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4

« 2024/4 »

  • 28
  • 29
  • 30

 

 

아래 발췌한 짧은 대화는 몇년 전 쓴 소설의 전반부이다. 열심히 쓰려 했지만 너무 업무도 과중하고 개인적으로도 많은 일들을 겪느라 결국은 100여페이지밖에 못 쓰고 중단한 상태이다. 언젠가는 다시 쓰게 될 테지만 그때가 언제가 될지 잘 모르겠다. 항상 다시 쓰고 싶다. 그런데 써보려고 해도 도저히 에너지가 나지 않는다. 물리적인 에너지도 모자라고 또 그외의 여러 이유가 있다.

 

 

발췌한 대화는 예전에 이 about writing 폴더에 좀더 긴 버전으로 올려본 적이 있다. 시골이나 다름없는 지방 소도시 가브릴로프 극장의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미샤가 그 지역의 문예지 편집장이자 노멘클라투라 가문의 유명한 미인 렐랴와 나누는 대화이다. 렐랴는 신임감독 인터뷰를 하러 가서 이것저것 묻는다. 그러다 미샤가 부임 후 백스테이지 뿐만 아니라 관객석에서 꾸준히 공연을 보는 이유에 대해서도 묻는다. 미샤가 거기 대답한다. 아래 대화는 거기 이어지는 이야기이다.

 

 

나는 미샤를 등장시킨 소설들과 에피소드를 꽤 여럿 썼지만 거기서 그가 자기 입으로 예술과 공연에 대해 어떤 가치관을 드러내게 한 적은 별로 없었다. 아주 친한 사이인 트로이와 사적인 이야기를 나눌때, 그리고 춤을 그만두기로 결심하던 무렵 외국 신문과 가졌던 인터뷰, 그 정도가 전부였다. 그리고 여기 렐랴의 인터뷰.

 

 

별 얘기는 아니다. 어떻게 보면 진부하고 또 당연하고 혹은 교과서 같은 얘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샤는 이것을 진지하게 생각하며(어디까지가 그의 진실일지는 물론 확언할 수 없다. 그는 저 멀리 있는 사람이고 소설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미샤가 이야기하는 것은 오랜 기간 동안 이쪽 일을 해오면서 내가 생각해왔던 것들, 내가 지키고자 했던 가치관 일부와도 상통한다. 물론 전부는 아니다. 나에게도 여러가지 방향과 생각들이 있고 그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미샤가 하는 이야기는 나에게도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종종 이 대사들을 입 안으로 되뇔 때가 있다.

 

 

(사진은 이번에 갔을 때 마린스키 극장 2야루스(4층) 관객석 한가운데에서 찍은 것이다)

 

 

 

...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 제가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던 것 같군요. 전 극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대를 봐야 한다고 말했죠. 그건 관객을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어요. ”

 

 “ 어떤 사람들이 우리 공연을 보러 오는지? ”

 

 “ 네. 그리고 그들이 어떤 식으로 공연을 보는지. 극장이라는 공간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이야기하고 보고 느끼는지. 그 모든 것이 중요해요. 관객과 소통하지 않는 무대는 절반만 열려 있는 공간이에요. 극장은 예술가의 자기만족과 독백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니까요. ”

 

 “ 좀 의외네요. 전 당신이 엘리트주의자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예술가들 대부분이 그렇죠. 관객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은 보통 하지 않잖아요. 관객들이 자신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슬퍼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 ”

 

 “ 관객들은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건 이성의 영역이죠. 이해하지 못하고도 사랑할 수 있고 슬퍼할 수도 있어요.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반응할 수도 있고요. 그들로 하여금 뭔가를 느끼게 만들 수 없다면 그건 실패한 공연이에요. ”

 

 “ 백조의 호수나 지젤이라면 모르지만 관객들이 호두까기 인형을 보면서 어떤 감정적 고양을 느끼지는 않잖아요. ”

 

 “ 하지만 즐거워하죠. 아기자기한 무대에 감탄하는 사람들도 있고 발레리나들의 화려한 의상과 움직임을 모방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도 있고요. 감정적 고양이란 꼭 거창하고 드라마틱한 것만은 아니에요. 예술계의 많은 사람들이 가끔 빠져드는 함정이 있죠. 장엄하고 영웅적인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추구하지 않으면 예술가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거라고 믿어버리는 것. 그건 일종의 도그마예요. 기본적으로 예술이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고 거기에는 진정성이 필요해요. ”

 

 “ 호두까기를 보면서 웃는 어린아이들과 잠자는 미녀를 보면서 그 구조적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발레 애호가들이 원칙적으로는 동일하고 평등한 관객이라는 것인가요? ”

 

 “ 네. ”

 

 “ 그건 가브릴로프 극장 예술감독으로서의 가치관인가요, 아니면 무용수이자 창작자인 미하일 야스민의 믿음인가요? ”

 

 “ 감독으로서의 저와 예술가로서의 저 사이에는 몇 가지 차이가 있겠죠. 하지만 관객에 대한 제 태도는 전자든 후자든 변함없을 거예요. ”

 

 “ 그것이 당신이 무대에서 그 수많은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비밀인가요? 그들 모두를 이해하고 동등하게 대하려고 했다는 것? ”

 

 “ 조금은요. ”


 

 

..

 

 

아래 링크로 가면 앞뒤 이야기가 좀더 붙어 있는 발췌본을 읽을 수 있다.

그 링크는 여기 : https://tveye.tistory.com/5114

 

:
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