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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발췌한 글은 2013년 초에 프라하에 머물면서 쓰기 시작해 서울에 돌아와 완성한 소설의 일부이다. 가브릴로프 본편을 시작하기 위한 프리퀄로 수용소와 클리닉에서 미샤가 겪은 일을 다뤘다. 그 글을 어떻게 쓰기 시작했는지, 왜 쓰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전에도 about writing 폴더에 몇번 올린 적이 있다.

 

그 글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발췌한 부분은 마지막 3부로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안무가인 스타니슬라프 일린의 시점으로 기술된다. (이 사람의 시점으로 기술된 이 3부의 다른 부분도 두어번 전에 발췌한 적이 있다) 이 사람 스타니슬라프 일린의 딸 라라가 화자로 나오는 부활절 기념 단편 Jewels를 작년 초에 전문 모두 올린 적이 있는데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로 가면 읽을 수 있다.

1장 : http://tveye.tistory.com/3390
2장 : http://tveye.tistory.com/3391
3장 : http://tveye.tistory.com/3393 
4장 : http://tveye.tistory.com/3394
5장 : http://tveye.tistory.com/3395

 

 

글을 쓰고 인물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함께 걷고 뒤엉키는 모든 과정이기도 하다. 모든 인물들은 허구의 산물이다. 하지만 그 중 많은 경우 나 자신의 무언가가 반영된다. 그대로 반영되는 경우는 물론 거의 없다. 보통은 왜곡시키거나 재구성한다. 아마도 주인공의 경우는 더 그럴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비록 나의 주인공 미샤가 나 자신과는 많은 부분에서 다른 인물이기는 하지만 내적으로는 여전히 은밀하고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연결 고리는 물론 명료하지 않고 복잡하고 얼룩덜룩하게 물들고 변형되어 있다. 그래도 그와 나는 집단주의에 대한 공포와 혐오, 일종의 원칙주의자로서의 면모를 공유한다. 내가 그의 자리에서 그의 재능을 지닌 채 살아야 했다면 나는 아마 버텨내지 못했겠지만.

 

중간에 미샤와 일린이 언급하는 '조셴코'와 '하름스'는 둘다 소련 시절 풍자 작가이다. 미하일 조셴코(1895~ 1958)는 소련 사회 서민들의 일상을 뛰어난 풍자와 유머로 묘사한 단편들을 주로 썼으며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으나 1946년 공산당 정책의 희생양으로 반체제 작가로 낙인찍혀 안나 아흐마토바와 함께 작가동맹에서 제명된 후 불행한 말년을 보냈다. 이 사람 단편들은 정말 재미있는데 유머러스한 글과는 달리 실제로는 우울증에 시달린 염세주의자이기도 했다. 이 사람에 대한 글은 여기 : http://tveye.tistory.com/2016

 

다닐 하름스(1905~ 1942)는 소련 아방가르드 작가로 부조리하고 그로테스크한 풍자 문학과 희곡을 썼다. 당의 기치에 어긋나는 작품을 쓴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출판을 금지 당했다. 1941년 패배주의적 선전을 유포했다는 죄목으로 레닌그라드에서 체포되었으며 이후 이송된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1942년 아사했다. 이 사람에 대해서도 전에 글을 쓴 적이 있다. 그건 여기 : http://tveye.tistory.com/54

하름스의 19세기 작가들에 대한 농담 글을 내가 번역한 것들은 여기 : http://tveye.tistory.com/55

 

뒤에 언급되는 게르만 스비제르스키는 서무의 슬픔 시리즈에서도 등장했다(그 무서운 크레믈린 아저씨!)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이따금 미샤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라라를 다루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사람들은 그를 아주 진지한 성격에 나이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보통은 맞는 말이었다, 특히 춤을 대하는 태도라면 미샤는 타협을 몰랐다. 하지만 친해지고 나자 다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에게는 아주 어린애 같은 면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사람들은 그걸 눈치 채지 못했다. 오랜 지인들도 마찬가지여서 예외는 파트너였던 지나이다 정도였다. 그녀는 백야 리허설 초기에 몽상가 역의 해석을 두고 내가 미샤와 열띤 논쟁을 벌였을 때 가만히 나를 불러 귀띔했다.

 

 그냥 여섯 살짜리 데리고 일한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가만히 놔두면 나중엔 알아들어요.

 

그 사실을 깨달은 후부터 나는 리허설 도중에 의견이 부딪칠 때마다 가능하면 그를 살살 달래는 쪽을 택했다. 미샤는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편이었지만 춤에 대해서는 자기 주장을 굽히는 것을 죽도록 싫어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 딸들을 다루는 방법을 썼다. 일단 그의 의견을 대폭 수용한 후 상냥하게 구슬리면서 논리적으로 설득하면 절반 이상은 타협에 동의했다.

 

일 년 쯤 지나자 미샤는 내 전략을 알아차렸지만 그렇다고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 방법의 효과가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미샤는 가끔 ‘아, 또 그 눈빛을 준비하고 있군. 어르고 달래서 다 들어주는 척 하면서 결국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어디 해봐, 갈수록 기술이 더 는다니까’ 라며 대놓고 말하기까지 했지만 결국은 잘 따라왔다. 그리고 농담도 종종 했는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데 있었다.

 

 

“ 그냥 원래 성격대로 살아, 이상한 농담 하지 말고. ”

 

“ 다들 착각하는데 난 그렇게 심각한 인간이 아냐. ”

 

“ 그것도 농담이지? 재미없는데. ”

 

“ 그런가. 어떻게 해야 하지. ”

 

“ 노력하지 마. 그럴수록 더 심각해지니까. 네 농담은 텍스트용이야, 문자로 변환해서 읽어봐야 무슨 뜻인지 안다고. 그건 스탈린 시절 작가들 식이야. 높은 분들 속을 뒤집어놓기 딱 알맞아. 끌려가거나 금지 조치 당하기 딱 좋아. ”

 

“ 그 시절이면 조셴코도 금지 당했는걸. 그 사람 농담은 엄청나게 재미있었는데. 다들 웃었는데. 아무도 내 얘기엔 안 웃어. ”

 

“ 아니, 넌 조셴코가 아니고 하름스에 가까워. 그러니까 그냥 포기해. 특히 높은 사람들 앞에서는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마. ”

 

“ 그 인간들 앞에서 춤추는 것보다는 나아. ”

 

 

데뷔 몇 년도 안 되어 이미 닳도록 국가 행사나 당 고위 간부들의 파티에 불려가는 데 이골이 난 상태였지만 미샤는 단 한 번도 그런 일을 내켜한 적이 없었다. 모스크바에서 함께 지냈던 1년 동안 내가 아는 것만으로도 거의 열 번 정도는 그런 행사에 불참했는데 핑계를 대거나 말 그대로 도망치는 등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다. 예외는 게르만 스비제르스키 정도였다. 그에게서 행사나 파티 호출이 오면 살인적인 스케줄이 잡혀 있을 때도 순순히 가곤 했다. 서기장을 제외하고는 가장 강력한 인물 중 하나인데다 미샤는 이미 오래 전 주니어 콩쿠르 당시부터 그의 아낌없는 후원을 받고 있었으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스비제르스키는 일 년에 서너 번 정도는 나도 불렀는데 정치적 악명과는 별개로 그자의 심미안만은 훌륭했고 특히 볼쇼이의 발레와 내 작품들에 대해서는 꾸준히 지지 입장을 표명하고 있었으므로 별다른 불편함은 느끼지 않았다. 그런 자리에 불려 가면 밝고 정중한 태도로 적당히 맞장구쳐 주고 작품이나 후원과 직접적 연관이 없는 내용이라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된다. 물론 그렇게 기분 좋은 건 아니지만 나는 언제나 이 모든 것이 일의 연장이라고 여겼다.

 

그 확고한 믿음, 엄밀히 말하자면 자기 최면은 꽤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나는 구제불능의 반항아이자 모든 종류의 당 행사와 노멘클라투라 파티 혐오자인 미샤에게도 이 방법을 전수해 주려고 했다. 그가 추락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반대파들에게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 권력자들로부터 미움을 살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무엇보다도 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만들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샤는 고개를 저었다.

 

 

“ 그건 일이 아냐, 그냥 그놈들 앞에서 아양 떠는 거지. 장식품, 애완견, 샴페인, 캐비아. 그런 거랑 똑같아. ”

 

“ 그냥 일인 척 하는 거야. 무대에 올라갈 때처럼. ”

 

“ 해봤어. 잘 안돼. ”

 

“ 노력하지 않았잖아. 안되진 않을 거야, 키로프에서도 그렇고 여기서도 너보다 연기력이 좋은 무용수는 없잖아. ”

 

“ 연기 엄청나게 하고 있어. 최대로. 안 그랬으면 다 때려 부수고 소리치고 사방에 토했을 걸. ”

 

“ 그래도 정말 제대로 된 관객들도 있잖아. 벨스키도 그렇고. 스비제르스키도 그 정도면 당 의원들 치곤 심미안이 상당히 좋으니까. 어쨌든 그 사람은 네가 데뷔하기 전부터 한눈에 재능을 알아봐 줬잖아. ”

 

“ 다시는 제 앞에서 그 이름 운운하지 마시죠, 스타니슬라프 리보비치. ”

 

 

우리는 열네 살 정도 차이가 났고 76년 초에 키로프에서 만났을 때는 안무가와 무용수라는 서로 다른 위치에 속해 있었지만 미샤는 내게 경어를 쓴 적이 없었다.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말을 텄고 서로를 애칭으로 불렀는데 둘 다 그게 편했다. 다가가기 힘들고 까다로운데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건방진 성격이라는 평판과는 달리 미샤는 처음부터 나와 잘 맞았다. 그는 건방지고 예의를 모르는 되바라진 꼬마가 아니라 내리누르는 권위와 무조건적인 위계질서를 견디지 못하는 애일 뿐이었다. 실제로 그 애는 키로프 상부나 세레브랴코프 같은 남자 선배들을 제외한 동료나 후배들과는 관계가 꽤 좋았다. 그리고 나 역시 후배들이나 무용수들을 엄격하게 휘어잡고 군기를 잡는 성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리는 아주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미샤가 나를 향해 경어도 모자라 이름과 부칭까지 깍듯하게 갖춰 부른다는 건 정말 화가 났다는 신호였다. 그는 스비제르스키를 매우 싫어했고 가능하면 그 이름을 언급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긴 그는 그 온건하고 교양 넘치는 인물, 정치인들의 기준에서 본다면 상당히 신사적이기까지 한 벨스키마저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당 관계자들이라면 거의 모두 싫어했다. 하지만 게르만 스비제르스키에 대한 그의 혐오는 훨씬 깊고 강렬한 것이어서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아마 오랫동안 알아왔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았다. 그 애가 스비제르스키를 그토록 혐오하는 진짜 이유를 알게 된 건 얼마 후였지만 우리는 단 한 번도 그 문제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

 

 

어쩌면 이 글을 발췌하게 된 것은 며칠 전 반말과 경어에 대해(http://tveye.tistory.com/4460), 그리고 자신의 상하관계 설정(http://tveye.tistory.com/4441)에 대해 끄적거렸던 메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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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