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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일년 가까이 중단되어 있긴 하지만, 몇년 전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원래' 구상했던 진짜 본편은 나의 주인공 미샤가 가상의 도시인 가브릴로프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기껏 잘해줘야 이류, 실은 삼류에 가까울 극장을 맡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그런데 그 글을 쓰려니 너무 힘들어서 준비 과정으로 단편 몇개를 쓰고 진지한 장편을 하나 쓰고 추리외전 장편을 하나 쓰고 심지어 중편도 쓰고 게다가 외전 패러디로 서무의 슬픔 시리즈까지 줄줄이 썼다 ㅠㅠ 막상 이 본편(나는 가브릴로프 본편이라 부른다)은 1부밖에 못썼고 그나마도 100여페이지밖에 안된다.

 

하여튼 이 본편이 잘 안 풀리면서 대신 서무의 슬픔 시리즈에서 이 본편 등장인물들이 마구마구 희화화되면서 패러디화되었는데... 서무의 슬픔 시리즈의 주인공인 불쌍한 사무직 청년 다닐 베르닌(별명 : 단추)과 우주최강 꽃미남이자 반동분자 왕재수(흐흑, 얘가 내 원래 주인공 미샤) 얘기만 많이 써서 주객전도,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짐..

 

오늘 pica님을 만났을때 서무의 슬픔 시리즈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물어보셔서 저 얘기를 해드리다가.. 본편의 베르닌은 원래 단추청년이 아니고 메피스토펠레스 같은 놈이에요.. 라고 했더니만 '믿어지지 않아요, 상상이 안돼요' 라고 하셔서...

 

사실 지난번에 잠깐 본편의 베르닌과 미샤의 만남에 대해 발췌한 적이 있긴 있는데.. 그 얘기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4451 (잠시 : 햇살, 본편의 베르닌과 서무의 단추 사이)

 

아래의 짧은 이야기는 위에 발췌한 얘기에서 몇시간쯤 흐른 후의 얘기다. 위의 얘기에서 kgb 등록절차를 마친 미샤는 베르닌과 함께 레프 스타브로프의 병원에 가서 필요한 절차를 다시 밟는다. 그리고 베르닌은 미샤를 그가 머물 아파트로 데려간다. 글 후반부에 나오는 '피니스트'란 단어가 있는데 이것은 미샤가 머물게 되는 아파트의 이름이다.

 

서무 시리즈에선 순박한 단추이지만 원래 다닐 베르닌은 이런 스타일의 남자랍니다...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엘리베이터로 가기 위해서는 문을 하나 더 통과해야 했다. 리셉션 담당자가 뒤를 쫓아와 베르닌에게 열쇠를 하나 더 건네주었다.

 

 

 “ 당신도 예외는 없어요, 다닐. 없으면 못 들어와요. ”

 

 “ 아, 그렇지. 오늘 좀 정신이 없어서. ”

 

 

 열쇠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베르닌이 6층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미샤가 물었다.

 

 

 “ 나와 방도 같이 쓸 생각인가요? ”

 

 “ 만약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절 내쫓기라도 하시려고요? ”

 

 “ 아뇨. 귀를 막든지 당신 입을 틀어막든지 하면 되겠죠. ”

 

 “ 흠, 공연한 생각 하지 마십시오. 안 그래도 당신 서류는 충분히 지저분한데 거기 공무 방해와 폭행 죄목까지 추가되면 어쩌려고요. 스페호프가 아주 좋아할 걸요. 그리고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아까 리셉션에서 하는 얘기를 제대로 듣지 않으신 것 같은데, 601호에 등록된 건 당신뿐이니까요. 전 제 열쇠를 받은 것뿐입니다. ”

 

 “ 출판문화국장 옆방으로 이사 오려는 모양이군요. ”

 

 “ 전 벌써 이사했답니다. 어제. 아쉽지만 6층은 아니랍니다. 전 일개 KGB 행정요원이라 그런 수준이 아니라서요. 7층에 사무실과 직원용 기숙사가 있지요. 그러고 보니 한편으로는 기숙사가 맞긴 하군요. 어쨌든 이웃사촌이라고 할 수도 있겠군요.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라도 절 호출하시면 됩니다. 708호니까 잊지 마십시오. ”

 

 

 미샤는 소리 내어 웃었다.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웃음이었다. 비웃음의 기색은 전혀 없었다. 그가 웃자 한순간 어두침침하던 엘리베이터 안에 새 전등이 켜진 느낌이 들었다. 베르닌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들은 6층에서 내렸다. 유리로 된 문 앞에 책상이 하나 놓여 있었고 중년의 수위가 앉아 있었다. 베르닌이 방 번호와 이름을 대고 미샤의 여권과 자신의 신분증을 보여주자 수위가 또 다른 열쇠를 하나 건네준 후 직접 문을 열어 주었다. 601호는 복도 제일 안쪽에 있었다. 베르닌은 미샤에게 복도 열쇠와 방 열쇠를 모두 넘겨주었다. 미샤가 세 개의 열쇠가 달린 꾸러미를 살펴보고 있었기 때문에 베르닌은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 그 노란색 열쇠가 이 문에 맞을 겁니다. 나머지가 안쪽 문이고요. 이중문이거든요. ”

 

 

 미샤는 그의 설명을 듣고도 잠시 열쇠 세 개를 번갈아가며 만져본 후에야 문을 열었다. 그것도 다른 열쇠를 밀어 넣었다. 문이 열리지 않자 짜증도 내지 않고 두 번째 열쇠를 시도했다. 두 번째도 열리지 않았다.

 

 갑자기 베르닌은 루뱐카 클리닉에서 보내온 서류에 적혀 있던 내용이 기억났다.

 시신경에 문제가 있다고 했지. 색과 형태를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아직 회복되지 않은 것 같은데. 내 얼굴도 분간하지 못할지도 모르겠군.

 그는 문을 직접 열어줄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어쨌든 미샤는 바깥쪽 문을 열었고 안쪽 문은 실수 없이 두 개의 열쇠를 모두 꽂아 넣었기 때문이다.

 

 

 문을 연 후 미샤는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잠시 서 있었다. 그래서 베르닌은 현관 안쪽으로 팔을 뻗어 전등 스위치를 켜 주었다. 이미 늦은 오후였고 거실 창문에는 커튼이 빽빽하게 드리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 왜 들어가지 않으시죠? 여기가 앞으로 지내실 곳입니다. 레닌그라드의 자택보다는 협소하겠지만 그래도 방도 여러 개 있고 거실도 넓으니 원하신다면 연습용 바를 설치할 수도 있을 겁니다. 짐은 어제 도착해서 한쪽에 쌓아뒀으니 천천히 정리하시면 되겠죠. ”

 

 “ 708호 주민이 먼저 들어가서 수색을 마쳐야 할 테니까요. ”

 

 

 베르닌은 한 대 맞은 표정을 지으며 낮게 웃었다.

 

 

 “ 그건 레닌그라드식 유머인데요. 생각보다 재미있는 분이군요, 여기 사람들은 잘 이해 못할 테지만. 어쨌든 전 들어가지 않을 겁니다. 입이 틀어막히고 싶지는 않거든요.

 여기서 정확히 말씀드리죠. 블라지미르 스페호프의 말이 맞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새로운 지시가 내려오지 않는 한 당신은 이곳 보안위원회의 관리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국장은 저에게 그 임무를 총괄하게 했죠. 전 당신에 대한 보고서를 정기적으로 작성하게 되어 있고 그건 아마 계속될 겁니다. 하지만 이곳은 수용소도 아니고, 당신은 몇몇 제약사항을 제외하고는 자유롭게 행동하실 수 있습니다. 그건 아까 서명하신 서류에 나와 있는데 필요하시다면 복사본을 내일 가져다 드리죠. 전 간수도 아니고 현장 요원도 아닙니다. 엄밀히 말하면 행정직이죠. 당신에게 찰싹 달라붙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따라다니지도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가 이 집에 발을 들여놓을 일은 아마 없을 겁니다. 물론 당신이 청하는 경우는 예외지요. 별로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이제 마음이 좀 편해지셨습니까? 그럼 들어가서 쉬시지요. 많이 피곤하실 텐데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내일 시 의회 의장과 오찬이 있으니 12시 반에 로비로 오시면 됩니다. 저녁에는 극장장을 만나실 거고요. 그 외에는 저희 쪽에서 준비한 일정은 더 이상 없습니다. 당신은 자유입니다. ”

 

 

 그 마지막 말에 미샤가 오른쪽 입술을 살짝 치켜 올렸다. 마치 ‘우리 둘 다 그게 사실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죠’ 라고 대꾸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베르닌은 그가 어떤 식으로 극장을 다룰지 궁금해졌다. 그 나이든 전임 감독과 그의 오른팔들, 오래된 관료주의에 젖어 있는 직원들과 이미 연금을 주고 퇴직시켜도 모자랄 스태프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수준 낮은 단원들. 아무런 재능도 없고 그저 꼭두각시 자동인형들처럼 동작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무용수들을 그가 견딜 수 있을지 호기심이 일었다.

 

 

 피니스트를 나와서 차를 세워놓은 스타브로프의 병원까지 걸어가면서 다닐 베르닌은 가브릴로프 극장에 들러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보고서를 떠올리고는 포기했다. 스페호프는 당일 중으로 보고서를 받아보기를 원했다. 그의 상사는 집요한 사람이었다. 어차피 다음날 미샤는 극장장을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니 그도 극장에 들르게 될 것이다. 그는 미샤에게 다른 말을 해 줄 수도 있었다. 가브릴로프에 대해, 극장에 대해, 그리고 아무런 재미도 없지만, 자신에 대해. 하지만 그는 입을 다물었다. 다닐 베르닌은 말이 많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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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은 이렇습니다만..

서무 시리즈에서 단추청년 베르닌과 왕재수 미샤의 만남은 완전히 달랐으니.. 그 얘기는 여기 :

에피소드 0. 다닐 베르닌의 새로운 임무 : http://tveye.tistory.com/3429

 

 

* 서무의 슬픔 시리즈는 별도의 서무의 슬픔 폴더에서 처음부터 보실 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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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