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일요일 밤 : 작은 도자기 컵, 분노, 계엄과 학교와 사무실 꿈, 장미 fragments2024. 12. 8. 20:47
어제 도착한 꽃들 다듬고 남은 짜투리들을 따로 조그만 도자기 컵에 꽂아두었다. 이건 오래 전에 카를로비 바리에 갔을 때 온천수를 마시려고 샀던 컵이다. 몇년 후 다시 가서 좀더 큰 컵을 샀는데 돌아와서는 이걸로 뭘 마실 일이 없어서 이런 짜투리 꽃들을 꽂아두는 용도로 쓰고 있다.
주말은 전혀 평온하지 않게 지나갔다. 나라가 평온하지 않고 엉망진창인데 일상이라고 평온할 리가 없다. 오늘도 아침부터 질서 있는 퇴진 어쩌고 하는 망발에 귀가 썩는 것 같았다. 분노가 가시지 않는다. 이 분노가 점점 더 커지면 커졌지 사그라들 것 같지는 않다.
자다깨다 하며 밀린 잠을 조금씩 보충하긴 했지만, 한시간 쯤 자다 깨고 또 꿈을 꾸고 등등 너무 피곤하게 잤고 깨어났을 땐 뒤통수가 너무 쑤시고 아팠다.
마지막 꿈은 확연히 어제의 망할놈의 현실이 반영되어서 회사가 이미 계엄 치하에 들어가 있고 이미 예전에 (암울했던 시기에) 퇴임한 옛 최고임원이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고, 나는 친구이자 헤드쿼터본부장인 동료와 계엄에 대해, 변해버린 현실에 대해 뭔가를 얘기하다가(아마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뭐 이런 얘기였던 것 같다) 눈물을 흘리면서 사무실로 갔다. 꿈속에서 사무실은 우리 회사 건물이 아니고 옛날에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 건물이었다. 꿈에서 옛 학교가 나오면 십중팔구 악몽이다. 학교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아서겠지만 학교가 나오면 항상 계단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지고 2층으로 올라가면 낯선 교실들과 이상한 방들이 있고, 혹은 내가 공부했던 교실과 그 복도는 어둠과 괴기스러운 공포와 심지어 귀신들도 어른거리는 공간이 되곤 한다. 이번 꿈에서도 어떤 교실들에는 그런 무서운 것들이 출몰한다는 느낌이 어렴풋이 있었지만 하여튼 사무실+교실 문을 열어보았다. 빈 책상들이 워크숍 대형으로 놓여 있었는데 아무리 많아봤자 15명 안팎이 앉을 자리라 '정말 세월이 흘렀구나, 이제 한 학급 학생 수가 참 적구나' 라고 생각하며 내 가방을 찾다가 실패했다. 나에게 사무실은 학교 같은 곳이려나... 꿈에서 깨어났을 때 머리가 너무 아팠고 여전히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꿈속에서 계엄이 두렵고 마음이 아파서 흘린 눈물이 남아 있었나보다.
이번주도 해야 할 일들이 매우 많다. 내일도 새벽 출근해야 한다. 패딩을 입고 가야겠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여전히 떠난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이번에 온 꽃들은 별로 기대 안했는데 은근히 예쁘다. 이 줄리에타 장미가 화형이 참 예뻐서 보고 있으면 마음의 위안이 된다. 장미 사진들 아래 접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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