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카, 미샤의 운하, 극장과 백야 about writing2019. 10. 20. 21:22
지난 7월, 백야의 모이카 운하 사진 몇 장.
페테르부르크의 여러 운하들 중 도심을 가로지르는 세개의 운하가 있는데 판탄카, 그리보예도프, 모이카 운하이다.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운하는 가운데의 그리보예도프이다. 여기에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피의 구세주 사원), 돔 크니기, 예술광장 등의 명소가 모여 있기 때문이다. 판탄카 운하를 따라가면 레트니 사드와 아니치코프 다리, 이즈마일로프 사원(트로이츠키 사원)이 나오고, 모이카 운하를 따라가면 이삭 성당과 마린스키 극장에 닿을 수 있다. 이 운하들은 도시를 가로지르고 또 얽혀든다.
미샤를 등장시켜 쓴 소설들에서 페테르부르크는 단순한 배경과 장소가 아니라 때로는 소설 자체이기도 했다. 이 도시를 드나들면서 나는 가끔은 오감을 열고 머리를 비운 채 걷고, 가끔은 글과 인물들에 대해 생각하고, 가끔은 그들을 불러내어 같이 걷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일이 너무 바쁘고 힘들고 에너지가 소진되어 한동안 글쓰기를 중단하고는 있지만 실제로 페테르부르크를 거닐 때면 이러한 과정들이 되풀이된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이 도시에 몸이 가 있지 않더라도, 그곳에서 찍은 사진을 뒤적이거나 혹은 그저 머릿속으로 기억을 떠올리는 동안에도 반쯤은 저절로 나는 도시의 곳곳을 재생할 수 있다. 거의 육체적인 반응에 가까운 재생이다.
판탄카 운하가 트로이와 알리사의 운하였다면 모이카 운하는 누구보다도, 미샤의 운하다. 극장으로 통하는 운하이기 때문이다. 극장. 사도바야 거리. 그리고 트로이가 살고 있는 고로호바야 거리. 이 모든 곳들을 관통하는 운하. 미샤는 도시의 모든 운하들을 알고 있고 눈을 감고도 그곳들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지만 그래도 그의 운하는 모이카이다.
사진은 7월, 마린스키 극장에서 발레 공연 본 후 나와서 운하 따라 걸어가는 길에 몇장 찍은 것이다.
마린스키 극장 이야기를 하고서 사진 한장 없이 넘어가는 건 어쩐지 아쉬우니, 천정 장식화와 샹들리에 사진 한장.
이날 보았던 발레 공연은 돈키호테였다. 알렉산드르 세르게예프의 투우사가 정말 근사했던 날이다.
모이카 운하. 백야. 밤 10시 반에서 11시 사이.
이삭 성당의 황금빛 쿠폴이 보인다.
저 너머로는 카잔 성당의 쿠폴도 보인다. 미샤는 학창 시절과 사도바야 쪽에 살던 신입 단원 시절에는 이 길을 따라 걸어서 극장에 다녔다. 이후 극장 근처 아파트를 받은 후에도 이 운하를 뻔질나게 지나다녔을 것이다(그리고 이 길을 따라 걸어가면 트로이네 집도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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