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다녀온지 2주가 조금 넘었는데 이미 1년은 지난 듯하다. 너무 바쁘고 피곤한 하루하루의 연속임. 역시나 그럴 것 같았다만...
이번 빌니우스 여행에서 가장 맘에 든 카페였던 엘스카에서 보낸 순간들을 생각하며 마음의 위안 중. 어제 정말 힘들었는지 무의식적으로 막 엘스카 느낌의 무지개 무늬 비니도 주문하고 여기서 자주 내줬던 빨간 러브라믹스도 주문하고...
사진은 두번째로 엘스카 갔던 날. 여기는 워낙 볕이 잘 드는 카페인데 이곳에서 보냈던 시간들 중 통틀어 이 날 햇살이 가장 밝고 따스했다. 너무 찬란하고 예뻤다. 이 날 나는 아이패드를 들고 가서 카페 스케치를 했었다. 플랫 화이트를 주문했는데 컵이 다 떨어진 건지 아니면 내가 주문할때 정확히 말을 안해선지 종이컵에 줬다. (원래는 유리잔에 줌) 이 컵은 심지어 나랑 비행기도 같이 타고 왔다. 그런데 내가 이 컵 안의 커피얼룩을 씻다가 그만 저 엘스카 기사 문양이 좀 지워졌음 흐흐흑...
한달 가까이 머무른 곳이라 그냥 우리 집, 내 방처럼 친숙한 네링가 5층의 방. 사진은 10월 9일, 아직 빌니우스에 도착한지 일주일이 지나기 전. 이날 나는 필리모 거리를 횡단해 할레스 투르구스 시장과 새벽의 문까지 다녀왔었다. 방에 들어오다가 저녁 챙겨먹는 게 귀찮아 숙소에서 몇 분 거리인 맥도날드에서 빅맥을 테이크아웃해 와서 방에서 먹었다.
가깝고 편하다 보니 귀찮을 때 이용하느라 이 맥도날드에서 서너번이나 먹은 것 같은데... 통틀어 이 빅맥이 제일 맛있었다. 빅맥은 잘 안먹는데 드물게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아마 오랜 옛날 러시아 시절에 대한 추억 때문인가보다. 그러면 또 추억보정 때문인지 이 드문 빅맥은 항상 맛있게 먹는다.
내 경우 여행의 저녁식사가 근사하고 화려할 때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가장 큰 이유는 게으름 때문이다. 그런데 또 이렇게 방에서 먹었던 것들이 기억에 남는다.
애용했던 게디미나스 대로의 리미 수퍼에서 사왔던 체리복숭아(였던 것 같다. 그림을 보니) 탄산수와 함께. 캔은 참 이쁜데 사실 탄산수를 그리 즐기진 않아서 절반도 안 마셨던 듯. (이때는 아직 리미에서 사과복숭아 팀바크를 재발견하지 못했다)
돌아온지 며칠이나 되었고 모레부터는 복귀, 노동이라 어느새 엘스카의 환한 내부와 한적한 여유가 꿈결처럼 가물거리게 되었다. 이 사진은 아마도 10.17에 가서 처음으로 홍차를 시켜봤던 날이었던 것 같다. 빛이 아름다웠고 저쪽 창가 테이블에 예쁜 남녀 커플이 들어와 앉았다. 여자가 주문을 하러 갔는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남자는 등받이 없는 의자 두개에 앞으로 걸터앉아 폰을 확인하고 있었는데 스며들어오는 빛도, 엘스카도, 저 사람의 실루엣도 잘 어울리고 아름다워서 한 컷 담아두었다. 정면 사진은 아니니까 올려봄. 내가 엘스카에서 찍은 무수한 사진들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사진 중 하나이다.
창살 중 하나만 빨간색이라 찍어뒀던 사진. 필리모 거리. 떠나기 이틀 전 토요일. 엘스카에 갔다가 나와 필리모를 따라 트라쿠 거리로 걸어가던 길이었다. 필리모 거리는 길고 넓고 썰렁하고 트롤리버스와 차들이 많이 다닌다. 22년에 할레스 투르구스에 갔다가 맨첨 이 길을 따라 게디미나스 대로까지 걸어내려올때 ‘아 너무 길다. 여기는 응달이고 지루하구나’ 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머무를 땐 보키에치우와 더불어 제일 많이 지나다닌 거리가 되었다. 필리모는 나에게 딱 이 사진 같은 거리이다. 잿빛이고 길고 지루해보이지만 빨간색으로 반짝이는듯한 뭔가가 기억으로 남는 곳. 혹은, 엘스카로 시작하는 곳.
밤에 너무 피곤하게 잤는데 여기가 빌니우스보다 한시간 늦고 또 서머타임도 종료되어 지금까지의 리듬과는 두시간 늦어진 셈이라 6시 안돼 깨버렸다. 잠이 모자라지만 하여튼 일어났다. 어제 샴푸가 떨어져 샤워젤로 머리감았더니 머리가 미끌거리는 느낌이라 아침에 비누로 다시 감음(리셉션에 얘기하기도 넘 귀찮았다)
조식은 이것저것 있었다. 오믈렛을 만들어줘서 버섯치즈오믈렛 먹고 빵과 과일, 차 약간. 비행기 타야 하니 너무 소화 안되는건 안먹음. 방에 돌아와 대충 준비하고 젤 편한 옷을 입고 나와 체크아웃함. 밤엔 잘 잤어요, 르네상스 바르샤바 에어포트 호텔. 10%쯤 부족하긴 했지만 그래도 공항 옆이니까요.
비가 왔고 여전히 흐리고 안개낀 날씨. 공항 출국장은 한산했다. 평일이라 그런가. 더워서 숏패딩을 벗어 기내캐리어에 넣었다. 수속을 마치고 면세에서 나대신 한달 동안 결재대행하느라 고생한 선임직원을 위해 보드카 한병을 사고, 이제 라운지에 와서 잠깐 쉬는 중이다. 50분쯤 후 탑승한다는데 부디 연착되지 않기를.
이제 정말 한달의 여행을 마치는 순간이네. 충만한 시간이었다. 평안히 무사귀가하고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사진은 아침 일찍 몬으로 걸어가며 찍은 보키에치우 거리. 며칠만에 맑은 하늘과 햇살 등장. 잘 가라고 빌니우스가 나에게 보내준 날씨 선물. 이번 여행에선 숙소가 있는 게디미나스 대로를 제외하면 보키에치우, 필리모 거리를 제일 많이 오갔다.
간밤에 늦게 누웠는데 가방 테트리스를 너무 열심히 했는지, 역시 무적 테이스트 맵 커피가 강했는지, 아니면 이제 여행을 끝내고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좀 싱숭했는지 하여튼 잠이 잘 안왔고 심지어 잠이 들려다 한시 즈음 깨버린 후 할수 없이 약을 반알 더 먹고 간신히 5시간쯤 자고 6시 안되어 깨버렸다ㅠㅠ 깼을땐 내가 어디 있는지도 잘 모름. ‘오늘 떠나는구나’ 라는 자각이 들자 잠이 깨버려서 더 못 잤다. 목욕을 하고서 7시 좀 넘어 이른 조식을 먹은 후 정비를 하고 남은 짐을 다 꾸렸다. 오전에 나갔다 들어와 12시 체크아웃 후 또 놀다가 4시에 공항에 갈까 하다가 마침 영원한 휴가님이 몬에 가신다 하고, 또 숙소 위치도 두번 왕복하기엔 지리적으로 좀 멀어서 그냥 서둘러서 9시에 일찍 체크아웃하고 가방을 맡기고 나왔다.
오늘 날씨가 좋아 기뻤다. 게디미나스, 빌니아우스, 보키에치우를 따라 몬으로 갔다. 몬에서 나온 후 영원한 휴가님은 잠시 집에 들르셨다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나는 그 사이에 트리쿠와 필리모 거리를 따라 내려가 엘스카에 갔다.
한시 전후 대성당 광장 근처 벤치에서 다시 만났다. 그런데 원래 가려던 인도식당이 월욜은 저녁 5시부터 영업이라 아쉽게 실패. (울 회사 근처 맛있는 인도식당 가서 내가 우리 추억의 음식인 매콤한 치킨 티카 마살라 커리를 먹겠다고 다짐!) 필리에스 초입에 있는 Grey라는 다국적음식을 하는 큰 식당에 갔다. 포크슈니첼과 ‘마살라 치킨’이란게 있어 그것과 망고 레모네이드 주문. 포크슈니첼은 맛있었고 마살라 치킨은 샤실릭처럼 꼬치구이로 나왔는데 별로 인도풍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는 잘 먹었다. 망고 레모네이드만 밍밍했다. 음식 양이 넘 많아 남겨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잘 먹고 나왔다.
이후 우리는 토토리우 후라칸에 가서 떠나기 전까지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결국 네시 즈음이 도래. 함께 호텔로 가서 짐을 찾았다. 볼트 택시를 대신 잡아주셨다. 가방을 끌고 호텔 앞으로 나가는데 갑자기 막 눈물이 날것 같고 슬퍼졌다. 그런데 다행히(다행인게 맞나ㅠㅠ) 폴크스바겐 볼트 택시가 1분만에 도착해서 울지 않고 얼른 택시에 탔다. 안 울고 좋지 하며... 사실 정말 뭐라고 표현할수가 없다. 이 여행은 친구가 있어 너무 고맙고 소중하고 더욱 충만했다. 정말 고마워요!
볼트 택시가 공항 가는 길에 나는 예전엔 몰랐던 길을 알아보았다. 기나긴 민다우고 거리를 지나는데 우리가 며칠전 함께 갔던 브루 로스터리 카페와 그릇 상가 근방에 있는 큰 이키와 콤포트 호텔아 보였다. ‘우리 집 가는 길을 지나서 가네요’ 라고 하심. 뭔가 빌니우스를 떠나는 마지막 예기치 않은 선물같은 느낌이었다.
공항에는 잘 도착했는데 공사를 해서 그런지 잘못 내려준건지 입국장 앞이라 황량한 오르막길을 가방 끌고 올라가 출국장까지 가느라 약간 고생. 재작년엔 옆에 있었거나 쉽게 연결됐던거 같은데... 하여튼 이륙 2시간 40분 전 도착했으나 폴란드항공 카운터는 2시간 전에 연다고 해서 기다려야 했다.
바르샤바는 쉥겐구역이라 출국심사가 없어 보안검색대를 금방 통과함. 잠깐 라운지에 갔는데 먹을게 정말정말 없어서 게이트 근처 카페인에 갈걸 후회.
비행기는 폴란드항공답게 30분 연착 ㅠㅠ 그래도 바르샤바까진 가까워서 50분만에 도착했고 기류도 없어 평안한 비행. 어두운 비행기에서 등을 켜고 ‘미운 백조들’을 여러 페이지 더 읽음.
지난번 막 왔을땐 코트야드에 묵었고 이번엔 그옆 르네상스를 예약했는데 여기가 더 좋은 호텔이긴 하건만 너무 내 취향이 아닌데다 샤워하다 보니 샴푸도 다 떨어져 있고(바디젤로 감았는데 찝찝) 방음이 안되어 옆방 아저씨들이 축구를 보는지 넘 시끄럽고 심지어 비행기 소리도 난다. 이상하다, 그때 코트야드는 소리 안났는데... 아니면 그땐 여행 시작이라 덜 민감했었나...
하여튼 늦게 도착하고 씻고 내일 준비를 하고 오늘 메모를 적다보니 어느새 열한시... 빌니우스보다 한시간 늦으니 실은 자정이네. 배고파서 리미에서 샀다가 남아 싸온 감자칩 아까 약간 먹음. 비행기에서 먹을걸 줬는데ㅠㅠ 이제 자야겠다. 갑자기 너무 피곤하다. 부디 렾방 아저씨들이 조용해지길. 오늘 밤은 잘 자고 내일 비행기 연착 안되고 기류 심하지 않고 무사하고 편안한 귀국비행이 되길 기도하며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오늘 12,488보. 8.2킬로. 공항도 포함되어 더 많이 걸었나보다.
디른 사진들은 따로 올렸으니 나머지 몇장으로 마무리.
여기는 황량해보이지만 내가 많이 지나다녔던 곳. 빌니아우스-보키에치우로 이어지는 구역인데 오른쪽 멋없는 건물이 복지부 건물이라 한다. 그것을 알게 된후 ‘지금 복지부 앞 지나는 중’ 이라고 종종 톡을 보냄. (몬이나 돈 폰타나스에서 보기로 했을때) 나름 추억이라 사진도 올려봄.
대성당. 오늘 하늘은 파랬다.
그레이에서 식사. 샤실릭 같았던 치킨 꼬치구이.
포크 슈니첼.
비행기에서 준 밥. 연어타르타르, 미니크루아상, 콜드미트파이와 식초 마리네이드해 오이/당근으로 말아준 서양배. 원래 연어 타르타르 안먹는데 배고파서 막 먹음.
호텔. 외관과 로비는 괜찮은데...
으앙 정신없는 방... 그리고 가구가 다 밖으로 튀어나와 있음... 샴푸 다 떨어지고 흑... 별루 실용적이지 않은 방이라 쫌 실망이지만 공항 옆이니까! 그리고 조식이 맛있다니 그걸 기대하며 자야겠다.
오늘 비행기도 연착되어 바르샤바에 늦게 도착하고 노트북도 부쳐버려서 폰으로는 하루를 차분하게 차근차근 정리하기가 어려워 조금씩 나누어 별도로 올린다.
오늘 몬, 엘스카, 후라칸에 갔다. 후라칸은 내가 22년에 영원한 휴가님과 댓글로 이야기를 나누다 갑자기 빌니우스로 여행오게 된 포스팅의 일등공신이라 그때도 마지막 날 보키에치우 후라칸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눴고 오늘은 토토리우 후라칸에서 석별 직전까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여기서 무슨 얘기를 했나... 책, 옛날 이야기, 지금의 이야기, 가족, 친구, 여행? 후라칸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자 곧 내가 이곳을 떠나고 이제 거의 매일같이 중간지점 어딘가(주로 보키에치우 거리)에서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이 전혀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느낌 없이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지나치게 달착지근한 시나몬티, 영원한 휴가님은 점원이 토닉워터를 왕창 붓고 섞어서 맛이 이상해진 토닉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여기 내가 말차토닉 폭망한 데인데ㅠㅠ’ 하는 나의 한탄을 들으시면서.
우리는 아마 다시 빌니우스에서 만나 또다른 후라칸에서 조우할거에요, 실내든 야외테이블이든. 보키에치우든 토토리우든 새벽의 문이든 바닥분수든 혹은 아직 내가 가보지 못한 후라칸, 그 어디라도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토닉 에스프레소 (나쁜 예)
시나몬 티(나쁜 예)
음료는 둘다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이곳에서 함께 보낸 시간은 좋았다.
그리고 mon. 몬. 여기는 영원한 휴가님이 아침에 아이들 등원을 시킨 후 잠시 쉬어가는 카페였다. 오늘 아침에도 여기서 만났다. 나는 일찍 체크아웃을 하고 몬으로 갔다. 영원한 휴가님은 제일 좋은 자리를 잡고, 나에게 창이 보이는 편한 자리를 내주시고 기다리고 계셨다. 여기는 레몬맛 에클레어가 맛있다고 하셨다. 정말 그랬다. 달지 않고 맛있었다. 전에 내가 ‘이런 대화를 꼭 해야 한다!’ 라고 얘기했던 에클레어에 대한 심도있는 롱테이크 대화까진 못 나눴지만 레몬 에클레어도 초코 에클레어와는 또다른 존재감을 지닌다는 것을 증명했다.
몬은 아침에 만나는 곳. 후라칸은 함께 쉽게 가던 곳, 떠나기 전에 가는 곳. 그런 곳들이 생긴다는 것은 즐겁고 소중한 일이다. 그런 기억을 남길 수 있는 분과 함께 시간을 보낸 것은 더욱!
몬 사진 두장 더. 아 어떡하지, 계속 아침에 몬으로 갈 것 같아. 몬은 특히 서울에 있는 카페들이랑 느낌이 비슷해서 더 그런가보다.
오늘부터 리투아니아는 서머타임이 종료되었다. 새벽 4시에서 3시가 되고 한국과의 시차는 6시간에서 7시간이 되었다. 간밤에 잠들면서 ‘아 그럼 원래 알람대로 해도 1시간 버는 거네’ 하고 좋아했는데 어째선지 새벽 3시 반쯤 깨버렸다. 폰의 시간도 자동으로 적용이 되어 있었다. (네이버는 계속 서머 타임 시간으로 나오다가 여기 시간으로 오전이 지나서야 이 변화가 적용되었다) 하여튼 한 시간마다 계속 자다 깨다 하다가 8시 전에 일어났다. 어쩌면 돌아갈 때가 되어서 그런지도 몰라 흑흑...
실질적으로는 여행의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니(물론 내일도 저녁 비행기라 오후까진 시간이 있지만) 아쉬웠다. 그래서 호텔 조식을 거르고 어제 ‘어 저기 보르쉬도 주네’ 했는데 만석이라 못갔던 필리에스 거리의 Karstos galvos 카페에 오픈시간인 9시에 맞춰 가보기로 했다. 홀리 도넛에서 시르니키와 벨리니, 엘스카에서 오믈렛이나 샥슈카도 생각해봤지만 다 무겁게 느껴졌고 어쩐지 엘스카에서는 음식보다는 커피와 차의 기억만 남기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아침에 따끈한 수프를 먹고팠다(한국인은 국물!) 그래서 8시 40분쯤 숙소를 나섰다.
실제로는 어제보다 한시간 늦어진 시간대이지만, 아침 9시 전의 게디미나스 대로는 매우 한적하고 스산했다. 비가 왔기 때문에 바닥이 젖어 있었고 일요일이라 차도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리고 안개가 끼어 있었다. 우리 숙소에서 대성당 광장까지는 꽤 걸어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천천히 걷고 있는데 토토리우 후라칸을 지날 무렵 대성당에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분명히 재작년에 왔을 때도 저 종소리를 들었는데, 밝은 여름날에 듣는 종소리와 안개낀 늦가을 아침에 텅 빈 대로 너머로 들려오는 종소리는 많이 달랐다. 종소리가 아름다워서 천천히 들으면서 걸어갔다. 영상도 찍었는데 도로의 소음이 겹쳐서 종소리는 잘 들리지 않아 아쉽다. 그리고 대성당 광장에 진입했을 때 기적의 포석 스테뷰클라스를 찾아서 포석을 밟으며 세 번 돌고 소원을 빌었다. 행운이 함께 하기를.
Karstos galvos 카페에서는 보르쉬와 키쉬, 페퍼민트 티로 아침을 엄청 알차게 먹었다. 양이 많아서 보르쉬와 티는 남겼다. 이 얘기는 따로 올렸으니 생략. 그리고는 비르쥬 두오나에서 하얀 팅기니스를 사고파서 필리에스와 디조이를 지나 루드닌쿠 거리로 갔다. 그런데 일요일이라 그런지 하얀 팅기니스는 없고 초코 팅기니스와 캐러멜 팅기니스만 있어 아쉬웠다. 캐러멜은 안 먹어봤으므로 그것을 한 조각 샀다. 엄청 달 것 같아서 한 조각만 삼. 이후 보르쉬와 키쉬 때문에 입가심을 하고 또 카페인도 충전하고 싶어서 거기서 제일 가까운 이딸랄라 카페에 갔다. 한시간 쯤 차를 마시고 책을 읽은 후 하루를 일찍 시작한 여파로 갑자기 졸려서 일단 숙소로 돌아갔다.
방에 돌아와 팅기니스를 꺼내놓고 가방을 어떻게 꾸릴 것인가 생각하며 조금 쉬었다가 영원한 휴가님이 1시쯤 잠깐 나오실 수 있다고 하여 버스를 타고 테이스트 맵에 갔다. 하루하루 시간을 내주시고 만나고 이야기들을 나누며 보낸 나날들이 꿈같고 감사하고 소중하다. 돌아가면 실제로 가장 그리운 건 엘스카, 이딸랄라, 테이스트 맵 등 물질적 실체나 휴식이나 여행이라는 개념 자체보다는 함께 했던 시간들과 온기가 되겠지. 이번 여행 내내 나는 오랜 옛날 생각도 많이 했다. 혼란스러우면서도 빛났던 청춘 시절과 그 당시 걸어 다녔던 서울의 거리들과 기억들. 영화, 책, 음악, 마음.
영원한 휴가님께서 귀가하신 후 나는 내리막길과 공원을 지나 엘스카에 들렀다. 테이스트 맵과 엘스카 이야기도 따로 올렸으니 생략.
오늘은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해 카페를 4곳이나 갔다. 엘스카에서 나와서 숙소로 일찍 들어갔다. 다른 곳에 더 갈 수도 있는 오후였지만 가방도 꾸려야 했고 이래저래 여행을 좀 정리해보고 싶었다. 방에 돌아오니 3시 반 무렵이었다. 트렁크와 기내 캐리어를 끄집어내고 대충 머릿속에서 테트리스를 먼저 해본 후 옷과 물건들을 분류해서 압축팩과 작은 가방 등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사실은 본격적으로 테트리스를 하기 전에 급피곤해져서 침대에 잠시 누워 쉬었다. 이제 이렇게 남이 청소해주고 정리해준 방에 들어가는 것도 안녕이네. 그런데 오늘 시트를 갈아줘서 행복했다. 내일 떠나는데 뭔가 덤으로 선물 받은 기분이랄까. 환경에는 좀 미안했지만(여기는 시트를 4일에 한 번 정도 갈아줌)
가방을 열심히 꾸리다가 배가 고파져서 전에 리미에서 사다놓았던 두부와 컵라면, 햇반 마지막 남은 걸 조금씩 같이 먹었다. 거대 리미에서 샀던 김치가 아주 조금 남아 있어 그것을 먹으려고 열어봤더니 곰팡이가 피고 변해서(하긴 제대로 된 김치는 아니었어) 그것과 남은 음식물, 포장지 등을 들고 잠깐 호텔 밖으로 나가서 거리의 쓰레기통에 버렸다. 여기는 거리에 쓰레기통이 많아서 좋다. 우리 나라는 왜 이렇게 쓰레기통들을 다 없앴을까ㅠㅠ 10월 3일에 비맞으며 도착했을 때 ‘우와 스물다섯 밤이나 자고 간다~’ 하고 좋아했는데 어느새 오늘이 스물다섯번째 밤이네.
가방 테트리스를 대충 마치고 목욕을 했다. 아직 다 마친 건 아니다. 이 메모를 다 쓴 후 노트북도 뽁뽁이로 싸서 트렁크에 넣어야 하고(귀찮아서 항상 트렁크에 넣고 부침), 잠옷과 화장품, 최소한의 세면도구도 내일 아침에 마저 챙겨야 한다. 곧장 가는 게 아니고 내일 바르샤바에서 하룻밤 자고 가기 때문에 기내 캐리어에도 옷과 세면도구, 화장품을 분산해야 함. 그래도 얼추 거의 다 꾸렸으니 아침에 후다닥 하면 된다. 방에서 쉬다가 시간맞춰 체크아웃하고 오후에만 카페에 들를지, 아니면 오전에 나갔다가 들어와 체크아웃하고 오후에 다시 돌아다닐지는 아직 모르겠다. 아무래도 전자가 될 것만 같지만 하여튼 일찍 일어나고 일찍 아침도 먹고 가방도 일찍 꾸리기 완료하려고 한다.
오늘은 10,992보. 5.8킬로. 빨리 들어온 것치곤 꽤 많이 걸었다.
내일 바르샤바 공항 옆 호텔에서 하룻밤 자고 그다음날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때문에 ‘그래도 여행 완전히 마지막 날은 아니야’ 라는 기분이다. 시간이 많을 때는 레이오버가 좋은 것 같다. 이런 경우는 이제 거의 없겠지만. 이렇게 한 달이나 시간을 내서 여행을 온 건 정말 오랜만이다. 마지막으로 긴 여행을 했던 건 2016년이었다. 그전에는 페테르부르크나 프라하에서 몇 달 머무른 적도 있었지만, 2016년에는 여러 가지 힘든 일들 때문에 휴직을 하고 페테르부르크에서 3주, 프라하에서 3주, 이후 겨울에 복직을 앞두고 다시 페테르부르크에 갔었다. 그 이후에는 매년 잠깐씩 휴가를 내고 여행을 갔다.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못 나가다 2022년에 빌니우스에 왔다. 그전에는 리투아니아에, 빌니우스에 오게 될 거라고 상상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 인연이 이번에는 한달 가까이 머무르도록 이어졌다.
빌니우스는 어떤 도시였어? 어떤 느낌이었어? 라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 페테르부르크나 프라하는 나에게 명확한 개념과 실체가 있고 느낌이 있다. 그런데 빌니우스는 철저하게 타자로 머물렀고 동시에 매일을 토요일처럼 보낸 곳이었다. 어쩌면 이 도시는 나에게 도시보다는 사람으로 기억될 것 같은 곳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정말 너무 바쁘고 힘들게 일하다가 어렵게 한 달의 무급휴직을 얻는데 성공했다. 원래는 근속휴직이라 3달까지 쓸 수 있지만 이나마도 정말 어렵게 얻어냈다. 중간중간 업무도 체크하고 일을 약간 하긴 했지만 그래도 내 생각보다는 일을 많이 안 했고 (노력하여) 단톡과 메일의 업무내용들도 정말 중요한 상황이 아니면 가능한 넘겼다. 일을 하지 않고 그것으로 골치썩이지 않고 하루하루 보내는 것은 너무 좋고 쉽고 적응이 잘된다. 하지만 돌아가면 다시 빡세게 일해야 한다. 연말과 내년 초 인사 시즌이 되면 이 휴직의 여파가 어떻게 밀어닥칠지 사실 조금 걱정이 되지만 그래도 나는 헤쳐나갈 수 있을 거야. 리가와 빌니우스에서 보낸 한 달로 몸과 마음을 충전했고 그 힘은 생각보다 더 깊은 곳에 자리잡아줄 거라고 믿어본다.
글은 전혀 쓰지 못했다. 사실 매일매일 돌아다녔고(단 하루도 숙소에만 있었던 적이 없음!) 그날그날의 감각과 경험을 기록하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여기서 남긴 메모들은 모두가 깊은 생각보다는 순간의 경험과 묘사로, 그러니까 기록으로서의 메모들이 되었다. 생각들도 있었다. 하지만 기록이 우선한다. 그리고 때로는 너무 많은 생각들을 하지 않고 그저 하루하루를 걷고 오늘은 어느 카페를 가고 어느 책을 읽고 언제 친구와 만나고 무엇을 먹을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당일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것이 정말로 필요하다. 여기 와서 나는 걱정과 생각의 양과 깊이가 줄었고 매일 많이 걸었고 잠도 한국에서와 비교하면 많이 잤다. 이 모든 것이 감사하고 기쁜 경험이다. 축일 같은 여행이라기보다는 토요일 같은 여행. 그런데 사실 여행이란 축일보다는 토요일인 편이 더 좋다.
그리고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무엇보다도 내가 빌니우스에 오게 되고 또 다시 오게 된 가장 큰 이유를 주셨고 항상 손을 내밀어주시고 곁에서 함께 해주신 영원한 휴가님께 깊은 마음과 감사를 보내드린다. 이런 것은 말이든 글이든 표현하기 어렵다. 고마워요. 또 만나요.
내일 빌니우스에서의 하루를 잘 마무리하고 바르샤바로, 그 다음날 한국으로 무사히 평안하게 잘 돌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며 남은 가방을 좀 꾸리고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 아 그러고보니 10월 여행인데 이 동네의 원래 10월 날씨를 생각하면 정말 생각보다 햇볕을 많이 받았고 파란 하늘도 많이 봤다. 이것도 행운이었다!
... 카페 제외한 오늘의 사진 몇 장으로 마무리.
이건 게디미나스 대로 따라 걷다가 종소리 들으며 잠깐 멈췄을 때 찍었음. 정말 한적하다.
(위 사진은 루드닌쿠 거리 가던 중 발견함. 날씨 때문인가 묘한 유머가 느껴졌다. 원래 농담으로 쓴 건 아니겠지?)
청소해주고 시트도 갈아준 방! 이 방 너무너무 그리울 것 같다. 저 침대가 생각보다 크고 넓고 편함.
이쪽에선 안 찍어본 것 같아서. 이런 그림이 걸려 있다. 재작년에 묵었던 방에도 비슷한 그림이 걸려 있었던 것 같다.
테이스트 맵에서 나와서 엘스카까지 걸어가는 길에 찍은 사진들. 날씨는 스산했지만 많이 춥진 않았다(내가 막 껴입긴 했지만)
다음주쯤이면 여기는 낙엽이 다 질 것 같다.
이 운동화는 겨울용 방수 운동화이다. 예전에 한 켤레 사서 매우 유용하게 잘 신은 후 이번 여행을 오면서 다시 한 켤레 샀다. 그런데 그사이 절판이 되었는지 구하기가 힘들어서 여러 사이트를 뒤져 간신히 득템했다. 오기 전에 딱 한번 길들이려고만 신었는데 매일매일 8천보 이상, 많이 걸을 땐 1만보에서 1만3천보까지 걸어다녔고 축축한 낙엽과 흙도 많이 밟아서 한국에서 일하러 다니는 반년 동안 걷는 만큼은 닳았을 것 같다. 푹신하고 따뜻하고 비도 안 새고. 여행을 지켜줘서 고마워 운동화야. (구두도 한 켤레 가져왔지만 역시나 우리 호텔 레스토랑 갔을 때 빼곤 한번도 안 신음. 꼭 그렇다. 트렁크 자리만 차지하고 흑흑)
코트도 '10월이면 거긴 추울거야, 경험으로 알잖아? 그러니까 가볍고 따뜻한 새 코트가 필요해'라고 스스로를 세뇌해 질렀는데(다른 코트들도 있으니 정말 자기 정당화였음 ㅎㅎ) 내가 좋아하는 컬러는 아니었지만 여기서 정말 요긴하게 잘 입었다. 이거랑 숏패딩 두개 사서 가져왔는데 줄창 입고 다녔음. 가을 점퍼와 롱 카디건은 초장에 몇번 입고 안 입게 되었음. 치마도 추워졌다고 여기 매장에서 샀는데 이것도 정말 잘 입고 다녔다. 한국 가서도 잘 입겠지. 편하고 따뜻하고.
우리 숙소 앞. 숙소가 정말 대로변에 있다. 쇼핑하기 편하고 버스 타기도 편하다. 구시가지에서는 좀 멀지만...
짐 꾸리기 전에 나를 쳐다보던 쿠야로 오늘의 메모 정말 마무리. 쿠야랑 같이 와서 좋았다. 다음에도 또 같이 가자 :) (일단 집에 가면 목욕부터 하고 ㅎㅎ)
테이스트 맵에서 내리막길을 따라 쭉 걸어가다 옆으로 꺾어 조금 더 걷고 공원을 가로질러 내려가면 엘스카가 나온다. 맨처음 엘스카에 갔던 것도 딱 그때였다. 도착한 주의 첫 일요일, 흐린 날. 볼트를 타고 테이스트 맵에 갔다가 나와서 걸어가는 길에 엘스카에 처음 갔다. 첫눈에 사랑에 빠진 카페였다. 아마도 컬러와 스타일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기는 나에게 아마 카페 에벨과 좀 비슷한 느낌으로 남을 것 같다. 에벨보다는 좀더 개방적이고 밝고 쿨하긴 하지만, 여기서 글을 쓰지는 않았지만 책읽기가 좋았다. 처음에는 스케치도 두번이나 했다. 그 이후엔 책을 읽느라 좀 무거운 아이패드는 안 가지고 다니게 되었지만.
오늘은 하루를 일찍 시작했기 때문에 테이스트 맵에서 두시 좀 넘어서 나온 후 숙소로 가는 길에 역시 엘스카에 들렀다. 두시 반 즈음인데도 아직 만석이었다. 1층 입구 테이블에 앉았고 디카페인 플랫 화이트를 시켰다. 오늘은 첨 보는 점원들이 있었다. 이 사람들도 친절하게 잘해주었다. 1층과 바, 주문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책을 좀더 읽고, 오늘의 사진도 좀 정리한 후 카페를 나왔다. 시간이 되면 내일 떠나기 전에 한번 더 들르고 싶지만 만일 그러지 못한다 해도 섭섭하지 않도록 카페를 많이 보고 천천히 플랫 화이트도 마셨다. 그런데 설탕을 넣었는데도 전보다 쓰네. 디카페인이 더 쓴 걸까? 여기서 디카페인 카푸치노와 플랫 화이트를 시켜봤는데 내 느낌인가 모르겠지만 이것들이 더 쓴 맛인 것만 같음. 테이스트 맵 여파인가? ㅎㅎ
디카페인 플랫 화이트. 설탕 투하 전. 오늘도 이키 설탕이 나를 반겨주었다.
책 표지를 싸놓은 빌니우스 지도가 많이 헐었다. 엘스카에서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세상이 끝나기까지 아직 10억년', 피천득의 '인연', 하루키 잡문집(아니, 이건 여기까진 안 가져왔나 긴가민가. 이 책은 무거워서... 근데 가져왔던 것 같기도 하다. 엘스카는 워낙 자주 와서), 그리고 이 '미운 백조들'을 이어서 읽었다.
이 사거리와 빨간 트롤리버스도 그리울 것 같다.
맨 위 사진보다는 현관 쪽이 더 많이 나온 사진.
쿠야도 인사하렴. 쿠야는 내일 기내 캐리어에 먼저 들어가 있어야 하니 엘스카 한번 더 들러도 못 데려오니까 여기서 인사를 했다. 마치 자기가 이 카페 주인인양 당당하게.
커피를 잘 마시지 않는(못하는) 나에게 테이스트 맵은 많이 강력한 곳이라 '무적'이란 별명을 붙여줬는데 막상 떠나려니 여기가은근히 생각날 것 같아 오늘 다시 들렀다. 영원한 휴가님이 오후에 잠깐 나오실 수 있어서 여기서 뵈었다. 이딸랄라에서 숙소로 들어갔다가 잠시 후 버스를 타고 세 정거장을 지나 테이스트 맵에 갔다. 이번에는 라떼를 시켰다. 그래, 그나마 내가 여기서 소화 가능한 건 라떼였어... 라떼도 다른 카페들의 카푸치노 수준으로 강했다. 영원한 휴가님은 내가 '사약'이라고 이름붙인 플랫 화이트를 드셨다. 나는 점심으로 모짜렐라 치킨 샌드위치를 시켰다. 루꼴라도 들어 있었다. 데워줬는데 맛은 무난한 정도. 라떼에 우유가 들어 있어서 샌드위치는 반만 먹었다.
검정색이 잘 어울리는 카페. 여기 때문에 돌아가면 검정 러브라믹스를 살 것 같다고 했는데, 영원한 휴가님이 오늘 잔을 유심히 살펴보신 후 이것은 러브라믹스가 아니라 다른 브랜드라고 하셨다. 그 말에 자세히 보니 손잡이가 다름! 근데 이 브랜드도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나? 결국 러브라믹스를 검정 빨강을 장만하는 게 아닐지... (후자는 엘스카 ㅎㅎ)
커피와 브런치 손님들이 미어터졌지만 그래도 제일 피크 시간은 아니어서 1층에 자리를 잡았다. 번호표도 받았다. 기다려야 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는 많이 기다리지 않았다. 내 샌드위치는 데워주기만 하면 되니까.
다른 카페 라떼보다 확실히 색도 진함!
그리고 설탕도 못 찾음. 흑흑 너무해 커피부심 하며 슬퍼했는데 영원한 휴가님이 설탕 어딨냐고 점원에 물어보니 카운터 위에 있긴 있는데 컵으로 덮어놔서 보이지도 않음. 엉엉... 하지만 설탕 받아서 아낌없이 투하. 설탕 없이 마실 수 없는 커피.
이건 사약 플랫화이트. 두번째 왔을 때 이거 도전했었음. (겁도 없음!)
기다리면서 찍음.
열심히 주문받고 커피 내려주던 점원. 세번째 오니 저분도 낯이 익었다. 영원한 휴가님 말씀으로는 거의 3년째 여기서 일하는 분이라 한다. 베테랑!
이건 우리가 마신 건 아니지만... 첨에 들어갈 때 야외 테이블에 놓여 있던 두개의 잔이 귀여워서.
보르쉬랑 키쉬로 든든한 조식을 먹고 나와서 필리에스와 디조이를 가로질러 루드닌쿠의 비르주 두오나에 팅기니스를 사러 갔는데 하얀 팅기니스가 없어서 캐러멜 팅기니스 한 조각만 산 후 입가심이 하고 싶고 책도 읽고파서 제일 가까운 이딸랄라에 갔다. 그때가 열시 반이 되기 전이었다. 아직 이른 시각이었고 한 단 위에 있는 책상 같은 테이블 하나가 비어서 거기 앉았다. 테이블 위에 막 손님들이 놓고 나간 커피잔과 물잔, 접시들이 가득해서 자리를 잡겠다는 급한 마음에 내가 그것들을 치우고 있는데 가게 운영하는 사장 여인(여인 두명을 자주 봄)이 직접 치워주고 안내해주었다. 이 분이 손님들을 살뜰하게 챙겨서 좋긴 했는데 알바들은 되게 긴장되겠다 싶었음. 오늘은 홍학청년이 없고 아주 친절하고 잘 웃는 곰돌이 같은 여자 점원이 있었다. 엄청 귀여웠다.
얼그레이랑 요거트 케익이란 게 있어서 이건 좀 가볍겠거니 하고 시켰는데 좀 실패함. 흑, 저번 치즈케익은 맛있었는데 이 요거트 케익은 그냥 아무 맛 자체가 안 났다. 달거나 시거나 뭐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혹시라도 빌니우스에 여행을 가셔서 이딸랄라에 가시려는 분께서는 요거트 케익은 패스해주세요.
내일 오후에 바르샤바행 비행기를 타러 가는지라 아마 이딸랄라에 갈 시간은 없을 것 같아서 겸사겸사 오늘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들렀다. 이딸랄라는 처음엔 별로였는데 점차 이미지를 만회해서 막판에는 제일 많이 들른 카페 톱2가 되었다. 아마 빛이 잘 드는데다 책 읽기가 좋아서였던 것 같다. 이딸랄라와 엘스카에서 책 읽기가 가장 좋았다. 여기는 돌아가면 많이 그리울 것 같다.
날씨 좋을 때 영원한 휴가님과 함께 앉았던 이 야외 테이블들도.
파스텔톤의 이 색채들도.
오늘도 여기 앉아서 (단어를 뒤져가며) 책을 열심히 읽음. 엘스카에서도 이어 읽어서 이 책을 67페이지까지 읽었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꼭 끝까지 다 읽어야지.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어제 늦은 점심 먹으려다 만석이라 실패한 Karštos galvos 카페. 오늘 아침 9시 오픈에 맞춰서 안개낀 게디미나스 대로와 대성당을 지나 필리에스 거리로 갔다. 그런데 이미 손님들이 몇몇 자리잡고 있음. 역시 인기많은 카페. 리뷰를 보니 필리에스 쪽에 묵는 관광객들 중 호텔 조식을 신청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기도 하는 것 같다. 내가 워낙 일찍 가긴 했지만 손님이 계속 왔는데 외국인들의 비중이 더 많았다. 아무래도 필리에스 거리가 관광지라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카운터의 점원들이 러시아어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기는 아침과 브런치에 수프가 있어서 선택했다. 어제 지나가다가 보니 우크라이나 보르쉬가 메뉴에 있었다. 보르쉬는 6유로로 마늘기름과 데운 빵, 스메타나를 곁들여준다. 양이 어떨지 가늠이 안돼서 치킨과 볶은 양파 키쉬를 추가하고 페퍼민트 티를 주문했다. 페퍼민트를 좋아하지는 않는데 다른 카페들에서 카페인을 섭취해야 할 것 같아서.
이 카페는 필리에스 초입에 있어서 눈에 아주 잘 띄는데 이제껏 가지 않았던 이유는 의자가 불편해보여서였다. (의자와 테이블이 가느다란 다리로 지탱되는 스타일을 안 좋아함) 내부에 들어가보니 알록달록 원색으로 꾸며져 놀이터 같았다.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았다. 사진은 아주 선명하게 잘 나온다.
원두와 좀 중국이나 대만의 버블티집 느낌 나는 포장지의 허브차, 홍차를 판매했다. 배지 같은 것도 팔았다. 디저트도 여럿 있었다.
보르쉬는 양이 아주 많지는 않았지만 내 위장으로는 사실 저것만 시켜도 됐을 걸 그랬다. 빵을 주니까. 수프 그릇이 기우뚱해서 바로 세워보려 했으나 디자인 자체가 기우뚱하게 되어 있었다. 쏟을까봐 조마조마... 조그만 탁자에 가득가득... (손님 많은 카페라 넓은 탁자 혼자 차지하기 뭐해서 작은 테이블에 앉았더니만... 점원도 어쩔줄 모르더니 키쉬 접시는 옆 테이블에 놔주었음. 흑흑 그냥 샥슈카 시켰어야 되나 ㅎㅎㅎ 근데 샥슈카도 큰 팬이랑 빵 얹은 도마를 주니까 모자랐을 듯.
보르쉬는 그냥저냥이었다. 국물이 묽었다. 소고기가 아니라 닭고기로 육수를 내서 가벼웠는데 닭고기가 좀 오래되었는지 잡내가 좀 났다. 스메타나를 왕창 풀어서 잡내를 가리고 고기는 남기고 감자랑 비트 위주로 건져먹음. 마늘기름은 맛있었다. 여기는 전에 갔던 우크라이나 식당도 그렇고 보르쉬에 뽐뿌슈까를 제대로 주지는 않고 대신 데운 빵과 마늘기름을 따로 준다. 마늘기름/버터에 푹 적셔서 구운 브리오쉬 뽐뿌슈까가 더 좋긴 하지만 이것도 이것대로 나쁘지 않았다. 보르쉬는 100점 만점에 65점 정도...
그런데 키쉬는 맛있었다. 충분히 볶은 양파와 치킨이 잘 어울렸다. 일반적인 키쉬보다 덜 짰다. 대신 많이 촉촉한 편이라 포크로 뜨면 금방 뭉개지므로 평소 먹는 키쉬랑은 좀 식감이 다름. 이거랑 보르쉬랑 먹으니 괜찮았다.
보르쉬는 좀 남기고 키쉬는 다 먹고 카페를 나왔다. 카페 내부 사진 몇 장.
알록달록! 몬드리안 그림 생각남.
Karštos galvos는 '머리에 열이 난다' 비슷한 뜻으로 의역하면 '머리 펄펄 끓으니까 커피 마셔야돼' 정도라고 이해함(영원한 휴가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임. 그러고보니 galvos는 노어에서 머리를 뜻하는 '갈라바'랑 비슷해보이네.
저 파란 의자 테이블이 내가 앉은 자리. 저땐 아직 페퍼민트 티만 나왔음.
다 먹고 나가기 전 쿠야에게도 카페 구경시켜줌. 여태 쿠야가 가본 빌니우스 카페 중 제일 쿠야랑 잘 어울림. 쿠야는 인형이라서 그런가보다 ㅎㅎㅎ
배지랑 이것저것 파는 진열대 귀퉁이에 잠시... 우리 쿠야가 제일 귀엽네. 어린이 손님들이 와서 '엄마 나 쟤 사줘' 할까봐 이 사진만 얼른 찍고 데리고 나왔음 :)
사진은 필리모 거리 중간에 있는 벤치에서, 낙엽이랑 쿠야랑. 쿠야의 퍼스널 컬러는 가을 웜인가보다.
새벽에 깼다가 도로 잠들었는데 뭔가 내가 아주 어렵고 억울하고 슬픈 상황이라 낮고 슬프게 울면서 뭔가를 호소하는 꿈을 꿔서 엄청 피곤하게 일어났다. 지금은 기억이 잘 안 남. 흐흑, 꿈에서 그런 슬픈 상황이 되면 너무 싫어. 뭐 실제가 아니라서 다행이긴 하지만.
오늘은 며칠 만에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다. 사실 오늘도 근처 카페에 가서 조식 먹어볼까 했는데 토요일이라 어디든 만석일 것 같고 또 일어나기가 너무 귀찮아서 꾸무럭거리다가 ‘아, 그래도 호텔 조식엔 과일이 있잖아’ 라는 생각에 내려감. 그런데 오늘의 멜론은 덜 익은 부분이 너무 많아서 많이 잘라내고 먹어야 했고 귤을 한 알 가져와서 방금 까먹었는데 너무 시었다. 오렌지를 줄 때는 달았는데 ㅜㅜ
날씨가 다시 춥고 우중충해졌다. 흐리고 습하고. 내리누르는 날씨. 오늘 해가 난다는 예보도 있었는데 햇살은 하루 종일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모레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어딜 갈까 하다가(웬만한 가고 싶었던 곳들은 다 클리어했다. 주로 카페들이지만. 우주피스는 한번밖에 안 가고) 첨엔 ‘그래도 돌아가면 무적 카페가 생각날지도 몰라’ 하며 테이스트 맵에 마지막으로 다시 들러볼까 했다. 그러나 여기도 브런치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뜩이나 사람 많은데 더 많겠네’ 하며 포기. 일단 가까운 엘스카로 가보았다. 엘스카에서 운좋게 자리를 잡아서 카푸치노를 한 잔 마시고 손님이 너무 많아서 일찍 일어났다.
어디를 갈까, 트라쿠 거리에 가볼까 하고 있는데 마침 영원한 휴가님도 트라쿠 거리의 도서관에 나오신다고 하여 거기서 잠시 보기로 했다. 먼저 도착해서 트라쿠에 있는 드로가스에 들어가 구경을 하다 핸드크림을 두 개 더 샀음. 뭔가 이번 내 기념품은 옷, 스카프, 핸드크림, 카페 종이컵들... 종이컵 외엔 다들 리투아니아산도 아니야 ㅜㅜ
그리고는 새벽의 문 후라칸에 가려다 자리가 마땅치 않아 카페인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곧 돌아가야 하니 무척 아쉬웠다. 카페인에서 나온 후 영원한 휴가님은 귀가하시고 나는 그 근처의 공터 같은 곳에 조그맣게 열린 벼룩시장 좌판을 구경했다. 상인들은 모두 러시아어로 얘기하고 있었고 물건들도 소련시절(로 추정), 90~2000년대 러시아와 동구권의 자잘한 것들, 그리고 오래된 책들 등이었다. 나는 이런 것들을 보다가 귀여운 걸 건지는 것을 좋아하는데 별로 건질만한 건 없었다. 그런데 보석함 같이 생긴 녀석 뚜껑에 트로이츠키 다리의 가로등 램프와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사원이 그려져 있어서 한동안 그놈을 구경하긴 했다. 너무 상태가 안 좋았고 딱히 쓸만한 곳도 없어서 사지는 않았음. 그리고 해골반지들이 있어 그것도 조금 구경... 책들과 신문들은 정말 오래된 것들이 많았고 소련시절 노어 신문도 있었는데 구경만 하고 그냥 나왔다.
낙타 옆에 있는 동그란 놈이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사원과 트로이츠키 사원 램프 그려진 보석함.
해골반지도 잠깐 구경.
이때쯤 빗방울이 아주 약하게 떨어지다가 잠깐 조금 굵어졌다가 도로 사그라들었다. 잠깐 우산을 펼쳤다가 디조이 거리로 들어갔을 때 접었고 부모님과도 통화를 했다. 아빠는 오늘 새로운 장어집을 발굴하여 맛있게 드시고 오셨고 몸도 나아지셨다고 하여 한시름 놨다. 엄마는 매년 쌀을 주문해서 먹는 순천의 농부 아저씨에게 내가 먹을 쌀도 보내라고 연락해두었다고 한다. 다음 주에 내가 도착할 때쯤 쌀도 올 거라고. 사실 여기 오기 전에 쌀이 거의 다 떨어졌었는데 어차피 여행가니까 안 사야지 했었는데 엄마토끼 덕분에 새 쌀을 먹게 되겠네. 그 쌀이 맛있다.
디조이에서 필리에스 쪽으로 가면서 성 파라스케베 정교 사원에도 들러 기도를 하고 나왔다. 지금까지 충만했던 여행에 대해 감사하고 남은 여행의 마무리도 잘되기를, 무사히 평안하게 귀가하고 또 앞날도 모든 것이 좋고 잘되기를.
필리에스에서 뭔가를 먹을까 했는데 치즈케익을 먹어서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았다. 필리에스 초입에 Karstos galvos 라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카페가 있는데 너무 알록달록하고 의자가 안 편해 보여서 항상 그냥 지나쳤었다. 나쁘지 않고 많이 노력한다고 영원한 휴가님이 말씀해주셨었는데. 근데 메뉴에 보르쉬가 있고 연어나 치킨키쉬가 있어서 여기서 점심을 먹어볼까 싶어 들어가보았지만... 역시나 역시나 만석! 하긴 브런치 카페인데다 심지어 필리에스 거리에 토요일 두시 무렵이니... 그래서 포기하고 게디미나스 대로로 접어들었다. 이때쯤 좀 춥기도 하고 피곤했다. 그래서 그냥 리미에 들렀다가 방으로 갔다.
대성당 광장을 지나 게디미나스 대로의 리미로... 10월 초에 왔을 땐 햇살도 나고 나무도 좀 푸릇푸릇한 기운이 있었는데 이제 낙엽도 많이 떨어짐. 한국에 돌아가면 사무실 앞 공원도 이렇겠지.
리미에서 나는 절인 비트 병조림을 샀다. 영원한 휴가님의 꿀팁으로! 나는 여태 몰랐는데 보르쉬를 맛있게 끓이려면 그냥 생 비트가 아니라 절인 비트를 넣고, 사워크라우트를 넣으면 된다고 어제 알려주셨다! 아니 그랬던 건가? 어쩐지 집에서 아무리 레시피대로 끓여도 새빨갛게만 나오고 그 깊은 맛이 안 나서 ‘왜 내가 끓이면 그 맛이 안 날까’ 하고 슬퍼했는데... 오, 일리 있어! 난 생비트 썰어서 도마 다 빨갛게 물들이고... 생양배추 썰어서 넣고... 육수는 좋은 소고기로 냈는데도 그 깊은 맛이 안 나서 스스로를 한탄했었는데! 그래서 마리네이드된 비트 병조림 진열대로 가서 톡으로 막 물어보며 500그램짜리 하나를 사보았다. 사워크라우트는 한국에서도 파니까... 아아 우리나라에도 이런 거 팔면 좋겠는데. (혹시 파나? 컬리에는 비트라페 뭐 그런것만 있던데 좀 달라보임) 그래서 좀전에 가방 꾸릴 때 마지막 남은 뽁뽁이로 이 유리병을 잘 쌌음. 생각보다 이번에 뽁뽁이를 안 챙겨왔네. 역시 짐꾸리느라 정신없어서 부피 줄이느라 그랬나보다. 사진은 비트, 오이 등 병조림들 진열대. 맨 위에 있는 놈들 중 하나를 샀습니다.
그리고 이건 아시아 식품 진열대. 거대 리미에는 너구리랑 순 라면도 있었지만 여기는 김치 신라면만 있다. 볼때마다 ‘대체 저건 무슨 맛일까’ 궁금해서 돌아갈 때 하나 사갈 생각이었는데 영원한 휴가님이 맛없다고 말씀해주셔서 안 샀음. 사실 신라면도 별로 안 좋아해서. 생각해보니 재작년 겨울에 프라하의 중국인 수퍼에서 샀던 ‘신라면 HOT’ 이란 컵라면도 무지무지 맛없고 진짜 매웠음. (이렇게 매운 걸 유럽인들이 어찌 먹는단 말이냐 하고 놀랐었음) 사실 트라쿠 거리에는 중국인이 하는 아시아식품점도 있는데 거기는 한국식품들이 꽤 있는 것 같다. 들어가보지는 않았음.
..
짐이 무거워져서 방으로 들어왔다. 그랬더니 좀 배가 고파졌는데 점심 챙겨먹으러 나가기는 또 귀찮아서 남아 있던 햇반을 데워 리미에서 사온 통조림 참치랑 자잘한 것을 같이 먹었다. 그리고는 오늘은 가방도 좀 꾸려야 하므로 잠깐만 나갔다가 일찍 들어오기로 하고 4시쯤 다시 나갔다. 생각보다 오늘 많이 걸었기 때문에(새벽의 문이 확실히 좀 멀다) 빌니아우스 거리까지만 갔다.
피나비야에 서양배 코티지 치즈 패스트리가 있나 보러 갔다. 오, 이거 원래 제일 먼저 떨어지는데 주말이라 그런가 새로 구워서 내놓은 게 보였다. 근데 손님이 또 무지무지 많았다. 내 앞 손님은 케익 두 개를 가리켰고 점원이 진열장에서 홀케익을 꺼내서 잘라주었다. 이 정도 크기? 더 크게? 하고 손짓으로 물어보면서. 무게를 재서 계산. 아니 그렇구나... 조각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니구나... 나도 저렇게 시켰으면 됐을 것을 괜히 그때 이상한 파블로바 시켜서 폭망했네. 근데 이때 이미 배가 불러서 케익 먹을 위장은 안되고, 사실 서양배 패스트리가 있어서 차 마시고 갈까 했지만 만석이라 자리도 없었음.
이 패스트리의 가격은 3.4유로이다. 그런데 카드로 계산을 하고 막 나오려는데 점원이 조심스럽게 나를 불러서 카드결제기가 문제가 있는지 결제가 다 안돼서 다시 해달라고 요청함. 생각해보니 아까 리미에서도 승인과 취소가 반복되었었음. 내 카드에 문제가 있나 했는데... 이게 아마 카드결제를 할 때 ‘서명을 해주십시오’가 뜨는 결제기가 있고 그런거 없이 다 됐다는 결제기가 있는데 전자는 보통 영수증에 사인을 해주거나, 점원이 뭔가 ‘취소’를 눌러서 서명없이 결제가 되도록 하는 것 같다. 근데 후자의 경우 뭘 잘못 조작하면 결제 자체가 취소가 되는 것 같다(...고 내가 추정함) 왜냐하면 두 번이나 재결제를 해도 다시 취소가 되었으므로... 점원이 당황하며 혹시 나에게 애플페이를 쓰냐고 물어봄. 동전지갑을 탈탈 털자 3.25유로가 있었다. 어쩌죠, 모자라는데... 했더니 괜찮다고 그것만 달라고, 약간 할인이라고 대답함. 점원도 방법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패스트리를 들고 나와서 빌니아우스 거리를 벗어났을 때 퍼뜩 생각남. 아니, 나 5유로짜리 지폐 있었는데. 근데 막 카드 결제 안되고, 애플페이 물어보고 하니까 당황했는지 동전밖에 생각이 안 났음... 하여튼 15센트 할인(..인가?)은 그렇다 치고 내 카드에 문제가 생겼나 싶어 걱정했는데 그 이후 다른 가게들은 무리없이 결제가 되어서 위의 서명 취소 버튼 오작동 때문인 것 같다고 나 혼자 추정함.
이후 숙소 앞 이키에 들러 0.5리터짜리 물 한병과 아이스크림 한 개를 샀다. 점심을 세시 즈음 먹은 터라 뭔가 애매해서 스트라치아텔라처럼 바닐라에 초코 박혀 있는 콘을 사먹고 좀전에는 15센트 할인받은 서양배 코티지 치즈 패스트리를 먹음. 이게 밥보다 칼로리는 더 높은 거 아닌가ㅜㅜ
이게 그 아이스크림. 맛은 무난했다.
방에 돌아와 목욕을 한 후 너무 하기 싫은 일, 즉 가방 꾸리기를 좀 했다. 아직 테트리스까진 아니고 일단 옷들을 추가로 모아서 압축팩에 넣었다. 내일과 모레 입어야 할 옷이 남아 있어서 다 넣을 수는 없고, 추우니까 내일까진 코트를 입어야 할 것 같다. 코트 부피가 있으니 어차피 테트리스는 내일 밤에 해야 할 듯. 빨래도 오늘까지만. 그리고 뽁뽁이로 싸야 할 것들을 좀 쌌다. 사실 이번에 별로 뭘 산 건 없어서 그냥 내일 밤에 다 쑤셔넣으면 될 거 같긴 하다. 근데 별로 안 샀는데도 자잘한 게 있긴 있네... 물론 부피 큰 옷도 있다. 스웨터, 치마, 카디건. 그리고 스카프. 스웨터는 부피가 크니까 일단 먼저 압축팩에 넣었는데 치마는 내일 입을 것 같아서 놔둠. 저 치마는 바르샤바행 비행기 탈 땐 그냥 입고 탈까 생각 중인데 치마를 입으면 공항에서 가방 끌기가 불편할 것 같기도 함. 일단 내일...
이번 여행에 대해 찬찬히 생각하며 쓸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다. 내일 밤에 정리하는 게 좋겠는데 아마 가방 테트리스를 하느라 짬이 나지 않을지도. 그런데 오늘은 이미 졸리네... 참, 내일부터 리투아니아는 서머타임이 종료되어 한국과의 시차가 6시간에서 7시간으로 바뀐다. 그럼 바르샤바랑은 8시간 차이가 나겠네.
오늘은 11,079보. 6.4킬로. 별로 한 건 없는 것 같지만 엘스카에서 필리모-트라쿠-새벽의 문-다시 숙소로 오느라 그 반경이 생각보다 좀 길었고 또 오후에 빌니아우스에도 한번 더 다녀왔다. 아아 이제 내일 지나면 월요일 오후엔 공항으로 떠나야 해. 내일 뭘 할지 아직 생각은 못했는데... 월요일엔 체크아웃 후 아마 엘스카에 들르겠지. 내일이나 월요일 중 이딸랄라도 한번 더 가야겠다. 지금은 그 정도... 아아 아쉬워.
이건 순서대로 카페인, 후라칸, 엘스카의 종이컵들. 카페인 컵은 오늘 영원한 휴가님이 계산을 하시면서 점원에게 친구가 기념품으로 갖고파하는데 컵 하나만 주세요 하고 부탁해서 얻어주셨다. 넘 감사해요! 엘스카 컵은 초반에 컵이 다 떨어졌는지 저기다 플랫 화이트 담아줬던 건데 방에 가져와서 잘 씻다가... 저 기사 그림이 물에 번져버림. 흑흑... 얘네들 잘 넣어서 가져가려는데(빗이나 자질구레한 거 담아놔야지), 은근히 저게 다 찌그러질 것 같아서 심지어 얘들은 트렁크도 아니고 기내 캐리어에 넣어갈 것 같다! 종이컵들의 출세! 쿠야랑 같이 ㅋㅋ
이 방에서 오래 묵었다. 한 호텔에서 이렇게 오래 지내본 건 처음이다. 보통은 한달 이상 있을 땐 기숙사, 혹은 아파트를 빌렸고 짧은 기간이더라도 호텔을 두어번 바꾸곤 했으니까. 그런데 짐이 많기도 했고 바르샤바에서 레이오버하면서 하룻밤씩 서로 다른 공항 근처 호텔에서 자고, 또 리가에서도 다른 호텔에서 자는지라 빌니우스에서도 중간에 조금 더 좋은데로 한번 옮길까 했던 마음이 줄어들었다. 평이하게 보내기 좋은 공간이었다. 돌아가면 많이 그리워질 것 같다. 매일매일 청소해 주세요를 걸어두고 나갔음. 침대도 편하고 넓다. 이제 오늘이랑 내일 밤 이틀만 자면 이 방이랑도 이별이네. 인사는 월요일에 떠날 때 하는 걸로.
엘스카에서 나왔을 때 영원한 휴가님이 도서관에 예약해둔 책을 받으러 나오신다고 해서 트라쿠 거리에서 만났다. 잠깐 시간이 난다고 하셔서 새벽의 문 근처 후라칸에 다시 가보았는데 자리가 거의 없었고 디저트나 먹을 것도 텅텅 비어 있고 구석에는 뭔가 촬영을 했는지 마이크와 앰프, 카메라가 그대로 세팅되어 있었다. 후라카나스는 없었고 다른 점원이 있었다. 그리고 족히 7~10개는 되어보이는 커피잔과 찻잔, 접시가 설거지가 전혀 되지 않은 채 바 한구석에 쌓여 있었다. 설거지 안하고 미뤄놓는게 후라칸 스타일인가, 저 촬영한 사람들이 먹었나 하면서 우리는 그 후라칸을 포기하고 나와서 근처에 있는 카페인에 갔다.
이 카페인은 새벽의 문 근처에 있는데 옛 은행 건물이라고 한다. 역시나 모퉁이에 자리잡고 있는데 층고가 높고 소파도 푹신하고 타 지점들과는 분위기가 다르고 좀더 깔끔한 느낌이었다. 주말이어서 그런가, 새벽의 문 근처에서 아주 잘보이는 카페라서 그런가 계속해서 손님들이 들어왔다. 카페인도 여러 지점을 가봤는데 색채나 디자인 등이 일관적이긴 하지만 건물 자체의 특성에 따라 약간씩 달라지는 것 같다. 이 카페인은 은근히 마음에 들었다.
바깥에서 보면 이렇다.
사진을 너무 대충 찍어서 이쁘게는 안 나왔지만. 영원한 휴가님은 플랫 화이트와 초코 에클레어(내가 어제 이것을 숙소 근처 카페인에 딱 하나 남아 있는 걸 발견하고 사와서는 그만 밤중에 먹어버렸다!), 나는 실론 티와 치즈케익을 먹었다. 초코 에클레어는 간밤에 먹었으니... 치즈케익을 시킨 이유는 카페인이 빌니우스에서 제일 먼저 치즈케익을 선보인 카페라는 말씀을 전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항상 카페인만 가면 초코 에클레어만 찾았고 ㅎㅎㅎ 그래서 '가기 전에 최초의 치즈케익을 먹어보자' 란 마음으로 선택. 생각보다 맛있었다. 무난하고 꾸덕한 치즈케익이었다. 커피랑은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빌니우스 최초의 치즈케익!
내부 사진 두 장.
다 먹어치우고 일어날 무렵에야 '아 맞다 쿠야도 왔는데' 하며 앉혀주었다. 쿠야가 '야, 다 먹었잖아! 나를 이렇게 경시해도 되는 거야?' 하며 못마땅해하는 것 같음.
11시 반이 넘어 느지막하게 방에서 나왔다. 어디를 갈까 고민했는데 몇군데 다시 들러볼까 한 카페들은 모두 브런치를 하고 있어 만석일 것 같았다. 테이스트 맵도 브런치를 한다고 해서 예전의 일요일 오전 기억에 '아 가봤자 장난아니겠는걸' 하는 생각에 일단 가까운 엘스카로 가보았다. 여기도 주말 이 시간대에는 자리가 거의 없지만 그래도 가까우니까 혹시나 해서. 만약에 자리가 없으면 카페인이나 뭔가 다른 데 가야지 하면서.
다행히 엘스카 1층에 자리가 있었다. 입구 쪽 테이블과 창가 쪽 테이블 하나가 비어 있어 얼른 창가 테이블에 앉았다. 이 자리는 앉아보지 않았던 자리라서. 여기는 창문이 커서 빛이 아주 잘 들어오기 때문인지 거의 항상 차 있다. 나는 2층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 이 자리에 빨간 의자가 있어 좋아하며 앉았음.
카푸치노 작은 사이즈를 주문하고 설탕을 가지러 갔다. 오 그런데 드디어 여기 설탕 바뀌었네! 그런데 이키 설탕... 보통 음식점이나 카페는 설탕을 도매로 주문해다 쓸 것 같은데 이건 아무래도 길 건너편에 있는 이키 슈퍼에서 급조해 사온 것 같다. 하긴 그저께까지 갔을 때마다 설탕 봉지를 뜯으면 설탕이 굳어져 있었어... 아마 마지막 남은 오래된 설탕이었던 것 같다. 그 설탕이 다 돼서 급조한 것 같음. 이키 가서 빨리 사오자~ 하면서. 드디어 새로 산 설탕이라 그런가 이건 습기로 굳어져 있지 않고 아주 잘 뿌려졌음. 이 이키 설탕봉지는 <미운 백조들> 책갈피로 활용.
이 자리.
쿠야도 당당하게. 자기가 이 카페 주인인 것처럼. 쿠야야, 이제 한국 돌아가면 카페 자이칙 밖에 없는데 너 만족할 수 있겠니? ㅠㅠ
창가 배경으로도 찍어봄. 여기는 사거리 모퉁이에 있는 카페라서 계속해 트롤리버스들이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빨간 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다.
이렇게... 빨간 버스...
<미운 백조들>을 이어서 읽었다. 흥미진진해지고 있는 파트에서 책을 덮고 일어났다. 오늘 사람이 아주 많았다. 그리고 토요일이라 모두가 브런치를 먹으러 왔다. 다들 빨간 번호표를 테이블에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내 카푸치노도 늦게 나왔지만 나보다 먼저 온 남자 손님은 내가 나갈 때까지도 밥이 안 나와서 하염없이 빨간 번호표를 놓고 기다리는 것 같았다. 카페가 크지 않은데 브런치를 다들 시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긴 했다. 손님들이 들어왔다가 자리가 없어서 그냥 나가기도 했다. 엘스카의 브런치를 고대하며 토요일에 찾아온 손님들을 생각해서 나도 마침 카푸치노를 다 마셨기에 한시간 안되어 일어났다. 원래는 오후 2~4시 사이에 왔으면 좀 한적할테지만.
이키 설탕과 카푸치노 풀샷. 설탕봉지가 이쁜 건 아닌데 이키 설탕이란 게 좀 재미있었다. 설탕 떨어졌다고 막 길 건너 슈퍼에 사러 가는 점원들이 상상돼서 그런가보다.
화장실에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 3~4일 전에 왔을 때에도 변기 일부가 좀 떨어져서 덜컥거리고 있었는데 그대로인데다 문구만 추가됨. 근데 이 문구 붙일 시간에 수리를 하면 되지 않을까, 별로 어려운 건 아니고 새로 사서 갈아끼우면 되는 건데... 하긴 쓰지 못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조금 불편할 뿐이지. 러시아 같았으면 '기술적 이유로 화장실 못 씀' 이렇게 붙어 있었을지도 몰라. 여기는 쓸 수는 있지만 안 고치고 안내문구를 친절하게... 카페 스티커도 아낌없이 붙여서. 우리나라 같았으면 손님들 민원과 별점 테러가...
엄청 피곤하게 잤던 것 같다. 어제 많이 걷긴 했나보다. 7시간 가량 잔 것 같긴 한데 중간에 안 깨고 잤으니 그 정도면 나에게는 양호한 수면이었음.
영원한 휴가님이 불러주신 덕분에 오늘도 아침에 게으름 피우지 않고 나가서 심지어 백스테이지 카페의 브런치에 성공하여 힙한 빌니우스인의 아침을 보냈다.
그리고는 이딸랄라에 가서 ‘테이스트 맵보다 세배는 연할 걸요’ 라고 하셨던 이곳의 커피를 시도. 플랫 화이트를 시켰는데 확실히 연해서 별로 쓰지 않았다(그래도 설탕은 넣었습니다) 영원한 휴가님은 에스프레소 한잔 드시고 들어가시고 나는 이딸랄라에 앉아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미운 백조들’을 이어 읽다가 노어를 보니 급 당분이 필요해져서 디저트를 하나 추가했다. 사이즈 큰 케익은 과할 것 같았고 안 먹어본 좀 작은 걸 먹고파서 크렘 브륄레를 주문(케익보다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 이렇게 하여 나는 오늘따라 손님이 많아서 그런지 금요일이라 그런지 많이 피곤해 보였던 친절한 젊은 직원을 더 피곤하게 만들었다. 조그만 홍학 문양들이 이쁘게 그려진 셔츠를 입고 있는 청년이라 나는 그를 ‘홍학청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우리 회사에서 내가 데리고 일했던 인턴 직원과 비슷한 스타일이라 어쩐지 정이 갔다.
그런데 우리는 맨첨 주문하면서 ‘플랫 화이트는 안에서 먹을 거고 에스프레소는 테이크아웃으로 밖에서 먹을거에요’ 라고 주문. 안에 자리를 맡아놓은 후 잠깐 야외테이블로 나간 탓에 홍학청년은 두 개의 컵을 들고 야외로 나와야 했다. 그런데 잠시 후 내가 실내 테이블로 옮긴 후 노어의 압박으로 디저트를 주문하면서 하필 크렘 브륄레를 고르는바람에 홍학청년은 ‘아... 이거 여기서 드실 거죠?’ 라고 물었고 나는 ‘그럼요~’라고 대답. 근데 나는 그때 잠시 이 디저트는 겉을 토치로 그을려 설탕코팅을 해줘야 한다는 것을 망각... 판매하는 원두와 잔을 구경하고 있는데 바 너머를 보니 홍학청년이 열심히 토치로 나의 크렘 브륄레의 캐러멜 코팅을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구 우리 인턴 닮은 저 어리고 병약해 보이는 애가 힘들겠구나. 다 되면 저 디저트 접시는 내가 받아서 가야겠다’ 라고 생각해서 바 앞에 어슬렁거리고 있었는데 동선이 안 맞아서 결국 홍학청년은 크렘 브륄레 접시를 들고 한 단을 올라와 내 테이블에 놓아주고 감(심지어 내가 안에서도 테이블도 한번 옮겼음) 시킬 거면 한번에 시키지... 하는 맘이 들었을거야 흑흑... 그래도 내가 이딸랄라 자주 와서 단시간 내 매상 올려줬으니까 그러려니 하렴(홍학청년 : 나는 알바란 말이야! 대체 우리 카페는 어째서 크렘 브륄레 같은 귀찮은 디저트를 파는 거야, 그거 없어도 다른 -비싼- 디저트 많잖아 엉엉)
하여튼 이딸랄라에서는 독서가 잘되므로 ‘미운 백조들’을 10페이지나 읽었다. 그깟 10페이지라 하시겠지만 노어라서 힘들다고요 흐흑... 그래도 카페를 전전하며 조금씩 읽어서 이미 53페이지 진입! 여기까지 읽는 데 이딸랄라가 큰 공헌! 아침에 일찍 나온 덕에 12시 무렵 이미 카페 2곳 클리어하고 브런치에 커피도 마시고 책도 읽고...
카페에서 나와 천천히 빌니아우스 거리로 진입했다. 일찍 일어나 나왔기에 좀 피곤했고 일단 방에 좀 가서 정비를 해야 할 것 같아서. 빌니아우스에선 유로코스에 들러 나뚜라 시베리카의 자매 브랜드에서 나온 핸드크림을 하나 샀고, 이후 게디미나스의 드로가스에서는 오자마자 샀던 핸드크림을 하나 더 샀다. 이 상표 핸드크림이 끈적이지 않고 무난하고 좋다. 우리나라에도 들어오면 좋겠는데. 록시땅처럼 리치하지는 않지만 손씻고 틈틈이 발라주기는 좋다. 그리고 할인행사 중인 록시땅에도 잠깐 들르고, 숙소 앞 이키에 들러 팀바크 복숭아사과주스를 발견해 그것과 함께 맨날 볼때마다 ‘저건 무슨 맛일까?’ 하고 궁금했던 ‘코리안 바비큐맛’ 볶음컵라면을 사서 방에 돌아옴. 1시 무렵쯤 됐던 것 같다. 청소가 다 되어 있어 뿌듯했다. 흐흑, 이제 돌아가면 청소 아무도 안 해줘, 우렁이 없어. 내가 다 해야돼, 그나마도 토요일에 한번 몰아서 해야 돼. 시트랑 이불도 다 내가 빨고 널고 갈아야돼 흐앙...
(이게 유로코스랑 드로가스에서 산 나의 소박한 기념품 핸드크림 ㅎㅎㅎ)
방에 돌아와서는 간단히 씻고 그 코리안 바비큐맛 볶음컵라면을 먹어보았다. 아니 이게 무슨 코리안 바비큐야. 간장 냄새가 물씬 나고 어딘가 잡채와 나물 양념 맛이 약간 나고.. 끝맛은 비빔면 맛도 조금 났는데 하여튼 맛이 없었다. 흐흑... 그래서 반밖에 못 먹음. 여기서 먹어본 한국 스타일 붙인 음식들 중에선 아침의 김치 오믈렛이 제일 나았던 걸로 결론.
그리고 가방을 아주 조금 꾸렸다. 꾸린 것도 아니고, 이제 며칠 안 남았으니 안 입을 것 같은 옷 일부를 미리 개켜서 트렁크 속 압축가방 안에 넣어두고 책 두세권, 며칠 전에 샀던 리넨 기념품을 넣어둔 게 전부임. 근데 두꺼운 옷들은 전부 남아 있으므로 꾸린 거라고 할 수도 없다만. 나머지는 내일이랑 모레!
이후 방에서 좀 쉬었다. 내가 머무르는 호텔은 사실 레스토랑이 유명한 곳이다. 호텔 자체보다 동명의 레스토랑과 시그니처 메뉴가 유명함. 소련 시절인 1959년에 게디미나스 대로에 오픈한 이래 빌니우스의 유명 레스토랑으로 역사적인 곳 운운 하고 호텔 책자에 적혀 있는데, 호텔의 자기 자랑만은 아니고 유서깊은 곳은 맞는 것 같다. 좀 어르신들이 오는 곳이라고 해야 하나. 여기는 키예프식 치킨 커틀릿(영어로는 그냥 치킨 키예프라고 한다. 아 이제 키이우라고 해야 하나ㅜㅜ) 나는 이 식당에서 매일 조식을 먹으므로 굳이 식사를 따로 해본적은 없었는데 막상 갈 때가 다가오니 ‘아니 근데 유명식당이 딸린 호텔에 25일이나 묵었는데 시그니처 메뉴를 안 먹어본 것도 아쉽지 않나’ 하는 생각에 저녁을 먹어보기로 했다. 토요일에 갈까 했는데 토요일은 이미 만석이라 오늘 이른 저녁으로 당일예약을 함.
그래서 영원한 휴가님과 함께 5시에 유서깊은 네링가 레스토랑에서 시그니처 메뉴인 치킨 키예프, 그리고 내가 좋아하지만 음식점마다 편차가 있는 비프 스트로가노프(소련 때부터 있었던 레스토랑이면 맛있을 것 같아서), 거기에 화이트 와인 한잔과 핑크 레모네이드 한잔 주문. 담당 서버는 나의 주문에 ‘엑설런트 초이스’라고 했다. 주변 테이블에서도 치킨 키예프 주문이 대세였으니 시그니처는 시그니처인가보다. 그리고 새우 플랑베 요리가 있어 두어번 근처 테이블에서 불쇼가 펼쳐짐. 아 저거 때문에 저녁에 환기시키려고 내 방 창문 열어놓으면 막 연기랑 맛있는 냄새가 올라온 건가!
음식이 나왔다. 레스토랑 조명도 그렇고 원래 얘네들이 옛날 러시아/우크라이나 요리인데다 소련 시절 생긴 레스토랑이라 그런지 음식 비주얼은 안 이뻐보이지만... 치킨 키예프 맛있었다. 이 레스토랑은 사진과 같이 커틀릿 끝을 뾰족하게 만들어주는 게 특징인 것 같다. 커틀릿을 가르자 치킨 키예프의 상징인 버터기름이 주르륵 아주 풍성하게 흘러나왔다(맨첨 러시아에서 이거 시켰을 때 이 기름 흘러나오는 것에 기절초풍했었음 ㅋㅋ) 그런데 느끼하지 않았고 맛있었다. 아쉽게도 비프 스트로가노프는 소스에 너무 토마토가 많이 들어가서 소고기 자체에서 나오는 녹진한 갈색 소스 맛이 덜했다. 양도 많아서(식전빵에 가니쉬 야채랑 감자 등등까지 먹느라) 스트로가노프는 남김. 그래도 배부르게 잘 먹고 만족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 호텔의 유명 레스토랑의 시그니처 메뉴도 클리어하여 오늘은 아주 뿌듯한 하루가 되었다.
영원한 휴가님이 귀가하시고 나는 목욕과 머리감기, 말리기 등 귀찮은 일을 마치고 조금 늦게 오늘의 메모를 쓰고 있다. 아 이제 주말 이틀 지나면 월요일 저녁에 떠나야 해. 흑흑... 그래도 정말 충만한 여행이다. 내일은 해가 잠깐 난다는데(원래 오늘 해 난다고 했는데 안 났음) 부디 잠깐이라도 햇살이랑 파란 하늘 볼 수 있기를.
오늘은 7,951보. 4.8킬로. 보키에치우 거리 왕복 정도에 저녁도 호텔 레스토랑에서 먹어서 오늘은 어제의 절반 가량만 움직였음.
나머지 음식 사진 몇 장으로 마무리. 근데 먹느라 사진 진짜 대충 찍었음. 흐흑 원래 비주얼도 그렇게 이쁘진 않답니다. 맛있으면 되지...
이게 비프 스트로가노프와 가니쉬. 토마토 맛이 너무 강해서 아쉬움.
이건 곁들여준 야채. 익힌 거 달라고 해서... 근데 저렇게 콩을 줄 거라고는 생각 못했음. 중간은 자두 조림. 이건 맛있었다.
주르륵! 치킨 키예프! 이것을 치킨까스나 코돈부르 돈까스 같으리라 상상하고 시키는 분들은 첨엔 좀 놀랄 수 있습니다.
어제 백스테이지 카페가 가는 족족 만석이라 포기하고 숙소 근처 영화관에 딸린 분점에 갔다는 이야기를 썼다. 그런데 오늘 어떻게 자리가 있어서 이 인기많은 카페에서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오늘도 8시 전에 깨어났는데, 조식을 먹으러 내려가야겠지 하며 뒹굴고 있는 중 영원한 휴가님이 나와서 아침 먹지 않겠느냐고 하셔서 나는 '그럴까, 어차피 깼는데' 하고 혹해서 얼른 씻고 방을 나섰다. 원래는 몬에 다시 가서 이번엔 간단한 크루아상 같은 빵을 먹을까 싶었는데 영원한 휴가님이 몬이 아니라 우리가 예전부터 조우하는 장소로 잘 활용한 돈 폰타나스(보키에치우 거리의 분수에 우리가 붙인 이름. 예전에 아이들이 이 분수에서 동전을 주웠기 때문에 돈 분수라는 뜻으로 ㅋㅋ) 앞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어딜 갈까 하다가 바로 앞에 있는 백스테이지 카페에 다시 도전해보기로 했다. 설마 9시밖에 안됐는데 벌써 만석이겠어? 하면서.
그런데! 출입구에 또 줄이 가득 늘어서 있고 우리 앞의 영어를 쓰는 두분은 우리에게 '사람이 너무 많네요' 하고 아쉽게 웃으며 포기하고 떠났다. 나는 '에이 그럼 미련없어요. 우리 몬이나 테이스트 맵에 가요' 라고 했는데 안에 잘 보니 뭔가 비어 있는 테이블이 있었다. 우리 앞에 줄선 사람들은 자리를 맡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먼저 안으로 들어가 조그만 빈 테이블을 잡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빌니우스 도착 22일만에 백스테이지 카페 입성 성공. 아니 여기 이렇게 어려운 곳이었다니! 예전엔 몰랐었네.
여기는 브런치 메뉴가 많다. 그런데 브런치에 김치 오믈렛이 있어서 전부터 궁금했다. 크루아상이나 하나 먹지 했었던 나는 '김치 오믈렛 궁금하니 도전해보겠어요~' 라고 마음이 바뀌었다. 다른 브런치에도 사이드메뉴로 김치를 3.5유로엔가 내주고 있었다. 신기신기! 그래서 김치오믈렛과 페퍼민트 티, 영원한 휴가님은 플랫 화이트와 체리파이를 주문.
김치오믈렛이 나왔다. 앗 생각보다 김치가 그래도 그럴듯한 볶음김치야... 막 맛있고 잘만들고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볶음김치였고 심지어 많이 넣어줌! 계란은 2개와 3개 중 고를 수 있었는데 나는 2개로 만들어달라고 했다. 거기에 빵 한조각과... 이게 뭐지? 하고 처음에 혼란을 일으킨 소스 같은 게 나왔으니... 소스 치고는 묽은데, 아니 이거 설마 참기름인가? 냄새를 맡아보니 참기름이었다! 참기름을 마치 올리브유나 발사믹처럼 종지에 상당히 많이 담아줌. 우리는 깜짝 놀랐다. 어, 참기름 비쌀텐데... 참기름 이렇게 먹는 거 아닌데... 우와, 비싼 식재료 이렇게 막 써도 되나?
하여튼 그래서 나는 심지어 빵을 참기름에 찍어먹기도 해보았다. 괴식은 아니었고 먹을만은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참기름 너무 많이 줌. 그럼 여기 사람들은 저 참기름을 다 닦아먹는건가? 우리는 '저 참기름이면 간장계란밥이 몇그릇이야...' 하며 웃었다. 김치 오믈렛과 체리 파이도 나누어 먹었는데 나름대로 맛있었다.
먹는 동안에도 손님이 좀 빠졌다가 또 꽉 차기를 반복했다. 로컬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많았다. 여기는 빌니우스의 카페라기보다는 활기찬 분위기가 좀 미국이나 뭔가 프렌즈 같은 시트콤에 나오는 카페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은 제각각 무리지어 신나고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뭔가를 먹고 마시고, 카운터와 바에 있는 점원들은 젊고 예쁘고 활기차고. 좀 업되어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영원한 휴가님은 여기는 모여든 사람들끼리 좀 큰소리로 얘기를 하는데도 각자의 대화는 또 잘 들리고 나름대로 작업도 잘 되는 것 같다고, 이런 분위기 때문에 손님들이 몰리는 것 같다고 하심.
그리하여 나는 삐쳐있었던 백스테이지 카페 보키에치우 거리 본점에도 재입성에 성공하게 되었다. 김치 오믈렛과 카페 사진 몇 장.
디저트가 많지는 않다. 전에 먹었던 티라미수와 쿠키는 별로였는데 오늘 체리 파이가 달지 않아서 의외로 괜찮았음. 커피는 묽고 맛이 그냥저냥이라고 하신다.
이게 체리파이.
두둥. 김치 오믈렛, 빵, 그리고 참기름!
오믈렛 위에 치즈를 갈아서 뿌려줬다. 깨도 뿌려주고 ㅎㅎㅎ 김치도 저렇게 아낌없이 넣어주었다. 근데 이 김치가 리미 김치보다 훨씬 낫네. 타마고는 차라리 여기를 벤치마킹하라, 계란밥을 브런치로 내주느니...
오늘은 여행 온 이래 가장 부지런했던 하루였다. 아침 8시 안되어 일어났고 목욕을 한 후 8시 45분에 방을 나섰다. 호텔 조식 대신 어제 갔던 카페 mon.에서 아침을 먹어보기로 했다. 여기는 영원한 휴가님이 아이들을 등원시킨 후 가끔 들르는 곳이라고 하여 일찍 조우해보기로 함.
날씨는 흐리고 우중충했다. 어제 바람 불어서 떨었던 기억 때문에 몇겹으로 껴입고 기모 스타킹을 신고 코트에 새로 산 스카프까지 두르고 나왔기 때문에 별로 춥지는 않았지만 기압이 낮고 몸이 무거워지는 날씨였다. 비온다는 예보는 없었지만 보키에치우 거리 쪽으로 걸어가는 동안 가느다란 비 몇 방울이 천천히 떨어졌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게디미나스 대로와 빌니아우스 거리, 보키에치우 거리 등 도로와 넓은 거리를 걷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출근 시간대의 게디미나스 대로는 차들로 붐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대로에 차들이 밀려 있는 걸 처음 봤다. 흐려서 길은 어둑어둑했다. 페테르부르크에서도 그렇고 물론 서울에서도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또 다른 느낌이기도 했다.
어둑어둑한 아침이면 일찍 연 카페들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불빛들이 가장 매혹적이다. 사진은 몬 카페로 가는 길에 찍은 카페인의 창문. 엄청 들어가고 싶게 생겼다!
이런 풍경을 보면 챈들러가 생각난다. 챈들러는 <기나긴 이별>에서 늦은 오후/이른 저녁의 바가 좋다는 이야기를 등장인물의 대화를 빌어 굉장히 멋지게 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여서 오후의 한적하고 따스한 바에서 칵테일 한 잔 하는 것을 좋아한다. 바에 대한 이러한 나의 기분을 카페로 치환하면 아마 그건 이런 어두운 아침의 불빛이 어른거리는 카페에 대한 마음과 비슷할 것이다. 예전에도 두어 번 발췌했지만 다시 올려본다. 레이먼드 챈들러. <기나긴 이별> 이건 읽어도 읽어도 명문임.
“I like bars just after they open for the evening. When the air inside is still cool and clean and everything is shiny and the barkeep is giving himself that last look in the mirror to see if his tie is straight and his hair is smooth. I like the neat bottles on the bar back and the lovely shining glasses and the anticipation. I like to watch the man mix the first one of the evening and put it down on a crisp mat and put the little folded napkin beside it. I like to taste it slowly. The first quiet drink of the evening in a quiet bar – that’s wonderful.”
발걸음을 재촉해 상당히 긴 빌니아우스-보키에치우 거리를 지나 미칼로야우스 거리로 접어들어 몬으로 갔다. 영원한 휴가님은 먼저 오셔서 더블 에스프레소를 시키신 후 내가 나눔한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10억>(줄여 부르는 제목)을 읽고 계셨다. 이 책에 대해서라면 할 얘기가 너무 많다 :)
몬에서 아침을 먹은 후 나왔는데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너무 졸려서 방으로 들어가 좀 눈을 붙일까 하다가 일찍 나온 게 아까웠고 영원한 휴가님이 집 근처 그릇 상가에 가셔야 하는데 그 근처에 자주 가시는 카페가 있다고 하셔서 따라갔다. 오르막길을 따라 쭉 올라가니 며칠전 공원 계단을 따라 올라가서 타마고와 막시마를 발견했던 그 윗동네 쪽이었다. 그래서 나는 빌니우스의 관광지가 아닌 주택가와 회사와 상가가 있는 동네도 가보게 되었다. 빌니우스 주거지, 오피스 지대 투어라고 해야 하나 :) 그릇 도매상에도 들어가 보았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음식점용 식기와 물건들을 파는 곳이었다. 이 주변은 블라디보스톡에서 처음 묵었던 루스키 섬의 마린스키 극장 근처 아파트 지대를 조금 연상시켰다. 아래 사진이 그 식기 가게.
브루에서 나왔는데 아직 이른 오후였다. 날씨 때문에 너무 졸렸다. 좀 걸어가서 테이스트 맵에 갈 것인가 방에 들어갈 것인가 갈팡질팡하다가 영원한 휴가님이 여기가 중국대사관 근처라 근처에 중식당들이 있다고 하셔서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갔다. 이 식당은 Pekino Antis, 즉 베이징 덕이라는 곳인데 내부 스타일이 정말 서울의 우리 회사 근처의 자주 가는 오래된 중식당이랑 닮아서 친근했다. 외관은 이렇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큰 덕을 보고 영원한 휴가님을 우러러보게 되었다!가는 길에 영원한 휴가님은 옛날에 여기서 중국인들 중 좀 ‘대형’ 같은 스타일의 음식점 사장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던 얘기를 해주셨다. 그런데 그분이 이 식당 사장이었다. 우리가 막 들어갔을 때는 런치타임이라 자리도 거의 만석이었다. 안내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 사장 아저씨가 막 나가려다 우리, 정확히 말하면 영원한 휴가님을 발견했고, 영원한 휴가님은 유창한 중국어로 아저씨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장 아저씨는 엄청 사근사근하고 친절했다. 옛날에 만난 건 기억을 정확히 못하는 것 같았지만 중국어를 너무 잘하는 영원한 휴가님 때문에 반가우셨던 건지 아주 친절하게 우리를 안내하고는 여러 가지 이야기도 나누시고(나는 못 알아듣고 ㅎㅎㅎ) 우리는 런치 메뉴 먹으려 했는데 ‘그러지 말고 메뉴책에서 하나 골라서 밥이랑 먹어. 내가 살게’ 라고 하심. 그리고는 실제로 메뉴책을 가져와서 우리가 고를때까지 기다렸고 좀 매운 거 얘기하다가 소고기 코너에서 SICHUAN BOILED BEEF (水煮牛肉)를 고르자 (아니면 사장님이 추천해준건가... 영원한 휴가님이 고르신 것 같음) ‘후회하지 않을 것이야~’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이 점심을 공짜로 먹었다! 이게 다 영원한 휴가님의 은덕이 아닌가! 유창한 중국어! 인덕! 감동!
(제목의 왕대형은 그 사장님에게 내가 붙인 이름. 왕씨라고 한다)
이것이 그 메뉴.좀 간이 세서 짜긴 했지만 매콤했고 야채도 꽤 들어 있어서 밥이랑 맛있게 먹음.흑흑 감동과 동시에 부러움과 존경으로 가득참.우왕 외국어 왜 이렇게 잘하시는 것인가...나,나도 분명히 고등학교,대학교 때 중국어 아주 조금 했는데 왜 하나도 모르고‘친구’, ‘한국인’, ‘고마워요’ , ‘광저우’밖에 못 알아듣나 엉엉...너무너무 멋있다.이 에피소드의 교훈은‘외국어를 잘하면 가다가 밥이 나온다!’로...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을 읽다 보면 잭 런던의 틀니 에피소드에서 어떤 일에서 교훈을 얻어내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다른 에세이에서도 자기는 뭔가 교훈 찾기를 좋아한다고 함-사실 나도 좀 그런 편이다.그래서 오늘도 교훈을 얻고..)
아침 일찍부터 점심까지 계속 함께 새로운 동네 투어와 중식당까지 함께 해주신 영원한 휴가님은 타마고로 빠지는 골목에서 나와 헤어졌다. 넘넘 감사했다. 나는 테이스트 맵과 엘스카, 숙소 중 고민하다(원래는 숙소로 가는 버스를 타려 했는데 버스가 막 떠나서) 지난번의 루트를 따라 공원을 가로질러 엘스카에 갔다. 위 사진은 공원 가는 길. 엘스카는 1층은 꽉 차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2층은 자리가 있었다. 무지개 테이블 하나짜리에 앉아서 설탕 넣은 카푸치노와 비건 브라우니를 시켰다. (짭짤한 중식 점심 때문에 또 단게 먹고 싶어짐) 이리하여 나는 엘스카의 비건 디저트 4종을 모두 클리어하게 되었다. 브라우니는 뭐 비건이라 그냥 그랬다. 땅콩케익이 제일 맛있었던 걸로... 엘스카에서 부모님과 통화를 하고 사진을 좀 정리했다.
그리고는 아침에 일찍 나올 때 몬에 갔다가 다시 들어올 것 같아서 ‘청소해 주세요’를 걸어놓지 않고 나왔는데 3시까지 걸어놓으면 청소를 해주기 때문에 얼른 방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남이 맨날맨날 내 방 청소해주는 기회가 이제 별로 없을 거잖아' 하며) 3시 직전이었기 때문에 양치질을 하고 하루키 잡문집만 집어넣고 도로 나와서 게디미나스 대로를 가로질러 바닥분수 근처의 후라칸에 가서 책을 읽었다. 그 얘기는 따로 썼으니 생략.
후라칸에서 나와 맞은편 리미에 갔다. 이 리미는 처음 가보는데 지하에 있었고 원래 가던 리미보다는 작았다. 물만 두 병 샀는데 무거웠던 고로 또다시 숙소에 들러 물을 내려놓았다. 이때가 4시 30분 정도였다. 피곤하긴 했지만 여행이 다 끝나가기도 하고 너무 아쉬워서 숙소에서 제일 가까이 있는 백스테이지 카페 분점에 갔다. 이곳은 추억의 코아아트홀을 생각나게 하는 곳이었다. 여기서는 오늘의 사진들을 정리했다. 오늘 카페를 5곳이나 클리어해서 기록을 세움.
6시쯤 방에 돌아와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씻었다. 그리고 오늘의 메모를 다 적으니 또 열시가 되었네! 오늘부터 가방을 좀 꾸려볼까 했는데 내일로 미루려고 한다. 정말 가방 꾸리는 건 너무너무 싫다 흐흑...
내일은 원래 해가 난다고 했는데 지금 보니 그사이 예보가 바뀌어서 또 계속 흐리다고 나옴. 흐흑... 윗동네 카페도 가봤으니 이제 남은 사흘 반 동안은 여유 있게 보내려고 한다(그런데 과연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음) 엘스카, 이딸랄라, 후라칸 중 한두곳 정도. 그런데 예기치 않은 경험을 하게 되는게 여행이니까 또 모르지. 아니면 오늘 빡세게 다닌 결과 내일이나 모레는 방에서 뻗어있을지도 모르지만... 아까워... 이제 월요일 저녁에 비행기를 타러 가야 해 엉엉...
오늘은 13,808보. 8.2킬로. 빌니우스 와서 제일 많이 걸은 것 같은데 긴가민가. 제일 많이 걸었거나 두 번째로 많이 걸었음.
엘스카 사진 두 장으로 마무리. 오늘은 엘스카에 잠깐만 앉아 있었던 터라 사진도 두 장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