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11

« 2024/11 »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에 해당되는 글 48

  1. 2019.11.05 얼음과 빛 속의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에서
  2. 2019.03.03 잿빛의 페테르부르크
  3. 2019.02.15 아주 파랗고 아주 금빛
  4. 2018.07.17 한겨울 얼어붙은 네바 강변 산책
  5. 2017.10.08 10.7 토요일 밤 : 사계(일리야 쥐보이 안무) 짧은 메모, 드디어 산책, 수프 비노, 많이 큰 레냐
  6. 2017.09.20 안녕 물과 돌의 도시, 빛과 얼음의 도시 4
  7. 2017.03.05 모스크바에 있는 것들, 오직 불길 23
  8. 2017.03.02 창백한 푸른빛과 황금빛, 물과 얼음의 도시 2
  9. 2016.12.11 겨울날 아름다운 페테르부르크 풍경 2
  10. 2016.10.20 흑해의 여름, 춤추는 아이, 달빛 아래의 레나 46
  11. 2016.08.17 전락, 어둠, 두 개의 메모, 내가 생각했던 세 가지 정점 - 아마 지금도 유효할 듯 40
  12. 2016.08.13 추웠을 때 사진 보면서 더위 쫓는 중 6
  13. 2016.05.13 한겨울의 찬란한 페테르부르크 하늘과 네바 강의 유빙, 새 4
  14. 2016.03.17 눈과 얼음, 사원과 그림자
  15. 2016.02.26 한겨울, 많은 빛과 함께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산책
  16. 2016.02.12 눈밭 얼음밭 그림자들
  17. 2016.01.09 백야의 페테르부르크, 일광욕하는 사람들, 많은 빛
  18. 2015.10.15 빛과 그림자
  19. 2015.10.08 노는 아이들 2
  20. 2015.09.30 반짝이는 강물과 금빛 사원 종루,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에서 2
  21. 2015.09.15 가을 아침,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와 네바 강의 오리 4
  22. 2015.09.14 월요일엔 언제나 한가롭게 쉬고 싶다..
  23. 2015.08.17 코류슈카, 페테르부르크 명물 생선 튀김 얘기 4
  24. 2015.08.16 페테르부르크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
  25. 2015.08.15 눈과 얼음의 나라 러시아 사진 몇 장 더 2

 

 

 

몇년 전 사진첩에서. 2015년 2월. 페테르부르크. 무척 추운 날이었지만 대신 하늘이 파랗고 맑았다. 네바 강을 건너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까지 걸어갔고 오전 내내 산책했던 날이었다. 이런 겨울 날씨는 좋다.

 

 

 

 

 

꽁꽁 얼어붙은 네바 강과 그 너머로 보이는 해군성 건물, 이삭 성당, 등대 등 페테르부르크 랜드마크들. 조그맣게 보이는 실루엣들은 얼어붙은 강을 걸어서 건너가는 사람들. 위험하니 얼음 위로 나가지 말라고 표지판이 여기저기 있건만 다들 그냥 막 강 위로 걸어나간다.

 

 

나는 빛이 가득한 겨울이 습기찬 여름보다 더 좋다. 물론 해가 일찍 지는 것은 싫지만.

:
Posted by liontamer
2019. 3. 3. 01:00

잿빛의 페테르부르크 2017-19 petersburg2019. 3. 3. 01:00



밝고 선명한 색채를 좋아하기 때문에 페테르부르크 폴더에 백야나 한겨울, 석양이나 황혼녘 등 빛의 아름다움이 두드러진 사진들을 올리는 적이 많긴 하지만, 사실은 이 도시 날씨가 원체 우중충하고 비가 자주 오기 때문에 이렇게 잿빛으로 물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뭐 이것 역시 이 도시다운 풍경이라 나름대로 매력이 없는 건 아니다만 그래도 역시 햇살이 날 때가 훨씬 좋은 건 어쩔 수 없다. 



이런 날씨가 가장 흔하지만, 또 이렇게 꾸무룩한 날씨엔 보통 비가 오락가락 내리기 때문에 오히려 사진은 별로 안 찍게 된다. 이 날은 재작년 10월 초였는데, 이 동네에서 일년 중 통틀어 젤 날씨 안 좋은 시기가 바로 이 때이다. 휴가 내서 날아갔는데 머무는 내내 비가 왔다. 딱 이 날만 비가 안 오고 약간 파란 하늘이 보여서 카메라 들고 나가서 해군성 공원, 청동기사상, 네바 강변, 에르미타주, 그리보예도프 운하, 모이카 운하 등등 빙빙 돌며 산책했는데 역시나 중간중간 또 비가 오락가락했었다. 흐흑... (이날 나때문에 료샤랑 레냐도 안 좋은 날씨에 산책했음)



그래도 돌아오고 나면 그 순간들마저 그리워진다. (아니야, 꾸무룩한 날씨는 빼고 ㅠㅠ)








이때 갑자기 파란 하늘이 쫌 나타나서 사진 찍으며 좋아했지만... 1분도 안되어 다시 먹구름으로 가득차고 우중충해졌다.




'2017-19 petersbur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선 나누기  (0) 2019.03.15
10월의 운하  (4) 2019.03.11
판탄카를 따라 걷다가  (2) 2019.02.26
내가 사랑하는 빨간 차양들  (0) 2019.02.25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수도원  (2) 2019.02.25
:
Posted by liontamer
2019. 2. 15. 23:50

아주 파랗고 아주 금빛 russia2019. 2. 15. 23:50

 

 

여름의 페테르부르크는 이렇게 강렬하고 선명하게 빛난다. 아주 파랗고 또 아주 금빛으로.

 

하지만 깊은 밤으로 접어들면 백야의 보라색과 핑크색, 붉은색과 형용할 수 없이 부드러운 색채들이 도처를 뒤덮는다. 그래서 백야의 페테르부르크는 낮이고 밤이고 산책하기 좋다.

 

사진은 2015년 7월에 갔을 때.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에 산책하러 가서 찍음. 네바 강과 요새와 사원 첨탑. 하늘. 그리고 수면을 가르며 지나가는 배들.

 

 

 

 

 

 

'russi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얼음과 빛 속의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에서  (0) 2019.11.05
에르미타주 박물관 내부 사진 몇 장 + 료샤, 창 너머로 네바 강이 보이면  (4) 2019.10.02
백야 3  (0) 2019.01.31
백야 2  (0) 2019.01.27
백야  (0) 2019.01.27
:
Posted by liontamer
2018. 7. 17. 23:26

한겨울 얼어붙은 네바 강변 산책 2016 petersburg2018. 7. 17. 23:26




오늘도 더위에 허덕이다 추웠을 때 사진으로 눈 식히는 중. 



2016년 겨울. 페테르부르크. 오후 3시 즈음(석양 무렵임 ㅠㅠ) 얼어붙은 네바 강변 따라 산책하며 찍은 사진 몇 장. 강의 얼음을 보니 빙수 먹고프다 ㅠㅠ








꽁꽁꽁! 눈과 얼음의 겨울나라!!!


:
Posted by liontamer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 내일 하루만 더 지내고 나면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야 한다. 생각하니 괴롭구나.



낮 열두시 마린스키 신관 발레 공연 티켓을 끊어두었었다. 료샤와 레냐도 갈까 했었는데 이것도 현대 발레이고 또 레냐가 보기에는 너무 플롯이 없어서(사실 레냐보다 료샤가 걱정 ㅋ) 그냥 나 혼자 보러 가기로 했다. 대신 내일 낮 공연은 불새니까 레냐도 볼만해서 같이 가기로 함.



아침에 보니 파란 하늘이 손톱만큼 보였다.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지만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다.



극장에 갔는데 하늘이 보이기 시작해서 부디부디 공연 끝나고 나와서도 날씨가 개어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 제바아아알... 네바 강변 한번이라도 걷게 해주세요오오... 아직 청동기사상도 보러 못 갔다고요...



오늘 공연은 마린스키 무용수이자 젊은 안무가인 일리야 쥐보이가 안무한 현대발레 '사계'(THE FOUR SEOSONS)였다. 작년 여름에 젊은 안무가 워크숍 공연에서 쥐보이가 Seasons란 제목으로 이 발레의 초안을 올린 적이 있었다. 그때는 2~30분 정도였던 것 같다. 당시에도 막스 리히터의 음악과 쥐보이의 안무가 잘 어우러져서 느낌이 괜찮았었다. 극장에서도 그렇게 여겼는지 2막짜리 발레로 전곡을 써서 안무하게 해주었고 몇달 전 초연을 했었다.




내가 리히터를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쥐보이의 안무도 우아하고 감성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에 와서 본 세가지 공연 중 오늘 공연이 제일 맘에 들었다. 그러니까, 프렐조카주의 Le Parc보다는 쥐보이의 이 작품이 좀더 내 취향이었다. 물론 주역을 춘 무용수가 예카테리나 콘다우로바이기도 했지만. 하여튼 오늘 공연은 꽤 좋았다.

(커튼콜 사진은 다 번져서 안 올린다... ㅠㅠ 3층 앞줄에 앉아서 너무 멀기도 했고 조명이 너무 밝았다 ㅠㅠ)



..



공연을 보고 나왔는데... 빗방울이 약간씩 떨어지고 있었다. 흐흑... 료샤랑 레냐가 기다리고 있었다. 차를 타고 호텔 앞으로 왔는데 그때 다시 개면서 하늘이 보였다. 나는 '아아... 하늘이 보여, 제발 네바 강변을 산책하자' 라고 징징거렸다.



우리는 해군성 공원을 지나 청동기사상 쪽으로 갔다.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지만 저 멀리에는 파란하늘도 좀 보였다. 표트르에게 인사한 후 길을 건너 네바 강변을 따라 거닐었다. 아아... 그래도 네바 강변 걷긴 하는구나 엉엉... 석양 보는 거라면 더 좋겠지만 엉엉 이게 어디야...










네바 강변을 쭉 따라 걷다가 에르미타주 쪽으로 틀었다. 궁전광장으로 가니 오늘이 바이커 축제일이었다. 그래서 광장에 수많은 오토바이들 집결. 가죽점퍼의 라이더들 우글우글. 내가 또 이런 걸 좋아해서(ㅋㅋ) 넋놓고 그 해골과 가죽 패션과 멋있는 오토바이들을 보고 있는데 료샤가 '야!' 하면서 날 확 잡아끌었다. 사람 많은데 들어가면 밟힌다고 ㅋㅋ 레냐는 '쥬쥬가 좋아하는 해골 옷이 많아!' 하고 소리를 쳤다 ㅋㅋ



..



그런데... 아틀라스 발을 만지며 소원을 빌고 막 내려오는 순간부터 빗방울이... 아니야 아니야... 나는 이 사실을 필사적으로 부정하고 싶었지만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비와서 카메라 집어넣고 폰으로 찍음. 우중충해진 거리 ㅜㅜ)




료샤의 차는 호텔 앞에 세워두었으므로 그리로 가야 했다. 그러나 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또 금방 그치지 않을까? 우리 그리보예도프 운하 따라 조금만 걸으면 안될까?' 하고 불쌍하게 부탁했다. 료샤는 툴툴댔지만 레냐는 '그래그래!' 하고 내 손을 잡아끌었다.




우산 쓰고 그리보예도프 운하 쪽을 따라 걸어가는데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 앞에서 비가 또 그쳤음. 그래서 우리는 미하일로프스키 정원을 좀 산책했고 다시 운하를 따라 나왔다. 나온 김에 좀더 걸어서 카잔 성당 쪽을 지나서 수프 비노에 갔다. 여기는 전에 bravebird님이 소개해주셔서 알게 된 곳인데 목소리가 다정하고 매력적인 알렉세이가 있는 곳이다. 료샤랑은 안 갔었다. (알렉세이 얘기하면 또 쿠사리 줄 게 뻔해서 ㅋ) 하지만 레냐랑 료샤도 배가 고프다 했고 나는 극장에서 먹은 빵 한조각 파인애플 몇조각이 전부라 정말 배가 고팠다. 수프 비노는 음식이 맛있고...



알렉세이가 있을까 궁금해하며 쭉 걸어서 수프 비노에 갔다. 그런데 슬프게도 알렉세이가 없었고 모르는 남자가 있었다. 생각해보니 전에도 알렉세이는 주말에는 근무를 안했던 것 같음 ㅠㅠ 알렉세이 말고도 안면 있는 점원이 두엇 있긴 한데 오늘 가게 보던 남자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아는 얼굴이었음 알렉세이에게 안부 전해달라고 하고팠는데 ㅠㅠ





하여튼 배고프고 너무 지쳐서 생강 레모네이드랑 치킨 수프랑 해산물파스타를 주문했다. 료샤는 핀란드식 우하(크림이 들어가는 생선수프. bravebird님이 여기 핀란드 우하를 좋아하심. 내 입맛엔 조금 짠 편이라 나는 치킨수프가 더 좋았다), 탕수치킨 비슷한게 곁들여진 볶음밥을 시켰고 레냐는 버섯파스타를 시켰다. 수프는 나랑 나눠먹었다. 이곳의 치킨 수프는 긴 쌀이 가득 들어 있고 무척 따뜻해서 꼭 닭곰탕에 밥 말아먹는 기분이라 몸이 따뜻해진다. 작년 여름에 너무 힘들때 여기서 그 수프 먹고 감동받은 기억이 있다.... 그때 음식을 별로 못 먹던 때였는데...



료샤도 레냐도 음식이 맛있고 분위기도 좋다고 했다. 료샤는 보통 이렇게 조그만 카페 같은 음식점엔 잘 오지 않는다(여기는 테이블이 5개 뿐이고 아주 작다) 사실 덩치 큰 료샤가 앉기에는 의자도 좀 좁은 편이었지만 음식이 맛있고 음악도 좋다면서 의외로 좋아했다. 다 먹은 후 레냐를 위해 치즈케익을 시켜주었다. 작년에 먹었을때 맛있었던 기억이 나서. 레냐는 무척 좋아했다.


..



나와서 걸어나오다 카잔 성당 앞 벤치에 앉아 잠시 쉬었다. 분수를 보면서. 오래전 미샤가 등장하는 illuminated wall 단편은 이 장소를 배경으로 시작되어 궁전광장의 원주 아래에서 끝난다. 레냐는 작년에 내가 이 분수 앞 벤치에 앉아 그 단편 이야기를 해준걸 기억하고 있었다. 벤치에 앉는데 레냐가 '쥬쥬가 쓴 글에서 미샤랑 레냐-자기랑 이름 똑같아서 잘 기억함-가 여기서 만났어 그치. 레냐가 여기서 아이스크림 먹었어 그치?' 하고 갑자기 떠올려서 반갑고 귀여웠다.





(그 단편에서 화자인 레냐는 이 벤치 중 하나- 잘 보면 오른쪽의 분홍색 옷 입은 분 앉아 있는 저 벤치-에 앉아 책 읽고 있는 미샤와 마주친다)





분수를 보고 있는데 아까 궁전광장에 모여 있던 바이커들이 우르르 몰려 지나갔다. 네프스키 대로를 꽉 채웠고 차들이 다 멈췄다.



우리는 엘리세예프스키 상점에 가서 과자들과 케익 구경을 했다. 뭘 사지는 않았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호텔 쪽으로 돌아왔다. 료샤는 항상 차를 가지고 다니므로 버스를 타는 일이 거의 없다. 심지어 버스 요금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있어 나랑 레냐가 '바보!' 하고 소리쳤다. (버스 요금이 작년 겨울보다 더 올라서 지금은 40루블임)



호텔 로비에서 잠시 쉬었다. 나는 석양을 보고팠지만 흐려서 실패했다. 대신 황혼녘의 모이카 운하를 좀 거닐었다. 중간에 레냐가 다리 아프다고 했다. 나도 다리가 아팠다. 오늘 많이 걸었다. 나 때문에 어린 레냐가 많이 걸어서 미안해졌다. 안아주고 싶었지만 이제 레냐는 내가 안기에는 너무 크고 무겁다. 곧 나만큼 커질 것이다. 료샤는 예전같으면 레냐를 안아주거나 업어주었겠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이제 다 큰 소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레냐도 이제 '아빠, 다리 아파 업어줘'라고 떼를 쓰지 않는다. 그냥 '다리 아프다, 좀만 쉬었으면' 이라고 말한다. 레냐는 많이 컸다...



내가 '레냐야 미안해. 내가 오랜만에 뻬쩨르 와서 산책하고 싶었는데 너무 많이 걸었나봐. 다리 많이 아프지?' 라고 묻자 레냐는 '나는 금방 안 아파져! 나는 건강해!' 하고 소리치더니 갑자기 '쥬쥬가 집에 안 갔으면 좋겠어. 그러면 맨날 이렇게 같이 걸을 수 있는데. 그러면 하루에 이렇게 많이 안 걸어도 되는데' 라고 한다. 레냐는 빵긋빵긋 웃으며 그렇게 말했는데 나는 갑자기 그 말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꾹 참았다.






..




우리는 방에 돌아왔다. 레냐는 많이 걸어서 피곤했는지 침대로 기어올라가 살풋 잠이 들었고 나는 료샤와 소파에 앉아(방 업그레이드해준 거 다시 생각해도 참 좋다 ㅋㅋ) 얘기를 좀 나누었다. 감자칩과 하리보 젤리를 깔아놓고 석류 주스를 마셨다. 료샤는 맥주 마시고 싶어했지만 레냐 태우고 운전해야 하므로 나와 주스 나눠마셨다. 그는 몹시도 맥주를 마시고 싶어했다. 그래서 '에이. 여기 방 하나 잡아서 자고 갈까' 하고 정말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는 정말 방을 잡았다. 아니... 여기는 무려 아스토리야 호텔인데... 운전 안하고 맥주 마시고프다는 이유로 즉석에서 방 잡아서 자고 갈 수 있는 부르주아 녀석이 부럽구나... 나는 여기 묵어보려고 환불도 안되는 가장 저렴한 요금 간신히 찾아서 그나마도 큰맘먹고 예약한 거였는데...



료샤는 나보고 오늘 얼마나 걸었는지 확인해보라고 했다. 앱을 보니 8.8킬로나 걸었다. 많이 걸었다. 나는 극장도 갔었기 때문에 료샤랑 레냐보다 더 많이 걸었던 것이다. 료샤는 나에게 몸살날지도 모르니 자라고 했다.



우리는 좀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료샤는 레냐를 살살 깨웠다. 레냐가 집에 가기 싫다고 막 울려는데(이럴땐 아직 아기 같음 ㅋㅋ) 료샤가 아래층에서 자고 갈거라고 하자 '쥬쥬도?' 하고 빵끗 웃는다 ㅋㅋ 아니야 레냐야. 나는 여기서 자고 너는 아빠랑 다른 방에서 자는 거야 ㅋㅋㅋ



료샤랑 레냐는 아래층에 자러 가고 나는 씻고 나와 오늘의 메모를 정리하고 있다.

:
Posted by liontamer






작년 12월. 페테르부르크.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인 표트르 1세 청동기사상 앞과 네바 강변 산책하며 찍은 사진 몇장. 석양 무렵. 하지만 오후 3시 즈음이다. 겨울엔 해가 아주 빨리 진다. 여름에는 백야의 도시. 하지만 겨울에는 금방 해가 져버리는 어둠의 도시.





네바 강은 꽁꽁 얼어붙고...






보기만 해도 추워보이죠? 진짜 추움.







이렇게 꽝꽝 얼어붙은 강변을 살살 걸으며 찬 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한다.






궁전 교각 근처에 서 있는 청동사자상. 두 마리가 있다. 사진엔 한 마리만 나왔지만.







이 도시의 상징 중 하나인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의 사원 첨탑.




물과 돌의 도시. 빛과 얼음과 눈의 도시. 페테르부르크. 소련 시절 이름은 레닌그라드. 내가 사랑하는 도시. 그리고 내가 쓰고 있는 글의 주인공이 어쩌면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도시. 불과 바람으로 만들어진 아이. 물과 돌의 도시에 사로잡혀 있는 아이.


:
Posted by liontamer
2017. 3. 5. 20:01

모스크바에 있는 것들, 오직 불길 about writing2017. 3. 5. 20:01






아래 글은 체포된 후 약물 고문으로 피폐해진 미샤가 수용소 클리닉에서 절친한 사이인 스타니슬라프 일린과 면회하는 장면 중 하나이다. 예전에 이 소설 일부들을 여러번 발췌해 올렸었다. 소설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미샤와 일린의 면회는 마지막 3부의 이야기이다.



이것은 모스크바 토박이이자 그 도시의 대표 극장인 볼쇼이 극장에서 무용수 노릇을 하다 안무가가 된 일린과 레닌그라드(지금의 상트 페테르부르크) 토박이이며 역시 그곳 대표 극장인 키로프(지금의 마린스키)의 간판 무용수였던 미샤의 대화이기도 하다.



벨스키와 게르만 스비제르스키는 모두 미샤를 후원하던 공산당 고위 간부이다. 전자는 미샤를 수용소에서 빼내 가브릴로프로 보내는 인물이고 후자는 오랫동안 미샤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온 인물이다.



..




미샤와 일린의 대화에서 언급되는 볼쇼이, 트레치야코프, 므하트, 아르바트는 모두 모스크바의 명소들이다. 볼쇼이는 다들 아는 그 볼쇼이 극장, 트레치야코프는 미술관 이름이고(여기에 브루벨의 백조공주가 있다) 므하트는 모스크바 예술극장(Московский Художественный Академический Театр)의 약자이다. 유명한 스타니슬라프스키가 창립한 극장이다. 아르바트는 모스크바에서 가장 유명한 젊음의 거리이다.







..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그는 병을 집어 남은 물을 한 모금 마셨지만 전부 삼키지는 못했다. 바닥에 반쯤 뱉어버렸다. 에어컨을 꺼 주자 한기가 덜한 듯 목과 어깨에 둘렀던 스카프를 풀었다. 아니면 더워서 그랬던 건지도 몰랐다. 열 때문에 추웠다 더웠다 하는 것 같았다. 눈의 광채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 몇 초 사이에 안색이 급격하게 나빠졌기 때문에 나는 소파로 가서 그 애의 머리와 어깨를 가볍게 감싸 안았다. 
 


 “ 여기 의사들도 알아? ”


 
 “ 뭘? ”


 
 “ 아무 약이나 주면 안 되는 거. ”
 


 “ 아는 것 같아. ”


 
 “ 다 말해. 그 올가란 여자에게. 아픈 데 있으면 전부. 약 먹고 조금이라도 이상한 데 있으면 무조건 얘기하고. 고집 부리지 마. 벨스키에게 들었어, 회복돼야 내보내준다고 했어. ”
 


 “ 친절한 분이시군, 조건을 하나만 걸어놓으신 것처럼 얘기하시다니. ”
 


 “ 가브릴로프 얘기도 들었어. ”
 


 “ 아. 그건 조건이 아니고 벨스키가 결정해놓은 거야. 그 사람은 가을부터 극장이 제대로 돌아가기를 바라지. 벌써 내년 행사 미션까지 줬어. 거기 가 봤어? ”
 


“  아니. 전에 이그나트가 가봤다고 했어. 좋았다고 했어, 한적하고 공기도 좋고. 온천도 있을지도 몰라. 회복하기엔 좋을 거야. 좀 쉰다고 생각해. 곧 돌아올 수 있을 거야. ”
 


 “ 어디로? ”


 
 “ 글쎄. 모스크바는 아직도 싫어? ”


 
 “ 거긴 충분히 있었어. ”


 
 “ 겨우 일 년 있었으면서. 모스크바도 좋은데. ”


 
 “ 그건 네가 거기서 태어났으니까 그렇지. ”


 
 “ 그럼 넌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나서 거길 좋아하는 거야? 정말 간단한 이유네. ”


 
 “ 그럴지도. ”


 


 미샤의 창백한 얼굴에 잠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대답하지 않아도 알았다. 그 고집쟁이, 언제나 한결같고 견고한 마음을 가진 그 애가 사랑하는 도시, 돌아가고 싶은 유일한 도시가 거기 있다는 것을. 그 애를 파리에 남지 못하게 했던 유일한 이유. 물과 돌의 도시, 아무런 지지대도 없이 안개를 딛고 세워진 도시, 네바 강과 발트 해, 그림자와 습기 사이에서 부유하는 도시, 환영으로 축조된 도시.


 
 그 애가 레닌그라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건 우리 둘 다 잘 알고 있었다. 벨스키가 어떤 식으로 반대파들을 요리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높은 분들에게는 그들만의 방식이 있을 테니까. 그는 미샤의 건강이 회복되는 대로 수용소에서 풀려날 거라고, 하지만 재판 결과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으므로 레닌그라드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에 한동안 연금될 거라고 말했다. 그건 추방 조치나 다름없었다. 그가 미샤를 구해준 것은 맞다, 아마 다른 의원들 몇몇이 힘을 실어줬을 것이다. 그 애의 오래된 후원자들.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의 권력자들. 
 


 그러나 아무리 벨스키와 스비제르스키, 그 외의 많은 의원들이 미샤를 강력하게 후원했다 해도 해외에서 그토록 격렬한 시위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 애를 구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권력자들에게 있어 일개 예술가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하잘것없는 대상일 뿐.
 


 미샤가 옳았다. 장식품, 애완견, 샴페인, 캐비아. 사실 그런 문제에 있어서 미샤는 언제나 옳았다. 그 애가 게르만 스비제르스키를 몸서리치게 싫어하고 증오했던 것처럼.
 




 벨스키의 전화를 받고 이곳으로 오는 동안 내 마음 속을 꽉 채웠던 것은 미샤의 상태에 대한 걱정도, 그 애의 불투명한 앞날에 대한 두려움도 아니었다. 어이없게도 그건 게르만 스비제르스키에 대한 분노였다. 스비제르스키는 그 애가 체포되어 그 불공정하고 더러운 재판을 받도록, 가혹하게 과장된 죄목들을 뒤집어쓰도록, 그 끔찍한 정신병자 수용소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자가 정말 원하기만 했다면 애초부터 그런 재판을 받지 않도록 손을 썼을 수도 있었다. 어쨌든 그자는 아직도 KGB와 사법부 쪽으로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높으신 분, 정치국 위원, 무소불위의 권력자 의원께서는 고개를 돌렸고 그럼으로써 그놈들이 마음 놓고 더러운 짓을 할 수 있도록 묵인해 주었을 뿐이었다. 그자의 묵인이 없었다면 그 애에게 그 정도로 심한 판결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벨스키도, 다른 의원들과 간부들도, 아니, 그 애의 모든 동료들, 심지어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비겁하게 행동했다. 모두가 등을 돌렸고 손을 씻었다. 우리는 뒤늦게 일어났을 뿐이었다. 벨스키가 그 애를 위해 노력한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파리 시위가 없었다면, 그 사진이 공개되지 않았다면, 해외에서 그토록 지속적이고 격렬한 소요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 역시 계속해서 침묵했을 것이다. 우리 모두 비겁자들이었다. 그러나 게르만 스비제르스키는 사악하고 더러운 인간, 모든 비겁자들보다 더 지저분하고 더 비열한 인간이었다.




 
 한때 나는 그자가 그토록 오랫동안 미샤를 놔주지 않는 것은 어쩌면 그 애를 깊이 사랑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달랜 적이 있었다. 그 잔혹하고 더러운 학살자 역시 인간이며 내부에는 부드러운 심장이 뛰고 있어서 비밀스러운 애정을 품을 수도 있을 거라고.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심기가 불편하고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미샤는 단 한 번도 내 앞에서 스비제르스키와의 관계에 대한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안다는 것은 눈치 채고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그 자존심 강한 애는 충분히 고통스러워했다. 나는 그 애가 스비제르스키의 호출에서 돌아온 직후 모스크바 강을 따라 뛰고 또 뛰는 것을 보았고 창가에 선 채 꼼짝도 하지 않고 말 한 마디 없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을, 가끔은 거울을 주먹으로 치고 또 쳐서 유리 파편이 박히고 피를 흘리는 것을, 또 언젠가는 욕조에 들어가 몇 시간이고 나오지 않는 것을 보았다. 그럴 때면 그 애는 누구와도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춤조차 추고 싶어 하지 않았다.
 




 두 번, 나는 그 애를 죽음의 문턱에서 끌어내 몰래 병원으로 데려갔다. 지난 5년 동안 두 번. 한 번은 페이퍼 나이프를 썼고 다른 한 번은 스카프를 썼다. 그 애가 전에도 그런 적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아마도 여러 번. 그게 스비제르스키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 더러운 이름이 그 애를 떠밀고 계속해서 길을 잃게 만드는 어둠 속에 존재하는 괴물 중 하나라는 건 알았다. 그자들이 계속해서 그런 짓을 했다. 재판과 판결, 수용소와 고문이 있기 전부터 당과 국가와 체제, 영광과 명예와 의무, 복종이라는 이름으로 그 애의 심신을 산란하게 하고 고통을 가하고 자꾸만 넘어지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건 견딜 수 있을만한 압력, 그저 눈을 돌리고 넘어갈 수 있을만한 더러움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나라면 그랬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미샤는 그만큼 무심하고 평온한 심장을 가진 애가 아니었다. 그 침착하고 서늘한 태도, 흐트러지지 않는 또렷한 눈빛 너머로는 오직 불길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불을, 그 뜨겁고 격렬하게 타오르는 불을 단숨에 꺼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나는 공포에 떨었다.



 
 아마 게르만 스비제르스키도 거기 있었을 것이다. 그 애를 넘어지게 하고 마침내 불을 꺼버리는 그 끔찍한 행렬 맨 앞에 있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자기 것으로 삼고 착취하고 더러운 짓을 하면서. 그런데도 그자는 모른 척했다. 그 애를 자기 수하의 사냥개들에게 그대로 던져주었을 뿐이었다. 어쩌면 이번 기회에 버릇을 고쳐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그 음습했던 욕망이 마침내 꺼져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건 비열한 짓이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혹은 그런 낭만적인 가장조차 없이 누군가를 지배하고 끊임없는 고통을 가하고 마침내 파괴하고 쓰레기처럼 내버리는 행위보다 더 사악하고 더러운 짓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래서 내가 그자를 그토록 증오하게 된 것인지도 몰랐다. 미샤를 고발하고 억지 혐의를 씌워 수용소로 보낸 자들보다도, 그 애를 고문하고 거의 죽일 뻔 하고 이런 상태로 만들어놓은 자들보다도 더 증오했다.
 



 
 미샤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지? 모스크바 싫다고 해서 그래? ”

 
“ 모스크바도 좀 좋아해줘. 안 그러면 섭섭할 거야. ”

 
“ 좋아할 이유를 좀 대봐. ”


 
“ 볼쇼이. ”


 
“ 그리고? ”


 
“ 트레치야코프. ”


 
“ 이제 므하트라고 할 거지? ”

 
“ 안 통하는군. 그럼 아르바트. ”


 
“ 그 동네 요즘 재미없어졌어. ”

 
“ 나. ”

 
“ 넌 안 떠날 거야? 끝까지 모스크바에 남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

 
“ 그래. ”

 
“ 그럼 모스크바도 나쁘지 않아. ”



미샤가 결론을 내리듯 말했다. 그리고는 내게 기댔던 몸을 떼었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








맨 위의 사진은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그리고 이 사진은 네바 강과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를 배경으로 찍은 페테르부르크 사진. 당시의 레닌그라드.



..



'장식품, 애완견, 샴페인, 캐비아'라는 표현은 앞부분에서 일린이 미샤와의 대화를 회상할때 나온 것이다. 전에 이 부분에 대해 올린 적이 있다. 링크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4468



..



사실 이 에피소드의 뒷부분 일부는 예전에 이미 올린 적이 있다. '견딜 수 있을만한 압력, 넘어갈 수 있을만한 더러움'에 대한 문단이다. 이 소설을 쓰는 내내 나는 두어가지 주제에 사로잡혀 있었다. 쓰는 순간만 하더라도 저 부분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았다. 적어도 의식적으로는 그랬다. 하지만 다 쓰고 난 후, 그리고 그 이후 여러가지 일을 겪으면서 내내 나는 저 부분을 떠올렸다.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저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전에 저 부분에 대해 했던 얘기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4341, http://tveye.tistory.com/2508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
Posted by liontamer


페테르부르크. 얼어붙은 네바 강과 찬연한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지난 12월.


:
Posted by liontamer
2016. 12. 11. 00:04

겨울날 아름다운 페테르부르크 풍경 2016 petersburg2016. 12. 11. 00:04


오늘은 많이 추웠지만 굉장히 아름다운 겨울날이었다. 운하와 강변 산책하며 찍은 사진 몇장.




:
Posted by liontamer

 

 

 

전에 미샤와 트로이, 그들의 친구들이 여름에 여럿이 모여 기차를 타고 흑해에 놀러가는 장면을 발췌한 적이 있다. 그 이야기에서 그들은 기차 안에서 왁자지껄 떠들고 술을 마신다. (http://tveye.tistory.com/4671)

 

흑해로 놀러간 이 친구들은 이 장편의 도입부에서부터 함께 등장하는데, 모두들 비밀 문학 서클의 일원이다. 이 서클은 트로이와 그의 절친 알리사, 그리고 두어명이 주도하여 만든 것으로 금지된 외국 문학을 번역해 돌려 읽거나 반체제 작가, 지하출판물 등을 읽는 모임인데 주로 레닌그라드 국립대학교와 여타 다른 대학들의 외국어 전공 학생, 문학 전공자 등이 참여하고 있다. 미샤는 지인의 소개로 이 서클에 들렀다가 트로이와 친해지게 되었다.

 

그중 소설에 꾸준히 등장하는 인물들은 트로이와 친한 친구들로 료카와 갈랴(둘은 부부이다. 주로 둘의 집에서 모임이 개최된다), 이고리(영화학교 출신. 렌필름 촬영기사), 코스챠, 스베타(미샤를 처음에 데리고 온 친구), 타냐(발레 애호가) 등이다. 그리고 미샤의 팬이라서 억지로 서클에 끼어든 레나라는 소녀가 있다. 이 친구들이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은 전에 몇번 발췌한 적이 있다. 다같이 썰매타러 가서 논다든지, 표절작가 쥬진스키에게 이고리가 시비를 걸어 싸우는 이야기라든지, 갈랴와 료카의 어린 딸이 메밀죽 먹기 싫다고 트로이에게 떠넘긴다든지...

 

여기 올리는 이야기는 전에 올렸던 흑해 가는 기차 이야기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에피소드이다. 이야기의 주역은 미샤를 짝사랑하던 소녀 레나와, 물론, 주인공인 미샤이다. 그리고 다른 여인이 하나 더 있다. 그건 이야기 속에서.

 

 

시간적 배경은 1973년 여름. 미샤는 발레학교를 막 졸업하고 키로프 발레단에 입단해 데뷔를 앞둔 시점이다. 친구들과 함께 잠깐 흑해에 헤엄치러 놀러 갔을 때이다. 흑해는 예로부터 러시아 최고의 여름 휴양지였다.

 

 

** 위의 사진은 흑해가 아니고 페테르부르크(옛 레닌그라드)의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강변 풍경이다. 작년 여름에 내가 찍은 것이다. 흑해는 안 가봐서 ㅠㅠ

 

 

** 이 에피소드는 아주 약간 15금 정도의 묘사가 있는데 그나마 그것도 여기 올리면서 내가 자체검열로 좀 수정했음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그들은 알리사 아버지의 인맥으로 해변 근처의 방 세 개 달린 아파트를 싸게 빌렸다. 임신한지 얼마 안 된 갈랴와 료카 부부에게 방을 하나 주고 나머지는 기차를 타고 왔을 때처럼 남녀로 나눴다. 날씨는 아주 좋았고 해변은 사람들로 붐볐지만 그래도 수영을 하고 노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매일매일이 레닌그라드에서는 백야의 여름 중 운 좋은 며칠 동안만 누릴 수 있는 찬란하고 뜨거운 날씨였다.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다들 실컷 헤엄을 치고 일광욕을 했다. 알리사는 약한 피부를 보호하려고 어마어마한 양의 수입산 선크림을 발랐지만 별 소용이 없어서 사흘 째 되는 날 코끝이 홀딱 벗겨지고 어깨와 팔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물집이 잡히고 말았다. 갈랴가 속상해 하는 알리사를 욕실로 데려가 얼음으로 마사지를 해주고 시장에서 구한 연고를 발라주었다. 미샤는 알리사만큼 피부가 흰 편이었지만 선크림 덕분인지 타고 난 것인지 조금 그을렸을 뿐 아무리 햇볕을 쬐고 다녀도 전혀 화상으로 고생하지 않아 여자들의 부러움을 샀다.

 

 

 긴 금발의 인형 같은 레나는 해변에서 인기가 좋았다. 또래 소년들부터 2~30대 남자들까지 다채로운 유혹이 쏟아졌다. 레나는 밀려드는 데이트 신청을 도도하게 거절하기도 하고 가끔은 보란 듯이 잘생긴 남자를 골라 팔짱을 끼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한번은 적어도 서른 살은 된 것 같은 콧수염 기른 남자의 추근거림을 받아들여 바에서 시끄러운 재즈 음악에 맞춰 춤까지 췄다.

 

 

 그 바에는 트로이 일행도 모두 와 있었다. 물론 미샤도 있었다. 레나가 왜 그러는지는 뻔했고 타냐와 갈랴는 애가 타서 미샤를 들들 볶았다. 네가 리드를 하지 않으니 레나가 저런 사기꾼 같은 남자와 춤을 추고 있지 않느냐, 분명 유부남일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레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  등등 수다스러운 어미새 두 마리처럼 떠들어댔다. 트로이는 그들의 입을 막고 싶었지만 그보다 먼저 미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좀처럼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는 적이 없는 애였지만 몹시 귀찮았는지 입술이 가느다랗고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일행은 미샤가 콧수염 기른 남자로부터 레나를 데리고 나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곧장 연주자들 곁에 앉아 있던 거구의 여자에게 가서 춤을 청했다. 여자는 짙은 화장에 유행이 지난 얼룩덜룩하고 폭이 넓은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아무리 적어도 마흔 살은 넘어 보였다.

 

 

 친구들이 어이가 없어 입을 딱 벌리고 있는 동안 미샤는 그 여자와 시끄러운 재즈 연주에 맞춰 키로프 무대에서는 결코 볼 일이 없을 춤을 췄다. 알고 보니 여자는 연주자들의 매니저였고 몇 년 전까지 바와 클럽을 전전하며 춤을 췄던 경력이 있었다. 자신들의 매니저가 오랜만에 젊은 파트너를 만나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연주자들은 신이 나서 모든 박자를 무시하고 씽씽 달리는 즉흥 연주를 시작했다. 그건 더 이상 재즈가 아니라 소러시아 민요와 고파크와 소련 군가를 합쳐놓은 듯한 미친 소음으로 변했고 홀은 귀를 찢는 음악과 마루를 걷어차는 발소리와 박수와 휘파람과 고함 소리로 광란과 혼돈의 도가니에 빠졌다. 미샤는 90킬로는 너끈히 나갈 것 같은 거구의 여자를 발레리나 파트너를 다루듯 가볍게 빙글빙글 돌렸고 서너 차례는 공중으로 띄웠다. 감탄과 비명, 환호와 갈채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짙은 화장으로 얼굴 윤곽을 제대로 알아보기도 힘든 여자는 연신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고 소리를 지르며 미샤의 리드에 맞춰 미친 듯이 춤을 췄다.

 

 

 한참 춤이 격렬해졌을 때 여자의 구두 한 짝이 벗겨져 트로이가 앉아 있는 의자 앞까지 날아왔다. 갈랴가 얼굴이 창백해져서 트로이의 어깨를 두들겼다.

 

 

 “ 그만, 그만하라고 해. 빨리 데리고 나와. ”

 

 

 트로이는 갈랴가 레나에 대해 얘기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레나는 이미 테이블에 돌아와 있었고 타냐의 팔에 안긴 채 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 광란의 춤을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콧수염 기른 남자는 어디론가 쫓아버린 후였다.

 

 

 “ 왜? 잘 추고 있는데. ”

 

 “ 잘 추고 있다니, 어떻게 그런 소릴 해. 어디서 굴러먹었는지도 모르는 저런 늙은 여자랑... 레나 때문에 저러는 거잖아. 이제 됐으니까 빨리 끌고 나와. ”

 

 “ 레나 때문이라니, 쟤는 그냥 춤을 추는 거야. 가만히 놔둬. ”

 

 

 트로이는 미샤를 끌고 나올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취해 있었고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그는 광녀처럼 웃고 소리치며 홀에서 춤추고 있는 그 거구의 여인이 되고 싶었다. 저 여자는 자기 손목을 낚아채 회오리처럼 빙빙 돌리고 허공으로 밀어붙이는 저 낯선 상대가 누구인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맞고 있다는 걸 알기나 할까? 그런 춤의 상대가 될 수 있다면 알량한 연주단 매니저 따위, 공동아파트의 방 몇 칸 따위, 배급표 따윈 헌신짝처럼 내팽개쳐도 아깝지 않다는 걸 알고 있을까?

 

 

 알리사가 트로이의 뺨을 가볍게 찰싹 때리고 물을 한 잔 주었다.

 

 

 “ 너 완전히 취했어. 물 좀 마셔. ”

 

 

 트로이는 컵을 제대로 잡지 못해 바닥에 떨어뜨렸다. 유리컵이 소리를 내며 깨졌지만 이미 다른 테이블 손님들 몇몇도 취해서 술잔을 내던져 깨며 흥분해 노래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눈에 띄지도 않았다.

 

 

 거구의 여자가 차오르는 숨을 견디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미샤는 여자가 자빠지지 않도록 재빨리 한 팔로 그녀의 허리를 받치더니 공주님을 모시듯 피아노 옆 의자로 데려갔다. 연주자들이 색소폰으로 흐느끼는 듯한 신파 멜로디를 연주하는 동안 그는 여자를 의자에 앉히고 두툼한 손등에 열성적으로 키스를 했다. 휘파람과 박수와 고함 소리가 더 커졌다. 화장이 다 녹아내려 얼굴이 온통 시커멓고 새빨갛게 얼룩진 여자가 미샤를 껴안고 입술이 달아날 정도로 세게 키스를 퍼부었다. 트로이는 여자가 그 자리에서 미샤의 무릎에 올라앉아 치마를 걷어 올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정신이 혼미했다. 그가 알리사가 준 물을 마셨었나? 아니, 컵을 떨어뜨려 깨버렸지.

 

 

 여자가 미샤를 놔주었다. 그녀는 욕정으로 몸을 떨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황홀하게, 믿을 수 없을 만큼 행복에 겨워서. 트로이는 여자가 미샤를 다시 한 번 끌어당겨 안았을 때 귓가에 하염없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 착하기도 해라... 고마워. 정말 고마워. ”

 

 

 미샤가 녹초가 된 여자에게 정중한 인사를 하고 홀에서 걸어 나왔다. 테이블 쪽으로는 오지도 않고 곧장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레나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

 

 

 

 트로이는 그 날 어떻게 숙소로 돌아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아마 친구들이 그를 부축해 데려온 것 같았다. 그렇게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취했던 것이다.

 

 

 그는 너무 목이 말라서 새벽에 깨어났다. 트윈 침대 위에 코스챠와 료카가 신발도 벗지 않고 엎드려 자고 있었다. 카펫 위에는 담요로 몸을 둘둘 만 이고리가 누워 코를 골고 있었다. 자신은 소파 위에 누운 채 바닥에 다리를 반쯤 늘어뜨리고 있었다. 아마 그가 너무 커서 침대에 눕히기에는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미샤는 없었다.

 

 

 그는 물을 마시러 어두컴컴한 부엌으로 나갔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두통약이라도 한 알 삼키고 싶었지만 그러려면 갈랴를 깨워야 했다. 포기하고 테이블 위에 있는 주스 팩을 뜯어서 단숨에 마시고 나자 갈증과 두통이 조금 가시는 것 같았다. 화장실에 가려고 거실 쪽으로 나왔다가 그는 반쯤 열려 있는 안쪽 방문 사이로 울음 섞인 목소리가 새어나오는 것을 들었다. 갈랴와 료카의 방이었다. 혹시 임신 초기의 갈랴에게 어딘가 이상이 생긴 건 아닐까? 그러고 보니 그녀는 바에서도 안색이 좋지 않았었다. 걱정이 된 트로이는 문가로 다가갔다. 막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찰나 그는 료카가 자기들 방에서 자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료카는 갈랴와 함께 있지 않은 거지?

 

 

 그는 문 뒤에 멈춰 섰다. 갈랴가 아니었다. 울고 있는 건 레나였다. 작은 침실 한가운데, 카펫도 깔려 있지 않은 마루 위에 서서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커튼이 없는 방이었기 때문에 창문으로 달빛이 쏟아져 들어와 램프를 켜놓은 듯 환했다. 침대 곁 의자에 미샤가 앉아 있었다.

 

 

 그는 자신이 너무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갈랴는 아픈 것이 아니었다. 료카와 짜고 방을 내준 것이다. 레나와 미샤를 위해.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그는 빨리 몸을 돌려 방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발이 딱 붙어 버린 것처럼 꼼짝달싹도 할 수가 없었다. 어둠 속에 가려진 채 열린 문 너머로 멍하게 침실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레나는 하얀색의 짧은 원피스 잠옷을 입고 긴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린 채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이따금 밀려나오는 울음 때문에 어깨가 들썩거렸다. 하지만 트로이는 레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의 시선은 미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미샤는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머리는 엉망으로 뒤엉켜 검은색으로 물들인 월계관이라도 씌워놓은 것 같았다. 바에서 입고 있던 옷차림 그대로였다.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얼굴과 목은 시커멓게 번진 마스카라와 붉은 립스틱 자국으로 온통 얼룩져 있었다. 바에서 춤췄던 여자가 남겨놓은 흔적이었다. 그 얼굴을 닦지도 않고 어디를 쏘다니다 들어왔는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구겨진 얇은 셔츠 소매는 어깨 바로 아래까지 걷어 올리고 있었다.

 

 

 레나는 그를 나무라고 있었다. 화를 내다가 울다가 또 낮게 웃기도 했다. 트로이는 레나가 그렇게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었다. 그렇게 달빛 아래 하얀 잠옷을 입고 조그맣게 속삭이고 있으면 인어처럼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도. 그 침실 마루 위에서 달빛을 받으며 서 있는 작은 소녀는 너무나 매혹적이어서 빨간 머리와 에메랄드 눈동자의 지나이다 세도바조차도 아무런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얇은 잠옷 사이로 날씬한 몸매의 윤곽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미샤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레나에게 뭐라고 한두 마디 했지만 언제나처럼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였기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레나가 고개를 저으며 달려가 미샤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한 팔을 허리에 두르며 몸을 밀착시켰다. 다른 손을 들어 미샤의 지저분한 얼굴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어쩌면 화장품 얼룩을 닦아주려고 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미샤가 얼굴을 옆으로 돌리자 레나는 어깨를 세차게 튀기더니 반쯤 뛰어오르듯 발끝으로 서서 그의 턱을 감싸 쥐고 입술에 키스를 했다. 절망적이고 서툰 키스였다. 레나는 키스를 해 본 적이 별로 없는 애였다. 하지만 미인이었고 인어였다. 미샤는 레나를 떠밀지 않고 입맞춤을 받아주었다. 트로이는 그 애가 여자를 품에 안고 제대로 된 키스를 하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로미오가 아니었다. 무대 위의 순진해빠진 소년은 절대로 그런 키스를 할 수 없었다.

 

 

 입술을 뗀 후 미샤는 레나의 포옹을 풀지도 않고 그녀의 귓가에 조용히 뭐라고 속삭였다. 레나가 몸을 떨었다. 그녀는 팔을 풀고 미샤에게서 두 발짝 물러났다. 날카롭게 숨을 몰아쉬더니 발을 한번 굴렀다. 그리고 긴 머리채를 두 손으로 흐트러뜨리며 격하게 외쳤다.

 

 

 “ 나도, 나도 다른 애들 못지않게 해줄 수 있어! 나하고 사귀어 달라는 것도 아냐. 그래달라는 게 아니라구! ”

 

 

 레나가 숨을 쌕쌕거리면서 팔을 들어 올려 잠옷을 벗었다. 하지만 단추가 머리에 걸려 잘 벗겨지지 않았다. 흐느껴 울면서 레나는 머리에 걸린 잠옷 단추를 거칠게 잡아 뜯었고 술 취한 여자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옷을 벗어 내팽개쳤다. 달빛 때문에 작고 날씬한 레나가 은백색 조각상처럼 반짝거렸다. 트로이는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레나가 조그만 체구치고는 몸매가 좋다고 생각했다.

 

 

 레나는 다급한 나머지 부끄러움도 잊어버렸다. 그녀는 발레리나라도 된 양 두 팔을 앞으로 길게 뻗으며 미샤에게 다가가 목을 감고 매달렸다. 어깨와 가슴을 미샤의 셔츠 앞자락에 문지르며 귀 아래와 목덜미에 뜨겁게 입을 맞췄다. 트로이는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왜 몸을 움직일 수 없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지러웠고 온몸이 불덩어리처럼 타들어갔다.

 

 

 그때 미샤의 목소리가 들렸다.

 

 

 “ 이러지 마, 후회하게 될 거야. ”

 

 “ 아니야. 그렇지 않아. ”

 

 “ 크세니야. 그 여자 이름이야. 아까 홀에서 춤춘 여자. 같이 있었어. 내일도 같이 있을 거야. 그러니까 이러지 말자. ”

 

 

 레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갑작스럽게 또렷한 목소리로 물었다.

 

 

 “ 그 여자? 그 코끼리 같은 여자? 그 늙은 여자? 같이? 같이 있었다니? 그 여자랑 뭘 어쨌는데? ”

 

 “ 크세니야랑 잤어. 내일도 갈 거야, 그 여자가 원하면. ”

 

 

 레나가 미샤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두 손으로 가슴팍을 떠밀며 발로 걷어찼다.

 

 

 “ 나가! 꺼져버려! ”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찢어진 잠옷으로 몸을 가리며 비극 여배우처럼 울부짖었다.

 

 

 “ 그냥 싫다고 할 수도 있었잖아! 왜 그런 지저분한 말을 하는 거야? 넌 감정도 없어? 끔찍해! 끔찍하고 더러워! ”

 

 

 미샤는 잠시 아무 말 없이 레나를 내려다보았다. 그 얼굴에는 연민이나 미안함, 혹은 분노 따위의 감정이 전혀 떠올라 있지 않았다. 하지만 검은 마스카라와 붉은 립스틱으로 온통 얼룩져 있었으므로 설령 울고 있다 해도 보이지 않을 터였다. 그는 한숨조차 쉬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미안해. ”

 

 

 그리고는 침대 위로 올라가 창문을 열더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

 

 

재즈 밴드 매니저이자 옛 댄서 크세니야와 미샤의 이야기는 이 흑해 에피소드 후반부에 좀더 이어지는데 레나의 이야기와는 좀 별개라서 올리지 않았다.

 

..

 

 

(가엾은) 레나가 등장했던 이야기들은 아래 링크. 소설 속에서 아래 순서대로 전개된다.

 

http://tveye.tistory.com/4050 : 썰매를 타러 간 미샤와 트로이, 그리고 친구들

http://tveye.tistory.com/4947 미샤와 지나이다의 졸업 무대

http://tveye.tistory.com/4671 흑해로 가는 기차, 새로 온 인간, 새로 온 천사

 

 

 

..

 

 

무용수들 사진 몇장.

 

 

 

아르춈 옵차렌코

 

 

디아나 비슈뇨바

 

이반 바실리예프

 

 

아래 세장은 밴드 즉흥 연주에 맞춰 신나게 팔짝거리며 춤추는 미샤와 크세니야를 생각하며 올려봄. (하긴 크세니야는 많이 팔짝거리진 못했겠지만 ㅠㅠ)

 

 

파루흐 루지마토프.

사진은 nina alovert.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이게 위 에피소드에서 잠깐 언급된 고파크.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지 민속춤)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예브게니야 오브라초바. 돈키호테.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
Posted by liontamer






아래 발췌한 두 개의 메모는 몇년 전 썼던 각각 다른 두 가지 글에 대한 노트이다.


첫번째 메모는 프라하에서 쓰기 시작해 서울에 돌아와 완성했던 가브릴로프 프리퀄의 후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 소설은 나의 주인공 미샤가 체포되어 수용소와 클리닉, 면회실에서 겪는 일들을 다루고 있었다. 이 소설의 일부는 이전에 여러번 발췌했는데 주로 3부에서 미샤와 그의 친구 일린이 나누는 대화 부분들이었다.


두번째 메모는 저 글을 마친 후 본편으로 들어가기 전에 데이터와 캐릭터 구축을 위해 썼던 2차 소설 중 한 장면에 딸린 노트였다. 그 장면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맨 아래에 다시 발췌했다(사실 그 부분도 이전에 한번 올린 적이 있긴 하다)


두 개의 메모는 서로 다른 이야기와 배경을 다루지만 어쩌면 한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 그건 쓰는 사람이 동일했기 때문일것이다. 그리고 동일한 인물을 중심축에 놓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저때도 나는 실은 매우 실망했고 떠나려고 했었고 그러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여전히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글쓰기라는 것은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평생 하나의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것. 그러나 그것을 변주하고 변형하고 마침내 그런 과정을 통해 완전히 새로 태어나는 것.







* 이 글들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첫번째 메모 : 2013. 5월>




 이 글을 쓰는 내내 난 전락과 치욕, 수치심에 대해 생각했다. 소중한 무언가가 돌이킬 수 없이 더럽혀졌다는 자각,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마지막 원칙이 무너진 순간의 고통에 대해.

 

  성적으로 분방한 사생활과 복잡하게 뒤엉킨 권력자들과의 관계, 체제로부터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지적과 징계,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는 보안위원회 서류에도 불구하고 미샤는 일종의 순결함에 대한 강박적 수호 욕구를 가진 애였을 것이다. 그건 무엇보다도 춤에 대한 것이었을 테지만 동시에 집단주의 권력에 대한 저항 의식이기도 했을 것이다. 벨스키의 제안을 받아들인 순간 그는 수백 수천 명의 게르만 스비제르스키에게 짓밟히는 것보다 더 속속들이 더럽혀졌으며 그건 다시는 복구할 수 없는 더러움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런 걸까? 스타니슬라프 일린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이런 문제에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청동기사상

사진은 alex gouliaev




이 사진은 내가 러시아 박물관 전시실에서 찍은 것이다. 작가는 미상. 러시아 민중들의 정교 예술작품 중 하나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리스도 조각상이다.





...

 



 <두번째 메모 : 2013. 6월>






 가브릴로프 장편에서 미샤는 더 이상 춤을 추지 않는다. 이미 더 이상 무대에 올라가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린 후인데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그 도시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춤을 출 만한 몸 상태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 전 그 애를 처음으로 만들어냈을 때 미샤는 무용수가 아니라 안무가였고 감독이었다. 그땐 '그 애'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 당시 내가 그려냈던 미샤는 이미 3~40대에 접어든 나이였고 결코 타인에게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지 않는 수수께끼 같고 독립적이며 유능한 인물, 당시 구상했던 소설 속 주인공에게는 일종의 멘토이자 동시에 메피스토펠레스 같은 인물, 안티 히어로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른 후 그 인물에 대한 나의 관점은 변화했고 나는 미샤에 대해 훨씬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구상했던 소설의 중심과 구조도 변형되었다. 이후 나는 그 애에 대한 단편을 몇 개 썼고 작년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해 꽤 긴 단편과 장편, 경장편을 썼다. 그 세 편의 소설에서 미샤는 이미 안무가가 되어 있었지만 내게 그 애는 그보다도 무용수에 가까웠다.


 가브릴로프에 유배된 후 그 애는 처음으로 완전하게 무대를 버리고 온전히 안무가와 예술감독의 역할을 맡게 된다. 타고난 무용수가 존재하듯 안무가로서의 타고난 재능이란 것도 분명 있다. 전자는 육체의 재능이며 후자는 창작자로서의 재능이다. 그 두 가지를 모두 갖는다는 건 아주 드문 축복이다. 그리고 나의 주인공은 분명 그런 축복을 받은 존재다. 그게 그 애의 어둡고 뒤틀린 영혼을 위해서도 좋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미샤는 'Frost'에서 마로조프와 대화할 때나 'The dark dances alone'에서 훨씬 친한 상대인 일린과 얘기할 때 한결같이 더 이상 춤을 추지 않을 거라고 아주 단호하고 강력하게 선언한다. 그러나 그게 정말로 그렇게 쉬운 일일까? 나는 일린의 입을 빌어 그 애에게 무용수로 태어난 인간이 춤을 추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일 거라고 얘기했다. 게다가 그 애는 너무나 뛰어난 무용수였다.


 며칠 전 아래에 발췌한 부분을 쓸 때 나는 두 가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하나는 그 애와 스비제르스키의 관계. 성과 권력의 복잡한 역학. 그리고 두번째는 무용수로서의 그 애가 갖는 어떤 특질.


 나는 모든 위대한 예술의 정점에는 세 가지 중 하나가 있다고 믿는다. 사랑. 죽음. 그리고 삶이다. 그리고 나의 주인공은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해답을 찾고 싶어 몸부림치고 계속해서 뛰어오르고 날고 움직이고 넘어졌다. 그 애는 자신의 춤과 무대에서 언제나 죽음과 조우한다. 그건 어떻게 보면 불행이다. 아무리 아름답고 위대한 정점에 오른다 해도 그건 자기파괴와 부정을 불러오는 음울한 마약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게 그 애가 춤을 그만 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믿는다.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청동기사상

사진은 alex gouliaev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청동기사상

사진은 alex gouliaev

 


..





위의 메모가 딸려 있었던 2차 소설의 그 장면은 여기. 사실 이 내용은 전에 발췌했던 글에 포함되어 있다. 카를로비 바리의 별장에서 게르만 스비제르스키의 지시에 따라 춤을 추는 미샤의 이야기였다.





 스비제르스키는 밖으로 나갈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는 마룻바닥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그 애가 연습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미샤는 가끔 그를 힐끗거리며 쳐다보았지만 스비제르스키가 말을 걸거나 곁에 다가오지 않자 점차 그의 존재를 잊었다. 연습에 완전히 몰입해 음악과 파트너도 없이 2인무와 3인무, 솔로를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췄다. 검은 머리칼이 짧고 부드러운 벨벳 커튼처럼 펄럭였고 두 팔이 단단하고 유연한 채찍처럼 물결쳤다. 그 애가 아무런 무게도 없는 도약을 서너 번 반복했을 때 스비제르스키는 담배를 잘못 내려놓다가 손가락 끝을 데었다. 하지만 뜨거움이나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미샤가 바닥으로 내려왔을 때 스비제르스키가 입을 열었다.

   

 “ 그건 놀라운데. 무대에서도 꽤 높이 뛴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었군. 일부러 높이를 낮추는 건가? ”

 

 “ 서커스가 아니니까요. ”

 

 “ 흠, 니진스키처럼 얘기하는군. 다른 애가 그런 말 했으면 건방지다고 해줬을 걸. 대단한 도약인데. 혹시 피루엣도 더 빨리 돌 수 있는데 억지로 늦추는 거야? ”

 

 “ 음악에 맞추는 거예요. ”

 

 “ 오케스트라가 네 움직임에 맞춰줄 걸. 한번쯤 그렇게 해봐, 갈라 무대에서는 그렇게 해도 무방하니까. 할 수 있는 최대로 뛰어오르고 돌아봐, 그럼 관객들이 심장 발작으로 줄줄이 실려 갈 테니 안 되려나. 지난번 공연 때도 여자 두어 명 기절했었지. ”

 

 

 미샤는 바를 붙잡고 무릎을 구부리며 마무리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 이런, 피루엣을 빼먹는군. 취기도 가셨으니 까먹은 것 같지는 않은데. 왜, 그런 말 들으니까 부끄러워? 너 춤에 대해서는 전혀 겸손하지 않잖아. 프로페셔널답게 끝까지 해야지. 해봐, 연속 회전. 푸에테. ”

 

 

 미샤가 잠깐 동안 타는 듯한 시선으로 그를 응시했다. 두 눈에 뜨겁고 격렬한 분노가 일었다. 자기 춤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명령을 듣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스비제르스키는 흥미롭게 그 시선을 맞받았다. 과연 그 애의 춤에 대한 자존심이 공포를 넘어설 수 있을지 궁금했다.

   

 물론 미샤는 스비제르스키의 눈빛을 오랫동안 동요 없이 받아낼 수 없었다. 그는 고개를 돌렸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전 기계가 아니에요. ”

 

 “ 기계가 아니니까 그런 춤을 출 수 있겠지. 키로프 애들 절반 이상은 다 기계야. 세레브랴코프가 왜 그렇게 널 잡아먹고 싶어서 안달인지 정말 몰라? 그놈은 스텝과 회전을 찍어내는 기계처럼 추지. ”

 

 “ 당신들이 임명한 공훈예술가예요. ”

 

 “ 아, 본심이 나오는 건가? 걱정 마, 넌 그놈보다 훨씬 빨리 공훈예술가가 될 테니까. 20대 다 넘기기 전에 인민예술가 달아줄 수도 있을 걸. 그러니까 춰봐, 피루엣. 연습은 제대로 끝내야지, 토요일 공연이라면서. ”

   

 미샤는 바를 놓고 홀 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잠깐 스텝을 밟은 후 회전하기 시작했다. 검은 프로펠러처럼 빠르고 힘차게 돌았다. 격렬하면서도 우아한 회전 때문에 양쪽으로 쭉 뻗은 두 팔이 날개처럼 펼쳐져 퍼덕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빠르게 연속 회전하면서도 몸의 축이 전혀 기울어지지 않았다. 두 눈은 여전히 불타고 있었다. 가속도가 붙자 이제 그 불길이 몸 전체로 옮아가는 것 같았다. 한순간 스비제르스키는 미샤가 빙글빙글 돌다가 모터 달린 바람개비처럼 하늘로 휙 날아오를 것 같다는 착각에 휩싸였다. 이미 50번을 훌쩍 넘겼지만 그 애는 계속해서 돌고 있었다. 마침내 스비제르스키는 그 애를 저지해야 했다. 

 

 “ 이제 그만하지. 그 근육 풀어주려면 한 시간은 스트레칭해야 할 걸. ”

  

 미샤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전혀 들리지 않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 애는 계속해서 돌았다. 숨조차 쉬지 않는 것 같았다. 하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곧게 뻗어 있던 두 팔이 점점 아래로 처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돌았다. 스비제르스키는 무용수든 서커스 단원이든 그렇게 오랫동안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회전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100번은 예전에 지났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 정신 나간 짓을 무력으로 끝내려고 했을 때 미샤가 멈췄다. 무릎을 꿇는가 싶더니 끔찍할 정도로 가쁜 숨을 토해내며 바닥에 옆으로 누웠다. 두 팔을 부러진 날개처럼 꺾은 채 다리를 길게 뻗고 물에서 막 건져낸 사람처럼 정신없이 숨을 몰아쉬었다. 검은 머리칼이 축축하게 젖어 이마와 뺨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


저 글의 앞뒤 내용이 좀 더 붙어 있는 버전은 여기 : http://tveye.tistory.com/4620 

<별장의 미샤와 스비제르스키, , 레닌그라드 아이, 뒤틀린 관계>







 아르춈 옵차렌코.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
Posted by liontamer
2016. 8. 13. 21:37

추웠을 때 사진 보면서 더위 쫓는 중 russia2016. 8. 13. 21:37

 

 

아아 더워.. 정말 너무해..

2015년 2월 페테르부르크, 추웠을 때 사진 또 몇장 투척..

얼어붙고 눈 쌓인 네바 강 풍경 몇 장. 주로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가던 길과 요새 안에서 찍은 사진들.

 

 

 

 

 

 

 

 

 

 

 

 

 

 

 

 

이건 궁전광장에서 빠져나와 운하 쪽으로 가는 길. 길이 꽁꽁꽁!

 

:
Posted by liontamer

 

 

 

겨울에 태어나서 이른바 윈터 베이비라고 불리는 부류인 나는 여름보다 겨울을 좋아한다. 더운 나라보다는 추운 나라가 더 좋다. 아마도 그래서 러시아어를 전공했고 페테르부르크와 사랑에 빠졌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제1원인이야 수차례 말했듯 바리쉬니코프와 백야와 도씨와 죄와 벌 때문이다만... (엉엉 이 두 남자야 내 인생 책임지시오)

 

그리고 빛이 많은 사진을 좋아한다. 빛이 많고 선명한 색채를. 그런데 그것은 열대 지방의 화려하고 뜨거운 색채라기보다는 아마도 페테르부르크나 추운 나라의 얼음 위로 반사되는 눈부신 햇살이나 새파란 물결, 은백색 유빙, 빨갛게 칠한 입술이나 마가목 열매 따위의 선명함일 것이다.

 

그래서, 많이 피곤하고 힘들었던 이번주의 금요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마음의 위안을 위해 빛과 선명한 색채와 겨울이 혼재된 사진 몇 장 올려본다. 그리고 새. 날아가는 새 사진도 두 장.

 

전에 올린 사진도 두어개 있는 것 같은데 뭐가 뭔지 헷갈려서 그냥 오늘 내키는대로 몇장 올려본다. 2015년 2월,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산책갔다가 네바 강변 따라 궁전 다리로 걸어가는 길에 찍었음.

 

 

 

 

 

 

 

 

유빙이 떠다니는 새파란 수면 위로 청둥오리들이 동동 떠다니는 모습 보는 걸 좋아한다. 오리들은 나름 힘들테지만...

 

하긴 청둥오리는 언제나 좋다.

 

 

 

공원 바닥은 꽁꽁 꽝꽝 얼어붙어 있었다.

 

:
Posted by liontamer
2016. 3. 17. 11:22

눈과 얼음, 사원과 그림자 russia2016. 3. 17. 11:22

 

 

페테르부르크, 네바 강변의 스뜨렐까에서 찍은 사진. 2015년 2월.

꽁꽁 얼어붙은 네바 강 너머로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의 금빛 사원이 보인다.

 

..

 

오늘 너무 피곤하다..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어떻게 버티지..

 

 

'russia' 카테고리의 다른 글

블린과 귀여운 아기  (2) 2016.03.30
겨울 궁전의 홀  (0) 2016.03.23
집에 가고 싶은데...  (2) 2016.03.07
황제도 금빛 돔도 그립다  (2) 2016.03.05
그냥 걸어서 사라지고 싶다  (0) 2016.03.02
:
Posted by liontamer

 

 

 

2015년 2월초. 페테르부르크.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산책하면서 찍은 사진 몇 장. 매우 춥고 싸늘한 날이었지만 하늘은 파랬고 햇살이 찬란했던 날이었다.

 

힘든 일주일을 보냈으니 마무리는 역시 빛이 많은 사진들로... 페테르부르크는 벡야가 근사하긴 하지만 사실 겨울의 빛도 무척 아름답다. (추워서 나돌아다니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ㅠㅠ)

 

 

 

 

 

 

 

 

 

:
Posted by liontamer
2016. 2. 12. 21:40

눈밭 얼음밭 그림자들 russia2016. 2. 12. 21:40

 

 

2015년 2월, 페테르부르크.

네바 강 따라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로 산책하면서 찍은 사진들 중 그림자 사진들 몇 장.

 

얼어붙은 네바 강 위로 찍힌 발자국들.

 

 

꽁꽁 언 네바 강 위로 쌓인 하얀 눈, 그 위로 드리워진 가로수 그림자들.

 

 

 

여기는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안. 건물 벽에 나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눈밭에 비친 그림자는 아마도 내것인듯.. 이때 너무 추워서 커다란 후드에 목도리로 칭칭 감고 있었기 때문에 그림자가 눈사람 저리 가라다 :)

 

 

 

역시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네바 강 나가는 쪽. 왼편 저 멀리 보이는 조그만 쿠폴 첨탑 실루엣은 아마도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

 

 

 

그리고 얼어붙은 네바 강..

 

:
Posted by liontamer

 

 

작년 7월, 페테르부르크.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산책하면서 찍은 네바 강과 강변 사진들, 일광욕하는 사람들 사진 몇 장. 사실 주인공은 이 도시의 빛이다. 백야 시즌 페테르부르크의 찬란하고 눈부신 빛살. 아주 많은 빛.

 

 

 

 

 

 

 

 

 

 

 

 

 

 

:
Posted by liontamer
2015. 10. 15. 21:01

빛과 그림자 russia2015. 10. 15. 21:01

 

 

겨울.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아주 추운 날이었다. 춥고 맑은 날.

 

지난 5월에 아플때도 그랬지만 심신이 매우 힘들고 아플 때 가끔 이날 찍었던 사진들을 보게 된다. 이날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에는 아주 밝은 빛과 아주 차가운 얼음, 그리고 그림자가 다 있었다. 위안을 받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본다.

 

'russia'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빛이 필요해서  (0) 2015.10.22
극장 - 마린스키  (0) 2015.10.19
숨을 수 있는 처지는 아니지만  (0) 2015.10.13
아틀라스 발 아래에서, 행운을 빌며  (2) 2015.10.09
노는 아이들  (2) 2015.10.08
:
Posted by liontamer
2015. 10. 8. 22:39

노는 아이들 russia2015. 10. 8. 22:39

 

 

마음의 위안을 위해.

지난 7월.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의 강변에서.

 

:
Posted by liontamer

 

 

추석 연휴가 끝나고 출근했더니 잠도 모자라고 피곤하고 집중도 잘 안되고 정신이 없다. 언제 쉬었냐는 듯 다시 주말만을 기다리고 있음..

 

마음의 위안을 위해 여름에 페테르부르크에서 찍은 사진 몇장. 올 여름은 페테르부르크도 기록적으로 추워서 내가 갔을 때도 비오고 바람불고 9월 중순~하순 그 동네 날씨였는데 다행히 가기 전날 날씨가 이렇게 화창해지고 기온도 올라갔다. 그래서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의 강변에는 일광욕하러 나온 사람들도 무척 많았다.

 

료샤와 레냐랑 요새 산책하면서 찍은 사진 몇 장.

 

 

 

 

 

 

 

산책 마치고 돌아나오다가.. 마침 2시라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사원의 명종곡은 매우 아름답다. 잠시 돌바닥에 앉아서 아름답게 울려퍼지는 종소리를 들었다. 행복했다.

 

.. 저 크록스 샌들을 줄창 신고 다녔더니 무지 편하긴 했지만... 발등에 선크림 바르는 걸 까먹어서 나중에 보니 줄무늬 모양으로 타버렸다... 다른 데는 열심히 발랐는데 발등을 까먹었어 ㅠㅠ

 

 

 

 

 

지난번에 여기 갔다가 카페에서 쉬면서 이때 찍은 핸드폰 사진을 올린 적이 있긴 하다만.. (http://tveye.tistory.com/3901)

그건 폰카라 화질이 떨어지므로 카메라로 찍은 사진도 여기 올림.

 

 

 

종소리 듣고서 돌아나오면서...

 

 

 

요새로 통하는 나무 다리 건너다가.. 아래를 보고 오리가 있어서 반가워하며.. 이쪽에 새들이 무지무지 많이 온다. 오리, 갈매기, 비둘기, 잘 모르는 새들~

 

 

여기는 비둘기들이 모여 있었다...

 

 

 

강을 바라보며 이렇게 호젓하게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커플도 있고...

 

 

다리 건너와서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사원과 요새를 향해 인사하는 중. 안녕, 또 올게요!

 

... 흑, 또 가고 싶다! 현실은 사무실...

 

 

:
Posted by liontamer

 

 

2012년 가을.

아침에 네바 강 산책하면서 찍은 사진. 날씨가 좋았다. 바람이 불었고 맑은 날씨였다. 햇살은 아직 뜨겁고 찬란해지기 전. 그맘때 빛은 이렇다.

 

 

 

 

 

 

 

 

:
Posted by liontamer
2015. 9. 14. 12:50

월요일엔 언제나 한가롭게 쉬고 싶다.. russia2015. 9. 14. 12:50

 

 

바쁘고 피곤한 월요일.

점심 먹고 잠깐 쉬는 중이다.

월요일엔 언제나.. 이렇게 한가롭게 쉬고 싶어진다.

지난 7월, 페테르부르크.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강변 풍경. 계속 비오고 춥다가 간만에 햇살 쨍하고 날씨 좋은 날이라 다들 일광욕하러 나왔다.

 

 이때 나는 료샤 부자와 같이 산책을 했다. 나는 피부 탈까봐 열심히 선크림 바르고 선글라스 쓰고 그늘로 걸었는데 페테르부르크 토박이인 료샤와 레냐는 좋다고 햇살 아래로 뛰어나가는 걸 보니 역시 일조량 부족한 곳에 사는 사람들이라 그렇구나 싶었다.

 

하여튼... 월요일의 괴로움 속에서... 부러운 풍경 몇 장.

 

 

 

 

 

 

 

 

 

:
Posted by liontamer

 

 

문화예술의 도시 페테르부르크는 여러 가지 상징물들이 있는데, 청동기사상, 이삭성당, 네프스키 대로, 반으로 갈라지는 궁전 다리, 붉은 등대, 정오마다 빵 하고 쏘는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의 대포, 에르미타주, 마린스키, 도스토예프스키 등등 다양하지만 이런 거창한 것들 빼고~ 먹거리로 이 동네 사람들이 또 하나 내세우는 게 있으니 그것은 바로 '코류슈카'라는 것이다.

 

예전엔 지나가면서 간판이나 광고에 코류슈카라고 씌어 있거나 물고기 그림이 있으면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알고보니 이것은 네바 강에서 나는 물고기라는 것이다. 최근 재미있게 읽었던 '비정형화된 여행자들을 위한 페테르부르크 여행서' 시리즈를 보니 늦은 봄부터 코류슈카가 등장하면 주민들은 여름의 향기를 느낀다고 한다. 원체 겨울도 길고 햇빛 보기 힘든 곳에 사는 사람들이라 여름에 대한 이들의 갈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기 때문에 왜 그렇게 코류슈카를 좋아하는지 이해도 된다.

 

하여튼 맛있다고 해서 나도 엄청 궁금해졌다. 그래서 이번에 갔을 때 료샤에게 물어봤다.

 

나 : 코류슈카 맛있니?

료샤 : 앗, 너 그거 안먹어봤어?

나 : 응.

료샤 : 어휴, 뻬쩨르에 살아보기까지 한 애가 코류슈카를 안 먹어봤단 말이냐!

나 : 나는 여름 시즌에는 살아본 적이 없어. 여행이나 왔지...

료샤 : 가자! 내가 오늘 코류슈카 사주마!

 

그리하여 우리는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에 갔다. 이 날은 간만에 날씨가 아주 좋아서 진짜 여름날씨였다. 해가 쨍쨍했다.

 

료샤 : 여기 이번에 새로 생긴 레스토랑인데 이름이 무려 '코류슈카'다!!

나 : 우와~~

 

페테르부르크에는 유명한 음식점 브랜드가 있는데 '긴자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고급 레스토랑들과 비스트로 등을 내고 있다. 이 코류슈카도 긴자 프로젝트에서 낸 식당이라고 한다.

 

 

 

생긴지 얼마 안돼서 반짝반짝~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로 들어가면 입구 쪽 강변에 있다. 간판에 코류슈카 생선들이 즐비~~

 

료샤 : 원래 코류슈카는 다차(별장) 쪽에 가서 직접 낚아서 불에 구워먹는게 제일 맛있긴 한데, 여기도 나쁘진 않더라고. 너 생선 좋아하니까 괜찮을 거야.

나 : 우왕~~

 

 

 

그래서 이렇게 코류슈카 튀김을 주문..

메뉴판에는 음식 종류도 굉장히 많고 코류슈카도 튀김, 구이, 절임 등등 다양했는데 이게 제일 앞에 나와 있어서 음, 시그니처 메뉴구나 하고 생각해서 이거 시킴.. 1인분에 다섯 마리 들어있음.

 

 

 

레스토랑 내부는 이렇다.

창 너머로는 강변도 보이고 네바 강도 보이고 그 너머 에르미타주와 이삭 성당 등등도 보인다~

 

 

 

이때는 평일 낮이어서 사람이 별로 없었다.

 

 

 

매주 목, 금, 토 9시에는 뮤지컬 위크엔드라고 해서 음악 연주도 있는 모양이다.

 

 

 

목이 마르니 먼저 음료수를..

이것은 딸기 모르스 :) 진하고 맛있었다!

 

 

 

와, 나왔다~~ 코류슈카 튀김~

소스는 나무열매와 버터 등을 섞어서 만든 것 같았는데 내 입맛엔 살짝 느끼해서 소스 안 찍어먹는 게 더 맛있었다.

 

생선이 딱 다섯 마리 밖에 안 들어있음.

이건 원래 머리부터 꼬리까지 뼈까지 다 씹어서 먹는 건데 난 처음엔 다 씹어먹다가 나중엔 귀찮아서 머리는 안 먹었다. 그랬더니 료샤가 나보고 '쳇, 넌 역시 진정한 뻬쩨르인이 아니야~! 머리까지 다 먹는 건데!' 라고 했다 ㅠㅠ

 

코류슈카 튀김은 짭짤하고 맛있었다. 예전에 헬싱키 시장에서 먹었던 생선 튀김도 좀 생각났는데 그것보다는 더 촉촉하고 덜 짰다. 맛있었다~

 

 

 

사진 보니 다시 먹고 싶네..

 

 

 

생선 한 마리 꺼내놓고..

이거 진짜 금방 먹는다 ㅠ

료샤는 이거 술안주라서 잔뜩 쌓아놓고 맥주랑 먹으면 계속 먹게 된다고 했다.

 

 

 

하여튼 친구 덕분에 맛있게 먹고 기분 좋게 나왔다.

하늘도 맑았고.. 창문에 비친 구름이 보이시는지~ 구름도 뭉게뭉게..

그리고 지붕의 저 코류슈카 그림은 참으로 앙증맞았다~

 

다시 보니 먹고 싶다, 코류슈카...

 

 

:
Posted by liontamer
2015. 8. 16. 19:38

페테르부르크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 russia2015. 8. 16. 19:38

 

 

 

 

 

 

 

 

 

 

 

 

이건 어떤 건물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의 일부. 이때 이상저온으로 너무 추워서 혹시나 하고 챙겨갔던 저 긴 치마를 꺼내입었는데 치마가 길이만 길 뿐 천은 얇아서 보온에는 별 도움이 안됐음 ㅠ 사진에서도 바람 때문에 치맛자락이 감기면서 펄럭거리고 있음 ㅠ

 

 

:
Posted by liontamer
2015. 8. 15. 20:49

눈과 얼음의 나라 러시아 사진 몇 장 더 russia2015. 8. 15. 20:49

 

 

오늘은 사우나처럼 덥고 답답한 날씨였다.

어제에 이어 더위 퇴치용으로 지난 2월에 페테르부르크에서 찍었던 추웠던 날 사진들 몇 장. 대부분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에 갔을 때 찍은 것.

 

먼저 갈매기~

 

 

 

 

 

 

네바 강은 꽁꽁..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산책하다가.. 담장 너머로 보이는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사원의 황금 첨탑.. 추웠지만 맑고 화창한 날씨라서 사원이 더욱 아름다웠다.

 

 

 

요새에서 나와서 스뜨렐까 쪽으로 걸어올라옴, 공원 너머로 저 멀리 에르미타주가 보인다.

 

 

 

이제 그리보예도프 운하 쪽으로 걸어올라가는 중... 운하는 꽁꽁.. 새들도 옹기종기..

 

 

 

운하 저 너머로 미하일로프스키 성이 보인다.

 

여름아 빨리 가라...

 

:
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