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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에 시작한 단편은 주말마다 꾸준히 조금씩 쓰고 있다. 너무 힘들 때는 몇 줄 못쓰고 지나갈 때도 있지만 그래도 간밤에는 집중해서 두페이지 이상 썼다. 예전같으면 하루에 10페이지, 20페이지 쓸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하루에 1페이지만 써도 괜찮은 상태이다. 아무래도 집중력과 체력도 예전같지 않고, 또 나이를 먹을수록 신경쓸 일이 많아지고 일에 치어 살다 보니 정말 쉽지 않다. 그래도 주말에는 가급적 나다니지 않고 최소한 하루에 한페이지 이상은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게으르지만 좋아하는 일에 대해서는 부지런하다고 해야 하나(하지만 총체적으로는 역시 게으르다 ㅎㅎ) 

 

 

 

이 단편은 1997년 4월 페테르부르크 변두리의 낡은 아파트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화자인 마냐는 매춘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여인으로 일년 전쯤 아파트 이웃인 게냐를 찾아왔던 미샤를 보고 홀랑 반했던 적이 있다. 이 글은 4월의 어느날 밤 옥상에 담배피우러 올라갔던 마냐가 미샤와 다시 마주치는 이야기이다. 별로 복잡하지 않은 플롯이지만 그렇다고 쓰는 것이 단순하지는 않다. 

 

 

 

 

 

 

 

 

제냐는 게냐의 좀더 흔한 애칭. 바냐는 게냐의 두살 아래 남동생이다. 게냐의 본명은 예브게니, 바냐의 본명은 이반이다. 게냐는 마린스키에 입단한 후 독립해서 이 아파트에서 원룸 스튜디오를 얻어 살고 있다. 형제는 사이가 별로 안 좋다. 리디야는 게냐가 전에 사귀었던 여자친구로 작년에 썼던 중편 <구름 속의 뼈>에서 여주인공으로 나왔었다(나중에 게냐를 차버리고 부자 노브이 루스키 비즈니스맨이랑 결혼했다) 발췌문에서 언급되는 '로켓'은 마냐가 미샤를 보고 첫눈에 반해서 붙여준 별명 중 하나. 게냐는 왕자님, 미샤는 로켓 + 섹스 사말룟이라 부른다.

 

 

 

아래 접어둔 발췌문은 마냐가 제냐(즉 게냐)와 바냐 형제, 그리고 게냐의 여친이었던 리디야에 대해 이야기하는 파트이다.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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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해하지 마세요, 그렇다고 내가 바냐랑 그렇고 그런 사이는 아니니까. 철저히 비즈니스죠. 바냐는 화대를 제대로 줬으니까요. 뭐 한두 번은 안 줬지만, 파나소닉 스테레오를 가져다줬으니까 괜찮아요. 바냐는 대가리에 피도 안 말랐던 시절부터 바실리 섬이랑 사도바야랑 모스콥스키 역 주변을 돌면서 복사판 비디오테이프랑 음악 테이프, 가짜 소니 워크맨이랑 중국산 머리핀 따위를 팔았어요. 분명 나한테 준 파나소닉도 가짜겠지만 바냐가 상표랑 지렁이 그림 같은 일본말이 적힌 설명서를 보여주면서 이건 진짜라고 얼마나 으스댔는지 그냥 믿어주기로 했어요. 지금은 뭔가 다른 비즈니스를 한다고 했는데 굳이 물어보고 싶진 않았어요. 작년까지만 해도 사도바야에 영업을 하러 가면 종종 스콜피언스나 디페쉬 모드 짝퉁 CD들에 손바닥보다도 작은 게임기를 좌판에 깔아놓고 있는 바냐랑 마주치곤 했었는데 요즘은 그 자리에서 본 적이 없으니 아마 다른 사업을 한다는 말이 맞을 거예요. 마약만 아니면 좋으련만. 아무래도 그쪽일 것만 같아요. 요새 젊은 애들은 다들 그쪽으로 빠지거든요. 어쩌다 봤던 바냐 주변 녀석들도 딱 그런 놈들인 것 같았어요. 제냐는 자기 동생이 그런 짓을 하고 다니는 걸 아는지 모르겠어요. 하긴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긴 하네요. 제냐는 벌써 몇 년째 윗집에 사니까 오가면서 자주 마주치긴 했지만 원체 자기 얘기라고는 하는 적이 없어요. 정말 하늘과 땅처럼 다른 형제라니까요. 제냐에 대해 내가 아는 거라곤 바냐랑 집주인에게서 들은 게 전부인 것 같아요. 제냐가 처음 이사 왔을 때 잘생긴 남자애니까 궁금해서 수위 아줌마네 집에 초콜릿을 들고 가서 물어봤거든요, 이라 아줌마는 키로프 무용수래. 월세 밀릴 일은 없겠지라고 했어요. 춤추는 애면 클럽이나 극장이나 그게 그거겠지 싶긴 했지만 제냐는 깎아놓은 듯 준수해서 나는 인사를 할 때마다 왕자님이라고 불러주었어요. 제냐는 낯간지럽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복도나 계단에서 마주쳤을 때 내가 말을 걸면 아예 씹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코앞에서 여자를 무시할 만큼 뻔뻔하거나 무례한 성격은 아니었어요.

 

 

 

 그 불여우 같은 금발 계집애가 들렀다 갔던 다음날엔가 바냐가 왔어요. 제냐네 문에 귀를 바짝 대고 있는 걸 발견했죠. 좀도둑인 줄 알고 사르바르를 부를까 하고 있는데 이 녀석이 날 보더니 자기가 제냐 동생이라면서 엄청 잘빠진 금발 미인 못 봤냐고 묻더라고요. 보긴 봤는데 점심때 제냐랑 같이 나갔다고 했더니 지저분한 욕지거리를 쏟아냈어요. 그러더니 나한테 얼마야? 한번 하자라고 들이댔어요. 아니, 난 그때는 안 했어요. 척 봐도 아직 학교도 졸업 안 한 꼬맹이였거든요. 나이가 덜 찬 게 문제가 아니고 돈이 없을 게 뻔하니까요. 몇 달쯤 후에 바냐가 다시 나타났는데 그때는 아파트 현관에서 제냐와 다투고 있었어요. 제냐가 언성을 높이는 건 그때 처음 봤어요. 뭣 때문에 싸우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제냐는 굉장히 화가 나 있었어요. 그때 그 금발 계집애가 현관으로 내려왔어요. 아 맞아, 이름이 리디야였어요. 게냐는 리도츠카라고 불렀던 것 같아요. 리디야가 어머, 안녕. 오랜만이네, 바냐하면서 뺨에 뽀뽀를 해주자 바냐는 목덜미까지 시뻘개졌어요. 제냐는 골치 아픈 애새끼랑 빨리 떨어지고 싶었는지 여친의 팔짱을 끼고 안뜰을 가로질러 나가버렸어요. 바냐는 부루퉁해져서 돌부리를 툭툭 걷어차다가 나랑 눈이 마주쳤어요. 그리고는 또 말했죠. ‘한번 해, 나 돈 있어라고요. 그때 왜 내가 해줬는지 잘 모르겠어요. 아마 꼬마가 좀 불쌍해 보여서 그랬는지도 몰라요. 그래도 흥정부터 먼저 하고 달러를 받아냈지요. 공짜로 해주는 건 예외 중의 예외에요. 그러니까 내가 제냐한테 한 번쯤은 공짜로 해줄 수 있다고 한 건 정말 엄청난 호의였다고요. 로켓이야 뭐 내가 몸이 달아서 절로 하고 싶었던 거니까 완전히 다른 얘기고요. 어쨌든 제냐는 나한테 한 번도 오지 않았어요. 하긴 제냐 같은 애라면 굳이 창녀를 찾아가지 않아도 여자들이 넘쳐나겠죠. 바냐는 경험은 별로 없는 녀석이었지만 엄청 잘난 척 센 척했죠. 원래 볼품없는 남자들이 꼭 그래요. 하여튼 그때부터 바냐는 이따금 들르곤 했어요. 제냐한테는 말 안 했어요. 뭐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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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들은 마냐랑 게냐가 사는 아파트가 있는 동네 근처라고 설정한 곳. 아브보드느이 운하와 엘리자로프스카야 지하철역 근방이다. 이 근처에는 임페리얼 포슬린(로모노소프 도자기) 공장과 헌책시장이 있다. 2016년 12월에 도자기 공장의 샵에 구경갔을 때 찍었던 사진들. 주변이 매우 황량하다. 이 글의 배경이 되는 97년에는 더 그랬을 것이다. 게냐는 여기 있는 자기 원룸과 도심의 판탄카 운하변에 있는 미샤의 집을 오가며 살고 있다. (물론 미샤네 집은 아름다운 옛날 건물 + 내부 리노베이션이 되어 있는데다 기다란 판탄카 운하 중에서도 특히 풍광이 근사한 쪽에 있어서 이쪽 동네와는 하늘과 땅 차이)

 

 

게냐와 동생 바냐, 그리고 마냐에 대한 이야기는 전에 올렸던 중편 <구름 속의 뼈> 파트 4, 5에 나온다. 1~3은 게냐와 리디야(리다)에 대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편의 링크는 여기. 파트3~5는 암호를 걸어두었다. (파트 2 끝에 나옴)

 

moonage daydream :: 구름 속의 뼈 (Part 1) (tistory.com)

 

구름 속의 뼈 (Part 1)

이 글은 작년 한 해 동안 조금씩, 꾸준히 썼다. 약 100페이지 가량이고 호흡도 조금은 더 긴 편이라 단편이라고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아서 그냥 중편이라고 부르고 있다. 제목은 '구름 속의 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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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냐랑 마냐네 동네 사진 몇 장 더 올리고 마무리. 이때가 날씨가 워낙 안 좋기도 했지만... 역시 우중충 ㅠㅠ 이때는 아이폰 6s를 쓰던 시절. 

 

 

 

 

 

 

 

 

 

 

 

 

 

 

지난번에 발췌했던 이 글의 다른 파트는 여기

 

moonage daydream :: 쓰는 중 : 옥상의 마냐, 춤추는 로켓 (tistory.com)

 

쓰는 중 : 옥상의 마냐, 춤추는 로켓

여름에 알리사와 코스챠의 단편을 마친 후 좀 가벼운 소품을 쓰고 싶었는데 출근 지하철 안에서 간단한 이야기가 하나 떠올랐다. 여행을 다녀온 후 쓰기 시작했는데 몇 페이지 쓰다가 문체를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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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