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드뎌 토끼 배터리 방전됨!!!
자다깨다 피곤하게 잤는데 아침에 부모님과 통화하느라 좀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잠이 좀 모자란 상태가 되었고 조식도 놓쳤다.
열한시 좀 넘어서 기어나와 숙소에서 가까운 요세포프 쪽의 베이크숍 프라하에 갔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앉을 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건너편의 구르망 베이커리에 갔다. 예전에 여기 머물때 가끔 가서 케익이나 뺑 오 쇼콜라 사먹던 곳인데 앉아서 뭘 시켜먹은 적은 없었다. 메뉴를 보니 오믈렛도 있어서 그거랑 자몽 주스 시켜서 아점 먹었다. 맛은 나쁘지 않았다.
엄청 더웠다. 그냥 더운 게 아니고 습해서 땀이 나는 날씨였다. 오늘도 30도 너끈히 넘겼다.
..
피곤하기도 하고 저녁에 료샤가 오기로 했으므로 카메라는 놔두고 나왔었다. 에벨에 가서 글이나 좀 쓰고 숙소에 돌아와 쉬다가 료샤 만나야지 했다. 그래서 에벨에 갔다.
에벨은 다 좋은데 에어컨을 틀지 않아서 엄청 더웠다. 비 오기 직전의 날씨라 더 그랬다. 난 더운 날에도 따뜻한 차를 마셔야 정신을 차리는 타입이라 그냥 뜨거운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티랑 마스카포네 딸기무스 케익을 시켰는데 얼굴이 발갛게 익어있는 걸 보고 친절한 점원이 얼음물 피처를 가져다주었다. 에스프레소 시킬 때 아니면 물 안 주는데 내가 어제도 온 걸 알아보고는 '덥지요?' 하면서 얼음물 가져다줌. 감동 :) 근데 에어컨 틀어주심 더 좋을거 같은데 ㅋㅋ
차 마시고 케익 먹으면서 글을 조금 썼다. 두가지 글을 몇줄씩 번갈아가며 썼는데 더 쓰고 싶었지만 덥고 몸이 무거워져서 그냥 일어났다. 에벨의 마법으로 글이 조금 써지기 시작했으므로 시원한 숙소에 들어가서 이어 써도 될거 같았다. 그래서 에벨을 나왔다.
..
에벨에서 신시가지의 테스코가 걸어서 10분 거리이므로 거기 잠깐 갔다. 와이파이 천국 코스타 커피도 힐끗 다시 보고(들어가진 않음. 그냥 다시 보고파서), 지하 수퍼에 갔다. 체리 있으면 사려 했는데 테스코 수퍼에도 체리가 없었다. 프라하는 아직 체리가 안 들어왔나보다, 비싼 하벨 시장 빼고 -_- 그래서 가격이 좀 싼 산딸기를 좀 사고 꿩 대신 닭으로 체리 주스를 한병 사서 나왔다. 테스코 수퍼는 에어컨 빵빵해서 시원했기 때문에 나오기 싫었다 흐흑..
힘들어서 무스텍 역까지 가서 지하철 한 정거장 타고 나메스티 레푸블리키 역으로 와서 내렸다. 여기서 숙소까지는 내 걸음으로 10~15분 거리이다. 근데 반대방향으로 나와서 광장 쪽으로 돌아나와야했다.
광장에는 가판대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몇년 전 쥬인이랑 놀러왔을때 여기서 잼도 사고 찻잔도 사고 쥬인은 맥주랑 소시지 먹었던 적이 있어서 그때가 떠올랐다. 비오기 직전 날씨라 가판대들이 다 철수 분위기였는데 그와중에 라벤더 등속을 싸게 파는 곳이 있어 말린 라벤더 주머니를 한개 샀다. 한국보다 훨씬 싸서. 라벤더 향기 별로 좋아하진 않는데 수면장애가 있다 보니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여 조그만 주머니 샀음.
(쥬인이랑 왔을 때 생각나서 광장의 가판대들 사진 몇장 올려봄. 쥬인아, 그때 재밌었어)
공기 중에 비 냄새가 섞이기 시작했다. 젖은 아스팔트 냄새와 살짝 비릿한 냄새. 여기는 강이 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 빗방울은 떨어지지 않았지만 냄새가 먼저 왔다. 잘못하면 비 맞겠다 싶어서 발걸음을 빨리 했다. 다행히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비는 오지 않았지만 대신 엄청나게 습하고 더웠다. 간신히 방에 돌아오자 온몸이 끈적했다.
..
샤워를 하고 화장도 지우고 세수도 해버렸다. 료샤는 저녁에 오니까 오후엔 침대에서 좀 쉬다가 다시 나가면 되지 하는 맘이었다.
그런데 나는 배터리 방전된 거였지...
꾸벅꾸벅 졸다가 결국 잠들었다. 그것도 되게 피곤하게 잔 것 같다.
..
자다가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서 퍼뜩 깨어나 소리를 질렀다.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서워서 '꺅!' 소리를 지르자 테이블 옆 의자에 앉아 있던 료샤가 '왜 그래 또 꿈꿨냐?' 하고 물었다. 나는 너무너무 놀라고 말았다. 꿈인줄 알았음. 그런데 꿈 아니었음.
너무 놀라서 어버버 하다가 간신히 '너 언제 들어왔어? 어떻게 들어왔어?' 하고 물어보았다. 료샤는 기가 막히다는 듯 투덜댔다.
료샤 : 뭐야!! 문 열어주고서는 '나 더 자야돼' 하고 잤잖아!!!!!
나 : 내가 언제에에에....
료샤 : 아까!!!! 한시간도 전에!!!!!!
나 : 내가아아아???
료샤 : 너 낮술 마셨지!!!! 술 마시지 말랬잖아!!!
그제야 생각이 났음. 맞아... 정신없이 자고 있는데 전화왔어... 료샤가 전화해서 '나 호텔 도착했어! 너 몇호야?' 라고 물어서 방 번호 알려줬고 얘가 와서 문 열어줬고... 맞아, 졸려서 내가 '나 좀만 잘게' 그랬던 거 같.... 악!!!!
나 : 나 술 안 마셨어. 너무 피곤해서 그랬나봐. 미안 ㅠㅠ
료샤 : 맥심도 안 주고 잠만 자고 ㅠㅠ 뻬쩨르도 안 오고 나보고 프라하 오라 하더니 잠만 자고!!!! 갑자기 소리질러서 나를 치한 취급...
나 : 나 아까 진짜 치한인 줄 알았다... 너무 무서웠어 ㅠㅠ 방에 누가 침입한 줄 알았어....
료샤 : 지가 방 번호 알려주고 문 열어줘놓고.... 너 정말 큰일이다. 겁은 그렇게 많으면서 왜 이렇게 허술하냐. 혼자 여행다니면 이제 안되겠다.
나 : 시끄러, 너니까 내가 긴장 풀어서 그런겨!!!
하여튼 한시간이나 옆에 앉아서 마냥 기다린 불쌍한 료샤(이 녀석의 최고의 미덕은 내가 잘 때는 절대 안 깨운다는 것임)를 위해 한국에서 가져온 맥심 모카골드 200개와 맥심 아이스 50개를 꺼내주었다. 그는 뛸듯이 좋아했다 ㅋㅋㅋ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손수 맥심을 타주었다. 더우니까 아이스 타주려 했지만 그는 그립고 그리웠던 '노란 맥심'을 원했다. 그래서 맥심 모카골드를 타줌 ㅋㅋㅋ
..
원래 밖에 나가서 저녁 먹으려 했는데 내가 너무 피곤한데다 타고난 귀차니즘이 발동해서 우리는 그냥 방에 앉아 컵라면 까먹었음... 료샤 주려고 가져온 볶음 너구리 개봉 ㅋㅋ 불닭볶음면은 못먹었지만 볶음 너구리까지는 얘도 먹을수 있었다. 그래도 조금 맵긴 하다고 함. 나는 유부우동 컵라면 먹었다.
료샤는 볶음 너구리 먹으면서 엄청 좋아했다. 그리고 '여긴 아직 체리 안 나온거 같더라' 하면서 전처럼 서양자두를 몇알 꺼내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오랜만에 만나 프라하의 아름다운 야경을 보며 근사한 저녁을 먹은 것이 아니고.... 좁은 호텔 방의 작은 테이블 앞에 마주앉아 볶음 너구리와 유부우동 컵라면 먹고 자두 까먹고 내가 아까 사왔던 산딸기 먹었다. 그제서야 바깥에서는 천둥이 치면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료샤는 나랑 같은 호텔에 방을 잡았다. '부르주아가 왜 만다린 오리엔탈 안 가고 여기 묵냐' 고 놀렸더니 료샤가 툴툴대면서 '네가 가까운 데 방 잡으라 했잖아!' 그런다. (멍충이... 나는 힐튼이나 매리어트 말한 거였단 말이다 ㅠㅠ 거긴 이 호텔이랑 별로 안 머니까 내가 놀러갈 수 있는데 -_- 네가 고급호텔에 묵어야 내가 놀러가서 구경을 할거 아니야 ㅠㅠ)
료샤는 내가 작년보다 조금 더 동그래졌다면서 훨씬 낫다고 한다 -_- 그런 말은 위안이 되지 않아 ㅠㅠ 결국 동그래졌다는 거잖앗 ㅠㅠ 둥실 두둥실....
작년 겨울에 페테르부르크에서 본 후 반년 만에 다시 보는 거라 반가워서 늦게까지 놀고 싶었지만 배터리가 아직 방전 상태였던 내가 몇번 하품을 하자 료샤는 오늘은 좀 더 자고 내일 놀자고 했다.
료샤는 내가 잠을 잘 못 자는 것도 알고 작년에 고생한 것도 알고 있기 때문에 조금만 졸려 하면 무조건 재우려고 한다. 난 하품만 했지 슬슬 잠이 깨려던 참이었으나 료샤는 빨리 자고 내일 조식 먹자고 하고는 자기 방으로 갔음(맥심들을 신주단지처럼 껴안고 ㅋㅋ)
뭐야... 난 잠 깼는데 ㅠㅠㅠ 낮에 자버려서 밤에 빨리 잠 안 올 거 같은데 ㅜㅜㅜㅜ
친구야 다시 만나서 반가워 :)) 와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