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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0 22:02

2.20 수요일 밤 fragments2019.02.20 22:02



우산을 잊고 나왔는데 먹구름이 몰려온다 해도 

용감하게 갈 길을 가세요 

비가 아니라 눈일지도 모르잖아요



.. 힘들거나 불안할 때 이 엽서를 보면서 저 문구를 러시아어로 먼저 읽고 입 안으로 이렇게 번역해 다시 읽어보면 항상 마음의 위안이 된다. 비가 아니라 눈일지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이 엽서는 작년 가을에 페테르부르크의 어느 서점에서 발견해 사온 이래 2집 책상 앞에 몇달째 붙어 있다. 



..



어제 회식 후 밤 10시 넘어서 인사발령 결과를 확인하고, 동료 언니랑 한동안 이야기 나누고, 며칠 동안 너무 초조하고 불안했던 마음을 가라앉히느라 책을 읽다 늦게 잤다. 그래서 오늘도 수면 부족 상태로 출근했기 때문에 저녁에 귀가한 이후 아까부터 계속 꾸벅꾸벅 졸고 있다. 오늘 메모를 남긴 후 곧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출근을 했고 여기저기서 축하인사와 전화를 받았다. 고마운 마음이 당연히 들지만 역시 부담도 되고 '아 나 정말 하기 싫은데ㅠㅠ' 하고 드러눕고 싶기도 하다. 



실제 발령일자는 3월초이지만 이번주 금요일까지 업무분장을 완료하고 다음주 일주일 동안 인수인계를 모두 끝내라고 한다.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가 않은데 ㅠㅠ 



아이러니가 하나 있다. 내가 맡게 된 부서는 예전에 일했던 부서인데(구조와 사업들의 분화가 좀 있었다) 그 부서의 상사는 당시 나에게 돌이킬 수 없이 큰 상처를 주고 비열하게 굴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자는 결국 괴롭힘을 견디다 못한 직원들의 폭발과 하나하나 드러난 야비한 행위들로 인해 이번 인사에서 강등이 되었다. 그것까지는 당연하다 싶은데.. 어째서 이 인간이 잔뜩 쓰레기를 싸질러놓은 이 부서가 나에게 ㅠㅠ 흑흑... 누군가는 나에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그 자리로 가게 되어 최소한의 정의구현이 되는 것 같아 그나마 좀 기분이 낫다' 라고 했는데 나는 '왜 내가 이넘이 저지른 일들을 수습해야돼!' 하는 마음이 더 앞섬. 



어쨌든 나는 3월부터 이 부서를 꾸려나가고 온갖 일들을 수습하려면 전임 부서장으로부터 업무 인수인계를 받아야 하는데... 이 사람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게 낫다... 인사 결과에 충격을 받았는지 그는 오늘 중요한 심사회의가 있었음에도 휴가를 내고 잠적하였다. 오늘 급한대로 그 위의 상급 상사에게 가서 대충 현안사항을 듣고 파악했다. 뭐 나 역시 그자와 얼굴 맞대고 인수인계를 받고 싶지는 않다. 피차 불편할테고. 



오늘 오전에는 같이 일하게 될 부서원들에게 전화나 메시지로 먼저 인사를 했다. 그래도 다행히 멤버들이 괜찮은 편이다. 초짜인 내가 가장 약점인데... 걱정이 되긴 하지만 하여튼 어쩔 수 없지 ㅠㅠ 



그리고 임원에게도 잠깐 가서 인사 겸, 업무분장과 관련한 주요 의문사항(위에서 답변해줘야 할 문제가 하나 있었다) 확인을 하러 갔었다. 이분은 예전에 함께 일했던 분으로 워낙 행정과 문서와 쓸데없는 형식에 연연하시는 구석이 있어 내가 서무 시리즈의 스페호프 국장 모델로 차용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사실 관계는 좋은 편이었다. 임원실에 들어가자 먼저 '서울로 보내주고 싶었는데 마땅한 자리가 나지 않았다' 라고 하셨다. 반쯤은 진담이고 반쯤은 위안용 발린 말이긴 하지. 그쪽으로 갈 자리가 마땅히 없었던 것도 알고는 있고 실질적 기대 자체는 하지 않았었지만 그래도 발린 말이라도 들으니 조금은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서울 아니더라도 다른 선택지도 있었건만 왜 이 부서인 겁니까 ㅠㅠ 난 아직 이 부서에서 받았던 상처가 극복이 다 안됐고, 그런 개인적인 일을 떠나서라도 이쪽 분야에는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았는데.... 작년에 예산 총괄업무를 하면서 이쪽 부서에서 저질러놓은 신규사업들에 대해 매우 반대하는 입장이었는데 그걸 내가 맡아서 만들어내야 하다니... (말만 번드르르하게 살아있던 그 인간은 역시나 이 신규사업은 1%도 세부작업을 해놓지 않아서 그냥 내가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해야 할것 같다...) 흑, 그래도 어마어마한 1지뢰(모든 총괄업무와 골치아픈 일들을 몰아놓은 신규 부서가 하나 생겼다. 여기 갈까봐 너무 걱정이었다)를 떠안지 않았으니 동료 말대로 그냥 이 정도면 선방했다고 빨리 체념하고 받아들여야 할것 같음. 당면한 현안들이 있기도 하고...



여러가지로 마음이 복잡하지만 하루이틀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니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어떻게 노력하고 행동하든 데리고 일하는 직원들에겐 이제 '좋은 선배'로 남는 것은 끝났다. 아무리 열심히 하고 노력해도 어쨌든 욕먹을 수밖에 없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고 이들의 만사를 충족시켜주기 어려울테니 어느 정도 마음의 포기를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이게 나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냥 '야근 최소화, 쓸데없는 일 줄이기, 방기하지 않고 책임져주기' 이 세가지를 목표로 하는 수밖에... (근데 이게 제일 어려워 ㅠㅠ)



아아... 굴 파고 숨고 싶다 ㅠㅠ




Posted by lionta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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