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문을 지나면 사원들이 여럿 있는데 그중 정교 성당이 하나 있어 전에도 들렀고 이번에도 들렀다. 여기에도 긴 의자가 놓여 있다. 이 사원은 꽤 크다. 기도를 하고 나왔다. 그러고보니 성 파라스케베 사원에 가야 하는데. 내일 가야겠다. 전에 두번 실패한 건 내가 너무 일찍 갔기 때문이었다. 그 사원은 정오부터 연다는 것을 알게 되었음.
엄숙한 정교 사원. 그런데 빌니우스의 정교 사원은(리가도 마찬가지였지만) 너무 밝다. 오늘 햇살이 많이 들어와서 더 그런가.
이 사원 안뜰을 거닐다 보면 옆쪽 울타리 너머로 예쁜 연못이 있다. 여름에 왔을 땐 저기서 미니 분수가 졸졸 흐르고 있어 영상도 찍어두었는데 지금은 그냥 연못만 호젓하게 거울처럼 빛나고 있었다.
새벽의 문 거리를 따라 내려와(평일 오후라 그런지 사람이 없고 매우 한적했다) 디조이 거리에 접어들었다. 어떤 루트로 오든 여기 오면 지치는 건 똑같은가보다. 구 시청사 앞의 벤치에 주저앉았는데 의외로 벤치가 편했고 햇살이 따끈따끈해서 물을 좀 마신 후 멍때리며 한동안 앉아 있었다. 먹은 게 별로 없어 배도 고프고 차도 마시고팠다. 바로 옆으로 꺾으면 보키에치우 거리라서 슈가무어에 가기로 했다.
단언할 수 있다. 여기 케익이 제일 맛있다. 다른 곳보다 비싸고 좀 젠체하는 느낌은 있지만 케익이 맛있으니 다 용서됨. 홍차도 잎차로 우려준다. 다즐링이 없는 건 아쉽지만 얼그레이를 잘 우려주었고 이번에 시켜본 저 복숭아 크림치즈 케익도 엄청 맛있었다. 안에는 복숭아잼이 들어 있고 겉은 화이트 초콜릿 코팅이 되어 있음. 정성이 들어갔고 맛있으니 비싸도 그냥 인정하기로... 그래도 5유로니까 우리나라의 케익 생각하면 비싼 것도 아니다. 프라하의 ippa cafe의 케익이 딱 이런 식인데 생각해보니 거기는 여기보다 훨씬 비쌌음.
그건 그렇고 지난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배고프고 지치고 힘들 때 슈가무어에 왔으므로 그 후광효과도 있는 것 같긴 하다. 당분으로 눈이 번쩍 뜨인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그래도 난 맛없는 건 끝까지 맛없단 말이야.
영원한 휴가님이 학교와 유치원을 마친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셨다. 이 분수는 예전에도 아이들과 조우했던 곳으로 동전을 주워서 '돈 폰타나스'(돈 분수)라고 우리끼리 부르고 있는 곳이다. 2년만에 아이들이 부쩍 컸고 너무너무너무 귀여웠다! 아이들과 다같이 지난번에 갔던 근처 루드닌쿠 거리의 비르주 두오나에 갔다. 초코 카눌레, 기본 카눌레, 잼 든 미니 디저트, 브라우니, 조그만 키쉬 타르트, 주스, 에스프레소 등을 시켜서 먹었다. 이후 놀이터에서 조금 쉬었다. 오늘 정말 귀여움 한도치 초과 :)
이 비르주 두오나는 점원도 친절하고 가게도 예쁘고 아늑하다. 그리고 빵도 맛있다.
이후 우리는 필리모 거리 교차로에서 헤어졌다. 나는 다시 필리모 거리를 따라 머나먼 횡단(길긴 정말 길었다 ㅜㅜ)을 하여 게디미나스 대로의 숙소로 돌아왔다.
이 사진은 새벽의 문 갈 때 찍긴 했지만 어쨌든 필리모 거리 사진이므로 여기에... 볕 드니까 따스하고 이뻐보이지 우중충한 날씨엔 역시 황량할듯.
게디미나스 대로에 진입해 숙소 근처에 왔을 때 갑자기 너무 배고팠고 뭔가 챙겨먹기에는 귀찮고 게을러져서 맥도날드에 가서 빅맥을 한개 테이크아웃해 와서 방에서 먹었다. 오랜만에 먹었더니 배고파서 그런지 맛있었음. 그리고는 목욕을 하고 머리를 말리고(머리가 자동으로 마르면 참 좋겠다) 쉬다가 오늘의 메모를 적고 있다. 오늘은 10,922보, 6.2킬로. 대부분 필리모 거리 횡단 때문임. 그리고 새벽의 문도 갔고. 활동 반경이 아주 다양한 건 아니었으나 일단 필리모가 길었다 :)
오늘은 정말 따뜻했었다. 겉옷은 가을 점퍼를 입었는데 안에 두겹 껴입었더니 나중엔 땀이 날 정도였다. 돌아와서 빨래를 하면서 '아, 그 간이세탁키트 가져올걸' 하고 후회했다. 흑흑... 쿠야가 빨래 좀 해주면 좋은데. 호텔이라 청소해주고 밥주지만 빨래는 돈을 추가로 내야 하니 매일매일 저녁마다 내가 하고 있음. (빨래 미뤄두지 못하는 성격...)
며칠 잘 자다가 오늘은 새벽 5시 즈음 깨어나서 한참 못 자고 뒤척이다 약간 새잠 들어 불량수면. 아마 벨리니 때문인 것 같다. 역시 알콜은 안돼... 너무 피곤하고 한없이 게을러져서 오늘은 조식도 걸렀다. 어제 조식 먹을 때 챙겨왔던 삶은 달걀 1알과 미니 서양배 1알을 먹었다. 오전에 일찍 업무를 마친 영원한 휴가님이 피나비야에서 아몬드 크루아상과 버섯 키비나이를 사서 들르셔서 그것을 맛있게 먹었다.
한시 무렵 함께 엘스카로 갔다. 오늘은 어제보다도 더 따스했다. 놀랄만큼 좋은 날씨였고 심지어 더웠다. 19도~20도까지 올라갔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래서 엘스카 야외테이블에 앉았다. 카푸치노와 미니 땅콩버터 크림케익(비건이라고 한다), 영원한 휴가님은 플랫 화이트를 시키셨다. 내가 차를 시키지 않고 어제에 이어 커피를 시킨 이유는 여기가 디저트가 다양하지 않고 또 차도 어쩐지 근사할 것 같진 않아서, 그리고 어제 마신 플랫 화이트가 괜찮았기 때문에 카푸치노도 도전해본 것이다. 확실히 테이스트 맵보다는 부드러운 맛이었다. 10월에 빌니우스에서 야외 테이블에 앉게 되다니 정말 감동이었음. 일조량이 확실히 많은 카페였고 변색렌즈 안경 대신 선글라스로 바꿔 낀 채 앉아 있었다. 주변은 필리모 거리 등 교차로라 풍경이 그리 아름답진 않았지만 그래도 바깥에 앉아 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이후 영원한 휴가님은 아이들을 챙기러 가시고 나는 '이렇게 날씨가 좋으니 새벽의 문에 다시 가봐야겠다' 라고 결심. 새벽의 문은 숙소에서 먼데다 전에 왔을 때도 오르막길에 더위로 고생한 기억 때문에 좀처럼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었다. 새벽의 문과 우주피스가 딱 그런 곳이다. 맵을 찍어보니 엘스카가 있는 필리모 거리를 쭉 따라서 계속 올라가다 시장을 지나 꺾으면 새벽의 문이라 가는 길도 쉬워서 마냥 걷기 시작했다. 필리모 거리는 정말 길다. 네버 엔딩... 그래도 오늘은 날씨가 좋았기에 이 거리가 황량하지 않았고 걸어갈만 했다.
시장(할레스 투르구스)이 나타나서 거기도 들렀다. 시장에 가면 딱히 사는 건 없지만 그래도 잠깐 구경하는 건 즐겁다. 전에 여기서 체펠리나이를 먹었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아마도 고려인이 하시는 건가 싶은 '한국 반찬가게'에도 잠깐 들어가보았다. 러시아에서 파는 한국 반찬들도 그렇지만 역시나 채썬 당근김치, 장아찌 등 미묘하게 변형된 반찬들이 좀 늘어서 있었다. 진열대에는 한국 라면 몇개, 김 등이 있었는데 너무 텅 비어 있어서 '아, 꽉꽉 채워주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레스 투르구스에서 새벽의 문은 가까웠고 이쪽 루트로 오니 오르막이 아니라서 그럭저럭 올만 했다. 그리하여 나는 새벽의 문을 전과는 반대편 방향에서 통과하게 되었다. 그 다음 이야기는 2부에서. 여기까지의 사진 몇 장.
반짝반짝 엘스카 앞 야외테이블들. 저 중 하나에 앉아 카푸치노 마심.
여기가 할레스 투르구스 시장 내부.
한국 반찬 가게.
이걸 보니 옛날에 페테르부르크에서 바실리 섬의 안드레예프 시장에 갔을 때 거기서 '까레이스키 살랏'(한국 샐러드)란 이름으로 당근김치를 파는 걸 보고 고춧가루로 버무려놓았으니 정말 김치 같을 줄 알고 사왔다가 피봤던 기억이 났다. 기름으로 마리네이드되어 있음 :) 우리 나라에서도 동대문운동장 쪽 중앙아시아/러시아 식당에서 내준다.
오늘의 네버 엔딩 메모에 괴로워하다가 ‘아, 홀리 도넛 얘긴 따로 올렸다!’ 하며 갑자기 기뻐진 채 오늘의 2부 메모. 오늘은 사실 7,079보, 4.7킬로밖에 안 걸었는데 전체 범위가 길지 않았을 뿐 오밀조밀하게 카페들과 작은 거리들을 밀도있게 왔다갔다한지라 이야기가 많다. 오늘은 완전히 카페 투어의 날이었다. 날씨가 좋았고 볕 좋은 엘스카, 기억에 좋게 남아 있던 민트 비네투, 벨리니를 마시고 싶어 들어간 홀리 도넛까지 세군데나 들렀다. 엘스카에만 좀 오래 있었고 나머지 두 곳은 1시간, 30분 정도만 있긴 했지만.
민트 비네투에서 나와서 빌니우스 대학이 있는 우니베르시테토 거리 쪽으로 갔다. 이쪽이 고적한 골목인데 이번에는 아직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는 길에 잠시 스티클리우 거리로 빠져보았는데 오래된 베이커리 카페인 포뉴 라이메가 현관 장식 교체 공사를 하는 걸 목격. 이번엔 또 어떤 엄청난 장식을 달아놓으려나...
우니베르시테토 거리로 접어들었다가 잠깐 대학교 교정에도 들어갔다. 성당 전망대에서 무서웠던 기억에 그냥 교정만 잠깐 산책하고 나왔다. 여기 교정은 평화롭고, 벤치에 앉아 있는 (아마도 학생들일) 청년들을 보면 예뻐보이고 기분이 좋다. 옛날 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교정이 생각나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학교에서 나와 근처에 있는 ‘유레카’라는 서점에도 들러보았다. 여기는 좀 스노브 느낌이 드는 서점이고 점원들 포함 자기들 서클끼리 즐거워보이는 곳인데 외국문학 책들이 많다. 거기 맞다, 긴스버그 에코백과 티셔츠 걸려 있는데 미남이 아니라서 안 샀던 곳 ㅎㅎ 2년만에 왔는데도 똑같은 에코백과 티셔츠가 걸려 있어서 좀 아쉬웠다. 긴스버그는 얼굴 프린트보다는 그냥 그의 멋진 시 몇 구절을 적어두면 좋을 텐데. (역시 미모중심주의 ㅜㅜ) 하여튼 그래서 아무것도 사지 않고 나왔다.
그 옆에는 재작년 묵었던 켐핀스키 호텔이 있는데 여기는 얼마 전 힐튼 호텔 체인으로 넘어가서 더 이상 켐핀스키가 아니고 ‘그랜드 호텔 빌니우스’로 바뀌었다. 현관의 꽃장식은 여전했지만 그네가 없어져서 뭔가 좀 아쉬웠다. (하지만 인테리어는 그네 없는 쪽이 훨씬 나아...)
그리고는 게디미나스 대로로 들어섰다. 리미에 잠깐 들렀다가 ‘벨리니...’ 하면서 빌니아우스 거리로 다시 들어가 홀리 도넛에 갔다. 그 얘긴 따로 올렸으니 생략. 그 이후에야 숙소로 돌아왔다. 5시 즈음이었다.
씻고 좀 쉬다가 간단히 저녁을 먹었다. 햇살을 많이 받기도 했지만 벨리니 때문에 얼굴이 계속 빨갛게 달아오르고 열이 나서 잠시 창가에 앉아 바람을 쐬고 창 너머를 바라보며 쉬었다. 분명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 다시 정신없는 노동에 파묻히게 되면 바로 이 순간이 가장 그리울 거란 생각을 하면서. 그리고는 이 메모들을 쓰는 중인데 네버 엔딩... 헉헉, 이제야 다 썼네. 내일도 날씨 좋으면 좋겠다.
오늘은 대학 교정을 걷다가 아주 희미하게 뭔가 ‘쓰고 싶은’ 것이 어른거렸는데 아직 손에 잡히지는 않는 상태이다. 부디 빨리 잡혀 주기를...
1부랑 홀리 도넛에 사진들 많이 올려서 이 2부는 사진을 몇 장만 첨부하고 마무리.
햇살이 좋고 따뜻한 날씨라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 있었다.
빌니우스 대학 교정. 재작년에도 봤었나 기억이 잘 안나는데 조그만 분수가 있었다. 그리고 나무 아래 앉아 노트북으로 뭔가 공부하는지 작업하는지 열심히 집중하고 있는 학생(...인가? 여기는 남자들이 수염을 많이 길러서 정말 모르겠음)도 보기 좋았다.
이정표인 대성당을 지나서...
방에 돌아와서는 벨리니 때문에 취하고 더워서 창가에 앉아 바람 쐬었음. 여기까지가 오늘의 메모 끝.
사진은 오후에 들렀던 민트 비네투 카페. 외국인 커플이었는데 창가에 앉아 있는 모습이 이뻤다.
..
자정 즈음 잠들었고 온갖 꿈을 꿨다. 이따금 꾸는 패턴인 ‘우리 집인데 우리 집이 아닌 건물’, ‘문이 이상하거나 남의 집을 통과해서 들어가야 하는 집’, ‘건물에서 나가야 하는데 계단이 이상하고 사다리로 연결되거나 아주 나가기가 어려운 입구로 변한 곳’ 등이 다 등장해서 피곤했다.
8시 되기 전에 퍼뜩 깼는데 회사의 갑님(대충 이사진에 가까움)으로부터 부재중 전화와 연락 달라는 문자가 두어 시간 전 와 있었다. 이 갑님은 우리 부서 업무와는 큰 연관이 없는 분이지만 요즘 회사 상황이 워낙 이상하므로 더럭 걱정이 되었다. 억지로 잠을 깨려고 노력하고 물을 마시고 목을 가다듬은 후 전화를 해보았는데 받지 않으셔서 문자를 드렸다. 비몽사몽 업무메일도 확인해봤는데 부서 업무회의록에 역시나 요즘 좋지 않은 정황에 대한 기록이 있어 더욱 걱정이 되어 윗분께도 카톡으로 혹시 무슨 일이 있는가, 이 갑님에게서 이런 연락이 왔는데 뭘까 하고 물어보았다. 윗분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 그때 갑님에게서 휴가 중이란 걸 들었다, 전화 안 해줘도 된다는 답이 왔다. 그래서 업무 통화는 안 해도 됐지만 뭔가 매우 찜찜한 채 일어나야 했다.
그래서 잠이 딱히 모자라진 않았지만 기분 좋지 않은 채 멍하게 깨어나 샤워를 하고 조식을 먹고 왔다. 아침엔 안개가 한치 앞도 안 보일 정도로 뿌옇게 끼어 있었다. 조식 먹고 와서 도로 침대에 들어가 좀 누워 있었는데 열한시쯤 창밖을 보니 하늘이 파랗고 해가 나고 있었다! ‘아니 이렇게 해가 난다면 당연히 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 볕이 잘 드는 엘스카로 가야지~ 거기 인기 많은 카페니까 오후가 될수록 붐빌테니 지금 가야겠다!’ 하고 갑자기 맘이 급해져서 후다닥 나갔다.
엘스카는 숙소에서 40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게디미나스 대로를 따라 조금 걷다가 Jogailos 거리를 끼고 올라가면 필리모 거리와의 접점 교차로에서 마주치게 된다. 영원한 휴가님이 여기가 빌니우스에서 제일 일조량 많은 카페일 거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오늘 내가 체험으로 깨달음. 오 정말이야. 정말 빛이 많이 들어온다. 숏패딩을 벗고 그 다음엔 짚업과 스카프를 벗었는데도 창가 테이블(이틀 전 찍었던 그 무지개 테이블)에 볕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따끈따끈 더웠다.
조식 테이블에서 차를 마셨고 여기는 디저트가 별거 없었으므로 플랫 화이트를 시켜보았다. 커피 잘 못 마시는 나로서는 카푸치노보다 더 연하고 라떼보다는 양이 적은 이게 제일 나은 것이었다! 원두는 브라질과 온두라스 중 고르라 해서 산미 없는 쪽인 전자를 택함. 그런데 내가 주문을 똑바로 못한 건지 러브라믹스가 아니라 테이크아웃용 종이컵에 나와서 ?? 했지만, 종이컵이 또 나름대로 이뻐서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다. 플랫 화이트는 매우 연하고 부드러워서 이 정도라면 나도 마실 만했다.
평일 이른 시간이라 카페에 손님이 별로 없었고 내가 좋아하는 2층과 무지개 테이블이 비어 있어 ‘진짜 좋다!’ 하며 얼른 거기 앉았다. 여기 앉아서 정면으로 보이는 카페 풍경을 스케치했다. 스케치하는 동안 빛이 많이 들어와서 꼭 히터를 틀어놓은 듯 따뜻했고 색칠할 때도 눈이 부셨다. 햇빛 받지 말랬는데... 변색렌즈 안경 끼고 있었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며 정당화. 흑흑 나는 이렇게 밝고 환한 카페가 좋은데... 화창한 날씨가 좋고... 햇빛 받지 말라니 너무해. 카페 스케치는 따로 올림. 인스타 스토리에도 올렸더니 엘스카에서 자기네 스토리에 올려주며 넘 이쁘다고 해줘서 뿌듯해졌다 :)
온몸이 따끈따끈 데워진 채 한시 쯤 엘스카에서 나왔다. 바깥 바람이 선선했고 햇살은 따스해서 정말 좋은 날씨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을 날씨였는데 여기서 이런 날씨를 맛보다니 흑흑 감동이었다. (10월의 우중충한 날씨를 대충 아는 터라 전혀 기대 안 했었음)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고 며칠 안 먹었던 쌀밥이 먹고파서 빌니아우스 거리의 Wok to Walk에 다시 가서 돈부리를 주문했다. 여기 돈부리는 흰밥에 달걀프라이, 메인과 야채토핑과 소스를 얹어주는데 나는 닭고기와 데리야키 소스를 고르고 달걀은 다 익혀달라고 했다. 가쯔오부시까지 얹어줘서 또 좋았음. 돈부리가 매우 맛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 흔히 먹는 돈부리와는 다른 맛이었다. 내가 데리야키 소스를 골랐기도 하고 양파도 우리나라 일식집에서 주는 길고 얄팍하게 썰어서 푹 익혀주는게 아니라 좀 큼직하게 아삭거리는 놈들이라 꼭 간짜장밥 같은 맛이 좀 났다. (달걀프라이도 얹혀 있고) 미소수프랑 같이 매우 맛있게 먹고 나왔다.
그리고는 날씨가 좋으니 민트 비네투에 가야겠다고 결정했다. 왜냐하면 민트 비네투는 성 Ignoto 거리를 따라가야 하는데 그 길이 재작년의 경험을 비추어 볼 때 좀 오르막인데다 재개발이 안되어 황량한 길이기 때문이다. 우중충한 날씨에 걸어가면 좀 춥고 음울할 것 같았다. 구글맵을 찍어봤더니 심지어 웍에서 가까워서 좋아하며 걸어갔다. 빌니아우스 거리에서 걸어가니 오르막이 아니어서 더 좋았다(재작년엔 숙소에서 곧장 가느라 토토리우 거리를 따라 쭉 올라갔었다)
민트 비네투는 당시 피나비야를 제외하곤 유일하게 두 번 간 카페였는데 헌책들이 많고 구석 자리들이 좀 도서관 같아서 좋았다. 이번엔 전에 앉지 않았던 쪽 구석으로 들어갔다. 자리는 좋았는데 확실히 여기는 응달이긴 했다. 센차를 시켰는데 아이스는 안된다고 했다. 그런데 이 녹차에서 시나몬 향이 강하게 났다. 뭐지, 재작년에 마셨을 땐 안그랬는데. 티포트에 시나몬차를 우렸었나... 하여튼 시나몬 냄새 나는 센차를 마시며 여기서도 스케치를 했다. 그게 토끼 옷차림 스케치. 이렇게 카페들을 돌아다닐 줄 모르고 아이패드만 가져온데다 와이파이가 잘 안돼서 본의아니게 두 카페에서 다 스케치. 그런데 민트 비네투는 전에 왔을 때가 더 마음에 들었다. 뭔가 여기는 환대하는 느낌이 별로 없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스케치하기는 좋은 곳이다.
오늘 간 곳들이 많아서 너무 길어지는지라 오늘도 두 파트로 나눠서 올린다. 1부는 여기까지. 여기까지의 사진들은 아래.
종이컵에 담아준 플랫 화이트와 겨우 두번만에 '내 자리' 로 각인된 무지개 테이블의 엘스카.
실제로는 이렇게 이쁘고 볕이 잘 들어온답니다. 테이블 다 없앤 대충대충 스케치와는 비교불가 ㅎㅎㅎ 엘스카 사진이 좀 많다. 빛 들어오는 카페 내부가 이뻐서.
출입문 앞. 나갈 때 보니 여기도 우크라이나 응원문구가 붙어 있었다. 전쟁이 빨리 끝났으면...
이렇게 무지개테이블에서 스케치를...
웍에서 먹은 간짜장밥 맛 나는 맛있었던 돈부리. 추천!!! 가쯔오부시도 올려주고 좋았다!
민트 비네투 가는 길. 햇살이 좋아서 오늘은 공원 벤치고 야외 테이블이고 삼삼오오 다들 밖에 앉아 있었다.
성 Ignoto 거리. 여기가 사실 날씨 안 좋으면 우중충할텐데 하늘이 파랗고 햇살이 쨍하니 이쁘고 고적하다.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았다. 카페를 3곳이나 돌아서 그야말로 카페 투어를 한 날이었다. 귀가하면서 마지막으로 들른 카페는 빌니아우스 거리에 있는 홀리 도넛. 나는 도넛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재작년에 왔을 때에도 여기 들를 생각이 없었는데 어제 어쩌다 슬쩍 들어가보니 벽에 붙은 메뉴판에 칵테일이 몇개 있고 거기 벨리니가 들어 있어서 의외였다. 벨리니를 내주는 바가 의외로 별로 없다. 그래서 오늘 돌아오면서 들러서 벨리니를 시켜보았다. 역시나 진열장의 도넛들은 당기지 않았고(오후 늦은 시각이라 그나마 얼마 없었음), 벨리니 가격이 싸지 않았으므로 이것만 시킴. 오랜만에 벨리니 마셨더니 맛있었다. 아마 점심 때 웍에서 짭짤한 돈부리를 먹었기 때문에 더 맛있었을지도. 그런데 벨리니도 역시 알콜이라 약간 취기가 돌았고(술 잘 못 마시는 자), 호텔에 돌아와서도 내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다.
검색해보니 여기는 브런치 메뉴가 많다고 한다. 지금 호텔은 조식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아침 먹으러 갈 일은 없을 테지만 하여튼 메뉴 사진과 리뷰를 보니 맛있어 보였음. 도넛만 하는 게 아니었구나, 무시해서 미안해 홀리 도넛아. 벨리니까지 내주는데...
내부 사진 몇 장. 아늑한 스타일은 아니지만 또 너무 빈약한 스타일도 아니다. 전체적으로는 옐로우 톤인데 여기와 잘 어울린다.
도넛은 거의 다 나가고 텅텅... 그래도 저렇게 바가 있어서 좋다.
금방 마시고 나갈 거라 문 안쪽 바 테이블에 앉았다.
바깥 모습은 이렇다. 그런데 입구에 식물이 무성한 화분을 여럿 놔둬서 은근히 진입로가 좁았음.
오랜만에 스케치. 오전에 볕 좋을 때 엘스카에 가서 카페 풍경 그림. 그런데 엘스카는 여태까지 스케치했던 모든 카페들을 통틀어 제일 어려웠다. 2층 카페인데다 디테일이 너무 많아서... 그래서 내 무지개 테이블과 저 갈색 소파 사이의 테이블들은 생략함. 그랬더니 뭔가 무지개 테이블만 동동 뜬 것 같지만 ㅎㅎ 원래 모습보다 50분의 1쯤으로 간소화, 대충대충이 되었습니다만 사진들도 많이 올렸으니 본모습과 예쁨은 그 사진들로 봐주세요~
요즘 자정 즈음 잠든다. 시차 적응은 다 했고 새벽에 깨는 건 여전하지만 그래도 좀 뒤척이다 다시 잠들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은 6시 반쯤 깨서 뒤척이다 다시 잠들었고 8시 반에 일어나 대충 씻고 조식을 먹고 왔다. 평일엔 조식 시간이 10시까지라 의도치 않게 부지런한 생활 중. 우리 나라였다면 쉬는 주말엔 거의 정오까지 침대에 달라붙어 있는데.... 그래도 누가 밥을 주는 건 좋다. 청소해주는 것도.
오전에 영원한 휴가님이 방에 들르셔서 며칠 전 사놓았던 마카롱과 어제 조식 테이블에서 가져온 팅기니스, 방에 있는 캡슐 커피 등을 먹고 쉬다가 두시 즈음 늦은 점심을 먹으러 숙소 근처에 있는 ’bonocosi’라는 이탈리아 식당에 갔다. 늦은 시각이라 손님이 거의 없었다. 배가 많이 고파서 마르게리타 피자 30센티 짜리와 파르메지아노 멜란자네, 즉 가지 요리를 시켰다. 피자는 너무 크니까 남기면 싸가야겠지 했는데 끝의 도우를 잘라내고 치즈 든 부분은 다 먹음. 가지도 간만에 먹으니 맛있었다.
그리고는 빌니아우스 거리의 스코니스 이르 크바파스에 다즐링 햇차를 사러 갔다. 작년에 사다주셨던 오렌지 밸리 퍼스트플러쉬는 이번에는 없었고 다른 다원 차들만 들어와 있었다. 전에 사보긴 했지만 이번엔 햇차이고 품질도 좋아서 다즐링 Risheehat를 100그램 사고 티백 다즐링도 샀다. 빌니우스 카페들에는 다즐링 내주는 곳이 거의 없고 방에 비치된 홍차 티백이 맛없어서... 내일은 이 잎차를 우려 마셔봐야겠다.
빌니아우스에서 보키에치우 쪽으로 걸어갔고 영원한 휴가님이 근처 도서관에 데려가 주셔서 구경을 하고 스트루가츠키, 펠레빈 책도 들춰보았다. 이후 영원한 휴가님은 유치원을 마친 아이들을 픽업하러 가시고 나는 다시 게디미나스 대로 쪽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빌니아우스 거리에 있는 유로코스 라는 드럭스토어에 갔다. 여기도 드로가스랑 비슷해서 올리브영 같은 곳이었는데 물건들이 또 달랐다. 이쪽이 좀더 품질이 나은 것들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나뚜라 시베리카가 있어 깜짝 놀랐다. 이게 러시아 브랜드라 블라디보스톡이나 뻬쩨르 갈때마다 샀는데 어떻게 여기 있지? 하며 좋아하다 샤워젤을 하나 샀다. 숙소에 비치된 샤워젤은 좀 높이 달려 있고 펌핑이 잘되지 않아 불편해서. 나중에 꼼꼼히 보니 노어는 하나도 없고 ‘시베리아에서 생겨나 유럽에서 만듭니다’ 라고 적혀 있고 생산지도 에스토니아로 되어 있었다. 흠, 몇 년 전 나뚜라 시베리카 창업자가 세상을 떠났다고 러시아 뉴스 트윗에서 봤는데 그 이후 회사가 에스토니아 쪽으로 넘어간 건가. 아니면 유럽에서 장사를 하기 위해 에스토니아 쪽 지부를 활용하는 건가. 잘 모르겠다. 하여튼 반가웠다.
추위는 많이 가라앉았는데 머리가 너무 아팠다. 조식 테이블에서 마신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티백 외엔 방에서 녹차 한두 모금이 전부라 아무래도 카페인 부족 같았다. 그래서 빌니아우스에 있는 홀리 도넛에 들어가봤는데 오후 늦은 시각이라 그런지 도넛이 거의 없고 장사 접는 분위기라(여름엔 복작거렸는데) 일단 방에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은 후 책을 들고 근처 카페인에 갔다. 여기가 제일 만만한게 확실히 별다방을 벤치마킹하는 곳 같다. 가을이라고 펌프킨라떼 이런 것도 나왔다. 카페는 꽉 차 있었고 나는 홍차 한잔과 라즈베리 에클레어를 시켰다. 이 에클레어는 아이싱이 다 갈라지고 맛이 별로라 실패였다. 역시 클래식한 초코 에클레어가 제일인 것 같다.
하여튼 카페인과 당분이 들어가자 놀랍게도 두통이 가셨고 카페에 앉아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을 끝까지 다 읽었다. 이 책은 아주 여러 번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가슴을 무겁게 울리는 뭔가가 있다. 이들의 작품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나는 지금껏 읽은 이들의 소설들 중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된다’를 제일 좋아하지만 그건 너무나 즐겁기 때문이고(웃음이 필요하다), 실제로 ‘소설 작품’으로서는 이 소설을 가장 좋아한다. 짧지만 페이소스가 있고 내려치는 듯한 파워가 있다. 원숙한 작가들에게서 나올 수 있는 소설이다. 영원한 휴가님은 이 책이 빌니우스의 좋은 카페들을 다 가봤다고 하신다. 조그맣고 가벼운 문고본이라 정말 그렇다. 테이스트맵, 엘스카, 이딸랄라, 카페인 등등등. 이제 이걸 다 읽었으니 리가에서 산 스트루가츠키 형제 원서들을 읽어야 하나 싶지만... 아악 생각만 해도 머리아파...
책을 다 읽고 방으로 돌아왔다. 나뚜라 시베리카 샤워젤로 목욕을 해보았는데 매끌매끌하고 좋았다. 쉬다가 좀전에 vpn을 켜고 업무 체크를 했다. 지금이 사실 여러 가지로 피곤하고 어려운 시기라 체크해줘야 할 일들이 꽤 있었다. 메일 몇 통을 보내놓고 자료를 좀 보고, 내가 올해 개인정보 관련 교육을 안 들어서 10월 중 무조건 동영상 교육 이수를 해야 한다는 메일에 괴로워하며 그것을 켜놓고 있다. 그런데 여기 인터넷 연결이 안 좋은데다 해외라 그런지 자꾸 끊어진다. 엉엉... 내일 다시 시도하기로 미뤄놓고 오늘의 메모를 적는 중.
오늘은 4.2킬로, 7,504보. 의외로 어제보다 조금 더 걸었네. 내일은 해가 날 것 같기도 한데... 오르막길과 약간 황량한 코스의 압박으로 아직 안 간 민트 비네투 혹은 파우피스에 가볼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파우피스는 아무래도 볼트를 타고 갈 것만 같아 ㅎㅎ
방에서 캡슐로 내려마신 에스프레소(나 말고 영원한 휴가님 ㅎㅎ)
이탈리아 식당. 장사가 잘 돼야 할텐데 하고 걱정되는 여유로움...
엄청 크다고 놀랐으나 다 먹음 ㅎㅎㅎ
여기는 가지를 길게 잘라주지 않고 둥글게 썰어주었는데 먹기는 더 편했다. 토마토 소스는 거의 없었다.
보키에치우로 이어지는 작은 골목에서.
낙서들.
뱅크시 스타일이지만 뱅크시는 아니겠지 :)
카페인. 여러 카페를 섭렵한 소중한 문고본 소설. 그리고 비추천 라즈베리 에클레어. 무조건 초코를!
엘스카 커피는 필리모 거리와 다른 거리가 만나는 접점 삼거리 모퉁이에 있다. 재작년 필리모 거리를 걸어내려오며 신호 기다리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며 ‘와 저사람들은 앉아 있고 나는 걸어가고 있네, 나는 힘들다’ 라고 생각했고 ‘한번 들어가볼까‘ 했는데 외관은 엄청 미니멀리즘 같아서 안 들어갔었다. 그런데 돌아온 후 영원한 휴가님이 이 카페 화장실에 보위 사진이 있다고 하고 작년엔 여기서 러브라믹스 티포트도 사다주셔서 궁금해졌다. 숙소에서 멀지도 않았다. 테이스트 맵에서 숙소로 내려오는 길에 있기 때문에 오늘 밥 먹은 후 들러보았다. 이미 커피를 마셨으니 좀 과한가 했지만 올리비에 샐러드가 차가웠고 또 내려오는 길이 추웠던지라 카페로 쏙 들어가게 되었다.
어머나 그런데 여기가 너무 좋은 게 아닌가. 지금까지 빌니우스에서 갔던 곳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카페로 꼽히게 되었다. 아마 스타일 때문인 것 같다. 왜냐하면 커피를 마신데다 디저트는 별로 맛있어 보이지 않아서 홍차 대신 추위를 달래기 위해 핫초콜릿을 마셨기에 음료가 어떨지는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이곳 내부 인테리어와 분위기가 딱 내가 좋아하는 카페 취향이었다.
돌아와서 사진들을 보면서 깨달았다. 아, 여기는 본치 카페를 좀 닮았구나. 색채도, 몇몇 종류의 테이블과 의자, 소파를 배합한 스타일도, 조명도, 걸려 있는 그림들도. 과하지 않으면서도 아늑하고 빛이 잘 들어서 정말 내가 좋아하는 타입의 카페였다. 카페 에벨의 편안함과 아늑함, 본치 카페의 스타일리쉬함이 섞여 있다고 해야 하나.
여기도 사람 많은 곳이라 아래쪽 홀에 앉았으면 덜 좋았을 거 같은데 마침 내가 반단 정도 복층으로 올라갔을 때 맨 안쪽 창가 자리가 나서 얼른 그리로 들어감. 앉고 나서 보니 이 자리가 제일 좋은 자리였다! 안쪽 콘센트도 있고 창가에 딱 붙어서 바깥 구경도 할 수 있고 홀 전체가 다 내려다보이고, 심지어 내 테이블도 노트북이나 태블릿 스케치, 책 읽기 좋은 단단한 목재 빈티지에 연한 무지개색 컬러가 들어가 있었다.
엘스카는 무지개가 상징인 것 같다. 재작년에도 지나가면서 이 무지개 무늬(깃발이었는지 장식이었는지 가물가물)를 봤어서 기억에 남았음. 그러고 보니 여기는 블라디보스톡의 카페마랑도 좀 비슷하다. (카페마에 무지개 테이블이 있다. 그리고 스타일도 비슷함) 역시 취향이란 한결같은 듯하다.
화장실에 가봤는데 이번엔 보위 사진은 없고 각종 낙서 스티커, 바스키아와 키스 헤링 모사 낙서가 있었다. 그리고 빨간 잔에 코코아를 줘서 더 좋아짐 :)
맘에 드는 카페의 테이블에 앉아 무척 좋아하는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소설을 읽으니 행복했고 여행 와서 휴식하는 느낌이 딱 들어서 좋았다. 카페 에벨에서 느꼈던 기분이랑 좀 비슷했다. 앉아서 글 쓰고 싶어지는 카페였다. 그런데 이 자리가 아니면 그만큼 좋지는 않으려나.
내가 앉아 있는 동안에도 손님이 무지 많이 왔다. 내 옆자리 테이블엔 귀여운 갈색 푸들을 데려온 여인들이 앉았는데 푸들이 얌전하게 담요 깔고 엎드려 있다가 뭔가를 보고 웡웡 짖었다. 아 이것도 코기가 있었던 카페 에벨이랑 비슷하네.
여기는 숙소에서도 가까우니 가기 전까지 여러번 들를 것 같다. 그런데 홍차가 맛있지는 않을 것만 같음. 핫초콜릿은 나쁘진 않았는데 우유가 많이 들어서 연했다. 그리고 별로 뜨겁지 않고 미지근했다. 우유를 넣어줘서 그런가보다. 라떼도 그렇고 우유 온도를 너무 높게 하면 비린내가 나기 때문에 스팀밀크 넣을 때 좀 미지근해진다는 얘길 어디선가 읽었음. 나는 보통 우유 든 음료를 안 마시고 한국에선 밀크티도 아이스만 마시니까(그리고 아이스 딸기라떼 정도만) 이건 다 주워들은 얘기임.
맘에 드는 이쁜 카페니까 사진 많이. 또 가야지.
창 너머. 이건 첨에 앉은 자리.
외관. 바깥만 보고 미니멀리즘이라 착각했는데 지금 보니 창문과 조명 비치는 것도 좀 본치랑 비슷했네. 왜 미니멀리즘이라 생각했었지? 아마 저 야외 테이블과 의자 때문에 첫인상이 그랬나보다(그래서 그때 안 들어갔나보다)
내가 득템한 명당자리~ 파스텔톤 무지개컬러 빈티지 테이블~
이렇게 보니 정말 본치 카페 닮음. 미니 본치.
빨간 잔~ 역시 빨간색은 배신하지 않음.
왼편이 내 코트. 여행 온다고 지른 후드 달린 코트인데 저거 안 가져왔으면 진짜 추웠을듯. 내 취향 컬러가 아니라서 고민했었는데 풍덩해서 편하다.
그림들도 과하지 않아 좋음. 작은 그림들엔 판매가도 붙어 있었다. 카페 옆엔 갤러리도 있어서 혹시 연관되어 있나 궁금했다.
테이스트 맵은 빌니우스에서 꽤 유명한 로스터리 카페라고 한다. 재작년에 첨 왔을 때 영원한 휴가님께서 카페들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추천 리스트를 짜주셨는데 관광지와는 좀 떨어져 있어 가보지 못했던 곳이다. 이번에도 ‘아 걸어가기 좀 힘들거 같은데’ 하다가 볼트를 타고 가보았다.
커피가 유명한 곳이니 나도 커피를 시켜보았다. 사실 조식 먹은지 얼마 안되어 차를 마시기 어려웠고(차를 마시면 케익이 먹고픈데 배가 불러서), 일년에 한번쯤 여행 와서 커피 맛있다는 곳에서는 카푸치노를 마셔보게 된다. 카페 에벨이나 헤드샷 커피, 카페마, 카페 첸트랄 뭐 그런 곳들처럼. 커피 잘 못마시는 나에게는 라떼가 더 낫지만 양도 많고 우유가 많이 들어있는지라 ‘그래도 카푸치노가 더 클래식하지 않나’ 라는 나만의 –좀 신빙성 없는- 기준으로 카푸치노를 시켰다.
사람이 엄청 많았다. 카페 입구가 좁았고 홀과 홀을 잇는 복도도 좁아서 사람들이 바글거렸고 셀프서비스도 아니다 보니 잔을 나르는 점원들이 고생이었다. 나는 2층으로 올라갔다. 천정이 낮은 복층 구조인데 다닥다닥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이 카페는 미니멀리즘 스타일로 되어 있어 인테리어 자체는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또 창가 쪽 구석 테이블에 짱박히자 콘센트도 있고 책 읽기는 나름 편해서 아이패드 가져왔으면 스케치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스케치 안 한지도 엄청 오래됨.
카푸치노는 내 입맛엔 좀 쓰고 강했는데 여기는 설탕도 곁들여 주지 않았다. 커피부심이 엄청난 곳인가보다. 아래층에 가서 설탕 한봉지 가져왔는데 ‘정말 넣고 싶냐?’ 라고 적혀 있어서 ‘너무해’ 란 생각이 들었음. 근데 이탈리아에서도 카푸치노 시키면 설탕 준단 말이야, 아니면 넣으라고 옆에 쌓여있고... 다들 넣던데... 설탕을 한봉지 넣었더니 카푸치노가 매우 맛있어짐 ㅎㅎ 커피에 대한 조예는 없지만 맛있는 카푸치노라는 결론을 내림. 근데 나는 이것보다는 조금 더 부드러운 카페 에벨 쪽이 더 좋긴 하다. 아마 내가 홍차도 부드러운 다즐링을 좋아하기 때문일지도.
책 읽고 있으니 아이들이 자유시간을 갖는 틈새 타임에 영원한 휴가님께서 들러주셨다. 에스프레소 마끼아또를 시키고 전에 내가 궁금해했던 파리 브레스트를 디저트로 시켜오심.
그런데 파리 브레스트 분명 뻬쩨르 카페 사진에선 엄청 이뻤는데 여기 나온 디저트는 납작하고 안 예뻤다 ㅎㅎ 크림은 아주 달달했다. 둘이 나눠먹어 다행이었음. 에스프레소 마끼아또가 맛있다고 하셨다. 이 카페에 자주 오시진 않으나 오시면 ‘아 여기 커피는 맛있다’라고 생각하게 되신다고 함. 나라면 ‘아 여기 차 맛있다’ 라고 생각하면 (가까울 경우) 자주 올 텐데 :)
여기도 러브라믹스 잔들을 썼다. 특이한 건 여기는 검정색 잔들을 쓴다는 것. 이것까지 정말 미니멀리즘이다. 그런데 여기는 검정색 잔이 잘 어울렸다. 내부 인테리어는 미니멀리즘이라 막 아름답진 않았고 또 사람이 많아서 사진 찍기가 어려웠기에 커피랑 잔 사진들 대부분으로 테이스트 맵 마무리. 커피 좋아하시는 분들은 빌니우스에 오시면 꼭 들러보세요~
이게 내 카푸치노. 설탕 넣기 전.
대기 번호. 손님이 많은데다 1층 홀 두개, 복층에도 자리가 있어 점원들이 고생... 근데 홀이 여럿이라도 넓진 않음.
디저트 진열장. 나는 카푸치노만 시켰는데 (커피 맛있는 데는 디저트 맛없다고 하셨던 영원한 휴가님 말씀이 기억나서), 이때도 파리 브레스트가 궁금했는지 사진에 들어가 있음 ㅎㅎ
이건 에스프레소 마끼아또. 클로즈업해서 캐푸치노랑 같아보이지만 맨 위 사진 보면 큰게 내 카푸치노, 작은게 이거.
생각보다 안 이쁘고 덜 맛있었던 파리 브레스트. 내가 뻬쩨르 카페 인스타에서 보고 이상을 품게 된 놈은 뭔가 하얀 크림이 몽실몽실 들어 있고 이쁜 비주얼이었는데 ㅎㅎ
앞 테이블들 손님들이 다 마시고 남겨둔 검정 잔이 이렇게 도열해 있으니 또 미니멀리즘 어울리고 이쁨. 근데 정말 작은 테이블들이 이렇게 다닥다닥이라 좁긴 했다.
사진은 오늘 늦은 점심 먹은 후 두번째 카페 가는 길에 발견한 꽃집 장식. 참으로 무심하고 무성하다. 빌니우스 건물들에는 조화 꽃장식이 많은데 하나같이 엄청 무성하고 스타일 과잉이라 깜짝 놀라게 된다. 이녀석은 그런 꽃들은 아니지만 그 무성함과 막 모아두는 느낌은 비슷함. 문 앞에도 호박과 갈대 장식이 되어 있었는데 아마 가을/핼로윈 느낌인가보다.
..
어제 많이 걸어서 너무 피곤했는지 9시까지 자고 또 잤다. 7시쯤 깼다가 도로 자기를 반복했는데 여행 와서 제일 많이 잤다. 더 자고 싶었는데 조식 먹으러 내려가야 해서 9시에 억지로 일어났음. 조식 신청을 해놓으면 끼니 챙기기가 수월해서 좋긴 한데 아침에 맘껏 게으름피울 수가 없다. 이러다 어떤 날은 안내려갈지도...
오늘은 다시 흐려지고 싸늘했다. 기온 자체가 아주 낮지는 않았으나 음습하고 흐린 날씨였다. 빌니우스 와서 이틀 연달아 많이 걸었으므로 오늘은 움직임을 최소화하기로 하고 재작년에 왔을 때 영원한 휴가님이 추천해주신 카페 중 안 가봤던 ‘테이스트 맵’ 에 가보기로 했다. 커피가 맛있는 곳으로 로컬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그런데 구시가지 쪽은 아니어서 길찾기가 좀 까다로웠고 많이 걸어야 하는 것 같아서 나는 ‘에이 볼트 불러~’ 하며 택시를 타고 갔다. 볼트로는 5분밖에 안 걸렸다. 숙소가 있는 게디미나스 대로를 따라가다가 꺾어서 공원 곁을 지나 쭉 올라가니 나왔는데 오르막이라 걸어서 갔으면 고생했을 듯(돌아올 땐 내리막이니까 걸어왔는데 추웠다)
카페 얘기는 따로 올리기로 하고... 카페에 앉아 책을 좀 읽고 있으니 영원한 휴가님께서 잠깐 들르셨다. 자택에서 그렇게까지 멀진 않아서 킥보드를 타고 오셨다고 함. 빌니우스에서 다시 보니 또 반가웠다.
카페에서 나와 근처의 정교 성당(성 콘스탄틴과 미하일 성당이라고 했다)에도 들어가 보았다. 성당은 정교 성당치고는 외관이 덜 화려했고(크기는 했지만), 내부에는 의자도 있고 조명이 밝아서 약간 카톨릭 성당이랑 섞인 느낌이었다. 그러고보니 새벽의 문 근처 정교 성당도 좀 그런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가고 싶었던 우크라이나 음식점이 근처라 거기까지 안내해주신 후 귀가하셨다. 일요일이라 가족들 챙겨야 하는데 얼굴 보러 나와주셔서 고마웠다.
음식점 이름은 ‘보르쉬’였다. 당연히 보르쉬를 먹어야지~ 그런데 여기는 식당이 작지도 않은데 카운터 점원이 하나 뿐이었고 그나마 자리에도 잘 없어서 들어간 후 주문받을 때까지 15분 이상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다른 테이블 손님들도 마찬가지... 그리고 메뉴는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수프 외에는 펠메니, 치킨 키예프, 치킨 타바카, 거위구이, 달달한 블린, 그리고 올리비에 등 샐러드 정도였다. 그래서 보르쉬 작은 거랑 새우랑 연어 든 올리비에를 시켰다. 보르쉬는 맛이 깊고 맛있었는데 상당히 기름졌다. 나는 기름기가 덜하고 야채가 더 많고 비트 색이 더 빨간 걸 선호하긴 하지만 그래도 따뜻하고 맛있었다. 그러나 보르쉬를 다 먹고 나서도 한참 기다려서야 올리비에가 나와서 그사이 배가 찼고 수프 없이 올리비에만 먹기엔 좀 추웠다. 우리나라처럼 음식이 한번에 다 나오면 참 좋겠는데 ㅎㅎ 그래서 올리비에는 좀 남겼다.
샐러드를 먹고 나서 나왔더니 다시 추웠다. 거슬러 올라가다 필리모 거리를 쭉 따라 내려가면 두 번째로 가려던 엘스카 커피, 그리고 숙소가 있는 게디미나스 대로가 나오는 루트였는데 구글맵을 찍었더니 지름길을 알려줘서 공원을 가로질러 내려가게 되었다. 근데 이 길이 상당히 추워서 괴로웠음. 기억을 더듬어보니 재작년에도 이 필리모 거리는 넓고 바람불고 좀 힘들었다. 이웃 거리도 좀 그랬는데 아마 버스가 다니는 도로변이라 그런가보다. 응달 쪽은 이미 나뭇잎이 노랗게 변해 있었고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다. 공원을 지나자 엘스카 커피가 나왔다. 나는 이 엘스카 커피가 무척 마음에 들어서 또 갈 것 같다.
엘스카에서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소설을 4분의 3쯤 읽은 후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드로가스에 들러 바디로션과 립밤을 샀다. 수면양말도 사려고 했으나 한 켤레에 5.99유로나 해서 ‘우왁 넘해’ 하며 안 삼. 바디로션은 종류가 별로 없어서 무난한 뉴트로지나를 샀는데 세가지 종류가 있었다. 내가 산 이것보다 좀더 보습 잘되는 ‘아주 건조한 피부용’ 시카 바디로션이 있어 고민하다가 그런 건 흡수가 빨리 안돼서 이걸 샀는데 막상 목욕하고 발라보니 그냥 그거 살걸 그랬다. 내 피부가 그렇게 건조하진 않은데... 물 자체가 석회질이 있어 그럴지도.
목욕을 하고 좀 쉬다가 누룽지 따위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이제 오늘의 메모를 적고 있다. 오늘은 볼트를 타고 갔던데다 카페 두 곳, 식당 한 곳이 전부라 다리가 안 아프고 좋다. 발품 파는 건 다리 아프고 힘든데 역시 자본의 힘이란...
간밤에 예전에 쓴 글들을 좀 뒤적여보았다. 올해는 글을 쓰지 못해서 불만족스러운 나날이다. 연초부터 아빠가 아프시고 회사 업무도 너무 힘들어서 작년에 시작한 글을 1월에 마친 이래 새 글을 전혀 쓰지 못했다. 여기 와서 뭐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 메모는 이렇게 줄인다. 사진들 아래 몇 장. 사실 오늘은 거의가 카페 사진들이라 나머지 사진은 별로 없음. 걸어내려오는 길은 좀 황량하고 썰렁했고 추워서 사진 찍기 어려웠음.
오늘은 3.3킬로, 5,370보. 확실히 볼트 덕분.
이게 성 콘스탄틴과 미하일 정교 성당.
지름길 공원.
보르쉬. 뽐뿌슈까 빵을 준대서 ‘오 좋아 제대로야’ 하고 좋아했지만 마늘버터로 구운 브리오슈가 아니라 모닝빵 타입이었고 마늘기름을 따로 줌.
새우와 연어 든 올리비에. 좀 짰다. 난 기본 올리비에로 저렴하게 내주는게 좋은데 레스토랑들은 항상 거기에 소고기니 새우니 추가해 비싸져서 아쉽다.
숙소에 돌아오니 3시 즈음이었다. 청소가 되어 있어 좋았고 해가 나서 방 안에 햇살이 가득한 것도 좋았다. 물론 눈 때문에 홑겹 커튼과 암막커튼 약간을 쳐야 했지만.
너무너무 배고파서 컵라면이랑 키비나이를 세팅해서 정신없이 먹음. 가벼운 조식 먹은 후 콩알만한 슈 하나가 전부에 이미 3시라 너무 배고팠다. 오 근데 저 컵라면이 의외로 맛있었다! 국물도 진하고 건더기도 엄청 많고 라면도 우리나라 컵라면보다 더 많이 들어있고. 전혀 맵지는 않았지만 국물이 진하고 우리나라 컵라면보다 조미료인가 향신료인가 하여튼 그런 맛이 더 강했다. 떨고 들어와선지 맛있게 먹었다. 키비나이는 좀 아쉬웠다. 닭고기만 들어있어서. 버섯 든 거 살걸... 닭이랑 버섯 같이 넣어주면 더 맛있었을텐데. 하지만 컵라면 국물이랑 잘 어울렸음.
첨엔 어제처럼 좀 쉬었다가 근처 카페에 가서 책 읽을까 했었지만 네시간 남짓 동안 8킬로 넘게 걷고 들어온 터라 다시 나가지 않을 것 같아서 들어오는 길에 숙소 근처에 있는 조그만 Lo Cafe 라는 마카롱 카페에서 마카롱 두개를 테이크아웃해왔었다. 나는 마카롱을 별로 즐기지는 않는데 카페가 귀여워서 궁금했고 마카롱은 작으니까 부담이 없어서.
오늘 나의 실패는 리미 슈퍼에서 사온 차였다. 그냥 티백 사려 했는데 슈퍼에도 다즐링은 없었다. 스코니스 이르 크바파스에서 나온 종이포장 잎차가 있었는데 리가의 파루나심 카페에서 마셨던 차에 적혀 있던 단어를 떠올려보면 분명 '백차'로 추정되는 차가 있어 그걸 샀으나 방에 와서 뜯어보니 각종 빨간 열매와 꽃잎이 섞여서 엄청 가향 티였다 ㅠㅠ 그래서 방에 있는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티백을 우려야 해서 좀 아쉬웠음. 하여튼 방에서 다시 조그만 티타임 +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책을 읽으며 좀 쉬었다.
어제 슈퍼에서 라즈베리 사온 걸 깜박 잊고 있었다. 라즈베리는 달지 않고 좀 시었다 ㅠㅠ 그래서 50프로 할인을 했나. 하여튼 방에 있는 티백과 찻잔 활용. 마카롱은 라즈베리 플롬비르와 시트러스 두 개였는데 이게 우리나라처럼 뚱카롱이라 신기했다. 마카롱이 커서 플롬비르만 먹고 시트러스는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우리나라 뚱카롱이랑 똑같음. 신기신기.
쿠야에게 마카롱과 라즈베리 대접. 빈대 나올까봐 쫄고 켐핀스키보다 좀 소박해진 방에 뚜떼해졌던 쿠야는 이제 좀 기분이 나아진 것처럼 보임. 그건 그렇고 간밤엔 불 끄고 잤는데 물린 데가 없었다. 빈대는 없는 것 같고 아무래도 물이 건조해서 그런것 같다. 오늘 피곤해서 바디로션을 못 샀는데 내일 드로가스에 가서 보습 잘되는 로션을 사야겠다.
차 마신 후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고 머리를 감고 말린 후 침대에 들어가 좀 쉬었다. 간신히 잠들지는 않았다. 일찍 들어왔으니 오늘의 메모도 빨리 쓰고 스케치도 하고 책도 읽으려 했는데 어째선지 금세 또 밤 열시가 다 되어가네... 아, 이 메모들 쓰기 전에 업무메일을 확인했다. 회사에 온갖 피곤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ㅠㅠ 나와 있어서 좋긴 한데 마음 한구석은 불편하다. 상황이 언제 좋아질지 모르겠네.
오늘 날씨는 좋았으나 내일은 낮부터 또 비가 온다고 한다. 내일은 전에 영원한 휴가님이 추천해주셨던 카페 리스트들 중 한두곳에 가보는 걸로... 비오면 볼트를 불러 타고 가야지. 이렇게 기나긴 오늘 메모 끝. 2부는 순전 방에서 뭐 먹은 얘기만 있네 ㅎㅎ
사진은 스티클리우 거리 입구에 걸려 있는 천사. 이 거리는 언제나 뭔가 예쁘고 아기자기한 것들을 걸어두는데 재작년에 내가 갔을 때는 마그리트 식의 모자, 이후 색유리 모양 장식이었다. 이 천사는 사진에서 보고 '아 나는 천사를 좋아하는데... 쟤는 내가 갈때까지 있었으면 좋겠다' 고 생각했는데 아직 바뀌지 않아서 반가웠다. 그런데 영원한 휴가님 말씀대로 천사가 맨발이라 바람 불고 비오면 추울 것 같다 ㅜㅜ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오늘은 하늘이 파랬고 해가 좀 났다. 빌니우스 와서 처음으로 보는 파란 하늘!
어제 자정 즈음 너무 피곤하게 잠들었고 역시나 새벽에 깼지만 30분, 한시간씩 도로 자고 또 자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조식 먹으려고 9시 좀 안되어 일어났다. 주말엔 8시부터 11시까지가 조식 타임이라 조금 더 게으름 피울 수 있긴 했다.
밥을 먹고 11시 쯤 방을 나섰다. 간밤에 목이 부어서 은교산을 먹고 잤었고 피로가 쌓여 있어서 해가 나는 동안 공원과 개울가에만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많이 돌아다녀서 오늘 도합 12,611보, 8.4킬로나 걸었다. 공원이 넓어서 이리저리 헤맸고 대성당 광장에서 게디미나스 대로로 곧장 오는 대신 카페 들르려고 보키에치우 거리와 빌니아우스 거리로 다시 트라이앵글 횡단을 한데다 옷가게들도 구경하고 이키와 리미 슈퍼를 왔다갔다 하느라 많이 걸었던 것 같다. 날씨는 어제보단 훨씬 따뜻했지만 중간중간 썰렁하고 춥기도 했다.
대로를 지나 대성당 광장으로 가서 공원으로 갔다. 베르나르딘 공원을 지나 우주피스 근처의 빌넬레 강(...개울에 가까움)을 구경하고 나오려고 했는데 광장 바로 옆 공원을 걷다가 아마도 옛 조선소였던 듯한 아르세날로와 네리스 강변이 나왔다. 빌니우스에서는 강변에 가본 적이 없어서 길을 건너가보았는데 네리스 강은 작았고 좀 황량해서 아쉬웠다. 리가의 다우가바 강보다 좁았는데 이 강도 다른 곳에서는 넓어지려나 궁금했다. 하여튼 강변은 추웠으므로 도로 공원을 거슬러 올라가서 광장을 끼고 돌아서 베르나르딘 공원을 산책했다. 이 공원도 전에 우주피스 갈때 가로질러갔는데 오늘 구석구석 다녀보니 꽤 넓었다. 공원에서 분수 구경, 유모차 끌고 나온 사람들 구경, 강아지들 구경하며 산책하다 빌넬레 시내까지 갔다.
잠시 우주피스에 가볼까 했지만 언덕 등반이 싫어서 옆의 골목으로 빠져서 성 안나 성당에 들렀다. 아마도 빌니우스에서 가장 유명한 성당 중 하나일 듯하다. 붉은 벽돌의 고딕 성당인데 뾰족뾰족 첨탑이 초를 꽂아둔 케익처럼 의외로 아기자기한 느낌이다. 나는 벽돌도 고딕 양식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바로크, 로코코가 더 좋다) '이 성당 넘 좋아'는 아니지만 그래도 안에 들어가 잠깐 기도를 하고 나왔다. 이때쯤 배고프고 화장실도 가고 싶고 추워지고 다리 아프고 엄청 힘들었다. 제일 가까운 카페는 우주피스 쪽에 있는 coffee1이나 그 근방 카페들이었지만 어제 가려다 지나쳐간 이딸랄라 카페에 가기로 결정하고 길을 건너 필리에스 거리, 디조이 거리를 지나 보키에치우 거리로 갔다. 그러니까 어제 처음 나왔던 루트를 거슬러 갔음.
중간에 디조이 거리에서 새끼치고 있는 조그만 스티클리우 거리도 잠깐 들렀다. 그때 너무 피곤해서 '아 그냥 아우구스타스&바르보라 카페에라도 갈까‘ 했지만 '아 거기 케익 비싸고 맛없었다' 라는 기억이 되살아나서 그냥 천사 구경, 골목과 관광객 구경만 하고 도로 나와서 언제나 지치고 힘든 드넓은 디조이 거리를 거슬러올라가 보키에치우 거리의 이딸랄라 카페에 갔다. 이 카페에 대해선 앞에 별도로 적었으니 생략.
카페에서 나와 보키에치우 거리를 지나 빌니아우스 거리로 다시 들어섰다. 콩알만한 슈크림 한개만 먹었던터라 배가 고팠는데 식당 하나를 골라 들어갈까 하다가 춥고 국물 먹고파서 슈퍼에서 일본 컵라면을 사기로 결정하고는(빌니우스에선 한국 컵라면은 안 판다) 피나비야 카페에 가서 키비나이를 한개 테이크아웃했다. 키비나이는 엠파나다와 삐로슈까 비슷한, 안에 속이 든 파이인데 여기 피나비야의 파이들이 맛있어서 재작년에 세번이나 갔었다. 버섯 키비나이와 치즈서양배 패스트리를 너무 먹고팠지만 '국물이랑 먹는 밥 대용!'이라 생각해서 치킨 든 걸 샀다. 그리고는 게디미나스 대로로 나왔는데 이 와중에 춥다는 이유로 망고와 H&M에 들러 구경도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맘에 드는 옷이 하나도 없었음. 어제 베네통엔 있었는데. 거기가 더 비싸서 그런가 흑흑...
숙소 맞은편의 iki 슈퍼에 갔는데 국물 있는 컵라면이 없어서 슬퍼하며 도로 거슬러올라가 rimi 슈퍼까지 갔다. rimi에 재밌고 좋은 것들이 많다. 리들, 리미, 이키, 막시마 등이 있는데 나는 여기서 리미가 제일 좋음. 기념품 가게보다 더 재미있는 리미 슈퍼 구경. 이런 슈퍼에 오면 항상 쥬인 생각이 난다. 박물관 미술관보다 슈퍼가 더 좋다고 했던 쥬인. 그런데 나도 이해가 돼... 난 심지어 미술 쪽 업무를 하고 있는데도 ㅎㅎㅎ
그리하여 리미에서 닛신 컵라면을 사서 간신히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 메모가 너무 기니까 일단 여기서 1부 끝. 사진들 여럿. 날씨가 좋았기 때문에 사진 많이 찍음. 카메라 가지고 나왔어야 하는데... 하지만 카메라 무거우니까 어차피 안 찍었겠지.
파란 하늘 아래 게디미나스 언덕과 성곽. 푸니쿨라 리프트도 있지만 아마 이번에도 안 올라갈 거 같음. 고소공포증 때문에 전망에 대한 큰 기대가 없음. 그래서 아래에서 구경.
꼬마 열차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녀석이 내가 가는 루트로만 오는 걸 보니 아마 내 루트가 전형적인 광장과 공원 산책루트였나보다.
이딸랄라 카페는 카페들이 몰려 있는 보키에치우 거리 끄트머리에 있다. 재작년에 왔을 때는 몰랐던 곳인데 은근히 인기가 있는 곳이라 하여 오늘 들러보았다. 이탈리아식 젤라토, 케익과 디저트, 빵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커피와 차 종류들이 있었다. 여기도 커피는 러브라믹스 잔에 준다. 빌니우스 카페들은 대부분 러브라믹스를 쓰는 것 같다. 카페마다 쓰는 잔이 좀 다양하면 더 좋겠는데.
토요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너무너무 많았다. 테이크아웃 손님들도 많았고 오늘은 날씨가 반짝 좋았기 때문에 좀 추웠지만 야외에 앉는 손님들도 여럿 있었다. 첨에는 딱 하나 남은 테이블에 엉거주춤 앉았다가 창가 쪽 1인 테이블이 비어서 그리로 잽싸게 옮겼다. 카페는 파스텔톤으로 예쁘고 아기자기했는데 테이블이 너무 다닥다닥 붙어 있고 또 서로 다른 스타일들의 테이블과 인테리어가 좀 뒤섞여 있어 복잡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이 좀 빠져나가자 분위기가 좋아졌다만 오래 앉아 있기 편한 카페는 아니었다. 그리고 가격대가 좀 비쌌다. 이탈리아식 카페니까 티라미수를 먹을까 했지만 좀 비쌌고 맛있어보이지 않아서 아주 조그만 초콜릿 슈를 골랐는데 그것도 4.5유로나 했다. 맘먹으면 한입에 쏙 넣을 크기였음. 슈 자체는 맛있었다. 속의 커스터드 크림이 아주 진해서 가벼운 크림을 좋아하는 내 입맛보다는 더 강했지만. 하긴 이렇게 조그만 슈인데 크림이라도 제대로 진하게 들어 있어야지. 차는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와 얼그레이 뿐이었다. 빌니우스 카페들 중 다즐링 내주는 곳이 거의 없었던 기억이 나는데 새로 발굴한 카페들도 그렇네.
벽 한쪽에는 동그란 거울들이 여러개 붙어 있었는데 손님들 얼굴이 그대로 비쳐서 좀 정신없어보였지만 맞은편 테이블의 커피잔 비친 모습은 또 근사해서-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한 컷 찍어두었다.
카운터에 이렇게 손님들이 바글바글바글!!!
아까 그 거울 앞에 앉아 있다가 창가 자리가 나서 옮겨온 후. 슈가 앞에 있어서 좀 커보이지만 엄청 조그맸다. 그리고 홍차는 진하게 잘 우려주었지만 유리잔이라 조금 아쉬웠다.
오늘은 비가 오지 않았지만 음습하고 쌀쌀한 날씨였다. 히트텍에 티셔츠, 니트바지에 숏패딩, 스카프 차림으로 나갔는데도 추워서 좀 떨었다. 중간에 카페에 들어가기도 하고 슈퍼와 기념품가게에 들러 몸을 녹였다. 게디미나스 대로에서 베네통 매장을 발견하고 들어가봤는데 신상 코트가 예뻤지만 내 키에 비해 너무 길었고 가격도 비싸서 그냥 구경만 했다. 할인하는 모직 반바지와 모직 미디 스커트를 살까말까 망설이기까지 했다. 정말로 추웠던 건지 아니면 몸 상태가 별로 안 좋았던 건지 잘 모르겠다. 오후 늦게 근처 카페 갈때는 코트로 갈아입고 나갔더니 좀 나았다. 코트랑 숏패딩 챙겨오기 잘했다는 생각과 함께 기모바지를 마지막에 빼버린 것에 대한 후회가... 어쩐지 이러다 조만간 게디미나스 대로에 있는 의류매장에 들어가 따뜻한 옷을 사입을 것만 같다.
간밤에 빈대 걱정 때문에 너무 졸린 상태에서도 불안해하다가 결국 방의 불을 켜고 잤다. 캄캄한 밤중에서 새벽에 놈들이 출몰한다고 해서. 안대를 쓰고 자긴 했는데 나는 원래 암막커튼+안대 무장을 하고 자도 중간에 깨므로 너무 안 좋은 수면 환경이었다. 하여튼 더 물리거나 이상한 자국이 나타나진 않았고 왼쪽 발목의 자국도 다 가라앉았다. 그래서 오늘은 불을 끄고 자볼까 싶다. 자정 좀 안되어 잠들었는데 엄청 피곤하게 자다가 역시나 새벽 5시 반쯤 깼다. 한시간 이상 뒤척이다 퍼뜩 새잠이 들었는데 이때 막 꿈을 꾸며 정신없이 잤다. 그런데 이 호텔은 조식이 10시까지라 어떻게든 밥을 먹어보고자 했으므로 9시가 좀 안되어서는 억지로 일어나야 했다. 왜냐하면 어제 리가에서 빌니우스 넘어오면서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오후 늦게는 맥도날드로 때웠기 때문에 너무 배가 고파서... 너무너무 더 자고 싶었지만 꾸역꾸역 일어나 샤워를 하고 조식을 먹으러 갔다.
이 호텔은 소련 시절부터 1층의 레스토랑이 유명한 곳인데 조식도 거기서 먹게 되어 있었다. 물론 조식은 그냥 전형적인 비즈니스호텔 조식 뷔페라 특별할 건 전혀 없었다. 치킨 키예프가 시그니처 메뉴인데 나는 사실 이넘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자르면 버터와 기름이 주루룩 흘러내린다) 여기서 저녁을 먹어볼 일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튼 너무 배고팠기에 이것저것 막 가져다 먹었다. '오믈렛 부쳐주면 얼마나 좋을까, 남이 해주는 오믈렛 먹고프다' 라고 생각하면서... 여기는 특이하게 달걀프라이가 있었는데 너무 반숙이라 나는 먹을 수 없었다. 스크램블드 에그 대신 '오믈렛'이라고 씌어 있는 그릇에는 네모진 계란찜 큐브들이 들어 있었다. 사진의 저 네모난 노란 녀석인데 정말 계란찜이어서 밥 생각이 절로 났음. 김이랑 밥이랑 저거랑 된장찌개랑 먹고 싶었음 ㅎㅎ
밥을 먹고 와서 좀 정비를 한 후 열시 반 쯤 호텔을 나섰다. 오늘은 딱히 목적지는 없었지만 새로운 카페와 식당도 가보고 구시가지를 천천히 산책할 생각이었다. 호텔은 구시가지에서 좀 떨어진 게디미나스 대로에 있는데(여기가 명동 같은 거리임) 쭉 따라 올라가면 대성당 광장이 나오는 코스이다. 하지만 나는 그쪽으로 가지 않고 중간에 있는 빌니아우스 거리로 빠져서 보키에치우 거리, 디조이 거리, 필리에스 거리, 대성당 광장 코스로 갔다. 이렇게 가면 삼각형을 그리게 된다. 그런데 나는 재작년에 8일이나 머물렀고 구시가지 대부분을 돌아다녔지만 영원한 휴가님과 함께 다니거나 아니면 구글맵을 찍고 다녔기 때문에 머릿속에 방향이 전혀 그려져 있지 않았다. 오늘 필리에스 거리의 투어리스트 인포센터에서 종이지도를 한장 집어와 찬찬히 보니 '아 내가 오늘 트라이앵글로 다녔구나. 아 시장이랑 역은 이쪽, 우주피스는 저쪽이구나' 등등 이제야 방향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봤자 막상 다닐 땐 또 구글맵 켜고 눈앞만 보며 직진할 거 같음)
이른 시간에 나왔고 금요일이었지만 그래도 오전인지라 길거리는 매우 한적했다. 날씨가 습하고 싸늘해서 한기가 스며들었다. 쭉 걷다가 디조이 거리에 있는 성 파라스케베 정교 성당이 나타나서-내가 가장 좋아했던 성당이다- 초를 켜고 기도하려 했는데 어째선지 문이 잠겨 있었다. 흑흑...
이때쯤 나는 춥고 머리가 아파서 어디든 들어가고 싶었다. 그전에 보키에치우 거리를 지날때 이딸랄라 카페를 비롯해 가보고팠던 곳이 두어곳 나타났었으나 그때는 '밥먹은지 얼마 안돼서 암것도 못 마시겠다' 상태라 그냥 지나쳤는데 후회가 되기 시작... 마침 필리에스 거리였고 전에 블린 먹었던 '필리에스 케피클렐레'에 갈까 하며 걸어내려가다 전에 이름을 봤던, 그리고 간판이 귀여운 '에스케다르 커피 바'라는 곳을 발견했다. 그런데 검색을 해보니 찻잔이 맘에 안 드는 타입이라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가, 영원한 휴가님께 톡을 하니 거기 맘에 드셨다고 하여 귀가 얇은 나는 도로 거슬러 올라가 그 카페에 갔다. 그 카페 포스팅은 따로 했음.
에스케다르에서 몸을 좀 녹이고 나와서 다시 걸어내려갔다. 대성당과 종탑이 나왔다. 역시나 이 광장은 넓고 썰렁하다. 찬란하던 6월과 지금 이 시기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지금은 '아 추워...' 뿐 ㅠㅠ 성당에 잠깐 들어가 기도를 하고 몸을 약간 녹이고 다시 나왔다. 이제 배가 고프기 시작. 게디미나스 대로에 있는 rimi 슈퍼에서 생수와 할인하는 라즈베리를 샀고 다시 빌니아우스 거리로 진입해 전부터 가보려던 Wok to Walk이라는 아시안 볶음요리 전문식당에 갔다. 마침 런치메뉴로 팟타이와 미소수프 세트를 8유로 안되게 팔고 있어 돈부리를 먹을까 하다가 그것을 고름. 생각보다 맛있었고 미소 덕분에 몸이 좀 녹았다. 볼트의 배달원들이 계속 드나들었다. 가게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맛있었는데 팟타이 양이 너무 많아서 좀 남긴 게 아까웠음 ㅠㅠ 딱 하나 힘들었던 건 여기도 서브웨이처럼 누들 종류, 토핑 종류(닭, 소, 두부 등), 소스를 선택해야 하는지라 나처럼 주문공포증 있는 자는 좀 버퍼링이 걸림. 나는 납작한 쌀국수와 닭고기, 데리야키소스로 무난한 조합을 택했다.
밥을 먹은 후 꽃을 사서 일단 방으로 돌아왔다. 세시 즈음이었고 청소가 잘 되어 있어 좋았다. 폰 충전을 하며 좀 쉬다가 네시 즈음 다시 나갔다. 제일 가까운 카페에서 스케치를 하거나 책을 읽으려고. 길 건너편에 있는 제일 가까운 카페인에 갔는데 여기는 아주 작아서 테이블이 몇개 없었다. 그리웠던 초코 에클레어를 시켜서 실론티와 함께 먹었다. 매장이 좁고 테이블이 다닥다닥이라 스케치를 하기 편한 공간은 아니어서(그런 건 좀 널찍한 체인 카페가 좋다) 한국에서 챙겨온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을 다시 읽다가 나옴. 그런데 점원이 테이블의 잔을 치우다 쟁반을 떨어뜨려서 러브라믹스 도자기 커피잔과 유리컵이 와장창 아주 박살이 났다. '으앙 어떡해, 저 사람 저거 다 치워야돼, 힘들겠다' 하며 막 이입함 ㅜㅜ 매장이 작아선지 점원이 한명 뿐이어서 주문 받고 만들고 또 치우고 분주해보였는데 그 와중에 컵까지 깨고 심지어 유리잔까지 있어서... 근데 그 물결요철 있는 유리컵은 원체 잘 깨지는 재질이라 나도 그 컵 내주는 매장 가면 항상 불안해하며 조심하게 되긴 함.
5시 좀 넘어서 카페인에서 나와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이제 많이 피곤했기 때문에 쉬기로 했다. 따뜻한 물을 받아 목욕을 하고 조식테이블에서 집어온 삶은 달걀과 햇반 등으로 저녁을 간단히 먹었다. 그리고 오늘의 메모를 쓰고 있는데 벌써 아홉시가 다 되어가네. 메모 쓰는데 시간이 은근히 많이 걸린다.
오늘은 10,332보, 6.5킬로 걸었다.
그건 그렇고 수면양말과 바디로션을 하나씩 사야 하나 생각 중이다. 이제 좀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계속 일한 후 바르샤바-리가-빌니우스로 날아와 매일 돌아다녔더니 피로가 좀 쌓여 있는 것 같다. 잠도 계속 좀 모자라고. 중간에 안 깨고 8시간 쭉 자보면 좋겠는데...
사진들 몇 장. 확실히 10월 사진들은 6월 사진들만큼 예쁘지 않단 말이야... 나는 빛이 많은 사진을 좋아하는데 흑흑. 뭐 카메라 무거워서 여전히 폰으로만 찍고 다닐 것 같긴 하다만.
밥먹으러 빌니아우스 거리로 접어들었는데 무슨 라디오 방송 같은 라이브 토크를 하고 있었음. 내용은 안 궁금하고 '춥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던 걸 보니 내가 확실히 오늘 좀 떨면서 다녔나보다.
여기가 팟타이 먹은 웍 투 웍. 미소에 미역도 넣어주고 좋았다 :)
호텔 복도 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 고층 건물들을 보니 강 건너 신시가지 쪽인 것 같다. (여전히 방향 감각 없음)
책 읽었던 조그만 카페인.
이건 내가 마신 건 아니고 남이 마시고 두고 간 커피잔인데 색깔이 이 카페랑 어울려서 한 컷. 나를 포함한 나머지 손님들은 모두 터키블루 러브라믹스에 내줬는데 카페인은 저 노란색이 더 잘 어울린다.
음습하고 싸늘한 날. 구시가지 쪽을 돌아다니다 늦은 점심먹고 잠시 숙소로 들어오는 길에 꽃 파는 아주머니, 할머니들 발견. 날이 추워져서 그런가 다알리아와 공작초 등 내 취향 아닌 꽃들이 대부분이었고 꽃다발은 색 배합이 맘에 안 들어서 고민하는데 엄청 나이드신 할머니가 다알리아 친척으로 보이는 하얀 꽃을 가리키며 이건 1유로, 이 꽃 포함 한단짜리들은 5유로, 꽃다발 믹스는 10유로라 하심. 근데 날도 춥고 할머니는 나이 넘 많으셔서 나도 모르게 ‘그럼 이걸로 주세요’ 하고는 5유로 주고 한단 가득 사옴. 5유로 좀 비싼가 했지만 사실 한국에서 이용하는 꽃 사이트에선 이 정도면 1만원 정도니 나쁘지 않다고 위안. 그리고 꽃이니까.
얘가 젤 이쁘긴 했는데... 방에 와서 ‘아 잘못 골랐다’ 하고 후회. 왜냐면 이런 들국화 종류는 잎사귀와 잔줄기가 많아서 다듬으려면 손이 많이 가고... 풍성한 한단을 꽂아둘 병이 없어서. 어제 사온 2리터 생수를 다 마시면 그 페트병을 잘라서 꽂으면 된다만 아직 절반이나 남음. 그래서 한참 꽃을 다듬고 대를 반으로 짧게 잘라서 유리컵 두개에 나눠 꽂았다.
꽃 옆에 앉혀줘도 어쩐지 계속 뚜떼해보이는 쿠야. 빈대 물렸나? ㅠㅠ 난 밤새 불켜고 안대 하고 잤는데 물리거나 어떤 징후는 없었다.
조그만 문방구 가위로 다듬느라 손 많이 갔지만 그래도 이렇게 꽂아두었다. 방에 꽃이 있으니 좋다.
숙소가 있는 게디미나스 대로에서 나와 빌니아우스, 보키에치우, 디조이 거리를 지나 필리에스 거리로 접어들었는데 흐리고 음습해서 몸을 녹이려고 눈에 띈 카페에 들어왔다. 조식 때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를 마셨고 아직 밥먹을만큼 배고프진 않아서 말차라떼 시킴. 달지 않아 좋긴 한데 묘하게 코코넛맛이 남.
카페 이름은 Eskedar coffee bar. 힙함과 어설픔 사이를 좀 오가는 느낌인데(아무래도 회화 작품들이 좀 그렇다) 나름 분위기 있다. 주류를 파는 곳인데 칵테일 한잔 마시는쪽이 더 어울리는 타입인듯. 그러나 낮인데다 춥고 졸려서 알콜 대신 말차라떼로. 좀 쉬었다 나가야겠다.
사진은 네링가 호텔. 재작년에 머물렀을 때는 호텔 건물 사진 찍어둔 게 한 장도 없어서 저녁 먹고 들어오는 길에 찍었다. 그런데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뭔가 키에슬롭스키나 그런쪽 유럽 영화의 음울한 느낌이...
에어발틱을 처음 타보았는데 폴란드항공 못지 않다. 원래 예전에 끊어둔 표는 오늘 저녁 7시 즈음이었으나 몇주 전 갑자기 '그 시간대가 취소되었으니 다른 시간대로 옮기거나 다음날 타라' 는 메일이 왔다. 그래서 별수 없이 밤 11시 대신 오후 1시 50분 비행기로 바꾸었다. (가뜩이나 며칠 잡지 않았던 리가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더 줄어드니까 짜증이 났었음) 하여튼 공항에 와서 탑승구까지 왔는데 결국 지연이 되어 2시 반쯤 이륙했다. 게다가 원래 앞자리 5a를 예약했는데 보딩할 때 큐알을 찍자 삐비빅 하며 빨간 불이 뜨고... 뭐지 하고 놀랐는데 내 좌석이 바뀌었다면서 12a가 찍힌 프린트 항공권을 준다. 내 표는 에어발틱 중에서도 무료취소 가능, 좌석지정 가능한 조금더 비싼 표였는데 뭔가 사기당한 기분이라 짜증난 채 탑승했다. (나중에 보니 5열은 좌석에 문제가 있는지 비상구석이어선지(비즈니스석 바로 뒤였음) 모두 비워둔 채여서 뭔가 이유가 있었나 하고 혼자 납득함)
하여튼 연착과 좌석 바뀐 것 때문에 짜증났었는데 내 기내캐리어를 올려준 승무원 청년이 너무 이쁜 미남이어서 갑자기 기분이 나아졌다. 뭐야 이게... 역시 예쁜 것에 약하다. 엄청난 금발 곱슬머리에 모델처럼 키가 크고 무용수처럼 늘씬하고 양쪽 귀에 은색 링 귀걸이를 두개씩 달고 에디 레드메인을 좀 닮은 앳된 청년 승무원을 보니 이게 비행기인지 런웨이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래서 비행 내내 저 승무원 또 안 오나 하며 힐끗거렸는데 리가에서 빌니우스까진 40분밖에 안 걸렸고 이게 저가항공이다 보니 승무원의 서비스도 거의 없어서 많이 볼 수 없어 아쉬웠음. 뭐지, 에어발틱 헐뜯는 걸로 시작해 미남 승무원으로 모든게 용서된 이야기인가... 하여튼 뭐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한다고 표도르 미하일로비치도 그랬잖아.
기류가 거의 없어 평온한 비행이었고 레이먼드 챈들러의 단편 '스페니쉬 블러드'를 읽으며 왔다. 3시 10분에 착륙. 빌니우스 공항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ㅜㅜ 영원한 휴가님은 '웰컴 레인'이라고 하셨다만... 엉엉 비 싫어... 정말이지 '10월이라면 딱 연상되는 그 날씨'였다.
내리기 기다리면서 비행기 창 밖으로 찍은 빌니우스 공항. 그 위의 라이언에어 나와 있는 사진도 마찬가지. 그러고보면 리가에선 돌아다닐 때 비 많이 온 날은 없었는데 흑흑... 하긴 여행 직전 기도하면서 '리가에서는 날씨 좋게 해주세요' 라고 했었으니 빌니우스에서 비와도 할 말 없나보다.
가방은 금방 나왔는데 볼트 택시 타느라 고생했다. 재작년에 왔을 때에도 볼트를 불렀더니 주차장 저 멀리로 와서 뺑뺑 돌아야 했다. 이번엔 검색을 해본 후 볼트가 선다는 p2에 가 있었는데 이번 볼트는 또 공항 건물 바로 앞쪽으로 와서 나는 결국 다시 비를 맞으며 짐을 끌고 가야 했다. 빌니우스 공항은 아주 작고 좀 구식이라-좀 옛날 김포공항 같은데 더 작음- 조금만 나오면 비를 쫄딱 맞으며 짐을 끌고 가야 한다. (그래도 옆쪽에 신청사 공사를 하고 있었다) 비가 상당히 많이 왔다. 방수 숏패딩을 입어 다행이었다. 우산을 쓰고서는 큰 트렁크와 기내캐리어를 동시에 끌고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녹초가 되어 볼트 탑승. 볼트와 일반 택시는 가격 차이가 많이 난다. 리가 공항에서는 짐이 더 많아서 그냥 택시를 탔더니만 25유로나 나왔었다(오늘 아침 호텔에서 공항 오는 볼트는 10유로였다!) 그러니 볼트를 탈 수밖에 없음. 9유로, 숙소까진 20분 정도 걸렸다. 재작년보단 차가 많고 길이 밀렸다. 비가 와서 그런 것 같았다. 막 10분~15분 이내로 갔었는데. 하여튼 리가도 빌니우스도 공항이 가까운 건 좋다.
4시쯤 체크인. 2년만에 다시 투숙하게 된 네링가 호텔. 그땐 3층이었는데 이번엔 5층을 주었다. 그건 좋은데 엘리베이터가 온통 유리문이라 올라가는 내내 바깥이 보여서 무섭다 흑흑. 그런데 확실히 인간이란 상대적인 것이, 재작년엔 빌니우스에서 네링가에 먼저 묵었다가 켐핀스키로 옮겼기에 '네링가 의외로 넓고 좋고 편했어' 란 느낌을 간직한 채였는데 이번엔 리가 켐핀스키에 먼저 묵었다가 네링가로 오니까 방도 작아지고 여러가지로 확실히 하향되었기 때문에 '나쁘진 않은데 켐핀스키가 좋았구나' 란 생각이 들게 되었음. 인간은 어쩔 수 없나보다. 그래도 이 방은 노트북을 쓰기도 편하고 매우 뉴트럴해서 머무를만한 것 같다.
짐을 모두 풀어놓고 지치고 배고픈채 나왔다. 비가 계속 주룩주룩 와서 멀리 가기도 어려웠기에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맥도날드에 갔다. 디럭스 치킨버거란 걸 먹었는데 맛은 그냥저냥... 치즈가 들어 있고 소스가 빅맥과 좀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비가 주룩주룩...
그리고는 근처 드로가스에서 핸드크림을 한개 사고, iki 라는 슈퍼에 물을 사러 가서 아이스크림도 한개 사먹었다. 오늘은 이것으로 마무리.
뚜떼해진 쿠야. 아무래도 기내 캐리어에서 너무 고생시킨 듯.
널찍하던 켐핀스키에서 왜 방이 이렇게 바뀐 건지 해명받고 싶은 듯한 표정의 쿠야.
... 이 메모를 쓰는 중 왼쪽 발목이 가려워서 보니 자잘한 연붉은 자국들이 생겨서 이게 혹시 빈대가 아닌가 의심 중이다. 다른 곳은 자국이 없다만. 심하게 가렵거나 일자로 생긴 건 아니지만 핏줄 쪽에 모여있는게 좀 불안하다. 비누로 씻어주니 좀 가라앉긴 했는데... 오후 늦게 투숙해서 여태 저 천 씌운 긴 의자 외엔 맨발이나 맨발목으로 올라간 곳이 없는데... 의자 아래 두었던 가방들도 카펫과 천이 없는 쪽으로 옮겨놓고 책도 옮기고, 쿠야도 옮기고, 침대와 매트리스 아래, 저 긴의자 주변 등을 폰의 손전등으로 살폈는데 빈대의 특징이라는 검은 자국들이나 부산물은 없다만 불안하기 그지없음. 리뷰들에도 그런 얘긴 없다만... 긴 파자마를 추가로 입었다. 네링가 설마 이러기야?
근데 밤도 늦었고 빈대인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짐을 다 풀어두어서 이걸 도로 다 주워담을 생각을 하니 그것도 피곤하고... 빈대는 밤중에 나온다니까 낼 아침에 일어났을 때 물린 자국이 더 생겼으면 맞겠지. 근데 또 아닌 것 같기도 함. 이따금 피부에 자잘한 게 올라올 때가 있으니 그런건가 싶기도 하고. 하여튼 자보려고 한다. 불을 켜놓고 안대를 쓰고 자면 나으려나 생각 중. 내일 아침에 리셉션에 가서 방을 바꿔달라고 해야 하나. 짐 어떻게 다시 꾸리지 흑흑. 제발 빈대가 아니게 해주세요... 예전에 묵었을 때는 아무 문제 없었는데 ㅜㅜ 근데 피곤해서 이제 자야 할 것 같다. 으앙, 몰라. 내일 아침에 확인하자. 내 몸으로 실험 ㅠㅠ
리가 공항. 맨첨엔 C5게이트라 해서 멀리 걸어가 근처에서 차 한잔, 메이플피칸 패스트리를 먹고 쉬었는데 그 사이에 게이트가 반대방향 끝의 B8로 바뀌어서 다시 거슬러옴. 이게 뭐야.
게다가 역시 에어발틱도 연착을 피해가지 못함. 13:50 뱅기였는데 14:15로 연착됨. 많이 지연되는건 아니니 그냥 그러려니 하며 보딩 기다리는 중이다. 짐이 많지 않았으면 나도 버스 타고 갔을텐데. 빌니우스까지는 50분 비행이라 한다. 빌니우스는 비, 바람. 비행기 흔들리지 않길, 편안히 비행하길.
공항 카페에서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시켰더니 다망 프레르를 줌. 근데 그냥 아마드라도 좋으니 좀 저렴했으면 더 좋았을거 같긴 하다 ㅎㅎ 공항은 어딜 가나 비싼 듯...
사진은 ‘로켓 빈 로스터리’라는 라트비아의 체인 카페. 사실 호텔 앞 카페인에 가고 싶었지만 그건 리투아니아 체인이라 빌니우스에도 많아서 라트비아 체인에 가보았다. 카페인이 별다방이라면 여기는 스타일 면에서 커피빈이랑 비슷한 느낌이었다(그렇다고 더 좋은 건 아님. 어딘가 좀 부족한 느낌...)
간밤 자정쯤 잠들었다. 너무 피곤해서 약을 안먹고도 잠들었으나 역시나 네시 좀 안돼 깨어나 한시간 넘게 뒤척이다 뒤늦게 약을 먹고 다시 자서 8시 20분쯤 깼다. 잠이 계속 모자람. 빌니우스로 가면 좀더 많이 잘 수 있기를...
열두시 넘어서까지 방에서 게으름피웠다. 브런치 카페를 몇개 찾았으나 게으름이 승리하여 영원한 휴가님이랑 둘이 햇반과 튀김우동 작은 컵라면, 볶음김치와 캔참치로 아점을 먹어서 리가 타파스 계속 :) 그래서 내가 싸온 컵라면 몇개와 영원한 휴가님께 드린 컵라면 2개는 모두 리가의 이 방에서 먹어치웠다. 짐의 부피가 좀 줄었음. 엄마 모시고 온 때 제외하면 여행와서 이렇게 방에서 밥이랑 컵라면 많이 먹은게 첨이다. 나가서도 라트비아 음식을 따로 찾아먹지 않음(근데 블랙발잠과 절인 청어 외엔 특별한 라트비아 음식이 따로 없고 거의 러시아나 리투아니아와 겹치는 듯해서 더 그랬다) 영원한 휴가님은 빌니우스에서 사는지라 오히려 이럴때나 같이 컵라면, 매운거, 아시아음식을 먹게 되고 심지어 카페는 더욱 그렇다고 하셔서 아 그렇구나 하게 되었음.
어제 너무 추워서 덜덜 떨었기에 나는 급기야 ‘설마 입을까?’ 했던 코트를 꺼냈다. 니트 바지도 입었다. 그랬더니 따뜻했다. 일때문에 스트레스 받아 질렀던 걸 ‘가벼운 울 후드코트를 사온 보람이 있다’고 정당화하게 되었다. 흑, 역시 옛날 러시아의 10월 날씨였어... 내일 이 코트를 입고 가면 짐의 무게와 부피도 줄겠다고 좋아했지만 코트가 길어서 불편할 것 같아 좀전에 가방을 꾸리면서 보다 가볍고 허리 아래까지만 내려오는 유니클로 다운패딩으로 바꿈. 결국 숏패딩, 코트 다 입고 가니 그래도 짐을 잘 꾸려왔다고 자화자찬해야 하나 싶다만, 여기 올때 여름 롱 원피스에 후드짚업 입고 왔고 청바지도 여름용 얇은 바지 ㅠㅠ
오늘은 영원한 휴가님이 오후에 빌니우스행 버스를 타고 가시는 날이었다. 항상 이별은 아쉽고 슬프지만 이번엔 내일 나도 빌니우스로 가므로 괜찮았다. 원래는 커피가 맛있다는 kalve 커피라는 카페에 가려고 했으나(영원한 휴가님은 도착했던 날 이 카페 지점2에 갔었고 요번엔 3지점에 가보려 했다), 게으름피우고 귀찮다는 이유로 그저께 갔던 파루나심 카페테카에 다시 가기로 했다. 흑흑, 아늑한 카페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마음써주신 거란 생각이 든다.
여행서에 꼭 나오는 스웨덴 문을 지나서... (이 뒤엔 대포가 있다)
리가에서 가장 로맨틱한 카페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문구를 써놓은 흑판이 걸린 카페인데 그런 말이 오글거리지 않을만큼 아늑하고 예쁘고 약간은 카페 에벨을 연상시키는 곳이다. 그리고 여기 케익이 리가 와서 먹은 곳들 중 제일 맛있었다.
오늘은 사람이 엄청 많아서 2층 창가로 갔다. 첫날의 1층 안쪽 창가보단 덜 아늑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아삼 티와 코코넛 케익을 먹으며 이야기 삼매경...
이후 2시 반쯤 카페를 나와 호텔로 돌아왔다. 방에서 좀 쉬다가 영원한 휴가님은 볼트 택시를 불러 버스터미널로 가셨다. 같이 돌아다니다 처음으로 리가에서 혼자가 되어 아쉬웠다.
‘러시아인들이 많으니 여기는 러시아 음식이맛있을거 같아’ 하는 맘에 검색해 저장해놓았던 러시아 식당에 우하를 먹으러 갔다. 졸졸 따라다니며 길도 안 찾고 좋아하다가 혼자 구글맵 보며 찾아가니 역시 안 좋았다 ㅎㅎ
번역하면 바냐 아저씨란 레스토랑. 여기는 가격이 싸진 않았지만 음식이 꽤나 맛있었다. 버섯소스를 곁들인 감자 올라두슈키(감자전이랑 유사함. 체코에선 브람보락이라 한다) 세가지 생선과 당근, 감자, 딜이 들어간 우하, 크랜베리 모르스를 주문. 사실 메뉴판에 ‘버섯과 양송이 소스를 곁들인 감자 블린칙’이라 되어 있어 나는 이게 감자필링을 넣고 말아준 블린이라 착각하고 시킨거였는데 올라두슈키가 나와서 당황... 우하 하나만 시키기엔 모자라고 애매해서 먹기 가벼운걸 시킨 건데 기름에 지진 감자전... 그러나 이게 엄청 맛있었다! 농후하고 부드러운 버섯소스에 잘 지져낸 감자전!
맛있었음!
우하는 ‘최고!’까진 아니었지만 나쁘지 않았고 기름기 없이 제대로 맑은 우하였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우하 먹어서 좋았다. 양이 많아(감자전 때문) 생선 다 건져먹고 국물은 남김.
다 먹고 나와선 맨 위에 쓴대로 호텔 앞 카페인 대신 라트비아만의 체인에 가보고자 로켓 빈에 갔다. 자유 기념비(여신상) 맞은편에 있는 곳이 제일 가까웠다. 근데 내부가 별로 넓지 않았고 그냥저냥이었다. 어텀 진저 라는 걸 시켰는데 생강차에 레몬 띄워주는 걸 상상했으나 오렌지를 갈아낸 뜨거운 음료에 생강과 계피가 첨가되어 배부른 음료라 반도 못 마심. 오렌지를 굳이 갈아서 뜨겁게 했어야 할까 흑흑... 하여튼 이거 마시며 창밖으로 지나가는 라트비아 사람들을 구경하다 호텔로 돌아옴. 리가에선 주변에서 라트비아 말보다 노어를 더 많이 들었다.
목욕 후 지난한 짐꾸리기ㅠㅠ 아아아... 내일 에어발틱은 가방 무게를 잘 맞춰야 해서 신경써가며 꾸림. 너무 가방 꾸리기 싫어서 잠깐 소파에 기댄 채 쿠야가 짐 좀 싸줬으면 하며 하염없이 바라보다 찍은 사진 1장. 가방 싸는데 두어시간 넘게 걸린 듯 ㅠㅠ 영원한 휴가님께 건네준 것도 있고 우리가 ‘리가 타파스’를 하며 먹어치운 것도 있고 올때보다 옷을 두껍게 입게 되었으니 무게는 얼추 맞춰진 거 같은데 내일 세면도구, 파우치, 잠옷 따위를 챙겨야 해서 간이저울은 안 재봄. 일단 낼 9시 알람을 맞췄으니 아침에 두어시간쯤은 있다. 11시 전후 나갈까 싶다.
이번 리가 여행은 4박5일로 짧고 앞뒤는 경유와 이동으로 잘라먹어서 본격 사흘쯤 다녔는데 날씨 좋았던 월욜에 대부분의 관광지를 클리어해서 어제와 오늘은 슬슬 다녔다. (근데 어제 젤 많이 다님) 사실 방에서 젤 많이 있었음. 리가는 옛날부터 와보고 싶었던 곳인데 막상 와보니 독일 느낌이 강하다. ‘재미있는 동네’란 느낌은 덜하다고 해야 하나. 도시 자체의 매력보다는 나에겐 ‘바리쉬니코프의 고향’, 러시아 사람들이 많아서 어쩐지 친숙한 곳, 호텔 방, 맘에 들었던 예쁜 카페, 그리고 친구와 종일 같이 보낸 시간과 일명 우리의 ‘리가 타파스’로 남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정도면 여행으로선 충분하고 즐거웠다.
아참, 오전에 업무 톡이 와서(슈퍼갑 감사요구자료를 실무자들이 작성한 것들에 대해 나보고 일일이 확인해 보완해달라는 친구 본부장의 요구 ㅠㅠ) 결국 노트북 켜고 일함. 엉엉... 낼이 빨간 날이라 그나마 다행이야...
이제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오늘은 푹 자고 내일 빌니우스로 잘 건너가길. 아, 오늘 메모는 정말 길다...
오늘은 매우 싸늘하고 습한 바람이 불고 나중엔 비까지 내리는 등 전형적인 10월의 괴로운 날씨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9시 좀 넘어 호텔 근방의 리가 중앙시장에 갔는데 강 근처라 더 추웠고 시장이 아주 크긴 했지만 막상 아침 먹을게 별로 없었다. 영원한 휴가님은 라그만을 드셨고 나는 수프를 먹고팠지만 없어서 뜨보록 든 블린과 감자버섯 블린을 먹었다. 전자는 너무 달았고 후자는 맛있었다. 수프 대용으로 불리온이 있어 그걸 시켰으나 노란 닭기름이 둥둥 뜨고 너무 잡내가 나서 못먹음.
시장은 한바퀴 돌기만 하고 어제 못간 아르누보 거리에 갔다. 중간중간 너무 추워서 눈에 보이는 가게마다 들어가보며 몸을 녹이고 나오기를 반복... 그리고 너무 추워서 아름다운 아르누보 양식 건물들의 건축양식을 즐기지 못했고 사진도 못찍고 그 거리의 유명하고 예쁜 아트 카페 시엔나로 들어갔다. 여기는 아르누보 인테리어의 아늑한 카페였고 금색과 흑갈색이 섞인 벨벳 드레스를 입은 금발 여인이 매우 친절했다. 그리고 임페리얼 포슬린(로모노소프)에 차를 내주었다. 여기서 몸을 녹이고 쉬었다. 맨 위와 아래 사진들.
망고무스 케익은 그럭저럭. 그래도 다즐링 마심.
카페에서 나와 근처 아르누보 건물 투어를 하려다 추워서 돌아나와 근처 거리들을 걷다가 성 거트루드 성당 쪽으로 갔다. 여기서 우리는 우연히 반지하에 있는 러시아 서점을 발견!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소설들을 몇권 샀다. 과연 근데 내가 이 원서들을 다 읽을 수 있을까ㅠㅠ
서점에서 나와 뭘 먹으러갈까 고민하다 눈앞에 중국식당이 있어 거기 가서 마파두부, 밥, 완당수프, 군만두를 시켰다. 추웠기 때문이다. 마파는 나쁘지 않았지만 수프는 맛없었고 완당과 군만두를 같은 종류 만두로 쓰는 만행을 저지름. 하지만 마파두부와 밥을 먹고 몸이 따뜻해져서 좋았다.
이후 길들을 가로질러 숙소로 돌아옴. 빗방울이 떨어졌다. mikla 라는 근처 베이커리에서 바닐라크림이 든 푹신한 도넛과 슈의 중간단계인 셈라 1개, 메도빅 1개를 사고 리미에서 물 등을 사서 방으로 돌아오니 4시 즈음이었다. 이렇게 쓰니 별로 한게 없어보이지만 시장-숙소-아르누보 거리-성당(서점/식당) 방향으로 배치되어 있어 상당히 걸었다. 오늘은 13,456보, 7.4킬로.
방에 돌아와 목욕을 하고 쉬고 케익, 커피와 쌍화차, 컵라면(짜파구리컵누들, 진짬뽕), 칩과 체리리큐르+블랙발잠 음료, 랍상소총으로 잡다한걸 먹음. 나는 이번 여행을 ‘리가 타파스’ 라고 이름붙였다. 잡다한 여러가지를 조금씩 계속해 먹어서.
리가에는 러시아인이 참 많다. 도처에서 노어를 듣는다. 그래선지 도시 자체가 아주 매력적이진 않은데 어쩐지 친숙하다.
계속 잠을 못 자서 많이 피곤하다. 시차는 얼추 적응했는데 새벽에 깨는 버릇이 반복되는 듯하다. 오늘은 잘 잤으면 좋겠다. 일단 오늘 메모는 이 정도. 사진은 거의 못찍었다. 추워서 ㅠㅠ
어제 수다떨다가 자정 넘어 잤고 시차 적응이 아직 안돼서 네시에 깨버렸다. 약을 반알 더 먹고 조금 더 자서 여섯시 반쯤 깼다. 침대에서 뒤척이다 9시쯤 씻고 내가 챙겨온 햇반, 볶음김치, 간짬뽕, 진라면 소컵으로 여행자의 아침식사를 했다. 그리고는 바깥 날씨가 흐려서 방에서 게으름피우며 놀다가 정오쯤 나갔다.
나오니 날씨가 좋아졌다. 그래서 엄청 돌아다녔고 리가의 관광명소들은 아르누보 거리 빼곤 거의 다 클리어했다. 성 피터성당, 브레멘의 음악대동상, 검은머리전당, 수탉 풍향계, 고양이집, 슬픔의 성모 성당, 그리스도 탄생 성당(정교), 자유의 여신상 등. 성당에선 들어가 초를 켜고 기도를 했다.
중간에 다우가바 강변에 앉아 부모님께 전화를 했고 쉬기도 했다. 그늘은 싸늘했지만 해가 찬란하고 날씨가 매우 좋았다.
중간에 예쁜 카페를 발견, 배고파서 그 맞은편의 ‘히말라야’라는 네팔인도 음식점에 그냥 들어갔는데 외국 중국식당처럼 1-100번까지 메뉴가 있고 온갖 아시아 음식이 다 있어 의심하며 시켰는데 의외로 맛있었다. 빈달루와 바스마티(긴쌀밥), 만추리안 치킨을 먹었는데 좋았다.
그 이후 그 예쁜 카페(파루나심 카페테카)에서 너무 맛있는 백차와 촉촉한 레드벨벳 조각케익으로 아주 아늑한 티타임과 이야기를 즐겼다.
구시가지를 걷고 중간중간 공원에 앉아 쉬고 돌아다녔다. 총 10,763보. 6.2킬로. 리가는 거의 평지라서 걷는게 별로 힘들지 않았다.
돌아와서는 근처 슈퍼에서 사온 멜론과 바베큐맛 감자칩, 수박시트러스향 사이더 (영원한 휴가님은 근처 티샵에서 산 랍상소총)로 불량하지만 맛있는 저녁을 먹고 이제 소화시키는 중이다.
오늘은 날씨도 좋았고 모두 맛있었고 기분좋은 하루였다. 아마 일을 안해서 그런 것 같다.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