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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도 않고 크지도 않은'에 해당되는 글 3

  1. 2023.08.07 꿀, 설탕, 레몬 2
  2. 2023.08.03 빨간 소고기 뭇국 6
  3. 2023.05.27 쥬인의 유래, 무 생채와 오이무침 6
2023. 8. 7. 15:48

꿀, 설탕, 레몬 작지도 않고 크지도 않은2023. 8. 7. 15:48

 

 

 

 

 

나는 보통 홍차에 아무것도 넣지 않는다. 향이 너무 센 배합차나 가향 티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다즐링, 실론, 아삼 같은 차를 스트레이트로 마신다. 이따금 기문이나 랍상소총을 주문할 때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기분전환을 하고 싶은 경우로, 이때도 당연히 다른 아무것도 추가하지 않는다

 

 

예외는 여행을 갔을 때로, 목이 붓고 몸살의 전조가 느껴질 때는 조식 테이블의 홍차에 꿀과 레몬을 넣는다. 레몬은 얄팍한 슬라이스로 내주기 때문에 두 조각을 집어서 즙을 꼭꼭 짜 넣는다. 음료 배식대에 레몬이 없는 경우도 많아서 이때는 샐러드 테이블에서 레몬을 집어온다. 예쁘게 마시려면 얇은 레몬 조각을 둥둥 띄워놓으면 되지만 사실 그러면 즙이 거의 나오지 않아서 아무 효과가 없다. 고급 호텔이 아니면 짜개까지 준비된 곳은 거의 없으므로 손가락과 포크로 꼭꼭 눌러서 즙을 잔뜩 짜 넣는다. 여기에 꿀을 크게 한 숟가락 넣어 녹인다. 일회용 조그만 용기에 든 꿀이 있으면 부어서 마시기에 편리하긴 한데 점도와 맛으로 미루어보면 이것들은 꿀의 탈을 쓴 시럽일 가능성이 높다

 

 

너무 추울 때는 설탕을 넣는다. 이것은 맨 처음 차를 마시기 시작한 것이 오랜 옛날 러시아에서였고 그 동네는 항상 차에 설탕을 넣기 때문이다. 확실히 추울 땐 차에 설탕을 넣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다. 꿀보다 설탕이다. 경험으로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카페에 가서 홍차를 시켰을 때 별말도 없이 우유와 레몬과 꿀을 내주면 매우 기분이 좋아진다. 설탕은 조금 더 복잡하다. 위생적으로는 그다지 권장할만한 일은 아니겠으나 각설탕이 가득 든 그릇이 있으면 어쩐지 가슴이 설렌다. 옛날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든다고나 할까. 테이블 위에 설탕이 차곡차곡 들어차 있는 도자기 그릇이나 조그만 컵이 놓여 있으면 그것에도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접시는 딱히 감흥이 없다. 차에 설탕을 넣는 건 거의 일이 년에 한 번뿐이건만 그래도 테이블 위에 설탕이 놓여 있어야 기분이 좋고 뭔가 모자람이 없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것도 아직은 여행지에서의 낭만에 가깝다. 국내에서는 맘먹고 찾아가는 티룸이 아닌 한 보통은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티백 담가주는 홍차를 시키게 되고, 냅킨을 가지러 가면서 일회용 설탕 한 봉지를 직접 챙기는 정도니까. 우유와 레몬과 꿀은 요원하다. 어차피 제대로 넣어서 마시지도 않는 주제에 뭘 그렇게 따지느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만 그래도 서운한 마음이 든다.

 

 

 

덧글 1 : 홍차에 꿀을 넣으면 탄닌 성분에 문제가 생겨서 몸에 좋지 않으므로 영양학적으로는 설탕을 넣는 게 맞다고 한다. 그런데 이 정보를 알게 된지도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고집스럽게 꿀을 타서 먹고 있다.

 

 

덧글 2 : 우리 집에는 설탕이 없다. 요리할 때 설탕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이따금 프랜차이즈 카페에 갔을 때 일회용 설탕을 두어 봉지 챙겨오는데, 이것은 꽃들에게 먹이는 용도로 쓴다. 꽃이 시들시들할 때 화병의 물에 설탕과 락스를 타주면 좋다.

 
 

 

 

---

 

 

 
* 이 글은 작년 겨울 프라하 여행의 메모로 짧게 적었던 원글이 있다. 그것을 좀더 다듬은 버전이다. 원글은 아래. 사진이 몇 장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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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23. 8. 3. 16:51

빨간 소고기 뭇국 작지도 않고 크지도 않은2023. 8. 3. 16:51

 
 
 
 
 
 
 

<작지도 않고 크지도 않은>
 

 

 
이 폴더는 먹거리와 옛 이야기에 대한 가벼운 단문들을 모아놓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몇달 전 이런 단문을 몇개 쓰고 리스트업도 해두었는데 일도 너무 바쁘고 원래 쓰던 단편에도 집중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많이 쓰지는 못했다. 예전에 올렸던 무 생채와 오이무침 얘기도 이 시리즈의 일부라서 폴더를 만들면서 옮겨두었다. 틈틈이 하나씩 올려보겠다. 일러스트도 첨엔 이렇게 그려봤는데 결국 시간과 에너지가 모자라서 그림은 이거 포함 두세개 밖에 못 그렸음. 근데 다 그려놓고 보니 이 그림 속 무는 무 같지 않고 꼭 두부 같다 흑흑 토끼의 앞발 ㅜㅜ
 

 
 
 
 
 
 
 

빨간 소고기 뭇국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독립한 후 나는 러시아에서 사귄 친구와 십여 년 이상 함께 살았다. 친구는 부산 출신이었다. 대학 졸업 후 부산에서 잠깐 회사를 다니다 나의 꼬드김에 넘어가 서울로 상경, 잠시 함께 통역대학원을 준비하기도 했고 이후에는 둘다 취업을 했다.
 
 
 
어느 날 감기에 걸려 열이 나고 아팠는데 친구가 빨간 소고기 뭇국을 끓여주었다. 감기 걸리면 엄마가 끓여주던 거라고 했다. 나는 반신반의했다. 일단 나는 당시만 해도 우리 엄마의 식성을 닮아서 고깃국을 거의 먹지 않는 입맛이었다. 내 기억 속의 소고기 뭇국은 희뿌연 국물에 기름이 둥둥 떠 있는 느끼한 음식이었다. 게다가 빨간색이라니! 어떻게 여기다 고춧가루를 풀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뿌리 깊은 편견, 즉 경상도 음식은 맛이 없다는 믿음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전라도 출신이라 경상도 쪽 음식은 낯설었다. 여기에는 친구네 어머니가 담근 김치가 엄청나게 맛이 없었다는 기억도 한몫했다.
 
 
 
친구는 참기름에 소고기와 무를 볶았고 거기 물을 부어 팔팔 끓였다. 콩나물도 넣었고 국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고춧가루를 한 숟가락 풀었다. ‘맛있을 리가 없잖아, 그래도 아픈 나를 위해 끓여준 성의를 생각해 먹어야겠지. 맛있다고 해줘야겠지’ 하고 생각하며 그 경상도식 빨간 소고기 뭇국을 먹어보았다. 전혀 느끼하지 않았다. 콩나물이 들어가서 시원했고 고기를 참기름에 볶아서 그런지 특유의 역한 냄새가 나지 않았다. 고춧가루 덕분인지 온몸이 따뜻해졌다. 한마디로, 빨간 소고기 뭇국은 맛있었다. 왜 감기에 걸렸을 때 먹는 음식인지도 알 것 같았다. 그 이후 나는 몸이 으슬으슬할 때 가끔 이것을 끓여 먹곤 했다. 생각해보니 소고기미역국도 이 친구 덕분에 처음 먹게 된 음식이다. 우리 집은 미역국에 다른 아무것도 넣지 않고 끓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내 머릿속에 빨간 소고기뭇국은 소고기미역국의 자매품처럼 각인되었다. 둘 다 참기름에 소고기를 볶는 것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후 룸메이트였던 친구는 결혼을 해서 떠났고 나는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며 점점 요리를 등한시하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던 온갖 레토르트와 인스턴트, 밀키트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목이 아프면 피코크에서 나오는 소고기뭇국 봉지를 뜯어 냄비에 데우고 최소한의 양심을 발휘해 콩나물을 한 줌 집어넣고 끓인다. 콩나물의 유무에 따라 맛이 많이 달라진다. 참기름도 몇 방울 뿌린다. 고춧가루는 넣지 않는다. 콩나물과 참기름까지는 괜찮은데 기껏 레토르트 따위에 고춧가루까지 넣으면 좀 선을 넘는 것 같다. 나 혼자만의 이상한 기준이랄까.
 
 
 
덧글 : 그러고 보니 이 빨간 소고기뭇국은 나의 경상도 음식에 대한 편견을 퇴치해준 계기가 되었다.
 

 

 
 
 
...
 
 
 
 
여기 등장하는 룸메이트 친구는 앞의 글에서도 등장했던 나의 절친 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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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가족은 김치 없이는 못 사는 전형적인 한국 입맛이다. 엄마의 요리 솜씨도 아주 훌륭하다.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는 김치를 안 먹는 애들이 있다는 사실도, 요리 못하는 엄마들도 많다는 사실도 잘 몰랐다.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먹어보고서야 김치가 맛있다는 걸 깨달았다느니, 우리 엄마는 진짜 음식 못한다느니 하는 친구들의 이야기에 깜짝 놀랐다. 적어도 자기 엄마라면 어릴 때부터 익숙해졌을 테니 아무리 요리 솜씨가 별로여도 이럭저럭 맛있게 느껴져야 하는 것 아닌가?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지금도 이 의문은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대학 시절 러시아에 8개월 정도 연수를 가게 되어 처음으로 독립 겸 외국 생활이란 것을 해보게 되었다.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라면과 달걀 프라이가 전부였다. 당시 외국에 공부하러 가는 아이들의 필수품은 당연히 보온밥솥이었다. 그런데 나는 남대문 시장을 돌아다니다가 밥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음식을 할 수 있다는 말에 혹해 쿠커라는 놈을 사 왔다. 아마 이게 얼마 전 유행한 슬로우 쿠커와 비슷한 가전일 것 같긴 한데, 너무 옛날이기도 했고 성능도 형편없어서 정말이지 아무짝에 쓸모없는 물건이었다. 당최 살림이고 요리고 해본 적이 없으니 그런 걸 알 리가 없었다. 막상 기숙사에 도착해 전원을 연결한 후 밥을 해보았는데 쿠커의 유리 뚜껑이 제대로 고정되지 않아 계속 들썩거렸고 밥물이 분화구의 용암처럼 철철 흘러넘쳤다. 당연히 밥은 설익거나 죽이 되거나 둘 중 하나였다. 밥이 되기 시작할 때쯤이면 비행기에서 챙겨왔던 잡지로 뚜껑을 열심히 눌러댔지만 별다른 해결책은 되지 못했고 며칠 만에 모닝캄은 밥물에 찌들어 풀 먹인 벽지처럼 변했다. 게다가 이 망할 쿠커는 보온조차 되지 않았다. 한 마디로 내 식생활은 비참했다.

 

 

 

 이런 나를 구원해준 것이 같은 그룹에서 수업을 듣던 한 살 많은 언니였다. 처음에는 나도 함께 온 친구가 있었고 이 언니도 학교 후배들이 따로 있었기 때문에 인사만 주고받는 정도였다. 첫 한 달 동안 방을 같이 썼던 친구가 러시아 사람들과 같이 살며 현실을 경험하여 러시아어를 더욱 잘하고 말겠다!’라는 목적의식과 함께 하숙을 나간 후 나는 이 언니와 매우 가까워지게 되었다. 기숙사 같은 층에 살던 이 친구는 자취 경력이 3년인데다 이미 이곳에 단기연수도 와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세상 살아가는 법이나 살림, 그 동네 물정을 잘 알았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이긴 하다만 당시 내 눈에는 정말 세상을 잘 아는 언니처럼 보였다. 언니는 고등어통조림으로 나에게 찌개를 만들어주었고 감자수제비를 끓여주는가 하면 겉절이 비슷한 양배추김치를 맛보여주기도 했다. (사실상 나는 비린 걸 안 좋아해서 고등어찌개도 괴로웠고 수제비도 싫어하는 입맛이지만 그때는 너무 고마워서 감지덕지하며 다 먹었다) 나중에는 아예 모든 끼니를 이 친구 방에서 해결했고 잠잘 때 빼고는 항상 그 방에서 놀면서 지냈다. 이 친구가 나를 하도 잘 먹여주었기 때문에 토끼 한 마리를 잘 키워준다는 의미로 쥬인이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그 별명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어쨌든 쥬인과 함께 지내면서 나의 식생활도 개선되었고 우중충한 러시아 생활에도 적응이 되어 하루하루가 즐거워졌다. 그저 김치를 먹을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슬픔이었다. 당시 페테르부르크에는 한국 식당이 딱 세 군데 있었는데 김치를 팔긴 했지만 엄청나게 비싸서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직접 담가 먹고 싶어도 배추가 그야말로 금값이었고 구하기도 힘들었다. 가뭄에 콩나듯 수퍼에 무가 등장했는데 러시아 무는 너무나도 늘씬하고 가느다랬다. 무다리라는 표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러시아는 여자들이 늘씬하니 무마저 늘씬하다고 푸념했다. 달리 고려인들이 당근김치와 양배추김치를 만들게 된 것이 아니었다. 쥬인은 머리를 굴린 끝에 무를 사서 생채를 만들었다. 잘 들지 않는 칼로 일일이 채를 썰어서 귀한 고춧가루로 버무렸다. 이렇게 만든 생채는 김치 대체로 먹긴 했는데 사실 맛은 별로 없었다. 그래도 있는 게 어디냐 싶어서 감지덕지 먹었다. 무 생채 한번 만들 때마다 채 치느라 쥬인의 가냘픈 어깨가 나가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내 인생에서 무 생채를 그렇게 자주 먹었던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세월이 흐른 후 나는 다시 페테르부르크 기숙사에 몇 달가량 머무르게 되었다. 이때는 나 혼자였다. 살림과 음식 솜씨는 일취월장했다. 배추도 한 포기 사서 김치를 담가보기까지 했다. 하지만 역시나 배추는 비쌌고, 무 생채를 만들기에는 칼질에 자신이 없는 데다 딱히 그 알싸한 맛을 좋아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김치 대체식품을 개발했다. 가격도 비싸지 않고 칼로 썰기도, 만들기도 훨씬 편한 오이무침이었다. 쥬인은 오이를 너무 싫어해서 옛날에는 오이무침 같은 건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지도 않았던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오이무침을 자주 만들어서 김치 대용으로 먹었다. 오이를 둥글고 얄팍하게 썰어서 소금에 잠시 절였다가 수분을 뺀 후 고춧가루, 간장 약간, 식초와 참기름, 마늘로 조물조물 무치면 된다. 너무나도 쉽다. 나중에 프라하에 머무를 때도 이것을 자주 만들어서 먹었다.

 

 

 

 지금은 무 생채도 오이무침도 만들어 먹지 않는다. 이따금 식당에 갔을 때 반찬으로 오이무침이나 소박이가 나오면 한두 젓가락 집어 먹는 정도이다. 무 생채와 오이무침은 내게 타국의 기숙사와 썰렁한 아파트, 들썩거리는 유리 뚜껑이 달린 쿠커, 용암처럼 솟구치던 밥물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물정 모르던 나를 거둬 먹여 준 쥬인의 따뜻한 마음과 잘 들지 않던 칼도.

 

 
 
 
 
......
 
 

 

 

 

이 글은 한두 달 전 쓴 단문이다. 이때 뭔가 조그마한 먹거리에 대한 글을 몇 편 썼다. 소재들이 많아서 리스트업도 해두었는데 너무 바쁜데다 원래 쓰던 단편에 집중하느라 지금은 미뤄두었다. 이렇게 미뤄둔 글들이 많다.

 

 

사진은 예전에 프라하 폴더에 올렸던 적이 있다. 20132, 프라하에서 머무르던 아파트에서 만들었던 오이무침. 그 얘기는 여기 : https://tveye.tistory.com/10616

 

프라하의 아파트 창가에서 + 오이무침

옛날 사진들 뒤적이다가 오랜만에 프라하에 머물던 시절 폴더를 열어보았다. 2013년 2월 어느 날. 이때는 프라하에서 아파트를 얻어 두어달 머물렀다. 이 아파트는 내가 살아본 곳들 중 가장 널찍

tveye.tistory.com

 

 

 

 

먹거리들에 대한 리스트업을 하면서 새삼 깨달은 건, 잘 해먹지도 못했고 어설프기 그지없었지만 가장 많은 기억과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건 글에도 언급된 첫 러시아 시절이라는 것이다. 저때 학교와 기숙사에서 만난 쥬인과는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룸메이트로 상당히 오랜 기간 함께 살았다. 작년에 쓴 중편 <구름 속의 뼈> Part 4 말미에는 길거리에서 택시를 잡으려고 애쓰는 동양 여자애 두 명이 등장하는데 사실 그건 저 당시 쥬인과 내 모습을 모델로 등장시켜본 것이었다. 뭐 모델이라기보다는 패러디에 가깝긴 하지만 :) 주인공 게냐는 이 둘에게 선의 어린 태도를 보이는데, 현실에서는 그런 기사도 넘치는 왕자님이 나타났던 일은 없었다 ㅎㅎ 이 중편은 Part 4까지 about writing 폴더에도 올려두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참고하세요. 3~4에는 비번이 걸려 있는데 파트 2에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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