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 테이스트 맵 2024 riga_vilnius2024. 10. 19. 03:37
빌니우스에서 가장 커피가 맛있는 카페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정답이야 없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테이스트 맵을 꼽는다고 한다. 영원한 휴가님도 여기 커피가 확실히 맛있다고 하셨다. 재작년에 왔을 때도 여기를 추천해주셨는데 여기가 관광지에서는 좀 떨어져 있다 보니 그때는 들르지 못했고 이번에 도착해서는 며칠 안되어 택시를 타고 가봤었다. 커피가 유명한 곳이라고 하여 카푸치노를 마셔봤었는데 '악 나한테는 역시 쓰다!' 하며 설탕을 투하했었다. 커피의 맛도 강한데다 그날 날씨가 워낙 우중충했고 일요일이라 테이스트 맵은 손님들로 넘쳐났기 때문에 나는 '아아 여기는 나 같은 어린이입맛은 발붙이기 어려운 커피 엘리트들의 카페다' 라는 생각을 품은 채 아무 기대 없이 거리와 공원을 가로질러 내려가 엘스카를 발견하게 되었다.
거의 2주만에 테이스트 맵에 다시 가보았다. 오늘 날씨가 좋았고 오전에 재도전해볼 마음이 생겼다. 게다가 나에게는 이제 비장의 무기 교통카드가! 숙소 근처에서 트롤리버스 12번을 타고 3정거장을 가서 콘스탄틴과 미하일 성당 앞에서 내려 몇분 정도 걸어가니 테이스트 맵이 나타났다. 날씨 좋을 때는 완전히 달라보였다! 게다가 금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전보다 좀 한적해서 1층에 자리도 있었다. 첨엔 중간 테이블 하나뿐이었지만 나중에 창가 구석자리가 나서 얼른 거기 가 앉았다. 확실히 1층이 2층보다 밝고 좋다. 2층은 복층이라 천정이 낮고 엄청 다닥다닥. 그러나 내가 앉은 자리도 카운터 근처라 손님들이 몰리기 시작하자 정신이 없긴 했다.
나는 플랫 화이트를 주문하고 진열장의 디저트들 중 무화과 타르트가 있어 그것을 주문했다. 그러자 점원이 치즈 뭐라뭐라 했다. 타르트에 치즈가 들어가는데 괜찮으냐고 해서 '치즈 들어가는데 뭐가 문제지?' 하며 괜찮다고 했다. 비건 디저트 찾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하면서. 근데 나 요즘 정말 언어능력이 퇴화되고 말도 못 알아먹고 하는 건 더 안됨. 아마 고트 치즈 얘기를 한게 아닌가 뒤늦게 때려맞춰보게 되었다. 두세 입 먹다보니 치즈에서 미묘한 맛이 났는데 그렇다고 보통의 센 고트 치즈의 그 강한 맛은 아닌데 하여튼 뭔가 미묘했기 때문이다.
타르트 먼저 받은 후 번호표 놓고 기다리는 중. 첨에 앉았던 중간 테이블. 화장실 앞이기도 하고 뭔가 가운데 있어서 어정쩡...
자리 옮긴 후. 여기는 커피 나오려면 꽤 기다려야 한다. 플랫 화이트가 등장하셨다. 지난번 카푸치노가 셌으므로 플랫 화이트는 좀 부드럽지 않을까 싶기도 했는데...
으악, 역시 엄청 썼다! 지난번 후라칸에서 플랫 화이트 마시고는 '으앙, 여기가 테이스트 맵보다 더 쓴 거 같아요' 라고 했던 말을 취소하게 되었다. 쓰디쓰고 진한 맛이 아주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맛없거나 풍미가 없는 게 아니고 그저 커피 잘 못마시는 나에게는 너무 강하고 쓴 맛이 났다. 그런데 설탕에도 '나 꼭 넣어야겠니?' 라고 적혀 있는 빌니우스의 커피부심 커피엘리트 테이스트 맵... 흐흑... 그리하여 나는 이곳에 '무적 테이스트 맵'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게 되었음.
엉엉... 카페는 마음에 드는데 나한테는 너무 세다. 엘스카의 플랫 화이트는 여기보다 두배 연한 것 같다고 말씀드리자(엘스카는 전반적으로 우유를 많이 넣어주고 커피도 부드러운 편이라 나도 곧잘 거기서 플랫 화이트나 카푸치노, 라떼 등 마실 수 있는 것 같음) 영원한 휴가님이 이딸랄라는 여기보다 세배 연할 거라고 말씀해주심(그리하여 나는 오후에 이딸랄라로... 응?)
한 모금 마신 후 급하게 집어온 설탕. 커피 잘 못 마시는 자의 마음을 사정없이 찔러대는 커피부심의 저 문구... 근데 나 사실 저거 두 봉지 넣고 싶었음. 한 봉지로도 쓴 맛을 도저히 잡을 수 없었음. 설탕 넣으니 그래도 마실만해졌지만 한 봉지 더 넣으면 더 나아질 것 같았다. 그런데 커피초보는 소심하기 때문에 커피엘리트 점원들이 있는 카운터에 가서 설탕봉지를 또 하나 가져와 투하하지 못했음. 저럴수가, 커피의 수치다! 라고 손가락질할 것만 같아서 ㅎㅎㅎ 농담이지만 농담 아닙니다.
설탕을 넣고 휘저어서 예쁜 라떼 아트도 다 날아가고... 맥심 커피 비주얼로 변해버린 무적 테이스트 맵의 (본시 아름다웠던) 플랫 화이트...
아직 설탕 넣기 전. 쓴맛을 보기 전.
여기 앉아서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미운 백조들>을 이어서 좀더 읽었다. 그러다 위키로 줄거리를 좀 찾아보았고 절망함. 으앙, 청소년들이 주인공이라고 해서 좀 밝은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이것도 완전 암울한 얘기였어 흐흐흑... 단어를 중간중간 찾아보고는 있지만 극초반이고 좀 현실적인 배경이라 그렇게 읽기 어렵지는 않은데 이런 암울한 스타일 좀 괴로운데... 지금이라도 일단 이거 덮어놓고 나머지 두 권 중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된다> 속편으로 갈아탈까. 근데 그 책이 제일 두꺼워... 이 책이 제일 가볍고 활자도 제일 큰데..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고 타르트를 먹고(치즈 향이 갑자기 확 느껴진 후에는 무화과와 라즈베리만 골라먹고 타르트지는 좀 남겼다) 손님들 구경을 하다가 좀 추워져서 한시간 쯤만에 나왔다. 오늘 밝은 날이라 카페 자체는 전보다 환하고 이뻤지만 내가 앉은 자리는 볕이 들지 않고 벽 쪽에서 냉기가 들어와서 좀 추웠다. 난방도 안해줬고. 그래서 따뜻한 곳을 찾아가기로 했음.
카페 사진 몇 장으로 무적 테이스트 맵 이야기 마무리. 사실 쥬인에게 여기 원두를 사다줄까 했는데 아무래도 쥬인도 여기 커피는 많이 쓰다고 할 것 같아서 포기함.
바깥 모습. 커피부심으로 승부하는 카페라 간판도 없고 글씨도 잘 보이지도 않음. 올 사람만 오너라 하는 엄청난 자신감! 근데 정말 손님들로 맨날 북적북적! 이 건너편에 카페인이 있는데 거기는 장사 잘 안될거 같음, 흐흑...
그래도 다른 때에 비하면 매우 한적했던 것 같다. 이러다 또 손님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해서 나중엔 또 꽉 찼음. 사람 없을 때 얼른 찍어둔 사진 두 장.
근데 여기 종이컵은 별로 안 예뻐서 갖고 올 마음이 안 생겼다. 대신 한국에 돌아가면 검정 러브라믹스 잔을 사고 싶어졌음. 이곳에서 내주는 검정 러브라믹스가 근사해서. 근데 사실 검정 러브라믹스는 커피랑은 어울려도 차랑은 안 어울릴 거야.
... 테이스트 맵 처음 갔을 때 이야기는 여기
moonage daydream :: 테이스트 맵 Taste Map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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