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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오후에 들렀던 민트 비네투 카페. 외국인 커플이었는데 창가에 앉아 있는 모습이 이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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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 즈음 잠들었고 온갖 꿈을 꿨다. 이따금 꾸는 패턴인 ‘우리 집인데 우리 집이 아닌 건물’, ‘문이 이상하거나 남의 집을 통과해서 들어가야 하는 집’, ‘건물에서 나가야 하는데 계단이 이상하고 사다리로 연결되거나 아주 나가기가 어려운 입구로 변한 곳’ 등이 다 등장해서 피곤했다.
 
 
8시 되기 전에 퍼뜩 깼는데 회사의 갑님(대충 이사진에 가까움)으로부터 부재중 전화와 연락 달라는 문자가 두어 시간 전 와 있었다. 이 갑님은 우리 부서 업무와는 큰 연관이 없는 분이지만 요즘 회사 상황이 워낙 이상하므로 더럭 걱정이 되었다. 억지로 잠을 깨려고 노력하고 물을 마시고 목을 가다듬은 후 전화를 해보았는데 받지 않으셔서 문자를 드렸다. 비몽사몽 업무메일도 확인해봤는데 부서 업무회의록에 역시나 요즘 좋지 않은 정황에 대한 기록이 있어 더욱 걱정이 되어 윗분께도 카톡으로 혹시 무슨 일이 있는가, 이 갑님에게서 이런 연락이 왔는데 뭘까 하고 물어보았다. 윗분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 그때 갑님에게서 휴가 중이란 걸 들었다, 전화 안 해줘도 된다는 답이 왔다. 그래서 업무 통화는 안 해도 됐지만 뭔가 매우 찜찜한 채 일어나야 했다.
 
 
그래서 잠이 딱히 모자라진 않았지만 기분 좋지 않은 채 멍하게 깨어나 샤워를 하고 조식을 먹고 왔다. 아침엔 안개가 한치 앞도 안 보일 정도로 뿌옇게 끼어 있었다. 조식 먹고 와서 도로 침대에 들어가 좀 누워 있었는데 열한시쯤 창밖을 보니 하늘이 파랗고 해가 나고 있었다! ‘아니 이렇게 해가 난다면 당연히 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 볕이 잘 드는 엘스카로 가야지~ 거기 인기 많은 카페니까 오후가 될수록 붐빌테니 지금 가야겠다!’ 하고 갑자기 맘이 급해져서 후다닥 나갔다.
 
 
엘스카는 숙소에서 40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게디미나스 대로를 따라 조금 걷다가 Jogailos 거리를 끼고 올라가면 필리모 거리와의 접점 교차로에서 마주치게 된다. 영원한 휴가님이 여기가 빌니우스에서 제일 일조량 많은 카페일 거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오늘 내가 체험으로 깨달음. 오 정말이야. 정말 빛이 많이 들어온다. 숏패딩을 벗고 그 다음엔 짚업과 스카프를 벗었는데도 창가 테이블(이틀 전 찍었던 그 무지개 테이블)에 볕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따끈따끈 더웠다.



조식 테이블에서 차를 마셨고 여기는 디저트가 별거 없었으므로 플랫 화이트를 시켜보았다. 커피 잘 못 마시는 나로서는 카푸치노보다 더 연하고 라떼보다는 양이 적은 이게 제일 나은 것이었다! 원두는 브라질과 온두라스 중 고르라 해서 산미 없는 쪽인 전자를 택함. 그런데 내가 주문을 똑바로 못한 건지 러브라믹스가 아니라 테이크아웃용 종이컵에 나와서 ?? 했지만, 종이컵이 또 나름대로 이뻐서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다. 플랫 화이트는 매우 연하고 부드러워서 이 정도라면 나도 마실 만했다.
 
 
평일 이른 시간이라 카페에 손님이 별로 없었고 내가 좋아하는 2층과 무지개 테이블이 비어 있어 ‘진짜 좋다!’ 하며 얼른 거기 앉았다. 여기 앉아서 정면으로 보이는 카페 풍경을 스케치했다. 스케치하는 동안 빛이 많이 들어와서 꼭 히터를 틀어놓은 듯 따뜻했고 색칠할 때도 눈이 부셨다. 햇빛 받지 말랬는데... 변색렌즈 안경 끼고 있었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며 정당화. 흑흑 나는 이렇게 밝고 환한 카페가 좋은데... 화창한 날씨가 좋고... 햇빛 받지 말라니 너무해. 카페 스케치는 따로 올림. 인스타 스토리에도 올렸더니 엘스카에서 자기네 스토리에 올려주며 넘 이쁘다고 해줘서 뿌듯해졌다 :)
 

 
온몸이 따끈따끈 데워진 채 한시 쯤 엘스카에서 나왔다. 바깥 바람이 선선했고 햇살은 따스해서 정말 좋은 날씨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을 날씨였는데 여기서 이런 날씨를 맛보다니 흑흑 감동이었다. (10월의 우중충한 날씨를 대충 아는 터라 전혀 기대 안 했었음)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고 며칠 안 먹었던 쌀밥이 먹고파서 빌니아우스 거리의 Wok to Walk에 다시 가서 돈부리를 주문했다. 여기 돈부리는 흰밥에 달걀프라이, 메인과 야채토핑과 소스를 얹어주는데 나는 닭고기와 데리야키 소스를 고르고 달걀은 다 익혀달라고 했다. 가쯔오부시까지 얹어줘서 또 좋았음. 돈부리가 매우 맛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 흔히 먹는 돈부리와는 다른 맛이었다. 내가 데리야키 소스를 골랐기도 하고 양파도 우리나라 일식집에서 주는 길고 얄팍하게 썰어서 푹 익혀주는게 아니라 좀 큼직하게 아삭거리는 놈들이라 꼭 간짜장밥 같은 맛이 좀 났다. (달걀프라이도 얹혀 있고) 미소수프랑 같이 매우 맛있게 먹고 나왔다.
 

 
그리고는 날씨가 좋으니 민트 비네투에 가야겠다고 결정했다. 왜냐하면 민트 비네투는 성 Ignoto 거리를 따라가야 하는데 그 길이 재작년의 경험을 비추어 볼 때 좀 오르막인데다 재개발이 안되어 황량한 길이기 때문이다. 우중충한 날씨에 걸어가면 좀 춥고 음울할 것 같았다. 구글맵을 찍어봤더니 심지어 웍에서 가까워서 좋아하며 걸어갔다. 빌니아우스 거리에서 걸어가니 오르막이 아니어서 더 좋았다(재작년엔 숙소에서 곧장 가느라 토토리우 거리를 따라 쭉 올라갔었다)



민트 비네투는 당시 피나비야를 제외하곤 유일하게 두 번 간 카페였는데 헌책들이 많고 구석 자리들이 좀 도서관 같아서 좋았다. 이번엔 전에 앉지 않았던 쪽 구석으로 들어갔다. 자리는 좋았는데 확실히 여기는 응달이긴 했다. 센차를 시켰는데 아이스는 안된다고 했다. 그런데 이 녹차에서 시나몬 향이 강하게 났다. 뭐지, 재작년에 마셨을 땐 안그랬는데. 티포트에 시나몬차를 우렸었나... 하여튼 시나몬 냄새 나는 센차를 마시며 여기서도 스케치를 했다. 그게 토끼 옷차림 스케치. 이렇게 카페들을 돌아다닐 줄 모르고 아이패드만 가져온데다 와이파이가 잘 안돼서 본의아니게 두 카페에서 다 스케치. 그런데 민트 비네투는 전에 왔을 때가 더 마음에 들었다. 뭔가 여기는 환대하는 느낌이 별로 없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스케치하기는 좋은 곳이다.

 

 
오늘 간 곳들이 많아서 너무 길어지는지라 오늘도 두 파트로 나눠서 올린다. 1부는 여기까지. 여기까지의 사진들은 아래.
 

 
 

 
 
 
종이컵에 담아준 플랫 화이트와 겨우 두번만에 '내 자리' 로 각인된 무지개 테이블의 엘스카. 
 
 
 

 
 
 
실제로는 이렇게 이쁘고 볕이 잘 들어온답니다. 테이블 다 없앤 대충대충 스케치와는 비교불가 ㅎㅎㅎ 엘스카 사진이 좀 많다. 빛 들어오는 카페 내부가 이뻐서. 
 
 
 

 
 
 
출입문 앞. 나갈 때 보니 여기도 우크라이나 응원문구가 붙어 있었다. 전쟁이 빨리 끝났으면...
 
 
 

 
 
 
 

 
 
 
이렇게 무지개테이블에서 스케치를... 
 
 

 
 
 
웍에서 먹은 간짜장밥 맛 나는 맛있었던 돈부리. 추천!!! 가쯔오부시도 올려주고 좋았다!
 
 
 

 
 
 
민트 비네투 가는 길. 햇살이 좋아서 오늘은 공원 벤치고 야외 테이블이고 삼삼오오 다들 밖에 앉아 있었다. 
 
 
 

 
 
성 Ignoto 거리. 여기가 사실 날씨 안 좋으면 우중충할텐데 하늘이 파랗고 햇살이 쨍하니 이쁘고 고적하다. 
 
 
 

 
 
민트 비네투. 시나몬향 엄청 많이 났던 센차. 내가 시나몬을 좋아하니 망정이지...
 
 
 

 
 
토끼의 하찮은 패션변천 스케치... 뭔가 종이인형 오리기 그림 같다 :)
 
 
여기까지가 1부. 헥헥, 언제 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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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