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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무대 인사하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꾸벅~)

 

..

 

월요일 메모가 늦은 이유는, 어젯밤 돌아왔더니 호텔 와이파이에 문제가 있어 연결이 안됐기 때문이다. 간밤 늦게 노트북에 메모 남겨놓았던 내용 올려본다.

 

..

 

1시쯤 잠들었는데 4시에 깨고, 역시나 7시 안되어 깬 후 계속 1~2시간마다 깼다. 그래도 너무 피곤했는지 눈 감을 때마다 다시 잤다.

   

계속계속 잠만 자고 싶었다. 억지로 정오쯤 일어났고 씻은 후 어제 부셰에서 사온 플레이따 빵과 체리, 디카페인 티로 방에서 아점 먹었다. 어제 고생한 거 생각해서 차 마시기 전에 먼저 약 먹었고 아침엔 디카페인 티 마셨다.

 

나가려다 혹시나 마린스키 홈페이지 봤더니 지젤 베누아르 구석 자리가 갑자기 몇 개 나와서 급하게 그나마 제일 나은 자리 1개를 예매했다! 분명 내가 봤을땐 1열 자리였던 거 같은데 끊고 보니 2번이라 아마 두 번째 줄인 것 같다 ㅜㅜ 첫줄이면 좋을텐데. 그래도 지젤 표 얻은 게 어딘가... 슈클랴로프의 알브레히트를 볼 수 있구나... 사이드라서 한쪽이 많이 가리겠지만 할 수 없지 ㅠㅠ 뜻하지 않은 선물 같았다. 

 

4시 좀 안되어 나왔고 아드미랄쩨이스까야 지하철역 맞은편 꽃집에서 꽃을 샀다. 앞으로 슈클랴로프를 마린스키에서 볼 일이 드물어질 것 같아 아쉬워서... 이 사람이 오늘은 흰옷 입고 나오니 색깔 있는 꽃을 주고 싶었다. 빨간 장미를 주고팠지만 너무 활짝 피어서 곧 시들 것 같았다. 그래서 약간 오렌지빛 도는 분홍장미 꽃다발을 샀다. 짧은 카드를 동봉했음.

 

옆의 하늘색 꽃무늬는 내 원피스 ㅋㅋ 꽃돌이에게 줄 꽃과 내 꽃옷. 꽃의 3중주.

 

..

 

 

말라야 모르스까야에 생긴 라멘집에 가서 텐동과 오렌지주스 먹음. 사과주스를 잘못 갖다줬다며 미안하다고 오렌지주스를 또 가져다줘서 주스가 두 개가 되었다. (근데 오렌지주스도 남기고 사과주스는 거의 못 마심. 아까버...) 간만에 간장에 비벼진 밥 먹으니 좋았다. 일본 점원들이 일을 했는데 그래선지 여기는 요상망측한 퓨전 맛이 아니어서 좋았다. 난 우동국물이 먹고팠지만 라멘집이라 국물은 라멘만 있었다. 라멘은 짜고 기름져서 안 좋아하는 편이라...

 

그리고는 고스찌에 가서 메도빅을 먹고 차를 마셨다. 역시 여기 메도빅이 맛있다...

 

..

 

6시쯤 나섰다. 날씨가 매우 좋았다. 버스 타면 꽃 구겨질 것 같아서 꽃다발 안고 운하 따라 극장까지 걸어갔는데 은근히 무거웠다 ㅠㅠ 그리고 더웠다.

 

6시 반에 도착해 입장. 꽃을 맡겼다. 첨엔 예르마코프에게 주는 꽃다발 하나만 꽂혀 있었지만 나중엔 꽃이 가득 찼다. 오늘 젊은 안무가들 공연이고 무용수들도 많이 나오니 그렇다.

  

 

..

 

오늘은 젊은 안무가 갈라 공연이었다. 오케스트라는 없었다.

 

3막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1막은 일리야 쥐보이의 ‘SeasonS', 2막은 막심 페트로프의 ’파블로프스크‘, 유리 스메칼로프의 ’Ne me quitte pas'(녜 빠끼다이 미냐, 날 버리지 마), 블라지미르 바르나바의 ‘Glina’, 크세니야 즈베레바의 ‘엘레지, 오필리아’였고 3막은 막심 페트로프의 ‘왕의 디베르티스망’이었다. 제일 마지막 것만 전에 이고리 콜브가 춘 영상을 봤었다.

 

사실 난 오늘 슈클랴로프의 ‘날 버리지 마’를 보러 온 거나 다름없었다. 이것도 마린스키 공고는 늦게 나왔지만 나는 슈클랴로프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 사람이 20일 이 공연에 나온다는 것을 미리 알고 끊은 것이다. 제일 앞줄 가운데자리를 득템하면서도 혹시나 안 나오면 어쩌지 하고 전전긍긍했다. 그나마도 이게 모던발레들 갈라라서 자리가 있었던 거지 딴 작품들은 자리 구하기 힘들었고 앞자리는 못 구했었다.

 

워낙 여러 작품들이라 리뷰는 나중에... 일단 간단한 인상만 적자면.

 

일리야 쥐보이의 ‘SeasonS'가 의외로 좋았다. 막스 리히터가 비발디 사계를 변주해 쓴 음악 자체가 워낙 좋기도 했거니와 콘다우로바와 즈베레프를 필두로 무용수들의 춤도 서정적이고 의외로 가슴에 와닿았다. 솔직히 어제 봤던 스트라빈스키 두 작품들보다 이게 더 좋아서 놀랐다.

 

막심 페트로프의 ‘파블로프스크’는 유머러스했고 포킨의 장미의 정령에 대한 윙크 같기도 했다. 깜박 잠든 근위병이 귀족들의 춤에 대한 환상을 본다는 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블라지미르 바르나바의 ‘글리나’는 사실 기대했었는데 생각보다 별로였다. 움직임은 다채로웠으나 별다른 감흥이 없어 아쉬웠다.

 

크세니야 즈베레바의 ‘엘러지, 오필리야’는 고만고만한 작품이었지만 빅토리야 테료쉬키나의 존재감이 강렬해서 그녀가 무대를 살렸다. 예르마코프는 매력적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테료쉬키나에게 묻히는 느낌이었다.

 

막심 페트로프의 ‘왕의 디베르티스망’은 영상으로 볼때보다 훨씬 좋았고 재미있었다. 프로그램을 자세히 읽어보니 처음에 내가 영상을 봤을 때 놓쳤던 부분들도 많았다. 필립 스쵸핀이 왕 역으로 첫 데뷔했는데 여태 내가 본 스쵸핀 무대 중 제일 깔끔하고 멋있게 나왔다. 이 사람은 무대 분장을 연하게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왕을 춘 스쵸핀의 춤은 좋았는데 아무래도 초연을 이고리 콜브가 췄다보니 비교가 되었다. 콜브는 성격배우 특성이 있고 연륜이 있어서 그런지 왕을 코믹하면서도 어딘가 서글프게 표현했는데 스쵸핀은 좀더 반듯하고 젊어서 전자가 ‘왕’같다면 후자는 좀 ‘왕자’같았다. 그리고 스쵸핀이 팔이 조금만 더 길었으면 싶긴 했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나를 버리지 마’.

 

이 공연 너무 짧다 ㅠㅠ 6~7분 정도 되려나. 아쉬워라...

 

마린스키 오페라 소프라노 가수인 겔레나 가스카로바가 동명의 노래를 부르는 동안 흰 재킷과 바지의 수트를 차려입은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가 의자에 앉아 괴롭게 몸을 움직이다 점차 무대를 선회하며 춤을 춘다.

 

조명은 책상 앞에 앉아 노래하는 가스카로바와 홀로 춤추는 슈클랴로프 양쪽에만 비춰지는데 흰옷을 입은 슈클랴로프는 어둠 속에서 하얀 불꽃처럼 춤췄다. 스메칼로프 안무 특유의 움직임들, 그리고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다운 애절하고 격렬한 감정 표출과 드라마틱한 표현력이 심금을 울렸다. 본시 소프라노를 못 견디는데도 슈클랴로프의 춤과 잘 어울렸다.

 

흰 옷을 입고 격하게 몸부림치고 얼굴 전체로 고통과 열망을 표현하는 슈클랴로프를 보고 있자니 ‘그 어느 누가 어떻게 이런 널 버리고 떠나겠니!’ 란 생각마저 들었다.

 

감정 북받치는 짧은 공연 후, 엄청난 브라보를 받았고 꽃도 많이 받았다. 아마 오늘 얘가 꽃 제일 많이 받은 듯... 내 꽃도 받았다 :) 뿌듯...

 

사진은 다 번졌다 ㅠㅠ 마린스키 신관 조명 미워.. 게다가 흰옷이니 망할 줄 알긴 했다만 아깝다. 정말 아름답고 근사했다.

 

 

이게 그나마 덜 번진 사진이다 허헝헝..

 

이건 번지긴 했지만... 꽃다발 잔뜩 받은 모습... 저기 내 꽃도 있어어어 ㅠㅠ 근데 번져서 분간도 잘 안돼 ㅋㅋ

 

 

그래서 아쉬우니... 함께 무대에 올랐던 겔레나 가스카로바(Gelena Gaskarova)가 백스테이지에서 찍어 인스타그램 올린 사진 한장. 스메칼로프, 가스카로바, 슈클랴로프 :)

 

아아, 녜 빠끼다이 미냐, 녜 빠끼다이 나스, 발로쟈!

 

..

 

끝나고 원래 석양보며 걸어가려 했는데 세상에,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오늘 비온다는 얘기 없었는데 ㅠㅠ 역시 뻬쩨르..

 

그래서 샵에서 산 마린스키 후드 티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급하게 정류장으로 뛰어갔다. 다행히 27번이 와서 탔고 앉았다.

 

내려서도 후드 티를 머리에 쓰고 급하게 호텔로 달려들어옴. 제일 작은 사이즈만 있어 긴가민가 하다 그냥 샀는데 요긴하게 우비 대용으로 개시함 ㅠㅠ (입어보니 지금은 여유 있게 잘 맞는데 좀만 살찌면 살짝 타이트해질 것 같다 ㅠㅠ 살찌면 안되겠고만...) 흑흑, 중국 찻잔은 누룽지랑 된장국으로 개시하고 마린스키 후드 티는 우비로 개시했어... 돌아와서 빨아서 옷걸이에 말리고 있다.

 

..

 

 

근데 방에 왔더니 청소부가 창문 열어놓고 간게 안 닫혔다. 어제도 안 열리더라니.. 리셉션에 전화하자 여직원이 왔는데 이 방이 전에도 창문이 그랬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2년전에도 내 방 창문이 이랬었다. 앙글레떼르는 창문이 좀 문제인가보다 ㅠㅠ 오래된 호텔이라 그런가. 결국 다른 남자직원도 와서 힘으로 눌러서 닫았다. 앞으로 열면 안되냐 했더니 안 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한다. 힝...

 

그리고 와이파이가 안돼서 내방만 이러나 싶어 내려가 물었더니 지금 호텔 와이파이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그나마 나만 그런게 아니니 다행인가. 그래서 여기 메모 쓰고 있음.

 

내일은 날씨가 좋으면 k갤러리에 가서 바리쉬니코프 전시를 보고, 화장품을 사려는 중이다. 수분크림 똑 떨어짐... ㅠㅠ 생각보다 오래 머물게 되어서 그렇다.

 

무지 배고픈데 먹을게 없다. 자야겠다.   

   

:
Posted by liontamer

비가 오고 쌀쌀한 날씨였다.

 

료샤는 내가 어제 묵은 호텔 조식 자체는 그냥 그래도 9층에 있기 때문에 전망이 좋으니 조식을 추가해서 먹어보라고 했다. 그래서 추가요금을 내고 조식을 먹어보았는데 빵이 의외로 맛있었고 과연 전망이 훌륭했다. 아마 조식 시간이 끝나갈 때 가서 얼마 없는 창가 자리에 앉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레냐는 오늘 외할머니 생일이라고 해서 거기 갔다. 료샤는 오전에 들러 나와 함께 그 전망 좋은 창가에서 같이 조식을 먹었다. (레냐도 무지하게 같이 먹고 싶어했지만 다음주에 꼭 같이 먹자고 달래놓음. 어른들이 하는 건 다 좋아보이는 것이다 ㅋㅋ)

 

 

밥먹으러 올라갈때 카메라를 안 가지고 가서 그냥 폰으로 찍은 사진 한장만. 며칠 후 다시 가서 묵으면 카메라 가지고 올라가봐야겠다. 내가 좋아하는 트로이츠키 사원(이즈마일로프 사원)도 보여서 이 사진으로..

 

..

 

오늘 숙소를 다시 옮겨야 했다. 료샤가 태워다주겠다고 했으나 나는 짐을 좀 챙겨야 했고 너무 빨리 가면 체크인 시간과 맞지도 않았다. 료샤는 오늘 무슨 물건을 가지러 파블로프스크에 갔다와야 했기 때문에(나한테 같이 가자고 꼬셨으나 나는 오늘 공연이 있었음) 오전에 가고 나는 정오에 체크아웃을 한 후 짐을 맡겨놓고 2시에 택시를 예약해둔 후 일단 거리로 나왔다.

 

근데 너무 추웠고 비가 왔다. 며칠 후 다시 이 호텔로 돌아와야 하니 주변 지리도 좀 알아볼겸 걸었는데 사도바야 거리와 센나야 광장이 금방 나오는 걸로 봐서 지리는 금세 깨쳤다. 문제는 추웠다는 것. 그리고 내내 안 그러다 오늘 오랜만에 조식을 먹으면서 빈속에 차를 좀 마셨고 그 이후 약을 먹었더니 카페인 때문인지 너무너무 가슴이 북받치고 답답하고 괴로웠다. 너무 북받치고 뻐근해져서 잠시 심장발작인가 하고 겁에 질리기까지 했다. 식도염 악화 증상이긴 한데... 아마 카페인 과다 섭취 후 약을 먹어서 그런것 같다. 지난번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비바람 속에서 괴로워하며 목과 가슴을 누르고 헤맸다. 카페도 안 보이고 그나마 보이는 카페는 전부 식당 겸용이었는데 비가 오니 음식 냄새 배는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추위와 뻐근함으로 괴로워하며 좀 헤매다 호텔 근처 모퉁이에서 어느 베이커리 카페 발견. 그냥 빵 구워 파는 곳이었는데 의외로 여기가 오아시스였다. 손님도 없고 빵과 케익을 팔고 홀은 좁았지만 창가 자리가 좀 호젓했다!

 

 

구석 귀퉁이의 창가 자리가 무척 호젓해서 가만히 앉아 책 읽고 글쓰기 좋은 자리였다. 며칠 후 저 호텔로 돌아가면 이 카페에 아침 먹으러 와야겠다.

 

 

카페인 없는 열매 티 한잔(약간 히비스커스 블렌드 맛이 남)과 메도빅 주문. 여기 메도빅은 맛있었다. 이 카페 이름이 프라하 카페였는데 그래선가 ㅋㅋ

 

 

어제 서점에서 산 세르게이 도블라토프의 단문집을 좀 읽었다. 무척 재미있었다.

 

메도빅을 먹고 좀 앉아 있었더니 가슴 통증이 좀 가셨다. 아아 조심해야겠다. 다시는 빈속에 차 마신 후 약먹지 말아야지... 한국 돌아가면 의사에게 좀 물어봐야겠다.

 

 

지지난주 토요일, 여기로 날아오기 전에 친구인 쥬인과 홍대에서 만나 놀다가 샀던 팔찌 중 하나. 오늘 파랑하양 체크무늬 원피스를 입었기에 맞춰서 하고 나왔다. 팔찌를 보니 쥬인 보고 싶네.

 

..

 

2시가 되어 택시를 타고 이삭 성당 앞으로 이동. 세번째 호텔에 체크인했다. 여기서는 다섯밤을 자고 다시 아까 호텔로 돌아간다. 이렇게 중간중간 일정을 연장할줄 알았다면 이러지 않았겠지 ㅠㅠ

 

방에 와서는 너무 피곤해서 잠시 침대 위에 드러누워 있었다. 오늘은 5시 공연이었다. 가방을 좀 풀었고 너무 추워서 결국 원피스 포기. 진과 긴소매 티셔츠, 카디건에 트렌치코트 도로 꺼내 입었다 ㅠㅠ 아아 정말 너무해...

 

...

 

추워서 버스 타고 극장에 갔다. 오늘 공연은 마린스키 신관이었다. 오늘은 스트라빈스키의 두 곡을 각기 다른 안무가가 안무한 작품이었는데 사실 이게 아주 보고 싶어서 끊었다기보다는 그래도 두번째 작품이 봄의 제전이라 끊은 것이다. 어쨌든 나의 첫번째 발레라서 애착이 있다. 오늘의 봄의 제전은 사샤 발츠 버전인데 마린스키에서 발츠 버전으로는 본 적이 없어 좀 궁금하기도 했다.

 

 

 

 

오늘 공연은 둘다 신관인데다 별다른 무대 배경 없이 조명이 강해서 사진은 다 번짐. 그나마 여기 올린게 건진 것임 ㅠㅠ 꽤 앞줄이었음에도 별 소용이 없었다. 하긴 슈클랴로프가 안나오니 굳이 열심히 찍고자 하진 않았기에... 정성이 없어서 더 번졌나보다 ㅠㅠ

 

첫번째 작품은 스트라빈스키의 '3악장 심포니'였다. 지난 봄에 '라두 포클리타루'를 초빙하여 안무해 초연했었는데 음악은 몇번 들어봤지만 공연은 영상도 본적이 없었다. 스베틀라나 이바노바와 알렉산드르 세르게예프가 주역으로 나왔고 예카테리나 치브이키나, 타치야나 트카첸코, 알렉산드라 이오시피디가 운명의 3여신으로 나왔다. 내용은... 아무 것도 아니었던 생명의 집단적 원형질에서 남자와 여자가 각각 1명씩 세상에 나와 스스로의 개인적 정체성을 획득하고 사랑에 빠지고 인생을 살아가지만 결국 이들은 운명의 3여신의 붉은 실에 매여 있으며 결국은 전쟁으로 상징되는 3악장에서 인생의 끝에 다다르고 실이 끊겨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인데 이런 스타일의 발레가 그렇듯 플롯보다는 움직임과 무대미술, 음악이 더 강렬했다.

 

글쎄... 내 마음에는 아주 안 들었다. 일단 안무가 너무 작위적이었고 지루했다. 운명의 3여신도, 비둘기에서 독수리로 옮아가는 영상 배경과 개성 없이 단체로 떼지어 춤추는 군무, 아크로바틱한 리프팅과 회전이 이어지는 주인공들의 춤... 모두 그다지 참신하지 않았다. 뭔가 열심히 했지만 남는 건 없었다. 하나 남는다면 음악인가... ㅠㅠ

 

세르게예프와 이바노바는 둘다 좋은 무용수고 잘 췄지만.... 그리고 세르게예프가 여태 본 무대 중 제일 섹시해보였지만... 보는 내내 작품에 비해 알렉산드르 세르게예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 발레 안무가들이 너무나 잘 빠지는 함정이 있는데 포클리타루 역시 그걸 피해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진도 한 장만. 어차피 다 번졌음 ㅠㅠ

 

 

 

두번째가 내가 보러 간 목적인 봄의 제전.

 

난 사실 사샤 발츠 안무의 제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그래도 예카테리나 콘다우로바가 제물로 등장하는 제전이라 궁금했고 발츠 안무 제전을 무대에서 직접 본 적은 없으니 실제로 보면 또 다르리라는 기대를 했다.

 

흠...

 

발츠는 내 취향과는 역시 거리가 있었다. 뭐랄까... 원시적이고 격렬하고 광적으로 보이려고 하지만 어딘가 한계가 있는 느낌이랄까, 육체의 광란과 샤먼의 광기를 표출하고는 있지만 실은 굉장히 계산적인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영상으로 볼때도 그랬는데 무대로 봐도 그랬다. 무용수들은 잘 췄고 연주도 아주 좋았다(게르기예프가 지휘했음) 그러니 아마 이것은 발츠의 안무와 내가 맞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좀더 격렬하고 좀더 원초적인 춤을 원했다. 그런데 사샤 발츠의 제전은 내겐 그렇지 않았다. 영상으로도 무대로도 마찬가지였다. 붉은 머리의 늘씬하고 강렬한 콘다우로바는 아름답고 근사하고 처절했지만 그냥 그게 다였다. 내게 콘다우로바는 '진짜 제물' 로 느껴지지 않았다. 반쯤은 발츠가 제물과 종족들의 관계나 움직임을 다루는 방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쉬웠다.

 

제일 좋았던 건 역시 음악이었다. 그래,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지휘한 봄의 제전을 들은 것만으로도 오늘 공연은 본전 찾았다. 역시... 봄의 제전은 러시아 지휘자와 러시아 오케스트라일 때 제일 좋다.

 

생각해보니 난 마린스키 무대에서만 봄의 제전을 세가지 안무 버전으로 봤구나... 물론 다른 무대에선 또 다른 버전을 봤지만... 하여튼 오늘은 음악이 제일 좋았다.

 

사진 엄청나게 번짐 ㅠㅠ 가운데 자주색 의상의 긴머리 여인이 주역이었던 예카테리나 콘다우로바.

 

 

 

엄청나게 번졌다만.. 발레리 게르기예프 사진도 한 장... ㅠㅠ

 

게르기예프 요즘 백야축제에 아주 자주 나오고 계심.

 

그러고보니 내내 발레 메모까지 전부 러시아 메모에 올리고 있었네... 나중에 각 공연에 대한 메모는 떼어서 발레 폴더로 옮겨놔야겠다. 근데 제대로 리뷰를 쓴건 없어서..

 

..

 

짧은 두개의 작품들이라 끝나니 7시가 좀 넘어 있었다. 비가 멎었기 때문에 운하 따라 걸어서 돌아왔다. 발샤야 모르스카야 거리까지 쭉 올라가서 물과 체리를 사고 길을 건너 또 올라가서 말라야 모르스카야 초입에 있는 부셰에서 빵을 한개 사왔다. 이번 호텔도 조식 불포함이기 때문에 내일 아침에 체리랑 차랑 먹으려고... (전기포트 달라고 해서 얻었음)

 

 

운하 따라 걸어오다 찍은 사진 한장. 엄청 줌 당겼지만 이게 한계... 검정회색 갈매기 한 마리.

 

..

 

전기포트를 드디어 얻었기 때문에 오늘은 누룽지 반봉지와 즉석 된장국 약간에 끓는 물을 부어 볶음김치와 참치, 조식 테이블에서 건져온 삶은 달걀로 늦은 저녁 먹음. 살것 같다, 된장국이랑 볶음김치.. 엉엉...

 

 

 

.. 뜬금없이 안 어울리게 저 화려한 잔은 뭐냐고 하신다면..

첫번째 호텔 옆 쇼핑센터에서 우연히 발견해 샀던 찻잔. 아직 이거 하나밖에 안 샀다. 그냥 저런 스타일 찻잔 하나 있으면 좋겠다 해서 샀는데 사고보니 메이드 인 차이나임 -_- 망했어... 에잇... 여기까지 와서 중국 찻잔을 사다니 ㅠㅠ 짐도 무거운데...

 

하여튼 그래서 이놈을 오늘 개봉하여... 누룽지랑 된장국 담아 먹는 용도로 개시함 ㅋㅋ 미안해 중국 찻잔아... 근데 네가 꼭 메이드 인 차이나라서 그런 거는 아니야... 예전에 로모노소프도 그랬어 ㅋㅋ

 

 

찻잔 : 이쁘다고 살땐 언제고 나 메이드 인 차이나라고 무시하냐! 차도 아니고 된장국에 누룽지로 개시하다니 엉엉...

토끼 : 야, 옛날에 로모노소프님들은 심지어 개시할 때 볶음김치랑 컵라면도 담아먹었어! 된장국이랑 누룽지면 양호한 줄 알아!

 

 

 

:
Posted by liontamer

 

 

나는 별로 아기자기한 편도 아니고 상세한 정보 제공 블로그를 쓰는 성격도 아니어서 '여행 가서 여기여기여기를 다녔어요'나 '뭐뭐뭐를 사왔어요..' 하고 하나하나 올리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번에 갔을 땐 큰 수퍼마켓에 가서 사온 것들을 이렇게 사진을 찍어놓은 게 있어서 한번 올려본다.

 

페테르부르크 도심에는 큰 수퍼마켓이 별로 없어서 잘 뒤져야 한다. 거대한 수퍼마켓이나 마트는 좀 외곽으로 나가야 많이 있다. 최근에는 주로 네프스키 대로나 이삭 성당 근처에서 며칠만 묵다 보니 근처의 조그만 식료품 가게를 이용하는데 그치곤 했는데 이번에는 료샤네 집에 가면서 찜닭과 계란말이 해주려고 큰 수퍼에 들렀다. 블라지미르스카야 지하철역(도스토예프스키 호텔과 연결되어 있음)에 있는 커다란 수퍼마켓 'Land'라는 곳이다.

 

나중에 호텔 방에 돌아와서 침대 위에 우르르 쏟아놓고 뭘 샀는지 점검 중.. 별다른 건 없다. 되게 평범한 것들이다. 주로 홍차. 그리고 버터나 치즈 따위.. 국내에서는 러시아 식재료 구하기가 쉽지 않다만 그렇다고 딱히 러시아 식재료라고 하기에도 마땅치 않네.

 

 

 

우리 나라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그린필드 홍차. 러시아 홍차로 저렴한 편이고 질도 그렇게 좋지는 않다만, 여기서 나온 것들 중에 내가 꽤 좋아하는 게 바로 이 크리스마스 미스터리이다. 맛은 대략적으로 트와이닝의 차이 티나 voyage와 비슷하다. 향신료 냄새가 섞여 있음. 러시아에 가도 이건 진열대에서 요즘 찾기가 힘든데 수퍼에 갔더니 이게 있어서 세 팩 사왔다. 목이 간질간질할 때 마시면 좋다.

 

 

 

이것은 러시아산 허브 버터. 파슬리 등 허브와 마늘 등이 섞여 있다. 이건 충동구매했음. 페테르부르크에서 가끔 가는 식당에서 굉장히 맛있는 파슬리 버터를 내주는데 그거 생각이 나서. 근데 역시 버터라서.. 돌아와서 가방을 열어보니 많이 녹아 있었다 ㅠㅠ 냉장고에 넣어서 단단해지긴 했지만 선도는 확 떨어졌겠지.. 아직 안 먹어봤다.

 

원래는 스메타나를 좀 사오고 싶었는데 그건 너무 약한 용기에 들어 있어서 도저히 운반해 올 수가 없어 포기했다.. 여기서 사워크림 사려면 구하기도 힘들고 대용량만 팔아서 비싸기만 하니 조금씩 먹는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살 수가 없어 ㅠ

 

 

이것이 바로 뜨보록!!!!

일종의 코티지 치즈이다. 리코타 치즈에는 생크림이 들어가지만 이건 그렇지 않다. 지방 함량이 매우 적고 시큼한 맛이 난다. 옛날엔 안 좋아했었지만 요즘은 러시아 가면 꼭 먹는다. 이것도 아직 안 뜯었다. 유통기한이 있어 빨리 먹어야 하는데 아까워 ㅠ

 

참고로 레냐의 강아지 뜨보록은 바로 여기서 유래한 이름이다 :) 하얗고 몽글몽글해서 뜨보록이다.

 

 

 

뜬금없는 핀란드 크래커 :)

 

이 호밀 크래커를 좋아해서 옛날 페테르부르크 머물던 시절이나 프라하에 있을 때, 헬싱키 놀러갔을 때도 가끔 사다놓고 치즈나 버터, 과일 얹어서 먹었는데 우리 나라에선 구하기가 힘들다. 백화점 수입코너에 가면 있을법도 한데 우리 동네 근처에는 없어서, 반가워서 하나 사옴. 우스운 건 이거 부서질까봐 뽁뽁이로 싸옴... 크래커 주제에 로모노소프 찻잔과 유사한 대접!!

 

 

 

이것은 '수하리'

일종의 러시아식 빵가루이다. 우리 나라에서 파는 빵가루와는 질감부터 시작해 꽤 다르다. 이것을 사온 이유는 러시아식 디저트를 만들 때 수하리를 쓰는 경우가 많아서.. 내가 좋아하는 까르또슈까를 만들려면 이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오긴 했는데 과연 언제 만들지... 전에 사다놓은 블린 가루도 그대로 있다.. ㅠㅠ

 

 

 

이건 러시아산은 아니고. 각종 고춧가루들을 배합한 것. 사실 파프리카 가루를 사고 싶었는데 아무리 향신료 코너를 찾아도 없어서 그냥 각종 고춧가루 조합을 샀다. 나중에 요리할 때 쓰려고..

 

 

 

다망에서 나온 퍼스트 플러쉬 다즐링 티백.

 

이것을 산 이유는.. 딱히 다망을 아주 좋아해서가 아니고 마린스키 극장 카페에서 내주는 차가 이 다망이라서.. 마린스키 생각하려고 :)

 

 

마가렛의 호프 다원에서 나온 다즐링 티백.

 

 

 

이것은 에스트렐라 감자칩.

과자를 즐겨 먹는 편은 아닌데 옛날에 러시아에서 지낼 때 이 에스트렐라 감자칩을 좋아했던 기억이 있어서 요즘도 페테르부르크 가면 이 브랜드가 있으면 꼭 한두개씩 산다. 이것은 스메타나와 양파맛. 이 에스트렐라는 바베큐맛이 제일 맛있었는데 언젠가부터 그 맛이 안 나오고.. 다른 맛들은 다들 너무 짭짤하다 ㅠ 이것도 꽤 짭짤해서 슬프다. 소금 간 좀 안하고 나오면 좋겠구먼..

 

하여튼 이것은 챙겨왔는데.. 한국에 돌아온 날 너무너무 배가 고프고 냉장고는 텅 비어 있어서 이걸 먹어버렸음.

 

 

 

이건 체리. 세르비아산이다. 우리 나라에 들어오는 미국식 검은 체리가 아니고 훨씬 조그맣고 동그랗고 새콤한 맛이다. (근데 난 검은 체리가 더 좋아 ㅠ) 이게 제일 작은 용량이었는데 양이 많아서 결국은 남겼다.

 

 

 

이것은 수퍼 빵 코너에서 팔던 메도빅과 까르또슈까. 유명하고 오래된 베이커리 브랜드 세베르에서 각 수퍼마다 납품하는 것이다. 모양은 저렇지만 꽤 맛있다!! 저 까르또슈까 만들어보려고 수하리 사옴. 까르또슈까는 촉촉한 초콜릿맛 경단 같은 맛이고 저 메도빅은 차갑게 식혀서 먹으면 꽤 맛있다. 물론 고스찌 같은 베이커리 카페의 근사한 메도빅과는 비교가 안되지만 그래도 아주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맛이라 이것도 좋아한다. 이 세베르의 메도빅과 까르또슈까는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맛이다.

 

 

 

그래서 메도빅과 체리와 까르또슈까는 새로 산 로모노소프 접시에 올려놓고 먹었다 :) 이렇게 차려놓으니 귀엽네.. 차려놓자 잠시 후 레냐가 와서 나랑 앉아서 홀랑홀랑 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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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서무의 슬픔 25편은 분량이 길어서 두 토막으로 자른 후 지난주에 1부를 올리고 이번에 2부를 올리게 되었다. 쓸 때는 이렇게 파트를 나눌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간에 잘린 느낌이 들긴 하지만 ㅠㅠ

 

메르스 불안증은 갈수록 확산되고 있고, 기쁜 뉴스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시기이다. 요리대회에 나가 좌충우돌하는 단추와 맛있는 음식들로 기분 전환하세요~

 

 

**  음식 이름 두어 가지

 

- 샤실릭은 중앙아시아 쪽에서 유래된 꼬치구이로 양고기, 닭고기, 돼지고기, 쇠고기 등을 이용한다.

 

- 피로그는 러시아의 커다란 파이이다. 껍데기가 덮여 있고 안에는 다양한 속을 넣을 수 있다. 복수형은 피로기. 조그만 파이는 지소형으로 피로슈카라고 한다. 러시아 피로그는 참 맛있다. 솜씨좋은 주부들은 피로그 안에 여러겹의 속을 넣기도 한다.

 

 

** 이번 편은 1부에서 이어지는 내용이기 때문에 1부를 먼저 보셔야 합니다~

* 에피소드 25. 천하일미 요리대회(1부) : http://tveye.tistory.com/3800

 

 

 

** 지금까지의 줄거리와 이번 편 간략한 예고 **

 

1980년대 초 소련의 지방 소도시(..라고 쓰고 시골이라 읽는다) 가브릴로프의 보안위원회(KGB) 말단 행정직원이자 서무인 다닐 베르닌은 무시무시한 상사에게 시달리고 격무에 짓눌려 죽을 지경이다.  

이 와중에 모스크바에서 유명한 무용수 출신의 반동분자 정치범을 가브릴로프로 유배시키고, 베르닌은 엉겁결에 그를 감시하는 중책을 떠맡는다. 알고보니 그것은 싸가지 없는 젊은 예술가 녀석의 가정부이자 노예 노릇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가뜩이나 서무 업무로 들들 볶이느라 힘든 와중에 새로 온 녀석의 출퇴근 운전기사 노릇, 집안일, 밥해먹이기 등등 온갖 잡일에 시달리던 베르닌은 망할 놈의 반동분자를 왕재수라 부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왕재수도 나름대로 시골 생활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 중이다.

그러던 어느날 가브릴로프 천하일미 요리대회에 등떠밀려 출전한 베르닌... 어찌어찌 엉망인 요리를 완성은 했으나... 과연 심사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시리즈는 아래 순서대로 읽기를 권장함~)

 

* <서무의 슬픔> 시리즈에 대해 : http://tveye.tistory.com/3427
* 주요 등장인물 소개 + 시리즈 목차 : http://tveye.tistory.com/3428
* 에피소드 0. 다닐 베르닌의 새로운 임무 : http://tveye.tistory.com/3429
* 에피소드 1. 왕재수, 행동에 나서다 : http://tveye.tistory.com/3432
* 에피소드 2. 당직실의 귀신 : http://tveye.tistory.com/3437
* 에피소드 3. 버찌잼과 초콜릿 쿠키 : http://tveye.tistory.com/3444
* 에피소드 4. 공유지의 배추와 의전의 문제 : http://tveye.tistory.com/3451
* 에피소드 5. 무도회에 간 베르닌 : http://tveye.tistory.com/3458
* 에피소드 6.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 : http://tveye.tistory.com/3466
* 에피소드 7. 보고서의 악몽 : http://tveye.tistory.com/3478
* 에피소드 8. 새해 전야의 만두 소동 : http://tveye.tistory.com/3488
* 에피소드 9. 눈보라와 패딩 코트 : http://tveye.tistory.com/3524
* 에피소드 10. 벨라 등장! : http://tveye.tistory.com/3542
* 에피소드 11. 살구나무 거리에서 온 남자들 : http://tveye.tistory.com/3553
* 에피소드 12. 전설의 서무를 찾아서 : http://tveye.tistory.com/3563
* 에피소드 13. 검은 숲의 온천 요양소 : http://tveye.tistory.com/3580
* 에피소드 14. 한밤중의 침입자 : http://tveye.tistory.com/3599
* 에피소드 15. 우수 공산당원 연수 워크숍을 위해 막내가 준비해야 할 일들 : http://tveye.tistory.com/3615
* 에피소드 16. 짐꾼 베르닌과 빗, 물병, 목걸이의 비법 : http://tveye.tistory.com/3635
* 에피소드 17. 운수 좋은 날 : http://tveye.tistory.com/3661
* 에피소드 18. 메드베지에서 생긴 일, 알렉산드라 : http://tveye.tistory.com/3678
* 에피소드 19. 다닐 베르닌이 하를람피 푸고비체프가 된 사연 : http://tveye.tistory.com/3692
* 에피소드 20. 베르닌, 무대에 데뷔하다! :  http://tveye.tistory.com/3708
* 에피소드 21. 스페호프의 복수 : http://tveye.tistory.com/3726
* 에피소드 22. 흰머리천사날개풀과 파인애플 : http://tveye.tistory.com/3742
* 에피소드 23. 스네고로드 집단농장 : http://tveye.tistory.com/3766
* 에피소드 24. 시계탑 전망대에서 : http://tveye.tistory.com/3785
* 에피소드 25. 천하일미 요리대회(1부) : http://tveye.tistory.com/3800
 
** 번외편. 등장인물 20문답 : http://tveye.tistory.com/3492, http://tveye.tistory.com/3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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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무의 슬픔 series>

episode 25

 

 

 

 

 

서무의 슬픔

- 천하일미 요리대회(2부) -

 

 

 

 

 

 

 

사회자는 예쁘게 손질한 머리를 찰랑대면서 능숙하게 카메라 앞으로 나섰다. 역시 방송계에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 자, 그럼 이제부터 심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심사에 공정을 기하기 위해 참가자들은 모두 자리에 앉아야 하며 누구도 자기 요리에 대한 설명이나 변명은 할 수 없습니다. 요리는 요리로 말하는 법이니까요. 참가자가 많기 때문에 먼저 심사위원 세 분이 돌아가면서 요리를 시식한 후 논의를 통해 결선 진출자 6명을 결정하고 그 중에서 3위까지 시상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심사위원 세 분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드미트리 블리즈네초프 의회 의장님, 미하일 야스민 가브릴로프 극장 감독님, 그리고 릴리아나 페트로브나 편집장님입니다. 심사위원장은 연배 순으로 블리즈네초프 의장님이 맡게 되겠습니다. ”

 

 

베르닌은 블리즈네초프의 얼굴을 보기만 해도 체육대회가 생각나면서 흙먼지와 땀범벅과 벌목공 협박이 절로 떠올랐다. 의장이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스페호프와는 찰떡궁합이라고들 했다. 스페호프의 승부욕이 요리대회까지는 미치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렐랴는 이미 조리대 위의 음식들을 한 바퀴 둘러본 후 우아한 손놀림과 함께 어떤 식으로 시식을 할지 나머지 두 명에게 자기 의견을 피력하고 있었다. 왕재수는 이미 너무 질렸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긴 조리대 위에 늘어선 음식들 태반이 가브릴로프 특유의 기름진 고기 요리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참가자는 모두 30명이었다. 공정성을 위해 각자 30개의 요리를 모두 시식해 봐야 한다는 렐랴의 주장에 대해 블리즈네초프는 시간도 없고 요리도 너무 많으니 한 사람당 10개씩의 요리를 맛보고 그 중 2개씩 추천을 하여 결선 진출자를 가리자고 했다. 둘 중 어느 쪽도 주장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자가 끼어들었다.

 

 

“ 어머나, 시간이 없는데 아직 심사 방식을 결정하지 못하셨군요. 그러면 다수결로 해야죠. 미샤가 두 가지 중 하나로 결정을 해주시죠. ”

 

 

왕재수는 렐랴에게 사과하는 시선을 던지면서 대꾸했다.

 

 

“ 심사위원장 의견대로 하죠. 그게 더 효율적일 것 같네요. ”

 

 

렐랴는 좀 실망한 것 같았지만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베르닌은 왕재수가 블리즈네초프 쪽을 선택한 이유는 효율성과는 아무 상관도 없고 오로지 기름기 뚝뚝 흐르는 음식을 어떻게든 덜 먹어보려는 심산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세 명의 심사위원들은 각 10개씩의 조리대를 돌며 시식을 시작했다. 베르닌도 고개를 쭉 빼고 다른 사람들의 근사한 요리를 구경했다. 의장은 짭짭 냠냠 후룩후룩 소리를 내며 음식을 크게 덜어서 먹었고 렐랴는 요리마다 우아하게 접시에 덜어서 냄새를 먼저 맡은 후 여러 군데를 조금씩 다 먹어 보았다. 그리고 왕재수는 음식의 외양을 먼저 힐끗 살핀 후 나이프와 포크로 딱 한 군데만 썰어내서 천천히 먹었다.

 

 

운 나쁘게도 왕재수는 자리를 잘못 잡았는지 아르카지의 보르쉬를 시식하게 되었다. 사발 앞에 멈춰선 왕재수는 못마땅한 듯 눈살을 찌푸리더니 국자로 국물을 한번 휘저었고 건더기 약간이 떠올랐다 가라앉는 걸 보자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러더니 아주 극소량만을 접시에 덜어서 꼭 고양이처럼 혀끝으로 국물을 축여보더니 더 이상 볼 것도 없다는 듯 접시를 내려놓았다. 물을 몇 모금이나 꿀꺽꿀꺽 마시고 입을 흔들었다. 그때부터는 엄청나게 심기가 상한 듯 남아 있는 조리대를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세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른 심사위원들은 조리대에 붙어 있는 이름표도 꼼꼼하게 보면서 수첩에 열심히 적고 있었지만 왕재수는 이름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블리즈네초프 의장의 속도가 제일 빨랐다. 순식간에 열 개의 음식을 모두 맛보더니 다른 쪽 조리대들을 서성거리며 한 바퀴 돌고 이름표를 살피고 렐랴와 왕재수에게 참가자 이름표를 가리키며 뭐라뭐라 속닥거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살을 찌푸리며 큰 소리로 말했다.

 

 

아니, 이건 뭐지? 음식도 엉망인데 심지어 이름표도 없네. 이런 건 실격 처리해야 하지 않나?

 

 

심사위원들과 사회자뿐만 아니라 참가자들도 모두 의자에서 일어나 대체 뭔가 하고 시선을 던졌다. 베르닌은 깜짝 놀랐다. 의장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자신의 오믈렛 접시였기 때문이다. 렐랴도 다가오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 어머나, 요리는 둘째 치고 정말 이름표가 없네요. 어떻게 된 거지? ”

 

 

베르닌은 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고개를 쭉 빼고 보니 정말 조리대 앞에 매달려 있던 자신의 이름표가 사라지고 없었다. 아마 재료를 구하러 뛰어다닐 때나 막판에 우왕좌왕했을 때 떨어져버린 것 같았다. 자기 거라고 손을 들어야 하나 망설이는데 블리즈네초프 의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이런 건 실격입니다! 어디 이런 망측한 외양의 달걀쌈 따위를 올려놓지를 않나, 이름표도 없고!

 

 

렐랴도 곰곰 생각하는 듯하더니 의장의 말에 덧붙였다.

 

 

“ 이름표가 없는 걸 보니 아마 이건 참가자들 중 하나가 망친 요리를 빈 조리대에 올려놓은 모양이에요. 어제 받은 참가자 명단을 보면 이 30번 조리대는 비어 있었거든요. 당신 생각은 어떠세요, 미샤? 21번에서 30번은 당신 심사 담당이잖아요. ”

 

 

다른 음식들을 맛보느라 떨어져 있었던 왕재수가 귀찮다는 듯 다가오더니 오믈렛 접시를 힐끗 보았다.

 

 

“ 난 이름표 없어도 상관없는데. 그게 꼭 실격 사유까지 되는 건지... 하여튼 음식이 있으니 만든 사람도 있을 거 아니에요. ”

 

아니, 미하일, 그게 무슨 소리요! 당연히 실격이지! 소속기관과 이름이 없는 출품작은 자격 요건 미달이라 이겁니다! 웬만하면 이건 제외하고 결정하는 게 좋겠어요. ”

 

 

블리즈네초프가 훈계하는 어조로 말했다. 남에게 훈계 듣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게 분명한 왕재수는 어깨를 으쓱했다.

 

 

“ 뭐 그럼 그러시든가요. 어차피 맛도 없겠지 뭐. 다른 것도 다 엉망인데. 그래도 진짜 맛있는 거 하나 찾았어요. 그나마 먹을 만한 거 하나쯤 더 있고. 그게 전부더라고요. 이거라고 맛있을 리가... ”

 

 

그래서 오믈렛은 실격되는 것으로 결론이 나는가 싶었지만 가장 열성적인 렐랴가 참가자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 잠깐만요, 그래도 마지막으로 확인해봐야겠어요. 이거 만든 분 있으면 손 좀 들어보세요! ”

 

 

베르닌은 보안위원회 대표의 명예를 걸고 손을 들어야 하나 10분의 1초쯤 고민했지만 곧 깔끔하게 포기했다. 심사위원들이 모두 이게 요리냐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망측한 외양의 달걀쌈’이란 소리까지 들은 판국에 자기가 만든 거라고 나서기가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특히 왕재수에게 발각되면 며칠 내내 얼마나 들들 볶을지 눈에 선했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기 때문에 렐랴도 포기했다.

 

 

“ 좋아요, 그럼 이건 일단 심사 대상에서 제외해 주세요, 미셴카. 다 고르셨나요? ”

 

“ 고르고 말고 할 것도 없더라고요. ”

 

“ 네, 저도 다 골랐어요. 의장님도 다 고르셨나요? ”

 

“ 난 이미 마음의 결정을 했죠. 다른 음식들을 먹어볼 필요도 없을 겁니다. 두 분도 내가 고른 걸 맛본다면 이견 없이 우승이라고 할 테니까요. ”

 

 

별로 하는 일도 없었던 사회자가 급하게 끼어들었다.

 

 

“ 자, 그럼 세 분 모두 마음의 결정을 내린 것 같으니 요리를 두 개씩 선택해 주시기 바랍니다. 맨 앞의 심사 테이블로 각각 선택하신 요리 접시를 가지고 나와 주십시오. ”

 

 

참가자들 모두가 숨을 죽였다. 과연 어떤 요리들이 결선에 진출하게 될지 두 손을 부여잡고 가슴을 졸였다. 베르닌도 이미 실격은 했지만 그래도 궁금해서 고개를 뽑았다. 예상 외로 왕재수가 제일 먼저 접시 두 개를 들고 나와서 심사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곧이어 블리즈네초프가 한가운데에 자기가 고른 접시들을 놓았다. 마지막으로 렐랴가 나왔다. 테이블 위에 여섯 개의 접시가 가지런히 놓였다.

 

 

“ 자, 그러면 의장님부터 선정 요리를 소개해 주시고 심사위원들 모두가 맛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

 

“ 에, 그러죠. 먼저 이 키예프식 커틀릿! 바로 예산국 대표 조야 브릴료바의 요리입니다. 조야의 음식 솜씨는 가브릴로프 공공기관 내에서는 워낙 유명한 터라 굳이 소개가 필요 없을 겁니다. 아시다시피 키예프식 커틀릿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닭고기 안에 넣는 버터와 기름이 얼마나 촉촉하고 부드러운지, 그리고 튀김옷이 얼마나 공처럼 잘 부풀어 올랐는지, 그리고 그 맛이 얼마나 고소한지 아니겠습니까! 자, 렐랴, 미하일. 내가 직접 썰어드리죠. 한 번 맛을 보면 내가 왜 이 커틀릿을 골랐는지 대번에 이해가 될 겁니다. ”

 

 

블리즈네초프는 얼굴까지 붉혀가며 열성적으로 브릴료바의 커틀릿을 칭찬했다. 모양새를 보니 근사했다. 황금빛으로 튀겨진 타원의 공 모양은 완벽했고 나이프로 가운데를 슥 하고 썰자 하얗게 익은 닭고기와 그 안에서 주르륵 흘러내리는 버터와 허브와 치즈가 참으로 부드러워 보였다. 채를 썬 후 달달 볶아서 기름에 버무려 놓은 당근과 양배추도 맛있을 것 같았다. 렐랴는 속이 가장 꽉 차 있는 가운데 토막을 접시에 덜어서 포크로 우아하게 먹어 보았다. 왕재수는 렐랴처럼 적극적으로 굴지 않았기 때문에 의장이 직접 접시에 고기를 얹어 주었다. 당근 볶음도 잔뜩 곁들여 주었다. 왕재수가 포크질을 하는 것을 보면서 베르닌은 한숨을 쉬었다.

 

 

‘ 저 녀석 튀긴 커틀릿 안 먹는데... 심지어 안에 버터랑 치즈까지 잔뜩 들어 있으니... 근데 진짜 맛있겠다... ’

 

 

접시와 포크를 내려놓은 후 렐랴가 고개를 끄덕였다.

 

 

“ 음, 맛있네요. 키예프 커틀릿은 잘못 튀기면 닭고기가 너무 익어서 퍽퍽하거나 질겨지기 마련인데 버터에 기름을 섞고 거기에 치즈를 가미해서 촉촉함을 유지했어요. 버터 덕분에 풍미도 살았고요. 자칫 느끼해질 수 있는 것을 파슬리를 비롯한 허브들을 넣어서 괜찮았어요. 곁들인 당근도 설탕과 기름으로 마리네이드해서 볶은 것 같군요. 우리 가브릴로프 입맛에 잘 맞는 맛있는 요리였어요. ”

 

 

의장은 껄껄 웃었다. 류드밀라의 말대로 브릴료바를 아주 밀어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렐랴의 심사평에 대만족했는지 만면에 미소를 띤 채 왕재수를 채근했다.

 

 

“ 그래, 우리 감독님은 이 훌륭한 요리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

 

 

왕재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

 

 

“ 고기가 퍽퍽하지 않은 건 장점일지 모르겠지만 이건 과유불급이에요. 버터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풍미를 살릴 수 있고 촉촉함도 유지할 수 있는데 해바라기유를 이렇게 많이 섞다니. 원재료인 닭고기의 맛보다 기름과 버터 맛이 더 강해요. 아직도 입안이 미끌미끌한 것 같다고요. 게다가 이렇게 기름진 요리에 가니쉬마저 기름에 볶은 당근을 곁들이다니... 최소한 당근과 양배추를 마리네이드할 때 식초라도 좀 섞었으면 느끼함이 덜했을 것 같군요. ”

 

 

의장은 못마땅한 얼굴로 왕재수를 쳐다보더니 잽싸게 자기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 흠, 역시 미하일은 대도시 출신이라서 그런지 이렇게 풍부한 맛의 요리는 많이 드셔보지 않은 것 같군요. 이것은 정통 가브릴로프식 요리지요. 우리의 전통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 훌륭한 요리입니다. 자고로 기름과 버터는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튀김옷을 보면 알맞은 황금빛에 얼마나 겉이 바삭하면서도 안이 부드러운지 모릅니다.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온다 이겁니다. 정말이지 이런 요리를 매일 얻어먹고 있는 조야의 남편이 부러울 지경입니다. 다른 요리들도 훌륭하겠지만 사실 이 커틀릿이야말로 최강의 우승 후보입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남은 커틀릿을 제가 다 먹어도 되겠지요, 렐랴? ”

 

“ 네, 그건 상관없는데 다른 요리도 맛을 보셔야 하니 조금 있다가 드시는 게 어떨까요? ”

 

 

여전히 공정성을 최우선시하는 렐랴가 조바심을 내며 의장을 저지했다. 그리고는 블리즈네초프가 고른 두 번째 요리를 소개해달라고 했다. 아까보다는 한풀 꺾였지만 여전히 기세 좋게 의장이 두 번째 접시를 가리켰다.

 

 

“ 이것은 삼림국 대표 클라우디야 풀코바의 양고기 샤실릭입니다. 샤실릭이야 뭘로 만들어도 맛있지만 그래도 역시 최고는 양고기가 아니겠습니까. 숯도 없이 이런 실내의 가스렌지와 오븐만으로 샤실릭을 구워낼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가상하고 또 맛도 진짜 야외에서 구운 샤실릭 같다 이겁니다. 붉은 양파를 사이사이 끼워서 양고기의 누린내도 감쪽같이 잡았고 특히 익힌 정도가 예술이죠. 아주 부드럽고 촉촉한 것이 일품입니다. 역시 샤실릭은 이렇게 꼬치를 들고 손으로 먹어야 제 맛이죠. 자, 한 꼬치씩 드셔보시죠. ”

 

 

베르닌은 왕재수의 ‘한 조각도 아니고 한 꼬치라니, 미쳤냐!’ 하는 표정이 역력한 얼굴을 보고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 했다. 렐랴는 의장이 권하기 전에 이미 모범적으로 꼬치를 손에 들고 먹음직스러운 갈색으로 그을린 양고기와 붉은 양파를 먹어보고 있었다. 손으로 꼬치를 들고 먹는데도, 심지어 도톰한 입술 근처에 양고기 육즙이 흘러내려 살짝 묻었는데도 렐랴는 너무너무 매력적이고 예뻐서 베르닌은 잠깐 심장이 두근거렸다. 주위를 보니 다른 남자 참가자들도 입을 헤 벌리고 렐랴를 쳐다보고 있었다. 렐랴는 주의 깊게 맛을 보면서 먹었지만 꼬치 하나를 전부 해치우지는 않았다. 반쯤 먹고 난 후 손수건으로 입을 닦고 물을 좀 마셨다.

 

 

그러는 동안 왕재수는 포크로 양고기 한 점과 양파 한 점을 빼내서 천천히 먹었다. 베르닌은 항상 왕재수가 양고기를 먹는지 안 먹는지 궁금했었다. 양고기는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었고 까탈스러운 왕재수의 식성을 두고 모험을 하기 싫어서 사본 적이 없었다. 잠시 후 왕재수는 접시에 꼬치와 포크를 내려놓고 렐랴처럼 물로 입을 헹궜다. 그리고 짤막하게 평을 했다.

 

 

“ 누린내를 다 잡은 건 아니에요. 민트 젤리나 고수를 썼으면 더 좋았을 걸 그랬어요. 익힌 정도는 나쁘지 않고요. 하지만 샤실릭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숯불에서 오는 맛인데 그게 없는 게 아쉽군요. ”

 

 

렐랴가 곧장 동의했다.

 

 

“ 미샤 말이 맞아요. 우리 가브릴로프에서는 양고기 샤실릭에 고수 대신 보통 황금손가락 버섯을 쓰는데 그 버섯은 여름에 나서 지금은 구하기 힘드니 양파를 대신 쓴 것 같네요. 미샤 얘기대로 민트를 썼으면 더 좋았을 거예요. 육즙은 풍부하네요. 숯불이었다면 훨씬 맛있었을 것 같아요. 오븐이나 가스 렌지를 써야 했으니 샤실릭보다는 스테이크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그래도 전반적으로 맛은 좋았어요. 좋은 양고기를 쓴 것 같네요. ”

 

 

베르닌의 옆에서 류드밀라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좋은 양고기를 쓰셨겠지, 남편이 양떼 농장 지배인에 의장의 친구니까. ”

 

 

아무래도 류드밀라는 심혈을 기울인 파프리카가 결선에 진출하지 못해 속이 상한 것 같았다. 일찌감치 실격을 당한데다 그 전부터 아무런 수상 기대도 없었던 베르닌은 풀코바의 양고기 샤실릭도 너무너무 먹어보고 싶었다. 요리를 하느라 너무 진을 뺐는지 배가 고파서 꼬로록 소리가 났다. 결선 진출 요리들이야 심사위원들이 맛본다 치고, 나머지 조리대 위에 있는 음식들은 자기들에게 나눠주면 안 되나 싶었다.

 

 

이번에는 렐랴가 자신이 고른 요리를 소개할 차례였다. 그녀가 먼저 소개한 요리는 초록빛 풀과 검은색이 도는 자줏빛의 토마토 비슷한 알맹이들이 사이사이에 박혀 있는 윤기 나는 갈색 고기 요리였다. 모양만 봐서는 무엇인지 전혀 상상이 가지 않았다.

 

 

“ 이건 벨르이 오스트로프의 시립공원 관리자인 소피야 마츠케바의 요리예요. 소피야는 요리 솜씨가 뛰어나기로 유명해서 가끔 주부들을 모아놓고 강습도 해요. 공교롭게도 이번 요리도 앞선 클라우디야처럼 양고기를 주재료로 썼네요. 하지만 조리 방식은 완전히 달라요. 일단 향신료가 많이 들어갔고, 제일 중요한 건 검은 숲에서 나는 자두를 넣었다는 점이에요. 저도 양고기 요리를 즐겨 하지만 자두를 써본 적은 없었는데 새로 하나 배웠어요. 탁월한 선택이에요. 말린 자두의 달콤하면서도 살짝 쌉쌀한 맛이 양고기와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맛이 나요. 그리고 큼직한 호두 알갱이들을 사이사이 박아 넣고 허브를 가미해서 누린내도 나지 않아요. 오븐을 쓰지 않고 직접 팬에 구웠기 때문에 껍질도 바삭바삭하고 맛있어요. 두 분도 드셔 보세요. ”

 

 

블리즈네초프가 나이프로 고기를 크게 한 토막 썰더니 덥석 입에 쑤셔 넣었다. 잠시 후 자두도 한 알 밀어 넣었다. 우물우물 씹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 흠, 이것은 꽤 이국적인 맛이군요. 뭔가 허브와 향신료가 잔뜩 들어가서 더운 나라 음식 맛이 나는군. 자두를 넣다니 좀 신기한데... 내 취향으로는 양고기는 역시 샤실릭 쪽이 더 마음에 들긴 합니다. 하여튼 특이한 맛이로군요. 창의적이에요. ”

 

 

자기가 미는 요리들의 순서가 끝나서 그런지 블리즈네초프의 평은 생각보다 짧았고 건조했다. 렐랴는 왕재수가 고기를 작게 썰어서 자두와 호두, 초록색 풀 등속을 곁들여 먹어보는 동안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잠시 후 왕재수가 말했다.

 

 

“ 나쁘지 않아요. 자두와 양고기가 잘 어울리는 편이고 불 조절을 잘 했는지 육즙도 살아 있어요. 난 처음 두 가지보다 이게 더 나은 것 같아요. 여기서는 잘 쓰지 않는 향신료를 많이 넣었네요. 카다몬, 고수, 그리고 사프란이 조금 들어간 것 같군요. 구하기 힘들었을 텐데. 허브는 로즈마리와 타임, 그리고 잘 모르는 풀이 하나 더 들어간 것 같아요. 살짝 습한 향을 생각하면 풀이 아니라 버섯 같기도 하고. ”

 

 

렐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 그게 제가 아까 얘기한 황금손가락 버섯이에요. 가브릴로프 토종 버섯이에요. 그런데 정말 대단하네요, 미셴카. 한 입밖에 안 먹었는데 향신료와 허브를 모두 맞추셨어요. ”

 

 

왕재수는 별로 으쓱하지도 않았다. 베르닌은 마츠케바가 분명 투레츠키에게서 향신료를 조달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두와 각종 향신료를 곁들인 양고기 구이라니 베르닌으로서는 생소했지만 까탈스러운 왕재수가 처음으로 ‘나쁘지 않다’고 했으니 분명 맛있을 것 같았다. 더더욱 꼬로록 소리가 커졌다.

 

 

자두 양고기 요리에 이어 렐랴가 뽑은 것은 갈색과 황금빛, 그리고 크림색이 겹겹이 어우러진 근사한 메도빅이었다. 보자마자 베르닌은 보랴의 솜씨라는 것을 깨달았다. 왕재수 쪽을 보니 ‘크림과 당분!’ 하고 소리소리 지르고 싶은 것을 꾹 참는 표정이었다! 블리즈네초프마저도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 아니, 이건 메인 요리가 아닌데. 의외로군요, 렐랴. 디저트를 뽑다니. ”

 

“ 저도 처음에는 왜 하고많은 요리들을 놔두고 케익을 만들었을까 했지만... 이건 정말 대단해요. 말이 필요 없어요. 구시가지에 있는 식당 스베촉의 보리스 도브로류보프의 솜씨인데요, 스베촉이야 그쪽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워낙 맛있는 식당이라고 소문이 나 있으니 메인 요리야 의심할 필요도 없지만 설마 케익까지 이렇게 잘 만드는 줄은 몰랐어요. 다들 아시겠지만 전 제과제빵에 아주 강점을 가지고 있어요. 메도빅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이건... 이 메도빅을 한 입 먹는 순간 전 무릎을 꿇고 말았어요. 진짜 달콤하고 맛있어요. 게다가 이렇게 겹겹이 층을 쌓다니... 열두 겹은 되는 것 같아요! 한 시간 동안 이렇게 완성도 높은 케익을 만들어 내다니 정말 대단해요. 한 입 먹는 순간 우승감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

 

 

의장과 왕재수가 동시에 케익을 잘라서 입에 넣었다. 베르닌은 12겹으로 층층이 쌓여 있는 꿀케익 메도빅 사이사이에 들어 있는 크림의 단면을 보고 반쯤 기절할 것 같았다. 먹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았다! 음식 투정이나 부리는 왕재수 대신 자기가 심사위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 주위를 보니 다른 사람들도 군침을 꿀꺽꿀꺽 삼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딱 차 한 잔 마시기 좋은 오후 시간이었다!

 

블리즈네초프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 아, 맛있군요. 음... 상급의 메도빅이야. 모스크바에서 먹었던 것 같은 맛이군. 이런 솜씨라면 메인 요리를 만들어줬으면 좋았을 것을. ”

 

“ 전부 메인 요리니까 케익도 하나쯤 있는 게 나쁘진 않아요. 그리고 정말 맛있잖아요. ”

 

 

렐랴가 열성적으로 변호했다. 그때 케익을 삼킨 왕재수가 휘파람을 불었다. 베르닌은 그가 뭘 먹고 휘파람을 부는 것을 처음 봤다. 렐랴와 블리즈네초프도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왕재수가 활짝 웃었다.

 

 

이거 맛있어요. 난 원래 단 거 잘 안 먹는데... 분명히 많이 달콤한데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아요. 꿀 크림도 많이 들어 있는데 느끼하지도 않고, 겹겹이 쌓여서 이렇게 층이 높은데도 입에 들어가는 순간 삭 녹아버리는 게 가볍고 부드러워요. 위에 뿌린 아몬드와 호두도 너무 고소하고. 어릴 때 먹어본 것 같은 맛이야. ”

 

“ 그렇죠? 메도빅은 흔하니까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메도빅이라면 서기장 식탁에라도 올라가겠어요. ”

 

 

렐랴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동조했다. 베르닌은 자리를 박차고 앞으로 튀어나가 메도빅을 손으로 마구 움켜서 와구와구 먹고 싶은 것을 혼신의 힘을 다해 참고 또 참았다.

 

 

‘ 아아 먹고 싶다! 먹고 싶다! 먹고 싶다! ’

 

 

꿀케익의 고문도 모자라 이제 왕재수의 차례가 되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저 까다로운 왕재수가 맛있다고 하는 음식은 대체 얼마나 맛있을지 베르닌은 머리가 띵했다. 이것은 대회라는 이름을 빙자해 선량한 인민들의 뱃속과 침샘을 고문하는 악독한 짓이었다!

 

 

왕재수가 별 말 없이 테이블에 놓여 있는 황갈색의 커다란 피로그 파이를 가리키자 블리즈네초프가 조바심을 내며 물었다.

 

 

“ 자, 미하일. 설명이 필요합니다. 누가 만든 음식인지... ”

 

“ 글쎄요, 난 이름표를 안 봐서... ”

 

“ 아니, 어떻게 이름표를 안 보고 뽑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이건 대회인데! 누가 만들었는지가 제일 중요한데. ”

 

“ 누가 만들었는지는 나중에 번호 보면 알잖아요. 제일 맛있는 거 고르는 거라고 해서 그렇게 한 건데. 여기서 먹어본 것 중에 이게 제일 맛있었어요. 두 분이 고른 것들보다 더 맛있어요. 생선을 넣은 파이는 잘못 구우면 엄청 질척해지는데 이건 완벽해요. 맛을 보면 연어와 농어를 섞은 것 같아요, 시금치와 마늘, 견과를 넣어서 풍미가 살아 있어요. 소스는 스메타나를 썼는데 굉장히 부드럽고 생선과도 잘 어울려요. 비린 맛도 전혀 없고 촉촉하면서도 전혀 과하지 않고 담백해요. ”

 

“ 어머나, 생선 파이로군요. 맛있겠어요. 처음으로 생선 요리가 나왔네요! ”

 

 

아직도 이름표 타령을 하고 있는 의장을 밀치고 렐랴가 앞으로 나왔다. 기대에 찬 표정으로 생선 파이를 나이프로 썰었다. 단면이 나타나자 렐랴를 비롯해 홀 안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와...’ 하고 군침을 삼켰다. 생선 파이는 한 마디로 아름다웠다! 아주 두툼한데다 황금빛 파이 시트 위로 붉은 연어 살이 깔려 있고 그 위에 녹색 시금치와 노르스름한 견과가 한 겹 덮여 있고 또 그 위에 하얀 농어 살이 두툼하게 얹혀 있었다. 그리고 다시 시금치와 견과가 한 층 얹혀 있고 이것을 바삭하게 구워진 황갈색 파이 껍질이 완벽하게 감싸주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줄줄 흘렀다.

 

렐랴는 잘라낸 파이를 한 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서서히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더니 아름다운 회색 눈에 황홀감이 어렸다. 파이를 삼킨 후 렐랴가 나직하게 신음을 내뱉었다.

 

 

아, 미셴카. 이건 정말 맛있네요. 다른 말이 필요 없어요... 아...

 

 

렐랴는 나이프로 파이를 아까보다 더 크게 썰었다. 잘라낸 파이 조각을 이제껏 늘어놓았던 미사여구 같은 것도 없이 급하게 다시 먹었다. 너무 맛있게 먹다가 목이 막혀서 잠깐 기침까지 했다. 왕재수가 컵을 건네주자 렐랴는 물을 마신 후 한숨을 쉬었다.

 

 

“ 아아... 이제껏 제가 요리를 잘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런 파이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 하겠어요. 의심의 여지없이 이것보다 뛰어난 요리는 안 나올 것 같아요. 의장님, 한번 드셔보세요. 오늘의 우승 요리가 여기 있네요. ”

 

 

조리대 쪽을 돌았던 블리즈네초프가 다가왔다. 아주 못마땅한 얼굴이었다. 포크와 나이프를 들지도 않았다. 한 손에 이름표를 들고 있었다. 왕재수를 쳐다보며 딱딱한 음성으로 물었다.

 

 

“ 이거 말인데, 미하일. 혹시 24번이었나요? ”

 

“ 그런가... 잠깐만요. ”

 

 

왕재수가 테이블 한쪽에 놔뒀던 수첩을 힐끗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 맞을 걸요, 24번하고 27번. 27번은 저 쇠고기 요리니까 24번 맞아요. ”

 

 

의장이 혀를 찼다.

 

 

“ 으음... 그렇군... 안타깝지만 이건 안 됩니다. 이건 실격이에요. ”

 

 

렐랴와 왕재수 뿐만 아니라 참가자들 모두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렐랴가 깜짝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 아니 왜요, 아까 30번처럼 이름표가 없는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인가요? 이렇게 맛있는 요리가 왜 실격이란 거죠? ”

 

“ 거참, 렐랴. 대회 지침 기억 안 납니까? ”

 

“ 왜 기억이 안 나겠어요, 제가 대회 추진위원이고 매뉴얼과 심사 원칙도 다 손봤는데. 어디에도 생선 파이가 안 된다는 규정은 없어요. ”

 

“ 생선은 여기서 중요한 게 아니지요, 파이도 그렇고. 중요한 것은 제1조 1항입니다. 천하일미 요리대회에 출품되는 요리는 소비에트 연방과 가브릴로프의 이념과 미풍양속을 해치면 안 된다.

 

“ 그래요, 그건 어느 대회 어느 행사 지침에나 1번으로 들어가는 거잖아요. 형식적인 거죠. 대체 생선 파이가 우리 소비에트 연방과 가브릴로프의 이념과 미풍양속을 해칠 구석이 어디 있다고... ”

 

허참... 이거 안 보입니까? 이 십자가 표시! 이건 정교 십자가라고요! 파이 껍질에 십자가가 그려져 있지 않소! 이건 수도원 파이라고요! 알다시피 하느님인지 뭔지를 숭배하는 정교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레닌주의의 적이며 소비에트 연방의 뿌리를 갉아먹는 미신이자 백해무익한 반동 세력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달리 수도원이 폐쇄된 게 아니지! 그런데 어떻게 감히 그것도 혁명의 요람이었던 우리 가브릴로프에서 당과 의회가 예산을 댄 요리대회에 반동적인 수도원 음식이 나온 것도 모자라 껍데기에 십자 표시까지 그려져 있을 수가! ”

 

 

렐랴가 고개를 저었다.

 

 

“ 그게 무슨 얘긴가요, 의장님. 이게 수도원 음식이라고요? 누가 만든 건데요? 이름표를 보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여긴 종교 박물관이라고 씌어 있는데요, 아말리야 루카셴코... 아, 아말리야였군요! 어쩐지... 아말리야 그리고리예브나, 저희 대회에 나와 주시다니 이건 진짜 영광이에요! ”

 

 

렐랴의 열광에도 불구하고 의장은 냉랭했다.

 

 

영광이고 뭐고 이건 실격이에요! 아무리 맛있어도 제1 지침을 위반했으니 절대 안 됩니다.

 

“ 의장님, 아말리야 그리고리예브나는 수도원이 아니라 종교 박물관 대표잖아요! 박물관도 공공기관인데 어째서 안 된다는 건가요! 물론 생선 파이는 수도원의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죠. 하지만 그렇게 치면 우리 러시아 전통 음식 중 교회와 한번이라도 연을 맺지 않았던 음식이 어디 있나요! ”

 

“ 다른 걸 다 떠나서 파이 위의 십자 표시 때문에 실격 처리를 할 수밖에 없어요! ”

 

 

가만히 있던 왕재수가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 아 정말 가지가지 하네요. 십자 표시가 어디 있다고 그래요! 난 눈 씻고 찾아봐도 못 찾겠는데! ”

 

“ 여기, 여기 이 십자 표시가 안 보인단 말입니까! ”

 

 

의장이 파이 껍질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베르닌도 류드밀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목을 쭉 빼고 파이 껍데기를 바라보았다. 가운데에 십자 표시로 금이 가 있었다. 왕재수가 코웃음을 쳤다.

 

 

이건 파이가 터질까봐 수증기가 빠져나가도록 가볍게 금을 낸 거잖아요! 이렇게 속이 꽉꽉 차 있는 두툼한 파이는 잘못하면 부풀어 터질 수도 있고 야채의 수분 때문에 안이 질척해지기 때문에 공기구멍을 조그맣게 내준 거라고요! 껍데기에 금 그은 걸 갖고 십자가라니! 이렇게 돌려서 보면 십자가가 아니고 X 표시인데! ”

 

“ X도 문제지 뭐란 말이오! 그리스도(Христос)의 X 아니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이건 반동적인 음식이오! 실격이오! ”

 

“ 무슨 낱말 맞추기도 아니고, 맛있는 음식을 뽑는 대회라더니 무슨 그리스도가 어떻고 수도원에 반동이 어떻고... 그럼 애초에 종교 박물관은 참가하지 말라고 접수를 막든가. 왜 이제 와서 트집인지 이해가 안 가네요! ”

 

 

왕재수가 화를 내며 따졌다. 평소에 자기 일이 아닌 모든 것을 귀찮아하는 성격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진짜 단단히 열 받은 것 같았다. 의장은 왕재수가 조목조목 따지자 말문이 막혔는지 잠깐 어버버 하다가 공격 방향을 잽싸게 돌렸다.

 

 

“ 아니, 참 이상하군요. 하고많은 요리 중에 하필 종교적 반동 색채가 뚜렷한 생선 파이를 고르고. 그것도 모자라 명확히 드러난 십자 표시를 놓고도 이 음식을 변호하니... 이봐요, 미하일. 내가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지만 가뜩이나 당신은 이념적으로도 불확실한 사람이라는 평을 받는데. 자꾸 이렇게 우기면 당신이 아직도 반체제주의와 불순한 이념을 버리지 못했다고 의심을 받게 된단 말입니다.

 

맛있는 걸 맛있다고 하는데 뭐가 불순하다는 거예요!

 

 

왕재수가 굽히지 않고 화를 냈다. 베르닌은 뭔가 분위기가 이상해진다고 생각했다. 저 녀석의 입을 막아야 하나 하고 걱정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오른편 구석에 앉아 있던 백발의 노부인이 일어나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이제 그만들 하시죠. 그 생선 파이는 내가 수도원에서 전해져 오는 정통 레시피로 만들었으니 정교 쪽 요리라는 것은 의장님 얘기가 맞습니다. 대회 지침에 대해서는 내가 잘 몰랐군요. 몰라서 수도원 레시피로 파이를 만든 것이니 지침에 따라 실격 처리를 해주시면 되겠네요. 그러니 다들 진정하세요. 미하일 세르게예비치에게는 내 파이를 맛있게 드셔주신데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네요. 그리고 껍데기의 십자 모양 금은 미하일 얘기가 맞아요. 공기구멍을 미세하게 내서 수증기를 빼내기 위한 거였답니다. 여러분 중 누구라도 파이 맛이 궁금하면 나중에 따로 나에게 놀러오세요. 그럼 난 이만 나가보겠어요. ”

 

 

아말리야가 꼿꼿하고 우아하게 홀을 나간 후 잠시 침묵이 흘렀다. 머쓱해진 의장이 헛기침을 한 후 왕재수에게 한결 부드러워진 음성으로 말했다. 뒤늦게 왕재수의 후원자 아저씨들 생각이 난 것 같았다.

 

 

“ 자, 이렇게 해결이 됐군요. 아까는 내가 실수한 것 같은데. 고의로 그런 말을 한 건 아니니 잊어줘요, 미하일. 아무래도 나는 의회를 이끌고 있어 법령과 지침에 민감하다 보니 당신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예술가라는 것을 깜박했단 말이지요. 하여튼 다음 요리를 소개해 주시죠. 냄새가 아주 맛있게 나는데. ”

 

“ 그래요, 미셴카. 생선 파이는 진짜 맛있었지만 지침에 위배된다니 어쩔 수 없을 것 같아요. 마지막 요리를 소개해 주세요. ”

 

 

왕재수가 소리 없이 휘파람을 불었다. 표정은 다시 평온해졌지만 몇 달 동안 왕재수를 봐온 베르닌은 그가 잔뜩 열 받아서 전부 뒤집어엎고 나가버리고 싶지만 렐랴를 봐서 참고 있는 상태라는 것쯤은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럴 때는 왕재수가 여자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 성격이란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의장을 적으로 돌려봐야 좋을 일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가뜩이나 이런 자리에서, 심지어 방송 취재까지 와 있는 자리에서 반동분자니 이념이 불순한 인간이니 하고 몰리기 시작하면 더욱 큰일이었다. 국장이야 아주 좋아하겠지만...

 

 

왕재수는 마지막 접시를 가리키며 김이 다 빠졌다는 듯 건조하게 말했다.

 

 

“ 아까 게 제일 맛있긴 했는데. 나머지는 다 고만고만했어요. 딱 하나 빼놓고는. 그건 정말 입에 댈 수도 없는 고약한 요리였어요. 보르쉬 냄새만 풍기는 구정물 같은 게 하나 있더라고요. 하여튼 다른 것들 중엔 그나마 이게 제일 나았어요. 비프 스트로가노프네요. 소스는 제대로 만들었어요. 고기는 너무 익혔고요. ”

 

 

의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들고 있던 이름표를 확인했다.

 

 

“ 27번이라고 했으니... 안드레이 오로빈스키, 아, ‘비슈네브이 사드’ 잡지 대표로군요. 여기 대표라면 렐랴가 나와야 했을 텐데 심사위원이라 못 나와서 다른 사람이 나왔나 보군요. 아깝네요, 렐랴. 당신이야말로 강력한 우승 후보였는데. ”

 

“ 저야 추진위원에 심사위원까지 겸하고 있으니 당연히 나오면 안 되죠. 안드레이는 원래 요리 솜씨가 있는 편이었어요. 이 비프 스트로가노프는 저희 집안 레시피로 만든 것 같군요. 저는 맛만 보고 평은 하지 않겠어요, 어쨌든 저희 잡지 쪽 참가자니까요. ”

 

 

안드레이의 비프 스트로가노프도 근사해 보였다. 상아빛의 풍성한 감자 퓌레 위에 먹음직스러운 갈색 소스로 잘 버무려진 쇠고기와 양송이가 예쁘게 올라가 있었다. 베르닌은 안드레이의 ‘이건 경쟁이에요!’가 떠올라서 살짝 기분이 나빴지만 그래도 먹어보고 싶기는 했다. 블리즈네초프는 조금 전에 아말리야의 요리를 실격시키고 나자 왕재수의 눈치가 보였는지 고기를 거의 한 국자 가깝게 떠서는 쩝쩝 소리를 내며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배를 쓸며 만족스럽게 껄껄 웃었다.

 

 

“ 어험, 역시 레닌그라드에서 오셔서 그런지 귀족적인 요리를 고르셨군요, 미하일. 그리고 렐랴, 자랑스러워해도 되겠군요. 이건 훌륭한 비프 스트로가노프입니다. 고기도 맛있고 특히 소스가 부드러운 크림 맛과 고기 육즙이 조화되어 일품이에요! 이것 참... 조야의 키예프 커틀릿만 아니었어도 우승감이라고 단언할 수 있으련만... 참 맛있군요. ”

 

 

렐랴는 고기와 양송이를 포크로 떠서 천천히 먹었고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힐끗 보니 저편에 앉아 있는 안드레이의 얼굴이 사과처럼 새빨갰다. 분명 심장이 터질 것처럼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렐랴는 아까 했던 말대로 음식에 평을 하지는 않았다. 베르닌은 그녀의 공정한 태도에 감명을 받았고 역시 렐랴는 최고라고 생각했다.

 

 

블리즈네초프가 손수건으로 입을 닦으며 말했다.

 

 

“ 자, 그럼 이제 다 먹어봤으니 수상자를 가려야 할 때가... ”

 

잠깐만요.

 

 

왕재수가 의장의 말을 끊었다.

 

 

“ 다 먹은 거 아니에요. 아직 하나 남았어요. ”

 

“ 그게 무슨 소립니까, 미하일. 한 사람당 10개씩 맡아서 모두 맛을 봤는데. 각자 뽑은 요리도 서로 다 맛을 봤고. ”

 

“ 아니에요, 아직 하나 남았어요. 30번. 이름표 떨어졌다고 아까 실격시키자고 한 거 말예요. 난 저거 먹어보고 싶어요. ”

 

“ 아니, 그 망측한 달걀쌈 말입니까? 그건 이름표도 없는데... ”

 

“ 벌써 하나 실격시켰잖아요! 내가 맡은 건 10개인데 그 중 심사 대상이 8개밖에 안 된다는 건 공정하지 않아요. 그리고 분명히 아까 심사 원칙을 정할 때 심사위원별로 두 개씩 추천을 해서 총 여섯 가지 요리를 맛보고 고르자고 했잖아요. 내가 고른 건 하나 뿐이니까 하나 더 채워야 해요! ”

 

 

렐랴가 고개를 끄덕였다.

 

 

“ 미샤 말에 일리가 있네요. 애초에 모두가 1번부터 30번까지를 모두 맛봤다면 모르겠지만 심사위원 하나 당 10개를 맛보고 두 개씩 추천하기로 했는데 미샤는 본의 아니게 하나밖에 추천하지 못했잖아요. ”

 

“ 하지만... 그러면 아까 맛본 다른 요리들 중에서 추가로 하나를 더... ”

 

“ 전부 별로였단 말이에요! 비슷비슷했어요. 군계일학으로 맛있었던 생선 파이를 십자빵이니 뭐니 해서 떨어뜨렸잖아요. 저 비프 스트로가노프도 다른 것들보다 약간 나은 정도였고 나머지는 다 그냥 그랬어요. 그러니까 마지막 하나 남은 걸 먹어봐야겠어요. ”

 

“ 하지만 저건 망측한 달걀쌈... 심지어 이름표도 없고... ”

 

“ 이름표 없어도 분명 누가 만들었으니까 저기 있는 거잖아요. 나도 알아요, 분명 맛없을 거. 그래도 심사의 공정성을 위해서 먹어는 봐야겠어요. 별로면 난 그냥 저 비프 스트로가노프 하나만 추천할게요. ”

 

 

블리즈네초프는 좀 짜증이 난 것 같았지만 조야 브릴료바를 밀어주기 위해 최대의 경쟁자인 아말리야를 실격시킨 것이 좀 찔렸는지, 아니면 왕재수가 대드는 게 골치 아팠는지 결국 동의했다. 베르닌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 저 자식, 왜 갑자기 내 걸 먹어보겠다는 거야. 그냥 아까 그렇게 실격시키는 걸로 끝냈으면 그만이지. 안 그래도 엉망인데 또 무슨 말을 늘어놓으려고. 다 식어빠져서 더더욱 맛도 없겠구만. 시간 없어서 야채도 다 안 익은 거 쑤셔 넣은 건데. 에이 참... 나 여기 온 거 비밀로 하고 있어야지. 내 거라는 거 알면 얼마나 구박을 하려고... ’

 

 

베르닌의 속마음 따위는 물론 아랑곳하지 않고 왕재수가 조리대로 갔다. 의장과 렐랴는 따라오지 않았다. 렐랴는 왕재수의 편을 들어주긴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역시 ‘망측한 달걀’이란 의장의 말에 동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왕재수는 나이프로 오믈렛을 자르더니 주르르 쏟아져 나오는 야채와 식어버린 치즈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포크로 달걀지단과 야채 속을 쓸어 모아 한 입 먹었다. 이제 곧 까칠한 조롱이 쏟아져 나오겠거니 하고 베르닌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꼭꼭 눌렀다.

 

 

왕재수가 갑자기 ‘어?’ 하더니 오믈렛을 조금 더 잘랐다. 그리고는 한 입 더 먹었다. 그리고는 달걀지단 안쪽을 헤쳐보기도 하고 토마토 때문에 질척하게 뒤섞인 야채속도 따로 먹어 보았다.

 

 

“ 어, 이거 이상해... 맛있어!

 

 

왕재수는 오믈렛을 더 자르더니 또 먹었다. 예상외의 반응에 놀란 렐랴가 다가왔다.

 

 

“ 맛있다고요? 그게요? 정말이에요, 미셴카? 대체 무슨 맛인데요? ”

 

그냥 맛있어요. 다른 건 전부 고기에 생선 일색이고 기름도 많이 들어가서 무겁고 느끼했는데 이건 굉장히 가벼워요. 그냥 편하게 먹을 수 있고 맛이 소박하고 담백해요. 야채가 많이 들어 있어서 좋아요. 어떻게 이런 게 맛있을 수가 있지? 다 먹어도 되나?

 

“ 잠깐만요, 저도 먹어볼래요. ”

 

 

왕재수는 렐랴에게 직접 오믈렛을 잘라 주었다. 렐랴는 포크로 달걀지단을 돌돌 말아서 야채와 함께 입 안에 밀어 넣고는 오물오물 씹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 어, 그러고 보니 꽤 맛있네요. 생긴 게 너무 엉망이어서 기대 안 했는데. 메인 요리도 아니고 디저트도 아니지만 가볍고 맛있어요. 야채도 사각사각 씹혀서 좋네요. 식감을 위해 일부러 덜 익힌 건가 봐요. 어떻게 이런 게 맛있을 수가 있느냐고 하셨는데, 끝 맛에서 오는 은은한 풍미가 있어요. 기름을 두르고 부친 게 아닌 것 같아요. 버터를 쓴 것 같은데... 꼭 아까 보랴의 메도빅에서 풍겼던 그 은은한 맛이 나네요. 좋은 버터인가 봐요. 미셴카, 이걸 여섯 번째 결선 진출 요리로 추가하실 건가요? ”

 

“ 네. ”

 

 

렐랴가 접시를 들고 중앙 테이블로 갔다. 블리즈네초프는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별 수 없이 오믈렛 가장자리를 조금 잘라서 먹었다.

 

 

“ 두 분이 왜 그렇게 열광하는지 이해가 잘 안 가는군요. 이건 천하일미 요리대회인데, 이런 전채나 안주 같은 달걀쌈을 결선에 진출시키다니요. 뭐 맛은 그럭저럭 나쁘진 않지만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평범한 맛인데. 그냥 계란 부쳐서 야채랑 치즈 조금 넣고 둘둘 말아놓은 거 아닙니까. 그나마도 옆구리도 다 터뜨리고... 오죽 창피했으면 이름표도 떼어버렸겠어요."

 

“ 그래도 난 이거 고를 거예요. 맛있어요. 이제 더 안 드실 거죠? ”

 

 

왕재수가 의장의 손에서 접시를 빼앗았다. 남은 오믈렛을 반으로 자르더니 두 입 만에 전부 먹어버렸다. 그리고는 두 눈을 반달 모양으로 뜨더니 까맣고 기다란 속눈썹을 나비처럼 파닥거리면서 좋아했다.

 

 

“ 아, 맛있어. ”

 

 

류드밀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베르닌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 저거 진짜 맛있나 봐요. 우리 미셴카는 맛없는 건 절대 안 먹는데. 저런 표정 짓는 거 처음 봐요. 심지어 다 먹었어요. 대체 누가 만든 거지? ”

 

“ 그, 글쎄요... 신기하네요. 맛없어 보이는데... ”

 

 

베르닌은 멍해져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왕재수가 너무 기름진 음식들을 많이 먹어본 나머지 미각이 어떻게 됐나 싶었다. 렐랴야 왕재수를 좋아하니 그의 기분을 맞춰주고 싶어서 둘러댄 게 분명했다.

 

 

렐랴가 말했다.

 

 

“ 이제 여섯 개의 요리를 모두 맛보았네요. 순서대로 조야 브릴료바의 키예프식 커틀릿, 클라우디야 풀코바의 양고기 샤실릭, 소피야 마츠케바의 자두를 곁들인 양고기 구이, 보리스 도브로류보프의 메도빅, 안드레이 오로빈스키의 비프 스트로가노프, 익명 참가자의 야채 오믈렛입니다. 그럼 수상자 결정을 위해 잠시 논의를 해야겠네요. ”

 

 

심사위원석에서 블리즈네초프와 렐랴, 왕재수가 목소리를 낮추어 열심히 토론을 하는 동안 사회자는 잠시 휴식시간을 선언했다. 그리고는 참가자들에게 결선 진출에 실패하고 조리대에 남아 있는 음식들을 맛보라고 해주었다. 모두들 이 순간만을 기다렸는지 우르르 나가서 이 음식 저 음식을 먹어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베르닌도 급하게 뛰쳐나갔다. 나와 있는 모든 음식들을 먹어보고 싶었다. 아르카지의 보르쉬만 빼고. 다들 진짜 맛있었다. 류드밀라의 생선을 채운 파프리카도 꿀맛이었다.

 

 

“ 우와, 류다. 이거 진짜 맛있네요. 담백하고. ”

 

“ 그렇죠! 이게 우리 감독님 쪽에 배정이 됐어야 뽑아줬을 텐데. 하필 의장 쪽 조리대라서 떨어진 거예요! 30개를 다 먹어봐야 공정한데... 이건 전부 의장의 음모라고요. 아까 아말리야 그리고리예브나 떨어뜨리는 것 좀 봐요! 뻔할 뻔자 조야 브릴료바가 우승이고 렐랴가 추천한 두 개 중 하나, 감독님이 추천한 것 중 하나가 각각 2~3위로 배정될 게 분명해요. 렐랴도 집안이 워낙 좋아서 의장이 눈치를 보고 있고, 우리 감독님도 일단 심사위원으로 불러놨으니 아말리야 실격시킨 것도 있고 해서 체면치레 상 분명 하나쯤은 붙여줄 거라고요. ”

 

“ 으잉, 되게 복잡하네요. 그냥 제일 맛있는 걸로 세 개 뽑으면 될 텐데 렐랴와 저 녀석과 의장이 추천한 걸 하나하나씩 배정까지 해야 한다고요? 공정하지 않네요. ”

 

“ 원래 이런 심사는 다 나눠 먹기 식이라고요! 당연히 1등이야 권력 구조상 의장이 미는 쪽이겠지만... 과연 렐랴와 우리 감독님 중 누구를 의장이 더 신경 쓸지가 관건이군요. 그것에 따라 2, 3위가 결정되겠죠! 우리 귀염둥이 감독님이야 정치적으로 의회와는 상극이니 아마 렐랴가 추천한 쪽에서 2등이 나오겠죠. 근데 딱 하나, 감독님이 추천한 안드레이는 렐랴 비서니까 그런 걸 안배해서 걔가 2등이 될 수도 있겠네요. ”

 

 

베르닌은 머리가 아팠다. 기껏 요리대회인데 맛있는 게 우선이 아니라 여기서도 정치싸움을 해야 하다니 짜증이 났다.

 

 

‘ 뭐 나랑 무슨 상관이야. 맛있는 거나 먹어야지. 우와, 이것도 진짜 맛있다! 안 뽑힌 것들도 이렇게 맛있는데 저 앞에 있는 건 얼마나 맛있을까! ’

 

 

그러다가 베르닌은 자신의 오믈렛도 앞 테이블에 나가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결선 진출한 요리라고 무조건 맛있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    *

 

 

 

 

20분 쯤 후 심사위원들이 나왔다. 블리즈네초프 의장은 화색이 완연한 얼굴이었고 렐랴는 불만스러운 듯 도톰한 입술을 삐죽거리고 있었으며 왕재수는 다 귀찮다는 듯 졸린 고양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별로 하는 일도 없는데 대체 왜 나와 있는지 이해가 안 가는 예쁜 사회자가 방긋 웃으며 낭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 자, 의장님. 이제 결과가 나왔나요? ”

 

“ 네, 열띤 토론 끝에 1위부터 3위까지의 수상자가 결정되었습니다. 3위부터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

 

 

홀이 조용해졌다. 의장은 흠흠 하고 목을 가다듬더니 우렁차게 외쳤다.

 

 

3위는 문예지 비슈네브이 사드 대표 안드레이 오로빈스키의 비프 스트로가노프입니다! 앞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

 

 

안드레이가 펄쩍 뛰며 일어났다. 너무나도 좋아했다. 렐랴에게 잘 보이기 위해 우승해야 한다더니 3위만 해도 너무 좋은 모양이었다. 뛰어나가다가 하마터면 의자에 걸려 넘어질 뻔 했다. 의장은 기다리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2위는 스베촉 식당 대표 보리스 도브로류보프의 메도빅입니다!

 

 

보랴가 느릿느릿 일어났다. 안드레이처럼 호들갑을 떨지 않아서 혹시 우승을 노리고 있었나 싶었지만 앞으로 나가면서 보랴도 활짝 웃었다. 베르닌은 꼭 자기가 상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의장은 헛기침을 했고 더욱 우렁차게 외쳤다.

 

 

대망의 1위, 우승자는 예산국 대표 조야 브릴료바의 키예프식 치킨 커틀릿입니다! 축하합니다!

 

 

꽃무늬 원피스와 털조끼를 걸친 우람한 체구의 중년 여인이 환호성을 지르며 일어났다. 우당탕쿵탕 뛰어나가더니 블리즈네초프 의장을 와락 껴안고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하고 소리를 질렀다. 의장 곁에 있던 렐랴가 그 기세에 하마터면 넘어질 뻔 했는데 다행히 왕재수가 잽싸게 그녀의 팔을 붙잡아 주었다. 렐랴는 균형을 잡았는데도 한동안 왕재수의 어깨에 몸을 기대고 황홀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류드밀라가 한숨을 쉬면서 어디 감히 금쪽같은 자기들 감독님을 넘보느냐고 투덜댔다.

 

 

의장이 시상을 했다. 상장과 포크 모양의 트로피 외의 부상으로 1위인 브릴료바에게는 검은 숲 온천 요양소 2인용의 2주일치 휴양권이 수여되었다. 2위인 보랴는 온천 요양소 1주일 휴양권, 3위인 안드레이는 3일 휴양권을 받았다. 참가자들은 열심히 박수를 쳤지만 사실 1위인 브릴료바보다는 보랴가 훨씬 환호를 많이 받았다. 베르닌도 그 세 가지 요리 중에서는 메도빅이 제일 맛있어 보였고 또 보랴도 좋았기 때문에 손바닥이 떨어져라 박수를 쳤다.

 

 

수상자들이 인사를 하고 들어간 후 이제 다 끝났나 싶었는데 의장이 에헴 하며 말을 이었다.

 

 

“ 그리고 나머지 세 명의 결선 진출자들에게는 부상으로 레닌 선집과 역대 서기장 명언집을 수여하도록 하겠습니다. 클라우디야 풀코바, 소피야 마츠케바, 그리고 달걀쌈을 만든 익명의 참가자는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

 

 

사람들이 웅성웅성했다. 다들 그 망측한 달걀쌈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너무나 궁금한 듯했다. 베르닌은 잠시 나갈까 말까 망설였지만 부끄럽기도 했고 내내 아닌 척 하고 있다가 이제야 나가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 생각해서 가만히 있었다. 풀코바와 마츠케바가 나가자 의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 음, 역시 달걀쌈을 만든 참가자는 자리에 없는 모양이군요. 아마 중도 포기를 했거나 급한 일이 있어 자리를 비운 모양이지요. 그러면 두 분께만 시상하도록 하겠습니다. ”

 

 

두툼한 레닌 선집과 서기장 명언집을 받아든 풀코바와 마츠케바가 인사를 한 후 자리로 돌아왔다. 모두의 박수가 이어진 후 의장이 대회 종료를 선언했다.

 

 

 

*    *    *

 

 

 

 

바깥 복도에서 왕재수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보랴가 나왔다. 베르닌은 보랴의 손을 꼭 잡고 축하를 했다.

 

 

“ 진짜 축하해요. 그 메도빅 정말 맛있어 보였어요. 먹고 싶어 미치는 줄 알았네요. 스베촉에서는 메도빅 안 팔아요? ”

 

“ 우리 식당은 밥집이라 디저트는 아이스크림이랑 초콜릿 무스밖에 없어. 먹고 싶으면 주말에 예쁜이 데리고 우리 집에 놀러 와라. 메도빅 그거 한판 굽는 게 뭐 어렵냐. 아까 애기가 케익 맛있게 먹는 거 보니까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

 

“ 그러게요, 걔 춤추던 애라서 원래 단 거 안 먹는데. 그 메도빅이 진짜 맛있었나 봐요. ”

 

“ 사람이 살면서 때로는 단 것도 먹고 즐거움도 누려야지. 하여튼 애 데리고 놀러 와라. 난 이제 식당 가봐야겠다. ”

 

 

보랴가 돌아간 후에도 왕재수는 한참 나오지 않았다. 의장도 아까 나갔는데 대체 뭘 하나 궁금해서 홀로 다시 들어가 보니 왕재수는 렐랴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를 보더니 턱짓으로 테이블 위에 있는 접시를 가리켰다. 보랴의 메도빅이 조금 남아 있었다. 렐랴도 그를 보더니 눈부신 미소를 띠며 상냥하게 말했다.

 

 

“ 어머, 다냐. 어쩐 일이에요. 이리 와서 차 한 잔 마셔요. 이 메도빅 좀 먹어봐요. 진짜 맛있어요. ”

 

“ 어, 네. 감사합니다. ”

 

 

당일 접수를 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대회에 참가했다는 걸 렐랴와 왕재수가 모르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창피해서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었을 것 같았다. 그는 렐랴가 건네준 찻잔을 받기는 했지만 차를 마시기도 전에 아까부터 너무나 먹고 싶었던 메도빅을 덥석 포크로 잘라서 먹었다. 먹는 순간 혀와 입술과 목구멍 전체가 사르르 녹아버리는 것 같았다.

 

 

“ 우와, 이거 진짜 맛있어요. 진짜진짜 맛있어요. ”

 

“ 그렇죠? 보랴가 저보다 훨씬 잘 만드는 것 같아요. 비법이 뭘까? 내일 가서 물어봐야겠어요. 그건 그렇고 전 그만 가봐야겠네요, 미셴카. 원고 마감이 걸려 있어서요. 모레 잠자는 미녀는 꼭 보러 갈게요. 취재도 해야 하니까. 그럼 그때 봐요. 다냐, 안녕. ”

 

 

렐랴가 그를 가볍게 포옹하며 뺨에 뽀뽀를 했다. 그리고는 베르닌이 황홀함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동안 왕재수와도 포옹을 했다. 물론 왕재수와의 포옹과 뽀뽀는 훨씬 길었다. 왕재수는 렐랴와 다정하게 인사를 한 후 그녀가 나가자 베르닌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 다 먹었으면 우리도 가자. 나 속도 울렁거리고 멀미 나. 기름기 너무 많이 먹었나봐. 나가서 맑은 공기 쐬면서 걸어야겠어. 집까지 걸어갈래. ”

 

“ 엥, 나 차 가져왔는데. 걸어가려면 한참 걸리잖아. 난 배고픈데. ”

 

 

왕재수가 냅킨으로 뭔가를 주섬주섬 싸더니 그에게 내밀었다.

 

 

“ 이거 먹으면서 가면 되잖아. ”

 

“ 이게 뭐야? ”

 

“ 아, 이거. 진짜 맛있는 거. 수도원 할머니가 만든 생선 파이. 들고 먹을 수 있을 거야. ”

 

“ 와! 나 이거 아까부터 진짜 먹고 싶었는데! ”

 

“ 뭐? ”

 

 

베르닌은 뜨끔해서 고개를 저었다.

 

 

“ 아니, 며칠 전부터 생선 파이가 너무 먹고 싶더라고. 그래, 집까지 걸어가지 뭐. 가자. ”

 

 

둘은 출판문화국을 나왔다. 찬바람을 쐬자 왕재수가 살 것 같다는 듯 심호흡을 했다.

 

 

“ 어휴, 느끼해서 죽는 줄 알았네. 다시는 이런 거 안 해! 렐랴가 부탁해도 안 할 거야! 우욱... 계속 그 기름 케익 먹는 기분이었어. ”

 

“ 네가 입맛이 유별나서 그래! 이쪽 지방 사람들은 원래 기름지고 풍부한 요리를 좋아한다고! 얼마나 맛있는데... ”

 

“ 그렇겠지, 돼지기름이나 펑펑 들이붓고. ”

 

 

베르닌은 걸어가면서 생선 파이를 베어 물었다. 먹는 순간 머리가 백지가 되는 것 같았다. 담백하고 고소하면서도 촉촉하고 부드럽고 신선했다. 시금치와 견과와 생선, 버터와 마늘의 맛이 오감을 자극했다. 세상에서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또 있을까 싶었다. 수도원에 다시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말도 하지 않고 거의 숨도 안 쉬고 파이를 순식간에 해치웠다. 너무 급하게 먹어치우느라 마지막 한 입이 목에 걸려서 캑캑 기침까지 했다. 왕재수가 혀를 차더니 가방에서 물병을 꺼내서 그에게 건네주었다.

 

 

물을 마시고 숨을 고른 후 베르닌이 중얼거렸다.

 

 

“ 진짜 맛있다. 정말 맛있어. ”

 

“ 응. 오늘 먹은 것 중에 제일 맛있었어. 하긴 진짜 맛있었던 건 세 개밖에 없었어. 이거랑 보랴가 만든 메도빅이랑 그 오믈렛. ”

 

“ 너 있잖아, 그 오믈렛 말이야. 진짜 맛있었어? ”

 

“ ‘그’ 오믈렛이라고? ”

 

“ 아니, 그게... 있잖아... 저... 사실 나도 아까 그 대회 참가했었어. 국장이 우리도 나가야 된다고 등 떠밀어서 급하게 왔었거든... 저기... 근데 재료를 준비해야 되는 줄 몰랐어. 그래서 막판에 여기저기서 빌려서... 류다가 토마토랑 치즈 빌려주고 아르카지가 야채 좀 주고... 보랴가 계란이랑 버터랑 소금 후추 같은 거 줘서 내가... 저... 그 오믈렛 사실은 내가... ”

 

알아. 네가 만든 거.

 

 

베르닌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게다가 왕재수가 너무나 무심하게 대꾸해서 더욱 놀랐다.

 

 

“ 뭐? 안다고? 어, 어떻게? 이름표도 떨어져 버렸는데... 너 아까 내가 요리하는 거 본 거야? ”

 

“ 아니. 나 조리 시간 동안 자고 있었어. 자꾸 옆에서 블리즈네초프가 누굴 뽑아야 한다느니 당이 어떻다느니 하고 개소리를 하잖아. 너무 듣기 싫어서 피곤하다고 자버렸어. 네가 온 줄은 몰랐어. ”

 

“ 근데 어떻게 알았어? 내가 만든 건줄? ”

 

“ 한 입 먹으니 알겠던데. ”

 

“ 어떻게? 어떻게 알아? ”

 

“ 그럼 모르냐? 맨날 저녁밥 해주는데. 그리고 자세히 보니 안 먹어봐도 알겠더라! 계란 옆구리도 다 터지고 플레이팅도 엉망이고 접시 완전 더럽혀놓고. 너 말고 누가 그렇게 지저분하게 음식을 담냐!

 

“ 어... 그건 시간이 부족해서 그런 거야! 재료 구하느라 막판 10분도 안돼서 만든 거란 말이야! 원래 펠메니 만들려고 했는데... ”

 

“ 아, 펠메니 만들었으면 좋았을 걸. 그때 새해에 만든 펠메니 맛있었는데. 바보, 왜 재료는 안 가져와서. ”

 

“ 나 진짜 아무 것도 모르고 온 거였단 말이야! ”

 

뭐 알았다고 달라졌겠냐. 그래봤자 망측한 달걀쌈이지. 어휴, 야채도 절반 밖에 안 익고 치즈는 한쪽으로 다 뭉치고.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왕재수의 독설에 베르닌은 조금 마음이 상했지만 사실은 사실이었으니 뭐라고 할 말도 없었다. 풀이 죽어 있는데 왕재수가 덧붙였다.

 

 

“ 근데 진짜 맛있었어. 아까 심사 토론할 때 나 사실 그거 밀었거든. 근데 블리즈네초프가 메인 요리나 디저트는 되지만 그런 건 안 된다는 거야. 렐랴는 맛있긴 한데 플레이팅이 너무 부족해서 감점 요인이라고 하고. 그래서 그냥 그 스트로가노프로 낙착된 거야. 그거 고기 너무 익혀서 난 별로였는데. 그나마 다른 것보단 나은 정도였어. ”

 

“ 아... 나 감동할 것 같아. 너 내 거라는 거 알고 그렇게 편 들어줬구나. 고마워. ”

 

아니야! 웬 헛소리야! 대회는 경쟁인데 무슨 친분 관계가 소용이 있어! 공정하게 해야지! 로만이 나왔어도 절대 안 뽑아줘! 로만은 요리 실력 형편없으니까! 오믈렛이 맛있었어! 맛있으니까 뽑았던 거야. 나도 그거 왜 맛있었는지 이해가 안 가는데 하여튼 맛있었어! 그리고 엄청 감질났어! 태운 데가 많아서 먹을 수 있는 게 너무 적었단 말이야. ”

 

 

베르닌은 왕재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왕재수가 왈칵 신경질을 냈다.

 

 

“ 왜! 왜 그렇게 쳐다봐! ”

 

“ 진짜 맛있었어? ”

 

“ 그래! 내가 언제 음식 가지고 거짓말한 적 있냐! ”

 

“ 하긴... 그렇구나... 저... 그럼 나중에 만들어줄까? ”

 

“ 나중 말고! 오늘! 오늘 저녁으로 만들어줘! ”

 

“ 응, 알았어. 집에 계란 다 떨어졌는데 가게 들러서 사 가자. ”

 

“ 가게 가면 줄 서야 되잖아! 우리 집 냉장고에 계란 몇 알 있어! 그걸로 해줘! 많이많이 해줘! ”

 

“ 그래. 크고 둥그렇게 말아줄게. 시간에 안 쫓기니까 옆구리도 안 터뜨리고 태우지도 않을 수 있을 거야. ”

 

“ 야채도 절반만 익혀줘. ”

 

“ 어, 그래... 근데 안 익은 야채가 좋니? ”

 

“ 응, 난 너무 푹 익은 야채 싫어. 그래서 맛있었나. 스메타나 뿌려 먹으면 더 맛있을 거 같더라. 우리 빨리 가자. 먹고 싶다. ”

 

“ 그래, 빨리 가자. 고마워. ”

 

“ 뭐가? ”

 

“ 내가 해준 거 맛있다고 해줘서. 너 맨날 내가 해주는 밥이 맛없지는 않은 거지 맛있는 건 아니라고 했잖아. ”

 

어... 그래! 맛없지는 않은 정도였어! 그냥 그런 거야! 착각하지 마! 아까는 너무 느끼한 걸 많이 먹어서 맛있게 느껴진 거였어! ”

 

“ 그럼 그냥 보랴네 식당 가서 저녁 먹고 갈래? 오믈렛은 나중에... ”

 

안 돼! 너 왜 말 바꿔! 빨리 집에 가서 해줘! 망측한 달걀쌈 해줘!

 

 

베르닌은 자꾸 웃음이 났지만 왕재수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그를 째려보고 있었기 때문에 꾹꾹 참았다. 그리고 잰걸음으로 다리를 건너는 왕재수를 따라잡기 위해 속도를 높였다.

 

   

 

 

 

 

FIN

- 2015. 5. 15 ~ 6. 3 -

 

 

..

 

 

이렇게 하여 천하일미 요리대회가 끝났습니다~

 

 

..

 

보랴의 본명인 보리스 도브로류보프에 대해.

도브로류보프라는 성은 '착한, 선한'이란 뜻의 러시아어 '도브르이'와 '사랑'이란 뜻의 '류보피'를 합성해서 만들었다. 실지로 있는 성이기도 하다. 우락부락하지만 마음 착한 보랴를 위해 :)

 

 

..

 

 

여기 나오는 요리들은 대부분 러시아에서 먹어볼 수 있는 것들이다 :) 자두를 넣은 양고기라든가 샤실릭이야 원래는 좀 더운 동네에서 나온 거긴 하지만..

 

결선 진출한 요리들 사진을 몇 개 올려보자면... (어떤 건 내가 직접 먹고 찍은 것, 어떤 건 구글링.... 내가 찍은 사진에는 서명이 붙어 있음)

 

 

 

1. 키예프식 치킨 커틀릿

 

이건 내가 페테르부르크의 러시아 음식점 '고골'에서 먹었던 것이다. 유명한 음식점이고 음식 또한 풍미가 좋은데 단점은 진짜 러시아 스타일이라서 가끔 내겐 너무 기름지다는 것이다... 이 커틀릿도 내겐 많이 기름진 편이었음.

(내 식성은 단추나 렐랴보다는 왕재수와 비슷한 편이어서 ㅎㅎ)

 

 

 

커틀릿을 자르면 단면은 이렇게..

접시 아래를 보면 기름이 주르르...

 

맛있긴 했지만 기름져서 다 못 먹었음..

개인적으로 고골에서 제일 맛있었던 음식은 보르쉬였다~

이 레스토랑에 대한 이전 포스팅은 여기 : http://tveye.tistory.com/2815 (보르쉬와 생선완자)

 

 

 

2. 메도빅

 

이미 여러번 포스팅한 적이 있는 러시아 꿀케익 메도빅. 러시아에서는 메도빅이라고 하고 체코에선 메도브닉이라 한다. 체코 쪽이 좀 더 진한 맛이었다. (프라하에 머무는 내내 여기저기서 메도브닉을 많이도 먹었는데 거기서 먹었던 메도브닉들은 praha fragments 2013 폴더를 보면 종종 나온다)

 

이것은 페테르부르크의 베이커리 겸 카페 겸 레스토랑인 '고스찌'의 메도빅. 여기는 음식도 디저트도 모두 맛있다. 페테르부르크에 가면 꼭 들르는 곳이다. 크림이 정말 풍부하고 달콤하다.

 

 

 

이건 프라하의 메도브닉.

때깔이 참으로 아름답다. 이건 프라하의 유명한 카페인 그랜드 카페 오리엔트에서 먹었던 것이다. 여기 메도브닉 참 맛있다!

 

 

 

 

3. 비프 스트로가노프

 

스트로가노프 백작(공작이었나.. 맨날 헷갈림.. 서무 25에서는 공작이라고 썼는데)의 레시피로 태어난 러시아 귀족 요리. 이게 미국과 유럽으로 건너오면서 이상한 에그 누들이나 곁들여 먹고, 또 그냥 갈색 국물에 비벼진 고기스튜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정통 스트로가노프는 보통 이런 식이다. 감자 퓌레 위에 양송이와 쇠고기, 크림소스로 요리한 게 올라간다..

 

이것은 고스찌의 비프 스트로가노프. 전에 내가 올린 적 있다. 맛있긴 했는데 크림 소스가 너무 농후하여 내게는 다 먹기가 버거웠다..

 

 

이것은 페테르부르크의 유서깊은 호텔인 그랜드 호텔 유럽(옛 이름 유럽 호텔)의 비프 스트로가노프. 지난 2월에... 여기서는 스트로가노프 공작(백작 ㅠ)의 오리지널 레시피를 쓴다고 했는데 이거 진짜 맛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여기서 먹은 스트로가노프가 제일 맛있었다.

 

맨 위에 양파 튀김이 올라간다... 안드레이가 렐랴에게서 전수받아 만든 비프 스트로가노프도 이런 식이다. 그러나 왕재수의 말대로.. 안드레이는 고기를 너무 바싹 익히고 말았음

 

 

 

 

 

 

4. 샤실릭

 

샤실릭은 워낙 유명하니 많이들 아실 듯.. 고기는 양고기, 소.돼지, 닭 등을 모두 쓸 수 있고 때로 생선을 쓸 때도 있음. 제대로 구운 샤실릭은 진짜 맛있다. 양고기 샤실릭도 잘 구우면 누린내가 안 난다.

 

 

 

보통 이렇게 야외에서 숯불에 굽는다. 일종의 바베큐 요리인데 러시아 사람들은 야외로 놀러가면 샤실릭 구워먹는 걸 좋아한다.

 

그건 그렇고 이 사진의 샤실릭은 엄청 기다랗고 고기도 진짜 많이 꽂았네 ㅎㅎ

 

 

 

 

 

 

5. 자두를 곁들인 양고기 구이

 

이 사진은 러시아에서 요리 방송과 책자 등으로 요즘 잘 나가는 율리야 브이소츠카야의 요리. 나도 이건 안 먹어봤고 지난 2월에 페테르부르크 갔을 때 이 사람 요리책을 한권 사왔는데 거기서 봤다. 맛있어 보인다!!

 

 

 

6. 이것이 피로그. 생선 파이.

 

에피소드 시작 전에 잠깐 썼듯 피로그는 들어가는 속에 따라 아주 다양해진다. 여기서는 아말리야처럼 연어를 넣은 연어 피로그 사진들 몇 장. 아말리야는 연어에 농어, 시금치와 견과로 층을 여러 겹 넣었기 때문에 사진의 파이들보다 훨씬 풍성하게 만들었다.

 

잘 구워낸 러시아의 피로그는 참 맛있다!! 옛날엔 러시아 주부의 살림솜씨를 피로그 속을 몇겹 넣어 굽느냐로도 평가했다고 한다.

 

 

 

이렇게 동그란 모양도 있고, 직사각형으로 굽는 경우도 많다. 구워서는 잘라서 먹는다~

 

 

 

연어 피로그는 이런 모양으로 속을 넣기도 하고..

 

 

 

보통은 이런 모양으로 속을 넣는다~

 

 

 

 

 

이건 연어 피로그는 아니고. 쌀과 고기, 허브 등을 층별로 넣어 겹겹이 속을 만들어낸 보야르스키 피로그.

 

 

 

마지막은 그냥 가면 섭섭하니 오믈렛 ㅎㅎ

 

야채 오믈렛 사진 두 장.

 

러시아어로 계란 부침 요리는 야이츠니짜 라고 하는데 그 이름 쓸까 하다가 너무 어렵게 들릴 것 같아 그냥 오믈렛이라고 썼다. 단추가 만든 건 이런 오믈렛과 우리 나라 계란말이의 중간쯤 되는 건데 옆구리가 터졌다 ㅋㅋ

 

 

 

 

너무 음식 테러인가 ㅠㅠ

 

..

 

하여튼 다음 이야기는 26편에서!!

 

..

 

 

댓글은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Posted by liontamer

 

 

지난 2월 설 연휴 당시 페테르부르크 갔을 때.

 

겨울에는 페테르부르크 직항이 없어서 모스크바에서 경유를 해야 되기 때문에 참으로 불편하다.. 이때도 모스크바 공항에서 4시간쯤 기다렸다가 페테르부르크로 갔고,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에 업무 때문에 해외 출장을 갈때도 경유가 너무 힘들었다. 뭐 비행기 자체를 무서워하니 다 힘들지만 거기 경유까지 겹치면.. 으윽..

 

어쨌든 설레는 마음으로 페테르부르크 들어가던 날, 모스크바 공항에서 아에로플롯 뜨기를 기다리며 잠시 카페에 앉아 먹었던 메도빅. 당시 여기 앉아서 와이파이 잡아서 핸드폰으로 올리긴 했지만.. (http://tveye.tistory.com/3498)

 

이건 카메라로 찍은 것. 그러나 dslr은 트렁크에 넣어 부쳐버렸으므로 역시나 똑딱이 디카라 화질은 별로다..

 

여기 메도빅은 크림이 많이 시큼한 편이었다. 모스크바까지 9시간 가까이 날아온 후 입국심사를 하고 짐을 찾아서 도로 페테르부르크로 부치느라 땀 빼고(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짐도 다시 부쳐야 했음) 미로처럼 꾸불꾸불한 길을 따라서 환승하러 온 후... 가뜩이나 전날 잠을 한숨도 못 자서 머리도 아프고 눈도 붙는 것 같고 온몸이 무겁고 뜨끈뜨끈하고.. 목도 너무 마르고... 작년에 왔을 때 쓰고 남은 루블이 좀 있어서 그걸로 자판기에서 물 한병 뽑고 카페에 앉아 차 한잔, 메도빅 하나 시켰었다.

 

문제는 저 물병!!! 아무리 해도 마개가 안 열렸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ㅠㅠ 젖먹던 힘을 다 짜내도 안 열렸다. 결국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착해보이고 힘세보이는 남자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근데 왜 찾으면 없는지.. 다들 우악스런 외모의 아주머니들과 아예 하늘하늘한 아가씨들 뿐 ㅠㅠ 결국 남자에게 부탁하는 것을 포기하고 물을 하나 새로 살까 고민하다가(극소심..) 막판에 어떻게어떻게 간신히 열었다...

 

하여튼 저기 앉아서 메도빅을 먹고 당분을 섭취하여 힘을 조금 충전한 후, 9시인가 좀 넘어 출발하는 페테르부르크행 아에로플롯을 탔다...

 

아에로플롯이야 뭐.. ㅠㅠ

 

그래도 페테르부르크 들어갈땐 비행기가 안 흔들렸는데, 나중에 돌아올 때 모스크바로 나오는 비행기가 어마어마하게 흔들려서 나는 비행공포증 발작으로 정말 아주아주 힘들었다.

 

 

 

이것은 돌아오는 날. 페테르부르크 풀코보 공항의 카페 쇼콜라드니짜.

풀코보 공항은 옛날엔 무지무지 작고 후진 시외버스 터미널 같았으나 작년에 신청사가 개관해서 아주 깔끔해졌다.

 

이상하게 이날도 밤에 잠을 못 자고 나와서 무지 피곤...

모스크바행 아에로플롯 탈때까지 시간이 남아서 국내선 구역의 카페에 왔다. 국제선 구역엔 스타벅스가 있는데 국내선 타는 쪽엔 러시아 브랜드인 쇼콜라드니짜가 있었다. 사실 먹을 건 이쪽이 더 많다. 핫 초콜릿도 맛있고 차 종류도 더 많고 케익을 비롯 배 채울 것들도 더 많다. 그리고 여기는 점원이 주문을 받으러 옴.

 

 

 

카운터는 이렇게 생겼음.

 

 

 

돌아가는 날이라 매우 우울했다.

홍차 한 잔. 그리고 메뉴판을 뒤적이다 첨 보는 케익이 있어 주문. 쁘띠치예 말라꼬(직역하면 새의 우유, 새의 젖)란 케익인데 아마 소련 시절부터 있었던 케익인 듯. 먹어보니 많이 달긴 했지만 우유 맛이 강해서 맛있었다. 달아서 다 먹진 못했다.

 

여기서도 이전에 이 구도로 사진 한 장 올렸던 기억이.. : http://tveye.tistory.com/3518

 

 

 

 

 

 

 

귀여운 설탕 봉지!!

설탕 안넣는데 이거 귀여워서 두어개 챙겨옴~ 친구한테도 기념으로 하나 주고.

 

 

 

양띠 해라고 양이 그려져 있는 냅킨! 옆에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씌어 있음

(러시아는 연말-새해-정교 성탄절의 12월~1월에 저렇게 트리 장식을 한다)

 

그건 그렇고 러시아 양 그림은 뭔가 기다랗다 ㅎㅎㅎ

 

:
Posted by liontamer
2015. 2. 10. 16:11

고스찌의 꿀케익 메도빅 russia2015. 2. 10. 16:11

 

 

러시아나 프라하에 가면 내가 꼭 먹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꿀케익 메도빅. 체코에서는 메도브닉이라 부른다. 견과와 꿀이 가미되어 여러 겹 겹쳐 만드는 맛있는 케익이다. 이것은 정말 맛있다 :)

 

맨처음 이걸 먹은 건 오래 전 러시아에서 공부할 때였다. 그때 이걸 사먹었던 가게에서는 '묘도보예 삐로즈노예', 즉 꿀 조각케익이라고 해서 난 내내 '묘도보예'란 이름으로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러시아에선 '메도빅', 체코에서는 '메도브닉'이라고 불렀다. 재작년 프라하에 머물 때 그 동네 메도브닉 진짜 여러 종류 먹어봄 :) 근데 솔직히 말하자면.. 체코 메도브닉이 좀 더 맛있었다 ㅎㅎ '메드', '묘드'는 꿀이란 뜻이다.

 

여기는 페테르부르크의 유명한 레스토랑/디저트 카페인 고스찌. 전에 몇번 포스팅한 적 있다. 음식도 괜찮지만 디저트 케익이 일품이다. 특히 이 메도브닉은 크림도 풍부하고 정말 맛있다!~

 

계속 잠도 모자라고 입맛도 없고 몸도 피곤해서 훌륭한 메도빅 사진 올려본다 :0

 

 

 

 

 

가게 안은 이렇게 생겼다.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 여긴 반지하 1층이고, 레스토랑은 2층에 있다.

 

 

진열장 안에 근사한 케익들이 가득가득!!

 

 

흔들리고 번졌지만.. 이런 글귀가 붙어 있다.

" 다이어트 따위에 낭비하기엔 인생은 너무 짧다! "

훌륭하다!!!

 

* 태그의 고스찌 를 클릭하면 이곳에 대한 이전 포스팅들을 볼 수 있다

* 태그의 메도브닉을 클릭하면 아마 전에 체코에서 시도했던 여러 메도브닉이 나올 듯

:
Posted by liontamer

 

 

감기약을 먹고 나갔었는데 찬 바람을 쐬며 걸어서 그런지, 한국에서 걸려온 후두염이 악화되어 그런 건지 머리가 너무 무거워서 오후에는 쉬고 있다. 세베르에서 테이크아웃해 온 까르또슈까와 메도빅과 함께 :)

 

이제 뻬쩨르에도 근사한 카페와 디저트 샵들이 생겼지만 그래도 추억과 향수 때문인지 여전히 이곳에 오면 제일 먼저 가는 곳은 바로 오래된 세베르이다. 소련 시절부터 변함없이 사랑받아온 저 까르또슈까와 체코 메도브닉에 비하면 훨씬 달고 물컹하고 크리미한 메도빅을 입에 넣으면 아주 소박한 느낌이 든다.

 

오늘은 이거 먹고 지난주에 다 썼던 글 퇴고하다가 감기약 먹고 일찍 자야겠다...

 

 

메도빅은 이것보다 세배 정도 큰데 양이 많아서 잘랐다. 남은 거 냉장고에 넣어놔야 하는데 미니 바에 워낙 호텔쪽 음료가 꽉 차 있어서 들어갈 자리가 없네 ㅠ.ㅠ

 

까르또슈까는 언제나 그 맛. 까르또슈까 :)

 

 

이렇게 보잘것 없는 투명 박스에 넣어주는데 테이크 아웃을 하면 상자 값을 받는다. 무려 10루블 -_-; 우리 나라는 오히려 자리값 때문에 테이크아웃해 가면 5백원 깎아주는 카페도 많은데 여기는 그렇지 않다. 공산주의 시절 물자가 귀해서 그랬던 걸까 하고 혼자 맘대로 생각하며 나왔다. 생각해 보니 프라하에서도 테이크아웃해 가면 상자 값을 받았다. 유럽 다른 나라들도 그런가? 잘 모르겠네. 많이 가 본 것도 아니고 그나마 갔던 곳들은 거의가 출장 때문에 가서 뭔가 상자에 포장해 테이크아웃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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