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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sburg diary'에 해당되는 글 33

  1. 2016.01.31 그랜드 호텔 유럽, 소녀는 편지를 부치러 왔었지 (16)
  2. 2015.08.13 빨간 다리 앞 피자헛에 얽힌 가난한 유학생의 추억 (6)
  3. 2012.11.05 내가 러시아어를 전공하게 된 이유 (21)
  4. 2012.07.20 뒷길에서 바라본 에르미타주와 이삭 성당
  5. 2012.03.13 페테르부르크의 비밀 장소를 찾아서
  6. 2011.09.17 하늘 아래 살아 있는 박물관
  7. 2010.06.22 얼어붙은 바다 위에서 (10)
  8. 2010.05.25 도전! 러시아에서 샌드위치 주문하기! (8)
  9. 2009.01.08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과 얽힌 이야기 : 러시아에서 여권과 비자를 도둑맞다! (4)
  10. 2008.12.13 네게 시를 선물할게, корни의 뮤직비디오 (2)
  11. 2008.10.31 난방 안되던 날 (6)
  12. 2008.07.06 무랏 나쓰이로프(Мурат Насыров)를 추억하며 (4)
  13. 2008.07.04 바람과 눈의 도시 (2)
  14. 2008.01.09 돔 크니기에서 눈물이 글썽글썽해지면 어떻게 하지? (6)
  15. 2007.12.20 은회색 털모자를 쓴 아이 (3)
  16. 2007.11.07 하름스의 농담
  17. 2007.10.04 나의 첫 발레 (8)
  18. 2007.10.04 러시아 인형 (10)
  19. 2007.10.04 빵과 자유 (4)
  20. 2007.10.02 이반 왕자와 불새 (4)
  21. 2007.10.02 러시아 일기 #9 관련 - 세헤라자데와 황금노예 사진들
  22. 2007.10.02 과거로부터 온 환희의 아름다움 - 니진스키의 사진 앞에서 (2)
  23. 2007.10.02 원고는 불타지 않는다 (рукописи не горят) (2)
  24. 2007.10.02 러시아 일기 #8에 붙여 : 거장과 마르가리따 삽화들 (2)
  25. 2007.10.02 네프스키의 두 화가 이야기 (2)

 

 

아주 오래 전, 맨 처음 러시아에 연수를 가서 머무르던 시절. 물정도 모르고 하염없이 어리고 순진하고 또 가난한 학생이었던 나와 친구는 후진 기숙사에 살았다.

 

전에도 몇번 얘기한 적이 있지만, 합판을 얹어 만든 아주 조그만 침대는 철퍽 주저앉으면 그 합판이 내려앉아 침대가 박살나기도 하고...(내가 아무리 동그란 토끼인들... 그래봤자 조그만 토끼 한 마리였는데 ㅠ 내가 뚱뚱해서가 아님 ㅠㅠ), 책상 서랍 안에는 바퀴벌레가 알을 까놔서 수십수백마리의 새끼 바퀴들이 줄줄줄 기어나오기도 하고(벌레공포증 대발작!) 변기는 맨날 고장나고...

 

가게에는 물건도 별로 없고... 하여튼 열악한 시절이었다. 소련 붕괴 후 몇년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더 그랬다. 엎친데덮친 격으로 우리 나라도 IMF가 겹쳤다... 가벼운 주머니로 쏘다니고 공부하고 또 쏘다녔다. 그래도 참 즐겁고 행복했다.

 

없이 살던 그 시절 나와 내 친구들은 가끔 네프스키 대로에 있는 그랜드 호텔 유럽에 갔다. 이곳은 유서깊은 고급호텔이었다. 거기서 묵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었고... 당시 그랜드 호텔 유럽에는 조그만 우체국 같은 것이 있었는데 멋있는 고급 봉투와 편지지를 팔았고 속달우편을 보낼 수가 있었다. 우편료는 물론 일반 우체국 발송비보다 훨씬훨씬 비쌌다.

 

당시는 인터넷도 잘 안됐고(할줄도 몰랐고) 한국에 전화하려면 전화국에 가서 1분당 계산해 요금을 미리 지불한 후 전화를 해야 했다. 돈이 없으니 3분만 신청을 했는데 교환원이 전화를 연결해준다. 그나마도 통화하다가 3분 지나면 툭 끊어져버린다. 그러니 편지를 자주 썼다. 그랜드 호텔 유럽에서 편지를 보내는 날이면 뭔가 럭셔리한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이곳은 화장실마저 럭셔리했고 당시 기숙사 근처 가게나 수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고급 휴지마저 걸려 있었다. (지금이야 나아졌지만 예전의 러시아는... 휴지가 아니라 종이 수준이었음)

 

그랜드 호텔 유럽의 조그만 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고 나오는 우리의 행색은 누가 봐도 허름했다. 파카에 청바지, 흐트러진 머리, 화장기 없는 민낯에 배낭... '우리는 가난한 유학생이오' 하는 모습이었으니 호텔의 누가 봐도 우리는 투숙객이 아니었다. 그러니 멋있게 차려입은 문지기 아저씨가 문을 열어주고 인사를 할때마다 '내쫓기면 어쩌지' 하면서 어쩐지 쫄아서 나다니곤 했다. 그리고는 마음속으로 '언젠가는 꼭 여기 묵어봐야지!' 라고 희망을 품었다.

(이런 곳이 하나 더 있으니 그게 바로 아스토리아 호텔임...)

 

세월이 흐른 후 나는 그랜드 호텔 유럽에서 몇번 묵게 되었다. 여전히 비싼 곳이지만 환율 덕도 보고 비수기를 이용하기도 해서... 지금의 그랜드 호텔 유럽은 당시 내가 드나들던 때와는 내부 구조가 많이 다르다. 리모델링도 했고 회사도 바뀐 것 같다. 그 조그만 우체국도 이제는 없다.

 

호텔은 아름답고, 스태프들은 매우 친절하다. 물론 러시아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고급 호텔들에 비하면 뭔가 아쉬운 점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서깊은 호텔 특유의 정취가 있다. 그리고 유명한 아르누보식 레스토랑 '유럽'에서 아침을 먹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다.

 

심신이 지쳐서 그런지 문득 그리워져서 사진 몇 장 올려본다.

 

2년 전인가, 늦은 밤에 도착해서 픽업을 신청했었다. 호텔 기사는 수다스럽고 재미나는 분이었다. 나의 옛 이야기를 해주었다. 가난한 유학생이던 시절 유럽 호텔에 편지 부치러 왔었어요, 그때 '여기서 꼭 묵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라고. 기사 아저씨가 웃으며 '소녀의 꿈이 이루어졌군요' 라고 했다.

 

돌이켜보면 소녀의 꿈은 굉장히 많았지... 아직도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소녀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수십 명쯤 웅크리고 와글와글거리고 있는 것 같다.

 

 

.. 이 그랜드 호텔 유럽은 내가 몇년 동안 쓰고 있는 소설들에도 두세번 등장한다. 주인공 미샤가 중요한 인물을 만나기도 하고 또 중요한 사건을 겪기도 하는 공간이다. 그 우주에서 나는 이 공간을 일종의 에로스와 죽음의 공간으로 상정했다. 그래서인지 페테르부르크에 가서 운좋게 여기 묵을 때면 그 당시의 주인공을 되살려내 대화를 나누곤 한다. 하긴 그건 페테르부르크 어느 곳에서나 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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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전에도 얘기한 적이 있지만 페테르부르크는 강과 운하의 도시이다 보니 도시 곳곳에 크고 작은 다리들이 굉장히 많다. 그 중 내가 종종 건너다녔던 다리 하나를 소개하겠다. 크라스느이 모스트, 번역하면 빨간색 다리이다. (시느이 모스트, 즉 파란색 다리도 있다~)

 

크라스느이 모스트는 사도바야 거리와 고로호바야 거리의 교차점에 있다. 난간이 빨간색이라 이런 이름이 붙은 것 같다. (맞습니다~ 시느이 모스트는 난간이 파란색입니다~~)

 

작년과 올해 찍었던 크라스느이 모스트 사진 몇 장 올려본다. 위의 사진과 아래 사진은 작년 7월에 찍은 것.

 

 

 

 

 

이건 올해.. 날씨 안 좋았을 때 ㅠㅠ

 

 

 

 

건너편의 피자헛 건물.

 

이 피자헛에 대해서는 옛 추억이 하나 있다. 90년대 후반에 맨처음 페테르부르크에 와서 살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나는 그때까지 해외연수는커녕 해외여행 경험도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당시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된 것도 아니니 러시아의 생활에 대해서도 기껏해야 유학생들의 이야기나 유학생이 쓴 책자 외엔 정보를 구할래야 구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 아는 것도 거의 없이 고등학교 동창과 둘이 떡하니 페테르부르크에 오긴 왔는데... (이 친구가 전에 몇번 얘기한 '거북이'다. 이 시점은 아직 '쥬인'과 만나기 전임) 거북이는 같은 러시아어과 전공이고 나랑 친했기 때문에 갑자기 의기투합하여 두어달 준비끝에 날아오게 된 것이다! 하여튼 나와 거북이는 진짜 물정 모르는 애들이었다. 도시 지리도 모르고 학교 행정절차도 몰라서 첨에 왔을때 엄청 헤매고 고생했다.

 

하여튼 우여곡절 끝에 학교 등록도 하고 기숙사에 방도 얻었다. 그래서 우리 둘은 처음으로 쉬는 토요일이 되었을때 '그래! 도시 관광을 가자!' 하고 좋아하며 버스를 타고 일단 네프스키 대로로 나왔다~!

 

그래서 맨 처음 갔던 곳이 바로 알렉산드로프스키 공원(해군성 공원이라고 내가 부르는 곳)이고 그 분수 앞에서 고골 흉상을 봤기 때문에 기억 깊이 남았다. 그리고는 곧장 둘이 이삭 성당에 갔다. 전망대에 올라갔다가 나는 고소공포증으로 죽을 뻔함..

 

하여튼 그렇게 구경을 하고 나니 너무너무 배가 고팠다. 뭐든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문제는..

 

 

1. 우리는 가난한 유학생. 돈을 아껴야 함. 돈 아끼며 살자고 처음부터 둘이 다짐함.

 

2. 물정 모르는 풋풋한 아이들. 살림 직접 해본 적 없음. 페테르부르크에 막 와서 루블에 대한 감각 없음. 물가에 대해 잘 모름. 이 당시는 루블 화폐개혁 전이라 단위가 컸다. (이러다 간신히 적응될 무렵 이듬해에 1,000단위를 잘라내는 개혁을 해서 천루블이 일루블로 바뀌는 바람에 엄청 헷갈렸었다) 

그러니 웬만한 음식이고 물건이 다 비싸 보임!! 웬만하면 몇만루블이니... 사먹어도 되는건지 아닌건지..

 

3. 러시아 음식 잘 모름!!! 다 이상해 보이고 느끼해 보임!!!

게다가 지금도 나는 입맛이 좀 까탈스러운 편이지만 당시에는 더욱 심해서 기름진 것, 육류, 느끼한 것은 거의 안 먹었는데 러시아 음식은 대부분 그래 보였고... (당시엔 햄버거도 안 먹었다. 내가 그런걸 먹을 수 있게 된것도 러시아에서 지내면서 배가 고파서 맥도날드에 가게 되면서였음...)

엎친데 덮친 격으로 기숙사에 온 첫날 친구랑 둘이 기숙사 내의 가게에 갔었다. 우유를 사왔는데 알고보니 그것은 우유가 아니고 발효유인 케피르였고 심지어 날이 너무 더웠던 관계로 상해서 크림이 둥둥 떠서(냉장고가 없는 방이었음) 경악을 했고 '러시아 음식 = 우엑!' 이란 첫인상이 생겨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방황을 하며 떠돌다가...

그 당시에는 어떻게 헤매다 이 빨간 다리 쪽으로 왔는지 물론 기억도 없다. 아마 지리도 모르고 우왕좌왕 헤매다가  이쪽으로 들어온 것 같다. 네프스키 대로에서 뒷길로 빠져서 들어오면 나오는 곳이니까. 그러다가 저 피자헛 발견!!! (생긴지 얼마 안됐을 때였음)

 

와! 아는 곳 발견했다!!!

 

그래서 우리는 피자헛으로 쏙 들어갔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도 피자가 딱히 싼 음식은 아니지만 당시 한국에서도 피자는 비싼 축에 속했다. 물론 러시아도 마찬가지!! 게다가 소련 붕괴 후 얼마 안된 시점이라 당시 러시아 상황으로는 피자헛은 꽤나 비싼 레스토랑이었다. (맥도날드도 레스토랑이라고 불렸다!)

 

메뉴판을 보니 너무 비싼 거였다!! 그렇다고 도로 나가려니 너무 배도 고프고 딴데 찾기도 힘들고... 그래서 우리는 그나마 싸보이는 무슨 런치 세트인지 뭔가를 시켰는데.. 너무 오래 전이라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아마 콜라 한잔, 피자 한조각에 뭔가 하찮은 사이드가 하나 들어있었거나 그랬을 것이다(사이드가 없었을 수도 ㅠㅠ)

 

먹긴 먹었는데 맛도 없고 배도 안 차고 비싸기만 되게 비싸고..

 

그래서 우리는 굉장히 서글퍼진 채로 나와서.. 러시아 안 좋다.. 피자헛 밉다... 외국 와서 사는 거 안 좋구나.. 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ㅠㅠ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이 동네 생활에 적응도 잘 하게 되고 러시아 음식도 먹게 되고 먹는 거에 돈 아끼지 말자고 생각하게 되어 잘 놀고 잘 먹고 잘 지냈음 :)

 

하여튼 그때 추억 때문에 이 다리 건너면서 저 피자헛 볼때마다 딱 그때 생각이 난다. 그러면서 이상하게 조금살짝 서글퍼지고 '미운 피자헛!' 하는 마음이 뭉게뭉게...

 

(그 이후 지금까지 페테르부르크에서 피자헛 간 적 한번도 없음!!!!!)

 

언젠가 료샤랑 산책하면서 이쪽 지나가다가 피자헛 보고는 저 얘기를 해주었다. 그랬더니 료샤가...

 

료샤 : 어! 나도 그 즈음 여기 왔었어! 그때 여기 막 생겨서 완전 핫 플레이스였어!! 맥도날드보다 더 비싼 곳이잖아. 완전 고급! 그래서 여친이랑 왔었어!! 피자 한 판 시켜서 먹었어!

나 : 오오... 부르주아.. 나는 손 떨면서 한조각에 콜라 한개 먹고 괴로워했는데...

료샤 : 그렇지! 나는 아빠가 부자였으니까 피자헛에 갈수 있었지.. 한판 시킬 수 있었고... 그래서 당시 여친이 엄청 감격해했어... 근데 맛은 별로 없었어...

나 : 그래! 그때 여기 피자헛 맛없었어!(결론)

 

 

 

 

하여튼..

날씨 좋은 날. 크라스느이 모스트 사진 몇 장 더... 이건 이번에 가서 찍은 사진들.

 

 

 

 

 

..

엥, 근데 왜 피자가 먹고 싶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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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 이 글은 예전에 내가 웹진에 연재했던 러시아 일기들을 모아 정리할 때 서문으로 썼던 글이다.

 

 

 

찌는 듯이 더운 여름날 오후였다. 도로는 한산했고 드문드문 지나가는 사람들은 더위에 지쳐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8월이었고 토요일이었다. 나는 부천 시내의 어느 극장에서 지금은 기억나지도 않는 어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햇살은 뜨거웠고 앞머리는 땀에 젖어 이마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정신을 잃을 것 같은 폭염이었다. 

 

정류장은 텅 비어 있었고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았다. 영화 팸플릿을 부쳐 땀을 식히며 무심코 고개를 돌리자 무슨무슨 문고라는 간판이 보였다. 건물 지하의 큰 서점이었다. 중학교 3학년짜리 여자아이에게 여름 한낮 그 도로변 버스 정류장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부는 커다란 서점만큼 매혹적인 장소가 또 있었을까?  

 

서점은 시원했다. 손님은 한두 명밖에 없었다. 언제나처럼 소설 코너에서 신간과 고전문학 쪽을 뒤적이다가 책꽂이 가장 아래쪽 구석에서 흰색 표지의 책을 발견했다. 두 권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이미 페이지가 누렇게 변색되어 가고 있었다. 출판사는 마로니에 북스, 옮긴이는 박종소 교수.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었다. 나는 그 순간을 마치 지금처럼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  

 

물론 나는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동급생들 중 그 책을 읽은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작가의 이름 정도는, 아니, 최소한 그 책의 제목 정도는 다들 알았다. 그 외에 내가 알고 있는 거라곤 ‘주인공이 누군가를 죽인다. 한마디로 죄를 저지른다. 그리고 뭔가 벌을 받는다.’ 그게 전부였다. 세상에 저렇게도 촌스럽고 직접적인 제목이 다 있을까 하고 우스워했던 적도 있었다. 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고전이니 위대한 작가니 하고 떠들어대는지 한번 보기나 하자는 생각이 들어 책장을 펼쳐봤다. 

 

찌는 듯 무더운 7월 초의 해질 무렵이었다. 한 남자가 벽장 같은 집에서 빠져나와 소란스럽고 환상적인 도시 페테르부르크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넝마를 걸치고 우스꽝스런 독일 모자를 쓴 그 검은 눈동자의 청년은 깊은 상념에 잠겨 있었다. 그런데 그 상념은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이성적이고 차분한 사고가 아니었다. 그의 머리는 타오르고 있었다. 페테르부르크의 돌로 된 보도와 네바 강의 수면 위로 작렬하는 햇살보다도, 화재 현장에서 탁탁 튀어오르는 불꽃보다도 더 뜨겁게 타고 있었다.  

 

그는 살인에 대해, 도끼로 노파를 때려죽이는 일에 대해, 그리고 그 살인을 통해 자신이 하잘 것 없는 벌레가 아닌 인간임을 증명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생각, 그의 상념은 머리에서 생겨난 것이었고 그것은 가슴에서 생겨난 무수한 사랑과 증오의 감정 이상으로 열렬했다. 나는 인간의 상념이 그토록 강력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어린 내게 있어 이성과 사고라는 것은 언제나 감성보다 차가운 그 어떤 것, 피도 눈물도 없고 견고한 것이었다. 그런데 투박하고 촌스러울 정도로 직접적인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소설 속의 한 남자는 머리에서 태어난 자신의 사상이 가슴 속 심장까지 훨훨 불태우고 있다는 것을, 그것은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그 어떤 사랑보다도 더 격렬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매혹되었다. 아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마비된 것 같았다. 지갑을 탈탈 털었다. 그 책은 상하권으로 되어 있었고 한권에 2,500원이었다. 두 권이면 5,000원이었는데 돈이 한참 모자랐다. 하권을 다른 책들 뒤로 꼭꼭 숨겨놓고 상권만 들고 계산대로 갔다. 

 

그날 밤을 새며 상권을 다 읽었다. 보름달이 차오른 페테르부르크의 여름 밤이었고 주인공은 살인에 대한 악몽에 시달리다 깨어난다. 잠에서 깨어난 그의 침대 곁에는 미지의 인물이 앉아서 모호하고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그리고 상권이 끝난다. 이게 뭔가! 이렇게 끝나버리면 돈이 없어 다음 권을 사지 못한 불쌍한 나 같은 독자는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다시 시내로 나가기 위해서는 다음 주말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일주일 동안 나는 약에 취한 듯 멍했고 심장이 뛰었다. 마침내 토요일이 되었고 그 서점을 다시 찾았다. 물론 책은 애초에 숨겨놓았던 자리에 가만히 있었지만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내 손에 쥐기 전까지는 눈썰미 좋은 사람이 나보다 먼저 책을 발견하고 사 갔을까봐 온몸이 떨렸다.  

 

그것이 나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첫 만남이었고, 러시아에 대한 사랑의 시작이었다. 

 

그전까지 내게 러시아는 소련이었다. 철의 장막에 가려진 나라, 공산당이 지배하는 나라, 혁명과 학살로 점철된 무서운 나라, 레닌과 스탈린의 나라, 빨갱이들의 나라, 핵무기와 냉전의 나라일 뿐이었다. 얼음과 눈, 추위와 모피, 폭력과 비밀스러움으로 가득 찬 깡패 국가일 뿐이었다. 주변 뉴스에서는 페레스트로이카가 어떻고 글라스노스트가 어떻고 하며 떠들고 있었지만 거친 경자음과 다음절로 이루어진 그 단어들은 무슨 기계 이름 같기만 했다. 당시 우리에게 중요했던 것은 몇 년이나 더 남았던 대학교 입시였고 그보다도 더 피부에 와 닿았던 것은 매월 나오는 월중고사와 중간고사, 기말고사 등등의 성적표와 등수였다. 

 

그리고 그 순간, 라스콜리니코프와 그의 도끼, 그의 사상과 그의 고뇌, 그를 둘러싼 페테르부르크의 흐릿한 독성으로 가득한 영기에 홀려 새벽을 맞이한 순간 내 입술에서 흘러나온 말은 바로 이것이었다. ‘아아, 이 사람의 소설을 원어로 읽고 싶어!’ 

 

그해, 우리 나라와 소련이 수교를 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고르바초프가 방한을 했고 그 여름에는 소련 보수파가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했다. 옐친이 실권을 쥐었고 소련은 붕괴하기 시작했다. 이후 독립국가연합이 탄생했다. 

 

나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었다. 대학 입시를 위해 때마침 가까운 곳에 생긴 외국어고등학교 시험을 보았다. 독일어과, 프랑스어과, 러시아어과, 일본어과가 있었는데 원서에는 희망 학과를 순서대로 적어내게 되어 있었다. 나는 러시아어과를 첫번째로 적었다. 당시 러시아는 새로운 시장이었고 그 나라 말을 배우면 창창한 장래가 보장될 거라는 장밋빛 희망이 가득했다. 주위 어른들도 앞으로는 러시아가 뜰 거라고 생각하셨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 순간 내가 생각했던 것은 빛나는 장래도,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국제통역을 하러 다니는 근사한 커리어 우먼도 아니었다. 그건 그 뜨거운 여름날 햇살을 피해 들어갔던 시원한 서점 안에서 발견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이었다. 단 한 문장, 한 단어라도 좋으니 원어로 된 그의 글을 읽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이었다. 그리고 몇 달 전 겨울, 텔레비전 주말의 명화로 보았던 테일러 헥포드의 영화 백야에 나왔던 도시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 무중력 상태를 부유하듯 공중으로 뛰어오르던 바리시니코프의 도시, 끝없는 낮과 끝없는 밤이 공존하는 도시, 도스토예프스키의 주인공이 열기와 환영에 취해 하염없이 헤매던 도시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 나는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하게 되었다. 국제통역사를 꿈꾸며 잠시 통역을 공부하려고도 했다. 러시아에도 여러 차례 갔다. 하지만 결국 통역사가 되지 않았고 러시아와는 별다른 상관이 없는 직업을 얻었다. 그건 내 대학 동기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였다. 러시아는 어른들과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근사한 시장이 아니었던 것으로 판명이 났다. 핵잠수함 쿠르스크호가 침몰했고 모라토리엄 선언을 하기도 했다. 요즘은 주변 4강 중에서도 최약체로 취급받는 현실이다. 나도 마찬가지여서 그럭저럭 내 힘으로 벌어먹고 사는 직장인이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외국을 밥 먹듯이 다니며 러시아 대통령의 연설을 동시통역하는 화려한 커리어 우먼이 되지도 못했다.  

 

그래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적어도 한 권 이상은 러시아어로 읽었고 그의 주인공이 헤매던 도시에서 먹고 자며 살아보기도 했다. 그의 또 다른 주인공이 얘기했듯 돌과 뼈와 피로 축조된 그 도시가 아침 안개 속에서 유령처럼 솟아올라 하늘 위로 사라져버리는 듯한 순간도 맛봤다.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란 단어도 이젠 무리 없이 경자음과 액센트를 넣어 발음할 수 있다! 구수한 버터가 자르르 흐르는 블린과 시큼하고 촉촉한 흑빵을 먹어봤고 보드카도 마셔봤다. 진한 차 한 모금에 러시아식 나무열매 잼 한 숟갈도 곁들여 즐겨봤다. 하얀 레이스 치맛자락을 나부끼며 조명 속으로 날아오르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취해 보기도 했다. 소매치기도 당해봤고 착한 사람도 만났다. 불심검문을 나온 경찰들에게 걸려 하마터면 닭장차에 실려갈 위기에도 처해봤고 가죽재킷 차림의 스킨헤드들에게 위협도 당해봤다.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정교 사원에서 미사 드리는 광경을 보았고 결투로 요절한 러시아의 유일무이한 영웅 시인에게 꽃을 바치기도 했다. 수많은 러시아 사람들을 만났고 우정을 나누기도 했다. 러시아에는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았고 수많은 멋진 작품들을 읽게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이고 강렬한 러브스토리가 담겨 있는 소설을 만났다. 그림을 보고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게 되었고 박물관이 따분한 곳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너무 추우면 콧구멍 속이 얼어붙어 빠지직빠지직 소리가 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요즘도 가끔 주변 사람들이 이렇게 물을 때가 있다. 대체 왜 러시아어를 전공하게 됐어? 

 

그럼 나는 한결같이 대답한다. 

 

도스토예프스키 때문에, 그리고 어떤 영화 때문에요. 

 

아, 물론 우스꽝스럽고 촌스럽고 구시대적인 대답이다. 하지만 나도 어쩔 수가 없다. 그건 사랑이었고 그것도 첫눈에 반한 사랑이었으니까.

 

 

** 도스토예프스키 박물관과 그의 작품에 대한 글은 여기 :

 http://tveye.tistory.com/10,  http://tveye.tistory.com/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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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오래된 도시들의 특징은 옛 건축물들과 현대식 건축물, 도로, 자동차 등등이 어우러져 있다는 것인데 가끔은 우아하게 융합되기도 하지만 가끔은 지나치게 불균형한 느낌을 자아내기도 한다.

오랜 옛날, 맨처음 페테르부르크에 갔을 때를 잊을 수가 없다. 그때 도와주셨던 분이 밤중에 자동차로 도시 외곽에서 바실리예프스키 섬의 기숙사까지 태워다주셨는데 스탈린과 브레즈네프 시절 냄새가 풀풀 나는 회색 건물들과 우거진 나무들이 창밖으로 휙휙 지나쳐갔고 난 너무 피곤한 상태로 잘 되지도 않는 러시아어를 짜내며 옆자리에 앉아 있던 젊은 러시아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난 겨우 스물 한살이었다.

반쯤 졸며 툭툭 끊어지는 러시아어로 얘기를 나누다가 나는 갑자기 감전된 듯 멍해졌다. 갑작스럽게 반짝이는 불빛들이 나타났고 에메랄드 청록색으로 광채를 발하는 아름다운 건물이 나타났다. 검게 일렁이는 강물 위로 색색의 불빛이 드리워져 있었고 청록색 건물은 거대하고 기다랗게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이었다. 네바 강이었다.

도로 위로는 여전히 낡아빠진 러시아 자동차들과 버스가 미끄러져 달리고 있었고 귀를 찌르는 듯한 경적이 가득했다. 하지만 창 너머로는 검은 네바 강물과 보석처럼 번쩍이는 에르미타주, 황금빛 쿠폴을 이고 있는 거대한 사원(이삭 성당이란 건 나중에 알았다)이 환상처럼 떠올라 있었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많은 작가들이 페테르부르크의 환상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가 제일 처음 마주했던 환상성은 그 한밤중 창 너머로 보았던 에르미타주의 불빛과 네바 강이었던 것 같다. 물론 그건 페테르부르크만이 가지고 있는 악마적이며 신화적인 환상성과는 거리가 있다. 그건 오히려 너무나 일상적이고 현대적인 풍경 속에서 강렬하게 대비되며 우뚝 서 있는 옛것의 자태에서 오는 미적 충돌에 가까웠다.

오랜 세월이 흘렀고 난 다른 나라들에도 많이 가보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그런 모습에 경도되거나 꿈꾸는 듯한 황홀함을 느끼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끔은 그때보다 많이 흐릿하지만 그래도 비슷한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주로 자동차가 달려가는 도로변에서 오래된 사원이나 아름다운 과거의 그 무엇을 마주할때가 그렇다. 혹은 종소리.

위의 사진은 궁전광장 뒤쪽에서 바라본 에르미타주 측면과 광장, 그리고 이삭 성당의 모습이다. 박물관도 그렇고 근처에 있는 행정기관도 그렇고 출퇴근하는 사람들 때문에 저렇게 자동차가 줄줄이 주차되어 있다. 그리 예쁜 광경은 아니지만 그래도 저런 풍경을 보면 난 항상 오랜 옛날, 네바 강변을 달리다가 에메랄드 궁전과 마주쳤던 때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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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페테르부르크의 비밀 장소를 찾아서>

 .. 2010년 글에서 발췌 ..


사람들에게는 비밀 장소가 있기 마련이다. 그게 반드시 유리구슬과 조립식 로봇들을 숨겨놓는 지하실이나 나무 위의 집일 필요는 없다. 꼭 그런 공간이 어린 아이에게만 있으란 법도 없다. 누군가는 사색을 위해, 어떤 사람들은 실컷 울기 위해, 혹은 그저 혼자 있기 위해, 또 누군가는 비밀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 작은 비밀 장소를 만들곤 한다.
 

페테르부르크에서 내가 선택한 비밀 장소는 두 군데였다. 문자 그대로의 비밀스러운 공간이라기에는 둘 다 도시의 명소였지만 뭐 어떤가, 아무도 그곳이 나의 비밀 장소라는 것을 모르는걸.  

한 군데는 바로 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자 도시의 상징인 청동기사상 앞이었다. 페테르부르크와 청동으로 주조한 표트르 황제의 동상과 거대한 홍수를 노래했던 푸시킨의 그 유명한 시를 읽은 이후로부터 청동기사상은 내게 한없이 악마적이면서도 환상적인 그 무엇으로 각인되었다.

맨 처음 네바 강변을 따라 걷다가 생각지도 않게 청동기사상 앞에 다다랐을 때의 충격과 기쁨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극도로 악마적이고 장엄할 거라고 상상했던 표트르 1세의 그 기마상은 내 생각보다는 작았으며 고독하게 네바 강 저 너머를 응시하고 있었다. 힘차게 발을 차올리는 말의 두 앞다리는 허공에 떠 있었고 뒷다리의 발굽 하나는 금방이라도 꿈틀거리며 튀어오를 것 같은 뱀을 짓밟고 있었다. 그 불편하면서도 역동적인 자세를 보자 왜 수많은 작가들과 시인들이 이 청동기사상을 페테르부르크의 상징으로 여겼는지 알 것 같았다. 
 

기사는 금방이라도 말과 함께 공중으로 솟구쳐 올라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네바 강의 물안개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하자 그 비현실성은 점점 더 짙어져 갔다. 늪지대에 돌로 세워진 도시, 노역으로 죽어간 무수한 인간의 뼈와 살로 축조된 도시, 신의 섭리를 무시하고 오로지 황제라는 한 인간의 서구화 의지에 의해 세워진 도시, 그래서 악마의 도시라고 불리는 페테르부르크의 모든 불확실성과 그만큼 강렬한 매력이 그 청동기사상 내부에 하나로 응축되어 있는 것 같았다.  

청동기사는 용을 무찌르는 성자 게오르기를 모티브로 주조되었지만 어머니 모스크바를 버리고 늪지대에 억지로 도시를 세워 천도를 단행한 표트르 1세를 증오했던 러시아인들은 동상의 말발굽이 뱀을 짓밟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은 뱀과 하나가 되어 있다고, 그러므로 청동기사상은 성자 게오르기가 아니라 사탄 그 자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나도 여러 차례 기사상의 뒤로 돌아가 뱀을 밟고 있는 말의 뒷발을 유심히 살폈다. 이런 것 같기도 하고 저런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후자가 훨씬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기사상은 아름다웠다. 아마도 내가 페테르부르크라는 도시 자체에 대해, 그리고 그 도시가 품고 있는 광범위한 상징성에 홀딱 반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유명한 동상 앞은 나의 비밀 장소가 되었다. 이른 아침, 버스가 기사상 앞을 지나칠 때면 차디찬 창문에 코와 뺨을 지그시 누르며 동상의 실루엣이 어둠과 이삭 성당의 황금빛 사이로 희미하게 사라져 갈 때까지 바라보고 또 보았다. 가끔은 네바 강변을 따라 산책하다가 모퉁이를 돌면서 마음의 준비를 했다. 꼭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기 전에 심호흡을 하는 것처럼. 청동기사상은 단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언제나 새로웠고 언제나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반쯤은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역시 페테르부르크에 대해 깊은 사랑과 증오를 품었던 도스토예프스키는 ‘약한 마음’이란 단편에서 놀랄 만큼 섬세하고 아름다운 필치로 그 도시의 환상성을 묘사한 적이 있다.  


네바 강으로 다가간 그는 잠시 멈추어 서서, 강을 따라 어스름한 하늘 위로 타오르는 핏빛 노을로 물든 얼어붙은 저 수평선으로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 

밤은 도시를 덮고 있었고, 얼어붙은 눈으로 인해 부풀어오른 끝없는 네바의 빙원 위로는 태양의 마지막 그림자와 함께 바늘 같은 서리의 끝없는 불꽃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영하 20도였다.  

뛰어가는 사람들과 채찍을 맞고 죽을 힘을 다해 달리는 말들로부터 차가운 입김이 뿜어져나오고 있었다. 추위로 압축된 공기는 아주 작은 소리에도 진동했다.  

그리고 강 양쪽 기슭의 모든 지붕들로부터 연기의 기둥이 교차하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면서 마치 거인들처럼 차가운 하늘을 따라 위로 위로 올라갔는데, 이 모습은 옛 건물 위로 새로운 건물이 세워지는 것처럼, 허공 위에 새로운 도시가 세워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강한 자든 약한 자든 그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가난한 사람들의 움막이든 이 세계 강자들의 기쁨인 금으로 장식한 궁전이든 그들의 모든 집들과 함께, 이 황혼녘 이 세계 전체가 환상적인 마법의 세계, 꿈의 세계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환상적인 마법의 세계, 꿈의 세계는 곧 사라지고 연기가 되어 어두운 푸른 하늘로 사라져 버렸다. 

..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약한 마음’ ..
(열린책들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중 발췌, 석영중 번역)


나는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이른 아침 아무도 없는 시각에 청동기사상 앞을 맴돌며 나를 사로잡던 상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와 다른 시간, 다른 공간을 살다 갔던 그 멋진 작가가 왜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 너무나 강렬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도스토예프스키에게도 페테르부르크의 비밀 장소가 있었을까? 그의 유명한 등장인물 중 하나인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 같은 경우에는 그런 곳이 있었다. 그 오만하고 사랑스런 청년은 도시의 밤안개가 차오르는 뒷골목의 가스등 아래, 풍각쟁이가 손풍금을 켜는 곳과 선술집을 좋아했다. 장편 ‘미성년’의 주인공 아르카지 역시 페테르부르크를 거닐며 이런저런 상념에 찬 독백을 늘어놓는다. 거기에는 다분히 작가의 목소리를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다. 그러니까 도스토예프스키 역시 어딘가에 비밀 장소를 묻어두고 있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런 상상을 하게 되면 살짝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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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내가 2010년 썼던 '페테르부르크 다이어리'를 맺는 글인 '페테르부르크의 비밀 장소를 찾아서'에서 발췌한 것이다. 외부에 공개한 적은 없다.

사실 그 글에서 청동기사상은 두번째 비밀 장소이고 첫번째 장소는 두번째 단락 후부터 나오는데 여기서는 삭제했다. 

첫번째 장소는 어디냐고? 그건 나중에 얘기하도록 하겠다^^


..

한겨울의 청동기사상 사진들 몇점.

 

 

 



** 이전에 아르코 웹진에 연재했던 러시아 일기 중 청동기사상과 페테르부르크 홍수 신화를 다룬 글은 아래를 클릭http://tveye.tistory.com/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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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1.09.17 21:19

하늘 아래 살아 있는 박물관 petersburg diary2011.09.17 21:19

* 이건 작년 초에 러시아에 다녀와서 썼던 글이다. 오랜만에 페테르부르크 다이어리 폴더에 올려본다. *

하늘 아래 살아 있는 박물관



이른 아침이었고 사방은 간밤에 내린 눈에 뒤덮여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보예도프 운하변의 작은 보도는 한적했다. 며칠 휴가를 내고 날아와 한 시간 한 시간이 소중한 나 같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굳이 이런 추위에 주말 아침부터 눈으로 질척거리는 운하변을 산책할 마음이 들 것 같지는 않았다.

대기는 청명했고 맞은편에 서 있는 스파스 나 크로비(피의 구세주) 사원은 흰 눈 때문에 더욱 화려하고 알록달록하게 보였다. 전형적인 관광객인양 사원과 운하의 사진을 찍고 있자니 서서히 가죽장갑으로 감싼 손끝이 얼면서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새 카메라까지 장만했는데 이 아름다운 도시를 무시할 수야 없다. 이번엔 어디를 찍어볼까.

운하 맞은편으로 시선을 던지자 빛바랜 분홍색 건물과 너무나 아름다운 창문이 보였다. 사실 평범하고 네모진 창문이었지만 검푸른 유리에 반사된 운하와 설탕처럼 쌓여 있는 새하얀 눈, 곡선을 이루는 교각 난간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매혹적이었다. 한참 넋나간 듯 창문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리자 짙푸른 파도가 거대하게 넘실대며 하얀 포말을 흩뿌리고 있었다.

이반 아이바조프스키의 그림이었다. 러시아 미술관에서 가장 인상 깊은 그림 중 하나다. 제목은 ‘파도’, 바다의 화가 아이바조프스키의 그림이 구식 액자에 끼워진 채 건물 벽에 걸려 있었다.

자세히 보니 건물 벽에 드문드문 그림이 걸려 있었다. 옆에는 일리야 레핀의 유명한 ‘볼가 강의 인부들’이 걸려 있었다. 시 당국에서 지정했거나 건물주가 관광 효과를 위해 걸어놓았을 터였다. 어떤 의도였든 간에 예기치 않게 눈 내린 이른 아침, 거리 한구석에서 아이바조프스키와 레핀의 그림을 마주치는 것은 작은 선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리보예도프 운하에서 10분 정도만 걸어가면 러시아 미술관에 갈 수 있다. 군데군데 스프레이 낙서가 휘갈겨진 건물 벽에 걸려 있는 옛날 그림들을 마주하고 호기심이 생기거나 다시금 그 작품들에 대한 사랑이 되살아나 원본을 보고 싶다면 산책길을 조금만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나 같은 외국인이야 몇백 루블을 내야 하지만 러시아인들에게는 대부분의 박물관 입장료가 공짜이다. 저 그림을 보고 길을 건너 러시아 미술관으로 향하는 사람들도 한둘은 있지 않을까?

그리보예도프 운하에서 벗어나 에르미타주 박물관 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버스 정류장의 유리벽과 거리의 광고판에서도 에르미타주의 유명한 그림 사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피사로의 그림도 있었고 모네, 다빈치, 르누아르도 있었다. 잠시 다리를 쉬러 들어간 카페에서 테이블 위의 무가지를 펼치자 마침 이런 기사가 실려 있었다. 페테르부르크 시 당국에서 문화예술의 도시 페테르부르크의 이미지를 강화하고 시민들에게도 박물관들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거리의 버스 정류장과 광고판 등을 통해 에르미타주의 그림들을 전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도시 자체를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으로 만들자는 프로젝트로, 지난 여름에는 러시아 미술관 작품들을 주제로 했고 이번 겨울에는 에르미타주의 차례라고 했다.

물론 이것도 어떻게 보면 전시 행정이고 ‘페테르부르크 = 문화예술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대중화시키는 전략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이 정도 전시 행정이라면 꽤 품격 있는 것 아닌가? 어떤 도시처럼 제대로 기획되지도 않은 산만하고 허황된 각종 공공미술과 디자인 관련 행사에 예산을 퍼붓는 건 아니다. 다분히 일회적이고 천박하기 이를데없는 거대하고 소모적인 작품들이 난무하는 상황, 심지어 이러한 작품들이 도시나 시민과는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상황을 떠올려 보라. 도시와 공공미술, 그리고 그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어차피 이 모든 정책이 전시 행정에 지나지 않는다면 차라리 단순하고 우아한 편이 낫다. 그리고 페테르부르크의 이러한 정책에는 단순한 전시 행정 이상의 향취가 있다.

러시아 학교에서는 종종 박물관 견학을 간다.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로 인솔자도 있고 도슨트도 있다. 그런데 러시아의 미술관이나 각종 기념 박물관에서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있자면 전혀 지루하지 않다. 푸시킨 박물관 같은 곳은 도슨트 할머니가 어쩌면 그렇게 열정적인지, 분명 수천 번 이상 되풀이했을 내용일 텐데도 여전히 푸시킨이 결투를 하러 가는 날 아침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할머니의 얼굴에는 안타까운 표정이 가득하다.

소비에트 시절에는 건전한 문화예술 교육을 강조했기 때문에 박물관 견학이 지금보다 훨씬 정례화되어 있었다고 한다. 정치적인 이유가 다분했겠지만 그래도 분명 거기에는 좋은 점도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선조가 남긴 문학을 알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가슴에 남는 그림들을 보아왔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러시아인을 만나 푸시킨 이야기를 하면 딱히 문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어린 시절 암송했던 짧은 시 한편 정도는 기억해낸다. 기계적인 주입교육, 고급문화에 치중한 편파교육, 정치성 다분한 교육이라고 하더라도 어쨌든 그들의 마음 속에는 푸시킨이 각인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이 기계적인 암송이든 정치적 교육의 결과이든 간에, 푸시킨은 진정 위대한 시인이다. 한 사람의 시인이 영웅으로 추앙받을 수 있는 나라의 문화는 그래도 존경할 만한 문화가 아닐까?

휴직을 하고 러시아에서 잠시 공부할 무렵, 가끔 회사 웹진에 글을 쓰거나 러시아 소식을 기고하곤 했다. 시간이 없을 때는 주로 러시아 문화예술에 대한 단신을 써 보냈는데 당시 작성했던 기사 중 청동 사자의 귀환과 레트니 사드의 조각상 이야기가 있었다. 전자는 페테르부르크 네바 강변의 명물인 청동 사자상이 관광객에 의해 훼손되었다가 복구 작업 끝에 제자리로 귀환했다는 내용이었고 후자는 유명한 레트니 사드(여름 정원)의 대리석 조각상들이 심하게 파괴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사실 청동 사자상이 훼손된 경위에도 우스꽝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에르미타주와 이삭 성당으로 가는 길목의 네바 강변에 버티고 있는 두 마리의 사자가 워낙 명물이다 보니, 관광객이든 페테르부르크의 젊은이들이든 간에 사자 등짝 위에 올라타고 기념 사진을 찍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다가 그중 운 나쁜 사자 한 마리의 등이 폭삭 내려앉고 만 것이다.

레트니 사드는 페테르부르크 시민들에게는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다. 이곳 나무들 아래, 오솔길 여기저기 서 있는 대리석 조각상들 중에는 18세기 이탈리아 조각가들의 진품들도 꽤 섞여 있다. 한여름에도 레트니 사드에 들어서면 외부 기온보다 적어도 2-3도는 낮은데다 우거진 녹음 사이로 싸늘하기까지 한 바람이 불어와 무척 시원하다. 바람을 맞으며 오솔길을 거닐고 하얀 조각상들을 마주하는 기분은 꽤나 상쾌하다. 그런 레트니 사드의 조각상들 중 여덟 점이 한밤중에 습격을 당했던 것이다. 단순히 취객의 술주정이었는지, 아니면 고의적인 파괴 행위였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어떤 조각상은 머리가 떨어져 나가고 어떤 조각상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등 피해는 심각했다.

둘 다 씁쓸한 내용이었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흥미로운 것은 이런 것이었다. 파손된 청동 사자상과 레트니 사드의 조각상이 있던 자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청동 사자상이 있던 자리에는 알록달록 채색된 석고 사자상이 놓여졌다. 청동 사자상을 돌려달라는 표어와 함께 모금이 진행되었다. 채색 사자상은 그 자리에만 놓여 있었던 게 아니었다. 도시 여기저기에 때로는 귀엽고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녹색, 노란색, 빨간색, 주황색, 오색의 석고 사자상들이 나타났다. (몇 달 후 이 사자들은 에르미타주 박물관 안뜰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관람객들을 맞이하기도 했다) 페테르부르크를 사랑하는 아마추어 사진사들은 이 사자상들을 찍어 라이브저널 사이트에 올리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레트니 사드의 경우라면, 파괴 행위가 일어난지 이틀 후 나는 친구와 함께 그곳에 산책을 갔다.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나무 사이를 거닐다가 파괴된 조각상이 있었던 자리를 발견했다. 조각상은 치워지고 없었지만 받침대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파손된 조각상은 떠나고 없지만 미세한 파편 가루가 남아 있는 하얀 받침대 위에는 뭔가 보이지 않는 무게가 실려 있는 것 같았다. 페테르부르크 시민들 모두의 것인 아름다운 공원에서 끔찍한 파괴 행위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해 텅 빈 받침대를 남겨놓기로 했다는 기사를 다음날 읽었다.

이것은 지나치게 도덕적이고 작위적인 행위일까? 푸시킨을 암송시키고 일렬로 박물관 견학을 시키는 것처럼, 도시 곳곳에 박물관 그림 사본들을 줄줄이 걸어놓는 것처럼 프로파간다 냄새를 풍기는 행위일까? 그런 면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꽤 단순한 사람이라서 그런지 가끔은 이런 고지식하고 선생님 훈화 같은 러시아식 정책에 공감하곤 한다. 그리고 채색 사자상과 텅 빈 받침대에서는 어쩐지 시적인 풍류가 느껴지지 않는가?

청동 사자와 관련된 이야기에서 가장 가슴에 남았던 것은 연방의회 의장 세르게이 미로노프의 인터뷰였다. 당시 내가 썼던 기사의 마지막 부분에 그 인터뷰를 다음과 같이 인용했다.

 .. 복구 전문가들은 이미 이들을 복제품으로 대체하고 조각상들은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치 얼마 전 파괴된 레트니 사드의 조각상들에 대한 논란을 떠올리게 하는 듯한 주장이다. 그러나 세르게이 미로노프는 이러한 의견에 반대하고 있다. 그는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탁 트인 하늘 아래 펼쳐진 살아 있는 박물관에 비유하며 이 도시는 결코 복제품이 아닌 원본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로노프 자신의 문장이든, 홍보 담당자가 작성해 준 문장이든 간에, 꽤나 멋진 인터뷰다. 말로 먹고 사는 것이 정치가라지만, 최근 우리나라나 서울에서 이런 시적인 표현을 쓰는 정치가는 본 적이 없다. 페테르부르크보다 훨씬 역사 깊은 도시인 우리의 서울에 대해서도 누가 이렇게 얘기해줬으면 좋겠다. 탁 트인 하늘 아래 펼쳐진 살아있는 박물관이라고, 우리의 서울은 결코 복제품이 아닌 원본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 사람이 있으면 정치적 호불호를 떠나 일단 그의 시적 감각만은 인정해 줄 수 있을 텐데, 한순간일지라도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지도 모를 텐데... 그런 일이 당분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으니 참 아쉬운 노릇이다.



** http://tveye.tistory.com/718 예전에 포스팅했던 '지나가면서도 그림 구경을 할 수 있어요' 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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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0.06.22 17:23

얼어붙은 바다 위에서 petersburg diary2010.06.22 17:23



중고등학교 시절 국사 시간, 아관파천과 러일전쟁 얘기가 나올 때쯤이면 꼭 등장하는 표현이 하나 있었다. ‘러시아 제국은 팽창정책의 일환으로 극동 지역의 부동항을 확보하기 위해 한반도에 눈독을 들였고...’ 

극동 지역의 부동항 확보라는 표현은 종종 주관식 시험으로도 나왔다. 대체 ‘부동항’이 뭘까? 주입식 교육의 폐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거다. 곰곰 생각해보면 한자 표현에 의미를 대입해 무슨 뜻인지 헤아릴 수가 있을 텐데 어떤 단어가 주어지면 이해하기 전에 즉각적으로 외워버리는데 익숙해져 있다 보니 어휘의 뜻을 파악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영어도 마찬가지였다. 매일같이 포켓용이라기엔 두툼한 단어장 책자를 들고 다니며 하루에 50개 이상의 영단어를 외우고는 있었지만 그놈의 단어라는 것도 연습장에 까맣게 칠을 해가며 줄줄 외우다 보니 발음도 잘 모르겠고 이 문장에선 비슷한 단어 중 어떤 걸 써야 하는지도 헷갈리고 시간이 지나버리면 분명 무슨 단어장 몇 페이지 몇째 줄에 있었던 단어라는 것까지 기억이 나는데 정작 뜻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다. 물론 그런 책자들에 나와 있는 단어들도 자세히 보면 어근과 어미를 하이픈으로 연결해 하나하나 설명이 붙어 있는 경우가 꽤 있다. 하지만 머리에 구겨 넣어야 하는 지식이 너무 많은 상황에서 그 어근과 어미 등등을 이해해 가며 단어를 외우는 학생은 별로 없었다.
 
게다가 고등학교 때는 러시아어도 함께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헷갈리고 어려웠다. 대체 어근은 무엇이며 어미는 무엇인지, 그 의미 자체가 이해가 잘 안 갔다. 실은 한자든 영어든 러시아어든 그 언어의 문법과 형태론 자체가 어려운 것이라기보다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헤아리고 거슬러 올라가며 공부하는 것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 쉽고 단순한 사실을 나는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얘기가 다른 데로 흘러버렸는데, 어쨌든 부동항으로 돌아가자. 한자를 풀이해보니 무척 쉽다. 얼어붙지 않는 항구. 그럼 애초부터 그렇게 설명을 해주면 좋았을 것을... 그러니까 당시의 러시아는 제국의 팽창을 꾀하며 남하정책을 펴고 있었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얼어붙지 않는 항구가 군사적으로 필요했다는 얘기다. 아니, 민물도 아니고 바닷물인데 그렇게 쉽사리 얼어붙는단 말인가. 러시아가 추운 건 알지만 우리나라도 겨울엔 만만치 않게 춥지 않나? 게다가 러시아에 지리적으로 더 가까운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더 추울 텐데. 그런 우리나라의 바다가 겨울에 얼어붙지 않는다면 러시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극도로 춥다면 호수나 강은 꽁꽁 얼어붙을 수 있다. 한강도 겨울이 되면 얼어붙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 하지만 바다에는 염분을 포함하여 여러 종류의 금속 성분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가. 그렇게 되면 어는점도 훨씬 낮아질 것이다. 남극도 아니고 북극도 아닌데 설마 항구 앞 바다까지 꽁꽁 얼어붙을라구... 뭐 살얼음 정도야 낄 수 있겠지. 부동항이라는 건 그냥 핑계고 뭔가 숨겨진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틈날 때마다 공부를 미뤄놓고 책을 읽거나 소설을 쓰는데 마음이 팔려 있던 모범적이지 못한 학생답게 나는 별의별 상상을 다하며 음모이론을 만들어내곤 했다. 제정 러시아 왕조가 파산에 접어들었는데 조선 땅 어딘가에 어마어마한 보물이 묻혀 있었다든지(초특급 액션 어드벤처!), 장차 러시아를 멸망시킬 운명을 타고 난 예언 속의 영웅이 조선 땅에서 태어나게 되어 있었고 이를 알아낸 러시아 비밀결사에서 애초부터 그 싹을 잘라버리기 위해 은밀히 전쟁을 추진했다든지(정치 스릴러에서 판타지를 아우르는 블럭버스터!), 사실 러시아의 바다아래에는 겨울에만 깨어나는 거대한 바다괴물이 살고 있어서 도저히 한겨울에 함대를 출격시킬 수 없었다든지(이건 캐리비안의 해적을 미리 예고한 것인가?), 부동항 운운하며 러일전쟁을 일으킨 것은 사실 피의 일요일 사건과 그 이후의 혁명을 주도하기 위한 미래의 볼셰비키들의 포석이었다든지... 마지막 이론은 사실 당시에는 가장 그럴싸하게 보여서 많은 공을 들였던 것이었는데 이후 대학에서 러시아 역사 수업을 듣게 되었고 내 논리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여튼 부동항의 필요성에 대해 암기하긴 했지만 뭔가 미심쩍었다. 그래서 나만의 음모이론들을 간직한 채 사춘기 시절을 보냈다. 물론 주관식 시험에 이 문제가 나오면 신념을 멀리하고 러시아 제국과 남하정책과 부동항 확보에 대해 줄줄이 적어 만점을 받았다. 
 

몇년이 흘렀다. 나는 페테르부르크의 바실리예프스키 섬에 있는 낡은 기숙사에 살고 있었다. 귀가 떨어져 나갈 것처럼 추운 어느 날 오후, 옆방에 살고 있던 친구가 잠깐 기숙사 근처의 바닷가에 다녀오자며 꼬드겼다. 추워서 내키지 않았지만 그날따라 하늘이 맑았기 때문에 사진이나 몇 장 찍을까 하고 따라나섰다. 우리 기숙사가 있는 거리는 이름부터가 ‘까라블레스뜨로이쩰레이’ 거리로 번역하자면 배를 만드는 사람들의 거리란 뜻이다. 5분 정도만 걸어가면 바닷가에 도착하는데 덕분에 이 동네에서 겨울을 보내는 내내 살을 에는 듯한 바람과 뼛속까지 파고드는 습기로 엄청나게 고생을 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바다가 사라졌다. 원래 이 해변이 이렇게 평평하고 넓었나? 걸어도 걸어도 바다가 보이지 않았다. 주위는 온통 새하얀 빙원이었다. 흰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지상과 너무나 밝아서 거의 희게 보이는 하늘 사이의 경계조차 모호했다. 머나먼 상공 어딘가에서 내리쬐는 은백색 태양 광선이 발밑의 얼음에 반사되어 번쩍거리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저 너머로 이전에 해변 가장자리에 서 있던 나무 한 그루가 앙상한 나뭇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얼어붙은 바다 위에 서 있었다. 




바다는 넓고 평평하고 온통 희었다. 그리고 견고하게 얼어붙어 있었다. 사방이 광활했고 사방이 백색이었다. 난생처음 나는 하늘과 바다 사이의 경계가 사실은 아주 모호한 것이며, 우리가 둥그런 지구, 중력이 작용하는 입체 안에서 살고 있다고 믿어왔던 것은 어쩌면 환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 몸은 오로지 피부를 타고 흘러들어 내부 깊숙하게 스며드는 차디찬 공기와 머리칼을 헤치고 지나가는 예리한 바람, 그리고 새하얀 빛 속에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드넓은 초원이나 사막, 그리고 눈보라 한가운데 홀로 떨어진 사람들이 느꼈던 감정도 그런 것과 흡사했으리라. 광대한 우주는 우리의 힘으로는 헤아릴 수 없었고 눈이 멀 것 같은 백색 광채 속에서 나 자신의 존재는 극히 희미하게 빛나는 미세한 불꽃같은 것이라는 느낌. 

나의 이러한 감상은 잠시 후 콧구멍 속이 바짝 얼어붙으며 빠지직빠지직 소리를 내고 목구멍까지 타들어가는 듯한 추위 때문에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잠깐 나갔다 오는 거라는 친구의 말 때문에 모자도 쓰지 않고 목도리로 대충 머리를 감싸고 있었던 데다 보풀이 이는 빨간색 더플코트는 전혀 방한이 안됐다. 추워서 덜덜 떠는 나에게 친구는 얼어붙은 바다 위에서 인증 사진을 찍자며 해맑게 웃었다! 아니, 이 사람은 따뜻한 남쪽나라인 부산에서 온 주제에 어째서 서울에서 온 나보다 추위를 덜 타는 거야! 그러고 보니 얘는 모자도 쓰고 있고 나보다 훨씬 긴 코트를 입고 있네!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자 그제서야 내가 바다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타고난 겁쟁이이자 온갖 공포증 환자답게 나는 징징대기 시작했다.

“ 얼음 깨지면 어떡해... ”
“ 이렇게 추운데 어떻게 얼음이 깨진다는 거야. 저 멀리까지 얼어 있는 거 안보여? ”
“ 그래도 혹시 깨지면 어떡해. ” 

이게 다 어린 시절 읽은 잭 런던의 ‘야성의 부르짖음’ 때문이다. 거기서도 개가 끄는 썰매를 타고 얼어붙은 호수인지 강인지를 건너다가 살얼음이 깨져서 인간들과 개들이 몽땅 빠져죽는 장면이 나온다. 그 묘사가 어찌나 생생했던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해 나는 발밑의 얼음이란 그리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고 생각했다. 친구는 발을 굴러도 보고 콩콩 뛰어보기도 하며 얼어붙은 바다의 견고함을 증명하고 있었지만 백번 증명해도 한번 깨지면 그만인 것이다.  

어쨌든 공포에 질린 채, 그리고 너무 추워서 덜덜 떨면서 잽싸게 사진을 찍었다. 그때 찍은 사진을 현상해 보니 친구는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차갑고 맑은 공기를 온몸으로 들이마시며 활짝 웃고 있는데 나는 목도리로 머리를 칭칭 감은 채 억지 웃음을 짓고 있고 어깨와 팔은 엉거주춤하게 구부러진데다 두 눈은 엉엉 울고 있었다.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한 건 딱 하나였다.  

아, 러시아는 진짜 부동항이 필요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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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들은 이번 2월에 가서 찍었던 사진이에요. 저때는 얼어붙은 바다 위에 눈이 잔뜩 쌓여 있었지요. 스키 타는 사람들도 꽤 있었고 아이들은 썰매를 탔죠^^




저 바다의 평소 모습은 아래를 클릭
http://tveye.tistory.com/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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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외국어라는 것은 계속 연습하지 않으면 금방 말문이 막히고 혀가 굳어져 버린다. 나도 러시아어를 전공했고 그곳에 가서 한동안 살기도 했지만 일상으로 돌아와 업무에 찌든 생활을 계속하다 보면 몇 달도 안 돼서 입이 딱 붙어버린다. 오랜만에 다시 페테르부르크에 여행을 가게 되면 러시아어가 잘 안돼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특히 혀가 굳어져버린 게 가장 슬플 때는 바로 먹을 것을 주문할 때 뜻대로 말이 안 나오는 경우이다.  

의외로 조그만 부분에 소심한 나는 옛날부터 물건이든 음식이든 뭔가를 주문하는데 약했다. 특히 러시아에서는 손님이 아니라 주인이 왕이기 때문에 뭔가를 주문하기 위해 노어를 할 때마다 심장이 쪼그라들 지경이었다. 지금은 러시아에도 마트가 많이 생기고 친절한 점원들도 늘어났지만 예전엔 정말이지 무섭게 딱딱거리는 아줌마 점원이 대다수였다. 잔돈 없다고 아예 잔돈 안줄 때도 많았고... 그나마 잔돈을 줄때도 카운터에 동전을 집어던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물건들도 진열대에 있는 것을 골라 바구니나 카트에 담는 것이 아니라 카운터 너머에 진열되어 있고 가격표가 붙어 있는 물건을 가리키며 '저기 오른쪽 두번째에 있는 2루블 20코페이카 짜리 흑빵 한개 주세요' 뭐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해야 했다. 그런데 이것이 보통 두려운 일이 아니다. 처음 가서 노어가 잘 안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노어가 편해졌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어디 무역회사에 가서 저온살균기계와 컨테이너 2박스 운운하는 통역을 할 때보다도, 도스토예프스키와 그의 대심문관과 이반 카라마조프의 반역에 대해 내 의견을 이야기할 때보다도, 가게에 가서 '유지방 3.8%의 파르말라트 상표 우유 0.5리터짜리 하나 주세요'가 두 배는 더 어려웠던 것이다!!! 

만만한 먹거리인 맥도날드조차도 마찬가지다. 그 쉬운 ‘세트 1번 주세요’ 라든지 ‘치킨버거 1개, 콜라 1개 주세요’조차도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특히 자음 발음이 센 러시아어로 원래 영어였던 메뉴를 발음하다가는 종종 혀가 꼬이곤 한다. 붉은 육류를 딱히 즐기지 않는 탓에 패스트푸드점에 가면 치킨버거를 종종 시켜야 했는데 난 이상하게도 이 치킨버거 발음이 너무 어려웠다. 치킨버거는 노어로 ‘취킨부르게르’라고 발음되는데 노어의 ‘취’발음은 한국어의 ‘취’나 영어의 ‘취’ 발음보다 좀 더 센 파찰음이다. 게다가 이것을 ‘치킨버거 하나, 양파는 빼고 부탁해요’라고 주문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 ‘아진 취킨부르게르, 베스 루까, 빠좔루스따!’

아아.. 치킨버거 하나 먹으려다 내 혀 다 꼬인다! 

그러나 이것은 빙산의 일각! 주문하기의 최고봉은 바로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 주문하기였다. 우리나라 서브웨이는 빵도 말라빠지고 참 맛이 없지만 페테르부르크의 서브웨이는 정말 맛있다. 빵이 맛있어서 그럴 수도 있고 시내의 중심인 네프스키 대로에 있는데다 관광객도 많고 회전율이 빨라서 그럴 수도 있다. (근데 돌이켜보면 맥도날드도 러시아가 훨씬 맛있었다. 항상 배고픈 시절이었기 때문일까?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먹어본 맥도날드도 러시아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이곳에서 샌드위치를 주문하려면 기다란 주문대 앞의 점원들을 단계별로 하나하나 통과해야 한다. 먼저 빵을 고르고, 크기를 얘기하고 그다음에는 안에 들어갈 고기류를 고르고, 옆으로 가서 야채들을 고르고, 소스를 고르고, 음료를 주문해야 한다. 이 얘기는 점원을 여럿 거쳐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어려운 단어는 하나도 없다. 기껏해야 호밀빵, 하얀 빵, 이탈리아 흰빵 등에서 하나 고르고, 빵은 절반짜리 사이즈로 달라고 하고, 데리야키 치킨이든 구운 닭가슴살이든 햄&치즈든 선택을 하고, 야채는 ‘피클과 양상추와 양배추, 토마토를 주세요’ 라고 하든가 쉬운 방법으로는 ‘야채 전부!’라고 하든가 아니면 나처럼 양파만 빼고 야채를 전부 달라고 할 수도 있다. 소스는 케첩이든 그냥 머스터드든 허니 머스터드든 마요네즈든 구미에 맞는 걸로 고르면 되고, 점원이 ‘소금을 쳐줄까요?’ 하고 물어보면 ‘아니요, 괜찮아요’ 라고 답하면 되는 것이다. 음료수는 콜라든 사이다든 사과주스든 하나 고르면 되고. 이 과정을 다 거친 후 계산을 하고 나면 종이 포장된 따끈따끈한 샌드위치를 받아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이 나에게는 언제나 지난한 도전이었다. 내가 그랬지 않나, 도스토예프스키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대해 얘기하는 것보다 메뉴 주문하는 게 더 어렵다고... 이렇다 보니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를 제대로 한 개 주문해 한입 베어 무는 순간이면 엄청난 피로감과 이루 말할 수 없는 충만함이 공존했다. 특히 러시아어를 못하는 친구를 데리고 시내 구경을 시켜주다가 서브웨이에 가게 되면 이 부담감은 극에 달한다. (그러면 거기 안 데리고 가면 될 것을, 왜 굳이 나는 여기 서브웨이는 진짜 맛있다며 친구를 끌고 가곤 했던 걸까! 어째서 사서 고생을 했던 걸까!)  

2010년 2월 설 연휴 때 다시 페테르부르크에 갔다. 홀로 떠난 여행이었다. 2년 반 만에 다시 찾은 러시아였다. 역시나 러시아아어가 잘 되지 않았다. 처음 하루 동안은 혀가 굳어서 영어를 더 많이 써야 했다!  

둘째 날, 눈보라가 치던 어두운 겨울 오후에 시내를 쏘다니다 녹초가 된 나는 주린 배를 부여잡고 서브웨이에 갔다. 그리고 다시 도전을 시작했다!

 “ 빵은 이탈리아식 흰빵으로 주시고요, 사이즈는 반개짜리. 데리야키 치킨 넣어주시고, 소스는 허니 머스터드, 소금은 치지 말고 야채는 양파 빼고 전부 넣어주세요. 마요네즈는 필요 없고요. 사과주스 조그만 팩으로 한 개. 포장해 주세요. ”

진짜다. 난 분명히 이렇게 주문했다. 예쁘장한 점원들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주문 전에 미리 연습해 둔 문장들을 술술 늘어놓았다. 대충 이런 단어들을 섞어서 말이다. 이딸리얀스끼(이탈리아 빵), 빨라비나(반쪽), 데리야키 취킨, 묘도바야 고르칫짜(허니 머스터드), 브쇼, 베스 루까(양파 빼고 전부) 등등등... 

주문을 마쳤다! 점원이 생글생글 웃으며 잔돈을 내주더니(이 서브웨이는 관광객들이 많이 들르기 때문에 점원들이 무척 친절한 편이다) 밴쿠버 올림픽 개막 기념이라며 오륜기가 그려진 초콜렛을 한 개 건네준다. 그리고 샌드위치가 나왔다. 뭔가 이상하다. 소스에 푹 젖어 종이 포장지 위로 얼룩이 번지고 있다! 

숙소에 돌아와 샌드위치를 꺼냈다. 의심스런 눈초리로 포장지를 쭉 찢은 후 샌드위치 빵을 양쪽으로 벌려봤다. 케첩과 피자 토마토 소스가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다. 데리야키 치킨은 어디로 가고 싱겁기 짝이 없는 구운 닭가슴살이 한쪽 들어 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어디에서 잘못 주문을 한 거지? 어느 단어에서 발음을 우물거렸던 거지? 역시 파찰음이 연속으로 모여 있는 묘도바야 고르칫짜 때문일까? 그래, 데리야키든 그릴 가슴살이든 둘다 치킨이니 이건 헷갈릴 수도 있다고 쳐... 근데 피자 토마토 소스는 어디서 나온거야? 케첩은 왜 들어 있는 거지? 앗, 한입 먹어보니 허니 머스터드도 들어 있네! 아아 이게 뭐야...  

엉엉.. ㅠㅠ


그래서 2년 반만의 도전은 정체불명의 괴식 샌드위치를 꾸역꾸역 먹는 것으로 끝이 났다. 케첩과 허니 머스터드와 피자 토마토 소스로 범벅이 된데다 빵은 흐물거리고 간이 하나도 안된 닭가슴살과 소스 때문에 곤죽이 된 야채가 들어 있는 샌드위치.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소금이라도 쳐달라고 하는 건데... 

누가 한-러 메뉴 주문 자동번역기라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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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테르부르크의 서브웨이 모습이 들어가 있는 포스팅은 아래를 클릭
http://tveye.tistory.com/11


** 오랜만에 러시아 일기를 한편 썼네요^^ 근데 지금은 저 괴식마저도 먹고 싶군요. 아, 러시아 빵 먹고 싶어요.

** 그러고보니 이것은 7백번째 포스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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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바로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홀 건물입니다. 램프들이 예쁘죠?

옛날엔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이라고 했었죠. 제 입에는 뻬쩨르부르그 필하르모니야 라고 붙어 있습니다.
건물 앞에는 뮤직샵 간판이 있네요.

옛날에 자주 갔었던 곳이죠. 페테르부르크 필도 우리 나라 들어올땐 엄청 비싸지지만 막상 그곳에 살때는 그래도 저렴한 편이라 연주 들으러 종종 갔었어요.

특히 맨처음 연주회 갔던 날을 잊을 수가 없네요. 혼자 갔었는데 그때 연주곡은 자그마치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 신나게 듣고 나와 네프스키 거리에서 지하철을 탔는데 글쎄 가방이 열려 있고 여권이랑 비자가 들어있던 다이어리가 통째로 없어졌던 거예요!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전혀 알 수가 없고.. 아마 소매치기가 지갑인줄 알고 가져갔나봐요

그때는 어렸으니까.. 울고불고 (-.ㅠ) 지금도 물론 그렇지만 그땐 더더욱 러시아에서 여권비자 잃어버리는 게 큰 문제였거든요. 대사관에 가야 하는데 대사관은 모스크바에 있고.. 여권이랑 비자 없으면 불시검문에서 걸려 닭장차에 끌려가야 하고!!!

그 다음날부터 페테르부르크 도심의 경찰서란 경찰서는 다 돌았지요. 여길 가면 여긴 우리 관할이 아니니 저리로 가라부터 시작해 담당자가 휴가다, 커피 브레이크다 등등등.. 필하모닉에서 가장 가까운 경찰서로 갔더니 그건 우리 부서가 아니니 저리로 가라고 해서 그리로 가고, 그리고 가면 그건 지하철에서 당한 거니 지하철범죄부서로 가라고 하고.. 등등등.. 그땐 한달도 안됐을 때라 러시아어도 잘 안돼서 정말 죽음이었죠. 뇌물이라도 찔러줘야 했던건데 물정도 모르고 -_-

그래서 결국 아는 분께 도움까지 요청했는데 천우신조인지 어떤 아가씨가 공원에서 산책하다가 저의 다이어리를 주웠다고 연락이 왔어요. 지갑이 아니니까 소매치기가 버리고 갔던 거예요. 바보 같은 녀석, 여권이랑 비자를 얼마나 비싸게 팔수 있는데 --+

그 아가씨는 정말 천사처럼 예뻤지요. 사례금도 안 받고 가버리셨는데 분명 복받으셨을거예요^^

어쨌든 나중에도 페테르부르크 필 연주회는 종종 갔는데, 갈때마다 소매치기가 두려워 몸을 움츠렸지요^^
다시 가서 음악 듣고 싶네요~

저 뮤직샵, 지금은 씨디, 디브이디 등등을 팔지만 옛날엔 복사판 테이프들을 팔았죠. 거기서 샀던 차이코프스키 발레음악 테이프들과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 테이프는 늘어날 때까지 들었어요^^ 그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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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이전에 무랏 나쓰이로프에 대한 얘기(http://tveye.tistory.com/263)를 했을 때도 언급했지만 러시아에서 살던 당시 러시아 음악 채널은 제 생활의 일부였습니다. 암울하고 외로운 겨울날이면 친구의 따뜻한 온기와 더불어 음악과 책만큼 위안이 되는 것이 없으니까요. 심지어 마린스키의 발레나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의 연주회보다도 더욱 삶의 일부로 스며드는 것들이죠.

특히 1990년대 후반에 세상 물정 모르는 20대 초반 학생으로 러시아에서 산다는 건 꽤나 재밌으면서도 힘든 일이었고 그때 유치하면서도 매력적인 러시아 뮤비들은 정말 위안이 되었습니다. 왕자님 스타일의 긴머리 발라드 가수에게 푹 빠지기도 하고..^^

2006년 다시 페테르부르크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기숙사는 옛날 기숙사에 비해 훨씬 업그레이드되어 있었고, 이제 저도 오래전의 그 아이와 비교한다면 사회 생활도 좀 한데다 물정도 조금은 더 잘 알게 되었죠.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어느만큼은 겁도 났고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휴직을 하고 훌쩍 떠나온데다 정말 혼자 왔기 때문에 주변엔 아무도 없었으니까요. 게다가 이전에 물정모르고 돌아다녔을때와는 달리 이제는 인터넷과 방송 덕에 주변에 우글거리는 스킨헤드니 뭐니 하는 우울한 뉴스도 너무 많이 봤고^^;

게다가 첫날이었습니다. 시차와 모기 때문에 뒤척이며 잠을 설치고, 간신히 새벽에 잠이 들었을땐 지하철역에서 스킨헤드들에게 둘러싸여 칼로 찔리는 악몽을 꾸고..

그날 아침은 싸늘하지만 햇살이 스며드는 날씨였습니다. 오전 10시 쯤 학교 등록을 위해 저를 데려다 줄 에이전트가 오기로 되어 있었어요. 밥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서 전날 한밤중에 급히 사왔던 생수와 요구르트를 먹고 있었습니다. 기숙사 방에는 아주 작은 텔레비전이 있었기 때문에 리모컨을 눌러 여기저기 채널을 돌리고 있었지요.

러시아 방송을 볼 때마다 전 경이로움과 향수에 젖곤 합니다. 90년대 말에 돌아와 공부를 하기 위해 엄청나게 커다란 접시안테나를 설치해 잠깐 러시아 방송을 집에서 봤었는데 주파수 맞추기가 어찌나 힘든지.. 학교에서 가끔 보기도 하고.. 사실 인터넷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방송은 참 제대로 보기가 힘들어요. 요즘도 그게 좀 아쉽습니다.

하여튼 오랜만에 러시아 방송들을 보게 되어 반갑기도 하고, 너무 오랜만에 돌아온 터라 아직 모든 것이 얼떨떨하고, 시차로 머리도 아프고, 자각하진 않았지만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두려움과 혼란스러움도 스멀거리고 있던 순간이었습니다. 드디어 러시아 뮤비 채널을 찾았습니다. 좋아하는 왕자님 가수 드미뜨리님이 나오시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그리고 이 뮤비를 봤습니다.

얘네는 전혀 모르는 애들이었어요. 한동안 러시아 쪽에 관심을 두지 못하며 살던 동안 데뷔한 그룹이겠죠. 요즘 보면 옛날에 비해 러시아 뮤비도 상당히 매끈해졌고, 할리우드 냄새를 폴폴 풍기는 애들도 등장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옛날에 보던 사람들도 여전히 나오고.. 반갑기도 하고 새롭고 어색하기도 한 기분이 들죠.

모르는 어린 남자애들이 나와서 노래하는 이 뮤비를 보는 동안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갑자기 즐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아, 나는 이제 페테르부르크에 있구나. 정말 많은 것이 변했나보다. 나 자신도, 그리고 러시아도, 그리고 여기 음악도, 애들도. 그 자각은 이상하게도 즐겁고 가벼운 것이었습니다.

싸늘한 러시아의 찬 공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도시를 배경으로 귀엽고 풋풋한(잘 보면 수염난 애도 있고 안 귀여운 애도 있지만^^;) 남자애 네명이 나와서 다분히 엠티비 뮤비식으로 노래를 합니다. 하지만 뭔가가 더 있어요. 아마 그건 이 아이들이 노래하는 방식 어딘가에 묻어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전 사실 백스트리트보이즈도 엔싱크도 테이크댓도 안좋아했거든요. (유일하게 좋아했던 그룹은 제 세대라면 거의 모두가 좋아했던 뉴키즈온더블럭^^;)

아마 서정적인 노랫말과 애들에 따라 편차가 심한 가창력에도 불구하고 청량하게 느껴지는 음색과 멜로디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아직 시차도 적응되지 않은 몸으로 낯선 기숙사방 창가에 앉아 바깥으로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는데 남자애들의 이런 노랫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거죠.

네게 시를 선물할게, 너와 나에 대해, 사랑에 대해.
네게 노래해주길 원하니? 사랑 노래를 선물해주고 싶어~

굉장히 단순하면서도 순수하죠? 아직도 이런 식의 직설적이면서도 서정적인 노랫말을 대놓고 속삭일 수 있다니. 어찌보면 우리에겐 촌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그 순간, 오랜만에 돌아온 러시아의 공기는 정말 러시아의 공기로 느껴졌고 저는 갑자기 행복해졌어요. 다 잘될 거야, 힘내자 하는 주문이 들려오는 것 같았죠.

저는 여전히 이 아이들을 좋아하고 이 뮤비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다시 러시아에 돌아가고 싶어져요.

꼬르니(корни)란 그룹입니다.
제목은 ‘네게 노래해주길 원하니?’(хочешь я тебе спою)
뮤비 한번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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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31 09:22

난방 안되던 날 petersburg diary2008.10.31 09:22

며칠 새 무척 추워졌다. 새벽에는 빗줄기가 지붕을 때리는 소리에 놀라 깼다.
출근길에 싸늘한 공기와 차디찬 바람, 온몸으로 스며드는 습기를 마주하자 이맘때의 러시아 생각이 물씬 났다. 오늘은 정말 전형적인 페테르부르크 가을 날씨 같다. 춥고 음산하고 습하고.

아래는 재작년 10월 중순 일기이다. 딱 이런 날씨에 난방도 안돼서 덜덜 떨던 날이었다.

(쉡첸코 기숙사 건물, 오전 9시 즈음)

2006년 10월 17일 화요일

겨울 날씨. 코트 꺼내 입음.

돌아왔더니 기숙사 현관에 '오늘과 내일 난방 및 온수 중단'이라고 씌어 있었다. 이눔들이 미쳤나, 지난주에는 덥도록 난방을 해주더니 막상 추워진 이 순간 난방을 중단하다니. 난방이야 그렇다 치고 온수까지 중단해 버리면 어쩌란 말인가, 역시 러시아야.

기분나쁜  뉴스와 기분좋은 뉴스 각각 1가지.

2004년 가을에 일어난 베트남 남학생 살인사건이 오늘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이 났다. 네오나치 청소년들이 그룹을 지어 기숙사에 들어가는 베트남 학생을 칼과 파이프로 마구 때려 죽인 사건인데 총 14명이 재판에 회부되었다. 결과?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이다.

재판정 앞에는 동양 학생들이 떼지어 모여 결과를 기다렸고 이런 어이없는 결과에 모두 분노했다. 올해만 해도 이런 재판이 무죄판결이나 가벼운 판결로 끝난 게 벌써 3번째다. 정말 화가 난다. 죽은 학생의 가족들과 친구들은 어이없어 하고 있고 범인들 변호사는 아주 훌륭하고 깨끗한 검찰과 정의로운 사법 판결이라고 칭찬하고 있다. 미친 놈들 -_-

그나마 기분이 나아진 것. 아마 오늘 서울에서 러-한 외교회담이 있었던 모양이다. 경제협력, 북한 문제 등.. 그 내용은 그냥 넘어가고.. 보도를 마치면서 서울에 파견된 러시아 통신원이 한국은 대단한 나라다, 전쟁 후 몇십년 사이에 이렇게 경제적 번영을 이뤄냈고, 아름답고 다이나믹하고 운운.. 기술 발전이 놀랍다, 러시아도 바로 이런 모습으로 발전해야 한다 운운 아주 드물게 칭찬 일색이었다. 낯간지럽고 조금은 어이없긴 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서울 모습 보니 그립다. 그리고 여기서 서울 칭찬 뉴스를 보니 그래도 기분이 조금은 좋아진다. 역시 나와 있으면 어쩔 수 없는게지..

으응? 어디선가 갈치조림 냄새가 난다. 다른 방 한국애들이 해먹나? 여긴 갈치 안 파는데.. 아, 갈치조림 먹고파.

** 수요일 아침 **

난방이 안되는 이유를 알았다. 아침 뉴스를 보니 어느 구역에선가 파이프가 터져서 온수가 한강으로 흘러넘친 덕에 몇군데 구역에서 난방이 전혀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눈 온단다 -_-

추워서 앗짱팩 붙이고 이불 두 개덮고 자느라 늦잠 잤다.

** 아래는 저 당시 기숙사 앞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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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랏 나쓰이로프(Мурат Насыров : 1969. 12. 3 - 2007. 1. 19)를 추억하며


그게 무엇이든, 첫 번째라는 것은 아주 소중하고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게 된다. 그것이 사랑이든 우정이든, 혹은 첫 입맞춤이든, 처음으로 눈을 맞춘 나만의 애완동물이든, 혹은 처음으로 마음을 사로잡고 열기에 휩싸이게 만든 소설이든.

1997년 가을. 나는 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에서 연수를 받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보는 외국 생활이었고 러시아어는 서툴렀으며 밥도 제대로 할 줄 몰랐다. 함께 갔던 친구는 한달만에 기숙사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하숙집을 얻어 나갔고 나는 홀로 썰렁하고 춥고 열악한 기숙사 방에 남았다.

아마 10월 초 즈음이었을 것이다. 날씨는 급작스럽게 추워지고 거의 매일같이 비가 왔으며 난방이 되지 않아 커다랗고 텅 빈 기숙사 방 안에서 내의와 두터운 츄리닝을 껴입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덜덜 떨고 있던 시기. 화장실 변기는 툭하면 망가져서 이제는 변기 고치는 데 기술자 수준이 다 되어가던 때였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가 나의 러시아 생활 중에 가장 우울하고 쓸쓸하던 시기였다. 열심히 공부하고는 있는데 러시아어도 전혀 느는 것 같지 않고, 혼자라 외롭고, 날씨는 갈수록 안좋아지고 햇빛 보기도 어렵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전부터 간헐적으로 나를 괴롭히던 우울증이 재발해 참 힘들었던 때였다. 그땐 나도 어렸고 지금보다 훨씬 어두웠고 심각했다. 어렸기 때문에 나는 진지하고 심각해지는 것이 특권이라고 생각했다.

잘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그렇게 힘들었던 건 첫째로 어렸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혼자였기 때문이다. 혼자라는 것은 축복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가장 격렬한 독이 된다. 게다가 갓 스물을 약간 넘긴 자의식에 찌든 어린애에겐 더 그렇다.

나는 텔레비전도 잘 보지 않았고 특히 코메디나 토크쇼, 드라마 같은 것을 싫어했는데 그러다보니 기숙사 방에 있는 텔레비전(물론 내가 돈을 들여 장만한 것)으로 가끔 보는 채널은 뮤직비디오 채널이었다. 그땐 90년대 후반이라 러시아가 처음으로 자본주의의 온갖 다양하고 나쁜 것들을 여과없이 받아들이고 있을 때였다. 할리우드 가수들을 어설프게 따라하며 화장을 떡칠하고 나타나 울긋불긋 촌스러운 뮤직비디오들이 많이 나왔다. 반쯤 비웃으며 건성으로 보다가 어느날 한 남자 가수의 뮤비를 보게 되었다.

무랏 나쓰이로프(Мурат Насыров)란 가수였다. 날씬하지도 않은데다 얼굴도 못생긴 편이고 참 촌스러웠다. 게다가 그가 부른 노래란.. 그때 러시아 대중음악계에선 잘나가는 팝송을 리메이크하는 게 유행이었는데 지금으로선 생각 안나지만 97년도엔 꽤 인기있었던 브라질인지 남미 계열의 댄스곡을 리메이크한 거였다.

아래의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 어떤 노래인지 기억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심지어 그 뮤비라는 것도 아담스 패밀리를 어설프게 패러디하여 뜬금없는데다 배경으로 등장하는 곳도 어찌나 암울한지.. 그야말로 B급 싸구려 뮤비가 따로 없었다. 제목은 ‘мальчик хочет в тамбов’(말칙 호촅 브 땀보프- 소년은 땀보프-러시아의 어느 지명-로 가고 싶어하네)였는데 제목은 또 왜 그런지 이해가 안 갔다.



하지만 노래는 참 잘 불렀다. 그루브도 잘 타고 목청도 좋고 목소리도 괜찮았다. 오히려 원곡보다 훨씬 잘 부르는 거였다. 원곡은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 사람의 버전은 참 흥겹고 신났다.

그래서 ‘아, 이런 가수가 있구나. 노래는 잘 하네’ 하는 정도로 그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또 멍하게 채널을 돌리다가 흑백 뮤직비디오를 봤다. 맨처음 나를 사로잡았던 건 그의 목소리였다. 심금을 울리며 파고드는 강렬하고 호소력 있는 목소리. 구성진 멜로디. 한국인의 정서를 정면으로 후벼파는 스타일의 노래였다. 노래는 또 어찌나 잘하는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노래가 후반부로 접어들 때 쯤엔 가슴이 저릿해서 엉엉 울고 싶었다.

나중에 뮤비가 끝날 때 제목과 가수 이름을 보고서야 알았다.

кто-то простит(크또-또 쁘로스찟-누군가는 용서해줄거야),
Мурат Насыров(무랏 나쓰이로프
)

“ 어라, 이 사람 그 노래 부른 사람이네, ’땀보프로 가고파요‘ 노래 부른 사람. 무랏 나쓰이로프. 흑백처리하고 머리로 얼굴 가리니까 좀 나아보이네. ”

그리고는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 아아, 이 노래 너무 좋다... ”

얼마 후 나는 맞은편 방에 사는 한국인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이 친구가 바로 이전 러시아 일기의 ‘나의 첫 발레’와 초상화 이야기, 초원의 옛날얘기 동화책 에피소드 등에 등장한 그 친구다. 친구를 사귀게 되니 좋았다. 나보다 한 살 많은 친구였는데 처음으로 언니를 갖게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 언니는 작년에도 러시아에 두어달 단기 연수를 왔던 적이 있어 나보다 경험도 조금 더 많았다.

수업이 끝난 후 우리는 기숙사에서 두세 정거장 떨어진 마트에 갔다. 말이 좋아 마트지 그때의 마트란 건 참 후진 수준이었다. 그래도 그 동네에선 꽤 좋은 곳으로 손꼽히는 곳이었고 가격도 조금 비싼 편이었다. 그곳의 이름은 ‘아약스’였다.

아약스 내부 한켠에는 조그마한 음반가게가 있었다. 이것도 말이 좋아 음반가게지 레코드나 cd는 찾아볼 수 없고 복사판 테이프들을 잔뜩 쌓아놓고 파는 곳이었다. 그 가게 앞에 왔을 때 나는 퍼뜩 그 노래를 생각해냈다. 그 가수의 테이프를 사고 싶었다. 하지만 그땐 소심한데다 가게에서 물건 사는게 너무 무섭고 싫어서 도저히 ‘무랏 나쓰이로프 테이프 있어요?’라고 말할 용기가 안났다. 그러자 나를 위해 친구가 ‘무랏 나쓰이로프 테이프 주세요’ 라고 말해주었다. 무뚝뚝하게 생긴 주인은 우릴 힐끗 보더니 ‘뭐, 이거? 무랏?’ 하고는 테이프를 하나 건네주었다.

그게 나의 첫 러시아 가수 음반이다. 무랏 나쓰이로프의 복사판 테이프. 빛바랜 칼라로 복사된 테이프 표지는 케이스 안에 구겨져 있었고 가사고 뭐고 아무것도 없었다. 테이프는 척봐도 해적판이었다. 제목은 кто-то простит(크또-또 쁘로스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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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의 그 테이프 표지)


나는 그 테이프를 가지고 기숙사 방으로 돌아와 여러번 들었다. 노래는 좋았다. 그리고 그 테이프를 살 수 있도록 대신 주문을 해준 친구가 너무나 고마웠다. 그래서 그 노래가 더 좋게 느껴졌다.

이후 내겐 훨씬 더 좋아하는 가수가 생겼다. 밥먹듯 헤어스타일을 바꾸던 긴 금발머리의 미남자에 하얀 루바슈카와 가죽바지가 잘 어울리는 왕자 타입의 스타일리쉬한 가수였다. 이름은 드미뜨리 말리꼬프. (이 사람 얘긴 나중에 한번 자세히 하겠다) 친구 덕에 러시아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에도 재미를 붙였고 말도 늘기 시작하고 러시아 생활에도 적응하기 시작해 하루하루가 훨씬 즐거워졌다.

그리고 무랏 나쓰이로프와 그의 노래는 이전만큼 나를 감동시키지 않게 되었다. 가끔 방송에 나오는 그를 보면 안타까워하며 ‘살좀 빼고 스타일리스트 좀 붙으면 훨씬 나아질텐데 관리 좀 하지..’ 하고 혀를 차곤 했다. 한번은 수업 시간에 선생님에게 그 뜬금없지만 신나는 노래인 ‘мальчик хочет в тамбов’(말칙 호촅 브 땀보프)의 가사를 받아적자고 요청했다. 실은 대체 왜 그 소년이 땀보프에 가고 싶어하는지 궁금해서였다. 하지만 아무리 가사를 뜯어봐도 이유를 알수가 없는데다 잘 들어보니 노래 맨 마지막에는 ‘그는 이제 땀보프에 가고 싶어하지 않아’라고 하며 끝나는 거였다. 그래서 친구와 나는 웃어버렸고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도 드물게 그 노래가 생각나거나 랜덤으로 엠피쓰리를 재생시키다가 그 노래가 나오면 ‘대체 왜 땀보프인 거야’ 라고 웃었다.

2006년에 다시 갔을 때도 나의 관심은 오랫동안 좋아했던 그 왕자님 스타일의 가수 드미뜨리에게 쏠려 있었다. 무랏 나쓰이로프는 내게서 잊혀졌다. 가끔 방송이나 신문 기사에서 그의 근황이나 그의 노래들에 대한 얘길 봤지만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다.

어제, 이유없는 향수에 사로잡혀 유튜브에 들어가 10년 전 좋아했던 러시아 뮤직비디오들을 찾아보았다. 대부분은 드미뜨리의 뮤비들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그 신나는 노래 말칙 호촅 브 땀보프와 구성진 노래 크또 또 쁘로스찟이 생각나서 열심히 무랏의 이름을 쳐서 검색해봤다. (유튜브란 건 정말 훌륭한 사이트다) 10년만에 다시 보는 그 뮤비들은 더 이상 촌스럽거나 유치하지 않았다. 이미 오래된 노래가 되어버렸기에 그 빛바랜 기묘함은 그저 오래된 뮤비의 매력으로 변모했다.

뮤비를 보며 향수에 젖어 있다가 댓글을 봤다.

“ 저 아름다운 목소리.. 얼마나 매력적인 사람이었는지.. "
" 왜 하늘은 가장 훌륭한 사람들을 먼저 데려가는 걸까요 ”

너무 놀란 나는 다른 뮤비들을 검색해봤다. ‘무랏 나쓰이로프를 추모하며’라는 뮤비들이 줄줄이 달려 나왔다. 구글링을 해보고 알았다. 그가 세상을 떠났음을. 2007년 1월 19일. 아파트 베란다에서 추락해 사망했음을. 자살로 추정되는 죽음이었지만 평소 우울증도 없었고 자살할 이유도 없었다는 것을. 중앙아시아 태생 이슬람 교도였기에 크나큰 죄악으로 여겨지는 자살을 할 리가 없다며 의문이 제기되었다는 것을.

그는 내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러시아 가수, 처음으로 테이프를 샀던 가수였다. 처음으로 러시아에서 사귄 친구에게 처음으로 뭔가 부탁을 하게 했던 가수였다.

이제 그는 없다. 그가 세상을 떠난 건 벌써 1년 반 전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의 노래를 다시 듣고 있다. 나와 그는 서로 얼굴을 마주대한 적도 없었고 인사 한번 나눈 적이 없다. 나는 그의 번듯한 cd를 산 적도 없다. 그저 복사판 테이프를 하나 샀고, 힘들고 쓸쓸하던 그 시절 잠시 그의 노래로 위안을 받았을 뿐이다. 수업 시간에 그의 노래 가사를 알려달라고 한 후 왜 소년이 땀보프로 가고픈지 혹은 왜 결국 안가겠다는 건지 궁금해했을 뿐이다. 그리고 가끔, 오래전의 러시아 생활에 대한 향수에 사로잡힐 때마다 곁다리처럼 그의 노래를 떠올렸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매우 슬프다. 그것이 무엇이든, 어떻든 간에 첫 번째 무언가는 무척 소중한 것이고, 그것을 잃는다는 것은 아주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

명복을 빌며, 무랏. 부디 평안하시기를.


아래는 кто-то простит(크또-또 쁘로스찟). 나를 사로잡았고 울게 만들었던 그 노래다. 뮤비는 결국 못 찾았고 라이브 버전만 찾았다. 옛날 라이브가 아닌 모양이다, 무랏이 훨씬 스타일리쉬해진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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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4 23:36

바람과 눈의 도시 petersburg diary2008.07.04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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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2년 전 10월 마지막 날 페테르부르크에서 썼던 일기이다.
당시에는 매일 일기를 썼는데 웹진에 연재했던 러시아 일기의 기본적 토대가 되었다.

이번주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이래저래 힘든 일이 많았다.
오늘도 늦게 집에 돌아왔고, 업무 자료를 확인하느라 컴퓨터를 켰다가 우연히 이전의 페테르부르크 일기들을 훑어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 10월 30일의 짧은 일기가 마음에 밟혔다.

그날은 몹시 추웠던 날. 제대로 된 첫눈이 왔던 날이었다.
이건 내 일기라서 페테르부르크 대신 뻬쩨르부르그라고 되어 있다.
'마르쉬'라는 건 '마르쉬루트카'(미니버스 : 마을버스랑 비슷하나 택시처럼 아무데서나 잡고 세워준다)를 내맘대로 줄여부르는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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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30일 월요일 : 바람과 눈의 도시


어젯밤에는 어째서인지 열이 나서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아픈 건 아닌데.. 그 여파로 하루종일 너무 졸리고 피곤했다.

섬머 타임이 종료되었다. 아침에 버스 기다릴 때 밝은 건 좋은데 수업 끝나고 네시도 안됐는데 슬슬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걸 보니 우울하다. 생각해보니 옛날에도 이맘때부터 이렇게 어두워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게다가 정말 추운 날씨였다. 아침 기온은 영하 2.5도 가량. 오후 기온은 영상 1도라고 뉴스에 나오는데 아무래도 거짓말 같다. 바람이 너무 강하게 불어서인지는 모르지만 돌아올 때 너무 추워서 뼛속까지 한기가 들었다. 뻬쩨르부르그의 이 습한 바람은 여전하구나.

수업 마치고 정류장에서 무려 40분 가량 버스를 기다렸다. 오늘 따라 147번 버스가 안 온다. 지난번 마르쉬 사고 이후 불안해서 웬만하면 버스를 타고 가는 편인데, 오늘은 기다리다가 너무 추워서 할 수 없이 마르쉬를 탔다. 사람이 많아서 역방향 좌석에 앉았더니 멀미 나고 허리 아프다 =.=

바람이 어찌나 거세게 불던지. 모자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두개골 속까지 멍멍했다. 누가 늪지대 도시 아니랄까봐, 바닷가와 강변 도시 아니랄까봐 정말 이놈의 바람은..

돌아와서 뉴스 보니 오늘 낮에 뻬쩨르에 다시 폭풍 경보가 발효되었다고 한다. 그럼 그렇지..

조금만 더 추워지면 두건을 쓰고 그 위에 모자를 써야 할까보다. 그리 오래 있지도 않을 거니 털가죽 모자 살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사실 여기가 모피나 가죽이 좀 싼 편이긴 한데, 막상 한국 가면 그 날씨에 잘 쓰지 않을테니.. 옛날에 여기서 사온 털부츠, 이태리제임에도 불구하고 싸게 샀으나 한국에선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갈때나 가끔 신는다) 그래도 난 은회색 모피모자가 갖고 싶어라..

돌아와서도 온몸에 오한이 나길래 열심히 저녁을 먹고 뜨거운 차도 한 잔 마셔주고 원기 회복.

환기 시키려고 열어두었던 창문을 닫으려고 보니 바깥 길바닥이 하얗다. 이제 6시면 완전히 캄캄해지기 때문에 처음엔 긴가민가 했는데, 잘 보니 눈이 내리고 있다. 벌써 길 위에 한 겹 쌓였고 창틀 밖에는 꽤 수북하게 쌓였다. 올해 보는 첫눈이군. 이러려고 그렇게 추웠나보다. 아, 내일 아침 길 엄청 밀리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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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기숙사 창 너머로 찍은 사진. 눈이 이렇게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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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테르부르크 설경은 아래를 클릭
http://tveye.tistory.com/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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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일기 16

돔 크니기에서 눈물이 글썽글썽해지면 어떻게 하지?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난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토끼 같은 노어과 학생이었고 제대로 노어 공부 좀 해보겠다고 휴학을 한 후 훌쩍 러시아로 날아갔었다. 페테르부르크의 아름다움과 훌륭한 에르미타주, 대문호의 향기가 느껴지는 러시아 문화의 감동!!! .. 보다도 더욱 절실하고 고통스럽게 나를 맞아주었던 것은 소련 붕괴 이후의 90년대 러시아의 혼란, 혹독한 추위와 기후, 해가 거의 보이지도 않는 어둠, 무뚝뚝한 사람들 등 일상적인 생활의 어려움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기숙사 옆방에서 한국 친구를 만났고 우리는 의기투합하여 서로를 아껴주며 잘 지내게 되었다. 생전 처음 부모님 곁을 떠나 그것도 타국에서 고생하며 사는 입장으로서는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몇달 후 우리는 돔 크니기에 가서 책들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이제 어느 정도 적응도 했고 둘이 워낙 친해진데다 다른 친구들도 사귀고 해서 무시무시한 겨울이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다. 갑자기 친구가 나를 손짓해 부르더니 하늘색 표지의 커다란 동화책을 펼쳐 보여주는 것이다.

" 이거 봐봐, 너 이런 거 좋아할 거 같아. 찡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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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옛날 이야기들'이라는 책이었다. 작가는 유리 코발.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내용도 전혀 몰랐다. 나는 친구가 펼쳐준 제일 첫장의 작가 서문을 읽어봤다. 그 내용을 번역하면 아래와 같다.


초원의 옛날 이야기들

지은이 : 유리 코발
아르구스 출판사, 모스크바, 1996


 이건 말입니다..

 아주 옛날 일입니다.

 내가 아직 아프기를 좋아하던 시절이었지요. 너무 심하게 아픈 거 말고요, 병원에 가서 주사를 열 대나 맞을 만큼 아픈 게 아니고요 쪼끔 아픈 거 말예요. 침대에 가만히 누워서 레몬을 띄운 차를 마실 수 있을 만큼만 말이지요.

 저녁이면 일터에서 돌아온 엄마가 머리맡으로 달려오셨지요.

 “ 세상에, 우리 아가... 어떻게 된 거니! ”
 “ 뭐 아무것도 아냐, 괜찮아. ”
 “ 차를 끓여주마! 진한 차를 마셔야겠다! ”

 엄마는 걱정스럽게 소리치곤 하셨지요.

 “ 괜찮아, 엄마. 그냥 놔둬. ”
 “ 귀여운 내 아가야, 우리 아가... ”

 엄마는 날 꼭 안고 입맞춰주셨고 난 아픈 척 조그맣게 끙끙거리곤 했지요. 얼마나 행복하던 시절이었는지요..

 그리고 나서 엄마는 내 침상 곁에 앉아 뭔가 이야기를 해주시거나 종이조각에 작은 집과 암소를 그려주셨지요. 엄마가 그릴 줄 아셨던 건 그게 전부였답니다, 작은 집과 암소 말이에요. 하지만 난 지금껏 살아오면서 작은 집과 암소를 우리 엄마보다 더 잘 그리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지요.

 난 자리에 누워서 끙끙대며 자꾸만 졸라댔지요.

 “ 집 하나만 더! 암소 한 마리만 더! ”

 그리고 종이조각 위에는 엄청나게 많은 암소들과 작은 집들이 나타났지요.

 그리고 나서 엄마는 옛날 이야기를 해주셨지요. 신기한 이야기들을요. 다른 어느 곳에서도 결코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지요.

 많은 세월이 흘렀답니다. 난 엄마가 엄마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하지만 어린 내겐 그 모든 게 옛날 옛날 이야기처럼 들렸던 것이지요.

 시간은 무척 빠르게 지나갔지요. 해가 가고 날이 갔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번 여름에 난 무척 아팠지요. 여름에 앓는다는 건 무척 속상한 일이랍니다.

 난 침대에 누워 창 밖의 아름다운 자작나무들을 바라보면서 엄마가 해주신 이야기들을 생각했지요. (그리고 다음 장부터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바로 엄마의 이야기들이랍니다)..


난 갑자기 어깨를 떨며 울기 시작했다. 엄청나게 엄마가 그리웠다. 한 페이지 밖에 안되는 짧은 글이었고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였는데도.

나와 친구는 둘다 그 책을 한권씩 샀다. 그리고 기숙사로 돌아와 불편한 나무 합판 침대에 누워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작가는 중앙아시아 초원에서 일어나는 환상적이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그리고 있었다. 재미있는 얘기가 정말 많았다. 세마리 매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악마와 계약한 병사 같은 친숙한 러시아 민담 풍의 얘기들도 있었고 초원의 학교 선생님인 엄마(작가의 엄마의 엄마)와 주인공 소녀(작가의 엄마)의 이야기들, 초원 사람들의 이야기, 늑대와 혁명가와 말안듣는 염소 얘기 등등. 삽화도 너무나 따스하고 예뻤다.

이 책은 나의 보물이 되었다. 지금도 간혹 러시아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펼쳐보곤 한다. 어느 페이지를 펼치든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 책이다. 하지만 보석처럼 빛나는 그 많은 이야기들 가운데서도 가장 나를 사로잡고 내 마음을 감동시키는 건 바로 저 서문이다. 간결하고 무심한듯 씌어진, 하지만 엄마 곁을 떠나본 사람만이, 아플 때 혼자이고 엄마가 곁에 없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아는 사람만이 강렬하게 공감할 수 있는 저 미묘한 향수와 외로움.

아직 이 책은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다. 종종 나는 이 책을 번역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저 서문을 읽는 순간 나는 어린 아이로 돌아간다. 그리고 엄마가 무척 보고 싶어진다. 엄마라는 이름은 세상 어디서든 똑같은 것이다.



** 첨부한 책 이미지는 2006년도 신판이다. 러시아 온라인 서점을 뒤져보니 내가 샀던 판본은 보이지 않고 저런 분홍색 표지 판본과 아주 오래된 판본들만 보인다 **

** 이 글은 웹진용 원고는 아니고, 원래는 books 폴더에 넣으려던 글인데 내용을 보니 러시아 일기에 더 어울리는 것 같아 그쪽으로 옮기게 된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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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07.12.20 09:43

은회색 털모자를 쓴 아이 petersburg diary2007.12.20 09:43

러시아 일기 15

은회색 털모자를 쓴 아이



10월이 시작되면 페테르부르크는 이미 겨울의 어둠에 뒤덮인다. 백야는 머나먼 과거 속으로 사라지고 도시는 흐릿한 어둠과 눈보라에 휩싸이는 것이다. 내가 강의를 들었던 스몰니 사원은 꽤 멀어서 어두컴컴한 아침마다 미니버스를 타러 나가곤 했다.

함께 버스를 타고 가는 학생들은 대부분 유럽 애들이었는데 당연히 나보다 나이도 어린 편이었다. (그래도 난 꿋꿋하게 나의 동안의 힘을 믿고 어린 척, 그들 또래인 척 앉아 있었다) 특히 영국 애들이 많았다. 이 친구들은 걸핏하면 밤새 노래를 부르고 술을 퍼마시며 시끄럽게 떠들어대서 내심 '뭐가 신사의 나라야, 이 훌리건 녀석들!' 하고 투덜대며 얄미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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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너머로 보이는 페테르부르크의 아침 풍경들


그런데 내 곁에 가끔 앉던 영국 남자애가 하나 있었다. 스물 한두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청년이었다. 이 친구는 하숙을 하는 모양인지 기숙사 앞이 아니라 볼쇼이 대로 부근에서 버스를 탔다. 내 자리는 뒤에서 두 번째 창가였는데 몸을 옆으로 돌려 사진을 찍기 편했다. 다들 끼리끼리 앉는 분위기인데다 버스도 작아서 자리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 청년은 가끔 내 옆에 앉았다.

그 애는 중간에서 혼자 탔기 때문에 다른 애들처럼 시끄럽게 떠들지도 않았다. 무척 조용한 애였다. 영국 애들이 말을 걸어오면 친밀한 어조로 대답하긴 했지만 보통은 버스에서 내린 후에도 그들과 섞이지 않고 혼자 걸어가곤 했다.

물론 나와도 얘기 한번 나눈 적이 없고 인사를 한 적도 없었다. 기묘하게도 나는 그의 침묵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도 그 애가 쓰고 다니는 사각형의 예쁜 은회색 모피 모자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모자가 너무 예뻐서 그거 어디서 샀느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지만 꾹 참았다.

키가 크고 여윈 갈색 머리의 아이였다. 눈이 예뻤다. 은회색 모피 모자와 엷은 푸른 눈이 잘 어울렸다. 이곳에 유학 온 학생들 대부분이 그렇듯 그 아이도 두터운 겨울옷이 별로 없어 거의 항상 검은색의 낡은 모직 코트를 입고 올이 풀린 회색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하늘에 타는 듯한 붉은 빛 띠가 드리워져 있었다. 일출 직전의 여명이었다. 빛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언제나처럼 창 너머로 렌즈를 들이대면서 오래되고 성능 나쁜 카메라를 아쉬워하고 있는데 갑자기 귓가에 굵고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넌 기자니? ”

그 아이였다. 은회색 털모자를 쓴 아이. 영어권 학생들이 흔히 그렇듯 러시아어의 존칭과 비존칭 동사를 구분하지 못했다.

“ 기자는 아니야. 하지만 가끔 글을 써. ”

“ 난 네가 기자인 줄 알았어, 항상 사진을 찍길래. ”

나는 카메라를 슬쩍 손으로 감싸며 가볍게 웃었다. 이렇게 낡고 화소가 낮은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기자도 있을까?

“ 나는 시를 써. ”

그는 은밀한 공모자를 연상시키는 태도로 그렇게 말했다. 푸른 눈이 진지했다.

“ 난 푸시킨 때문에 러시아어를 배우려고 여기 왔어.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면 푸시킨에게 가서 나탈리야 곤차로바를 못 만나게 할 거야. ” (그는 ‘나탈리’라고 발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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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리야 곤차로바


미모의 아내 곤차로바 때문에 결투로 죽지 않았어도 어쨌든 푸시킨은 일찍 죽었을 거라고, 정부의 음모에 희생됐을 거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내 입에서 나온 건 전혀 다른 말이었다.

“ 난 어떤 영화 때문에, 도스토예프스키 때문에 왔어. ”

“ 아. ”

그는 어떤 영화 때문인지, 혹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어떤 작품 때문인지 묻지 않았다. 대신 그는 내 무릎 위에 놓여 있던 페이퍼백에 시선을 던졌다.

레오니드 안드레예프를 읽네. ”

“ 응. 좋아하는 작가야. ”

“ 그 사람 거 하나 읽었어. 제목은 기억나지 않아. 전투기 조종사인지, 하여튼 파일럿이 비행기를 몰고 하늘로 나가는 얘긴데 결국 추락해 죽게 되지. 소설은 별로 재미없었는데 마지막 문장은 아직도 기억해. ‘그는 지상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라고 되어 있어.

“ ‘비행’이야. 그는 지상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

“ 그래 맞아. ”

우리는 잠시 마법에 걸린 듯 그 문장을 되뇌었다.
На землю он больше не вернулся. 나 제믈류 온 볼셰 녜 베르눌-쌰.


그는 단어들의 강세를 모두 무시하고 끝의 ‘야’ 모음을 생략했다. 나탈리야를 나탈리라고 발음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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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핀이 그린 안드레예프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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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예프의 단편집


나는 그에게 그 마지막 문단을 생각나는 대로 외어줄 수도 있었다. 혹은, 무릎에 놓여 있는 단편집을 펼쳐 그 문단을 읽어줄 수도 있었다. 너무나 좋아하는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지상으로 그는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허공으로부터 빙글빙글 돌며 땅으로 추락해 무겁게 부딪쳐 산산조각난 뼈와 살은 이미 그가 아니었고 그 어떤 인간도 아니었다. 대지의 인력과 죽음의 중력 법칙이 그를 하늘에서 끌어내려 찢어발기고 아래로 내동댕이쳤지만, 추락하고 부서져 죽은 채 누워 있는 것은 이미 유리 미하일로비치 푸쉬카레프가 아니었다. 그는 지상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혹은 훨씬 덜 끔찍하면서도 훨씬 그 아이에게 들어맞는 부분, 단편의 중반부에 등장하는 주인공에 대한 묘사를 읽어주고 싶었다.


유리 미하일로비치에게는 한가지 재능이 있었다. 그는 가볍고 즐겁게 침묵할 줄 알았고 이 때문에 그와의 대화는 항상 재미있고 훌륭했다. 대화를 할 때 그는 직접적이고 단호하며 날카로운 ‘예’와 ‘아니오’ 대신 차분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고 자신의 의견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했으며 남의 말을 듣는 편을 더 좋아했다.


짧은 대화를 나누는 내내 그 아이는 내게 이 문장들을 연상시켰다.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그리고 정말로, ‘비행’의 마지막 문장을 되뇐 후 우리는 가볍고 즐겁게 침묵했다. 마침 버스는 네바 강변을 지나고 있었고 창백한 붉은 빛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멀리 이삭 성당의 황금 쿠폴이 보였다. 역광 때문인지 희미한 은백색 광휘를 두른 그림자처럼 보였다. 마치 모든 것이 환영 같았다. 모든 것이 달라 보였다. 하늘과 강 사이를 스쳐 날아가는 갈매기의 고요하고 날갯짓조차 없는 유유한 하강조차도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도시 전체가 아름다움과 환영에 취한 것 같았다. 길거리를 따라 나타났다 사라지는 키 큰 가로등과 고풍스런 직선과 곡선이 교차하는 건물들까지 모두가 희미한 빛에 잠겨 있었다. 어쩌면 오랜만에 빛이 이 도시를 감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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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에 감싸인 환영의 도시 페테르부르크


그 아이는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펼쳤고 손에 쥐고 있던 볼펜을 몇 차례 딸깍거렸지만 단 한 글자도 쓰지 않았다. 나 역시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지 않았다. 우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인사도 없이 버스에서 내렸다. 키가 큰 그 아이는 보폭도 길고 걸음도 빨랐다. 언제나처럼 그는 다른 아이들을 지나쳐 홀로 황금빛 십자가와 푸른색과 흰색 아름다운 벽의 스몰니 사원을 향해 걸어갔다. 가볍게, 얼어붙은 잿빛 눈을 밟으며. 은회색 모피 모자가 그 아이의 갈색 머리 위에서 희미하게 춤을 추는 것 같았다.

그 아이의 이름을 물었어야 했을까? 아니면 시간여행과 푸시킨과 나탈리야에 대해, 어떻게 그들 사이를 훼방 놓을 생각인지 물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아, 물론 가장 중요한 건 내가 그 은회색 털모자에 대해 묻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것이지만. 어쨌든 우린 그 마지막 문장을 안다. 나 제믈류 온 볼셰 녜 베르눌쌰. 가끔은 그 정도로도 충분하다.






** 레오니드 안드레예프는 가끔 제게 니콜라이 게의 그림을 연상시킵니다.
그의 그림 몇 점을 보시려면 아래를 클릭하세요
http://tveye.tistory.com/96

**

아쉽게도 안드레예프의 작품은 국내에 번역된 것이 거의 없는 듯합니다. 단편 '침묵' 외엔 못 본 것 같아요. 안드레예프는 천사와 악마, 신과 인간, 어둠 등 철학적이고 기묘하게 환상적이며 다소 어둡고 무거운 작가입니다. 레르몬토프와 도스토예프스키 느낌이 좀 배어나와요. 그의 매혹적인 작품들이 국내에도 번역되어 나오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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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07.11.07 17:38

하름스의 농담 petersburg diary2007.11.07 17:38

러시아 일기 #14

하름스의 농담



나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하찮은 것들, 부조리한 현상으로서의 삶에만 흥미를 느낀다. 나는 영웅주의, 감동, 도덕, 윤리, 자비 따위를 증오한다. 그러나 환희, 매혹, 영감, 욕망, 공포, 슬픔, 기쁨과 웃음에 대해서라면 이들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또 사랑한다.
  .. 다닐 하름스, 1937년 10월 31일 ..



오래전 러시아로부터 돌아온 친구에게서 아주 얇은 만화책을 한 권 선물받은 적이 있다. 푸시킨이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그린 표지에는 ‘하름시아다-위대한 작가들에 대한 농담’이라는 제목이 씌어 있었고 책을 펼치자 푸시킨, 레르몬토프,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고골리 등 유명한 작가들에 대한 만화들이 가득했다. 그림도 재미있었지만 그 위대한 작가들을 사정없이 바보로 만들어버리며 실없는 웃음을 유발하는 문장들은 더욱 재미있었다. 이게 누굴까? 다닐 하름스? 뭐하는 사람이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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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름시아다 만화책

다닐 하름스가 재조명받기 시작한 것은 모국 러시아에서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나마 일반인들에게는 아동문학가로 알려져 있었지만 사실 그는 스탈린 체제의 억압과 박해, 그리고 굶주림 속에서 날카롭고 절망적인 글을 써냈던 작가였다. 하름스가 살았던 페테르부르크, 아니 당시 이름으로 레닌그라드는 2차대전 당시 오랜 기간 독일에 포위되어 공습을 견뎌냈고 그 와중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아사했다. 전쟁과 굶주림, 그보다도 더욱 가혹한 스탈린의 억압 속에서 재능있는 작가가 살아남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하름스처럼 당의 기치와 상반되는 아방가르드 작가는 더욱 그랬다. 그는 반체제 작가라는 이유로 감옥에 두 번이나 끌려갔고 결국 감옥에서 굶어죽었다.

이쯤 되면 솔제니친이 생각나지 않는가? 시베리아 유형 작가들의 수용소 문학, 어둠의 경로로 출판되었던 저항문학들, 비소츠키의 락 음악, 극사실적이면서도 체제고발적인 작품들.

하지만 하름스는 1920년에서 30년대를 살았던 작가였다. 상징주의와 데카당스, 아크메이즘, 판타지와 아방가르드의 시대, 불꽃처럼 피어올랐던 러시아 실험문학 시대의 자식이었다. 20세기 아방가르드 러시아 작가들은 ‘달리는 자동차 창 밖으로 푸시킨을 내던져라!’ 하고 외치며 기성 문학의 권위를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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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닐 하름스 (아래는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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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름스도 그렇게 했다. 그는 위대한 19세기 작가들을 마음껏 농담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의 짧은 풍자 노트에서 푸시킨은 친구들을 못살게 구는 멍청하고 유아적인 남자가 되고, 레르몬토프는 남몰래 푸시킨의 아내를 사모하고, 도스토예프스키는 담배를 피우다 페테르부르크 전체를 홀랑 태워먹는다. 투르게네프는 너무 소심해서 걸핏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겁을 먹고 바덴바덴으로 도망치고, 톨스토이는 아이들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키가 작은 푸시킨을 어린애로 착각해 목말을 태워주겠다며 뒤를 쫓아가고, 고골리는 복장도착증 환자인지 항상 푸시킨으로 변장하고 다닌다.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는 100루블을 걸고 투르게네프를 심판으로 내세워 누가 더 소설을 잘 쓰는지 내기를 하고 고골리와 푸시킨은 주먹다짐을 밥먹듯이 해댄다!

가벼운 웃음으로 시작해 뭔가 불편한 통증을 남기는 하름스의 문체에 매혹되면 빠져나갈 방도가 없다. 선배 작가들에 대한 불경스러운 농담은 이 작가의 일면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산문들은 끔찍하고 어이없다. 신체 절단과 파괴, 굶주림, 허무주의, 이 모든 것들이 어이없는 웃음과 쾅 닫혀버리는 듯한 과격한 결말 속에서 기이한 마력을 발산한다. 황폐하고 폭력적이며 때로는 거칠고 상스럽기까지 한 상황들, 말도 안 되는 부조리들, 있을 수 없는 비약과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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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름스의 자화상 2


하름스의 산문들은 레이먼드 챈들러나 더쉴 해미트보다도 더 폭력적이고 어둡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정말 비상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작가에게 있어 스탈린의 1930년대는 해결책도 없고 희망도 없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는 갱도 등장하지 않고 총도 등장하지 않는다. 인류의 멸망 같은 거창한 소재도 없다.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내 이웃이고 나이고 나를 둘러싼 현실이다. 하름스의 산문들이 끔찍한 것은 그것이 당시의 부조리한 현실에 똑바로 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유 없이 사라져버리거나 죽어버리는 등장인물들,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때로는 우습게 느껴지는 상황들 앞에서 하름스는 웃었고 인간보다는 사물을 주시했고 파편적인 글쓰기를 시도했다.

그런 점에서 하름스의 작품 세계는 고골리와 일맥상통했다. 그 파편적 글쓰기, 인간보다는 사물에 시선을 돌리는 것, 그로테스크하게 신체를 변형시키기, 소시민에 대한 풍자와 그 아래 깔려 있는 연민. 분명 웃고 있지만 그건 눈물 어린 웃음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우리 모두는 고골리의 외투에서 나왔다’고 했다. 실지로 하름스의 문학도 그렇다. 비록 19세기의 위대한 러시아 작가들을 풍자하고 패러디하는 데 즐거움을 느꼈던 하름스지만 사실 그의 이토록 그로테스크하고 파편적인 글쓰기는 바로 이들의 전통을 면면이 이어받고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단편 ‘노파’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과 대화를 이루는 작품이다.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스탈린 시대의 레닌그라드 시민 하나가 공동아파트에 돌아와 보니 웬 노파가 침입해 그를 위협하다가 갑자기 죽어버리는 것이다. 주인공은 의심을 받을까봐 노파의 시체를 어떻게든 없애 보려고 하지만 일은 자꾸만 꼬이게 된다. 간략한 내용만 훑어보면 요즘 영화들의 단골 소재인 엽기적인 시체 유기 얘기나 스릴러 같지만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라스콜리니코프의 노파 살해가 없었다면 이 소설도 없었을 것이다. 폐쇄공포증과 섬뜩한 압박 속에서 독자는 불편함을 느낀다. 그건 자기도 모르게 목을 조이는 칼라 단추를 풀고 싶어지는 느낌과 흡사하다.

하름스는 젊은 나이에 감옥에서 죽었다. 그의 작품들은 소련 붕괴 이후 재조명을 받기 시작했고 급속도로 인기를 얻었다. 그의 동화들과 시, 산문들이 출판되기 시작했고 그를 소재로 한 ‘하름스-차름스-샤르담’ 이라는 연극이 상연되는 한편 그의 희곡들도 무대에 올랐다. 그는 여전히 모두를 위한 작가는 아니다. 하지만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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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름스 자필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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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름스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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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하름스-차름스-샤르담' (* 모두 하름스의 필명임)


입술에 번지는 웃음은 때로 눈물보다 쓸모가 있다는 말이 옳다. 아마 하름스가 지금 돔 크니기에 가서 생전에 전혀 출판되지 못했던 자신의 작품들이 각종 판본으로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본다면 ‘뭐 이래?’ 하며 픽 웃을 것이다. 국내에도 그의 산문집 한 권이 소개되어 있으니 진지한 작품들은 그쪽으로 미루고, 나는 그와의 첫 만남을 기념해 ‘하름시아다-위대한 작가들에 대한 농담’ 만화책에서 처음 읽었던 이야기를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치고 싶다. 레르몬토프의 유명한 소설 ‘우리 시대의 영웅’ 탄생비화이다. 스탈린 시대의 검열에 대한 풍자가 은근하다. 고골리 만세! 그리고 투르게네프는 너무나 귀엽다!

**

어느날 고골리가 소설을 한 편 썼다. 콜림 수용소로 끌려간 착한 남자에 대한 풍자소설이었다. 수용소장의 이름은 (당시 황제의 이름을 암시한) 니콜라이 파블로비치였다, 소장은 간수들과 힘을 합쳐 이 착한 남자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소설을 완성한 후 고골리는 ‘우리 시대의 영웅’ 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푸시킨’이라고 서명했다. 그리고는 잡지에 싣기 위해 편집자 투르게네프에게 원고를 갖다주었다.

투르게네프는 소심한 인간이었다. 그는 원고를 다 읽은 후 식은땀에 흠뻑 젖고 말았다! 그는 급하게 원고를 전부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는 카프카즈로 바꾸고 수용소로 끌려가는 주인공은 장교로 바꿨다. 간수들 대신 예쁘장한 아가씨들을 채워넣었고 그들이 주인공을 박해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이 아가씨들을 농락하는 것이었다. 니콜라이 파블로비치라는 이름은 막심 막시모비치 로 바꿔쳤다. 푸시킨이라는 이름을 지우고 레르몬토프라고 다시 서명했다.

급히 원고를 인쇄소에 보낸 후 투르게네프는 식은땀을 닦으며 잠자리에 들었다가... 갑자기 끔찍한 악몽 같은 생각에 깨어나고 말았다.

“ 제목!!! 제목!!! ”

글쎄 원고 제목을 안 바꾼 것이다! 투르게네프는 즉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옷도 입는 둥 마는 둥 하고 바덴바덴으로 떠나버렸다.

.. 다닐 하름스, ‘신나는 친구들’ 중에서 ..


****


국내에 번역출간된 하름스의 산문집으로는 '집에서 한남자가 나왔다'(청어람) 가 있습니다.
깔끔하고 괜찮은 책이에요. 추천!!

****

하름스의 19세기 작가들에 대한 농담인 '신나는 친구들' 중 몇몇 에피소드들은 아래를 클릭하세요. 제가 번역했는데 사전없이 번역해서 문장이 좀 거칩니다. 양해를^^
http://tveye.tistory.com/55

****

1930년대 스탈린 시대 작가이자 역시 억압과 박해로 고생한 작가라는 면에서 이번 러시아일기는 지난 9편(10편인지.. 헷갈리네요)의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 이야기와 맥이 닿아있습니다.
http://tveye.tistory.com/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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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07.10.04 17:55

나의 첫 발레 petersburg diary2007.10.04 17:55

러시아 일기 #13

나의 첫 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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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실의 율리야 마할리나


‘파르테르’, ‘베누아르’, ‘벨에타쥐’, ‘발콘’, ‘야루스’... 낯설기만 한 좌석 배치도와 공연표를 번갈아 확인하고 있는데 무섭게 생긴 할머니가 우리를 불렀다. 잔뜩 겁을 먹고 다가가보니 코트와 모자를 맡기라고 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모두 네 명이었다. 선배들과 나. 러시아에 온지 한달도 되지 않은데다, 아직 귀도 트이지 않았고 버스와 전차를 구분하지 못해 종종 엉뚱한 곳에서 내리기 일쑤였으며 불친절한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것이 제일 무서웠던 시절이었다. 극장 좌석들이 각 층과 자리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도 몰랐고 극장 안에 코트 보관소라는 곳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나는 멍청한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고 극장 안을 휘휘 둘러보고 있었다. 돔 모양의 천정과 샹들리에와 푸른 커튼이 드리워진 무대, 어깨를 드러낸 드레스 차림의 미인들과 카메라를 든 관광객들. 푸른색 빌로도 커버를 씌운 의자는 딱딱했고 역시 푸른 칸막이가 쳐진 우리 자리에는 의자가 여섯 개나 들어와 있어 무척 좁았다. 바깥은 꽤 추웠지만 극장 안의 공기는 어렴풋한 향수와 땀 냄새, 수많은 사람들의 체취와 오래된 극장 특유의 냄새가 뒤섞여 답답하고 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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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스키 극장 내부

그건 나의 첫 발레였다. 어릴 때 읽은 어린이용 발레 책자와 몇권의 소설들, 영화 백야 외에는 아는 것도 없었다. 그래도 러시아에 왔으니 유명한 마린스키 극장에서 발레 하나는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무턱대고 표를 끊은 공연이었는데 제목은 ‘스트라빈스키의 밤’이었고 ‘봄의 제전’과 ‘결혼’ 두 작품이 무대에 오를 예정이었다. 같이 간 선배들은 넌 처음 보는 발레인데 하필 이렇게 추상적이고 재미없는 걸로 시작해서 어떻게 하느냐고, 자기는 백조의 호수도 보다가 졸았다며 잔뜩 겁을 주었다.


“ 저도 봄의 제전 내용은 알아요. 원시 시대에 봄을 맞이하기 위해 부족들이 제전을 벌이고 춤을 추는 거예요. 희생양으로 뽑힌 처녀가 미친 듯이 춤을 추다가 죽잖아요. 이 음악 테이프도 있어요. 중학교 때 음악 감상문 숙제로 써갔단 말이에요. ”

“ 이거 그 내용 아니야. 이번에 다른 데서 온 안무가가 새로 만든 버전인데 엄청 추상적이래. 보다가 지루하면 좀 자. 너 분명히 졸거야. 막간에 깨워줄게. ”


그래서 나는 잔뜩 겁에 질린 채(졸다가 들키면 큰일이야!) 작고 딱딱한 의자에 몸을 웅크리고 막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무대는 어두웠다. 단순하고 강렬한 색채의 조명이 이따금 눈을 아프게 했다. 여성 무용수는 단 한명도 없었다. 군무에 이어 샤먼 역할의 기괴한 분장을 한 두 명의 무용수가 샴 쌍둥이처럼 밀착되어 으스스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춤 때문인지 불협화음이 가득한 스트라빈스키의 음악 때문인지 어두운 무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오한을 느꼈다.

한 무용수가 나타났다. 젊고 아름다운 무용수였다. 황금빛을 내쏘는 긴 머리와 반라의 육체의 한 남자였다. 희생양의 춤이었다. 그는 무대를 가로지르며 격렬하게 춤췄고 유일한 소품이었던 의자를 넘어뜨리며 도약했고 마침내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나는 경도되었다. 그 무대가 뿜어내는 에너지와 격렬하고 어두운 춤사위. 그리고 희생양을 춤춘 무용수의 순수한 아름다움과 힘에 매혹되었다. 그 좁고 답답한 칸막이 의자에 앉아 고개를 쭉 뺀 채, 불편한 자세 때문에 몸이 마비되는 것도 느끼지 못한 채 홀려 있었다.

막간 휴식시간에 선배들과 함께 카페에 가서 초콜렛 가루가 뿌려진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선배들은 한숨을 쉬며 투덜거렸다.


“ 대체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졸려서 죽는 줄 알았네. ”

“ 남자가 추니까 너무 이상하더라. ”

“ 우리 뒤에 있는 러시아 아줌마들 얘기 들었어? 조명을 어떻게 썼고 의상이 어떻고 하면서 완전 전문가처럼 얘기하는 거 있지.. 난 내용도 이해 못하겠던데...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사춘기 소녀처럼 볼이 상기된 채 고개를 떨구고 앉아 아이스크림을 입안에 밀어넣고 있었다. 태어나서 맛본 것 중 가장 달콤하고 시원한 아이스크림이었다. 온몸이 타는 것 같았다. 머리가 아프고 열이 나고 심장이 뛰었다.

그게 나의 첫 발레였다. 이후 나는 틈만 나면 극장을 드나들었다. 물론 가난한 유학생이었던 탓에 꼭대기 층에 가까운 자리를 끊을 때가 많았다. 그래도 그 당시는 지금만큼 표값이 비싸지도 않았고 학생증이 있어 러시아인과 똑같은 금액으로 표를 살 수 있었다. 매월 말이 되면 나는 친구와 함께 시내의 매표소에 가서 다음달 공연 프로그램 책자를 사서 붉은 표시를 했다. 매표소에서는 자리를 지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주말이면 마린스키 극장에 직접 표를 끊으러 가기도 했다. (값싼 표를 샀는데도 우리의 얄팍한 지갑은 금세 탈탈 털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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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스키 공연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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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스키 공연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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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스키 극장과 크류코프 운하


페테르부르크는 10월부터 겨울이다. 아침 10시에 해가 뜨고 오후 4시면 어둠이 찾아온다. 하지만 이곳의 진정한 발레 시즌은 바로 겨울이다.  밤이 되면 우리는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서 털모자를 눌러쓰고 목도리로 얼굴을 칭칭 감은 채 옷을 잔뜩 껴입고 극장으로 향했다. 공연도 길고 막간 휴식 시간들은 또 어찌나 이렇게 긴지! 공연이 끝나고 나면 이미 늦은 밤이었다.

내가 사는 기숙사는 마린스키나 다른 시내의 극장들로부터 꽤 멀었고 교통편도 좋지 않았다. 마린스키 극장 건너편에서 한 시간마다 한 대씩 오는 전차를 타고 나면 꽁꽁 얼었던 손발이 저려왔고 눈물과 콧물이 치솟았다. 그래도 우리는 마냥 행복해서 ‘오늘은 누구누구가 너무 멋졌어’, ‘누구누구가 엉덩방아를 찧는 순간 가슴이 철렁해서 죽는 줄 알았어’, ‘여자를 배신한 알브레히트가 무조건 나빠!’, ‘난 투우사들 춤이 제일 좋아’ 등등 입이 아픈 줄도 모르고 재잘거렸고 전차 안의 러시아인들은 신기한 듯 우리를 쳐다보곤 했다.

전차에서 내린 후에는 또 기숙사 앞까지 가는 버스를 기다려야 했는데 바닷가 근처라 너무 추웠다. 우리는 거대한 광고판 뒤에 몸을 숨긴 채 시린 발을 녹이기 위해 두 마리 작은 토끼처럼 팔딱거리며 버스를 기다렸고 녹초가 된 채 기숙사로 돌아가곤 했다. 분명 그 당시에도 스킨헤드니 린치니 하는 흉흉한 얘기가 가끔 들려오긴 했지만 그땐 아직 어렸기 때문인지 캄캄한 어둠 속의 텅빈 거리를 겁도 없이 활보하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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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의 텅빈 페테르부르크 거리


세월이 흘렀고 나는 작년에 다시 러시아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었다. 함께 수업을 듣는 친구 중에 ‘아이’라는 일본 여학생이 있었다. 무척 내성적이어서 교수의 질문에도 얼굴을 붉힐 뿐 좀처럼 말을 하지 못하는 애였다. 하지만 아이는 발레와 오페라에 흠뻑 빠져 있었고 극장 얘기만 나오면 흥분하곤 했다.

어느 날 아이가 상기된 얼굴로 내게 달려왔다.

“ 나한테 바가노바 발레학교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는데 마린스키 지젤 공짜표를 준대. 같이 가자. 자리는 좀 안 좋지만 네가 좋아하는 예브게니 이반첸코가 주역이래!

(예브게니 이반첸코는 바로 나의 첫 발레 ‘봄의 제전’에서 희생양을 춤췄던 그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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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브게니 이반첸코와 아나스타샤 볼로츠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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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젤을 춤추는 스베틀라나 자하로바


수업이 끝난 후 나는 아이와 함께 마린스키에 갔다. 페테르부르크에 돌아온 후 처음이었다. 여전히 좌석은 좁았고 사람들도 많고 혼잡했다. 로비에 붙어 있는 주역 변경 공지를 봤다. 이반첸코가 아니라 슈클랴로프라는 무용수가 알브레히트를 춘다고 했다. 조금 실망하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가슴이 뛰었다.

우리는 2층 벨에타쥐로 향했다. 그래도 좋은 자리라고 내심 기뻐했는데 알고 보니 아이가 받아온 표는 극장 직원용 공짜표라 지정 칸막이 안에서 서서 보는 것이었다. 오른쪽 맨 끝 칸막이여서 무대의 오른쪽 절반은 거의 보이지도 않았다. 30분쯤 지나자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아파왔고 내 머리 속은 이런 생각으로 가득했다.


‘이게 뭐야.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비싸더라도 그냥 돈 주고 티켓 끊는 건데.. 아이야 창창한 스물두 살이니 서서 봐도 안 피곤하다지만 난 뭐야.. 아아 허리 아파, 뒷목 당겨, 눈 아파.. ’


드디어 막간 휴식 시간이 되었고 우리는 잠시 복도로 나갔다. 아이는 상기된 볼과 아직도 눈물이 글썽한 까만 눈을 반짝이며 흥분한 음성으로 속사포처럼 빠르게, 전혀 더듬거리지도 않고 러시아어를 쏟아냈다. 너무 슬프다고, 지젤이 너무 불쌍하고 알브레히트는 정말 나쁘다고, 지젤 역의 다리야 파블렌코가 왜 요즘 그렇게 인정받는 무용수인지 알 것 같다고, 그녀의 춤에는 이러이러한 매력이 있다고... 아이는 서서 보는 것 따위, 허리가 조금 아프고 뒷목이 당기는 것 따위, 불편함 따위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흥분과 열기에 취해 행복한 음성으로 떠들고 있었다.

아이의 반짝이는 눈과 행복에 취한 얼굴 앞에서 나는 다시 한번 그 어둠 속으로, 불편한 자세로 목을 쭉 뺀 채 몸이 마비되는 것도 잊고 무대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순간으로 돌아갔다. 첫사랑에 빠졌던 순간.

휴식 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렸고 우리는 그 좁은 칸막이로 돌아갔다. 허리와 등과 뒷목의 아픔은 가실 줄을 몰랐지만 막이 내릴 때까지 나는 행복에 취해 있었다. 첫사랑의 순간이란 그리 쉽게 잊혀지는 것이 아닌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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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지미르 말라코프, 해적

2007년 10월, liontamer


** 원고가 너무 길어져서 본문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내가 보았던 첫 '봄의 제전'의 안무가는 예브게니 판필로프 라는 남자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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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07.10.04 10:54

러시아 인형 petersburg diary2007.10.04 10:54

러시아 일기 #12

러시아 인형



백야를 즐기기 위해 들른 관광객이든 공부하러 온 유학생이든 한국에 돌아갈 때가 가까워지면 꼭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기념품 시장. 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기념품 시장은 그리보예도프 운하 뒤편의 야외 시장이다. 더 싼 곳이 있다는 것, 바가지 쓸 게 뻔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시내에 있어 가까운데다 운하를 따라 걷는 정취에 빠져서 가끔 들르곤 했다.

기념품 시장에는 몇 번 들락거리면서 친해진 아주머니가 하나 있었다. 이름은 마리나. 머리수건을 두른 데다 허름한 파카 차림이었지만 나이에 걸맞지 않은 늘씬한 몸매에 장난기 어린 파란 눈을 반짝거리는 아주머니였는데 주로 마트료쉬카와 보석함 슈카툴카, 전통 문양이 그려진 머리핀 등속을 팔았다. 친구가 한국에서 러시아어 강사로 일해서 자기도 한국말을 조금 안다며 친근감을 표시하곤 했는데 반가우면서도 내심 ‘저게 상술이 아닐까, 혹시 일본 관광객에게는 친구가 일본에서 강사 노릇을 한다며 일본어를 몇 마디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어쨌든 시장은 원래 그런 곳이니 넘어갈 수 밖에.

마리나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가을 즈음 잠시 놀러왔던 친구를 위해 함께 기념품 시장에 갔을 때였다. 같은 팀 상사가 마트료쉬카를 꼭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사실 정말 예쁘고 질 좋은 마트료쉬카를 사려면 호텔이나 마트료쉬카 전문 숍에 가야 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못한 우리로서는 시장이 더 나았다.

마리나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친구는 가능한 한 싸면서도 크고 예쁜 마트료쉬카를 고르려고 애썼다.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가격이 싸면서도 큰 마트료쉬카는 많다. 하지만 마트료쉬카의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크기가 아니라 섬세하고 아름다운 얼굴과 색채와 문양, 그리고 뱃속에 들어 있는 작은 인형들의 개수인 것이다. 마침내 친구는 붉은 사라판을 두른 전통 꽃무늬의 중간 크기 마트료쉬카를 골랐다. 다섯 개 짜리였다.

문제는 친구의 마트료쉬카에 시골 아가씨 같다고 ‘마순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구경하고 있던 나도 마리나의 유혹에 넘어가 초소형의 핑크빛 마트료쉬카를 충동구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이거 한번 보렴, 이렇게 조그맣지만 글쎄 열 개나 들어 있다니까. 작은 미녀지. 마트료쉬카는 뚱뚱하고 둥글수록 예쁜 거란다. 이 얼굴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 좀 봐. 속눈썹 찰랑거리는 것까지 느껴지지 않니? ”

미처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마리나는 그 조그만 마트료쉬카를 열고 차례로 콩알만한 작은 아이들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금세 열 개의 인형이 주르륵 늘어섰는데 가장 작은 것은 쌀알만한 크기였다.

“ 이건 좀 비싸. 안에 들어 있는 인형도 전부 예쁘니까. 이 아이는 행운을 가져다 줄 거야. ”

지금도 나는 내가 왜 그때 그 인형을 샀는지 꼭 집어 말할 수가 없다. 물론 세가지 이유를 대 볼수는 있다

① 귀가 얇아서 : 이미 이 친구가 초상화를 그리러 갔을 때 휘말려서 같이 그린 전력이 있다
② 마트료쉬카가 너무 예뻐서 : 다른 마트료쉬카보다 훨씬 작으면서도 묘하게 아름다운 그 모습에 홀렸다
③ ‘이 아이는 행운을 가져다 줄 거야’

마리나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단지 상술이었을까? 아니면 소녀 같이 조그마하면서도 열 개나 되는 인형들을 품고 있는 이 마트료쉬카의 다산성(多産性)이 행운을 가져온다고 생각했던 걸까? 어떤 면에서는 맞는 말이다. 전통적으로 마트료쉬카는 다산과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는 상징물이었다. 이 명칭 자체가 어머니를 뜻하는 ‘마트료나’라는 이름에서 유래했는데 그 때문에 마트료쉬카에는 지모신(地母神)의 이미지가 배어 있다. 러시아인은 이 인형을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수호신이라고 믿어서 부부 침대 위에 올려놓기도 한단다. 태어날 아이가 여자일 경우에는 여자의 일손을 덜어주고, 침대의 주인이 아이를 낳지 못할 경우에는 임신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전설도 있다. 그래선지 러시아인들은 마트료쉬카를 특별한 행운의 상징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는 그 열 개짜리 핑크빛 마트료쉬카를 샀다. 그리고 로조치카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로조브이(장미빛, 분홍빛이라는 형용사)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친구가 마순이와 함께 한국으로 떠난 후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갑작스럽게 몰려드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나는 휑해진 기숙사 방 선반에 로조치카의 아이들을 모두 꺼내 놓고 무의식적으로 마리나의 말을 되뇌었다.

‘ 이 아이는 행운을 가져다 줄 거야. ’

특별히 주술이나 행운을 믿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따스한 온기 같은 것이 로조치카의 머리에 얹힌 손끝을 타고 심장으로 스며들어오는 것 같았다. 핑크빛 물감과 니스를 발라 미끈미끈한 러시아 인형의 목질 너머로 그녀를 깎고 색을 칠하고 얼굴을 그려 넣었던 장인의 온기가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건 작고 조용한 아름다움, 속삭이는 듯한 아름다움, 거대하지 않은, 소박하고 수줍은 아름다움이었다.


로조치카, 가장 큰 아이


페테르부르크를 떠나기 직전 나는 마지막 기념품 쇼핑을 하기 위해 그리보예도프 운하를 지나 다시 시장에 갔다. 마리나는 언제나처럼 서툰 한국어 몇마디와 함께 나를 맞아주었다. 조그만 열쇠고리와 냉장고 자석 등을 고르고 있는데 그녀가 생각난 듯 물었다.

“ 그전에 사갔던 아가씨는 잘 있어? ”

“ 아, 그 아이요. 잘 있죠. 로조치카라는 이름을 붙여줬어요. ”

“ 여자애들이 하나가 아니라 열명이니까 로조치키지. ” (로조치키는 로조치카의 복수형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알록달록한 마트료쉬카들과 나무 보석함들을 만지작거리다가 내가 불쑥 물었다.

“ 그때 말예요, 로조치카가 행운을 가져다 줄 거라고 했잖아요. 특별한 의미라도 있어요? ”

마리나의 대답은 간명하고 시원스러웠다.

“ 왜긴, 아름답잖아. 내가 데리고 있는 인형들 중에 제일 예쁜 애였다구. ”

나는 웃었다. 그녀의 말이 옳았다. 이곳은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한다고 믿었던 작가가 살았던 나라다. 러시아가 종교를 선택할 때 가톨릭과 유대교를 제치고 정교를 받아들인 이유는 그 예식이 심히 아름답고 경건했기 때문이라는 전설도 있다.

비오이 카사레스는 러시아 인형이라는 단편에서 마트료쉬카를 겹겹이 벗겨지며 매순간 희망과 공포가 교차하는 삶, 예측할 수 없는 우리의 삶과 아이러니의 상징으로 묘사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작년에 어느 러시아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마트료쉬카 안에 수많은 작은 인형들이 들어있는 것이 러시아의 끊이지 않는 잠재력을 상징한다는 얘기를 한 적도 있다.

사실 마트료쉬카는 진짜 오래된 러시아 전통 공예품도 아니다. 마트료쉬카는 원래 일본의 현자 인형이 19세기에 러시아로 건너와서 세르기예프 파사드 등 유명한 마을의 특산품이 되었다고 한다. 일본으로부터 건너온 이 인형이 러시아 토양에 여과되면서 정면을 응시하는 모습과 홍조 띤 얼굴, 그리고 머리수건을 두른 평범한 시골 아가씨의 모습으로 바뀌어 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트료쉬카에 대한 러시아적 색채와 향취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로조치카와 그녀의 작은 아이들은 내 방 선반에 늘어서 있다. 여섯째부터 열째까지는 워낙 작아서 굴러 떨어져 잃어버릴까봐 다섯째 아이 뱃속에 가만히 숨어 있다. 이 아이들의 아름다움은 말을 거는 아름다움이다. 거기에는 온기가 있다. 가끔 나는 주문과도 같은 마리나의 말을 듣는다.

“ 이 아이는 행운을 가져다 줄 거야. ”

“ 왜긴, 아름답잖아. 내가 데리고 있는 인형들 중에 제일 예쁜 애였다구. ”

로조치카가 내게 눈에 보이는 행운을 가져다주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작은 아름다움이 진짜 힘이고 행운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마리나의 주문은 진짜다. 마순이를 데려간 친구의 상사도 그 주문의 효력을 알고 있을까?


2007년 8월, lionta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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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료쉬카 사진들 구경~



여긴 모스크바 기념품 시장인듯, 믈라덴 안토노프의 사진


이것이 바로 마순이, 내 기숙사방 선반에 있을때 한컷


갖고 싶었던 금빛 묵질의 마트료쉬카


마트료쉬카 만드는 장인, 믈라덴 안토노프의 사진

역시 믈라덴 안토노프의 사진



나도 저 열쇠고리 몇개 샀다, 선물용으로. 쟤들 안에는 인형 없다


마트료쉬카 색칠 전의 나무 깎아놓은 원모습


로조치카 10마리. 웹진원고 때문에 급히 방에서 찍어서 조명 안좋음


로조치카 젤 큰 아이 정면


로조치카 측면, 저 튼실한 하체의 풍만함~ 이뿌다


요건 꽤 비싼 마트료쉬카인듯. 얼굴과 색깔, 문양 모두가 비싸보인다
이런것은 호텔이나 마트료쉬카 전문샵에 가야 한다



오호, 얘는 뱃속이 개방되어있는 신기한 아이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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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07.10.04 09:38

빵과 자유 petersburg diary2007.10.04 09:38

러시아 일기 #11

빵과 자유



너는 민중에게서 자유를 빼앗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돌을 빵으로 만들라는 제의를 거부했지. 그때 너는 ‘사람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고 대답했지만, 바로 그 빵의 이름으로 이 지상의 악마가 너와 싸워 승리를 거두고 모든 사람들이 그 악마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 것을 모른단 말이냐?

결국은 인류도 자신의 자유를 우리의 발밑에 갖다 바치고 ‘우리를 노예로 삼아도 좋으니 제발 먹을 것을 주십시오’ 하고 탄원할게 틀림없어, 즉 자유와 빵은 어떤 인간에게도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 자신이 깨닫게 되는 거지. 만일 네가 지상의 빵을 받아들였다면 전인류의 영원하고 보편적인 번민에 대해 해답을 줄 수 있었을 거야. 그것은 누구를 숭배할 것이냐 하는 의문이지.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대심문관 전설 중에서..,


가장 상투적인 질문이라는 것은 역으로 말하면 가장 어려운 질문이란 얘기가 될 수도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리스도를 질타하는 대심문관의 입을 통해 빵과 자유에 대한 오래되고도 고통스런 질문을 던졌다. 굳이 제 3세계의 극빈국이 아니라 해도 저 질문은 어디에서나 유효하다. 그리고 빵의 논리는 독재자를 위한 논리와 무척 가깝다.

어둡고 컴컴하던 겨울 오후 어느 교수와 이 문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녀의 얘기에 의하면 길거리의 화려한 자동차들과 핸드폰의 물결에도 불구하고 서민 생활은 아직 어렵고 특히 인생의 대부분을 공산주의 사회에서 보냈던 노인들의 상황은 최악이란다. 현재의 러시아는 중산층이 막 태동하고 있는 시기이며 국민의 90퍼센트는 빈곤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젊은 애들은 오로지 돈버는 것, 자기 자신에만 정신이 팔려 있어 나이든 세대와 소통을 하기 어렵다고 한다. 옛 러시아인들의 특징은 ‘100루블보다 100명의 친구가 있는 것이 낫다’라는 경구로 설명될 수 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나. 이 우울한 이야기 끝에 그녀는 조금 충격적인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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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백화점 앞에서 시위하는 노파와 구걸하는 노인


“ 극도로 가난한 자에게는 자유를 주어서는 안돼요. ”

이 말은 동석했던 한국인 지인이 그래도 지금은 개인의 자유가 허락되니 적어도 그건 좋은 게 아니냐고 묻자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내뱉은 말이다.

“ 그런 자유는 애초부터 필요 없었어요. 그건 혼란일 뿐이죠. 자유란 어느 정도 물질적 기반이 마련된 후에야 의미가 있는 거예요. ”

“ 그럼 소비에트 시절에는 허가되지 않은 자유 때문에 괴롭지 않았나요? ”

“ 그때 우리에겐 그런 생각은 들지도 않았어요. 그 당시 우린 우리 나라가 제일 좋은 나라, 가장 강하고 부유한 나라란 믿음이 있었어요. 모든 것을 나라에서 제공했죠. 교육, 스포츠, 예술... 모든 것을. 그러니 다른 나라가 어떤 곳인지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자유에 대해 고민할 필요 자체가 없었어요, 우린 조용하고 평온하게 잘 살았어요. ”

물론 이런 문제에 완벽한 정답은 없다. 소모적이고 해묵은 논쟁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정말 가난한 자에겐 자유가 필요 없을까? 배를 곯으면서 자유에 대해 얘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유는 인간의 생에 있어 반드시 있어야만 할 무엇, 인간의 본질을 규정하는 그 무엇이 아닐까? 정말 빵이 자유보다 중요한 것일까?

어쩔 수 없이 도스토예프스키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이반 카라마조프의 극시에 등장하는 대심문관은 그리스도에게 말한다. 너는 인간을 너무나 높이 평가했다고. 대부분의 인간은 자유의 무게를 견딜 수 없다고. 네가 1%의 선택받은 인간을 데리고 갈 때 나머지 99%의 인류는 내게 모여들어 내가 나눠주는 빵을 먹고 내가 세뇌하는 사상 아래 안주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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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크람스코이, 황야의 그리스도 / 미하일 브루벨, 앉아있는 악마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미 전작 ‘죄와 벌’이나 ‘악령’을 통해 이러한 극소수의 초인들과 양떼로 전락한 인류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전체를 통틀어 대심문관의 전설을 다룬 장이 가장 파워풀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만큼 빵과 자유, 신과 인간, 신정론에 대한 반박 등의 주제가 묵중하고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혁명 이후 소련 정권에 대한 눈부신 예언이기도 했다.

‘악령’에는 유난히 크고 길며 넓적한 귀의 소유자로 불온한 인상을 풍기며 아주 작은 글씨로 무언가를 빼곡하게 적은 두꺼운 노트를 읽는 한 남자가 나온다. 바로 급진주의 혁명가 5인조의 일원인 쉬갈료프다. 당시 팽배했던 푸리에의 이상적 사회주의에 맞서 쉬갈료프는 자신이 균등주의자라고 정의하고 ‘무한한 자유로부터 시작해서 나는 무한한 전제주의로 끝난다’, ‘인류의 10분의 1이 가축 무리로 변해버린 나머지 10분의 9의 사람들에 대해 무한한 권리를 지니며 인격의 자유를 획득한다. 그때 비로소 지상의 천국이 건설될 것이다’ 등의 논리를 설파한다. 쉬갈료프는 라스콜리니코프와 대심문관의 가교이자, 다소 극단적인 면은 있지만 소련 정권에 대한 암울한 예언자였다. 

1990년대에 갑작스럽게 밀어닥친 변화의 폐해의 예를 들며 교수는 자신의 언니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의 언니는 소련 시절 4만 루블을 국영은행 계좌에 넣어두고 있었다. 아파트를 장만하는 비용이 7천 루블이었던 시절이란다. 그런데 체제 붕괴로 인해 하루아침에 모든 돈이 날아갔다고 한다. 은행에서 돈을 찾을 수조차 없고 루블은 휴지조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국가가 민중을 먹여살리던 시절이 사라지고 견딜 수 없는 변화와 자유의 해일이 밀려든 것이다. 게다가 공산주의 사회는 모든 것이 집단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모두들 항상 삼삼오오 모여 의견을 나누고 정담을 나눴다. 그런데 지금은 그 모든 것이 없어졌다. 모든 것은 개인의 벽과 ‘자유’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아래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다른 문화권에서 온 나, 완전히 정반대의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온 나는 내가 받은 교육과 내 사고방식에 따라 이렇게 대꾸할 수도 있다.

어차피 ‘국가가 민중을 먹여살렸다는’ 소비에트 체제는 오래 갈 수가 없었어요. 소련이 붕괴한 진짜 이유는 철학적 구멍이 아니라 경제 파탄 때문이 아니었나요? 계획 경제는 50-60년대 초까지는 생산성을 높이며 잘 나갔을지 모르지만 스태그네이션에 접어들고 점차 하락할 수 밖에 없었죠. 소련 체제의 지붕 아래서 민중들은 조용하고 평온하고 정감 넘치는 삶을 누렸을지 모르지만 기둥과 골조는 썩어 들어가고 있었구요. 그러니 결국 지붕이 붕괴한 거고 민중들은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린 거죠. 비극과 악몽이란 건 이해해요. 하지만 그 모든 책임을 옐친에게 돌린다는 건 근시안적 판단이 아닐까요? 모든 것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작가들이 이야기하는 자유, 예술가들이 이야기하는 자유는 현실의 자유와는 다른 개념일지도 모른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자유는 필연적으로 인간의 의지, 실존과 연계되어 있었다. 어쩌면 예술에서 말하는 자유, 식자들이 말하는 자유란 추상적 개념이며 자유에 의한 정점 따윈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바로 그랬기 때문에 브나로드 운동 당시 농민들이 인텔리겐치아를 그토록 외면했던 것일 수도 있다.

‘악령’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키릴로프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두가 절대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논리를 증명하기 위해 자살한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끔찍한 살인사건의 은폐를 위해 이용될 뿐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 그것은 추상적인 개념으로서의 자유와 우리가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자유 사이의 간극, 혹은 자유와 빵 사이의 간극일지도 모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보리스 에이프만의 발레 '카라마조프' 중 인류의 춤과 대심문관의 춤



요즘 러시아에서 푸틴 대통령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독재자에 가깝다느니 차르의 재현이니 말이 많지만 어쨌든 그는 경제적으로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어내고 있고 러시아인들 대부분은 그를 좋아한다. 3선을 원하는 사람들도 많다. 박정희 정권에 대한 묘한 향수는 또 어떤가. 비록 독재자라 할지라도 넉넉하게 빵을 공급하는 자라면 일단 배고픈 민중들에게서는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이라는 가련한 생물들에겐 타고난 자유라는 선물을 넘겨줄 사람을 한시바삐 찾아내야만 한다는 것이 가장 큰 고민거리란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자유를 지배할 수 있는 자는 그들의 양심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자에 한하는 거야. 너에겐 빵이라는 절대적인 깃발이 주어졌으니까, 빵을 주기만 하면 사람들은 네 발 밑에 엎드릴 거다. 왜냐하면 빵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으니까.

그러나 만일 그때 누구든 너 이외에 인간의 양심을 지배하는 자가 나타난다면, 그때는 너의 빵을 버리고서라도 인간은 자기의 양심을 사로잡는 자의 뒤를 따를 것이 틀림없어. 왜냐하면 인간 삶의 비밀은 그저 사는 것뿐만 아니라 무엇을 위해서 사느냐 하는데 있기 때문이지. 무엇 때문에 사느냐 하는 확고한 관념이 없다면 인간은 비록 주위에 빵이 산더미 같이 쌓여있더라도 살기를 원치 않을 거야. 이 지상에 남아있기보다는 차라리 자살을 택할 것임이 틀림없어.


대심문관은 자신이 제시한 전제에 대해 이렇게 스스로 반론을 제기한다. 그는 자유에 선행하는 양심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날 오후 내가 교수에게 이렇게 대꾸했다면? 그건 정공법일 수도 있고 추상적 개념에 치우친 논점일탈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문제에서 정답을 찾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2007년 7월, lionta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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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2 21:09

이반 왕자와 불새 petersburg diary2007.10.02 21:09

러시아 일기 #10

이반 왕자와 불새 이야기


 

  “ 마지막 페이지는 없어. 그건 내가 샀을 때부터 찢어져 있었어. 난 온전한 책을 찾으려고 애썼지만 이 판본은 아무 데도 없었어. ”
 “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도 찾을 수 있잖아요. ”
 “ 그 책에 실린 이야기가 이 이야기와 완전히 똑같은 이야기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어. 어쩌면 여기 실린 불새 이야기는 다르게 구전되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인지도 몰라. 찢어진 페이지를 읽지 않는 한 아무도 끝에 대해 정확히 말할 수 없는 거야. 무수한 가설이 존재할 뿐이지. ”
 “ 그럼 가설들을 얘기해줘요. ”
                                                                     .. A Star-Child 중에서 ..

 오래전 페테르부르크에서 자주 들르던 서점이 두 군데 있었다. 하나는 네프스키 거리의 유명한 ‘돔 크니기’이고 다른 하나는 국립대학교 동양학부 구내서점이었다.

특히 후자는 눈보라와 에는 듯한 추위를 피해 뛰어들곤 했던 곳으로 볼품없이 작은데다 점원도 불친절했지만, 대중소설이나 잡지 대신 고전 문학과 연구서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어 그곳만의 매력이 있었다. 반지하에 자리잡은 그 서점은 어둡고 조용했다. 빳빳한 책 냄새와 잉크 냄새가 네바 강에서 밀려들어온 습한 공기와 뒤섞여 묘한 차분함과 설레임을 자아내는 곳이었고 나는 종종 구석의 진열대 앞에 서서 문고판 책들을 뒤적이곤 했다. 

어느날 나는 흥미로운 책을 한권 발견했다. 작은 녹색 책이었다. 상단에는 검은 활자로 ‘러시아 민화집’이라는 제목이 인쇄되어 있었다.

물론 나는 그게 무슨 내용인지 알고 있었다. 아파나셰프의 유명한 러시아 민화집이었다. 이전에도 번역본으로 읽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를 매혹시켰던 것은 표지의 그림이었다. 그건 불새를 찾아나섰던 이반 왕자가 미녀 옐레나와 함께 회색 늑대를 타고 숲을 달리는 그림이었다. 숲에서 스며나오는 어둠과 본원적인 공포의 그늘, 붉은 혀를 빼고 질주하는 회색 늑대와 아직 앳된 티가 가시지 않은 얼굴에 용사다운 담대함을 드러낸 이반 왕자, 그리고 황금빛 머리타래를 휘날리며 그에게 안겨 있는 미녀 옐레나의 아름다움.

 

 

빅토르 바스네초프, 이반 왕자와 회색늑대

 

이후 나는 그것이 19세기의 유명한 화가 빅토르 바스네초프의 그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다른 삽화가인 이반 빌리빈의 고전적인 불새 삽화가 그려진 판본도 구할 수 있었다.

고무된 나는 돔 크니기를 뒤져 레옹 박스트의 그림도 찾아냈다. 20세기 초반 발레 뤼스 시절에 박스트가 포킨의 발레 불새를 위해 디자인한 의상 스케치였다. 박스트의 불새는 뭔가 달랐다. 동양의 여자 불상처럼 생긴 기묘한 여자였다. 머리에는 붉고 높은 깃털 화관을 쓰고 붉은 색과 오렌지색, 검은 색의 풍성한 깃털로 감싸인 이상한 옷을 입고 한 손에는 기다란 꽃대롱을 들고 있는 여자. 그 그림은 이상하게도 마음을 산란하게 했다. 마치 불새 이야기가 그랬던 것처럼.


이반 빌리빈의 삽화, 이반 왕자와 불새


레옹 박스트, 불새 스케치

이반 왕자와 불새, 그리고 회색 늑대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나를 홀렸다. 물론 이 이야기도 여러 나라와 민족별로 다양한 판본이 존재한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불새가 황금새로 변용되기도 한다. 푸시킨의 유명한 황금수탉 이야기도 사실은 불새 민화의 한 변용이다. 여러 버전을 읽었지만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러시아 버전, 바로 아파나셰프 판본이었다.  

 러시아의 어느 왕국에 황금 사과나무가 자라는 정원이 있었다. 밤마다 불새가 날아와 황금 사과를 도둑질해 가자 늙은 왕은 세 명의 왕자로 하여금 번갈아가며 파수를 보게 했다. 막내 이반이 불새를 발견하고 새의 황금빛 깃털을 뽑아다 왕에게 바쳤다. 왕은 그 광채에 반해 불새를 잡아오는 왕자에게 나라를 물려주겠다고 했다.

착한 이반 왕자는 숲에서 회색 늑대를 만났고 늑대의 도움으로 불새가 있는 곳을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불새가 들어 있는 황금 새장을 건드리지 말라는 늑대의 말을 어긴 왕자는 불새의 주인인 왕에게 붙잡히고 왕은 황금 말을 가져오면 불새를 주겠다고 했다. 회색 늑대는 왕자를 황금 말이 있는 곳으로 인도했고 왕자는 또 늑대의 말을 어기고 황금 굴레와 안장에 손을 대서 붙잡히고 말았다. 황금 말의 주인은 절세 미녀 옐레나 여왕을 데려오면 말을 주겠다고 했고 늑대는 다시 이반을 도와 옐레나를 납치했다. 회색 늑대는 변신술을 이용해 이반 왕자가 옐레나와 황금 말과 불새를 모두 얻을 수 있게 해준다.. 


또 다른 버전들도 많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배경으로 포킨이 안무한 발레 ‘불새’는 여러개의 러시아 민담을 합쳐놓은 것이다. 왕자는 불새를 찾아나서지만 그가 도착한 곳은 마법사의 정원이었고 그곳에는 악한 마법에 걸린 절세 미녀 공주가 갇혀 있다. 왕자는 불새의 도움으로 늙은 마법사를 물리치고 공주를 구해 결혼한다.

나는 친구들을 꼬드겨 마린스키 무대에 오른 불새를 보러 갔다. 무척 화려하고 환상적인 정취가 느껴지는 발레였지만 어딘지 표피적인 종합선물세트 같기도 했다. 이야기를 읽고 그림을 몇 시간이고 들여다보며 상상하고 꿈꾸던 아름다움과는 달랐다.

1990년대 후반의 러시아는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광고들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어느 날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자 이반 왕자와 불새를 테마로 한 코카콜라 광고 시리즈가 나오고 있었다. 불새 민담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못된 두 형과 착한 미남 막내 이반이 등장해 아름다운 소녀 옐레나를 사이에 두고 싸우는 한편, 이반이 궁지에 몰리면 회색 늑대의 화신인 장발의 멋진 남자가 나타나 불새를 상징하는 코카콜라를 건네주곤 했다.

유력 러시아 일간지에서는 논설을 통해 ‘우리의 이반 왕자와 우리의 불새, 우리의 회색늑대마저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코카콜라에 팔려가야 하겠느냐’며 비탄을 토해냈지만, 철이 덜 든 나는 잘생긴 이반 왕자를 보는 재미에 매일매일 채널을 돌려가며 코카콜라 광고만 기다렸다.

거리의 블린 가게 ‘스카즈카’에는 아이들을 유혹하기 위해 이반 왕자와 불새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10년 후 돌아간 페테르부르크에서 나는 스카즈카 대신 나타난 블린도날드에 갔다가 역시 불새 그림을 발견했다. 몇 년 전 뉴욕에서는 블라지미르 말라코프가 홀로 불새를 춤춘 적이 있다.

이반 왕자와 불새 이야기는 도처에서 변신하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화가들은 그림을 그리고 시인과 작가들은 새 버전을 만들어내고 무용수들은 춤을 추고 작곡가는 곡을 쓴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야기를 들으며 꿈을 꾼다.

판본이 다양하다는 것, 그것만큼 매력적인 것이 또 있을까? 사실 우리가 하는 이야기들은 모두가 언젠가는 이미 한번쯤 이야기되었던 것들이다. 가장 새롭다고 생각하는 것조차도 그렇다.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이 멀리 떨어져 살아온 민족들의 설화나 이야기들이 놀랍게도 유사한 패턴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칼 융은 그것을 ‘원형’이라고 했다. 우리의 꿈과 상징에 존재하는 원형들.  

블라지미르 프로프나 막스 뤼티 같은 연구가들은 민담을 구조주의적으로 분석하고 여러 가지 법칙을 찾아냈다. 물론 흥미로운 법칙들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다. 꿈을 꿀 수 있다는 것. 상상할 수 있다는 것.

만일 이 이야기의 마지막 페이지가 사라졌다면,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면 어땠을까? 이 세상에는 꾸어 볼 수 있는 모든 꿈이 존재하고, 씌어질 수 있는 모든 책들이 존재할 것이다. 사라진 마지막 페이지는 어디에나 있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숲에서 잠든 이반 왕자를 발견한 두 형은 이반을 찔러 죽이고 불새와 황금 말, 미녀 옐레나를 강탈해 왕국으로 돌아갔다. 이반의 시체는 숲에 버려졌고 왕은 첫째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둘째는 미녀 옐레나와 결혼을 시키는 축제를 벌이기로 했다.

  

페테르부르크에 있을 때, 그리고 서울에 돌아와서도 변함없이 나는 마지막 장이 찢겨나간 불새 이야기를 상상하며 꿈을 꾸곤 했다. 나의 상상 속에서 이 책은 바로 이 부분에서 멈추어 있다. 아파나셰프 판본에서는 회색늑대가 이반을 되살려내 궁전으로 보내고 이반은 왕위와 불새, 황금말과 옐레나를 모두 되찾게 된다. 하지만 그 마지막 페이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미하일 포킨과 스트라빈스키가 이반 왕자를 불사의 마법사와 공주가 사는 정원으로 보내버렸듯 나는 마지막 페이지를 새로 쓸 수 있을 것이다.
 

이반 왕자는 죽음의 왕국에서 벗어나 부왕에게 돌아갈 수도 있고 기나긴 모험에 지쳐 스스로 영원한 잠을 선택할 수도 있다. 심지어 회색늑대는 끝없는 바다로 달려가 그곳의 왕을 불러내 이반 왕자의 복수를 할 수도 있다. 불새는 황금사과를 모조리 따먹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릴 수도 있다. 마지막 페이지를 상상한다는 것, 새로운 이야기를 쓴다는 것, 그처럼 매혹적인 마법이 또 있을까?


2007년 7월, lionta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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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불새 그림들^^
 

이건 누구 그림인줄 모르겠다. 불새 민화

슈까뚤까의 불새 그림.



타마라 카르사비나와 미하일 포킨, 발레 불새


이반 빌리빈, 길을 떠난 이반 왕자


이반 빌리빈, 회색늑대


레옹 박스트, 불새 스케치


레옹 박스트, 불새 스케치


레오니드 코쉐보이, 불새



레옹 박스트, 불새 스케치


불새 모양 풍향계(갖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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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르트르의 니진스키 묘

파루흐 루지마토프, 황금노예의 도약

이고르 콜브, 황금노예

george barbier의 셰헤라자데 삽화

파루흐 루지마토프와 이르마 니오라제의 세헤라자데 2인무


예브게니 이반첸코와 아나스타샤 볼로츠코바의 세헤라자데 2인무

미하일 포킨과 그의 아내 베라의 세헤라자데 2인무

파루흐 루지마토프와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의 세헤라자데 2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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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일기 #9

과거로부터 온 환희의 아름다움
니진스키의 사진 앞에서


사형집행인의 칼이 육체를 꿰뚫는 순간 황금노예의 도약과 열정은 믿을 수 없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그가 무시무시한 칼날에 굴복한 것인지, 혹은 그 믿을 수 없는 세 차례의 공중제비에서 오는 쾌감이 몰고 온 견딜 수 없는 폭력에 휘말려 목숨을 잃은 것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 Francis de Miomandre

니진스키는 죽음의 순간에 믿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부여함으로써 보는 우리들로 하여금 죽음이라는 것을 갈망하게 만들었다 : Charles Ricketts


 세번째 문이 열렸다. 암흑 속으로부터 한 아름다운 남자 노예가 타오르는 황금빛 불꽃처럼 뛰쳐나왔다. 머리에는 황금빛 실크 터번을 두르고 얼굴에는 파란 물감을 칠하고 귀에는 묵직한 금귀걸이를 단 노예였다. 보석과 구슬이 엮인 탑과 허리춤이 거품처럼 부풀어오른 아랍 팬츠를 입고 보석으로 장식된 끝이 휜 비단 신을 신은 남자였다. 그는 황금 노예였고 사랑받는 노예였다.

 모든 예술의 본질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건 영영 사라져버릴 무엇, 결코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며 결국은 죽어야만 하는 운명에 놓여 있는 소중한 무언가를 포착하려는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나보코프가 험버트 험버트의 입을 빌려 퇴색하고 파멸해 가는 롤리타를 향해 부르짖었던 사랑의 고백, 귓가를 울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향한 격정적인 감동. 만일 예술의 본질이 덧없는 생명과 불변할 듯한 아름다움을 포착하고 우리 내부에 각인시키려는 노력에 있다면 그런 성격이 가장 강렬하게 발현된 것은 바로 사진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1910년 초연된 포킨의 발레 ‘세헤라자데’에서 황금 노예를 춤추는 니진스키의 사진이다. 빛바랜 한 장의 사진, 엘리자로프스카야 지하철역 근처의 허름한 책시장에서 간신히 구해왔던 오래된 판본의 니진스키 일기에서 조심스럽게 오려낸 사진, 10년 전, 싸늘하고 황량한 페테르부르크의 겨울 내내 책상 앞 벽에 붙어 있던 사진이다.

종종 나는 성에가 하얗게 얼어붙은 유리창에 이마를 갖다댄 채 저 사진을 바라보곤 했다. 그 발레는 나를 취하게 했다. 니진스키란 이름은 유독하게 나를 홀렸다. 저 사진은 너무나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혀는 침묵한 채, 오로지 육체로, 그리고 그 안에서 금방이라도 해방되어 날아갈 것만 같은 혼으로.

안무가였던 포킨은 니진스키를 위해 만들어낸 황금 노예란 인물을 반 인간 반 짐승이라고 말했다. 하렘의 여왕 조바이다와 사랑의 춤을 추면서 황금 노예는 유연하고 민첩한 표범처럼 뛰어오르고 남자와 여자 그 어느 쪽도 아닌 동물적인 양성성을 보여준다. 그는 뛰어오르고 눕고 뒹굴고 애무하고 또다시 뛰어오른다. 관객들은 니진스키의 황금 노예에게서 격렬한 에로티시즘만을 느낀 것이 아니었다. 니진스키의 춤은 마침내 죽어야만 하는 육체, 술탄에게 발각되어 살해당해야만 하는 운명의 덧없는 육체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생명력, 춤을 통해 혼이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갈망을 구현하고 있었다.

 


Leon Bakst, 황금노예 일러스트

  

Arthur Grunenberg, 황금 노예

 

 


 오리지널 안무에서 니진스키는 믿을 수 없는 도약과 일련의 공중제비, 그리고 머리로 거꾸로 선 채 목 근육으로 빙글빙글 회전하는 극단적인 춤사위로 황금 노예의 죽음을 표현했다고 한다. 빛바랜 저 사진을 올려다보며 나는 다가오는 죽음을, 분노에 떠는 술탄과 칼을 내리치는 망나니를 상상한다. 머리와 어깨에서 피를 흘리며 곤두박질치다가 빙그르르 돌며 허공으로 솟구치는 황금 노예를, 녹아 흐르는 황금빛 용암처럼 홀을 가로지르며 허공을 나는 육체를. 바닥을 증오하듯이 뛰고 또 뛰어오르는 육체. 아무 말도 없이, 아무 비명도 없이 땅바닥으로 추락해 머리를 바닥에 대고 두 다리로 허공을 마구 걷어차며 죽음의 고통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육체. 명확한 파멸 속에서 느껴지는 자유의 아름다움. 혹은, 자유와 해방에 대한 헛된 갈망.



니진스키의 눈은 반쯤 감겨져 있고 입술은 벌어져 있다. 저 사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은 무엇보다도 환희의 감정이다. 그의 육체가 혼을 끌어올리고 인식의 지평 너머로 내몬다. 헛된 갈망이라고 해도 좋다. 저 순간 니진스키는 자유롭다. 어쩌면 내가 황금 노예에게 죽음의 운명이 내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죽음이라는 운명만큼 아름다움과 선명하게 대조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발레의 배역을 떠나 니진스키란 한 인간의 경우에는 광기와 파멸이라는 슬픈 종말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의 예정된 파멸이 저 사진 속에 포착된 환희의 아름다움을 더욱 강렬하게 한다.
 

 

 

 


10년 후, 나는 다시 페테르부르크에 돌아와서 시내의 큰 서점에 갔다. 그리고 발레 뤼스의 프리마이자 니진스키의 파트너였던 타마라 카르사비나의 회상록을 발견했다.

기숙사 방은 10년 전이나 다름없이 추웠다. 창틈을 티슈로 틀어막고 옷을 잔뜩 껴입은 채 나는 추위로 곱은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겼고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작고 흐릿한 흑백 사진, 무대 의상 차림의 발레리나와 나이든 남자, 그리고 어린아이 같은 표정의 한 남자가 웃고 있는 사진. 어딘지 불편함을 자아내고 가슴을 찌르는 사진이었다.


 

 

 


이것은 1928년, 어느 극장 백스테이지에서 해후한 카르사비나와 니진스키, 그리고 디아길레프가 함께 한 사진이다. 발레 뤼스의 단장이자 니진스키의 옛 연인이었던 디아길레프는 이미 완전히 정신이상이 된 니진스키를 ‘페트루슈카’의 무대로 초대했다. 오래 전 자신이 추었던 그 무대를 보고 혹시라도 정신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디아길레프의 헛된 희망 때문이었다. 아래는 카르사비나의 서술이다.


디아길레프는 니진스키의 팔을 낀 채 억지로 명랑한 음성을 짜내며 무대로 그를 데리고 왔다. 무용수들이 바다가 갈라지듯 길을 내주었다. 나는 공허한 눈동자와 불안한 걸음걸이를 보았고 니진스키에게 입맞추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수줍은 미소가 그의 얼굴에 떠올랐다, 그리고 그는 내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 순간 내겐 마치 그가 나를 알아본 것처럼 느껴졌다. 간신히 그의 마음 속에 떠오른 기억을 방해할까봐 감히 한 마디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침묵했다. 그때 나는 오랜 벗을 부르듯 그의 이름을 외쳐 불렀다.

“ 바차! ”

니진스키는 고개를 떨구며 천천히 돌아섰다. 사람들이 그를 사진사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데리고 갔다. 나는 그의 팔을 끼고 있었고 정면을 향해 서 달라고 부탁을 받은 탓에 니진스키의 움직임을 볼 수가 없었다. 갑자기 사진사들 사이에서 희미한 소음이 일었다.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니진스키가 몸을 숙인 채 뭔가를 찾기라도 하듯 내 얼굴을 자세히 응시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눈물을 감추려고 애쓰는 아기처럼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이, 그토록 고통스럽고 수줍고 무방비 상태의 그 모습이 내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니진스키는 다시 관람석으로 돌아갔고 나는 무대에 올랐다. 나중에 디아길레프가 와서 그날 저녁 니진스키가 한 말을 전해 주었다.

“ 저게 누구에요? ”

무대에 세르쥬 리파가 등장했을 때 니진스키가 물었다. 수석 무용수라는 답변을 듣자 니진스키는 짧은 침묵 끝에 물었다.

“ 그럼 저 사람도 도약할 수 있어요? ”
 
.. Tamara Karsavina, Theatre Street ..



‘그럼 저 사람도 도약할 수 있어요?’

나는 니진스키가 그렇게 물었을 때 희미하게 웃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것은 사진에 나타난 공허한 미소가 아니라 오래 전 중력을 거부하며 뛰어오르던 젊고 생생한 육체와 한계를 넘어 상승하는 자유로운 혼이 발산하던 환희에 찬 미소라고. 지극히 짧은 그 순간 니진스키는 나를 매혹시켰던 서두의 사진 속으로 돌아갔다고,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죽음의 공포로부터 해방되어 아름다움의 세계로 들어간 황금 노예와 한몸이 되었다고 믿고 싶다. 그래서 저 1910년의 니진스키, 살아 숨쉬는 환희를 담은 저 사진은 1928년의 슬픈 사진을 향해 과거로부터 뛰어나온 사랑의 메시지라고. 종종 예술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를 향해 먼저 던져진 대답이자 부드러운 손짓, 사랑의 속삭임이니까.


2007년 4월, lionta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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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인 미하일 불가꼬프의 소설 거장과 마르가리따에 대한 글
최근 박형규 교수 번역본이 새옷을 입고 재출간되었다
외국어발음 표기법 때문에 '거장과 마르가리타'라는 제목으로 나옴
웹진 원고에도 불가코프, 마르가리타로 표기

아래 포스팅에 관련 삽화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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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일기 #8


원고는 불타지 않는다 (рукописи не горят)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



“ 어째서 마르가리타는 당신을 거장이라고 부르는 겁니까? ”
“ 제가 쓴 소설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고 있거든요. ”
“ 무슨 소설이지요? ”
“ 본디오 빌라도에 대한 소설이랍니다. ”
“ 뭐라고요? 누구에 대해서라고? 이런 시대에 말입니까? 대단하군요! 다른 주제를 찾아볼 수는 없었나요? 어디 한번 읽어봅시다. ”
“ 그럴 수가 없답니다... 원고를 난로에 쑤셔넣고 태워버렸거든요.. ”
“ 미안합니다만 믿을 수 없군요.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원고는 불타지 않아요. ”
.. 미하일 불가코프, 거장과 마르가리타 중에서 ..

아직도 잉크 냄새가 선명한 원고 뭉치를 한 남자에게 내밀며 검은 망토를 걸친 악마가 말한다.
“ 원고는 불타지 않아요. ”

당당하고 강렬한 저 음성이 귓가에 파고드는 것 같지 않은가? 평생을 검열과 정치적 압력에 맞서 싸웠던 예술가, 스탈린의 핍박과 맞서며 자신의 희곡을 무대에 올렸던 남자, 실명의 암흑 속에서도 사랑하는 아내에게 끝없이 소설을 구술했던 작가 미하일 불가코프가 유작 ‘거장과 마르가리타’에서 악마 볼란드의 입을 빌어 했던 말이다.

오래 전부터 순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많은데 이건 비단 우리 나라의 문제만은 아니다. 러시아도 그렇다. 서점 진열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루키야넨코’의 판타지와 ‘마리니나’의 추리소설, 혹은 마피아를 다룬 대중소설들이다. 소비에트 시대를 살아온 지인들은 요즘 아이들이 섹스와 폭력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에 중독되어 고전을 읽지 않는다고 투덜거린다. 작가들의 위상도 옛날 같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소설은 아직도 팔린다. 젊은 독자들도 ‘톨스타야’, ‘브이토프’, ‘울리츠카야’, ‘펠레빈’ 같은 작가들을 읽는다. ‘푸시킨’과 ‘톨스토이’, ‘고골리’, ‘체호프’를 비롯해 20세기 초중반의 작가들인 ‘조셴코’, ‘하름스’, ‘바벨’ 같은 작가들도 여전히 진열대를 차지하고 있고 그 앞을 서성이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요즘 이런 고전과 순문학 계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는 바로 미하일 불가코프다.

우리 나라에도 ‘거장과 마르가리타’, ‘백위군’, ‘개의 심장’, ‘조야의 아파트’ 등 몇 작품이 소개된 불가코프는 1930년대 극작가이자 소설가이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러시아는 백위군과 적위군 사이의 내전에 시달렸는데, 키예프의 중류층 태생 의사였던 불가코프도 백위군에 가담해 싸운 전력이 있다. 이쯤 되면 짐작할 만 하겠지만 불가코프는 반동세력으로 간주되었고 그의 작품들 역시 당 이념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수히 검열에 걸려 좌절하곤 했다. 실지로 그의 작품들 태반이 소비에트 시절에는 출판 금지 대상이었고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걸작 ‘거장과 마르가리타’ 역시 불가코프 사후 30여년이 지나서야 빛을 볼 수 있었다.

이율배반적이었던 스탈린은 남몰래 ‘반동 작가’ 불가코프의 재능을 아꼈다. 그래서 불가코프는 ‘조야의 아파트’나 ‘위선자의 밀교’ 등 다분히 체제 고발적이고 풍자적인 희곡을 무대에 올릴 수 있었지만 쏟아지는 비난 탓에 공연은 곧 막을 내려야 했다.

불가코프는 선천적으로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풍자가다. 나는 언제나 양심에 따라 보이는 대로 쓰며, 소비에트의 부정적인 현실들 속에서 본능적으로 거대한 먹이를 본다’ 라는 말을 했던 작가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출판되지 않아도 좋았다. 그에겐 자신의 정점이 있었고 양심과 용기가 있었다. 타는 듯한 예술혼이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썼다. 질병과 실명 속에서 죽어가면서도 아내에게 소설을 구술하고 고치고 또 고쳤다. 그는 100년 후에 읽힐 소설을 쓴다고 생각했지만 해빙기 이후 거장과 마르가리타가 출간되었고 점차 불가코프란 이름은 20세기 러시아 문학사에 묵직하게 각인되었다.

1930년대 스탈린 체제의 모스크바에 홀연히 악마의 무리가 나타난다. 이들은 흑마술 쇼를 벌이고 도시를 혼란으로 몰아넣는다. 모스크바 작가모임 ‘마솔리트’의 회장은 보름날 밤 전차에 치어 목이 잘리고 이를 목격한 시인 ‘이반 베즈돔느이’는 악마와 말하는 고양이의 뒤를 쫓다가 정신병원에 감금된다. 이 소란의 한가운데 본디오 빌라도와 예수에 대한 소설을 쓴 한 남자 ‘거장’과 그의 연인 ‘마르가리타’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끝없이 증식하는 아파트 내부에서 펼쳐지는 악마 무도회와 하늘을 나는 마녀, 고대 예루살렘과 20세기의 모스크바, 진정한 작가와 가짜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 소설은 괴테의 파우스트에 대한 오마쥬이자 각종 성찬이 넘쳐나는 카니발이다. 현실과 허구의 교묘한 융합 속에서 불가코프는 스탈린 체제 하의 러시아를 풍자하고 작가와 글쓰기의 의미를 파헤친다.

후대의 많은 예술가들이 이 소설에 매료되었다. 지금도 수많은 소극장에서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연극이 공연되고 있다. 보리스 에이프만도 초창기에 ‘거장과 마르가리타’라는 발레를 안무했다. 최근에는 로이드 웨버가 뮤지컬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2005년에 러시아 국영 텔레비전에서는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10부작 미니시리즈로 방영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와 불가코프의 ‘개의 심장’을 성공적으로 영상화했던 블라디미르 보로트코가 연출하고 올레그 바실라쉬빌리, 알렉산드르 아브둘로프, 안나 코발추크 등의 연기파 배우가 출연한 이 작품은 공전의 성공을 거두었다.

텔레비전 시리즈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보았으나 마르가리타 역의 코발추크가 너무 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통해 청소년을 비롯한 젊은 독자들 사이에서 불가코프 붐이 일게 된 것은 분명 긍정적인 현상이다. 돔 크니기 같은 서점에 가보면 불가코프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한 진열대 전체를 메우고 있는 ‘거장과 마르가리타’ 판본들은 셀 수가 없을 지경이다. 불가코프의 사진이 박힌 고전적인 판본부터 텔레비전 시리즈의 남녀 주인공을 표지로 내세워 다분히 펄프 픽션 냄새까지 풍기는 판본까지... 연구서들도 이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루키야넨코’의 ‘나이트워치’ 시리즈에 열광하며 ‘어스름의 세계에서 나오너라!’ 하고 주문을 외쳐대는 아이들조차 악마와 마녀가 등장하는 판타지 요소 때문에 친밀감을 갖고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한다. (혹자들은 장르 소설들을 펄프 픽션이라고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루키야넨코의 판타지들 역시 어떤 면에서는 러시아적 전통과 인간 영혼의 심연에 대한 흥미를 다룬다) 어쨌든 얄팍한 흥미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좋다. 대중 판타지 소설에 대한 페티시즘 때문에 읽게 되었다고 해도 좋다. 불가코프의 이 소설에는 분명 더 깊은 뭔가가 있다. 그리고 아이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불가코프의 세계와 공명한다. 진정 좋은 작가, 좋은 소설이란 그런 것이다.

체제와 영합하고 증명서를 찍어내는 작가들 사이에서 본디오 빌라도와 예수라는 반동적인 테마로 글을 썼다며 매장당한 주인공 ‘거장’은 광기에 사로잡혀 자신을 그토록 불행하게 만든 소설 원고를 모조리 태워버리지만 모스크바에 나타난 악마 볼란드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그 자리에 빌라도와 함께 있었고 예수의 처형을 보았다고. 그리고 원고는 결코 불타지 않는다고.

불꽃처럼 번득이는 영감과 화려한 환상의 세계, 카니발처럼 펼쳐지는 전복과 해체의 텍스트 속에서 불가코프가 궁극적으로 얘기하고 싶었던 말이 여기 있다. 원고는 불타지 않는다. 아무리 억압과 절망으로 점철된 상황이라 해도 작가의 혼은 죽지 않는다. 그리고 몇십 년이 지난 지금, 불가코프의 예언은 사실이 되었다. 어둠 속에 묻혀졌던 그의 원고는 살아났고 빛을 발하고 있다. 작가는 작품으로 얘기해야 한다, 좋은 작품은 결국 살아나게 된다.

작품 후반부에서 악마 코로비예프와 말하는 고양이 베헤못은 모스크바 작가모임의 사무실 건물에 들어가려다 증명서를 보여달라며 제지를 받자 안내원에게 유쾌하고도 뼈 있는 말을 던진다.
“ 아니, 도스토예프스키가 작가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증명서가 필요합니까? ”
“ 도스토예프스키는 죽었잖아요. ”
“ 이의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불멸입니다! ”

진짜 작가들에게는 증명서가 필요없다는 사실을 불가코프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독자들도 안다. 코로비예프와 베헤못의 말이 맞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불멸이다. 그리고 불가코프도 불멸이다. 그들의 원고는 불타지 않을 것이다.


2007년 3월, lionta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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뻬쩨르에 있을 때 멋진 삽화가 들어간 거장과 마르가리따 양장본을 너무 사고 싶었는데..
눈 딱감고 살걸 그랬다.. 알리모프의 베헤못 삽화를 보니 정신이 아득해진다.
원고는 다음 포스팅에..
 
세르게이 알리모프 : 고양이
(말하는 고양이이자 볼란드의 광대인 베헤못이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

세르게이 알리모프 : 출현
(모스크바에 나타난 악마 볼란드와 베헤못을 그린 모습이다.)

제르자빈 : 총독 본디오 빌라도와 대제사장 가야파
 
 
림마 류호바 : 위스키를 마시고 있는 베헤못
 
 

미하일 불가꼬프

텔레비전 시리즈의 오프닝. '원고는 불타지 않는다'란 자막이 보인다


이반 베즈돔느이, 볼란드, 꼬로비예프가 빠뜨리아르흐 연못가에서 얘기를 나누는 장면


마르가리따 역의 안나 꼬발추크


볼란드 역의 올레그 바실라쉬빌리

예슈아 하노츠리(예수) 역의 세르게이 베즈루코프
(이 사람은 '백치'에서도 므이쉬킨 공작을 맡았는데 선해 보이는 인상 탓인 듯 싶다)

거장과 마르가리따 여러가지 판본들


불가꼬프의 거장과 마르가리따 자필 원고


제르자빈 : 꼬로비예프와 베헤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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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2 15:32

네프스키의 두 화가 이야기 petersburg diary2007.10.02 15:32

러시아 일기 #7

네프스키의 두 화가 이야기


남자의 눈은 장난스럽게 반짝이고 있었다. 몇 겹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껴입은 옷은 거무튀튀한 잿빛으로 바랜데다 때가 묻어 번질번질했다. 노숙자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몸을 세우면 나와 이마가 마주 닿을 정도였다. 이젤에는 화첩에서 북 뜯어낸 듯한 질 나쁜 도화지 한 장이 끼워져 있었고 목탄과 파스텔 토막이 지저분하게 나뒹굴고 있었다.

사원 앞 광장은 부드러운 빛으로 가득했다. 한순간 나타난 빛이었다. 며칠 째 하늘은 흐릿한 먹구름에 가려져 있었던 것이다. 초상화를 그리기에는 좋은 기회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네프스키 대로의 예까쩨리나 성당 앞 초상화 광장


나는 어색하게 다리를 구부리고 등을 꼿꼿이 편 채 어린 아이에게나 맞을 법한 낚시용 접이의자에 앉아 있었다. 하필 시내에서 제일 붐비는 네프스키 거리 한가운데였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러시아인들과 관광객들의 시선이 등줄기를 아프게 찔러댔다.

애초에 초상화를 그릴 생각도 아니었다. 추석 연휴를 맞아 잠시 페테르부르크에 놀러온 친구는 떠나기 전날 꼭 초상화를 그리고 싶다고 했다. 오전 내내 에르미타주를 구경하고 시내의 샌드위치 가게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한 후 우리는 초상화가들을 찾아 예카테리나 성당 앞의 작은 광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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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너무 맛있는 러시아 서브웨이


모델들은 전혀 없었다. 날씨도 좋지 않았고 이따금 빗방울이 오락가락했다. 마침내 까다로운 친구는 섬세하고 정밀한 묘사가 특징인 어느 화가를 골랐다. 차분한 시선의 과묵한 중년 남자였다. 벽 쪽으로 접이의자를 펴놓고 주위를 자신의 몸과 다른 그림들로 둘러싸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모델과 자신의 그림을 보호했다. 장사를 공치게 될까봐 불안해진 다른 화가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친구 옆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를 꼬드기려 들자 투덜거리는 어조로 ‘그 아가씨 좀 가만 내버려둬!’ 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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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 광장 한컷 더


조용한 눈빛의 그 화가가 친구를 그리느라 집중하는 동안 내겐 또다시 집요한 유혹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돈도 없고 그릴 생각도 없지만 다음에 오면 꼭 당신의 모델이 되겠다는 변명으로 여러 명을 물리쳤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다가온 볼품없는 50대 남자 앞에서 나는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광장 안쪽에 그림을 늘어놓고 술을 마시고 있던 남자였다.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에나 나올 법한 주정뱅이 하급 관리의 풍모가 역력했다.

남자는 한손에 술병을 쥔 채 능글능글한 어조로 말했다.

“ 며칠 째 그림을 못 그려서 너무 심심한데,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야. 잠깐만 내 모델이 되어주면 안되나? 그림 팔려고 그러는 게 아니야. 맘에 안 들면 안 사도 돼요. 내가 그냥 갖고 있으면 되니까. ”

희끗희끗하게 세어 지저분하게 흐트러진 수염과 족히 십년은 빨지 않았을 듯한 구겨진 모자 사이로 회색 눈이 장난스럽게 반짝이고 있었다. 반쯤 기계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거절하려고 했던 나를 잡아끈 것도 그 눈의 광채였다. 나는 사로잡히고 말았다.

친구가 선택한 조용한 눈빛의 화가와는 달리 이 사람, 지나치게 외향적이다. 내가 승낙하자마자 신이 나서 쓰레기통에서나 주워온 듯한 고장난 접이의자를 척척 펴더니 나를 앉히고 잽싸게 이젤에 도화지를 끼운다. 아까 내게 거절당했던 화가들이 원망스런 눈으로 이쪽을 보며 투덜댄다.

요지부동 자세로 꼿꼿하게 앉아 있는 친구를 힐끔 보며 걱정스럽게 다리를 뻗고 있는 내게 술꾼 화가가 즐거운 듯 말했다.

“ 똑바로 앉아 있을 필요 없어요, 다리에 쥐나니까 가끔 스트레칭도 하고 고개도 돌려보고 그래요. ”

친구가 선택한 조용한 눈빛의 화가와는 정반대였다. 그가 나를 앉힌 자리는 하필 버스 정류장 바로 앞이었고 인도를 걸어오는 사람들을 정면으로 마주보는 방향이었다. 이젤도 완전히 노출되어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잠시 시선을 돌렸고 그림과 모델을 훑으며 그림이 낫다는 둥 아니 모델이 좀 낫다는 둥 뻔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안 그래도 어색한 와중에 몇 분에 한번씩 전형적인 러시아 아주머니들이 불쑥불쑥 끼어들며 ‘거참 잘도 그리네, 얼마유?’ 하고 물어댄다. 미칠 지경이다. 게다가 이 사람, 쇼맨십이 어찌나 풍부한지. 그럴 때마다 너스레를 떨며 목청 좋게 외쳐댄다.

“ 내가 또 초상화 하나는 잘 그리지! ”

심지어 동료 화가들도 곁으로 다가와 부러움에 가득찬 눈길을 던진다.

“ 너 정말 이러기야? 또 모델을 낚아채다니. 다 그리면 보드카나 좀 쏘시지! ”
“ 아가씨, 이사람 그림 맘에 안 들면 내 걸로 가져가요. 내 스타일이 훨씬 낫지. ”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어 고개를 돌려보니 옆자리의 화가 두어 명도 이젤을 비스듬히 돌려놓고 열심히 나를 그리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이거 초상권 침해 아닌가? 훤한 네프스키 대로에서 일렬로 세 명씩이나 날 그리고 있다니! 안 그래도 사과만한 얼굴에 계란만한 눈동자의 8등신 러시아 미녀들이 쿡쿡 웃으며 힐끗거리는 것도 괴로워 죽을 지경인데 이게 뭔가.

보드카를 한모금 홀짝 들이킨 후 내 화가가 히죽거린다.

“ 다들 모델이 없으면 의기소침해진단 말이야. 돈이 문제가 아니지. ”

그래, 내 한몸 희생해 의기소침해진 화가들의 예술혼을 꽃피우는데 도움이 된다면야! 내가 이들의 뮤즈가 되는 거야!

.. 그런데 미모가 딸려도 뮤즈가 될 수 있나?

화가는 계속해서 속사포같이 말을 걸어댄다. 북한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해 미인들에 대한 얘기, 모델과 화가의 관계에 대한 얘기, 물통 밑면에 어떤 동양 아가씨가 적어주고 간 이름이 있는데 이게 한국 이름인지 중국 이름인지 모르겠다며 읽어달라는 부탁, 심지어 푸틴과 한국 대통령을 비교하면 어떤가, 푸틴이 3선을 할 거라고 생각하느냐 류의 정치적 질문까지. 우리말로 대답하기도 어려운 내용이다. 게다가 도로변이라 그런지 애써 대꾸하는 내 음성은 소음에 묻혀 뭉개져 버린다. 그래도 아랑곳없이 신나게 떠들어대는 화가. 과연 그림이 제대로 나오기나 할지, 마음에 안 들면 안 사도 된다고 했는데 말을 바꿔서 협박조로 나오는 건 아닌지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 동안 친구는 조용한 눈빛의 화가로부터 완성된 초상화를 받아들고 셈까지 치렀다. 이쪽 화가는 정반대여서 그림을 그리는 동안 단 한마디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단다. 잔잔한 호수 같은 사람이었는데 섬세하고 내성적인 성격이 그림에도 그대로 배어 있었다. 검은색으로 세밀하게 묘사된 초상화의 얼굴은 찌르는 듯한 시선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찌나 진지한 표정인지 섬뜩할 지경이었다.

40분이면 된다던 내 초상화는 끝날 줄을 몰랐다. 거침없이 쓱쓱 오르락내리락하는 손놀림을 보면 빨리 끝날 법도 한데... 끊임없이 떠들던 나의 화가는 어느새 입을 다문 채 그림에 몰두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하자 그는 주섬주섬 이젤과 도구들을 챙기더니 내게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행히 도로변에서 벗어나 광장 안쪽의 성당 지붕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화가는 눈에 띄게 조용해졌다. 들리는 거라곤 저 뒤편에서 타박타박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와 덜컹거리는 전차 소리, 그리고 목탄과 크레용 조각이 도화지 표면을 쓱쓱 긁고 지나가는 소리 뿐. 광장 구석으로는 어둠이 스며들었고 습한 바람이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그 어둠과 정지한 듯한 적막에 잠시 취해드는 순간, 교복 차림의 소년 서넛이 곁을 지나치다 그림을 가리키며 장난기와 시비조가 뒤섞인 농담을 건넸다. 하지만 역시 나의 회색 눈 화가는 당당하고 우렁차게 외친다.

“ 그래, 역시 내 솜씨가 끝내주지? ”

머쓱해진 소년들이 저만치 사라져간 후 성당에서 나온 허리가 굽은 백발의 뚱뚱한 할머니가 족히 10분도 넘도록 내 곁에 서서 그림을 들여다보며 친구에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그림이 얼마냐, 모델보다 훨씬 예쁘구나. 어쩌면 저렇게 예쁠까, 나도 그리고 싶은데 너무 비싸다 등등. 그림이 정말 마음에 들었는지 좀처럼 곁을 떠나지 못한다. 이쯤 되자 나의 기대치도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화가가 스프레이를 칙칙 뿌린 후 이젤을 돌려 자랑스럽게 그림을 보여주었다. 갈색으로 쓱쓱 그려진 크로키인데 생각보다 예쁘다. 어딘가 실물과는 묘하게 어긋나는 느낌인데 아마 그건 러시아 화가의 시선이 배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눈매가 매서운데다 표정에 은근히 싸늘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어 토끼 같은 내 모습과는 차이가 있지만 바로 그 눈매를 보면서 할머니는 그림이 예쁘다며 탄성을 질러댔다. 미의 기준은 어디나 다른가보다. 조르주 상드의 어느 소설에 등장하는 유명한 화가는 오래전 죽은 미인 아내의 모습을 원형으로 약간의 특색만 수정해서 초상화들을 그려내곤 한다. 아마도 나의 잿빛 눈 화가 역시 자신의 원형을 품고 있나보다. 도화지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얼굴은 기이하게 낯설면서도 가깝게 느껴졌다.

나는 500루블을 치렀다. 신이 난 화가는 그림이 맘에 들면 입을 맞춰달라고 요구한다. 얼결에 뺨에 가볍게 입술을 스쳐 주자 이 아저씨 입이 귀까지 걸린다.

그 그림은 지금도 내 방에 있다. 몇 겹의 신문지로 돌돌 말려 트렁크 한켠에 자리잡은 채 공항들을 거쳐 서울로 날아온 것이다. 친구의 초상화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가끔 두 장의 그림을 펴놓고 그날 오후를 떠올린다. ‘네 그림은 예쁜데 내 그림은 무섭단 말이야’, ‘도리안 그레이처럼 초상화가 대신 나이를 먹어줬으면 좋겠어’, ‘그 화가 아저씨 너한테 흑심이 좀 있었던 게 아닐까?’, ‘그 할머닌 나중에 쌈짓돈 들고 초상화 그리러 갔을까?’ 등등 수다를 떨기도 하고.

가장 궁금한 건 우리가 떠난 후 그 두 화가가 무엇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다. 급격히 날이 어두워진데다 비까지 흩뿌려댔으니 더 이상 일거리가 있었을 리는 없고. 아마 친구의 조용한 화가는 그림 도구들을 곱게 챙겨서 홀로 전차를 타고 허름한 자기 집으로 돌아갔을 테고 나의 떠들썩한 화가는 동료들과 함께 뒷골목 술집으로 몰려가 보드카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흑빵을 씹어대지 않았을까? 아니면 정반대로 전자는 마음이 맞는 친구들을 만나 그날 만난 모델에 대해 이야기하며 술을 마시고 후자는 혼자 비를 맞으며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 텅 빈 방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가능한 얘기다. 그리고 정말 재미있는 부분은 아무도 알 수 없는 부분, 그래서 우리에게 상상의 즐거움을 던져주는 부분이다. 안 그런가?

2007년 2월, lionta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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