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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맥주 한잔은 역시 나에게는 독이었으니... 마실 때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고 의외로 취기도 별로 오르지 않았지만 밤에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본시 맥주 마시면 잠을 잘 못 잔다. 첨엔 졸리다가 술이 딱 깨는 순간이 오고 나면 그때부터는 잠을 잘 못 자는 편이다. 그나마 몸을 데워주는 독주 같은 경우는 뒤끝이 적고 저렇게 잠 못 자는 경우가 드문데 차가운 맥주가 뒤끝이 안 좋다. 생각해보니 마지막으로 마셨던 맥주도 작년 9월에 프라하 왔을때 어제의 그 콜코브나에서 마셨던 마스터 세미다크 맥주였다. 그때는 오전에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밤에 엄청 열나고 아프고 고생했었지...



그런데 어제 나는 유혹에 굴복해 마셔버렸고... 술을 마셨으니 어제 저녁이랑 오늘 아침 약은 안 먹었고... 하여튼 잠을 잘 못 잤다. 새벽이 되었는데도 잠이 안 오고 몸이 너무 쑤시고 기침이 자꾸 나왔다. 이 방이 에어컨 시설이 없고 카펫이 깔려 있어서 먼지가 좀 많은 편이긴 하다.




알고 보니 간밤부터 비가 왔었다. 어쩐지 몸이 쑤시고 무거우면서도 괴롭더라니...




하여튼 그래서 잠 설치고, 아침에 깜박 잠들어 꾼 꿈에서는 회사의 다른 부서 사람들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던 예전예전 상사와 업무 때문에 부딪치고 설전을 벌였다. 내용마저 너무나 자세하고 현실적이었다. 다른 부서들과 얽힌 일들에 대해 감사가 나왔는데 분명 우리 부서는 총괄부서도 아니고 그 업무의 극히 일부만 맡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예전예전 상사(꿈속에서는 지금의 상급상사로 탈바꿈해 있었음)가 우리 부서의 업무분장표에 그 모든 일들을 집어넣으라고 하고 자료도 다 만들어내라는 거였다. 심지어 그 업무들은 전부 현실에서 우리가 실제로 맡아서 수행하고 있는 골치아픈 기획사업들이었음. 꿈도 어쩜 이렇게 현실적으로 꾸누...



꿈속에서 나는 이것은 불공정하며 비효율적이라는 점, 왜 다른 부서의 책임을 우리가 떠맡아야 하느냐, 우리보고 징계까지 받으라는 거냐 등등 엄청나게 항의를 하였는데 그게 너무 심했는지 잠결에도 내가 조목조목 소리내어 따지는 소리를 들었다! 잠꼬대도 완전 리얼하게 업무 항의!!!



으윽, 돌아갈 때가 다 되긴 한 거야... 수요일부터 다시 업무 복귀를 해야 하니 이렇게 적나라한 꿈을 꾸지...



그 꿈 때문에 너무너무 피곤하게 깨어났다. 꿈속에서 왕창 일하고 왕창 싸운 느낌이었다. 커튼을 젖히고 창 밖을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맥주 뒤끝 때문에 조식이고 뭐고 다 귀찮았다. 계속 누워 있고 싶었지만 오전에 료샤와 레냐가 돌아가기로 되어 있었으므로 슬퍼하며 그들의 방으로 갔다.


료샤와 레냐는 이미 돌아갈 준비를 다 마친 후였다. 나와 함께 아침 먹은 후 가려는 참이었는데 내가 아침은 못먹겠지만 옆에 같이 있어주겠다고 하자 료샤가 뭐라고 비웃기도 전에 레냐가 선수를 쳤다.


레냐 : 알아! 쥬쥬는 게을러!! 아침 원래 잘 안 먹어!!! 작년에 프라하 왔을 때도 그랬고 뻬쩨르에서도 그랬어! 쥬쥬는 열두시에 아침 먹어!!!


으흑... 료샤는 신나게 웃고... 나는 슬픈 눈으로 레냐를 쳐다보았다. 차마 숙취 때문에 암것도 먹기 싫다는 말을 어린애 앞에서 할 수는 없어서 그냥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나 : 으응... 그래도 오늘은 일찍 일어났잖아. 아침은 좀 있다가 먹을 테지만 네가 밥먹고 가는 거 옆에서 봐줄게.


레냐 : 여기 흑빵 맛없어서 안 먹는 거지? 아, 나는 미역국이 먹고 싶다~


뜬금없이 갑자기 미역국 타령을 하는 레냐 때문에 웃겨서 죽는 줄 알았다. 예전에 료샤네 집에 갔을때 미역국, 카레, 찜닭 따위를 해준 적이 있는데 레냐가 미역국을 엄청 좋아했다. 서양인들은 그 미끈미끈한 식감 별로 안 좋아하는데 레냐는 미역국도 좋아했고 양갱도 무지 좋아한다... 아빠 료샤는 맥심 좋아하는 아재 입맛이고 아들 레냐는 양갱 좋아하는 할배 입맛이다!!!


료샤랑 레냐가 조식을 먹는 동안 나는 생수와 오렌지를 약간 먹었다. 어제 맥주랑 맛없는 비프 버거 콤보 때문에 밤새 너무너무 목마르고 괴로웠다. 그나마 아침이 되자 갈증이 좀 가셨다. 이제 맥주 안 마셔 크흑...


조식을 먹은 후 료샤와 레냐는 가방을 쌌고 체크아웃을 했다. 나는 너무나도 섭섭했다. 계속 날씨가 좋더니만 오늘은 비온 직후라 하늘이 우중충했다. 료샤와는 그래도 며칠 봤지만 레냐는 금요일에 왔다가 오늘 아침에 가는 거라 너무 조금만 같이 있었기 때문에 더 섭섭했다.



레냐는 밥먹다가 조금 울음보 터뜨리면서 '쥬쥬도 우리랑 지금 비행기 타고 뻬쩨르 가면 좋겠다' 라고 했다. 내가 '다음에 꼭 갈게. 나는 이제 다시 일하러 가야 해' 라고 말했더니 레냐가 훌쩍훌쩍 울면서 '쥬쥬는 왜 맨날 일만 해?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쥬쥬가 제일 바빠, 쥬쥬가 제일 일 많이 해, 그런데 일도 많이 하면서 돈은 많이 못 받나봐. 뻬쩨르까지 오는 비행기 자주 없고 비싸서 프라하 왔댔어' 라고 하소연했다. 헉, 아이 앞에선 말을 함부로 하면 안되는구나... 어젠가 그저께 내가 '뻬쩨르 오는 비행기 적고 더 비싸서 프라하 왔어'라고 했더니만!!! 그리고 료샤랑 얘기하면서 '일하다 나 죽을 거 같아' 라고 한 것도 다 듣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따라 많이 섭섭했다. 날씨 때문인 것 같기도 했고 나도 내일 돌아가기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레냐와 뽀뽀를 하고 올해 가기 전에 꼭 뻬쩨르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레냐는 '그래애애!!' 하고 빽 소리를 지르더니 다시 한번 뽀뽀를 하고 차에 탔다. 료샤는 언제나처럼 한번 세게 안아주었다. 그리고는 '돌아가서 어떤 변화가 있든 너무 쫄지 마라.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잘해 왔으니까' 하고 갑자기 멋있는 척하는 대사를 읊었다. 엥?!!!



그러더니 역시 이놈다운 대사를 덧붙임.



료샤 : 근데 잘하는 건 잘하는 거고, 그깟 일은 그냥 때려치우는 게 제일 나아!!! 개새들!!! 나 같으면 작년에 이미 때려치웠지!!!!



(... 너는 누구에게 개새들이라고 욕을 하고 있는 거니 ㅠㅠ 레냐도 듣고 있는데 ㅠㅠ)



그리고 료샤랑 레냐가 공항으로 떠났다.



나는 매우 섭섭한 채로 방에 올라와 대충 화장을 하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23번 트램을 타고 카페 에벨에 아점을 먹으러 갔다... 22번과 23번은 노선이 비슷하다. 그런데 23번이 좀더 헌 전차이다. 옛날 생각나고 페테르부르크의 전차도 좀 생각난다.











.. 어쩐지 소련 시절 떠오르는 전차였다. 삐까번쩍한 요즘 트램 타다가 이거 타니 정감 있었다..


..



오늘의 메모가 꽤 길어져서 일단 여기까지 1부. 2부는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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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