“ 고마워요, 리자. 그때 차 태워준 것도 그렇고 정말 친절하고 착한 거 같아요. ”

 

“ 고마우면 그 꽃돌이 감독님이랑 소개팅 좀... ”

 

“ 나도 그렇게 해주고 싶은데 걔가 좀... ”

 

“ 흥, 됐어요. 농담이에요. 그 사람은 당신 거잖아요. 칫, 운도 좋아. 단추 눈이면서 무슨 재주로 그렇게 멋있는 남자를 낚았담. 아 맞다, 아침에 하고 저녁에 하고 밤에 해 준댔죠... 그러고 보면 당신도 대단해요. ”

 

“ 나 진짜 그거 아니에요 ㅠㅠ ”

 

 

리자는 깔깔 웃으며 벨라를 품속에 집어넣고 뒤뜰로 갔다. 베르닌도 불안해서 따라갔다. 알고 보니 리자는 어릴 때부터 개를 여러 마리 키워본 베테랑이었다. 배추밭 옆의 기둥에 기다란 끈을 잡아매더니 벨라의 목에 솜씨 좋게 매어 주었다. 끈이 길어서 벨라는 꽤 넓은 반경 안에서 움직일 수 있었다. 리자는 벨라의 곁에 물그릇과 밥그릇도 놓아주고 어디선가 뼈다귀와 바람 빠진 고무공도 주워다 주었다.

 

“ 예쁘다, 벨라야~ 놀고 있어. 우리가 자주 올게~ ”

 

벨라는 땅을 파헤치느라 신이 나서 베르닌과 리자가 사무실로 돌아가도 본척만척했다. 베르닌은 한 시간마다 뒤뜰로 나가보았고 벨라와 조금씩 놀아주었다. 벨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힘든 일을 하면서도 전만큼 스트레스가 심하지 않았다. 어차피 남아서 하나 안 하나 일은 밀리게 되어 있다고 생각하며 야근도 하지 않고 초과근무 1시간만 마친 후 벨라와 함께 귀가했다. 강아지 덕분에 인간다운 생활을 하게 된 것 같아 심히 기뻤다.

 

 

그러나 벨라와의 행복한 사무실 생활은 사흘 만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일의 발단은 가끔 나타나는 검정 도둑고양이 미셴카였다. 고양이는 그 날도 베르닌이 챙겨주는 사료와 생선 찌꺼기를 먹으려고 배추밭 근처에 나타났다가 웬 하얀 강아지를 발견했다. 무시무시하게 발톱을 드러내며 하악거리는 커다란 고양이 때문에 깜짝 놀란 벨라는 왈왈 짖어댔다. 그러나 이 구역의 지배자이자 깡패로 산전수전 다 겪은 검정고양이 미셴카에게 벨라는 한주먹거리도 되지 않았다.

 

한바탕 난리가 났다. 캭캭, 야옹야옹, 왈왈왈, 멍멍멍, 깨갱깨갱 등등 끔찍하고 현란한 소음이 일었다. 뒤뜰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놀란 베르닌이 달려갔을 때는 이미 검정고양이 미셴카가 벨라를 깔고 앉아 발톱을 세운 앞발로 강아지의 토실토실하고 복슬복슬한 엉덩이를 마구 후려치고 있었다. 벨라가 죽는 소리를 하며 깨갱거렸다.

 

으악, 미셴카! 이게 무슨 짓이야! 저리 가!

 

야아아아옹!!!!

 

 

베르닌이 삿대질을 하며 벨라를 안아들자 고양이는 엄청나게 서럽고 분한 표정으로 그를 째려보더니 소맷부리를 확 할퀴고 가버렸다.

 

“ 벨라야 놀랐지, 미안 미안. 아휴, 배추밭은 위험해서 안 되겠다... 도로 사무실로 데려가야겠네. ”

 

“ 끼잉끼잉... ”

 

 

하지만 운이 없었다. 벨라를 사무실로 데리고 들어오다가 스페호프와 떡하니 마주치고 만 것이다. 국장의 두 눈이 둥그렇게 커졌다.

 

“ 자네, 그게 대체 뭔가? ”

 

“ 예? 예...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인형... ”

 

개 아닌가!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사무실에서 왜 지저분한 개를 끌어안고 있는 거냔 말일세! ”

 

“ 저... 길 잃은 강아지인데 주인 찾을 때까지만 임시로 제가... 어려서 집에 두면... 우울증... 말썽... 늑대처럼 짖고... ”

 

“ 웬 횡설수설이람. 하여튼 근무지에 짐승을 반입하면 절대 안 되네! 가뜩이나 도둑고양이를 아직도 퇴치하지 못해 골치 아파 죽겠는데 어디서 강아지 새끼까지 데려와서! 당장 갖다 버리게!

 

“ 하지만 이 추운 날씨에 강아지를 어떻게 버립니까... 이렇게 어린데... ”

 

그럼 안락사시키든가!!

 

“ 아아, 블라지미르 파블로비치. 국장님은 피도 눈물도 없나요... 이렇게 귀여운 강아지를... ”

 

“ 내 눈엔 근무 질서를 어지럽히는 쓸모없는 생물일 뿐이야! 당장 처리하고 오게! ”

 

 

베르닌은 강아지를 안고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며칠 전 강아지 습득 신고를 했던 경찰서에 가서 혹시 주인이 나타났느냐고 물었다.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는 대답만 들었다. 일말의 기대를 품고 스타브로프의 병원에 가보았다. 의사에게 강아지를 맡아줄 수 있는지 물었다. 노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 나도 맡아주고 싶지만 병원에는 환자가 많아. 개가 병균을 옮길 수도 있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위험하네. 그리고 마누라가 비염이 심해서 어려워. 그냥 집에 데려다놓고 정시에 퇴근하도록 하게. 그게 개한테도 좋고 자네한테도 좋아. ”

 

“ 하지만 전 항상 노예처럼 일하느라 늦게 들어오는걸요... ”

 

“ 망할 놈의 KGB에 뭐 그렇게 충성할 필요가 있다고! ”

 

별다른 수확 없이 베르닌은 집으로 향했다. 품에 안긴 벨라의 해맑은 까만 눈동자를 보자 마음이 무거웠고 서글펐다. 강아지 한 마리 사무실에서 마음껏 뛰놀지 못하는 세상이 미웠다.

 

 

*     *     *

 

 

집으로 들어오자 벨라는 목이 말랐는지 물그릇에 머리를 처박았다. 한참 물을 먹더니 피곤했는지 곧장 소파로 올라가 잠이 들었다. 베르닌은 한숨을 내쉬고는 밥그릇에 사료를 채워놓고 다시 사무실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침실 문이 열려 있었다. 도둑이라도 들었나 싶어서 침실로 가보았더니 왕재수가 침대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깜짝 놀란 베르닌이 조심스럽게 나가려고 했지만 기척에 왕재수가 깨어났다.

 

“ 어, 너 왔구나. 벌써 밤인가? 나 많이 안 잔 것 같은데. ”

 

“ 너 퇴원한 거야? ”

 

“ 응. 아침에. ”

 

“ 근데 왜 너네 집에 안 가고 여기서 자고 있는 거야? ”

 

“ 우리 집 너무 추워. 난방 고장 난 거 같아. ”

 

“ 아... 내가 가스 밸브 잠가놨었어. 사람 없는데 난방 돌아가면 낭비잖아. 밸브 틀어놓으면 따뜻해질 거야. 너 이제 괜찮아? ”

 

응, 의사 선생님이 병실도 좁고 불편하니까 퇴원하는 게 낫대. 근데 이번 주는 출근하지 말고 무조건 집에서 쉬어야 한대. 다시는 강 건너지 말래. ”

 

“ 선생님이 너 엄청 혼냈지? ”

 

“ 왜 혼나? 멋모르고 강 건너다 큰일 날 수 있다고 수심이랑 얼음 분포도랑 그려가면서 친절하게 설명해주셨어. 매일매일 옆에 와서 열도 내려주고 수프도 떠먹여주고 자장가도 불러서 재워주셨어. 의사 선생님 진짜 친절하고 완전 좋아. ”

 

“ 엥... 그 할아버지가 그런 면이... 너 혹시 그 선생님하고도... ”

 

“ 뭐가? ”

 

“ 그러니까... 응응응을... 성교를... ”

 

악, 너 어떻게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의사 선생님 모독하지 마! ”

 

“ 너 참 이상하다... 맨날맨날 아무 남자나 다 덥석덥석 끌어안고 성교 어쩌고 침대 어쩌고 하면서 왜 그 의사 선생님이랑 그런 사이냐고 물어보니까 화내지? ”

 

“ 의사 선생님이잖아! 엄청 착한 할아버지잖아! ”

 

 

대체 그 기준이 뭔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었지만 베르닌은 어쨌든 왕재수가 퇴원했다는 데 마음이 놓였다.

 

 

“ 밥은 먹었어? ”

 

“ 병원에서 먹고 왔어.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야? ”

 

“ 어... 아직 낮이야. 나 다시 사무실 가야 돼. 잠깐 들른 거라서. 야근 안하고 올게. 저녁 뭐 먹고 싶어? ”

 

“ 별로 입맛이 없어. 그냥 잘래. ”

 

“ 잘 먹어야 빨리 낫는데... 내가 저녁에 너 좋아하는 생선찜 해줄게. ”

 

“ 그걸 어떻게 믿니. 너 회사 가면 야근이잖아. 분명히 한밤중에 오겠지. 배고프면 그냥 바나나랑 요구르트나 먹을래. ”

 

“ 아니야, 나 오늘 일찍 올 거야. 나 요즘 계속 일찍 왔어. ”

 

“ 그 못된 국장이 개과천선이라도 했어? 아니면 잘렸나? ”

 

“ 아니, 그게 아니고... ”

 

 

베르닌이 강아지 얘기를 하려고 했을 때 마침 잠에서 깬 벨라가 투다다닥 하고 침실로 달려 들어왔다. 꼬리를 치며 베르닌에게 뛰어오다가 왕재수를 발견하더니 ‘왕!’ 하고 짖으며 잽싸게 침대 위로 뛰어올라가 왕재수의 무릎에 찰싹 올라앉았다. 왕재수가 기겁을 했다.

 

악, 이게 뭐야! 저리 가!

 

벨라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왕재수의 품으로 팔짝팔짝 뛰어오르면서 목덜미고 얼굴이고 닿는 곳마다 혀로 할짝거리고 뽀뽀를 해댔다. 경악한 왕재수가 부들부들 떨면서 몸부림쳤다.

 

 

저리 가! 저리 가! 아악, 야! 너 왜 보고만 있는 거야! 이것 좀 치워줘! ”

 

“ 왜 그래, 벨라가 너 기억하나봐. 반가워서 그러는 거야. 좀 안아주고 인사해줘. 아는 체 해달라고 그러는 거잖아. ”

 

“ 기억은 무슨 기억! 어디서 이런 지저분한 멍멍이가 굴러들어온 거야! 아악, 빨리 좀 떼어줘! 나 이런 거 너무 싫어! 아 더러워! 으악, 이게 막 핥아... 침까지 묻히고... 우웩! 아악!

 

왕재수가 너무 법석을 피웠기 때문에 베르닌은 벨라를 그의 품에서 떼어내 꼭 안고 머리를 쓸어주었다.

 

 

“ 벨라야, 저 오빠는 네가 무서운가봐. 그러니까 방금처럼 막 뛰어오르면 안 돼. 알았지? ”

 

“ 오빠라니! 난 인간인데! 내가 왜 지저분한 똥개의 오빠여야 돼! 벨라는 또 뭐야! 으윽! 대체 왜 집구석에 개가 들어와 있는 건데! ”

 

“ 너 기억 안나? 그 강아지. 그때 얼음 위에 있던 애야. 네가 구해줬잖아. ”

 

“ 얼음... 아, 그 똥개... 거짓말하지 마! 그 똥개는 거무튀튀한 색깔이었는데 이건 하얗잖아! ”

 

“ 그거 때타서 그런 거였어. 목욕시키니까 하얀색이더라고. 그래서 이름도 지어줬어. 벨라... ”

 

벨라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개한테 웬 벨라!

 

“ 하얀색이니까... ”

 

“ 벨라는 레르몬토프 소설 여주인공 이름이란 말이야!! 예쁜 여자한테나 붙여주는 이름이라고! 개는 멍멍이! 바둑이! 누렁이! 흰둥이! 뭐 그렇게 부르는 거야! 게다가 이거 수컷이잖아!!! 이거 안 보여, 이거? 여기 이거! ”

 

 

 

왕재수가 부르르 떨면서 벨라의 뒷다리 사이에 달려 있는 콩알만한 뭔가를 가리켰다. 베르닌은 깜짝 놀랐다.

 

“ 어... 그러네... 너무 작아서 몰랐어. 암컷인줄 알았는데... 그래도 강아지니까 그냥 벨라라고 부르자... 벌써 이름도 입에 뱄는데... ”

 

“ 알아서 해, 벨라든 나발이든... 제발 갖다 버려... 아니면 경찰서에 갖다 주든가!! 집안에서 개 따윌 키우다니! 순전 세균 덩어리란 말야! ”

 

“ 야, 너 왜 이렇게 피도 눈물도 없냐! 국장이랑 똑같은 소릴 하네. 경찰서에 신고했단 말이야, 주인 찾아줄 때까진 데리고 있을 거야. 안 그러면 유기견 수용소로 끌려가서 안락사 당한단 말이야. 그리고 여기 우리 집이야! 내가 내 집에서 개 키우겠다는데 네가 왜 그래! ”

 

“ 그치만... 난 맨날 여기서 저녁도 먹고... 차도 마셔야 되고... 지금 우리 집 난방도 안 되고 추운데... 지금 나 보고 여기 오지 말라는 거야? 똥개 한 마리 때문에!!! ”

 

“ 아니, 그게 아니고... 너 왜 그렇게 흥분해. 벨라 귀엽잖아. 얘 깨끗해. 내가 목욕시켜줬어. 이거 봐, 네가 자기 구해준 거 알고 이렇게 꼬리치잖아. 생명의 은인이라고 좋아하는데 너무 그렇게 화내지 마. ”

 

꼴도 보기 싫어! 난 개든 고양이든 짐승은 싫단 말이야!

 

 

왕재수가 바들바들 떨었다. 얼굴이 새빨개졌다. 흥분해서 소리를 지른 탓에 심하게 기침을 했다.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베르닌은 왕재수에게 물을 떠다 주었고 살살 달랬다.

 

 

“ 계속 여기 있을 거 아니란 말이야. 주인 찾으면 돌려보낼 거야. 그렇게 싫으면 문 닫고 있어. 회사 갔다 와서 내가 데리고 있을게. ”

 

“ 안 돼, 저놈 내보내든지 너 회사 가지 마... 저놈이랑 둘이 못 있어... ”

 

“ 그렇게 싫으면 너네 집으로 가면 되잖아. ”

 

“ 우리 집 춥다니까! 그리고... 그리고... 나 우리 집 못가... ”

 

왜? 가스 밸브 열면 금방 따뜻해질 거야. 나랑 같이 가자. 난방 틀어줄게. ”

 

“ 아까... 아침에 갔는데... 부엌에서 바퀴벌레 나왔어. 나 분명히 우리 집에선 음식도 안 해 먹고 깨끗하게 사는데, 맨날 소독약 뿌리는데 대체 그 벌레는 어디서 나온 거야... 시골... 집에 올라가기 싫어... 아... 집에는 바퀴벌레... 여긴 멍멍이... 아... 시골... ”

 

 

왕재수가 깊이 탄식하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흐느껴 울었다. 베르닌은 한 대 패줄까 하다가 왕재수가 아직 아프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참았다. 당직실에서 곱등이와 쥐를 보고 기절했던 것도 생각났다.

 

 

“ 야, 울지 마. 네가 깨끗하게 해놓고 살아도 밖에서 유입되는 벌레는 어쩔 수 없는 거야. 내가 저녁에 와서 벌레 있나 없나 봐 줄 테니까 그동안 여기 있어. 벨라 무서우면 얘는 거실에 묶어놓을게. ”

 

“ 누가 멍멍이 따위 무섭대. 그냥 싫은 거지... ”

 

“ 그래도 네가 구해줬잖아. 그 위험한 상황에서도 강아지 구해서 주머니에 넣어주고 지퍼까지 채워줘 놓고 왜 이제 와서 그러니... ”

 

“ 내가 구하고 싶어서 구했냐. 네가 빠져서 간신히 꺼내놨는데 갑자기 저 똥개가 얼음 위에 가만히 있다가 미친놈처럼 나한테 막 달려오잖아. 아까처럼 막 품으로 파고들어서 얼굴 핥아대니까 너무 싫어서 주머니에 쑤셔 넣은 거란 말이야... 저 녀석 나오지 말라고 지퍼 채우다가 미끄러져서 빠진 거야. 우씨, 생각해 보니까 다 저 녀석 때문이야. 그 물 얼마나 차가웠는데... 나 정말 죽는 줄 알았단 말이야. 패딩도 쟤 때문에 더 무거워져서 막 가라앉고... 아우, 어디서 저런 게 나타나서... ”

 

“ 근데 벨라는 너 좋은가봐. 내가 안고 있는데도 자꾸 너한테 가려고 이렇게 몸부림치고 난리잖아. 얘 잘 봐봐, 얼굴도 되게 귀엽고 재롱도 잘 떨어. 맘 풀고 좀 친해져봐. 무서운 거 아니라며. ”

 

안 무서워. 그냥 찝찝해!

 

“ 야! 넌 그 험상궂은 바이올린 아저씨랑은 물고 빨고 별 짓 다하면서 훨씬 작고 귀엽고 목욕까지 시켜서 깨끗한 강아지가 와서 재롱떠는 건 뭐가 찝찝하다는 거야! ”

 

“ 여기서 왜 로만이 나오는데! 멍멍이랑 내가 응응을 할 건 아니잖앗!!!! 그리고... 그리고 로만이 뭐가 험상궂어. 얼마나 멋있는데! ”

 

 

베르닌은 마침내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사무실로 빨리 돌아가야 하는데 왕재수가 칭얼대니 미칠 것 같았다. 그는 벨라를 안고 거실로 가서 소파 팔걸이에 목줄을 맸다. 벨라의 곁에 신문지와 물그릇, 밥그릇을 놓아 주었다.

 

 

“ 착하지, 벨라야. 몇 시간만 집 보고 있어. 내가 빨리 돌아와서 풀어줄게. 저 나쁜 오빠가 욕해도 신경 쓰지 말고 있어. 알았지? 아 착하다, 아 이뿌다, 우리 강아지... ”

 

그거 수놈이라고 했잖아! 오빠 아니라고!

 

 

방 안에서 왕재수가 버럭 소리쳤다. 베르닌도 맞받아 소리를 질렀다.

 

 

시끄러워! 넌 어떻게 스물다섯 살이나 먹어가지고 그렇게 자기만 알고 유치원생처럼 구냐! 너 때문에 벨라 묶어놨으니까 미안한 맘을 좀 가져보란 말야! 나 올 때까지 그 방에 꼼짝 말고 있든지 너네 집으로 올라가든지 둘 중 하나야! ”

 

“ 난 아픈데... 얼음물에도 빠졌는데... 폐렴도 걸리고... 너 진짜 나빠... 똥개 때문에 날 구박해... ”

 

 

왕재수가 방 안에서 칭얼대고 하소연하는 것을 뒤로 하고(그리고 벨라의 낑낑거림을 역시 뒤로 하고) 베르닌은 아파트를 나와 사무실로 돌아갔다. 머리가 더욱 지끈거렸다.

 

 

*     *     *

 

 

강아지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던 베르닌은 초과근무 1시간도 무시한 채 정시에 퇴근했다. 돌아오다 식료품 가게에 들러 생선을 한 마리 샀다. 벨라를 위해 짜투리 고기도 얻었다. 그러다 보니 또 마음이 약해져서 옆에 있는 빵집에서 사과파이도 한 조각 포장했다.

 

“ 야, 나 왔어. ”

 

이상하게 집이 조용했다. 툴툴대더니 자기 집으로 돌아갔나 싶었다. 그런데 평소 같으면 왕왕거리며 반갑게 뛰쳐나왔을 벨라조차 기척이 없었다. 베르닌은 살짝 걱정이 되었다. 거실을 보니 목줄만 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 어... 저 자식이 설마 우리 벨라를 내다 버린 거 아냐! ’

 

 

왕재수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거라는 불안감에 사로잡힌 베르닌은 부엌과 욕실에 가보았다. 텅 비어 있었다. 혹시나 해서 침실로 가보았다. 왕재수가 담요로 몸을 둘둘 말고 등을 돌린 채 자고 있었다. 그런데 벨라도 거기 있었다. 왕재수의 어깨에 착 달라붙어서 쿨쿨 자고 있는 게 아닌가!

 

“ 싫다고 틱틱댈 땐 언제고... 그래도 나 없을 땐 강아지한테 잘 해주네... ”

 

 

베르닌은 어쩐지 감동을 받았다. 둘을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부엌으로 나왔다. 짜투리 고기를 삶고 왕재수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생선을 쪘다. 기름을 두르지 않고 유산지로 감싸서 담백하게 조리하는 방법이었다.

 

‘ 앓느라 살도 더 빠졌으니 기름기 좀 먹어야 할 텐데... 조금만 기름지면 질색팔색을 하니... 우리 벨라는 내가 주는 대로 다 먹는데... ’

 

막 생선이 다 쪄졌을 무렵 방 안에서 왕재수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으악! 너 왜 여기 있어! 아악! 저리 가! 악!

 

멍! 멍멍! 끼이잉 끼이잉.... ”

 

베르닌은 렌지의 불을 끈 후 침실로 갔다. 왕재수가 벽에 등을 딱 붙인 채 베개를 마구 휘저으며 벨라를 쫓아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벨라는 왕재수가 자기와 놀아주는 줄 알았는지 더욱 흥분하며 팔짝팔짝 뛰었다. 지친 왕재수가 기침을 하면서 베개를 내려놓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훌쩍 뛰어 그의 품으로 쏙 파고들었다. 어김없이 입술과 뺨에 뽀뽀를 퍼부었다. 왕재수가 몸서리를 치며 벨라를 팔꿈치로 밀었다. 차마 손으로 집어 들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베르닌은 얼른 벨라를 안아들었다.

 

 

“ 아아, 정말 왜 똥개까지 이렇게 달라붙는 거야... 줄은 어떻게 풀었어... ”

 

네가 풀어준 거 아니야? 난 네가 일부러 침대에 같이 재워준 줄 알았어. ”

 

“ 내가 왜... 난 이 방에서 한 발짝도 안 나갔단 말이야... 계속 잠만 잤는데... 저게 침대에 올라와서, 내 옆에... 으윽... ”

 

“ 어... 벨라가 진짜 네가 좋은가봐. 나한테는 그렇게 안 왔는데. 내가 불러야 오고... 침대에는 내가 안고 올라가지 않으면 혼자서는 절대 안 올라왔었는데. ”

 

“ 똥개 새끼가 날 왜 좋아하는 거야... 난 멍멍이가 아니란 말이야... ”

 

“ 그러게. 왜 너한테 그렇게 엉기지. 막 구박하는데... 리자한테 물어볼까. ”

 

 

베르닌은 리자에게 전화를 했다. 벨라가 왜 자꾸 왕재수한테 엉기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 그러니까, 걔는 벨라를 엄청 싫어하거든요. 막 구박하고... 근데도 벨라는 자꾸 엉겨들어요. ”

 

“ 어머, 다냐. 그거 몰라요? 개들도 사람 얼굴 따지는 애들 있어요. 예쁘고 젊으면 더 좋아해요. 그때 벨라 보니까 노약자는 막 무시하고 성질도 사납던데요. 당신보다 나한테 더 잘 엉겼잖아요. 수놈이라 여자한테 더 잘 엉길 거예요. 꽃돌이 감독님은 여자는 아니어도 예쁘니까 당신한테보다 더 많이 달라붙을걸요. 그리고 좋은 냄새 나면 더 엉겨요. ”

 

“ 개한테 좋은 냄새면 고기 냄새, 뼈다귀 냄새 아니에요? ”

 

“ 그런 냄새도 좋아하지만 달콤한 냄새도 좋아해요. 혹시 그 사람 향수 그런 계열 쓰는지 물어봐요. 향수 안 쓰면 좀 덜할 거예요. ”

 

 

베르닌은 끄덕끄덕한 후 전화를 끊었다. 자기 코로 확인하기 위해 왕재수의 곁으로 다가가 냄새를 맡아보았다. 왕재수가 화들짝 놀랐다.

 

너 뭐해! 왜 킁킁거려! 개한테 옮은 거야? ”

 

“ 어, 리자 말이 맞네... 달콤한 냄새 나. 너 향수 쓰지 마. 그럼 벨라가 안 올지도 몰라. ”

 

“ 그게 무슨 소리야? ”

 

 

리자의 말을 그대로 전달해 주자 왕재수의 얼굴이 죽상으로 변했다.

 

“ 나 지금 향수 안 뿌렸어... 집에 와서 샤워하고 계속 잤단 말이야. 그거 내 체취야. 알잖아, 나 원래 체취 좋은 거... 내 향기에 남자들이 전부 혹하는데... 어째서 인간도 아닌 멍멍이까지 달라붙는 거야... 망했다. ”

 

“ 맛있는 냄새라고 생각해서 계속 뽀뽀하고 핥나보다... ”

 

“ 그럼 어떻게 해야 돼... 얼굴 예쁘고 좋은 향기 나는 게 죄야? 망할 놈의 똥개 새끼가 예쁜 건 또 알아가지고... ”

 

 

왕재수는 툴툴거렸지만 슬쩍 보니 아까만큼 노발대발한 것 같지는 않았다. 역시 예쁘다는 말에 약간 마음이 풀린 것 같았다. 그래서 베르닌은 그 틈을 타 벨라를 데리고 나가서 삶은 고기와 사료, 물을 먹였다. 그리고는 저녁을 차렸다.

 

“ 야, 밥 먹어. ”

 

“ 안 먹어. 입맛 없어. ”

 

“ 의사 선생님이 약 줬어, 안 줬어? ”

 

“ 줬어. ”

 

“ 식후 30분에 먹으라고 했지? ”

 

“ 어... ”

 

안 먹으면 의사 선생님한테 이른다.

 

“ 에이. ”

 

 

왕재수는 터덜터덜 식탁 앞으로 왔다. 포크로 생선 귀퉁이를 조금 잘라내 깨작거리며 씹었다.

 

 

퍽퍽 좀 먹어라. 약 먹어야 되잖아! 집에 와서 계속 잠만 잤다며. 너 지금 살 엄청 빠졌어. 그때도 말라서 바람에 밀려서 물에 빠진 거잖아. 너 먹으라고 생선도 샀단 말이야. 요즘 생선 비싼데... ”

 

“ 고무 씹는 것 같아. 맛도 하나도 모르겠다고. ”

 

“ 아직 안 나아서 그런 거야. 그래도 다 먹어. 그래야 나으니까. ”

 

“ 이 생선 비싸? ”

 

“ 그래. 창꼬치고기, 비싼 거란 말이야. ”

 

“ 너는 서무라서 월급도 적은데 왜 비싼 걸 사오니. ”

 

야! 너 지금 나 무시해? 너 물고기 한 마리 사 먹일 돈은 있다고!

 

“ 알았어. ”

 

 

왕재수는 갑자기 나이프로 생선을 토막 내더니 포크로 푹푹 쑤셔서 막 먹었다. 표정을 보니 맛도 모르고 무작정 먹는 것 같았다. 반쯤 먹다가 생선이 목에 걸려 기침까지 했다.

 

 

“ 천천히 먹어. 물 좀 마시고. ”

 

“ 응. ”

 

 

남은 생선에 다시 포크질을 하는 왕재수의 괴로운 표정을 보고 베르닌은 혀를 차며 접시를 끌어당겼다.

 

“ 됐다. 그만 먹어라. ”

 

“ 다 먹을 거야, 비싼 거랬어. ”

 

“ 레닌그라드에선 맨날 레스토랑 가고 외제만 먹었다며 이게 비싸봤자. ”

 

“ 그래도 네가 사온 거잖아. 비싼데. ”

 

“ 남은 걸로 내일 수프 끓이면 되니까 억지로 먹지 마. 차나 마셔. 사과파이 줄게. ”

 

 

왕재수는 차만 마시고 사과파이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베르닌은 정말 걱정이 됐다. 그 좋아하는 사과파이를 안 먹다니!

 

 

“ 너 많이 아파? ”

 

“ 아니. 아프진 않은데 입맛이 없어. 똥개가 자꾸 엉기니까 소름 돋아서 더 입맛이 뚝 떨어졌어. ”

 

“ 자꾸 똥개 똥개 하지 마. 잃어버린 주인은 얼마나 속이 타겠어. 그리고 쟤 똥개 아냐. 저렇게 눈처럼 하얗고 예쁘고 귀여운데 왜 똥개야... 저거 종류는 모르겠지만 분명 순종이야. 비싼 개라고. ”

 

“ 순종은 무슨 순종! 귀가 축 처졌잖아. 말귀도 하나도 못 알아먹어. 하지 말라 해도 더 하고! 딱 봐도 잡종 발바리인데... 아까도 보니까 신문지 있는데도 카펫 위에 똥오줌 갈기고... ”

 

“ 넌 개에 대해 하나도 모르잖아! ”

 

“ 너보단 많이 알아. 볼쇼이 있을 때 같이 추던 마리야 누나가 개 키워서 맨날맨날 개 얘기밖에 안 했단 말이야. 저거 똥개야. 완전 잡종. ”

 

“ 아니야! 벨라는 순종이야!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귀여운 귀족견이라고! ”

 

“ 완전 콩깍지가 꼈네. 몰라, 나한테 안 오게만 해줘. 나 잘래. ”

 

“ 약 먹고 자야지! ”

 

“ 시어머니... ”

 

 

왕재수는 알약과 시럽을 먹은 후 침대로 도로 가더니 순식간에 잠들었다. 베르닌은 이게 자기 집인데 왕재수에게 침대를 뺏겼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조금 우울했지만 그래도 환자니까 참기로 했다. 소파에 주섬주섬 자리를 펴고 있는데 벨라가 또 침실로 들어갔다. 침대 위로 팔짝 뛰어올라 왕재수 곁에 자리 잡으려는 것을 간신히 베르닌이 데리고 나왔다.

 

 

“ 어휴, 벨라야. 쟨 너 안 좋아하는데 왜 그렇게 엉기는 거야. 너도 강아지 체면이 있지. 이리 와, 아픈 애 귀찮게 하지 말고. 나랑 소파에서 자자. 너 어제까진 나랑 잘 잤잖아. 이렇게 배신하는 거 아니다, 너. 아무리 개라지만 의리를 지켜야지... ”

 

 

벨라는 꼬리를 치며 베르닌의 뺨을 핥았다. 배를 내놓으며 발라당 뒤집어져 애교를 부렸다. 베르닌은 그 귀여움에 슬슬 녹아버릴 것 같았다.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잠깐 들었다. 그는 벨라를 꼭 껴안고 좁은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     *     *

 

 

 

새벽에 베르닌은 낑낑대는 소리에 깼다. 벨라가 낑낑대면서 그의 옷자락을 물어 당기고 있었다.

 

“ 벨라야, 왜 그러니? 배고파? ”

 

왕! 왕! 왕왕왕왕!

 

“ 야, 한밤중에 그렇게 짖으면 이웃집 사람들 깨잖아. 쉿... ”

 

왕왕! 왕! 왕!

 

벨라가 발을 구르더니 베르닌의 옷자락을 물고 늘어졌다. 앞발로 바닥을 탁탁 치면서 침실 쪽으로 고갯짓을 했다. 그러더니 투다다다 침실로 뛰어갔다.

 

 

헉, 벨라야! 거기 가면 안 돼! 걘 너 싫어한다니까... 깨기라도 하면 또 계속 짜증낼 거라고! ”

 

 

베르닌은 급하게 벨라의 뒤를 쫓아갔다. 침실에 들어가다가 뭔가가 발에 걸려 넘어질 뻔 했다. 불을 켜보니 왕재수가 카펫에 엎드린 채 숨을 몰아쉬면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벨라가 옆에서 팔짝팔짝 뛰면서 근심스럽게 왕재수를 봤다가 베르닌을 봤다가 낑낑대기를 반복했다.

 

 

“ 어... 야, 너 왜 그래. 많이 아파? ”

 

“ 나 토하고 싶어... 숨 막혀... 으으... ”

 

 

베르닌은 왕재수를 데리고 화장실로 갔다. 등을 두들겨서 토하게 해준 후 따뜻한 물을 먹였다. 열이 많이 나서 해열제도 먹였다.

 

 

“ 아까 생선을 너무 억지로 먹었나보다... 미안해, 속에서 안 받는데 내가 먹으라 했던 건가봐. ”

 

“ 흑... 생선 비싼 건데 토했어... 엉엉... ”

 

“ 괜찮아. 나중에 또 먹으면 되지. 약 먹었으니까 괜찮아질 거야. 벨라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 했다. ”

 

“ 똥개가 왜... ”

 

“ 벨라가 너 아픈 거 알고 나 깨웠어. 안 그랬으면 나 그냥 잤을 거야. ”

 

“ 칫, 또 내 옆에 와서 자려고 했구나... 똥개... ”

 

 

왕재수는 조그맣게 투덜대더니 침대로 올라가 누웠다. 베르닌은 왕재수가 또 토하거나 아플까봐 좀 걱정이 됐기 때문에 옆에 남아 있었다. 왕재수는 벨라가 기어 올라와 머리맡에 몸을 말고 자리를 잡았는데도 아무 말도 안 했다. 열이 나서 눈치를 못 챈 것 같기도 했다. 베르닌은 따뜻한 물수건으로 왕재수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주다가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 근데 너는 왜 잡혀갔던 거야? 반동분자라고 재판받았잖아. 서류 보니까 테러나 외국 스파이 노릇 같은 건 안 한 거 같던데. 왜 너보고 반동분자에 체제 전복을 기도했다는 거야? 파리에서 나쁜 짓 했어? ”

 

“ 나 반동분자 아니야. 친구들이랑 놀러 나간 건데 막 잡아갔어. ”

 

“ 친구들이 테러리스트... ”

 

“ 아니야! 그냥 나처럼 춤추는 애들이었어. 노래하는 애들이랑. 나는 천재라서 해외 투어를 많이 다녀서 외국에 친구들이 많았단 말이야. 그래서 파리에서도 친구들 만나서 밤에 놀았던 건데 막 체포하고 고문... 다 미워. 시골에나 보내고... ”

 

“ 무단이탈하니까 그렇지. 망명할까봐 그랬나보다. ”

 

“ 나 망명 못해. 망명하면 모스크바에 있는 우리 아저씨가 끝까지 쫓아와서 손봐준다고 그랬단 말이야. 그 아저씨가 나 못 도망가게 하는 거 윗사람들 다 알아. 나 외국에서 놀러나갔던 거 한두 번도 아닌데 이번에 괜히 잡아다가 못살게 굴고... 시골 보내고. 진짜 싫어. ”

 

“ 야, 잠깐... 너 그 모스크바 아저씨랑 좋아하는 사이 아니었어? 손봐준다는 건 뭐야?

 

“ 아유, 그 아저씨 얼마나 무서운데.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사람들 모가지 뎅강뎅강 떨어져. 옛날에 엄청 많이 죽였댔어. 말 안 들으면 나한테도 얼마나 무섭게 구는데. 나 갈비뼈도 몇 번 나갔었어. 저번에 혼났을 땐 팔도 막 부러졌어. 엄청 아팠어. ”

 

그럼 진짜 나쁜 놈이잖아! 바이올린 깡패는 아무 것도 아니었네! 그런 악당을 우리 아저씨라고 좋다고 하냐! 일찌감치 정리해, 그런 놈은! ”

 

“ 그게 내 맘대로 되냐. 바보. 근데 그래도 그 아저씨 밤일을 진짜 잘해... ”

 

“ 아아, 너는 정말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놈이니... 왜 이렇게 사는 거야... 너 천재잖아. 예쁘고 인기도 많잖아. 왜 그런 놈들하고 얽혀서... ”

 

그래! 똥개도 있고 바퀴벌레도 있고... 시골... ”

 

 

왕재수는 투덜대다가 갑자기 잠잠해졌다. 약 기운에 잠든 것 같았다. 베르닌은 한숨을 쉬고 소파로 돌아갔다. 벨라가 자기를 버리고 왕재수 곁에서 자는 게 섭섭했지만 체념했다. 강아지마저도 얼굴을 따지다니 참 불공평한 세상이었다.

  

 

 

 

 

 

FIN

- 2015. 2.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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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11편으로 이어진다. 그건 주말이나 다음주 초에.

 

'벨라'란 이름은 트와일라잇의 그 오글거리는 여주인공 이름이 아니고! 사실 왕재수 말이 맞다. 미하일 레르몬토프의 유명한 소설 '우리 시대의 영웅' 1부 여주인공 이름이 '벨라'이다. 엄밀히 얘기하자면 이 여주인공 이름과 강아지 이름 벨라는 'e'모음 철자가 좀 틀린데.. 발음상 비슷하니 넘어가자. 베르닌이 강아지에게 벨라란 이름을 붙여준 이유는 물론 그런 문학적인 이유가 아니고, 러시아어로 '하얗다'는 뜻의 형용사가 '벨르이'이고 여성형은 '벨라야'인데 여기서 따온 것이다.

왕재수가 강아지 이름 가지고 특히 울컥하는 이유는... 사실 본편 우주의 미샤가 레르몬토프를 좋아하는데다 키로프 시절 저 '우리 시대의 영웅'을 가지고 안무도 하고 벨라라는 여주인공을 등장시키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서무 시리즈니 넘어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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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편은 강아지가 투다닥거리는 우스운 에피소드로 쓰기 시작했지만 막판엔 좀 우울하게 끝났는데.. 이게 서무 시리즈이긴 하지만 어쨌든 왕재수가 시골 동네로 유배 좌천된 배경은 본편 우주와 통하는 데가 있어서... 쓰다 보니 그렇게 됐다. 단추를 안 괴롭히면 얘를 괴롭히게 되어 있음 ㅠ

본편에서의 미샤는 훨씬 심각한 상황도 겪고, 체포되었을 때도 왕재수의 얘기보다 좀더 복잡하긴 하다. 원래 반체제적인 인물이기도 하고.. 안무하고 춤췄던 작품들도 당국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들이 많았고, 그리고 저 크레믈린 쪽 아저씨로 지칭되는 인물 게르만 스비제르스키와도 훨씬 복잡하게 얽혀 있다. (writing 폴더에 올렸던 jewels에서도 이 사람 얘기가 에벨리나와의 대화 속에서 언급된다. 그 소설에서도 미샤는 이 사람 파티 갔다가 일 저지름 -_-) 이 인간이 두들겨패고 괴롭히고 운운하는 것도 본편 쪽은 좀더 복잡하고 우울한 편이지만.. 뭐 이건 서무 시리즈니 넘어가자~ 그래도 왕재수는 누구에게나 귀염둥이 우리 아기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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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벨라 얘기나 외모는 사실 옛날에 내가 키웠던 사랑스런 강아지 토리에서 좀 따왔다. 토리는 화이트 포메라니언으로 여기 나오는 벨라보다야 훨씬 똑똑했지만 ㅎㅎ 벨라는 포메라니언은 아니지만 그래도 비슷하게 생겼다고 가정했다.

 

화이트 포메라니언은 요렇게 생겼다. 이 사진 출처는 구글링. 내가 키웠던 토리랑도 비슷..

 

 

 

그리고 내가 키웠던 사랑스런 토리 사진 몇 장 :) 토리는 아기 때 데려와 몇년동안 나랑 살다가 나중에 사정이 여의치 않아 부모님 친구댁으로 입양갔고 이후 그 집과 함께 뉴질랜드로 이민가서 널따란 풀밭에서 뛰놀며 고기반찬 먹고 결혼해 애기 낳고 나보다 팔자좋게 살게 되었다. 어흑... 보고 싶다 토리야... 사랑해..

 

 

 

우리 토리 아기 때. 이 사진 보고 입양하러 갔었다. 2개월...

 

 

 

토리 아기 때~

벨라는 6개월 정도이므로 물론 이것보다는 더 크다 :0 그리고 벨라는 순종 포메라니언도 물론 아니니..

 

 

배냇털 아직 빠지기 전이라 솜털이 보송보송.. 우리 토리는 정말정말 귀여웠다.

 

왕왕거리고 멍멍, 낑낑, 왈왈거리는 등 벨라가 짖는 소리들은 거의 모두 내가 키웠던 토리에게서 따왔음 :) 그리고 우리 토리도 사람 엄청 차별했다 ㅎㅎ

 

저렇게 조그만 강아지였던 우리 토리는 성견이 되어 이렇게 되었다...

 

 

사진 속에선 털을 깎아줘서 원래 포메처럼 복슬복슬하진 않다.

 

 

이것도 털 깎아줬을 때. 포메의 특징은 이렇게 방실방실 활짝 웃는 표정을 잘 짓는다는 것이다. 강아지가 갑자기 저런 표정을 지으면 나는... 완전히 무장해제되고 만다 ㅎㅎㅎ

 

토리야 보고 싶다..

그래서 이번 10편은 우리 토리에게 바친다 :)

 

그럼 11편을 기대하세요~ 댓글도 달아주시고요 :) 우리 토리의 미모 찬양이라든지 ㅎㅎㅎ

(토끼 작가 역시 단추와 마찬가지로 강생이라면 사족을 못씀...)

 

 

.. 사족 : 하지만 왕재수는 벨라보다 자기가 더 예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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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