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과 장미 about writing2016. 9. 1. 21:58
7월에 새로 구상한 글은 아직 구상 단계이고 실제로는 한 단어도 쓰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아이디어와 골조가 뒤섞이고 있는 단계이다. 어떤 글은 삽시간에 쓸 수 있고 어떤 글은 그렇지가 않다. 그리고 우습게도 새 글을 구상하고 있자니 오히려 중단되었던 가브릴로프 본편을 좀 쓰고 싶어지는 반작용이 생겼다. 인간이란 역시 모순적인 존재인가 보다.
어제 오래 전에 썼던 글을 다시 꺼내 읽었다. 지금의 미샤가 나오는 글들과는 다른 이야기이고 다른 우주의 인물들이다(하지만 이 우주에서 파생된 단편 시리즈에서 미샤가 처음으로 등장했으니 완전히 관계가 없다고 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 글은 약 300~350페이지 정도 되는 장편이었다(당시엔 지금과 다른 글자폰트와 크기를 써서 페이지수는 정확하지 않다. 이럴때 단어수를 세야 하는데 귀찮아서 생략)
그 글을 쓴 건 2002년이었다. 14년 전이었다. 지나간 나날, 지나간 가슴, 지나간 손으로 썼던 그 글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나는 내 생각보다 더 뜨겁고 더 무모했고 더 격렬했었네. 적어도 심장은 그랬구나. 지금은 좋은 면으로도 조금 식었고 나쁜 면으로도 조금 식었구나. 그 글은 그때였기에 그렇게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내가 그 글을 쓴다면 나는 다른 식으로 쓸 것이다. 언제나 그런 것이다.
하지만 변치 않는 것도 있다. 그 글을 다 쓰고 나서 후기 노트를 적었는데 아래 두 문단을 발췌해본다. 저건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사춘기 시절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심신에 나이를 먹은 지금까지 거의 변형되지 않고 남아 있는 생각이다. 그건 글을 쓰는 행위와 작가의 줄타기에 대한 생각이다.
여전히 나는 작가란 칼을 쥐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한 손에는 칼을, 한 손에는 장미를, 그리고 두 발로는 외줄을 딛고 천천히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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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소설을 쓰는 행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텍스트의 동력과 작가의 동력, 두 개의 에너지가 존재한다. 이미 쓴 행위가 완료된 후에는 텍스트의 동력과 독자의 동력이라는 두 개의 에너지가 존재한다. 텍스트 자체의 동력과 내부에서 인용되는 다른 텍스트 사이의 동력도 존재한다. 무용이나 음악처럼 실지로 일어나는 행위는 아니지만 분명 문학 창작과 텍스트 내에서도 끊임없는 모터가 돌아가고 있다.
작가는 텍스트를 구상하고 하나의 세계를 축조하고 인물들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쓰기 시작한다. 사건들을 하나하나 엮어내고 상징과 암시를 숨겨 넣고 잔잔한 물결과 급류를 교차시킨다. 쓰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작가는 자신의 텍스트와 싸우기 시작한다. 두 개의 동력이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충돌을 일으키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글이 길어질수록, 혹은 집필 기간이 길어질수록, 복잡해질수록, 텍스트는 점점 더 독립성을 띠고자 한다. 텍스트 내의 세계는 자유를 원하기 시작한다. 인물들은 독립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작가는 이들과 싸워야 한다.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는 말은 사실 모순된 표현이다. 어떤 작가도 전능하지 않다. 하지만 칼을 쥐고 있는 것은 작가 자신이다. 그 칼을 언제 어떻게 휘둘러야 할지, 혹은 놓아야 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것도 작가이다. 자신이 창조한 텍스트 자체에 칼을 빼앗겨버린다면 그 작가는 자신의 소설 안에서 길을 잃는 것이다.
.. 2002년 12월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아주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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