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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비가 오지 않았지만 음습하고 쌀쌀한 날씨였다. 히트텍에 티셔츠, 니트바지에 숏패딩, 스카프 차림으로 나갔는데도 추워서 좀 떨었다. 중간에 카페에 들어가기도 하고 슈퍼와 기념품가게에 들러 몸을 녹였다. 게디미나스 대로에서 베네통 매장을 발견하고 들어가봤는데 신상 코트가 예뻤지만 내 키에 비해 너무 길었고 가격도 비싸서 그냥 구경만 했다. 할인하는 모직 반바지와 모직 미디 스커트를 살까말까 망설이기까지 했다. 정말로 추웠던 건지 아니면 몸 상태가 별로 안 좋았던 건지 잘 모르겠다. 오후 늦게 근처 카페 갈때는 코트로 갈아입고 나갔더니 좀 나았다. 코트랑 숏패딩 챙겨오기 잘했다는 생각과 함께 기모바지를 마지막에 빼버린 것에 대한 후회가... 어쩐지 이러다 조만간 게디미나스 대로에 있는 의류매장에 들어가 따뜻한 옷을 사입을 것만 같다. 

 

 

간밤에 빈대 걱정 때문에 너무 졸린 상태에서도 불안해하다가 결국 방의 불을 켜고 잤다. 캄캄한 밤중에서 새벽에 놈들이 출몰한다고 해서. 안대를 쓰고 자긴 했는데 나는 원래 암막커튼+안대 무장을 하고 자도 중간에 깨므로 너무 안 좋은 수면 환경이었다. 하여튼 더 물리거나 이상한 자국이 나타나진 않았고 왼쪽 발목의 자국도 다 가라앉았다. 그래서 오늘은 불을 끄고 자볼까 싶다. 자정 좀 안되어 잠들었는데 엄청 피곤하게 자다가 역시나 새벽 5시 반쯤 깼다. 한시간 이상 뒤척이다 퍼뜩 새잠이 들었는데 이때 막 꿈을 꾸며 정신없이 잤다. 그런데 이 호텔은 조식이 10시까지라 어떻게든 밥을 먹어보고자 했으므로 9시가 좀 안되어서는 억지로 일어나야 했다. 왜냐하면 어제 리가에서 빌니우스 넘어오면서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오후 늦게는 맥도날드로 때웠기 때문에 너무 배가 고파서... 너무너무 더 자고 싶었지만 꾸역꾸역 일어나 샤워를 하고 조식을 먹으러 갔다. 

 

 

 

 

이 호텔은 소련 시절부터 1층의 레스토랑이 유명한 곳인데 조식도 거기서 먹게 되어 있었다. 물론 조식은 그냥 전형적인 비즈니스호텔 조식 뷔페라 특별할 건 전혀 없었다. 치킨 키예프가 시그니처 메뉴인데 나는 사실 이넘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자르면 버터와 기름이 주루룩 흘러내린다) 여기서 저녁을 먹어볼 일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튼 너무 배고팠기에 이것저것 막 가져다 먹었다. '오믈렛 부쳐주면 얼마나 좋을까, 남이 해주는 오믈렛 먹고프다' 라고 생각하면서... 여기는 특이하게 달걀프라이가 있었는데 너무 반숙이라 나는 먹을 수 없었다. 스크램블드 에그 대신 '오믈렛'이라고 씌어 있는 그릇에는 네모진 계란찜 큐브들이 들어 있었다. 사진의 저 네모난 노란 녀석인데 정말 계란찜이어서 밥 생각이 절로 났음. 김이랑 밥이랑 저거랑 된장찌개랑 먹고 싶었음 ㅎㅎ

 

 

 

 

 

밥을 먹고 와서 좀 정비를 한 후 열시 반 쯤 호텔을 나섰다. 오늘은 딱히 목적지는 없었지만 새로운 카페와 식당도 가보고 구시가지를 천천히 산책할 생각이었다. 호텔은 구시가지에서 좀 떨어진 게디미나스 대로에 있는데(여기가 명동 같은 거리임) 쭉 따라 올라가면 대성당 광장이 나오는 코스이다. 하지만 나는 그쪽으로 가지 않고 중간에 있는 빌니아우스 거리로 빠져서 보키에치우 거리, 디조이 거리, 필리에스 거리, 대성당 광장 코스로 갔다. 이렇게 가면 삼각형을 그리게 된다. 그런데 나는 재작년에 8일이나 머물렀고 구시가지 대부분을 돌아다녔지만 영원한 휴가님과 함께 다니거나 아니면 구글맵을 찍고 다녔기 때문에 머릿속에 방향이 전혀 그려져 있지 않았다. 오늘 필리에스 거리의 투어리스트 인포센터에서 종이지도를 한장 집어와 찬찬히 보니 '아 내가 오늘 트라이앵글로 다녔구나. 아 시장이랑 역은 이쪽, 우주피스는 저쪽이구나' 등등 이제야 방향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봤자 막상 다닐 땐 또 구글맵 켜고 눈앞만 보며 직진할 거 같음)

 

 

이른 시간에 나왔고 금요일이었지만 그래도 오전인지라 길거리는 매우 한적했다. 날씨가 습하고 싸늘해서 한기가 스며들었다. 쭉 걷다가 디조이 거리에 있는 성 파라스케베 정교 성당이 나타나서-내가 가장 좋아했던 성당이다- 초를 켜고 기도하려 했는데 어째선지 문이 잠겨 있었다. 흑흑... 

 

이때쯤 나는 춥고 머리가 아파서 어디든 들어가고 싶었다. 그전에 보키에치우 거리를 지날때 이딸랄라 카페를 비롯해 가보고팠던 곳이 두어곳 나타났었으나 그때는 '밥먹은지 얼마 안돼서 암것도 못 마시겠다' 상태라 그냥 지나쳤는데 후회가 되기 시작... 마침 필리에스 거리였고 전에 블린 먹었던 '필리에스 케피클렐레'에 갈까 하며 걸어내려가다 전에 이름을 봤던, 그리고 간판이 귀여운 '에스케다르 커피 바'라는 곳을 발견했다. 그런데 검색을 해보니 찻잔이 맘에 안 드는 타입이라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가, 영원한 휴가님께 톡을 하니 거기 맘에 드셨다고 하여 귀가 얇은 나는 도로 거슬러 올라가 그 카페에 갔다. 그 카페 포스팅은 따로 했음. 

 

 

에스케다르에서 몸을 좀 녹이고 나와서 다시 걸어내려갔다. 대성당과 종탑이 나왔다. 역시나 이 광장은 넓고 썰렁하다. 찬란하던 6월과 지금 이 시기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지금은 '아 추워...' 뿐 ㅠㅠ 성당에 잠깐 들어가 기도를 하고 몸을 약간 녹이고 다시 나왔다. 이제 배가 고프기 시작. 게디미나스 대로에 있는 rimi 슈퍼에서 생수와 할인하는 라즈베리를 샀고 다시 빌니아우스 거리로 진입해 전부터 가보려던 Wok to Walk이라는 아시안 볶음요리 전문식당에 갔다. 마침 런치메뉴로 팟타이와 미소수프 세트를 8유로 안되게 팔고 있어 돈부리를 먹을까 하다가 그것을 고름. 생각보다 맛있었고 미소 덕분에 몸이 좀 녹았다. 볼트의 배달원들이 계속 드나들었다. 가게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맛있었는데 팟타이 양이 너무 많아서 좀 남긴 게 아까웠음 ㅠㅠ 딱 하나 힘들었던 건 여기도 서브웨이처럼 누들 종류, 토핑 종류(닭, 소, 두부 등), 소스를 선택해야 하는지라 나처럼 주문공포증 있는 자는 좀 버퍼링이 걸림. 나는 납작한 쌀국수와 닭고기, 데리야키소스로 무난한 조합을 택했다. 

 

 

밥을 먹은 후 꽃을 사서 일단 방으로 돌아왔다. 세시 즈음이었고 청소가 잘 되어 있어 좋았다. 폰 충전을 하며 좀 쉬다가 네시 즈음 다시 나갔다. 제일 가까운 카페에서 스케치를 하거나 책을 읽으려고. 길 건너편에 있는 제일 가까운 카페인에 갔는데 여기는 아주 작아서 테이블이 몇개 없었다. 그리웠던 초코 에클레어를 시켜서 실론티와 함께 먹었다. 매장이 좁고 테이블이 다닥다닥이라 스케치를 하기 편한 공간은 아니어서(그런 건 좀 널찍한 체인 카페가 좋다) 한국에서 챙겨온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세상이 끝날 때까지 아직 10억년'을 다시 읽다가 나옴. 그런데 점원이 테이블의 잔을 치우다 쟁반을 떨어뜨려서 러브라믹스 도자기 커피잔과 유리컵이 와장창 아주 박살이 났다. '으앙 어떡해, 저 사람 저거 다 치워야돼, 힘들겠다' 하며 막 이입함 ㅜㅜ 매장이 작아선지 점원이 한명 뿐이어서 주문 받고 만들고 또 치우고 분주해보였는데 그 와중에 컵까지 깨고 심지어 유리잔까지 있어서... 근데 그 물결요철 있는 유리컵은 원체 잘 깨지는 재질이라 나도 그 컵 내주는 매장 가면 항상 불안해하며 조심하게 되긴 함. 

 

 

5시 좀 넘어서 카페인에서 나와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이제 많이 피곤했기 때문에 쉬기로 했다. 따뜻한 물을 받아 목욕을 하고 조식테이블에서 집어온 삶은 달걀과 햇반 등으로 저녁을 간단히 먹었다. 그리고 오늘의 메모를 쓰고 있는데 벌써 아홉시가 다 되어가네. 메모 쓰는데 시간이 은근히 많이 걸린다. 

 

 

오늘은 10,332보, 6.5킬로 걸었다. 

 

 

그건 그렇고 수면양말과 바디로션을 하나씩 사야 하나 생각 중이다. 이제 좀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계속 일한 후 바르샤바-리가-빌니우스로 날아와 매일 돌아다녔더니 피로가 좀 쌓여 있는 것 같다. 잠도 계속 좀 모자라고. 중간에 안 깨고 8시간 쭉 자보면 좋겠는데...

 

 

사진들 몇 장. 확실히 10월 사진들은 6월 사진들만큼 예쁘지 않단 말이야... 나는 빛이 많은 사진을 좋아하는데 흑흑. 뭐 카메라 무거워서 여전히 폰으로만 찍고 다닐 것 같긴 하다만. 

 

 

 

 

 

 

 

 

 

 

 

 

 

 

밥먹으러 빌니아우스 거리로 접어들었는데 무슨 라디오 방송 같은 라이브 토크를 하고 있었음. 내용은 안 궁금하고 '춥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던 걸 보니 내가 확실히 오늘 좀 떨면서 다녔나보다. 

 

 

 

 

 

 

여기가 팟타이 먹은 웍 투 웍. 미소에 미역도 넣어주고 좋았다 :)

 

 

 

 

 

 

 

 

 

 

호텔 복도 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 고층 건물들을 보니 강 건너 신시가지 쪽인 것 같다. (여전히 방향 감각 없음)

 

 

 

 

 

책 읽었던 조그만 카페인. 

 

 

 

 

 

 

이건 내가 마신 건 아니고 남이 마시고 두고 간 커피잔인데 색깔이 이 카페랑 어울려서 한 컷. 나를 포함한 나머지 손님들은 모두 터키블루 러브라믹스에 내줬는데 카페인은 저 노란색이 더 잘 어울린다. 

 

 

헥헥, 이제야 오늘의 기나긴 메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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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