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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9. 10. 19:23

눈과 얼음, 빛의 도시 russia2023. 9. 10. 19:23

 

 

 

어제 새 달력을 만들면서 집어넣었던 페테르부르크 사진 몇 장. 대충 손에 잡히는대로 2015년 사진 폴더를 열어서 겨울 사진 세 장과 여름 사진 한 장을 넣었다. 2월과 7월. 저때가 이미 8년 전이라니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 저 이후에도 코로나와 전쟁 전까지는 매년 갔었는데. 

 

 

맨 위 사진은 꽁꽁 얼어붙은 모이카 운하와 페테르부르크 특유의 난간, 돌바닥. 이 운하를 따라 많이 걷곤 했다. 이 운하는 붉은 교각과 푸른 교각, 이삭 성당과 아스토리야 호텔 옆을 지나 마린스키 극장 쪽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나에게 이 운하는 언제나 미샤의 운하이다. 마치 판탄카가 트로이와 알리사의 운하이듯. 

 

 

 

 

 

 

청동기사상. 이 도시에 도착하면 언제나 시인과 황제에게 인사를 하러 간다. 마음속에서야 시인이 당연히 먼저이지만 숙소가 어디 있느냐에 따라 순서가 달라진다. 이때는 네프스키 중간에 있는 에브로파 호텔에 묵었기 때문에 시인을 먼저 보러 갔었다. 그러나 이후 나는 에브로파보다는 아스토리야에 묵게 되었고 순전히 지리적 이유 때문에 시인보다는 황제를 먼저 보러 가게 되었다.

 

 

 

 

 

 

얼음과 눈으로 뒤덮인 네바 강. 살을 에는 듯 추웠지만 그래도 해가 쨍하고 나서 온통 새파랗고 새하얗고 금빛이었던 날이다. 겨울의 페테르부르크는 너무나 고되지만 이런 날씨만큼은 그립다. 

 

 

 

 

 

 

그리고 이건 7월. 알렉산드로프스키 공원. 여기는 오랜 옛날, 내가 무지하고 어리고 순수하던 시절 맨 처음 페테르부르크에 왔을 때, 첫 주말에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무작정 시내에 나와 처음으로 마주친 공원이다. 그래서 이곳에 오면 항상 그때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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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 29. 21:42

12월의 모이카 운하, 빛과 얼음 2016 petersburg2020. 2. 29. 21:42

 

 

 

2016년 겨울에 모이카 운하를 따라 산책하며 찍은 사진 몇 장. 그 해 겨울은 꽤 추웠고 운하와 강은 대부분 얼어붙어 있었다. 나는 복직을 앞두고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어 불쑥 다시 뻬쩨르로 날아갔었다.

 

 

모이카 운하. 최근 몇년 동안은 가장 많이 걸었던 경로이다. 보통 묵는 호텔이나 극장과 이어지는 운하이기 때문이다. 이 운하는 사도바야 거리, 그리고 고로호바야 거리와도 이어진다.

 

 

미샤의 운하.

 

 

 

 

 

 

다리 아래까지는 꽁꽁 얼어붙지 않아서 어둡고 짙은 코발트 블루 수면 위로 청둥오리들이 떠다녔다. 난간에 기대어 오리들에게 흑빵 부스러기를 조금 던져 주었다. 미샤와 트로이, 알리사도 그랬을 것이다.

 

 

 

 

운하를 산책하다 보면 거의 항상 돌난간 위에는 병뚜껑이 나뒹굴고 있고, 포석 사이사이에는 보드카와 맥주병, 종류를 알기 어려운 술병, 콜라병과 주스팩 따위가 내버려져 있다. 아주 지저분한 정도는 아니지만 꾸준히.

 

 

 

 

 

빛과 얼음의 운하.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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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7월 초. 마린스키에서 공연 보고 돌아가는 길에 찍은 모이카 운하 풍경. 밝게 찍혔지만 밤 10~11시 즈음. 백야.

 

 

 

 

 

 

사진에는 안 나왔지만 저 길을 쭈욱 따라 올라가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마린스키 극장이 나온다. 나는 여름이나 가을엔 공연 보고 나면 운하 따라 걸어서 숙소로 돌아가는 편이다. 날씨와 숙소 위치에 따라 좀 달라지긴 하지만..

 

극장에서 모이카 운하를 따라, 그리고 포나르느이 모스트(램프 다리)를 건너 발샤야 모르스카야 거리로 접어드는 길을 따라 걷는 것을 좋아한다. 때로는 고로호바야나 사도바야 거리까지 걷기도 한다. 이 길은 미샤가 극장에서 트로이네 집을 오갈때 걷는 길이기도 하다.

 

 

 

 

 

포나르느이 모스트. 이름 그대로 엄청 큰 가로등 램프가 다리 양쪽에 총 네개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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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2. 22. 22:49

계속 가는 것 + 이전의 메모 about writing2019. 12. 22. 22:49

 

 

 

 

오늘의 메모를 적고 난 후 문득 떠올라서 발췌해봄. 예전에 쓴 글에서 트로이와 미샤가 나누는 대화 일부.

 

 

...

 

 

“ 왜 그렇게 자신에게 가혹해? 넌 지금 몇 사람 몫을 하고 있는데. ”  


“ 계속 가야 해. 멈추면 안돼. ”


" 잠깐 멈춰도 돼. 조금 쉰다고 생각해. ”


 " 아니, 난 계속 가야 해. 멈추면 일어나고 싶지 않을 테니까. ”

 

 

..

 

 

 

위의 대화가 포함된 짧은 에피소드를 몇년 전 페테르부르크에 머무를 때 이 폴더에 발췌해 올렸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이런 메모를 적었었다.

 

 

< ..... 어쩌면 저때 나는 미샤의 입을 빌려 내 얘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긴 진실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어차피 소설쓰기란 거짓말하기이며 거기에 일부의 진실을 숨기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그 반대도 성립할 것이다.... >

 

 

... 노트북이 안돼서 폰으로 적느라 불편하긴 하다만. 저 메모와 소설 에피소드는 아래 링크에... 16년 여름이었다. 소설의 저 에피소드 자체는 12년 겨울에 썼다.

 

- 내가 마린스키 앞을 지날 때마다 생각하는 것, 그가 계속 가야 하는 이유 -

 

 

..

 

 

맨 위 사진은 트로이가 사는 동네에서 미샤네 동네와 극장으로 가는 길 풍경. 모이카 운하. 아래 사진 한장 더. 두 장 모두 지난 7월 밤에 마린스키에서 공연 보고 걸어오며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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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카 운하. 딱 3년 전. 2016년 12월. 이때는 아주 추웠다. 모든 운하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하지만 날씨가 맑아서 산책하기 좋은 날이었다. 올 겨울은 페테르부르크에서도 유례없이 따뜻한 편이라 운하가 아직 이렇게 얼지 않았다고 한다.

 

 

이 운하는 미샤의 운하이다. 이 운하를 따라 쭉 걸어가면 트로이네 집이 있는 고로호바야 거리를 관통하고 시느이 모스트(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가 건너다 운하를 내려다보는 그 다리이다)와 이삭 광장을 지나고 포나르느이 모스트(거대한 가로등 램프들이 있는 다리이다, 포나리는 램프라는 뜻임)를 지나고 또 계속해서 걸어가다 크류코프 운하 쪽으로 꺾으면 키로프 극장, 지금의 마린스키 극장이 나온다. 물론 민트 블루의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구관이다. 호박색의 화려한 신관은 2005년에 생겼으니 그 당시의 미샤는 그런 신관에 대해서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마린스키 신관은 엄청나게 자본주의적이고 물질적이고 또 아름답고 매끈하고 세련된 건물이니까.  

 

 

예전에 썼던 소설 속에서 미샤는 발레단 신입 시절 처음에는 사도바야 거리에 있는 낡은 아파트에서 극장 동료들 세명과 함께 지내고 1년이 지난 후에는 톱스타 대접을 받아 극장 바로 근처에 있는 넓고 좋은 아파트에서 지나와 둘이 살게 된다. 사도바야 거리에 살 때는 이 운하를 따라 걸어서 극장으로 출근했다. 좋은 아파트에서 지나와 살게 된 후에도 그 집에서 자는 적은 별로 없고 걸핏하면 도시 여기저기를 쏘다니고 또 툭하면 고로호바야 거리에 있는 트로이네 집에서 자고 나왔기 때문에 그때에도 역시 이 운하를 따라 극장에 가곤 했다. 차를 산 후에도 운전이 귀찮은데다 본시 산책을 좋아하는터라 그냥 걸어다니는 경우가 훨씬 많다.

 


 

 

 

페테르부르크, 당시 이름으로는 레닌그라드 토박이답게 미샤도 살을 에는 듯 춥지만 그래도 햇살이 비치는 한겨울에 꽁꽁 언 운하를 따라 걷는 것을 좋아했을 것이다.

 

 

 

그리고 저 붉은 다리(러시아어 이름은 끄라스느이 모스트)를 지나면서 다리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오리들과 갈매기들에게 흑빵을 부숴서 던져주곤 했을 것이다. 새를 좋아하는 애니까.

 

 

다리 아래는 웬만하면 꽁꽁 얼지 않는다. 그래서 새들이 여기 모여 있곤 한다. 저때 나도 저 다리 난간에 기대어 새들에게 흑빵을 좀 던져주었는데 료샤가 강 오염시킨다고 투덜거렸음 -_- 빵은 유기물인데... 그리고 새들이 한순간에 다 찾아서 먹어치우는데 그런 내 말을 잘 들어주지도 않고 막 구박했다 엉엉 ㅜㅜ 그래놓고는 내 빵을 뺏아서 자기도 새들에게 먹이를 줌. 뭐야, 지도 해보고 싶었던 것이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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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0. 20. 21:22

모이카, 미샤의 운하, 극장과 백야 about writing2019. 10. 20. 21:22

 

 

 

지난 7월, 백야의 모이카 운하 사진 몇 장.

 

페테르부르크의 여러 운하들 중 도심을 가로지르는 세개의 운하가 있는데 판탄카, 그리보예도프, 모이카 운하이다.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운하는 가운데의 그리보예도프이다. 여기에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피의 구세주 사원), 돔 크니기, 예술광장 등의 명소가 모여 있기 때문이다. 판탄카 운하를 따라가면 레트니 사드와 아니치코프 다리, 이즈마일로프 사원(트로이츠키 사원)이 나오고, 모이카 운하를 따라가면 이삭 성당과 마린스키 극장에 닿을 수 있다. 이 운하들은 도시를 가로지르고 또 얽혀든다.

 

미샤를 등장시켜 쓴 소설들에서 페테르부르크는 단순한 배경과 장소가 아니라 때로는 소설 자체이기도 했다. 이 도시를 드나들면서 나는 가끔은 오감을 열고 머리를 비운 채 걷고, 가끔은 글과 인물들에 대해 생각하고, 가끔은 그들을 불러내어 같이 걷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일이 너무 바쁘고 힘들고 에너지가 소진되어 한동안 글쓰기를 중단하고는 있지만 실제로 페테르부르크를 거닐 때면 이러한 과정들이 되풀이된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이 도시에 몸이 가 있지 않더라도, 그곳에서 찍은 사진을 뒤적이거나 혹은 그저 머릿속으로 기억을 떠올리는 동안에도 반쯤은 저절로 나는 도시의 곳곳을 재생할 수 있다. 거의 육체적인 반응에 가까운 재생이다.

 

판탄카 운하가 트로이와 알리사의 운하였다면 모이카 운하는 누구보다도, 미샤의 운하다. 극장으로 통하는 운하이기 때문이다. 극장. 사도바야 거리. 그리고 트로이가 살고 있는 고로호바야 거리. 이 모든 곳들을 관통하는 운하. 미샤는 도시의 모든 운하들을 알고 있고 눈을 감고도 그곳들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지만 그래도 그의 운하는 모이카이다.

 

 

사진은 7월, 마린스키 극장에서 발레 공연 본 후 나와서 운하 따라 걸어가는 길에 몇장 찍은 것이다.

 

 

 

 

 

마린스키 극장 이야기를 하고서 사진 한장 없이 넘어가는 건 어쩐지 아쉬우니, 천정 장식화와 샹들리에 사진 한장.

 

 

이날 보았던 발레 공연은 돈키호테였다. 알렉산드르 세르게예프의 투우사가 정말 근사했던 날이다.

 

 

 

 

모이카 운하. 백야. 밤 10시 반에서 11시 사이.

 

 

이삭 성당의 황금빛 쿠폴이 보인다.

 

 

 

 

저 너머로는 카잔 성당의 쿠폴도 보인다. 미샤는 학창 시절과 사도바야 쪽에 살던 신입 단원 시절에는 이 길을 따라 걸어서 극장에 다녔다. 이후 극장 근처 아파트를 받은 후에도 이 운하를 뻔질나게 지나다녔을 것이다(그리고 이 길을 따라 걸어가면 트로이네 집도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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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의 모이카 운하. 밤 10~11시 사이. 이날 마린스키 극장에서 발레 돈키호테를 본 후 료샤와 함께 모이카 운하를 따라 산책하다 찍은 사진 한장. 좋아하는 산책로이다. 보통은 마린스키에서 공연을 본 후 이 운하를 따라 쭈욱 걸어가서 이삭 성당이 있는 광장까지 간다.

 

건물들 너머로 이삭 성당의 황금 쿠폴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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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 페테르부르크. 모이카 운하 따라 걷다가 돌난간에 얹어놓고 찍은 분홍 장미 세 송이. 료샤가 근처 꽃집에서 사줬다. 그 이유는 여권 생일이 그날이라, 호텔에서 나에게 케익과 샴페인을 주었기 때문임(실은 난 음력 생일이라 그날이 진짜 생일 아니었음)



하여튼 이 사실을 자랑하자 료샤가 '그러니까 꽃 사달라는 거잖아!!!!' 하더니 (호텔을 상대로) 공연히 경쟁심을 불태우며 운하 근처 꽃집에서 장미 세송이 사줌 :) 난 수지맞았다고 좋아하였음.











료샤야 담주 주말에 만나면 또 꽃 사줘~~ 나는 빨간 장미가 더 좋아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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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5. 30. 21:46

레냐는 쥬쥬를 포에버 사랑해 2017-19 petersburg2019. 5. 30. 21:46





페테르부르크에서 내가 좋아하는 산책로 중 하나는 이삭 광장에서 모이카 운하를 따라 마린스키 극장까지 걸어가는 길이다. 물론 딱 운하 따라 가는 길만 좋고 그 외 도로 건너는 건 좀 피곤하지만..


하여튼 극장으로 가는 길의 운하가 거의 끝날 무렵 나타나는 빠쩰루옙 모스트(다리). 사람 이름에서 따온 거지만 노어로 빠쩰루이가 키스란 뜻이라 이 다리엔 이렇게 러브 자물쇠들이 주렁주렁.



나는 종종 료샤나 레냐와 이 길을 걸었다. 이 다리에 이르면 레냐랑 반드시 뽀뽀를 쪽~ 한다. 작년에 레냐는 저 forever 자물쇠를 보더니 '포에버! 나 알아, 영원히 란 뜻이야! 레냐는 쥬쥬를 포에버 사랑해!' 하고 빵긋 웃으며 소리쳤다. 레냐야 나도 너를 포에버 사랑해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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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카 운하. 작년 9월 저녁.


이 운하를 따라 걸을 때면 종종 글쓰기에 대해, 내가 만든 인물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이따금 그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그가 운하 난간에 기대어 새들에게 흑빵 부스러기를 던져주는 모습을 떠올리기도 했다.


물론 혼자 걸을 때만. 이 길은 가끔 료샤나 레냐랑도 같이 걷곤 했다. 그러면 우리는 웃고 떠들고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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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3. 23. 16:27

모이카 2017-19 petersburg2019. 3. 23. 16:27




예전에 올린 것 같기도 한데, 작년 가을 뻬쩨르 산책하다 찍은 모이카 운하 두 장. 폰카.



지쳐서 맘의 위안을 위해 빛이 들어 있는 사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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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3. 7. 22:41

빛 속의 새들과 운하 2016 petersburg2019. 3. 7. 22:41

 

 

역시 모이카 운하. 하지만 어제 올린 트로이츠키 다리 카페(https://tveye.tistory.com/8941)가 있는 쪽에서는 네프스키 대로를 가로질러 건너가야 나오는 반대방향이다. 이쪽으로 산책하면 시느이 다리도 나오고 아스토리야 호텔과 이삭광장, 더 쭈욱 가면 마린스키 방향으로 갈 수 있어 내가 좋아하는 코스이다.

 

사진은 2016년 6월에 머무를 때 찍은 것. 백야 시즌. 빛이 너무나 밝아서 운하도 돌바닥도 새들도 탈색된 듯 창백하게 빛난다. 파란 하늘 아래서 빛을 받으며 천천히 운하 따라 산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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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카 운하변을 따라 네프스키 대로 쪽으로 나오는 방향으로 걷다 보면 이 카페가 나온다. 트로이츠키 모스트 카페. 즉 트로이츠키 다리 카페라는 이름이다. 트로이츠키 다리는 네바 강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교각 중 하나이다. 네바 강의 다리 중 제일 유명한 건 역시 궁전 다리이지만 이 다리도 상당히 유명하고 랜드 마크 중 하나이다. 에펠의 작품. (그 에펠 맞다)



이 카페를 지나칠 때마다 한번 들어가보고 싶었는데 어쩐지 이 카페는 혼자서 불쑥 들어가기가 어려웠다. 다음에 가면 료샤랑 같이 가봐야지. 



카페 간판도 촌스러운데 왜 들어가고 싶었느냐면, 이름 때문이다. 전에 쓴 글의 심리적 화자로 등장했던 인물의 이름이랑 같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그의 본명은 안드레이 트로이츠키였는데 보통은 애칭인 트로이로 불린다. 이 이름을 지을 때 안드레이라는 이름은 톨스토이의 등장인물에서 따왔고(전쟁과 평화의 그 안드레이 공작 맞다), 성인 트로이츠키는 페테르부르크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원 중 하나인 트로이츠키 사원에서 따왔다. 더불어서 같은 이름을 달고 있는 트로이츠키 다리에서도. 



그래서 이 카페 들어가보고 싶은데 이쪽 길은 공사를 할 때가 많아서 한적하게 산책하는 일이 별로 없고 대로 건너편 방향 산책길이 더 예쁘기 때문에 잘 안 다니게 되고... 카페도 좀 투박해 보여서 혼자 들어갈 마음이 확 내키진 않았었다. 나중에 보니 여기는 소련식 카페라고 한다. 더더욱 들어가봐야 하는데! 담에 페테르부르크 가면 료샤를 꼬셔서 꼭 가봐야지.





** 




트로이의 이름과 그에 대한 메모, 소설의 소개 부분은 아래. 여기 트로이츠키 사원 사진도 있다




트로이츠키 다리에 대한 메모와 사진들은 아래. 이때 한참 그 글을 쓰고 있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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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스키 극장 가는 길. 2015년 2월. 겨울에 공연 보러 갈땐 추우니까 보통은 버스를 타고 간다. 이 날은 엄청 추웠지만 햇살이 좋아서 그냥 운하 따라서 극장까지 쭉 산책했었다. 공연은 아마 전날 밤과 다음날 밤 보러 갔던 듯.

 

 

꽁꽁 얼어붙은 모이카 운하. 흰눈과 얼음, 그리고 새파란 하늘. 이런 날씨엔 추워도 산책하기 좋다.

 

 

내가 생각하고 상상하고 실지로 썼던 글들 속에서 미샤가 트로이네 집에서 잘 때면 아침에 이 길을 따라 극장으로 걸어가곤 했다. 물론 소련 시절 그 극장은 마린스키가 아니라 키로프 극장이었고 이 길의 주변 풍경도 조금은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운하는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살을 에는 듯 차디찬 공기와 하얗게 빛나는 수면 위 얼음, 눈이 멀도록 새파란 하늘은 변함없을 것이다.

 

 

 

 

 

 

 

 

 

 

 

 

 

 

 

 

이렇게 극장까지 걸어오는 것이다. 아름답고 또 아름다운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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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 31. 22:06

백야 3 russia2019. 1. 31. 22:06

 

 

며칠 전 올린 2015년 여름의 페테르부르크 백야 사진 1, 2에 이어 세번째. 이때는 포취탐스카야 거리에 있는 르네상스 발틱 호텔에 묵었었다. 아스토리야나 그랜드 호텔 유럽, 앙글레테르 같은 곳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묵기 괜찮았다. 여기도 이삭 광장에서 가깝고 특히 마린스키까지 걸어가기에 딱 좋은 위치에 있다. 숙소 가면서 찍은 사진 두 장. 골목이랑 모이카 운하. 백야의 황혼녘. 7월 하순.

 

필터나 보정 없이 dslr로 찍음. 페테르부르크의 백야는 이토록 색채가 아름답다.

 

 

앞서 올린 이맘때 백야 사진들은 여기 : https://tveye.tistory.com/8822, https://tveye.tistory.com/8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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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카 운하. 황혼이 서서히 어둠으로 바뀌는 무렵. 17년 10월.



dslr로 찍을 때도 플래시를 가급적 안 쓰는 편이라 어스름 초입까진 괜찮은데 일단 어둠이 내리고 조명들이 일렁이는 시기가 되면 내 사진들은 엉망이 된다.. 건지는 게 별로 없다. 이렇게 흔들린 사진들이 많다. 근데 이따금 흔들린 건 또 그 흔들린 대로의 매력이 있는 것 같아 내버려 둔다.



해질 무렵 모이카 운하를 따라 걸으면 참 좋다. 서늘하고 차갑고 푸르고 검다. (가을부터는 춥고 음습하긴 하지만 ㅜㅜ) 이 길은 미샤가 트로이네 집에서 자고 극장으로 출근할 때 걷는 길이다. 미샤야 네프스키를 관통하는 주요 운하인 판탄카, 그리보예도프, 모이카를 비롯해 도시의 별의별 운하와 작은 지류들을 다 건너다니며 쏘다녔겠지만 나는 그의 운하는 이 모이카 운하라고 생각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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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다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 나는 오래 전에 구상했던 인물을 어떤 곳으로 보내려고 했다.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도시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전형적인 소도시. 그곳에는 생각 끝에 가브릴로프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최근 몇년 동안 이 폴더나 서무의 슬픔 폴더에 수차례 언급했듯 그 글을 쓰기가 어려웠다. 쉽지 않았다. 그래서 워밍업으로 단편, 중편, 꽤 길고 복잡한 장편, 심지어 추리소설 외전도 쓰고 패러디인 서무의 슬픔 시리즈도 썼다. 



그 사이에 어느새 '가브릴로프 본편'이라고 부르게 된 그 원래 쓰려던 글도 조금씩 쓰기는 했다. 약 120페이지 정도. 이 소설의 구조와 플롯을 생각해보자면 아주 적은 분량이고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겨우 4장으로 이루어진 1부를 마쳤을 뿐이었고 거기서는 주요 인물들 몇몇에 대한 스케치만 그려놓았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회사를 비롯해 여러가지 외적, 내적 어려움을 좀 심하게 겪었고 그 이후 글을 쓰기가 너무 어려워졌다. 심적으로 어느 정도 회복된 후에도 글을 다시 이어쓰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 가브릴로프 본편은 2부 첫장의 몇페이지 정도에서 멈추었다. 이따금 써놓은 글들을 다시 훑어보고 메모와 노트 등을 다시 읽고 추가로 떠오르는 생각들과 플롯 등을 덧붙여놓기도 했다. 내가 이 글을 다시 쓰게 될 거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해가 지고 밤이 오고 다시 해가 뜨리라는 것을 아는 것처럼. 그냥 아는 것이다. 그런데 에너지가 모자란다. 



아래 발췌한 에피소드는 그 얼마 안되는 분량의 1부 4장 초입과 마지막 부분이다. 1부 전체에서 이 4장만 분위기가 좀 다르고 등장인물의 성격도 다르다. 수용소를 거친 후 어찌어찌 풀려나 가브릴로프 시립극장 예술감독으로 부임해 온 미샤가 그 소도시(서무의 슬픔 시리즈에서는 미샤의 패러디인 왕재수가 맨날 '시골!'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곳)의 작은 광장 카페에서 한 여자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녀는 화가이다. 이름은 키라. (이 이름은 니진스키의 딸에게서 따왔다. 성격이나 배경 등의 연관은 없는데 등장인물들 이름 지을 때 마침 눈 앞에 니진스키의 일기 영어본과 러시아어본이 둘다 있었음) 가브릴로프 본편의 인물들은 웬만하면 거의가 다 패러디 외전인 서무의 슬픔 시리즈에 나왔는데 중요 인물 중 두명은 등장시키지 않았었다. 그중 하나가 이 사람이다. 본편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다. (... 그렇게 구상했는데 결국 아직까지는 이 1부 4장에만 등장했음 ㅠㅠ 미안해 키라야...)



조금씩 다시 에너지를 모아보려고 노력 중이라, 키라와 미샤가 만나는 장면과 헤어지는 장면을 좀 발췌해 본다. 후반부의 이콘 박물관 파트 일부는 몇년 전에 이 폴더에 좀 발췌해 올렸던 적이 있다. (http://tveye.tistory.com/3408) 그때는 이 파트를 쓰고 난 직후였다. 그런데 그 이후 이 글이 거의 멈춰버렸어 엉엉...



위의 사진은 지난 9월 페테르부르크에 갔을 때 모이카 운하 난간에 앉아 있던 비둘기 두마리 찍은 것. 이야기 서두에 하얀 비둘기가 등장하기 때문에 가져와 봤다. 어차피 가브릴로프는 가상의 도시이고... 미샤는 레닌그라드, 즉 지금의 페테르부르크에서 왔으니까. 




...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그 검은 눈의 청년이 말을 걸어왔을 때 키라는 그가 외지인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동사의 어미를 질질 끌지도 않았고 단모음과 장모음을 정확히 구분했다. 강세와 억양, 말투, 그리고 단어조차 달랐다. 소위 ‘수도’ 식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대다수의 가브릴로프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말투를 구분할 수가 없었다. 키라는 오직 한 가지만을 이해했다. 그가 대도시에서 왔다는 것. 



 그는 옆자리가 비어 있는지, 그리고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거기 앉아도 되는지 물었을 뿐이었다. 무의식적으로 키라는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야외 테이블은 꽉 차 있었다. 따스하고 찬란한 가을 오후였고 말라야 안겔스카야 광장의 그 작은 카페는 언제나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대다수는 가브릴로프 시립대학 학생들이었지만 교수들도 종종 왔고 산책하던 주민들도 목을 축이러 들르곤 했다. 스카프로 머리를 싸맨 노파들도 가끔 차 한 잔을 시켜놓고 천사상을 바라보며 한두 시간씩 앉아 있곤 했다. 



 “ 네, 앉으세요. 빈자리니까요. ”


 “ 고마워요. ”



 가벼운 인사와 함께 남자가 곁에 앉았다. 김이 오르는 찻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을 때 비둘기가 날아왔다. 과자 부스러기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찬 것이 분명했다. 어쨌든 티타임이었으니까. 흰색의 자그마한 놈이었다. 머리에는 검정색 얼룩이 있었고 날개 끝이 회청색이었다. 비둘기는 잠시 테이블을 살피더니 찻잔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에 실망한 나머지 접시를 콕콕 쪼았다. 하지만 날아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키라와 검은 눈의 남자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테이블에 날개를 접고 얌전히 앉았다. 



 “ 이곳 분이 아니군요. ” 


 “ 네, 어떻게 아셨죠? ”


 “ 여기선 빈자리가 보이면 물어보지 않고 그냥 앉거든요. ”


 “ 일행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


 “ 그래도 일단 앉아요. 늦게 온 사람이 다른 의자를 가져오면 되니까요. ”


 “ 합리적이군요. ”


 “ 그리고 하나 더 있어요. ”


 “ 뭐죠? ”


 “ 비둘기를 쫓지 않았어요. ”


 “ 저쪽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쫓지 않던데요. 빵도 던져주고. ”


 “ 이 녀석이라면 쫓았을 거예요. 흰색이니까요. 우리 동네에서는 하얀 새는 인기가 없거든요. ”


 “ 내륙 도시라서 그런가보군요. 갈매기가 많은 곳이라면 안 그럴 텐데. ”



 
 키라는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냅킨으로 덮어 두었던 샌드위치를 끄집어내 흑빵 귀퉁이를 조금 잘라 새에게 던져주었다. 비둘기는 서두르지도 않고 천천히 다가와 빵 부스러기를 쿡 쪼아 먹고는 다시 테이블 구석에 자리를 잡고 졸기 시작했다.  



 “ 인기 없는 녀석치곤 많이 얻어먹은 것 같은데요. ”


 “ 먹을 게 많은 계절이에요. 가는 데마다 널려 있거든요. 숲도 그렇고. ”


 “ 그렇군요. ”



 남자가 미소를 띠었다. 눈과 입으로 웃었다. 그리고는 부드럽게 말했다.



 “ 제 이름은 미샤예요. ”


 “ 전 키라예요. ”


 “ 만나서 반가워요. 혹시 제가 방해가 된 건 아니겠죠? ”



 미샤는 테이블 위에 펼쳐져 있는 스케치북을 보면서 그렇게 물었다. 키라는 고개를 저었다.



 “ 아니에요. 다 그렸는걸요. 심심풀이예요. ”


 “ 화가라고 생각했는데요. ”


 “ 글쎄요, 미대생일 수도 있잖아요. ”


 “ 학생은 아닐 거예요. ”


 “ 왜 그렇게 생각하셨죠? ”


 “ 머리 색깔 때문에요. 여기 대학은 교칙이 엄한 것 같던데요. ”



 키라는 붉은색과 자주색, 오렌지색과 푸른색이 뒤섞인 자신의 짧은 머리칼을 무의식적으로 쓸어 넘겼다. 그녀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미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 미안해요, 기분 상하게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에요. 스케치하는 걸 봤어요. 학생처럼 그리지 않았거든요. ”


 “ 화난 게 아니에요. 잠깐 의심했을 뿐이에요. ”


 “ KGB일까봐요? ”


 “ 네. 하지만 아니에요. ”


 “ 어떻게 확신하시죠? ”


 “ 보안요원들은 그런 식으로 그림을 보지 않거든요. 애초에 관심이 없어요. ”



 키라는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덧붙였다.



 “ 그리고, 전 그런 사람들이 와서 감시할 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고요. ”


 “ 대단한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 스케치는 근사해요. ”



 입 발린 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의 시선은 목탄으로 휘갈긴 천사상 스케치에 못 박혀 있었다. 키라는 목덜미가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가 스케치북을 넘기지 않기를 빌었다. 




... 중략 ...





 키라는 고개를 들어 천사상의 머리와 어깨, 날개 위에 다닥다닥 앉아 있는 새들을 보았다. 언제나 그렇듯 비둘기와 참새들뿐이었다. 까마귀는 보통 울타리나 나뭇가지 위에 앉곤 했다. 



 그녀가 반쯤 남은 샌드위치와 스케치북을 가방에 넣는 동안 미샤는 천사 앞으로 갔다. 손을 뻗어 천사의 발아래 조각된 덤불과 칼과 방패, 꽃과 열매를 만졌다. 그 부분은 이미 200년 동안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손을 타서 반질반질하게 닳아 있었다. 날개 귀퉁이는 벌써 수십 번 이상 떨어져나갔는데 5년 전 시 의회에서는 매년 날개를 땜질해야 하는 천사상 때문에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미신을 조장하는 저 낡아빠진 유물 따위는 귀퉁이가 떨어지든 다리가 부러지든 이제부터는 그냥 놔두자고 결정했다. 시민들은 반발했지만 의회는 강경했다. 그래서 천사는 왼쪽 날개 끝이 떨어져 나간 채 남았지만 신기하게도 그 이후부터는 더 이상 날개를 떼어내거나 부수는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키라가 그 얘기를 해주자 미샤는 재미있어 했다. 그리고 수도원의 천사상과 이콘들에 대해서도 물었다. 



 “ 수도원에 있는 건 훨씬 작아요. 그래도 제일 오래됐죠. 청동으로 된 것 말고도 대리석, 테라코타, 나무로 된 조각상이 하나씩 있어요. 흑단과 상아로 만든 성물도 하나 있는데 그건 전시실에 있죠. 이콘도 많고요. ”


 “ 수도원은 많이 먼가요? ”


 “ 아뇨, 구시가지에서 그렇게 멀지는 않아요. 그래도 여기서부터 걸어가면 한 시간 가까이 걸리긴 하겠네요. 어쨌든 강도 건너야 하고 숲으로 들어가야 하니까요. 대신 이콘 박물관은 가까워요. 공원을 따라가다가 포나르나야 거리 쪽에서 길을 건너면 되거든요. ”


 “ 극장 거리 쪽이요? ”


 “ 아, 맞아요. 드라마 극장 옆에 있어요. 거기도 옛날에는 교회였는데 지금은 박물관이거든요. 작아서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죠. 전 공방이 그 뒤에 있어서 가끔 가요. 오늘도 원래 가려고 했었죠. 궁금하시면 같이 가도 좋아요. 네 시 반에 문을 닫지만 저랑 가면 들여보내 줄 거예요. 안내원 할머니와 친하거든요. ”


 “ 데려가 주신다면 좋겠네요. 안내원들과 친한 건 중요한 덕목이죠. ”



 키라는 미샤와 함께 광장을 나왔고 함께 이콘 박물관을 향해 걸어갔다. 키라는 그가 왼쪽 다리를 약간 끌면서 걷는다는 것을 포나르나야 거리와 극장 거리 교차로에 다다를 무렵에야 깨달았다. 눈치 챘다면 더 천천히 걸었을 텐데 하고 후회했다. 그녀는 키가 껑충하게 컸고 보폭도 넓은데다 사내아이처럼 빨리 걷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함께 박물관에 들어갔고 텅 빈 전시실에서 이콘을 보았다. 미샤는 이콘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았고 굳이 하나하나 설명해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그에게 전시실 구조를 가르쳐 주었다. 미샤는 제일 먼저 검은 천사 전시실로 갔다. 조각상과 키라가 들려준 이야기 때문에 궁금했던 것 같았다. 그 이후 그리스도와 성모 전시실로 갔다. 키라는 그가 다리를 절면서도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움직이는 것에 놀랐다. 전시실 마룻바닥은 툭하면 삐걱거렸기 때문이다. 



 키라가 옆방 사무실에서 안내원 노파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성모 전시실로 돌아왔을 때 미샤는 긴 의자에 앉아 벽에 등을 기댄 채 자고 있었다. 작은 창문 사이로 밀려들어오는 석양 때문에 꼭 붉은 모포를 덮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잠시 키라는 다시 스케치북을 꺼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녀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미샤의 머리를 감싸 자기 어깨에 기대 주었다. 오래된 교회 건물이라 벽은 틈새로 가득했고 냉기가 스며 나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낯선 남자와 그렇게 몸을 마주 대고 앉아본 적이 없었다. 어깨를 빌려준 적은 더욱 없었다. 키라는 그가 어린아이처럼 잔다고 생각했다. 미동도 없이, 암흑처럼 깊게, 온몸이 사모바르처럼 뜨겁게 달아오른 채. 그의 몸이 너무 뜨거워서 꼭 전시실 한복판에 모닥불을 피워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에게서는 검은 숲의 흙과 나무, 무겁게 깔려드는 야생 꿀의 냄새가 났다, 그리고 그 모든 체취와 어울리지 않는 차갑고 인위적인 냄새도 났다. 약간 소독약 냄새 같기도 했고 금속 냄새 같기도 했다. 키라는 하얀 가운과 수술대를 떠올렸고 어쩐지 소름이 끼쳐서 몸을 가만히 떨었다. 



 미샤는 그녀에게 자연스럽게 몸을 기댄 채 10분 정도 더 잤다. 키라는 그가 오랫동안 제대로 된 잠을 잔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녀 자신이 불면증에 시달린 적이 많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해가 점점 기울어졌다. 창으로 스며들던 빛이 거의 사라져서 어두컴컴해졌을 때 미샤가 눈을 떴다. 한동안 자신이 어디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키라가 어깨를 빌려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몸을 똑바로 일으키면서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 고마워요. ”



 
 그때 키라는 갑자기 울고 싶어졌다. 아마도 그가 미안하다고 하지 않고 고맙다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왜 그런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은 함께 박물관을 나왔다. 키라가 동료들과 저녁 약속이 있다는 얘기를 기억하고 있었던 미샤는 그녀를 작업실까지 데려다 주었다. 전시도 하느냐고 물었다. 



 “ 겨울에 할지도 몰라요. 소규모지만. 친구들과 같이 할 거예요. 전 아직 개인전은 해본 적이 없거든요. ”


 “ 회화만 하는 거 아니죠? ”


 “ 전시는 거의 회화 쪽이긴 한데, 가끔 잡지 삽화를 그려요. ”


 “ 보여줄 수 있어요? 다음에 만나면. ”


 “ 언제든 작업실로 오세요. 제 친구들도 소개시켜 드릴게요. 좋은 사람들이에요. ”


 “ 분명 그럴 것 같군요. ”


 “ 미술 쪽을 공부하신 건가요? 아니면 역사? ”


 “ 전 극장에서 일해요. ”


 “ 아... 드라마 극장? 배우예요? ”


 “ 아뇨, 가브릴로프 극장. 아직 일을 시작하진 않았지만. 드라마 배우는 아니에요. 그냥 극장 쪽에 오래 있었어요. ”
 


 키라는 그가 말하는 ‘오래’가 대체 몇 년을 얘기하는지 궁금했다. 미샤는 자신 또래거나 더 어려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며칠 후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키라는 작업실로 곧장 올라가는 대신 계단 모퉁이의 창문 너머로 그가 박물관을 지나쳐 가브릴로프 극장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가 배우가 아니라는 사실에 흐릿한 아쉬움을 느꼈다. 동시에 그를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외모와 말투, 몸가짐을 지닌 사람을 한 번 보고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랬다면 그녀는 이미 그를 그렸을 것이다. 백지마다 스케치를 가득 채웠을 것이다. 마치 그 카페에서 그녀가 몰래 그를 스케치했던 것처럼. 그가 다가오기 전, 빈자리에 앉아도 되는지 묻기도 전에. 그가 천사상 곁을 지나쳐 카페로 들어왔을 때, 차를 주문하기 위해 줄을 서 있을 때. 비밀스럽게, 천사상을 그리던 목탄과 연필로, 맨 마지막 페이지를 펼쳐서. 



 비둘기를 그렸어야 했어.



 키라는 입안으로 그렇게 되뇌며 작업실로 올라갔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한 손으로는 연필을 쥔 채 그 하얀색과 회청색의 작은 비둘기를 그려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새가 어떻게 생겼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계속해서 그 젊은 남자, 극장에서 일하고 까마귀에 대해 궁금해 하고 천사상의 발치를 만져보던 청년, 왼쪽 다리를 무겁게 끌면서도 소리 없이 걷고 웃을 때는 눈과 입술로 조용히 웃는 남자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





중략 부분에서 키라와 미샤는 천사와 까마귀와 가브릴로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건 나중에 이 글을 다시 쓰게 되면 한번 올려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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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페테르부르크는 권력자의 열망으로 태어난 인위적인 도시이고 딱히 기후나 자연환경이 좋은 것도 아니지만 매우 아름답다. 유럽을 모방해 지어졌지만 어딘가에는 역시 러시아만의 느낌이 배어 있고, 동시에 러시아답지 않아서 이질적이고 악마적인 곳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혼종의 도시. 



이 도시에는 각별히 사랑하는 특정 장소들도 많지만 그저 이렇게 운하를 따라 걷는 것 자체도 무척 좋아한다. 특히 석양 직전부터 황혼과 어둠이 내려앉는 시간대에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산책하는 기분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무렵은 빛의 색채 때문에 사진작가들이 특히 좋아하는 시간대라고들 한다. 이 시간대에는 사진을 찍으면 미묘하고 아름다운 푸른빛이 포착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이런 푸른빛은 운하를 따라 걸을 때 특히 아름다운 것 같다. 그 중에서도 페테르부르크의 운하들. 아마도 실제 도시의 아름다움과 빛의 색채들, 거기에 내가 이 도시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은 재작년 10월에 갔을 때 찍은 것. 작년 가을엔 이 시간대 사진을 거의 못 건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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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8. 11. 15. 22:58

황혼녘의 페테르부르크 2017-19 petersburg2018. 11. 15. 22:58

 

 

 

 

보트들 때문에 살짝 베네치아 느낌처럼 나오긴 했지만, 작년 10월 이른 저녁. 해 지고 나서 황혼 무렵의 페테르부르크이다. 운하 따라 걷다가 찍은 사진. 황혼 무렵 이 도시의 푸른 빛은 정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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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얼어붙은 도시, 냉기와 빛과 어둠의 도시. 페테르부르크. 운하 따라 산책하며 찍었던 사진 몇 장.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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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0. 23. 23:52

운하 2017-19 petersburg2018. 10. 23. 23:52






모이카 운하. 지난 9월.



운하 따라서 많이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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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0. 15. 23:02

가을의 북방도시 산책 2017-19 petersburg2018. 10. 15. 23:02






지난 9월. 페테르부르크 산책하며 폰으로 찍은 사진 몇장. 위의 사진은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 맞은편의 미하일로프스키 공원 울타리. 살짝 빛바랜 듯 나와서 어쩐지 옛날 레닌그라드풍 느낌이 들어 맘에 드는 사진이다.







카잔 성당 열주 사이로 바라본 돔 끄니기 건물과 하늘 :)







이렇게 쨍한 날도 있었고,








이렇게 꾸무룩한 날도 있었다. 그래도 올해 뻬쩨르 여행에선 날씨 운이 대체로 좋았다.







운하를 따라 걷는 건 언제나 행복하고...








좁고 한적한 루빈슈테인 거리는 언제나 근사하고 뻬쩨르풍으로 모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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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8. 10. 11. 22:34

떡 버티고 있는 까마귀님 2017-19 petersburg2018. 10. 11. 22:34





앞선 스케치(http://tveye.tistory.com/8480)에서 지나가 무서워라 하며 울먹거려서 차마 그리지 않았던 까마귀, 대신 여기서 사진으로 :)



페테르부르크에는 까마귀가 참 많다. 비둘기도 많고 강가로 나가면 갈매기도 많지만 공원이나 숲으로 가면 까마귀를 쉽게 볼 수 있음. 스케치의 메모에서 지나가 '길 건너는데 까마귀가 막 날라와서 생쥐 낚아채가는 거 봤어 ㅜㅜ'라고 하는 건 사실 내 경험임. 진짜로 길 건너다 그런 광경 봤는데 무싸왔었다!



그래도 나한테 안 날라오면 까마귀는 쫌 멋지고 볼만함. 비둘기보다 멋있음.



사진 속 까마귀는 모이카 운하 산책하다가 돌난간에 앉아 있는 거 발견하고 찍음. 덩치도 크고 위풍당당하게 딱 버티고 있었음. 도망도 안 감. 







귀찮게 하면 콱 쪼고 도도하게 날아갈 것 같은 포스!!!






얘는 좀 더 하늘하늘하고 우아하게 생긴 녀석. 레트니 사드 연못가에서 비둘기, 청둥오리, 갈매기, 백조 사이에서 혼자 어정거리던 까마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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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8. 10. 9. 21:44

모이카 운하 2017-19 petersburg2018. 10. 9. 21:44





페테르부르크의 가장 중심지는 네프스키 대로이고 이 대로를 가로지르는 대표적 운하가 셋 있다. 판탄카, 그리보예도프, 그리고 모이카 운하이다. 그리보예도프 운하는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 등 관광지들 때문에 여행객들로 항상 바글댄다. 그래서 실제로 산책하기엔 판탄카와 모이카 쪽이 더 나은 것 같다. 이것도 위 아래 방향에 따라 좀 다르긴 하지만. 



석양 무렵 모이카 운하를 따라 걸으면 참 좋다. 이쪽이 좀 한적하기도 하고. 검푸른 운하의 수면 위로 저물어가는 황금빛 햇살이 흩뿌려지며 반짝이는 광경을 보는 것도 좋다. 한낮의 눈부시고 찬란한 빛살과는 좀 다른 종류의 빛이다. 이쪽 길을 따라 쭈욱 걸어내려가면 끄라스느이 모스뜨(붉은 다리), 그리고 시느이 모스뜨(푸른 다리)와 이삭 성당이 나온다. 걷다 보면 고로호바야 거리나 사도바야 거리로 빠질 수도 있고. 계속 걸어가면 마린스키 극장 쪽으로도 갈 수 있다. 반대편 방향으로 쭈욱 가면 푸쉬킨 박물관이 있다. 결투 후 푸쉬킨이 숨을 거두었던 곳. 



본편을 쓰기 시작하면서 이 도시 곳곳을 다시 떠올렸는데 자주 떠올린 이미지 중 하나는 미샤가 이 운하를 따라 걷는 거였다. 사실 동선을 생각해봐도 이 길 많이 쏘다닐 수밖에 없음. 극장으로도 통하고 박물관으로도 통하고 제일 친한 친구 가 사는 거리와도 통하니... 본편에서 트로이가 고로호바야 거리에 사는데 소련 시절엔 사실 게르첸 거리로 불렸었다. 하지만 글에서는 고로호바야와 게르첸을 섞어서 썼다. 당시 사람들도 거리 명칭들 섞어 부르거나 애칭으로 부르는 적이 많기도 했고. 게르첸 거리란 어감이 나에겐 딱히 와닿지 않아서. 하여튼 미샤는 툭하면 트로이네 집에 와서 자고 저 운하를 따라 걸어서 극장에 출근하곤 함. 나중에 차를 산 후에도 차는 잘 안 끌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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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8. 9. 24. 23:37

이곳이 페테르부르크입니다 2017-19 petersburg2018. 9. 24. 23:37

 

 

 

 

어젯밤 늦게서야 DSLR 메모리카드를 꺼내서 사진 정리함. 이번엔 카메라는 많이 안 썼기 때문에 600여 컷 정도밖에 안 찍었다. 다 핸드폰 때문이다. 전에는 폰카가 너무 후져서 항상 카메라로 찍느라 2천컷 정도씩은 찍었는데 그렇다고 그걸 다 제대로 건지는 것도 아니긴 해서.

 

 

하여튼 얼마 안되는 DSLR 사진들 넘겨보다가, 너무나 페테르부르크, 그러니까 뻬쩨르다운 사진 한 컷 :) 모이카 운하 돌난간에 무심한듯 시크하게(ㅋㅋ) 앉아 있는 비둘기. 석양 즈음의 햇살이 부서지는 운하. 꼭 껴안고 있는 연인들. 그 뒤로 아른거리는 빨간 교각(끄라스느이 모스뜨). 비둘기가 아니라 갈매기였으면 쫌더 뻬쩨르 느낌이었겠지만 이 동네엔 갈매기만큼 비둘기도 많고 까마귀도 많으니까 :)

 

 

이거 찍고 나서 잠시 후 저 비둘기는 날아가고 저 자리에 위풍당당한 까마귀가 날아와 앉았다. 그 사진은 나중에 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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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