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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무 시리즈 때문에 본편이 안 써진다고 투덜대고는 있지만.. 사실 가브릴로프 본편의 외전은 서무 시리즈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이미 재작년부터 본편 시작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끙끙 앓다가 렐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추리소설 외전을 한 편 쓴 적이 있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이때도 이 추리 소설 외전은 상당한 장편이 되었음... 본편 빼곤 뭐든 다 쉬워요 엉엉...

 

이때 이미 본편 등장인물들과 플롯은 거의 구성된 상태였기 때문에, 이 외전에는 본편 캐릭터들을 그대로 데려왔다. 물론 성격이라든지 특징 등은 비슷한 사람도 있고 완전히 다른 사람도 있었다. 인물들 간의 관계도 물론 비슷한 것도 있지만 완전히 다른 점도 많았다.

 

미샤는 본편과 비슷한 성격이지만 좀더 다정한 타입으로 변했고(물론 서무 시리즈의 왕재수와는 전혀 다르다!) 렐랴는 본편에서는 버릇없는 귀족 아가씨였지만 이 외전에서는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인물이다 보니 좀 철은 없어도 당차고 똑똑한 인물이 되었다. 코즐로프도 본편과는 꽤 다른 성격이 되어버렸는데 여기서 나온 들이받는 성격이 서무 시리즈로 가버렸다.. (미안해 코즐로프야..)

 

완전히 다른 것은 바로 다닐 베르닌, 서무 시리즈 주인공 단추인데... 이 사람은 본편과 이 추리 외전, 그리고 서무 시리즈 세가지에서 모두 성격도 특징도 꽤 다르다! 본편에서는 무모하고 열정적인 메피스토펠레스 같은 인물(살짝 뺀질거리기도 한다)이라면 서무 시리즈에서는 고지식한 책상물림에 하염없는 순둥이 말단 서무, 그리고 이 추리 외전에서는 역시 고지식한 책상물림 기질이 있기는 하지만 명예욕도 있고 앞장서서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탐정 역할이었다. 천의 얼굴 베르닌~ 이래서 서무 시리즈에서 하를람피 푸고비체프도 소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목요일쯤 서무 22편 올라갈 예정이지만, 그 전에 머리 식힐 겸 추리 외전에서의 베르닌과 렐랴, 코즐로프에 대한 내용을 조금 발췌해 본다~ 서무 시리즈의 단추, 렐랴, 코즐로프와 한번 비교해 보세요 :) 잘 보면 스페호프에 대한 묘사도 있다~

 

 

..

 

 

* 이 글을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먼저 단추와 코즐로프에 대한 묘사. 소설 프롤로그 부분이다. 이야기는 아리따운 엄친딸 렐랴가 근사한 만찬을 준비하고 열두 명의 손님을 초대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만찬의 목적은 갓 부임해온 시립극장 예술감독인 미샤를 유혹하려는 것임^^;) 단추 베르닌과 코즐로프도 그 손님 명단에 들어 있다. 렐랴가 그 둘을 초대한 이유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는 손님은 두 명 더 있었다. 불청객까지는 아니었지만 로만 코즐로프가 거기 속했다. 코즐로프는 가브릴로프 오케스트라의 수석 바이올리니스트였다. 원래 렐랴는 지휘자인 콘스탄틴 볼코프를 초청하려고 했었다. 친분도 있는 사이인데다 파티에서 사랑받는 타입의 둥글둥글한 아저씨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볼코프는 손녀의 생일과 겹친다며 난색을 표했고 대신 코즐로프를 밀어 넣었다. 가브릴로프 문화예술계를 꽉 잡고 있는 숙녀답게 렐랴는 코즐로프와도 안면이 있었지만 둘은 전혀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코즐로프는 오케스트라의 실세였는데 현학적이고 냉소적인 인물이었고 이따금 싸움꾼으로 변모하기도 했다. 모스크바 물을 먹은 적이 있기 때문에 거만하게 구는 적도 많았고 보통은 음울하기 짝이 없었다. 렐랴는 그를 키라의 옆자리에 배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까칠한 화가와 냉소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둘이서 잘해보라지.

 

마지막은 진짜 불청객이었다. 그녀가 별장에서 파티를 여는 것은 가끔 있는 일이었고 누구를 손님으로 부르든 지금껏 간섭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사정이 달랐다. 명단에 미샤 야스민이 들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가브릴로프 KGB 지부에서 렐랴에게 연락을 해왔던 것이다. 자신들 쪽 사람을 하나 끼워 넣지 않으면 파티를 취소하거나 그 요주의 인물을 제외해야 할 거라고 조용하지만 명령에 가까운 경고를 해왔다. 미샤는 당연하게도 보안위원회의 특별 감시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렐랴는 아버지와 친척들에게 얘기해서 한바탕 소란을 일으킬까 하다가 국장인 블라지미르 스페호프가 친히 전화를 해왔기 때문에 그만두었다. 스페호프의 비위를 건드려서 좋을 일은 별로 없었으니까. 그자는 심사가 뒤틀린 사이코였다. 원래는 모스크바 KGB 본부에 있었지만 어떤 일에 휘말려 가브릴로프로 전출당해 지부 국장을 맡고 있었는데 한번 앙심을 품으면 잊는 법이 없었고 의심스러운 사상이 엿보이는 젊은이들이라면 악착같이 감시했다. 그러니 그가 미샤 야스민이 초청된 파티에 감시자를 딸려 보내려고 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그나마 스페호프 자신이 오는 것이 아니라 다닐 베르닌을 보내는 것이 다행이었다. 베르닌은 가브릴로프 KGB 지부에서 서기 업무를 보고 있었고 스페호프의 비서 중 하나이기도 했다. 렐랴는 베르닌의 조그맣고 광택 없는 까만 단추 같은 눈을 아주 싫어했고 그의 촌스러운 매너와 그보다 더 엉망인 옷차림은 더욱 싫어했다. 이미 서른에 가까운 나이였지만 꼭 풋내기 대학생 같은 몰골이었다. 그녀는 스페호프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베르닌에게도 초청장을 보냈지만 마음 속으로는 어떻게든 미묘하게 모욕을 주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

 

 

  그리고 이번엔 소설 전반부. 갑작스럽게 시체가 발견된 후, 손님들을 모두 거실에 몰아넣고 나서 베르닌과 렐랴가 나누는 대화이다 :) 여기 인용되는 키라, 데니스, 알렉세이 등등은 모두 본편에도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키라는 미샤의 화가 친구이며(전에 about writing 폴더에도 둘이 미술관 갔던 얘기를 잠깐 발췌한 적 있다), 데니스와 알렉세이는 가브릴로프 극장의 무용수들이다.

 

 

모포를 들고 다시 복도를 돌아 나왔을 때 렐랴는 베르닌이 시체 곁에 무릎을 꿇고 뭔가를 살피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어찌나 열중해 있는지 그녀가 다가오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 뭐 새로운 거라도 있어요? ”

 

베르닌이 희미하게 움찔하더니 시체의 손을 내려놓았다. 렐랴는 어렴풋이 베르닌의 소매 안쪽으로 초록색 광채가 반짝 사라지는 것을 본 것 같았지만 램프 불빛이 시계에 반사된 것인지도 몰랐다.

 

“ 별로. 가서 얘기하죠. 모포가 꽤 크군요. 혼자 들고 오기 힘들었겠어요. 그럴 줄 알았으면 같이 갈 걸 그랬네요. ”

 

“ 이제 와서 그런 말 해봤자 소용없어요. 매너와는 담쌓은 사람이란 건 애초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

 

“ 매너는 극장 남자들에게나 기대해요. 왕자님 역할이 몸에 밴 사람들이 우글거리잖아요. 데니스도 그렇고 야스민도. 하긴 알렉세이도 키라에게 잘 해주더군요. 그나마 이불이 흰색이 아니라서 기분은 좀 나은데. ”

 

베르닌은 렐랴의 도움을 받아 모포를 펼쳐 시체를 덮었다. 모포 아래로 맨발이 빠져나와 있는 것을 보자 렐랴는 다시금 소름이 돋았다. 가까스로 마음을 가다듬고 모포를 끌어당겨 시체를 완전히 덮으면서 렐랴가 중얼거렸다.

 

뜨거운 차와 파이라도 좀 갖다 줘야겠어. 다들 숙취 때문에 괴로울 거야. ”

 

“ 그러는 게 좋을 겁니다. 진술하려면 다들 정신을 차려야 할 테니까. 차와 음식 준비는 타마라 니콜라예브나의 도움을 받는 게 좋겠군요. 혼자 준비하려면 번거로울 테니까. ”

 

“ 가지가지 하는군요. 무매너에 성차별주의 발언까지. 나 혼자 할 수 있어요. 내가 여자라서가 아니라 주인이기 때문이죠. ”

 

“ 사과하라는 뜻인가요? 다시 봤습니다, 릴리아나 페트로브나. 예쁜 얼굴과 살림 솜씨로 맘에 드는 남자를 유혹하려고 파티를 연 전형적인 귀족 아가씨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사과해야겠네요. ”

 

 

렐랴는 어째서 베르닌의 그 형편없는 매너와 끔찍할 정도로 무례한 발언에 화조차 나지 않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 그럴 가치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싸늘한 미소를 띠며 침착하게 대꾸했다.

 

 

“ 당연히 사과해야죠. 그리고, 잊지 말아요, 다냐. 당신도 그 잠재적 용의자에 해당된다는 사실. 내가 심문하겠다고 했잖아요. ”

 

“ 잊었을 리가. 그래, 언제 하려고요. 지금? ”

 

“ 다른 사람들 얘기 좀 들어보고요. ”

 

“ 뜻대로 하시죠, 비슈네브이 사드 편집장님. 아마 맘 상할 얘기가 좀 많이 나올 겁니다. 그래도 당신은 키라처럼 울지는 않겠죠. 그 아가씨처럼 누구에게 목맬 정도로 빠져 있지는 않으니까. 그런 타입도 아니고. ”

 

“ 내기라도 하고 싶네요, 다냐. ”

 

“ 뭘 말인가요. 범인을 누가 먼저 밝혀내는지? ”

 

“ 아뇨. 난 당신처럼 탐정 놀이에 빠져 있는 철없는 사내애가 아니에요. 그런 내기 따윈 안 해요. ”

 

 

렐랴는 부드럽고 도톰한 입술을 치켜 올리며 도도하게 말했다.

 

 

“ 당신 지금까지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해봤죠? 여자가 정말 싫어하는 타입이니까. ”

 

“ 얼마 걸겠어요? ”

 

“ 글쎄요, 이 목걸이라도 걸까요? ”

 

“ 진짜 진주 같은데? 공연한 짓 하지 말아요, 릴리아나 페트로브나. 가서 뜨거운 차나 준비해 주시죠. 아까 키라 모이세예브나 말 못 들었어요? 그 레닌그라드 친구에겐 뜨거운 게 필요할 걸요. 아직 고문 후유증이 있어서. 물론 신경통 앓고 있는 당신 외삼촌과 기억이 오락가락하는 신부님에게도 뜨거운 차가 필요하겠죠. ”

 

“ 당신, 내기에 응하지 않았어요. 결론이 났네요. ”

 

“ 마음대로 생각하시죠, 릴리아나 페트로브나. ”

 

 

다닐 베르닌이 웃기 시작했다. 렐랴는 처음으로 그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미소와 마찬가지로 그다지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

 

이 외전은 3인칭 시점이긴 하지만 다분히 렐랴의 관점에서 전개되기 때문에 초반부의 베르닌은 이런 사람으로 보인다.. 요즘은 하도 서무 시리즈를 많이 써서 그런지 오랜만에 저 추리소설의 베르닌을 보니 굉장히 뺀질거리는 것처럼 보이네.. 서무 시리즈였다면 시체를 발견한 단추는 훌쩍훌쩍 울며 책상물림 짓을 하고 있을텐데 :) 하지만 이 외전도 후반부로 가면 베르닌의 다른 면모가 드러난다~ 렐랴도 그렇고 :)

 

이 추리 외전은 분량이 꽤 길긴 한데... 서무 시리즈도 잘 안 풀릴 때가 오면 이 외전을 한번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그래도 베르닌은 서무 시리즈 단추가 더 귀엽긴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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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