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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12.09 12.9 월요일 밤 : 엄선된 곳들이었던 빌니우스 카페들, 수면불량
  2. 2024.12.08 12.8 일요일 밤 : 작은 도자기 컵, 분노, 계엄과 학교와 사무실 꿈, 장미 3
  3. 2024.12.08 일요일 오후
  4. 2024.12.07 12.7 토요일 밤 : 더러운 놈들 2
  5. 2024.12.07 분노가 진정되지 않는 토요일 오후, 장미의 기적 재출간
  6. 2024.12.06 12.6 금요일 밤 : 바쁜 하루, 이른 아침 탄수화물 과다섭취, 분노
  7. 2024.12.05 블라지미르, 발로쟈
  8. 2024.12.05 12.5 목요일 밤 : 스스로 연말 선물 지름, 원래 너희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이것들아 2
  9. 2024.12.04 12.4 수요일 밤 : 충격과 공포의 간밤, 너무 피곤함
  10. 2024.12.04 새벽
  11. 2024.12.03 12.3 화요일 밤 : 아침 별다방, 노동과 밥벌이는 고되다, 빨리 온 그놈
  12. 2024.12.02 12.2 월요일 밤 : 녹초 2
  13. 2024.12.01 이딸랄라 기억
  14. 2024.12.01 12.1 일요일 밤 : 달력 넘김, 고스찌, 피로 덜 풀림, 이번주는, 쓰고 싶은데
  15. 2024.12.01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작별인사 (야니나 구로바, 비슈뇨바 홈페이지 기고 기사/원문)
  16. 2024.12.01 일요일 오후
  17. 2024.11.30 11.30 토요일 밤 : 리시안셔스, 토요일 출근해서 피곤함, 매일 밤의 기도
  18. 2024.11.30 토요일 오후
  19. 2024.11.29 11.29 금요일 밤 : 바쁘고 피곤한 하루, 부모님 들렀다 가심, 금요일에 제일 지저분한 집, 내일도 노동 2
  20. 2024.11.28 라 바야데르 3막 클립(슈클랴로프 & 테료쉬키나)
  21. 2024.11.28 11.28 목요일 밤 : 아침 별다방 점심 카페, 너무 피곤하고 지침, 우리 의견만 일치하면 뭐하나
  22. 2024.11.27 11.27 수요일 밤 : 종일 강펀치
  23. 2024.11.26 신데렐라 파이널 클립
  24. 2024.11.26 11.26 화요일 밤 : 어쩔수 없이 재택근무는 했다만, 두려운 내일, 기운을 모아...
  25. 2024.11.25 Ne Me Quitte Pas 날 버리지 마





점심 먹고 잠시 들렀던 회사 근처 작은 카페. 빈티지풍에 목재 위주로 되어 있고 아늑해서 내가 좋아하는 곳이다.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아 모르지만 다들 여기 커피가 맛있다고 하고 원두도 팔아서 재작년 빌니우스에 첨 갈때 여기서 원두를 한봉지 사갔었다. 이번 빌니우스 여행 때 좋은 카페들에서 맛있는 카푸치노, 카페 라떼, 플랫 화이트를 마셔본 결과 돌아와서도 몇군데에서 시도를 해봤으나 결론은 ‘아 내가 맛있는 카페들에서만 마셔서 괜찮았던 거구나! 영원한 휴가님이 추천해주셨던 엘스카 이딸랄라 테이스트 맵은 정말 맛있었던 곳이구나 (+ 카페 에벨, 카페마)’ 였음. 하나같이 맛이 없어서... 그래서 검증된 이곳에서 라떼라도 마셔보고팠으나 중노동과 수면불량 때문에 그냥 밀크티 마심. 디카페인 라떼는 더치 콜드브루 라떼 뿐이라 포기...


* 그건 그렇고 빌니우스에선 내 입맛엔 엘스카가 제일 맛있었다. 우유를 많이 넣고 좀 연해서 그런가보다.



잠이 매우 모자란 채 출근. 새벽 4시 반에 퍼뜩 깬 후 더 못 자고 뒤척이다 5시 반에 일어나 출근했고 종일 바빴다. 나라 꼬라지에 분노와 울화가 치미는데 일은 또 왜 이렇게 많나... 너무 피곤하다. 잠도 너무 모자라고... 오늘은 늦지 않게 자야겠다. 그런데 수괴와 부역자들 때문에 화가 나서 요즘 잠이 잘 안온다. 나쁜 ㅅㄲ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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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어제 도착한 꽃들 다듬고 남은 짜투리들을 따로 조그만 도자기 컵에 꽂아두었다. 이건 오래 전에 카를로비 바리에 갔을 때 온천수를 마시려고 샀던 컵이다. 몇년 후 다시 가서 좀더 큰 컵을 샀는데 돌아와서는 이걸로 뭘 마실 일이 없어서 이런 짜투리 꽃들을 꽂아두는 용도로 쓰고 있다. 
 
 
 

 
 
 

주말은 전혀 평온하지 않게 지나갔다. 나라가 평온하지 않고 엉망진창인데 일상이라고 평온할 리가 없다. 오늘도 아침부터 질서 있는 퇴진 어쩌고 하는 망발에 귀가 썩는 것 같았다. 분노가 가시지 않는다. 이 분노가 점점 더 커지면 커졌지 사그라들 것 같지는 않다. 
 
 
자다깨다 하며 밀린 잠을 조금씩 보충하긴 했지만, 한시간 쯤 자다 깨고 또 꿈을 꾸고 등등 너무 피곤하게 잤고 깨어났을 땐 뒤통수가 너무 쑤시고 아팠다.
 
 
마지막 꿈은 확연히 어제의 망할놈의 현실이 반영되어서 회사가 이미 계엄 치하에 들어가 있고 이미 예전에 (암울했던 시기에) 퇴임한 옛 최고임원이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고, 나는 친구이자 헤드쿼터본부장인 동료와 계엄에 대해, 변해버린 현실에 대해 뭔가를 얘기하다가(아마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뭐 이런 얘기였던 것 같다) 눈물을 흘리면서 사무실로 갔다. 꿈속에서 사무실은 우리 회사 건물이 아니고 옛날에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 건물이었다. 꿈에서 옛 학교가 나오면 십중팔구 악몽이다. 학교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아서겠지만 학교가 나오면 항상 계단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지고 2층으로 올라가면 낯선 교실들과 이상한 방들이 있고, 혹은 내가 공부했던 교실과 그 복도는 어둠과 괴기스러운 공포와 심지어 귀신들도 어른거리는 공간이 되곤 한다. 이번 꿈에서도 어떤 교실들에는 그런 무서운 것들이 출몰한다는 느낌이 어렴풋이 있었지만 하여튼 사무실+교실 문을 열어보았다. 빈 책상들이 워크숍 대형으로 놓여 있었는데 아무리 많아봤자 15명 안팎이 앉을 자리라 '정말 세월이 흘렀구나, 이제 한 학급 학생 수가 참 적구나' 라고 생각하며 내 가방을 찾다가 실패했다. 나에게 사무실은 학교 같은 곳이려나... 꿈에서 깨어났을 때 머리가 너무 아팠고 여전히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꿈속에서 계엄이 두렵고 마음이 아파서 흘린 눈물이 남아 있었나보다. 
 
 
이번주도 해야 할 일들이 매우 많다. 내일도 새벽 출근해야 한다. 패딩을 입고 가야겠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여전히 떠난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이번에 온 꽃들은 별로 기대 안했는데 은근히 예쁘다. 이 줄리에타 장미가 화형이 참 예뻐서 보고 있으면 마음의 위안이 된다. 장미 사진들 아래 접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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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24. 12. 8. 16:42

일요일 오후 tasty and happy2024. 12. 8. 16:42

 

 

 

 일요일 오후. 내일 출근을 위해 오늘은 디카페인 홍차를 마셨다. 그래서 맛도 없었고, 시국이 이 모양이라 계속 기사를 찾아보고 빡침의 연속이어서 평온한 주말 오후 따윈 없어짐. 자꾸 욕만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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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24. 12. 7. 21:32

12.7 토요일 밤 : 더러운 놈들 fragments2024. 12. 7. 21:32

 

 

 

아침에 도착한 꽃을 다듬어놓고 다시 자고 싶었는데 대국민사과인지 담화인지 나발인지를 한다고 해서 잠을 더 안 자고 그걸 봤다. 정말 실시간으로 쌍욕이 쏟아져나왔다. 방금 정족수 미달로 투표 불성립이 선언되었다. 이럴 거라 생각은 했지만 어제 워낙 대형폭로들이 이어졌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일말의 희망을 가져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 저 망할놈의 담화, 그리고 쓰레기놈들의 담합꼬라지를 보자 안될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길게 가야 하는 싸움이라고 생각했고 저놈들 작태를 보며 기대도 안했지만 막상 이런 꼴을 보니 정말 눈물이 나고 너무 화가 난다. 수괴. 공범. 부역자들. 간보는 놈들. 정말 몇년 동안 할 욕설이 오늘 다 쏟아져나온 것 같다. 가슴이 너무 답답하다. 분노와 울화가 치밀어서 마음이 정리되지 않아 오늘 메모는 여기서 줄인다. 

 

 

 

 

 

 

 

아침에 찍어둔 꽃 사진들만 아래 접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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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평온한 토요일 오후여야 하지만 간밤에 이어 오늘도 내내 분노에 휩싸여 있다. 늦잠이나 더 잘 것을 일찍 깨서 무슨 대국민담화니 사과니 한다기에 그것을 또 라이브로 보고, 거기에 저 망할 부역자들과 간잡이놈들이 합세하는 것을 보니 분노가 들끓어서 매분 매초 험한 말이 계속 입에서 튀어나온다. 이 꼬라지를 보니 오늘 부결될 것 같은데 화나고 불안하고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심정이다. 



 
 

 

 

 

장 주네의 <장미의 기적>이 재번역 출간되어 주문했다. 나는 아주 오래 전에 고려원에서 번역 출간한 버전을 가지고 있는데 작은 문고본이고 글씨도 너무 작아서 최근 다시 읽으면서 '아, 이 책도 재번역되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었다. 이 소설은 꽃의 노트르담보다 훨씬 짜임새가 좋고 잘 쓴 작품이고 상당히 정서적인 울림이 강하다. 문체의 아름다움이 아주 강렬하다. 그러면서도 후기의 다른 소설이나 연극에 비해 좀더 심플하다. 꽃의 노트르담이나 후기 작품들보다 간결하면서도 담백한 편이다. 무척 좋아했던 소설이다. 나라 꼴이 이 모양이라 문장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그냥 페이지들을 넘겨보기만 했는데 번역이나 단어, 이름 표기 등등 이것저것을 보니 역시 옛날 고려원 번역본은 중역본이거나 아니면 옛날식이었거나 싶다. 고려원 판본도 불어 전공 교수님이 번역했다고 나와 있기는 하다만... 그런데 또 그 고려원 번역본은 번역문장들이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 의역을 아름답게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만... 이런 김에 브레스트의 퀘렐도 번역본이 나와주면 정말 좋겠다. 꽃의 노트르담도, 장례식도 브레스트의 퀘렐도 모두 번역본이 없어 이십여년 전에 아마존에서 영역본을 구해 읽었는데... 퀘렐은 아주 근사한 소설이고 상당히 도스토예프스키적인(물론 주네 식의) 느낌도 있어서... (사실 최근에 퀘렐도 다시 읽으려 했으나 이십여년 전 샀던 영역 페이퍼본은 이제 글씨가 너무 흐려지고 작아서 노화를 슬퍼하며 아아아, 이거 제발 번역본 나왔으면...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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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많이 피곤했지만 지하철 파업 가능성 때문에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출근. 더 일찍 도착했으나 편의점에 들렀다가 오픈 시간인 7시에 맞춰서 별다방에 갔다. 아침엔 단백질을 먼저 먹어야 하는데 오늘은 그냥 크림치즈 베이글을 먹으며 자폭했다. 어제 귀찮아서 달걀을 삶아두지 않았음... 

 

바쁜 하루였다. 면접에도 들어가야 했고... 바쁘게 일한 후 퇴근했다. 종일 틈틈이 뉴스를 찾아보며 경악에 또 경악을 거듭하고 있다. 계엄 선포의 그날 밤 그렇게도 공포에 떨었던 것이 헛된 공포가 아니었다. 해프닝이라는 사람들도 있고 그냥 비웃는 사람들도 있었기에 내가 너무 과민하고 예민했던 것인가 라는 생각도 잠깐 들었던 적이 있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제는 분노가 치밀어서 속보가 뜰 때마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심한 비속어가 입에서 튀어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알량한 자기들의 자리 유지를 위해 시간을 벌겠다며 어처구니없는 망발을 지껄이고 있는 놈들을 보니 더더욱 분노가 치민다. 정말 끔찍하고 충격적이다. 너무 화가 나고 몸이 떨린다. 추운 밤에 여의도에 나가 있는 시민들에게 감사하고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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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24. 12. 5. 20:14

블라지미르, 발로쟈 dance2024. 12. 5. 20:14





그가 떠난지 거의 20일, 스몰렌스크 묘지에 안장된지 2주가 흘렀다. 여전히 매일 이 사람을 생각한다. 충격은 조금 누그러졌지만 슬픔과 애달픔, 안타까움, 가엾은 마음은 계속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사람에 대해 마음을 모두 담아 글을 쓰기는 지금도 어렵다. 그의 무대에 대해, 예술가로서의 유일무이함에 대해서도, 아픈 마음에 대해서도. 마치 내 마음 속의 불이 하나 꺼진 것만 같다... 때때로 그가 떠나기 직전과 그 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에는 것 같다. 이제 행복하고 평안하기를, 안식하며 자유롭게 춤추고 있기를 매일밤 기도한다.



사진들은 모두 Mark Ol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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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업무 스트레스가 과도해서 며칠 전 록시땅에서 나온 연말 어드밴트 캘린더를 질렀고 어젯밤에 도착했다. 조그만 놈들이 쏠쏠하게 쓸만한 게 많다. 너무 심하게 작은 것들도 있지만... 비누는 이미 예전에 다른 거 살때마다 받은 조그만 게 많아서 좀 빠졌으면 싶었지만 역시나 여기에도 두개나 들어있네... 원래 이건 하루에 하나씩 뜯어보는 건데 상자 부피도 커서 자리를 차지하는데다 진득하게 하나씩 뜯어보는 성향도 아니라서 한꺼번에 개봉함. 
 
 

 
 
포장 상자는 이렇게 생겼고 원래는 아래 사진의 안쪽 박스에서 하나씩 뜯어보게 되어 있다. 
 
 

 
 
 
 

 
 
근데 다 뜯어보니 꼭 계란 박스 같음... 
 
 
오늘은 온라인 회의를 해야 해서 재택근무를 했다. 아침에 조금 더 잘 수 있었던 것과 출퇴근에 시달리지 않은 것이 낙이었다. 그외에는 엄청나게 바빴다. <제가요 이걸요 왜요>가 일상적인 직원들이 많아서 피곤하다. 이넘아 이 일은 원래 네가 해야 하는 거거든... 남의 일이 아니거든 흐흑... 
 
그날이라 몸도 아프고... 여러가지로 피곤하다. 
 
 
... 계엄이 고도의 통치행위라니... 참 어이가 없고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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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간밤 너무 피곤해서 열시 좀 넘어서 살풋 잠들었다가 깼을 때 회사 간부 단톡방에 계엄이 선포됐다는 한 줄이 올라와서 이건 지금 회사 상황에 대한 농담인가 싶어 짜증이 났는데 곧 실시간으로 비상계엄 선포 뉴스와 링크가 올라오고, 얼마 후 계엄 포고령이 올라와서 잠이 다 달아나고 너무 놀라고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국회 의결, 이후 한시간 정도 더 잠을 못 이루고 계속 상황을 지켜보았고 온몸이 너무 떨리고 트라우마가 재생되어 약을 더 먹고 간신히 잠들었다. 지금은 그래도 웃을 수 있지만 밤중엔 정말 무서웠고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니 국회 상황, 월담해 의결하러 들어간 의원들, 국회 앞을 막아선 시민들, 국회로 진입하는 계엄군 등등 실시간으로 보면서 머리가 멍멍했다. 사람들마다 반응의 정도는 달랐는데 나는 정말 무서웠다. 이렇게 허술하고 무식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아니, 무식하니까 오히려 유혈사태가 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다섯시간 쯤 눈 붙이고 평소보다 늦게 출근했다. 다들 눈이 퀭했다. 그 와중에 또 엄청 바쁘게 일했다. 그날 때문에 몸도 너무 아팠다. 귀가하면서도 계속 기사들을 예의주시하고 있음. 춥고 힘들다. 빨리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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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24. 12. 4. 01:21

새벽 fragments2024. 12. 4. 01:21

자려다 회사 간부 단톡방에 공유된 뉴스에 너무 놀라 그때부터 계속 기사 보며 공포에 질려 있다.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너무 심장이 떨린다. 해제 요구 가결은 됐는데 과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충격이 너무 심하고 몸이 떨려서 약을 더 먹고 자보려 하는데 너무 무섭다. 이 모든 상황에 너무 충격이고 예전 상황들의 트라우마도 되살아난다. 기도하며 조금이라도 자보려 한다. 비상 상황이라 내일, 아니 이미 오늘 회사도 아주 뒤숭숭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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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아침에 너무 피곤한데다 사무실에 일찍 들어가기가 싫어서 7시 도착했을 때 막 문을 연 별다방에 들어가 삼십여 분 가량 앉아 있었다. 민트티를 반 잔 가량 마셨다. 피낭시에를 시키긴 했는데 그건 안 먹었고 집에서 싸온 삶은 달걀을 1개 먹었다. 이 사진을 보니 그 피낭시에가 아직도 가방 안에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음. 내일 사무실에서 먹어야겠다. 그런데 일곱시에 들어가서 그런지 아직 매장이 따스하지 않아서 스카프를 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앉아 있자니 좀 추웠다.

 

 

 

 

 

무척 바쁜 하루였는데 뭣때문에 바빴는지조차 기억이 안 난다. 정신없고 피곤하고 지치는 하루였다. 내일도 그럴 것 같다. 몸이 너무 피곤했고 귀가하는 지하철 안에서 정신없이 암흑처럼 졸았다. 머리도 너무 아프고 배도 아프더니만 저녁에 붉은 군대가 슬며시 도래했다. 주말부터 온몸이 쑤시고 아팠기 때문에 좀 일찍 올 것 같긴 했다. 주말에 오면 좋았을텐데 하필 주중... 내일도 춥다는데 출근도 노동도 힘들 것 같다. 일단 좀전에 진통제를 먹었다. 곧 자러 가야겠다. 회사는 여러가지로 힘든 상황이다. 노동과 밥벌이는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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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24. 12. 2. 20:38

12.2 월요일 밤 : 녹초 fragments2024. 12. 2. 20:38






다섯시간쯤 불량수면을 취하고 새벽 출근했다. 그나마도 새벽 2시와 5시에 깼다. 너무 피곤해서 귀가하는 지하철 안에서 정신없이 졸았고 원당역에서 화정역 사이 1분 가량도 너무 곤하게 졸았다. 
 
 
바쁜 하루였다. 월초라 오전엔 전체 간부회의에 들어갔는데 최고임원이 사실관계가 정확하지 않은 일로 재촉과 질타를 해서 너무 빡쳤다. 남들이 떠넘긴 일들도 짜증나기 그지없다만... 하여튼 그러고는 또 오후에 그 망할 놈의 신규과제 때문에 외근... 어떻게 해야 이 과제에서 벗어나거나 혹은 최대한 안전망을 만들면서 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로 걱정이 되는 과제이다. 해야 할 일들도 너무 많고... 
 
 
돌아와서도 너무 피곤하고 몸이 무거웠다. 그런데 이제 겨우 월요일이다... 기운을 내자. 곧 자러 가야겠다. 잠이 너무 모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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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2. 1. 22:02

이딸랄라 기억 2024 riga_vilnius2024. 12. 1. 22:02





여행을 다녀온지 한달 가량 흘렀다.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고 리가와 빌니우스에서 보낸 한달은 꿈처럼 안개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사진을 보면 다시금 그 순간들이 생생해진다. 여행 그날그날의 메모들은 돌아와서 첨엔 다시 뒤적여봤는데 최근 몇주 동안은 열어보지 않았다. 바쁘기도 했고, 발로쟈 때문에 마음이 힘들기도 했고, 또 이 기억들이 마치 보물상자 같아서 아껴뒀다가 열어보고 싶기도 해서.



이딸랄라. 10.25. 이날 야외에서 잠깐 함께 커피를 마셨고 이후 나는 실내로 들어갔다. 카멜. 홍학청년. 크림 브륄레. 스트루가츠키 형제. 거울. 날씨 좋은 날은 따스하고 환한 햇살. 내게 이딸랄라는 이런 단어들로 각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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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올해도 이제 한 달 남았다. 12월 달력 넘겼다. 달력의 사진은 몇년 전, 페테르부르크의 고스찌. 보통은 아스토리야에 머무르곤 했으므로 말라야 모르스카야 거리를 따라 걸어올라와 여기 자주 가곤 했다. 음식도 디저트도 모두 맛있는 곳. 세르비아 출신 셰프가 있는 곳이라 '세르비아 음식이 맛있나보다' 라는 생각에 베오그라드에 가고 싶게 만든 곳. 사실 올해 베오그라드에 가려고 했는데 항공편도 그렇고 이래저래 몇번 마음을 바꿔서 결국은 리가와 빌니우스에 다녀왔다. 저곳 고스찌는 나에게는 많은 추억이 담긴 곳이다. 

 
 
 

 
 
 
아주 피곤하게 잤다. 새벽에 깼다가 다시 잠들었고, 또다시 먼 곳에서 집에 돌아와야 하는데 버스도 택시도 잡기 어려운 꿈을 꿨다. 이런 꿈을 꾸면 정말 피곤하고 뒷머리가 아프다. 두통도 심하고 온몸이 쑤시고 멍울이 생기고 아파서 이번 달은 그날이 좀 일찍 올 것 같다. 
 
 
쉬면서 보낸 하루였다. 역시나 오늘 하루로는 피로가 다 풀리지 않는다. 이번주도 바쁜데... 그냥 바쁜 건 뭐 일상이니 그렇다 치는데 최고임원이 떠맡긴 문제투성이 과제 때문에 심란하고 걱정이 된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다시 글을 쓰고 싶은데, 올해가 가기 전에 시작이라도 하고 싶은데 아직은 머리도 손도 움직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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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간밤에 디아나 비슈뇨바의 홈페이지에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를 기리는 기사가 올라왔다. 발레평론가인 야니나 구로바가 쓴 글이다. 읽다 보면 가슴이 찡하다. 그의 여러 배역들에 대해, 무대에 대해, 노력에 대해 길고 자세히 적혀 있다. 당연히 21년 동안 마린스키에 몸담고 무수한 배역을 추며 최고의 예술가로 살아온 무용수로서의 그를 완전히 조명하기에는 빠진 내용들도 많지만 그래도 읽는 내내 가슴이 뭉클하고 또 슬펐다. 번역을 하기에는 기력이 없어 원문을 실어둔다. 아마 번역기를 돌리면 읽으실 수 있을 듯하다. 



출처는 https://dianavishneva.com/vladimirshklyarov
 

 

제목의 Прощай, Орфей는 <안녕, 오르페우스> 라는 뜻이다. 그는 10년쯤 전 스메칼로프가 안무해준 <지하세계의 오르페우스>에서 비극적이고 열정적인 예술가 오르페우스를 췄었다. 
 

 

 

 

 
Прощай, Орфей
 
 
Эссе историка балета Янины Гуровой посвящается памяти
 
 
 
В интервью 2009 года Владимир Шкляров подчеркнул: «Хочется идти вверх — мы же знаем, что взлететь можно очень быстро, а удержаться там, на высоте, очень тяжело. А сколько кому отмерено — пятнадцать лет… двадцать (в лучшем случае) — об этом думать не нужно…» И в этих пророческих словах оказалась судьба самого артиста.
 
 
 

 

 

С того момента прошло ровно 15 лет, а на сцене — 20. И каждый год Шклярова ознаменован творческими победами, стремительно растущей аудиторией преданных зрителей. Критика назовет его «баловнем судьбы», подмечая достоинства, но периодически будет жалить острыми замечаниями. Упрямый и целеустремленный артист продолжит неистово работать, преодолевая физическую боль, усталость и театральную рутину. Ежедневные уроки, репетиции, спектакли. Лейтмотивом — боль, нестерпимая, не всегда физическая, порой душевная, транспонируемая в ежедневный труд в зале, на сцене, над собой. Он умело использовал всё на пользу образам, создавая каждого персонажа с опорой на эмоциональное и физическое состояние. Годы работы — и из юного принца с влюбленным взглядом Шкляров превратится в обаятельного мужчину, истинного рыцаря уже с лукавым взором.
 
только ему свойственное дыхание в танце, когда вслед за отточенным движением ног, следуют мягкие аккомпанирующие руки
 
Учеником в стенах Академии Русского Балета Шкляров проявил главные черты характера — мужественность, терпение и страсть к танцу. Природа щедро одарила его профессиональными данными, но поскупилась на крепость здоровья, необходимого для поддержания своего главного инструмента — тела в стабильном физическом состоянии. Средний рост, некоторая хрупкость конституции и неимоверное желание танцевать привели Шклярова к наивысшей форме, почти с первого года к готовности стать ведущим артистом Мариинской сцены. Во многом успехами он обязан стабильной поддержке семьи, маме, посвятившей жизнь заботе о нем. Шкляров остро чувствовал свою природу, воспитанный в лучших традициях старой петербургской школы, при поддержке родных устремился покорить непокорный балетный Олимп. Жажда новых партий и вера в себя помогли взойти на ступень солиста, после — премьера. Первые годы ему доверяли небольшие выходы в кордебалете. Проблесками надежды оказывались экстренные вводы. Так в первый же сезон Шкляров исполнил Шута в «Лебедином озере». Напуганный, путающий порядок, он все же справился с виртуозной техникой. На протяжении первых лет упрямо доказывая себе и руководству способность к большему и только в 2011 году Шкляров будет удостоен положения премьера.
 
 
Ежедневный экзерсис, репетиции, спектакли, в свободные часы отработка деталей и продумывание роли. Как результат — виртуозная техника, легкость прыжков, ловкость вращений и только ему свойственное дыхание в танце, когда вслед за отточенным движением ног, следуют мягкие аккомпанирующие руки. Вдумчивое проживание в образе, надежное партнёрство, обаяние определит Шклярова любимцем публики. Он сменит педагогов в театре от Сергея Бережного, Юрия Фатеева перейдет к Владимиру Киму, терпеливому, знающему, остро чувствующему настроение ученика. Их плодотворное сотрудничество поможет молодому артисту стабилизироваться на сцене, обрести свою индивидуальность путем дотошного анализа каждого выступления.
 
Отечественная и зарубежная пресса назовёт его «принцем русского балета», в то время как неутомимое желание артиста — танцевать не только многочисленные партии классического репертуара, но и вырваться в тот мир современной пластики, где потребуется сломать стереотипы свои и о себе.
 
 
Вчерашний трепетный Дезире, романтичный Зигфрид, влюблённый Альберт, в первую очередь надёжный партнер. Ему довелось танцевать с танцовщицами редкого дарования, в том числе с Дианой Вишнёвой, Ульяной Лопаткиной, Викторией Терёшкиной, Мей Нагахиса, Натальей Осиповой, Олесей Новиковой и другими. Трепетное отношение к балерине, ловкость и надёжность, ведение партии — всё складывалось для зрителя в единственное достоверное существование персонажей. И каждый раз Шкляров находил новые краски в образе уже оттанцованных многократно партий. Причина неутомимого поиска — желание совершенствоваться, дабы не закостенеть особенно в классическом репертуаре.
 
Амбициозный и творчески неуспокоенный Шкляров с первого года в родном театре стремительно набирал репертуар. Внешность юного обаятельного человека соответствовала его героям, в особенности в «Ромео и Джульетте». В паре с Дианой Вишнёвой они покорили мирового зрителя, взаимодополняя друг друга. Сложный драматический балет раскрыл нежность трепетной Джульетты, обуреваемой страстными чувствами к пылкому Ромео. По психофизике партия юного влюблённого органично подошла Шклярову. На протяжении всего спектакля его герой-мальчишка к финалу становился самостоятельным молодым мужчиной, твёрдо принимающим судьбоносные решения. Насыщенная хореография, сложная партитура Прокофьева обрели новое звучание, когда появилась естественность в танце Шклярова, простота и изысканность движения, осмысленного молодым азартным танцовщиком, страстно жаждущим найти свое прочтение легендарной хореографии Лавровского.
 
Поистине его Джульеттой окажется утонченная Мария Ширинкина, лёгкая, романтичная, самозабвенно влюблённая. Строгий средневековый мир уступает место очарованию юности, стоит только появиться на сцене паре Ширинкина-Шкляров. Вчерашний юнец Ромео оказывается доблестным рыцарем рядом с трепетной Джульеттой, заливающейся краской от одного его взгляда. В их дуэте невообразимая нежность, от прикосновения рук, до полуоборота головы. Единение столь трепетное, дающее виртуозному движению лёгкость и дыхание. Совершенная форма, отточенность, музыкальность и влюблённость, безоговорочно очаровывают зрителя.
 
Вчерашний трепетный Дезире, романтичный Зигфрид, влюблённый Альберт, в первую очередь надёжный партнёр
 
 
Классический балет требует от артиста постоянного процесса работы над собой и поиска неустанного, порой бесконечного. Его Принц Дезире из «Спящей красавицы» рафинированный, точный по позировкам, изяществу стиля, имеющий определённые отсылки к эпохе Людовика XIV оказался под стать молодому артисту. Дезире-Шкляров благодаря первому педагогу Сергею Бережному остро чувствовал стиль, подчеркнуто элегантный, несуетливый. Органика движений и внешнего образа определила положение эталонного принца, амплуа стесняющего и ограничивающего Шклярова-танцовщика.
 
Альберт в «Жизели» — несомненная творческая удача уже повзрослевшего артиста. Драматически насыщенная партия раскрыла богатый потенциал актёрского дарования. Сложно дающаяся молодым артисткам сцена сумасшествия терялась, когда Альберт-Шклярова на втором плане переживал гибель своей возлюбленной. Зритель искренне верил в чистоту его намерений. Второй акт показывал персонажа мечущегося, страстного, полного раскаяния, молящего о прощении ту, чья любовь озаряла его существование.
 
В последние годы дуэт Шклярова и Мей Нагахиса стал истинным подарком для публики. Хрупкая фарфоровая балерина, лёгкая и несколько холодная оттеняла страстного юношу, стремительного, порывистого в движениях. В их дуэте преобладала кантилена, поражающая публику музыкальностью и выразительностью в каждом шаге и позе. Даже на последнем концертном выступлении в московском Кремлёвском дворце (21 октября 2024 года) публика не догадывалась, как сложно давались Шклярову поддержки и многочисленные прыжки. Трепетный дуэт, бережное отношение к партнёрше, ловкость движений и в одно мгновение исчезающий в кулисах, он, казалось, уступил место Нагахисе, чарующей Жизели, возвращаясь к ней лишь в финале. Отсутствие части хореографического текста осталось незамеченным большинством, органика существования на сцене и ведение партии филигранно нивелировали проблемы, возникшие у исполнителя по причине травмы
 
Причина неутомимого поиска – желание совершенствоваться, дабы не закостенеть
 
В репертуаре Владимира Шклярова многочисленные партии сказочных принцев, романтических героев характерных его внешнему облику. Безупречная техника, эмоциональная выразительность, музыкальность сделали его любимым публикой Принцем Дезире, Джеймсом, Жаном де Бриеном, Зигфридом, Графом Альбертом, Ромео. Балеты Мариуса Петипа, Льва Иванова, Михаила Фокина, Ростислава Захарова, спектакли, признанные классикой русского балета, достались ему как премьеру. Шклярову как человеку воистину творческому хотелось вырваться из образа рафинированного героя. Его мятежная натура, устремлённая к сложным драматическим ролям, по воле судьбы нашла новое звучание в героическом Спартаке. Шкляров не скрывал, что мечтал исполнить Григоровича.
 
Два щедрых сезона в Баварском балете подарили среди прочего шанс реализовать мечту — «Спартак» в паре с Сергеем Полуниным (Крассом). Сложное музыкально-хореографическое полотно, требующее выносливости и определённой внешней характеристики казалось не соответствующим дарованию Шклярова. И тут случилась метаморфоза — вчерашний юный Принц вырвался на сцену истинным предводителем рабов и гладиаторов, брутальным воином, отчаянно сражающимся с противниками. Очарованная публика не узнавала артиста, убедительного, отчаянного, страстного. Некогда трепетный Ромео, робко протягивающий впервые руку Джульетте, вдруг решительно увлекал за собой Фригию. Возмужавший и необузданный воин в исполнении Шклярова обогатил каждую партию, к которой он возвращался или только начинал готовить. Испытание хореографией Григоровича прошло успешно, вопреки критике и сомнениям, озвученным в кулуарах.
 
Работа в Мариинском и Баварском театрах (2016/2017 гг.), многочисленные гастроли и приглашения выступить по всему миру, сотни интервью и признание мировой аудиторией — мечта каждого артиста. Только мало кто догадывался, как сложно Шклярову преодолевать нарастающую физическую боль, восстанавливаться после многочисленных травм, преследующих его ещё со времен Академии. Эта борьба с собой обогатила его актёрское дарование. Рождались его герои полнокровные и достоверные. Безоговорочно влюблённая публика с нетерпением ждала новых партий и появления имени Шклярова в афишах театров всего мира, порой устремлялась на гала ради его выхода в дуэтах и соло.
 
Репертуар пополнился балетами иностранных постановщиков: «Онегин» Джона Крэнко, «В ночи» Джерома Роббинса, «Этюды» Харальда Ландера, «Пять танго» Ханса ван Манена, «Головокружительное упоение точностью» Уильяма Форсайта, «Without» Бенжамина Мильпье, «Парк» Анжелена Прельжокажа, «Инфра» Уэйна МакГрегора и многих других. В один только первый год в Мюнхене репертуар пополнили «Жизель» в редакции Питера Райта, «Баядерка» в редакции Патриса Барта, «Спартак» Юрия Григоровича, «Тщетная предосторожность» Фредерика Аштона, «Ромео и Джульетта» Джона Крэнко, «Алиса в стране чудес» Кристофера Уилдона.
 
Это была иная лексика, логика построения которой не сравнится с классикой Петипа-Иванова, даже Григоровича. Иное балетмейстерское мышление, взаимоотношение с музыкой, порой идущей вразрез, непривычные поддержки. Все то, что для отечественного артиста чуждо и лишено логики, требует определенного уровня подготовки. Шкляров жадно входил в этот репертуар, тщательно прорабатывая каждую фразу, дабы познать свои безграничные, как казалось, физические возможности. Упрямство, свойственное его личности, сформировало в нем прочный стержень. Преодолевая многочисленные препятствия, Шкляров осваивал сложную неоклассическую лексику, схватывая технику танца модерн, подстраиваясь под любую пластику, всюду оказывался органичным. Проявлялась его яркая индивидуальность, с годами формирующая уже узнаваемый образ премьера Шклярова.
 
Несмотря на стремительно нарастающий репертуар, где уже не оставалось, как казалось, партий мечты, у Владимира Шклярова не иссякало желание станцевать Де Грие в балете «Манон» Кеннета Макмиллана. Судьба, обманчиво щедрая к нему, предоставила шанс в Ковент Гарден Лондона в паре с Натальей Осиповой. Балерина неуёмного темперамента, экспрессивная и неуловимая в дуэтах, заставила по-новому взглянуть на партнёрство. Стихийная необузданность Осиповой лишний раз доказывала внимательность Шклярова-партнёра, всегда галантного и надёжного, в многочисленных совместных сценах. Де Грие Шклярова непоколебим, решителен, полон азарта и неистово влюблен. Четыре дуэта эмоциональны, разнообразны, очень сложны лексически. Де Грие Шкляров обаятелен, диапазон его актерского наполнения партии покорил даже самую чопорную английскую публику.
 
За два десятка лет на сцене Владимиру Шклярову выпало счастье исполнить свыше 40 балетов, концертных номеров, каждый из которых обогатил его исполнительскую манеру, отшлифовал индивидуальность. В числе многочисленных опытов сотрудничества с молодыми современными балетмейстерами особняком стоит «Моцарт и Сальери» Владимира Варнавы.
 
Петербуржцы на юбилейном вечере 20-летия службы в Мариинском театреовациями поддержали возобновление постановки и исполнение Варнавой и Шкляровым. Только вот история получилась отнюдь не хрестоматийной, где борьба композиторов окончилась гибелью гения Моцарта. В исполнении Шклярова незамысловатая хореография и режиссура обрели новое звучание человеческой жестокости, зависти, губительной ненависти к гениальности другого. Его Моцарт — стойкий, отражающий нападки соперника, отвоёвывающий право первенства до последнего вздоха.
 
В ряду многочисленных партий Шклярова особняком стоит и Петрушка. «Чёртова клоунада» Варнавы. За трагифарсом происходящего родился герой ранимый, глубоко трагичный, уязвимый. Петрушка-Шклярова соткан из боли и жажды жизни, пронзительно созвучном музыке Стравинского. Он противостоит окружающему миру, нарочито отвергающего его существование. Трагедия маленького человека, гордого и стойкого, живущего своей наполненной жизнью, будучи непонятым, непринятым.
 
 
Юрий Смекалов, талантливый артист и чуткий хореограф, Владимиру Шклярову подарил галерею ролей от самовлюбленного Нарцисса «Реквием Нарциссу» до самоотверженного Орфея, не считая «Расставание», Ne me quitte pas, Infinita Frida, «Камера обскура», «Орфей в подземном царстве», «Медный всадник», «Пахита», «Солярис», «Три маски короля», «Бриллианты русского балета», «Palimpsest. Заново написанный», MAD Station, «Infinita Frida»: балет-квест, «Infinita Frida»: режиссерская версия. Балетмейстер увидел Шклярова Поэтом «Орфеем в подземном царстве», страдающим влюбленным решительно идущим за возлюбленной в Ад. В этой лирической и проникновенной работе танцовщик мог ощутить свободу творческого порыва, еще больше раскрыться как танцовщику-актеру, в образе Поэта, лишенного главной жизненной опоры — любви.
 
 
В мимодраме «Юноша и Смерть» (отсылающей зрителя к тому же Орфею, только из творческого наследия Жана Кокто), еще одной несомненной удаче Владимира Шклярова трепетный молодой человек ждёт девушку. Он взволнован, его сердце бьется чаще от мысли, что откроется дверь и перед ним вырастет желанный образ. Шкляров на Мариинской сцене воплотил одного из самых ярких Юношей своего поколения, страстного художника, жаждущего признания, ищущего вдохновения и любви. Он полон сил, надежд и стремлений, обретает вечную жизнь, гордо уходя по крышам Парижа. Последние аккорды «Пассакальи» Баха и неиссякаемые овации. В памяти каждого зрителя Владимир Шкляров навсегда останется пылким влюбленным Орфеем с горящими глазами, яркой кометой на звёздном балетном небосклоне.
 
«Хочется идти вверх – мы же знаем, что взлететь можно очень быстро, а удержаться там, на высоте, очень тяжело. А сколько кому отмерено – пятнадцать лет… двадцать (в лучшем случае) – об этом думать не нужно…», - Владимир Шкляро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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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2. 1. 16:44

일요일 오후 tasty and happy2024. 12. 1. 16:44

 

 

 

흐리고 음습한 날씨의 일요일 오후. 출근을 생각해 디카페인 티를 마실까 하다가 그냥 퍼스트플러쉬 다즐링을 우려 마셨다. 

 

 

 

 

 

 

 

 

 

 

 

 

 

 

 

 

 

 

 

 

 

 

쿠야의 합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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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리시안셔스. 그런데 이 피치 프릴 리시안셔스는 좀 양배추 같은 화형이라는 것을 망각했었다.. 하얀색은 장미 같은 화형이라 이쁜데... 피치 고른 거 후회 중 ㅠㅠ 그래도 풍성해서 또 나름 나쁘진 않다. 아침에 일찍 출근해야 했기에 새벽배송온 꽃을 급하게 다듬어 화병에 꽂아두고 나갔다. 그나마 리시안셔스는 다듬기 쉬운 꽃이라 다행. 다음주엔 라넌큘러스를 주문해야겠다.
 
 
새벽에 깬 후 다시 잠드는데 실패해서 6시간 남짓 불량수면을 취하고 출근했다. 소박하지만 또 중요한 행사를 진행해야 했다. 최고임원도 모셔야 했다. 어쨌든 오전에 행사를 그럭저럭 잘 마쳤고 빨리 집에 가서 쉬고만 싶었지만 작금의 괴로운 과제 때문에 윗분이 같이 점심 먹자고 하셔서 할수없이 식사까지 하고서야 퇴근했다. 지하철에서 너무 피곤해서 꾸벅꾸벅 졸았다. 
 
 
귀가해 목욕을 하고 오후의 차를 우려 마셨다. 정말 피곤하고 몸이 무거웠다. 이번주는 토요일까지 출근한데다 이틀이나 빡센 외근을 했던 터라 피로가 많이 쌓였다. 내일 하루로 이 피로가 풀릴지 미지수임. 그나마도 어제 저녁에 청소를 해놓은 게 다행이다. 비록 어젠 너무너무 힘들었지만. 그리고 엄마가 어제 갖다주신 육개장과 갈치구이와 계란말이 덕분에 따로 음식을 만들지 않고도 저녁을 잘 챙겨먹을 수 있었다. 
 
 
새벽 꿈에 블라지미르를 잠깐 본 것 같은데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다. 나를 비롯한 무수한 사람들에게 행복을 안겨주었고 세상을 좀더 아름답게 만들어준 사람이니까, 지금은 더이상 아프지 않기를, 평안하고 자유롭기를 매일 밤 기도하며 잠자리에 든다. 
 
 
리시안셔스 사진 몇 장과 함께 오늘의 메모는 여기서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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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24. 11. 30. 20:34

토요일 오후 tasty and happy2024. 11. 30. 20:34

 

 

 

이른 아침 나가서 일하고 돌아와 오후의 티타임. 딸기케익 앞의 쿠야. 그런데 이 케익은 너무 달고 맛이 없어서 절반도 못 먹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이 가게(집 근처의 개인이 하는 디저트샵임)는 이런 생크림 과일케익류는 다 너무 달았고 차라리 초콜릿케익이 맛있었는데.. 오늘은 선택지가 너무 없었음. 

 

 

 

 

 

 

 

 

 

 

 

 

 

 

 

 

 

 

그래도 쿠야는 흐뭇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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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빡센 외근 후 진료를 받으러 갔는데 중간에 20분 정도 시간이 남아서 근처 카페에서 엄청 당도높은 베리 라떼를 마셨다. 이걸 좋아하긴 하는데 혈관이 막히는 건 아닌가 좀 죄책감을 느끼며 마신다. 추워서 따뜻한 걸 마시고 싶었지만 이 카페는 이게 제일 맛있는데다 다른 건 마실만한 게 없었다. 

 

 

오전에 시내에서 최고임원이 강권한 과제 때문에 피곤한 답사와 미팅. 진빠지고 힘들었다. 구구절절 쓰기 시작하면 끝이 없으니 그냥 이 정도로만... 윗분과 실무자와 함께 경복궁역 근처의 유명한 식당에 가서 삼계탕을 먹었다. 관광객이 대다수였다. 맛있긴 했는데 내 입맛엔 너무 짜서 계속 목이 말랐다. 

 

 

그리고는 진료를 받으러 갔고, 이후엔 근처에서 또다른 미팅. 이 미팅이 생각보다는 빨리 끝났다. 지하철을 타고 머나먼 횡단 끝에 간신히 귀가해 막 씻고서 앞머리를 자르고 있는데 부모님이 갑자기 오셨다. 김장을 하셨다면서 맛있는 알타리 김치와 갈치구이, 반찬, 육개장 한냄비를 갖다 주셨다. 내가 이번주에 늦게까지 일을 하는데다 내일도 출근해야 한다고 하자 '먹을 것도 없고 저것이 또 반찬을 사먹고 있겠구만!' 하는 생각에 오셨다고 한다. 그러더니 후다닥 가심. 좀 있다가 가시라고 붙잡았으나 엄마가 수영 시간이 빠듯하다며 휘리릭 가버리셨다. (매일 동네 수영장에 가심) 그래서 저녁은 갈치구이로 잘 먹었다. 값비싼 갈치라고 하셨는데 정말 맛있었다. 

 

 

부모님이 집이 왜이리 지저분하고 엉망이냐고 한숨을 쉬셨다. 본시 금요일의 집 상태가 제일 최악이다. 일주일 내내 정신없이 일하고 집에 와서는 뻗어버리니 당연히 현관에도 재활용 물품들이 쌓이고 정리는 안되고 청소도 안돼 있으니 먼지가 제일 많고... 토요일에 오셔야 청소를 해서 깨끗한 집을 볼 수 있는데 왜 꼭 금요일에 오시느냐고 했더니 엄마가 혀를 차셨음. 하여튼 부모님이 가신 후 거대한 박스들을 비롯한 온갖 분리수거를 하느라 두번이나 더 내려갔다. 이번주엔 캐리어와 패딩코트를 주문해 받아서 엄청 큰 박스가 두개나 방치되어 있었다. 그리고는 이마트에서 온 식료품들을 정리하고 쿠팡에서 온 제습제들을 꺼내 온 집안 여기저기 갈아두고 이미 수분이 꽉찬 예전 제습제들을 갈라서 물을 따라내고 용기를 버리는 등 정신이 없었다. 청소까지 하려다 너무 피곤해서 침대에 들어가 30분가량 쉬다가 간신히 일어나 저녁을 먹고 청소를 했다. 내일 아침에 또 출근해야 하니 차라리 조금이라도 일찍 온 오늘 해놓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토요일에 출근했다가 돌아와서 청소까지 하려면 너무 우울할 것 같아서.

 

 

이제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금요일이지만 금요일 아닌 느낌... 자꾸 재채기가 나오고 콧물이 흐르는 것이 혹시 감기 기운인가 싶어 조마조마함. 흐흑 빨리 자야겠어. 역시 저 차가운 베리라떼가 아니라 따뜻한 걸 마셨어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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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아마 이 영상들이 내가 가서 이틀 연속으로 봤던 때인 것 같다. 2014년 7월. 마린스키 구관. 이때 메조에서 실황 녹화를 했는데 이틀 연속으로 발로쟈와 빅토리야 테료쉬키나, 아나스타시야 마트비옌코가 올라왔다. 녹화는 첫날이 아니라 둘째날 버전으로 나왔다. 나는 첫날 공연이 더 좋았기에 아쉬웠다. 막상 나온 녹화본은 구도를 제대로 잡지 못해서 이 사람의 도약이나 표정 연기를 100분의 1도 못 담아내서 아쉬움은 배가되었다. 아래 클립은 팬이 찍은 거라서 화질이 안 좋고 많이 흔들리는데 오히려 메조 녹화본보다는 이쪽이 낫다. (근데 메조가 맞나 긴가민가... 나는 이 라 바야데르와 청동기사상 둘다 실황 녹화할 때 공연을 봤었다)
 
흔히들 솔로르의 멋진 춤은 2막 결혼식 솔로라고들 하지만 그건 기예를 중점적으로 볼 때 그렇고, 이 사람의 솔로르는 3막에서 진가를 보여주곤 했다. 충만하고 사무치는 솔로르였다. 3막 솔로르는 단순한 점프나 테크닉만으로는 완벽해질 수 없다. 드라마 배우로서의 역량이 얼마나 뛰어난지, 자신을 온전히 배역과 무대에 동화시킬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 면에서 블라지미르의 솔로르는 정말 최고의 솔로르였다. 

 
 
먼저 망령의 왕국 도입부. 등장 솔로. 영상을 보면 둘째날인 것 같다. 첫날은 깃털이 아주 가지런하고 예뻤고 둘째날은 깃털이 흐트러지고 갈라져 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서 둘째날 버전으로 녹화가 나온 걸 보고 또 아쉬워했었다. 
 
 

 
 
 
그리고 파이널 2인무. 빅토리야 테료쉬키나의 니키야에 이어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의 솔로르. 이 사람이 추는 솔로르를 여러번 무대에서 봤는데 볼때마다 이 부분에서는 숨이 막히곤 했다. 
 
 
 

 
 
 
이렇게 보고 있으니 너무나 그립고 안타깝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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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어제 외근 때문에 늦게 귀가한데다 워낙 많은 연타를 맞아 머리가 아팠기 때문에 잠도 늦게 자서 수면 부족 상태로 새벽 출근했다. 7시에 도착했는데 너무 피곤하고 춥고 눈도 오고 힘들어서 사무실 근처 별다방에 들어가 녹차와 소금빵 약간, 그리고 집에서 싸온 삶은 달걀 1개를 먹으며 멍하게 쉬다가 일하러 갔다. 

 

 



 

이건 점심 때 동료와 후배랑 들른 회사 근처 작은 카페. 내가 좋아하는 곳이다. 작고 아늑한 곳. 

 

 

오늘도 매우 바빴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어제 최고임원이 우리에게 엄청난 연타를 먹인 문제의 신규과제 때문에 오늘도 전문가들을 모시고 자문을 했는데 역시나 우리 마음이 그들의 마음, 의견 일치 ㅠㅠ 문제는 최고임원께서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데 있다... 너무너무 피곤하고 머리가 아팠다. 회의장소에 난방이 되지 않아서 너무 추워서 덜덜 떨기까지 했다. 내일도 이 과제 때문에 아침부터 시내로 출장을 나가야 한다. 여러모로 피곤하고 걱정이다. 흑흑... 내일이 금요일이라는 사실에 위안을 얻고 싶지만 이번주는 토요일에도 출근해 행사 진행을 해야 한다. 아 모르겠다, 빨리 자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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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1. 27. 21:49

11.27 수요일 밤 : 종일 강펀치 fragments2024. 11. 27. 21:49




아침부터 밤까지 무척 피곤하고 힘든 하루였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출근길이 정말 힘들었다.



아침부터 최고임원께 보고하러 갔는데 온통 비논리적이고 자기 주장만 펼치시며 억지를 부리셔서 일이 더 힘들어졌고 수수방관하던 다른 본부장들도 예산 마련 때문에 불똥이 자기네로 튀자 갑자기 정색하며 처음 듣는 일인양 오리발 내밀며 펄펄 뜀 ㅠㅠ 나보고 어쩌라고... 거기에 다른 문제들도 이어져서 오늘은 정말 계속 강펀치로 두들겨맞는 기분.



저녁엔 다른 골치아픈 업무 때문에 늦게까지 좁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파티에 가야 했다. 처음의 프리젠테이션 시간엔 결국 졸았다ㅠㅠ 본시 파티를 싫어하는지라 정말 피곤했다. 교통이 불편한 곳이라 간신히 택시를 잡아 귀가하니 이미 잠자리에 들 시간을 넘겼다. 머리가 너무 아프고 멍멍하다. 잠시 후 자러 가야겠다. 내일은 제발 눈이 그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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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1. 26. 20:15

신데렐라 파이널 클립 dance2024. 11. 26. 20:15

 

 

 

18년엔가 19년, 발로쟈가 블라디보스톡에서 신데렐라의 왕자를 췄을 때 나는 그 표를 끊어두었지만 너무 일이 바빠서 가지 못하고 결국 표도 취소해야 했다. 못 간다고 슬퍼하자 이 사람은 '다음에 와서 봐주면 되지' 하고 위로를 해줬었다. 라트만스키 작품들은 워낙 편차가 심하고 특히 러시아를 떠난 후 다른 나라들에서 리메이크한 작품들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 신데렐라는 좋아했다. 맨처음 아무런 정보도 없이 즈베레프와 바토예바 페어로 마린스키 신관에서 이 작품을 봤었다(아마 신관 오픈 후 내가 처음 가서 봤던 공연이었을 것이다) 중간중간은 좀 산만했지만 파이널의 로맨틱함과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이 무척 아름다워서 좋아했고, 비슈뇨바와 이 사람의 메조 영상을 보자 '아, 이건 정말 완벽하게 이 사람 맞춤 배역이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맞춤 배역이 너무 많지만...) 그래서 정말 이 사람의 무대를 보고 싶었는데, 이 사람이 춘 무대를 많이 봤지만 이 작품은 결국 보지 못했다. '다음에 와서 봐주면 되지' 라고 다정하게 위로해줬는데, 이제 그 다음이 없다고 생각하니 무척 슬프다. 

 

 

아래 클립은 2017년. 마샤 쉬린키나와 췄던 파이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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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재택근무를 했다. 이번주까지 업무와 관련해 이수해야 할 필수교육들이 밀려 있었는데 사무실에선 아무리 온라인 교육을 틀어놓아도 계속해서 일이 몰려오니 10분짜리 파트 1개가 시청시간 200분이 되어있곤 해서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그렇다고 교육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모니터 한켠에 띄워놓고 클릭만 하면서 계속 일을 하는 것이다. 이런식의 교육이 과연 필요한 것인지 참으로 의문이 든다만 뭐 할수없지 ㅜㅜ

 

 

유일하게 좋은 점은 재택근무였던 탓에 평소보다 두시간 정도 더 잘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계속 너무 잠이 모자라서 힘들었는데 그래도 오늘은 8시간 가량 잤다. 물론 새벽에 자다깨다 했지만... 

 

내일이 이번주의 1차, 그리고 제일 큰 고비의 날이다. 내일은 오전에 최고임원께 가서 이분이 한달쯤 전 떨어뜨린 굉장히 피곤하고 골치아프고 아무리 봐도 명분이 없는(심지어 다른 부서에서 떠넘긴) 과제에 대해 지금까지의 리서치와 전문가 자문 결과를 보고드려야 한다. 부정적인 내용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분명 이분은 또 화를 내실 것이고 자기 주장을 밀어붙여 억지로 이 일을 하게 만들겠지 ㅠㅠ 작년에 이분이 오신 이래 늘 이런 식이다. 그런데 제일 높은 분인데다 논리적이고 현실적인, 그리고 명분에 맞는 얘기를 너무 싫어하시며 자기가 원하는 것을 아랫사람들이 무슨 고생을 하더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관철시키고 잠깐 반짝하는 순간의 성과에 희희낙락하시는 분이라 정말 답이 없다. 문제를 조율해줘야 할 차석임원은 나몰라라 하며 부화뇌동, 최고임원봇 노릇만 하고 있고... 하여튼 이 보고도 걱정이 되는데다 저녁 늦게는 또 다른 피곤한 업무(이것도 올초에 떠넘겨진 업무)와 관련해 시내로 나가서 늦게까지 후원 리셉션에 참여해야 한다. 몰라, 나는 운동화 신고 갈거야 엉엉... 내일 심지어 춥다는데 흐흑... 패딩도 못 입고 가... 운동화는 잘 안보일테지만 패딩은 너무 나간 거라서... 

 

2차 고비는 목요일, 3차 고비는 토요일에 있다. 그래도 내일만 어떻게 넘기면 좀 나을텐데... 기운을 끌어모으며 오늘도 늦지 않게 자러 가야겠다... 

 

 

아직도 슬픔과 애달픔, 가엾고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남아 있어 순간순간 참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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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1. 25. 21:18

Ne Me Quitte Pas 날 버리지 마 dance2024. 11. 25. 21:18

 
 
 
유리 스메칼로프는 블라지미르를 위해 여러 작품을 안무했다. 이 작품은 3분 가량의 소품으로 2016년에 발로쟈가 뮌헨의 바이에른으로 떠나기 몇달 전 안무해줬던 작품이다. 나는 초연은 못봤지만 2016년 6월 마린스키 신관에서 젊은 안무가 갈라 공연을 할 때 이 무대를 처음으로 봤다. 이후 블라디보스톡 마린스키 분관에서 열린 이 사람의 공연에서도 다시 봤다. 이 작품은 아주 짧지만 정서적인 호소력이 굉장하다. 가슴을 뒤흔들어놓는 무대였다. 이 사람 외에는 이 작품을 이렇게 출 수 없을 것이다. 애초부터 이 사람을 뮤즈로 안무한 작품이기도 하고... 두번째로 봤을 때가 훨씬 좋았던 기억이 난다. 노래 제목이 곧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Ne Me Quitte Pas (Не покидай меня), 우리 말로 하면 날 버리지 마. 바이에른으로 떠나기 직전인 6월에 봤던 터라 이 제목은 그대로 내 마음이자 페테르부르크 팬들의 마음이기도 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미 떠나버린 그에게 부질없이 다시금 애원하고 싶은 제목이기도 하다. 
 
 
사진은 2017년 7월, 블라디보스톡에서 커튼콜 때 내가 찍은 것. 
 
 
영상은 오래 전에 올린 적이 있지만 다시 올려본다. 팬이 찍은 거라서 많이 흔들린다만... 발레 무대가 모두 그렇듯, 특히 이 사람의 무대는 실제로 봐야만 하는 무대였다. 몸과 마음, 혼을 모두 다 바치는 무대들이었으니까. 과거형으로 쓰는 것이 너무나도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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