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햇살이 뜨겁고 더운 날이었다. 우리는 탁 트인 광장 구석에 앉아 더위와 햇살에 지쳐 나가떨어졌고 이때 나는 근방의 카페를 열심히 검색해서 이곳을 찾아냈다. 맥도날드 방향 어딘가를 지나서 구글맵을 따라 찾아가니 카페가 나왔다. 우리는 커피와 차, 머랭케익을 먹었다. 아늑하고 예쁜 곳이었다. 한번쯤 다시 가고 싶은 곳이다. 내가 다시 바르샤바 구시가지에 가게 될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하여튼 예쁘고 아늑한 카페니까 이쪽 놀러가시는 분들은 한번쯤 들러보세요.
술을 잘 마시지도 못하고 또 즐기지도 않는 편이라 좀처럼 음주를 하지 않는다. 드물게 와인이나 샴페인 약간 정도(보통 새해 전야나 무슨 행사 리셉션이 있을 때만) 회식에 가서도 가급적이면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꼭 마셔야 하는 자리에서도 맥주처럼 차가운 술은 웬만하면 피한다. 유일하게 뭔가 마시고 싶을 때는 여행을 가서 마음에 드는 숙소에 괜찮은 바가 딸려 있을 때이다. 아니면 야외 테이블에 앉아 와인이나 식전주가 아울리는 식사를 할 때(주로 이탈리아 식당이었던 것 같다) 이것도 술 자체라기보다는 <여행>의 일환이다. 일상과 다른 무엇, 그리 대단하지도 않고 또 대담하지도 않지만, 적당히 여유롭고 적당히 즐거운, 일상에서 벗어난 순간이지만 다른 여행들과는 어떤 교집합이 되는 순간. 바에서는 보통 김릿을 마시는데, 김릿이 없는 곳에서는 이름이 낭만적이거나 뭔가 배합이 마음에 드는 칵테일을 고른다. 그래봤자 한 잔 정도. 그리고 안주를 열심히 먹으므로(주로 올리브나 견과, 감자칩 같은 게 나온다) 뭔가 주객전도임. (전형적인 술 못 마시는 자의 특징)
사진은 작년 9월, 바르샤바의 래플스 호텔에 딸린 Long Bar. 이 호텔은 싱가포르 체인이고 이 롱 바도 본점이 유명하다. 싱가포르 슬링을 선보인 곳도 그곳이라고 한다. 이 호텔은 가격대가 상당해서(그래도 바르샤바라 상대적으로 저렴했음) 여행 기간 중 마지막 사흘만 머물렀다. 이른 저녁, 바가 막 문을 열었을 때 내려가서 칵테일을 한 잔 마셨다. 여기는 6시에 열어서 좀 늦었지만 사실 나는 오후의 바를 좋아한다. 조용하고 한적하고 어딘가 서늘하다. 여기서는 싱가포르 슬링의 변주인 바르샤바 슬링이 있어 그것을 마셔보았다. 맛은 그럭저럭. 딱 내가 좋아하는 맛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함께 나온 견과 안주가 맛있어서(트러플 오일이 뿌려져 있었다) 홀짝홀짝 마시다가 좀 추워져서 약간 남기고 방으로 돌아왔다.
음주와는 반대로 차는 무척 좋아하므로 언제 어디서든 차를 마신다. 여행을 가서도 카페들에 들르는 것을 좋아한다. 이따금 방에서 쉬면서 티백으로 차를 우려마시며 근처 빵집이나 카페에서 사온 티푸드를 곁들이는 것도 행복하다.
이건 역시 저 바에 갔던 날 오후. 숙소를 옮겨온 날이었고 차를 미처 마시지 못해서 극심한 홍차 결핍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땡볕에 구시가지를 쏘다니다 온 터라 달콤한 것도 무척 먹고팠는데, 막상 방에 들어와 가방을 풀고 나니 차 마시러 나가기에는 시간이 애매했다. 이른 저녁에 바에 갈 생각이었으니까. 그래서 웰컴 디저트로 놓여 있던 저 초콜릿 샌드 비스킷을 곁들여 오전까지 묵었던 호텔에서 가져온 티백을 우려 차를 마셨다. 저 차는 다즐링 계열이었고 맛있었다. 비스킷도 맛있었지만 너무 양이 적어서 아쉬웠다. 창 너머로는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고 방은 아늑했다.
이런 걸 보면 너는 굳이 여행을 안 가도 어디서든 비슷하게 놀 수 있는 거 아니냐는 말이 절로 나올지도 모르겠다만. 그래도 역시 여행이라서 특별한 뭔가가 있다 :)
그건 그렇고 건강검진 때문에 오늘 흰죽밖에 못 먹고 쫄쫄 굶고 있는 와중이라 저 홍차랑 초콜릿 비스킷, 그리고 위 사진의 트러플 견과랑 감자칩이 너무 먹고프다(그 와중에 칵테일은 별로 마시고 싶지 않음 ㅎㅎ 역시 알콜은 철저히 여행의 영역인가보다)
바르샤바 구시가지를 따라 걷다 보면 조그만 기념품 시장이 나온다. 그런데 이것이 딱히 폴란드 쪽 기념품으로 특화된 건 아니어서 헌책, 터키나 중동 쪽 간식거리와 세공품, 숄, 인형 따위를 판다. 마트료슈카도 있고 헌책에는 러시아어로 된 책도 많았다. 바르샤바 도심에서 왜 자기네들의 기념품이나 특산품만 파는 게 아니라 할바와 중동 세공품을 그것도 입구에서 제일 잘 보이는 자리에서 파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하여튼 할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반가웠다. 우리 나라에선 할바 구하기가 쉽지 않고 또 할바도 여기저기 맛은 천차만별이라. 여기서는 시식을 해보니 입맛에 맞아서 피스타치오와 향신료가 든 할바 한 통을 샀는데 양이 너무 많아서 아직도 냉동실에 잔뜩 남아 있다. 위 사진 가운데 약간 상단에 쌓여 있는 둥근 통이 바로 할바가 든 통들.
입구는 이렇다. 바르샤바에 놀러가신 분들이라면 거의 대부분은 이 길을 지나치게 됨. 노비 쉬비아트에서 <왕의 길>을 따라 왕궁 광장으로 가시는 길이라면 대로 오른편에 있는 이 조그만 시장에 들러보세요. 대신 너무 기대하지는 말고... (아마 나는 할바를 건졌기 때문에 좋은 기억으로 남은 듯)
여행 숙소를 예약할 때 조식이 포함되는 경우는 반반이다. 대충 봐서 동네가 어디인지, 숙소가 조식까지 먹을만한(맛있어보이는) 곳인지, 요금 사정이 어떤지 등등을 놓고 결정하는데 거의 50 대 50인 것 같다. 조식 불포함일 때는 늦게까지 게으름피우다 나와서 근처에서 아점을 먹기도 하고, 빵 같은 걸 사와서 방에서 간단히 먹고 나간다. 그런데 호텔 방에서 이렇게 간단하게 빵이랑 차로 아침을 먹는 기분이 또 상당히 좋다. 맛있어서라기보다는 '아아 회사 안 간다', '아아 남이 치워주는 방에서 뒹굴뒹굴', '아아 여행 왔다' 3박자가 딱 맞춰져서 그럴 것이다. 빛이 들어오는 방이면 더 좋다.
사진은 지난 가을 바르샤바 여행 때 첫 숙소였던 소피텔에서. 여기는 조식 포함이 아니었다. 이 날은 이 숙소에서 체크아웃해 두번째 숙소로 옮기는 날이었다. 전날 저녁 들어오면서 바르샤바 대학교 앞에 있는 빵집(체인점인데 이 빵집 앞에는 항상 줄이 아주 길게 늘어서 있었다)에서 사왔던 버섯파이와 포피씨드 빵, 그리고 방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아니면 내가 챙겨왔던) 티백 우린 홍차.
그런데 저 빵은 그렇게 줄 서서 사먹는 집 치고는 그다지 내 입맛에 맞지 않아 아쉬웠다. 버섯파이는 너무 짰고 포피씨드 빵은 버터나 치즈를 발라 먹어야 하는 빵이었다. 그래도 여행의 아침밥 3박자가 맞춰져서 나름대로 즐겁게 먹었다.
그 빵이 들어 있는 봉지. 그리고 근처 비에드론까(폴란드 슈퍼마켓 체인인데 무당벌레라는 뜻이다. 저렴한 물건들 위주)에서 득템한 김치 사발면(이것은 프라하에서도 종종 사먹었다), 사과주스랑 생수 한병.
저 김치사발면은 당일 저녁으로 해치웠고(의외로 이것도 맛있게 먹었다 ㅎㅎ), 사과주스는 숙소 맞은편의 사스키 공원에 산책가서 책 읽으며 감자칩이랑 같이 먹었다.
나는 게으른 여행자인데다 배터리가 금방 닳는 편이고 여행을 가면 숙소에서 뻗어 쉬는 것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타입이라 한겨울에 낮이 짧은 곳으로 가는 경우가 아니면 야경 사진이 거의 없다. 페테르부르크에서도 여름의 백야가 너무 좋지만 정작 새벽 시간대에는 암막커튼을 치고 자버리기 일쑤인데. 딱히 아침형 인간이라서라기보다는 게을러서 그런 것 같다. 늦게 기어나가고 반나절 쏘다니고 늦지 않게 방으로 돌아와 쉰다(한번 들어와서 씻고 나면 다시 나가기 싫음)
그래도 지난 바르샤바 여행 사진첩을 보니 깜깜할 때 찍은 사진이 몇 장 있어 올려본다. 이것은 숙소가 번화가 바로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이미 가을이라 해가 점점 짧아지고 있었으므로.
노비 쉬비아트 거리. 바르샤바 시내의 중심지, 여기는 매일 두어번 이상씩 왕복해 지나다녔다. 이때는 저녁 먹고 나가서 이 거리에 있는 별다방 리저브 지점에 갔다오던 길. (바르샤바의 카페들 중에서도 매우 마음에 들었던 곳. 기껏해야 별다방이 마음에 들다니 서글픈 거 아니냐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리저브 매장은 은근히 편안하다! 책 읽기도 좋고)
폰으로 찍어서 화질은 그닥 선명하지 않다만. 노비 쉬비아트 거리 야경. 그런데 내가 찍은 사진들은 이 거리 딱 중심부는 아니고, 숙소에서 좀더 가까운 쪽. 그러니까 입구 즈음.
지난 가을, 바르샤바 여행 첫날 찍었던 사진들 몇 장. 엄밀히 얘기하면 도착한 다음날이지만, 시차 때문에 도착한 날 밤엔 숙소 근처 노비 쉬비아트 거리 초입의 코페르니쿠스 동상 앞에서 아이스크림 먹으며 수다떨다 들어온 게 전부라서 제대로 여행을 한 건 그 다음날 아침부터였다. 영원한 휴가님과 함께 종일 돌아다녔던 하루였다. 사진은 아침에 막 나와서 숙소 근처부터 시작해 구시가지 왕의 길, 그리고 점심을 먹었던 자피에첵까지.
이 기마상은 분명 설명까지 읽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누구의 어떤 조각상이었는지 완전히 백지 ㅠㅠ 어쩐지 영원한 휴가님은 기억하실 거 같은데... 나는 참으로 게으른 여행자임. 바르샤바는 특히 거리 이름도 명소 이름도 제대로 모르고 또 기억하려는 의지도 없이 돌아다녔다. 어쨌든 첫 숙소인 소피텔 뒷길로 나가면 바로 나타나는 조각상이라 자주 봤다.
막상 쏘다닐 땐 별로 그런 생각을 안했는데 여행에서 돌아와 사진들을 보니 내 막눈으로는 바르샤바와 빌니우스는 어딘가 조금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다. (구시가지 한정) 물론 바르샤바는 전쟁 때 파괴되어 구시가지가 실지로는 거의 모두 재건된 쪽이기 때문에 빌니우스의 '실제' 고풍스러움과는 다르지만, 지금 사진들을 보니 어딘가 묘하게 닮았다. 바르샤바와 빌니우스가 거리적으로도 상당히 가깝기도 하고 두 나라가 역사적으로도 연결고리가 있어서 그런가. 하긴 유럽은 여기저기 다 비슷비슷한 느낌이긴 하다만 그래도 그 일반적인 닮은 느낌보다 조금 더 닮은 느낌이랄까.
여기는 폴란드가 자기네 전통음식이자 최고의 상징 중 하나라고 내세우는 <피에로기>를 파는 음식점. 자피에첵이라는 곳인데 체인이라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 피에로기는 독특한 점은 전혀 없고 그냥 수많은 만두와 그 친척들 중 하나로 느껴질 뿐이었다 ㅎㅎㅎ 맛은 좋았는데 이것저것 먹어볼 마음에 잼과 과일이 든 바레니키 스타일의 피에로기와 군만두 스타일의 피에로기를 한접시씩 시키고 엄청 짜디짠 양배추 수프(이것은 정말 폭망이라 사진도 올리기 싫어서 제외함)까지 시켜버려서 결국 엄청 많이 남겼다. 남은 건 싸왔는데 다 못먹음.
별로 안 많아 보이는데 왜 그러느냐고 하신다면... 흑흑, 많았습니다. 아래쪽에 보이는 소스는 양파와 돼지고기를 졸여서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소스로 빌니우스에서 먹었던 체펠리나이에 곁들여준 토핑이랑 맛이 비슷했다.
바르샤바 대학교 앞에 있는 서점. 이 길은 숙소에서 노비 쉬비아트 거리로 이어지기 때문에 매일같이 여러번 지나다녔다. 이 옆에는 빵집과 체인 카페인 그린 카페 네로가 있다. 사진은 여행 마지막날. 이날은 비가 왔다. 그전까지는 날씨가 매우 좋았으니 이 정도면 정말 날씨 운이 좋았던 거였다. 바르샤바 여행에선 기념품을 거의 사지 않았는데, 마지막날 이 서점에 들러 구경하다 엽서를 두 장 샀다. 여기에는 다른 곳과는 달리 좀 귀여운 엽서들이 있었다.
구시가지 광장(인어조각상이 있던 그 광장), 그리고 와지엔키 공원. 여러가지 버전이 그려진 엽서는 단연 문화과학궁전이었고 심지어 일러스트도 귀여웠지만 나는 그 소련 냄새나는 건물이 싫었기 때문에 굳이 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 두 장을 샀는데 우스운 것은 막상 저 인어조각상 광장은 내 마음에 안 들었고(제일 유명한 곳이긴 한데 이때 너무너무 더웠기 때문에 힘들기만 했음), 와지엔키 공원에는 가보지 못했다. 사스키 공원 엽서가 있었으면 그걸 샀겠지만 사실 사스키 공원은 이렇게 아기자기한 그림이 나오기엔 몽창 나무와 멋없이 커다란 분수 뿐이라 엽서 그릴 맛이 안 났는지 아예 없었다. 그래서 바르샤바에서 제일 좋았던 기억인 '공원에서 쉬기'를 떠올리기 위해 와지엔키 공원 엽서를 고름. 인어광장 엽서는, 그림이 이뻐서 ㅎㅎㅎ (원주가 있는 왕궁광장 엽서보다 이게 더 이뻤다)
광장 엽서는 거실의 이반 왕자와 회색 늑대 그림 액자 아래에 도자기 짐승들이랑 같이 있고, 와지엔키 공원 엽서는 냉장고 옆면에 붙여 두었다. 너무 추워져서 그런지 햇빛 쨍쨍 나던 광장마저 그립고 공원에 앉아 이야기나누고 또 책보던 것이 그립다. 그저 여행 자체가 그리운 것인지도.
여행의 좋은 점 중 하나는 누가 청소를 해주고 아침밥도 준다는 것이다. 물론 요금에 따라 아침밥을 안 주는 곳도 있는데 이럴 때는 늦잠을 자고 맘껏 게으름피우다 대충 때울 수 있다는 또다른 장점이 생긴다. 호텔이 아닌 숙소에 묵으면 청소를 안 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또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어 택한 곳일테니 그러려니 한다. 어쨌든 제일 좋은 건 아침밥도 주고 청소도 해주는 아늑한 호텔에 묵을 때이다. 각 호텔마다 나름대로의 <청소해 주세요>와 <방해하지 마세요> 태그가 있는데 그 태그가 예쁜 곳들은 마음에 많이 남는다. 보통은 앞면은 '청소해 주세요' 뒷면은 '방해하지 마세요'가 적힌 종이 태그를 많이 쓰지만 안 그런 곳들도 있고 그런 곳 태그들은 또 신기하게도 다른 데보다 예쁘다.
바르샤바의 이 호텔은 <청소해 주세요>는 이렇게 가죽 케이스에 카드를 넣어서 걸어두게 되어 있었고 <방해하지 마세요>는 방 안에서 버튼을 눌러 불이 들어오게 해놓는 구조였다. 버튼을 눌러놓으니 편하긴 한데 제대로 눌러놓은 건지 좀 헷갈려서 나같은 아날로그 인간은 '아 그래도 어차피 ‘청소해 주세요’도 카드 걸어놓는데 ‘방해하지 마세요’도 카드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저 빨간 가죽 케이스와 카드도 예뻤으므로. 저것을 우리집에도 가져와 걸어두고 싶었지만 일회성 종이 태그가 아니고 가죽 케이스라 당연히 그러지는 못하고 '예쁜데...' 하는 마음만 가득.
그런데 돌아와서 노동 폭풍에 시달리다보니 그저 '아아 청소해주는 우렁이 있으면 좋겠다'로 수렴됨. 흑흑 집에 가도 아무도 청소 안해줘. 아침밥 안줘 엉엉.
2차대전 이후 재건된 도시라서 그런지 바르샤바 구시가지는 그리 크지 않고 또 말끔하다. 어딘가 약간 어색한 느낌도 든다. 작은 골목도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다. 그래서인지 바르샤바는 골목 산책보다는 공원이 더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어쩌면 내가 갔던 9월 하순이 정말 여름처럼 덥고 날씨가 화창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늘이 없는 구시가지 광장이나 도로변은 볕이 너무 뜨거웠다. 그래도 지금은 날씨가 스산해서 그런지 저 햇볕 쨍쨍 들어오던 구시가지 거리 산책하던 때가 그립다.
바르샤바의 어느 외곽 동네. 우리는 대사관에 갔다가 버스를 반대 방향으로 탔다. 구글 맵을 보니 목적지로부터 점점 정거장이 늘어나고 있어 잘못 탔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참 후에야 내렸다. 거의 두배쯤 더 올라와버렸고 내린 동네는 황량했다. 버스가 이따금 휭휭 달렸고 주변 풍경은 오래전 러시아에서 지낼때 기숙사가 있던 동네랑 비슷했다. 혹은 블라디보스톡의 어느 주택가라든지. 날씨가 우중충하고 흐렸고 습한 바람이 불어서 더 그런 느낌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파란 차와 검은 차로 좀 가려져 있긴 하지만, 사진 속 저 가게들 앞에서 내렸는데 저것이 왼편은 과일가게, 오른편은 빵집이었다. 가게가 예뻐서 잠깐 구경을 했다. 빵집에는 맛있어보이는 일반 식사빵들이 있었고 과일도 싱싱해 보였다. 그런데 이때 우리는 공복이라 너무 배가 고팠던 상황이라 여기서 빵이나 과일로 요기를 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이미 전날 밤 메뉴를 열심히 검색해둔 빈센트에 가고자 하는 목표의식이 강했음) 그래서 '아깝다' 하면서 길을 건너서 반대편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노비 쉬비아트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그런데 다 지나고 보니 그냥 저 빵집에서 빵이라도 한두 개 사볼 걸 그랬다. 과일가게에서 서양배랑 자두랑 복숭아라도 좀 살 걸. 아, 근데 복숭아는 못 본 것 같다. 자두는 많았는데... 다시 바르샤바에 가게 될지는 모르겠다만, 하긴 다시 가더라도 저 동네에 갈 일은 없을 것 같긴 하다. 동네 이름도 모름. 대신 그 덕분에 저 빵집과 과일가게가 기억에 확실하게 남겠지.
이번 바르샤바 여행에서 바깥에 나가 브런치를 먹었던 건 두 번이었다. 두번째 숙소인 래플스는 조식 포함 요금밖에 없어서 아침을 꼬박꼬박 내려가서 먹었지만 첫 숙소인 소피텔은 복지포인트를 전량 투입해 예약을 한 거라서 요금 비교 끝에 조식 포함 대신 좀더 널찍한, 아니 좀더 고층에 있는 방을 골랐다. 그래서 첫 숙소에 머무는 동안은 아침밥을 해결해야 했는데,사흘은 방에서 빵, 컵라면, 차와 커피 등으로 먹고 이틀은 밖에서 먹었다. 여기는 영원한 휴가님과 함께 갔던 노비 쉬비아트 거리의 프렌치 베이커리 카페 '빈센트'. 첫날 저녁에 여기서 레몬 커드 크루아상과 자두 패스트리를 사와서 다음날 아침에 방에서 먹었는데 전자는 그냥 그랬고 후자는 맛있었다. 며칠 후 자기 전에 우리는 '내일은 대사관에 가야 하니 후딱 다녀와서 브런치는 이 근처 괜찮은데서 먹을까요~' 하다가, 내가 이곳의 메뉴를 검색해보았다. 그랬더니 브런치 메뉴가 많아서 여기에 가기로 했다.
아침에 공복으로 택시를 타고 대사관에 가서 일을 처리하고, 배고픈 우리는 빨리 돌아가 밥을 먹고팠다. 그러나 버스 노선도를 착각한 나의 실수로 거꾸로 가는 방향을 타는 바람에 이상한 곳에서 내린 우리는 하는 수 없이 다시 버스를 타고 꾸역꾸역 열몇 정거장을 되돌아왔다. 토피엘 거리(뭔가 이런 이름이었는데 정확하진 않음)에서 내려서 노비 쉬비아트까지 걸어가는데 날씨도 뭔가 흐리고 우중충하고 배고프고 힘들었다. 이렇게 배고프고 힘든 상태로 가면 브런치가 맛있을 거야~ 하며 힘을 내어 빈센트까지 갔다. 그리하여 영원한 휴가님은 샥슈캬와 카푸치노, 나는 오믈렛과 홍차를 시켰다. 비주얼이 이쁘고 좀 음습한 날씨라 따뜻한 국물 비스무레한 게 먹고파서 나도 샥슈카 시킬까 했지만 안익은 달걀을 극복하지 못해 그냥 오믈렛을 시켰음.
고대하던 브런치. 극도로 피곤하고 배고픈 상태라 그랬는지 매우 맛있게 먹었다. 저 바게트와 버터도 맛있었다. 빵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저 네 조각을 다 해치움. 오믈렛은 그냥 평범했지만 그래도 배고파서 정신없이 맛있게 먹음.
영원한 휴가님이 시킨 카푸치노. 왜 에스프레소 대신 카푸치노인가, 공복이라 속쓰릴까봐 그런가 하고 물었더니 아침이랑 드실 땐 양이 좀 많은 쪽이 좋아서 카푸치노 시키셨다고 했던 것 같음(아니 이 기억도 지금은 가물가물. 아마 그러셨던 듯함. 왜냐하면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대답이라 아 그렇구나 하고 재밌어했던 것 같음)
이건 우리가 앉았던 야외쪽 테이블들. 우리보다 부지런한 분들이 먼저 먹고 간 흔적들. 하긴 우리가 열한시를 꽤 넘겨서 왔던 것 같긴 하다(길 헤매느라고 ㅠㅠ)
여기는 번호표를 이렇게 손으로 대충 쓴 것을 주었다. 엄청 성의없어 보이지만 또 이것이 매력.
밥 기다리면서 심심해서 설탕 접시도 찍고... 기념으로 여기 설탕 한봉지 챙겨온 것 같은데 긴가민가. 집에 가서 확인해봐야겠다.
맛있어보이고 비주얼도 화려한 샥슈카.
그에 비해 뭔가 빈약해 보이는 오믈렛. 너무 기다랗게 말아놔서 그런 듯함.
맛있었던 바게트 :) 이 집은 프렌치 베이커리였지만 크루아상이 별로여서 실망했는데 바게트가 맛있어서 조금 만회함. (배고파서 그랬을지도)
홍차를 정신없이 마시고 기사회생.
이 카페에는 에클레어들이 있었고 에클레어를 사랑하는 나는 배가 이미 불렀지만 그래도 불굴의 의지로 이것을 주문해보았다. 그런데 슬프게도 이 에클레어는 별로 맛이 없었다. 슈가 두꺼웠고 크림은 반쯤 굳어 있었음. 비주얼만 귀여웠다. 결론은 이곳은 브런치가 빵과 디저트보다 낫다는 것인가...
좀 쌀쌀했지만 야외에 앉아서 이렇게 조식 먹는 사이에 날씨가 좀 풀리기 시작했다. 영원한 휴가님과는 이날 여기서 브런치를 먹은 후 저녁엔 또 이 근처에 있는 그루지야 식당에 가서 힌칼리와 가지 요리를 먹었다. 그 얘기는 나중에 따로~ 이때가 한달 반 정도밖에 안됐는데 너무 오래 전인 것 같다. 다시 여행가고 싶다.
여기는 아마도 바르바칸 성벽과 신시가지 사이의 어딘가였던 것 같다. 도착 다음날이었고 나는 영원한 휴가님과 함께 바르샤바 구시가지부터 여기저기를 쏘다녔는데 그러다 다리가 아파서 신시가지의 마리 퀴리 동상 맞은편 벤치에서 쉬었다. 아마도 그 근처 어딘가에서 발견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아름다운 건물, 푸른색들이 너무 예뻐서 함께 바라보았다. 근처에는 타일 장식이 된 또다른 푸른색 건물이 있었다. 이쪽이 더 고풍스러워서 예뻤다. 날씨가 좋아서 하늘도 파랬다. 서로 다른 색조의 푸른색들이 가득한 바르샤바의 한 순간.
지난 바르샤바 여행 때는 두 군데의 숙소에 머물렀는데 첫 5일은 소피텔, 나머지 4일은 그 맞은편에 있는 래플스였다. 후자는 이른바 럭셔리 호텔이라는 곳으로 여러가지 세심함과 화려함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맘에 드는 점도 있고 조금 아쉬운 점도 있었다만 어쨌든 여행가서 쉬니까 좋았다.
래플스에서 꼭 하나만 갖고 싶다면 뭘 고르겠느냐고 물었다면 아마 저 꽃병이었을 것 같다. (나머지 값비싼 것들은 뭔가 자가검열로 지워진 듯하고 꽃병은 그래도 좀더 접근이 쉬워서 그런가) 조식 레스토랑 테이블에 놓여 있는 저 꽃병이 무척 예뻤다. 모양도, 재질도, 그리고 컬러도 너무너무 내 취향이었다. 여기는 내부 인테리어를 돌체 앤 가바나 뭐 그런것들로 해놓은 곳이니 아마 저것도 알고보면 럭셔리 화병이었을 확률이 큼. 어쨌든 저 꽃병 너무 이뻐서 정말 갖고 싶었다.
그런데 사실 막상 나보고 꽃병을 사라고 하면 저런 모양의 꽃병은 절대 사지 않는다. 물을 갈아주기도 어렵고 내부 세척은 더욱 귀찮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에 있는 꽃병이라고는 주둥이가 좁지 않은 유리 화병들이 대부분... 로모노소프에서 전에 사온 귀여운 도자기 꽃병도 주둥이가 좁아서 잘 쓰지 않게 된다. 오히려 탄산수나 생수 유리병 따위를 막 섞어 쓰고 있음. 저런 아름다운 꽃병은 남이 살림살이를 돌봐주는 인생에서나 상용하는 것으로(흐흑 갑자기 좀 슬퍼)
그러고보니 작년 빌니우스 여행 때 켐핀스키 호텔에서도 그 방의 양치컵이 너무 이뻐서 갖고 싶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빌니우스에서 봤던 모든 찻잔이나 컵들 중 그게 제일 맘에 들었었다 ㅎㅎㅎ 아래 잠깐 다시.
오늘은 재택근무를 했다. 그래서 집에서 아침을 챙겨먹을 수 있었고 며칠 전부터 먹고 싶었던 자두잼 얹은 버터토스트 조식에 성공했다 :)
왼편이 자두잼. 이것은 영원한 휴가님이 빌니우스의 자두나무에서 떨어진 노란 자두들을 정성들여 손질해 직접 만드신 잼이다. 바르샤바에는 자두가 많았는데 폴란드는 자두가 특산물인지 각종 자두와 자두잼 케익, 초콜릿, 음료를 팔았다. 빌니우스에도 여러 종류의 자두가 있는 모양이었다(바르샤바랑 가깝긴 하다) 우리는 식당에서 메뉴판을 보다가 '미라벨 자두'라는 것을 읽고는 그 종류의 자두 주스나 뭐 그런 걸 먹어보려고 슈퍼와 가게를 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과연 미라벨 자두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이후 빌니우스에 돌아간 영원한 휴가님이 '찾아보니 미라벨 자두는 호두알만큼 조그만 노란 자두라는데 아무래도 저 잼을 만든 자두가 그거 같아요'라고 얘기해주셨다. 그래서 '빌니우스 노란 자두잼'으로 부르던 저것에 '수제 미라벨 자두잼'이라고 부제를 붙여주었다.
어서빨리 저 자두잼을 먹고팠는데 사실 내가 게으르다보니 빵에 버터나 잼을 발라서 먹는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고, 빵은 조식이라는 개념이 박혀 있어서(저녁으로는 안먹음) 여행에서 돌아온 후 좀처럼 기회가 없었다. 출근하면 이른 아침에 보통 빵이나 과일, 견과로 때우긴 하지만 사무실에 앉아서 먹어야 하니 간편한 빵을 먹지 버터, 잼 같은 걸 발라서 먹는 노력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바르샤바 여행에서 아침 먹으러 갔던 어느 카페에서 내준 버터 토스트가 의외로 너무 맛있어서 그 기억이 많이 났다. 그래서 며칠 전 귀가하면서 빵집에 들러 웬만해서는 사지 않는 식빵까지 샀다. (바게트 같은 걸 더 좋아하고 식빵은 옛날부터 별로 안 좋아했음. 정성들여 토스트하는 게 귀찮은데 식빵은 토스트를 안하면 맛이 없어서...)
오늘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업무 시작하기 전에 정성들여 식빵에 버터를 발라 에어프라이어에 토스트를 하고(이것도 매우 드문 일임. 나는 게을러서 에어프라이어를 도통 써먹지 않는다. 기껏 한달에 두어번 연어 구워먹는 게 전부), 이럴때를 위해 아껴둔 twg 다즐링 티를 우렸다. 왜 아껴놓느냐면, 집에서는 웬만하면 찻잎으로 직접 우려 마시기 때문에 티백은 쓰지 않고, 사무실에서는 그럴 여유가 없으니 티백들을 놓고 먹는데 솔직히 말해서 일하면서 마시는 차는 그야말로 정신차리고 빨리 일하려고 마시는 거라서 고급 티백 대신 트와이닝, 아마드, 그리고 좀더 신경쓸 경우 로네펠트 티벨롭 정도를 마시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것보다 좀 좋은 찻잎으로 리넨 주머니에 채워둔 티백은 뭔가 애매하다. 집에서야 티백 마시느니 티포트에 제대로 차를 우리는 게 낫고. 여름 프라하 여행 때 면세에서 twg 티백 세트를 샀는데 그중에서도 별로 안 좋아하는 민트나 디카페인만 마시고 좋아하는 다즐링은 아껴놓았음. (가격대야 똑같지만 민트나 뭐 그런 건 딱히 좋아하는 차가 아니니 대충 마셔도 오히려 별로 안 아까움) 다즐링은 후딱 우려마시려니 사무실에서는 아까워서.
그리고 노란 자두잼 병을 꺼냈다. 영원한 휴가님이 오븐으로 병을 소독해 밀봉해놓아서 뚜껑을 여니 뽁 소리가 났다.
설탕을 많이 쓰지 않아 자두잼이 시큼할 거라는 얘기를 하셨기에 '그러면 무화과잼이랑 같이 먹지요~' 하며 역시 선물해주셨던 앙증맞은 무화과잼도 꺼냈다. 그게 사진 오른쪽. 과연 자두잼은 새콤했지만 버터를 잔뜩 발라 구운 토스트에 얹자 은근히 그 새콤함이 잘 어울려서 굳이 무화과잼을 개봉하지 않아도 됐다. 그래서 무화과잼은 그대로 냉장고로 귀가.
미라벨 자두로 추정되는 노란 자두잼. 수제!!!
버터 토스트 만들려고 심지어 이즈니 버터를 샀음. 좀 더 저렴한 버터도 아무 상관 없었을텐데, 나처럼 자주 먹지 않는 사람에겐 컵으로 소분되어 있어야 그나마 낭비가 적어서... (컵 대신 그냥 종이포장 소분된 것들도 많은데 나는 또 게으르고 손에 묻히는 걸 싫어해서 종이포장 버터를 별로 안 좋아함) 과연 비싼 버터를 양심의 가책을 느낄만큼 왕창 발라서 구운 토스트는 맛있었고(바르샤바 수크레 토스트만큼 맛있었다. 그 토스트도 버터를 엄청 발라 구웠다), 자두잼이 훌륭한 앙상블을 이루었다.
이른 아침이고 오늘은 좀 흐려서 어둡게 나왔다 ㅠㅠ
그런데 식빵 딱 한 장만 저렇게 반 갈라서 먹은 것처럼 위장하고 있지만 사실 두 장을 해동했고.. 다른 한 장은 식지 말라고 에어프라이어에 그대로 넣어둔 것이었다. 눈가리고 아웅.
영원한 휴가님 고마워요!
그건 그렇고 이건 제대로 기원을 거슬러올라가면 빌니우스에서 온 자두잼이니까 빌니우스 폴더로 가야 하나 싶지만, 바르샤바에서 받아왔으니까 바르샤바 폴더에 올려둔다 :)
" 저 자리에 두니까 원래 여기 있었던 것처럼 보여서 놔두고 갈까봐 걱정인데요. " 라고 영원한 휴가님께서 말씀하셨다. 다과와 티포트, 컵과 물병을 놓아두는 저 진열대 한가운데 살포시 놓아둔 하늘색 러브라믹스 티포트 얘기였다. 영원한 휴가님은 저 티포트를 빌니우스의 필리모 거리에 있는 엘스카 카페에서 골라 상자에 꼭꼭 넣어 캐리어에 태우고 이른 아침버스로 국경을 넘어 바르샤바까지 가져오셨다. 내가 프라하의 헤드샷 커피를 따라서 샀던 똑같은 색깔의 찻잔에 맞춰서.
이 사진을 찍기 전날 오후 우리는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더위와 습기에 지쳐 조금 일찍 숙소로 돌아왔다.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대신 편안한 호텔 방에서 티타임을 하기로 했다. 이케아 느낌이 물씬 나는 타원형의 하얀 테이블 위에 호텔 방에 비치되어 있던 찻잔과 접시를 세팅하고 전기포트에 물을 끓이고, 빌니우스에서 온 23년산 퍼스트플러쉬 다즐링을 저 러브라믹스 포트에 정성들여 우렸다. 빌니우스의 또다른 카페에서 온 초콜릿 팅기니스와 바르샤바의 저렴한 슈퍼마켓 체인인 비에드론카에서 사온 너무 익은 무화과 두 알을 곁들여 차를 마셨다. 바르샤바에서 매일 차를 마셨지만 그 순간의 티타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차를 마신 후 나는 러브라믹스 티포트를 저 자리에 올려두었다. 너무 딱 들어맞았고 심지어 그 뒤에 있는 메뉴바 안내문마저도 보라색이라 컬러까지 잘 어울렸다. 그래서 '원래 여기 있는 것처럼' 보여서 숙소 옮길 때 놔두고 갈까봐 걱정이었다. 이틀 후 나는 숙소를 옮겼고 티포트를 뽁뽁이로 싸서 상자에 잘 넣어서 다음 숙소로 가져갔다. 바르샤바 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그리고 화정으로 비행기와 택시를 타고 잘 귀가했다. 나랑 티포트 둘다.
(사진을 잘 보면 영원한 휴가님과 내 여행가방도 한구석에 나란히 나와 있음. 티포트는 저 가방 두 개를 다 섭렵했음)
빌니우스 선물 한보따리. 팅기니스 두 덩어리와 수제 자두잼은 이때 냉장고에 들어가 있어서 이 떼샷에서 빠졌음 ㅜㅜ 왼편 상단의 박스가 저 티포트가 든 상자.
잊을 수 없는 바르샤바 카페 자이칙 분점 개장 인증 샷 :)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저때 홍차를 매우 잘 우렸음!
나에게 있어 만족스러운 여행은 수많은 파편들과 반짝이는 빛들, 나직한 소음과 부드러운 바람의 기억들로 남는다. 아픈 다리, 갈증, 혼란, 허기, 짜증 등의 기억들은 쉽사리 녹아 없어진다. 대체로 좋은 것들이 남는다. 정말 나쁜 것들은 각인되어 잊혀지지 않지만 웬만한 것들은 흐려지고 약해진다.
오랫동안 남는 아주 작은 조각들은 의외로 숙소에서 온다. 아마도 내게 여행은 무엇보다도 휴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나 스스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노력과 돌봄으로 방에서 쉴 수 있다는 것이 좋아서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행에서 찍은 호텔 방의 작은 순간들을 좋아한다. 그런 사진들에는 물론 예쁘거나 근사하거나 새로운 뭔가는 없다. 하지만 약간의 안락함과 또 약간의 불편함이 공존하는 그 순간들을 떠올리면 다시 여행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나는 비행기나 공항보다는 호텔에서 온전한 여행자의 기분을 맛보는 것 같다.
간판이나 메뉴판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옆을 두리번거리거나 위를 올려다보는 편은 아니어서 길거리에 놓여 있는 애들이나 눈높이 근처에 있는 녀석들 위주로 보게 된다. 손글씨나 직접 그린 그림이 가미되어 있으면 더 눈여겨 본다. 이건 바르샤바 중심가, 구시가지 가는 길에서 발견.
그런데 이 녀석은 딱히 예뻐서라기보다는 '우와 정말 정성들여서 썼구나' 라는 마음이 들어서 찍어둠. 너무 이렇게 반듯반듯한 글씨체는 손글씨의 자유분방이 덜해서 내 타입은 아니지만, 분필로 저렇게 반듯하게 글씨를 써놓고 심지어 색칠도 저렇게 꼼꼼하게... 균일한 저 빗금들까지... 진짜 정성들여 쓰셨군요, 모범상을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이 카페에 들어가지는 않았음 ㅎㅎㅎ)
이때 너무 더워서 목도 마르고 뭔가 마시고 싶어 허덕이고 있었지만, 정성들여 쓴 저 녀석을 무시하고 바로 옆에 있는 미니 까르푸 가게에 들어가 물을 사 마셨다. (그 가게에서는 첫날 영원한 휴가님과 함께 피에로기 군만두 찐만두의 여파로 목말라 괴로워하며 사과복숭아 주스와 리치 주스를 사마셨었고 또 며칠 후엔 더워서 아이스크림 사먹음. 그러고보니 세번이나 간 드문 곳이네. 사진 한장 없이 뜬금없이 까르푸 매점 얘기로 마무리)
첫날 구시가지에 갔을 때 들렀던 조그만 기념품 시장. 그 시장에서 나중에 할바를 한 통 샀다. 왼편에는 헌책들을 쌓아놓고 파는 좌판이 있었는데 무심코 눈을 돌렸을 때 도스토예프스키가 눈에 들어왔다. 저 초상은 힐끗 봐도 결코 헷갈릴 수 없다. 잘 보면 아래에는 불가코프 책도 깔려 있고. 이 책방은 나중에 안쪽을 훑어보니 옛날 공산주의 시절에 대한 책들, 그리고 러시아어로 된 책들이 많았다. 오랜 역사, 소련과 그 이후,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현재 러시아와 폴란드의 관계를 생각하며 뭔가 묘한 마음이 되었다.
폴란드는 뭔가 예쁘게 꾸며서 잘 팔아먹는 자본주의 상술이 아직 발달하지 않은 것 같다. 곳곳에 예쁜 것들도 아예 없지는 않은데 기념품들은 어딘가 허술하다. 나도 이제 나이도 먹고 매사 귀차니즘이 발동되어 예전처럼 이것저것 귀여운 것들을 사오는 일도 거의 없어졌고 또 이곳의 가장 유명한 기념품이라면 역시 폴란드 도자기겠지만 이건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구할수 있다보니 '찻잔 사야 해' 하고 악착같이 찾으러 다니지도 않았다(그런데 결국 우연히 발견한 가게에서 이쁜거 하나 사긴 했음)
어쨌든 명소나 기념품을 이쁘게 포장해 팔아먹는 기술이 별로 없는 동네라, 기념품 쇼핑이라고는 마지막날 산 그나마 귀여운 스케치 엽서 두장, 그리고 위에서 얘기한 찻잔 하나가 전부였다. 이 사진은 첫날 구시가지 기념품샵에서 발견해 좀 우스워서 찍어둔 양말들. 폴란드에서 그나마 가장 메인으로 밀고 있는 게 바로 이것들이다. 즉, 유명인은 3명이다. 쇼팽, 퀴리부인, 코페르니쿠스. 그리고 저 폴란드 만두, 피에로기. 맨 아래는 문화과학궁전 그림 양말인데 이건 호불호가 갈리니 패스. 영원한 휴가님은 나에게 저 양말 3종 사가라고 했는데 좀 웃기고 귀엽긴 했지만 위대하신 분들을 양말로 신고 깔아뭉개려니 뭔가 쉽지 않았다 ㅎㅎㅎㅎ
쇼팽이야 원체 유명하니 좀더 노력해서 멋지게 팔아먹어도 될텐데 너무 제대로 된 물건이 없어서 뭔가 홍보와 디자인을 좀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또 생각해보면 이런게 폴란드의 매력인가 싶다. 너도나도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는 것보다는. 그리고 피에로기는 사실 좀 우스운 느낌이 많이 든다. 왜냐면 저거 그냥 만두라서 ㅠㅠ 어느 나라에 가도 웬만하면 자기네 식 만두가 있는데 유독 폴란드는 이 피에로기야말로 폴란드의 전통음식이라고 엄청 밀어붙이는 느낌이었다. 맛은 러시아 펠메니나 우리나라 만두와 크게 다르진 않고, 필링이 좀더 다양하다. 과일 들어간 디저트용도 많고(근데 이건 러시아도 그렇다. 러시아에서는 고기 든 건 펠메니, 과일 든 건 바레니키라고 한다만) 찐 것과 기름에 구운 것 둘다 있는데 나와 영원한 휴가님은 첫날 전문점에서 두가지를 다 시켰다가 양이 너무 많아서 배가 터지는 줄 알았음. 그날 우리는 점심땐 피에로기를 먹고 저녁엔 베트남 식당에서 스프링롤을 먹고 이틀후엔 그루지야 음식점에서 그동네식 만두인 힌칼리를 먹어서 사흘 동안 만두 파티였음. 아마 앞으로 한동안 만두는 못 먹을 것 같다. 그리고 러시아어로 피로그는 속이 든 파이이고 만두는 펠메니인데 폴란드에서는 만두를 피에로기라고 해서 첨엔 좀 헷갈렸다.
심지어 만두모양 냉장고 자석까지. 근데 이것도 잘 보면 정말 대충 만들었다. 아니, 만두 자석 만들 거면 좀 윤도 내고 더 귀엽게 만들 수도 있을텐데 그냥 밀가루 반죽 색깔로 철푸덕...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적인 폴란드 :) 근데 이런게 또 어쩐지 귀엽다. (하지만 예쁘지 않아서 결국 하나도 안 샀다. 미감 앞에선 냉정한 토끼의 마음 ㅋㅋ) 저 만두 자석은 아예 글씨가 하나도 씌어 있지 않은 민자도 있다. 그건 아마 구매자가 직접 쓰라는 건가 싶기도 함.
집에 돌아와서 10월 달력을 넘겼다. 얼마전 새로 만든 달력. 10월 사진은 아스토리야 페테르부르크.
어제 비행기가 원래 12:10에 출발이었고 전혀 지연 메시지가 없었다. 심지어 보딩 사인도 일찍 떴다. 알고보니 비행기가 탑승교 없이 비행장 저 멀리 구석에 있었고 모두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이것까지야 우리 나라 아닌 다른 공항에서 종종 있는 일이니 그러려니 했는데, 버스가 비행기 앞에 도착하고서도 문을 열어주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밀폐공간 내에서 더위에 지쳐 허덕였다. 그러다가 버스가 되돌아서 다시 공항으로... 메일을 확인해보니 12:30으로 조금 지연된다고 한다. 아니 겨우 20분 지연된다고 이렇게 해야 하나. 다 내리라고 해서 모두 투덜대며 다시 올라갔는데 1분도 안되어 다시 또 버스에 타라고 했다. 그런데 버스를 타고 왔던 길을 재탕해 다시 비행기 앞에 갔는데 또 문을 안 열어주고 이번에 또 메일이 와서 기체 정비 문제로 2:40으로 두시간이나 더 지연된다고 했다. '망할넘의 폴란드항공 또 시작이야!' 하고 욕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버스 문이 열렸고 승객들에게 비행기에 타라고 함. 그런데 이러면 더 불안한게, 분명 기체 정비를 해야 해서 지연이랬는데 '아니야 지금 타' 라고 하면 '대충 정비하고 때운거 아닌가' 하는 의심이 뭉게뭉게... (나는 작년 빌니우스 갈때 연착으로 바르샤바-빌니우스행 비행기를 놓치고 느닷없이 바르샤바에서 1박한 이후 폴란드항공과 폴란드공항에 뿌리깊은 불신을 갖게 되었음)
어쨌든 탑승을 했고 비행기는 1시가 조금 안되어 이륙했다. 오고 갈 때 모두 흑해를 지날 때 터뷸런스가 잦아서 많이 흔들린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기류 문제가 별로 없어 비교적 평온한 비행이었다. 잠이 너무 모자란 상태였으나 약간 졸았을 뿐 많이 눈을 붙이진 못했다.
인천공항에는 6시 반에 도착해서 그리 늦어지지 않았다. 입국수속도 빨리 했으나 가방이 늦게 나왔고, 택시를 타고 집에 오니 8시가 좀 안되어 있었다. 환기를 시키고 대충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은 후 침대로 들어갔는데 빨리 잠들지 못해서 9시 넘어서 잠들었다. 4시간 정도 정신없이 자고 일어났다.
일어나서는 밥을 챙겨먹고(엄마가 명절 음식을 갖다놓으셨다), 괴로워하며 1시간 가량 가방을 풀었다. 그리고 빨래도 돌리고(내일 한번 더 돌려야 한다. 빨랫줄에 널어둘 공간이 모자라서), 끙끙거리며 우렁이를 갈망하며 청소도 했다. 헉헉. 그리고 차를 한 잔 우려마셨다.
다시 돌아온 화정 카페 자이칙 본점.
파제르 초콜릿은 영원한 휴가님이 주신 초코 박스 안에서 한 알 꺼냈다. 라즈베리 요거트 맛이 새로 나온 모양인데 맛있었다. 옆은 폴란드항공 쪽에서 집어온 캐러멜. 설탕이 버석거린다. 이 녀석은 모양도 포장의 형태도 러시아 초코나 사탕과 너무 비슷하다.
새 찻잔과 영원한 휴가님이 선물해주신 티포트는 이때 싱크대에 들어가 있었기에 오늘은 기존 찻잔. 바르샤바 노비 쉬비아트 거리의 홍차 가게에서 사온 '네팔 골드' 홍차를 우렸는데 이미 네시가 넘은 늦은 오후였고 시차 적응 걱정이 되어 첫물을 버리고 연하게 우려마셨더니 밍밍하고 아무 맛이 없었다. 맛있어야 하는데... 내가 연하게 우려서 그런거겠지 했는데 같은 차를 사가셨던 영원한 휴가님도 '연하든 진하든 둘다 무슨 맛인지 특색이 없다'고 하셔서 좀 불안함. 내일 다시 도전을...
차를 마시면서 폰으로 업무 메일을 좀 확인했다. 역시 산더미처럼... 3분의 1쯤 체크하다가 포기하고 그냥 모레로 미뤘다. 이번 여행은 항공 스케줄 때문에 하루 일찍 돌아왔는데, 이른 아침 도착이기도 해서 결과적으로는 내일까지 쉬면서 여독을 좀 풀 수 있어 이것이 좋은 점인 것 같다. 예전엔 항상 도착하자마자 다음날 출근을 했기 때문이다. 힘들게 시간 빼서 나가는 여행이니 돈과 시간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더 있다 오는게 좋지만 이제 몸도 부실하고 쉽지 않으니.
늦게 차를 마시고 집안일을 좀 하고 부모님과 동생과 통화를 마치고 나니 어느새 밤이 되었다. 오늘 밤 11시 전에 잠자리에 들어서 시차 적응을 하는 것이 목표인데. 지금 잠은 매우 모자란 상태이긴 하다만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내일 쉬니까 다행이다. 일 생각은 출근날부터 하는 걸로... (그러나 사실 비행기에서 자려고 애쓰면서도 물밀듯 온갖 업무 문제가 떠올라서 괴로웠음)
이 메모는 다시 fragments 폴더로 가야 하는 게 맞는데, 앞부분에 폴란드항공 때문에 고생한 얘기가 있으니 그냥 바르샤바 폴더에 남겨둔다. 그리고 오늘 티타임 사진 두어 장 더 붙여놓고 마무리.
막판에 좀 연착되고 비행장으로 우리를 태우고 간 버스가 되돌아갔다가 다시 가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비행 자체는 초반 흑해 지날때 터뷸런스가 여러번 있었던 것 외엔 다행히 순조로웠다. 6시 반에 착륙. 빨리 수속을 했지만 가방이 좀 늦게 나왔다. 그래도 바르샤바 공항에 비하면 인천공항은 역시 최고 ㅠㅠ
입국수속 받으러 바삐 걷다가, 빛이 너무 찬란해서 찍음. 흑흑 내 여행은 끝났지만 누군가는 저거 타고 여행 시작하겠지.
어째선지 5시도 되기 전에 깨버렸다. 주말 조식은 7시 반부터라 시간 맞춰 오믈렛으로 아침을 먹고, 가방을 마저 꾸린 후 체크아웃을 했다. 잘 쉬다 가요, 래플스 호텔.
볼트로 택시를 불렀는데 한참 기다렸다. 공항에서는 보안검색대에서 사전 설명 없이 나중에 검색 통과후 다시 신발을 벗고 재통과하게 하는 등 매우 불친절. 출국심사는 정말 오래 걸렸다. 자동 수속도 안되고, 심사대는 텅텅 비어 있고 3명만 있었는데 그나마 한명은 중간에 문닫고 나감. 모든게 매우 느렸는데 너무너무 예전의 러시아 공항이 생각남. 중간에 셔터 내리고 가버리는 것도 똑같음. 오늘이 일요일 오전이라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택시도 안 잡히고 공항도 무지 느리고.
면세에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살 것이 없어 잠시 라운지에서 쉬고 있다. 별도 메시지가 없는 걸 보니 연착된 것 같지는 않다.
이제 삼사십분 후면 탑승한다. 무사하고 평안한 비행이 되기를, 기류가 별로 없고 흔들리지도 않기를 바라며. 즐거운 여행이었다.
방에 돌아오니 오후 2시가 약간 넘어 있었다. 이때부터 가방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너무 귀찮아서 천천히 게으르게 꾸리다 말다 했다. 조금 꾸리다가 차를 우려 마시고, 그 이후 마저 꾸렸다. 짐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영원한 휴가님과 주고받고 하긴 했지만 그래도 책이 좀 빠지기도 했고 또 그동안 먹어치운 것도 있어서. 가방을 대충 70%쯤 꾸린 후 나머지는 어차피 화장품과 세면도구, 노트북과 소량의 옷가지라 저녁과 내일 아침 일찍 꾸리기로 했는데 이미 오늘도 밤이 되어버렸다.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지. 방에서 오늘은 여유있게 쉬면서 글도 좀 써보려 했는데 정작 아홉시가 된 지금까지도 오늘의 메모를 다 못 썼음 ㅠㅠ
들어오면서 호텔 카페에서 어제 시도하지 않았던 메도빅을 사왔다. 이것은 맛있었다. 그러나 너무 달아서 끝까지 먹지는 못했다. 이 호텔은 전반적으로 디저트도 프렌치 토스트도 매우 달달한 스타일인가보다.
사실은 블리클에서 사온 박력 에클레어도 좀 먹었는데 그것은 종이봉지에 싸준 탓에 너무 뭉개져서 사진에 등장하지 못했다는 슬픔이...
5시쯤 잠깐 밖에 나갔다. 비가 그쳐서 공원을 잠시 산책하기로 했다. 바르샤바 여행에서 이 공원이 많이 생각날 것 같다. 이 공원뿐만 아니라 영원한 휴가님과 함께 다닐 때 여기저기 앉아서 쉬었던 공원과 벤치들의 기억이 깊이 남을 듯하다.
우리 호텔 쪽 방향으로는(위 사진 왼쪽 건물이 지금 호텔이다) 하늘이 파래지고 있었지만 대각선 방향의 첫 호텔 소피텔 쪽 하늘은 우중충한 먹구름이... (아래 사진)
소피텔은 생김새가 별로 멋은 없지만 여기 5일이나 머물렀기 때문에 볼때마다 뭔가 정이 좀 간다 :) 이 광장을 많이 지나다녔는데 오늘은 추웠던 고로 이 광장도 바람 엄청 불고 추웠다. 광장들은 덥거나 춥거나 둘 중 하나인 듯.
이 광장에서도 문화과학궁전이 잘 보인다. 그런데 거기 가기 전까지는 이 광장 지날 때도 항상 앞만 보고 다녀서 저 실루엣을 못봤다. 그때 봤으면 아마 거기 안 갔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다녀온 걸로 만족하자.
오늘은 흐리고 싸늘했기 때문에(짚업과 스카프 차림으로 나옴) 공원을 30분 가량 산책하는 걸로 마무리했다.
분수와 비눗방울이 이뻐서 그 두 장의 사진으로 오늘 사진 마무리.
바에 들러 칵테일 한잔 마실까 하다 피곤하기도 하고 내일 비행도 해야 하니 그냥 들어왔다. 목욕도 하고 짐을 조금 더 꾸리고, 남은 누룽지를 털어 간단히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이 메모를 적고 나니 이미 아홉시가 넘었다. 이번 여행의 소회에 대해서도 찬찬히 써보고 스케치도 한 장 더 해볼까 했지만 10시 전에 잠자리에 들고 싶으므로 그냥 간단하게 마치려고 한다.
이번 여행은 사실 급하게 계획해서 온 거라서(임시공휴일이 도입되고 얼마 후에 지른 거니까 정말 급하게, 거의 3주 전에 예약함) 금전적 출혈도 좀 있었고 그전까지 너무너무 바빴었다. (돌아가서도 바쁠 것이다) 그리고 직항이 있다는 이유로 더 가고 싶었던 베오그라드 대신 여기로 온 것이라 바르샤바 자체에 대한 별다른 기대는 전혀 없었다. 이 도시에 대한 첫 기억은 작년 빌니우스 가던 날 비행기 연착으로 갑자기 하루 자게 된 거라서 별로 좋은 인상도 아니었다. 여행서도 아주 허술하게 되어 있어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잠깐의 탈출 자체로 만족하며 정신없이 나온 거였다. 그리고 영원한 휴가님도 오실 수 있다고 하니 여행이 즐거울 것 같기도 했고. 기대가 별로 없는 상태에서 온 여행은 실망할 것이 없고 오히려 하루하루가 소박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첫 4일은 동행과 함께 즐거웠고(둘이 다니는 여행이 정말 오랜만이었다. 물론 6월에 엄마랑 프라하에 갔었지만 그것은 내가 99% 모시고 다닌 거였으므로 내 기억 속에는 별로 여행으로 각인되지 않음), 나머지 4일은 평소 나의 여행 패턴과 비슷하기도 하고 또 다르기도 했다(인어상, 문화궁전, 시장 악착같이 찾으러 간 건 다른 점이다) 바르샤바는 아주 인상적인 곳도 없고 아주 아름답거나 매력적인 곳도 없다. 도시 자체로는 나에게 확 다가오는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빠져나와 잠시라도 일 생각을 잊고 하루하루 돌아다니고, 친구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특히 공원의 나무들 사이를 거닐고 매일 뭔가 맛있는 것을 먹고, 또 아늑하고 안락한 방에서 쉬기도 하는 이 모든 시간들이 소중했다. 아마 내게 정말 여행이 필요한 시기였나보다.
내일은 정오 무렵 출발하는 비행기이다. 조식을 일찍 먹고 9시쯤 나가면 될것 같다. 공항은 가까우니까. 안전하고 편안한 비행을 하고 무사히 귀가해 집에서 쉬고 싶다. 여행은 너무나 좋지만, 집도 좋으니까.
... 추가 : 여기 와서 피부가 좋아졌다. 매일 욕조에 멈을 담그긴 하지만, 얼굴 피부도 좋아지고 반질반질해짐. 석회수 효과인가 일을 안 해서인가 :)
새벽 다섯시 반쯤 일찍 깨어나 다시 잠들지 못했다. 내일 장거리 비행을 해야 하니 오늘 밤엔 잘 자야 할텐데.
오늘은 별로 서두르지 않고 지냈다. 가고 싶은 곳들은 모두 갔고 떠나기 전날인데다 비도 오고 날씨도 안 좋아졌으니 잠깐 나갔다와서 가방도 꾸리고 방에서 쉬기로 했다.
오늘 조식으로는 프렌치 토스트를 주문했는데 비주얼에 먼저 놀라고, 극강으로 단 맛에 두번 놀람 ㅠㅠ 저렇게까지 달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을까 의문. 그냥 오믈렛 먹을걸 엉엉... 혈관이 다 막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이래놓고도 오후에 케익을 사먹었음)
일주일 동안 한번도 쓰지 않았던 우산을 드디어 오늘 개시했다. 원래 여행 예약할 때 연휴 앞으로 휴가를 낼지, 뒤로 낼지 고민하다 조금이라도 더 따뜻한 9월이 낫겠지 싶어 이 기간으로 온 건데 정말 잘한 것 같다. 안그랬으면 어제 비행기로 왔어야 하는데 오자마자 비 오고 추워지고... 작년 빌니우스도 이번 바르샤바도 날씨 운이 좋아서 내내 해가 났다. 6월 엄마와의 프라하는 반타작이었음(비가 중간중간 꽤 와서)
사진은 코페르니쿠스 동상 앞. 지난주 토요일 저녁 영원한 휴가님과 왼쪽에 작게 나온 나무 아래 돌난간에 앉아 아이스크림 먹으며 얘기 나눴었다. 그때도 날씨가 좀 오늘 같았고 그 이후 여름 날씨가 되었다.
걷기가 힘들어서 버스를 타려 했으나 아무리 해도 버스가 안왔다. 알고 보니 주말이라 노비 쉬비아트 비롯 차없는 거리였고 버스는 다른 쪽으로 우회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걸어서 어제 갔던 별다방에 다시 갔다. 여기가 은근히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비가 와서 오늘은 손님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창가의 좋은 자리에 앉아 콘센트도 쓰고, 여기서 아이패드로 스케치도 한 장 그렸다.
이후 블리클 카페에 가서 박력있는 에클레어를 테이크아웃했고 천천히 노비 쉬비아트를 따라 걸어내려왔다. 지난주 일요일에도 그러더니 오늘은 궂은 날씨임에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따라 마라톤을 하고 있었다.
우리 호텔 맞은편의 브리스톨 호텔에 있는 카페 브리스톨에 갔다. 여기는 고풍스러운 비엔나풍 카페이고 100년 넘는 역사라고 한다. 첨에도 가보고 싶었는데 걸어다니느라 피곤해서 안 갔었는데, 비엔나 슈니첼이 메뉴에 있다고 해서 가보았다. 사람이 아주 많았지만 다행히 테이블을 잡았다. 슈니첼은 매우 맛있었다. 양이 많아서 감자는 안 먹고 버섯과 슈니첼만 열심히 먹음. 가격은 꽤 비쌌다. 여기 와서 먹은 음식 중 단품 중엔 제일 비쌌던 것 같다. 남아 있던 즈워티 현금을 여기서 거의 다 털어 썼다(애초에 10만원 가량 밖에 안 찾았었다. 요즘은 카드가 더 편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