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3 화요일 밤 : 플라나리아도 아니고 fragments2023. 5. 23. 20:53
우리 아파트 단지 담장에 장미가 피어서 들어오는 길에 찍었다. 그런데 마침 해질녘이라 빛이 많이 반사되었다.
매우 고된 하루였다. 빈틈없이 꽉 짜여 있던 일정 중 딱 하나가 상대방의 일정 때문에 취소되었다. 그외에는 다 그대로 진행되었고, 거기에 최고임원이 정말 너무 큰 과제를 또다시 턱 던져놓았다. 손발이 되는 직원들은 전혀 움직이지 않을 과제이다. 윗분과 함께 대처방안을 논의하면서도 암담했다. 간부회의에서 최고임원은 모두가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으며 느려터졌고 전반적으로 큰 문제라고(이 모든 것은 매우 순화해서 쓴 것임) 무척 질타를 하고 화를 내셨다. 입장을 바꿔놓는다면 나도 그분이 왜 그러는지 아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그간 몸담았던 다른 곳들과 지위를 생각하신다면 우리 회사는 너무 제약이 많고 여러가지 장애물들이 많은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가용할 자원이 없으니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암담하다. 너무 지쳤다.
이러한 회의들의 연속, 문제해결과 해결되기도 전에 계속해서 몰려오는 무서운 과제들. 그리고 오후 늦게는 속썩이는 직원 중 또 다른 한명(가장 속썩이는 인물들은 아니다만 어쨌든 이 사람도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킴)과 한참 면담을 했다. 오늘도 가급적 들어주는데 집중했다. 이 사람은 자기 감정 조절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고 객관적인 판단력이 많이 부족한데 본인은 당연히 그 사실을 모른다. 문제를 일으키는 인물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확실히 아주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좀 충격적일 정도로. 그리고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아주 왜곡하는 경향도 있다. 지친다.
면담을 마치고 퇴근하는데 너무 지치고 피곤해서 정신없이 졸면서 왔다. 평소보단 좀 늦었고, 온몸이 두들겨맞은 듯 힘들어서 운동도 생략했다. 파란 원피스를 다시 입어보니 전보다 꽉 낀다... 역시 중간에 심적으로 힘들어서 운동 안하고 막 먹었던 결과가 이렇게 적나라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
점심땐 내가 예전에 유일하게 믿고 의지했던 선배님이 오셔서 같이 밥을 먹었다. 이분은 작년에 퇴직을 하셨다가 최근 동종업계 임원으로 돌아오셨다. 윗분과 다른 선배까지 함께 밥을 먹었다. 다시 뵈어서 좋았다. 이것과 사진의 장미만이 오늘의 좋았던 점이다. 선배님과 단둘이었다면 고민을 좀 많이 토로했을 것 같은데 여럿이라서 그러지는 못했다. 사실 너무 지치고 심신이 다 닳아서 많이 힘이 든다. 일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삶이 그렇다. 하루하루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다음주 토요일에 엄마와 여행을 가는데 지금은 그것을 잘 준비해서 가는 것만이 목표이다. 그런데 사실 준비는 거의 하지 못하고 있고, 엄마를 잘 모시고 다녀야 하는데 오히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고민과 힘든 점들을 엄마에게 토로하게 될것 같아 좀 걱정이다. (우리 집은 부모자식 간에 그런 고민을 솔직하게 얘기하는 문화가 아니었고 나도 원체 부모님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말을 잘 못한다) 그런데 요즘은 힘들다는 말은 웬만하면 입밖에 내지는 않지만 매일 밤마다 부모님과 통화를 하며 안부인사와 그날그날의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이 위안이다. 나이를 먹으면 원래 더 독립적이 되어야 하는 걸텐데.
하여튼 잠도 모자라고 너무 피곤하니까 이제 곧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부디 내일은 다른 과제가 또 생겨나지 않기를... 무슨 플라나리아나 도마뱀 꼬리도 아니고, 하나 잘라내면 그 자리에 두개가 돋아난다. 히드라도 그랬던 것 같은데... 다 싫어하는 것들이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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