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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 29. 21:42

12월의 모이카 운하, 빛과 얼음 2016 petersburg2020. 2. 29. 21:42

 

 

 

2016년 겨울에 모이카 운하를 따라 산책하며 찍은 사진 몇 장. 그 해 겨울은 꽤 추웠고 운하와 강은 대부분 얼어붙어 있었다. 나는 복직을 앞두고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어 불쑥 다시 뻬쩨르로 날아갔었다.

 

 

모이카 운하. 최근 몇년 동안은 가장 많이 걸었던 경로이다. 보통 묵는 호텔이나 극장과 이어지는 운하이기 때문이다. 이 운하는 사도바야 거리, 그리고 고로호바야 거리와도 이어진다.

 

 

미샤의 운하.

 

 

 

 

 

 

다리 아래까지는 꽁꽁 얼어붙지 않아서 어둡고 짙은 코발트 블루 수면 위로 청둥오리들이 떠다녔다. 난간에 기대어 오리들에게 흑빵 부스러기를 조금 던져 주었다. 미샤와 트로이, 알리사도 그랬을 것이다.

 

 

 

 

운하를 산책하다 보면 거의 항상 돌난간 위에는 병뚜껑이 나뒹굴고 있고, 포석 사이사이에는 보드카와 맥주병, 종류를 알기 어려운 술병, 콜라병과 주스팩 따위가 내버려져 있다. 아주 지저분한 정도는 아니지만 꾸준히.

 

 

 

 

 

빛과 얼음의 운하.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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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0. 20. 21:22

모이카, 미샤의 운하, 극장과 백야 about writing2019. 10. 20. 21:22

 

 

 

지난 7월, 백야의 모이카 운하 사진 몇 장.

 

페테르부르크의 여러 운하들 중 도심을 가로지르는 세개의 운하가 있는데 판탄카, 그리보예도프, 모이카 운하이다.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운하는 가운데의 그리보예도프이다. 여기에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피의 구세주 사원), 돔 크니기, 예술광장 등의 명소가 모여 있기 때문이다. 판탄카 운하를 따라가면 레트니 사드와 아니치코프 다리, 이즈마일로프 사원(트로이츠키 사원)이 나오고, 모이카 운하를 따라가면 이삭 성당과 마린스키 극장에 닿을 수 있다. 이 운하들은 도시를 가로지르고 또 얽혀든다.

 

미샤를 등장시켜 쓴 소설들에서 페테르부르크는 단순한 배경과 장소가 아니라 때로는 소설 자체이기도 했다. 이 도시를 드나들면서 나는 가끔은 오감을 열고 머리를 비운 채 걷고, 가끔은 글과 인물들에 대해 생각하고, 가끔은 그들을 불러내어 같이 걷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일이 너무 바쁘고 힘들고 에너지가 소진되어 한동안 글쓰기를 중단하고는 있지만 실제로 페테르부르크를 거닐 때면 이러한 과정들이 되풀이된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이 도시에 몸이 가 있지 않더라도, 그곳에서 찍은 사진을 뒤적이거나 혹은 그저 머릿속으로 기억을 떠올리는 동안에도 반쯤은 저절로 나는 도시의 곳곳을 재생할 수 있다. 거의 육체적인 반응에 가까운 재생이다.

 

판탄카 운하가 트로이와 알리사의 운하였다면 모이카 운하는 누구보다도, 미샤의 운하다. 극장으로 통하는 운하이기 때문이다. 극장. 사도바야 거리. 그리고 트로이가 살고 있는 고로호바야 거리. 이 모든 곳들을 관통하는 운하. 미샤는 도시의 모든 운하들을 알고 있고 눈을 감고도 그곳들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지만 그래도 그의 운하는 모이카이다.

 

 

사진은 7월, 마린스키 극장에서 발레 공연 본 후 나와서 운하 따라 걸어가는 길에 몇장 찍은 것이다.

 

 

 

 

 

마린스키 극장 이야기를 하고서 사진 한장 없이 넘어가는 건 어쩐지 아쉬우니, 천정 장식화와 샹들리에 사진 한장.

 

 

이날 보았던 발레 공연은 돈키호테였다. 알렉산드르 세르게예프의 투우사가 정말 근사했던 날이다.

 

 

 

 

모이카 운하. 백야. 밤 10시 반에서 11시 사이.

 

 

이삭 성당의 황금빛 쿠폴이 보인다.

 

 

 

 

저 너머로는 카잔 성당의 쿠폴도 보인다. 미샤는 학창 시절과 사도바야 쪽에 살던 신입 단원 시절에는 이 길을 따라 걸어서 극장에 다녔다. 이후 극장 근처 아파트를 받은 후에도 이 운하를 뻔질나게 지나다녔을 것이다(그리고 이 길을 따라 걸어가면 트로이네 집도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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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의 모이카 운하. 밤 10~11시 사이. 이날 마린스키 극장에서 발레 돈키호테를 본 후 료샤와 함께 모이카 운하를 따라 산책하다 찍은 사진 한장. 좋아하는 산책로이다. 보통은 마린스키에서 공연을 본 후 이 운하를 따라 쭈욱 걸어가서 이삭 성당이 있는 광장까지 간다.

 

건물들 너머로 이삭 성당의 황금 쿠폴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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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카 운하. 작년 9월 저녁.


이 운하를 따라 걸을 때면 종종 글쓰기에 대해, 내가 만든 인물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이따금 그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그가 운하 난간에 기대어 새들에게 흑빵 부스러기를 던져주는 모습을 떠올리기도 했다.


물론 혼자 걸을 때만. 이 길은 가끔 료샤나 레냐랑도 같이 걷곤 했다. 그러면 우리는 웃고 떠들고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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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3. 7. 22:41

빛 속의 새들과 운하 2016 petersburg2019. 3. 7. 22:41

 

 

역시 모이카 운하. 하지만 어제 올린 트로이츠키 다리 카페(https://tveye.tistory.com/8941)가 있는 쪽에서는 네프스키 대로를 가로질러 건너가야 나오는 반대방향이다. 이쪽으로 산책하면 시느이 다리도 나오고 아스토리야 호텔과 이삭광장, 더 쭈욱 가면 마린스키 방향으로 갈 수 있어 내가 좋아하는 코스이다.

 

사진은 2016년 6월에 머무를 때 찍은 것. 백야 시즌. 빛이 너무나 밝아서 운하도 돌바닥도 새들도 탈색된 듯 창백하게 빛난다. 파란 하늘 아래서 빛을 받으며 천천히 운하 따라 산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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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카 운하변을 따라 네프스키 대로 쪽으로 나오는 방향으로 걷다 보면 이 카페가 나온다. 트로이츠키 모스트 카페. 즉 트로이츠키 다리 카페라는 이름이다. 트로이츠키 다리는 네바 강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교각 중 하나이다. 네바 강의 다리 중 제일 유명한 건 역시 궁전 다리이지만 이 다리도 상당히 유명하고 랜드 마크 중 하나이다. 에펠의 작품. (그 에펠 맞다)



이 카페를 지나칠 때마다 한번 들어가보고 싶었는데 어쩐지 이 카페는 혼자서 불쑥 들어가기가 어려웠다. 다음에 가면 료샤랑 같이 가봐야지. 



카페 간판도 촌스러운데 왜 들어가고 싶었느냐면, 이름 때문이다. 전에 쓴 글의 심리적 화자로 등장했던 인물의 이름이랑 같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그의 본명은 안드레이 트로이츠키였는데 보통은 애칭인 트로이로 불린다. 이 이름을 지을 때 안드레이라는 이름은 톨스토이의 등장인물에서 따왔고(전쟁과 평화의 그 안드레이 공작 맞다), 성인 트로이츠키는 페테르부르크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원 중 하나인 트로이츠키 사원에서 따왔다. 더불어서 같은 이름을 달고 있는 트로이츠키 다리에서도. 



그래서 이 카페 들어가보고 싶은데 이쪽 길은 공사를 할 때가 많아서 한적하게 산책하는 일이 별로 없고 대로 건너편 방향 산책길이 더 예쁘기 때문에 잘 안 다니게 되고... 카페도 좀 투박해 보여서 혼자 들어갈 마음이 확 내키진 않았었다. 나중에 보니 여기는 소련식 카페라고 한다. 더더욱 들어가봐야 하는데! 담에 페테르부르크 가면 료샤를 꼬셔서 꼭 가봐야지.





** 




트로이의 이름과 그에 대한 메모, 소설의 소개 부분은 아래. 여기 트로이츠키 사원 사진도 있다




트로이츠키 다리에 대한 메모와 사진들은 아래. 이때 한참 그 글을 쓰고 있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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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스키 극장 가는 길. 2015년 2월. 겨울에 공연 보러 갈땐 추우니까 보통은 버스를 타고 간다. 이 날은 엄청 추웠지만 햇살이 좋아서 그냥 운하 따라서 극장까지 쭉 산책했었다. 공연은 아마 전날 밤과 다음날 밤 보러 갔던 듯.

 

 

꽁꽁 얼어붙은 모이카 운하. 흰눈과 얼음, 그리고 새파란 하늘. 이런 날씨엔 추워도 산책하기 좋다.

 

 

내가 생각하고 상상하고 실지로 썼던 글들 속에서 미샤가 트로이네 집에서 잘 때면 아침에 이 길을 따라 극장으로 걸어가곤 했다. 물론 소련 시절 그 극장은 마린스키가 아니라 키로프 극장이었고 이 길의 주변 풍경도 조금은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운하는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살을 에는 듯 차디찬 공기와 하얗게 빛나는 수면 위 얼음, 눈이 멀도록 새파란 하늘은 변함없을 것이다.

 

 

 

 

 

 

 

 

 

 

 

 

 

 

 

 

이렇게 극장까지 걸어오는 것이다. 아름답고 또 아름다운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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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 31. 22:06

백야 3 russia2019. 1. 31. 22:06

 

 

며칠 전 올린 2015년 여름의 페테르부르크 백야 사진 1, 2에 이어 세번째. 이때는 포취탐스카야 거리에 있는 르네상스 발틱 호텔에 묵었었다. 아스토리야나 그랜드 호텔 유럽, 앙글레테르 같은 곳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묵기 괜찮았다. 여기도 이삭 광장에서 가깝고 특히 마린스키까지 걸어가기에 딱 좋은 위치에 있다. 숙소 가면서 찍은 사진 두 장. 골목이랑 모이카 운하. 백야의 황혼녘. 7월 하순.

 

필터나 보정 없이 dslr로 찍음. 페테르부르크의 백야는 이토록 색채가 아름답다.

 

 

앞서 올린 이맘때 백야 사진들은 여기 : https://tveye.tistory.com/8822, https://tveye.tistory.com/8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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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카 운하. 황혼이 서서히 어둠으로 바뀌는 무렵. 17년 10월.



dslr로 찍을 때도 플래시를 가급적 안 쓰는 편이라 어스름 초입까진 괜찮은데 일단 어둠이 내리고 조명들이 일렁이는 시기가 되면 내 사진들은 엉망이 된다.. 건지는 게 별로 없다. 이렇게 흔들린 사진들이 많다. 근데 이따금 흔들린 건 또 그 흔들린 대로의 매력이 있는 것 같아 내버려 둔다.



해질 무렵 모이카 운하를 따라 걸으면 참 좋다. 서늘하고 차갑고 푸르고 검다. (가을부터는 춥고 음습하긴 하지만 ㅜㅜ) 이 길은 미샤가 트로이네 집에서 자고 극장으로 출근할 때 걷는 길이다. 미샤야 네프스키를 관통하는 주요 운하인 판탄카, 그리보예도프, 모이카를 비롯해 도시의 별의별 운하와 작은 지류들을 다 건너다니며 쏘다녔겠지만 나는 그의 운하는 이 모이카 운하라고 생각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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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부르크는 권력자의 열망으로 태어난 인위적인 도시이고 딱히 기후나 자연환경이 좋은 것도 아니지만 매우 아름답다. 유럽을 모방해 지어졌지만 어딘가에는 역시 러시아만의 느낌이 배어 있고, 동시에 러시아답지 않아서 이질적이고 악마적인 곳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혼종의 도시. 



이 도시에는 각별히 사랑하는 특정 장소들도 많지만 그저 이렇게 운하를 따라 걷는 것 자체도 무척 좋아한다. 특히 석양 직전부터 황혼과 어둠이 내려앉는 시간대에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산책하는 기분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무렵은 빛의 색채 때문에 사진작가들이 특히 좋아하는 시간대라고들 한다. 이 시간대에는 사진을 찍으면 미묘하고 아름다운 푸른빛이 포착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이런 푸른빛은 운하를 따라 걸을 때 특히 아름다운 것 같다. 그 중에서도 페테르부르크의 운하들. 아마도 실제 도시의 아름다움과 빛의 색채들, 거기에 내가 이 도시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은 재작년 10월에 갔을 때 찍은 것. 작년 가을엔 이 시간대 사진을 거의 못 건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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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1. 15. 22:58

황혼녘의 페테르부르크 2017-19 petersburg2018. 11. 15. 22:58

 

 

 

 

보트들 때문에 살짝 베네치아 느낌처럼 나오긴 했지만, 작년 10월 이른 저녁. 해 지고 나서 황혼 무렵의 페테르부르크이다. 운하 따라 걷다가 찍은 사진. 황혼 무렵 이 도시의 푸른 빛은 정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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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도시, 냉기와 빛과 어둠의 도시. 페테르부르크. 운하 따라 산책하며 찍었던 사진 몇 장.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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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0. 23. 23:52

운하 2017-19 petersburg2018. 10. 23. 23:52






모이카 운하. 지난 9월.



운하 따라서 많이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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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0. 15. 23:02

가을의 북방도시 산책 2017-19 petersburg2018. 10. 15. 23:02






지난 9월. 페테르부르크 산책하며 폰으로 찍은 사진 몇장. 위의 사진은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 맞은편의 미하일로프스키 공원 울타리. 살짝 빛바랜 듯 나와서 어쩐지 옛날 레닌그라드풍 느낌이 들어 맘에 드는 사진이다.







카잔 성당 열주 사이로 바라본 돔 끄니기 건물과 하늘 :)







이렇게 쨍한 날도 있었고,








이렇게 꾸무룩한 날도 있었다. 그래도 올해 뻬쩨르 여행에선 날씨 운이 대체로 좋았다.







운하를 따라 걷는 건 언제나 행복하고...








좁고 한적한 루빈슈테인 거리는 언제나 근사하고 뻬쩨르풍으로 모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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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0. 11. 22:34

떡 버티고 있는 까마귀님 2017-19 petersburg2018. 10. 11. 22:34





앞선 스케치(http://tveye.tistory.com/8480)에서 지나가 무서워라 하며 울먹거려서 차마 그리지 않았던 까마귀, 대신 여기서 사진으로 :)



페테르부르크에는 까마귀가 참 많다. 비둘기도 많고 강가로 나가면 갈매기도 많지만 공원이나 숲으로 가면 까마귀를 쉽게 볼 수 있음. 스케치의 메모에서 지나가 '길 건너는데 까마귀가 막 날라와서 생쥐 낚아채가는 거 봤어 ㅜㅜ'라고 하는 건 사실 내 경험임. 진짜로 길 건너다 그런 광경 봤는데 무싸왔었다!



그래도 나한테 안 날라오면 까마귀는 쫌 멋지고 볼만함. 비둘기보다 멋있음.



사진 속 까마귀는 모이카 운하 산책하다가 돌난간에 앉아 있는 거 발견하고 찍음. 덩치도 크고 위풍당당하게 딱 버티고 있었음. 도망도 안 감. 







귀찮게 하면 콱 쪼고 도도하게 날아갈 것 같은 포스!!!






얘는 좀 더 하늘하늘하고 우아하게 생긴 녀석. 레트니 사드 연못가에서 비둘기, 청둥오리, 갈매기, 백조 사이에서 혼자 어정거리던 까마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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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0. 9. 21:44

모이카 운하 2017-19 petersburg2018. 10. 9. 21:44





페테르부르크의 가장 중심지는 네프스키 대로이고 이 대로를 가로지르는 대표적 운하가 셋 있다. 판탄카, 그리보예도프, 그리고 모이카 운하이다. 그리보예도프 운하는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 등 관광지들 때문에 여행객들로 항상 바글댄다. 그래서 실제로 산책하기엔 판탄카와 모이카 쪽이 더 나은 것 같다. 이것도 위 아래 방향에 따라 좀 다르긴 하지만. 



석양 무렵 모이카 운하를 따라 걸으면 참 좋다. 이쪽이 좀 한적하기도 하고. 검푸른 운하의 수면 위로 저물어가는 황금빛 햇살이 흩뿌려지며 반짝이는 광경을 보는 것도 좋다. 한낮의 눈부시고 찬란한 빛살과는 좀 다른 종류의 빛이다. 이쪽 길을 따라 쭈욱 걸어내려가면 끄라스느이 모스뜨(붉은 다리), 그리고 시느이 모스뜨(푸른 다리)와 이삭 성당이 나온다. 걷다 보면 고로호바야 거리나 사도바야 거리로 빠질 수도 있고. 계속 걸어가면 마린스키 극장 쪽으로도 갈 수 있다. 반대편 방향으로 쭈욱 가면 푸쉬킨 박물관이 있다. 결투 후 푸쉬킨이 숨을 거두었던 곳. 



본편을 쓰기 시작하면서 이 도시 곳곳을 다시 떠올렸는데 자주 떠올린 이미지 중 하나는 미샤가 이 운하를 따라 걷는 거였다. 사실 동선을 생각해봐도 이 길 많이 쏘다닐 수밖에 없음. 극장으로도 통하고 박물관으로도 통하고 제일 친한 친구 가 사는 거리와도 통하니... 본편에서 트로이가 고로호바야 거리에 사는데 소련 시절엔 사실 게르첸 거리로 불렸었다. 하지만 글에서는 고로호바야와 게르첸을 섞어서 썼다. 당시 사람들도 거리 명칭들 섞어 부르거나 애칭으로 부르는 적이 많기도 했고. 게르첸 거리란 어감이 나에겐 딱히 와닿지 않아서. 하여튼 미샤는 툭하면 트로이네 집에 와서 자고 저 운하를 따라 걸어서 극장에 출근하곤 함. 나중에 차를 산 후에도 차는 잘 안 끌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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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9. 24. 23:37

이곳이 페테르부르크입니다 2017-19 petersburg2018. 9. 24. 23:37

 

 

 

 

어젯밤 늦게서야 DSLR 메모리카드를 꺼내서 사진 정리함. 이번엔 카메라는 많이 안 썼기 때문에 600여 컷 정도밖에 안 찍었다. 다 핸드폰 때문이다. 전에는 폰카가 너무 후져서 항상 카메라로 찍느라 2천컷 정도씩은 찍었는데 그렇다고 그걸 다 제대로 건지는 것도 아니긴 해서.

 

 

하여튼 얼마 안되는 DSLR 사진들 넘겨보다가, 너무나 페테르부르크, 그러니까 뻬쩨르다운 사진 한 컷 :) 모이카 운하 돌난간에 무심한듯 시크하게(ㅋㅋ) 앉아 있는 비둘기. 석양 즈음의 햇살이 부서지는 운하. 꼭 껴안고 있는 연인들. 그 뒤로 아른거리는 빨간 교각(끄라스느이 모스뜨). 비둘기가 아니라 갈매기였으면 쫌더 뻬쩨르 느낌이었겠지만 이 동네엔 갈매기만큼 비둘기도 많고 까마귀도 많으니까 :)

 

 

이거 찍고 나서 잠시 후 저 비둘기는 날아가고 저 자리에 위풍당당한 까마귀가 날아와 앉았다. 그 사진은 나중에 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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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5. 6. 22:34

얼음과 물과 빛의 도시에서 2016 petersburg2018. 5. 6. 22:34

 

 

2016년 12월. 페테르부르크.

 

 

12월답게 무척 추웠다. 해는 아주 늦게 떴고 아주 금방 졌다. 북방도시의 겨울 날씨. 하지만 해를 볼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운이 좋은 날.

 

 

얼어붙은 운하와 공원을 따라 많이 산책했던 날이다. 산책하면서 찍었던 사진 몇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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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페테르부르크. 



모이카 운하 따라 숙소까지 걸어가는 길에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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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초. 모이카 운하 따라 걸으며 폰으로 찍은 사진 몇장. 전형적인 뻬쩨르 가을 날씨 = 춥고 비오고 바람불고 우중충... 햇빛 없음 ㅠㅠ



사진만 보면 또 분위기 있어보임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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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초.

 

다녀온지도 벌써 한달이 지났네 ㅠㅠ 또 가고 싶다...

 

 

비가 오락가락했던 날. 그리보예도프 운하랑 모이카 운하 따라 산책하며 찍은 사진 몇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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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0. 16. 22:00

싸늘한 가을, 페테르부르크 산책 2017-19 petersburg2017. 10. 16. 22:00




숙소 근처의 발샤야 모르스카야 거리를 비롯해 10월초의 페테르부르크 거리 사진 몇 장. 많이 쌀쌀한데다 날씨가 안 좋고 비도 자주 와서 카메라는 극장 갈 때랑 두어번 빼고는 안 들고 다녔다. 그래서 이번 여행 사진 대부분은 폰으로 찍어서 화질은 그냥 그렇다. 그래도 아이폰 사진이 갖는 특유의 느낌이란 게 있긴 있다.



싸늘한 가을의 페테르부르크 사진 몇 장. 아이폰 6s.












이 사진은 흔들렸는데 색채가 맘에 들어서 살려두었다.












갈매기 훨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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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 내일 하루만 더 지내고 나면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 한다. 생각하니 괴롭구나.



낮 열두시 마린스키 신관 발레 공연 티켓을 끊어두었었다. 료샤와 레냐도 갈까 했었는데 이것도 현대 발레이고 또 레냐가 보기에는 너무 플롯이 없어서(사실 레냐보다 료샤가 걱정 ㅋ) 그냥 나 혼자 보러 가기로 했다. 대신 내일 낮 공연은 불새니까 레냐도 볼만해서 같이 가기로 함.



아침에 보니 파란 하늘이 손톱만큼 보였다.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지만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다.



극장에 갔는데 하늘이 보이기 시작해서 부디부디 공연 끝나고 나와서도 날씨가 개어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 제바아아알... 네바 강변 한번이라도 걷게 해주세요오오... 아직 청동기사상도 보러 못 갔다고요...



오늘 공연은 마린스키 무용수이자 젊은 안무가인 일리야 쥐보이가 안무한 현대발레 '사계'(THE FOUR SEOSONS)였다. 작년 여름에 젊은 안무가 워크숍 공연에서 쥐보이가 Seasons란 제목으로 이 발레의 초안을 올린 적이 있었다. 그때는 2~30분 정도였던 것 같다. 당시에도 막스 리히터의 음악과 쥐보이의 안무가 잘 어우러져서 느낌이 괜찮았었다. 극장에서도 그렇게 여겼는지 2막짜리 발레로 전곡을 써서 안무하게 해주었고 몇달 전 초연을 했었다.




내가 리히터를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쥐보이의 안무도 우아하고 감성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에 와서 본 세가지 공연 중 오늘 공연이 제일 맘에 들었다. 그러니까, 프렐조카주의 Le Parc보다는 쥐보이의 이 작품이 좀더 내 취향이었다. 물론 주역을 춘 무용수가 예카테리나 콘다우로바이기도 했지만. 하여튼 오늘 공연은 꽤 좋았다.

(커튼콜 사진은 다 번져서 안 올린다... ㅠㅠ 3층 앞줄에 앉아서 너무 멀기도 했고 조명이 너무 밝았다 ㅠㅠ)



..



공연을 보고 나왔는데... 빗방울이 약간씩 떨어지고 있었다. 흐흑... 료샤랑 레냐가 기다리고 있었다. 차를 타고 호텔 앞으로 왔는데 그때 다시 개면서 하늘이 보였다. 나는 '아아... 하늘이 보여, 제발 네바 강변을 산책하자' 라고 징징거렸다.



우리는 해군성 공원을 지나 청동기사상 쪽으로 갔다.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지만 저 멀리에는 파란하늘도 좀 보였다. 표트르에게 인사한 후 길을 건너 네바 강변을 따라 거닐었다. 아아... 그래도 네바 강변 걷긴 하는구나 엉엉... 석양 보는 거라면 더 좋겠지만 엉엉 이게 어디야...










네바 강변을 쭉 따라 걷다가 에르미타주 쪽으로 틀었다. 궁전광장으로 가니 오늘이 바이커 축제일이었다. 그래서 광장에 수많은 오토바이들 집결. 가죽점퍼의 라이더들 우글우글. 내가 또 이런 걸 좋아해서(ㅋㅋ) 넋놓고 그 해골과 가죽 패션과 멋있는 오토바이들을 보고 있는데 료샤가 '야!' 하면서 날 확 잡아끌었다. 사람 많은데 들어가면 밟힌다고 ㅋㅋ 레냐는 '쥬쥬가 좋아하는 해골 옷이 많아!' 하고 소리를 쳤다 ㅋㅋ



..



그런데... 아틀라스 발을 만지며 소원을 빌고 막 내려오는 순간부터 빗방울이... 아니야 아니야... 나는 이 사실을 필사적으로 부정하고 싶었지만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비와서 카메라 집어넣고 폰으로 찍음. 우중충해진 거리 ㅜㅜ)




료샤의 차는 호텔 앞에 세워두었으므로 그리로 가야 했다. 그러나 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또 금방 그치지 않을까? 우리 그리보예도프 운하 따라 조금만 걸으면 안될까?' 하고 불쌍하게 부탁했다. 료샤는 툴툴댔지만 레냐는 '그래그래!' 하고 내 손을 잡아끌었다.




우산 쓰고 그리보예도프 운하 쪽을 따라 걸어가는데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 앞에서 비가 또 그쳤음. 그래서 우리는 미하일로프스키 정원을 좀 산책했고 다시 운하를 따라 나왔다. 나온 김에 좀더 걸어서 카잔 성당 쪽을 지나서 수프 비노에 갔다. 여기는 전에 bravebird님이 소개해주셔서 알게 된 곳인데 목소리가 다정하고 매력적인 알렉세이가 있는 곳이다. 료샤랑은 안 갔었다. (알렉세이 얘기하면 또 쿠사리 줄 게 뻔해서 ㅋ) 하지만 레냐랑 료샤도 배가 고프다 했고 나는 극장에서 먹은 빵 한조각 파인애플 몇조각이 전부라 정말 배가 고팠다. 수프 비노는 음식이 맛있고...



알렉세이가 있을까 궁금해하며 쭉 걸어서 수프 비노에 갔다. 그런데 슬프게도 알렉세이가 없었고 모르는 남자가 있었다. 생각해보니 전에도 알렉세이는 주말에는 근무를 안했던 것 같음 ㅠㅠ 알렉세이 말고도 안면 있는 점원이 두엇 있긴 한데 오늘 가게 보던 남자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아는 얼굴이었음 알렉세이에게 안부 전해달라고 하고팠는데 ㅠㅠ





하여튼 배고프고 너무 지쳐서 생강 레모네이드랑 치킨 수프랑 해산물파스타를 주문했다. 료샤는 핀란드식 우하(크림이 들어가는 생선수프. bravebird님이 여기 핀란드 우하를 좋아하심. 내 입맛엔 조금 짠 편이라 나는 치킨수프가 더 좋았다), 탕수치킨 비슷한게 곁들여진 볶음밥을 시켰고 레냐는 버섯파스타를 시켰다. 수프는 나랑 나눠먹었다. 이곳의 치킨 수프는 긴 쌀이 가득 들어 있고 무척 따뜻해서 꼭 닭곰탕에 밥 말아먹는 기분이라 몸이 따뜻해진다. 작년 여름에 너무 힘들때 여기서 그 수프 먹고 감동받은 기억이 있다.... 그때 음식을 별로 못 먹던 때였는데...



료샤도 레냐도 음식이 맛있고 분위기도 좋다고 했다. 료샤는 보통 이렇게 조그만 카페 같은 음식점엔 잘 오지 않는다(여기는 테이블이 5개 뿐이고 아주 작다) 사실 덩치 큰 료샤가 앉기에는 의자도 좀 좁은 편이었지만 음식이 맛있고 음악도 좋다면서 의외로 좋아했다. 다 먹은 후 레냐를 위해 치즈케익을 시켜주었다. 작년에 먹었을때 맛있었던 기억이 나서. 레냐는 무척 좋아했다.


..



나와서 걸어나오다 카잔 성당 앞 벤치에 앉아 잠시 쉬었다. 분수를 보면서. 오래전 미샤가 등장하는 illuminated wall 단편은 이 장소를 배경으로 시작되어 궁전광장의 원주 아래에서 끝난다. 레냐는 작년에 내가 이 분수 앞 벤치에 앉아 그 단편 이야기를 해준걸 기억하고 있었다. 벤치에 앉는데 레냐가 '쥬쥬가 쓴 글에서 미샤랑 레냐-자기랑 이름 똑같아서 잘 기억함-가 여기서 만났어 그치. 레냐가 여기서 아이스크림 먹었어 그치?' 하고 갑자기 떠올려서 반갑고 귀여웠다.





(그 단편에서 화자인 레냐는 이 벤치 중 하나- 잘 보면 오른쪽의 분홍색 옷 입은 분 앉아 있는 저 벤치-에 앉아 책 읽고 있는 미샤와 마주친다)





분수를 보고 있는데 아까 궁전광장에 모여 있던 바이커들이 우르르 몰려 지나갔다. 네프스키 대로를 꽉 채웠고 차들이 다 멈췄다.



우리는 엘리세예프스키 상점에 가서 과자들과 케익 구경을 했다. 뭘 사지는 않았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호텔 쪽으로 돌아왔다. 료샤는 항상 차를 가지고 다니므로 버스를 타는 일이 거의 없다. 심지어 버스 요금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있어 나랑 레냐가 '바보!' 하고 소리쳤다. (버스 요금이 작년 겨울보다 더 올라서 지금은 40루블임)



호텔 로비에서 잠시 쉬었다. 나는 석양을 보고팠지만 흐려서 실패했다. 대신 황혼녘의 모이카 운하를 좀 거닐었다. 중간에 레냐가 다리 아프다고 했다. 나도 다리가 아팠다. 오늘 많이 걸었다. 나 때문에 어린 레냐가 많이 걸어서 미안해졌다. 안아주고 싶었지만 이제 레냐는 내가 안기에는 너무 크고 무겁다. 곧 나만큼 커질 것이다. 료샤는 예전같으면 레냐를 안아주거나 업어주었겠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이제 다 큰 소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레냐도 이제 '아빠, 다리 아파 업어줘'라고 떼를 쓰지 않는다. 그냥 '다리 아프다, 좀만 쉬었으면' 이라고 말한다. 레냐는 많이 컸다...



내가 '레냐야 미안해. 내가 오랜만에 뻬쩨르 와서 산책하고 싶었는데 너무 많이 걸었나봐. 다리 많이 아프지?' 라고 묻자 레냐는 '나는 금방 안 아파져! 나는 건강해!' 하고 소리치더니 갑자기 '쥬쥬가 집에 안 갔으면 좋겠어. 그러면 맨날 이렇게 같이 걸을 수 있는데. 그러면 하루에 이렇게 많이 안 걸어도 되는데' 라고 한다. 레냐는 빵긋빵긋 웃으며 그렇게 말했는데 나는 갑자기 그 말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꾹 참았다.






..




우리는 방에 돌아왔다. 레냐는 많이 걸어서 피곤했는지 침대로 기어올라가 살풋 잠이 들었고 나는 료샤와 소파에 앉아(방 업그레이드해준 거 다시 생각해도 참 좋다 ㅋㅋ) 얘기를 좀 나누었다. 감자칩과 하리보 젤리를 깔아놓고 석류 주스를 마셨다. 료샤는 맥주 마시고 싶어했지만 레냐 태우고 운전해야 하므로 나와 주스 나눠마셨다. 그는 몹시도 맥주를 마시고 싶어했다. 그래서 '에이. 여기 방 하나 잡아서 자고 갈까' 하고 정말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는 정말 방을 잡았다. 아니... 여기는 무려 아스토리야 호텔인데... 운전 안하고 맥주 마시고프다는 이유로 즉석에서 방 잡아서 자고 갈 수 있는 부르주아 녀석이 부럽구나... 나는 여기 묵어보려고 환불도 안되는 가장 저렴한 요금 간신히 찾아서 그나마도 큰맘먹고 예약한 거였는데...



료샤는 나보고 오늘 얼마나 걸었는지 확인해보라고 했다. 앱을 보니 8.8킬로나 걸었다. 많이 걸었다. 나는 극장도 갔었기 때문에 료샤랑 레냐보다 더 많이 걸었던 것이다. 료샤는 나에게 몸살날지도 모르니 자라고 했다.



우리는 좀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료샤는 레냐를 살살 깨웠다. 레냐가 집에 가기 싫다고 막 울려는데(이럴땐 아직 아기 같음 ㅋㅋ) 료샤가 아래층에서 자고 갈거라고 하자 '쥬쥬도?' 하고 빵끗 웃는다 ㅋㅋ 아니야 레냐야. 나는 여기서 자고 너는 아빠랑 다른 방에서 자는 거야 ㅋㅋㅋ



료샤랑 레냐는 아래층에 자러 가고 나는 씻고 나와 오늘의 메모를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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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앙 벌써 금요일도 다 갔어... 주말 지나고 나면 돌아가야 한다 엉엉... 그런데 아직 햇빛을 못 봤어 엉엉 오늘도 하루종일 비가 왔어 으아아앙 ㅠㅠ



뭐 어쩌겠는가... 10월 초에 왔으니... 할 수 없지 ㅠㅠ 하여튼 그래서 오늘 사진도 전부 폰으로 찍었다. 비오고 무거워서 카메라 못 갖고 다닌다 엉엉....



어제 비오는 거리를 쏘다니며 수도원이랑 묘지랑 수퍼마켓 등등 돌아다니고 밤에 김릿 한잔 마신 결과 무지무지 피곤해서 엄청 늦게 일어났다. 아침 일찍 깨서 뒹굴다 도로 잠들어서 11시 넘어서 일어났음.



오늘도 종일 비가 왔다. 오늘이 어제보다 더 심했다... 주말에도 비가 온다고 한다. 떠나는 날까지 비오면 참 아쉬울 것 같구나.



한시 다 되어 방을 나섰다. 남은 날은 별로 없는데 계속 비가 오니 산책도 하기 어렵고... 아직 네바 강변 쏘다니지도 못했다. 춥고 비오고... 차라리 눈이 오면 패딩과 모자로 무장하고 눈맞으면서 걸을 수가 있는데 비가 오면 우산을 써야 하니 더욱 걷기가 힘들다. 그래서 겨울보다 오히려 지금 같은 계절이 산책하기는 더 힘들다. 난방도 어중간하고. 예전에 여기서 머물렀을 때도 10월이 제일 힘든 시즌이었다.



무척 배가 고팠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종일 비올 것 같아서 오늘은 그냥 고스찌에서 런치 먹고 본치 카페에 가서 글이나 써야겠다 마음먹었다. 페테르부르크 한두번 와본 것도 아니니 이번 여행에서는 박물관이고 뭐고 다 포기. 바실리 섬에도 안 간다. 멀리 안 가기로 했다. 주변만 좀 돌아다니고 글이나 쓰고 공연 보고 료샤랑 레냐랑 좀 놀다 가는 걸로 족하다... (사실은 부족하지만 ㅜㅜ 어쩔 수 없지)



고스찌에 갔다. 런치 메뉴는 일주일 동안 동일하다. 월요일에 왔었으니까 그때랑 같다. 다만 메인만 비프 스트로가노프 대신 치킨커틀렛으로 바꾸었다. 여기서 말하는 커틀렛은 다진 고기를 구워주는 것이다. 따뜻한 수프를 먹고 치킨완자 커틀렛을 먹으니 몸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





밥을 먹은 후 건너편 발샤야 모르스카야 거리의 본치 카페로 갔다. 아쉽게도 테이블 두 개 붙은 창가 자리는 예약이 되어 있어서 테이블 하나짜리에 앉았다. 그래서 노트북 펼치기가 조금 좁았기 때문에 주로 아이패드에 스케치를 했고 글은 열줄 정도 썼다. 이 카페는 아늑하거나 우아한 맛은 없어서 '내 카페다' 하는 느낌은 아닌데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작업하기에는 괜찮은 곳이다.





(오른쪽 옆에 좀 나온 게 내 패딩임 흐흑... 패딩 입고 다녀 엉엉... 그나마도 이거 가져온 게 다행임. 깃털도 많이 빠지고 별로 안 예뻐서 여기서 대충 입고 버리려고 가져온 건데 안 가져왔음 큰일날뻔했다... 줄창 입고 다님... 안 예쁘지만 살고 봐야 한다... 근데 또 열심히 입고 다니다 보니 '버리기 아까운데 도로 가지고 가야겠다...'하고 측은지심 발동 중임)




...



본치에서 차 마시고 생 오노레 라는 초콜릿치즈무스 케익을 먹으며 스케치를 하고 글을 좀 쓰다가 나왔다. 와서 짐을 풀고 보니 챙겨온 옷이 전부 칙칙한 검정, 다크 그린, 카키색 뿐이었다. 원체 정신없이 대충대충 싸와서 그렇다. 날씨도 추우니 암거나 가져가서 껴입자고 생각했었고... 추우면 자라 같은 데 가서 사입지 뭐 했다. (여기 자라가 우리 나라 자라보다 싸다!) 좀 걸어서 자라에 가보았다. 네프스키에 꽤 큰 자라 매장이 있다. 근데 별로 맘에 드는 옷이 없었다. 화려한 러시아풍 꽃무늬 블라우스가 하나 맘에 들었는데 가격이 6~7만원 정도였다. 입어볼까 하다가 너무 얇아서 사봤자 비실용적이란 생각에 포기했다.



그리고는 그 옆에 있는 렌에뚜알 이라는 화장품가게(올리브영이랑 비슷한 곳인데 좀더 고급브랜드들이 많다)에 들어갔다. 묵고 있는 호텔에서 쓰는 페라가모의 그 향수가 있나 궁금해서 그 라인은 국내에는 들어와 있지 않았다. 여기에도 없었다. 있어도 비싸서 덜컥 지르기 힘들었을 것 같긴 하지만...



..



이번에 와서는 이것저것 많이 사지 않았다. 실은 사고픈 아이템이 하나 있는데 그게 꽤 비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살까말까 망설이고 있었지만 꼭 갖고 싶은 것으로 러시아 전통숄에 모피후드가 달린 놈이다. 예전에 기념품가게에서 발견했을때도 예뻐서 꼭 갖고팠지만 그때도 비싸서 안 샀었다. 대신 그냥 숄을 샀었다. 사진에서 많이들 보았을테지만 러시아 미녀들이나 할머니 아주머니 아가들이 머리에 마트료슈카처럼 두르고 있는 그 화려한 꽃무늬 숄이다. 이것은 만드는 곳의 이름을 따서 '빠블로보빠사드스꼬이 쁠라똑' 이라고 한다. 크기도 다양하고 질과 무늬에 따라 가격도 많이 다르다. 무늬가 화려하고 섬세할수록 당연히 비싸진다.



내 기억에 보송보송 검정색이나 흰색 털이 복슬복슬한 후드가 달린 숄이 있었다. 나는 본시 조금 추우면 머리에 뭔가를 뒤집어쓰고 다니므로 겨울에는 항상 후드 달린 코트를 입거나 따로 모자를 쓴다. 그러니 후드 달린 숄이 있으면(그러니까 케이프 같은 것이지...) 실용적으로 잘 두르고 다닐테니 비싸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전에 그 예쁜 숄을 보았던 기념품 가게에 갔다. 가는 내내 비가 왔다. 그 가게는 그랜드 호텔 유럽 근처에 있다. 이탈리얀스카야 거리에 있으니 꽤 걸어가야 한다. 전에 그 가게에서 숄도 사고 이쁜 마트료슈카도 사고 내가 좋아하는 목각천사도 샀었다(두 천사 중 첫번째인 녹색망토 가브리엘을 여기서 샀었다) 모피 달린 숄을 발견했는데... 잘 보니 이게 후드가 아니고 그냥 숄 가장자리를 모피로 쫙 둘러 놓은 거였다. 후드 달린 케이프 형태의 숄은 없었던 거였다.



그래도 모피 달린 숄을 사면 이쁘겠다 싶었는데 가격을 보고 곧 포기하였다 ㅠㅠ 젤 싼 게 우리돈으로 30만원이 넘어서... 그 돈을 주고 털달린 숄을 살 수는 없어 ㅠㅠ



대신 호텔 근방의 발샤야 모르스카야 거리에 있는 빠블로보빠사드스꼬이 쁠라똑 샵에 갔다. 여기는 이 숄들만 모아놓고 파는 샵이고 기념품 가게보다 훨씬 저렴하다(원래 기념품 가게는 바가지임) 정품이고 종류도 많으니 여기서 사면 되는 건데 여기에는 털 달린 게 없었기 때문에 굳이 비싼 기념품 가게까지 갔던 것이다. 하여튼 이 샵에 갔고 친절한 주인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이것저것 둘러본 후 맘에 들고 어울리는 밝은 빨간색의 커다란 숄을 샀다. 전에 기념품가게에서 샀던 숄도 아주 예쁜데 그건 파란색이라서... 빨간 숄 갖고파서. (그때 쥬인에게 빨간 숄 사다주고 나는 파란 숄을 샀었다. 그때는 내 머리색이 오렌지색에 가까운 밝은 갈색이라 그 파란 숄이 빨간색보다 더 잘 어울렸었음)



아주머니에게 '빨강이랑 까망 같이 있는 건 없나요?' 하고 물었더니 아예 빨간 배경이나 아예 까만 배경에 무늬 있는 것만 있고 빨강까망이 어우러진 커다란 건 없다고 했다. 둘러보니 까만색도 잘 어울렸지만 비도 오고 꿀꿀하고 나는 요즘 열받는 일이 많으므로 빨간 숄을 택했다. 아주머니는 내게 빨간색이 더 잘 받는다며 '벌써 명절 준비하니? 어디 가려고?' 하고 웃었다. 여기서 말하는 명절-쁘라즈닉-은 새해이다 ㅋㅋ 새해 파티 가려고 화려한 숄을 사려는 거냔 뜻이다. 숄은 5만원을 약간 넘는 가격이었다. 울로 되어 있고 정품이고 무척 예쁘다. 모피 달린 30만원짜리 숄은 못 샀지만 빨갛고 화려한 숄을 사서 기분이 좋아졌다.



(호텔 방 조명 때문에 좀 노랗게 나왔다만... 실제 색깔은 좀더 밝은 빨강이다. 침대 위에 펼쳐놓으니 담요처럼 크다. 머리도 감싸야 하고 케이프처럼 둘러야 하니 큰 걸 사서 그렇다 ㅋㅋ 내 경우엔 큰 숄이 더 실용적이었다. 하도 머리에 뒤집어써서 그런가 ㅋㅋ)



근처에 있는 부끄보예드 서점에 가서 첫날 찍어두었던 해골과 장미가 그려진 폰케이스도 샀다. 그러니까... 값비쌀 게 틀림없는 털달린 숄을 사기 위해 딴 거 안 사고 있었는데 그게 너무 비싸서 포기하게 되었으니 딴것들 사자~ 이 모드가 된 것이다 ㅠㅠ 역시 조삼모사... 그래도 이것들 다 합쳐도 그 털달린 숄보다 훨씬 싸니까! 하면서 무한정당화 중...



그리고 비싼 모피숄 팔던 기념품 가게 옆에 있는 앤틱 가게 구경갔다가 맘에 드는 소련 시절 물건들 무지 많이 발견했지만 꾹 참고... 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마스코트인 곰돌이 미슈카 조그만 도자기 인형 하나 샀음. 어릴때 각국 올림픽 포스터들 볼때마다 '이상해.. 소련 나쁜 나라인데 마스코트는 제일 귀여워... 저 곰둥이 귀여워..' 했던 기억이 난다 ㅋㅋ



(요 녀석 ㅇㅅㅇ)



..




이런 자질구레한 쇼핑을 하며 돌아다니는 내내 비가 주룩주룩주룩 계속 왔음. 기념품가게는 예술광장에 면해 있으므로... 드디어 광장에 가서 푸쉬킨 영접. 미안해요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이번엔 너무 늦게 와서 ㅠㅠ 비와서 그랬어요...








오늘도 여전히 비오나 안오나 손을 들고 계신 푸쉬킨님. 비 주룩주룩 흑흑... (그래도 비둘기들은 언제나 그분과 함께~)



...



비 때문에 축축한데다 노트북이랑 아이패드 넣고 다녀서 무거운 가방 때문에 어깨가 무지 아파져서 호텔로 돌아왔다. 씻고 좀 쉬고 있자니 료샤가 레냐랑 같이 왔다. 같이 료샤네 집에 왔다. 위의 글은 료샤 기다리면서 호텔 방에서 쓴 것이다. 지금은 료샤네 집이다. 셰퍼드 네바가 나를 무척이나 반겨주었다. 레냐도 료샤도 나에게 빨간 숄이 잘 어울리고 예쁘다고 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 레냐는 좀전에 잠들었다. 잊어버릴까봐 오늘 메모 올려둔다. 스케치랑 본편 발췌글도 방에서 기다릴 때 써두었는데 지금 같이 올려야겠다.



내일은 셋이 마린스키 낮 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다.



비만 그치면 얼마나 좋을까 ㅠㅠ 하지만 다 가질 수는 없다! 빨간 숄이랑 곰돌이 미슈카 인형이랑 해골 폰케이스, 그리고 친구랑 레냐가 있으니 행복한 하루이다. (회사도 안 가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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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7. 9. 7. 21:09

모이카 운하 따라 겨울 산책 2016 petersburg2017. 9. 7. 21:09

 

 

 

지난 12월 페테르부르크는 떠나기 일주일 전 결정하고 날아갔었다. 복직을 앞두고 마음이 너무 심란했기 때문이다. 이성적으로 판단해보자면 12월은 결코 페테르부르크를 여행하기에 좋은 시기가 아니다. 언제나, 여름이 제일 좋다. 겨울에는 해가 너무 늦게 뜨고 일찍 지는데다 기후가 혹독하다. 눈보라는 예사이고 칼바람이 불어온다. 여름과 반대로 하루의 대부분이 어둠에 잠겨 있다. 그런데도 나는 그곳으로 날아갔다. 열흘 가까이 머물렀다. 돌아오고 싶지 않았지만 돌아왔다.

 

 

역시 12월답게 추웠고 어두웠고 습했다. 하지만 동시에, 역시 아름다웠다.

 

 

이때 숙소는 이삭 광장 쪽에 있는 아스토리아 호텔이었다. 겨울 비수기라 좀 싸게 나와서 잽싸게 예약하고 날아가서 소녀의 꿈 중 하나를 이루었다(아스토리아에 묵는 것~)

 

 

호텔은 발샤야 모르스카야 거리와 말라야 모르스카야 거리 사이에 있다. 호텔에서 나와 이 거리들을 따라 네프스키로 나가기도 하고 때로는 길을 건너서 모이카 운하를 따라 걸었다. 페테르부르크에 갈때마다 즐겨 걷는 산책 코스이기도 하다.

 

 

말라야 모르스카야 거리와 얼어붙은 모이카 운하 따라 걸으며 찍은 사진 몇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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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