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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es : 서무의 슬픔'에 해당되는 글 54

  1. 2016.03.27 서무의 슬픔 #38. 문어발과 이쑤시개 (41)
  2. 2016.02.08 서무의 슬픔 #37. 뜻밖의 손님 (37)
  3. 2015.12.14 서무의 슬픔 번외편 : 돌아온 등장인물 20문답(투레츠키, 보랴, 일류샤) (40)
  4. 2015.12.04 서무의 슬픔 번외편 : 돌아온 등장인물 20문답(리자, 알렉산드라) (42)
  5. 2015.11.19 서무의 슬픔 #36. 빨간 열매와 초특급 익스프레스 (52)
  6. 2015.11.06 서무의 슬픔 #35. 4월의 눈보라 (70)
  7. 2015.10.24 서무의 슬픔 #34. 딸기 아가씨들과 자선 바자회 (95)
  8. 2015.10.09 서무의 슬픔 #33-1. 도자기 인형 (114)
  9. 2015.10.01 서무의 슬픔 #33. 아가일 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들의 모험(2부) (142)
  10. 2015.09.24 서무의 슬픔 #33. 아가일 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들의 모험(1부) (113)
  11. 2015.09.11 서무의 슬픔 #32. 왕자님과 호위 기사들 (91)
  12. 2015.09.04 서무의 슬픔 #31. 두 명의 베르닌이 금요일 밤에 모이다(2부) (71)
  13. 2015.08.28 서무의 슬픔 #31. 두 명의 베르닌이 금요일 밤에 모이다(1부) (80)
  14. 2015.08.21 서무의 슬픔 #30. 엘리트 요원 드미트리 베르닌 (81)
  15. 2015.08.14 서무의 슬픔 #29. 보랴의 생일 파티 (50)
  16. 2015.08.07 서무의 슬픔 #28. 9밀리 마카로프와 모스크바 비밀 별장 (83)
  17. 2015.07.31 서무의 슬픔 #27. 밀사 베르닌 + 브루벨 그림 한 장 (80)
  18. 2015.07.03 서무의 슬픔 번외편 : 곱사등이 흑염소와 단추소년 다닐, 절세미인 미셴카(러시아 민담 패러디) (70)
  19. 2015.06.26 서무의 슬픔 #26. 베르닌의 옛 여인 (67)
  20. 2015.06.19 서무의 슬픔 #25. 천하일미 요리대회(2부) + 결선 진출 요리 사진들 몇 장 (71)
  21. 2015.06.12 서무의 슬픔 #25. 천하일미 요리대회(1부) (78)
  22. 2015.06.05 서무의 슬픔 # 24 : 시계탑 전망대에서 (65)
  23. 2015.05.27 서무의 슬픔 #23. 스네고로드 집단농장 (47)
  24. 2015.05.20 서무 22편에 이어 : 아픈 토끼는 파인애플 대신 황도 (10)
  25. 2015.05.20 서무의 슬픔 #22. 흰머리천사날개풀과 파인애플 (57)

 

 

오랜만에 돌아온 서무의 슬픔 시리즈.

 

이 에피소드를 쓴 건 연초였는데 그리고 나서 힘든 일도 많고 마음이 복잡해서 그런지 랄라랄라 분위기의 서무를 올리는 게 내키지 않아서 그냥 묵혀두었었다. 날도 따스해지기 시작하니 조금이라도 기분 전환해볼까 해서 올려본다.

 

조금 쓰다 다시 답보 상태에 있는 본편을 다시 써야 하는데.. 사실 서무 새 에피도 1~2개 정도 생각해둔 건 있는데 요즘 참 집중해서 뭘 쓰기 쉽지 않다. 많이 지쳐서 그런가보다.

 

하여튼 서무 38편!! 이번 편은 지난 35~36편에서 눈보라 때문에 망가진 베르닌의 지굴리 얘기로 시작된다. 그러나... 과연 문어발과 이쑤시개란 무엇인가...

 

이번 편은 조금 진지했던 37편과는 다르게 그냥 기분풀이용으로 썼다 :)

 

 

그럼 재미있게 읽으세요~

 

 

 


** 지금까지의 줄거리와 이번 편 간략한 예고 **

 

1980년대 초 소련의 지방 소도시(..라고 쓰고 시골이라 읽는다) 가브릴로프의 보안위원회(KGB) 말단 행정직원이자 서무인 다닐 베르닌은 무시무시한 상사에게 시달리고 격무에 짓눌려 죽을 지경이다.  

이 와중에 모스크바에서 유명한 무용수 출신의 반동분자 정치범을 가브릴로프로 유배시키고, 베르닌은 엉겁결에 그를 감시하는 중책을 떠맡는다. 알고보니 그것은 싸가지 없는 젊은 예술가 녀석의 가정부이자 노예 노릇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가뜩이나 서무 업무로 들들 볶이느라 힘든 와중에 새로 온 녀석의 출퇴근 운전기사 노릇, 집안일, 밥해먹이기 등등 온갖 잡일에 시달리던 베르닌은 망할 놈의 반동분자를 왕재수라 부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왕재수도 나름대로 시골 생활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 중이다.

어느덧 가브릴로프에는 봄이 왔고 베르닌은 언제나처럼 격무에 시달린다. 그러던 어느날 왕재수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와 폭설 때 망가졌던 지굴리 얘기를 꺼내는데...

 

 


(이 시리즈는 아래 순서대로 읽기를 권장함~)

 

* <서무의 슬픔> 시리즈에 대해 : http://tveye.tistory.com/3427
* 주요 등장인물 소개 + 시리즈 목차 : http://tveye.tistory.com/3428
* 에피소드 0. 다닐 베르닌의 새로운 임무 : http://tveye.tistory.com/3429
* 에피소드 1. 왕재수, 행동에 나서다 : http://tveye.tistory.com/3432
* 에피소드 2. 당직실의 귀신 : http://tveye.tistory.com/3437
* 에피소드 3. 버찌잼과 초콜릿 쿠키 : http://tveye.tistory.com/3444
* 에피소드 4. 공유지의 배추와 의전의 문제 : http://tveye.tistory.com/3451
* 에피소드 5. 무도회에 간 베르닌 : http://tveye.tistory.com/3458
* 에피소드 6.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 : http://tveye.tistory.com/3466
* 에피소드 7. 보고서의 악몽 : http://tveye.tistory.com/3478
* 에피소드 8. 새해 전야의 만두 소동 : http://tveye.tistory.com/3488
* 에피소드 9. 눈보라와 패딩 코트 : http://tveye.tistory.com/3524
* 에피소드 10. 벨라 등장! : http://tveye.tistory.com/3542
* 에피소드 11. 살구나무 거리에서 온 남자들 : http://tveye.tistory.com/3553
* 에피소드 12. 전설의 서무를 찾아서 : http://tveye.tistory.com/3563
* 에피소드 13. 검은 숲의 온천 요양소 : http://tveye.tistory.com/3580
* 에피소드 14. 한밤중의 침입자 : http://tveye.tistory.com/3599
* 에피소드 15. 우수 공산당원 연수 워크숍을 위해 막내가 준비해야 할 일들 : http://tveye.tistory.com/3615
* 에피소드 16. 짐꾼 베르닌과 빗, 물병, 목걸이의 비법 : http://tveye.tistory.com/3635
* 에피소드 17. 운수 좋은 날 : http://tveye.tistory.com/3661
* 에피소드 18. 메드베지에서 생긴 일, 알렉산드라 : http://tveye.tistory.com/3678
* 에피소드 19. 다닐 베르닌이 하를람피 푸고비체프가 된 사연 : http://tveye.tistory.com/3692
* 에피소드 20. 베르닌, 무대에 데뷔하다! :  http://tveye.tistory.com/3708
* 에피소드 21. 스페호프의 복수 : http://tveye.tistory.com/3726
* 에피소드 22. 흰머리천사날개풀과 파인애플 : http://tveye.tistory.com/3742
* 에피소드 23. 스네고로드 집단농장 : http://tveye.tistory.com/3766
* 에피소드 24. 시계탑 전망대에서 : http://tveye.tistory.com/3785
* 에피소드 25. 천하일미 요리대회(1부) : http://tveye.tistory.com/3800
* 에피소드 25. 천하일미 요리대회(2부) : http://tveye.tistory.com/3813
* 에피소드 26. 베르닌의 옛 여인 : http://tveye.tistory.com/3832
* 에피소드 27. 밀사 베르닌 : http://tveye.tistory.com/3918
* 에피소드 28. 9밀리 마카로프와 모스크바 비밀별장 : http://tveye.tistory.com/3938
* 에피소드 29. 보랴의 생일 파티 : http://tveye.tistory.com/3957
* 에피소드 30. 엘리트 요원 드미트리 베르닌 : http://tveye.tistory.com/3978
* 에피소드 31. 두 명의 베르닌이 금요일 밤에 모이다(1부) : http://tveye.tistory.com/3994
* 에피소드 31. 두 명의 베르닌이 금요일 밤에 모이다(2부) : http://tveye.tistory.com/4013
* 에피소드 32. 왕자님과 호위 기사들 : http://tveye.tistory.com/4033
* 에피소드 33. 아가일 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들의 모험(1부) : http://tveye.tistory.com/4062
* 에피소드 33. 아가일 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들의 모험(2부) : http://tveye.tistory.com/4079
* 에피소드 33-1. 도자기 인형 : http://tveye.tistory.com/4098
* 에피소드 34. 딸기 아가씨들과 자선 바자회 : http://tveye.tistory.com/4140
* 에피소드 35. 4월의 눈보라 : http://tveye.tistory.com/4172
* 에피소드 36. 빨간 열매와 초특급 익스프레스 : http://tveye.tistory.com/4189
* 에피소드 37. 뜻밖의 손님 : http://tveye.tistory.com/4407

 
** 번외편. 등장인물 20문답 : http://tveye.tistory.com/3492, http://tveye.tistory.com/3493

** 번외편. 곱사등이 흑염소와 단추소년 다닐, 절세미인 미셴카(러시아 민담 패러디) : http://tveye.tistory.com/3849

** 번외편. 돌아온 등장인물 20문답(리자, 알렉산드라) : http://tveye.tistory.com/4236

** 번외편. 돌아온 등장인물 20문답(투레츠키, 보랴, 일류샤) :  http://tveye.tistory.com/4251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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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무의 슬픔 series>

episode 38

 

 

 

 

서무의 슬픔

- 문어발과 이쑤시개 -

 

 

    

 

    

 

 

 

왕재수는 폭설로 나무를 들이받아 망가진 지굴리의 수리를 보류하라고 한지 나흘 만에 사무실로 직접 전화를 했다. 베르닌이 ‘안녕하십니까, 당과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보안위원회의 다닐 베르닌입니다’ 라는 멘트를 미처 다 하기도 전에 왕재수가 불쑥 말했다.

    

 

“ 차 가지러 와. ”

 

“ 엥, 그게 무슨 소리야? ”

 

“ 네 차. 수리비보다 싸게 구해준다고 했잖아. 극장에 갖다놨으니까 가지러 오라고. ”

 

“ 으잉? ”

    

 

 

베르닌은 야근을 하다가 10시 반쯤 극장으로 갔다. 나름대로 시간 계산을 한 거였다. 그날 공연은 3막짜리 잠자는 미녀니까 10시쯤 끝날 거고, 왕재수는 무용수들과 스태프들에게 몇몇 멘트를 한 후 감독실에 들렀다가 나와서 주차장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극장 주차장은 평소와 달리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 어? 어떻게 된 거지? 오늘 공연이 늦게 끝난 건가? 왜 아직도 이렇게 사람이 많지? 왜 이렇게 시끄러운 거야? ’

 

 

가까이 가보니 사람들이 둥그렇게 모여 있었다. 낯익은 무용수들도 몇 명 있었고 옷차림을 보니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섞여 있었다. 여자 비명 소리가 간헐적으로 터져 나왔기 때문에 베르닌은 깜짝 놀랐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니 여자 두 명이 악을 쓰며 머리채를 잡고 싸우고 있었다.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상스러운 욕설과 비명이 난무했다. 연미복을 입은 오케스트라 단원 두세 명이 그들을 붙잡고 떼어놓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워낙 여자들이 흥분해서 몸부림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악을 써 대서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무슨 불여우에 배신자, 더러운 짓거리, 뒤통수 운운하는 단어들이 튀어나왔다. 치정 싸움인가보다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 어쩌지. 난 보안요원인데. 공공질서를 수호해야 하는데. 어떻게 말리지? ’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데 옆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어떡해, 가릭... 좀 말려봐. ”

 

“ 나 아까 말리려고 옆에 갔다가 저 아줌마한테 맞아서 멍들었단 말이야. ”

 

 

토냐와 가릭이었다. 토냐는 사색이 되어 싸움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고 가릭은 오른쪽 입가에 정말 멍이 들어 있었다. 베르닌을 알아본 토냐가 그 와중에도 인사를 했다.

 

 

“ 안녕, 다냐. 좀 말릴 수 없어요? 당신 공무원이잖아요. ”

 

 

“ 아니, 그게... 저 사람들 누구예요? 왜 싸우는 거예요? ”

 

“ 몰라요, 금발머리는 전에 극장에서 몇 번 본 거 같은데 저 아줌마는 잘 모르겠어요. 남자 문제인가 봐요. 어떻게 해... 미샤가 오기 전에 말려야 되는데... ”

 

“ 아 맞다, 미샤! 그 자식 어디 있어요? ”

 

“ 아직 안 내려왔어요. 감독님이 이거 보면 엄청 화낼 텐데... 극장에서 소란 피우는 거 진짜 싫어하시거든요... 다닐, 우리 같이 말려 봐요. ”

 

 

 

가릭이 베르닌의 손을 잡아끌었다. 엉겁결에 베르닌은 가릭과 함께 앞으로 나아갔다. 머리채를 잡아 뜯으며 나뒹구는 여자들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가까이서 보니 금발의 자그마하고 날씬한 아가씨와 갈색 머리에 화장을 짙게 한 글래머 중년 여인이 서로의 머리채와 블라우스 칼라를 움켜쥐고 할퀴고 물어뜯고 발길질을 하며 고래고래 악을 쓰고 있었다.

 

 

이 더러운 계집애야, 감히 내 등에 칼을 꽂아? 용서 못해!

 

어디서 반말이야, 이 닳아빠진 할망구야! 우리 그이 독차지하려고 수작 부리고 뒤통수 친 건 당신이잖아! 가만 안 둘 거야!

 

 

베르닌은 급하게 금발 아가씨를 뒤에서 붙잡아 질질 끌어냈다. 가릭도 갈색머리 여인을 안아서 간신히 떼어놓으며 소리쳤다.

 

 

“ 제발 진정해요! 경찰이 온단 말이에요! ”

 

 

그 와중에도 베르닌은 그 ‘경찰’이란 게 자기 얘기인가 하고 의문했다. 여자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고함을 지르며 발버둥을 치고 팔꿈치를 휘둘러댔다. 아랫배를 얻어맞은 베르닌은 너무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다.

    

 

“ 아이고, 제발 그만 좀 하세요. 이러다 소란 죄로 잡혀간다고요. ”

 

이거 놔! 저 나쁜 년을 죽여 버릴 거야! 흑흑, 친한 척 잘해주는 척 온갖 사탕발림은 다 하더니 등 뒤에서 수작 부리고... 우리 그이 가로채고... ”

 

“ 누가 할 소릴! 그이랑 먼저 사귄 건 나야! 중간에 끼어든 주제에 불여우처럼 꼬리만 살랑살랑 쳐놓고! ”

 

나랑 같이 하자고 끌어들인 건 당신이었잖아! 그때부터 나 이용만 하고! ”

 

“ 거짓말 마! 네년이 그이한테 이간질해서 나 떼어놓고 둘이서 수작부리고 있는 거 모를 줄 알아? 못생긴 게 어린 거 무기로 꼬리만 치고!

 

아악, 죽여 버릴 거야!

 

 

금발머리 아가씨가 버럭 고함을 지르더니 베르닌에게 안겨 있는 와중에도 하이힐을 벗어서 상대 여인에게 냅다 집어던졌다. 여자를 보호하느라 가릭이 급하게 몸으로 막다가 다리에 구두 굽이 찍혔는지 ‘으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 토냐가 ‘어머나, 가릭!’ 하고 펄쩍 뛰더니 베르닌에게 붙잡혀 있는 금발 여자에게 달려들어 뺨을 찰싹 때렸다.

 

 

당신 지금 뭐하는 거예욧! 무용수 다리에 하이힐을 투척하다니! 이건 살인 미수야! 가만 안 둘 거야!

 

“ 으아, 토냐... 당신까지 왜 이래요. 제발... ”

 

 

그때 덩치 좋은 데니스가 달려 들어왔다. 한 팔에는 토냐를 끼고 다른 손으로는 금발 아가씨가 나머지 한 짝의 하이힐을 벗어던지려는 것을 저지하며 목청껏 소리쳤다.

 

 

이제 그만! 감독님 오신단 말이에요! 우리 감독님 화나면 끝장이라고요!

 

 

 

데니스가 워낙 다급하게 소리쳤기 때문에 토냐도, 금발 아가씨도 갈색머리 여인도 순간 깜짝 놀라 조용해졌다. 과연 주차장 저쪽에서 후광이 비치는가 싶더니 왕재수가 나타났다. 화가 잔뜩 났는지 씩씩거리고 있었는데 꼭 검정고양이 미셴카처럼 검은 머리칼이 위로 삐죽삐죽 솟아오르고 뻗쳐 있었다. 게다가 어두컴컴한 주차장 안에서도 라이트라도 켠 것처럼 까만 눈에 새파란 불을 번쩍이며 걸어오고 있었다. 베르닌도 솜털이 쭈뼛 섰다.

    

 

 

‘ 으아, 저 자식 진짜 화났다... 눈에 파란 불 켰어... 저거 검열국장이랑 싸울 때랑 스네고로드에서나 저랬는데... 큰일났다... ’

 

 

왕재수가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

 

 

 

대체 무슨 일이야! 얼마나 시끄러운지 극장이 다 무너질 지경이야! 여기는 신성한 극장이야! 싸우려면 의회 광장으로 가란 말이야! 아니면 KGB 앞마당으로 가든지! 썩 꺼져, 아무짝에 쓸모없는 버러지 같은 것들아!

 

 

“ 으아, 미셴카... 여자들한테 말이 지나치잖아. ”

 

 

베르닌이 화들짝 놀라 왕재수의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평소 여자들에게 깍듯이 대하기로 유명한 왕재수는 그 예의범절은 다 어디 팔아먹었는지 눈과 코와 입에서 김을 뿜어내며 버럭버럭 소리를 쳤다.

 

 

여자고 남자고! 극장에서 소란 피우는 것들은 용서 못해! 당장 꺼져! 한번만 더 여기서 머리채 뜯으면 모가지 비틀어버릴 거야!

  

  

구경꾼들뿐만 아니라 싸우던 여자들도 놀라서 눈을 둥그렇게 뜨고 왕재수를 쳐다보았다. 하이힐을 집어던졌던 금발 아가씨는 겁에 질려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그래도 성깔이 더 있어 보이는 갈색머리 중년 여인은 보라색으로 칠한 눈꺼풀을 마구 깜박거리며 대들었다.

 

 

“ 이건 사생활이니까 관심 끄라고요! ”

 

 

“ 관심 없어! 당신들이 극장에서 나가기만 하면 돼! ”

 

“ 못 나가! 그이가 와야 나가! 이건 나와 그이의 문제야! ”

 

“ 어째서 그게 ‘당신과 그이’의 문젠데! 이건 ‘나랑 그이’의 문제야! ”

 

 

 

금발 아가씨가 다시 울컥해서 소리쳤다. 두 여자가 다시 맞붙으려는데 왕재수가 둘 사이에 끼어들더니 두 눈에서 예의 파란 불꽃을 마구 쏟아내며 싸늘하게 말했다.

    

 

누구 문제든 상관없어. 꺼져! 당신들 그이라는 인간은 지금 없어! 머리채 뜯을 거 알고 먼저 토꼈다고. 그러니까 그 작자 집으로 가든 광장으로 가든 알아서 해! 여기서 꺼지기나 해!  지. 금. 당. 장!!!!

 

 

 

마지막 경고가 너무 위협적이라 베르닌마저도 등골이 오싹했다. 갈색머리 여인은 흠칫하더니 ‘뭐라고요, 토꼈다고요? 좋아, 집으로 가겠어!’ 하고는 가릭의 팔에서 벗어나 주차장 한켠에 세워져 있던 어떤 차에 올라타더니 부르릉 하고 떠나버렸다. 베르닌에게 붙들려 있던 금발 아가씨도 바르르 떨더니 ‘먼저 가서 또 무슨 개수작을 부리려고!’ 하고 욕을 하며 맨발로 뛰어가 또 다른 차에 올라타고는 부르릉 떠났다.

    

 

 

 

*   *   *

    

 

 

 

싸우던 여자들이 사라졌는데도 왕재수는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주차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싸움이 났으면 말리든가 내쫓든가 할 것이지 뭐가 그렇게 재미있다고 구경이야! 여기가 극장이지 검투장이냐고! 당장 꺼져!

 

 

 

구경꾼들이 풀이 죽어서 슬금슬금 주차장을 뜨기 시작했다. 왕재수를 불러왔던 데니스도 가릭과 토냐를 데리고 급하게 자기 차로 갔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왕재수와 베르닌만 남았다. 그제야 베르닌을 알아본 왕재수가 투덜댔다.

    

 

“ 뭐야, 너도 와 있었구나. 그 덩치 뒀다 뭐하냐! 콩알만 한 여자 두 명 싸우는 것도 제압 못 하고! ”

 

 

“ 야, 콩알은 무슨! 아까 그 아줌마는 거의 너만 하던데! 덩치는 너보다 더 좋더라! 그리고 금발머리도 조그맣긴 한데 얼마나 난리를 치는지 나 온몸에 피멍들었어! 나 다시는 여자들 싸움 안 말릴 거야. 여자 싸우는 게 남자보다 더 무서워! 완전 피 봤어. 하는 소리 들으니까 남자 하나 놓고 붙은 것 같던데. 대체 어떤 놈인지 양다리 걸친 게 분명해. 그래놓고 자기는 쏙 빠지고 여자들끼리 싸움 붙여놓고! 진짜 나쁜 놈일 거야. 그런 놈은 천벌 받아야 돼! 여자 눈에 피눈물 나게 하고.

 

 

“ 그래! 망할 인간... 에잇! ”

 

 

 

왕재수가 이를 부드득 갈더니 옆에 있던 파란색 차의 타이어를 발로 걷어찼다. 어찌나 세게 찼는지 뻥 소리가 났다.

 

 

“ 으아, 제발 진정 좀 해! 무용수는 발이 생명이라며! 왜 이러는 거야! 너 원래 남들 일에 관심 없잖아. 왜 이렇게 열 내는 거야? 극장에서 싸움 나는 게 그렇게 싫어? ”

 

 

“ 안 싫어! 열 안 나! 에잇! ”

 

 

 

왕재수는 다시 한 번 타이어를 뻥 찼다.

 

 

“ 야! 그만해, 남의 차 타이어 펑크라도 나면 어떡하냐! 가뜩이나 다리 힘도 좋은 녀석이! 진정 좀 하라고! ”

 

 

“ 펑크 안 나! 펑크 나면 불량품이니까 바꿔 달라 해야지! 그리고 남의 차 아냐! 네 차야! 그러니까 발로 찰 거야! 에잇!

 

 

 

다시 한 번 초특급 스트라이커처럼 타이어를 걷어차려는 왕재수를 뒤에서 끌어안고 질질 잡아당기다가 베르닌이 퍼뜩 놀라 물었다.

 

 

“ 으잉? 내 차? 이거 내 차야? ”

 

“ 그래! 바가지요금 물고 고물 지굴리 수리하느니 내가 더 싸게 하나 구해준다 했잖아! ”

 

“ 우와... 이건 새 차잖아!

 

 

 

베르닌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한 바퀴 돌며 차의 외관을 샅샅이 살피고 뚜껑을 열어보았다. 엔진도 확인하고 방금 왕재수가 걷어찬 타이어도 확인했다. 차 문도 조용하게 열렸다. 시동을 걸자 털털거리던 지난번 차와는 달리 부드럽게 걸렸다. 먼지가 풀풀 나고 푹 꺼져 있던 시트 대신 팽팽하게 당겨진 시트가 엉덩이를 편안하게 감싸주었다.

 

 

“ 와아, 이 차 너무 좋다! 어디서 구한 거야? 얼마 줬어? ”

 

 

왕재수가 가격을 말했다. 베르닌은 정말 놀랐다.

 

 

“ 정말? 진짜 수리비보다 더 싸네! 어떻게 그럴 수가! ”

 

“ 뭘 그렇게 감탄하니? 그래봤자 이것도 지굴린데. 에잇, 웬만하면 지굴리는 안 하려고 했는데 같은 가격에 나온 게 하필 흙탕물 색깔 라다 밖에 없잖아. 어쩔 수 없지 뭐. ”

 

“ 어떻게 새 차를 그 가격에 뽑은 거야? ”

 

“ 미안하지만 이거 새 차 아니야. 중고야. 새 차는 손이 좀 많이 가서. 돈은 조금만 더 얹어주면 되는데 서류 작업을 많이 해야 한대. 그럼 시간도 더 걸리고 귀찮잖아. 어차피 새 차나 중고나 지굴리랑 라다밖에 없으니 달라질 것도 없고. 맘에 안 들면 50루블쯤 더 얹어서 새 차로 교환할 수 있어. 2주 더 기다려야 하지만. 그럴래? ”

 

“ 아니, 아니... 무슨 소리야! 나 새 차 필요 없어. 이것도 완전 새 차 같아. 와, 나 이렇게 좋은 지굴리 처음 타봐! 우와, 너 대단해. 어디서 구한 거야? 너한테 이런 수완이 있을 줄 몰랐어. ”

 

“ 이쯤이야 누워서 떡먹기지. ”

 

“ 돈은 어떻게 치러야 돼? ”

 

“ 나한테 줘. 선불이라 일단 내가 냈어. 없으면 나중에 줘도 돼. 6개월 할부로 주든지. ”

 

야, 그 정도는 나도 줄 수 있어! 내일 줄게! 아, 아니... 다음 달까지 줄게. ”

 

“ 넌 서무잖아. 말단 공무원이라 월급도 적고. 맨날 나 밥해준다고 주머니 털어서 장 보잖아. 그러니까 천천히 나눠서 줘. ”

 

“ 생각해주는 건 좋은데... 굳이 ‘말단 공무원’이라느니 월급 적다느니 하는 말을 해야 되냐! ”

 

“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

 

 

 

베르닌은 날아갈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새 지굴리는 부드럽고 조용하고 승차감도 너무 좋았다.

 

 

“ 고마워. 나 정말 그 돈 다 주고 수리하려고 했는데... 아, 그럼 그 지굴리는 어떻게 하지... 정비소에 처박혀 있는데. ”

 

“ 뭘 어떻게 해! 폐차시키면 되지! 넘길 데 없으면 내가 처리해줄게. 고철 값 받으면 너한테 받을 거에서 제하면 되니까. ”

 

“ 그치만... 그거 내가 처음 샀던 차라서 아깝다. 정도 많이 들었는데. ”

 

“ 어휴, 완전 고물인데 뭐가 아깝냐. ”

 

 

 

화요일 밤이라 길도 막히지 않았다. 털털거리는 옛 지굴리로는 엄두도 못 낼 속도로 구시가지를 빠져나오면서 베르닌은 신이 나서 휘파람을 불었다. 왕재수는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듯 씩씩대고 있었지만 베르닌이 콧노래를 부르자 자기도 모르게 픽 웃어버렸다.

 

 

“ 그렇게 좋니? 그깟 차 하나 바꾼 거 가지고. ”

 

“ 당연하지, 차는 남자의 로망이잖아. ”

 

“ 세상에 좋은 거 엄청 많은데 왜 다들 차에 꽂혀서 난리인지. 근데 넌 그렇게 차를 좋아하면서 내 차 끌라니까 싫다 하고. ”

 

“ 야! 그건 다르지! 그건 네 차잖아! ”

 

“ 뭐가 다른 거야? 아, 몰라. 머리 아파. 에잇, 나쁜 인간.

 

“ 엥, 내가 왜 나쁜 인간이야... ”

 

“ 아니야, 네 얘기. ”

 

아, 그 못된 남자 말이구나. 양다리 걸친 놈. 지금쯤 그 여자들한테 걸려서 엄청 혼쭐나고 있겠지? 그런 놈은 그래도 싸! 큰 코 다쳤으면 좋겠다! ”

 

그래! 그 인간 무지무지 혼나야 돼! 씨...

 

 

왕재수가 욕을 하더니 갑자기 눈물을 글썽거렸다. 베르닌은 깜짝 놀랐다.

 

 

“ 너 왜 그러니? 아까부터 너답지 않게 남의 사랑싸움에 화내고. 무슨 일 있었어? 아니면 아까 그 여자들 아는 사이야? ”

 

“ 몰라! 그 여자들 몰라! 아까 처음 봤어! 백스테이지로 갑자기 들이닥쳐 가지고... 로만은 도망가고... ”

 

“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로만? 으잉? ”

 

 

 

베르닌은 하마터면 커브 트는 것을 놓쳐서 다리를 지나쳐버릴 뻔했다.

 

 

“ 설마... 그 여자들... 양다리... 바이올린 아저씨... 로만이라고? ”

 

그래! 어휴 속 터져! 바보 같은 인간...

 

 

왕재수는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지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치고 뜨거운 콧김을 내뿜으며 씩씩거렸다.

 

 

“ 로만이 예전부터 오케스트라 때문에 달라붙는 여자들이 꽤 있었대. 워낙 멋있잖아. 연주복 맵시도 좋고. 난 유부녀 팬들만 좀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어린 계집애들도 몇 명 쫓아다니더라고. 이 인간이 나 만나기 전까지 문어발을 쳐서 이 여자 저 여자랑 놀았다는 건 알고 있었어. 그래서 처음엔 아까 그 여자들도 그렇게 하룻밤 상대인 줄 알았어. 근데 알고 보니 옥사나하고는 1년 됐고 논나하고는 3년이나 됐다잖아! ”

 

“ 누가 옥사나고 누가 논나야? ”

 

“ 블론드가 옥사나, 브루넷이 논나! ”

 

“ 어... 오래 사귄 거네, 3년이면... 그 아줌마 열 받을 만도... 근데 왜 그 둘이 머리채를 잡은 거야? 양다리도 아니고 문어발이었으면 로만을 족쳐야 되는 거 아냐? ”

 

“ 그냥 문어발이 아니었단 말이야! 논나랑 옥사나가 원래 아는 사이였는데 논나 생일 때 로만이 옥사나 보고 귀엽다 해서 셋이서 응응을 한 거야! 그러고 나서 셋이 놀게 됐다잖아. 그러다가 작년 가을부터 로만이 자기들을 안 만나주니까 둘 다 난리가 났대. 로만은 논나랑 옥사나를 따로따로 만나서 그만 끝내자고 했고. ”

 

“ 작년 가을이면... 너랑 로만이랑 사귀고 나서부터? ”

 

“ 응. 근데 그 여자들은 로만이랑 내 사이는 모르니까, 서로가 등 뒤에서 뒤통수를 치고 로만이랑 따로 만나고 있다고 생각했나봐. 둘이 머리끄덩이 잡고 한판 싸운 다음에 로만이랑 삼자대면을 하자고 극장까지 들이닥친 거야. 으윽, 정말 짜증나... ”

 

“ 그랬구나... 그럼 로만은? 일이 이렇게 됐으면 해결을 해야 할 거 아냐! ”

 

“ 몰라! 그 여자들이 들이닥치니까 골치 아프다고 뒷문으로 도망갔어! 그나마 이 얘기도 아르카지가 말해줘서 알았어! 망할 놈의 바람둥이!

 

 

왕재수는 씩씩거리며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베르닌은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자꾸 웃음이 나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물었다.

 

 

“ 너 그래서 화난 거구나? 로만이 옛날에 문어발 친 거 때문에. ”

 

아니야! 과거에 문어발 좀 치면 어때! 지금이 중요하지! ”

 

“ 그러면 지금도 너 몰래 그 여자들이랑 만나는 것 같아서 화난 거야? ”

 

아니야! 어디 그런 여자들하고 날 비교해! 로만은 왜 극장까지 그런 여자들을 끌어 들이냔 말이야! 사생활은 사생활이고 극장은 극장이지! 그리고 여자들이 나타났으면 해결할 생각을 해야지 왜 도망을 가냔 말이야! 내가 분명히 가지 말라고 그랬는데! 여자들 데리고 나가서 해결하라고 그랬는데 내 말은 들은 척 만 척하고 나가버렸단 말이야! 로만 미워!

  

  

‘원래대로 하면 둘 다 네 머리를 뜯어야 하는 거 아니냐?’ 하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베르닌은 꾹꾹 참았다. 어쩐지 자꾸만 웃음이 나와서 미칠 것 같았지만 왕재수가 잔뜩 골이 나 있었기 때문에 참고 또 참았다.

 

 

 

주차를 하면서도 베르닌은 다시금 벅찬 기쁨에 젖었다. 새 차는 너무나 부드럽게 움직여서 좁은 구석으로도 매끄럽게 파고들었다. ‘새 지굴리 좋아~ 너무 좋아~’ 라고 콧노래를 부르자 왕재수가 기가 차다는 듯 그를 쳐다보다가 다시 픽 웃었다.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에야 베르닌은 새 차 때문에 잊고 있었던 중요한 사실을 기억해냈다.

 

 

“ 너 오늘 저녁 먹었어, 안 먹었어? ”

 

“ 류다가 올리비에 샐러드랑 구운 닭가슴살 가져와서 감독실에서 같이 먹었어. ”

 

“ 류다는 참 좋은 사람이야. 말도 지지리도 안 듣는 녀석도 잘 챙겨주고. ”

 

“ 야, 류다는 내 비서잖아! ”

 

“ 그렇게 먹을 거 꼬박꼬박 챙겨주고 들어오는 음식마다 독 들었는지 하나하나 확인해보는 비서가 어딨냐! 류다가 착한 거지. ”

 

“ 그거야 내가 우주 최강 꽃미남이니까 그런 거고. ”

 

 

 

저녁도 먹었으니 자기 집으로 올라가 자겠거니 했지만 왕재수는 6층에서 내리더니 베르닌을 따라왔다. 차를 마시고 싶다는 거였다.

 

 

“ 너 의사 선생님이 자기 전에 차 마시지 말랬잖아. 하루에 두 잔만 마시라고 했고. ”

 

“ 그러니까 네가 우려주면 되지. 너는 연하게 우려 줄 수 있잖아, 카페인 안 우러나오게. ”

 

“ 에휴, 류다랑 나랑 둘 다 너무 불쌍해. 맨날 너 뒤치다꺼리... ”

 

“ 칫, 새 차 뽑아다 줬더니. ”

 

“ 너 지금 유세하냐! ”

 

“ 칫. ”

 

 

설거지를 안 해서 깨끗한 찻잔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 왕재수가 또 바가지를 긁을 거라는 불안감에 사로잡히며 베르닌은 문을 열었다. 그런데 거실 소파에 로만 코즐로프가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코즐로프는 베르닌을 보자마자 짜증스럽게 투덜댔다.

 

 

“ 왜 이렇게 늦게 오는 거야! 우리 아기는 어디 있어? ”

 

“ 어, 당신... 왜 여기... 집, 옥사나, 논나... 문어발, 양다리... ”

 

 

베르닌이 횡설수설하고 있는데 뒤따라 들어온 왕재수가 발을 꽝 구르더니 눈에서 또 파란 불을 쏟아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야! 당신 왜 여기 있어!

 

우리 귀염둥이 비둘기 왜 이렇게 늦었니, 너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우리 어제도 못했잖니, 이리 온. 침대가 부서져라 안아줄게. ”

    

 

코즐로프가 달려와 긴 팔을 벌리며 포옹을 하려고 했지만 왕재수는 평소와는 달리 고무공처럼 옆으로 홱 튀어 달아나면서 다시 발을 꽝꽝 굴렀다.

    

 

됐어! 옥사나랑 논나한테 가!

 

“ 아니, 너 어떻게 걔들 이름까지 다 아니? 역시 우리 아기는 정보력이 대단하구나! ”

 

어물쩡 넘어가지 말란 말이야! 당신 도망가고 나서 그 여자들 주차장에서 머리끄덩이 잡고 할퀴고 난리 났어! 내가 분명히 여자들 데리고 나가서 해결하라 했잖아! 왜 도망가냐고! 그것도 모자라서 왜 여기로 오냔 말야! ”

 

“ 아이고 우리 아기 정말 삐쳤구나. 미안미안. 오해 뚝! 우리 아기 만난 후로는 그 여자들이랑 안 잤어, 맹세해. ”

 

누가 그 여자들이랑 잤다고 삐쳤대! 어휴! 극장에서 소란 피우고!

 

 

 

왕재수는 화가 나서 펄쩍펄쩍 뛰었다.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눈이 이글이글 탔다. 어찌나 열을 내는지 옆에 있던 베르닌마저도 후끈하며 더워질 지경이었다. 이마와 목에 핏줄이 솟아오르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바득바득 가는 왕재수를 보자 베르닌은 덜컥 겁이 나서 코즐로프의 팔을 붙들었다.

 

 

 

“ 당신 빨리 사과해요! 얘 진짜 화났단 말이에요. 여자들도 직접 내쫓았어요. 그 여자들 당신 집으로 갔다고요. 얼른 집으로 가서 그 여자들이랑 해결하고 와요. ”

 

“ 내가 왜! 걔들 지긋지긋하다고! 가을에 걔들한테 이제 싫증났으니까 그만 만나자고 똑똑히 말했단 말이야! 나랑 놀아난 걸 못 잊어서 여자들이 엉기는 걸 어쩌란 말이야! 잠자리가 뛰어난 게 내 잘못이냐?

 

“ 하지만 옥사나와 논나는 당신을 진심으로 좋... ”

 

“ 진심으로 좋아했으면 셋이서 놀았겠냐! 그때부터 머리채 뜯었겠지! ”

 

시끄러워! 꺼져! 꺼져!

 

 

 

왕재수가 발칵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 코즐로프가 하하 웃더니 뒤로 돌아가서 한 팔로 그의 허리를 와락 껴안았다. 그리고는 왕재수의 뒷목덜미와 뺨에 뽀뽀를 하면서 한 손으로 엉덩이와 허벅지를 문질문질 어루만지며 귓가에 대고 부드럽게 속삭이는 것이 아닌가!

    

 

우리 아기 정말 화났구나. 내가 잘못했어. 그 여자들 다시는 극장에 못 오게 할게. 약속하면 되잖니. ”

 

“ 몰라, 저리 가! ”

 

“ 그 자리 계속 있으면 걔들이 또 나한테 막 엉겼을 거 아니야, 그러면 우리 아기가 기분 나쁠 것 같아서 일부러 자리 피한 거야. 오랜만에 그 여자들 보니까 막 소름이 돋는 게 어떻게 같이 놀았나 싶더라. 어서 빨리 우리 아기하고만 같이 있고 싶어서 여기로 온 거야. 너 오기만 기다렸어. ”

    

 

왕재수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두 눈은 아직도 화가 나서 파랗게 번쩍거리고 있었지만 속눈썹에는 벌써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고이더니 금세 길 잃은 강아지 같은 눈빛이 되어 옹알거렸다.

 

 

“ 그 여자들이, 막 ‘그이’라고 하고... 자기 거라고 하고... ”

 

 

“ 아유, 그 여자들이야 무슨 말을 못 하니. 내가 워낙 침대에서 끝내주잖니. 우리 아기는 우주 최강 꽃미남이잖니, 자기는 여자들한테 왕자님에 내 사랑에 별의별 소리 다 들으면서 그깟 그이 소리 하나에 삐치고 그러니. 그리고 내가 무슨 걔들 거니, 나는 우리 아기 거지~ 우리 아기는 내 거, 나는 우리 아기 거~

 

“ 나 당신 거 아니야! 나 누구 거 아니야! ”

    

 

왕재수가 더욱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하지만 코즐로프의 뽀뽀와 애무를 뿌리치기는커녕 더욱 더 몸을 밀착시키면서 어느새 녹아내리는 사탕처럼 찰싹 안겨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키스가 점차 진해지면서 코즐로프가 왕재수의 벨트를 풀기 시작했을 때쯤 베르닌이 헛기침을 하면서 끼어들었다.

 

 

어흠, 흠... 다 좋은데 말이지... 제발 너네 집 가서 해! 여기 우리 집이야!

 

“ 나 여기가 좋은데... 잠도 잘 오고... ”

 

 

왕재수가 조그맣게 투덜댔다. 베르닌은 펄쩍 뛰었다.

 

 

“ 야! 그건 로만 없을 때지! 안아주는 사람 옆에 있으면 너네 집에서도 잘 수 있잖아! 빨랑 너네 집 가! ”

 

 

“ 칫. ”

 

 

왕재수는 재킷과 벨트도 바닥에 떨어뜨린 채 급하게 코즐로프의 손을 잡아끌고 뛰쳐나갔다. 베르닌은 한숨을 쉬며 문을 닫았다. 그 와중에도 옥사나와 논나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이틀 후 목요일 저녁이었다. 오늘도 야근이 확실한 가운데 기침을 콜록콜록 하면서 업무추진비 영수증과 전표들을 하나하나 풀로 붙이고 내역을 적고 장부에 숫자를 기입하다가 따가운 시선에 뒤를 돌아본 베르닌은 화들짝 놀랐다. 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낀 스페호프 국장이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 어, 블라지미르 파블로비치... 무슨 일이신지... 호, 혹시 제가 또 무슨 실수라도... ”

 

“ 자네 지금 기침을 하는 건가? ”

 

“ 어... 예... 콜록콜록... 사레들린 것 같아요. ”

 

“ 흠, 그것은 사레가 아니야. 어제 오후에 대외교류부의 모브린이 유행성독감으로 갑자기 고열이 치솟아 병원으로 실려 갔다네. 문제는 모브린 이 친구가 자기 혼자만 아픈 게 아니라 주변 동료들에게 바이러스를 퍼뜨렸다는 것이지! 오늘 아침에는 그 부서 직원 두 명이 독감으로 결근을 했고 오후에는 대외교류부장마저 기침이 심해져서 조퇴를 했단 말일세! 자네도 잘 생각해보게! 요 며칠 동안 모브린이나 대외교류부장, 그 부서 직원들과 접촉한 적이 있었나? ”

 

“ 예. 저는 총괄 서무니까... 매일매일 모든 부서에 드나드는 걸요. 어제 아침에도 모브린 선배의 초과근무 내역서에 당직자 서명들이 빠져 있어 그것을 받아 가져다주느라 자리까지 가서 얘기를 나눴고요, 그 부서에서 저희 부서로 보낸 협조전의 결재 사인이 칸에서 삐져나와 있어 다시 받으러 가느라 대외교류부장님과도 대면했습니다만... 오늘 아침에도 우편물 때문에 그 부서에 갔고... ”

 

“ 이런! 이미 늦었군! 내 이럴 것 같아서 특별히 자네를 비롯한 부서 서무들에게 주의를 주려고 내려왔건만... 쯧쯧, 이것은 인사부서의 잘못이야. 독감과 같은 감염병이 창궐할 때는 즉시 바이러스 보균자를 격리해야 하건만 이미 1차 방역에는 실패했군. 특히 자네와 같은 서무들은 대내외 고객들의 최종 접점에서 근무하니 일단 서무가 감염되는 순간 조직의 방역 체계는 완전히 무너지는 것이야. 당장 퇴근하게! 지금이 몇 시지? 음, 벌써 6시가 넘었으니 병원은 문을 닫았겠군. 집으로 가서 밖으로 나오지 말게. 자네는 내일부터 병가 처리야! 내일 일어나자마자 병원에 가보도록 해! 입원을 하든지 자택에서 스스로를 격리하도록! 자, 여기 마스크가 있네! 이것을 쓰고 퇴근하게! ”

 

 

“ 하, 하지만... 할 일이 정말 많은데요... 게다가 밤에는 극장에 미셴... 아니 야스민을 데리러 가야 하고... ”

 

 

“ 아, 그 불여우! ”

 

 

스페호프가 손가락을 부딪쳐 딱 소리를 냈다.

 

 

그렇지! 그 불여우는 예외야. 병가를 내더라도 반드시 그 녀석을 출퇴근시켜주는 것은 계속하게. 혹시 고열이 나서 운전을 할 수 없게 된다 해도 적어도 한 침대를 쓰는 것만은 계속해야 하네! 참 잘됐군! 안 그래도 그 녀석이 고문 후유증으로 기관지에 문제가 있으니 이 기회에 자네가 꼭 독감을 옮기도록 하게! 이것은 명령이야! 첫째, 자가 격리로 회사 내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을 조기 차단할 것! 둘째, 그 불여우에게 독감을 옮길 것! 밀린 일은 돌아와서 할 것! 급한 것은 다른 서무들에게 분담하겠네! 이상! 어서 퇴근하게! ”

 

 

 

그리하여 베르닌은 엉겁결에 퇴근을 하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급하게 들이킨 식은 홍차 때문에 사레가 들려서 기침이 터져 나왔을 뿐 독감일 리가 없었지만 서슬 퍼런 국장에게서 심지어 병가 허가까지 받았으니 이게 웬 떡이냐 싶어 잽싸게 사무실을 뛰쳐나왔다.

 

 

 

시계를 보니 6시 반이었다. 10시까지 꼬박 야근을 하려던 차였으므로 횡재한 기분이었다.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을까 하다가 마음을 바꿨다.

 

 

 

‘ 오랜만에 장이나 봐서 저녁 해먹어야지. 미셴카가 오늘 공연이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나네. 없으면 일찍 오라 해야지. 그 자식 좋아하는 생선이나 좀 살까. ’

 

 

 

베르닌은 공중전화 부스로 갔다. 감독실에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백스테이지에 있나 싶어서 경비실에 전화를 해보았다.

 

 

 

“ 감독님은 5시에 퇴근하셨습니다. ”

 

“ 오늘은 공연이 없나요? ”

 

“ 오늘은 콤소몰 드라마 서클에서 연례 정기 발표회가 있어요. ”

 

“ 아, 그게 오늘이었구나.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왕재수가 투덜대던 게 기억났다. 극장 무대에는 수준 높은 공연을 올려야 하는데 별의별 어중이떠중이들의 허접한 발표회가 한 달에 최소 한 번은 있다면서 화를 냈었다. 예술적 가치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프로파간다 쓰레기만 올린다면서 콤소몰과 당을 욕했기 때문에 그때도 베르닌이 밀고 당할지도 모르니 조용히 하라고 입을 틀어막았었다.

 

 

그는 생선 가게에 갔다. 마침 티그렌카가 나와 있어서 열두 마리들이 한 세트를 샀다. 며칠 전 왕재수가 레닌그라드 얘기를 하며 탄식했던 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 5월이네... 조금만 있으면 레닌그라드에는 코류슈카가 나오겠지. 아, 먹고 싶다... 코류슈카 구이랑 튀김이랑 절임이랑... ”

 

“ 코류슈카가 뭐야? ”

 

“ 있어, 봄 되면 네바 강에서 잡히는 조그만 물고기. 뼈째 튀겨먹으면 진짜 맛있어. 구워먹어도 맛있고. 마리네이드해서 먹어도 맛있어. 레닌그라드에서밖에 못 먹어. 그립다... ”

 

우리도 그런 거 있어, 티그렌카라고. 5월부터 즐라타야 강에서 잡히는데, 줄무늬 있어서 호랑이 닮았다고 티그렌카라고 불러. 맛 비슷하지 않을까? ”

 

“ 칫, 있어봤자 여기는 시골이니까 시골 맛 나겠지. ”

 

“ 야! 원래 시골 음식이 더 맛있잖아! ”

 

“ 그래도 코류슈카랑 비길 만한 생선은 없단 말이야! ”

 

 

 

마침 생선 가게 아주머니가 기분이 좋아 보였다. 베르닌이 인사를 하자 예의가 바르다면서 내장을 모두 꺼내서 손질을 해주었다. 심지어 한 마리를 덤으로 주기까지 했다. 평소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 튀길까 구울까. 그 녀석 기름기 많은 거 안 먹는데 코류슈카는 튀김 타령까지 하는 걸 보니 진짜 좋아하나봐. 튀김옷 살짝 입혀서 튀길까, 작은 생선이니까 금방 튀겨지겠지. 걘 싱겁게 먹으니까 소금은 조금만 치고... 나는 마요네즈 찍어 먹고 그 녀석은 레몬 뿌려서 먹으라 해야겠다. ’

 

 

 

신이 나서 베르닌은 생선 봉지를 들고 귀가했다. 문을 열어젖히며 왕재수를 불렀다.

 

 

“ 미셴카, 내가 뭐 사왔게~ ”

 

 

답이 없었다. 집은 텅 비어 있었다. 김이 빠진 베르닌은 생선을 일단 냉장고에 넣고 손부터 씻었다.

 

 

‘ 이 녀석 어디 갔지? 돌아오면 무조건 우리 집으로 오는 놈인데. 공연 없다고 로만이랑 불태우고 있나? 에이, 그럼 괜히 생선 사왔잖아. 생선 사기 전에 로만한테 먼저 전화해볼 걸. ’

 

 

 

풀이 죽은 베르닌은 혹시나 하며 위층으로 가보았다. 왕재수는 보통 코즐로프의 집에서 사랑을 불태우곤 했지만 이따금 코즐로프가 이쪽으로 오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 둘이 있으면 같이 저녁 먹자고 해야지. 어차피 생선도 많으니까. ’

 

 

초인종을 누르려고 했는데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 이상하네. 이 자식 감시 노이로제 있어서 문은 항상 꼭꼭 잠가 놓고 다니는데... 어떻게 된 거야. 설마 누가 침입했나? ’

 

 

퍼뜩 걱정이 된 베르닌은 큰 소리로 왕재수의 이름을 부르며 문을 활짝 열었다.

 

 

“ 미셴카, 나야! 무슨 일 있어? 왜 문도 안 잠그고... ”

 

 

 

대답은 없었지만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베르닌은 급하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거실로 가니 왕재수가 혼자 소파에 앉아 있었다. 구겨진 셔츠에 파자마를 걸친 채 눈물을 뚝뚝 흘리고 이따금 흑흑 흐느끼면서 사과파이를 한 판 껴안고 접시도 포크도 없이 맨손으로 와구와구 퍼먹고 있었다. 마구 찢어진 종이 포장지가 바닥에 굴러다녔다. 사과파이는 이미 반쯤 사라진 후였다.

 

 

야! 너 왜 이러는 거야! 무슨 일이야!

 

“ 엉엉... 나빠... 흑... ”

 

 

왕재수는 훌쩍훌쩍 울면서 계속해서 사과파이를 입안으로 쑤셔 넣었다. 심지어 조금씩 떼어 먹는 것도 아니고 파이를 손으로 쥔 채 그대로 뭉텅뭉텅 베어 먹는 것이 아닌가! 울면서 제대로 씹지도 않고 먹느라 사레가 들려 기침을 하기도 했다. 베르닌은 고개를 저으며 왕재수의 손에서 파이를 빼앗고 물을 가져다주었다.

 

 

“ 어휴, 정말 너 왜 이러니. 맨날 매너가 어떻고 다이어트가 어떻고 하면서 꼭 한 번씩 이런다니까. 물 마셔. 그러다 얹힌단 말이야. ”

 

“ 흐흑, 다이어트가 무슨 소용... 얹힐 거야... 아파버릴 거야, 엉엉... 먹다가 죽어버릴 거야. 어엉... ”

 

 

왕재수가 더욱 서럽게 울었다. 기침을 하다가 씹지도 않고 삼켰던 사과파이 조각이 튀어나오기까지 했다. 베르닌은 한숨을 쉬었다. 왕재수의 입에 컵을 대고 물을 한 모금 마시게 했다.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닦아 주었다. 그 와중에도 왕재수는 더욱 서럽게 울었다. 닭똥 같은 눈물을 주룩주룩 쏟으며 두 손으로 가슴을 쾅쾅 쳤다.

    

 

“ 엉엉, 미워... 나빠... 흑... 늙었어... 뚱뚱해... 엉엉...

 

“ 너 대체 왜 그러니! 누가 늙어, 누가 뚱뚱하고... ”

 

“ 나... 엉엉... ”

 

으악, 너 미쳤냐? 자작나무처럼 마른 게 뚱뚱하긴 뭐가! 그리고 뭐가 늙어! 이제 겨우 스물다... ”

 

“ 엉엉... 그 자식은 이제 스무 살이래... 이쑤시개 같아... 어헝... 다 끝났어. 어흑... ”

 

“ 뭐가 이쑤시개야, 뭐가 스무 살이고. 그 자식이 누군데? ”

 

아, 아포샤... 어흑, 다닐... 엉엉... 로만이... 흐어어... ”

    

 

 

베르닌은 대체 이 녀석이 왜 이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일단 사과파이부터 빼앗았다. 영문을 몰랐지만 횡설수설하며 눈물콧물 쏟는 모습이 너무 짠했기 때문에 왕재수의 어깨를 안아주고 등을 토닥토닥 두들겨주고 달래주었다.

 

 

“ 그래그래, 뭔가 속상한 일이 있었나보구나. 다 괜찮을 거야. 내가 있잖아. 걱정하지 말고 다 말해보렴. 로만도 있고. ”

 

 

“ 로만 없어! 다 그 인간 때문이야... 어헝... 배반자... 흑, 이쑤시개... 아포샤, 엉엉... ”

 

 

“ 어휴, 너 또 로만이랑 싸운 거야? 그 이쑤시개란 놈은 대체 뭐야? ”

 

“ 흑... ”

 

 

 

왕재수는 10분 정도 더 흐느껴 울고 나더니 간신히 진정했다. 베르닌이 건네준 손수건으로 코를 팽 풀고는 찬물로 얼굴을 씻었다. 눈이 토끼처럼 새빨갰다. 그 와중에도 무슨 스킨이니 로션이니 따위를 얼굴에 두들겨 바르는 것을 보고 베르닌은 혀를 내둘렀지만 왕재수가 피부를 얼마나 챙기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를 우려 왔다.

 

 

“ 자, 차 한 잔 마시고 좀 진정하렴. 맨입에 사과파이를 그렇게 먹고... ”

 

 

 

왕재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심호흡을 했다. 다시금 눈가에 눈물이 구슬처럼 맺혔지만 꾹꾹 눌러 참으며 다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 로만이랑 싸운 거야? 지난번 그 여자들 때문에? 그 아저씨 너 엄청 좋아하잖아. 자꾸 틱틱대지 마. 그 여자들하고도 다 정리했다잖아. ”

 

“ 그 여자들은 상관없어! 그게 문제가 아니야. 다른 놈이 있었어! ”

 

“ 으잉, 다른 놈은 또 뭐야? 그게 그 이쑤시개야? ”

 

“ 아포샤... ”

 

“ 이름이 뭐 그 모양이야? ”

 

아폴론이래! 그게 본명이래! 기가 막혀서! ”

 

 

왕재수는 찻잔을 쾅 내려놓았다. 이제 눈물콧물 쏟는 단계에서 활화산처럼 분노하는 단계로 접어든 것 같았다. 베르닌은 한숨을 쉬었지만 그래도 우는 왕재수보다는 화내는 왕재수가 더 나았으므로 진정시키는 대신 그 이쑤시개인지 아폴론인지 하는 놈에 대해 물었다. 왕재수는 까만 눈에서 빨간 불 파란 불을 번쩍번쩍 내뿜으며 자초지종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 오늘 콤소몰에서 쓰레기 공연 올리는 날이거든. 그 꼴 보기 싫어서 다섯 시에 칼퇴근했단 말이야. 그러니까 오늘은 저녁부터 로만이랑 실컷 불태우기로 했었어. 로만은 오케스트라 신입 단원 오디션에 들어가느라 나한테 먼저 가 있으라고 했어. 그래서 나 혼자 곧장 로만 아파트로 갔단 말이야. 원래, 원래 오늘 스베촉 쉬는 날이니까 보랴가 자기네 집 오면 맛있는 거 해준다 했었는데... 그리고 바냐도 새 잡지 들어왔다고 보러 오라 했는데... 다 포기하고 로만이랑 오붓하게 보내려고 했는데... 그 집에 들어갔더니 웬 애새끼 하나가 홀라당 벗고 침대에 누워 있는 거야!

 

 

베르닌은 깜짝 놀랐다.

 

 

엥? 애새끼? 남자? 홀라당? 침대!!!

 

“ 그래! 심지어 입에 장미꽃까지 물고서!!! ”

 

“ 장미!! 우와, 장난 아니다... 그래서? ”

 

 

“ 문 열리는 소리에 그 자식이 눈을 사르르 감고 막 속눈썹을 파르르 떨면서 온갖 예쁜 척 귀여운 척을 다 하면서 완전 가성으로 애교 짜내는 목소리로 ‘자기,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나 한참 기다렸잖아아, 아잉’ 이러는 거야! 우웩, 진짜 토 나왔어! 내가 소스라쳐서 ‘너 누구야!’ 하고 소리치니까 그 자식이 눈을 번쩍 뜨더니 화들짝 놀라서 막 이불을 칭칭 감고는 ‘으앗, 누군지 모르지만 제발 입 다물어줘! 이거 들키면 나랑 로만 끝장나! 나 지금 우리 그이 기다리고 있단 말이야, 오늘 밤새 불태울 생각에 잠도 설치고 왔어. 제발 입 다물어줘, 응?’ 이러는 거야!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누가 우리 그이야! 로만이랑 너 무슨 사이야!’ 하고 다그쳤더니 그 이쑤시개 같은 놈이 갑자기 발딱 일어나서 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보고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는 거야. 그러더니 그 자식이 발칵 화를 내면서 ‘어휴, 이거 완전 불여우네! 로만한테 꼬리치러 온 녀석이지? 당장 꺼지지 못해!’ 하고 소리를 지르는 거야! ”

 

    

 

왕재수는 분을 참지 못하고 부르르 떨었다. 아직도 김이 오르는 차를 벌컥벌컥 마시더니 ‘아 뜨거워!’ 하고 욕을 했다. 베르닌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 그러니까, 로만하고 원래 사귀던 녀석이란 거야? 옥사나랑 논나처럼? ”

 

“ 몰라! 내가 알게 뭐야! ”

 

 

왕재수는 욕을 하다가 간신히 조금 진정하고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 그 자식 이름이 아포샤래. 꼴에 바이올리니스트래. 로만하고는 3년인가 사귀었다고, 음악학교 출신인데 극장에 찾아가서 로만한테 교습해 달라고 엉겨 붙었다가 놀아났다는 거야. 로만이랑 어마어마하게 뜨거운 사이였다고 자랑하고... 그러다 그 자식이 아르한겔스크인가 어딘가 삼류 오케스트라에 들어가는 바람에 작년 가을에 가브릴로프를 떠났대. 로만이 심지어 자기 차로 아르한겔스크까지 태워다 줬었대! 아포샤 그 자식은 밤이고 낮이고 로만 생각만 했는데 오케스트라에서 휴가를 안 내줘서 새해에도 못 왔대. 간신히 휴가 순번을 받자마자 날아온 거래. 둘이 무지무지 사랑하는 사이였다는 거야... 로만이 맨날 자기 보고 귀염둥이 우리 아기라고 했다고... ”

 

 

왕재수가 감정이 북받치는지 눈물을 뚝뚝 흘렸다.

 

 

“ 나한테 귀염둥이 우리 아기라더니... 흑... 다 필요 없어... 그 자식한테 다 써먹은 말 나한테 재탕하고... 다 끝났어... 난 로만이랑 끝났어, 흑... 로만이 나 버릴 거야, 아포샤한테 돌아갈 거야.

 

 

 

베르닌은 의아해서 물었다.

 

 

 

“ 너답지 않게 왜 그러니? 옥사나랑 논나랑 뭐가 다르다고 그렇게 상심하는 거야? 아포샤 걔는 가을에 아르한겔스크로 갔다며. 너랑 로만은 그 후에 만났잖아, 그동안 로만이 걔랑 따로 만난 것 같지도 않구만. 왜 그렇게 자학하는 건데? ”

 

“ 그건, 그건... ”

 

 

 

왕재수는 거울을 힐끗 보더니 슬프기 짝이 없는 사슴눈이 되어 베르닌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 로만은 어린애를 좋아한단 말이야... 작고 날씬하고 예쁘고 어릴수록 좋아해. 그래서 나보고도 맨날 ‘우리 조그만 귀염둥이, 우리 아기’ 라고 한 거라고. ”

 

“ 그래! 너는 날씬하고 예쁘잖아! 그리고 그 아저씨에 비하면 어마어마하게 어리잖아! ”

 

“ 그치만... 아포샤 그 자식은... 스무 살밖에 안 됐단 말이야! 나보다 훠, 훨씬 어리고 훨씬, 훨씬 날씬하단 말이야! 이쑤시개처럼 말랐어... 키도 이렇게 작고... 얼마나 앙증맞은데... 주머니에 들어갈 지경이야... 완전 미소년이었어. 막 금발 곱슬머리가 이렇게 보들보들하게 구름처럼 예쁘게 말린 게 꼭 라파엘 그림에 나오는 천사 같잖아... 속눈썹도 얼마나 긴데... 눈도 새파란 게 완전 기집애 같고... 얼마나 말랐는데... 흑... ”

 

“ 야! 너도 속눈썹 길잖아! 피부도 새하얗고! 밤하늘 같고 호수 같은 눈이라며! 우주 최강 꽃미남이라며! 웬만한 여자들보다 더 예쁘잖아! 그리고 엄청 날씬... ”

 

“ 아니야, 흑... 그 자식 나보다 훨씬 날씬해... 허리가 완전 한줌이야... 로만이 한 손으로도 움켜쥘 정도란 말이야... 어헝... ”

    

 

왕재수는 서러움이 다시 폭발했는지 흐느껴 울면서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치고 발을 굴렀다.

    

 

“ 그, 그 자식이 나한테... 어디서 굴러먹은 놈인지 모르겠지만 로만한테 꼬리쳐봤자라고... 꺼지라는 거야... 그러더니 날 이리저리 훑어보면서 막 비웃으면서 나 같은 건 로만 취향 아니라면서... 머리도 까마귀처럼 새까맣고 키도 너무 크고 뚱뚱하다고... 허, 허벅지가 너무 두툼하다고... 흑...

 

 

 

왕재수가 자기 허벅지를 두들기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베르닌은 한숨을 푹푹 쉬었다.

    

 

 

“ 야, 울지 마. 로만이 지난번에 너 허벅지 두툼해서 좋다고 했다며. 그리고 지금은 별로 두툼하지도 않아, 하도 자주 아파서 살도 쭉 빠지고... 너보다 더 마른 놈이면 그건 날씬한 게 아니라 진짜 이쑤시개라고! 넌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난 놈이 대체 왜 그 이쑤시개 같은 애송이 말에 휘둘려서 울고불고 하는 거야? 로만이 널 찬 것도 아니잖아. ”

 

 

“ 그치만... 뚱뚱하니까 그렇지! 그 자식보다 나이도 많고 뚱뚱... ”

 

“ 네가 뚱뚱하면 우리 동네 사람들 전부 초특급 비만이야! 그리고 문어발 친 놈한테 가서 따지면 되잖아, 네가 뭘 잘못했다고 이렇게 울고불고 난리야! 가서 로만한테 따져! 그 아포샤인지 뭔지 하는 녀석이랑 삼자대면을 하든가! ”

 

“ 로만 벌써 봤어! 내가 아포샤하고 소리 지르고 있는데 불쑥 들어왔어! 근데 아포샤가 갑자기 눈에서 하트를 발사하면서 후다닥 달려가서 로만한테 와락 안기잖아! 홀랑 벗은 게 막 안기면서 뽀뽀를 하고 뺨을 비벼대고... ‘자기 보고 싶었어!’ 하면서 온갖 여우짓을 하면서! 로만 그 인간이, 그 인간이 막 어버버하면서 꼼짝도 못 하잖아! ‘아포샤, 너 언제 왔어!’ 이러기만 하면서... ”

 

 

왕재수는 생각할수록 분한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 네가 있는 걸 보고도 그랬단 말이야? ”

 

“ 그래! 아니, 로만도 처음엔 날 못 봤나 봐. 내가 너무 열 받아서 ‘지금 뭐하는 거야!’ 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니까 화들짝 놀라더라고. 그때서야 아포샤를 밀어내면서 나한테 후다닥 달려오는 거야. 막 내 이름 부르면서 오해라고 변명하는데 그게 무슨 오해야! 흑... ”

 

“ 그래서... 로만하고는 아무 얘기도 안 하고 나와 버린 거야? ”

 

“ 그럼 무슨 얘길 해! 현장에서 딱 걸렸는데! 엉엉... 나쁜 인간... 문어발... 누가 문어발 칠 줄 몰라서 안 해? 나 우주 최강 꽃미남인데... 눈짓 한방에 남자들 다 쓰러지는데... 그런데도 여기 와서 로만하고만 사귄 건데... 나빠... 이쑤시개 좋아하고, 흑... ”

 

 

베르닌은 왕재수를 살살 달래보려고 했다. 하지만 왕재수는 눈물을 쓱쓱 닦더니 갑자기 또 두 눈에서 빨강파랑 불꽃을 폭죽처럼 내뿜으며 단호하게 외쳤다.

 

 

그래! 나 같은 우주 최강 꽃미남이 뭐가 아쉬워서! 애초부터 내가 이렇게 일편단심으로 살 놈도 아닌데 시골이라고 로만한테 목맸던 게 잘못이야! 본성대로 살아야지! 문어발 치고 막 놀아날 거야!

 

 

베르닌은 화들짝 놀랐다.

 

 

“ 으악,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웬 문어발! 여기는 레닌그라드가 아니잖아! 가브릴로프는 보수적인 동네라고! 옛날처럼 막 아무 남자들한테나 문어발 치다 국장한테 걸리기라도 하면 너 큰일 나! ”

 

“ 뭐가 큰일 나! 안 들키게 하면 장땡이지! ”

 

“ 여기는 그런, 그런 남자들 별로 없단 말이야! 로만이나 그렇지... ”

 

없긴 뭐가 없어! 그리고 그런 남자든 안 그런 남자든 상관없어! 절대미모 앞에선 성향이고 뭐고 없다고! 내가 꼬시면 안 넘어올 놈 없어! 가까이 있는 남자부터 시작할 거야!

 

 

 

왕재수가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갑자기 베르닌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두 눈에서 레이저가 번쩍 하는가 싶더니 기다란 속눈썹이 나비처럼 팔랑거렸고 금세 호수처럼 깊고 별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눈으로 바뀌는 게 아닌가! 그 눈빛이 너무나 그윽해서 베르닌은 한순간 머리가 멍해졌고 현기증과 함께 온몸이 흐물흐물해지는 것 같았다. 온몸에 열이 후끈 났다.

 

 

왕재수가 한 발짝 앞으로 다가오며 눈부신 미소를 지었을 때 베르닌은 하마터면 그를 와락 껴안고 뽀뽀를 할 뻔했다! 아마 그러다 소파에 걸려 넘어질 뻔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넘어갔을 것이다! 휘청하고 나자 베르닌은 간신히 정신을 약간 차렸고 버럭 소리쳤다.

    

 

으악, 너 지금 뭐하는 짓이야! 지금 나 꼬시는 거야?

 

 

가까이 있는 남자부터... ”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냐! 안 돼! 나는 절대 안 돼!

 

“ 왜 안 돼? 완벽한 이성애자란 건 환상인데. ”

 

야! 그게 문제가 아니란 말이야! 이성애고 나발이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너’ 말이야! 나 너하고는 절대 안 해! ”

 

“ 흐음, 이상하다... 웬만하면 다 넘어오는데... 역시 내 매력이 떨어졌나... 뚱뚱...

 

 

 

왕재수의 눈매가 다시 울음보를 터뜨릴 듯 처지고 있었기 때문에 베르닌은 황급히 외쳤다.

 

 

그거 아냐! 안 뚱뚱해! 네가 제일 예뻐! 우주 최강 꽃미남이야! 그래도 난 안해! 난 친구랑 안 해! 너도 친구랑은 안 하자 주의라고 했잖아!

 

 

“ 쳇, 까탈스럽긴. 바보 멍충이. ”

 

 

왕재수는 입술을 삐죽거리더니 침실로 들어갔다. 파자마와 셔츠를 훌렁훌렁 벗었다. 옷장 문을 열어젖히더니 새 셔츠와 바지와 재킷을 꺼내 입었다. 그리고는 화려한 스카프를 휙 두르더니 베르닌의 곁을 지나쳐 성큼성큼 현관으로 걸어갔다.

 

 

“ 야, 너 어디 가! ”

 

“ 무슨 상관이야! 해주지도 않으면서! 문어발 치러 갈 거니까 저녁은 너 혼자 먹어! ”

 

 

 

문이 꽝 닫혔다.

   

 

 

 

 

*    *   *

 

 

 

 

 

베르닌은 무릎과 다리가 후들거려서 일단 소파에 주저앉았다. 하마터면 큰 일 날 뻔했다는 생각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 으아, 저 자식 진짜 뭐야... 뭐 저런 녀석이 다 있어... 나 정말... 나 진짜 하마터면... ’

 

 

심장이 벌렁거려서 한참동안 심호흡을 했다. 왕재수의 그윽해진 눈빛과 광선처럼 뻗쳐 나오던 매력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심지어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한 혼란마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 으아, 아니야. 난 여자가 좋은데! 아니야! 진짜 아니야! 그리고 1만분의 1로 혹시나 조금 살짝 남자한테 끌리는 성향이 숨어 있다 해도 그 녀석은 아니야! 진짜 아냐! 걔한테는 절대절대 그렇게 엮이면 안 돼! 다른 놈들이 다 걔 건드려도 난 절대 그러면 안 되는데! 그 자식 돌봐줄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

 

 

 

베르닌은 욕실로 가서 찬물로 세수를 했다. 냉장고에서 차가운 주스를 꺼내 꿀꺽꿀꺽 마셨다. 조금 진정이 되려는 찰나 그는 펄쩍 뛰었다.

 

 

으악! 이 자식 아까 뭐라고 그랬지? 문어발 친다고, 가까운 남자부터 시작한다고 했는데... 보랴가 밥 먹으러 오라 했다고... 서, 설마 이 자식 보랴한테 간 거 아니야?

    

 

순간 베르닌의 귓가에 왕재수가 평소 하던 말들이 울려퍼졌다.

    

 

‘ 으응, 보랴 멋있어. 터프해. ’

 

‘ 보랴 완전 내 타입이야. ’

 

‘ 보랴 좋아~ ’

 

 

 

눈앞에 보랴와 왕재수가 부둥켜안고 뽀뽀를 하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펼쳐졌다. 날벼락처럼 애인을 뺏긴 알렉산드라가 울부짖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악, 안 돼! 보랴는 안 돼! 알렉산드라는 어쩌란 말야! 안 돼! 막아야 해!

 

 

베르닌은 후다닥 뛰쳐나갔다. 정신없이 차를 몰고 스베촉으로 향했다. 식당 앞에 도착했을 때에야 퍼뜩 생각이 났다.

 

 

 

‘ 아, 맞다. 오늘 스베촉 쉬는 날이라고 했지. 보랴네 집으로 가야겠다! ’

 

 

 

문제는 그 집에 보랴의 생일 때 한 번밖에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주소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거였다. 기억을 더듬어보았지만 몇 번이나 길을 잘못 들었다. 빙글빙글 돈 끝에 간신히 보랴의 집에 도착했다. 떨리는 손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한참 후에야 문이 열리더니 토끼처럼 눈이 새빨개져서 눈물이 글썽한 알렉산드라가 얼굴을 빼꼼 내미는 것이 아닌가! 베르닌을 보자 알렉산드라가 헛기침을 하더니 목쉰 음성으로 어색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 아, 다냐구나... 저녁 먹었니? ”

 

 

헉, 선배님... 왜 우는 거예요! 역시 그 녀석이... 그 망나니가 마수를 뻗친 거야! 선배님, 울지 마세요! 제가 그 자식 혼내줄 테니까... 지금 그 자식이랑 보랴랑 같이 있는 거예요? ”

    

 

알렉산드라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다냐. 그 녀석은 뭐고 마수는 뭐야? 보랴랑 뭐? 혹시 바냐 얘기니? ”

 

“ 아뇨! 왕재수... 미샤 말이에요! 그 자식이 보랴를... ”

 

“ 아, 너 미샤 찾으러 왔구나. 아까 미샤 봤는데. ”

 

“ 그럼 역시 보랴와... 흑, 선배님, 괜찮아요! 괜찮아요, 보랴도 잠깐 정신이 나갔을 뿐이에요! 그 자식이 그렇게 맘먹고 나오면 안 무너질 남자 세상에 하나도 없다고요! 보랴도 진심이 아니었을 거예요! 이런 걸로 상심하시면 안돼요, 어흑... 불쌍한 선배님... ”

 

“ 대체 무슨 소리야? 너 취했니? 뭐가 진심이 아니야? ”

 

“ 그 자식이 보랴랑... ”

 

 

 

그때 알렉산드라의 등 뒤로 보랴가 나타났다. 역시 눈이 빨개진 채였다. 베르닌을 보더니 의아한 듯 물었다.

 

 

 

“ 너 웬일이냐? 왜 그렇게 사색이 돼서 훌쩍훌쩍 울고... ”

 

 

“ 보르카, 다냐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갑자기 흥분해서 횡설수설하면서 미샤를 찾고 무슨 망나니를 찾고 당신이 마수에 걸렸다고 하잖아. 나보고 불쌍하다 하고. 취했나봐. ”

 

“ 흠흠, 술 냄새는 안 나는 것 같은데. 너 무슨 일 있었냐? ”

 

“ 그, 그게 아니고... 그 녀석이 문어발을... 그러니까... 미셴카, 그 자식 여기 안 왔어요? ”

 

“ 애기? 여긴 안 왔는데? ”

 

“ 당신한테 문어발 친 거 아니에요? ”

 

“ 도대체 무슨 소린지 모르겠구나. ”

 

 

“ 그럼, 그럼 선배님은 왜 그렇게 울고 계셨던 거예요! ”

 

“ 어휴, 나 운 거 아냐. 보랴가 프라이팬에 생선을 올려놨는데 깜박해서 다 태우고 연기가 엄청 났거든. 다 치우고 새로 구워주긴 했는데 연기 때문에 엄청 눈 따가웠어.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더니. ”

  

  

보랴가 멋쩍게 웃었다.

 

 

“ 그게... 사셴카가 지난번에 바자회 할 때 입었던 딸기아가씨 의상을 입어서 내가 정신이 팔려서... ”

 

“ 보르카! ”

 

 

얼굴이 빨개진 알렉산드라가 보랴의 옆구리를 콕 찔렀다. 베르닌은 깨가 쏟아지는 연인들의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쉬다가 퍼뜩 생각이 났다.

 

 

“ 그 자식 진짜 여기 온 거 아니란 말이에요? 그치만 선배님이, 그 자식 아까 봤다고... ”

 

“ 아, 바냐 사무실 앞에서 봤어. 나 퇴근하고 거기 들렀거든. 보랴랑 같이 일 좀 도와주고 나오는데 미샤가 올라오더라고. ”

 

“ 바냐가 누구지... 앗, 서, 설마 투레츠키!! 그 자식이 투레츠키한테 갔다고요? 그, 그게 정말이에요? 언제요? ”

 

“ 글쎄, 한 시간쯤 됐나? ”

 

안 돼! 안 돼! 투레츠키 그 자식은 절대 안 돼! ”

    

 

 

베르닌은 보랴와 알렉산드라에게 인사를 하는 것도 잊고 홱 돌아서 우당탕쿵탕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미친 듯이 차를 몰았다.

 

 

 

안 돼, 투레츠키만은 안 돼!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돼! 가뜩이나 애 집적대고 지저분하게 굴고! 썰매에 태웠을 때도 인사불성인 애 계속 잠자리 끌어들이려고 수작부리고! 그런 개망나니가 건드리게 놔둘 수는 없어! 어휴, 바보 같은 자식. 하고많은 남자들 놔두고 왜 투레츠키야! ’

    

 

 

 

투레츠키의 사무실 문은 닫혀 있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으아, 문 잠가놓고 놀아나고 있나보다!

    

 

베르닌은 뒤로 물러섰다가 다다다 달려가 있는 힘껏 문에 몸을 부딪쳤다. 불행하게도 문이 잠겨 있지 않았으므로 그는 쿠당탕 나뒹굴고 말았다.

    

 

“ 으아아... ”

 

어느 놈이야! 합법적으로 운영하는 인민 유통 사무실에 침입자라니!

 

 

 

함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자 투레츠키가 하키 스틱 같은 것을 꼬나들고 금방이라도 그를 두들겨 팰 기세였다. 베르닌과 눈이 마주치자 투레츠키가 안경을 추켜올리더니 스틱을 쥔 손을 뒤로 빼면서 투덜댔다.

 

 

“ 뭐야, 너! 깜짝 놀랐잖아! 그냥 열면 되지 왜 뛰어들고 난리야! 짭샌줄 알았잖아! ”

    

 

베르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투레츠키를 유심히 살폈다. 평소에는 올백으로 빗어 넘겼던 금발 머리가 오늘은 마구 흐트러져 있었다. 배지가 주렁주렁 달린 노란 재킷도 간 곳 없고 단추를 세 개나 풀어헤친 알록달록한 셔츠 한 장에 얄팍한 파자마 차림이었다! 게다가 뺨과 목덜미에는 불긋불긋한 자국까지 있는 것이 아닌가! 베르닌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번개같이 튀어 일어나 투레츠키에게 덤벼들었다. 한쪽 팔을 꺾고 하키 스틱부터 빼앗았다. 그리고는 월등한 덩치로 태클을 가했다. 무방비 상태의 투레츠키는 금세 베르닌에게 제압당하고 말았다. 베르닌에게 깔린 투레츠키가 버둥거리며 욕을 했다.

 

 

 

“ 으아악, 너 왜 이러는 거야! 진짜 짭새 노릇이라도 하는 거냐! ”

 

시끄러워, 이 나쁜 자식아! 가만 안 둘 거야!

 

“ 대체 왜 그러는 거야! 파인애플도 구해주고 썰매도 태워주고 지... ”

 

시끄러워! 너 내가 분명히 그랬지! 걔 건드리지 말라고! 으아아, 나 진짜 못 참아! 캬아악!

 

“ 누굴 건드렸다는 거야! 으악! ”

 

미셴카! 너 지금 그 자식이랑 뒹굴다 나온 거잖아! 잡아떼 봐야 소용없어! 다 들었어, 보랴한테! 걔 여기 온 거 다 알아! 아무리 개망나니라도 그렇지, 화나서 제정신이 아닌 애를 이용해서 덮치다니 이 나쁜 자식아! ”

    

 

베르닌이 화가 나서 씩씩거리고 있는데 투레츠키가 아래 깔린 채 꿈지럭거리더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픽’ 소리를 내며 쏘았다. 순간 베르닌은 너무 눈이 따가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으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두 손으로 눈을 감싸 쥐는 순간 투레츠키가 잽싸게 옆으로 몸을 굴려서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셔츠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며 투덜댔다.

 

 

아, 우리 이쁜이 얘기냐? 하여튼 너도 참... 그러니까 목석같이 굴지 말고 애초부터 확 뒹굴어버리면 됐잖아. 욕구불만은 곧 의심증으로 이어지는 거야. ”

 

“ 그러니까, 너 그 자식 건드린 거 맞잖아! ”

 

오우, 지저스! 건드리긴 뭘 건드리냐! 오자마자 물건 내놓으라고 난리쳐서 그거 쥐어줘서 보냈는데. 안 그래도 좀 놀고 싶었는데 자식이 하도 급하다고 난리인데다 웬일로 그 자리에서 현금을 쥐어주는 거야. 캐쉬! 나야 고객중심주의 아니냐. 그래서 물건 줘서 내보냈어. ”

 

“ 거짓말 하지 마! ”

 

“ 내가 왜 거짓말을 한담. 돈도 안 생기는데. ”

 

 

베르닌은 눈물콧물을 쏟으며 일어나 앉았다. 투레츠키가 물을 가져다줘서 눈을 씻었다.

 

 

“ 대체 뭐 쏜 거야? 아 따가워... ”

 

“ 이 장사 하려면 페퍼 스프레이쯤은 호신용으로 가지고 다녀야지. 언제 짭새가 들이닥칠지 모르는데. ”

 

“ 제발 영어 좀 쓰지 말라고. 페퍼가 뭐야? ”

 

“ 후추. ”

 

“ 으윽... ”

 

 

 

베르닌은 그래도 믿을 수가 없어서 사무실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왕재수의 흔적은 없었다. 왕재수는 좋은 향수를 썼기 때문에 사무실에 오래 있었다면 분명히 그 향기가 남아 있어야 했다. 하지만 잔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도 의심이 가시지 않은 베르닌은 투레츠키에게 왕재수가 정말 물건만 받아갔느냐, 가져간 물건이 뭐냐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 그래! 3분도 안 걸렸어. 물건이 뭔지는 말해줄 수 없어! 고객중심주의라고 했잖아! 고객의 비밀은 나의 비밀! “

 

“ 그치만... 너 머리도 막 헝클어져 있고, 재킷도 안 입고 셔츠도 단추 다 풀어헤치고 파자마에... ”

 

오우 마이 갓, 이거 파자마 아니야! 요즘 파리에서 잘 나가는 하이패션이라고! 머리는 무스가 다 떨어졌단 말이야! 오늘 이렇게 따뜻한데 실내에서 재킷을 왜 입냐!

 

“ 그치만... 얼굴이랑 목에 그 뽀뽀 자국... ”

 

“ 나도 이게 우리 이쁜이 키스 마크면 참 좋겠네. 보랴가 창문 열어놓고 나가서 모기 물린 거야! 그건 그렇고 너 정말 이러기냐! 기껏 지굴리 싸게 뽑아줬더니 두들겨 패기나 하고 누명 씌우고! 친구라서 여태 잘해줬더니만 다 소용 없구만! 어디서 헛소문을 듣고 와서 난리나 치고! 역시 미인 앞에 우정이란 물거품... ”

 

베르닌은 깜짝 놀랐다.

 

 

으잉? 지굴리? 그 지굴리 네가 구해준 거야? ”

 

 

“ 그럼 이 촌구석에서 누가 차를 구해 주냐! 그것도 원래 두 배는 받아야 되는데 이쁜이가 얼마나 애교를 떨고 협박을 하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가격을 깎는지... 원래 같으면 절대 안 받아주는데 걔는 하는 짓이 귀여우니까 내가 그냥 져준 거야! 그것도 네가 쓸 차라고 하니까 내가 동갑내기 친구를 위해 그렇게 해준 건데 정작 너는 날 두들겨 패기나 하고 의심하고! 나 정말 실망했어, 상처받았어! 아임 쏘 새드!

 

갑자기 엄청나게 미안해진 베르닌은 투레츠키의 손을 꼭 부여잡고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

 

 

“ 저기, 미안해... 난 정말 걔가 너랑 그런 줄 알고... 미셴카가 꼭지가 돌아서 가까운 남자들이랑 놀아나겠다고 큰소리 빵빵 치고 나갔거든. 근데 보랴가 걜 여기서 봤다잖아. 미안해. ”

 

“ 흠, 난 아무 것도 못 들은 걸로 하겠어. 손님의 사생활을 알면 나도 피곤해져. ”

 

“ 걔가 혹시 어디 가겠다는 말 안 했니? ”

 

“ 노노노, 안 했어. 설령 했어도 비밀을 지켜야 하니까 난 말 안 해. 물건 살 거 없으면 그만 가라. 너 저 문짝 멀쩡한 거 다행으로 알아. 안 그랬으면 문짝 수리비랑 페인트칠 비용까지 다 물어야 했을 테니까. ”

 

“ 아, 알았어. 바냐, 진짜 미안해. 난 정말 걔가 너랑 그러는 줄 알고... ”

 

그러니까 목석같이 굴지 말고 그냥 메이킹 러브하라고 했잖니.

 

 

 

베르닌은 한숨을 쉬며 투레츠키의 사무실을 나왔다.

    

 

 

 

 

 

*   *    *

 

 

 

 

 

 

 

베르닌은 심지어 극장까지 가보았다. 하지만 마주치는 사람마다 왕재수가 퇴근한 후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하긴 저질 공연이 올라가는 극장에 돌아올 왕재수가 아니긴 했다. 결국 베르닌은 실컷 뺑뺑이만 돌고 걱정으로 한숨만 푹푹 내쉬며 집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 낯익은 형체가 보였다. 로만 코즐로프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복도에 주저앉아 있었다. 베르닌을 보자 벌떡 일어나 그의 손을 덥석 움켜쥐고 소리쳤다.

 

 

 

봤냐, 우리 아기? 지금 어디 있냐, 엉? 거짓말하면 가만 안 둬!

 

 

으윽! 무슨 낯짝이 있다고 여기 나타난 거예요! 문어발! 바람둥이! 호색한! 카사노바! 인간말종! 옥사나 논나도 모자라 웬 아포샤인지 나발인지 이쑤시개 같은 놈이랑 놀아나서 그 자식 가슴에 못 박냐고! 주제를 알아야지! 이 나쁜 인간아!

 

 

 

베르닌은 갑자기 울컥해서 코즐로프를 떠밀며 버럭 화를 냈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사과파이를 퍼먹고 ‘뚱뚱해, 늙었어’ 따위 말도 안 되는 푸념을 하던 왕재수의 애처로운 모습이 떠오르자 더욱더 화가 났다. 막 발길질을 하려는데 코즐로프가 너무나 처량한 표정을 지으며 탄식했다.

 

 

 

“ 다 오해야... 망했어. 아포샤 그 여우같은 자식... 분명히 내가 끝났다고 편지도 보내고 전화도 했었는데... 우리 귀염둥이랑 새 인생 시작했으니까 오지 말라고 했는데. 애새끼가 나 엿 먹일 작정하고 온 거야... 나 미치겠다, 다닐... 하필이면 우리 아기는 또 그때 딱 들어와 가지고... 세상에 그 꼴은 또 뭐란 말이냐... 홀랑 벗고 웬 꽃까지 입에 물고... 우리 아기가 얼마나 놀랐는지... 그 고운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해가지고 내 말은 듣지도 않고 파들파들 떨면서 나가버리는데... ”

    

 

 

망연자실한 코즐로프의 표정을 보니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베르닌은 더욱 부아가 치밀었다.

 

 

“ 그럼 왜 안 쫓아갔어요! 쫓아나갔으면 됐잖아요! 옥사나 논나 때도 안아주고 사과하니까 걔가 바보같이 헤벌레하면서 슬슬 녹아서 다 받아줬잖아요! 왜 이번엔 안 그랬냐고요! ”

 

“ 나가려고 했지! 근데 아포샤 그 자식이 갑자기 내 바지를 훌렁 내리고 허벅지를 부여안으면서 절대 안 떨어지잖아! ”

 

“ 그 자식이 미셴카보다 훨씬 작다면서요! 이쑤시개처럼 말랐다면서! 당신 덩치에 그냥 확 떠밀었으면 떨어져 나갔을 거 아니냐고요! ”

 

이 멍충아, 그러니까 못 떠밀었지! 그 자식 얼마나 작은지 아냐! 완전 계집애 같다고! 잘못 떠밀면 대가리 깨지고 팔다리 다 부러진단 말이야! 간신히 떼어놓으면 또 달라붙고, 울고불고 난리치고 심지어 나랑 놀아난 거 KGB에 가서 고발할 거라고 협박하고 또 울고불고 하면서 그 불여우냐 자기냐 선택하라고 난리를 치는데 어떻게 하란 말이야. 나보고 미셴카 따라 나가기만 하면 자기는 홀랑 벗은 채로 이웃집마다 초인종 누르고 다니면서 나랑 놀아난 과거를 폭로하겠다고 협박을 하는 거야! 아, 내 팔자야... 아포샤 그 자식도 옛날엔 순진하고 귀여운 놈이었는데 어쩌다 그렇게 무서운 놈이 돼가지고... 여자만 한을 품으면 무서운 건 줄 알았더니 사내자식이 더 무섭다...

 

 

 

코즐로프가 한숨을 푹푹 쉬었다. 베르닌은 현기증이 났다. 흠씬 두들겨 패주고 싶었지만 코즐로프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니 또 짠하기도 했다.

 

 

 

“ 그래서요, 어떻게 빠져나왔어요? ”

 

“ 미셴카가 흘리고 간 스카프로 묶어놓고 뛰쳐나왔어. ”

 

뭐라고요? 그건 범죄잖아요! ”

 

“ 그럼 남의 집에 불법침입해서 홀랑 벗고 소란 피우는 건 범죄 아니냐? ”

 

“ 그러다 그 자식이 묶인 거 풀고 나와서 진짜로 당신 고발이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

 

“ 지금 그게 문제냐! 우리 아기... 아아, 내 강아지 내 비둘기... 가뜩이나 옥사나랑 논나 때문에 삐쳤었는데 아포샤까지... 너 우리 아기 봤지? 너한테 다 얘기한 거지? 뭐라고 했냐? 나 욕해? ”

 

“ 완전 울고불고 난리 났어요! 그렇게 속상해하는 거 처음 봤어요. 사과파이 한 판을 꾸역꾸역 먹고... 아포샤는 어리고 이쑤시개 같은데 자기는 늙고 뚱뚱하다고, 허벅지 두툼해서 당신이 자기 버리고 아포샤한테 갈 거라고 울고불고...

 

 

코즐로프는 신음하며 머리털을 쥐어뜯었다.

 

 

 

아니야, 아니야... 그렇지 않아... 자고로 사내 녀석이 허벅지도 두툼하고 근육도 딴딴하게 붙어야 제 맛이지! 그리고 너무 어린 놈 싫어, 아포샤 그 자식처럼 또 무슨 바보짓을 할지 모르는데. 난 우리 아기가 딱 좋아. 세상에서 제일 좋아. 뚱뚱하다니, 그렇게 자작나무처럼 날씬하고 탄탄한 것이 세상에서 제일 섹시... ”

 

 

시끄러워요! 지금 그런 말 하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그 자식 열 받아서 문어발 치러 가겠다고 했단 말이에요! 본성대로 살 거래요! 그래서 나 지금 보랴한테도 가보고 투레츠키한테까지 갔었다고요! 극장도 가고! 근데 못 찾았어요! 대체 누구랑 놀아나고 있을지... ”

 

 

뭣이, 우리 아기가 다른 남자를 꼬시러 갔다고! 안 돼! 절대 안 돼!

 

 

“ 이미 늦었어요! 어디 있는지 찾을 수도 없고... 일단 아포샤인지 이쑤시개인지 그 자식부터 풀어주러 가요! 고발당하면 어쩌려고! ”

 

“ 뭘 풀어 주냐! 그 자식 성깔에 분명히 무슨 짓을 해서라도 벌써 스카프 풀고 뛰쳐나갔을 게 뻔할 뻔잔데! 나 그 자식 다시 보고 싶지 않아. ”

 

“ 어휴, 그때도 그 여자들 나 몰라라 하고 토꼈다고 미셴카가 얼마나 짜증냈는지 알아요? 문어발칠 땐 좋아라 하고 놀고 지나고 나서는 이렇게 나 몰라라 하니 욕을 먹지! 그러니까 미셴카도 자기한테도 이럴 거라고 생각해서 더 화난 거 아니냐고요! ”

 

너는 계집애도 사내도 없이 맨날 독수공방만 하는 녀석이 뭘 알아!

 

 

 

베르닌은 다시금 울컥했지만 KGB 신분증을 내보이며 아포샤를 풀어줘야 한다고 완강하게 우겼다. 코즐로프는 투덜거리고 화를 냈지만 결국 굴복했다. 가장 큰 이유는 아포샤와 확실히 끝냈다는 사실에 대해 베르닌이 증인을 서 주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   *   *

 

 

 

 

 

 

코즐로프의 집은 같은 신시가지에 있었고 배나무 거리와도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차로는 15분쯤 걸렸다. 조그만 숲을 하나 지나야 했기 때문이다.

    

 

차에서 내렸을 때 코즐로프가 갑자기 멈춰 서더니 낮게 욕을 했다. 뒤따라오던 베르닌은 왜 그러나 하고 고개를 쭉 내밀었고 건물 현관으로 나오는 자그마한 형체를 발견했다. 굳이 설명해주지 않더라도 아포샤가 확실했다.

 

 

왕재수의 말이 옳았다. 가로등 램프 불빛 아래 그 자태를 드러낸 아포샤는 어마어마한 미소년이었다! 마구 흐트러진 금발 곱슬머리는 라파엘의 천사 그림에나 나올 법한 스타일이었고 사과처럼 홍조가 떠오른 뺨에 긴 속눈썹, 반짝거리는 파란 눈동자가 마치 여자아이처럼 예쁘장한 외모였다. 게다가 얼마나 자그마한지 기껏해야 알렉산드라보다 조금 더 클까말까 한데다 왕재수의 말대로 이쑤시개처럼 마르고 날씬했다. 착착 접어서 주머니에 쏙 들어갈 만큼 앙증맞은 인형 같았다. 그래도 팔이 안으로 굽어서 그런지 베르닌은 기분이 팍 상했다. ‘쳇, 사내자식이 저게 뭐야! 완전 쬐끄매서 이쑤시개 같아가지고. 미셴카가 훨씬 예쁘네. 어디 저런 자식을 미셴카랑 비교해!’ 라고 투덜댔다.

    

 

 

코즐로프가 펄쩍 뛰며 달려갔다. 조그만 인형 같은 아포샤의 어깨를 움켜쥐며 버럭 화를 냈다.

 

 

이 자식, 아직도 안 가고! 왜 자꾸 얼쩡거리는 거야! 내가 분명히 그랬잖아, 너하고는 끝났다고! 고발하든 말든 맘대로 해! 꺼져! ”

 

 

 

금발 인형 같은 아포샤가 콧방귀를 뀌더니 코즐로프의 팔을 홱 밀쳤다. 그러더니 도도하게 대꾸했다.

 

 

착각도 유분수야 정말. 나 당신 기다리고 있었던 거 아니거든! 당신 같은 인간은 내 기억에서 지운 게 옛날이네요! 백배 천배 멋있고 끝내주는 남자랑 잤거든! 평생 잊을 수 없는 밤이었어, 아아...

 

 

아포샤는 긴 속눈썹을 깜박거리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 세상에 그렇게 멋있는 남자가 있을 수가... 잠자리는 또 얼마나 대단한지... 남자 중의 남자야. 한번 잔 것만으로도 영광이야... 나 이제 이상형 바뀌었어! 당신 같은 아저씨랑은 다시는 안 잘 거야! 당신이야말로 꺼져! 어휴, 멀대처럼 키만 커가지고... 재수 없어! ”

 

 

 

그러더니 아포샤가 금발의 이쑤시개 요정처럼 휘리릭 가버렸다.

 

 

 

 

코즐로프는 한동안 황당한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서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손뼉을 딱 치더니 후다닥 아파트로 달려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도 기다리지 않고 계단으로 뛰어올라갔다. 베르닌은 아포샤도 가버렸는데 대체 왜 저러나 하면서 헉헉거리며 쫓아갔다.

    

 

 

코즐로프의 집은 복도 끝에 있었다. 코즐로프는 문을 열자마자 곧장 거실을 가로질러 침실로 달려갔다. 베르닌도 급하게 따라 들어갔다. 순간 그는 두들겨 맞은 듯 멍해졌다. 왕재수가 홀랑 벗은 채 허리를 시트로 두르고 침대에 앉아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베르닌은 기절초풍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으악, 너 지금 담배 피우는 거야? 의사 선생님이 피우지 말랬잖아!

 

 

 

코즐로프도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베르닌과는 다른 이유였다.

    

 

야! 너 누구랑 잤어!

 

 

왕재수가 컵에 담배를 칙 비벼 껐다. 구름처럼 하얀 연기를 포르르 내뿜은 후 투덜댔다.

    

 

“ 바보 멍충이. 맨날 구박이야. 한 개비밖에 안 피웠는데! ”

 

“ 한 개비고 두 개비고! 절대 피우지 말라고 했잖아! 의사 선생님한테 이른다! 그럼 또 입원시킬 걸! ”

 

밀고자! 앞잡이!

 

 

 

베르닌과 왕재수가 담배를 놓고 티격태격하고 있는 것에 어이가 없어진 코즐로프가 컵과 꽁초를 손바닥으로 탁 쳐서 떨어뜨리며 다시 한 번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너 내 말은 안 들려? 누구랑 잤냐고!

 

 

베르닌이 급하게 코즐로프의 입을 틀어막으며 창문을 닫았다.

 

 

“ 으악, 당신 조용히 좀 해요. 옆집에서 듣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리고 밑도 끝도 없이 왜 그래요! 아까랑 작전이 다르잖아요! 아포샤랑 끝냈다는 거 내가 증언해주고 당신은 무조건 얘한테 빌기로 했잖아요! 왜 뜬금없이 얘를 족쳐요? ”

 

 

아포샤랑 잤지! 그 자식 너랑 놀아나고 나간 거지!

 

 

  

베르닌은 어안이 벙벙해서 코즐로프를 쳐다보았다. 이 인간이 문어발의 말로를 맞아 드디어 미쳤나 싶었다. 그러나 왕재수는 ‘웬 헛소리야! 이 바람둥이 배신자야!’ 하고 소리치는 대신 너무나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응. 마침 여기 있더라고. ”

 

“ 그 자식은 나 같은 아저씨만 좋아했는데... 어떻게 너하고... ”

 

흥, 절대미모 앞에 이상형이 무슨 소용. 나 같은 미의 결정체와 하루 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지. ”

 

“ 그래서 아포샤 덮치고 너랑 잔 거 고맙게 생각하라며 세뇌시켜서 내쫓았다는 거야? ”

 

말은 똑바로 해야지. 세뇌가 아니야, 진실이지! 어디 그깟 이쑤시개 같은 녀석이 나 같은 우주 최강 꽃미남이랑 엮일 수준이야. 평생 영광으로 여기며 살아야지!

 

 

 

왕재수가 팩 쏘아붙였다. 베르닌은 너무 머리가 아픈데다 이제 바이올린 깡패 코즐로프가 미친 흑염소처럼 날뛰며 왕재수를 두들겨 팰 게 뻔하다는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 왔다. 저 녀석을 어떻게 피신시키지 하고 걱정하고 있는데 코즐로프가 우렁차게 ‘하하하’ 하고 웃더니만 갑자기 침대로 뛰어들며 왕재수를 와락 껴안는 것이 아닌가!

    

 

 

으하하하, 역시 우리 아기는 대단해! 귀염둥이 우리 아기, 내 강아지 내 비둘기 내 새끼~ 우주 최강 꽃미남이고 말고~ 남자 중의 남자고 말고~ 아이고 귀여워라! 우리 아기 세상에서 제일 예뻐, 제일 귀여워, 제일 섹시해! 난 너뿐이야~!!

 

 

“ 이쑤시개 좋아했잖아! ”

 

 

“ 안 좋아해 이쑤시개! 그렇게 조그맣고 삐쩍 마른 녀석 별로야! 그러니까 찼지! 나는 우리 아기가 제일 좋아~ 두툼한 허벅지가 최고야~ 아이 귀여워 아이 예뻐 우리 아기~

 

 

“ 쳇, 바보 멍충이. ”

 

 

 

 

코즐로프와 왕재수가 입술을 맞대고 불꽃을 튀기는 동안 베르닌은 한숨을 쉬었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인간들이라고 중얼거리며 침실을 나왔다. 터덜터덜 주차장으로 내려가며 ‘생선은 나 혼자 튀겨먹어야지’ 하고 푸념했다.

 

 

 

 

 

 

- FIN -

2016. 1. 2 ~ 1. 29

 

 

 

 

 

....

 

 

 

중반에 왕재수가 얘기하는 코류슈카는 페테르부르크 특산의 맛있는 생선이다 :) 전에 코류슈카 얘기랑 사진 올린 적 있다. 여기 : http://tveye.tistory.com/3967

 

베르닌이 가브릴로프에도 있다며 사오는 티그렌카는 실재하는 건 아니고 내가 대충 만든 이름이다. '티그르'는 호랑이, 티그렌카는 그 애칭이다. 줄무늬 물고기라 상정해서 내 맘대로 이름붙임.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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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오랜만에 서무 시리즈 업뎃.

 

사실 이 37편을 쓴 건 12월이었는데 그러고 나서 심적으로 힘든 일이 많아서 그냥 안 올리고 묵혀놨었다. 지금 보니 우연찮게도 딱 명절 시즌이랑 느낌이 맞는 편이다. 가족 얘기라서...

 

지난 35~36편에서는 우리의 단추 베르닌과 왕재수가 숲에 갔다가 폭설을 만나 차도 망가지고 벌목공 숙소에 갇히고 심지어 야생짐승 습격도 받는 등 파란만장한 일이 있었는데 이번 37편은 시간적으로는 36편에서 며칠 후에 일어난 이야기이지만 그런 어드벤처는 없다 :) 그래도 앞부분에서 베르닌과 왕재수가 망가진 지굴리(베르닌의 차)나 폭설에 대해 얘기하는 게 까마득하다면 에피소드 35. 4월의 눈보라 : http://tveye.tistory.com/4172에피소드 36. 빨간 열매와 초특급 익스프레스 : http://tveye.tistory.com/4189를 다시 읽어보세요~

 

초반부에 베르닌이 찾아가는 수도원은 22편의 흰머리천사날개풀과 파인애플 : http://tveye.tistory.com/3742에 나왔던 곳이다. 예고르 사제도 그때 나왔다. 이 수도원은 본편에서도 중요한 장소로 등장한다(그런데 본편은 언제 쓰지 ㅠㅠ 올해는 꼭 이어서 써야지..) 왕재수가 잠깐 언급하는 '레스코프'는 러시아 작가 니콜라이 레스코프 얘기다.

 

이번 편에 등장하는 음식들은 대부분 러시아 시골 음식들이다. 쓸땐 그런 생각 안했는데 올리면서 다시 읽어보니 뭔가 기름진 것들이 역시 설날 연휴랑 어울리는 듯한 느낌이...

 

그럼 재미있게 읽으세요~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지금까지의 줄거리와 이번 편 간략한 예고 **

 

1980년대 초 소련의 지방 소도시(..라고 쓰고 시골이라 읽는다) 가브릴로프의 보안위원회(KGB) 말단 행정직원이자 서무인 다닐 베르닌은 무시무시한 상사에게 시달리고 격무에 짓눌려 죽을 지경이다.  

이 와중에 모스크바에서 유명한 무용수 출신의 반동분자 정치범을 가브릴로프로 유배시키고, 베르닌은 엉겁결에 그를 감시하는 중책을 떠맡는다. 알고보니 그것은 싸가지 없는 젊은 예술가 녀석의 가정부이자 노예 노릇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가뜩이나 서무 업무로 들들 볶이느라 힘든 와중에 새로 온 녀석의 출퇴근 운전기사 노릇, 집안일, 밥해먹이기 등등 온갖 잡일에 시달리던 베르닌은 망할 놈의 반동분자를 왕재수라 부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왕재수도 나름대로 시골 생활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 중이다.

4월의 폭설로 검은 숲에 갇혔다가 무사귀환한 베르닌과 왕재수는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오고... 베르닌은 언제나처럼 과로와 야근에 시달리며 자신에게도 집안일을 해줄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푸념하는데...

 

 


(이 시리즈는 아래 순서대로 읽기를 권장함~)

 

* <서무의 슬픔> 시리즈에 대해 : http://tveye.tistory.com/3427
* 주요 등장인물 소개 + 시리즈 목차 : http://tveye.tistory.com/3428
* 에피소드 0. 다닐 베르닌의 새로운 임무 : http://tveye.tistory.com/3429
* 에피소드 1. 왕재수, 행동에 나서다 : http://tveye.tistory.com/3432
* 에피소드 2. 당직실의 귀신 : http://tveye.tistory.com/3437
* 에피소드 3. 버찌잼과 초콜릿 쿠키 : http://tveye.tistory.com/3444
* 에피소드 4. 공유지의 배추와 의전의 문제 : http://tveye.tistory.com/3451
* 에피소드 5. 무도회에 간 베르닌 : http://tveye.tistory.com/3458
* 에피소드 6.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 : http://tveye.tistory.com/3466
* 에피소드 7. 보고서의 악몽 : http://tveye.tistory.com/3478
* 에피소드 8. 새해 전야의 만두 소동 : http://tveye.tistory.com/3488
* 에피소드 9. 눈보라와 패딩 코트 : http://tveye.tistory.com/3524
* 에피소드 10. 벨라 등장! : http://tveye.tistory.com/3542
* 에피소드 11. 살구나무 거리에서 온 남자들 : http://tveye.tistory.com/3553
* 에피소드 12. 전설의 서무를 찾아서 : http://tveye.tistory.com/3563
* 에피소드 13. 검은 숲의 온천 요양소 : http://tveye.tistory.com/3580
* 에피소드 14. 한밤중의 침입자 : http://tveye.tistory.com/3599
* 에피소드 15. 우수 공산당원 연수 워크숍을 위해 막내가 준비해야 할 일들 : http://tveye.tistory.com/3615
* 에피소드 16. 짐꾼 베르닌과 빗, 물병, 목걸이의 비법 : http://tveye.tistory.com/3635
* 에피소드 17. 운수 좋은 날 : http://tveye.tistory.com/3661
* 에피소드 18. 메드베지에서 생긴 일, 알렉산드라 : http://tveye.tistory.com/3678
* 에피소드 19. 다닐 베르닌이 하를람피 푸고비체프가 된 사연 : http://tveye.tistory.com/3692
* 에피소드 20. 베르닌, 무대에 데뷔하다! :  http://tveye.tistory.com/3708
* 에피소드 21. 스페호프의 복수 : http://tveye.tistory.com/3726
* 에피소드 22. 흰머리천사날개풀과 파인애플 : http://tveye.tistory.com/3742
* 에피소드 23. 스네고로드 집단농장 : http://tveye.tistory.com/3766
* 에피소드 24. 시계탑 전망대에서 : http://tveye.tistory.com/3785
* 에피소드 25. 천하일미 요리대회(1부) : http://tveye.tistory.com/3800
* 에피소드 25. 천하일미 요리대회(2부) : http://tveye.tistory.com/3813
* 에피소드 26. 베르닌의 옛 여인 : http://tveye.tistory.com/3832
* 에피소드 27. 밀사 베르닌 : http://tveye.tistory.com/3918
* 에피소드 28. 9밀리 마카로프와 모스크바 비밀별장 : http://tveye.tistory.com/3938
* 에피소드 29. 보랴의 생일 파티 : http://tveye.tistory.com/3957
* 에피소드 30. 엘리트 요원 드미트리 베르닌 : http://tveye.tistory.com/3978
* 에피소드 31. 두 명의 베르닌이 금요일 밤에 모이다(1부) : http://tveye.tistory.com/3994
* 에피소드 31. 두 명의 베르닌이 금요일 밤에 모이다(2부) : http://tveye.tistory.com/4013
* 에피소드 32. 왕자님과 호위 기사들 : http://tveye.tistory.com/4033
* 에피소드 33. 아가일 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들의 모험(1부) : http://tveye.tistory.com/4062
* 에피소드 33. 아가일 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들의 모험(2부) : http://tveye.tistory.com/4079
* 에피소드 33-1. 도자기 인형 : http://tveye.tistory.com/4098
* 에피소드 34. 딸기 아가씨들과 자선 바자회 : http://tveye.tistory.com/4140
* 에피소드 35. 4월의 눈보라 : http://tveye.tistory.com/4172
* 에피소드 36. 빨간 열매와 초특급 익스프레스 : http://tveye.tistory.com/4189

 
** 번외편. 등장인물 20문답 : http://tveye.tistory.com/3492, http://tveye.tistory.com/3493

** 번외편. 곱사등이 흑염소와 단추소년 다닐, 절세미인 미셴카(러시아 민담 패러디) : http://tveye.tistory.com/3849

** 번외편. 돌아온 등장인물 20문답(리자, 알렉산드라) : http://tveye.tistory.com/4236

** 번외편. 돌아온 등장인물 20문답(투레츠키, 보랴, 일류샤) :  http://tveye.tistory.com/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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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무의 슬픔 series>

episode 37

 

 

 

 

서무의 슬픔

- 뜻밖의 손님 -

 

 

 

 

 

 

 

금요일이 되자 베르닌은 연이은 야근과 스트레스로 지칠 대로 지쳤다. 폭설로 검은 숲에 갇혔다가 돌아오자 스페호프는 그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눈 때문에 지연된 안전가옥 자물쇠 수리를 빨리 해치우라고 들들 볶았다. 숲에 갔던 첫날은 외출부를 쓰고 가서 괜찮았지만 갇혀 있던 그 다음날은 아예 근태기록부에 붉은 색깔로 무단결근이라 적혀 있었다! 베르닌은 경위서를 작성해 이틀에 걸쳐 감사부서와 인사부서의 협조 도장을 받은 후 국장에게 대면 결재를 요청해서 간신히 무단결근 처리만은 면했다. 그나마도 국장에게 왕재수가 곰의 습격을 받았다는 보고를 했기 때문이었다.

 

 

스페호프는 매우 기뻐하며 베르닌을 칭찬했다.

 

 

“ 그렇지! 역시 자네는 우리 가브릴로프 토박이야! 검은 숲에는 당연히 곰이 돌아다니지! 그 불여우를 곰이 나오는 곳으로 유인하다니 정말 좋은 생각이었네. 내가 따로 지시를 하지 않았는데도 검은 숲에 그 녀석을 데리고 가서 야생 짐승의 습격을 받게 하다니 자네 정말 머리가 비상하군. 역시 현장요원감이야. 으음, 서무 업무가 막중하긴 하지만 참 고민이 되는군. 자네 같은 인재는 현장요원으로 돌려야 하는데... 행정직도 턱없이 모자라니... 본부에 정원을 늘려달라고 건의해보겠네. 하여튼 잘했네. 그럼 그 불여우는 지금 병원에 있나? ”

 

“ 아, 아니오. 그날 밤에만 입원했다가 다음날 낮에 퇴원해서 곧장 극장으로 갔습니다. 오늘은 극장 안전 점검의 날이라 공연이 없어서 종교 박물관에 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가브릴로프 수도원 말입니다. ”

 

“ 흠, 아깝군. 곰에게 제대로 맞았어야 했는데. 그건 그렇고 종교 박물관이라. 음, 자네도 오후에 그쪽으로 가보게. 알다시피 그 망할 놈의 수도원은 반동분자들의 집합소가 아닌가. 그 불여우가 거기서 신부를 만나 또 무슨 작당을 할지 모르니 가서 잘 들어두는 게 좋겠네. ”

 

“ 하지만... 야스민은 무신론자인 걸요. 지난번에도 수도원에 갔을 때 박물관만 실컷 구경하고 카페에서 차만 마시고 나왔는데요. ”

 

그놈이 무신론자든 광신도든 중요하지 않아! 일단 수도원에 드나든다는 것 자체로 보고서를 꾸밀 수 있는 거야. 하여튼 오후에는 수도원에 가게! 그리고 그 녀석과 수도원 반동분자들의 커넥션에 대한 보고서 초안을 잡아보는 거야. 주말에는 공연이 있겠지? ”

 

“ 예, 내일은 백조의 호수, 모레는 지젤입니다. ”

 

“ 좋아. 요즘은 레베진스키가 꼬리를 밟힌 것 같다면서 정보가 뜸하단 말이야. 자네가 짬을 내서 한번 그 친구를 만나보게. 극장 동향에 대해서도 월요일에 따로 보고하게. 그럼 이만! ”

 

 

그래서 베르닌은 산더미 같은 일을 중간에 왕창 끊어버리고 밀린 일에 대한 근심에 짓눌린 채 오후에 수도원으로 갔다.

 

 

 

*   *   *

 

 

 

왕재수는 수도원 뒤뜰에서 예고르 사제와 차를 마시고 있었다. 아말리야도 함께였다. 가브릴로프 수도원은 검은 숲에서도 가장 따스하고 밝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뒤뜰에는 이미 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겨우 사나흘 전에 폭설이 내렸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사제의 이야기로는 수도원 쪽에는 눈이 많이 오지 않아서 꽃나무도 많이 얼지 않았다고 했다. 베르닌을 보자 모두가 반겨주면서 차를 한 잔 따라주었다. 예고르 사제는 지난번에 흰머리천사날개풀을 따러 왔을 때 알게 된 사이였고 아말리야는 보랴의 생일 파티에서 만나 안면이 있었다. 아말리야는 아침에 구웠다면서 산딸기 파이를 큼직하게 잘라 베르닌에게 내밀었다. 너무나도 달콤하고 향긋한 냄새에 베르닌은 이미 정신이 혼미했다. 왕재수가 포크를 건네주면서 물었다.

 

 

“ 너 여기 왜 왔어? 일 안해? ”

 

“ 너 여기 있다니까 국장이 따라가래. ”

 

“ 칫, 또 반동분자가 어쩌고 수도원이 어쩌고 수작부리는 보고서라도 쓰려는 모양이지. ”

 

“ 어... 꼭 그런 건 아닌데... 국장이야 뭐... ”

 

“ 나 신작 때문에 온 거야. 레스코프 소설들을 재구성해서 리브레토를 짤 거란 말이야. 키로프에 있을 때부터 짜놨던 건데 여기 오니까 생각이 좀 바뀌더라고. 이콘이랑 조각상이랑 벽화 보러 온 거란 말이야. 신부님이랑 아말리야는 아무 상관없어. 나 때문에 괜히 끼어들게 하지 마. 알았지? ”

 

“ 내가 왜 그런 짓 하니. 보고서는 대충 쓸 거야. 오늘 너는 신부님이랑 아말리야 그리고리예브나 안 만난 거야. 그냥 여기서 꽃구경하고 박물관에서 그림 보고 간 거야. 두 분도 그렇게 해주실 수 있죠? ”

 

“ 우리 미셴카를 위해서라면야... ”

 

“ 하느님은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 하셨지만... 그냥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 건 괜찮겠지. ”

 

 

베르닌은 정신없이 산딸기 파이를 흡입하고 차를 마셨다. 파이는 너무나도 맛있었다. 부스러기를 마구 흘리며 먹자 왕재수가 한숨을 쉬었다.

 

 

“ 왜 이렇게 급하게 먹냐. 점심 안 먹었어? ”

 

“ 오늘 구내식당 메뉴가 부실했단 말이야. 양배추 수프에 소금 범벅 마카로니였어. ”

 

“ 우욱, 듣기만 해도 싫다... ”

 

 

그때 아말리야가 베르닌이 맛있게 먹는 걸 보니 좋다면서 메도빅과 사과빵을 가져다주었다. 베르닌은 너무 행복해서 기절할 것 같았다. 순식간에 산딸기 파이 한 조각, 메도빅 한 조각, 사과빵 두 개를 해치웠다. 차도 두 잔이나 마셨다. 왕재수는 산딸기 파이 반 조각을 곁들여 우아하게 차를 마시면서 베르닌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혀를 찼다.

 

 

“ 손목토시... ”

 

“ 일하다 왔단 말이야! ”

 

“ 다 태워버린 줄 알았는데 대체 그거 몇 개나 있는 거야? ”

 

야! 왜 네 맘대로 내 토시를 태워! 어쩐지 아무리 찾아도 없더라니. 사무실에 여분으로 놔둬서 망정이지. ”

 

“ 칫. 촌스러우니까 그렇지. 아가일 셔츠도 태우려다 딴 옷이 없는 것 같아서 그건 놔뒀단 말이야. 근데 너 발목은 괜찮아? ”

 

“ 그때 의사 선생님이 치료해줘서 부기는 가라앉았는데 아직 약간 욱신거려. 찜질해주라고 하셨는데 계속 야근하느라... ”

 

“ 신부님한테 약초 찜질 받으면 좀 나을 텐데. 나 아까 어깨 찜질 받아서 한결 나았거든. ”

 

 

예고르 사제는 베르닌의 발목을 보더니 수도원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따끈하게 데운 약초 주머니를 대고 찜질을 해주었다. 발목에 남아 있는 멍 자국에 왕재수가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빨리 나으려면 그쪽 발은 쓰면 안 되는데. 계속 걸어 다니고... ”

 

“ 별로 안 다쳤는데 뭐. 멍 때문에 심해 보이는 거야. 너는 어깨 괜찮아? 흉터라도 생기면 큰일이잖아. ”

 

“ 그러게. 내 백옥 같은 피부에 흉 지면 안 되는데. 뭐 흉터 남아도 할 수 없지. 눈에 잘 띄진 않을 거야. 나 사실 다른 데도 흉터 있거든. ”

 

“ 엥, 정말? 너 피부 진짜 좋잖아. 완전 하얗고. 흉터 같은 거 못 봤는데. ”

 

“ 네가 나 흉터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아! 나 벗은 것도 안 봤으면서! 벌목공 숙소에서 나 목욕할 때도 눈 감고 있어놓고! ”

 

 

‘너 아플 때랑 물에 빠졌을 때랑 바질 춘다고 옷 갈아입을 때 봤거든!’ 하고 대꾸해주려고 했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그때도 구석구석 찬찬히 본 적은 없었으므로 베르닌은 그냥 입을 다물었다. 벗은 걸 봤다고 하는 것도 뭔가 이상한 것 같아서. 대신 다른 것을 물었다.

 

 

“ 너 왜 흉터 있어? 춤추다 다쳐서? ”

 

“ 어, 아니... 춤추다 다치는 건 뭐 자주 있는 일이긴 한데 나 원래 흉터 잘 안 생기는 편이야. 피부 재생이 잘 된대. 그냥... ”

 

 

왕재수는 말끝을 흐리더니 사제에게 찜질 주머니 만드는 법을 물었다. 사제는 약초가 든 주머니를 여러 개 챙겨주면서 잠깐 쪄서 사용하라고 했다. 찌는 것과 삶는 것의 차이를 그새 까먹은 왕재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에 넣고 끓여요?’ 하고 물었다. 그 바보 같은 질문에 예고르 사제는 말문이 막혔고 베르닌이 대신 끼어들었다.

 

 

“ 야, 그때 만두 쪄봤잖아! 찜통에 올려놓고 증기로! ”

 

“ 아, 그게 찌는 거구나. 우리 집에 찜통 없는데. ”

 

“ 왜 없어! 지난번에 내가 너네 집에서 찜통에 만두 쪄줬잖아! 에휴, 넌 어차피 몰라도 돼. 집 가면 어차피 내가 이거 데워줄 텐데 뭐. 그 주머니들도 내가 챙길게. ”

 

 

마음씨 착한 예고르 사제와 아말리야는 약초 주머니에 열매즙, 왕재수를 위한 약초즙, 베르닌을 위한 수도원 버섯빵과 사과빵을 바리바리 싸주었다. 그래서 베르닌은 뿌듯해하며 왕재수와 함께 수도원을 나왔다.

 

 

 

 

*   *   *

 

 

 

 

수도원 입구에는 왕재수의 번쩍거리는 차가 세워져 있었다. 자연스럽게 운전석에 앉으면서 베르닌이 물었다.

 

 

“ 너 어떻게 여기까지 차 끌고 왔어? 운전도 서툴면서. ”

 

“ 아말리야 그리고리예브나랑 같이 왔어. 스베촉에서 보랴랑 같이 점심 먹었거든. 버스 타고 가신다 해서 내 차 타고 같이 가자 했어. ”

 

“ 뭐야, 그럼 아말리야한테 운전을 시켰단 말이야? 어르신한테! ”

 

“ 그러면 안 되니? 운전은 잘하는 사람이 하는 거지. 버스도 30분이나 기다려야 한댔는데. 내려서도 수도원까지는 한참 걸어야 되잖아. 아말리야 그리고리예브나도 내 차 몰고 와서 좋다고 했어. 운전하는 재미가 있대. 근데 정말이야? 내 차랑 지굴리랑 달라? ”

 

“ 어, 이 차야 고급차니까 당연히 운전하는 맛이 다르지. 하긴, 나도 버스 타고 내려서 걸어왔는데 좀 멀긴 하더라. ”

 

“ 네 차는 어떻게 됐어? 그 털털대는 지굴리. 폐차시켰어? ”

 

“ 아니. 정비소에 맡겼는데 2주일은 걸릴 거 같아. 문짝도 떨어지고 엔진도 고장나고 유리창도 깨지고... 네가 트렁크 문짝도 떼어버렸잖아. ”

 

“ 그러니까 차라리 폐차해. 고치는 값이 더 들겠다. KGB에서 수리비용 대준대? ”

 

“ 안 대준대... 내가 운전 미숙으로 사고 낸 거니까 내 책임이래. ”

 

“ 그럴 줄 알았어, 쳇. 그냥 내 차 끌라고 했잖아. 나는 네가 출퇴근만 시켜주면 되는데. ”

 

“ 싫어! 내가 왜 네 차를 끌고 다니냐. 너 출퇴근은 이걸로 시켜줄게. 그치만 우리 회사에 이거 끌고 가긴 싫어. 이건 네 앞으로 나온 차잖아. 극장 임원용! 난 공무원이란 말이야. 청렴 의무도 있고... ”

 

청렴 의무 같은 소리. 제일 고급차 끌고 다니는 게 공산당 간부랑 노멘클라투라라고. 그럼 너 요즘 어떻게 출퇴근한 거야? 지굴리도 그 모양이면. ”

 

“ 너 요 며칠 로만네 집에서 자느라 몰랐구나. 나야 걸어 다녔지. 우리 회사는 집에서 가깝잖아. 너네 회사나 강 건너 가는 거지. ”

 

“ 바보야, 걸어 다니니까 발목이 아직 아픈 거야. 발목 나을 때까지 이 차 가지고 다녀. ”

 

“ 싫어! ”

 

“ 책상물림 주제에 웬 똥고집이니. 좋아, 그러면 나 다음 주까진 로만한테 안 가. 너 나 무조건 출퇴근시켜줘! 그러면 나 태워다주고 이 차 끌고 가서 너네 회사에 세워놨다가 밤에 데리러 오면 되지! ”

 

나야 그럴 수 있지만... 너 일주일 동안 로만도 없이 독수공방할 수 있냐? ”

 

 

왕재수의 눈이 금세 휘둥그레지더니 속눈썹이 파들파들 떨렸다.

 

 

“ 일주일... 흑... 가뜩이나 요즘 계속 바빠서 로만이랑 많이 못 놀았는데... ”

 

“ 그것 봐. 그냥 거기 가 있어. 난 살살 걸어 다니면 되니까. ”

 

“ 아니야! 로만보고 우리 집 오라 그러면 되지! ”

 

“ 국장한테 걸릴까봐 너 맨날 걱정하잖아. ”

 

“ 너네 집 놀러왔다 하면 되잖아. 자기가 그렇게 하라 해놓고. ”

 

 

별수 없이 베르닌은 발목이 나을 때까지 왕재수의 차를 쓰기로 했다. 왕재수가 꼬치꼬치 캐물어서 지굴리 수리비 견적도 실토했다. 왕재수는 혀를 내둘렀다.

 

 

그 돈이면 중고 지굴리 하나 뽑겠다!

 

“ 너 중고 지굴리가 얼마인지 알기나 하냐? 좋은 대접만 받고 살아서 인민들 물가도 모르는 게. ”

 

“ 흥, 그건 두고 보면 알지. 정비소에 전화해서 일단 수리 보류하라 그래. 그 가격으로 원래 차보다 나은 중고 지굴리 구해주면 될 거 아냐. ”

 

“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 네가 어디서 중고차를 구해! ”

 

“ 그러니까 기다려보라고! 다 구하는 수가 있어! ”

 

 

베르닌은 큰 소리 빵빵 치는 왕재수 때문에 기가 막혔지만 워낙 의외의 인맥이 많으니 혹시나 싶어서 일단 알았다고 했다.

 

 

 

강을 건너 구시가지로 접어들었을 때쯤 왕재수는 곤하게 잠들어 있었다. 코즐로프와 밤새 사랑을 불태운 게 분명했다. 폭설로 갇혔을 때 열이 올라 추워하며 코즐로프를 애타게 찾던 모습이 떠오르자 베르닌은 가슴이 쿡쿡 쑤셨다. 자기가 별 도움이 되지 못한 게 속상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때 투레츠키가 와줘서 다행이었다. 베르닌은 썰매 운송비 100루블을 50루블로 감해주는 대가로 주말에 투레츠키의 일을 돕기로 했었지만 다음날 왕재수가 사무실로 전화를 해왔다. 자기가 투레츠키와 셈을 다 끝냈으니 베르닌은 주말에 갈 필요가 없다고 했다. 베르닌은 빚이 탕감된 게 기쁘다기보다는 저 녀석이 대체 또 무슨 거래를 한 건지 걱정이 될 뿐이었다.

 

 

‘ 이 자식, 혹시 투레츠키랑 자주기로 한 거 아냐? 그 망나니가 그때도 썰매 타고 갈 때 이 자식 비몽사몽인 거 이용해서 침대로 끌어들이려고 했는데! 설마 몸으로 때우고 100루블이랑 자기 약값 떨어버린 건가? 아니야, 분명히 바냐는 자기 취향 아니라고 했어. 어휴, 정말 이 자식은... 별 이상한 걱정 다 하게 만들고! ’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리는데 수위가 눈을 둥그렇게 뜨며 아는 척을 했다.

 

 

“ 엥, 당신 웬일이죠? 그 후진 지굴리는 어디로 가고 이렇게 좋은 차를? 아, 그러면 그렇지. 감독님 차였구먼. 이 차는 매일 구석에 주차만 돼 있더니... 그건 그렇고 그 지굴리는 어디 갔어요? ”

 

“ 고장 나서 수리 맡겼어요. ”

 

“ 허참, 그래도 매일 보던 지굴리가 없으니까 좀 섭섭하긴 하네. 그거 연식이 오래돼서 수리비 꽤 나올 텐데. 혹시 폐차할 거면 정비소에 맡기지 말고 나한테 넘겨요. 괜찮게 쳐줄 테니까. ”

 

안 해요! 폐차 안 해요! 아무리 후진 지굴리라도 그거 내가 아끼는 찬데 왜 다들 폐차하라는 거예요. 잘 고쳐서 십년 이십년 더 쓸 거예요!

 

 

베르닌이 울컥해서 버럭 소리를 지르는데 옆에서 왕재수가 투덜댔다.

 

 

“ 십년 이십년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폐차 안 하면 내가 불 지를 거야. ”

 

“ 너 그랬단 봐! 재물 손괴와 방화죄로 고소할 거야! 이건 손목토시와는 경우가 다르단 말이야! 나 법학 전공... ”

 

“ 너 나 정말 고소할 거야? 악마... ”

 

 

왕재수가 깜짝 놀라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까만 눈이 동그래지면서 금세 상처받은 표정이 되었다. 베르닌은 한숨을 쉬었다.

 

 

“ 그거 나한테 안 통한다고 했잖아. ”

 

“ 잘만 통하던데. ”

 

“ 웃기지 마! 네 착각이야! ”

 

“ 칫. ”

 

 

여전히 지굴리를 폐차시켜 고철 값을 떼먹을 궁리에 눈을 반짝이고 있는 수위를 뒤로 하고 그들은 엘리베이터로 갔다. 베르닌이 살짝 다리를 절룩이자 왕재수가 슬며시 팔을 붙잡아 주었다.

 

 

“ 나 괜찮다고 했잖아. ”

 

“ 그 발에 무게 실으면 안 좋단 말이야. ”

 

“ 네 어깨나 걱정해! ”

 

“ 난 괜찮아. 뼈 다친 것도 아니고. 사흘 밤 내내 로만이 곰한테 맞은 부위 찜질도 해주고 어루만져주고 뽀뽀도 해줬어.

 

“ 제발 바이올린 아저씨와 네가 밤을 불태우는 얘긴 하지 말아줬으면. ”

 

“ 너 이상해. 로만이랑 내가 응응하는 얘기만 나오면 왜 그렇게 민감해지는 거야? 지나친 부정은 억압의 표시라고. 아무래도 너는 욕구불만인 것 같아. 너무 오래 응응을 안 해서 그래. 리자랑은 잘 안되니? ”

 

웬 리자!!! 갑자기 웬 리자 얘긴데! 나랑 리자는 아무 사이도 아닌데! ”

 

아 맞다, 넌 렐랴 좋아했지. 근데 렐랴는 아직도 날 너무 좋아한단 말이야. 그때 스네고로드에서도 그렇고 리자는 너 좋아하는 것 같던데. 둘이 좀 잘해보면 안되냐? ”

 

“ 리자랑 나 엮지 마. 리자는 그런 생각도 없는데... 우린 그냥 동료인데. ”

 

“ 멍충이. 너 원래 알렉산드라하고도 잘 될 수 있었어. 그때 보랴 생일 파티 때도 알렉산드라 처음엔 너한테 마음 있어보였단 말이야. 근데 네가 바보짓 하니까 그새 보랴가 낚아갔잖아. 하긴 내가 알렉산드라였어도 보랴한테 넘어가긴 했겠다. 보랴 멋있어. ”

 

으악, 이번엔 또 웬 알렉산드라야! 너는 정말 머릿속에 그런 생각밖에 없냐! 대체 남녀든 남남이든 같이 있으면 무조건 그런... ”

 

“ 바보 멍충이. ”

 

 

둘은 엘리베이터를 탔다. 갑자기 베르닌은 일주일간의 피로가 몰려와서 그런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월요일부터 검은 숲에 갔다가 폭설로 갇히고 발목을 다치지 않나, 돌아와서는 산더미 같은 일에 짓눌려 야근에 시달리고 집에는 그야말로 잠깐 들러 눈만 붙이고 나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옆에 있는 왕재수의 야윈 얼굴과 어린애처럼 커진 까만 눈을 보니 좀 막막했다.

 

 

‘ 이 자식 곰한테 맞고 열 올라서 아팠으니까 잘 먹여야 하는데 오늘 저녁은 뭘 해먹이지. 냉장고도 텅 비어 있고. 시장이라도 봐왔어야 되는데 깜박했네. 다시 나갔다 와야 하나. 아아 귀찮아. 너무 피곤하다. 설거지도 잔뜩 쌓여 있고 빨래도 장난 아닌데... 집 청소도 며칠을 안 한 거야... 아침에도 먼지가 굴러다녔지... 화장실 청소도 해야 하고 쓰레기도 버려야 하고... 근데 이 녀석 밥 먹이고 차도 우려 줘야 하고... 이 녀석 또 피곤하다고 저녁 먹고 나면 자기 집 안 가고 우리 집에서 픽 쓰러져서 잘 텐데... 베갯잇이랑 시트도 갈 때 됐는데. 깔끔 떠는 녀석이니 분명 투덜댈 텐데. 아아, 나도 누가 와서 집안일 좀 해줬으면 좋겠다. 나도 이 녀석이 되고 싶다...

 

 

급속하게 심란해진 베르닌의 속도 모르고 왕재수가 조잘거렸다.

 

 

“ 오늘 저녁 뭐 해줄 거야? 나 아까 수도원에서 버섯 샐러드랑 우하 먹었는데 벌써 배 꺼졌어. 신기해, 오늘은 춤도 안 추고 애들한테 소리도 안 질렀는데 왜 이렇게 벌써 배가 고프지. 수도원 공기가 좋아서 그런가봐. ”

 

“ 어, 으응... 그래. 다행이다, 너 맨날 입맛 없다 그러고 밥 잘 안 먹더니... 그냥 수도원에서 저녁까지 먹고 올 걸 그랬구나... ”

 

“ 신부님도 바쁘고 아말리야 그리고리예브나도 내 점심이랑 차랑 파이까지 챙겨주셨는데 저녁까지 얻어먹긴 미안하잖아. ”

 

 

‘너는 신부님이랑 아말리야한테는 미안하고 나한테는 맨날 저녁 얻어먹으면서 하나도 안 미안하냐!’ 하고 버럭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깟 밥 챙겨 먹이는 것 가지고 유세하는 것 같기도 해서 베르닌은 마음을 고쳐먹었다. 사실 자기가 해준 밥을 왕재수가 맛있게 먹는 걸 보면 뿌듯하기도 했으니까.

 

 

“ 어... 그렇구나. 먹고 싶은 거 있니? 집에 아무 것도 없어, 어차피 가게 갔다 와야 하니까... 점심때 우하 먹었으면 생선은 안 해도 되겠구나... 닭가슴살 사다 쪄줄까? ”

 

“ 집에 왜 아무 것도 없어? ”

 

“ 너 로만한테 가 있는 동안 계속 야근했거든. ”

 

“ 너네 국장 나빠! 눈 와서 그렇게 고생했는데 지굴리도 네 돈으로 고치라 하고 막 야근시키고! 가만 안 둘 거야! ”

 

“ 너도 극장에서 계속 늦게 왔잖아! 내가 모르는 줄 아냐! 분명히 의사 선생님이 폐렴 도질 수도 있으니까 이번 주는 조심조심하고 일은 조금만 하라 했는데! ”

 

“ 너 어떻게 알아, 내가 늦게 온 거? ”

 

“ 왜 모르냐! 이번 주 공연 스케줄 오늘 빼고 꽉 찼는데! 너 공연 올라가는 날은 끝까지 남아 있잖아! 아침마다 류다한테 전화해서 물어봤어! ”

 

우와, 이 감시꾼. 스파이!

 

“ 나 이제 그렇게 불러도 열 받지도 않아. 의사 선생님한테 앞잡이 개자식이란 욕을 너무 많이 들어서 감시꾼 스파이는 양반이야. 그때 나도 다리 다쳤는데 선생님은 너만 끼고 돌고! 나보고 앞잡이라고 하고... ”

 

“ 레프 사벨리예비치 욕하지 마. 원래 그런 스타일이잖아. 그저께 선생님이 너는 왜 치료받으러 안 오냐고, 너 갖다 주라고 진통 효과 있는 약초즙도 챙겨 주셨었는데. 아, 감독실에 놔두고 왔나보다. 병원에 다시 가볼까? ”

 

“ 됐어. 신부님이 주신 약초주머니로 찜질하지 뭐. 먹을 거 사러 나가는 것도 귀찮은데 병원까지... ”

 

“ 우리 집에 먹을 것 좀 있는 거 같은데... 사러 가기 귀찮으면 그냥 우리 집 올라가서 찬장이랑 냉장고 좀 뒤져봐. ”

 

너도 요리 할 줄 알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누가 만들어준 밥 먹고 싶다. ”

 

“ 난 요리 배울 시간이 없었단 말이야! 내가 얼마나 바쁜 몸이었는데. 그리고 가만히 있어도 다 나한테 만들어다 주고 갖다 바쳤는데... ”

 

“ 좋겠다... 아아, 나도 누가 밥 좀 해줬으면. ”

 

 

복도에는 음식 냄새가 가득했다. 아마 이웃집에서 저녁을 해먹고 있는 모양이었다. 부럽다고 생각하며 베르닌은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운 몸으로 터벅터벅 걸어가 현관문에 열쇠를 꽂았다. 그런데 문이 잠겨 있지 않았다.

 

 

“ 어, 이상하네... 아침에 너무 졸려서 문을 안 잠그고 나왔나? ”

 

“ 도둑 든 거 아냐? ”

 

“ 우리 집에 훔쳐갈 게 뭐가 있냐. 너네 집이라면 몰라도. ”

 

 

베르닌은 고개를 갸웃하며 문을 열었다. 그러자 온기와 함께 고소한 기름 냄새와 맛있는 음식 냄새가 훅 끼쳐왔다. 앞치마를 두르고 한 손에는 뒤집개를 든 베르닌의 어머니가 후다닥 뛰쳐나왔다.

 

 

“ 아이고 우리 다누슈카! 이제 퇴근하는구나! 에고에고 우리 아들, 이게 얼마만이냐! ”

 

 

베르닌은 깜짝 놀랐다.

 

 

앗, 어머니! 어떻게 된 거예요? 언제 오셨어요! ”

 

“ 너 우리 옆집 살던 아뉴타 생각나니? ”

 

“ 어, 네. 클라우디야 아줌마네 딸이요? 저랑 어릴 때 놀던. ”

 

“ 그래그래, 그 아뉴타. 걔가 이번에 아들을 낳았다지 뭐냐. 그래서 클라우디야도 오랜만에 보고 애기도 볼 겸 아빠랑 같이 올라왔단다. ”

 

“ 엥, 아버지도 오셨어요? ”

 

“ 그럼 엄마 혼자 여기까지 기차타고 어떻게 오니, 심심하게. 여보! 그만 일어나요! 우리 다냐가 왔는데! ”

 

 

베르닌의 아버지도 달려 나왔다. 졸다가 퍼뜩 깨어난 듯 안경이 코끝에 대롱대롱 걸려 있었다. 아버지는 베르닌을 힘차게 한번 포옹하고는 등짝을 두들기며 기뻐했다.

 

 

“ 왔냐, 우리 아들. 새해에도 집에 안 오고! 그러니 엄마아빠가 너 보러 오는 수밖에! ”

 

“ 어, 저... 그게... ”

 

“ 괜찮다! 얼마나 일이 바빴으면 그랬겠니, 무려 KGB 아니냐. 어서 들어오렴, 엄마가 너 좋아하는 거 잔뜩 하고 있다. 시장에서 뭘 그렇게 바리바리 계속 사는지! ”

 

“ 아유 그럼 우리 다냐 몇 달 만에 보는데 맛있는 거 해먹여야죠! 가뜩이나 사내 녀석 혼자 나와 사느라 먹는 것도 부실할 텐데. ”

 

 

얼떨떨해진 베르닌은 부모님에게 반쯤 안기다시피 현관 안으로 끌려들어가다 퍼뜩 생각이 나서 뒤를 돌아보았다. 왕재수가 눈이 동그래진 채 복도에 오도카니 서서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베르닌은 후다닥 왕재수의 팔을 잡아끌었다.

 

 

“ 아, 저... 여기 제 친구인데요. 미샤라고... 이웃에 살아서... 같이 저녁 먹으려고 했는데... ”

 

“ 어머나, 친구가 같이 왔었구나! 그것도 모르고... 오랜만에 보는 우리 아들 때문에 친구가 있는 걸 못 알아봤네. 미안해요, 미안해. 어서 들어와요, 같이 저녁 먹으면 되겠네. ”

 

“ 아니, 그게... ”

 

 

베르닌은 당황했다. 까다로운데다 낯을 가리는 왕재수가 전형적인 시골 어르신들인 자기 부모님을 불편해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 녀석 저녁도 챙겨줘야 하는데 어떡하지 하고 궁리하고 있는데 왕재수가 그야말로 눈부신 미소를 짓더니 인사를 했다.

 

 

“ 안녕하세요, 다닐 부모님이시군요.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겠네요. 저는 미하일이예요. 그냥 미샤라고 부르시면 돼요. ”

 

“ 아유, 젊은 아이가 참 예의도 바르고 인사성이 좋구나. 어쩌면 이렇게 잘생겼니. 영화배우 뺨치게 생겼네. 어서 들어오렴. 같이 저녁 먹자꾸나. 우리 아들 친구면 아들이지 뭐. 들어오렴. ”

 

그럼 실례가 안 된다면 들어가겠습니다. 저녁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베르닌은 ‘나 저녁 뭐해 줄 거야? 빨리 밥 줘!’ 하고 들볶던 왕재수와 이 정중하고 얌전한 청년 사이의 어마어마한 차이에 괴리감을 느꼈지만 어쩐지 웃음이 나와서 입을 꾹 다물려고 애쓰며 집으로 들어갔다.

 

 

 

 

*   *   *

 

 

 

 

베르닌의 부모님은 가브릴로프 토박이였지만 몇 년 전 베르닌이 KGB에 입사했을 때쯤 비슷한 소도시인 푸스토프로 이사 가서 살고 있었다. 엔지니어인 아버지가 푸스토프 지점으로 발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가브릴로프 흑빵 공장에서 오랫동안 장부 담당계로 일한 어머니도 같이 옮겨갔다. 베르닌은 첫해에는 푸스토프에서 새해도 보내고 어머니의 날도 같이 보내는 등 종종 찾아갔지만 그 이후에는 너무 바빠서 거의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간 게 전부였다. 그나마도 지난 가을부터는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이따금 통화를 했을 뿐이었다. 마음속으로는 항상 가책이 느껴졌지만 푸스토프는 가브릴로프에서 기차로 여덟 시간이나 걸렸기 때문에 자주 찾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엉망이던 집안은 어머니가 한바탕 청소를 했는지 그야말로 반짝반짝하게 치워져 있었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쓸고 닦아놓았고 여기저기 굴러다니던 물건들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베란다에는 일주일 이상 묵혀 두었던 빨래가 가지런히 널려 있었다. 싱크대에 처박아뒀던 그릇들도 모두 말끔하게 설거지가 완료된 상태였다. 냉장고에는 야채와 과일과 고기와 잼, 병조림 등속이 가득했다. 아들 보러 온다면서 어머니가 이것저것 준비해 바리바리 싸들고 온 게 분명했다. 가스렌지 위에는 커다란 냄비와 프라이팬이 올라가 있었다. 냄비에서는 오리고기를 넣은 살랸카가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펄펄 끓고 있었고 프라이팬 위에서는 쇠고기 커틀릿이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었다. 맛있는 냄새 때문에 베르닌은 정신이 다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 어서 앉아라, 다냐. 혹시 오늘도 야근할까봐 얼마나 걱정했는지... 밥은 시간 맞춰 먹어야 하는데 때를 넘길까봐... 그래도 오늘은 6시에 왔구나. ”

 

“ 그럼, 우리 다냐도 이제 벌써 3년차인데! 이제 윗사람들 눈치 보는 시기는 지났지. 곧 승진도 할 거고. 그렇지 않으냐? ”

 

“ 어, 저 아직도 막내라서요... 저 다음으로는 공채가 안 들어왔어요. 오늘은 외근이 있어서 일찍 온 거예요. 미샤랑 같이 일을 볼 게 있어서요. 얘 아니었으면 오늘도 늦었을 거예요. ”

 

“ 어머, 너도 우리 다냐랑 같은 회사 다니니? 난 학생인줄 알았지 뭐야... 워낙 어려 보여서. 다냐 동료였구나. 우리 다냐가 막내 직원이랬는데... 설마 다냐보다 선배는 아니겠지? 우리가 큰 실수라도 한 거 아니야? ”

 

 

어머니가 화들짝 놀라며 왕재수에게 사과를 했다. 왕재수는 고개를 저었다.

 

 

“ 아니에요, 마리야 니콜라예브나. 저는 다른 데서 일해요. 다닐보다 어리고요. 전혀 실수하신 거 아니에요. 그리고 선후배가 뭐가 중요해요. 자기 일만 잘하면 되지. 마음 쓰지 마세요. ”

 

“ 아유, 고맙구나. 어쩌면 요즘 아이답지 않게 말도 이렇게 의젓하게 하니. 그래, 너는 어디서 일하니? 우리 다냐처럼 공무원이니? ”

 

“ 아, 전 극장에서 일해요. ”

 

“ 어머, 그렇구나. 어쩐지 번듯한 게 너무 잘생겼더라니. 목소리도 좋고 발음도 좋은 게 배우인가 보구나. 배우 일은 힘들 텐데... 전에 내가 아는 집 딸이 연극배우를 했었는데 초봉이 너무 짜서 허덕이더구나... ”

 

“ 에이, 처음엔 다 그런 법이지. 우리 애처럼 공무원이면 좀 더 안정적이긴 하겠지만 배우도 좋은 직업이지. 지금이야 나이가 어리니까 대우가 좀 낮은 편이겠지만 찬찬히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면 괜찮아질 거다. 그러니 힘을 내렴. 너는 외모가 워낙 뛰어나니 인기도 많을 거고 금방 좋은 자리로 올라갈 수 있을 거란다. ”

 

 

아버지가 헛기침을 하면서 왕재수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베르닌은 왕재수가 금방이라도 ‘웬 헛소리예요! 난 우주 최강 꽃미남에 세상에서 제일 춤 잘 추는 초특급 수퍼스타란 말이에요! 공훈예술가 출신에 훈장이 몇 갠 줄 알아요? 전세계에서 날 보려고 넙죽넙죽!’ 하고 버럭 소리칠까봐 조마조마해서 마른침을 꿀꺽 삼킨 후 더듬거리며 말했다.

 

 

“ 어, 미셴카... 미안해. 우리 부모님은 극장에 잘 안 가시거든. 그쪽은 잘 모르셔. 나도 그랬고... 저, 그래서... ”

 

“ 왜? 알렉세이 필리포비치 말씀이 맞는걸. 배우는 원래 초봉이 짠 편이야. 성실해야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것도 맞고. 넌 내가 재능 하나만으로 올라간 줄 아니? ”

 

“ 아니... 나도 알아, 너 엄청 노력한 거... 저기... 아버지, 미셴카는 배우가 아니고요, 발레단 감독이에요. ”

 

“ 음, 사무국에 있는 모양이구나. 너무 잘생겨서 배우인 줄 알았는데 이거 미안하구나. 극장은 일반 공장이나 사무실과는 조직이 좀 다르다는 얘긴 들었다. 젊은 애들에게도 감독직을 주나보구나. 그래, 발레단을 운영하고 뒷받침하는 총무 업무인가 보구나. 우리 다냐도 보안위원회에서 아주 중요한 업무를 맡고 있단다. 서무가 없으면 일이 안 돌아가지.

 

“ 아니, 그게 아니라... 진짜 감독... ”

 

 

모든 일을 아들 위주로 생각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때문에 베르닌은 매우 당황했지만 왕재수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다닐이 없으면 얘네 회사는 일이 안 돌아가요. 그래서 국장인지 뭔지 하는 인간이 매일 다닐을 찾아요. 일도 엄청 많이 줘서 고생시켜요. ”

 

“ 그게 문제란다. 똑똑하고 능력 있는 직원은 인정을 받는 대신 그만큼 일이 많아지니... 게다가 우리 애가 또 워낙 성실해야 말이지. ”

 

“ 아유, 당신은 정말... 틈만 나면 아들 자랑만 하고. 친구 앞에서 다냐가 얼마나 쑥스럽겠어요. 미안하구나, 미셴카. 배고프지? 우리 저녁 먹자꾸나. 우리 애가 좋아하는 거 많이 했는데 네 입맛에도 맞을 거다. 사내아이들이야 고깃국에 커틀릿이면 껌벅 죽잖니. ”

 

 

어머니가 식탁에 접시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끝도 없이 나오는 접시들에 눈이 휘둥그레진 왕재수를 보며 베르닌이 웃었다.

 

 

“ 너 전에 보랴네 집에서도 놀랐다고 했지. 가브릴로프에서는 원래 한꺼번에 식탁에 다 차려놓고 먹어. 디저트만 빼고. ”

 

“ 아, 맞다. 보랴한테 들었는데. 그때도 수프랑 샐러드랑 전채랑 메인요리가 한꺼번에 나와서 놀랐어. 전에 렐랴도 알려줬던 것 같아. 근데 평소엔 이렇게 제대로 차린 정찬을 먹는 적이 없으니까 자꾸 까먹고 놀라. ”

 

“ 미샤는 가브릴로프 출신이 아닌가 보구나? 어디서 왔니? ”

 

“ 저는 레닌그라드에서 왔어요, 마리야 니콜라예브나. ”

 

“ 어머나, 대도시에서 왔구나! 우리 다냐도 모스크바에서 공부했는데. 그래서 둘이 통하는 데가 있나보네. 어쩐지 말투도 그렇고 귀티가 좔좔 흐르더라니. 그리고 그냥 마샤라고 부르렴. 친구 엄마인데 뭘 그렇게 일일이 부칭까지 부르고 그러니. 나는 마샤, 이 사람은 그냥 알료샤라고 불러도 된단다. 이 오이 절임이랑 닭 간 샐러드 좀 먹어보렴. 원래는 닭 염통이랑 간을 섞어야 하는데 시장에 갔더니 염통은 다 떨어졌더구나. 우리 다냐가 어릴 때 참 좋아하던 거야. 어서 먹으렴. ”

 

 

베르닌은 이미 정신없이 오이 절임과 닭 간 샐러드를 먹고 있었다. 짭짤하고 시큼한 오이절임도 맛있었지만 닭 간이 쫄깃쫄깃한 게 정말 맛있었다.

 

 

“ 우와, 진짜 맛있어요. 이거 먹어본 게 언젠지... 역시 우리 집 닭 간 샐러드가 제일 맛있어요. 어, 근데... ”

 

 

베르닌은 문득 왕재수 생각에 뜨끔했다.

 

 

‘ 저 녀석 닭 간 같은 거 안 먹을 텐데... 어떡하지... 많이도 덜어주셨네. ’

 

 

그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왕재수는 베르닌의 어머니가 접시에 덜어준 오이 절임과 닭 간 샐러드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버터와 기름을 잔뜩 둘러서 튀겨낸 두툼한 호박 올라두슈키도 투정 없이 주는 대로 먹었다. 평소에는 보랴가 만들어줘도 너무 기름진 부침개라면서 입에 잘 대지 않는 음식이었다. 기름이 둥둥 떠 있는 오리고기 살랸카도 곧잘 먹었다. 베르닌의 어머니는 매우 기뻐했다.

 

 

“ 얘들이 많이 배고팠나 보구나! 아유, 우리 아들, 엄마가 해주는 커틀릿 먹고 싶어서 어떻게 했니. 구내식당에서 나오는 커틀릿은 납작하고 기름도 안 붙어 있어서 퍽퍽하고 맛도 없고 간에 기별도 안 갔을 텐데. 커틀릿 여러 개 구웠으니 많이 먹으렴. 미셴카는 커틀릿이 입에 맞니? ”

 

“ 네, 맛있어요, 마리야 니콜라예브나... 아니, 마샤. ”

 

“ 그렇지, 이 커틀릿은 수제란다! 내가 직접 고기 다져서 빚어서 만든 거야. 많이 먹으렴. 어쩌면, 너는 사내애가 고와도 너무 곱구나. 미남인 것도 좋지만 손목을 보니 커틀릿 많이 먹어야겠다. 어서 먹으렴, 모자라면 더 구워주마. 다냐, 맛있니? ”

 

“ 진짜 맛있어요. 아아, 그리웠어요. ”

 

 

베르닌은 정신없이 살랸카를 후루룩 떠먹고 커틀릿을 큼직하게 잘라 마구 입으로 쑤셔 넣었다. 둥그렇게 구워낸 쇠고기 커틀릿을 포크로 누르자 엄청난 양의 기름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입 안에서도 다진 고기가 쫄깃하게 씹히면서 육즙과 기름이 자르르 돌아서 너무나도 고소했다. 맛있게 먹으면서도 슬며시 걱정이 되어 왕재수 쪽을 보았다. 왕재수는 나이프로 커틀릿을 조그맣게 잘라서 우아하게 먹고 있었다. 기름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도 툴툴대지 않았다. 베르닌의 어머니가 흑빵 조각을 접시에 고인 육즙과 기름으로 축축하게 적셔서 건네주며 ‘이게 제일 맛있단다’라고 했을 때도 그 까탈스러운 녀석이 펄쩍 뛰며 ‘기름덩어리 탄수화물!’ 하고 소리치는 대신 빵을 받아들고 ‘감사합니다’라고 대꾸하며 그대로 먹는 것이 아닌가!

 

 

어머니가 남아 있는 커틀릿을 가지러 가고 아버지가 사레들려 잠깐 화장실에 간 사이에 베르닌은 왕재수의 손목을 톡 치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 야, 너 이거 느끼하잖아. 억지로 다 안 먹어도 돼. 우리 엄마 여기 토박이라서 음식 전부 엄청 기름진데... 입에 안 맞으면서... ”

 

“ 괜찮아. 맛있어. ”

 

“ 나야 맛있긴 하지만 여기 사람들 입맛에 맞는 거지 넌 아니잖아. 우리 엄마 원래 맛있다고 하면 계속 권한단 말이야. 배부르다고 해도 괜찮아. 너 우리 엄마한테 예의 차리느라 억지로 먹는 거잖아. 다이어트 중이라고 내가 말해줄게. 아니면 의사가 기름진 거 제한하라 했다고 해줄 테니까 억지로 먹지 않아도 돼. ”

 

“ 괜찮은데... ”

 

“ 너 지난번에 의장 부인, 누구더라, 그래, 이리나한테 끌려갔을 때 거기서 저녁 먹고 계속 괴로워했잖아. 맛없고 기름지다고! 우리 엄마나 이리나나 다 가브릴로프 토박이라서 비슷할 텐데... ”

 

“ 윽, 잊고 싶은 기억! 이리나가 준 음식은 진짜 장난 아니었어. 너희 어머니랑 비교하지 마. 너희 어머니가 해주신 건 맛있어. 정말이야. ”

 

“ 하지만... ”

 

“ 근데 이제 정말 배부르긴 해. 못 먹겠으면 그만 먹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너나 많이 먹어. 오랜만에 엄마 밥 먹는 거잖아. ”

 

“ 그래놓고 나중에 막 투정하려고! ”

 

 

그때 베르닌의 어머니가 남은 커틀릿을 수북하게 쌓은 접시를 들고 왔다. 왕재수가 마음에 쏙 드는 듯 직접 커틀릿을 썰어주기까지 했다. 역시 왕재수의 미모는 나이 불문하고 모든 여자들에게 통하는 게 분명했다. 왕재수는 베르닌의 어머니가 썰어준 커틀릿까지만 먹은 후 굉장히 정중하게 너무 맛있는 식사였다며 인사를 했다.

 

 

“ 아유, 더 먹지 그러니. 우리 애만 많이 먹은 것 같은데. ”

 

“ 아니에요, 마샤. 너무 맛있어서 평소보다 훨씬 많이 먹었어요. 여기 와서 이렇게 맛있는 저녁을 먹은 건 처음이에요. ”

 

“ 맞아요, 얘 원래 밥 많이 안 먹어요. 이렇게 잘 먹는 거 처음 봤어요. ”

 

 

베르닌이 급하게 맞장구를 쳤다. 어머니는 매우 좋아했다. 베르닌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접시를 치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왕재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심지어 접시 치우는 것을 돕는 것이 아닌가! 베르닌은 너무 놀라서 눈이 튀어나올 뻔 했다.

 

 

으아, 저 자식이 식탁 치우는 걸 돕다니! 세상이 멸망하려나봐!

 

 

베르닌의 어머니는 아무 것도 모르고 굉장히 감동하며 왕재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뺨에 뽀뽀를 해주기까지 했다.

 

 

어머나, 미샤는 레닌그라드에서 온 애라 역시 다르구나. 가브릴로프 남자들은 손 하나 까딱 안하고 집안일은 여자들에게만 시키는데! 우리 남편도 그렇고 다냐도 그렇고 집에선 손끝에 물 한 방울 안 묻혔단다! 미셴카는 정말 착하구나, 어머니가 얼마나 든든하셨을까! 여자친구도 참 좋아하겠구나. 얼굴도 잘생겼지, 목소리도 가수 같고 매너도 좋은데다 집안일까지 도와주다니. 얼마나 인기가 많겠니. 우리 다냐는 마음씨는 비단결 같은데 원체 무뚝뚝하고 표현을 못 하니... ”

 

 

베르닌은 무지무지 억울해서 그만 투덜거리고 말았다.

 

 

“ 저도 집에서 청소 도와줬었는데... 쓰레기도 버리고... ”

 

“ 그깟 쓸고 닦는 거랑 쓰레기 몇 번 버리는 거 말고! 너는 엄마가 요리할 때 한 번도 안 도와줬잖니! 설거지도 도와준 역사가 없고! 하긴 아빠부터가 그랬으니!!! 그 아빠에 그 아들... ”

 

“ 아니, 왜 가만히 있는 나에게... ”

 

 

베르닌의 아버지도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아들의 뒤로 슬그머니 숨었다. 베르닌의 어머니가 더욱 비교를 하려고 드는데 왕재수가 여심을 스르르 녹이는 솜사탕 같은 미소를 지으며 상냥하게 말했다.

 

 

“ 아니에요, 마샤. 다닐이 얼마나 집안일을 잘하는데요. 요리도 잘하고 청소랑 설거지도 진짜 깨끗하게 잘해요. 그러고 보니 어머니를 닮아서 요리를 잘하는 거였네요. 다닐이 해주는 저녁이 굉장히 맛있거든요. ”

 

“ 어머나, 그러니? 의외구나. 나는 우리 아들이 어릴 때부터 워낙 모범생에 우등생이라 공부에만 여념이 없어서 집안일이나 심부름 같은 건 아예 시키지를 않았단다. 그래서 모스크바 국립대 갔을 때도 다른 집에서는 아들이 명문대 갔다고 부러워했지만 나는 다냐가 엄마 품 떠나서 기숙사에서 밥을 어떻게 먹고 살지 너무 걱정이 돼서 잠이 안 왔단다. 여기 KGB에 입사하게 돼서 다시 내가 먹을 것도 챙겨주고 살림도 봐줄 수 있겠구나 했는데 알료샤가 푸스코프로 발령을 받는 바람에 우리가 이사를 가게 되지 않았겠니. 사내아이가 자취를 하니 매일 식당 밥이나 먹고 돼지우리 같은 집에서 살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워낙 마음이 쓰여야 말이지. 우리 애도 조금 있으면 스물아홉이 되는데 애가 원체 순진해서 공부만 하고 일만 열심히 하느라 아직 결혼도 못하고... 여자 손길이라도 좀 닿아야 편하게 살 텐데... 에휴...

 

“ 으아, 어머니... 제발... ”

 

“ 안 그래도 걱정하면서 왔더니 아니나 다를까 싱크대에 그릇이 수북하고 빨래도 안 해서 지저분한 옷가지가 쌓여 있고 집이 돼지우리... 그래서 내가 아까 싹 치웠단다. ”

 

“ 아니에요, 마샤. 다닐이 원래 되게 깔끔해요. 청소랑 설거지도 꼬박꼬박 잘 하는데 이번 주에 계속 야근하느라 못 한 거예요. 다닐은 정리정돈도 잘하고 요리도 잘해요. 걱정 마세요, 잘 지내고 있어요. ”

 

“ 그래, 그러면 조금 다행이다만... 그래도 남자가 빨리 장가를 가야 하는데... 이 나이 되도록 엄마아빠에게 제대로 된 여자친구 한번 소개시켜준 적이 없으니... 다른 집 아들들은 스물만 넘으면 제깍제깍 여자 데려와서 결혼하고 손주 보여주느라 바쁜데 우리 다냐는... ”

 

그러게 말이다. 너 요즘 만나는 여자 없니?

 

 

가만히 있던 아버지조차 가세했기 때문에 베르닌은 점점 가시방석에 올라앉은 듯 불편해졌다.

 

 

‘ 으아, 또 시작됐어... 언제 장가가느냐, 엄마 친구 아들이 어쩌고 손주가 어쩌고 저 레퍼토리... 아아... ’

 

 

어머니와 아버지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베르닌을 닦달했다.

 

 

“ 아까도 아뉴타 아기 보러 갔더니 클라우디야랑 옛날 우리 이웃들이 다 모여서 자기 손주 자랑 며느리 사위 자랑... 그러면서 다냐는 언제 장가가느냐고, 외아들인데 빨리 손주 봐야 하지 않겠냐고 난리더라. 어휴, 그 사람들 앞에서야 우리 다냐는 워낙 회사에서 인정받는 재원이라 나라와 당을 위해 피땀 흘려 일하느라 바빠서 결혼은 조금 미루고 있다고 대답했지만 얼마나 속이 쓰린지. 걔들보다 네가 훨씬 잘났는데. ”

 

그러게 말이다. 남들 다 하는 결혼 왜 우리 아들은 아직도 못하고... 너 정말 데이트하는 여자도 없니? ”

 

“ 미셴카, 네가 우리 애한테 여자 친구 좀 소개시켜주고 그러렴. 너는 이렇게 잘생기고 매너도 좋은 걸 보니 여자들이 줄을 서겠구나. 우리 다냐는 너무 애가 착하고 숫기가 없어서 여우같은 계집애들 비위 맞추고 환심 사는 법을 모르는 게 문제란다. 나이가 서른이 다 돼 가는데 우리한테 여자 친구 데려와서 인사시킨 적도 없고... 우리는 정말 걱정이란다. 에휴... ”

 

 

베르닌이 펄쩍 뛰려는데 왕재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방긋 웃었다.

 

 

“ 떨어져 계셔서 잘 모르시는 거예요. 다닐이 여자들한테 은근히 인기가 많아요. 모스크바 국립대 나온 엘리트에 공무원이고 키도 훤칠하잖아요. 그리고 원체 친절하고 착한 성격이라 여자들이 좋아해요. 일하느라 바빠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금방 좋은 여자랑 결혼할 거예요. 결혼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랑 해야 되는 거잖아요, 두 분처럼. 그러니까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걱정도 하지 마시고요. ”

 

 

아들에 대한 칭찬과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얘기를 듣자 베르닌의 어머니와 아버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어머니는 좋아하며 초콜릿 파이를 가져왔고 아버지는 손뼉을 딱 쳤다.

 

 

“ 그러냐? 그럼 정말 다행이구나! 그런데 이 녀석은 왜 우리한텐 그런 얘기도 안 하고! ”

 

“ 다닐은 겸손해서 자기 자랑을 못 하더라고요. ”

 

“ 그래, 그렇구나. 그럼 마음이 좀 놓이는구나! 고맙다, 미셴카. 참 좋은 아이로구나. 우리 다냐에게 너 같은 친구가 있어 다행이다. 자, 이건 우리 마누라가 직접 구운 초콜릿 파이란다. 맛있으니 먹어보렴. 아니, 그러고 보니 너 한 잔도 안 마셨구나. 한 잔 받아라. ”

 

 

베르닌의 아버지는 웃으며 왕재수에게 보드카를 따라 주었다. 베르닌이 급하게 저지했다.

 

 

“ 어, 저... 얘는 술을 못 마셔요. 그냥 주스... ”

 

“ 허허, 괜찮다. 자식 같아서 따라 주는 거야. 그냥 한 잔만 마시렴. 자, 우리 다냐와 미셴카를 위해 건배! ”

 

 

베르닌은 왕재수가 건배만 한 후 안 마실 거라고 생각해서 마음을 놓으며 아버지가 따라 준 보드카를 쭉 들이켰다. 어머니의 맛있는 요리와 보드카는 찰떡궁합이었고 심지어 초콜릿 파이와도 잘 어울렸다. 행복해하고 있는데 그 사이에 보드카를 홀짝 마셔버린 왕재수가 ‘흐응...’ 하고 가냘프게 신음 소리를 내더니 베르닌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늘어지는 것이 아닌가!

 

 

앗! 야! 너 설마 마셨어?

 

“ 목말랐어... 으응, 어지러워. ”

 

“ 으아, 얘 좀 봐! 한 잔 다 마셨잖아! 너 미쳤냐, 목마르면 나한테 물이나 주스 달라고 하면 됐잖아! ”

 

“ 왜 그러니, 다냐? 아니, 미셴카는 정말 술이 약한가 보구나! 이를 어쩌면 좋니! ”

 

 

어머니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왕재수가 역시나 정해진 수순대로 만취해서 순식간에 기절해버렸기 때문이다.

 

 

“ 괜찮아요, 어머니. 얘 원래 술을 못 마셔서 조금만 입에 대도 필름 끊기거든요. 그래서 주지 말라고 한 건데... 집에 데려다 주고 올게요. 바로 윗집이거든요. ”

 

“ 아이고, 그랬구나. 당신은 어쩌자고 어린애한테 보드카는 따라줘서. ”

 

 

베르닌은 왕재수를 평소처럼 번쩍 안아서 데려가려다가 어쩐지 부모님에게 쓸데없는 오해를 사게 될까봐 괜히 제 발이 저려서 아버지에게 왕재수를 업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다. 아버지는 왕재수의 허리와 어깨를 부축해서 베르닌의 등에 기대 주었다.

 

 

“ 저 금방 갔다 올게요. ”

 

“ 안 도와줘도 되겠니? ”

 

“ 괜찮아요. 엘리베이터 타고 한 층만 올라가면 되거든요. ”

 

 

베르닌은 왕재수를 업고 7층으로 갔다. 들어가 보니 왕재수의 집은 지저분하게 어질러져 있지는 않았지만 며칠 동안 비워놓은 탓에 냉기가 돌았다. 춥긴 했지만 왕재수는 답답한 공기를 못 견디는 타입이었기 때문에 베르닌은 난방을 확인한 후 침실 창문을 열어 잠깐 환기를 시켰다.

 

 

베르닌은 필름이 끊긴 왕재수를 침대에 내려놓고 스웨터와 양말을 벗겨준 후 이불을 덮어주었다. 걱정이 되어서 이마에 손도 짚어보고 숨소리도 들어보았다. 운 좋을 때는 보드카를 마셔도 반나절 쯤 깊게 잠든 후 깨어나는 정도지만 재수 없을 때는 열이 펄펄 끓고 두드러기가 돋고 토하고 굉장히 아프기 때문이다. 부디 전자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베르닌은 미지근한 물수건으로 왕재수의 이마를 살짝 닦아준 후 잠시 그의 곁에 앉아 있었다. 부모님 때문에 내려가 보기는 해야겠고 왕재수 걱정은 되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코즐로프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코즐로프가 곧 전화를 받았다.

 

 

잘못 걸었어요!

 

“ 로만, 나예요. ”

 

“ 아, 다닐이구나. 웬일이냐? ”

 

“ 대체 당신은 왜 맨날 전화하면 잘못 걸었다고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

 

“ 그래야 쓰잘 데 없이 전화한 놈들이 놀라서 끊지! ”

 

“ 어휴, 말을 말아야지. 혹시 지금 미셴카 집으로 와줄 수 있어요? ”

 

“ 오늘 밤 늦게까지 책 읽으면서 작업해야 한다고 내일 보자고 하던데. 나랑 있으면 자꾸자꾸 불태우고 싶어서 일을 못한다고. 왜, 무슨 일 있냐? ”

 

“ 그게... 우리 부모님이 오셔서 같이 저녁을 먹었는데 이 녀석이 보드카를 한 잔 넙죽 받아 마셔서... 취해서 지금 뻗었거든요. 난 부모님 때문에 얘 옆에 있을 수가 없어서... ”

 

뭣이, 우리 귀염둥이에게 또 보드카를 먹였단 말이야? 너 죽었어!

 

“ 난 말렸는데 이 녀석이 목마르다면서 받아 마셨어요. 와줄 수 있어요? ”

 

“ 빨랑 전화 끊어. 지금 갈 테니까. ”

 

 

코즐로프는 10분 만에 도착했다. 어마어마하게 속도 위반, 신호 위반을 하며 차를 몰고 온 게 뻔했지만 베르닌은 잔소리를 하는 대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코즐로프에게 왕재수를 맡겨놓고 다시 집으로 내려갔다.

 

 

 

식탁은 이제 모두 치워져 있었다. 부모님은 그에게 차를 따라 주었고 회사 일은 힘들지 않은지, 밥은 잘 챙겨먹는지 물었다. 그래도 왕재수가 변호해준 덕분인지 여자 얘기는 이제 묻지 않았다. 예전 이웃들에 대한 얘기, 부모님이 살고 있는 푸스코프에 대한 얘기 등을 나누다가 어머니가 문득 말했다.

 

 

“ 미셴카는 참 착하더구나. 보통 그렇게 미남인 아이는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잘난 줄 알고 건방지게 구는 법인데 예의도 바르고 친구 생각할 줄도 알고. 걔는 레닌그라드 출신이라면서 어쩌다 이 동네까지 왔을까. 결혼은 안 했지? 반지는 안 꼈던데. ”

 

“ 어, 예. 안 했어요. ”

 

“ 하긴, 아직 한참 어리니... ”

 

 

베르닌은 왕재수가 동안이라서 그렇지 자신과 세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얘기하려다 그러면 또 결혼 얘기가 나오고 왕재수의 여자 친구는 누구냐는 등 난감한 질문이 나올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 걔는 그래, 여기 혼자 와 있는 거니? 가족도 없고? ”

 

“ 네. 혼자 왔어요, 일 때문에요. ”

 

 

아버지도 고개를 끄덕이며 끼어들었다.

 

 

그래, 그러면 네가 옆에서 잘 돌봐 주거라. 세상에 믿을 건 가족과 친구뿐이란다. 아무리 당과 회사가 잘해준다 해도 돌아서면 끝이야. 미셴카도 너를 많이 아끼는 것 같던데 그렇게 반듯하고 착한 친구는 아주 귀한 거니까 잘 지내렴. ”

 

“ 그래, 아빠 말이 맞다. 애가 참 싹싹하고 귀엽더라. 딸이 있었으면 사위 삼고 싶더라니까. 아까 술 마신 게 걱정이 되는구나.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니. 엄마가 올라가서 좀 돌봐줄까. ”

 

“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푹 자고 일어나면 멀쩡할 거예요. 이제 주무셔야죠. 두 분 침대에서 주무세요. 좀 좁긴 하겠지만... ”

 

“ 아니야, 네가 편하게 자야지. 계속 야근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너랑 아빠랑 침대에서 자렴. 엄마가 소파에서 자마. ”

 

“ 에이 말도 안돼요. 전 소파에서 자주 자서 괜찮... ”

 

“ 어머, 멀쩡한 침대 놔두고 왜 소파에서 잔다는 거니? ”

 

 

베르닌은 뜨끔했다. 왕재수를 침대에 재우느라 소파에서 자는 적이 많다고 말하는 건 더 난감했기 때문이다. 되는 대로 둘러댔다.

 

 

“ 어, 그, 그게... 야근하고 들어오면 시트 정리하기가 귀, 귀찮아서... ”

 

“ 아유, 다냐. 그러면 못써. 지금이야 젊으니까 괜찮지만 나중에 그거 골병 든단 말이야. ”

 

“ 괘, 괜찮아요. 베개 꺼내드릴게요, 잠깐만요. ”

 

 

베르닌은 부모님을 침실로 모셔다 드린 후 소파로 기어 올라갔다. 오랜만에 어머니의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어서 그런지 몸이 따뜻해지면서 잠이 쏟아졌다. 그는 1분도 안 되어 깊은 잠에 빠졌다.

 

 

 

 

*   *   *

 

 

 

 

다음날 아침 베르닌은 일어나자마자 왕재수의 집으로 올라가 보았다. 노크를 하자 한참 후에야 코즐로프가 문을 열어 주었다.

 

 

“ 미셴카는 괜찮아요? 안 아팠어요? ”

 

“ 안 아팠어. 다행이지. 그냥 죽은 듯이 잠만 자더니 좀 전에 일어나서 씻고 있어. 근데 너는 토요일인데 늦잠도 안 자냐? ”

 

“ 나도 늦잠 자고 싶긴 한데 부모님이 와 계셔서요. 어르신들은 일찍 일어나시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미셴카랑 같이 아침 먹으러 올래요? 당신도 내 친구라고 하면... ”

 

“ 호의는 참 고맙다만... 괜찮아. 계속 잠만 자는 미셴카 옆에 밤새 누워 있느라 정말 힘들었단 말이다! 잠자는 미녀도 아니고 원. 극장 가기 전에 한 판 해야... ”

 

“ 으윽, 알았어요! 됐어요! 근데... 당신 제발 작작 좀 하란 말이에요! 가뜩이나 쟤 요즘 무리해서 계속 비실거리는데!!! ”

 

“ 그게 맘대로 되는 줄 아냐! 곁에 있기만 하면 불꽃이 튀는데!

 

“ 어휴, 당신들 앞으로 일주일에 하루만 같이 있어요! ”

 

 

코즐로프는 쿡쿡 웃더니 베르닌의 등짝을 탁 치며 내려가서 엄마가 해준 밥이나 먹으라고 했다.

 

 

 

아침을 먹은 후 부모님과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 여보세요. ”

 

“ 나야. ”

 

“ 어, 너 괜찮니? 숙취는... ”

 

“ 응, 괜찮아. 나 지금 극장 가려고. ”

 

“ 어 그래, 내가 데려다 줄까? ”

 

“ 아니, 로만이 차 가져왔어. 같이 가면 돼. 오늘 낮 한시 반 공연인데 너 부모님 모시고 보러 와. 백조의 호수니까 보시기에도 무난할 거야. 류다한테 얘기해서 좋은 자리 4장 빼놨어. ”

 

“ 엇, 고마워. 나 부모님이랑 같이 극장 간 건 어릴 때 호두까기 인형 본 거밖에 없는데. 우리 부모님도 극장 가신지 진짜 오래됐을 거야. 좋아하실 것 같아. 근데... 왜 4장이야? 우린 세 명인데. ”

 

“ 리자도 보러 오라고 했어. 한시까지 극장으로 오라고 했으니까 로비에서 만나서 같이 보렴. 아니면 먼저 만나도 되겠네. ”

 

엥, 리자? 왜 갑자기 리자를... ”

 

“ 리자가 발레 좋아하잖아. 전에 나 물에 빠졌을 때도 도와줬고. 같이 발레 보면 좋을 것 같아서. ”

 

“ 하지만... 좀 어색한데... ”

 

“ 어색하긴 뭐가 어색해, 사무실에서 맨날 보면서. 오늘 캐스팅도 좋아. 데니스랑 타마라가 춘다고. 아까 전화했더니 리자가 좋아하더라. ”

 

“ 어, 저기... 나 하나도 아니고 우리 부모님까지 있는데... ”

 

“ 그 얘기도 했어. 괜찮대. 너희 부모님은 언제 푸스코프로 가셔? ”

 

“ 아, 저녁 먹고 밤 기차로 가신대. 열시 기차니까 여기서 아홉시쯤 나가시면 될 거야. ”

 

“ 응, 알았어. 난 백조 끝나고 나서 실무진이랑 회의가 있어서 아마 늦을 거야. 저녁도 극장에서 먹을 거고. 그래도 아홉시 전에는 집에 갈 테니까 인사하러 갈게. 그럼 공연 잘 봐. ”

 

 

전화를 끊은 후 베르닌은 리자가 온다는 생각에 좀 당황했다.

 

 

‘ 어휴, 이 녀석은 매사가 제멋대로야. 리자가 이상하게 생각할 거 아니야! 갑자기 왜 뜬금없이 리자를 부르고... ’

 

 

그러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 아니야, 미셴카 말이 맞아. 리자는 발레 좋아하잖아. 데니스랑 타마라면 제일 잘 추는 애들이니까 좋아할 거야. 요즘 리자도 바빠서 피곤해하던데 좋아하는 발레 보면 기분 전환도 될 거야. 나도 참 바보 같아. 리자가 발레 좋아하는 거 뻔히 알면서, 그 녀석 보고도 맨날 꽃돌이 감독님이라면서 좋아하는데 진작 미셴카한테 표 달라 해서 좀 줄걸. ’

 

 

왕재수의 공연 초청 얘기를 들은 부모님은 매우 좋아했다. 특히 어머니는 ‘귀여운 미셴카’ 덕에 십년 만에 극장에 공연을 보러 가게 됐다면서 소녀처럼 설렌 얼굴이었다. 아버지도 싫지 않은 눈치였다.

 

 

“ 잘됐구나. 어차피 오늘은 기차 타러 가기까지 다른 약속이 없으니. 점심은 구시가지에 나가서 먹자꾸나. ”

 

아, 그래요. 극장 근처에 굉장히 맛있는 식당이 있어요. 우리 거기 가요. ”

 

 

베르닌은 스베촉에 전화를 해서 네 명 자리를 예약했다. 그리고는 리자에게도 전화를 했다. 리자는 왕재수가 직접 전화해 공연에 초청했다며 몹시 들뜬 기색이었다.

 

 

“ 저, 우리 부모님이랑 난 스베촉에서 열두 시에 점심 먹고 들어가려는데 괜찮으면 같이 먹는 게 어때요? ”

 

“ 좋아요, 다냐! 안 그래도 그때 블린 먹고 나서 자꾸 보랴의 요리가 생각나더라고요. 열두 시까지 스베촉으로 갈게요! ”

 

 

열두 시에 베르닌은 부모님을 모시고 스베촉으로 갔다. 리자도 시간 맞춰 도착했다. 언제나 구김 없고 발랄한 리자는 베르닌의 부모님에게도 밝게 인사를 했고 왕재수를 친구로 둔 베르닌 덕분에 공연을 보게 되었다며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다.

 

 

예쁘고 귀여운 리자를 보자 베르닌의 부모님은 눈이 등잔만 해졌고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좋아했다. 아무리 베르닌이 ‘리자는 회사 동료예요’ 라고 설명을 해도 ‘우리 아들이랑 사귀는 여자인가!’ 하는 기대로 충만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행히 음식이 나왔고 역시 보랴의 솜씨답게 맛이 아주 좋았기 때문에 부모님도 식사를 하느라 여념이 없게 되었다.

 

 

식사를 마친 후 그들은 극장으로 갔다. 왕재수가 빼준 자리는 놀랍게도 2층 로열 박스석이었다. 부모님은 깜짝 놀랐고 리자는 말 그대로 펄쩍 뛰었다.

 

 

어머나, 다냐! 이렇게 좋은 자리는 처음 앉아 봐요! 역시 꽃돌이 감독님이 최고네요. 우와, 이 샹들리에 좀 봐. 무대도 너무너무 잘 보이네요! ”

 

“ 그러게 말이야. 이 금장식에 천사 조각 좀 보렴. 평생 이렇게 호화스런 자리에서 발레를 본 적이 없는데 미셴카가 참 고맙구나. 젊은 아이가 수완도 좋지, 아무리 극장에서 일해도 이런 자리를 빼주기는 쉽지 않을 텐데. 이게 제일 좋은 자리 아니니. 이런 자리는 극장 간부들이 자기 손님들 용으로 빼놓는 걸 텐데. ”

 

 

리자가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어머나, 마리야 니콜라예브나. 잘 모르셨군요. 미셴카가 이 극장 예술 감독이잖아요. 극장장 다음으로 지위가 높아요. 극장에 올라오는 모든 공연에 대해서는 최고 책임자고요. 다냐랑 친하니까 자리를 마련해준 거예요. ”

 

“ 어, 아니... 근데 걔도 평소엔 이런 자리는 잘 안 주는데... 나는 백스테이지에서 보거나 그냥 2,3층 뒷자리에서 보거든요. 어머니랑 아버지 때문에 좋은 자리 챙겨 줬나 봐요. ”

 

“ 정말 좋은 아이라니까. 그런데 그 얘기가 정말이니, 리자? 미샤가 극장에서 그렇게 지위가 높다고? 우리는 그냥 사무국 직원들한테 업무별로 감독이란 호칭을 주는 건줄 알았지 뭐니. 그것도 모르고 어제 미셴카에게 차근차근 열심히 하면 성공하게 될 거라고 그랬구나. 미안하기도 해라. 그런데도 미셴카는 화도 안 내고 방긋방긋 웃기만 하고. 착하기도 하지. ”

 

“ 새파랗게 젊은 아이가 얼마나 재능이 뛰어났으면 벌써 그렇게 출세를 했을까. 이거 우리가 네 친구를 몰라봤구나. 있다가 얼굴 보고 사과라도 해야지 안 되겠다. ”

 

“ 아니에요, 아버지. 미셴카는 그런 거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거예요. 아, 이제 공연 시작하려나 봐요. ”

 

 

모두가 무척 재미있게 공연을 보았다. 베르닌은 백조의 호수라면 왕재수 감시 업무 때문에 벌써 여러 차례 보았지만 오늘따라 굉장히 재미있었다. 1막 2장에서 백조들이 떼 지어 나올 때도 평소에는 졸았지만 오늘은 옆에서 리자가 이따금 조그맣게 탄성을 지르기도 하고 열띤 박수를 치는 등 워낙 몰입하면서 보는 통에 엷은 흥분이 전염된 것 같기도 했다. 마지막에 데니스가 춘 지그프리드 왕자가 로트바르트의 날개를 찢을 때쯤 부모님도 박수를 짝짝 치고 있었다.

 

 

베르닌의 부모님은 옛날에는 공연 끝나고 배우나 무용수들이 나와서 인사하기 시작할 때가 되면 ‘다 끝났으니까 가자!’ 하고 일어났는데 이번에는 커튼콜이 계속 이어지는데도 박수를 치며 계속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특히 백조 오데트를 춘 타마라가 너무 예쁘다면서 계속 박수를 쳤고 아버지도 ‘허허, 살다 보니 발레가 다 재미있구나’ 하고 웃었다. 커튼콜 막바지에 타마라가 백스테이지로 달려가더니 왕재수의 손목을 잡아끌고 나왔다. 객석은 난리가 났다. 꽃다발들이 무대로 비오듯 날아들었다. 왕재수는 꽃다발들을 주워서 타마라에게 바친 후 객석을 향해 근사한 포즈로 인사를 했다. 리자는 손바닥을 비비며 ‘어쩜, 미셴카는 정말 너무 멋있어요’ 라고 황홀경에 빠졌고 베르닌의 부모님도 깜짝 놀라며 ‘우리 아들의 친구가 굉장한 애였구나’ 하고 웃었다.

 

 

베르닌은 왕재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부모님과 리자를 데리고 백스테이지까지 찾아가는 게 민폐처럼 느껴져서 저녁에 따로 말해야겠다고 다짐했다.

 

 

 

 

*   *   *

 

 

 

 

극장에서 나오자 오후 4시가 좀 넘은 시각이었다. 베르닌의 어머니는 리자에게 집에 들러 차 마시고 가라고 청했다. 리자는 흔쾌히 초대를 받아들였다. 베르닌은 조금 난감했다. 회사 동료들을 집으로 부른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리자라니, 그나마도 어머니가 집을 싹 치우고 정돈해놔서 다행이었다.

 

 

집에 들어서면서도 리자는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베르닌은 급하게 슬리퍼를 찾기 시작했다. 이 집에 이사 온 후로는 왕재수와 코즐로프 외에는 손님이 찾아온 적이 거의 없었고 여자는 더욱 없었기 때문에 리자가 신을만한 슬리퍼가 눈에 띄지 않았다.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그중 제일 깨끗한 슬리퍼를 찾아서 리자에게 건네주었다. 잘 보니 왕재수가 악몽을 꿨다고 울면서 밤중에 찾아왔을 때 신고 왔던 슬리퍼였다. 리자에게는 왕재수가 신었던 슬리퍼라고 얘기하지 않았다. 좋아하면서 챙겨가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베르닌이 찻물을 올리고 잔을 꺼내고 있는데 리자가 부엌으로 왔다. 핸드백에서 조그만 종이봉지를 꺼냈다.

 

 

“ 우리 이거 곁들여서 차 마셔요, 다냐. ”

 

“ 어, 이게 뭐예요? ”

 

딸기잼 쿠키요. 아까 스베촉 가는 길에 빵집에서 샀어요. 그 집이 옛날식으로 과자를 구워서 우리 아빠가 좋아하시거든요, 다냐 부모님도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

 

“ 우와! 고마워요, 리자. 정말 세심하네요. 저, 미안해요. 토요일이라 다른 스케줄도 있을 텐데 우리 부모님이 갑자기 차 마시자고... ”

 

“ 어머, 괜찮아요. 오늘 다른 약속 없었어요. 덕분에 엄청 좋은 자리에서 백조의 호수도 보고 맛있는 점심도 얻어먹었잖아요. 이렇게 신나는 주말은 정말 오랜만인걸요. ”

 

“ 그래도... 미안해요. 저, 우리 부모님이 자꾸 이상하게 넘겨짚는 얘기 하는 거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나만 보면 맨날 여자친구는 어디 있느냐 언제 장가가느냐 하는 말밖에 안 해서... 괜히 오해해서 불편하게 만들까봐... ”

 

 

리자는 콧잔등에 조그만 주름을 만들더니 깔깔 웃었다.

 

 

“ 아유, 우리 엄마아빠도 그래요. 남자친구는 언제 사귀느냐, 결혼은 언제 하느냐 하고요. 우연히 내 옆으로 남자라도 지나가면 금세 남자친구냐고 물어봐요. 부모님이야 다 그렇죠 뭐. 걱정 말아요, 내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것도 아닌데. 설마 당신이 부모님한테 ‘리자가 저랑 결혼할 여잡니다~’ 라고 뻥이라도 쳤겠어요? 세상 남자들이 다 그래도 당신은 그런 말 못 할 텐데. ”

 

“ 어... 그건 그렇지만... 근데 좀... ”

 

“ 뭐가요? 내 말이 틀렸어요? ”

 

“ 그러니까... 당연히 그런 뻥은 안 치는데요. 그치만 나, 나도 진짜 결혼할 사람이 생기면 그 얘기는 할 거란 말이에요. 다른 남자들처럼... ”

 

“ 아휴, 바보. ”

 

 

리자는 다시 까르르 웃었다. 베르닌의 손목을 살짝 꼬집더니 쟁반에 찻잔을 세팅하고 접시에 딸기잼 쿠키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베르닌은 어르신들을 위해 오래된 빵집에 들러 쿠키를 사온 리자의 세심함에 감동을 받았다. 겨울에 뜨보록을 함께 돌봐주던 것도 생각났다. 자기 차와 숄이 엉망이 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에 빠진 왕재수를 병원까지 태워다주던 것도. 겨우 스물을 갓 넘긴데다 여러 모로 아직 소녀 같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자기보다 훨씬 어른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 여자라서 그런가. 하여튼 리자는 착해. 매사에 긍정적이고. 바자회 떠맡았을 때도 앞장서서 아이디어 내고. 나도 리자처럼 되고 싶다. ’

 

 

베르닌의 부모님은 리자의 예상대로 딸기잼 쿠키를 아주 좋아했다. 알고 보니 예전에 자주 들르던 빵집이라고 했다. 베르닌은 부모님에 대해 자기가 아는 게 생각보다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부모님은 리자에게 대놓고 ‘우리 아들이랑 결혼할 거지?’ 하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한 시간쯤 차를 마시며 KGB의 고된 행정 업무와 못된 스페호프 국장에 대한 이야기, 자질구레한 신변잡기 등에 대한 수다를 떨었을 뿐이었다. 어느 새 저녁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리자가 깜짝 놀라 일어섰다.

 

 

“ 어머나,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오늘 오빠 부부가 와서 저녁 먹기로 했거든요. ”

 

“ 아이고, 아쉽구나. 우리는 널 봐서 너무너무 반가웠단다. 우리 다냐는 공부나 할 줄 알지 착해빠져서 걱정이었는데 주변에 미샤 같이 좋은 친구도 있고 리자처럼 착하고 귀여운 아가씨도 있으니 이제 우린 안심이란다. ”

 

“ 다냐 주변에 좋은 사람 많아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오늘 푸스코프로 돌아가시면 언제 또 오세요? ”

 

“ 글쎄다. 시간이야 또 내면 아무 때나 올 수 있겠지. 우리 아들만 귀찮아하지 않으면. ”

 

“ 무슨 소리에요, 어머니. 제가 왜 귀찮아해요. 자주 오세요. 제가 가야 하는데. ”

 

“ 아니다, 얘야. 넌 바쁘잖니. 리잔카, 우리랑 같이 차 마시고 놀아줘서 고맙구나. 우리 다냐를 잘 부탁한다. ”

 

“ 부탁은 제가 해야죠. 다냐가 회사에서 많이 도와주거든요. 그럼 조심해서 돌아가세요. 다음에 다시 오시면 꼭 뵈어요! ”

 

 

베르닌의 부모님은 진심으로 섭섭해 하며 리자의 뺨과 입술에 작별 뽀뽀를 했다. 그리고는 베르닌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어서 리자를 바래다주고 오라고 성화였다. ‘제 지굴리는 지금 정비소에 처박혀 있다고요’ 라고 하려다가 여기까지 와준 리자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왕재수의 차를 쓰기로 했다. 어차피 왕재수는 아침에 코즐로프의 차를 타고 출근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리자는 깜짝 놀랐다.

 

 

아앗, 다냐! 차 바꿨어요? 이 차 진짜 좋다!!

 

“ 아니에요, 내 팔자에 무슨... 이거 미셴카 차예요. 지굴리 고칠 때까지 쓰라고 해서요. ”

 

“ 아, 하긴. 근데 이 차 국장 차보다 더 좋네요. 세상에... 그래도 직위로 따지면 우리 국장이 극장 예술감독보다 더 윗급일 텐데. 블리즈네초프 의장이랑 렐랴네 집안에서나 이런 차 몰 걸요. 역시 미샤는 다르네요, 벨스키 의원이 직접 챙긴다더니... ”

 

“ 차가 좋으면 뭐해요. 그 자식 운전도 하나도 못하고. 맨날 내 지굴리 타고 출퇴근했는걸요. ”

 

“ 바보, 그럼 지굴리 놔두고 그냥 이 차로 데려다줬으면 됐잖아요. ”

 

“ 그러고 싶지 않았다고요. 그 자식 지금은 그래도 많이 나아졌지만 처음에 얼마나 재수 없게 굴었다고요. 사람을 완전 노예에 집사 취급하고. 집안일 해주고 밥 해 먹이는 것도 모자라 출퇴근까지 시켜주려니 화가 나더라고요. 심지어 그 자식 차를 몰아주려니까 내가 더 노예에 운전병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나 남의 차 안 몰아! 내 지굴리 타든지 아니면 네가 알아서 네 차 몰고 가!’ 라고 협박했거든요. 난 그 자식이 당연히 후진 지굴리 싫다고 하면서 자기 차 타고 갈 줄 알았는데 냉큼 ‘나 그럼 지굴리 탈래’ 하는 거예요! 그래서 완전 코 꿰어서 맨날맨날 아침 밤으로 그 자식 출퇴근시켜주고... ”

 

어머, 다냐. 아하하하. 당신 의외예요, 호호호!

 

 

리자가 깔깔 웃기 시작했다. 베르닌은 대체 뭐가 우습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갔지만 리자는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웃었다.

 

 

“ 왜 그렇게 웃어요? 내가 그 자식한테 코 꿴 게 그렇게 즐거워요? 회사에선 국장한테 볶이고 집에선 그 자식한테... ”

 

“ 아니요, 그게 아니고... 아아... 당신도 오기를 부리는구나 싶어서요. 지굴리 탈래 네 차 몰고 갈래, 아하하! ”

 

 

베르닌은 뭔가 진심으로 억울한 느낌이 들었지만 리자가 너무 좋아하며 웃어댔기 때문에 결국 자기도 웃어버렸다.

 

 

리자의 집은 같은 신시가지에 있었고 별로 멀지는 않았지만 작은 숲을 하나 지나가야 했다. 알고 보니 코즐로프와 같은 동네였다. 웃다가 보니 어느새 리자가 사는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베르닌은 차를 세운 후 내려서 리자 쪽 문을 열어주었다. 리자가 동그래진 눈동자를 깜박이며 고개를 갸웃했다.

 

 

“ 어머, 다냐. 고마워요. 근데 전에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왜 오늘은 문까지 열어주는 거예요? ”

 

“ 어, 그게요... 난 그런 거 몰랐는데 지난번에 극장에서 나올 때 미셴카랑 걔 비서 류다를 같이 태웠거든요. 류다가 신시가지에 갈 일이 있다고 해서요. 근데 내리는데 미셴카가 나보고 매너 없는 놈이라고 야단을 치는 거예요. 류다랑 자기 놔두고 나 혼자 휙 내려버렸다고요. 여자가 내릴 땐 먼저 내려서 문도 열어주고 식당에선 의자도 빼줄 줄 알아야 하고 또 뭐라더라, 코트도 받아줘야 된대요. 그러니까 류다가 맞다면서 역시 우리 감독님이 최고라는 둥 여자 마음을 제일 잘 안다는 둥 역성을 들잖아요. 그래서 새로운 걸 알게 됐어요. 앞으로는 문도 열어주고 의자도 빼주고 코트도 받아줄 거예요. ”

 

어머... 아하하하하!!! 다냐!!! 아아...

 

 

리자는 거의 데굴데굴 구를 정도로 웃었다. 베르닌은 또 다시 좀 억울한 기분이 들었지만 리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웃다가 베르닌을 꼭 껴안고 뺨에 뽀뽀를 했다. 깜짝 놀란 베르닌의 표정도 아랑곳하지 않고 리자는 깔깔대며 소리쳤다.

 

 

“ 다냐, 난 괜찮아요. 문 안 열어주고 의자 안 빼주고 코트 안 받아줘도 안 삐칠게요. 아하하하!! ”

 

“ 그치만... 그 자식 말은 항상 맞거든요. 아니, 그러니까 항상 맞는 건 아니지만 매너인지 뭔지랑 여자에 대한 건... ”

 

“ 맞긴 맞는데요... 아하하... 근데 좀 이상하네요. 그 차에 미샤도 같이 타고 있었던 거잖아요. 그럼 미샤가 먼저 내려서 류다가 앉아 있는 쪽 문 열어줘도 됐잖아요! 미샤도 남잔데! 왜 자기는 안 하고 당신한테만 뭐라고 하는데요? ”

 

“ 그게요, 나도 똑같이 따졌는데요... 그 자식이 자기는 항상 그렇게 한다는 거예요. 나랑 있을 때만 빼고요. 왜 나랑 있을 때는 빼는 거냐고 했더니 그래야 내가 뭐가 잘못된 건지 몸으로 깨닫고 앞으로 안 그럴 게 아니겠냐고... ”

 

“ 으음, 꽃돌이 감독님은 의외로 굉장히 스파르타식이네요. ”

 

아니에요! 그게 아니에요! 그 자식 그거 다 뻥이에요. 그 자식 그때 자고 있었단 말이에요! 다 왔는데 자기 안 깨우고 문 안 열어줬다고 삐쳐서 괜히 류다 끌어들여서 나한테 짜증낸 거란 말이에요! 내가 그 자식 삐치는 거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 그리고 그 자식은 여자고 뭐고 지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놈이니까 항상 받들어 모셔줘야 된다고 굳게 믿는 놈이라고요. ”

 

“ 그래도 제일 좋아하면서. ”

 

“ 누가요? 누구를요? ”

 

당신이요. 꽃돌이 감독님 엄청 좋아하잖아요. 맨날 미샤 얘기밖에 안하고. ”

 

“ 윽, 제발... 그런 거 아니라고... ”

 

“ 누가 뭐래요, 아침에 하고 저녁에 하고 밤에 하는 거 아니라는 건 믿어요. 근데 그런 거 말고요. 하여튼 당신은 뭐든 미샤가 우선이잖아요. 뭘 하든 결국은 미샤 생각으로 돌아오는걸요. ”

 

“ 하지만... 그건 내가 너무 일에 찌들어서 그래요. 퇴근해서도 항상 그 자식 옆에 붙어서 돌봐주다 보니... 그리고 그 자식 너무 애기 같아서 잠깐이라도 눈 돌리면 금세 사고를 치니... ”

 

“ 안 그런 것 같던데... 미샤는 굉장히 어른스럽고 여자들이랑 어른들에게도 잘 하고... 세상 물정도 잘 알고 처신도 의젓하고... 그런 얘기 하는 거 당신밖에 없어요. ”

 

“ 아닌데, 그 자식 완전 애긴데... ”

 

 

리자는 다시 까르르 웃더니 베르닌의 뺨에 다시 뽀뽀를 했다. 오늘은 평소와는 다른 향이 났다. 달콤한 딸기 향이 아니라 아기 분 같은 냄새였다. 비누 냄새인지 향수인지는 모르지만 향이 좋았다.

 

 

“ 나 이제 들어갈게요. 저기 창가에 우리 오빠가 벌써 나와서 손 흔들고 있네요. 다냐, 데려다 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공연 보여준 것도요. ”

 

“ 네? 아니에요, 내가 얘기한 거 아니에요. 표는 미셴카가 준 거예요. ”

 

“ 에이, 이제 와서 뭘 아닌 척. 미샤한테 당신이 얘기했다면서요. 나 발레 좋아한다고. 고마워요. 어머님 아버님도 너무 좋으시더라고요. 인사 전해주세요. 그럼 안녕! ”

 

 

 

 

*   *   *

 

 

 

 

집에 돌아오자 어제처럼 맛있는 냄새가 가득했다. 진하고 달콤하기까지 한 보르쉬 냄새와 구수한 고기 요리 냄새가 났다. 공연 때문에 점심을 빨리 먹었기 때문인지 베르닌은 갑자기 엄청나게 배가 고팠다. 마침 저녁을 차리고 있던 어머니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 아니, 너 왜 이렇게 일찍 오니? ”

 

“ 리자도 신시가지에 살더라고요. 가까워서 얼마 안 걸렸어요. ”

 

“ 우리는 네가 리자랑 저녁 먹고 데이트할 줄 알았단다. ”

 

“ 네? 아니에요, 저랑 리자는 그냥 회사 동료라고 했잖아요. ”

 

“ 아유, 그렇구나. 난 또... 아가씨가 참 귀엽고 괜찮더라. 잘 좀 해보렴. 엄마가 보니까 리자도 너한테 호감이 있는 것 같더라. 여자 마음은 여자가 안다고. 나이도 젊은데 어른 모실 줄도 알고 얼굴도 예쁘고 게다가 같은 KGB니 금상첨화 아니니. ”

 

“ 저... 리자랑 전 진짜 그런 사이가 아닌데... ”

 

“ 다 그렇게 시작하는 거란다. 부디 잘해보렴. 아이고, 우리는 네가 이러다 서른이 될 때까지 제대로 된 연애도 못하고 장가도 못 갈까봐 걱정했는데 기우였구나. 식탁으로 가렴. 저녁 먹자. 네가 늦게 올 줄 알고 아빠랑 간단하게 때우고 가려고 보르쉬 끓이고 쇠간만 볶았는데 너무 부실한 것 같기도 하고... ”

 

“ 아니에요, 딱 좋아요. 아, 이게 쇠간 볶음 냄새였구나. 크림소스에 볶은 거죠? 맞아, 이거 맛있었는데... 식당 가서 먹으면 어머니가 해주는 맛이 안 나더라고요. 작년인가 이거 너무 먹고 싶어서 직접 만들어봤는데 비리고 냄새가 나서 완전 망했어요. ”

 

“ 내장 요리는 생강이랑 허브를 써야 잡내를 잡을 수 있단다. 어서 손 씻고 와서 앉으렴. ”

 

 

저녁 식사는 소박하지만 아주 맛있었다. 크림소스를 끼얹은 쇠간 볶음은 고소하고 감칠맛이 돌았고 보르쉬는 인스턴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비트와 양배추, 쇠고기 등 건더기가 가득해 훨씬 뻑뻑했고 깊은 맛이 일품이었다. 금세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아들이 잘 먹자 내심 뿌듯했는지 미소를 지으면서도 어머니가 짐짓 타이르듯 말했다.

 

 

천천히 먹어라, 어릴 땐 보르쉬 싫다고 투정하더니 지금은 잘 먹는구나. ”

 

“ 너무 맛있어요. 어떻게 해야 이렇게 깊은 맛이 나죠? ”

 

“ 야채든 고기든 건더기를 아끼면 안 돼. 그리고 육수를 잘 뽑아야 한단다. 맹물에 끓이면 절대 이 맛이 안 나. 시간이 있으면 쇠뼈로 오래 우려 놓으면 더 좋단다. ”

 

“ 아, 그렇구나... ”

 

 

아버지가 허허 웃었다.

 

 

“ 이 녀석 보게. 사내 녀석이 요리법을 하나하나 다 묻고. 가뜩이나 야근도 많이 할 텐데 고기 구워먹는 것도 아니고 저 공들여 끓여야 하는 수프를 네가 언제 만들겠냐. 아까 그 식당 맛있던데 거기서 먹는 게 낫겠다. 아니면 리자한테 그 레시피를 가르쳐주는 게 좋겠구나. 리자가 너한테 만들어주면 되지 않니. ”

 

“ 아니, 그게요... 아버지, 리자랑 저는 그런 관계가 아니고요... 그리고 저 야근 안 할 땐 집에서 요리해 먹거든요. 보르쉬도 자주 만드는데 이 맛은 안 나니까... 아참, 어머니. 보르쉬 남았어요? 많이 끓였으면 좋을 텐데... ”

 

“ 많이 남았단다. 안 그래도 남은 걸 두고 가면 네가 먹으려나 걱정했는데. 근데 꽤 많이 남아서 아마 냉장고에 넣어놨다가 데워먹어야 할 거야. 요즘 날이 따뜻해서. ”

 

“ 아, 잘됐다. ”

 

 

베르닌이 뛸 듯이 좋아하자 어머니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 뭐가 그렇게 좋니? 예전엔 보르쉬 이렇게까지 좋아하지 않았으면서. ”

 

“ 그게 아니고요, 미셴카가 가끔 우리 집에서 같이 저녁 먹어요. 걔는 원래 보르쉬를 좋아하기도 하고, 의사 선생님이 보르쉬에 철분이 많으니 꼬박꼬박 챙겨먹으라고 했거든요. 보통은 인스턴트 보르쉬 데워먹지만 이렇게 맛있는 보르쉬 먹으면 진짜 좋아할 거예요. 그 녀석 극장 일이 너무 바빠서 옆에서 챙겨주지 않으면 끼니도 자주 거르고... 오늘도 저녁 먹고 온다고는 했지만 뻔할 뻔자 굶고 올 거예요. 머릿속에 일 생각뿐이거든요. 이 보르쉬 데워주면 진짜 좋아할 거예요. ”

 

 

뜨끈뜨끈하고 맛있는 보르쉬를 떠먹다가 베르닌은 갑작스런 침묵에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고개를 들었다. 부모님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잠시 후 어머니가 조그맣게 한숨을 쉬었고 아버지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 왜 그러세요? 무슨 일이라도... ”

 

“ 다냐, 안 그래도 저녁 먹고 나서 이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말이다. 너 어제 우리에게 숨긴 게 있더구나.

 

“ 숨기다니요? 제가요? 전 그런 거 없는데... ”

 

“ 네 친구 미샤 말이다... 아까 네가 리자 바래다주러 나갔을 때 클라우디야랑 통화하다가 오늘 공연 얘기가 나왔단다. 아들을 잘 둬서 극장 예술감독도 알게 되고 덕분에 극장에서 제일 좋은 자리 앉아 발레를 봤다고 자랑했지. 그러니까 클라우디야가 깜짝 놀라는 거야. 극장 감독이라면 설마 그 ‘야스민’을 말하는 거냐고 하면서. 어제 그 아이 성은 못 들었던 것 같아서 이름만 안다고, 미샤라고 했더니 클라우디야가 그 아이 외모를 그대로 묘사하더구나. 그래서 맞다고 했더니 얼마나 놀라는지... 큰일 나려고 그런 반동분자와 저녁을 같이 먹었느냐고, 너랑 많이 친하냐고 묻는 거야. 낌새가 이상해서 살짝 얼버무리면서 그냥 어쩌다보니 식사를 같이 했다고 둘러대면서 그 아이가 정말 반동분자냐고 물어보니 클라우디야가 놀라운 얘기들을 줄줄이 해주더구나! ”

 

 

흥분한 어머니가 목이 막혀 기침을 하는 사이에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 우리는 정말 꿈에도 생각 못했다, 다냐. 너도 알다시피 극장이랑은 담을 쌓았지 않니. 그래도 이름에 성까지 들으니까 우리조차도 귀에 익더구나. 바로 ‘그’ 미하일 야스민이라니. 볼쇼이인지 키로프인지 하여튼 굉장히 유명했던 애 아니냐. 작년 여름에 왜 조국의 반역자라고 대문짝만하게 신문에도 나고. 클라우디야가 말해주니 어렴풋이 기억이 나더구나. 완전 반체제주의자라고, 프랑스 제국주의자들에게 국가 기밀을 팔아넘기고 망명하려 했다고, 그래서 감옥에도 갔다 왔다고 하는 거야. 그나마 뒤를 봐주던 윗분이 있어서 여기 극장으로 보냈는데 그래도 반동분자로 소문났으니 절대 가까이 하면 안 된다고 열변을 토하더구나. 얘야, 우리는 정말 놀랐단다. 너는 심지어 KGB 아니냐, 어쩌다 그렇게 위험한 애와 친해진 거니. 그 얘길 듣고 네 엄마는 걱정이 되어 울기까지 했단다. ”

 

 

베르닌은 입맛이 싹 달아났다. 수프를 떠먹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정색을 하며 말했다.

 

 

“ 미샤는 두 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위험한 애가 아니에요. 반역자니 하는 건 과장된 혐의였고요. 진짜 불순한 반동분자였다면 당에서 걔를 석방시켜서 여기로 보내지도 않았을 거예요. 걔는 정치 같은 건 관심도 없어요. 그냥 예술가일 뿐이에요. ”

 

“ 아이고, 다냐. 그게 그냥 석방이 아니지 않니. 허가 없이는 가브릴로프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는데. 게다가 KGB 특별감시대상이라던데 너는 심지어 KGB 요원이지 않니. 잘못해서 국장이 너희의 친분을 눈치 채기라도 하면 네 앞날이 어떻게 되겠니. 그냥 예술가라니. 너는 그 나이가 되도록 아직도 너무 순진한 게 탈이란다... 공연히 걔랑 어울리다가 나쁜 물이라도 들까봐 너무나 걱정이 되는구나. 게다가 극장이라니, 예술가라니... 너처럼 공부만 하던 애랑은 놀던 물이 다른 애야. 클라우디야 말로는 걔가 사생활도 엄청 복잡하고 나쁜 소문이 많았다고 하더구나.

 

“ 아까는 미샤가 극장 감독이라서 좋은 자리도 구해주고 공연도 보여줘서 좋았다고 하셨잖아요. 어제 같이 식사하실 때도 미샤가 착하고 귀엽다고 마음에 들어 하셨고요. 그런데 어떻게 클라우디야 아줌마의 말만 듣고 순식간에 돌변하실 수가 있어요? 저한테 사람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잖아요.

 

 

아버지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무거운 음성으로 말했다.

 

 

“ 그래, 네 말이 맞다. 그게 원칙적으로는 맞지. 하지만 너도 사회생활을 하니 알지 않니. 세상 사는 게 그리 호락호락하더냐. 네 말대로 미샤가 좋은 애일지도 모르지. 어제 보니까 심성은 고와 보이더구나. 우리에게도 깍듯했고. 하지만 아무리 좋은 애라 해도 위험한 건 위험한 거란다. 우리가 4~50년대를 어떻게 버텼는지 넌 모를 거다. 위험한 건 듣지도 않고 곁에 가지도 않았단다.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건 모두 피했지. 안 그러면 잡혀가거나 밀고를 해야 하니까. 세상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몇몇 가지는 변하지 않아. 그것도 저렇게 유명한 애라면 더 그렇지. 가브릴로프의 모든 주민이 걔 이름을 안다고 하더구나. 너는 보안위원회의 녹을 먹는 공무원이야. 다른 사람보다 백배는 더 위험해. 여기서 미샤가 실제로 나쁜 애인지 좋은 애인지, 반동분자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 세상은 그런 거다. 앞으로는 걔랑 얽히지 않는 게 좋겠다. 가까이 지내는 일이 없도록 해라. 알겠니?

 

 

 

베르닌은 너무나 답답해서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막 반박하려고 하는 순간 거실 쪽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아버지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온몸이 굳어졌다. 거실에서 부엌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왕재수가 서 있었다. 안으로 들어오려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멈춰선 것 같았다. 왕재수는 베르닌과 눈이 마주친 순간 조심스럽게 몸을 돌려 나갔다. 부모님은 등을 돌린 채 앉아 있었기 때문에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 너 왜 그러니? ”

 

“ 잠깐만요. ”

 

 

베르닌은 벌떡 일어났다. 급하게 거실로 뛰어나갔다. 하지만 왕재수는 이미 나가고 없었다. 현관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보았다. 딩동 하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 아... 언제부터 와 있었던 거야. 얼마나 들은 걸까... 바보, 하필이면 이럴 때 딱 들어와 가지고... 평소엔 맨날 늦게 오더니 극장에서는 또 왜 이렇게 일찍 나와 가지고... 그냥 로만한테 가서 밤이나 불태울 것이지. ’

 

 

베르닌은 망연자실해져서 한동안 복도에 서 있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 우리 어머니랑 아버지가 기차 타러 나가기 전에 인사하려고 일찍 나왔던 거야. 바보 같은 자식... ’

 

 

그는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왕재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위층으로 올라가볼까 하다가 부모님에게 공연한 빌미를 잡히고 싶지 않아서 도로 집으로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가 잔뜩 먹구름이 낀 표정으로 물었다.

 

 

“ 너 왜 그랬니? 밖에는 왜 나갔다 오고. ”

 

“ 밖에서 문 두들기는 소리가 나서요. 근데 옆집이더라고요. 가끔 우리 집이랑 착각하는 손님들이 있어요. ”

 

“ 초인종이 있는데 왜 문을 두들긴담. 예의 없는 사람들이구나. ”

 

“ 어, 여, 옆집은 초인종이 고장 났어요. ”

 

“ 그렇구나. 좋은 아파트인데 수위는 제대로 일을 안 하나보구나. 그래도 참 좋은 회사지 뭐냐, 겨우 3년밖에 안 된 직원에게 이렇게 좋은 아파트를 배정해 주다니. 국장이 못살게 굴어도 그러려니 하고 잘 참으면서 다니렴. 일이야 네가 워낙 열심히 할 거고. ”

 

“ 네. ”

 

“ 그리고 미샤에 대해서는 엄마아빠 말을 꼭 들으렴. 앞으로는 가까이 지내지 말아라. 알겠니? ”

 

저는 성인이잖아요, 누구를 친구로 사귈지 말지는 제가 결정할 일인데... ”

 

“ 얘야,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부디 우리 말을 들어라. 네가 약속을 해주지 않으면 우리는 걱정이 돼서 밤잠을 못 이룰 것 같구나. ”

 

 

베르닌은 무슨 말을 해봤자 소용없으리라는 사실을 깨닫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어요. 말씀대로 할게요. ”

 

“ 그래그래, 이제 마음이 좀 놓이는구나. 어서 먹으렴. 아이고, 음식이 다 식어버렸구나. 다시 데워줄까? ”

 

“ 아니에요, 수프는 다 먹었고 쇠간 볶음은 식어도 맛있어요. 어머니 아버지도 어서 드세요. ”

 

 

부모님은 안심했는지 다시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게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베르닌은 이따금 맞장구도 치고 대화에도 끼어들었지만 모든 것은 기계적이었다. 어머니의 요리조차 모래를 씹는 것 같은 맛이었다. 머릿속에는 말없이 몸을 돌려 나가던 왕재수의 뒷모습과 엘리베이터 문의 ‘딩동’ 소리가 무한 반복되고 있었다.

 

 

 

 

*   *   *

 

 

 

 

베르닌은 부모님을 기차역까지 모셔다 드리려고 했지만 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 아니다, 얘야. 너 어차피 차도 지금 수리 중이잖니. 그냥 버스 타고 가면 되지. 타기만 하면 한 시간도 안 걸리는데. 지금 나가면 딱 9시 버스 타겠구나. ”

 

 

어머니는 내심 베르닌이 같이 버스를 타고 기차역까지 가주기를 바라는 표정이었다. 보통 때 같았으면 베르닌도 그렇게 했겠지만 오늘따라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정류장까지 함께 나가서 부모님이 버스를 탈 때까지만 함께 있었다.

 

 

부모님이 탄 버스가 떠난 후 베르닌은 아파트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자 따스한 온기와 보르쉬, 쇠간 볶음, 그리고 뭐라고 딱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어린 시절 집에서 나던 냄새가 훅 끼쳐왔다. 어머니는 그 와중에도 설거지와 청소를 모두 마치고 싱크대도 깨끗이 닦아놓았다. 보르쉬는 뚜껑 달린 냄비에 잘 담아 시원한 창가에 놓여 있었다. 열기가 다 가시면 냉장고에 넣으라는 어머니의 당부가 생각나서 냄비를 만져 보았다. 아직 따뜻했다. 갑자기 눈가가 따끔거리면서 목구멍으로 뜨거운 덩어리 같은 것이 치밀어 올라왔다.

 

 

‘ 자식, 저녁도 안 먹었을 텐데. ’

 

 

그는 냄비를 열어보았다. 보르쉬가 꽤 많이 들어 있었다. 양쪽 손잡이를 잡고 냄비를 들었다. 냄비를 들고 현관으로 걸어가다가 멈춰 섰다. 한숨을 쉬며 냄비를 도로 창가에 갖다 두었다. 그리고는 냉장고를 뒤져 며칠 전 사다놨던 오렌지를 꺼내고 찬장에서 흑빵과 보랴가 챙겨줬던 조그만 연어 통조림을 찾아냈다.

 

 

주머니에 오렌지와 통조림을 쑤셔 넣고 한 손에는 흑빵 봉지를 든 채 베르닌은 위층으로 올라갔다. 왕재수의 집 문은 잠겨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려다가 마음을 바꾸었다. 열쇠로 문을 열었다.

 

 

“ 미셴카, 나야. 들어가도 되니? ”

 

 

안쪽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왔지만 답은 없었다. 처음에는 코즐로프가 와 있나 싶었지만 잘 들어보니 아니었다. 이제 베르닌도 진짜 연주와 레코드를 구분할 수 있었다.

 

 

그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정말 레코드가 돌아가고 있었다. 낮고 무거운 현악 연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바이올린은 아닌 것 같았다. 왕재수는 거실 창가에 걸터앉아 있었다. 활짝 걷힌 커튼 사이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왕재수는 자기 집에서는 커튼을 열어젖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걸핏하면 환기를 시킨다고 창문을 열곤 했지만 그래도 커튼을 반쯤 쳐놓곤 했다. 오랫동안 감시를 받아와서 몸에 밴 습관인 듯 했다.

 

 

하지만 지금 커튼은 완전히 걷혀 있었고 왕재수는 반쯤 열린 창문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깥은 어두컴컴했다. 가로등 조명과 맞은편 건물의 불빛들이 흐릿하게 깜박거릴 뿐이었다. 베르닌은 잠시 가만히 서 있다가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미안해. ”

 

 

왕재수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베르닌은 약간 마음이 놓였다. 왕재수는 전혀 화나거나 슬픈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 왜 그런 말을 해? ”

 

“ 아까... 우리 부모님이 한 얘기... 너 들었잖아. 정말 미안해. ”

 

 

베르닌은 갑자기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바보, 내가 울면 어떡해. 뭘 잘했다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억지로 눈물을 삼키는데 왕재수가 여전히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 네가 왜 미안해? ”

 

“ 우리 부모님이니까... 진짜 미안해. 너 그런 애 아닌데... 괜히 넘겨짚고 오해하고... 내가 대신 사과할게. ”

 

“ 아, 그거. 괜찮아. 사과 안 해도 돼. ”

 

“ 하지만... ”

 

“ 나 화 안 났어. 부모님들은 아마 다 그럴 거야. 게다가 스탈린 시대를 보내신 분들이잖아. 괜찮아. ”

 

아니야.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잘못한 거야. 너는 그런 애가 아니야. 그리고, 그리고 설령 그런 애라 해도 상관없어. 너한테 그런 말 하면 안 돼. 진짜야.

 

 

베르닌은 자기도 모르게 왕재수의 손을 꼭 쥐었다. 눈물은 간신히 멈췄는데 콧물이 주르륵 흘러내려서 급하게 훌쩍이며 삼켰다. 왕재수는 당황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더니 투덜댔다.

 

 

“ 바보 멍충이. 콧물까지 흘리고. 아이 지저분해. ”

 

“ 시끄러워. 네가 창문 열어놔서 그래. 바람 차갑잖아. ”

 

“ 환기시키는 거야! ”

 

“ 너 저녁 안 먹었지? ”

 

“ 으응... 극장에서 나올 때 토냐가 삶은 달걀 한 알 줘서 먹었어. ”

 

“ 배 안 고프니? ”

 

“ 조금 고파. 근데 막 저녁 차려놓고 먹기는 싫어. ”

 

“ 식탁으로 와. 연어 샌드위치 만들어줄게. ”

 

 

왕재수는 창턱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베르닌의 뒤를 졸졸 따라왔다. 베르닌은 연어 통조림을 땄다. 흑빵에 크림치즈를 바르고 훈제연어를 한 조각 크게 들어내서 얹었다. 왕재수는 좋아하면서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다.

 

 

“ 하나 더 만들어줄까? ”

 

“ 응. ”

 

 

그래서 베르닌은 샌드위치를 두 개 더 만들었다. 한 쪽은 왕재수에게 주고 나머지 한 쪽은 자기가 먹었다. 왕재수는 언제나처럼 천천히 먹었다. 베르닌이 오렌지를 까고 있는데 왕재수가 물었다.

 

 

“ 부모님은? 가셨어? ”

 

“ 어, 응... 아까 버스 타셨으니까... 좀 있으면 기차역 도착하실 거야. 10시 기차거든. ”

 

 

왕재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샌드위치 조각을 한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더니 모두 삼킨 후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베르닌이 까놓은 오렌지를 향해 손을 뻗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 좋겠다, 다닐. ”

 

“ 뭐가? ”

 

“ 그냥. 보기 좋았어. ”

 

“ 뭐가 보기 좋아? ”

 

“ 너희 부모님. 너랑, 엄마아빠랑. 같이 있는 거. ”

 

“ 아... ”

 

 

베르닌은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왕재수에게 오렌지 반쪽을 건네주고 남은 반쪽을 만지작거리면서 잠시 후 물었다.

 

 

“ 너는 그런 기억 없어? 어머니는 레닌그라드에 계시잖아. 아버지는... ”

 

“ 있어. 어릴 때. 좋았어. 같이 시장도 보고 저녁도 먹고 썰매도 타고. 근데 우리 엄마는 요리는 잘 못했어. 너희 어머니 음식이 더 맛있었어. ”

 

“ 그래... 어머니가 끓인 보르쉬 남았는데. 데워다 줄까? ”

 

“ 나중에. 내일. 지금은 배불러. ”

 

“ 그래. 내일 데워줄게. ”

 

 

왕재수는 활짝 웃었다. 보르쉬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었다. 오렌지를 먹으면서 왕재수는 조그맣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럴 것이면 저렇게 우중충한 음악은 틀어놓지 말 것이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베르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왕재수가 부르는 노래를 듣자 기분이 좋아졌으니까.

 

 

 

 

 

 

- FIN -

2015. 12. 6 ~ 12. 27

 

 

 

...

 

 

초반에 나오는 수도원 사과빵은 내가 좋아하는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수도원의 사과빵에서 따왔다. 그 사과빵 얘기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4359

 

..

 

서무 시리즈는 다음편인 38. 문어발과 이쑤시개 편으로 이어진다.. 38편은 훨씬 가벼운 분위기로 썼다. 근데 이건 언제쯤 올릴지..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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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지난주에 이어, 서무의 슬픔 번외편으로 돌아온 등장인물 20문답 두번째.

 

다섯 명의 인터뷰인데 분량 상 두번으로 나누어 올리게 되었다. 지난주는 리자와 알렉산드라. 이번주는 나머지인 투레츠키, 보랴, 일류샤 :) 어쩌다보니 지난주는 여자 이번주는 남자들이네. 물론 토끼, 왕재수, 단추, 지난주 인터뷰대상이었던 리자랑 알렉산드라도 끼어든다~

 

** 이번 편은 지난주의 리자와 알렉산드라 인터뷰를 읽고 보셔야 나머지 애들 얘기가 잘 통한다 : http://tveye.tistory.com/4236

 

** 돌아온 20문답의 문항은 맨처음 번외편이었던 등장인물 20문답의 문항과 동일하다. 지난번 문답(왕재수, 베르닌, 스페호프, 코즐로프, 렐랴)을 먼저 읽으면 더 맥락이 잘 통할 듯.

(베르닌/왕재수 : http://tveye.tistory.com/3492,

스페호프, 코즐로프, 렐랴 : http://tveye.tistory.com/3493)

 

 

 

(이 시리즈는 아래 순서대로 읽기를 권장함~)

 

* <서무의 슬픔> 시리즈에 대해 : http://tveye.tistory.com/3427
* 주요 등장인물 소개 + 시리즈 목차 : http://tveye.tistory.com/3428
* 에피소드 0. 다닐 베르닌의 새로운 임무 : http://tveye.tistory.com/3429
* 에피소드 1. 왕재수, 행동에 나서다 : http://tveye.tistory.com/3432
* 에피소드 2. 당직실의 귀신 : http://tveye.tistory.com/3437
* 에피소드 3. 버찌잼과 초콜릿 쿠키 : http://tveye.tistory.com/3444
* 에피소드 4. 공유지의 배추와 의전의 문제 : http://tveye.tistory.com/3451
* 에피소드 5. 무도회에 간 베르닌 : http://tveye.tistory.com/3458
* 에피소드 6.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 : http://tveye.tistory.com/3466
* 에피소드 7. 보고서의 악몽 : http://tveye.tistory.com/3478
* 에피소드 8. 새해 전야의 만두 소동 : http://tveye.tistory.com/3488
* 에피소드 9. 눈보라와 패딩 코트 : http://tveye.tistory.com/3524
* 에피소드 10. 벨라 등장! : http://tveye.tistory.com/3542
* 에피소드 11. 살구나무 거리에서 온 남자들 : http://tveye.tistory.com/3553
* 에피소드 12. 전설의 서무를 찾아서 : http://tveye.tistory.com/3563
* 에피소드 13. 검은 숲의 온천 요양소 : http://tveye.tistory.com/3580
* 에피소드 14. 한밤중의 침입자 : http://tveye.tistory.com/3599
* 에피소드 15. 우수 공산당원 연수 워크숍을 위해 막내가 준비해야 할 일들 : http://tveye.tistory.com/3615
* 에피소드 16. 짐꾼 베르닌과 빗, 물병, 목걸이의 비법 : http://tveye.tistory.com/3635
* 에피소드 17. 운수 좋은 날 : http://tveye.tistory.com/3661
* 에피소드 18. 메드베지에서 생긴 일, 알렉산드라 : http://tveye.tistory.com/3678
* 에피소드 19. 다닐 베르닌이 하를람피 푸고비체프가 된 사연 : http://tveye.tistory.com/3692
* 에피소드 20. 베르닌, 무대에 데뷔하다! :  http://tveye.tistory.com/3708
* 에피소드 21. 스페호프의 복수 : http://tveye.tistory.com/3726
* 에피소드 22. 흰머리천사날개풀과 파인애플 : http://tveye.tistory.com/3742
* 에피소드 23. 스네고로드 집단농장 : http://tveye.tistory.com/3766
* 에피소드 24. 시계탑 전망대에서 : http://tveye.tistory.com/3785
* 에피소드 25. 천하일미 요리대회(1부) : http://tveye.tistory.com/3800
* 에피소드 25. 천하일미 요리대회(2부) : http://tveye.tistory.com/3813
* 에피소드 26. 베르닌의 옛 여인 : http://tveye.tistory.com/3832
* 에피소드 27. 밀사 베르닌 : http://tveye.tistory.com/3918
* 에피소드 28. 9밀리 마카로프와 모스크바 비밀별장 : http://tveye.tistory.com/3938
* 에피소드 29. 보랴의 생일 파티 : http://tveye.tistory.com/3957
* 에피소드 30. 엘리트 요원 드미트리 베르닌 : http://tveye.tistory.com/3978
* 에피소드 31. 두 명의 베르닌이 금요일 밤에 모이다(1부) : http://tveye.tistory.com/3994
* 에피소드 31. 두 명의 베르닌이 금요일 밤에 모이다(2부) : http://tveye.tistory.com/4013
* 에피소드 32. 왕자님과 호위 기사들 : http://tveye.tistory.com/4033
* 에피소드 33. 아가일 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들의 모험(1부) : http://tveye.tistory.com/4062
* 에피소드 33. 아가일 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들의 모험(2부) : http://tveye.tistory.com/4079
* 에피소드 33-1. 도자기 인형 : http://tveye.tistory.com/4098
* 에피소드 34. 딸기 아가씨들과 자선 바자회 : http://tveye.tistory.com/4140
* 에피소드 35. 4월의 눈보라 : http://tveye.tistory.com/4172
* 에피소드 36. 빨간 열매와 초특급 익스프레스 : http://tveye.tistory.com/4189

 
** 번외편. 등장인물 20문답 : http://tveye.tistory.com/3492, http://tveye.tistory.com/3493

** 번외편. 곱사등이 흑염소와 단추소년 다닐, 절세미인 미셴카(러시아 민담 패러디) : http://tveye.tistory.com/3849

** 번외편. 돌아온 등장인물 20문답(리자, 알렉산드라) : http://tveye.tistory.com/4236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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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무의 슬픔 series 번외편>

 

 

 

번외편 : 돌아온 등장인물 20문답 

#02. 투레츠키 & 보랴 & 일류샤
 

 

 

 

 

<그럼 그 20문답의 문항들은...>

 

 

20 Questions

 

 

 

이름 :

현직 :

경력 :

 

1. 별자리

2. 나이

3. 신장과 체중

4. 머리색 + 헤어스타일

5. 눈 색깔

6. 당신의 패션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템은?

7. 가장 좋아하는 음식

8. 당신의 시그니처 칼라는?

9. 취미

10. 데이트 상대에게서 제일 먼저 보는 것

11. ..와 ..가 물에 빠진다면 누구를 먼저 구하겠는가.

12. 당신의 매력 포인트는?

13. 가브릴로프에서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14. 좋아하는 음악/가수/작곡가 등등

15. 어렸을 적 장래희망

16. 영화에 출연하게 된다면 맡고 싶은 역할

17.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것

18. 지금 하고 싶은 것

19. 지금 입고 있는 것

20. 작가에게 한 마디

 

 

 

<돌아온 20문답 등장인물>

 

 

인터뷰어 : 작가(토끼)

인터뷰 대상 : 리자, 알렉산드라, 바냐 투레츠키, 보랴, 일류샤

특별 출연 : 왕재수, 베르닌

 

 

 

 

 

 

 

 

 

  바냐 투레츠키 

 

 

 

 

이름 : 이반 투레츠키

~ 바냐는 이반의 애칭 ~

 

 

현직 : 물류 유통업계 종사 중

 

 

경력

- 가브릴로프 KGB 감시분석부 서무(이른바 전설의 서무~)

- 일간지 ‘가브릴로프 젊은이들의 소리’ 편집국 기자(3개월 만에 잘림)

- 현재 대내외 물류 유통 비즈니스 사무실 운영 중

* 그 외 여러 가지 알 수 없는 지하 시장 관련 직종에 발을 뻗고 있으나 아무도 그 실체를 알아낼 수 없음 *

 

 

 

1. 별자리 : 사자자리

 

 

2. 나이 : 28세

 

 

3. 신장과 체중 : 168센티미터, 60킬로

 

 

4. 머리색 + 헤어스타일

: 붉은 기 도는 금발. 평소에는 기름이나 무스를 발라 올백으로 넘기고 있다. 필요시 머리를 마구 흐트러뜨려 와일드한 매력을 연출한다.

 

 

5. 눈 색깔 : 에메랄드빛 초록색. 그러나 평소에는 안경 속에 잘 감추고 있다.

 

 

6. 당신의 패션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템은?

 

투레츠키 : 나는야 자유로운 영혼~ 프리 보헤미안~ 알록달록 선명한 색채를 즐기지. 특히 노란색, 형광색, 빨간색 등등~ 그리고 재킷에는 항상 코스모폴리탄을 상징하는 각국의 배지들을 달아서 나만의 스타일을 확립한다네.

 

 

7. 가장 좋아하는 음식

 

그야 보드카! 청어 통조림과는 찰떡궁합~ 나랑 친구 먹고 싶다면 보드카와 청어를 대령하시오~

 

 

8. 당신의 시그니처 칼라는?

 

나만의 시그니처 칼라라면 선명한 골드랄까~~ 황금~ 옐로우! 내 사무실은 비비드 레드~ 내 빨간 소파 기억나지?

 

 

9. 취미

 

신문물 체험하러 다니는 거. 시장조사. 청어 곁들여 보드카 마시고 노는 거. 예쁜 여자애들이랑 노는 거. 사무실에 예쁜 남자애 오면 눈요기하는 거. 그 외 많지만 굳이 여기서 얘기할 것까지야~

 

 

10. 데이트 상대에게서 제일 먼저 보는 것

 

투레츠키 : 예뻐야지~~ 난 예쁘면 장땡이야. 여자고 남자고~ 그래서 미셴카가 좋아~ 오우 프리티~ 어찌나 이쁘고 귀여운지~ 다냐가 걔한테 뿅 가지만 않았어도 내가 확 덮치는 건데 아쉬워 죽겠네. 마이 프렌드가 계속 목석같이 굴면 내 맘이 좀 바뀔지도~

 

 

베르닌 : 야! 너 걔 안 건드린다고 했잖아!!!!!

 

 

투레츠키 : 근데 너는 어차피 계속 목석같이 굴 거잖아~ 우리 프리티는 그냥 놔두기 너무 아깝잖아. 그러니까 나라도~

 

 

왕재수 : 바냐 너 내 취향 아니라고 했잖아 -_-

 

 

베르닌 : 그래! 쟤는 우락부락하고 험상궂은 아저씨 스타일을 좋아해! 바이올린 아저씨 비롯... 쟨 보랴도 멋있다고 했어! 너처럼 비리비리하고 얍삽한 스타일은 싫어한다고!

 

 

투레츠키 : 나 침대에서 끝내주는데~ 쟤가 몰라서 그래. 우리 이쁜이 속는 셈치고 한번 해보면 엄청 좋을 거야~

 

 

왕재수 : 으응... 그래? 너 잘해? (조금 혹하는 중)

 

 

베르닌 : (왕재수 낚아채서 지굴리에 태우는 중) 야!!!!!!!!!!!!!!! 너 앞으로 저 자식한테 절대 가지 마! 금지! 금지!!! 접근 금지!!!!!!!!!!!!!!!!!!!!!!!!! (아, 왜 이렇게 화가 나지 -_-)

 

 

 

11. 보랴와 왕재수와 베르닌이 물에 빠진다면 누구를 먼저 구하겠는가.

 

투레츠키 : 꼭 누굴 구해야 되나? 옷도 젖고 신발도 젖고... 셋 다 수영 잘 하겠지 뭐. 피오네르 때 우리 다 수영 배웠잖아. 원래 자기 목숨 자기가 건사하는 거야~

 

토끼 : 그래도 하나만 골라보렴. 하나 구해주면 10루블 줄게.

 

투레츠키 : 겨우 10루블이라니! 세탁비 10루블, 드라이비 10루블, 찬물 들어가느라 뭉친 내 근육 마사지 비용 20루블~ 합쳐서 50루블 준다면 몰라도!

 

토끼 : -_- 됐어! 구하지 마! 너 혼자 잘 먹고 잘 살아! 물어본 내가 바보지.

 

 

 

12. 당신의 매력 포인트는?

 

투레츠키 : 난 존재 자체가 매력인데~~ 일단 머리가 좋지~ 안경 벗으면 엄청 잘생겼고~ 내가 왜 안경을 끼겠어. 내 미모가 냉철한 비즈니스를 방해할까봐~

 

베르닌 : 저 녀석의 매력이란... 뭔지 모르겠는데 하여튼 계속 떠드는 거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말려든다는 거야 ㅠㅠ 사기꾼...

 

알렉산드라 : 다냐, 너 왜 그렇게 바냐를 헐뜯니? 바냐 엄청 잘생겼어. 꽃미남이야. 여자한테도 잘해주고. 매력 만점이야.

 

보랴 :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알렉산드라를 바라보며) 자기 있잖아, 바냐가 내 동업자긴 한데... 웬만하면 저 자식 옆엔 가지 말았으면 ㅠㅠ

 

 

 

13. 가브릴로프에서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내 사무실~ 내 침실~ 그 외 비밀 장소들 몇 군데 있는데 안 가르쳐줌!

 

 

 

14. 좋아하는 음악/가수/작곡가 등등

 

 

투레츠키 : 나는 양키들 대중가요가 좋아~ 나나나나나나나~ 헤이 주드~

 

왕재수 : 비틀즈는 영국인이야 -_- 양키 아니야.

 

투레츠키 : 오우 프리티, 똑똑하기도 하지~ 얼굴도 이쁜데 영어도 잘하고 불어도 잘하고 똑똑하고~ 나랑 동업하자~ 수익은 8:2로 해줄게.

 

왕재수 : 야! 그런 불공정 계약이 어딨어! 난 항상 9:1로 한단 말이야! 내가 9, 네가 1!

 

투레츠키 : 아유, 우리 이쁜이~ 계산도 빠르고 정말 어디 하나 버릴 데가 없다니까~ 그러면 7:3으로 해줄게 나랑 동업하자~~ 콜?

 

 

왕재수 : 싫어, 안 해! 나는 수퍼스타란 말이야! 너랑 급이 달라! 내가 9! 그리고 단추는 계속 내 집사로 써야 하니까 네 몫인 1에서 단추한테도 절반 떼어줘!

 

 

투레츠키 : ... 오우 프리티, 강적인데!!!

 

 

 

15. 어렸을 적 장래희망

 

금광 부자, 석유 부자~

 

 

 

16. 영화에 출연하게 된다면 맡고 싶은 역할

 

흠, 나는 몬테크리스토 백작. 근데 앞에서 감옥 가는 거랑 나중에 복수하는 거 다 빼고~ 섬에서 보물 찾는 거랑 그걸로 예쁜 여자 끼고 흥청망청 노는 것만 나왔으면 좋겠어~

 

 

 

17.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것

자유무역 탄압. KGB. 스페호프!

 

 

18. 지금 하고 싶은 것

보드카 한 잔~~

 

 

19. 지금 입고 있는 것

배지 주렁주렁 달린 노란 재킷이랑 검정색 인조가죽 바지, 빨간 부츠~

 

 

20. 작가에게 한 마디

 

투레츠키 : 알렉산드라 분명히 전생에선 나랑 결혼했었는데 현생에선 왜 보랴한테 뺏긴 거야? 그러면 리자나 렐랴랑 연결시켜줘!

 

토끼 : 그건 번외편이니까 꼭 전생이라고 할 수는 없단 말이야!

 

투레츠키 : 에이 그러면 안 되지. 토끼 너 장사를 그렇게 하냐? 알렉산드라 뺏아가서 나한테 마이너스 만들었으니까 그러면 우리 이쁜이랑 놀게 해줘~ 우리 프리티랑 고우 투 마이 베드~ 투게더~ 그러면 손익 계산 얼추 맞을 거 같아.

 

토끼 : 어, 글쎄... 나는 뭐 너랑 미셴카랑 밤을 불태우는 거 크게 반대 안 하는데... 개인적으론 너랑 미셴카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거든. 근데 우리 단추가 쌍심지 켜고 반대하잖니...

 

베르닌 : 저 토끼 뭐가 어쩌고 어째!!! 역시 크레믈린 사촌이었어!

 

 

 

 

 

 

 

  보랴 

 

 

 

 

이름 : 보리스 도브로류보프

~ 모두에게 그냥 보랴로 통함 ~

 

 

현직 : 구시가지의 식당 ‘스베촉’ 주방장. 부업으로 투레츠키의 밀수업을 돕고 있음

 

 

경력

- 공사장 인부. 벌목공 등 현장 노동자 경험 다수

- 접시닦이 등 식당 허드렛일을 하며 입에 풀칠을 하다가 종교박물관(=가브릴로프 수도원) 식당에 들어가 아말리야 루카셴코를 스승으로 모시고 본격 요리 수업을 받았음

- 현재 가브릴로프에서 손꼽히는 맛집인 스베촉의 주방장~

 

 

 

1. 별자리 : 염소자리

 

 

2. 나이 : 40세

 

 

3. 신장과 체중 : 185센티미터, 90킬로

 

 

4. 머리색 + 헤어스타일

: 연한 갈색, 그냥 짧게 자르고 다닌다. 요리할 때도 편하고.

 

 

5. 눈 색깔 : 회갈색.

 

 

6. 당신의 패션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템은?

 

그런 거 없고 그냥 군복 조끼를 즐겨 입음. 주머니가 커서 이것저것 많이 들어감. 주방에서는 앞치마.

 

알렉산드라 : 어머 자기... 내가 그 조끼 빨았는데 뭘 잘못했는지 확 줄어버렸어... 어떡하지?

 

보랴 : 어, 그래? 할 수 없지 뭐. 그거 어차피 오래 돼서 낡았으니까 버릴 때 됐나보네.

 

알렉산드라 : 자기, 미안해~ 그래서 내가 새 셔츠랑 주머니 달린 이쁜 조끼 사왔어. 그거 입어~

 

보랴 : 내 사랑~ 예쁜 짓만 골라서 하네~~ 와락~

 

알렉산드라 : (휴, 다행이다... 그 군복 조끼 너무 보기 싫어서 일부러 줄어들라고 뜨거운 물에 집어넣고 빨았는데~ 이제 버려야지!)

 

 

 

7. 가장 좋아하는 음식

 

보랴 : 나도 보드카랑 청어 통조림~

 

베르닌 : 으잉, 당신은 맛집 주방장인데! 그렇게 요리를 잘하면서 어째서 ㅠㅠ

 

보랴 : 그래도 보드카 마실 때 청어를 맨손으로 퍼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

 

왕재수 : 아이 터프해~ 보랴 멋있어~ 청어도 맨손으로 먹고~

 

베르닌 : 너 저번에 내가 청어 통조림 따다가 손에 기름 좀 묻으니까 비린내 난다고 난리쳤잖아! 근데 왜 보랴는 멋있냐!

 

왕재수 : 그야 보랴는 우락부락하고 멋있는 아저씨니까~~

 

베르닌 : 그게 뭐야 ㅠㅠ

 

 

 

8. 당신의 시그니처 칼라는?

시그니처 칼라가 뭐지? 나 그런 거 몰라.

 

 

9. 취미

맛있는 음식 만드는 거. 투레츠키랑 지하시장 다니는 거(자세히 얘기하면 안 된다는군)

 

 

 

10. 데이트 상대에게서 제일 먼저 보는 것

상냥한 마음씨와 밝은 미소~ 알렉산드라도 웃는 게 예뻤지!!!

 

 

 

11. 투레츠키와 알렉산드라가 물에 빠진다면 누구를 먼저 구하겠는가.

 

보랴 : 말이라고!!! 내 사랑 사셴카~~

 

토끼 : 그러면 번외로... 단추랑 미셴카가 빠지면?

 

보랴 : 당연히 애기를 구해야지!!!

 

토끼 : 와, 투레츠키랑 단추 섭섭해 하겠다...

 

보랴 : 쉿, 다닐한테는 비밀이야! 바냐 그놈이야 지도 어차피 나 안 구하고 지 살길만 찾을 테니 상관없는데... 다닐은 상처 입을지도...

 

베르닌 : 다 들었어요 -_- 다들 나 안 구한대요. 나 구해준다는 건 미셴카 밖에 없어요. 미우나 고우나 나 생각해주는 건 그놈뿐인가 봐요.

 

왕재수 : 너 아까 내가 한 말 안 들었냐? 80킬로 무거워서 맘 바꿨다니까.

 

 

 

12. 당신의 매력 포인트는?

 

보랴 : 그런 거 모름! 사내가 무슨 매력 포인트가 있어!

 

알렉산드라 : 보랴는 턱수염이 매력이에요~ 그리고 가슴이 넓어요~

 

보랴 : 내 사랑~ 와락~

 

베르닌 : -_- 바이올린 아저씨 없으니까 좀 나으려니 했는데 저 닭살 행각은 보랴가 더하네 ㅠㅠ

 

왕재수 : 힝, 로만도 가슴 넓은데... 손도 두툼하고!!! 보고 싶어 엉엉... 왜 오늘 로만은 여기 안 온 거야... 엉엉, 나도 알렉산드라처럼 예쁨 받고 싶어!

 

투레츠키 : 오우 프리티, 원한다면 언제든지 내가 예뻐해 주마~

 

왕재수 : (갈등 중) 으응...

 

베르닌 : 악!!!! 안 돼!!!! 접근 금지!!!!!!!!! 금지!!!!!!!!!

 

왕재수 : 칫. 지는 나한테 아무 것도 안 해주면서 방해만 하고... 바보 멍충이.

 

 

 

13. 가브릴로프에서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수도원 뒤뜰~ 가끔 아말리야와 신부님 만나서 약초도 뜯고 허브도 뜯고!

 

 

 

14. 좋아하는 음악/가수/작곡가 등등

 

보랴 : 이오시프 코브존. 백학 좋아~

 

왕재수 : 나 백학 잘 부르는데! 우우우우우~ 우우우우우~

 

보랴 : 아이고 우리 애기 노래도 잘 부르는구나. 못하는 게 뭐니. 로만은 복 터졌지~

 

 

 

15. 어렸을 적 장래희망

사랑하는 여자랑 일찍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행복한 가정 꾸리며 사는 거... 근데 인생이 뜻대로 흘러가는 건 아니더라고. 그래도 이제 또 사랑하는 여자를 만났으니까~

 

 

 

16. 영화에 출연하게 된다면 맡고 싶은 역할

 

보랴 : 나 말이야, 이거 비밀인데... 사실 옛날에 영화 출연 한 번 했었어. 벌목공 할 땐데 무슨 선전 영화 찍는다고 문화국에서 와서 쭉 훑어보더니 날 캐스팅했거든. 5개년 막바지에 벌목 할당량을 다 못 채운 상황에서 폭설이 왔는데 사냥꾼 덫에 걸려 다리를 다쳤으면도 마지막 할당된 나무를 다 베고 결국 다리 절단한 노동 영웅 얘기였어. 그거 찍는데 무지 힘들었어. 대사도 엄청 많았는데 도저히 외울 수가 없어서 나중에 다른 놈이 더빙했어. 근데 출연료도 안 주고 보드카 세 병으로 때우고 진짜 나쁜 놈들이었어! 그 보드카는 동료 벌목공들이랑 30분도 안 돼서 다 해치우고 -_-

 

베르닌 : 앗, 나 그 영화 봤어요! 중학교 때 피오네르 캠프에서 다 같이 둘러앉아 보고 감상문까지 써 냈는데! 그게 당신이란 말이에요? 우와, 진짜 연기 못 한다, 다리에 빨간 잉크 칠한 거 너무 티 난다 하면서 애들끼리 엄청 비웃었는데!!!

 

보랴 : 야, 그거 빨간 잉크 아니었어! 잉크 다 떨어졌다고 인스턴트 보르쉬 바른 거였어!

 

리자 : 어머, 그 영화 나도 캠프 가서 봤는데! 그거 가브릴로프 소년단 필수 감상 영화에요! 어머나, 그게 보랴였다니~ 완전 스타네! 사인해 줘요~

 

보랴 : 그 필름 우리 알렉산드라가 보기 전에 태워버려야 되는데 ㅠㅠ

 

투레츠키 : 보랴~ 그깟 거 나한테 맡겨. 일단 문화국 담당자 매수하는데 20루블, 필름 보관소 열쇠 복사에 10루블, 필름 태우는데 20루블, 범법행위 수행 위험수당 50루블, 합이 100루블인데 우린 동업자니까 특별히 할인해서 80루블에 해줄게~

 

 

 

17.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것

약자를 괴롭히는 것. 자유무역 탄압(이건 바냐가 이렇게 말하라 해서)

 

 

 

18. 지금 하고 싶은 것

내 사랑 사셴카랑 둘이 집에 가고 싶네~ 맛있는 거 만들어주고 싶네~

 

 

19. 지금 입고 있는 것

낡은 셔츠와 면바지, 앞치마.

 

 

20. 작가에게 한 마디

 

보랴 : 이 토끼 나쁜 토끼! 나 왜 이렇게 과거 있는 남자로 만들어놨니 ㅠㅠ 왜 나는 심지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십대 때 사고를 쳐서 애는 만들고... 여자는 왜 도망가고 애기는 왜 일찍 죽게 만드니 ㅠㅠ 알렉산드라랑 연결시켜줘서 그나마 너 용서하는 거야! 계속 이랬으면 너는 즉시 토끼찜!!!!

 

토끼 : 그래서 전생에선 리자랑 연결시켜주고 현생에선 알렉산드라랑 연결시켜 줬잖아! 이 시리즈에서 지금 여자랑 커플된 거 너 하나밖에 없는 거 알아 몰라! 너 복 터졌어!

 

보랴 : 토끼 너 솔직히 말해, 맨 처음에 나 등장시켰을 땐 우리 애기 미셴카랑 그렇고 그런 사이로 만들려고 했었지!!!

 

토끼 : 어, 으음... 네가 그 녀석 이상형에 가깝긴 하지 ㅋㅋㅋ

 

왕재수 : 토끼 너무해... 나 사실 보랴 첨 나왔을 때 엄청 기대했었는데... 보랴가 나한테 부야베스도 만들어주고... 요리책도 주고... 근데 왜 갑자기 보랴는 아들 잃은 비운의 아빠가 되고... 졸지에 나는 아들 닮은 귀여운 애기로 변해버리고 ㅠㅠ 잉잉...

 

토끼 : 야, 넌 로만 있잖아!!! 그 아저씨 하나로 좀 만족하면 안 되니!!!

 

왕재수 : 다다익선!!!!!!!

 

 

 

 

 

 

★  일류샤 

 

 

 

 

 

이름 : 일류샤

 

토끼 : 너 그거 본명 맞아?

 

일류샤 : 캐묻지 마라, 일개 짐승아! 다친다!

 

토끼 : 감히 나에게 일개 짐승이라니!!! 내가 너 만들었는데!!

 

일류샤 : 알게 뭐야, 미물!

 

 

 

현직 : 게르만 스비제르스키 수하의 특수요원

 

 

경력

- 모스크바 국립대 법학과 중퇴

- 학창시절 스비제르스키에게 전격 발탁된 후 혹독한 훈련 끝에 최고의 특수요원이 됨!

- 필요시 수시로 KGB 비밀임무 수행 중

 

 

일류샤 : 야, 이런 거 다 기밀인데 이렇게 막 공개해도 되냐! 토끼 너 후환이 두렵지도 않냐! 우리 보스가 너 쥐도 새도 모르게 처치하면!

 

토끼 : 안 두려워~ 크레믈린 아저씨도 내가 만들었어~ 사람들이 나보고 크레믈린 사촌이래 -_- 그러니까 너도 나한테 잘 보이란 말이야! 짐승이 어쩌고 미물이 어쩌고 하지 말고!

 

일류샤 : 엥? 진짜로 네가 우리 만들었어? 이 시리즈 네가 쓰는 거야?

 

토끼 : 그래!

 

일류샤 : 그러면 아까 맨 처음에 나왔던 애 있잖아, 금발에 이쁘장한 여자애, 막 나한테 틱틱대던 애. 걔 모스크바 본부로 발령 나게 해주면 안 돼?

 

토끼 : 할 수는 있는데... 독자들이 그 반대를 원해. 너를 가브릴로프로 보내래.

 

일류샤 : 윽, 싫어! 시골!!!

 

 

 

1. 별자리 : 천칭자리

 

 

2. 나이 : 23세

 

 

3. 신장과 체중 : 172센티미터, 64킬로

 

일류샤 : 나 겉으로 보기엔 조그맣고 호리호리해 보여도 전부 근육임!!

 

베르닌 : 맞아... 저 자식 장난 아냐... 저 자식한테 목 졸리고 팔 꺾여서 죽을 뻔 했어 ㅠㅠ 미셴카보다 허벅지가 더 딴딴해 ㅠㅠ

 

왕재수 : 야! 왕년엔 내 허벅지가 더 두툼했어! 지금은 춤 안 추니까 그런 거야! 어디 저런 앞잡이 개자식이랑 날 비교하냐!

 

일류샤 : 흠, 미셰츠카 너 내 허벅지 본 적 없잖아. 나랑 있을 땐 맨날 약에 취해서 정신 못 차렸잖아. 뭐 굳이 보고 싶다면 사양하진 않겠어~

 

왕재수 : (부르르....) 저 자식 가만 안 둘 거야! 다닐, 뱀 껍질 좀 주워와! 많이많이 주워와!

 

 

 

4. 머리색 + 헤어스타일

: 짙은 금발 곱슬머리.

 

 

5. 눈 색깔 : 갈색.

 

 

 

6. 당신의 패션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템은?

 

일류샤 : 난 프로페셔널 요원이라 그런 거 없어. 상황에 필요한 대로 맞춰 입어.

 

토끼 : 근데 자꾸 독자들이 너한테 트렌치 코트 입히래. 안주머니에서 쌍권총 꺼내래.

 

일류샤 : 흠흠, 다들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트렌치 코트 갖고 싶다... 난 멋있으니까 잘 어울리겠지. 보스한테 보너스 땡겨 달라 해서 한 벌 장만해야겠다~ 쌍권총 그까짓 거야 껌이지~

 

토끼 : 앗, 너 트렌치 코트 없어?

 

베르닌 : 저 자식 학부 중퇴 애송이인데 무슨 코트가 있겠냐!

 

왕재수 : 맞아! 앞잡이 망나니 주제에 패션이 뭔지나 알겠어? 저놈이 아르마니가 뭔지 버버리가 뭔지 알겠냐고!

 

베르닌 : 그래그래! 난 알아! 아르마나랑 비비리 알아! 에르미도 알아!

 

일류샤 : 이것들이... 쌍권총 어떻게 쏘는지 보여줄까?

 

 

 

7. 가장 좋아하는 음식

: 가리는 거 없어. 다 잘 먹어. 먹는 거 별로 신경 안 써.

 

 

 

8. 당신의 시그니처 칼라는?

: 프로페셔널이라 상황에 따라 맞춰 입는다고 했잖아. 색깔도 마찬가지야. 시그니처 칼라 따윌 만드는 순간 지는 거야!

 

 

9. 취미

: 화학 실험. 사격 연습. 삼보 대련.

 

왕재수 : 화학 실험이라고 포장하지 마! 마약 조제하는 거잖아!

 

일류샤 : 조국과 당을 위한 임무 수행에 필요한 약물 조제 실험이야!

 

왕재수 : 나한테 주사 놓는 게 어째서 조국과 당을 위한 임무 수행인데! 막 나한테 주사 놓고 약 먹이고! 크레믈린 아저씨한테 데려다 주고! 못된 짓만 하고! 너 단추한테도 주사 놨다며! 으르르! 앞잡이! 망나니!

 

일류샤 : 자꾸 묻지 마. 나도 보스가 시키는 대로 하는 거야! 나 비정규직이야!

 

 

 

10. 데이트 상대에게서 제일 먼저 보는 것

 

일류샤 : 기왕이면 예쁜 애들이 좋은 건 당연지사 아니야? 근데 사실 별로 안 가려. 나 좋다고 와서 안기는 애들은 한번 놀아주면 되고, 내 맘에 드는 예쁜 애들은 내 걸로 만들면 되고~

 

왕재수 : 예쁜 애들은 눈이 없냐!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주게!

 

일류샤 : 이거 왜 이래, 나 인기 많아!!!

 

왕재수 : 난 너 싫어! 난 우주 최강 꽃미남인데 너 싫어!!!

 

일류샤 : 누가 너 좋대! 나도 너 싫어! 재수 없어! 기집애 같은 게 우리 보스한테 꼬리쳐서 보스 마음이나 사로잡고!!! 짜증나! 난 죽어라 노력하고 피땀 흘려 일해서 겨우 보스 오른팔이 됐는데 너는 아무 노력도 안 하고 꼬리만 살랑살랑 쳐서 그분 무릎에 올라앉고!! 재수 없어!

 

왕재수 : 근데 왜 맨날 나 보면 예쁜 미셰츠카라고 해!!!!

 

일류샤 : 으응? 어떻게 들었지? 너 약에 취해 있지 않았냐?

 

왕재수 : 단추한테도 그랬잖아!!!!! 예쁜 미셰츠카한테 안부 전해달라고! 너 나보고 예쁘다고 하지 마! 소름 돋아!!!

 

일류샤 : 그건 뭐... 재수 없어도 예쁜 건 예쁜 거니까. 아까 그 여자애도 예뻤는데... 이쁜 것들은 왜 이렇게 싸가지가 없는지.

 

 

 

11. 크레믈린 아저씨와 왕재수가 물에 빠진다면 누구를 먼저 구하겠는가.

 

일류샤 : 이딴 걸 질문이라고... 당연히 우리 보스!

 

토끼 : 근데 그 인간은 미셴카 안고 나오면서 널 디딤돌처럼 짓밟을 거 같아 ㅠㅠ

 

일류샤 : 시끄러워!!!

 

 

 

12. 당신의 매력 포인트는?

 

일류샤 : 뭐니뭐니 해도 나의 동안! 동그랗고 천진난만한 갈색 눈동자와 살짝 들려올라간 코, 뺨의 홍조와 해맑은 미소!!! 상대를 한방에 무장 해제시키지! 이것이야말로 나의 무기 중 하나!

 

베르닌 : 재수 없어 -_- 완전 속았어. 햄 오이 샌드위치나 먹이고... 우씨...

 

왕재수 : 쳇, 너보다 내가 더 동안이거든!!!!

 

일류샤 : 그래봤자 실제 나이도 내가 너보다 어리거든!!!!

 

 

 

13. 가브릴로프에서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일류샤 : 나 인터뷰 때문에 오늘 처음 왔어. 시골이네. 후져.

 

 

 

14. 좋아하는 음악/가수/작곡가 등등

블라지미르 브이소츠키.

 

 

왕재수 : 앞잡이 주제에 감히 브이소츠키를 좋아하다니! 꺼져!

 

일류샤 : 모스크바 대학생들은 다 브이소츠키 좋아해.

 

베르닌 : 야! 너 중퇴했잖아! 사칭하지 마!!! 우리 학교 이름 더럽히지 맛!!

 

일류샤 : 왜 이러십니까, 선배님. 우리가 학연지연은 또 끈끈하지 않습니까. 모스크바! 법학과!

 

베르닌 : 너 같은 후배 둔 적 없어어어어!!!!!

 

왕재수 : 나쁜 자식, 가만 안 둘 거야! 나 괴롭히고 주사 놔서 크레믈린 아저씨한테 맨날 상납하고... 다닐 속여서 패고! 게다가 뭐? 브이소츠키님을 감히 좋아한다고? 야! 개! 고양이! 다 이리 와! 뱀 껍질 물어와! 바퀴벌레 곱등이 물어와! 많이많이 물어와!

 

 

(그러자 뜨보록과 검정고양이 미셴카 찬조 출연, 많이많이 물어옴)

 

 

왕재수 : 으악, 누가 나한테 가져오래! 저놈한테 풀라고 했잖아! 으아악, 다닐! 다니이이일!!! 멍멍이랑 야옹이가 뱀 껍질이랑 바퀴벌레랑 곱등이 물어왔어 으앙... 빨랑 치워줘... 엉엉...

 

 

일류샤 : 저 녀석은 왜 남의 인터뷰에 끼어들어서 지 혼자 뿌르르 성질내고 가축들 부르고 뱀 껍질 벌레 시체 갖다놓고 혼자 울고불고 하는 거야, 귀엽게.

 

 

 

15. 어렸을 적 장래희망

우주비행사

 

 

왕재수 : 악! 분명히 내가 예전 인터뷰 때 내 장래희망이 우주비행사라고 했었잖아! 저 자식 내 인터뷰 다 베꼈어! 아니면 스토커가 분명해!

 

일류샤 : 웬 뚱딴지같은 소리야! 소련 남자애들치고 왕년에 우주비행사 안 돼보고 싶었던 놈이 어딨냐! 가가린!!!

 

베르닌 : 나! 난 싫었어! 로켓 떨어지면 어떡해! 우주비행사 되기 싫었어! 그렇게 위험한 짓 뭐하러 해! 우주가 밥 먹여주냐!

 

일류샤, 왕재수 : 저런 꿈도 희망도 없는 유물론자 같으니!!! 바보 멍충이!

 

베르닌 : (충격 받은 단추눈으로 왕재수를 쳐다보며) 너 지금 저놈이랑 의기투합해서 나 욕하는 거야?

 

왕재수 : 엥, 어쩌다 보니... 하여튼 바보 멍충이!!!!

 

 

 

16. 영화에 출연하게 된다면 맡고 싶은 역할

 

나 로맨틱 코미디 같은 거 나오면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아? 동안에 해맑은 미소에~

 

 

베르닌 : 스탈린 앞잡이 비밀경찰 뭐 그런 거나 해! 사람 막 패고 죽이고!

 

일류샤 : 흠... 너 잊고 있는 모양인데, 스탈린 앞잡이 비밀경찰이 지금의 KGB야. 바로 너! 나야 비정규직이고 KGB 쪽이야 임시 투입될 때만 일하지만 넌 공채 정규직이잖아. 앞잡이 중의 앞잡이는 너지 내가 아니란다.

 

베르닌 : 난 앞잡이 아니야! 난 서무란 말이야!

 

왕재수 : 그래! 얜 앞잡이 아니야! 내 허드렛일 해주는 집사야!!!!

 

베르닌 : 야, 그건 아니고 ㅠㅠ 자꾸 대놓고 그렇게 말하지 말란 말이야!

 

 

 

17.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것

멍청하게 굴어서 임무 망치는 놈들

 

 

18. 지금 하고 싶은 것

몸이 근질근질한데 총이나 좀 쏘고 올까...

 

 

 

19. 지금 입고 있는 것

체크무늬 셔츠와 청바지. 가브릴로프 대학생 코스프레 중.

 

 

20. 작가에게 한 마디

 

일류샤 : 야, 토끼! 나 원래 좀 멋있는 캐릭터 아니었어? 왜 댓글에선 빵집 점원에 곰 인형한테 수모 당하고 눈물짓는 바보에 햄 오이 샌드위치만 죽어라 만드는 노동자가 된 거야? 그것도 모자라서 왜 저 금발 여자애는 내가 이렇게 친절하게 해줬는데 막 틱틱대는 거야? 미셰츠카도 평소엔 이 정도로 싸가지 없게 안 굴었는데! 꽤 귀여웠는데 왜 지금은 이 모양으로 재수 없냐고!

 

 

왕재수 : 네가 말하는 ‘평소’라는 건! 나한테 주사를 놓거나 약을 먹여서 맹하게 만들어놓은 다음에 크레믈린 아저씨한테 상납하는 때니까 그렇지!!!!! 어휴, 주사만 안 놨어도 너 그 자리에서 내가 확 모가지 비틀었어!

 

 

일류샤 : 나 프로페셔널 요원인데.

 

 

왕재수 : 그게 뭐! 나도 조금 할 줄 알아!

 

 

일류샤 : (호기심 폭발) 뭘 할 줄 아는데?

 

 

왕재수 : 발로 차기! 물어뜯기! 머리 패서 기절시키기! 지난번에 시계탑에 불났을 때 가릭이 막 들어가려 해서 내가 한 방에 기절시켰어!

 

 

일류샤 : 아유 귀여워. 아기가 앙탈부리는 것 같겠구나. 어디 한번 지금 해 보렴~

 

 

 

(왕재수, 일류샤에게 달려든다. 머리를 패려다 팔이 꺾여 제압당한다. 발로 차려다 베어허그를 당해 꼼짝도 못 한다. 물어뜯으려다 도리어 뽀뽀로 원천봉쇄당한다)

 

 

 

왕재수 : 으악!!! 다닐, 이 자식 혼 좀 내줘 엉엉... 으앙... 앙앙...

 

 

베르닌 : 나도 못해 ㅠㅠ 나 저번에 저놈한테 엄청 두들겨 맞았어. 너도 그냥 가만히 있어, 괜히 벌집 쑤시지 말고.

 

 

왕재수 : 으앙 엉엉 앙앙...

 

 

리자 : 아휴 왜 이렇게 소란이야! 어머, 너 뭐하는 거니! 꺅 망측해라! 꽃돌이 감독님을 뒤에서 안고 뽀뽀까지! 이 시리즈 나오는 남자들은 왜 다 이 모양이야 흐흑... 다냐도 꽃돌이 감독님한테 폭 빠져 있고... 저 꼬마도 아까 조금살짝 나 좋아하는 기색 보이더니만 지금 보니까 꽃돌이 감독님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 흐흑... 엉엉... 다냐가 나한테 마음 줄 기색이 없어서 그냥 저 꼬맹이한테 햄 오이 샌드위치나 만들어 달랠까 하고 다시 왔더니만... 엉엉... 이 시리즈 싫어 흐흑..

 

 

일류샤 : (화들짝 놀라 왕재수를 밀치며 리자에게 감) 야! 왜 울어! 햄 오이 샌드위치 만들어주면 되잖아! 이리 와!

 

 

리자 : 저리 가! 다 미워! 흑흑... 역시 난 쿠마에게 가야겠어 엉엉... 헝겊눈 곰팅이랑 사귈 거야, 삐뚤어지고 말겠어!!!

 

 

토끼 : 리자야, 쿠마는 관심 없대 ㅠㅠ 쿠마는 딸기 케익하고 결혼할 거래.

 

 

 

쿠마와 딸기케익 둘의 사랑 영원히~~

 

 

 

 

이것으로 돌아온 20문답, 끝~~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가져가시거나 복제, 인용, 도용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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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서무의 슬픔 시리즈

  돌아온 등장인물 20문답 

 

 

 

 

 

 

<돌아온 20문답을 시작하기 전에>

 

 

연초에 서무 시리즈를 연재하기 시작한 후 2월 쯤 번외편으로 등장인물 20문답을 올린 적이 있다. 그때는 에피소드가 10여개 남짓이던 때라서 문답에 참여했던 인물들은 그야말로 주요 캐릭터인 베르닌, 왕재수, 스페호프(음... 스페호프의 문답은 문답이라고 하기 좀 그렇지만), 코즐로프, 렐랴 다섯 명이었다.

 

서무 시리즈를 작년 가을부터 썼으니 이제 1년 정도 됐는데 그동안 본편은 하나도 못 쓰고 이 시리즈만 무럭무럭 새끼를 쳐서 어느덧 36편까지 전개되었다. 0편부터 시작했으니 본 에피소드는 37개, 그리고 번외편 20문답과 민담 패러디, 우수한 단추 드미트리 베르닌 4부작에서 파생된 33-1편까지 세 편이 더 있으니 40개나 되는 셈이다. 많이도 썼네. 본편은 언제 쓰지 ㅠㅠ 아무래도 일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 보니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풍자도 하고 짜증도 내고 그냥 웃기도 하고 싶으니 서무 에피소드는 잘 써지나보다.

 

더불어 에피소드들이 쌓여가다 보니 등장인물들에게도 정이 들기도 했고. 아아, 분명 다닐 베르닌은 본편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에 나오는 인물 같은 성격에 미샤와 엮이면서 불처럼 타오르는 메피스토펠레스 같은 존재였거늘... 메피스토펠레스는 어디로 가고 순둥이 숙맥 책상물림 서무 단추가 되어버렸으니... 왕재수야 뭐 본편 주인공 미샤가 너무 진지한 인물이니 아예 반대로 만들어보자 하고 의도적으로 철딱서니 없는 꼬마로 묘사하긴 했지만.. 오히려 왕재수는 시리즈가 뒤로 갈수록 본편의 미샤와 뒤섞이는 면이 있기도 하다. 음... 그러면 단추도 메피스토펠레스 성격이 발현되어야 하는데 이 녀석은 절대 안 그럴 듯...

 

하여튼 시리즈가 계속되다 보니 이야기들은 새끼를 치고 등장인물들도 점점 더 늘어나게 되었다. 일회성으로 나온 애들도 있고 계속 나오면서 나름대로 자리를 차지한 애들도 있다. 후자에 해당되는 인물들도 여럿 있는데 이번 ‘돌아온 등장인물 20문답’에서는 그 중 몇 명만 뽑아 보았다 :) 시리즈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긴 했지만 잠깐 등장했더라도 이상하게 댓글에서 자주 회자되는 일류샤(ㅎㅎ) 같은 녀석도 집어넣었다.

 

그래서 이번 ‘돌아온 20문답’의 인터뷰 대상자는 다음과 같다. 미녀 3인방 중 나머지 두 명인 리자와 알렉산드라. 바냐 투레츠키. 보랴. 일류샤. 이렇게 다섯 명이다. 이들만으로는 뭔가 아쉽다고? 우리의 두 주인공 단추와 왕재수도 중간중간 알토란처럼 꼬박꼬박 끼어든다. 그럼 재미있게 읽으시길!

 

 

** 다섯 명의 인터뷰인데 분량 상 두번으로 나누어 올린다. 이번주는 리자와 알렉산드라. (그러나 왕재수, 단추, 보랴, 일류샤 등등도 중간중간 등장한다~)

 

 

** 이번 돌아온 20문답의 문항은 맨처음 번외편이었던 등장인물 20문답의 문항과 동일하다. 지난번 문답(왕재수, 베르닌, 스페호프, 코즐로프, 렐랴)을 먼저 읽으면 더 맥락이 잘 통할 듯.

(베르닌/왕재수 : http://tveye.tistory.com/3492,

스페호프, 코즐로프, 렐랴 : http://tveye.tistory.com/3493)

 

 

 

 

 

 

 

(이 시리즈는 아래 순서대로 읽기를 권장함~)

 

* <서무의 슬픔> 시리즈에 대해 : http://tveye.tistory.com/3427
* 주요 등장인물 소개 + 시리즈 목차 : http://tveye.tistory.com/3428
* 에피소드 0. 다닐 베르닌의 새로운 임무 : http://tveye.tistory.com/3429
* 에피소드 1. 왕재수, 행동에 나서다 : http://tveye.tistory.com/3432
* 에피소드 2. 당직실의 귀신 : http://tveye.tistory.com/3437
* 에피소드 3. 버찌잼과 초콜릿 쿠키 : http://tveye.tistory.com/3444
* 에피소드 4. 공유지의 배추와 의전의 문제 : http://tveye.tistory.com/3451
* 에피소드 5. 무도회에 간 베르닌 : http://tveye.tistory.com/3458
* 에피소드 6.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 : http://tveye.tistory.com/3466
* 에피소드 7. 보고서의 악몽 : http://tveye.tistory.com/3478
* 에피소드 8. 새해 전야의 만두 소동 : http://tveye.tistory.com/3488
* 에피소드 9. 눈보라와 패딩 코트 : http://tveye.tistory.com/3524
* 에피소드 10. 벨라 등장! : http://tveye.tistory.com/3542
* 에피소드 11. 살구나무 거리에서 온 남자들 : http://tveye.tistory.com/3553
* 에피소드 12. 전설의 서무를 찾아서 : http://tveye.tistory.com/3563
* 에피소드 13. 검은 숲의 온천 요양소 : http://tveye.tistory.com/3580
* 에피소드 14. 한밤중의 침입자 : http://tveye.tistory.com/3599
* 에피소드 15. 우수 공산당원 연수 워크숍을 위해 막내가 준비해야 할 일들 : http://tveye.tistory.com/3615
* 에피소드 16. 짐꾼 베르닌과 빗, 물병, 목걸이의 비법 : http://tveye.tistory.com/3635
* 에피소드 17. 운수 좋은 날 : http://tveye.tistory.com/3661
* 에피소드 18. 메드베지에서 생긴 일, 알렉산드라 : http://tveye.tistory.com/3678
* 에피소드 19. 다닐 베르닌이 하를람피 푸고비체프가 된 사연 : http://tveye.tistory.com/3692
* 에피소드 20. 베르닌, 무대에 데뷔하다! :  http://tveye.tistory.com/3708
* 에피소드 21. 스페호프의 복수 : http://tveye.tistory.com/3726
* 에피소드 22. 흰머리천사날개풀과 파인애플 : http://tveye.tistory.com/3742
* 에피소드 23. 스네고로드 집단농장 : http://tveye.tistory.com/3766
* 에피소드 24. 시계탑 전망대에서 : http://tveye.tistory.com/3785
* 에피소드 25. 천하일미 요리대회(1부) : http://tveye.tistory.com/3800
* 에피소드 25. 천하일미 요리대회(2부) : http://tveye.tistory.com/3813
* 에피소드 26. 베르닌의 옛 여인 : http://tveye.tistory.com/3832
* 에피소드 27. 밀사 베르닌 : http://tveye.tistory.com/3918
* 에피소드 28. 9밀리 마카로프와 모스크바 비밀별장 : http://tveye.tistory.com/3938
* 에피소드 29. 보랴의 생일 파티 : http://tveye.tistory.com/3957
* 에피소드 30. 엘리트 요원 드미트리 베르닌 : http://tveye.tistory.com/3978
* 에피소드 31. 두 명의 베르닌이 금요일 밤에 모이다(1부) : http://tveye.tistory.com/3994
* 에피소드 31. 두 명의 베르닌이 금요일 밤에 모이다(2부) : http://tveye.tistory.com/4013
* 에피소드 32. 왕자님과 호위 기사들 : http://tveye.tistory.com/4033
* 에피소드 33. 아가일 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들의 모험(1부) : http://tveye.tistory.com/4062
* 에피소드 33. 아가일 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들의 모험(2부) : http://tveye.tistory.com/4079
* 에피소드 33-1. 도자기 인형 : http://tveye.tistory.com/4098
* 에피소드 34. 딸기 아가씨들과 자선 바자회 : http://tveye.tistory.com/4140
* 에피소드 35. 4월의 눈보라 : http://tveye.tistory.com/4172
* 에피소드 36. 빨간 열매와 초특급 익스프레스 : http://tveye.tistory.com/4189

 
** 번외편. 등장인물 20문답 : http://tveye.tistory.com/3492, http://tveye.tistory.com/3493

** 번외편. 곱사등이 흑염소와 단추소년 다닐, 절세미인 미셴카(러시아 민담 패러디) : http://tveye.tistory.com/3849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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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무의 슬픔 series 번외편>

 

 

 

번외편 : 돌아온 등장인물 20문답 

#01. 리자 & 알렉산드라
 

 

 

 

 

<그럼 그 20문답의 문항들은...>

 

 

20 Questions

 

 

 

이름 :

현직 :

경력 :

 

1. 별자리

2. 나이

3. 신장과 체중

4. 머리색 + 헤어스타일

5. 눈 색깔

6. 당신의 패션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템은?

7. 가장 좋아하는 음식

8. 당신의 시그니처 칼라는?

9. 취미

10. 데이트 상대에게서 제일 먼저 보는 것

11. ..와 ..가 물에 빠진다면 누구를 먼저 구하겠는가.

12. 당신의 매력 포인트는?

13. 가브릴로프에서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14. 좋아하는 음악/가수/작곡가 등등

15. 어렸을 적 장래희망

16. 영화에 출연하게 된다면 맡고 싶은 역할

17.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것

18. 지금 하고 싶은 것

19. 지금 입고 있는 것

20. 작가에게 한 마디

 

 

 

<돌아온 20문답 등장인물>

 

 

인터뷰어 : 작가(토끼)

인터뷰 대상 : 리자, 알렉산드라, 바냐 투레츠키, 보랴, 일류샤

특별 출연 : 왕재수, 베르닌

 

 

 

 

★  리자 

 

 

 

 

 

이름 : 리자베타 칸페트나야

~ 리자라고 불러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