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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2.25 겨울비 내리는 저녁, 마린스키 극장 앞에서 2
  2. 2015.02.24 서무 9편에 이어 : 꽁꽁 언 네바 강, 깨진 얼음, 건너다니는 사람 사진들 4
  3. 2015.02.24 서무의 슬픔 #9. 눈보라와 패딩 코트 20
  4. 2015.02.24 아가야, 엉덩이 시렵겠다 2
  5. 2015.02.23 2월 23일, 잘 다녀왔습니다 6
  6. 2015.02.22 모스크바 쉐레메티예보 공항에서 7
  7. 2015.02.22 풀코보 공항 카페에서 2
  8. 2015.02.22 2월 21일, 페테르부르크 마지막 날, 그냥 이것저것 2
  9. 2015.02.22 떠나기 전, 마린스키 신관, 마지막 공연
  10. 2015.02.21 페트루슈카, 봄의 예감 보고 들어와 아주 짧은 메모
  11. 2015.02.21 마린스키 구관, 공연 시작 직전 4
  12. 2015.02.20 내내 안 좋은 날씨, 방에서 사과파이 먹으며.. 2월 20일 4
  13. 2015.02.20 예약 포스팅 05. 이것이 러시아! 2
  14. 2015.02.20 이반 바실리예프의 돈키호테, 아주 짧은 메모 + 커튼 콜 사진 두 장
  15. 2015.02.19 당신의 벨리니..까진 좋았지만, 2월 19일 잠시 2
  16. 2015.02.19 예약 포스팅 04. 소련 각종 병조림과 먹거리 광고 포스터 2
  17. 2015.02.19 2월 18일, 어쩐지 눈 안 온다 했지.. 예술광장과 러시아 박물관, 그리보예도프 운하 사진 몇 장 7
  18. 2015.02.18 예약 포스팅 03 : 소련 캐비아 광고 포스터 2
  19. 2015.02.18 2월 17일, 얼어붙은 네바 강 사진 몇 장 + 곶감과 양갱과 미역국은 어떻게 되었나 8
  20. 2015.02.17 서무의 슬픔 번외편 2 : 등장인물 20문답(스페호프, 코즐로프, 렐랴) 18
  21. 2015.02.17 곱사등이 망아지 보고 옴, 정말 예쁘다 :) 7
  22. 2015.02.17 마린스키 신관, 곱사등이 망아지 시작 직전
  23. 2015.02.16 카페에서 잠시.. 2
  24. 2015.02.16 서무의 슬픔 번외편 1 : 등장인물 20문답(베르닌, 왕재수) 16
  25. 2015.02.16 레베제프가 춘 라 바야데르 보고 와서, 잠깐 6

 

 

2월 21일 토요일 저녁, 페테르부르크 마지막 날.

 

이날 마린스키 신관에서 라트만스키 안무, 로파트키나와 예르마코프 주연의 안나 카레니나를 보았다. 신관은 공연 시작 1시간 전에 입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 전에는 그냥 밖에서 좀 돌아다녔다. 축축한 가랑비를 맞으면서...

 

신관과 구관 사이에는 조그만 운하가 있다. 이건 신관 쪽 운하 난간.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기 직전이라 온통 주변 빛이 푸르스름하다.

 

괴로운 날씨였지만 사진을 보니 금세 다시 가고 싶네..

 

이 날 공연은 로파트키나의 처연한 카레니나를 본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안무나 작품 자체만 놓고 본다면 사실 라트만스키는 곱사등이 망아지나 신데렐라처럼 활달한 쪽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리뷰는 나중에 따로. 근데 이 날은 떠나기 전날이라 돌아오자마자 짐 싸느라 정신없어 공연 메모도 하나도 못 적었네. 잊어버리면 어쩌지, 요즘은 하도 깜박깜박 잘 까먹어서.

 

** 이 날 사진 몇 장과 안나 카레니나 커튼 콜 사진 1장은 여기 : http://tveye.tistory.com/3517

 

:
Posted by liontamer

 

앞서 올린 서무의 슬픔 시리즈 9편. 눈보라와 패딩 코트(http://tveye.tistory.com/3524)에 등장하는 배경과 비슷한 꽁꽁 얼어붙은 강과 얼음 깨진 풍경, 그리고 강 위를 건너다니는 사람들 사진 몇 장.

 

전부 이번에 페테르부르크 갔을 때 찍은 사진들. 그래도 확실히 점점 겨울이 따뜻해지는지 예전보다 더 빨리 강의 얼음이 녹는 것 같다. 어는 시점도 더 늦었고.

 

 

 

왼편은 강변의 포석. 오른편은 얼어붙은 네바 강. 얼음 위로 눈이 쌓여 있다. 맑은 날은 풍경이 이렇게 근사하다.

 

 

 

등대와 궁전 교각, 그리고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의 사원 첨탑이 보인다.

 

 

 

이건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쪽에 산책 갔을 때 찍은 사진들. '얼음 위로 나가는 것 금지!'라고 표지판이 씌어 있으나.. 저 뒤를 보면 사람이 ㅜㅜ

 

 

 

여기는 살얼음 지대. 이미 많이 녹기도 했다. 여기는 손글씨로 '위험지대' 라고 씌어 있고 줄도 쳐져 있다. 딱 봐도 발 딛는 순간 지지직!!

 

 

 

그래도 이 사람들은 아랑곳없이 강 위를 걷는다.

 

왼쪽 등대 뒤로 이삭 성당의 실루엣이 보인다.

 

 

 

가까이 가서 잘 보면 발자국들 엄청 많음...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음.

 

 

 

하지만 이미 2월 중순에 접어들었기에 강 가운데 부분은 이렇게 얼음이 녹아 깨지고 있다. 이건 녹아서 깨진 부분도 있고 쇄빙선이 다니면서 깨뜨린 부분도 있다. 쇄빙선 사진은 다음에 따로 올리겠다.

 

 

 

그러니까 위험해요!

 

베르닌과 왕재수도 첨엔 꽝꽝 얼어붙은 강 쪽으로 건너다가.. 베르닌이 그만 킹킹대는 소리에 이끌려 이렇게 위험지대로 발을 딛게 되고.. 그래서 ㅠㅠ

 

 

 

이건 궁전 교각 건너다 찍은 사진. 에르미타주 박물관 앞이다. 여기는 얼음이 꽤 많이 녹아서 새파란 강물이 보인다. 보기만 해도 엄청나게 차가울 것 같다!

 

 

 

이렇게..

 

사실 저런 데 빠지면 살아나오기 힘들 듯 ㅠㅠ

그래도 러시아인들 여럿은 한겨울에 저런 얼음물에 뛰어들어 냉수마찰을 즐기니... ㅠㅠ

 

:
Posted by liontamer

 

페테르부르크에서 어제 돌아와서 아직 시차 적응도 안되고 머리도 안 돌아간다. 다시 출근을 하니 참으로 피곤하고 괴로웠다. 아아, 진짜 돌아오기 싫었다.

 

자리 비운 동안 번외편으로 등장인물들의 20문답 인터뷰를 올렸었는데 다시 본 에피소드들로 돌아와서.

 

9편부터 11편까지는 한참 바쁘고 스트레스를 받던 1월말에서 2월 즈음에 쓴 것들이다. 오늘 너무 피곤한 몸으로 귀가하던 중 12편이나 13편 아이디어도 좀 떠올랐는데 좀 생각을 해봐야 할듯.

원래 휴가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면 곧장 본편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머리가 쿡쿡 쑤셔서 진지하게 집중하려면 아무래도 며칠 지나야 할 것 같다. 그러니 아마도 이 시리즈 한두 편을 더 쓴 후에나 본편으로 돌아갈 수 있을 듯.

 

에피소드 8이 새해 전야의 이야기를 다뤘다면 9편부터는 연도가 1982년으로 바뀐다 :)

 

새해 휴가를 마치고 업무에 복귀한 우리의 단추 청년 다닐 베르닌. 그리고 언제나처럼 극장 감독직을 수행하면서도 시골 타령을 그치지 않는 왕재수, 단추의 감시 대상자이자 그의 주인어르신. 이들의 신년은 어떻게 시작될 것인가! 그리고 소비에트 연방의 소도시, 지리적으로는 레닌그라드(지금 이름은 페테르부르크)에서 동북쪽으로 좀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가브릴로프의 한겨울은 과연 어떨 것인가~

 

 

** 지금까지의 줄거리와 이번 편 간략한 예고 **

   

1981년 소련의 지방 소도시(..라고 쓰고 시골이라 읽는다) 가브릴로프의 보안위원회(KGB) 말단 행정직원이자 서무인 다닐 베르닌은 무시무시한 상사에게 시달리고 격무에 짓눌려 죽을 지경이다.  

이 와중에 모스크바에서 유명한 무용수 출신의 반동분자 정치범을 가브릴로프로 유배시키고, 베르닌은 엉겁결에 그를 감시하는 중책을 떠맡는다. 알고보니 그것은 싸가지 없는 젊은 예술가 녀석의 가정부이자 노예 노릇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가뜩이나 서무 업무로 들들 볶이느라 힘든 와중에 새로 온 녀석의 출퇴근 운전기사 노릇, 집안일, 밥해먹이기 등등 온갖 잡일에 시달리던 베르닌은 망할 놈의 반동분자를 왕재수라 부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왕재수도 나름대로 시골 생활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 중이다.

어쨌든 시간은 흘러 이들은 새해를 맞이하게 되고... 가브릴로프 KGB 행정요원들은 지독한 휴가 후유증을 앓으며 업무에 복귀,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스페호프 국장의 시무식과 설교였다. 그리고 가브릴로프에는 눈보라가 몰아쳐 오는데...   


 

(이 시리즈는 아래 순서대로 읽기를 권장함~)

* <서무의 슬픔> 시리즈에 대해 : http://tveye.tistory.com/3427
* 주요 등장인물 소개 + 시리즈 목차 : http://tveye.tistory.com/3428
* 에피소드 0. 다닐 베르닌의 새로운 임무 : http://tveye.tistory.com/3429
* 에피소드 1. 왕재수, 행동에 나서다 : http://tveye.tistory.com/3432
* 에피소드 2. 당직실의 귀신 : http://tveye.tistory.com/3437
* 에피소드 3. 버찌잼과 초콜릿 쿠키 : http://tveye.tistory.com/3444
* 에피소드 4. 공유지의 배추와 의전의 문제 : http://tveye.tistory.com/3451
* 에피소드 5. 무도회에 간 베르닌 : http://tveye.tistory.com/3458
* 에피소드 6.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 : http://tveye.tistory.com/3466
* 에피소드 7. 보고서의 악몽 : http://tveye.tistory.com/3478
* 에피소드 8. 새해 전야의 만두 소동 : http://tveye.tistory.com/3488

** 번외편. 등장인물 20문답 : http://tveye.tistory.com/3492, http://tveye.tistory.com/3493

 

 

* 이 글을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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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무의 슬픔 series>

episode 9 

 

 

서무의 슬픔

- 눈보라와 패딩 코트 -

 

 

 

 

 

신년 휴가가 끝난 후 가브릴로프 KGB 직원들은 너도나도 ‘일하기 싫어’ 증후군으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휴가 내내 늦잠자고 뒹구는 데 익숙해져서 도통 업무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보드카를 퍼마시고 기름진 음식을 진탕 먹고 놀았기 때문에 배탈이 나서 병가를 낸 직원도 다섯 명이나 나왔다. 이런 명절 후유증에 시달리지 않는 인물이 딱 한 사람 있었으니 바로 블라지미르 스페호프 국장이었다.

 

과연 스페호프는 행정의 귀감이자 모범 공산당원다웠다. 그는 신년 출근 첫날에도 정각 8시에 사무실에 도착했다. 건물 정문 쪽 진입로에 덜 녹은 눈이 약간 쌓여 있는 것을 보고 분노하여 청소부들을 다그쳐 당장 치우게 했다. 약 30분 동안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경내를 돌며 모든 것을 샅샅이 관찰했다. 그리고는 9시가 되자 3층부터 1층의 모든 사무실과 휴게실을 매와 같은 눈으로 순시했다.

 

10시에 시무식이 열렸다. 웬일로 국장의 연설은 20분 만에 끝났다. 다들 국장도 명절 후유증으로 피곤한가보다 하며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스페호프가 덧붙였다.

 

“ 10시 30분부터 주간회의를 진행하겠네. 다들 회의실로 직행하도록. 서무는 근태기록부를 지참하게. 이상! ”

 

베르닌은 근태기록부를 들고 주간회의에 갔다. 시무식은 빙산의 일각이었음이 증명되었다. 직원들이 모두 둘러앉자 스페호프는 느닷없이 모두들 수첩을 덮으라고 한 후 올해 보안위원회가 나아가야 할 길과 직원들의 마음자세에 대해 한참 설교를 늘어놓았다. 시무식 연설의 자세한 버전이었다. 이후 그는 전 직원들에게 돌아가면서 올해의 다짐에 대해 한 마디씩 해보라고 강요했다. 자기 차례가 왔을 때 베르닌은 국장이 좋아할만한 문장을 기계적으로 주워섬겼다.

 

“ 저는 올해 행정의 기본을 잘 익혀 보안위원회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직원이 되겠습니다. ”

 

그렇지! 이제야 발전의 기미가 보이는군. 다들 잘 알고 있겠지, 다닐이 작년까지 얼마나 우매하고 답답한 책상물림이었는지. 기본 역량을 익히지 않으면 아무리 일을 해도 발전이란 것이 없단 말일세!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은 바로 행정 능력이며 이를 배양하기 위해서는 기초 중의 기초인 서무 업무를 잘 수행해야 하네! 물론 자네는 아직 멀었지. 그러나 자네가 이를 바탕으로 서서히 성장해나갈 수 있도록 내가 특별히 배려하여 그 불여우의 감시 업무를 추가 분장해 줬던 것이야. 올해는 양자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도록 하게. 그렇게 하여 자네의 능력이 일취월장하면 이제 더 중요한 업무를 추가로 맡기도록 하겠네. 자네의 건투를 비네! ”

 

베르닌은 국장의 연설을 단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올해 가외 업무를 또 맡기려고 하는구나!!

 

 

오글거리는 한 마디 시간이 끝난 후 스페호프는 베르닌에게 근태기록부를 펼치게 했다. 그리고 오전에 지각한 직원들을 하나하나 거명하며 기록부에 커다랗게 X 표시를 하게 했다.

 

“ 올해부터는 단 1분이라도 지각할 경우 일주일 간 1시간 조기출근일세. 오늘은 첫날이니 특별히 아량을 베풀어 3일 조기출근으로 해주지. 책상 위에 서류를 흩어놓거나 의자 아래에 잡동사니를 늘어놓을 경우에는 일주일 간 1시간 초과근무일세. 여기 해당되는 직원들은... ”

 

스페호프가 또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흙빛이 되어 신음했다. 대부분 둘 중 하나에는 걸려들었기 때문이다. 주간회의를 시작했을 때 매우 저기압이었던 국장은 회의가 끝날 무렵이 되자 눈에 띄게 기분이 좋아졌다. 가뜩이나 설교를 늘어놓고 아랫사람들을 들들 볶기 좋아하는 사람이 열흘 넘도록 신년 휴가 때문에 그 짓을 못했으니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지 눈에 선했다. 회의를 통해 묵은 욕망을 마음껏 발산했으니 기분이 누그러질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의를 마치자 이미 점심시간이었다. 베르닌은 구내식당으로 터벅터벅 내려갔다. 선배들과 동료들이 날벼락 같은 조기출근, 초과근무 벌칙에 대해 떠드는 동안 그는 묵묵히 식판에 담긴 삶은 마카로니와 양배추 당근 샐러드, 소시지를 먹었다. 리자가 감탄하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 다냐, 왜 화도 안 내요? 서류 흩어진 거랑 의자 아래 종이상자 놔둔 것 때문에 초과근무 도합 2주일 받았잖아요. 근데 꿋꿋하게 밥만 먹네요. 오늘따라 진짜 맛도 없는데. ”

 

“ 난 어차피 매일 야근하니까 초과근무 벌칙 받으나 안 받으나 똑같아요. 그리고 구내식당 밥이 언제 맛있었나요. 그냥 배 채우는 용도예요. 밥을 먹어야 힘이 나고 그래야 국장이 떠맡긴 산더미 같은 일을 할 수가 있죠. 안 먹으면 머리도 안 돌아가고 손도 안 움직이는걸요. ”

 

“ 어휴, 책상물림... ”

 

“ 책상물림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서무라서 그런 거라고요! 당신이 한번 서무 해 봐요! ”

 

“ 어머, 내가 왜요! 난 엄연히 등록부서 직원이라고요! 내 업무는 등록자들 서류에 도장 찍어주는 건데! 아, 그러고 보니 생각났네. 그 사람 있잖아요, 꽃미남. 극장 감독님. 내일 등록 서류 갱신해야 하니까 사무실로 와달라고 해주세요. ”

 

“ 직접 전화하면 되잖아요. 담당자면서. ”

 

“ 당신들 같이 살잖아요! 게다가... 당신들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 아침에 하고 저녁에 하고 밤에... ”

 

“ 아아... 그건 정말 오해라니까요! ”

 

“ 다냐, 내 앞에서까지 그렇게 잡아뗄 필요 없어요. 난 신세대잖아요. 이런 말 국장이 들으면 혼내겠지만 난 열린 마음의 소유자라고요. 사랑에 남녀 구분이 어디 있나요. 좋으면 그럴 수도 있지. 그 사람 엄청 예쁘니까 뭐 충분히 그럴 수 있겠죠. ”

 

우리 진짜 그런 사이 아니라고요!! 난 남자 안 좋아해요!! 걔랑 나는 진짜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 강력한 부정은 긍정이라던데... ”

 

“ 아니라고요! ”

 

“ 아휴, 알았어요. 그럼 오히려 잘됐네. 다냐, 나 그 사람이랑 소개팅 좀 시켜줘요. 그 사람 진짜 꽃미남에 옷도 잘 입고 몸매도 끝내주고 목소리도 좋고, 저번에 체육대회 때 보니까 운동도 잘하고... ”

 

“ 꿈 깨요, 리자! 걘 여자한테 관심 없어요. ”

 

“ 저것 좀 봐. 결국 사귀는 거 맞네요. 아닌 척하다가 소개시켜달라니까 돌변하는 것 좀 봐. 흥. ”

 

리자는 툴툴거리며 식판을 들고 다른 쪽 자리로 가버렸다. 베르닌은 한숨을 쉬며 남은 양배추와 마카로니를 다 긁어먹고 일어섰다. 쌓여 있는 일을 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    *    *

 

 

베르닌은 원래 밤늦게까지 남아서 밀린 일을 하려던 계획이었지만 오후부터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눈 폭풍이었다. 초과근무 벌칙을 받은 직원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5시에 정시 퇴근을 해도 집에 가기 어려운 마당에 한 시간 늦게 나가면 도로는 꽉 막힐 게 뻔했고 그렇다고 눈보라를 뚫고 걸어가는 것은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직원들은 제비뽑기를 했고 운 나쁘게 걸린 발따예프가 총대를 멨다. 국장실로 올라가서 눈보라가 너무 심하니 초과근무는 다음날부터 하면 안 되겠느냐고 처량하게 부탁했다. 국장은 고개를 저었다. 원칙은 원칙이니 걸린 사람들은 모두 6시에 퇴근하라고 했다.

 

벌칙을 받은 직원들이 6시에 우르르 몰려나간 후 베르닌은 더 남아 일을 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 전화가 울려댔다.

 

“ 예, 보안위원회 다닐 베르닌입니다. ”

 

“ 나 언제 데리러 올 거야? ”

 

베르닌은 대체 이 녀석은 왜 이렇게 당당한지 이해가 안 됐지만 솟구치는 짜증을 꾹 누르며 대꾸했다.

 

“ 나 야근해. 너 오늘 그냥 바이올린 아저씨랑 같이 들어가는 게 어때? ”

 

“ 나도 그러고 싶은데 로만은 아파트 수도관이 다 터져서 지휘자 할아버지 집으로 피신했어. 그러니까 데리러 와. 안 그러면 나 극장에서 자야 되는데 오늘은 너무 추워. ”

 

“ 그냥 너도 지휘자 할아버지 집으로 가면 안 되냐... ”

 

“ 그 영감은 오라고 했는데, 거기 가면 난 분명 솟구치는 욕망을 견디지 못하고 로만이랑 뒹굴게 될 거라고. 할아버지 그거 보고 심장마비라도 오면 어떡하니. ”

 

“ 그래, 심장마비 오겠지. 상상도 못한 민망한 짓이니... 그것도 70살이 다 된 보수적인 노인이니... ”

 

“ 그게 아니고... 우리의 격렬한 응응을 구경하다 흥분해서 자칫 노인네 몸에 탈이라도... ”

 

“ 아아, 제발 그만해라... 모두가 너 같은 건 아니란 말이야. 데리러 갈 테니까 옷이나 따뜻하게 입고 있어. 밖에 진짜 추워. 무조건 털 달린 엄청 두꺼운 패딩 입어야 돼. 멋 부린답시고 평소처럼 아르마나인지 뭔지 그런 코트 입지 마! ”

 

“ 아르마니! 아르마나가 아니고. 어째 그렇게 학습이 안 되니. ”

 

“ 시끄러워! 패딩 입고 목도리 하고 모자 둘러쓰고 있어! 지금 갈 테니까! ”

 

 

베르닌은 차를 몰고 극장으로 갔다. 보안위원회 사무실과 그들의 아파트는 둘 다 신시가지에 있었지만 극장은 구시가지에 있었기 때문에 왕재수를 출퇴근시켜주기 위해서는 매일같이 강을 건너는 짓을 해야 했다. 눈보라가 살짝 잦아들어서 다행이었다. 베르닌은 훌륭한 운전 실력을 발휘해 꽉 막혀 있는 차들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 1시간 만에 극장 앞에 다다랐다. 평소에는 20분이면 도착할 거리였지만 이 정도면 선방이었다.

 

감독실로 가보니 왕재수는 차이코프스키인지 모차르트인지 베르닌으로서는 구분도 잘 안 가는 클래식 음악을 시끄럽게 틀어놓고 한 손으로 허공을 휘저으며 이러 저리 몸을 꼬고 있었다. 베르닌은 좀 기다려 주려고 했지만 왕재수가 자기가 온 것도 모르고 계속 그 이상한 동작들을 늘어놓는데 여념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오디오를 꺼버렸다.

 

“ 야! 집에 가자! ”

 

“ 아휴, 이 무식한 인간! 너 때문에 망했어! 거의 다 됐는데! ”

 

“ 집에 데려다 달라며! ”

 

“ 신작 안무 중이었단 말이야. ”

 

“ 그렇게 이상하게 꼼지락거리는 게 작품이란 말이야? ”

 

“ 처음엔 원래 그렇게 보이는 거란 말이야. 에잇... ”

 

“ 그럼 계속해라. 난 간다. ”

 

“ 안 돼, 나 데려가. 여기 너무 추워. 오늘은 공연도 없고 극장 예산 승인이 아직 안 떨어졌다고 난방도 안 해주잖아. 그런 게 어디 있어... ”

 

“ 공연이야 사업 예산이니까 난방급탕비가 잡혀 있겠지만 공연 없을 때 쓰는 난방은 극장 운영 예산이니까 그건 기관 경상비 항목에 해당돼. 그러니까 시 의회 승인이 없으면 쓸 수 없는 돈이거든. 지금 의회 의원들 다들 크림으로 시찰 가서 이틀 후에나 돌아오니까 그때까진 공연 없으면 난방 안 될 거야. ”

 

 

베르닌은 왕재수가 예산에 대한 자신의 해박한 지식에 감탄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왕재수는 전혀 다른 결론을 내렸다.

 

 

“ 그러니까 시 의원들이 전부 놀러 나가서 극장 난방을 안 해준다는 거네! 나쁜 인간들! 모스크바에 있는 우리 아저씨한테 이를 거야! ”

 

“ 너네 아저씨란 인간도 국회의원이잖아! 더 높은 사람... 가재는 게 편이니까 다 똑같다고. 세금으로 외유 가고... ”

 

“ 하긴, 우리 아저씨들이 나 데리고 여기저기 많이 다녔지. 비엔나에 베니스에 파리에... 알았어. 가자. ”

 

야! 왜 코트를 꺼내고 있는 거야! 패딩 입어!

 

“ 나 패딩 없어. 촌스러운 건 안 입어. 어차피 너 차로 갈 거잖아. ”

 

“ 내 차 지금 난방 안 된단 말이야. 밖에 얼마나 추운데! 폐렴 나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

 

“ 그러니까 이제 면역력이 생겼으니 괜찮다고! ”

 

 

베르닌은 경비실로 내려갔다. 거구의 경비원으로부터 여분의 패딩 코트를 빌려와서 왕재수에게 억지로 뒤집어씌웠다. 시커멓고 거대하고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패딩 코트에 왕재수가 경악을 했다.

 

아악, 이게 뭐야! 이런 끔찍한 물건을 몸에 걸칠 수는 없어! 이것은 패션 테러야!

 

베르닌은 아랑곳하지 않고 왕재수에게 패딩 코트를 입힌 후 지퍼를 올리고 단추를 채웠다. 코트에 달려 있는 거대한 털모자를 뒤집어씌웠다. 목도리를 잡아채 얼굴을 칭칭 감았다.

 

“ 그만 좀 해! 너무 두꺼워서 움직이기도 힘들어. 이 옷 나한테 너무 크단 말이야! 펭귄이 된 것 같아! 뒤뚱뒤뚱... ”

 

“ 나가봐라, 나한테 고마워하게 될 테니까. ”

 

“ 어휴, 시어머니... ”

 

 

*    *    *

 

 

극장에서 나오자 눈보라가 몇 배로 강력하게 몰아치고 있었다. 시동도 한참 만에 걸렸다. 왕재수는 차에 들어오자마자 털모자를 벗고 패딩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베르닌이 경고했다.

 

“ 좋은 말 할 때 그냥 입고 있어라. 차 난방 안 된다고 했다. ”

 

“ 숨 막힌단 말이야. 나 원래 몸도 뜨거운데... 난 피 끓는 젊은 남자라고! 너처럼 책상물림 노인네가 아니란 말이야! ”

 

“ 야! 나 너랑 세 살 차이밖에 안 나거든!! ”

 

“ 넌 내복 입잖아! 난 안 입어! ”

 

“ 내복 안 입는 게 자랑이냐? 우리 동네는 겨울에 엄청 춥단 말이야. 내복 안 입으면 감기 걸리고, 몸도 아프고 돈도 들어가고! ”

 

“ 그러니까 노인네 같다는 거지! ”

 

“ 툭하면 아픈 게 누군데! 오죽하면 맨 처음에 너 아파트 배정해 줄 때도 의사 선생 병원 옆에... ”

 

“ 야! 내가 원래 아팠냐! 내가 원래 얼마나 튼튼한 체질이었는데! 다 너네 KGB니 공산당이니 하는 놈들이 나 잡아다가 나쁜 짓해서 그렇게 된 거지! 아 생각하기도 싫어! 너희들 다 나쁜 놈들이야! 나 감옥에 넣고 막 아프게 고문하고 시골에 보내고! 생각해보니 너도 한 패! 스파이, 끄나풀, 앞잡이! 미워!

 

 

왕재수가 갑자기 서러움이 북받쳤는지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홱 고개를 돌렸다. 곰곰 떠올려보니 엄청나게 억울하고 화가 난 모양이었다. 특히 마지막의 ‘시골에 보내고란 구절에서는 눈물까지 왈칵 글썽거렸다. 베르닌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히고 마음 한구석은 또 불편해져서 아무 말도 없이 차를 몰았다.

 

 

차는 빽빽한 눈보라를 뚫고 거북이걸음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베르닌의 차는 낡은데다 난방 장치도 고장 났기 때문에 틈새로 칼바람이 스며들어왔다. 왕재수는 재채기를 했지만 패딩 코트 단추를 채우지는 않았다. 바람이 더 세게 불어 들어오자 재채기를 연달아 세 번을 더 했다. 한번만 더 하면 주먹다짐을 해서라도 단추를 채워버려야겠다고 베르닌이 생각했을 때 갑자기 차가 푸쉬시 하는 소리를 내더니 우뚝 멈췄다. 시동이 꺼져버린 것이다.

 

“ 어, 왜 이러지? ”

 

베르닌은 다시 시동을 걸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푸르르푸르르 하는 소리만 나고 차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베르닌은 모자를 뒤집어쓰고 눈보라 속으로 나갔다. 덮개를 열어보았다. 플래쉬를 비춰가며 엔진과 부품을 살폈다. 곧 그는 별로 기쁘지 않은 결론에 도달했다.

 

 

운전석으로 돌아온 베르닌은 여전히 고개를 돌리고 토라져 있는 왕재수의 패딩 후드를 잡아당겼다.

 

“ 야, 모자 쓰고 단추 채워. 내려야 돼. ”

 

“ 쳇, 그래. 나 같은 반동분자는 차 태워주기도 아깝다 이거지. 알았어! 누가 이깟 후진 차 타고 싶대! 내리면 되잖아! ”

 

“ 엥, 그건 또 무슨 소리야! ”

 

“ 촌스러운 패딩도 못 벗게 하고... KGB 앞잡이라서 맨날 감시하고 보고서 쓰는 주제에 차 태워준다고 유세하고. 그러더니 또 내리래... ”

 

“ 내가 언제 유세했어! 내 차 후져서 난방 안 되니까 너 감기 걸릴까봐 그런 거잖아! 근데 내리긴 내려야 돼! 빨리 옷 입어! 너무 추워서 차 고장 났어. 엔진도 얼고 부품도 하나 터졌어. 지금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정비사도 못 불러. 그렇다고 안에 계속 앉아 있을 수도 없잖아, 난방도 안 되는데. 강만 건너면 버스 탈 수 있을 거야. 빨리 나가자. ”

 

뭐야? 엔진이 얼어? 차가 얼마나 후지면 엔진이 다 어니! 아아, 시골... ”

 

“ 나 저번 뉴스에서 레닌그라드에서 전차들 엔진 얼어서 줄줄이 멈춰선 거 봤어. 승객들 다 내려서 걸어가던데. ”

 

“ 그건 전차잖아! ”

 

“ 어쨌든! 레닌그라드도 엔진 얼잖아! 거기도 춥잖아! 툭하면 시골타령만 하지 말고 빨랑 패딩 단추 채우고 모자 써! 지금 눈보라 장난 아냐. 걸어가야 한단 말이야! ”

 

“ 에이, 극장에 남을걸. ”

 

 

왕재수는 단단히 삐친 것 같았지만 어쨌든 패딩 코트의 지퍼와 단추를 모두 채우고 후드를 뒤집어썼다. 밖으로 나오자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한 치 앞도 안 보일 지경이었다.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부는지 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뒤로 떠밀리는 기분이 들었다. 어린아이들이나 여자들이었다면 벌써 바람에 휩쓸려 날아갔을 것 같았다. 세찬 바람을 정면으로 맞자 심지어 왕재수도 두어 번 넘어질 뻔 했지만 베르닌이 붙잡아서 간신히 몸을 가눌 수 있었다.

 

“ 야, 너 안 되겠어. 내 팔짱 껴. ”

 

“ 싫어. 내가 왜 KGB 앞잡이 도움을 받니! 내 몸은 내가 건사... 으악! ”

 

때마침 몰아친 폭풍 탓에 왕재수는 입 안 가득 눈을 잔뜩 물고는 엉덩방아를 찧었다. 베르닌은 혀를 차며 그를 일으켜 주었다.

 

“ 이거 봐. 맨날 다이어트하고 난리치더니 너 지금 벌 받는 거야. 너무 말라서 자꾸 바람에 휩쓸리는 거라고! ”

 

“ 아니야! 내가 하체 힘이 얼마나 좋은데! 두툼한 허벅지로 버티면 되는데 이 망할 놈의 패딩! 둔해 죽겠어! 이 옷 너무 크고 빵빵해서 제대로 걸을 수가 없단 말야! 펭귄처럼 뒤뚱뒤뚱... 으악! ”

 

왕재수가 또 넘어졌다. 베르닌은 왕재수를 일으킨 후 억지로 팔짱을 꼈다. 왕재수는 툴툴댔지만 바람이 점점 거세지는데다 패딩 코트 때문에 혼자서는 제대로 걷기가 힘든 듯 결국 베르닌에게 찰싹 달라붙어서 뒤뚱뒤뚱 발걸음을 떼어놓았다.

 

“ 다리까지 못 가겠다. 한참 돌아가야 하는데 눈이 너무 많이 와. 그냥 강 건너가자. ”

 

“ 강 잘 얼었어? ”

 

“ 응, 지금은 추우니까 꽝꽝 얼었지. 그래도 너 나한테 잘 붙어 있어. 방향에 따라서 살얼음인 쪽도 있거든. ”

 

“ 누구 무시하냐, 나도 레닌그라드에서 네바 강 얼면 잘 건너다녔거든! ”

 

“ 아항, 레닌그라드도 시골이구나! 겨울에 강도 얼고! ”

 

“ 아니야! 레닌그라드는 시골 아니야! 대도시야! 네바 강은 근사해! 여기 강이랑 달라! ”

 

“ 여기도 도시란 말이야! 너도 시립극장 감독... ”

 

 

그때 눈보라가 정면으로 소용돌이치듯 몰아쳐서 베르닌은 입을 꾹 다물고 왕재수를 꽉 붙든 채 얼어붙은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얼어붙은 수면 위로 눈이 쌓여 있었기 때문에 생각만큼 미끄럽지는 않았다. 발을 쿵쿵 굴러보니 왼쪽 얼음이 좀 약한 것 같아서 베르닌은 왕재수를 데리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이 힘겨웠다. 바람이 너무 세찬데다 딴딴한 눈발이 얼굴에 그대로 부딪쳐 와서 꼭 총알 세례를 받는 기분이었다. 눈물과 콧물이 줄줄 쏟아졌지만 흘러내릴 겨를도 없이 꽁꽁 얼어붙었다. 눈가와 콧구멍 속에서 작은 얼음 결정들이 빠지직 빠지직거렸다. 그나마 왕재수가 착 달라붙어 있어서 움직임은 둔해도 추위는 한결 덜했다. 왕재수도 처음에는 툴툴댔지만 이제 입을 꽉 다물고 베르닌의 팔을 꼭 낀 채 얼어붙은 강을 건너는 데 집중했다.

 

3분의 2쯤 건너왔을 때 베르닌은 희미한 울음소리 같은 것을 들었다. 처음에는 윙윙대는 바람소리를 착각했다고 생각했지만 잘 들어보니 가냘프게 킹킹대는 소리였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왼쪽 저편에서 작고 거무스름한 물체가 낑낑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조그만 강아지였다. 얼어붙은 수면 위로 쌓인 눈과 몰아치는 눈보라 때문에 사방이 새하얬기 때문에 꼭 잉크 얼룩을 떨어뜨려 놓은 것처럼 보였다. 베르닌은 좀 더 자세히 보려고 왼쪽으로 다가갔다. 왕재수가 팔을 잡아당겼다.

 

“ 너 왜 그쪽으로 가? 거기 왼쪽이야. ”

 

“ 잠깐만. 저기 강아지 있어. 길 잃었나봐. 미끄러워서 못 나오고 갇힌 것 같아. 구해줘야겠어. ”

 

“ 그냥 놔둬, 그쪽 얼음 약하다며. 잘못 디디면 빠져! ”

 

“ 개를 저렇게 놔두고 어떻게 그냥 가. 두고 가면 얼어 죽을지도 몰라. ”

 

“ 공권력에 신고하면 되잖아! 그런 거 하라고 세금 내잖아! ”

 

“ 나 보안요원... 공무원... 강아지 구해줘야 돼. ”

 

“ 아 진짜 이 망할 놈의 KGB 나부랭이! 넌 책상물림이라며! 서무인지 뭔지라며! 건너가서 경찰이나 소방대원 부르라고! 강아지는 가벼우니까 저기 좀 놔둬도 괜찮아. 얼음 안 깨져. 너는 무거워서 그쪽으로 가면 얼음 깨진단 말이야! ”

 

“ 괜찮아, 저쪽은 수심 안 깊어. 좀 놔봐, 금방 가서 강아지 데려올게. ”

 

“ 안 돼! 가지 말라니까! ”

 

 

왕재수가 끈질기게 말렸다. 베르닌이 버럭 화를 냈다.

 

 

“ 야! 넌 피도 눈물도 없냐! 너 혼자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야? 아무리 천재에 얼굴이 예쁘면 뭐하냐! 동정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어? 조그만 강아지 혼자 얼음 사이에 갇혀서 주인도 잃고 엄마도 잃고 저렇게 불쌍하게 울고 있잖아. 우리가 버리고 가면 얼마나 무섭고 슬프겠어! 강아지 구해줘야 돼! ”

 

“ 강아지랑 나랑 무슨 상관! 안 돼! 가지 마! 못 가! 너 빠지면 나 혼자 어떡하라고! 나 바람 불어서 여기 혼자 못 건너간단 말이야! ”

 

“ 야! 넌 내가 물에 빠지는 게 걱정이 아니라 너 혼자 강 못 건널까봐 걱정하는 거야? 이 왕재수! 왕 싸가지! 이거 놔! ”

 

“ 안 돼! 못 가! 안 돼! ”

 

 

왕재수가 악착같이 매달렸다. 두 팔로 베르닌의 허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 탓에 왕재수가 휘청거리는 틈을 타서 베르닌은 그를 홱 떠밀어 엉덩방아를 찧게 한 후 재빨리 강아지가 있는 쪽으로 갔다. 왕재수가 뒤에서 ‘안 돼!’ 하고 소리를 질러댔지만 무시했다.

 

가까이 다가가니 가냘프게 깨갱대고 있던 강아지가 희망의 눈빛을 반짝이며 베르닌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일어나지도 못하는 것을 보니 너무 추워서 이미 몸이 다 얼어버린 것 같았다. 베르닌은 저만치에서 팔을 뻗었지만 강아지가 꼼짝달싹 못하는 탓에 손끝조차 닿지 않았다.

 

“ 착하지, 강아지야. 잠깐만 기다려. 내가 구해줄게. 옳지. ”

 

베르닌은 발끝을 들고 살금살금 얼음 위를 디디며 걷기 시작했다. 몇 발짝만 더 가면 강아지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막 오른발을 내디디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지지직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놀라서 두리번거리는데 발밑의 얼음이 쫙 소리를 내며 와장창 깨졌다.

 

“ 엇, 얼음이... ”

 

아차 하는 순간 베르닌은 발을 헛디디고 깨진 얼음 사이로 휘청거리며 빠져버렸다. 버둥거리며 빠져나오려고 하는데 무릎인지 발목인지 어딘가가 얼음 사이에 걸려서 나올 수가 없었다. 허우적거리는데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안 돼! 다닐! 다니이이일!

 

 

베르닌은 왕재수가 그렇게 다급하게 자기 이름을 부르는 것을 처음 들었다. 아니, 곰곰 생각해보니 두 번째였다. 연말 호두까기 공연 끝나고 여자들에게 머리카락 뜯길 때...

 

그때 왕재수가 그의 팔목을 덥석 붙잡았다. 얼음 위에 엎드린 채 죽을힘을 다해 그를 끌어당겼다.

 

“ 잠깐만 기다려! 내가 꺼내줄게! 야압! ”

 

“ 어... 저기... 야, 잘못하면 너도 빠져. 조심해! ”

 

“ 아 무거워... 이 망할 놈의 패딩... ”

 

“ 괜찮아, 놔줘. 내가 혼자 나올 수 있어... ”

 

“ 어떻게 혼자 나와... 얼음 사이에 끼었잖아! 둔탱이! 덩치는 커가지고... 가만히 있어, 꺼내줄 테니까! ”

 

“ 그러니까... 네가 날 어떻게 꺼내, 난 너보다 크... 으악! ”

 

 

베르닌은 순간 머리가 핑 돌았다. 왕재수가 베르닌이 끼어 있던 얼음을 한쪽 발로 두들겨 부수면서 동시에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내 그를 홱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베르닌은 무슨 투포환처럼 붕 날아서 단단한 얼음 위로 내팽개쳐졌다.

 

잠시 베르닌은 멍하게 누워 있었다. 돌덩이처럼 딱딱한 얼음에 뒤통수를 그대로 부딪쳐서 머리가 아프고 어질어질했다. 눈앞은 온통 하얗고 두터운 눈보라 안개로 빽빽하게 가로막혀 있었다. 몇 초 동안 정신줄을 놓고 있다가 베르닌은 비명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몸을 홱 틀었다. 그를 끌어내고 숨을 고르던 왕재수가 세찬 폭풍 때문에 주르르 미끄러지더니 깨진 얼음 사이로 철퍽 빠져버린 것이다.

 

앗, 야! 조심해! 앗!

 

베르닌은 급하게 팔을 뻗었지만 왕재수가 워낙 갑작스럽게 빠졌기 때문에 미처 붙잡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둘의 몸무게가 홱 쏠렸기 때문인지 아까보다 얼음이 더 와장창 깨져서 왕재수는 베르닌처럼 얼음 사이에 낀 것도 아니고 물속으로 풍덩 빠져버리고 말았다. 왕재수는 어푸어푸 하면서 금세 수면 바깥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하지만 헤엄쳐 나오지는 못하고 계속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베르닌은 왕재수가 자꾸만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 헉, 너 수영 못해? ”

 

“ 패딩... 못 움직... 꼬르륵...

 

베르닌은 물속으로 뛰어들어 왕재수를 건져내려다가 자기 몸무게 때문에 얼음이 더 깨져버리면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급하게 목도리를 벗었다. 목도리는 이미 눈과 물 때문에 꽝꽝 얼어붙어 있었다. 목도리 끝을 잡고 왕재수 쪽으로 휙 던지며 소리쳤다.

 

야! 이거 잡아! 끌어당길 테니까 꽉 잡아!

 

다행히 왕재수가 목도리를 붙잡았다. 베르닌은 낑낑거리며 목도리를 잡아당겼다. 패딩 사이사이로 물이 들어가서 빵빵하게 부풀어 올라 꼭 열기구처럼 거대하고 동그랗게 변한 왕재수가 반쯤 둥둥 떠올라서 끌려왔다.

 

간신히 안전한 얼음 위로 왕재수를 끌어올렸을 때는 베르닌도 녹초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추위와 피로를 느낄 겨를도 없었다. 흠뻑 젖은 왕재수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그대로 뻗어버렸기 때문이다.

 

“ 너 괜찮아? 내 말 들려? ”

 

왕재수가 대답이 없었기 때문에 베르닌은 더럭 겁이 났다. 얼핏 보니 숨도 안 쉬는 것 같았다. 가슴을 누르자 물을 주르륵 토해내고 또 주르륵 토했다. 인공호흡을 해줘야 하나 걱정하고 있는데 왕재수가 부르르 떨더니 기침을 하면서 코를 훌쩍거렸다. 말은 한 마디도 안 했다. 축축하게 젖은 얼굴이 하얗다 못해 파랬다.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괜찮아? 야, 말 좀 해봐... 너 말 못해? 응?

 

흐.... 추.... 추ㅇ....

 

춥다는 말 같긴 했지만 제대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왕재수가 덜덜 떨더니 기절했기 때문이다. 베르닌은 급하게 왕재수의 부츠와 흠뻑 젖은 바지를 벗겨냈다. 패딩 코트도 벗길까 하다가 눈보라가 너무 심해서 일단 놔뒀다. 그리고 자신의 패딩과 카디건과 스웨터와 내복 면 셔츠를 벗었다. 너무 추워서 도로 스웨터를 입은 후 면 셔츠로 왕재수의 얼굴과 목과 다리와 발의 물기를 급하게 닦아주었다.

 

“ 이 바보... 내가 빠진 데는 수심 얕았단 말이야. 가만 있었으면 나 혼자 올라왔을 텐데 호들갑떨다가 빠지고 그러니... 내 부츠 방수 장화야, 네가 촌스럽다고 한 내 바지도 방수복이라서 난 하나도 안 젖었단 말이야... 바보 멍청이. 어련히 내가 잘 알아서 나올까봐... 이것 좀 봐. 멋 부린다고 방수도 안 되는 스웨이드 부츠 신어서 다 젖었잖아... 어휴, 내복도 안 입고... 동상 걸리면 어떡할 거야... 야, 정신 좀 차려봐. 지금 자면 안 돼. 이렇게 추운데 잠들면 너 진짜 큰일 나... 어휴, 이 왕재수 같으니... 이걸 어떡하지... ”

 

베르닌은 횡설수설하며 그나마 물기를 닦아낸 왕재수의 다리와 발을 자기 카디건으로 감쌌다. 왕재수는 죽은 듯이 늘어져 있었다. 베르닌의 헛소리를 야단치지도 않고 툴툴대지도 않고 시골 운운하며 짜증을 내지도 않았다. 베르닌은 그 마지막 이유 때문에 더더욱 겁이 났다. 평소 같았으면 벌써 시골이라 얼음이 깨진다는 둥 촌스럽다는 둥 판에 박힌 레퍼토리를 줄줄 늘어놓고도 남았을 텐데. 베르닌은 왕재수의 속눈썹과 코, 입술 주위에 빽빽하게 달라붙어 있는 얼음 결정들을 손으로 훑어 떼 냈다. 그리고는 그를 들쳐 업고 정신없이 눈보라를 헤치며 달리기 시작했다. 얼음이 깨질까봐 무서웠지만 이따금 발을 굴러서 두께를 확인해가며 계속 뛰었다.

 

마침내 강기슭에 도착했을 때 베르닌은 왕재수를 잠깐 내려놓고 숨을 쉬는지 확인해 보았다. 숨은 쉬고 있었다. 콧김이 얼어붙고 있는 걸 보니 그건 확실했다.

 

“ 조금만 참아, 여기만 올라가면 돼. 너 내 말 들려? 자면 안 돼! ”

 

아무래도 왕재수는 그의 말을 듣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베르닌은 왕재수가 저체온증으로 크게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서 미칠 것 같았다. 그는 다시 왕재수를 들쳐 업고 정신없이 도로 쪽으로 기어 올라갔다. 버스나 택시가 눈보라를 뚫고 나타나주기를 빌면서.

 

 

*    *    *

 

 

버스는 오지 않았다. 택시도 마찬가지였다. 절망한 베르닌은 도로변을 따라 무작정 뛰었다. 문을 연 건물이 있으면 달려 들어가려고 했지만 워낙 대로변인데다 그쪽에 있는 건물들은 전부 회사들이라 직원들은 모두 퇴근했고 문은 꽉 닫혀 있었다. 병원은 집 근처에 있었다. 눈이 오지 않아도 20분 이상 가야 하는 거리였다.

 

베르닌이 점차 심장이 멎을 것 같은 공포에 사로잡혔을 때 갑자기 희뿌연 눈보라 속에서 헤드라이트가 번쩍이더니 빵빵 하는 소리가 들리고 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창문이 살짝 열리더니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다냐! 길바닥에서 대체 뭘 하는 거예요! 빨리 타요!

 

리자였다. 세상에 하느님이든 레닌의 가호든 뭔가가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베르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급하게 왕재수를 뒷좌석에 밀어 넣고 자기도 올라탔다. 문을 닫자마자 리자가 차를 출발시켰다.

 

 

“ 고마워요! 당신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 ”

 

“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차는 어쨌어요? ”

 

“ 엔진이 얼어서 멈췄어요. ”

 

“ 아... 하긴... 아까 표도르 차도 그랬어요. 그래서 내 차 타고 전부 항아리 닭고기 식당 가서 저녁 먹었어요. 데려다 주고 나도 집에 가는 길이에요. 근데 저 사람 누구에요? 왜 이렇게 젖었어요? ”

 

“ 어... 왕재수... 아니, 미샤요. 강 건너오다가 얼음이 깨져서 빠졌어요... 미안한데 수건 같은 거 있어요? ”

 

“ 어머낫, 그 꽃돌이 감독님! 어쩌면 좋아! 여기 손수건 있어요. 너무 많이 젖어서 손수건 가지고는 안 되겠네. 잠깐만요... ”

 

 

리자는 손수건을 꺼내주고는 두르고 있던 숄까지 던져주었다. 베르닌은 왕재수의 패딩과 스웨터와 셔츠를 서둘러 벗기고 숄로 몸의 물기를 모두 닦아냈다. 그리고는 자기 스웨터를 벗어서 입혀 주었다. 리자가 혀를 차며 자기 코트를 건네주었다.

 

 

“ 다냐, 당신 감기 걸려요... 위에 아무 것도 안 입고. 이거라도 걸쳐요. ”

 

어... 난 괜찮아요. 내 패딩 다시 입으면 돼요. 이거 그럼 얘한테 좀 걸쳐놓을게요. 그래도 돼요? 나중에 빨아다 줄게요. 숄이랑...

 

“ 그런 걱정 하지 마요. 안 빨아줘도 돼요. 꽃돌이 감독님 몸에 닿았던 거라고 하고 암시장에 팔아야지! ”

 

“ 헉... 그런 짓하면 안돼요! 우린 공무원인데! ”

 

“ 아휴, 농담이잖아요! 책상물림... ”

 

 

베르닌은 왕재수의 몸을 리자의 코트로 감싸준 후 다리와 발에 남아 있는 물기를 마저 닦았다. 그리고 동상에 걸리지 않도록 아직도 얼음장처럼 차가운 발을 손으로 계속 문질러 주었다.

 

 

리자는 알고 보니 운전 솜씨가 아주 훌륭했다. 도장 찍는 일만 할 줄 아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정신을 잃은 왕재수를 위해 그들을 자기 집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스타브로프의 병원까지 데려다 주었다. 베르닌이 뒷좌석을 적셔놔서 미안하다고 사과하자 그런 생각 하지 말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는 베르닌이 흠뻑 젖은 왕재수의 옷가지들을 주워 모으려고 하자 그냥 놔두라고 했다.

 

“ 내가 내일 사무실로 가져다줄게요. 빨리 의사 선생님한테 데리고 가기나 해요. 그 패딩만 가져가면 되겠네요. 패딩은 금방 마를 테니까 나올 때 입혀주면 될 거예요. ”

 

“ 어... 하지만 당신은 스무 살밖에 안된 미혼녀... 외간 남자가 입었던 옷가지를 놔두고 가기가... ”

 

“ 아휴, 진짜 고지식하다니까... 아, 당신 질투하는 거군요! 사랑하는 꽃돌이 감독님이 입었던 옷을 내가 만지는 게 싫은 거죠? 당신 너무해요, 미남을 수중에 넣은 것도 모자라서 옷도 내주기 싫어요? 나 이 옷들 말려서 꼭 껴안고 잘 거예요! ”

 

“ 저, 리자... 나랑 얘는 진짜 그런 관계가 아니고... ”

 

“ 아유, 됐어요. 다 봤는데 이제 와서 뭘 그런 변명을... 사랑하는 그이가 어떻게 될까봐 걱정돼서 아주 두 눈이 쏟아질 것 같던데... 나 당신 눈 그렇게 커진 거 처음 봤어요, 다냐. 단추 같았는데 아깐 아니더라고요. 하여튼 빨리 의사 선생님한테 가 봐요. 내일 봐요~! ”

 

 

베르닌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었지만 왕재수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데다 이를 딱딱 부딪치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 내렸다. 한 팔에는 왕재수에게서 벗겨낸 패딩 코트를 끼고 등에는 왕재수를 들쳐 업고 급하게 병원으로 들어갔다.

 

 

*    *    *

 

 

병원에서는 곧 왕재수의 몸을 녹여주고 응급처치를 해주었다. 한숨 돌리고 나자 정의감에 불타는 늙은 의사 스타브로프는 베르닌을 매섭게 혼냈다.

 

 

이 얼간이 같은 놈아! 정신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이 추위, 이 눈보라에 미쳤다고 애를 데리고 강을 건너! 이 망할 KGB 스파이 놈아! 이거 스페호프가 명령한 거지! 애 빠뜨려 죽이라는 지령 받고 한 짓이지!! ”

 

“ 아니에요, 선생님! 엔진이 얼어서 그랬어요. 다리까지 가는 게 너무 멀었다고요. 저 강은 겨울마다 다들 잘 건너다니잖아요.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저도 빠졌단 말이에요. ”

 

“ 네놈은 KGB 스파이니까 빠지든 말든 내 알 바 아냐! 멀쩡하잖아! ”

 

“ 아아, 선생님. 저도 사람인데 왜 저한테는 야단만 치고 이 녀석 편만 들어주시는 거예요... 설마 선생님마저 예쁜 애들만 좋아하시는 건가요? 제 눈 단추 같아서 차별하시는 거예요? 의사가 그래도 되는 거냐고요... ”

 

“ 아니 이게 웬 헛소리야. 예쁜 건 뭐고 단추는 또 뭐람. 얘는 네놈들이 고문해서 여기저기 아프잖아!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항상 조심해서 곱게 다뤄줘야지! 어디 눈보라를 맞히고 강을 건너고 물에 빠뜨려! 전에는 보드카 먹여서 인사불성을 만들더니! 이게 다 네놈과 스페호프의 음모가 분명해! ”

 

“ 진짜 아니에요. 아아 억울해... ”

 

“ 시끄러워! ”

 

 

베르닌은 너무 억울했지만 그래도 왕재수가 몸이 녹아서 한결 나아진데다 안색도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아 마음이 좀 놓였다. 그래서 의사에게 혼날까봐 무서운 마음을 억누르고 쭈뼛쭈뼛 물어보았다.

 

 

“ 저... 얜 이제 괜찮은 건가요? 깨어나면 집에 데리고 가면 되나요? ”

 

“ 몸 녹여줘서 동상 위험은 없는데 기관지에 물이 들어가서 염증 생길 수도 있으니까 일단 입원이야! 그렇게 알고 네 녀석은 돌아가! ”

 

“ 일어난 거 보고 갈게요... ”

 

“ 마음대로 해. 한번만 더 이런 일 생기면 가만 안 둬! ”

 

 

베르닌은 늙은 의사에게 ‘혹시 선생님도 이 녀석의 우리 아저씨 명단에 들어가 계세요?‘ 하고 묻고 싶었지만 두들겨 맞을 것 같아서 그만 두었다.

 

 

의사가 나간 후 베르닌은 30분 정도 왕재수의 곁에 앉아 있었다. 왕재수는 열이 나는지 얼굴이 빨개져서 쌕쌕거리며 자다가 퍼뜩 눈을 떴다.

 

“ 아, 너 일어났구나! 좀 괜찮아? ”

 

“ ... 시골 싫어... 물에 빠지고... ”

 

“ 이제 괜찮아. 병원이야. 좀 자고 나면 나아질 거야. ”

 

“ 패딩... ”

 

“ 어... 미안해 ㅠㅠ 난 너 추울까봐 그 패딩 빌려온 건데. 그거 때문에 네가 물에서 못 나올 줄 몰랐어. 미안... ”

 

“ ... 패딩... ”

 

“ 미안하다고 했잖아. 왜 자꾸 패딩 타령이야. 안 그래도 나 벌써 의사 선생님한테 엄청 혼났어 ㅠㅠ ”

 

“ ... 패딩, 내 패딩 줘... ”

 

“ 싫다고 계속 뭐라 하더니 왜 자꾸 패딩을 달래... 얘가 정말 왜 이러지? 혹시 머리가 잘못 된 건 아니겠지... 의사 선생님 불러와야 하나... ”

 

“ ... 으으... 패딩! 패딩 가져와! ”

 

 

베르닌은 왕재수가 열이 나서 헛소리를 하는 것 같아 더럭 겁이 났다. 흥분하면 더 해로울 것 같아서 일단 병실 한쪽에 던져두었던 패딩 코트를 들고 왔다. 방수 재질이라 겉은 거의 말라 있었지만 여전히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고 안쪽으로 물을 먹었는지 꽤 무거웠다. 패딩을 껴안고 왕재수의 눈앞에 들이댔다.

 

“ 자, 여기 가져왔어. 봤지? 이제 안심하고 자라. ”

 

“ ... 주머니... ”

 

“ 주머니는 또 왜! ”

 

“ 안쪽... 주머니... ”

 

 

베르닌은 왕재수의 머리가 이상해지는 게 아닐까 걱정하면서 패딩 코트를 뒤집었다. 안쪽에 정말 주머니가 있었다. 지퍼가 채워져 있었는데 이상하게 주머니가 불룩했다.

 

 

“ 어? 안에 뭐가 들었나? ”

 

 

베르닌은 지퍼를 열어보았다. 주머니 안에 거무스름하고 조그만 강아지가 몸을 웅크리고 잠들어 있었다.

 

 

엇! 강아지! 아까 그 강아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 강아지였다. 베르닌은 급하게 강아지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놀랍게도 강아지의 털은 별로 젖지도 않았고 몸은 따뜻했다. 손으로 감싸주자 강아지가 콧소리를 내며 부드럽게 낑낑댔다.

 

 

“ 아... 어떻게 강아지가 이 안에 있지? 네가 구한 거야? 언제? ”

 

 

왕재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강아지를 보더니 안심했는지 도로 잠든 것 같았다. 베르닌은 멍해졌다.

 

 

‘ 그랬구나. 얘가 나 꺼내주고 나서 강아지를 구한 거구나. 강아지 구해서 추울까봐 안주머니에 넣고 지퍼도 채워줬구나. 그러다 얼음 깨져서 빠진 건가보다... ’

 

 

안주머니는 방수천으로 되어 있었고 왕재수가 지퍼를 채워놓았던 덕분에 물이 스며들지 않았기 때문에 강아지는 멀쩡했다. 사실 그와 왕재수보다도 더 멀쩡한 것 같았다.

 

 

베르닌은 의사에게 강아지를 데리고 갔다. 노의사는 여기가 동물병원인줄 아느냐고 투덜댔지만 화난 기색은 아니었고 강아지를 정성껏 진찰해 주었다. 다행히 강아지는 놀라고 지치고 허기졌을 뿐 다친 곳은 없었다. 우유를 데워주자 할짝할짝 핥아먹고는 사르르 잠이 들었다. 강아지 구하려다 물에 빠진 거였다고 설명하자 노의사 스타브로프도 눈에 띄게 누그러졌고 베르닌에게 저녁 안 먹었으면 사택에 가서 수프라도 한 그릇 먹고 가라고 했다.

 

베르닌은 강아지를 데리고 스타브로프의 집으로 갔다. 의사의 아내인 마르가리타가 맛있는 생선수프와 샌드위치를 차려줘서 든든하게 먹었다. 병실로 내려와 보니 왕재수는 깊게 잠들어 있었다. 바깥을 보니 눈보라는 이제 그쳐 있었다. 그래서 베르닌은 집으로 돌아갔고 강아지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거기까지는 좋았으나 눈보라에 시달리고 물에 빠지고 왕재수를 업고 뛰느라 너무 피곤해서 깊게 자는 바람에 베르닌은 다음날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해 늦게 일어나 지각, 국장에게 귀가 닳도록 설교를 듣고 1주일 동안 조기출근하게 되었다. 그래도 좋은 일은 하나 있었다. 점심시간에 리자가 왕재수에게 먹이라고 뜨끈뜨끈한 항아리 닭고기를 사다 준 것이다. 물론 왕재수는 느끼하다고 안 먹을 게 뻔했다. 베르닌은 매우 행복했다. 항아리 닭고기는 참 맛있었다.

 

 

 

FIN

- 2015. 1. 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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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아치는 눈보라와 꽁꽁 얼어붙은 강 위를 걸어 건너는 건 전부 내가 페테르부르크에 살 때 실제로 겪었던 일들이다. 다행히 나는 강물에 빠지진 않았지만...

 

물론 엔진이 얼어 차가 멈춘 것도 마찬가지인데, 내 경우는 전차였다. 영하 30도로 내려간 날 낡은 전차가 중간에 멈춰버렸고 승객들은 아무런 환불도 받지 못한 채 내려야 했다. 어떤 사람들은 정류장에서 다음 차를 기다렸지만, 너무너무 추워서 도저히 기다릴 엄두가 안 났기 때문에 나와 친구는 기숙사까지 걸어서 돌아갔다. 그러다 중간에 버스가 와서 탔던 것 같기도 하다. 하여튼 무지무지 추웠었다.

 

이번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페테르부르크도 추운 곳이라 겨울이 되면 네바 강이 꽁꽁 얼어서 그 위로 사람들이 걸어다닌다. 예전에는 썰매도 탔었다. 이 도시는 바다도 얼어붙는다. 그 얘기는 전에 Petersburg diary 폴더에 '얼어붙은 바다 위에서' 란 제목으로 올린 적 있다. 궁금하신 분은 여기 : http://tveye.tistory.com/716

 

네바 강에 가면 '얼음 위로 걸어다니지 마시오!'라는 표지판이 있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참 꿋꿋하게 그 위로 잘도 걸어가닌다. 나도 옛날에 새해 즈음 친구랑 네바 강 걸어서 건넜었는데 기분이 묘했다. 온통 새하얗게 얼어붙은 네바 강의 빙원 너머로 불덩어리처럼 새빨갛게 이글거리는 태양이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내 인생에서 가장 환상적인 장면 중 하나다.

 

하여튼 얼어붙은 강 위를 건너는 건 위험하다! 베르닌과 왕재수처럼 풍덩 빠질 수도 있으니 다들 주의하세요!!

 

가브릴로프야 내가 만들어낸 가상의 소도시이지만, 그래도 이 9편의 배경 사진 몇 장을 따로 올렸다.

왕재수의 고향이자 출신 도시인 레닌그라드, 현재 이름 페테르부르크의 얼어붙은 네바 강과 그 위를 건너는 사람들, 그리고 깨진 얼음 사진. 여기 : http://tveye.tistory.com/3525

 

생각해보니 얼어붙은 강 위를 건너는 사람들 사진은 며칠 전 페테르부르크에 있을 때도 올렸다. 그건 여기 : http://tveye.tistory.com/3508

 

.. 여기 등장하는 노의사 레프 스타브로프는 본편에도 등장한다. 나름대로 중요 인물이다 :)

 

이야기는 10편으로 이어진다. 그건 주말이나 다음주 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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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2. 24. 14:42

아가야, 엉덩이 시렵겠다 russia2015. 2. 24. 14:42

 

 

돌아와서 출근은 했는데 너무너무 피곤하고 잠도 쏟아지고 집중도 안되고.. 후유증에 시달리는 중.

해군성 앞 공원 산책하다 찍은 사진 한 장.

어머나, 저 아기는 어째서 저렇게 눈 위에 앉아 있는 걸까.. 엉덩이 시렵겠다.. 하고 혼자서 갖은 걱정을 하며 지나침. 엄마는 어데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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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2. 23. 21:24

2월 23일, 잘 다녀왔습니다 russia2015. 2. 23. 21:24

 

 

 

어제 페테르부르크 풀코보 공항에서 낮 한시 비행기로 모스크바로, 그리고 모스크바 쉐레메티예보 공항에서 저녁 6시 10분 비행기로 출발해 오늘 아침에 인천에 도착했다.

 

원래 비행공포증도 좀 있지만, 경유란 것은 비행도, 공항에서 머무는 시간도 전부 피곤한 것이어서 평소보다 두배로 힘든 것 같다.

 

돌아와서 3시간 반쯤 죽은 듯 자고 일어났고, 정신차리려고 차 한 잔 마신 후 가방을 모두 풀어 정리하고 저녁 먹은 후 사진 정리하고 있다. 근데 너무 졸려서 중간쯤 하다가 포기. 나중에 하자.

 

내일부터는 출근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니 엄두가 잘 안 나는데.. 그래도 겨울의 페테르부르크와(날씨 빼고 ㅜㅜ) 열심히 본 공연들, 특히 슈클랴로프의 생기 넘치는 귀염둥이 바보 이반을 떠올리면서 힘을 내봐야겠다.

 

눈꺼풀이 점점 내려온다. 자러 가야겠다..

 

위의 사진은 모이카 운하의 가로등 램프. 마린스키 극장 가던 길에 찍은 것.

 

아래는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앞, 얼어붙은 네바 강 위로 종종거리며 다니던 새들. 다 나온 것 같지는 않지만... 여기에는 까마귀, 비둘기, 오리, 갈매기가 있었다. 주인공은 가운데의 갈매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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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2. 22. 22:48

모스크바 쉐레메티예보 공항에서 russia2015. 2. 22. 22:48






모스크바 공항. 1시간 반 후 출발. 너무 졸린데다 잠을 못 자서 몸이 젖은 솜 같다.


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 오는 비행기는 이륙하고 너무 심하게 흔들려서 몇년만에 좀 심하게 공포증 발작할 뻔.. 헥헥.. 인천 가는 건 제발 안 흔들리고 갔으면 ㅠ


월욜 도착, 화욜부터 곧장 출근이다. 쌓여 있는 일들과 바보사업(ㅠ)을 생각하니 이제 우울해지는데.. 어떻게든 되겠지 뭐.


.. 그건 그렇고 아에로플롯 국내선 짐 무게가 23킬로까지인데 22.8킬로에 맞춰 정확히 해내는 신공을 발휘함. 트렁크 랩포장해서 부치긴 했는데 로모노소프들이 무사해야 할텐데 ㅠ


비행기 안 흔들리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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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2. 22. 17:42

풀코보 공항 카페에서 russia2015. 2. 22. 17:42





피로 때문인지 비행기 타기 싫어선지 한숨도 못 자고 체크아웃, 풀코보 공항 국내선 게이트 앞 카페에 앉아 있다. 당분과 카페인으로 정신 차려보려는 중 ㅠ






소련 시절 먹던 '쁘띠치예 말라꼬 '란 케익을 이 카페에서 새단장해 냈다 해서 시도해보고 있음. 매우 달지만 나쁘지 않다. 우유 맛이 강하다.






설탕이 너무 귀여워서 :)






냅킨마저 귀엽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씌어있고 양띠 해라고 양도 그려져 있네. 러시아 양은 날씬하구나 ㅎㅎ


비행기 두번 타야 한다 ㅠㅠ 흔들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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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이미 22일, 여기도 자정 넘겼으니 22일. 자고 일어나면 공항으로 떠나고.. 모스크바에서 경유해야 하니 월요일 오전에 도착할 예정이다.

 

페테르부르크에서의 마지막 날은 바쁘게 지나갔다. 필요한 물건들과 필요하진 않지만 기분좋은 물건들을 좀 사고.. 며칠 전 추위에 떨다 발견했던 그 카페에 다시 가서 점심을 먹고 그 해사한 직원 사진도 찍고(나중에 카페 소개할 때 올려보겠다), 항상 들르던 네프스키 대로의 카톨릭 사원에 가서 초도 켜고, 마린스키에서 로파트키나의 안나 카레니나를 보고 돌아왔더니 밤 10시였다. 한참 짐을 싸고 났더니 어느덧 자정이 넘었네..

 

오늘 사진 몇 장만 올려본다. 많이 피곤하다. 자야겠다. 떠날 생각을 하니 너무 섭섭하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 ㅠㅠ

 

 

고양이.

 

서무 시리즈에 등장하는 검정 고양이 미셴카랑 닮음 :)

 

 

 

고양이만 나오면 심심하니 이번엔 개 :)

 

 

 

저녁의 마린스키 신관.

극장 가려고 나오니 비 오기 시작 ㅠㅠ

비 조금씩 맞으면서 근처 돌아다니며 사진 몇 장 찍었다. 해 진 직후라 푸르스름한 빛이 예쁘다. 이 즈음의 빛을 좋아하는데 사실 때를 맞추기 쉽지는 않다. 오늘은 입장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근처 건물. 불 켜진 창문이 예뻐서.

 

 

운하에 비친 마린스키 극장(오리지널) 모습. 얼어붙은 운하 위로 비가 내려서 물이 잔뜩 고였다.

 

 

마린스키 신관 램프들.

 

 

마지막은, 오늘 라트만스키 안무의 안나 카레니나 커튼 콜.

 

왼쪽부터 카레닌 역의 빅토르 바라노프, 가운데는 안나 역의 울리야나 로파트키나, 검정옷이 브론스키 역의 안드레이 예르마코프.

 

다시 봐서 반가웠어요, 울리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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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2. 22. 02:30

떠나기 전, 마린스키 신관, 마지막 공연 dance2015. 2. 22. 02:30









아이 아쉬워..

로파트키나 보는 걸로 맘을 달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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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스키 극장(오리지널)에서 단막발레인 '봄의 예감'과 '페트루슈카' 보고 돌아옴. 피곤하니 리뷰는 나중에 따로 올리고 그냥 아주 짧은 메모만.

 

맨 처음엔 왜 성격이 전혀 다른 이 두 작품을 묶었나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지금이 봄을 기원하는 마슬레니짜 축제 기간이라... 전자는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이야기를 알레고리로 풀어낸 유리 스메칼로프의 작품이고 너무나 유명한 후자는 마슬레니짜 축제 기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미하일 포킨 작품이다. 그래서 두개를 엮은 거였어.

 

 

 

안무가로서의 스메칼로프를 좋아하긴 하지만 봄의 예감은 너무 알레고리에 치중한 나머지 많이 단조로워서 아쉬웠다. 춤도 크게 볼만한 건 없었고... 어쨌든 리뷰는 나중에.

 

자리가 베누아르의 오른편 사이드라... 줌 당겨도 한계가 있었고 비스듬한 구도로밖에 안나옴.

 

스메칼로프 작품은 24일에 올리는 '카메라 옵스쿠라'를 진짜 보고픈데. 작년 4월 발레 페스티벌때 슈클랴로프를 주역으로 안무해서 올린 작품인데 영상으로 보고도 정말 맘에 들었기 때문이다. 콧수염 달고 안 멋있는 중년남자 캐릭터로 나오는 슈클랴로프는 이쁘게는 안나오지만 드라마틱한 연기가 일품이었는데. 꼭 무대에서 보고팠지만 그건 24일이라 불가능이다 흐흑...

 

 

페트루슈카는 포킨의 다른 발레 몇개와 마찬가지로 내게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마린스키 무대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물론 근사했다. 하지만 오늘의 페트루슈카는 옛날부터 내가 의미를 많이 부여했던 페트루슈카 인형의 고뇌와 억압구조에 대한 깊은 생각보다는 스트라빈스키 음악과 알렉산드르 베누아(서구에는 프랑스식 표기인 브누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의 화려한 무대 미술/의상, 그리고 떠들썩하고 화사한 러시아 민속풍경에 더 방점이 찍혀 있는 느낌이었다. 뭐 그건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변해왔기 때문에 그렇게 느낀 걸수도 있다. 페트루슈카는 언제나 그런 작품이었을지도 모르니까.

 

이 리뷰도 나중에. 근데 돌아가서 제대로 다 리뷰 쓰기나 할지 모르겠네. 사실 작년 백야때 와서 본 발레도 마르그리트와 아르망만 리뷰 올리고 두번이나 본 라 바야데르와 돈키호테, 인프라에 대한 리뷰는 흐지부지 안 올렸는데 ㅠㅠ

 

 

커튼콜 사진 한장. 자리가 멀어서 화질 안 좋지만.

무어인 역의 이슬롬 바이무라도프. 발레리나 역의 야나 셀리나. 페트루슈카 역의 안톤 코르사코프.

 

아.. 이제 하루밖에 안 남았어 엉엉..

내일은 마린스키 신관에서 라트만스키의 안나 카레니나로 공연 마무리. 보고 싶었던 공연이고 로파트키나가 나오니 그래도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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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2. 21. 01:30

마린스키 구관, 공연 시작 직전 dance2015. 2. 21.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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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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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처음 이틀 정도만 날씨 좋았고 그 후부터는 계속 진눈깨비, 그냥 눈, 이제는 비가 내리고 있음 ㅠㅠ 으앙...

 

하긴 한겨울도 아니고 2월에 왔으니 그러려니 해야지 ㅠㅠ 그나마 맨처음에 해가 쨍 난 게 어디야..

 

날씨가 너무 우중충하고 바람도 불고 습하고 계속 눈과 비가 내려서 못 돌아다니고 있다. 오늘도 친구가 부탁한 기념품 사러 가게에 갔다가 네프스키 중심가에 있는 로모노소프 가게(어제 간 곳과 다른 곳)에 가고, 이후 돔 끄니기에 갔다가 징게르 카페(singer cafe)에서 조금 늦은 점심 먹고 들어온 게 전부다.

 

오늘 저녁에는 마린스키 구관에서 단막발레인 '봄의 예감'과 '페트루슈카'를 보러 간다. 날씨 개면 좀 일찍 나가서 산책하다 가려고 했으나.. 여전히 하늘은 우중충... 그냥 시간 맞춰서 나가야겠다.

 

역시 백야 시즌이 좋긴 좋다. 날씨도 좋고 환하고 해도 안 지고 ㅠㅠ

 

짧은 기간동안 머무르며 공연을 6개나 보고 있으니 뭐 내가 무리하고 있는 거긴 한데, 돌아가면 또 언제 이 공연들을 보겠나 하는 생각에 이것저것 예매해놓고 보니... 날씨도 그렇고 체력도 별로라 매일 피곤하다. 낮에 잠깐 쉬었다가 밤에 공연 보고. 돌아와서 좀 정리하고 자고.. 벌써 일주일이 흘렀네 ㅠ 모레 아침에 공항으로 떠나니 휴가도 이제 다 갔구나. 너무너무 섭섭하고 슬프다.

 

위의 사진은 내 방 창 너머로 찍은 것. 하도 눈이 와서 ㅠㅠ

 

점심 먹고 들어와서는 사온 찻잔들을 하나하나 뽁뽁이로 싸고(안 깨져야 할텐데), 좀 쉬다가 징게르 카페에서 테이크아웃해 온 사과파이를 곁들여 차 한 잔 우려 마셨다. 로모노소프 찻잔들은 이미 뽁뽁이로 꼭꼭 싸놔서... 찻잔은 그냥 호텔 방에 비치된 찻잔 :)

 

 

전에 writing 폴더에 발췌해 올렸던 코즐로프와 미샤의 사과파이 에피소드(http://tveye.tistory.com/3165)에 등장할법한 사과파이 :) 차 우려준 잔도 딱 저렇게 생겼을 것이다. 물론 코즐로프가 미샤에게 준 찻잔이야 소련 시골 동네에서 쓰는 공장제 찻잔이니 이 찻잔보다야 더 후졌겠지만..

 

서무 시리즈에서 단추남 베르닌이 쓰는 찻잔은 수완좋은 코즐로프가 쓰는 것보다 좀 더 낡은 버전. 잘 보면 어딘가 이도 나갔을지 모름. 그러니까 왕재수가 칭얼대지... (세상에서 제일 얇은 로모노소프 찻잔으로 우아하게 차 마시며 남들이 해다 바치는 것에 익숙했던 그 ㅠㅠ)

 

 

 

 

 

그런데 이 사과파이는 아이싱만 달고 사과필링은 전혀 설탕이 들어 있지 않아 엄청 시큼했다. 연유라도 끼얹어 먹어야 하나 ㅎㅎ 난 너무 달지 않은 사과파이를 좋아하긴 하는데 이건 사과가 많이 시었다.

 

 

새로 산 찻잔 중 하나만~ 뽁뽁이 싸기 전에 찍어봄. 눈과 자작나무를 형상화한 것 같다. 평소 로모노소프에서 나오는 섬세한 무늬와는 좀 다른 타입인데 볼수록 이것도 귀엽다. 근데 방이 어두워서 색감도 어둡게 나왔네 :)

 

그럼 이제 슬슬 이른 저녁을 챙겨먹고... 극장 갈 준비를 해야겠다.

 

아아, 한 달만 더 눌러 있었으면 좋겠구나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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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2. 20. 08:00

예약 포스팅 05. 이것이 러시아! russia2015. 2. 20. 08:00

 

 

예약 포스팅 05. 2.20

다들 즐겁게 웃으며 보시길~~ :)

이건 내가 찍은 사진 아니고 페이스북의 st.petersburg 가이드 페이지에서 업어옴.

러시아 미인과 곰!!!

그런데 이 와중에도 곰보다는 저 예쁜 아가씨의 놀라운 비율에 정신이 팔리는 나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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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일단 커튼 콜 사진 두 장만.. 리뷰는 나중에.

 

며칠 전 빅토르 레베제프의 라 바야데르에 너무 실망했었는데 그래도 돈키호테는 백조나 바야데르처럼 우아하고 고전적이며 조형적인 군무가 중시되는 작품이 아니고 주역들의 기량에 크게 좌우되는 작품이라, 바실리예프가 일단 바질로 나왔기 때문에 꽤 즐겁게 보고 돌아왔다.

 

이반 바실리예프의 무대를 직접 본 건 처음이었는데 확실히 화려한 무용수이고 스타성이 뛰어났다. 페테르부르크 스타일은 물론 아니다. 작고 건장한 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훌륭한 운동신경과 점프, 피루엣, 그리고 바질에 어울리는 코믹하고 에너지 넘치는 연기. 그러나 이런 타입의 무용수가 종종 그렇듯 우아하고 반듯한 면은 부족하다. 아름다운 포즈도 좀 아쉽고... 하지만 그런 장점들은 이 사람이 아니라 바가노바 트레이닝 받은 마린스키 무용수에게서 찾아야겠지. 전체적으로 바실리예프는 내게 소련 시절 볼쇼이에서 키워줬던 운동신경 뛰어난 남자 무용수를 연상시켰다. 그래서 이렇게 빨리 공훈예술가를 달아줬나 싶기도 했다.

 

뛰어난 무용수다. 바질을 추는 걸 보는 게 즐거웠다. 하지만 그가 추는 지그프리드나 솔로르, 알브레히트 무대를 보러 가고 싶은 마음이 선뜻 들지는 잘 모르겠다.

 

사진 한 장 더. 앞자리 앉긴 했는데 조명 바로 아래라서 많이 번졌다.. 건진 사진 별로 없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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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내내 흐렸고 가느다랗고 기분나쁜 눈발이 계속 흩날렸다.

 

오늘은 오전에 환전을 좀 하고 어제 실패했던 로모노소프 가게에 가서(어제 왜 못 찾았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모르겠다. 계속 그 앞을 지나치고 있었던 것이다) 찻잔을 두 개 사고, 서점에 가서 근사한 러시아 요리책과 동생 줄 예쁜 수첩을 샀다. 눈발이 계속 날리고 길도 진창이라 일단 호텔로 돌아왔다.

 

오늘 저녁에는 미하일로프스키에서 돈키호테를 보기로 했다. 레베제프 라 바야데르 때문에 데었지만... 그래도 오늘은 이반 바실리예프가 바질을 추고 키트리도 볼쇼이 솔리스트가 와서 추니까 괜찮을 거라고 기대 중.

 

신나고 즐거운 곱사등이 망아지로 드디어 발레의 장벽이 깨진 료샤(ㅋㅋ), 이 참에 돈키호테에 입문시키기로 했다. 저녁 되기 전에 낮에 잠깐 시간 된다고 해서 호텔 로비 바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 호텔은 제국주의 러시아의 아르누보 시절에 지어진 곳이라 인테리어가 꽤나 화려하고 아름다운데 로비 바도 근사하다.

 

나는 벨리니 주문. 이곳 바의 벨리니는 'your' 벨리니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 복숭아/망고/배 등 몇가지 과일 퓨레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그래서 '당신의 벨리니' 인가 보다.

 

료샤 : 어휴, 역시 달달하고 부들부들한 칵테일. 딱 여자들 마시는 거.

나 : 미안하다, 여자가 돼갖고 딱 여자들 마시는 거 골라서 ㅠ

료샤 : 무슨 맛 할 건데?

나 : 벨리니는 당연히 복숭아지!

료샤 : 망고 안 해볼래?

나 : 싫어, 망고는. 원래 망고 싫어해. 그리고 벨리니는 복숭아란 말이야!!!

료샤 : 베니스에서 실컷 마셨을 거 아냐, 복숭아맛 벨리니는. 새로운 거 해봐. 아니면 배맛...

나 : 으잉, 싫어. 너네 나라 배 맛 없어.

 

그때 바텐더가 주문받으러 옴. 료샤가 초치기 전에('망고'나 '배'라고 말할 기세) 잽싸게 '유어 벨리니, 복숭아요!' 하고 선수쳤다. 료샤는 뭔가 내가 모르는 칵테일을 주문했다.

 

'당신의' 벨리니가 나왔다. 복숭아 슬라이스가 꽂혀 있고 복숭아 퓨레가 들어 있다. 그런데 내 생각보다 도수가 강했다. 베니스에서 마시던 벨리니는 식전에 가볍게 마셨기 때문에 알콜 함량도 낮고 가벼운 음료수 같았는데 여기 벨리니는 좀 셌다.

 

 한 입 마셔보라고 주었다. 료샤는 한 모금 마시더니 생각보다 달지 않다고 했다. 뺏아 마시고 싶은 눈치였지만 안 주고 내가 다 마셨다.

 

그 결과 나는 벌을 받았다 ㅠㅠ 벨리니가 생각보다 양도 많고 독해서 점점 취기가 올라왔다 ㅠ 하긴 내내 피로도 누적되어 있었고 오늘 날씨도 안 좋고 잠도 계속 모자랐다. 졸기 시작하자 료샤가 혀를 찼다.

 

료샤 : 이게 뭐야. 복숭아 칵테일 마시고 취하는 인간아...

나 : 나 너무 졸려. 방에 가서 좀 자다가 가야겠어.

료샤 : 야! 나랑 놀아줘야지!

나 : 너는 도로 사무실 들어간다며. 저녁에 극장에서 보면 되잖아.

료샤 : 아직 30분쯤 시간 있단 말이야!

나 : 미안해, 친구야. 나 너무 졸려. zzz..

 

료샤는 툴툴댔지만 할 수 없이 나를 방으로 데려다 주었다. 데려다 줬으니까 내가 방에 와 있고 침대에 누워 있고 구두도 벗고 있겠지 ㅠㅠ 뭔가 머리에 베개 베어주고 애가 나간 것까진 기억나는데 그 다음부턴 비몽사몽.

 

1시간쯤 꿈나라에 갔다가 깨어났다. 머리가 무거웠다. 료샤에게 전화를 했다.

 

나 : 너 사무실 잘 들어갔어?

료샤 : 복숭아 칵테일 한 잔으로 맛이 가다니 -_-

나 : 그게 생각보다 독했어. 역시 낮술은 안되나봐. 예전에도 낮에 와인이나 샴페인 같은 거 마시면 금방 취했거든.

료샤 : 이제 나가서 낮술 마시고 돌아다니지 말라는 교훈을 얻었겠지!

나 : 나가서 마신 거 아니잖아! 호텔 로비 바였어! 그리고 너도 있었어!

료샤 : 이제 다 깼어?

나 : 응. 있다가 극장에서 봐. 친구야, 고마워.

료샤 : 그치! 내가 너 데려다 주고 침대에도 뉘어주고!

나 : 그래그래, 베개 베어줘서 고마워~

료샤 : 망고맛 벨리니였으면 안 취했을 거야.

나 : 그런 게 어디있어!

료샤 : 망고가 더 달잖아! 그러니까 안 취했을 거라고!

나 : 베이스는 똑같은데 어떻게 안 취하니!

료샤 : 너는 망고 싫어한댔으니까 찔끔찔끔 조금 마시고 남겼을 거고 그럼 안 취했겠지~

나 : 아... 나 왜 설득되려 하지.

 

.. 하여튼 그래서 이제 '당신의 벨리니'는 안 마시는 것으로 결론 :)

 

이제 슬슬 준비하고 한 시간 쯤 있다가 극장에 가야겠다. 극장이 가까워서 다행이다.

 

아아... 이제 휴가도 거의 다 가버렸어 흐흑... 일요일 아침에 떠나는데 진짜 코앞이야 엉엉...

 

 

 

로비 바 사진 두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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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예약 포스팅 04.

소련 광고 포스터 시리즈 마지막. 이게 다 뭐냐면.. 가루와 병조림, 즉석 식품들... 소련 시절 공장들에서 나온 것들이다. 맨앞 왼쪽의 갈색 상자에는 메밀죽이라고 씌어 있고.. 오른편 아래 병은 소금에 절인 오이피클, 가운데 위쪽에 빨간 야채 그려진 건 바로 보르쉬!!

.. 서무의 슬픔 시리즈에서 보통 베르닌이 왕재수에게 데워주는 음식들이 이런 것이다. 그러니 왕재수가 밥투정을 하지 ㅠㅠ

 

그건 그렇고 예약 포스팅 걸어서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이 날이 설날이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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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와 어제는 기온이 많이 낮았지만 하늘이 쨍한 날씨였으나..

오늘은 기온은 영하 3도에서 1도 정도로 따스했지만... 눈이 펄펄 내리고.. 아침엔 쌓였고 낮엔 기온 올라가서 그 눈이 다 녹으면서 길바닥은 진창으로... (이 진창 너무 싫다 ㅠㅠ)

 

이렇게 눈 오고 날씨 안 좋은 날은 무조건 박물관 가는 날이라서. 아껴뒀던 러시아 박물관 다녀옴. 숙소에서 10분도 안 걸리기 때문에 좋긴 한데...

 

오늘 가는 날이 장날인지. 전시실 몇개는 수리 중이고 원래 있던 그림들 중 다수가 투어를 갔거나 아니면 전시품 교체 기간에 딱 걸렸나보다(소장품이 많아서 가끔 그림들을 바꿔놓는다) 그래서 슬프게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레프 박스트 그림은 두 점 밖에 없고.. 제일 좋아하는 supper도 없고.. 크람스코이와 니콜라이 게도 오늘은 없고... 어흑... 대신 소모프를 비롯한 화가 그림들이 추가되긴 했지만... 나에게 박스트를 돌려달라고요 흐흑,..

 

20세기 소련 미술의 경우에는 오히려 추가되고 변경된 그림들이 전에 본 것들보다 맘에 들었다.

 

브루벨은 그래도 그대로 있어서 다행이었다 ㅠㅠ 내가 여기 올 때마다 러시아 박물관에 자꾸자꾸 가는 이유가 뭔데요 ㅠ 박스트와 브루벨, 게, 그리고 금발의 가브리엘 이콘 때문인데 ㅠㅠ 그래도 브루벨과 가브리엘이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나와서는... 오늘 정말 운이 없었다. 코뉴셴나야 거리 쪽에 로모노소프 가게가 하나 더 있는데(보통은 네프스키 중심가에 있는 쪽으로 간다만) 거기로 가려고 했다가 오늘따라 이상하게 정신도 없고 눈 때문에 그랬는지 아무리 걸어도 가게가 안 보이고.. 평소엔 잘만 들렀던 곳인데. 멍때리고 걷다가 골목을 잘못 들었더니 빠져나가는 골목이 없어서 어느새 모이카 운하 지나 궁전광장에 와 있고 ㅠ 완전히 뺑뺑이 돌고 고생했다. 나 초짜 관광객도 아니고 심지어 여기 살았던 사람인데 왜 이러지 ㅠㅠ

 

눈오고 길 진창이고 바람 불고.. 하여튼 많이 고생. 너무 녹초. 배도 고프고..

그래서 오늘 찻잔 사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감.

 

그러나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것이다. 뺑뺑이 돌고 녹초가 된 가운데 너무 배가 고파서 헤매다 우연히 발견해 들어간 카페가 정말 최고였다. 간판과 유머러스한 메모에 끌려 들어간 곳인데 여기서 최고의 우하(생선 수프)를 만났다. 그리고 미소가 해사하고 매우 친절한 젊은 남자 직원도 만났고, 카페는 너무나 내 마음에 들었다. 맛있는 거 먹고 몸 녹이고 친절한 대화를 나누고 나오자 길 잃고 뺑뺑이 돌았던 고통이 눈녹듯 스러졌다. 그 카페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올려보겠다.

 

그럼 오늘의 사진 몇 장. 오늘은 날씨 안 좋아서 dslr 대신 후지x 디카 들고 나가서 화질은 그냥저냥. 여기는 눈 올때랑 안 올때랑 동네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니까 ㅠㅠ 전에 올렸던 이 동네 사진들과 비교해보세요~

 

맨 위는 진눈깨비에 가까운 눈이 쏟아지고 있는 오전의 예술 광장.

 

 

우리 푸쉬킨도 눈 맞고 있다 ㅠㅠ

 

눈 오는 가운데에도 꿋꿋하게 푸쉬킨 머리랑 어깨엔 비둘기가 앉아 있다. 네놈들 저 사람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 알기나 하냐!!

 

 

푸쉬킨.. 춥겠다 ㅠㅠ

 

근데 클릭을 잘못했나, 서명이 왜 이렇게 안쪽으로 밀렸지.. 고치려니 귀찮다. 그냥 놔두자 ㅠ

 

 

 

 

 

전시 보고 러시아 박물관에서 나오는 길. 열린 정문 너머로 푸쉬킨이 보인다.

 

 

 

그리보예도프 운하 쪽으로 나왔다. 도자기 가게 가려고... 이때만 해도 몰랐지, 뺑뺑이 돌 줄은..

 

지금도 뭔가에 홀린 것 같네. 왜 길을 못 찾았지 ㅠㅠ 왜 모이카 운하를 삥삥이 돌아 궁전광장 쪽으로 갔나 어흑.. 조금 덜 걸어보려고 엘리세예프 가게 근처에 있는 로모노소프 대신 코뉴셴나야 근방 로모노소프로 가려고 했던 건데 서너배는 더 걸었네.. 뺑뺑이 도느라.. 어헝 ㅠ

 

 

 

 

 

하여튼 그렇게 오늘의 메모는 끝.

내일은 제발 날씨가 좋기를... 내일은 미하일로프스키 극장에서 발레 돈키호테를 본다. 레베제프의 충격적인(나쁜 의미 ㅠ) 라 바야데르 때문에 빈정 상했지만..(http://tveye.tistory.com/3504) 내일은 이반 바실리예프가 바질을 추니까 설마 괜찮겠지..!!

 

그러고 보니 한국은 이미 자정이 넘어서 설날이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추가 : 그 카페에 대한 소개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3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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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2. 18. 08:00

예약 포스팅 03 : 소련 캐비아 광고 포스터 arts2015. 2. 18. 08:00

 

 

2.18 예약 포스팅 03.

서무의 슬픔 20문답과 며칠 전 소련 아이스크림 광고에 이어. 소련 광고 하나만 올리면 섭섭하니 두번째.

소련 광고 포스터. 캐비아!!

즉 이끄라!!

검은 캐비아는 철갑상어알, 빨간 캐비아는 연어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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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추웠지만 하늘이 파랬다. 한낮에 료샤와 레냐와 함께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쪽으로 산책 갔었다. 갔다가 얘네 집에 가서 카레와 미역국과 쌀밥, 부드러운 계란찜, 간장을 쓴 포근포근한 감자양파조림과 불고기를 만들어 주었다. 대성공 :)

 

레냐는 밥이 너무 맛있었던 나머지 한국에 가서 살고 싶다고 했다. 그래, 남편이 아내 따라 와서 살아야지 ㅋㅋ 이렇게 나의 요리솜씨로 7세의 약혼자를 옭아매는 데 성공! 료샤가 부러워하더니... 한국에서는 원래 시부모 모시고 사는 거 아니냐면서 자기도 따라오겠다고 한다 ㅋㅋ

 

일요일에 만났을 때 곶감과 초콜릿과 양갱을 풀었다. 레냐가 제일 좋아한 것은.. 의외로 양갱이었다!! 깜놀! 양갱이 곶감보다 초콜릿보다 더 맛있다면서 더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근데 양갱은 내가 장난기가 동해 가져간 거라.. 두개 밖에 안 가져갔었는데 ㅠㅠ 미안해 레냐야 양갱 더 없어...

 

곶감은 료샤가 엄청나게 좋아했다. 레냐는 첨에 시꺼멓다고 안 먹으려 했다. 호랑이와 꼬깜의 그 꼬깜이라 해주자 레냐는 어려서 그런지 꼬깜이 맛있다는 건 까먹고 호랑이가 도망갔다는 것만 기억나는지 '무서워! 무서운 거잖아!'라고 찡찡댔다. 료샤가 곶감을 홀랑 먹더니 너무 맛있다 해서 레냐도 먹어보았다. 좋아했다. 맛있다고 했다. 그러나 양갱이 더 좋다나... 곶감은 모두 료샤가 가져갔다 ㅋㅋ 얘 웃기다.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산책하다가..

 

꽝꽝 얼어붙은 네바 강. 어디까지가 강이고 어디까지가 강변인지 모호하다. 강변에 이렇게..

'얼음 위로 나가는 거 금지!'라고 표지판이 서 있지만... 다들 나몰라라 하고 얼어붙은 강으로 나가 산책하고 있다..

 

 

 

 

이 사람은 얼음 낚시 중..

 

 

발자국도 잔뜩~

 

나도 옛날에 여기서 지낼 땐 친구랑 겨울에 얼어붙은 네바 강 건너갔었는데.. 난 무서워했지만 친구는 좋아했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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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무의 슬픔 번외편 등장인물 20문답 두번째. 역시 예약 포스팅.

베르닌과 왕재수(http://tveye.tistory.com/3492)에 이어 이번에는 스페호프 국장, 바이올린 아저씨 코즐로프, 그리고 렐랴!

 

 

* 이 글을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스페호프 국장

 

 

 

이름 : 블라지미르 스페호프

 

현직 : 가브릴로프 보안위원회(KGB) 지국장

 

경력 : 국가기밀.

 

20문답 : 답변 거부

 

<답변 거부 사유>

 

1. KGB 국장으로서 보안서약서에 서명한 바 있음

 

2. 공문으로 정식 요청하지 않은 건임

 

3. 토끼라는 유관기관명은 들어본 적이 없음

     

 

 

 

 

 

로만 코즐로프

 

 

 

이름 : 로만 코즐로프

 

현직 : 가브릴로프 시립극장 오케스트라 수석 바이올리니스트

 

경력

- 가브릴로프 예술대학 및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음악원 졸업

- 모스크바 청년궁전 오케스트라 바이올리니스트

* 그 외 비슷비슷한 규모의 오케스트라 바이올리니스트 활동 다수

 

 

1. 별자리 : 사수자리

 

2. 나이 : 40세

 

3. 신장과 체중 : 195센티미터, 88킬로

 

4. 머리색 + 헤어스타일

갈색 머리. 무성하게 자라는 편이지만 항상 잘 빗어서 단정하게 정리한다.

 

5. 눈 색깔 : 짙은 푸른색

 

왕재수 : 내가 좋아하는 색이야~ 난 갈색 머리에 푸른 눈이 좋아~ 레닌그라드에서 어릴 때부터 사귄 의사 선생님도 딱 갈색 머리 푸른 눈~!

 

코즐로프 : 뭐야? 어릴 때부터? 의사? 그건 또 누구야! 크오오오! 넌 지금도 어린데! 더 어릴 때부터면 그건 뭐야! 미성년자 성추행! 용서하지 않겠다, 쿠오오오!

 

왕재수 : 아유, 그 사람 여기 없잖아. 흥분하지 마. 난 자기가 젤 좋아~ 뽀뽀 쪼옥~

 

코즐로프 : 우리 아기는 너무 귀여워~ 뽀뽀도 잘해~ 아유 귀여워~

 

 

6. 당신의 패션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템은?

하얗고 빳빳하게 다림질한 셔츠 칼라

 

왕재수 : 맞아, 당신은 깔끔한 스타일을 고수하지! 연주복 입으면 멋있어!

 

코즐로프 : 음흠, 귀염둥이에게 잘 보이려면 앞으로도 연주복 패션을 고수해야겠군~

 

왕재수 : 아니야, 나는 당신이 아무 것도 안 입은 게 제일 좋아~~

 

코즐로프 : 아유, 귀여운 것. 어쩌면 말도 이렇게 귀엽게 하누~ 와락~

 

 

7. 가장 좋아하는 음식

 

코즐로프 : 난 직접 빚은 펠메니 등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 좋아. 요즘은 구시가지에 생긴 식당에서 내주는 항아리 닭고기가 맛있더군.

 

왕재수 : 옛날 사람 ㅠㅠ 만두 빚는 파트너가 좋다 하고 -_-

 

코즐로프 : 너처럼 예쁜 앤 그런 거 안 해도 돼~ 우리 비둘기 손엔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할 거야~~

 

 

8. 당신의 시그니처 칼라는?

 

코즐로프 : 흰색과 검은색. 연주할 때 보통 그렇게 입지.

 

왕재수 : 그래서 좀 로트바르트 닮음. 키도 크고...

 

코즐로프 : 그거 칭찬이야?

 

왕재수 : 응...

 

코즐로프 : 뭔가 얼버무리는 것 같은데! 로트바르트 그거 부엉이 아냐?

 

왕재수 : 아휴, 우리 아저씬 너무 눈치가 빨라.

 

 

9. 취미 : 청소. 정리.

 

왕재수 : 우리 아저씨 결벽증이랑 정리벽 있음 ㅠㅠ

 

코즐로프 : 그래야 이 험한 세상에 세균 감염 안 되고 이상한 서류나 책자 나왔다는 혐의로 체포 안 당하지! 내 몸 내가 지켜야지!

 

왕재수 : 난 자기만 믿고 갈래~~~

 

 

10. 데이트 상대에게서 제일 먼저 보는 것

 

코즐로프 : 여자는 몸매.

 

작가(토끼) : 당신 양쪽 다 좋아하잖아. 남자는?

 

코즐로프 : 남자는 눈빛, 허벅지. 목소리.

 

작가(토끼) : 어째서 남자 쪽이 더 까다롭니!

 

코즐로프 : 그게 원래 그런 거야! 나 은근히 상대 가려! 근데 가뜩이나 시골이라 괜찮은 남자 구하기 힘들어... 우리 아기는 정말 하늘에서 톡 떨어진 천사야~ 다 갖췄잖아!

 

왕재수 : 맞아. 내 두툼한 허벅지~~~

 

코즐로프 : 아유, 예쁘기도 하지. 와락~

 

 

11. 왕재수와 베르닌이 물에 빠진다면 누구를 먼저 구하겠는가.

 

코즐로프 : 말이라고 하냐! 내가 그 KGB 앞잡이를 왜 구하니! 그깟 놈은 빠져죽게 내버려두고 우리 귀염둥이 구할 거야!

 

작가(토끼) : 아까 얘는 단추 구할 거랬는데...

 

왕재수 : 저거 진짜... 토끼찜 해먹을 거야 -_-

 

 

토끼 : (화들짝) 쟨 진짜 해먹을 거 같아...

 

 

12. 당신의 매력 포인트는?

 

코즐로프 : 난 잘 모르겠는데 나한테 모여드는 여자들은 내가 옷발이 잘 받아서 멋있대. 남자애들은...

 

왕재수 ; 까칠한 게 매력이야! 그리고 잠자리가 끝내줘!

 

코즐로프 : 맞아. 그건 그래. 나 좀 잘해.

 

 

13. 가브릴로프에서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검은 숲의 햇살 잘 드는 잔디밭

 

 

14. 좋아하는 음악/가수/작곡가 등등

 

코즐로프 : 이런 얘기 나오면 클래식에 바이올리니스트 누구누구라고 답해야겠지만. 됐네 됐어! 지겹다! 나한테 음악은 밥벌이야! 클래식 나부랭이 좋다고 하는 거 다 허세만발임!!! 특히 차이코프스키 같은 거!

 

왕재수 : 어, 난 차이코프스키 좋은데... 나도 허세만발 ㅠㅠ 으앙...

 

코즐로프 : 우리 아기는 춤도 잘 추고 예쁘니까 허세 아니야~

 

왕재수 : 그래! 난 밥벌이 때문에 예술 하는 거 아냐! 난 천재 예술가!

 

코즐로프 : 그래, 넌 모차르트. 난 살리에리(크흑...)

 

 

15. 어렸을 적 장래희망

 

장래희망 그런 거 별로 없었음. 그냥 바이올린 좀 잘 켜니까 이걸로 밥벌이해야지 했음. 소련에서 무슨 장래희망.

 

 

16. 영화에 출연하게 된다면 맡고 싶은 역할

 

코즐로프 : 영화는 무슨 영화! 귀찮아!

 

왕재수 : 표트르 대제! 키 크고 위엄 있게 생겼잖아!

 

코즐로프 : 아유, 우리 아기는 나를 황제처럼 모시는구나!

 

왕재수 : 로트바르트 분장 한 번만 시켜보고 싶다...

 

코즐로프 : 그거 부엉이 마왕이라는 거 나 알거든!

 

 

17.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것

 

KGB 나부랭이들. 공산당. 하여튼 꽉 막힌 작자들. 권력자들. 전부!

우리 아기 눈에 피눈물 내고 저 백옥같은 몸에 흠집 내는 개자식들은 전부 작살내주겠다!

 

 

18. 지금 하고 싶은 것

 

귀염둥이 우리 아기를 확 쓸어안고 그 자리에서...

 

 

19. 지금 입고 있는 것

 

정장 셔츠하고 바지 입고 있었는데... 지금은... 우리 아기가 와서 무릎에 앉았고, 그래서 지금은... 뭐...

 

 

 

20. 작가에게 한 마디

 

코즐로프 : 나 원래 이런 캐릭터 아니지 않았어? 본편에선 원래 까칠하고 좀 음침하고 정치적인 인물 아냐? 나 왜 귀염둥이한테 넋놓고 바보같이 굴지? 왜 걸핏하면 주먹 휘두르고 폭주하지? 나 좀 이상해!

 

작가(토끼) : 본편에서도 너 걔한테 푹 빠져...

 

코즐로프 : 뭐 우리 아기는 예쁘니까 빠지는 건 빠지는 건데... 하여튼 뭔가 사기당하고 있는 기분이야!

 

 

 

 

 

렐랴

 

 

 

이름 : 릴리아나 비슈네바

 

현직 : 월간 문예지 비슈네브이 사드 편집장

 

경력

- 가브릴로프 시립대학교 불문학과 졸업

- 문예지 편집장 및 일간지 칼럼니스트, 가브릴로프 문화채널 패널 활동 중

 

 

1. 별자리 : 쌍둥이자리

 

2. 나이 : 23

 

3. 신장과 체중 : 168센티미터. 숙녀의 체중은 묻는 것이 아니에요!

 

4. 머리색 + 헤어스타일

윤기 나는 짙은 밤색. 풍성하게 물결치며 부드럽게 곱슬거리는 긴 머리

 

5. 눈 색깔 : 부드러운 회색

가브릴로프 남자들로부터 안나 카레니나처럼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음

 

6. 당신의 패션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템은?

몸매의 곡선과 빼어난 각선미를 드러낼 수 있는 원피스.

 

7. 가장 좋아하는 음식

 

렐랴 : 정통 러시아 요리를 좋아하죠. 블린, 비프 스트로가노프 등등. 전 요리를 아주 잘해요. 제가 만드는 음식은 모두 맛있어요. 제가 달리 가브릴로프에서 제일가는 신붓감이란 말을 듣는 게 아니죠! 그 중에서도 제가 잘 만드는 것은 버찌잼과 초콜릿 쿠키, 아이스크림, 각종 속이 들어간 작은 파이들. 전 러시아 정통 만찬도 자신 있어요.

 

작가(토끼) : 맞아. 그래서 전에 쓴 스핀오프 추리소설은 네가 만찬을 개최하는 것으로 시작했지. 심지어 네가 주인공. 그 근사한 만찬에는 열두 명의 손님이 초청되는데... 만찬의 목적은 사실 너의 미모와 요리 솜씨를 과시하여 누구를 유혹해보려고...

 

렐랴 : 토끼! 숙녀에게 너무 무례하잖아! 그거 비밀인데...

 

작가(토끼) : 뭐가 비밀... 만찬에 온 손님들 애초부터 다 눈치 채고 있었음.

 

렐랴 : 그래도 모르는 척 해 줘야지!

 

작가(토끼) : 너 누구한테 육탄 돌진했잖아~

 

렐랴 : 아악, 조용히 못해! 꺅!

 

베르닌 : (렐랴랑 인터뷰한다기에 슬쩍 들어왔음) 육탄 돌진이라니요... 저렇게 아름답고 조신하고 세련된 렐랴가 그럴 리가 없어요 ㅠ 어, 근데 스핀오프 추리소설이라면 거기 나도 나온다며... (왕기대) 혹시 그 대상이 나???

 

렐랴 : 어머나, 다냐! 꿈도 야무지시네요! 거기서 분명 토끼가 이렇게 썼잖아요!

“렐랴는 베르닌의 조그맣고 광택 없는 까만 단추 같은 눈을 아주 싫어했고 그의 촌스러운 매너와 그보다 더 엉망인 옷차림은 더욱 싫어했다. 이미 서른에 가까운 나이였지만 꼭 풋내기 대학생 같은 몰골이었다”

어딜 언감생심 날 넘보고!

 

베르닌 : 으앙, 거짓말... 으앙... 나 왜 지금 시리즈에서보다 더 못나게 나와?

 

작가(토끼) : 단추야, 힘내. 그래도 그 스핀오프 추리소설에서 너 아주 중요한 인물이야.

 

베르닌 : 중요한 인물이면 혹시 살인범 아냐? 으앙...

 

작가(토끼) : 그건 스포일러니까 비밀이지롱~

 

베르닌 : 안돼! 나 살인범 안 할 거야! 왕재수 저 자식 살인범 시켜! 엉엉...

 

 

8. 당신의 시그니처 칼라는?

렐랴 : 저의 눈빛을 더욱 고혹적으로 보이게 하는 부드러운 푸른색~

 

 

9. 취미 : 요리. 문예 살롱 운영

 

렐랴 : 저의 사무실과 아파트는 가브릴로프 문화예술인들의 요람~ 저는 19세기 러시아 귀족부인처럼 이들을 후원하고 재능 있는 사람들은 제 문예지와 칼럼, 방송을 통해 띄워주죠!

 

작가(토끼) : 소련이지만 노멘클라투라 특권계층이라 저런 부르주아 행태가 가능...

 

렐랴 : 흥, 그보다는 내가 예쁘기 때문이지!

 

작가(토끼) : 너 그 스핀오프 말고 본편에서도 누구 꼬시려고 이 살롱을 더욱 활성화시키잖아.

 

베르닌 : 본편이라면... 거기선 내가 좀 멋있게 나올 거 같으니까(메피스토펠레스에 열정적..) 그 대상은 혹시 나?? (다시 한 번 왕기대...)

 

렐랴 : 전 잘생긴 남자 좋아해요.

 

베르닌 : 토끼야, 나 본편에선 좀 잘생기게 나오는 거지?

 

작가(토끼) : 단추야, 이건 렐랴 인터뷰인데 왜 자꾸 네가 끼어드니 ㅠ 그것도 대답하기 힘든 질문만 하고...

 

 

10. 데이트 상대에게서 제일 먼저 보는 것

패션 센스와 매너

 

베르닌 : 확인사살 ㅠㅠ

 

렐랴 : 당신 옷 입는 거랑 매너 같은 거 미셴카한테 좀 배워요!

 

베르닌 : 미셴카가 누구지... 아, 미샤... 왕재수 ㅠㅠ 흐흑..

 

 

11. 왕재수와 베르닌이 물에 빠진다면 누구를 먼저 구하겠는가.

 

렐랴 : 왕재수가 누구예요?

 

작가(토끼) : 미샤.

 

렐랴 : 어머, 그 멋진 남자를 왜 왕재수라고 하는 거죠! 분명 그이를 질투하는 못난 남자들의 모략이야!

 

베르닌 : 나 질투 안 해요! 안 못났어요 ㅠㅠ 걔 왕재수 맞아요...

 

작가(토끼) : 렐랴야, 누구 구할 거냐고!

 

렐랴 : 당연히 우리 꽃돌이 감독님 미셴카 아니겠어요? 다냐는 KGB 요원이니까 알아서 잘 헤엄쳐 나오겠죠!

 

베르닌 : 어, 릴리아나 페트로브나. 그래도 제 생각 조금은 해주고 있네요. 감동!!!

 

 

 

12. 당신의 매력 포인트는?

렐랴 : 그것은 바로... 지성을 수반한 미모!

 

작가(토끼) : 잘 보면 얘도 왕재수 못지 않게 자뻑...

 

렐랴 : 어머, 자뻑이라니. 그런 비속어 쓰면 못써, 토끼야!

 

작가(토끼) : 너 자꾸 그러면 이상하게 만들어버린다! 단추처럼 고생시키고.

 

 

13. 가브릴로프에서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렐랴 : 저의 아름답고 세련된 편집장 사무실~ 그리고 검은 숲 벚꽃 동산에 있는 우리 외가의 별장~

 

작가(토끼) : 저 봐. 소련인데 엄청 좋은 별장 갖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물자 부족해서 난리인데. 노멘클라투라 특권계층 철딱서니 없는 아가씨 같으니.

 

렐랴 : 나 토끼찜 아주 잘 만든단다~

 

 

토끼 : 나처럼 귀여운 토끼를 쪄먹으려 하다니..

 

 

14. 좋아하는 음악/가수/작곡가 등등

쇼팽. 모차르트. 러시아 대중 발라드 가요.

 

15. 어렸을 적 장래희망

대문호. 최고의 저널리스트.

 

16. 영화에 출연하게 된다면 맡고 싶은 역할

렐랴 : 안나 카레니나(다들 내 미모랑 어울릴 거 같다 해서)

 

17.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것

촌스러운 패션, 무매너!

 

18. 지금 하고 싶은 것

꽃돌이 감독님 미샤와의 근사한 데이트~

 

 

19. 지금 입고 있는 것

검정 레이스 칼라가 달린 하이 웨이스트의 프랑스제 원피스와 하얀 모피가 달린 푸른색 코트, 늘씬한 다리에 꼭 맞는 검정색 가죽 부츠.

 

 

20. 작가에게 한 마디

 

렐랴 : 나 너무 실속 없는 캐릭터인 것 같아. 말로만 동네에서 젤 예쁘고 인기 많은 여자라고 하면 뭐해. 잘 보면 맨날 단추한테 야단만 치고, 꽃돌이 미셴카한테는 온갖 선물 다 갖다 바치고 들이대는데 얻는 건 하나도 없어. 이 시리즈는 아무리 봐도 그 바이올린 아저씨 때문에 나랑 꽃돌이의 러브러브는 텄어. 그러니까 그 스핀오프 추리소설이든 본편에서든 나랑 꽃돌이랑 이루어줘!! 안 그러면 토끼찜 해 먹을 거야!

 

작가(토끼) : 너 원래 본편 구상할 때 되게 싸가지 없고 철딱서니 없는 캐릭터로 설정했었는데 지금 성격 많이 바뀐 거야. 나한테 고마운 줄 알아!

 

렐랴 : 차라리 싸가지 없고 철딱서니 없으면서 꽃돌이랑 이루어지는 게 더 낫단 말이야! 이게 뭐야! 나 이 시리즈 유일한 여자 캐릭터인데 여주인공은커녕 바이올린 아저씨보다도 비중 없어!

 

작가(토끼) : 이 시리즈에선 왕재수가 제일 예쁜 애니까 여자 캐릭터 비중이 낮아지는 건 어쩔 수 없잖아. 바이올린 아저씨는 왕재수가 좋아하니까 중요해... 그리고 바이올린 아저씨는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야(자기 고백)

 

렐랴 : 어머 웬일이니. 토끼 주제에 꽃돌이랑 깡패 아저씨를 좋아한대 -_-

 

작가(토끼) : 자꾸 툴툴대면 너 단추랑 결혼시킨다!

 

베르닌 : 진짜? 진짜? 그럼 나 이 시리즈 붙박이할래!

 

렐랴 : 아악!!!! 토끼악마!!!

 

 

토끼 : 메롱~

 

 

 

   

FIN

- 2015. 2. 10 ~ 11 -

 

 

.. 하여튼 이렇게 등장인물 20문답을 끝내고.. 웃자고 쓰긴 했지만 본편이랑 통하는 내용들도 있다 :) 

돌아오면 서무의 슬픔 시리즈 9편. 눈보라와 패딩 코트 올려보겠다 :)  

 

다들 가벼운 마음으로 설 연휴 맞이하시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Posted by liontamer
2015. 2. 17. 05:09

곱사등이 망아지 보고 옴, 정말 예쁘다 :) dance2015. 2. 17. 05:09

 

 

피곤해서.. 리뷰는 나중에 따로.

 

두번째로 본 건데 확실히 최고의 캐스팅으로 보니 느낌도 확 다르고... 역시 슈클랴로프는 명불허전의 귀염둥이 바보 이반, 알리나 소모바도 이 배역으로 황금 마스크를 받은만큼 정말 잘 어울렸다. 둘다 너무 예뻤다.

 

슈클랴로프의 너무나 사랑스럽고 생기 넘치는 바보 이반을 보자 연말부터 쌓여있던 업무 스트레스와 우울증, 묵은 체증이 싹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어제의 레베제프 쇼크 포함 ㅋㅋ 이것이 진정한 꽃돌이, 춤도 되고 연기도 되는 미남자의 클래스!!!

 

 

신관 맨 앞자리 가운데 앉아서.. 그의 미모와 에너지, 넘치는 유머와 유연한 춤사위를 실컷 감상 :) 신관에서는 커튼 콜을 많이 반복하지 않기 때문에(다들 제발 나와달라고 소리를 질러댔지만 ㅜㅜ) 막상 찍은 사진은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까이서 찍었다. 나중에 리뷰 올릴 때 나머지 사진들 올려보겠다.

 

우리 꽃돌이 브라보와 박수 엄청 받음 :)

 

 

받은 꽃다발을 소모바에게 바치며 뽀뽀 중 :) 좋겠다!! ㅋㅋ

 

 

 

 

:
Posted by liontamer





곱사등이 망아지 보러 마린스키 신관 옴. 이십분 후 시작. 슈클랴로프의 바보 이반!!! 아이 좋아 :)








마린스키 신관은 역시 화려하다. 구관이 진짜 '극장' 아우라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 신관도 몇번 오니 정이 든다.


꽃돌아 잘 춰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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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liontamer
2015. 2. 16. 21:37

카페에서 잠시.. russia2015. 2. 16. 21:37






시차와 여독, 추위, 누적된 피로와 레베제프 솔로르 어택(ㅠ 분명 한 몫함)으로 너무 힘들어서 오늘은 걔속 호텔에 처박혀 있음.


간밤에도 5시간밖에 못 자서 아침 먹고 온 후 방해 마시오 걸어놓고 두시간 쯤 더 자고 한시에 일어남. 그래도 자고 나니 한결 낫다. 멍 때리고 있다가 너무 배도 고프고 머리도 멍해서 호텔 카페에 내려와 차와 케익 먹는 중.


오늘 슈클랴로프의 곱사등이 망아지 보러 두어시간 후 나간다. 꽃돌이의 바보 이반으로 어제 레베제프의 '외모만 꽃 나머지는 나무토막'의 충격을 만회해야지 ㅠ






여기서도 메도빅 발견, 근데 여기 메도빅은 과일 맛이 강하네 ㅠ

쿠마야 미안해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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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liontamer

 

서무의 슬픔 시리즈

등장인물 20문답

 

 

 

 

<이런 걸 왜 쓰고 있느냐면...>

 

본편도 잘 안 풀리고 회사에서 스트레스 받아서 재미로 쓰기 시작했는데 어느덧 서무의 슬픔 시리즈가 11편까지 전개되었다. 언제 끝날지는 나도 모름... 쓰고 있으면 스트레스는 풀리는데 요즘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그런가, 여태 쓴 서무 에피소드를 다 합치면 200페이지가 넘고 이것은 작년 10월에 시작한 가브릴로프 본편보다 훨씬 많은 분량이다! 주객전도되면 안 되는데...

 

그래서 이번 페테르부르크 행을 기점으로, 다시 심기일전하여 진지하게 본편으로 들어가 보려고 한다. 뭐 그래도 회사 일로 스트레스 받으면 또 단추남 베르닌과 왕재수 미샤의 티격태격 에피소드를 쓰고 있겠지. 사실 본편 우주에서는 그렇게 우습고 실없는 캐릭터나 사건도 거의 없고, 미샤의 레닌그라드 우주를 다룬 기존 이야기들도 대부분 진지하다 보니 오랜만에 다 내려놓고 그냥 가볍게 쓰는 게 내게도 좋았던 것 같다. 자기 치유도 되고.

 

하여튼, 그래서 잠시 쉬어가는 겸, 서무의 슬픔 시리즈 등장인물별 20문답을 적어봤다. 사실 이런 것은 오래 전에 다른 등장인물들과 다른 배경으로 쓰던 시리즈에서 한 번 해봤다. 그 시리즈도 이렇게 동일한 인물들을 가지고 옴니버스 단편을 묶은 거였는데 물론 서무의 슬픔처럼 농담 모음은 아니었다. 근데 거기에도 미샤가 나왔다. 이 이야기들의 다섯 번째 에피소드에서 미샤가 제일 처음 등장했기 때문에 내겐 뜻 깊은 시리즈이다. 거기서는 등장인물들을 놓고 나중에 30문답을 해봤는데 미샤도 있었다. 물론 거기서야 미샤의 답변은 시종일관 진지하게 서술되지만. 이건 단추남과 왕재수의 서무 시리즈니까 미샤가 아니라 왕재수!!! 그는 결코 진지하게 참여하지 않는다!!

 

.. 페테르부르크 가 있는 동안 예약 포스팅으로 설 연휴 직전인 16일, 17일 이틀에 걸쳐 쪼개 올려본다. 16일에는 베르닌과 왕재수의 문답, 17일엔 스페호프, 코즐로프, 렐랴의 문답.

 

인터뷰 대상 : 베르닌, 왕재수, 스페호프, 코즐로프, 렐랴

인터뷰어 : 작가(토끼=나)

특별출연 : 쿠마

 

 

(이 시리즈는 아래 순서대로 읽기를 권장함~)

* <서무의 슬픔> 시리즈에 대해 : http://tveye.tistory.com/3427
* 주요 등장인물 소개 + 시리즈 목차 : http://tveye.tistory.com/3428
* 에피소드 0. 다닐 베르닌의 새로운 임무 : http://tveye.tistory.com/3429
* 에피소드 1. 왕재수, 행동에 나서다 : http://tveye.tistory.com/3432
* 에피소드 2. 당직실의 귀신 : http://tveye.tistory.com/3437
* 에피소드 3. 버찌잼과 초콜릿 쿠키 : http://tveye.tistory.com/3444
* 에피소드 4. 공유지의 배추와 의전의 문제 : http://tveye.tistory.com/3451
* 에피소드 5. 무도회에 간 베르닌 : http://tveye.tistory.com/3458
* 에피소드 6.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 : http://tveye.tistory.com/3466
* 에피소드 7. 보고서의 악몽 : http://tveye.tistory.com/3478
* 에피소드 8. 새해 전야의 만두 소동 : http://tveye.tistory.com/3488

 

 


* 이 글을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그럼 그 20문답의 문항들은...>

 

 

20 Questions

 

 

 

이름 :

현직 :

경력 :

 

1. 별자리

2. 나이

3. 신장과 체중

4. 머리색 + 헤어스타일

5. 눈 색깔

6. 당신의 패션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템은?

7. 가장 좋아하는 음식

8. 당신의 시그니처 칼라는?

9. 취미

10. 데이트 상대에게서 제일 먼저 보는 것

11. ..와 ..가 물에 빠진다면 누구를 먼저 구하겠는가.

12. 당신의 매력 포인트는?

13. 가브릴로프에서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14. 좋아하는 음악/가수/작곡가 등등

15. 어렸을 적 장래희망

16. 영화에 출연하게 된다면 맡고 싶은 역할

17.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것

18. 지금 하고 싶은 것

19. 지금 입고 있는 것

20. 작가에게 한 마디

 

 

다닐 베르닌

 

 

이름 : 다닐 베르닌

 

현직 : 가브릴로프 보안위원회(KGB) 지국 감시분석부 소속 행정요원, 총괄서무

 

경력

-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법학과 졸업(입학 당시 마을에 현수막 붙음)

- 현재 직장이 첫 직장임. 전공을 바탕으로 정보 분석 업무에 투입되어 나라와 시민들을 위해 봉사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으나 이해할 수 없는 서무 노릇만 줄창 하고 있음

 

 

1. 별자리 : 게자리

 

2. 나이 : 28세

 

3. 신장과 체중 : 183센티미터, 78킬로

 

베르닌 : 아니야. 나 80킬로까진 진짜 아니야... 비록 요즘 야근과 스트레스 때문에 자꾸 밤에 뭘 주워 먹어서 동그래지긴 했지만... 비록 옆구리살이 삐져나오고 뱃살이 조금 접히려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 80킬로는 아닐 것이야. 근데 체중계 올라가본지 꽤 됐으니 잘 모르겠다... 아아, 서무의 슬픔이여...

 

4. 머리색 + 헤어스타일 :

검은색. 관자놀이와 정수리 부근에 스페호프와 왕재수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생긴 새치가 드문드문 있다.

동네 이발소에서 자른 짧은 머리. 주로 고등학생이나 대학 신입생 스타일 머리를 고수한다. 머리 감고 빗질 안 해도 되기 때문에 편하다.

 

5. 눈 색깔 :

광택 없는 검은색.

종종 단추눈이라고 불린다. 본인은 매우 듣기 싫어하는 말이다.

 

베르닌 : 쫌! 나 단추 아니야! 단추눈은 곰인형한테나 달린 거라고! 이를테면 저 토끼가 애지중지하는 곰팅이 쿠마라든지...

 

쿠마 : (인터뷰어인 작가 토끼의 품에 안겨 있다가 버럭!) 나 단추눈 아니거든! 나 헝겊 동그랗게 오려붙인 눈이야!

 

 

내가 얼마나 귀여운데! 내 귀여움에 폭 빠진 토끼는 유리지갑도 폭발했어! 나 알고보면 왕재수 과야. 너 같은 단추 과 아니야!)

 

 

6. 당신의 패션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템은?

 

베르닌 : 패션이란 게 대체 뭔지 ㅠㅠ 아이템은 또 뭐야...

 

작가(토끼) : 네가 평소 고수하는 차림새에서 가장 중요하거나 마음에 드는 게 뭐냐고...

 

베르닌 : 아, 손목토시!! 사무실에서 계속 서류작업하고 때로 자 대고 칼질도 많이 하니까 매우 유용하지. 그런데 전에 손목토시 떼는 거 깜박하고 나갔더니 왕재수가 기절초풍을 하면서 날 마구 혼내지 뭐야. 남자는 스타일이 중요하다면서 국장 못지않게 일장연설을 하는 거야... 아이고 두야... 그 자식도 서무의 슬픔을 몸소 겪게 된다면 손목토시가 아름답게 느껴질 것이 분명해!

 

7. 가장 좋아하는 음식

항아리 닭고기. 뜨끈한 살랸카 수프 등등 기름기 많고 구수한 음식!

 

베르닌 : 난 이런 음식을 좋아하는데 왕재수 자식 맨날 밥 해 먹이느라 막상 내가 먹고 싶은 건 못 해 먹어. 기름진 음식이 올라오면 무용수니 몸매 관리니 뭐니 하면서 난리를 치는 통에 피곤해서 포기해...

 

8. 당신의 시그니처 칼라는?

 

베르닌 : 시그니처 칼라가 뭐지? 이 문답 너무 어렵다. 자꾸 반동분자처럼 꼬부랑 말을 쓰고...

 

왕재수 : (마침 밥 먹으러 들어왔다가 끼어듬) 이 멍충이. 너의 매력을 십분 드러낼 수 있는 너만의 색깔, 너한테 잘 어울려서 네가 고집하는 색깔 그런 거!! 아유, 바보야.. 남자는 칼라를 통해 이미지 메이킹을...

 

베르닌 : 더 모르겠다...

 

왕재수 : 내가 알아! 얘 시그니처 칼라는 겨자색과 회색이 교차되어 어우러진 색이야. 주로 아가일 무늬에 들어가는 색이지. 얘 맨날 그런 스타일에 그런 색깔 입어. 엄청 촌스럽지만 뭐 어쨌든.

 

베르닌 : 어, 그거... 그게 때도 안 타고 참 괜찮아. 저번에 의류공장 견학 갔을 때 괜찮아서 다섯 벌 한 세트 샀어. 너 한 벌 줄까?

 

왕재수 : 됐거든요!!! 아가일 무늬는 남성 패션의 적이라고!!!

 

 

9. 취미

낮잠(점점 낮잠 잘 시간이 없어지고 있음).

수영(입사 후 여름에도 헤엄치러 못 감 ㅠㅠ)

 

 

10. 데이트 상대에게서 제일 먼저 보는 것

 

베르닌 : 어... 나는... 착한 마음씨.. 그리고 살림 솜씨!

 

왕재수 : 웃기시네, 얼굴이잖아!

 

베르닌 : 아니야... 아니야... 나 여자 얼굴 별로 안 따져. 진짜야.

 

왕재수 : 아, 얼굴은 두 번째고 첫 번째는 몸매! 얘는 가슴이 빵빵하고 몸매가 글래머인 여자 좋아해!

 

베르닌 : 너 왜 그래 ㅠ 나 그런 거 아니야..

 

왕재수 : 뭘 아니야. 렐랴 좋아하잖아.

 

베르닌 : 렐랴는 좋지만... 렐랴는 마음씨가 곱고 상냥하고 요리를 잘하니까 좋은 거야.

 

왕재수 : 뻥치시네. 남자들 다 똑같음. 예쁘면 장땡이지. 울 아저씨들이 날 왜 좋아하는데~

 

베르닌 : 야! 넌 여자 아니잖아!

 

왕재수 : 어쨌든!~ 난 여자보다 더 예쁘니까~

 

 

11. 왕재수와 렐랴가 물에 빠진다면 누구를 먼저 구하겠는가.

 

베르닌 : 당연히 렐랴!! 말이라고!

 

왕재수 : 너 나 안 구하면 감시의무 소홀로 크레믈린에 있는 울 아저씨한테 이를 거야! 그리고 당직실 귀신도 도로 불러올 거야!

 

 

12. 당신의 매력 포인트는?

 

베르닌 : 당당한 키와 체격!

 

왕재수 : 땡! 단추눈!!

 

베르닌 : 단추 단추 하지 말라고!

 

왕재수 : 단추눈 귀여운데...

 

 

13. 가브릴로프에서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즐라타야 강가의 모래사장과 잔디밭. 따뜻할 때 햇살 쬐면서 누워 있거나 수영하면 완전 좋음. 그런데 입사 이후 가본 적이 없음 ㅠㅠ

 

 

14. 좋아하는 음악/가수/작곡가 등등

알라 푸가쵸바

 

 

15. 어렸을 적 장래희망

법조계 인사.

 

 

16. 영화에 출연하게 된다면 맡고 싶은 역할

 

베르닌 : 나는, 나는... 2차 대전 파일럿!! 전투를 승리에서 이끌고 민간인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영웅 역할!

 

왕재수 : 그럼 주인공이네? 감독들 자기 영화 주인공 캐스팅할 때 엄청 얼굴 따지는데...

 

베르닌 : 세상이 너무 불공평해...

 

 

17.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것

 

서무 업무!!!! 고양이 학대. 반동분자 감시. 체육대회. 나쁜 국장.

 

 

18. 지금 하고 싶은 것

정시퇴근 ㅠㅠ

 

19. 지금 입고 있는 것

아가일 무늬 스웨터. 황토색 면바지. 손목토시.

 

 

20. 작가에게 한 마디

 

베르닌 : 작가고 나발이고... 나 좀 그만 괴롭혀. 제발! 나 본편으로 돌아갈래. 본편에서는 나 이렇지 않다며... 뭔가 메피스토펠레스가 어떻고 열정적이고 어쩌고 했잖아. 거기선 서무 아닐 거 아냐... 나 들들 볶는 국장도 없을 거 아냐... 이 시리즈 나 너무 싫어. 본편 갈래... 엉엉...

 

 

작가(토끼) : 어... 본편에도 너네 국장은 나온단다 ㅋㅋㅋ

     

 

 

 

 

왕재수

 

 

이름 : 미하일 야스민

,, 그냥 미샤라고 불러주면 됨! 아니면 꽃미남이라든지..

 

현직 : 가브릴로프 시립극장 예술감독

 

경력

- 레닌그라드 발레학교(바가노바 아카데미) 졸업

- 레닌그라드 키로프 극장 수석무용수, 안무가

-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 수석무용수, 안무가

- 각종 국내외 댄스 페스티벌 연출 및 감독 역임

- 무수한 국내외 무용/예술 관련 콩쿠르 및 어워드 수상

- 공훈예술가 서훈

(... 이건 몇 년 전 받았다가 감옥 가면서 박탈당함 ㅜㅜ)

 

 

1. 별자리 : 전갈자리

 

2. 나이 : 25세

 

3. 신장과 체중 : 177센티미터, 61킬로

 

베르닌 : 너 177 안 되는 거 같던데?

 

왕재수 ; 아니야!

 

베르닌 : 나 감시요원이라서 너 서류 봤는데... 176.6인가 7...

 

왕재수 ; 반올림!!!

 

베르닌 : 반올림하면 180도 되겠네. 나도 끝자리 버리면 180... 우리 키 같네!

 

왕재수 : -_- 멍충이... 그래도 난 다리가 기니까 ㅠㅠ

 

베르닌 : 너 너무 말랐어. 다이어트 그만해. 기름기도 좀 먹고.

 

왕재수 : 나 춤출 땐 원래 더 나갔었어! 근데 너네가 고문해서 죽을 뻔 했잖아! 아파서 근육량이 줄어서 그런 거야!

 

베르닌 : 웃기시네, 바이올린 깡패한테 잘 보이려고 다이어트해서 그런 거잖아!

 

왕재수 : 너 로만한테 내 몸무게 얘기하면 죽을 줄 알아!

 

 

4. 머리색 + 헤어스타일

칠흑 같은 검은색. 화관처럼 살짝 흐트러진 풍성한 검은 머리.

 

왕재수 : 나 원래 머리 더 길고 멋있었는데 감옥 가서 끔찍한 죄수복 입고 머리도 깎였어 ㅠ 되게 가위질 못하는 놈한테 걸려서 진짜 열 받았어. 근데 아프고 나서 그런가 머리 빨리 안 길어, 지금 스타일 진짜 맘에 안 들어. 시골이라 괜찮은 미용실도 없어. 아, 시골 싫어. 남자는 헤어스타일이 중요한데. 칫.

 

5. 눈 색깔

 

왕재수 : 호수처럼 깊고 밤하늘처럼 아름다운 검은 눈!!! 긴 속눈썹이 화룡점정! 나의 이 아름다운 눈에 반한 남녀들이 줄을 서고 볼쇼이에서는 검은 눈의 천사라고 칭송을 받았으며 무수한 연애편지에 당신의 보석 같은 검은 눈에 넋을 잃고 빠져들고 말았어요라는 글귀가 넘쳐났지!

 

베르닌 : 근데 너나 나나 똑같이 까만 눈인데 왜 너는 호수처럼 깊고 밤하늘처럼 아름답고 보석 같은 눈이고 나는 단추눈이야 ㅠㅠ 작가 미워.

 

왕재수 : 다이아몬드랑 흑연은 둘 다 탄소로 되어 있지만 결합구조에 따라 갈린다지..

 

베르닌 : 왕재수. 반동분자. 싸가지...

 

 

6. 당신의 패션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템은?

 

왕재수 : 패션의 완성은 얼굴! 하지만 이것은 1단계일 뿐. 진정 중요한 것은 완벽한 몸매와 비율이라고 할 수 있지. 일단 미모가 받쳐주기 때문에 난 아무 헝겊 쪼가리나 걸쳐도 다 예쁘지만... 극장에 나갈 때는 어쨌든 감독이니까 좀 얌전하게 입으라는 말을 들어서 심플하게 무채색 계열의 핏이 잘 맞는 옷이나 바랜 진으로 기본 세팅을 하고 여기에 스카프나 멋진 신발로 액센트를 가미하지.

 

베르닌 : 그게 얌전하게 입은 거야? 완전 날티 나. 맨날 아르마나 입고...

 

왕재수 : 아르마니!!!!!

 

베르닌 : 스카프는 에르미..

 

왕재수 ; 에르메스라고, 이 바보야!!!

 

베르닌 : 뭔지 모르지만 역시 넌 부르주아 반동분자...

 

 

7. 가장 좋아하는 음식 :

제대로 육수를 내어 끓인 따끈한 보르쉬, 담백한 생선찜. 사과파이.

 

 

8. 당신의 시그니처 칼라는?

 

왕재수 : 내가 좋아하는 색은 기본적으로는 검은색과 진홍색이야. 전자는 내 머리와 눈 색깔에 맞고, 후자는 내 하얀 피부와 찰떡궁합이지. 하지만 어두운 녹색이나 청회색도 자주 활용해. 무대 올라가던 시절에는 특히 라 바야데르나 해적의 세루리언 블루 의상이 굉장히 잘 어울렸지. 보통 나처럼 미모가 뛰어나고 피부가 곱고 흰 사람은 무슨 색이나 잘 어울리는 법이거든. 심지어 분홍색마저 잘 소화하지만 개인적으로 그건 좀 별로야.

 

베르닌 : 그래도 렐랴가 짜준 그 분홍색 목도리는 예뻤는데.

 

왕재수 : 그거 두툼해서 수도관 싸매면 딱이었는데 좀 아깝다... 근데 너 왜 그거 안 두르고 다녀? 렐랴가 한 땀 한 땀 떠서 좋다면서.

 

베르닌 : 분홍색이라서 ㅜㅜ

 

왕재수 : 하긴 넌 피부가 칙칙하니 분홍색은 쥐약이겠다.

 

베르닌 : 싸가지 없는 놈...

 

 

9. 취미

락음악 감상, 안무하기, 독서, 파티에서 춤추고 놀기

 

 

10. 데이트 상대에게서 제일 먼저 보는 것

 

왕재수 : 큰 키와 두툼한 손과 골격 구조!

 

베르닌 : 골격 구조는 왜!

 

왕재수 : 그래야 어떻게 응응응을 할지 견적이 나옴!

 

베르닌 : 너는 대체!! 그럼 두툼한 손은!

 

왕재수 : 난 두툼하고 거친 손으로 쓰다듬어주는 게 좋더라고.

 

베르닌 : 나 키 크고... 손 두툼하고 맨날 서류작업해서 거친데... 으윽..

 

왕재수 : 넌 단추눈이니까 거기서 무효!

 

베르닌 : 단추 단추 하지 말라고!!!

 

왕재수 : 이상하네. 너도 나랑 하고 싶었어? 근데 왜 아닌 척.

 

베르닌 : 아니야! 아니라고! 바이올린 아저씨한테 가!

 

왕재수 : 그러니까 로만은 키도 크고 골격 구조도 완전 딱이야! 손은 거칠기보단 섬세한 타입이지만 대신 악기 연주자라 그런가 손재주가 끝내줘! 그 손으로 어루만지면...

 

베르닌 : 알고 싶지 않아, 너와 바이올린 아저씨의 응응에 대한 얘긴...

 

 

11. 코즐로프와 베르닌이 물에 빠진다면 누구를 먼저 구하겠는가.

 

왕재수 : 단추!!

 

베르닌 : (감동) 어, 정말? 진짜? 고마워... 정말 의외네. 나를 구하다니.. 내가 여태 널 너무 오해했나봐...

 

왕재수 : 로만이 수영을 엄청 잘 하더라고.

 

베르닌 : 나도 수영 잘해. 동아리도 하고 대회에도 나갔는데..

 

왕재수 : 그럼 아무도 안 구해! 내 몸 하나 건사하면 됐지!

 

작가(토끼) : 안 돼... 한 사람 골라야 돼! 음, 코즐로프와 베르닌이 둘 다 쥐가 나서 수영을 못한다면?

 

왕재수 : 이 토낀 뭐니... 아 귀찮아. 몰라, 자기 살 길 자기가 개척하라 해.

 

작가(토끼) : 그래도 하나만 골라보렴~ 예쁜 네가 하나만 골라보렴~

 

왕재수 : (예쁘다고 해서 기분 좋아짐) 단추!

 

베르닌 : 오오...

 

작가(토끼) : 왜?

 

왕재수 : 단추가 밥을 더 잘해...

 

 

12. 당신의 매력 포인트는?

 

왕재수 : 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반짝반짝 다 예쁜데 어떻게 하나만 고르지...

 

베르닌 : 그래도 잘난 얼굴이지 뭐. 맨날 얼굴값 하는 놈 ㅠㅠ

 

왕재수 : 근데 내 몸매가 또 끝내주는데...

 

베르닌 : 네 몸매 따윈 알고 싶지 않아!

 

 

13. 가브릴로프에서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왕재수 : 이따위 깡시골에 무슨 좋아하는 곳이 있어!!! 으윽..

 

 

14. 좋아하는 음악/가수/작곡가 등등

 

클래식 : 차이코프스키.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예프. 라벨. 바그너. 말러 등등

대중음악 : 블라지미르 브이소츠키. 데이빗 보위. 루 리드. 도어스 등등

 

 

15. 어렸을 적 장래희망

우주비행사. 무용수

 

 

16. 영화에 출연하게 된다면 맡고 싶은 역할

 

왕재수 : 나 발레 필름 많이 찍었어. 그리고 무용수 시절에 렌필름이랑 모스필름 감독들이 자꾸 로맨스 영화랑 사극 영화 찍자고 러브콜 보내서 거절하느라 죽는 줄 알았어.

 

베르닌 : 우와, 그냥 찍지...

 

왕재수 : 크레믈린에 있는 울 아저씨가 찍지 말랬어.

 

베르닌 : 왜?

 

왕재수 : 난 가뜩이나 예뻐서 인기 많은데 더 인기 많아지면 아저씨가 내 스토커들 관리하기 힘들다고.

 

베르닌 : 스토커들을 왜 그 아저씨가 관리해? 그 관리란 건 무슨 뜻이야?

 

왕재수 : 자꾸 꼬치꼬치 묻지 마. 모르는 게 약이야.

 

 

17.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것

검열! 예술가 탄압! 공산주의! 독재! 고문!! 시골!!!!!!!!!!!!!!!!!

(+ 바퀴벌레, 곱등이, 쥐 ㅠㅠ)

 

18. 지금 하고 싶은 것

로만이랑 화끈하게 응응응을...

 

19. 지금 입고 있는 것

목욕 가운.

 

20. 작가에게 한 마디

 

왕재수 : 야, 토끼! 나 본편 안 갈래. 어차피 본편도 시골, 여기도 시골이면 이 시리즈가 더 나은 거 같아. 집사도 있고... 나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되고. 본편 가면 자꾸 폼 잡고 갖은 고생 다 하고 온갖 진지한 얘기만 해야 되고... 본편 시리즈에선 나 막 고문도 받고 심지어 칼로 손목도 그었댔어. 정말 저질이야. 빨랑 이 시리즈 다음 회 써줘. 내가 모스크바나 레닌그라드로 금의환향하는 걸로! 그리고 단추는 데려갈래. 도시에서도 집사는 필요해. 있으면 편할 거 같아.

 

베르닌 : 내가 왜!!! 난 본편 갈 거야! 나 이 시리즈 너무 싫어!!

 

작가(토끼) : 실컷 떠들어라. 어차피 너네는 내 노리개! 단추 너는 이 시리즈에서 내 업무 스트레스를 푸는 용도! 왕재수 너는 본편에서 나의 창작 열망을 대리하여 영원히 고통 받는 존재!

 

왕재수 : 야, 단추야! 저 토끼 유리지갑 좀 밟아버려! 국세청 좀 데려와.

 

베르닌 : 난 서무라서 힘이 없어. 크레믈린의 너네 아저씨한테 부탁해 ㅠㅠ

 

작가(토끼) : 크레믈린 아저씨도 내가 만들었지롱~ 내 손가락 하나면 모가지!

 

왕재수, 베르닌 : 악마... 토끼악마...

 

 

 

토끼 : 이렇게 귀여운 나에게 토끼악마라니!

 

...

 

 

번외편 등장인물 20문답은 내일, 스페호프와 코즐로프와 렐랴의 답변으로 이어진다.

얘들 등장 비중은 단추와 왕재수보다 적지만 이들이 풀어놓는 의외의 이야기를 놓치지 마세요~ ㅋㅋ

 

 

 

 

 

 

 

:
Posted by liontamer

 

나중에 리뷰는 따로 올릴 거고.. 돌아와서 자기 전에 아주 간단한 메모만...

 

미하일로프스키 극장 라 바야데르는 전에 사라파노프와 세미오노바 버전으로 봤을 때도 사라파노프 하나 건졌는데...  마린스키와 비교하면 많이 딸리는 레퍼토리라 아마 빅토르 레베제프 아니었으면 안 봤을 거다. 걔가 궁금해서 환율 떨어졌어도 다른 티켓에 비하면 결코 싸지 않은 티켓 끊어서 4째 줄에서 봤는데...

레베제프는 많이 실망스러웠다. 뭐 내가 마린스키 쪽을 많이 보기도 했고 심지어 최근 본 게 사라파노프와 슈클랴로프였으니 눈이 높아졌다는 건 인정한다.

 

그러나 레베제프는... 슬프게도 연기가 전혀 안됐다.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라틴계 미남처럼 생겼고 키에 비해 비율도 좋긴 했지만, 이 사람은 솔로르를 소화하기엔 아직 역부족이었다, 젊어서 그런 건지... (근데 24살이면 그렇게까지 많이 어린 것도 아니잖아) 테크닉도 편차가 심했다. 피루엣은 좋았고 도약은 지나치게 급했다. 다리 동작은 좀 더 정련해야 할 성 싶다. 특히 카브리올.. 게다가 파트너링이 부족했다... 니키야 역의 안젤리나 보론초바가 데뷔 무대였고 감자티 역의 보르첸코가 키와 체격이 있는 편이라 힘들것 같긴 했지만.. 그래도 아다지오의 책임은 90% 이상 남자 무용수에게 있단 말이다! 이 사람 바가노바 출신이라 잘 알텐데..

 

솔직히 말해서 미하일로프스키니까 수석으로 승급했지 마린스키랑 비교해보면 냉정하게 말해 제2솔리스트 정도 수준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미안해, 레베제프야 ㅠㅠ 그래도 뛰어난 외모와 자태, 화려한 피루엣 덕에 브라보는 많이 받았다만... 너 마린스키 무대였으면 브라보 못 받았다...

 

뭐 아직 젊으니까.. 슈클랴로프도 예전엔 파트너링 별로였는데 지금은 노력 끝에 꽤 좋아졌으니...뭐 테크닉은 익히면 되는데.. 레베제프야, 제발 연기 좀 어떻게 해보렴 ㅠㅠ 나 너 보려고 앞줄 끊었는데 솔직히 돈 좀 아까웠어..

 

보론초바는 예쁘고 청순했지만 니키야 소화하기엔 아직 역부족... 3막 아다지오에서 크게 휘청하며 넘어질 뻔 했는데 그때 다친 건지.. 스카프 춤 출 때 갑자기 보론초바 대신 파 드 트루아의 1번 췄던 아나스타시야 소볼레바가 대타로 등장, 끝까지 춤... 부상당한 거 같다... 우짤꼬... 커튼 콜때도 안 나옴... 큰 부상 아니길. 미하일로프스키에서는 아직 아무 말 없다.

 

그리고 군무는 대재앙이었음... 아라베스크 유지 못하고 자빠질 것처럼 계속 휘청거리는 애가 두번째 줄에 둘이나 있었음... ㅠㅠ 계속 틀리고..

 

짧게 쓰고 자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답답해서 많이 썼네. 어제 토스카는 기대 안하고 갔는데 상당히 괜찮았는데... 으윽... 아마 내가 오페라 쪽은 별로 전문적이지 않으니 관대하고 발레는 (꽃돌이가 나오지 않는 한) 자꾸 눈에 흠이 잡혀서 그런가보다 ㅠㅠ

 

참, 사라파노프와는 달리 레베제프는 탑과 하렘 팬츠 입고 나옴! 그 솔로르 의상 :) 그래서 눈호강은 했다. 너 이 녀석 춤이랑 연기가 맘에 안 찼으니 그거라도 해야지 ㅠㅠ

 

 

 

앞에서 4째 열이었음에도 불구.. 라 바야데르는 흰옷 망령들이 많이 나와서 참 사진 찍기 힘들고.. 앞에 큰 머리들도 있고... 이때 너무 피곤해서 사진은 이거 딱 한 장 건짐 ㅠ 파란 탑과 팬츠 입은 솔로르 역 빅토르 레베제프. 커튼 콜 받는 니키야는 보론초바 아니고 소볼레바.

 

... 자야겠다. 피곤하다. 사라파노프와 슈클랴로프가 아주 훌륭한 솔로르였다는 걸 새삼 깨달은 하루였다. 내일 곱사등이 망아지의 슈클랴로프 보며 오늘의 실망을 풀어야겠다. 근데 내일 영하 17도란다 꾸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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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