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두개의 파트로 나누어져 있었고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첫번째 꿈에서 나는 10대 초반 즈음으로 돌아가 있었고 엄마와 동생과 함께 외가 쪽에 가 있었다. 아직 외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이었고 꿈속의 외가집은 실제와는 완전히 달랐다. 훨씬 현대적이었다. 벽에는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흰색의 주름이 잡힌 높은 관 같은 것을 쓴 할아버지와 주변 사람들이 있었다. 이 꿈은 아마도 엄마와의 프라하 여행과 최근 인터넷 서핑하다가 봤던 인어공주 실사판에 대한 글 몇개가 약간 영향을 준 것 같다. 왜냐하면 꿈에서 외가는 뭔가 불사에 가까운 아주 강력한 종족이었고 엄마도 그 일원이었으며 외할아버지는 수장이거나 거기 가까운 귀족이었기 때문이다. 뱀파이어나 하이랜더 뭐 비슷한 느낌이었다. 본거지는 프라하였다. 꿈속에서 외할아버지는 높은 관과 도포 차림으로 적들과 검투를 하고 계셨는데(내 기억 속 외할아버지와는 외모도 달랐음) 수차례 칼에 찔리고서도 멀쩡하셨다. 꿈에서 엄마는 그러한 세계에서 벗어나 인간세계(?)로 오신 거였다. 내가 그러면 나도 저런 식으로 살 수 있느냐고 물으니 프라하로 돌아가서 그 세계에 머무르면 너도 불사의 강력함을 지닐 수는 있을 거라고, 그런데 남동생은 안된다고 했다. 우리 둘은 뭔가 피가 다르거나 하여튼 그랬다.
첫번째 꿈에서 자연스럽게 두번째 꿈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어떤 교회 같은 곳으로 갔다. 이때부터는 엄마나 동생은 등장하지 않았고 내 친구가 하나 나왔다. 그런데 쥬인이나 실제의 친구가 아니라 꿈 속에서의 절친이었다. 이 교회는 어딘가 신비적이고 밀교의 분위기가 풍기는 곳이었다. 나는 친구와 함께 조금 앞자리로 가서 앉았는데, 성체 의식 비슷한 것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매우 비현실적이면서 섬뜩한 광경을 보았다. 설교대와 제단 앞에 어떤 키큰 여자가 몸에 꼭 맞고 아래로 퍼지는 빳빳하고 기다란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이 여자는 머리가 잘려 있었다. 머리 자체는 아예 없었고 목은 아주 깔끔하게 잘려서 단면은 마치 매끄럽고 평평한 마개를 씌운 듯 연초록색이 도는 피부색이었다. 여자는 한 손에 성체가 든 접시를 들고 있었는데 아주 엷고 묽은 붉은색의 축축한 피와 카스텔라를 뒤섞은 듯한 성체가 두 개 놓여 있었다. 그녀는 어떤 의식에 참여하고 있었다. 꿈속에서도 나는 내가 환각과 꿈에 사로잡혀 있는 듯했다. 잠시 후 여자의 머리가 '복원'되었다. 그녀는 카톨릭 성화에 등장하는 매우 고전적인 유럽 여인의 얼굴, 즉 갸름하고 턱이 뾰족하며 눈이 가늘고 하얀 얼굴에 높고 둥근 이마, 가운데 가르마를 타서 단발로 내려오는 생머리였다. 키가 크고 날씬하고 어딘지 유령처럼 보이는 그녀는 도도하게 걸어서 의자들 사이를 지나쳐갔다.
그런데 이 꿈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그 의식을 치러야 했다. 즉, 목이 잘리고, 그 이후 어떤 의식에 참여해 '미션'을 수행하고, 다시 머리가 복구되며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이때 이 꿈은 어떤 가상현실과 게임의 요소, 교훈적인 이야기가 결합되었다. 치러야 하는 미션은 옆에서 지켜보니 이런 식이었다. 목이 잘리는 체험 후 당사자는 환상 속으로 빠져들어가는데, 아주 짧은 우화 같은 것이 플레이된다. 동물들 같은 것이 나오고,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나 혹은 소유한 것을 내준다. 공동체에 봉사를 하는 것이다. 이 마음을 먹고서 손에 든 뭔가를 건네주거나 버튼 같은 것을 누르면 된다. 그러면 의식은 성공적으로 끝나고 이 사람은 머리가 다시 돌아온다. 목이 잘리는 순간은 아마 아프지는 않고 기존의 성녀나 성자의 이야기나 그림에서 묘사된 환상과 신비주의 법열에 사로잡힐 거라고 생각했다.
내 친구는 전혀 두렵지 않은지 앞으로 나섰다. 나는 공포에 사로잡힌 채 친구가 의식을 치르는 것을 보았다. 꿈속에서는 이곳에서 도망칠 수도 나갈 수도 없었다. 이 의식은 꼭 치러야 하는 것이었다. 친구의 목에 톱날 바퀴 같은 것이 와닿았고 톱날이 목 전체를 빙그르르 돌려가며 그었다. 친구의 가상현실은 하마와 코뿔소 같은 동물들이 마치 애니메이션처럼 나오는 거였고 위에서 묘사한대로 뭔가 미덕과 관련된 결심을 하고 상당히 수월하게 버튼을 누른 후 마무리되었다. 그리고는 친구와는 이야기를 나누거나 마주치지 않았다.
내 차례가 되어 앞으로 나갔는데 나는 너무 무섭고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의식을 도와주는 중년의 여인이 나에게 긴장되느냐고 물었고 나는 톱날이 무섭다고 했다. 여인이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막상 내가 당사자가 되자, 톱날을 스스로 쥐고 자신의 목을 그어야 했다. 나는 톱날을 목 한가운데 갖다 댔고 윙 하고 돌아가는 그것을 천천히 오른쪽으로 시작해 한바퀴 돌렸다. 아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두려웠고 아마도 어떻게든 끝까지 돌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피도 나지 않았다. 끔찍한 기분이 들었을 뿐이었다. 톱날을 다 돌렸을 때 나는 가상현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내가 치러야 하는 의식은 앞의 의식들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동물들도 우화도 교훈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흐릿한 모니터 앞에 서 있었고 어떤 지도들이 그려져 있었고 영어로 계속해서 설명과 지시가 나왔다. 꿈속에서 그 지시는 잘 들리지 않았고 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계속 버튼을 이것저것 눌렀지만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 그러자 두번째 미션으로 전환되었다. 마치 갤러그나 그 비슷한 게임 같은 것이 진행되는 커다란 모니터가 나타났다. 나는 스틱과 버튼을 눌러서 장애물들과 폭탄과 전투기들을 피해 계속해서 뭔가를 쏘았고 장애물들 사이를 간신히 빠져나갔다. 하지만 경로는 좁았고 내 손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어느 순간 나는 장애물들에 부딪히고 있으며 곧 목숨이 다하고 이 미션에 실패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다 미션이 끝났고 내 곁에는 그 여인이 서 있었다. 나에게 무엇이 어려웠느냐고 물었고 나는 왜 내 미션은 달랐는지, 제일 처음 왜 영어로 지시가 나왔는지, 그 지시의 볼륨이 낮아서 잘 들리지 않았다 등의 이야기를 했다. 내가 성공한 것인지 실패한 것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비참했고 기분이 이상했다. 곧 잠에서 퍼뜩 깨어났고 온몸이 너무 쑤셨지만 다시 잠들고 싶지 않았다. 이 꿈이 계속되는 것이 싫었고 기분이 나쁘고 온통 괴기스럽기만 했다. 잠에서 서서히 깨어난 후 나는 이전 꿈의 패턴과 내 마음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했다. 괴기스럽고 끔찍하고 환상적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앞날에 대한 모호함과 고민, 자신에 대한 고뇌, 인생에 대한 의문과 결단을 내릴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모든 것들이 들어 있었다. 다시 꾸고 싶지 않은 꿈이지만 어쨌든 인상깊었고 여기 길게 적어둔다. 내 꿈들은 보통 환상소설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