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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무용수'에 해당되는 글 28

  1. 2020.05.31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 페테르부르크 317주년 기념 영상 6
  2. 2019.10.28 발란신 '다이아몬드'(슈클랴로프&소모바) + 블라디보스톡 클립(테료쉬키나랑) 4
  3. 2019.03.17 생일 축하해요 루딕
  4. 2019.03.05 오랜만에 발로쟈, 꿈에 나와 주신 기념 + 페트루슈카 커튼콜 사진 두 장
  5. 2019.02.09 생일 축하해요, 발로쟈!
  6. 2018.10.30 도약하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4
  7. 2018.07.16 천사같은 꽃돌이님 2
  8. 2018.01.27 생일 축하해요 미하일! 2
  9. 2017.12.17 로마에서 돌아온 미샤, 빨강, 소련 군가, 우주비행사 11
  10. 2017.10.22 열받은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미샤 + 춤과 담배와 알콜 14
  11. 2017.05.06 세르게이 폴루닌,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아르춈 옵차렌코 4
  12. 2017.04.23 일요일 아침 출근하면서 2
  13. 2017.03.05 모스크바에 있는 것들, 오직 불길 23
  14. 2017.03.01 나도 이 사람의 페트루슈카 보러 가고프다 2
  15. 2017.01.28 생일 축하해요 미하일! 2
  16. 2016.11.14 로미오와 줄리엣(존 크랑코) - 슈클랴로프 & 쉬린키나 화보 몇장 2
  17. 2016.10.20 흑해의 여름, 춤추는 아이, 달빛 아래의 레나 46
  18. 2016.10.20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지젤 화보 몇 장(with 쉬린키나) 4
  19. 2016.08.25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화보 몇 장(젊은이와 죽음 등) 4
  20. 2016.08.22 미샤의 몇 가지 논리, 다들 똑같아지면 재미없음, 싫지 않은 것과 보통과 별로 사이 48
  21. 2016.01.21 오랜만의 무용수 화보 몇 장 : 누레예프, 말라호프, 비슈뇨바, 슈클랴로프
  22. 2015.07.02 미하일 바리쉬니코프 사진 세 장 2
  23. 2015.03.28 국립발레단 지젤(3.28 : 김지영 & 김현웅) 간단한 리뷰 + 파트리스 바르의 안무에 대한 개인적 느낌 2
  24. 2015.02.01 발레 화보 : 로파트키나, 비슈네바, 슈클랴로프, 테료쉬키나, 콘다우로바
  25. 2015.01.06 루돌프 누레예프 사망 22주기, 누레예프 화보 몇 장 2

 

 

 

지난 5월 27일은 상트 페테르부르크 317주년 기념일이었다. 페테르부르크 토박이인 슈클랴로프님이 자기 도시에 대한 사랑을 담아 찍은 영상 클립. 아주 짧아서 1분도 되지 않는다. 이분 인스타 팔로우하는 분들은 모두 보셨을 듯.

 

 

모이카 운하변에 있는 켐펜스키 모이카 호텔의 옥상에서 찍었다. 나도 여러번 갔던 곳이다. '벨 뷰'라는 이름의 카페가 있고 테라스 옥상으로 나가면 궁전광장과 이삭 성당, 에르미타주, 네바 강 등 도시의 아름다운 전경을 볼 수 있다.

 

 

아름다운 영상이다. 춤추고 날아오르는 슈클랴로프님도, 그리고 도시 자체와 폴리나 말리코바가 읊는 시도. 사랑하는 도시를 향해 무용수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보여줄 수 있는 러브 레터.

 

 

출처는 발로쟈 슈클랴로프님 인스타그램 @vladimir_shklyarov

(인스타로 가면 좀더 좋은 화질로 볼 수 있다)

 

비디오 촬영은 @artemkorzhavin

 

메이크업은 @costa_makeup

 

나레이션은 페테르부르크 드라마 극장의 배우인 @polina_malikova

(페테르부르크에 대한 시를 읊고 있다)

 

 

그리고 아래의 사진 촬영은 @flamingo_spb

 

 

사진들은 슈클랴로프님 인스타에 여러 장 올라왔는데 그 중 한장, 그리고 잡지에 실린 사진 한장 더. 격리 기간 동안 이 사람은 머리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있는데... 나는 이 사람이 면도한 모습이 더 좋지만 ㅠㅠ 그래도 이 촬영을 위해서는 머리도 매만지고 수염도 좀 다듬어서 나쁘지 않다. (흑흑 그래도 수염 깎은 쪽이 더 좋아 ㅋㅋ)

 

 

 

 

 

 

 

옥상에 앉아서 빵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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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오늘의 꽃돌이님 영상은 조지 발란신의 '다이아몬드'. 지난 7월 블라디보스톡 마린스키 분관에서 '슈클랴로프님의 밤' 공연이 있었는데 거기서 '아가씨와 건달', '파이브 탱고', 그리고 이 '다이아몬드'를 췄다. 그 공연 보러 엄청 빡빡한 여행을 했었는데 무척 고생했지만 그래도 갔던 보람이 있었다. 내 개인적으로는 '아가씨와 건달'이 가장 마음에 들었고 발란신은 딱히 좋아해본 적이 없었지만 이 사람이 추는 다이아몬드는 그야말로 정말 다이아몬드라 볼 가치가 있었다.

 

 

위의 짧은 영상은 공연 전날 블라디보스톡 해변과 등대 쪽에 마실 가서 듀엣 맞춰보는 발로쟈 슈클랴로프와 그의 파트너 발레리나였던 빅토리야 테료쉬키나. 실제 공연과 뒤섞여 있는데 편집도 그렇고 꽤나 매력적이다. 아마 마린스키 발레나 슈클랴로프님, 스메칼로프 인스타 팔로우하시는 분들은 여름에 보셨을 듯. 이 영상 클립 감독이 유리 스메칼로프임(ㅎㅎ)

 

(그건 그렇고 저 영상 찍은 날 블라디보스톡 날씨 진짜진짜 안 좋았었다. 계속 비는 부슬부슬 오고... 엄청나게 습해서 사우나 속에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저날 새벽 비행기로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했는데 오후에 밥먹으러 나갔을때 너무 덥고 습해서 거의 혼수상태였음. 그런 날씨에도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발로쟈랑 빅토리야 정말 대단하다!!!!)

 

 

사실 이게 블라디보스톡 오기 전 6월에 원래 마린스키에서 먼저 올리려던 이 사람 특별 이브닝 무대였는데 그때 경미한 부상으로 공연이 취소되었다. 그래서 7월에 오히려 뻬쩨르 관객들이 블라디보스톡 관객들을 부러워했음. 다이아몬드나 파이브 탱고는 이 사람이 요즘도 이따금 추지만 아가씨와 건달은 춘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블라디보스톡에서 이 공연 마치고 이 사람이 간단하게 인터뷰를 했는데 '솔직히 말해 다이아몬드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에요'라고 말했다. 나는 네가 발란신 말고 다른 거 추는 게 더 좋지만... 그래도 잘 추고 또 잘 어울리니 금상첨화이긴 함. 그리고 발랄한 루비도 어울리지만 그래도 다이아몬드가 더 이 사람 맞춤임.

 

 

짧은 영상은 감질나니 아래에는 알리나 소모바랑 같이 춘 다이아몬드 전체 클립 올려봄. 슈클랴로프는 Jewels에서 에메랄드, 루비, 다이아몬드를 다 춰봤는데 13년도의 데뷔 10주년 공연에선 루비를 가지고 올라왔고 블라디보스톡 공연에서는 다이아몬드를 골랐다.

 

 

 

 

 

 

사진은 첫번째 블라디보스톡 클립에서. 이건 아마 테료쉬키나 인스타에 올라왔던 사진 같은데 긴가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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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9. 3. 17. 21:29

생일 축하해요 루딕 dance2019. 3. 17. 21:29




오늘은 루돌프 누레예프의 생일이다. 1938년 3월 17일.



유일무이한 무용수, 위대한 예술가, 한 인간. 불. 루딕. 생일 축하해요. 우리에게 와줘서 고마워요. 










.. 



그건 그렇고 누레예프의 망명을 다룬 영화 The White Crow 기다리는 중이다. 최근 영국에서 시사회가 열렸다. 이 영화 과연 우리 나라에서 개봉할지 잘 모르겠음. 주역을 맡은 무용수 올레그 이벤코가 루딕과 약간 닮긴 했는데 과연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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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아침에 깨기 직전 슈클랴로프님이 꿈에 나오심. 그렇지 않아도 딱 작년 이맘때 슈클랴로프 부부가 유니버설 발레 갈라에 출연하느라 내한했었고 연 사흘 공연 보러 가고 끝난 후 만나 사인도 받고 얘기도 나눴는데 아마 그때 기억이 되살아났는지 꿈에 나와주심. 꿈속에서 발로쟈는 아내인 마리야와 함께 다시 우리 나라에 왔고 무려 우리집에 놀러와서(!) 배웅하러 나가며 이야기를 나누다 깼다. 아아 이렇게 엄청난 꿈인데 나는 오늘 로또를 샀어야 했는데 여기는 시골 동네라 로또 파는 곳이 없음 흐흑...



사진은 작년 가을에 갔을 때 마린스키 샵에서 산 이분의 데뷔 15주년 프로그램. 표지는 바이에른에서 췄던 로미오. 블루블랙의 저 깃털 브로치는 마린스키에서 샀는지 다른 가게에서 샀는지 이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저 브로치가 참 이쁘긴 한데 핀이 좀 허술해서 망가질까봐 실제로 달고 나간 적은 두어번밖에 없음. 저 프로그램 샀던 날 블라지미르 바르나바 안무의 페트루슈카를 보러 갔었다. 슈클랴로프님의 연기도 훌륭했고 춤도 좋았지만 안무 자체는 좀 실망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발로쟈의 표현력 하나만으로도 볼만한 가치는 있었다. 게다가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이 있고. (스트라빈스키 음악들 중 페트루슈카를 가장 좋아함)






그냥 넘어가기 아쉬우니 그날 찍은 커튼콜 사진 두장. 분명 맨 앞줄 가운데 앉아서 봤건만... 역시나 마린스키 신관은 조명도 그렇고 맨 앞줄에서 찍으면 오히려 빛이 다 번진다 ㅠㅠ 게다가 페트루슈카 역의 발로쟈는 하얀옷과 하얀 모자 때문에 더더욱 빛이 번져서 사진 폭망... 그래도 품에 안고 있는 꽃다발 중 하나는 내가 준 거니까 기념으로 :)







이날 페트루슈카에 대한 아주 짧은 메모와 폰으로 찍은 커튼콜 사진은 여기 : https://tveye.tistory.com/8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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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9. 2. 9. 14:46

생일 축하해요, 발로쟈! dance2019. 2. 9. 14:46





오늘은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님 생일이다 :) 생일 축하해요, 발로쟈!!!







백스테이지에서 찍힌 사진도 멋있는 발로쟈~







작년이 이 사람 데뷔 15주년이었다. 기념 공연(로미오와 줄리엣) 때 나온 프로그램. 일하느라 그 공연엔 못 가고 대신 9월에 가서 득템. 그날 이 사람은 바르나바가 안무한 페트루슈카를 췄다. 위의 사진의 왼쪽 화보가 그 페트루슈카.


..


인스타에 축하 포스팅 올린 직후 확인하고 하트하트 달아주신 발로쟈님~~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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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8. 10. 30. 23:21

도약하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dance2018. 10. 30. 23:21





오랜만에 슈클랴로프님 화보 한 장. 얼마 전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극장에서 열렸던 갈라 공연. 해적의 알리 추는 중.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사진은 @cositore_photographer (인스타그램)



그러고 보니 지난 9월에 뻬쩨르 갔을 때 찍은 이 사람의 페트루슈카 커튼 콜 사진도 몇장 있는데 그거 올린다는 것도 까먹었네. 하긴 조명 때문에 많이 번져서 제대로 건진 사진이 별로 없긴 했다. 맨 앞줄 가운데였는데도 흐흑..



발로쟈, 한국 또 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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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8. 7. 16. 23:07

천사같은 꽃돌이님 sketch fragments 2018. 7. 16. 23:07




결국 오늘 마린스키 메일로 29일 슈클랴로프님의 신데렐라 발레 티켓 취소신청서를 보냈다. 페테르부르크의 본진 마린스키는 항상 서비스가 좀 늦는데 오히려 블라디보스톡 마린스키 분관은 현지 서비스도 그렇고 뭐든 더 빠르고 친절한 편이다. 최근에 생기기도 했고 아무래도 분관이다 보니 고객만족도에 더 신경쓰는듯. 메일 보낸지 한시간만에 당신의 취소요청이 승인되었습니다 하고 답멜이 오고 표가 취소되었다 엉엉...



아이고 슬퍼라 엉엉...





엉엉 발로쟈 엉엉... 



그런데 인스타에 위의 그림을 올렸더니 슈클랴로프님이 너무 친절하게 댓글을 달아주셔서 팬심은 또 두근거리고... 정말이지 이분은 춤도 잘추고 얼굴도 이쁘고 마음씨마저 천사가 아니더냐~ ​



(댓글 달아줬다고 또 금세 맘의 위안을 얻고는 캡처 떠놓고 있는 나는나는 넘버원팬 ㅋㅋㅋ)



흑흑 고마워요 발로쟈... 월말 블라디보스톡 공연은 못가지만 그래도 언제가 됐든 무대 보러 다시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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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8. 1. 27. 23:12

생일 축하해요 미하일! dance2018. 1. 27. 23:12





오늘은 미하일 바리쉬니코프의 70번째 생일이다.



생일 축하해요 미하일!!!



당신 때문에 러시아어 전공하게 된 거 한번 더 얘기해도 되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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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오늘의 이야기는 트로이와 미샤가 나오는 장편 후반부에서 발췌했다. 4부 19장 앞부분에 일어나는 일이다. 1976년 7월. 소련 레닌그라드. 미샤는 키로프 극장 수석무용수이며 몇달 전에는 안무가로도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7월에 키로프 발레단이 유럽 투어를 떠나고 미샤도 거기 포함된다. 동베를린과 마드리드, 로마.




그의 친구이자 애인인(정작 그 누구도 이 관계를 확언한 적은 없다만) 트로이는 레닌그라드 국립대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트로이의 소꿉친구 알리사는 이미 런던으로 떠난 후이다.




발췌한 이야기는 간단하다. 미샤가 유럽 투어를 다녀온다. 로마에서 돌아온 미샤는 자기 집이 아니라 트로이의 집으로 향한다. 트로이는 귀가했을 때 빨간 페인트를 뒤집어쓰고 잠들어 있는 미샤를 발견한다. 둘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조금 더.




이 이야기의 앞부분은 전에 조금 떼어내 발췌한 적이 있다.


http://tveye.tistory.com/5222  빨간 페인트, 자고 났을 때 옆에서 책을 읽고 있으면...





그때 서두에 올렸던 짧은 인물 소개 메모를 다시 붙여본다. 둘의 대화에 언급되는 인물들이 좀 있어서.




언급되는 아사예프는 당시 키로프 발레단 예술감독, 알렉세이 파블로비치는 발레학교 시절 미샤의 은사, 카라바노프는 미샤의 발레 파트너인 지나이다의 약혼자이자 트로이의 학교 동료 교수이다.


니나 크류코바는 키로프 발레단의 오래된 최고 스타 발레리나(현재의 울리야나 로파트키나나 옛날의 갈리나 울라노바 같은 급), 마할린은 그녀의 동료 파트너이자 인민예술가이다. 딤카 아르부조프는 키로프 오케스트라의 수석 바이올리니스트이다 물론 이들은 모두 내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다





위의 메모에 이어, 일린(미샤는 스탄카 라고 부른다)은 jewels와 dolls, 미샤의 수용소 이야기 등에 쭉 등장했던 볼쇼이 극장 안무가이자 미샤의 친구이다.



미샤가 못마땅하게 언급하는 벨스키와 스비제르스키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주에 발췌한 적이 있다. (http://tveye.tistory.com/7411 (두 남자의 대화, 미샤의 재판과 유배에 대한 경위, 커피의 비밀)




미샤가 얘기하는 유라는 유리 아스케로프라는 의사이다. 그의 오랜 애인이기도 하다. 유리 아스케로프는 서무 시리즈에도 잠깐 등장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 about writing 폴더에도 이 사람이 등장하는 글을 몇차례 발췌한 적이 있다. 주로 미샤 때문에 골치썩는 장면이었음 ㅠㅠ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일린이 떠난 후에도 미샤는 잘 견디는 것처럼 보였다. 징계를 받았던 것은 시즌 막바지였기 때문에 그렇게 큰 영향은 없었다. 그는 백야 축제로 복귀해 호평을 받았으며 새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7월에는 지나이다와 함께 크레믈린 궁전 무대에 올라갔다. 그건 전적으로 모스크바 축제였고 볼쇼이가 주관하는 행사였지만 이반 노비코프는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었고 미샤와 지나이다를 레닌그라드의 특급 스타로 조명했다. 그들은 볼쇼이 출연진들과 함께 백조의 호수를 췄고 일린은 지나이다에게 나타샤 왈츠를 맡겼다. 모스크바 관객들은 루슬란과 류드밀라를 매우 좋아했고 미샤를 볼쇼이 무대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행사 개막일에는 브레즈네프가 당 위원들과 함께 나타나 백조의 호수를 관람하고 리셉션에도 얼굴을 내밀었다. 이후 트로이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미샤에게 최고 권력자에 대해 물었다. 이미 전에도 다른 행사에서 브레즈네프를 본 적이 있었던 미샤는 별다른 관심 없는 어조로 대꾸했다.



 “ 텔레비전에 나올 때와 똑같아. 멍청하고 따분한 늙은이야. ”




 “ 공연에 관심은 있어? ”




 “ 그럴 리가. ”



 미샤는 정치인들 얘기를 할 때마다 짓는 딱딱한 가면 같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 벨스키는 좀 의외였어. 어머니가 가브릴로프 극장 무용수였대. 극장에 대해 잘 알더라구. 계속 놔주지 않아서 정말 좀이 쑤셔 죽을 뻔 했어. ”




 “ 왜 도망 안 쳤어? ”




 “ 다른 테이블엔 스비제르스키가 있었으니까. 호랑이를 피해 악마 소굴로 갈 수는 없잖아. ”




 트로이는 게오르기 벨스키가 마로조프의 지지를 업고 세력을 키운 인물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스비제르스키와는 자동적으로 정적 관계에 놓여 있을 것이 분명했다.



 “ 어떻게 그 둘이 함께 조직위원회에 들어 있었던 거야? ”




 “ 그 행사가 극장이나 관객을 위한 게 아니니까. 둘 다 뭔가 지저분한 속셈이 있었겠지. 알고 싶지 않아. ”




 적어도 두 명의 고위 관료와 잠자리를 갖는 인물의 입에서 나올만한 얘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미샤가 스비제르스키를 얼마나 혐오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트로이는 입을 다물었다. 벨스키야 워낙 가정적인 정치인으로 소문나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그래도 일린과 다시 만나서 반갑긴 했겠네, 간지 얼마 안 되긴 했지만. ”




 “ 스탄카? 지나와 최종 리허설 할 때 밖에 못 봤어. 10분 정도. ”




 “ 축제 끝나고 모스크바에 며칠 더 있다 왔잖아. ”




 “ 그 사람은 폐막한 날 애들 데리고 소치에 갔어. 나름대로 괜찮은 아빠야. ”




 미샤는 일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얘기하려고 하지 않았다. 크레믈린 행사를 마치고 돌아온 후 열흘 만에 그는 다시 해외 투어를 떠났다. 동베를린과 마드리드, 로마였다. 아사예프는 그를 뉴욕을 비롯한 북미 투어 팀에 넣고 싶어 했지만 당국에서는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유럽 투어를 떠나기 사흘 전 미샤는 보안위원회 지부에 불려가 온종일 사상 재교육을 받았고 다음날은 근교의 집단농장에서 개최된 콤소몰 행사에 끌려갔다. 그런 일에 동원될 때면 언제나 그렇듯 우울하고 지친 모습으로 돌아온 미샤에게 트로이는 그가 도망치지 않고 행사를 견뎠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당분이 가득한 뭔가를 먹을 자격이 있다고 달랬다. 미샤는 알렉산드르 파블로비치의 이름을 운운하는 대신 트로이가 주는 대로 설탕을 녹인 차를 마시고 견과가 올라간 모코 케익을 두 조각 먹은 후 매일 밤마다 하던 운동과 스트레칭도 모두 거르고 시끄러운 락 음악을 좀 듣다가 자버렸다. 





 

*   *   *




 
 미샤는 해외 투어를 마치고 공항에서 곧장 트로이의 집으로 왔다. 카라바노프에게 집을 구하는 동안 자신과 지나이다의 아파트에 와 있으라고 얘기해두었기 때문이다. 카라바노프의 질투심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트로이가 새로 쓰는 논문 때문에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잔뜩 껴안고 돌아왔을 때 미샤는 이미 아파트에 와 있었다. 커다란 트렁크와 소파 사이의 카펫 바닥에 모로 누운 채 둘둘 말린 재킷을 베고 잠들어 있었다. 재킷 외에는 옷도 벗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운동화도 한 짝은 그대로 신고 있었다. 트로이는 그를 깨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얇은 담요만 덮어 주었다. 뭔가 이상해서 자세히 봤더니 머리 색깔이 바뀌어 있었다.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는데 제대로 된 미용사의 손을 거친 것이 아니고 꼭 페인트를 뒤집어쓴 것 같았다. 재킷과 카펫 바닥 위에도 붉은 얼룩이 점점이 묻어 있었다. 공연용 스프레이를 뿌린 후 머리를 감지 않은 건가 싶었다.




 30분 쯤 후 미샤가 일어났다. 기계적으로 스트레칭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가 소파에 앉아 자료를 뒤지고 있는 트로이를 뒤늦게 발견하고 반가워했다. 눈에 띄게 좋아하는 표정이라 트로이는 웃었다.




 “ 그렇게 반가워하는 얼굴은 처음 봐. ”




 “ 자고 일어났을 때 네가 옆에서 책을 보고 있으면 좋아. ”




 “ 왜? ”




 “ 좋은데 이유가 필요해? ”




 미샤가 트로이의 무릎에 쌓여 있는 책과 논문 뭉치들을 흥미롭게 내려다보았다. 그는 언제나 트로이의 공부에 관심이 많았지만 문학 이론서나 논문을 직접 읽지는 않았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너무 어려워, 네가 얘기해주는 게 더 좋아’ 라는 말을 주문처럼 사용해 트로이가 그것들을 설명해주도록 만들었다. 아마 이콘 복원가나 딤카 아르부조프, 그 외 수많은 지인들에게서도 그런 식으로 다른 분야의 지식을 얻어낼 것이다.




 잠시 후 미샤는 그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한 후 샤워를 해야겠다며 옷을 벗기 시작했다. 트로이가 머리를 어루만지자 생각났다는 듯 외쳤다.




 “ 아, 손대지 마. 빨간 거 묻을 거야! ”




 “ 벌써 묻었어. 이게 뭐야? 염색약이야? ”




 “ 페인트. 다행히 유성은 아니야. ”




 “ 왜 머리에 빨간 페인트로 물을 들였어? ”




 “ 로마 호텔에서 나오는데 공산주의 반대자가 달려들어서 끼얹었어. ”




 “ 너한테? 하고많은 단원들 중에 왜 하필이면 널? ”




 “ 차라리 나였으면 좋았게. 니나를 노린 거였어. 오토바이로 칠 뻔 했어. 상상이 돼? 니나한테 그런 짓을 하다니! ”




 미샤는 소름이 끼치는 듯 몸을 떨었다. 정부에게 칼을 맞고 앙숙 무용수와 치고받고 싸워서 어깨가 반쯤 내려앉고도 자기 몸에는 별 신경도 쓰지 않는 주제에 크류코바가 페인트를 뒤집어쓸 뻔 했다고 분노하는 미샤를 보니 좀 우스웠다. 규정된 남성성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애였지만 어릴 때부터 받은 교육이 너무 뿌리 깊었기 때문인지 미샤는 여자들에 대해서는 언제나 깍듯했고 소위 기사도에 가까운 태도를 지켰다. 항상 아웅다웅하면서도 지나이다가 원하는 것은 전부 들어주곤 했다.




 과격한 이탈리아 민주주의자 청년은 오토바이에 ‘소련 공산당을 추방하라’로 추정되는 글귀가 적힌 깃발을 매달고 호텔 앞으로 득달같이 달려왔다. 애초부터 공격 대상은 니나 크류코바였는데 그건 전날 뉴스에서 키로프 발레단의 공연을 다루면서 인민예술가이자 대스타인 그녀와의 인터뷰를 짧게 내보냈기 때문이었다. 크류코바는 마할린과 이야기를 나누며 나오고 있었고 미샤는 아사예프와 함께 바로 뒤에 있었다. 그 이탈리아 청년이 선동적인 구호를 외치며 오토바이를 크류코바 쪽으로 곧장 몰고 왔을 때 미샤가 잽싸게 그녀를 낚아채 사고를 면했다. 공격자는 분노로 으르렁거리며 미리 준비해 온 빨간 페인트를 한 통 가득 퍼부었는데 크류코바를 감싸고 넘어진 미샤와 급하게 그를 부축하려고 했던 마할린이 그 희생자가 되었다.




 “ 그래서 그자는 잡혀갔어? ”




 “ 호텔 경비원들이 끌고 간 것 같아. ”




 “ 너 안 다쳤어? ”




 “ 범퍼에 살짝 들이받혔어. 멍만 좀 들고 괜찮아. ”




 미샤가 바지를 내리고 오른쪽 허벅지를 보여주었다. 시퍼렇게 퍼져 있는 멍을 보고 트로이가 한숨을 쉬었다.




 “ 오토바이에 받히고서 한다는 말이 멍만 들고 괜찮다고? 내일 병원에 꼭 가라. ”




 “ 괜찮아, 가벼운 타박상이야. 니나가 받혔으면 뼈가 박살났을 거야. 완전히 정면이었거든. 나쁜 자식. ”




 “ 그래, 니나는 페인트 세례에서 무사했어? ”




 “ 다행히! ”




 뿌듯한 듯 활짝 웃는 그 얼굴을 보니 더 이상 화도 낼 수가 없었다. 트로이는 대체 왜 보통 사람에게는 평생 한두 번 생길까 말까 한 나쁜 일들이 자기 앞에 있는 애에게는 그렇게 연이어 일어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 그래도 머리에만 묻었네. ”




 “ 아냐, 온몸에 다 뒤집어썼어. 진짜 빨갱이가 따로 없었어. 그 인간 목표가 반쯤 달성된 거지. 그나마 마할린은 등짝에만 뒤집어썼고. 비행기 시간이 빠듯해서 씻지도 않고 공항까지 갔어. 차에서 얼굴은 좀 닦았지. 난 그냥 탑승하려고 했는데 아사예프가 욕을 하면서 날 붙잡는 거야. 그 꼴로 어떻게 비행기를 탈거냐고. 그래서 ‘왜요, 적위군 같잖아요.’ 라고 했다가 더 욕먹었어. ”




 “ 그럼 감독한테 그런 말을 하고도 욕을 안 먹을 줄 알았어? ”




 “ 이상하군, 서방 제국주의자의 공격에 저항한 진짜 공산주의 애국자로 표창이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럼 내 서류도 좀 나아질 텐데. ”




 “ 그런 걸로 나아질 거였으면 애초에 뉴욕에 보내줬겠지. 그래도 옷은 갈아입었네. ”




 “ 트렁크를 부쳐버려서 옷이 없었어. 그래서 아사예프가 로마 공항에서 한 벌 사줬어. 그 인간 화장실까지 따라 들어와서 내가 얼굴을 씻는지 안 씻는지 감시했어. 머리도 감으라고 닦달했는데 탑승 시간이 다 돼서 그것까진 못했어. ” 




 “ 용케 비행기 화장실로 끌고 가지는 않았네. ”




 “ 그러려는 낌새가 보였어. 자기 옆자리에 끌어다 앉히는 거야! 타자마자 자는 척 했지. 비행기 화장실은 너무 좁단 말야. 물도 잘 안 나오고. ”




 트로이는 말썽쟁이 수석무용수를 챙겨야 하는 아사예프가 안됐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밀려나왔지만 꾹 참았다. 미샤가 옷을 다 벗고 돌아섰다. 뒷목덜미와 팔꿈치와 손목 뒤에도 빨간 얼룩이 잔뜩 묻어 있었다.




 “ 너 왼쪽에 아직 운동화 신고 있어. ”




 “ 아, 어쩐지 불편하더라니. ”




 “ 얼마나 피곤했으면 신발도 다 안 벗고 바닥에서 잤어? ”




 “ 공항에 내려서 약을 좀 잘못 먹었어. 노란 건 한 알만 먹어야 했는데. 집에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겠어. ”




 한동안 끊었던 진통제를 다시 먹은 것을 보니 오토바이에 들이받힌 게 아프긴 했던 모양이었다. 트로이는 욕조에 그를 밀어넣고 물을 틀었다. 온수는 나오지 않았지만 더운 여름이었기 때문에 미샤가 레닌그라드 수도국을 향해 퍼붓는 현란한 비난을 들을 수 없다는 게 좀 안타까웠다.




 “ 놔둬, 내가 씻을 수 있어. ”




 “ 뒤통수는 잘 안 지워질걸. 두피까지 빨갛게 물들었어. ”




 “ 적위군 맞네. ”




 트로이는 어린 시절 길에서 주운 흙투성이 강아지를 씻겼을 때와 비슷한 집중력을 발휘해 미샤를 씻겼다. 머리에서 붉은 물이 끝도 없이 줄줄 흘러내렸다. 뒷목과 팔꿈치, 손목 등 노출된 부위 외에도 생각지도 않았던 곳 여기저기에 페인트 얼룩이 스며들어 있었다. 심지어 눈썹과 속눈썹에서도 붉은 물이 흘러내렸다. 욕조는 금세 온통 새빨갛게 변했다. 눈에 들어간 비누 거품을 손등으로 문질러 닦아내며 미샤가 무심하게 혼잣말을 했다.



 “ 피 같아. 유라가 그랬지, 앞으로는 더운 물을 채워놓고 하라고. 잘 드는 칼을 고르라고 했지, 안 그러면 고생만 하고 병신처럼 깨어날 거라고. ”




 “ 너 지금 뭐라고 했어? ”




 “ 어, 근데 정말 보기 싫은걸. 욕조가 엄청 더러워. 왜 유라가 화냈는지 알 것 같아. ”





 
 트로이는 호스를 내려놓았다. 미샤의 어깨를 잡아 거칠게 자기 쪽으로 돌렸다. 왼쪽 어깨 때문에 미샤가 낮게 비명을 질렀다.



 “ 아파! ”




 “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마. 그런 생각 하지도 마. ”




 
 미샤가 그의 손에서 어깨를 빼내려고 잠깐 몸부림쳤다. 트로이가 놔주지 않자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 농담이야, 유라는 의사잖아. ”




 “ 농담이라도 안돼. 내 말 들어, 절대 그런 말 하지 마! 한번만 더 그런 얘길 하면 가만 두지 않을 거야! 기억도 하지 마. 생각조차 하지 마. ”




 “ 무슨 얘길 하는지 모르겠어, 안드레이. ”




 트로이는 미샤가 끝까지 잡아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미샤는 이고리가 얘기했다는 것도, 그가 아스케로프와의 대화를 엿들었다는 것도 모를 테니까. 분노와 공포가 뒤섞여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는 자신이 언젠가부터 미샤의 어깨를 거세게 잡아 흔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약속해, 무조건. 그런 짓 안 할 거라고. 상상도 안 할 거라고. ”




 “ 어... 약속할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약속할게. 안드레이, 제발 그만해. 멀미가 나려고 해. "



 미샤가 그의 팔에 코와 뺨을 비볐다. 심하게 놀랐는지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트로이는 흔드는 것을 멈췄지만 어깨를 놔주지는 않았다. 미샤가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 부르르 떨면서 속삭였다.




 “ 그만해, 안드레이... 네가 화내면 정말 무서워. ”




 “ 설마. 넌 사람들이 화낸다고 무서워한 적이 없어. ”




 “ 네가 화내는 건 무서워. 이제 그만해. 뭐든 약속할게. ”




 트로이는 미샤를 놔주었다. 욕조 전체가 새빨간 얼룩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는 몸서리를 치며 호스로 물을 끼얹었다. 미샤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스펀지로 박박 문지른 후 다시 물을 부었다. 마침내 더 이상 붉은 물이 흘러나오지 않게 되었을 때 그는 미샤에게 타월을 건네주었다. 미샤는 욕조에서 나오지도 않고 타일 벽에 바짝 기대선 채 머리와 몸을 오랫동안 닦았다. 젖어서 뒤엉킨 속눈썹 아래로 동그래진 눈을 치켜뜨면서 이따금 트로이를 쳐다보았다. 정말 겁에 질린 것 같았다. 까맣게 팽창된 눈동자 아래로 커다란 물방울들이 고여 뺨을 타고 목덜미로 툭툭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트로이는 잘못 본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젖은 머리에서 떨어지는 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문을 열고 나갔다. 옷장을 뒤져 미샤의 옷을 가지고 다시 욕실로 들어갔다. 미샤는 아직도 벽에 기댄 채 욕조 안에 서 있었다. 손등으로 눈과 뺨을 누르고 있었다. 이제 가장할 수 없을 만큼 끊임없이 물방울이 흘러 떨어지고 있었다. 꽉 깨문 입술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트로이는 여전히 그게 머리에서 떨어지는 물이라고 착각하기로 하며 옷을 내밀었다.



 “ 빨리 입고 나와, 찬물로 씻었잖아. ”




 미샤가 고개를 돌린 채 옷을 받아 입었다. 티셔츠 위로 다시 물방울이 떨어지며 둥글게 얼룩이 생기기 시작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트로이가 욕조로 들어가 그를 데리고 나왔다. 허리를 끌어당겨 안으며 머리를 쓸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타월로 닦아냈는지 물기가 별로 없었다.



 “ 미안해, 미셰츠카. ”




 “ 이제 화 안내? ”




 “ 화가 났던 게 아냐. 그냥 놀랐던 거야. 이제 그러지 않을게. ”




 “ 아니, 화났었지. 소리, 소리도 지르고. ”




 미샤가 몸을 떨었다. 얼굴과 셔츠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트로이는 그가 모르핀에 취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앞에서 그렇게 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 미안해.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그랬어. 내가 잘못 생각했어. ”




 “ 그래, 잘못 생각한 거야. 뭔지는 모르지만. ”




 
 그 와중에도 미샤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 고집스럽게 잡아뗐다. 트로이는 더 이상 그를 추궁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 애가 우는 순간만큼 불행하고 비참한 느낌이 드는 때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타일 벽에 머리를 들이받아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미샤를 데리고 침실로 갔다. 조금이라도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고 셔츠의 젖은 부위도 말려주었다. 그는 미샤가 의식적으로 손목 안쪽을 등 뒤로 감추는 것을 보았지만 모르는 척 했다. 그 애의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부어오르고 있는 것도 모르는 척 했다. 드라이어를 껐을 때 미샤가 침대에 누우면서 목쉰 음성으로 말했다.



 “ 책 읽어, 안드레이. ”




 “ 무슨 책? ”




 “ 아무 거나. 내가 잠드는 동안 책 읽고 있어. 논문이라도. ”




 “ 자고 일어났을 때 읽고 있는 게 좋다면서. ”




 “ 둘 다 같아. ”




 트로이가 지루한 이론서와 논문집을 가지고 와 침대에 앉자 미샤가 그의 무릎 위로 머리를 디밀었다. 졸음 때문인지 몸이 벌써 따스해지고 있었다. 하긴 언제나 쉽게 뜨거워지는 몸을 가진 애였다. 트로이는 별 말 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10여분 쯤 지났을 때 미샤가 무겁게 잠에 취한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우리 아버지도 그랬지. 자고 일어나면 책을 읽고 있었어. 뭐든 많이 읽었어. 어떨 때는 날 무릎에 뉘어 재우면서도 책을 읽었지. 자장가를 부르면서도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라웠어. 존경스러웠다고 해야 하나. ”




 “ 무슨 노래를 불러주셨는데? ”




 “ 소련 군가. 봉쇄 시절 전방에 계셨거든. ”




 “ 군인으로 키우고 싶으셨나보네. ”




 “ 글쎄, 한 번도 못 물어봤어. 내가 어떤 사람이 됐으면 좋겠느냐는 얘기, 한 번도. ”




 “ 넌 뭐가 되고 싶었는데? ”




 “ 우주 비행사. 가가린. 당연하잖아. ”




 그 말을 제대로 끝내기도 전에 미샤의 머리가 시트 위로 툭 떨어졌다. 눈이 가로로 긴 선을 그리며 감겨 있었다. 트로이는 한동안 그 자리에 앉아 계속해서 이론서와 논문집을 읽었다. 가끔 소련 군가 중 아는 노래가 있는지 기억해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생각나는 거라곤 피오네르 행진곡 뿐이었다. 그것도 후렴구 밖에 기억나지 않았다.




...









중간에 트로이가 '이고리가 얘기한 것'에 대해 떠올리는 장면이 있는데, 그 이야기는 전에 따로 발췌한 적이 있다. 아래 링크.


http://tveye.tistory.com/3825 표절에 대해, 춤추는 푸쉬킨에 대해 트로이와 이고리가 나눈 대화




맨 위 사진부터 오늘 포스팅에 올린 사진은 모두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청동기사상에서 예브게니의 광란 장면 추는 중. 촬영은 alex gouliaev.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
Posted by liontamer


 

 

오늘 발췌하는 글은 a4 3장 정도로 꽤 짧은 장면이다. 에피소드 전체가 아니라 일부이고 실질적인 사건이라기보다는 트로이와 미샤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이전에 이 장면 다음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따로 올렸던 적이 있다. 그 링크는 글 아래에 달아보겠다.

 

 

배경은 1976년 초. 소련 레닌그라드. 지금의 상트 페테르부르크. 트로이의 작은 아파트 안이다. 예전에 여러번 등장했던 볼쇼이 안무가 스타니슬라프 일린이 키로프 극장 게스트 안무가로 초빙된 직후이다. 일린은 문화국과 윗분들이 키로프로 밀어넣은 '모스크바' 안무가이므로 키로프 윗선에서는 당연히 그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사실 일린이 온 것은 미샤와 지나이다를 위한 작품을 안무하라는 미션을 받았기 때문인데 소설에서는 자세히 묘사하진 않았다. (..사실은 미샤를 모스크바로 낚아가려는 그쪽 윗분들과 볼쇼이 측의 밑밥깔기....)

 

 

하여튼 새로운 것에 목말라 있던 미샤는 일린과 그의 작품, 그가 무용수를 대하는 태도 등에 감명을 받는다. 그래서 같이 작업을 하게 되는데 그게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다.

 

 

미샤에게는 극장 내부 적들도 많은데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울리얀 세레브랴코프 라는 남자 무용수이다. 정통 소련 무용수, 고전적이면서도 늘씬하고 근육질이고 강건한 왕자님/혁명영웅 스타일의 미남자이다. 미샤보다는 10여년 이상 선배이고 공훈예술가인데 미샤가 입단했을 때부터 그를 눈엣가시처럼 미워해 많이 괴롭혔다. (저수지에도 빠뜨리고...) 열받은 지나가 그의 여자친구인 옥사나의 허리를 비틀어 쥐어짠 적도 있음.

 

 

발췌된 부분은, 일린이 새로 안무해주는 작품인 '백야' 연습을 하다가 트로이의 집에 들른 미샤가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

 

 

위의 화보는 아르춈 옵차렌코. 볼쇼이 무용수.

 

 

..

 

스탄카는 미샤가 일린을 부르는 애칭이다.

 

 

나타샤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소설의 여주인공이다. 여기서 일린이 안무하는 춤은 유명한 나타샤의 첫 무도회 장면이다.

 

 

고리키는 그 '막심 고리키'이다.

 

 

프로파간다 발레는 말 그대로 프로파간다 목적을 띤 발레이다. 소설도 그림도 발레도 연극도 영화도 이런 거 많았다. 소련 시절 유명한 발레들 중에도 많다.

 

 

...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미샤는 고개를 젖히며 어깨를 한쪽으로 돌렸다. 작년에 다쳤던 곳이 계속 아픈 것이 분명했다. 얼굴을 찡그리며 몇 차례 어깨를 돌리더니 손가락으로 아픈 부위를 꾹꾹 눌렀다. 트로이는 끓는 물을 채운 보온병을 스팀 타월로 둘둘 말아 그에게 건네주었다. 미샤는 티셔츠를 벗더니 어깨를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수증기 때문에 흰 살갗이 금세 빨갛게 달아올랐다.

 

 

 트로이는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 붉게 달아오른 어깨와 팔 위에 입을 맞추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 미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오늘 스탄카가 세레브랴코프를 자기 세션에 출입 금지시켰어. ”

 

 


 “ 무슨 세션? 백야에 그 작자도 나와? 그 나스첸카 첫사랑 역이야? ”

 

 “ 아니, 백야가 메인이긴 한데 45분 정도 밖에 안돼. 하루 공연 무대로는 모자라지. 짧은 거 두 개가 더 있어. 하나는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지. 그건 나타샤의 독무야. 나머지 하나는 고리키의 인생을 모자이크한 프로파간다 발레고. 어쨌든 당국의 비위를 맞춰주긴 해야 하니까 스탄카가 끼워넣은 거야. 오늘 그 두 개 오디션을 봤거든. 연차와 급수에 관계없이. ”

 

 “ 백야는 너와 지나이다로 정해진 거야? ”

 

 “ 응. 오디션 없이. ”

 

 “ 세레브랴코프는 왜? ”

 

 “ 그 고리키를 추고 싶어 했으니까. 그자는 스탄카를 싫어하지만 어쨌든 포노마레바가 밀어주고 있으니까 같이 작업하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했겠지. 게다가 고리키 역이라면 구미가 당겼을 거고. 얘기했잖아, 프로파간다 발레로 뜬 놈이라고. ”

 

 “ 그럼 일린에게 건방지게 굴 리가 없잖아. 왜 출입 금지당한 거야? ”

 

 “ 백야 때문에 나도 그 방에 같이 있었거든. 오디션 보러 온 세레브랴코프는 그것 때문에 꼭지가 돌았지. 난 이미 역을 받았으니까. 그 작자는 해석도 괜찮았고 춤도 꽤 잘 췄어. 아마 곱게 나갔으면 스탄카가 고리키를 줬을 거야. 근데 그 얼간이가 나가면서 내 쪽으로 왔지. ”

 

 “ 그리고? ”

 

 “ 백야 하나로는 성이 안 차느냐, 나타샤 역 때문에 온 것 같은데 굳이 오디션을 보지 않아도 역을 받을 거라고 비아냥댔지. 무도회 드레스를 입고 토슈즈를 신을 수 있을 테니 좋겠다고 하던데. 넌 그런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다고 했지만 그자는 아주 상상이 잘되는 모양이었어. ”

 

 

 미샤가 휘파람을 불었다. 별로 기분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 재수 없게 스탄카가 그 말을 들었거든. 그래서 정색을 하면서 세레브랴코프를 내쫓았어. 앞으로 자기 세션에는 발을 들여놓지 말라고 했지. 고리키는 레냐에게 줬고. ”

 

 “ 나타샤는? ”

 

 “ 니넬한테 줬어, 아마 넌 걜 모를 거야. 작년에 들어온 애라서. 설마 스탄카가 정말 그걸 나한테 줬을 거라고 생각했어? ”

 

 “ 추고 싶지는 않았어? ”

 

 “ 글쎄, 백야 하나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고 드레스는 더 싫지만. 솔직히 말하면 추고 싶긴 하지. 그 작품 모스크바에서 봤었거든, 아주 재미있는 역이야. 하지만 세레브랴코프는 그런 뜻으로 한 얘기가 아니었으니까. 스탄카가 아니었다면 난 그때 화를 내야 했을지도 몰라. 그래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

 

 “ 그럼 화가 나지 않았단 말야? 그렇게 비열하게 구는 놈한테? ”

 

 “ 좀 열받긴 했지. 근데 어차피 난 그놈을 볼 때마다 구역질이 나니까 크게 다를 것도 없었어. 내가 열받는 것과 대놓고 화를 내는 건 좀 다른 거야. 그런 상황에서 화를 내지 않으면 입장이 아주 이상해져. ”

 

 “ 일린이 끼어들지 않았다면 싸웠겠네. ”

 

 “ 한 대 갈겨야 했겠지. 포노마레바와 놀아나서 역을 따냈다는 것과 계집애 역을 추려고 안달이 났다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니까. ”

 

 

 타월로 싼 보온병을 어깨 위로 굴리면서 미샤가 바닥에 벗어놓았던 코트 주머니를 한 손으로 뒤져 담배를 꺼냈다.

 

 

 “ 끊었던 거 아냐? ”

 

 “ 어차피 세 개비 이상 피우지도 못하는데 끊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 알콜이랑 똑같아. ”

 

 “ 몸에서 안 받는 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해. 건강에 좋지 않을 테니까. 춤에도 방해가 될 거야. ”

 

 


 “ 춤 자체가 비정상적으로 몸을 학대하는 거야. 발끝으로 서고 근육을 비정상적으로 잡아 늘이고 뼈가 부러질 만큼 휘어대는 거라구. 그깟 술 몇 잔, 담배 몇 개비 따위 더한다고 달라질 게 뭐가 있어. ”

 

 


 “ 춤 때문에 머리가 아프거나 필름이 끊기지는 않잖아. ”

 

 


 “ 춤도 가끔 그래. ”

 

 

 

 미샤가 보온병을 내려놓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깊게 연기를 빨아들이며 눈을 감았다. 광대뼈 아래로 뺨이 살짝 패이며 콧대가 두드러지게 솟아올랐다. 트로이는 라이터와 보온병을 한쪽으로 밀어버렸다. 그의 곁으로 다가가 미간과 콧등에 입술을 가져갔다. 미샤는 잠시 호흡을 멈췄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연기를 훅 뿜어버렸다.

 

 

 “ 미안, 간접 흡연시켜서 ”

 

 


 “ 전혀 미안한 것 같지 않은 표정인데. ”

 

 


 “ 어차피 넌 나보다 열 배쯤 더 마시잖아. ”

 

 

 트로이는 그의 손에서 담배를 빼앗았다. 카펫에 구멍이 나든 말든 개의치 않고 한 모금 밖에 피우지 않은 담배를 비벼 꺼버렸다.

 

 

 

...

 

 

 

이 다음 이야기를 전에 발췌한 적이 있다. 사실은 바로 다음은 아니고... 위의 분위기대로... 트로이와 미샤의 19금 장면이 조금 있는데 그부분 지나간 후.... 세레브랴코프와의 언쟁이 생각보다 깊이 마음속에 남아 있었던 미샤가 평소에 잘 드러내지 않았던 속내를 토로하고 자신의 춤과 교조주의, 강령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이다. 그 링크는 아래 :

 

http://tveye.tistory.com/4720 : 교조주의, 강령으로서의 예술, 세 개의 메모 :

 

 

..

 

 

울리얀 세레브랴코프와 미샤의 악연에 대해서는 전에 몇번 발췌한 적이 있다. 사실 세레브랴코프 쪽에서 일방적으로 괴롭히는 편이긴 했다만... 하여튼 페름에서의 싸움과 저수지 사건에 대한 두가지 이야기 링크를 각각 아래. 하나는 트로이와의 대화, 나머지 하나는 미샤의 후원자인 드미트리 마로조프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었던 단편에서 가져왔다. 둘다 같은 페름 투어에서 일어났던 일인데 미샤는 트로이에게는 저수지 사건만 얘기하고 마로조프에게는 치고받고 싸운 얘기만 한다.

 

http://tveye.tistory.com/3594 미샤의 첫 번째 시즌, 돈키호테, 축구팀과 군대처럼

 

http://tveye.tistory.com/5469 미샤의 신입 시절, 싸움의 이유

 

 

맨날 당하는 미샤가 답답해서... 세레브랴코프의 여자친구이자 역시 미샤의 적인 옥사나가 패악을 부리자 발끈해 그녀를 혼내주는 정의의 여자사람 친구 지나이다의 이야기도 있었음. 그건 아래

 

http://tveye.tistory.com/6176 의리 넘치는 파트너 지나이다

 

 

...

 

 

 

중력을 무시하는 듯한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화보 한 장으로 마무리.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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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최근 다큐 필름 댄서 (the dancer)와 take me to church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꽤 유명해져서 그런지 내 블로그에도 세르게이 폴루닌으로 검색해서 들어오시는 분들이 자주 있다.

 

그런데 좀 미안하게도 사실 내 dance 폴더는 거의가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화보들로 채워져 있는데다 폴루닌 사진은 몇장 없고, 그나마도 올릴 때마다 '멋있긴 한데 뭔가 화보용이나 연예인 같고 poser에 무용수 자체로서는 그렇게까진 내 취향 아님'이란 말을 써놔서 ㅠㅠ (사실 내가 폴루닌 사진들이나 영상을 이따금 모은 것은 이 사람의 외모가 어딘가 내가 옛날에 좋아했던 파루흐 루지마토프를 연상시켜서...)

 

하여튼 그래서 속죄(ㅎㅎ)하는 마음으로 세르게이 폴루닌의 최근 멋진 화보 몇 장. 러시아 페테르부르크 잡지인 사바까.루(sobaka.ru에서 인터뷰와 함께 찍은 패션화보이다.

 

 

 

 

광대뼈에 써놓은 글자는 러시아어로 '평화'와 '세계'를 동시에 의미하는 '미르'

 

 

 

 

 

 

 

 

하지만 결국 여기는 슈클랴로프 사랑으로 가득찬 곳이므로 기승전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

 

백스테이지, 무대 등에서 찍힌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몇 장. 

 

 

 

 

이건 아내인 마리야 쉬린키나와 함께 해적 2인무 갈라 추는 중

 

 

 

 

멋있는 알리 :)

 

하지만 아무리 봐도 무대 위의 이 사람은 알리보다는 솔로르가 더 잘 어울린다. 알리도 어울리긴 한다만 알리는 연기할 게 별로 없어서 그런지 솔로르가 훨씬 몸에 잘 맞는 느낌이다.

 

 

 

 

청동기사상. 사진은 alex gouliev

 

이 무대 정말 좋았다. 작년 여름에 이 사람이 추는 이 무대 보고 눈물 쏟음 ㅠㅠ

 

 

 

 

청동기사상 한컷 더. 사진은 역시 alex gouliev

 

 

 

기승전 슈클랴로프로 끝내려 했으나 좀 찔려서... 마지막은 아르춈 옵차렌코 사진 한장. 볼쇼이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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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7. 4. 23. 09:39

일요일 아침 출근하면서 tasty and happy2017. 4. 23. 09:39




9시에 나오긴 했는데 잠 설쳐서 너무 졸리고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야 일을 하므로 스타벅스 들러 진하게 우린 차와 빵과 과일 먹고 있음. 얼른 먹고 사무실 가야지..


아흑 침대로 도로 들어가고파...


..


마음의 위안을 위해 귀여움과 멋짐 하나씩.





귀여움 1!!!






멋짐 1!!!

내가 귀여워라 하는 마린스키 무용수 알렉세이 티모페예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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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7. 3. 5. 20:01

모스크바에 있는 것들, 오직 불길 about writing2017. 3. 5. 20:01






아래 글은 체포된 후 약물 고문으로 피폐해진 미샤가 수용소 클리닉에서 절친한 사이인 스타니슬라프 일린과 면회하는 장면 중 하나이다. 예전에 이 소설 일부들을 여러번 발췌해 올렸었다. 소설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미샤와 일린의 면회는 마지막 3부의 이야기이다.



이것은 모스크바 토박이이자 그 도시의 대표 극장인 볼쇼이 극장에서 무용수 노릇을 하다 안무가가 된 일린과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 페테르부르크) 토박이이며 역시 그곳 대표 극장인 키로프(지금의 마린스키)의 간판 무용수였던 미샤의 대화이기도 하다.



벨스키와 게르만 스비제르스키는 모두 미샤를 후원하던 공산당 고위 간부이다. 전자는 미샤를 수용소에서 빼내 가브릴로프로 보내는 인물이고 후자는 오랫동안 미샤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온 인물이다.



..




미샤와 일린의 대화에서 언급되는 볼쇼이, 트레치야코프, 므하트, 아르바트는 모두 모스크바의 명소들이다. 볼쇼이는 다들 아는 그 볼쇼이 극장, 트레치야코프는 미술관 이름이고(여기에 브루벨의 백조공주가 있다) 므하트는 모스크바 예술극장(Московский Художественный Академический Театр)의 약자이다. 유명한 스타니슬라프스키가 창립한 극장이다. 아르바트는 모스크바에서 가장 유명한 젊음의 거리이다.







..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그는 병을 집어 남은 물을 한 모금 마셨지만 전부 삼키지는 못했다. 바닥에 반쯤 뱉어버렸다. 에어컨을 꺼 주자 한기가 덜한 듯 목과 어깨에 둘렀던 스카프를 풀었다. 아니면 더워서 그랬던 건지도 몰랐다. 열 때문에 추웠다 더웠다 하는 것 같았다. 눈의 광채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 몇 초 사이에 안색이 급격하게 나빠졌기 때문에 나는 소파로 가서 그 애의 머리와 어깨를 가볍게 감싸 안았다. 
 


 “ 여기 의사들도 알아? ”


 
 “ 뭘? ”


 
 “ 아무 약이나 주면 안 되는 거. ”
 


 “ 아는 것 같아. ”


 
 “ 다 말해. 그 올가란 여자에게. 아픈 데 있으면 전부. 약 먹고 조금이라도 이상한 데 있으면 무조건 얘기하고. 고집 부리지 마. 벨스키에게 들었어, 회복돼야 내보내준다고 했어. ”
 


 “ 친절한 분이시군, 조건을 하나만 걸어놓으신 것처럼 얘기하시다니. ”
 


 “ 가브릴로프 얘기도 들었어. ”
 


 “ 아. 그건 조건이 아니고 벨스키가 결정해놓은 거야. 그 사람은 가을부터 극장이 제대로 돌아가기를 바라지. 벌써 내년 행사 미션까지 줬어. 거기 가 봤어? ”
 


“  아니. 전에 이그나트가 가봤다고 했어. 좋았다고 했어, 한적하고 공기도 좋고. 온천도 있을지도 몰라. 회복하기엔 좋을 거야. 좀 쉰다고 생각해. 곧 돌아올 수 있을 거야. ”
 


 “ 어디로? ”


 
 “ 글쎄. 모스크바는 아직도 싫어? ”


 
 “ 거긴 충분히 있었어. ”


 
 “ 겨우 일 년 있었으면서. 모스크바도 좋은데. ”


 
 “ 그건 네가 거기서 태어났으니까 그렇지. ”


 
 “ 그럼 넌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나서 거길 좋아하는 거야? 정말 간단한 이유네. ”


 
 “ 그럴지도. ”


 


 미샤의 창백한 얼굴에 잠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대답하지 않아도 알았다. 그 고집쟁이, 언제나 한결같고 견고한 마음을 가진 그 애가 사랑하는 도시, 돌아가고 싶은 유일한 도시가 거기 있다는 것을. 그 애를 파리에 남지 못하게 했던 유일한 이유. 물과 돌의 도시, 아무런 지지대도 없이 안개를 딛고 세워진 도시, 네바 강과 발트 해, 그림자와 습기 사이에서 부유하는 도시, 환영으로 축조된 도시.


 
 그 애가 레닌그라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건 우리 둘 다 잘 알고 있었다. 벨스키가 어떤 식으로 반대파들을 요리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높은 분들에게는 그들만의 방식이 있을 테니까. 그는 미샤의 건강이 회복되는 대로 수용소에서 풀려날 거라고, 하지만 재판 결과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으므로 레닌그라드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에 한동안 연금될 거라고 말했다. 그건 추방 조치나 다름없었다. 그가 미샤를 구해준 것은 맞다, 아마 다른 의원들 몇몇이 힘을 실어줬을 것이다. 그 애의 오래된 후원자들.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의 권력자들. 
 


 그러나 아무리 벨스키와 스비제르스키, 그 외의 많은 의원들이 미샤를 강력하게 후원했다 해도 해외에서 그토록 격렬한 시위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 애를 구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권력자들에게 있어 일개 예술가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하잘것없는 대상일 뿐.
 


 미샤가 옳았다. 장식품, 애완견, 샴페인, 캐비아. 사실 그런 문제에 있어서 미샤는 언제나 옳았다. 그 애가 게르만 스비제르스키를 몸서리치게 싫어하고 증오했던 것처럼.
 




 벨스키의 전화를 받고 이곳으로 오는 동안 내 마음 속을 꽉 채웠던 것은 미샤의 상태에 대한 걱정도, 그 애의 불투명한 앞날에 대한 두려움도 아니었다. 어이없게도 그건 게르만 스비제르스키에 대한 분노였다. 스비제르스키는 그 애가 체포되어 그 불공정하고 더러운 재판을 받도록, 가혹하게 과장된 죄목들을 뒤집어쓰도록, 그 끔찍한 정신병자 수용소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자가 정말 원하기만 했다면 애초부터 그런 재판을 받지 않도록 손을 썼을 수도 있었다. 어쨌든 그자는 아직도 KGB와 사법부 쪽으로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높으신 분, 정치국 위원, 무소불위의 권력자 의원께서는 고개를 돌렸고 그럼으로써 그놈들이 마음 놓고 더러운 짓을 할 수 있도록 묵인해 주었을 뿐이었다. 그자의 묵인이 없었다면 그 애에게 그 정도로 심한 판결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벨스키도, 다른 의원들과 간부들도, 아니, 그 애의 모든 동료들, 심지어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비겁하게 행동했다. 모두가 등을 돌렸고 손을 씻었다. 우리는 뒤늦게 일어났을 뿐이었다. 벨스키가 그 애를 위해 노력한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파리 시위가 없었다면, 그 사진이 공개되지 않았다면, 해외에서 그토록 지속적이고 격렬한 소요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 역시 계속해서 침묵했을 것이다. 우리 모두 비겁자들이었다. 그러나 게르만 스비제르스키는 사악하고 더러운 인간, 모든 비겁자들보다 더 지저분하고 더 비열한 인간이었다.




 
 한때 나는 그자가 그토록 오랫동안 미샤를 놔주지 않는 것은 어쩌면 그 애를 깊이 사랑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달랜 적이 있었다. 그 잔혹하고 더러운 학살자 역시 인간이며 내부에는 부드러운 심장이 뛰고 있어서 비밀스러운 애정을 품을 수도 있을 거라고.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심기가 불편하고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미샤는 단 한 번도 내 앞에서 스비제르스키와의 관계에 대한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안다는 것은 눈치 채고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그 자존심 강한 애는 충분히 고통스러워했다. 나는 그 애가 스비제르스키의 호출에서 돌아온 직후 모스크바 강을 따라 뛰고 또 뛰는 것을 보았고 창가에 선 채 꼼짝도 하지 않고 말 한 마디 없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을, 가끔은 거울을 주먹으로 치고 또 쳐서 유리 파편이 박히고 피를 흘리는 것을, 또 언젠가는 욕조에 들어가 몇 시간이고 나오지 않는 것을 보았다. 그럴 때면 그 애는 누구와도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춤조차 추고 싶어 하지 않았다.
 




 두 번, 나는 그 애를 죽음의 문턱에서 끌어내 몰래 병원으로 데려갔다. 지난 5년 동안 두 번. 한 번은 페이퍼 나이프를 썼고 다른 한 번은 스카프를 썼다. 그 애가 전에도 그런 적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아마도 여러 번. 그게 스비제르스키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 더러운 이름이 그 애를 떠밀고 계속해서 길을 잃게 만드는 어둠 속에 존재하는 괴물 중 하나라는 건 알았다. 그자들이 계속해서 그런 짓을 했다. 재판과 판결, 수용소와 고문이 있기 전부터 당과 국가와 체제, 영광과 명예와 의무, 복종이라는 이름으로 그 애의 심신을 산란하게 하고 고통을 가하고 자꾸만 넘어지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건 견딜 수 있을만한 압력, 그저 눈을 돌리고 넘어갈 수 있을만한 더러움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나라면 그랬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미샤는 그만큼 무심하고 평온한 심장을 가진 애가 아니었다. 그 침착하고 서늘한 태도, 흐트러지지 않는 또렷한 눈빛 너머로는 오직 불길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불을, 그 뜨겁고 격렬하게 타오르는 불을 단숨에 꺼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나는 공포에 떨었다.



 
 아마 게르만 스비제르스키도 거기 있었을 것이다. 그 애를 넘어지게 하고 마침내 불을 꺼버리는 그 끔찍한 행렬 맨 앞에 있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자기 것으로 삼고 착취하고 더러운 짓을 하면서. 그런데도 그자는 모른 척했다. 그 애를 자기 수하의 사냥개들에게 그대로 던져주었을 뿐이었다. 어쩌면 이번 기회에 버릇을 고쳐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그 음습했던 욕망이 마침내 꺼져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건 비열한 짓이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혹은 그런 낭만적인 가장조차 없이 누군가를 지배하고 끊임없는 고통을 가하고 마침내 파괴하고 쓰레기처럼 내버리는 행위보다 더 사악하고 더러운 짓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래서 내가 그자를 그토록 증오하게 된 것인지도 몰랐다. 미샤를 고발하고 억지 혐의를 씌워 수용소로 보낸 자들보다도, 그 애를 고문하고 거의 죽일 뻔 하고 이런 상태로 만들어놓은 자들보다도 더 증오했다.
 



 
 미샤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지? 모스크바 싫다고 해서 그래? ”

 
“ 모스크바도 좀 좋아해줘. 안 그러면 섭섭할 거야. ”

 
“ 좋아할 이유를 좀 대봐. ”


 
“ 볼쇼이. ”


 
“ 그리고? ”


 
“ 트레치야코프. ”


 
“ 이제 므하트라고 할 거지? ”

 
“ 안 통하는군. 그럼 아르바트. ”


 
“ 그 동네 요즘 재미없어졌어. ”

 
“ 나. ”

 
“ 넌 안 떠날 거야? 끝까지 모스크바에 남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

 
“ 그래. ”

 
“ 그럼 모스크바도 나쁘지 않아. ”



미샤가 결론을 내리듯 말했다. 그리고는 내게 기댔던 몸을 떼었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








맨 위의 사진은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그리고 이 사진은 네바 강과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를 배경으로 찍은 페테르부르크 사진. 당시의 레닌그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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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품, 애완견, 샴페인, 캐비아'라는 표현은 앞부분에서 일린이 미샤와의 대화를 회상할때 나온 것이다. 전에 이 부분에 대해 올린 적이 있다. 링크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4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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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에피소드의 뒷부분 일부는 예전에 이미 올린 적이 있다. '견딜 수 있을만한 압력, 넘어갈 수 있을만한 더러움'에 대한 문단이다. 이 소설을 쓰는 내내 나는 두어가지 주제에 사로잡혀 있었다. 쓰는 순간만 하더라도 저 부분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았다. 적어도 의식적으로는 그랬다. 하지만 다 쓰고 난 후, 그리고 그 이후 여러가지 일을 겪으면서 내내 나는 저 부분을 떠올렸다.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저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전에 저 부분에 대해 했던 얘기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4341, http://tveye.tistory.com/2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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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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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간만에 등장하신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이번주에 오랜만에 마린스키 가서 청동기사상의 예브게니를 춘다. 그리고 3월 중순엔 런던의 발레 뤼스 기념공연에서 무려 페트루슈카의 모놀로그를 춘다! 새로운 안무인 모양이다.


아아... 그 페트루슈카의 모놀로그에 대해선 나도 몇년 전에 본편에서 썼는데 ㅠㅠ 그때 나는 등장하는 안무가로 하여금 페트루슈카를 재안무해 주인공에게 추게 만들었는데(심지어 그때 본편의 미샤 역시 런던의 어떤 페스티벌에서 이 춤을 췄다) 이번에 슈클랴로프가 딱 그런 식으로 런던에서 춘다니 신기하다.

(* 그 페트루슈카 관련 에피소드 일부를 발췌해 올렸던 적도 있다. 여기 : http://tveye.tistory.com/5178)



이것이 바로 현실과 허구가 만나는 지점인 것 같다. 사실 페트루슈카의 재해석이라면 안무가나 남성 무용수들이 욕심낼 수밖에 없는 캐릭터가 아닌가...



위의 사진은 물론 페트루슈카는 아니고, 발레 101 추는 슈클랴로프 사진 + 내가 그린 스케치 :) 이 사람 무대는 작년에 마린스키에서 청동기사상과 지젤 본 게 마지막이었는데... 바이에른으로 가버린 후에는 이 사람 무대를 보지 못했다. 언제 다시 보게 될지 잘 모르겠다... 부디 페트루슈카 모놀로그는 영상으로라도 올라왔으면 좋겠다. 최근 이 사람이 공식 홈페이지를 오픈했는데 거기 공연 일정이 좀 나와 있으니 휴가 때 참고를 해보고 싶다만... 내 맘대로 되지야 않겠지 ㅜ



** 이전에 마린스키에서 포킨 오리지널 안무의 페트루슈카 보고 남긴 짧은 메모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3686, http://tveye.tistory.com/3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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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7. 1. 28. 23:14

생일 축하해요 미하일! dance2017. 1. 28. 23:14

 

 

 

바쁘고 정신없어서 알면서도 하루 놓쳤다만... (그러고 보니 작년에도 하루 늦었음 ㅠㅠ 이맘땐 항상 바빠서) 1월 27일은 유일무이한 무용수인 미하일 바리쉬니코프의 생일이었다. 어제로 그는 69살이 되었다.

 

나로 하여금 러시아어 전공하게 만든 두 사람 중 하나. 여전히 당신을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여전히 근사하고 멋지고 당당한 분, 소련과 이데올로기로 묶어둘수 없었던 자유로운 예술가. 단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무용수'!! 당신 무대를 꼭 보고 싶어요.

 

생일 축하해요, 미샤!!

(내 글의 주인공 이름은 당신 이름에도 살짝 기대고 있죠. 그 동네에서 제일 흔한 이름이긴 하지만)

 

 

 

 

 

 

 

아주 오래전. 레닌그라드. 바가노바 아카데미 시절. 연습 중인 소년 미하일 바리쉬니코프.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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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최근 뮌헨 바이에른 극장에서 존 크랑코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데뷔한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와 마리야 쉬린키나. 슈클랴로프야 마린스키의 라브로프스키 로미오로는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인물이지만 존 크랑코 버전은 처음 추는 거였다. 나도 그가 춘 존 크랑코 버전 로미오를 너무나도 보고프다...

 

무대와 백스테이지 화보들 몇장. 사진은 모두 alex gouliae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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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전에 미샤와 트로이, 그들의 친구들이 여름에 여럿이 모여 기차를 타고 흑해에 놀러가는 장면을 발췌한 적이 있다. 그 이야기에서 그들은 기차 안에서 왁자지껄 떠들고 술을 마신다. (http://tveye.tistory.com/4671)

 

흑해로 놀러간 이 친구들은 이 장편의 도입부에서부터 함께 등장하는데, 모두들 비밀 문학 서클의 일원이다. 이 서클은 트로이와 그의 절친 알리사, 그리고 두어명이 주도하여 만든 것으로 금지된 외국 문학을 번역해 돌려 읽거나 반체제 작가, 지하출판물 등을 읽는 모임인데 주로 레닌그라드 국립대학교와 여타 다른 대학들의 외국어 전공 학생, 문학 전공자 등이 참여하고 있다. 미샤는 지인의 소개로 이 서클에 들렀다가 트로이와 친해지게 되었다.

 

그중 소설에 꾸준히 등장하는 인물들은 트로이와 친한 친구들로 료카와 갈랴(둘은 부부이다. 주로 둘의 집에서 모임이 개최된다), 이고리(영화학교 출신. 렌필름 촬영기사), 코스챠, 스베타(미샤를 처음에 데리고 온 친구), 타냐(발레 애호가) 등이다. 그리고 미샤의 팬이라서 억지로 서클에 끼어든 레나라는 소녀가 있다. 이 친구들이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은 전에 몇번 발췌한 적이 있다. 다같이 썰매타러 가서 논다든지, 표절작가 쥬진스키에게 이고리가 시비를 걸어 싸우는 이야기라든지, 갈랴와 료카의 어린 딸이 메밀죽 먹기 싫다고 트로이에게 떠넘긴다든지...

 

여기 올리는 이야기는 전에 올렸던 흑해 가는 기차 이야기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에피소드이다. 이야기의 주역은 미샤를 짝사랑하던 소녀 레나와, 물론, 주인공인 미샤이다. 그리고 다른 여인이 하나 더 있다. 그건 이야기 속에서.

 

 

시간적 배경은 1973년 여름. 미샤는 발레학교를 막 졸업하고 키로프 발레단에 입단해 데뷔를 앞둔 시점이다. 친구들과 함께 잠깐 흑해에 헤엄치러 놀러 갔을 때이다. 흑해는 예로부터 러시아 최고의 여름 휴양지였다.

 

 

** 위의 사진은 흑해가 아니고 페테르부르크(옛 레닌그라드)의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강변 풍경이다. 작년 여름에 내가 찍은 것이다. 흑해는 안 가봐서 ㅠㅠ

 

 

** 이 에피소드는 아주 약간 15금 정도의 묘사가 있는데 그나마 그것도 여기 올리면서 내가 자체검열로 좀 수정했음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그들은 알리사 아버지의 인맥으로 해변 근처의 방 세 개 달린 아파트를 싸게 빌렸다. 임신한지 얼마 안 된 갈랴와 료카 부부에게 방을 하나 주고 나머지는 기차를 타고 왔을 때처럼 남녀로 나눴다. 날씨는 아주 좋았고 해변은 사람들로 붐볐지만 그래도 수영을 하고 노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매일매일이 레닌그라드에서는 백야의 여름 중 운 좋은 며칠 동안만 누릴 수 있는 찬란하고 뜨거운 날씨였다.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다들 실컷 헤엄을 치고 일광욕을 했다. 알리사는 약한 피부를 보호하려고 어마어마한 양의 수입산 선크림을 발랐지만 별 소용이 없어서 사흘 째 되는 날 코끝이 홀딱 벗겨지고 어깨와 팔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물집이 잡히고 말았다. 갈랴가 속상해 하는 알리사를 욕실로 데려가 얼음으로 마사지를 해주고 시장에서 구한 연고를 발라주었다. 미샤는 알리사만큼 피부가 흰 편이었지만 선크림 덕분인지 타고 난 것인지 조금 그을렸을 뿐 아무리 햇볕을 쬐고 다녀도 전혀 화상으로 고생하지 않아 여자들의 부러움을 샀다.

 

 

 긴 금발의 인형 같은 레나는 해변에서 인기가 좋았다. 또래 소년들부터 2~30대 남자들까지 다채로운 유혹이 쏟아졌다. 레나는 밀려드는 데이트 신청을 도도하게 거절하기도 하고 가끔은 보란 듯이 잘생긴 남자를 골라 팔짱을 끼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한번은 적어도 서른 살은 된 것 같은 콧수염 기른 남자의 추근거림을 받아들여 바에서 시끄러운 재즈 음악에 맞춰 춤까지 췄다.

 

 

 그 바에는 트로이 일행도 모두 와 있었다. 물론 미샤도 있었다. 레나가 왜 그러는지는 뻔했고 타냐와 갈랴는 애가 타서 미샤를 들들 볶았다. 네가 리드를 하지 않으니 레나가 저런 사기꾼 같은 남자와 춤을 추고 있지 않느냐, 분명 유부남일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레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  등등 수다스러운 어미새 두 마리처럼 떠들어댔다. 트로이는 그들의 입을 막고 싶었지만 그보다 먼저 미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좀처럼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는 적이 없는 애였지만 몹시 귀찮았는지 입술이 가느다랗고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일행은 미샤가 콧수염 기른 남자로부터 레나를 데리고 나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곧장 연주자들 곁에 앉아 있던 거구의 여자에게 가서 춤을 청했다. 여자는 짙은 화장에 유행이 지난 얼룩덜룩하고 폭이 넓은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아무리 적어도 마흔 살은 넘어 보였다.

 

 

 친구들이 어이가 없어 입을 딱 벌리고 있는 동안 미샤는 그 여자와 시끄러운 재즈 연주에 맞춰 키로프 무대에서는 결코 볼 일이 없을 춤을 췄다. 알고 보니 여자는 연주자들의 매니저였고 몇 년 전까지 바와 클럽을 전전하며 춤을 췄던 경력이 있었다. 자신들의 매니저가 오랜만에 젊은 파트너를 만나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연주자들은 신이 나서 모든 박자를 무시하고 씽씽 달리는 즉흥 연주를 시작했다. 그건 더 이상 재즈가 아니라 소러시아 민요와 고파크와 소련 군가를 합쳐놓은 듯한 미친 소음으로 변했고 홀은 귀를 찢는 음악과 마루를 걷어차는 발소리와 박수와 휘파람과 고함 소리로 광란과 혼돈의 도가니에 빠졌다. 미샤는 90킬로는 너끈히 나갈 것 같은 거구의 여자를 발레리나 파트너를 다루듯 가볍게 빙글빙글 돌렸고 서너 차례는 공중으로 띄웠다. 감탄과 비명, 환호와 갈채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짙은 화장으로 얼굴 윤곽을 제대로 알아보기도 힘든 여자는 연신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고 소리를 지르며 미샤의 리드에 맞춰 미친 듯이 춤을 췄다.

 

 

 한참 춤이 격렬해졌을 때 여자의 구두 한 짝이 벗겨져 트로이가 앉아 있는 의자 앞까지 날아왔다. 갈랴가 얼굴이 창백해져서 트로이의 어깨를 두들겼다.

 

 

 “ 그만, 그만하라고 해. 빨리 데리고 나와. ”

 

 

 트로이는 갈랴가 레나에 대해 얘기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레나는 이미 테이블에 돌아와 있었고 타냐의 팔에 안긴 채 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 광란의 춤을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콧수염 기른 남자는 어디론가 쫓아버린 후였다.

 

 

 “ 왜? 잘 추고 있는데. ”

 

 “ 잘 추고 있다니, 어떻게 그런 소릴 해. 어디서 굴러먹었는지도 모르는 저런 늙은 여자랑... 레나 때문에 저러는 거잖아. 이제 됐으니까 빨리 끌고 나와. ”

 

 “ 레나 때문이라니, 쟤는 그냥 춤을 추는 거야. 가만히 놔둬. ”

 

 

 트로이는 미샤를 끌고 나올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취해 있었고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그는 광녀처럼 웃고 소리치며 홀에서 춤추고 있는 그 거구의 여인이 되고 싶었다. 저 여자는 자기 손목을 낚아채 회오리처럼 빙빙 돌리고 허공으로 밀어붙이는 저 낯선 상대가 누구인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맞고 있다는 걸 알기나 할까? 그런 춤의 상대가 될 수 있다면 알량한 연주단 매니저 따위, 공동아파트의 방 몇 칸 따위, 배급표 따윈 헌신짝처럼 내팽개쳐도 아깝지 않다는 걸 알고 있을까?

 

 

 알리사가 트로이의 뺨을 가볍게 찰싹 때리고 물을 한 잔 주었다.

 

 

 “ 너 완전히 취했어. 물 좀 마셔. ”

 

 

 트로이는 컵을 제대로 잡지 못해 바닥에 떨어뜨렸다. 유리컵이 소리를 내며 깨졌지만 이미 다른 테이블 손님들 몇몇도 취해서 술잔을 내던져 깨며 흥분해 노래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눈에 띄지도 않았다.

 

 

 거구의 여자가 차오르는 숨을 견디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미샤는 여자가 자빠지지 않도록 재빨리 한 팔로 그녀의 허리를 받치더니 공주님을 모시듯 피아노 옆 의자로 데려갔다. 연주자들이 색소폰으로 흐느끼는 듯한 신파 멜로디를 연주하는 동안 그는 여자를 의자에 앉히고 두툼한 손등에 열성적으로 키스를 했다. 휘파람과 박수와 고함 소리가 더 커졌다. 화장이 다 녹아내려 얼굴이 온통 시커멓고 새빨갛게 얼룩진 여자가 미샤를 껴안고 입술이 달아날 정도로 세게 키스를 퍼부었다. 트로이는 여자가 그 자리에서 미샤의 무릎에 올라앉아 치마를 걷어 올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정신이 혼미했다. 그가 알리사가 준 물을 마셨었나? 아니, 컵을 떨어뜨려 깨버렸지.

 

 

 여자가 미샤를 놔주었다. 그녀는 욕정으로 몸을 떨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황홀하게, 믿을 수 없을 만큼 행복에 겨워서. 트로이는 여자가 미샤를 다시 한 번 끌어당겨 안았을 때 귓가에 하염없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 착하기도 해라... 고마워. 정말 고마워. ”

 

 

 미샤가 녹초가 된 여자에게 정중한 인사를 하고 홀에서 걸어 나왔다. 테이블 쪽으로는 오지도 않고 곧장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레나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

 

 

 

 트로이는 그 날 어떻게 숙소로 돌아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아마 친구들이 그를 부축해 데려온 것 같았다. 그렇게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취했던 것이다.

 

 

 그는 너무 목이 말라서 새벽에 깨어났다. 트윈 침대 위에 코스챠와 료카가 신발도 벗지 않고 엎드려 자고 있었다. 카펫 위에는 담요로 몸을 둘둘 만 이고리가 누워 코를 골고 있었다. 자신은 소파 위에 누운 채 바닥에 다리를 반쯤 늘어뜨리고 있었다. 아마 그가 너무 커서 침대에 눕히기에는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미샤는 없었다.

 

 

 그는 물을 마시러 어두컴컴한 부엌으로 나갔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두통약이라도 한 알 삼키고 싶었지만 그러려면 갈랴를 깨워야 했다. 포기하고 테이블 위에 있는 주스 팩을 뜯어서 단숨에 마시고 나자 갈증과 두통이 조금 가시는 것 같았다. 화장실에 가려고 거실 쪽으로 나왔다가 그는 반쯤 열려 있는 안쪽 방문 사이로 울음 섞인 목소리가 새어나오는 것을 들었다. 갈랴와 료카의 방이었다. 혹시 임신 초기의 갈랴에게 어딘가 이상이 생긴 건 아닐까? 그러고 보니 그녀는 바에서도 안색이 좋지 않았었다. 걱정이 된 트로이는 문가로 다가갔다. 막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찰나 그는 료카가 자기들 방에서 자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료카는 갈랴와 함께 있지 않은 거지?

 

 

 그는 문 뒤에 멈춰 섰다. 갈랴가 아니었다. 울고 있는 건 레나였다. 작은 침실 한가운데, 카펫도 깔려 있지 않은 마루 위에 서서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커튼이 없는 방이었기 때문에 창문으로 달빛이 쏟아져 들어와 램프를 켜놓은 듯 환했다. 침대 곁 의자에 미샤가 앉아 있었다.

 

 

 그는 자신이 너무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갈랴는 아픈 것이 아니었다. 료카와 짜고 방을 내준 것이다. 레나와 미샤를 위해.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그는 빨리 몸을 돌려 방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발이 딱 붙어 버린 것처럼 꼼짝달싹도 할 수가 없었다. 어둠 속에 가려진 채 열린 문 너머로 멍하게 침실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레나는 하얀색의 짧은 원피스 잠옷을 입고 긴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린 채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이따금 밀려나오는 울음 때문에 어깨가 들썩거렸다. 하지만 트로이는 레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의 시선은 미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미샤는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머리는 엉망으로 뒤엉켜 검은색으로 물들인 월계관이라도 씌워놓은 것 같았다. 바에서 입고 있던 옷차림 그대로였다.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얼굴과 목은 시커멓게 번진 마스카라와 붉은 립스틱 자국으로 온통 얼룩져 있었다. 바에서 춤췄던 여자가 남겨놓은 흔적이었다. 그 얼굴을 닦지도 않고 어디를 쏘다니다 들어왔는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구겨진 얇은 셔츠 소매는 어깨 바로 아래까지 걷어 올리고 있었다.

 

 

 레나는 그를 나무라고 있었다. 화를 내다가 울다가 또 낮게 웃기도 했다. 트로이는 레나가 그렇게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었다. 그렇게 달빛 아래 하얀 잠옷을 입고 조그맣게 속삭이고 있으면 인어처럼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도. 그 침실 마루 위에서 달빛을 받으며 서 있는 작은 소녀는 너무나 매혹적이어서 빨간 머리와 에메랄드 눈동자의 지나이다 세도바조차도 아무런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얇은 잠옷 사이로 날씬한 몸매의 윤곽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미샤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레나에게 뭐라고 한두 마디 했지만 언제나처럼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였기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레나가 고개를 저으며 달려가 미샤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한 팔을 허리에 두르며 몸을 밀착시켰다. 다른 손을 들어 미샤의 지저분한 얼굴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어쩌면 화장품 얼룩을 닦아주려고 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미샤가 얼굴을 옆으로 돌리자 레나는 어깨를 세차게 튀기더니 반쯤 뛰어오르듯 발끝으로 서서 그의 턱을 감싸 쥐고 입술에 키스를 했다. 절망적이고 서툰 키스였다. 레나는 키스를 해 본 적이 별로 없는 애였다. 하지만 미인이었고 인어였다. 미샤는 레나를 떠밀지 않고 입맞춤을 받아주었다. 트로이는 그 애가 여자를 품에 안고 제대로 된 키스를 하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로미오가 아니었다. 무대 위의 순진해빠진 소년은 절대로 그런 키스를 할 수 없었다.

 

 

 입술을 뗀 후 미샤는 레나의 포옹을 풀지도 않고 그녀의 귓가에 조용히 뭐라고 속삭였다. 레나가 몸을 떨었다. 그녀는 팔을 풀고 미샤에게서 두 발짝 물러났다. 날카롭게 숨을 몰아쉬더니 발을 한번 굴렀다. 그리고 긴 머리채를 두 손으로 흐트러뜨리며 격하게 외쳤다.

 

 

 “ 나도, 나도 다른 애들 못지않게 해줄 수 있어! 나하고 사귀어 달라는 것도 아냐. 그래달라는 게 아니라구! ”

 

 

 레나가 숨을 쌕쌕거리면서 팔을 들어 올려 잠옷을 벗었다. 하지만 단추가 머리에 걸려 잘 벗겨지지 않았다. 흐느껴 울면서 레나는 머리에 걸린 잠옷 단추를 거칠게 잡아 뜯었고 술 취한 여자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옷을 벗어 내팽개쳤다. 달빛 때문에 작고 날씬한 레나가 은백색 조각상처럼 반짝거렸다. 트로이는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레나가 조그만 체구치고는 몸매가 좋다고 생각했다.

 

 

 레나는 다급한 나머지 부끄러움도 잊어버렸다. 그녀는 발레리나라도 된 양 두 팔을 앞으로 길게 뻗으며 미샤에게 다가가 목을 감고 매달렸다. 어깨와 가슴을 미샤의 셔츠 앞자락에 문지르며 귀 아래와 목덜미에 뜨겁게 입을 맞췄다. 트로이는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왜 몸을 움직일 수 없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지러웠고 온몸이 불덩어리처럼 타들어갔다.

 

 

 그때 미샤의 목소리가 들렸다.

 

 

 “ 이러지 마, 후회하게 될 거야. ”

 

 “ 아니야. 그렇지 않아. ”

 

 “ 크세니야. 그 여자 이름이야. 아까 홀에서 춤춘 여자. 같이 있었어. 내일도 같이 있을 거야. 그러니까 이러지 말자. ”

 

 

 레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갑작스럽게 또렷한 목소리로 물었다.

 

 

 “ 그 여자? 그 코끼리 같은 여자? 그 늙은 여자? 같이? 같이 있었다니? 그 여자랑 뭘 어쨌는데? ”

 

 “ 크세니야랑 잤어. 내일도 갈 거야, 그 여자가 원하면. ”

 

 

 레나가 미샤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두 손으로 가슴팍을 떠밀며 발로 걷어찼다.

 

 

 “ 나가! 꺼져버려! ”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찢어진 잠옷으로 몸을 가리며 비극 여배우처럼 울부짖었다.

 

 

 “ 그냥 싫다고 할 수도 있었잖아! 왜 그런 지저분한 말을 하는 거야? 넌 감정도 없어? 끔찍해! 끔찍하고 더러워! ”

 

 

 미샤는 잠시 아무 말 없이 레나를 내려다보았다. 그 얼굴에는 연민이나 미안함, 혹은 분노 따위의 감정이 전혀 떠올라 있지 않았다. 하지만 검은 마스카라와 붉은 립스틱으로 온통 얼룩져 있었으므로 설령 울고 있다 해도 보이지 않을 터였다. 그는 한숨조차 쉬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미안해. ”

 

 

 그리고는 침대 위로 올라가 창문을 열더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

 

 

재즈 밴드 매니저이자 옛 댄서 크세니야와 미샤의 이야기는 이 흑해 에피소드 후반부에 좀더 이어지는데 레나의 이야기와는 좀 별개라서 올리지 않았다.

 

..

 

 

(가엾은) 레나가 등장했던 이야기들은 아래 링크. 소설 속에서 아래 순서대로 전개된다.

 

http://tveye.tistory.com/4050 : 썰매를 타러 간 미샤와 트로이, 그리고 친구들

http://tveye.tistory.com/4947 미샤와 지나이다의 졸업 무대

http://tveye.tistory.com/4671 흑해로 가는 기차, 새로 온 인간, 새로 온 천사

 

 

 

..

 

 

무용수들 사진 몇장.

 

 

 

아르춈 옵차렌코

 

 

디아나 비슈뇨바

 

이반 바실리예프

 

 

아래 세장은 밴드 즉흥 연주에 맞춰 신나게 팔짝거리며 춤추는 미샤와 크세니야를 생각하며 올려봄. (하긴 크세니야는 많이 팔짝거리진 못했겠지만 ㅠㅠ)

 

 

파루흐 루지마토프.

사진은 nina alovert.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이게 위 에피소드에서 잠깐 언급된 고파크.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지 민속춤)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예브게니야 오브라초바. 돈키호테.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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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얼마 전 독일 바이에른에서 첫 시즌을 시작한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그의 바이에른 무대 데뷔작은 지젤. 아내인 마리야 쉬린키나와 함께 췄다.

 

6월에 마린스키에서 이 사람이 추는 지젤의 알브레히트를 보았다. 내가 제일 처음 봤던 이 사람 무대도 지젤이었다. (10년 전!) 이 사람의 알브레히트는 정말 매혹적이다!

 

사진은 모두 Jack Devant. 캡션에도 있음.

 

 

 

 

 

 

 

 

:
Posted by liontamer



바이에른에서의 새 시즌을 위해 최근 가족과 함께 뮌헨으로 옮겨간 슈클랴로프...

그래도 마린스키 시즌에서 10번 내외 출연하기로 계약이 되어 있다니 다행이다...


간만에 이 사람 화보 몇 장.


젊은이와 죽음. 사진은 Mark Olich.


몇번 얘기한 적 있지만 3년 전 마린스키에서 이 무대를 보고 이 사람을 무용수로서 재평가하게 되었다... 가슴을 미친 듯이 뛰게 하는 무대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역시 젊은이와 죽음. 사진은 Mark Olich.




젊은이와 죽음. 사진은 Mark Olich.





청동기사상. 안무는 유리 스메칼로프.


사진은 alex gouliaev


이번에 가서 본 공연 중 이게 최고였다. 이 사람의 연기는 정말 훌륭했다.




라 바야데르. 빅토리야 테료쉬키나와 함께.

미워할 수 없는 드문 솔로르!





이건 china ballet magazine의 사진. 최근 상하이 갈라에서 돈키호테 바질 췄을 때.


이 사람의 바질은 그야말로 귀여움과 생기의 절정.



그러고보니 오늘 올린 사진들은 운좋게도 전부 이 사람의 무대를 직접 본 작품들이다.



마지막은 얼마전 글린카 극장에서 백조의 호수 공연했을 때 그쪽 무용수들과 찍은 연습실 사진. 보통 이런 사진은 미녀들 4명과 함께 찍었으니 남자가 복 터졌다고 할텐데 아무리 봐도 이 사진은 꽃돌이를 둘러싼 저 4명의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복 터진 것으로 보인다... 나의 팬심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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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약 2년쯤 전에 나는 가브릴로프 본편을 시작했다가 잘 풀리지 않아서 그 본편에 삽입될 에피소드 하나를 독립된 단편으로 먼저 썼다. 지방 소도시인 가브릴로프의 시립극장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나의 주인공 미샤가 그곳 오케스트라의 실력자이자 수석 바이올리니스트인 로만 코즐로프와 의견 충돌을 일으킨 후 하룻밤을 보내고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는 이야기였다. 이야기는 코즐로프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코즐로프는 이 본편의 외전 격인 서무의 슬픔 시리즈 때문에 어린 애인에게 폭 빠진 다혈질의 흑염소 아저씨(ㅜㅜ)이자 바이올린 깡패로 등극하게 되었지만 원래 본편에선 그런 막가파 캐릭터는 아니었다(아무래도 서무 시리즈 때문에 코즐로프가 제일 웃기게 변한듯... 손해봤어 ㅠㅠ)



하여튼 그 에피소드는 생각보다는 좀 길어서 실제 본편이 씌어졌을 때는 좀 손을 봐야 할테지만 지금으로선 그냥 독립적인 단편으로 존재하고 있다. 제목은 매우 단순하게도 '밤'(night) 이었는데 다른 제목을 굳이 붙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누군가가 누군가를 만나 밤을 보내고 사랑에 빠지는 무수한 이야기 중 하나일 뿐이니까. 우습지만 이 이야기를 처음 발췌했을 때 후반부에 둘이 사과파이 먹는 장면을 인용했기 때문에 종종 '사과파이 단편'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있다. (서무 시리즈에서 왕재수가 사과파이를 좋아하는 걸로 설정된 건 사실 이 단편 때문이다)



이 단편은 전에 사과파이 에피소드나 미샤가 백조 솔로를 추는 씬, 그리고 전반부 1~2장 전체를 발췌한 적이 있다. 그냥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술을 못 마시는 미샤가 보드카를 실컷 퍼마시고 인사불성이 되어 코즐로프의 집에서 밤을 보내는 얘기다. 어떤 이야기들이든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간단해지는 법이다.



아래 발췌한 부분은 거의 후반부이다. 이 이야기 앞뒤 에피소드도 전에 발췌한 적 있다. 그 링크들은 이야기 아래에 따로...



 초반에 언급되는 게오르기 벨스키는 미샤를 후원하는 공산당 고위 간부로 예전에도 종종 언급된 적이 있다. 수감된 미샤를 빼내 가브릴로프로 보내는데 큰 공헌을 한 사람이다. 중간에 언급되는 아르카지는 이 이야기에서 극장 카페 매니저로 등장하는 인물이고(서무 시리즈에도 나왔다. 보르쉬에 물타는 사람. 이 이야기에서는 보드카에 물을 탄다. 물타기 전문가 ㅋㅋ), 나중에 언급되는 딤카 아르부조프는 물론 가상의 인물로 내가 만들어낸 사람이다.



맨 위의 사진은 연습실의 파루흐 루지마토프. 사진사는 캡션대로 marina bakanova.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옷을 입은 후 미샤는 거실로 갔다. 내겐 묻지도 않고 티 테이블을 옆으로 밀어놓더니 스트레칭을 했다. 동작 하나하나가 유연하기 이를 데 없었다. 문득 자식이 춤을 추는 걸 보고 싶어졌지만 춰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얼간이처럼 보일 테니까.

 


  그 애는 단 한번, 왼쪽 발끝으로 선 채 오른쪽 다리를 길게 내뻗었을 뿐이었다. 낯간지러운 말이지만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포즈였다. 지금껏 그런 깨끗하고 근사한 동작을 본 적이 있나 싶었다. 하긴 오케스트라 핏에 들어가 있으면 연주자는 무용수의 동작을 볼 수 없다. 그건 지휘자의 몫이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빌어먹을 저 꼬마는 나에게 연주를 바꿔달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아침이 되자 더 이상 부아가 치밀지 않았다. 그깟 연주 바꿔주면 그만이다. 저런 동작을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요구할 수 있다. 그럴 자격이 있는 놈이었다. 분명 바닥을 딛고 있는데도 자식은 날아오르는 새처럼 보였다. 왜 양키들과 유럽 부르주아들이 자식을 낚아채려고 했는지 이해가 갔다. 우리 연방 관객들이 그 애를 볼 때마다 천사라고 불렀던 이유도.

 


 나는 이제 벨스키가 그 아이를 구해내려고 했던 이유도 알 것 같았다. 게오르기 벨스키. 이 촌 동네에서 자라나 어마어마하게 출세한 남자. 우리 극장 발레리나를 어머니로 둔 남자. 그래서 극장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정치국 의원. 미샤가 그 대단한 의원님의 침대를 데워주는 노리개였든 아니든 그건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 아름다움은 흔한 것이 아니다. 평생 한번 볼까 말까한 것이다. 그런 희귀한 재능을 가진 아이가 눈앞에 있다면, 정신병자들이 득실거리는 수용소에서 죽어가게 된다면 내가 벨스키라 해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무대를 직접 본 것도, 제대로 된 연속 동작을 본 것도 아니면서, 그저 완전히 정지한 채 날아오르는 그 포즈 하나밖에 보지 못했으면서도 나는 그 아이의 모든 것을 용서했다. 순식간에 홀려버렸다. 숭배하게 되었다. 우스운 것은 아무리 유명하고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를 들었을 때도 그런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역시 나는 음악가가 아니라 그저 연주자 나부랭이에 불과했다.

 


  “ 회전. 푸에테라고 하나? 그거 보고 싶은데. ”

 


나도 모르게 속마음을 불쑥 입 밖에 내버렸다. 미샤는 왼쪽 허리와 허벅지를 주무르며 무심하게 대꾸했다.

 

  “ 미안. 이제 못해. ”


 “ , 무대 안 올라가서 몸이 굳어서? 방금 아라베스크는 좋았는데. ”


 “ 중심이 여기 와야 하거든. 힘이 안 들어가. ”

 


 그 애의 손이 왼쪽 골반 위에 놓였다. 바지와 허리끈과 셔츠로 가려져 있었지만 그 뱀처럼 부풀어 오른 상처가 그대로 보이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끔찍한 살인 충동을 느꼈다. 그자들 전부. 상처를 만들어 놓은 자들, 저 몸을 망가뜨린 놈들, 저 꼬마를 체포하고 더러운 짓을 자행한 놈들을 하나하나 찾아내 죽여 버리고 싶었다. 그 충동이 너무나 뜨겁고 격렬해서 나는 몸을 떨었다.

 

 미샤는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계속해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무심하게 덧붙였을 뿐이었다.

 


  “ 몸이 굳기도 했지. 오래 안 췄어. 2월에 은퇴했으니까. ”


  “ 오래는 무슨. 그래봤자 반 년 밖에 더 돼?


  “ 부상당했을 때도 그렇게 오래 쉰 적 없었어. ”


  “ 나으면 굳은 것도 다 풀리겠지. 그럼 우리 무대에 올라갈 거야? ”


  “ 아니. 은퇴했다니까. ”


  “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주제에 잘도 떠드는군. 음악도 못 따라가는 우리 무용수들 때문에 돌아버릴 지경 아니야? 그 꼴을 한 달만 더 보면 열 받아서 직접 올라가겠다고 나서겠지. 그 성깔에 그러고도 남을 게 뻔해. ”


  “ 걔들 헐뜯지 마. 도와주면 나아질 거야. ”


  “ 그럼 다들 너처럼 출 수 있게 되나? 그렇게 믿는 건 아니잖아. ”


  “ 다들 나처럼 추면 재미없잖아. ”


  “ , 혼자 잘나야 하는데 그게 안돼서? ”


  “ 당신은 옆에 있는 바이올리니스트와 똑같이 연주하면 좋아? ”



 잠깐 말문이 막혔다. 내겐 드문 일이었다. 미샤는 내 대답을 기대하지도 않았는지 바닥에 주저앉아 다리를 완벽하게 일직선으로 뻗었다. 나는 언제나 남자 무용수들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신체적으로 불가능한 동작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잠시 후 그 아이는 오른쪽 무릎을 꺾어 다리를 옆으로 들어올렸다. 왼쪽도 반복했다. 다섯 번쯤 반복했을 때 낮게 신음하며 한 손으로 다시 그 왼쪽 골반의 상처를 가볍게 눌렀다. 그래도 멈추지는 않았다. 일어나서 다시 무릎을 구부렸다 폈고 연속으로 스트레칭을 몇 개 했다.


 

  “ 매일 그렇게 해? ”


  “ 일어나면. ”


  “ 은퇴했다면서. ”


  “ 그거랑 달라. ”


  “ 글쎄, 다른 것 같지 않은데. 무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


  “ 그냥 운동하는 거야. 움직여야 하거든. 많이. ”


  “ 그건 우리 의사 선생의 처방인가? ”


  “ 절반쯤은. ”

 


 미샤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얼굴이 사과처럼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기껏 샤워까지 해놓고 도로 땀을 흘리는 짓을 하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어쨌든 무용수였던 놈이니까 나와는 사고방식이 완전히 다를 것이다. 나는 그 아이가 다른 동작들을 더 보여주기를 기다렸다. 춤을 추지 않는다 해도 좋았다. 최소한 그 아라베스크라도 한 번 더 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미샤는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몸을 길게 뻗은 채. 두 팔을 옆으로 벌리고.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자식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힘이 들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스트레칭과 기본 동작만으로도 힘이 든다는 사실에 화가 난 건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 일어나는 게 좋을 걸, 그 카펫 더러워. ”


  “ 괜찮아, 당신 옷이니까. ”


  “ 그렇게 힘들어? 하긴 빈속에 몸을 그렇게 많이 움직였으니 힘들기도 하겠군. ”


  “ 아니, 어지러워. 다 깬 줄 알았는데. 역시 밀주였어. ”


  “ 아르카지가 물 탔다고 몇 번을 말해. ”


  “ 또 토하면 당신 화낼 거야? ”


  “ 언제 남이 화내는 거 신경이라도 썼나? 자기밖에 모르는 애송이가. ”


  “ 당신이 화내는 건 별로야. ”


  “ ? ”


  “ 화나면 팰 거잖아. 아팠다니까. ”

 


 농담을 하고 있었다. 이제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자식은 농담을 제대로 할 줄 몰랐다. 제대로 된 러시아 놈이 아니었다.

 


  “ 어차피 가는 데마다 더럽힌 거 여기 토한다고 뭐가 달라진다고. ”


  “ 카펫은 여분 없을 거 아냐. ”


  “ 난 부르주아가 아니라서. ”


  “ , 낡은 단어. ”

 


 미샤는 심호흡을 하며 눈을 감았다. 이제 토하려나보다 싶어 티 테이블 위에 있던 쟁반을 낚아채 입가에 대 주었지만 자식은 살짝 잠긴 목소리로 부드럽게 속삭였다.


 

  “ 바이올린 켜, 로만. ”


  “ 내가 왜. ”


  “ 듣고 싶으니까. ”


  “ 미안하지만 여긴 극장이 아니라서, 감독님 명령은 안 통해. ”


  “ 부탁하는 건데. ”


  “ 삼류 연주 들어서 뭐해. ”


  “ 왜 그런 식으로 말해? 싫지 않았다니까. ”


  “ 싫지 않다는 건 보통이란 얘기고 그건 별로란 뜻이야. ”


  “ 난 별로인 사람한테는 부탁 안 해. ”



  나는 바이올린을 가져왔다. 활을 잡다가 자식이 바이올린을 켤 줄 아는지 문득 궁금해져서 물어보았다.

 


  “ 조금. 학교 다닐 때 키로프 연주자한테 배웠어. ”


  “ 누구? ”


  “ 딤카 아르부조프. ”

 


 잠시 내 귀를 의심했다. 잘 아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드미트리 아르부조프, 키로프 오케스트라 수석. 역시 놀던 물이 달랐다.


 

  “ 화려한 이름이군. 그래서 그렇게 잘난 척 한 거야? 그냥 전업하시지. 내 자리 내줄까? ”


  “ 기본만 배웠어. ”


  “  , 음악도 잘 안다고 뻐기더니. 연주 쪽 재주는 없었나? ”


  “ 활 쓰는 건 안 맞더라고. 춤 출 때 쓰는 근육이랑 달라서 연습하고 나면 어깨가 많이 당겼어. 피아노는 좀 나았어. ”


  “ 끝까지 못한다는 말은 안 하는군. ”


  “ 못해, 바이올린은. 그래도 들을 줄은 알아. ”



  나는 뒷골이 띵하도록 부담감을 느꼈다. 그러다가 어차피 차원이 다른 놈이니 내가 뭘 어떻게 하든 삼류로 들릴 게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홧김에 아무 거나 켜기 시작했다.






...




전에 발췌했던 이 이야기의 여러 토막들에 대한 링크는 아래. 포스팅 순서가 아니라 이야기 속의 시간 순서에 따라 재배열함.



맨 앞 부분(Night : 코즐로프와 미샤의 이야기 중에서) : http://tveye.tistory.com/4118

 

숙취로 고생하는 미샤와 차이코프스키에 대한 대화 : http://tveye.tistory.com/3253

 

발췌본 바로 앞 이야기(아침, 여분의 수완, 바느질) : http://tveye.tistory.com/3465

 

발췌본 바로 다음 이야기(백조 솔로를 추는 미샤) : http://tveye.tistory.com/3146

 

사과파이를 먹는 코즐로프와 미샤 : http://tveye.tistory.com/3165

 



..



아라베스크를 비롯한 무용수 화보 몇 장.





미샤의 움직임이나 육체적 특성을 지닌 모델 중 하나인 블라지미르 말라호프.




블라지미르 말라호프




블라지미르 말라호프




역시 블라지미르 말라호프. 빈사의 백조 추는 중.





프리드리만 보겔.

이 사람은 연기력이 별로라 딱 내 취향의 무용수는 아닌데 포즈나 몸의 선이 아름다워서 화보는 항상 근사하다.




프리드리만 보겔 한 장 더. 연습실.




이고리 콜브.




그리고 팬심으로 역시 지나칠 수 없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화보 두 장. alex gouliaev의 사진. le parc




슈클랴로프.

절친인 유리 스메칼로프가 안무한 나르키소스를 위한 레퀴엠 중.


마지막은 궁극의 백조, 울리야나 로파트키나.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
Posted by liontamer

 

 

전에 올린 사진도 두어 장 있다만.

마음의 위안을 위해 무용수 화보 몇 장.

 

루돌프 누레예프.

내가 아주 좋아하는 사진이다. 몇년 전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한동안 이 사진을 월페이퍼에 깔아놓고 오랫동안 바라보곤 했다.

 

 

루돌프 누레예프.

 

 

 

블라지미르 말라호프.

사진사는 캡션에 나와 있듯 nina alovert

 

 

 

디아나 비슈뇨바

 

 

 

이제부터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2013년 베네피스 공연 때 파리 오페라 극장의 도로테 질베르가 니키야를 맡아서 라 바야데르의 망령의 왕국을 함께 췄다. 도로테 질베르야 괜찮은 무용수지만 확실히 라 바야데르의 니키야는 마린스키 발레리나들이 훨씬 어울렸다. 테료쉬키나가 아쉬웠다.

질베르와 리허설 중 찍힌 사진. 허리가 아팠는지 밴드를 대고 있네..

 

 

댄스 오픈 페스티벌. 빅토리야 테료쉬키나와 함께 흑조 2인무 추는 중,

사진은 jack devant

 

 

 

로미오와 줄리엣. 디아나 비슈뇨바와 함께.

얼굴은 거의 안 보이지만 몸짓만으로도 정말 간절하고 애절한 느낌이 그대로 배어나오는 사진이라 좋아한다.

 

 

 

전에 올린 적 있다. 롤랑 프티의 젊은이와 죽음 화보 중 하나.

사진사는 alex gouliaev

매우 좋아하는 화보이다.

내가 이 사람을 무용수로서 다시 평가하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다. 몇년 전 마린스키에서 슈클랴로프가 춘 이 작품 보고 돌아오는 길 내내 공연이 너무 좋아서 몸이 떨렸다. 그런 기분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
Posted by liontamer
2015. 7. 2. 23:09

미하일 바리쉬니코프 사진 세 장 dance2015. 7. 2. 23:09

 

 

너무 힘든 하루였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위해 미하일 바리쉬니코프 사진 세 장

출처는 사진의 서명대로 Russian Imperial Ballet.

 

내가 좋아하는 연습실 사진 두 장과 도약하는 사진 한 장을 골라봤다.

 

당신 때문에 러시아어 전공하게 되었죠...

 

 

 

 

 

 

:
Posted by liontamer

 

 

국립발레단 '지젤', 2015. 3. 28

 

* 지젤 : 김지영

* 알브레히트 : 김현웅

* 힐라리온 : 정영재

* 미르타 : 한나래

* 페전트 2인무 : 김리회, 김윤식

 

 

돌이켜보면 내가 국립발레단의 지젤 무대를 정말로 좋아했던 것은 김주원씨가 떠나기 전까지, 그리고 파트리스 바르의 안무가 들어오기 전까지였던 것 같다. 일단 김주원씨는 국내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발레리나였고 특히 지젤 역이라면 최고였다. (물론 김지영씨도 좋아했는데, 옛날에 이 둘이 투 톱일 때 내 마음속에서 '김주원=지젤', '김지영=키트리!'라고 마음 속에 각인되어서 ㅎㅎ)

 

주원씨가 출 때는 그래도 파트리스 바르 안무라도 그럭저럭 참았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바르의 안무는 더더욱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래 처음에는 마음에 안 들더라도 자꾸 보면 익숙해져서 괜찮아지기 마련인데 안 그런 걸 보니 파트리스 바르 안무가 정말 내 취향이 아닌가보다..

 

바르는 내 취향보다 너무 분절적이고 중간중간 쓸데없이 과잉 표현을 한다. 그러니까 바르 안무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냥 이 사람의 안무는 내 감정선이랑 안 맞는 거다. 내가 감정이 고조되는 순간이면 바르의 안무는 툭 끊어지고, 오히려 여기서는 스피디하게 가도 될만한 곳에서는 한없이 늘어지거나 만용을 부리는 느낌이랄까... 나는 드라마틱한 작품들을 좋아하고 성향에도 맞는 편이지만, 이야기나 장면을 늘리는 것은 별로 안 좋아한다. 소설이라면 모를까 발레 무대라면 탄탄한 짜임새와 일종의 여백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타입이다. 두 가지가 좀 모순되는 표현 같긴 한데. 그러니까, 끊어줘야 할 곳에서는 미련없이 탁 끊어줘야 한다는 거다.

 

이 버전에서 특히 내 취향에 맞지 않는 부분은 바로 1막에서 지젤 엄마가 심장이 약한 딸을 가리키며 그러다 죽는다~ 하고 경고하고 지젤이 자신의 미래를 예감하는 장면인데... 볼때마다 괴롭다. 그냥 이 장면 들어내줘.. 하고 싶다. 지젤의 광란은 예고없이 닥쳐오기 때문에 더 비극적이고 드라마틱한 건데 굳이 지젤이 엄마의 경고로 그런 예감과 공포에 휩싸이는 장면을 넣어서 과잉 표현의 예가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것은 아마 내 취향이 이런 걸 안 좋아해서 그런 걸 테고, 또 많은 관객들은 오히려 이러한 복선과 드라마틱한 연출이 마음에 들 수도 있으니..

 

그리고 편곡도 그렇고 조명을 쓰는 것도 내겐 너무 over the top 이란 느낌이 든다. (우리 말로 뭐라고 해야 딱 맞을지 모르겠네. 그러니까 과잉이라는 건데... 좀 허세 넘친다 해야 하나) 일단 암전도 그렇고, 지젤 엄마 경고 때도 그렇지만 지젤의 광란 씬에서도 그렇고.. 무대 전체를 암흑으로 물들이며 지젤에게만 조명을 비춰주는 것은 뭐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광란 씬은 지젤이란 무용수 자체가 무대 전체를 지배하는 씬이다. 그녀의 광란과 그녀의 절망, 그녀의 움직임, 이 모든 것만으로도 감정이 넘쳐흐른다. 이러한 드라마와 격렬함이 폭발하는 무대 위에서 굳이 암전과 집중조명은 필요하지 않다는 느낌이랄까. 스탕달이 자기 소설 어딘가에 인용했듯 '어리고 예쁜 소녀가 무도회에 가면서 이미 충분히 발그스름한 볼에 연지를 칠했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난 드라마틱하고 감정 과잉으로 흘러넘치는 무대를 좋아하는 적도 많으니 이건 전적으로 나랑 파트리스 바르 안무가 '그냥' 어딘가 안 맞는 걸지도..

 

..

 

근데 오늘 공연 얘길 해야 하는데 바르 안무 얘길 한참 늘어놨네. 본론보다 더 길겠네.. 하여튼 이제 오늘 공연에 대한 짧은 메모..

 

바르 안무를 별로 안 좋아하니 사실 오늘도 큰 기대 없이 갔다. 김지영씨와 김현웅씨가 추니까 그래도 실망은 안 하겠지 정도의 마음가짐으로. + 정영재씨의 힐라리온을 볼 수 있다는 즐거움. 사실 이동훈씨의 알브레히트도 좋아하고, 이분 무대 본 지 꽤 돼서 고민했는데 작년인가 재작년에 이은원씨의 지젤을 봤을 때 너무 내 취향이 아니라서, 내 성향으로는 보다 안전한 김지영 & 김현웅 페어를 선택했다.

 

전반적으로 오늘의 지젤은 최근 몇년 간 봤던 국립발레단 지젤 중 제일 마음에 들었다.

 

국립발레단의 군무는 예전에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확실히 강수진씨가 감독으로 부임한 후 발레단의 전체적 무용의 질이 향상된 것 같다. 약간 삐걱대는 부분이 있긴 했지만 내가 앞줄 사이드에 앉았으므로 군무의 전체적 균형을 감상하기에는 불편함이 있었다..

 

내가 지젤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가 미르타의 등장과 그녀의 독무인데, 사실 우리 나라 발레단 공연에서 맘에 드는 미르타를 본지가 오래됐다. 미르타를 잘 추는 게 상당히 어렵다. 춤 실력도 좋아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무대를 장악하는 카리스마와 기품, 서릿발 같은 매서움을 갖춰야 한다. 오래 전에 유니버설 발레단에서 잠시 췄던 마리야 알라쉬의 미르타를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오늘 미르타를 춘 무용수는 한나래씨였는데,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았다. 물론 전체를 장악하는 카리스마, 상체의 움직임 등은 좀 아쉬웠지만 지난번보다는 좋았던 것 같다.

 

힐라리온! 전에도 몇 번 얘기했지만 난 언제나 힐라리온 동정파이며 알브레히트 죽일놈을 부르짖는 사람이고 다시 태어나 발레리나가 된다면 기필코 미르타가 되어 못된 알브레히트놈을 응징하고 말겠다는 소망이 있다 :) 힐라리온 너무 불쌍하지 않나... 가엾기도 하지. 게다가 오늘의 힐라리온은 내가 언제나 좋아했던 정영재씨. 이 사람 힐라리온 추게 하는 건 아깝지만.. 그러나 잘 추고 연기도 잘한다. 표정 연기도 풍부하고...

 

그러나 오늘 무대에서 가까운 자리에 앉아서 무용수들 얼굴을 생생히 보면서 느낀 점은... 아아, 저 힐라리온 왜 저리 쓸데없이 잘생겼지? 어쩐지 손호준을 연상시키는 정영재씨의 힐라리온 ㅎㅎ 물론 귀족다운 기품과 풍채를 갖춘 김현웅씨의 알브레히트와는 다르지만, 그래도 저 힐라리온 잘생기고 열정적이구만... 지젤 바보 ㅠ 그냥 힐라리온 받아줬으면 행복했잖아 엉엉... (또다시 시작된 나의 힐라리온 변호욕구!)

 

페전트 2인무. 김리회씨와 김윤식씨가 췄는데, 이들은 각자 솔로를 출 땐 좋았고 둘이 출 때는 어딘가 삐끗거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실수를 하거나 그런 건 아닌데, 그냥 내 느낌이 미세하게 좀 그랬다.

 

그리고 지젤과 알브레히트에 대해서.

 

김지영씨의 지젤은 언제나 기본 이상이기 때문에 내겐 항상 안전한 선택이다. 물론 김지영씨도 이제 나이가 있어서 옛날처럼 파워풀하거나 화려한 테크닉을 구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신 원숙하고 정확하다. 필요한 동작 하나하나를 깔끔하게 박아넣는다. 그리고 연륜에서 우러난 깊이가 있고 연기도 좋다. 지젤은 사실 아주 어려운 배역이다. 1막과 2막 지젤의 성격도 다르고, 표현해야 할 감정의 스펙트럼도 넓다. 발레리나의 햄릿과 다름없는 역이라고 하는 이유가 있다. 그래서 발레리나가 키트리나 호두까기 마샤를 잘 추는 것과 지젤을 잘 추는 것은 꽤 다른 문제다.

 

오늘 김지영씨는 1막 광란씬이 특히 좋았다. 청순하고 가냘프고 불쌍한 소녀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의 지젤은 정말 넋을 놓고 미친 여자처럼 보였다. 정신줄을 놓은 표정부터 몸놀림 하나하나가 다 그랬다. 이따금 섬뜩할 정도였다. 처량하기보다는 처절했다.

 

2막의 윌리도 언제나처럼 좋았지만 오늘은 1막 광란 씬이 제일 마음에 들엇다. (2막에선 지젤이 윌리로 등장해 춤출때 전보다 확실히 화려함이 줄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살짝 슬프기도 했다 ㅠㅠ)

 

그리고 김지영씨는 베테랑이기 때문에 항상 파트너와의 호흡이 좋다. 이동훈씨와도 좋았지만 오늘 김현웅씨와는 정말 감정선이 살아 있었다. 아무래도 동훈씨와 출때는 누나 동생 같은 느낌이 좀 있었는데 김현웅씨도 연하이긴 하지만 후자가 훨씬 귀족적이고 남자다운 스타일이라 그런지 둘의 페어에는 전혀 이질감이 없었다.

 

김현웅씨의 알브레히트는 생각보다 더 좋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현웅씨의 알브레히트를 본 건 아마도 2011년이었다. 그땐 김주원씨와 췄던 것 같다. 난 예전부터 김현웅씨를 좋아했고 작년부터 다시 국립 무대에 올라와줘서 매우 반가웠는데, 작년에 돈키호테 바질을 췄을 때는 '아, 좋긴 한데 바질을 추기엔 살짝 묵직해보인다..'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 무대를 보면서 느꼈다. 이 사람에겐 타고난 알브레히트다움이 있구나!

 

그게 그런 게 있다. 잘못하면 선입견이 되기 때문에 함부로 속단할 수는 없으나, 남자 무용수들의 속성 중 '프르미에르 당쉐르'다움이라는 것. 그냥 수석무용수 말고. 그러니까 왕자다움이라는 건데. 김현웅씨는 우리 발레계에서 그런 속성을 가진 얼마 안되는 무용수다. 이건 내 느낌만이 아니고.. 예전부터 발레계에서 그에 대해 하던 말이다. 좋은 무용수는 많아도 '왕자' 무용수는 정말 찾기 힘들다... 물론 발레 전통이 두터운 러시아나 서구 쪽에 가면 사정이 다르지만, 우리 나라의 경우는 일단 남자 무용수 자체가 부족한데다 신체 조건부터 시작해 딱 왕자다운 특질을 갖춘 무용수 찾기가 아주 어렵다. 어쩔 수 없는 것이 발레 자체가 서양 문화의 산물이기도 하고... 그래서 현웅씨가 불미스럽기도 하고 불운하기도 한 일로 우리 발레계를 떠났을 때 더 상실감이 컸던 거고.

 

물론 지금이야 우리 나라 발레 팬들도 더 늘어나고, 무용수들도 늘어나고 좋은 남자 무용수들도 늘어나서 전보다는 훨씬 낫지만. 어쨌든 김현웅씨에게는 진짜 '왕자다운', 혹은 '귀족다운' 아우라가 있는데 사실 알브레히트에겐 그게 필요하다. 그 아우라를 갖췄느냐 갖추지 않았느냐에 따라 알브레히트의 무게가 달라진다.

 

오늘 현웅씨가 추는 알브레히트는 근사하고 매력적이고 아름다웠다. 이 사람도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점프나 앙트르샤는 예전보다 좀 처지는 느낌이었지만 대신 동작 하나하나는 깔끔하고 유려했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의 연속 앙트르샤 대신 무대를 가로지르며 춰줬으면 더 어울렸을 것 같긴 했다. 점프나 앙트르샤는 확실히 이동훈씨 쪽이 더 화려한 것 같다)

 

사실 알브레히트의 춤은 다른 고전발레에 비하면 복잡한 테크닉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만큼 연기력과 기품이 뒷받침되어야 더 멋지게 느껴진다. 나는 이른바 복잡한 고전발레 테크닉들로 이루어진 정연하고 곡예같은 춤들보다는 알브레히트나 로미오 류의 감정선을 끌어올리는 춤들을 좋아하는 편이라.. 오늘 김현웅씨는 춤도 좋았고 연기도 좋았다. 그리고 김현웅씨는 발레 무용수에게는 가장 큰 축복이자 무기인 무용수다운 육체적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 몸의 선도, 동작도 근사하고 시원하다. 사실, 저 알브레히트라면 사랑에 빠질만하다.

그래서 오늘 지젤은, 파트리스 바르라는 장애물(ㅜㅜ 바르 안무 좋아하는 분들 죄송.. 하지만 난 도저히 이것을 극복할 수가 없..ㅠㅠ)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들었다 :) 오늘 제일 마음에 든 건 김현웅씨~ 솔직히 말하면, 이제껏 본 현웅씨 무대들 중 오늘이 제일 멋있어 보였다!

 

 

 

똑딱이 들고 갔었는데 커튼콜 때 몇 장 찍었으나 밝은 조명과 윌리들 흰 옷 때문에 다 번져서 전부 망하고... 쉬는 시간에 찍은 기둥 사진이나 하나.. 이것도 번졌지만 ㅠㅠ

 

 

 

.. 그 엉망으로 번진 망한 사진 ㅠㅠ 그래도 아쉬우니 윌리들 사진 하나.. ㅠ

 

 

막판에 커튼 앞으로 나와서 옳다구나 하고 찍었으나 역시나 조명 때문에 다 번지고... 지영씨 뒷모습(번짐 ㅠㅠ)과 현웅씨 옆모습 그나마도 건진 것 ㅠㅠ 흑흑..

 

* 태그의 지젤을 클릭하거나 블로그 내에서 '지젤' 혹은 '알브레히트'로 검색하면 그간 올렸던 이 발레에 대한 여러 리뷰나 메모, 마린스키를 비롯한 발레단이나 무용수들 동영상, 그리고 내가 쓴 글 발췌 부분 등을 볼 수 있다~

 

** 사족

국립발레단 지젤 볼 때 느끼는 것...

바틸드 나올 때 그 개 두마리 안 데리고 나오면 안될까.. 난 개를 무지 좋아하긴 하는데.. 개 때문에 자꾸 신경이 쓰여서 무대에 집중이 안된다. 저 개들이 뛰어가면 어쩌지, 응가라도 하면 어쩌지 등등.. 그거야 훈련받은 개들이니 괜찮겠지만.. 근데 오늘은 특히 바틸드가 개를 잘 못 다뤘다. 끈을 잡아당겨도 개들이 버티기도 하고 다른 방향으로 가기도 하고... ㅠㅠ

 

** 사족 2

2월에 연말정산 때문에 화딱지나서 썼던 지젤 + 연말정산 패러디 : http://tveye.tistory.com/3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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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월요병을 달래는 마린스키 무용수 화보 몇 장.

 

말이 필요없는 최고의 발레리나, 울리야나 로파트키나로 시작.

마린스키 브 콘탁테 페이지에서 얻어온 사진. 캡션이 달려 있긴 한데 노어라서.. 2013년 3월의 제13회 마린스키 국제 발레 페스티벌 때, '한여름밤의 꿈' 무대 화보이다. 사진사는 Gene Schiavone.

 

 

 

그리고 아름다운 디아나 비슈네바. 분장실 사진 두 컷.

이건 비슈네바의 페이스북에서 얻은 것 같은데 긴가민가..

난 분장실이나 연습실의 무용수들 사진들을 매우 좋아한다.

 

 

 

 

이제부터는 사심 가득한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화보 몇 장 :)

이건 최근 뉴욕 투어. 백조의 호수 추는 중. 빅토리야 테료쉬키나와 함께.

아무리 봐도 지그프리드가 백조들보다 더 예쁜 건 반칙이지만.. 어쨌든 눈호강!!

사진사는 Jack Vartoogian.

 

 

 

역시 Jack Vartoogian의 사진 한 컷 더.

테료쉬키나 오데트를 안고 있는 슈클랴로프 지그프리드..

 

잘못했어, 오데트야.. 나 용서해줘 ㅠㅠ 나는 많이 예쁘니까 좀 용서해줘 ㅠㅠ 나처럼 예쁜 왕자 어디 가서 구하기 쉽지 않아... 저 영국 가봐, 왕세자가 66살이야..

 

 

 

테료쉬키나 오데트를 떡하니 허벅지에 올려놓고 포즈 잡는 슈클랴로프 지그프리드.

 

이걸 잘해야 진짜 마린스키 지그프리드임!!! 이거 못하면 좀 빈정 상함.. 이거랑 로트바르트 날개 멋있게 뜯는 거.. 게스트 무용수가 마린스키 와서 지그프리드 출 때마다 유심히 보는데 확실히 이 두 개가 좀 약함 ㅋㅋ 슈클랴로프는 물론 잘한다 :)

 

 

뉴욕 투어 갔을 때. 백조 리허설 중인 슈클랴로프와 빅토리야 테료쉬키나.

사진은 Natalie Keyssar.

역시 리허설 사진들은 날 끌어당기는 뭔가가 있다.

 

 

마지막은 예카테리나 콘다우로바와 함께 춘 젊은이와 죽음.

사진은 Alex Gouliayev.

전에도 쓴 적 있지만 내가 슈클랴로프를 무용수로서 재평가하게 된 무대였다. 그전까지는 귀엽고 반듯하고 예쁜 무용수였다면 이 무대를 직접 본 후 배우로서의 그의 역량을 평가하게 되었음.

얘가 추는 이 무대 다시 한번 바로 앞에서 보고 싶다. 원체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하고. 롤랑 프티의 모든 작품들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이 작품만은 매우 좋아한다.

태그의 '젊은이와 죽음'을 클릭하면 전에 이 발레에 대해 올렸던 포스팅, 사진, 영상들을 볼 수 있다. 덧붙여 writing 폴더에 발췌했던 미샤와 이 작품에 대한 짧은 대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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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1993년 1월 6일은 루돌프 누레예프가 사망한 날이다.

그를 기념하며 사진 몇 장 올려본다..

 

 

 

 

 

 

 

 

 

맨 아래 사진은 젊은이와 죽음. 이 동영상 클립은 여기 : http://tveye.tistory.com/2389

 

안녕, 루딕. 우리에게 와 줘서 고마워요.

 

** 태그의 '루돌프 누레예프'를 클릭하면 전에 이 사람에 대해 올린 포스팅을 여러 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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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