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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1. 4. 22:37

쓰는 중 : 옥상의 마냐, 춤추는 로켓 about writing2023. 11. 4. 22:37

 

 

 

 

 

 

 

 

여름에 알리사와 코스챠의 단편을 마친 후 좀 가벼운 소품을 쓰고 싶었는데 출근 지하철 안에서 간단한 이야기가 하나 떠올랐다. 여행을 다녀온 후 쓰기 시작했는데 몇 페이지 쓰다가 문체를 바꾸느라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서 아직 진도는 많이 나가지 못했다. 플롯 자체는 다 짜 놓았는데 조금 두툼하게 갈지 아니면 얇고 투명하게 갈지 확정은 하지 않았다. 양쪽 모두 가능한 이야기라서. 

 

 

 

 

 

배경은 1997년 4월, 페테르부르크. 작년에 썼던 중편인 <구름 속의 뼈>에서 주인공 게냐가 따로 나와 살고 있는 아브보드느이 운하와 엘리자로프스카야 지하철역 근처의 허름한 아파트이다. 이 단편의 주인공이자 화자는 <구름 속의 뼈>에서 아주 잠깐 등장했던 게냐의 이웃 주민인 마냐이다. 마냐가 등장했던 씬은 예전에 발췌한 적이 있다. 게냐에게 찾아온 미샤를 보고 한눈에 반해서 섹스 사말룟, 로켓 운운하며 호들갑을 떨었던 여인이다. 링크는 여기.

 

moonage daydream :: 마냐와 허브 차, 로켓, 아리나 프로호로브나를 위한 숄 (tistory.com)

 

마냐와 허브 차, 로켓, 아리나 프로호로브나를 위한 숄

역시 작년 말에 끝낸 중편의 일부 발췌. 마지막 파트의 초입부이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게냐는 엘리베이터가 고장나서 계단으로 자기 방까지 걸어올라가고 이웃 여자 마냐와 마주친다. 제냐

tveye.tistory.com

 

 

 

 

 

 

이 글은  <구름 속의 뼈>보다 몇달 전인 봄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발췌문에 언급되는 사르바르는 마냐의 기둥서방이자 깡패. 사밀, 바키르는 사르바르와 같은 패거리들. 제냐는 예브게니의 일반적 애칭이다. 즉, 이 이야기에서는 게냐. 게냐는 이 아파트에 이미 몇년 동안 살고 있는 터라 마냐와도 안면이 있다. 바냐는 게냐의 남동생이다. 그리고 로켓, 혹은 섹스 사말룟으로 지칭되는 인물은 미샤이다. 마냐가 이 사람을 섹스 사말룟이나 로켓이라 부르는 이유는 예전에 발췌한 <구름 속의 뼈>의 에피소드에... 

 

 

 

 

앞부분에 있어 좀 생략되긴 했지만 깡패 사르바르와 한바탕 싸운 마냐는 새벽에 담배 피우러 옥상에 올라간다. 그리고 로켓을 발견한다. 이야기는 아래 접어둠. 아주 약간의 비속어가 포함되어 있다.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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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망할 놈의 사르바르 깡패놈이 손바닥을 펴지도 않고 주먹을 휘둘러 가지고 윗입술이 퉁퉁 붓고 아랫입술이 터졌어요. 그나마 이빨은 멀쩡해서 다행이지요. 근데 아까는 괜찮은 줄 알았는데 지금은 왼쪽 송곳니 아래가 선뜩선뜩해요, 혀로 슬며시 밀어보니 뿌리가 좀 흔들리는 것 같아요.

 

 

 

 

 사르바르는 내가 피범벅된 입술을 휴지로 문대면서 어쩔 거야, 이 씹새끼야! 성형해주든지 며칠은 수금 포기하셔!’라고 악을 쓰자 중얼중얼 욕설을 주워섬기다 갑작스럽게 풀이 팍 죽어서 나가버렸어요. 취해서 그런 거예요, 정말 그놈의 술이 웬수지. 내가 그 깡패놈을 변호하는 건 아니에요, 그치만 사르바르는 제정신일 땐 절대로 면상을 후려갈기는 적은 없어요. 홀딱 벗고 호객을 할 수는 없으니 상판대기는 최소한 멀끔하게 유지하게 놔둬야 한다는 것쯤은 잘 아니까. 분명히 사밀이나 바키르, 아니면 그 윗대가리한테 제대로 갈굼 당하고 빡쳐서 술을 퍼마셨던 거예요. 자기 형님들 앞에선 설설 기면서 꼬봉들과 기집년들 앞에서만 잘난 척 주름잡고 삥뜯고. 근데 뭐 그건 사밀과 바키르도 똑같을 게 뻔해요. 이놈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지 다 비슷비슷하거든요.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여드름쟁이 바냐도 마찬가지니까요. 문득 나는 제냐를 떠올렸어요. 왕자님처럼 번듯한 척 하지만 그 녀석도 당연히 학교나 극장에서 기합을 받았겠지요. 사내자식들이 모이면 어딜 가나 군대나 깡패 소굴이 되니까요. 하지만 제냐가 군기를 잡히는 것을 상상하자 모든 사내놈들이 앞뒤가 볼록 튀어나온 하얀 타이츠를 입고서 삿대질을 하는 광경이 떠오르며 갑자기 웃음이 나왔어요. 바냐는 타이츠 입은 사내놈들은 모두 호모 새끼인데다 징그럽기 짝이 없다고 얼마나 욕을 했는지 몰라요. 나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굳이 그런 간지러운 꼴을 보러 심지어 돈까지 들여가며 극장에 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어요. 그치만 제냐가 타이츠를 입은 모습은 좀 보고 싶었어요. 어쨌든 준수한 녀석이니까요. 제냐는 다리가 어찌나 늘씬한지 청바지를 입고 지나갈 때면 나도 모르게 앞뒤를 훑어보게 되지요.

 

 

 

 

 

 하지만 그런 제냐조차 이 로켓에게는 비교가 되지 않았어요. 바냐는 로켓이 아주 더러운 놈이라고, 타이츠 입은 놈들과 한패인데다 심지어 입었을 때보다 벗었을 때가 더 많았다고 떠들어댔지만 난 그 애송이 자식 말은 한마디도 믿지 않아요. 믿고 싶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는 거예요. 특히, 눈앞에 그 멋쟁이가 발사 직전의 로켓처럼 온몸을 오므렸다 길게 뻗으며 쭉쭉 늘어나고 있을 때는, 새까만 어둠 속에서 두 눈이 가스렌지에 당겨놓은 불꽃처럼 새파랗게 활활 타며 반짝거릴 때는. 분명 그 사람을 오후 햇살 속에서 봤을 때는 새까만 눈이었는데, 너무 까맣고 예뻐서 한밤중 같다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 어둠 속에서는 새파랗게 보였어요. 까만 불, 파란 불 어느 쪽이든 너무 근사해서 머리가 어지러웠어요. 그 사람은 춤을 추고 있었어요. 어찌나 높이 뛰어오르는지 바닥에 발이 닿지도 않는 것 같았어요. 공중에서 저렇게 빙그르르 돌 수 있다니, 난 어릴 때 아빠랑 페쟈, 안카랑 같이 서커스를 보러 간 적이 있어요. 공중그네 타던 여자랑 남자가 저렇게 곡예를 했었죠. 하지만 이건 걔들과는 차원이 달라요. 그는, 뭐랄까, 온몸에 불이 확 붙어서 어둠 속으로 높이, 아주 높이 떠올라 계속 날아가는 것 같았어요. 두 팔은 날개처럼 보였고 다리는 허공을 가르는 물살 같았어요. 분명히 날고 있었지만 새나 나비처럼 보이지도 않았어요. 어쩌면 아빠가 바이코누르에서 장난감 로켓을 사왔던 건 바로 이런 광경을 봤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그 사람이 어둠 속에서 머리를 뒤로 젖힌 채 두 팔을 뒤로 하고 팽이처럼 돌았을 때, 멈추지도 않고 또다시 휙 뛰어올랐을 때 가슴이 두근거리고 목구멍으로 뭔가가 차오르고 이상하게 코가 아프면서 눈가가 뜨거워졌어요. 저게 춤이구나,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어요. 이제껏 춤이라는 걸 제대로 본 적이 없었어요. 디스코텍이야 자주 갔었지만 그거랑은 완전히 달랐어요. 이런 게 춤이라면 제냐에게 표를 달라고 해볼 걸 그랬나 봐요.

 

 

 

 

 

 나는 완전히 홀린 채 로켓이 춤추는 모습을 구경했어요. 숨어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저 옥상 문 입구에 꼼짝 않고 서 있었을 뿐이에요. 옥상에는 로켓과 나 외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새벽 두 시였고 4월이었지만 아직 한밤중에는 추워서 술을 퍼마시고 놀아나거나 마약을 찌르는 애송이들이 활약하기엔 좀 이른 시기였으니까요. 로켓은 내가 있다는 걸 전혀 모르는 것 같았어요. 그 사람이 뛰어오를 때마다 얼마나 높이, 멀리 올라가는지 자칫 난간을 넘어가 떨어질까 봐 심장이 두근거리고 무서웠어요. 하지만 그게 너무 멋져서 붙잡거나 말릴 마음이 나지 않았어요. , 뛰어오르기만 한 건 아니에요, 내려올 때면 팔과 다리를 비스듬하게 틀면서 천천히, 아주 부드럽게 돌았어요. 움직일 때마다 소매와 옷자락이 하얀 날개처럼 펄럭였어요. 어쩌면 옥상 구석에 딱 하나 달려 있는 가로등 램프와 옆 건물의 창문들에서 반사된 불빛 때문인지도 몰라요. 달빛이라면 더 좋았겠지만 저녁에도 비가 왔고 하늘이 흐려서 달 같은 건 보이지 않았어요.

 

 

 

 

 

 

 

 

 

 

 

 

 

..

 

 

 

 

 

 

사진은 몇년 전 페테르부르크 317주년 기념으로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가 모이카 운하변의 켐핀스키 호텔 옥상에서 찍은 것. 예전에 그 영상 클립을 올린 적이 있다. 아래에 다시 올려본다. 물론 마냐네 아파트는 이렇게 도심의 아름다운 운하변이 아니라 변두리의 공장지대에 있고 시간적 배경도 4월 한밤중이라 어두컴컴하고 훨씬 황량했겠지만 :) 미샤가 옥상에서 추는 춤도 이런 타입은 아니지만 그래도 글만 있으면 좀 심심하니까 (어쨌든 멋있는) 슈클랴로프 사진이랑 영상을 같이 올려봄. 

 

 

 

 

 

 

 

 

 

 

 

 

 

 

 

 

 

저때 슈클랴로프님 사진 한 장 더. 영상도 사진도 다 멋진데 이분도 수염에 대한 로망이 있는지 이렇게 면도를 안 하고 춤을 추셔서 조금 슬펐던 기억이 난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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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