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어요. 수명이 다 됐는지 불이 잘 켜지지 않았어요. 핏핏거리며 파란 불꽃이 잠깐 번쩍이다 꺼져버렸어요. 미샤가 내 손에서 라이터를 받아들더니 한 번에 켜서 담배에 불을 붙여줬어요. 나는 라이터를 잘 켜는 남자를 좋아해요. 그런 남자들은 가스렌지에도 불을 잘 붙이죠. 보답으로 나는 그에게 한 대 피우라고 권했어요. 아, 좋아요, 좋아. 사실 그 사람이 담배 피우는 모습을 구경하고 싶었어요. 틀림없이 멋질 테니까요. 하잘것없는 놈들은 담배를 피워도 추접스러워 보이지만 잘생긴 남자들은 안 그래요. 그야말로 섹시하죠.
미샤는 고맙다고 하면서 담배를 받아들었어요. 사르바르나 손님들에게 하듯 내 담배로 불을 붙여주고 싶었지만 어쩐지 쑥스러워서 그냥 라이터를 건네주었죠. 그는 이번에도 불을 한방에 붙였어요.
우리는 난간 벽에 기대앉아 담배를 피웠어요. 시멘트 바닥을 깔고 앉은 채 등에 벽이 닿자 두려움이 가셨어요. 이제 떨어질 일이 없을 테니까요. 코끝에는 아직도 화약 냄새가 약간 남아 있었지만 담배를 깊이 빨아들이자 온몸을 어루만지는 듯한 특유의 그 알싸한 독기가 스며들면서 말보로 냄새로 바뀌었어요. 그러고 보니 이것도 바냐가 가져다준 거네요. 이제 말보로는 다 피우고 없어요. 그러자 미샤에게 내 마지막 말보로 한 대를 건네줬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아깝다기보다는 뿌듯했어요. 두 번째 모금을 더 깊이 빨아들였다가 내뱉으면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틈타 나는 미샤를 훔쳐보았어요. 역시 기대 이상으로 멋졌어요. 담배를 끼운 손가락도 길고 근사했고 연기를 빨아들였다가 천천히 뿜어내는 모습은 꼭 프랑스 영화배우 같았어요. 아니, 정말 영화배우인가? 바냐가 영화 어쩌고 하는 말도 해줬던 것 같은데. 아 맙소사, 모든 게 뒤죽박죽이에요. 그 애송이가 하는 얘길 좀 잘 들어둘걸.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 생각해서 무시했었거든요. 그러자 또 위장이 콕콕 쑤셨어요.
그런데 미샤는 두 모금밖에 피우지 못했어요. 기침을 심하게 했거든요. 세 번째로 빨아들였을 때 목에 걸린 듯 괴로워했어요. 프랑스 영화배우처럼 피운다는 말은 취소예요. 아까웠는지 담배를 버리지는 못하고 그대로 한 손에 쥔 채 한 손으로는 입을 막고 한참 기침을 했어요. 나는 모르는 척하고 계속 담배를 피웠지만 좀처럼 기침이 멎지 않자 그 사람 등을 가볍게 쓸어주면서 손에서 담배를 빼앗았어요.
“ 바보같이. 담배 피울 줄 모르면서. ”
미샤는 기침을 하느라 대답을 하지 못했어요. 하긴 말보로가 독하긴 하죠. 난 아직 반쯤 남아 있는 내 담배를 바닥에 비벼 껐어요. 가뜩이나 피우지도 못하는 담배를 빨다가 기침을 하는 사람에게 내 연기를 마시게 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아 맞다! 남자들은 이런 꼴 보여주는 거 엄청 싫어하는데. 그것도 여자 앞에서는. 괜히 담배를 줬나 봐요. 아앗, 그러고 보니 담배 못 피운다고 확인 사살까지 해버렸네요. 정말 난 왜 이 모양인지...
간신히 기침이 멎었을 때 미샤가 숨을 몰아쉬고는 바닥에 구겨서 버린 내 꽁초를 바라보며 아쉬워했어요.
“ 다 안 피웠는데. 나 때문에. ”
“ 그깟 말보로. ”
“ 말보로가 그깟인가? ”
미샤는 잔기침을 하면서도 웃었어요. 내 손에는 아직 담배가 한 개비 더 쥐어져 있었어요. 미샤가 세 번도 못 피우고 실패한 그 마지막 말보로. 나는 두근대는 가슴으로 한번 시도해보기로 했어요. 자기가 피우던 담배를 내가 입술로 가져가 마저 피워도 아무렇지도 않다면 그건 이 남자가 신호를 받아주는 거죠. 그러면 난 가만히 그의 손등을 쓰다듬을 거고 곧 더 아래로 손을 가져갈 거예요. 보통은 그렇게 하지요. 말을 하기 쑥스러워하는 남자들이 있거든요. 제대로 된 유혹을 받고 싶어 하는 남자들도 있고요. 대부분은 곧장 흥정을 하고 지퍼를 내리지만요.
미샤는 내가 자기 담배를 마저 피우게 내버려 두지 않았어요. 한 손을 뻗어 담배를 낚아챘거든요. 하지만 못돼먹게 거절한 건 아니었어요. 부드럽게 말했지요.
“ 감기에 옮을 거예요. ”
“ 정말 감기예요? 못 피우는 게 아니고? ”
“ 잘 못 피워요. 그래도 기침만 안 나오면 한두 개비는 괜찮은데. ”
신호가 통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조금 실망했지만 거짓말 같지는 않았어요. 아까부터 계속 기침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춤을 출 때부터. 그 춤을 본 게 벌써 한참 전의 일 같았어요. 꿈이었을지도 몰라요. 미샤는 고개를 돌리고는 다시 기침을 했어요. 그렇군요, 거짓말은 아니었어요. 가슴이 쿵쿵 울리는 기침이었거든요. 문득 걱정이 됐어요.
“ 감기 걸렸으면서 왜 한밤중에 나온 거예요? 옷도 이렇게 얇게 입고. ”
“ 좀 답답했거든요. 바람 쐬고 싶었어요. ”
하긴 그래요, 나도 사르바르 때문에 빡치고 가슴이 너무 갑갑해서 올라온 거니까요. 창문을 열 수도 있었을 텐데. 문득 나는 그가 제냐의 방에 있었을 거라고, 창문을 열어서 찬바람이 들어오면 제냐가 깰까 봐 신경이 쓰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냐와 내 방은 거의 완전히 똑같거든요. 기다란 직사각형 모양의 원룸 끝에 아주 좁은 베란다로 나가는 창문이 달려있어서 창을 열면 그대로 바람이 들어와요. 우리 층이랑 걔네 층은 주인이 같으니까요. 방 다섯 개짜리 코무날카 두 개를 조각조각 쪼개서 세를 놨는데 당연히 화장실과 샤워부스가 딸린 쪽이 더 비싸죠. 나는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샤워부스가 딸린 방에 살고 있어요. 차를 권하러 들렀을 때 보니 제냐네 방도 나랑 똑같았어요. 훨씬 더 썰렁하긴 했지만요. 아무래도 사내애가 사는 곳이고 제냐는 집에 자주 들어오는 것 같지도 않았으니까. 침대도 내 것보다 작았어요. 제냐는 그렇게도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데. 그 방에는 소파도 없었어요. 의자 몇 개랑 식탁만 있었죠. 아마 제냐는 그 좁은 침대에서 그 금발머리 리디야를 꼭 끌어안고 자곤 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