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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는 바빠서 몇줄 못 썼지만, 어쨌든 계속 쓰는 중이다. 후반부의 문단 하나 발췌. 화자는 여전히 미샤. 자기가 좋아했던 장소와 광경들에 대해 얘기한다. 글에 언급되는 안드레이는 미샤의 레닌그라드 친구인 트로이. 안드레이는 그의 본명이다. 미샤만 이 이름을 부른다. 트로이의 아파트는 이 폴더에 여러번 올렸던 고로호바야 거리에 있다.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안드레이가 자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래서 나는 그를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문을 열고 소리 없이 발끝으로 선 채 천천히 들어간다. 발레리나들도 나의 스텝에 놀랄 것이다. 안드레이가 자고 있지 않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그가 식탁 앞에 앉아 책을 읽으며 강의 준비를 하거나 뭔가를 쓰고 있으면 더욱. 그는 첨탑처럼 키가 커서 머리 위로 셔츠를 뒤집어쓸 때면 팔이 끝없이 뻗어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나를 위해 창가에 있던 소파를 치웠다. 나는 창틀을 붙잡고 스트레칭을 하기도 하고 작은 동작들을 연습하기도 한다. 이따금 어깨 너머로 식탁 앞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안드레이가 보이면 기분이 조금 더 좋아지고 몸이 더욱 가벼워지면서 살짝 뛰어오르기만 해도 오랫동안 하늘에 떠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뛰지는 않는다. 안드레이의 거실은 좁고 바닥과 천장 모두 낡았기 때문이다.

 

 

..

 

 

사진은 몇년 전 페테르부르크의 거리를 걷다가 찍은 건물 현관문. 트로이의 아파트도 이런 무거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 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두컴컴한 현관이 나오고 여기를 통과해 복도로 가서 아주 좁은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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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20. 3. 28. 22:19

쓰는 중 - 의자, 부채와 스카프 about writing2020. 3. 28. 22:19

 

 

 

 

계속 쓰는 중이다. 아마 대여섯 페이지 정도 더 쓰면 끝나지 않을까 싶다.

 

 

발췌한 문단은 후반부의 일부. 화자는 미샤. 자신과 지나가 함께 살았던 시절에 대해 얘기한다. 첫번째와 두번째 문장에서 언급되는 책들과 등받이 없는 의자에 대한 에피소드가 앞에 따로 나온다. 여기서는 뒷부분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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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재에 그 책들을 꽂아두었지. 등받이 없는 나무 의자는 생각보다 유용했어. 책이 갈수록 늘어나서 그 방에 큰 의자를 놓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야. 우린 그 둥근 의자에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때로는 싸우기도 했지. 친구들이 많이 놀러 오면 그 의자들도 꺼내서 거실로 가져갔어. 내 친구들은 바닥에 앉거나 드러눕는 것도 개의치 않았지만 그래도 의자가 있으면 더 좋아했거든. 때로 난 바를 붙잡고 연습하다 흥이 나면 방과 방을 돌아다니며 춤을 췄고 의자를 계단처럼 딛고 뛰어올랐지. 지나는 나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하지 마라 밥 먹어라 넥타이 좀 매라 매일같이 야단을 쳤지만 춤추는 건 꾸짖지 않았지. 보통은 자기도 같이 췄으니까. 우리 빨간 머리 공주님은 푸에테를 추다 숨이 차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키트리처럼 부채를 펼쳐 바람을 파닥거렸고 난 옆에서 투우사 춤을 췄어. 망토 대신 스카프를 펄럭이면서. 이런 내 스카프들을 굼 백화점에 보내겠다고 하다니.

 

 

..

 

 

부채 이미지는 러시아 웹에서 가져옴. 이미지에 캡션이 좀 희미하게 달려 있다.

 

 

 

 

 

미샤와 지나의 서재에 있던 의자는 등받이가 없다만... 하여튼 그냥 지나가기 아쉬워서 의자 두개 있는 사진 한장. 작년 여름 뻬쩨르, 내가 좋아하는 뽀드삐스니예 이즈다니야 서점 앞의 의자. 이건 내가 찍은 사진. 마침 서점이니까 안으로 들어가면 책들도 가득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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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일전에 2017-19 페테르부르크 폴더에 올린 고로호바야 거리 시리즈 3. 이번엔 writing 폴더에 올려봄. 가운데 멀리 황금빛 해군성이 보인다. 이쪽이 트로이네 집이 있는 방향. 오른쪽 어딘가에 있을 거라 생각하며 썼다.

 

 

 

 

다리 건너편 풍경도 하나. 역시 잘보면 가운데 끝에 해군성 첨탑이 보인다.

 

 

 

 

이 거리를 가로질러 모이카 운하가 흐르고 있다. 운하에 놓여 있는 다리. 이름은 끄라스느이 모스트(Красный Мост) 붉은 다리란 뜻이다. 난간이 붉게 칠해져 있어서. 가로의 고로호바야 방향 대신 운하 따라 세로로 쭉 올라가면 시느이 모스트(Синий Мост)가 나온다. 푸른 다리란 뜻이다. 당연히 파랗게 칠해져 있다 :)

 

미샤가 이 다리를 뻔질나게 건너다녔다. 극장 가는 길 중 하나임.

 

 



 

끄라스느이 모스트에서 바라본 모이카 운하. 역광이 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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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20. 3. 22. 15:57

쓰는 중 - 먼저 적었던 문장들 about writing2020. 3. 22. 15:57

 

 

 

계속 쓰고 있다. 이 글은 1월에 구상했고 1월말부터 쓰기 시작했다. 시작하기 전에 먼저 적었던 문장들이 있다. 보통 그런 식으로 쓴다. 이미지. 단어 몇개. 이어서 대화나 문장들. 그것들과 함께 시작한다.

 

 

아래 발췌한 문단은 중반에 삽입했다. 하지만 가장 먼저 쓴 문장들이다. 이런 문장들은 순서와 흐름이 왔을 때 집어넣고 단어나 표현 몇몇은 바꾸게 된다. 화자는 미샤. 크냐제프는 모스크바 KGB 실무팀 책임자. 벨스키는 예전에 여러번 등장했던 정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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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타고 온 거야, 비행기? ”

 

아니, 차 타고 왔어. ”

 

 

관용차. 벨스키가 준비해 준 거라고 크냐제프가 그랬지. 높은 분들이 편찮으실 때 타는 차. 당과 인민의 이름으로 경비를 치르겠지. 재판과 주삿바늘과 그 모든 화학 물질들과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엔가 나는 이 모든 연극 짓거리에 낭비하고 있는 세금이 아깝지 않으냐고 묻고 싶었던 것 같아. 어쩌면 정말로 물어봤을지도 모르지. 기억은 나지 않아. 누군가는 기억하겠지. 끝없는 장광설을 늘어놓던 대머리, 아니면 오른쪽 손등에 타원형의 검은 반점과 구불구불한 금색 털이 두 올 돋아 있던 작자, 그자는 주사를 놓을 때마다 웃고 있었어. 결국 난 적어도 하나쯤은 당과 인민에 충실했던 셈이야. 국가의 이름으로 봉사하는 살인자들에게 진정한 행복감을 안겨주고 있었으니까.

 

 

...

 

 

 

사진은 1970년대 키예프의 거리 풍경. 글과 딱 맞는 건 아니지만 그냥 이미지가 좀 어울리는 것 같아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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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20. 3. 14. 22:09

쓰는 중 - 단어와 기억, 그 외 about writing2020. 3. 14. 22:09

 

 

 

계속 쓰는 중이다. 전반부의 두 문단 발췌. 중간에 한두 문단 정도 생략되어 있다. 전에 발췌했던 부분들과는 흐름이나 말투가 좀 다르다. 나의 글들에서 이 사람은 예전에는 이런 식으로 말한 적이 없다. 하지만 여전히 화자는 미샤이다.

 

 

글에서 언급되는 이름인 안드레이는 미샤의 친구인 트로이의 본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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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 시를 안드레이의 수첩에서 발견했다. 그는 언제나처럼 몰래 시를 썼고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내 명예를 위해 덧붙이자면, 나는 그 수첩을 우연히 발견했다. 안드레이는 대청소 중이었고 식탁 위에 책들과 수첩과 노트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펼쳐진 책들은 읽히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읽었다. 안드레이가 쓰고 내가 읽었다. 나는 그 시들의 일부를 지금도 기억한다. 단어들은 더 많이. 안드레이는 내가 그 모든 것들을 잊기를 바랐을 것이다. 혹은, 내가 모든 것을 금세 잊어버리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중략)

 

 

 

나는 여전히 안드레이의 말을 글보다 더 생생하게 기억한다. 하지만 그 시는 잊지 않았고 아주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녔다. 나는 그가 언제 그 시를 썼는지도 알 것 같았다. 여름이었고 흑해로 향하는 기차 안이었다. 우리는 객차 연결 통로에 나와 있었다. 안드레이는 만취했고 멀미를 하고 있었지만 내가 잘 수 있도록 어깨를 빌려주었다. 그때 그는 바퀴와 레일과 불꽃과 자갈을 바라보고 있었다. 덥고 습한 바람이 불었다. 안개는 없었다. 먼지와 바람뿐. 나는 졸면서도 볼펜이 종이 표면을 사각거리며 긁는 소리를 들었다. 열기와 갈망으로 가득한 그의 눈길을 느꼈고 반쯤은 일부러 졸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면서.

 

    

..

 

 

사진 속의 무용수는 다닐 심킨. Mariam Medvedeva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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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20. 3. 8. 15:30

쓰는 중 약간 - 스카프 추신 about writing2020. 3. 8. 15:30

 

 

 

계속 쓰는 중이다. 앞부분의 아주 짧은 문단 발췌. 미샤가 계속해서 이야기를 한다. 스탄카는 일린의 이름인 스타니슬라프의 애칭. 올가는 모스크바 클리닉의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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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 올가는 저녁 주사를 놓고 나서 내 손목을 마사지해주는 척하며 스탄카가 보낸 쪽지를 쥐어주었어. 내용은 아주 짧았어. 자기와 지나가 내 짐을 꾸려서 가브릴로프로 부쳤다고 적혀 있었어. 그리고 추신 한 줄.  스카프들은 트레치야코프로 보냈어.  모스크바에 도착했던 첫날 스탄카는 짐 푸는 걸 도와주면서 웬 스카프가 이렇게 많으냐고, 굼 백화점에 기증하라고 농담을 했었지. 굼보다는 트레치야코프가 낫다고 마음을 바꿔먹은 모양이야.

 

 

...

 

 

 

사진은 몇년 전 프라하의 유리공예 가게에서 발견한 스카프. 너무 아름다워서 사고 싶었는데 가격이 많이 비싸서 포기했었다. 저 가게에서 레냐가 나에게 부드러운 핑크와 보랏빛의 유리 펜던트를 선물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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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1월부터 쓰고 있는 글에서 약간 발췌. 아주 짧은 두 문단이다. 화자는 미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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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자 뜨겁고 습한 공기가 해일처럼 몰려들었어. 소독약과 가솔린 냄새가 구름처럼 덮쳐 왔어. 집 안은 온통 뿌연 안개로 가득했어. 요원은 모두 셋이었어. 둘은 내 뒤와 오른쪽에 서 있었고 나머지 하나는 거실을 대각선으로 두 번 왕복하며 창문과 방문들을 열었어. 그러니 모든 문들은 닫혀 있었던 거겠지.

 

 

창문을 열자 놀랍게도 습기가 금세 빠져나갔어. 커튼 아래로 안개가 아주 작게 소용돌이치는 게 보였어. 느슨하게 매여 있는 띠 아래로 무지갯빛 거품이 일었어. 커튼 띠로 묶었었는데, 네바 강에 썰매 타러 갔을 때. 아빠가, 나를. 떨어질까봐.


 

 

 

 

 

맨 위 사진은 2018년 1월 블라디보스톡 바다, 맨 아래 사진은 몇년 전, 페테르부르크의 바닷가. 12월. 얼어붙은 바다 위로 썰매 타러 가던 어떤 아빠랑 아들의 모습이 예뻐서 찍음. 오랜 옛날 저 바닷가 근처 기숙사에 살았던 적이 있다. 안개와 무지갯빛 거품 사진을 올리면 발췌문에는 더 어울렸겠지만 그런 사진은 찍어놓은 게 없어서 대신 얼음과 눈, 썰매 사진 두 장 올려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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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20. 2. 13. 21:34

생략된 단어들 about writing2020. 2. 13. 21:34

 

 

 

 

 

새해 들어 쓰고 있는 글이 있는데 시간적/정서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예전 글에서 몇 문장 발췌해 본다. 발췌된 글의 화자는 미샤의 친구인 스타니슬라프 일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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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샤가 다시 한 팔을 내 목에 감았다. 평소보다 훨씬 다정하게 군다고 생각했을 때 미샤가 낮고 깔깔한 음성으로 귀에 대고 속삭였다.

 

 

“ 스탄카, 좀 잡아줘. 넘어지기 싫어. ”

 

 

마지막 문장에는 두 개의 단어가 생략되어 있었다.

 

 

 넘어지기 싫어, 저자들 앞에서.

 

 

6년 가까이 친하게 지낸 사이라면 그 문장과 단어를 잘라먹는 버릇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

 

 

 

이 문장들이 포함된 에피소드 일부를 예전에 이 writing 폴더에 발췌해 올렸던 적이 있다. 링크는 여기 : https://tveye.tistory.com/4521


 

 

맨위 사진은 작년 12월말 블라디보스톡의 얼어붙은 바다에서 석양 즈음 찍은 것. 이미지 없이 올리려니 뭔가 허전해서 :)

:
Posted by liontamer
2020. 2. 8. 22:49

파편 from 밤, 레닌그라드 about writing2020. 2. 8. 22:49

 

 

얼마 전에 짧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연말과 새해에 따로 구상했던 글이 있었는데 막상 자리에 앉아 노트를 열고 메모들을 적기 시작하자 다른 글을 쓰게 되었다. 가제를 '밤, 레닌그라드'라고 붙여놓긴 했는데 나중에 어떻게 바뀔지는 물론 모르는 일이다. 오래전부터 머릿속으로 이따금 상상하던 장면들이 있었지만 실제로 쓸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던 이야기이다. 그런데 아마 지금은 이 이야기를 써야 하는 시기인 것 같기도 하다.

 

 

지난 주말에 머리가 아니라 손으로 좀 빨리 적어내려간 문단들 중 약간을 발췌해본다. 쓰는 중이라 아직은 호흡이 빠르고 거칠다. 문장들은 미샤의 1인칭 독백으로 기술된다. 가제 그대로, 어떤 밤과 레닌그라드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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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그렇듯 크냐제프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어. 그럴싸한 술책을 부리는 것에 불과했으니까. 누군가에 대한 서류를 만들고 절차를 밟는 데 있어 가장 필요 없는 존재가 누구라고 생각해? 당연히 그 자신이지. 등록 말소에 대해서라면, 나는 이미 모스크바로 이송되었을 때 레닌그라드 거주등록부에서 지워진 상태였어. 어쩌면 그 전에, 재판을 받기도 전에. 아니, 헤아릴 수 없는 이전의 어둠 속에서.

 

 

그건 전혀 중요한 사실이 아니야. 내 핏속에 어떤 도시가 있고 그건 등록과는 무관하기 때문이야. 어떻게 번호와 글자와 도장과 서류철들이 한 인간을 어떤 도시에 영원히 속하게 만들 수 있겠어. 그건 하느님의 영역이겠지.

 

 

 

 

 

 

사진들은 작년 6월, 백야 시즌 한밤중의 페테르부르크 판탄카 운하. 소련 시절에는 레닌그라드. 이 사진 오른편에 보이는 거대하고 묵중한 다리는 로모노소프 다리이다. 이 다리를 건너가면 오른편 너머에 바가노바 발레학교가 있다. 미샤는 학창 시절 이 다리를 셀 수도 없이 건너다녔고 모든 운하와 모든 골목을 따라 걸었을 것이다.

 

 

 

 

 

 

 

 

로모노소프 다리에서 운하 쪽을 향해 찍은 사진인데 황혼녘이라 빛이 모자라서 흔들렸다. 저멀리 한가운데 흐릿하게 보이는 세개의 둥글고 파란 쿠폴은 트로이츠키 사원의 쿠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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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네바 강 풍경.

 

네바 강의 넘실대는 수면을 볼때면 종종 떠올리곤 하는 안나 아흐마토바의 시 일부 발췌해 봄. 내 번역 + 원문 병기.


이 시는 3연으로 되어 있는데 별로 좋아하지 않는 1연은 빼고 2-3연만. 이 시는 몇년 전 쓴 단편의 에피그라프로 썼고 소설 후반부에서 미샤가 인용하게 만들었다. 미샤도 2-3연만 읊었고 마지막 두 행은 뺐었다. 이녀석은 좋아하는 시나 노래를 잘 외기는 하는데 내키는대로 앞뒤도 잘라먹고 이것저것 뒤섞는 버릇이 있다.

 

 

..

 

 

그리하여 우리는 사랑하네, 하늘을
가냘픈 대기, 맑은 바람
철제 울타리 너머로
검게 물드는 나뭇가지들을

그리하여 우리는 사랑하네, 엄숙하고
물결 넘실대는, 어둠에 잠긴 도시를
그리고 우리의 이별들과
짧은 만남의 순간들을.

안나 아흐마토바, 1914년

 

Оттого мы любим небо,
Тонкий воздух, свежий ветер
И чернеющие ветки
За оградою чугунной.  

 

Оттого мы любим строгий,
Многоводный, тёмный город,
И разлуки наши любим,
И часы недолгих встреч.  

 

 

.. Анна Ахматова ..  

 

 

 

 

 

 

... 번역의 '물결 넘실대는'은 단어를 직역하면 '물이 많은 / 물로 가득한'이란 형용사이다. 이 도시에 딱 들어맞는 단어인데 우리 말로 바꾸면 좀 꺽꺽해서 시어의 맥락상 내가 좀 의역했었다.

:
Posted by liontamer
2020. 1. 18. 23:04

오랜만에 카르멘 한 컷 + about writing2020. 1. 18. 23:04

 

 

 

오늘의 퀵 스케치는 오랜만에 카르멘 한 컷. 헤어스타일도 그렇고 내 그림솜씨가 별로인 관계로 자꾸만 지나처럼 보이지만.... 잘 보면 둘이 좀 다르다고 우기면서... 지나가 아니라 오래전에 썼던 옴니버스 단편 시리즈 스타차일드의 주인공인 일명 펑크폭력녀 불량학생 카르멘임. 지나보다 더 구름처럼 붕 뜬 곱슬머리이고 색깔도 좀더 어두운 붉은색이다. 그리고 눈 색깔도 쫌 다르다... (근데 그거 빼면 결국 얼굴 똑같아보여 엉엉 똥손이라 그래 흑흑...)

 

 

간만에 카르멘을 그려본 이유는 지난주말에 옛날에 쓴 스타차일드 시리즈를 좀 뒤적여봤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는 완결하지는 않았지만 다시 쓰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림을 그렸으니 오랜 옛날 썼던 글 아주 일부만 아래 발췌해 본다. 내용은 전혀 없고 그냥 묘사만. 8번째 에피소드에서 사고로 멈춘 엘리베이터에 갇힌 카르멘이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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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멘은 일어서서 거울을 보았다. 치렁치렁한 붉은 곱슬머리를 휘장처럼 늘어뜨린 채 창백하고 작은 얼굴로 마주 보는 자신이 거기 있었다. 그녀는 오래된 유리처럼 반짝이는 커다란 하늘색 눈을, 아침에 돋아난 아주 작은 여드름이 빨갛게 부풀어오른 하얗고 매끄러운 콧등을, 거의 검은색에 가까울 정도로 진한 립스틱을 칠한 하트 모양의 입술을, 갸름하고 우울한 턱과 목, 사이즈가 큰 검은 티셔츠와 빛 바랜 청바지와 운동화를 보았다.

 

 

그녀는 알이 빠진 고대의 반지 같았다.

 

 

..

 

 

그런데 역시나 앞발이라 스케치에서는 글에서 쓴 묘사가 제대로 구현되지는 못했다. 사실 그림은 문장들을 떠올리지 않고 그냥 그렸고 '카르멘의 외모에 대한 묘사 몇 줄이 여기저기 있었는데' 하고 다시 뒤적여보니 마침 검정 티셔츠 입고 있는 장면이 있어서 가져와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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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9년도 딱 하루 남았다. 나는 블라디보스톡에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보다 한시간 더 빨리 올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몇년 전 썼던 수용소 중편 후반부의 일부를 아래 발췌해 본다. 시간이 어찌나 빨리 지나가는지... 나는 이 글을 2013년 3월과 4월에 썼다. 그때 나는 프라하에 머물고 있었다. 돌아와서 서울에서 글을 마무리했었다. 그 순간들이 너무 생생한데 이미 6년이나 지났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하긴 이제 나이를 많이 먹어서인지 시간들은 점점 더 빨리 지나가버린다. 사실 십년 전 이십년 전의 기억도 생생하다. 물론 그건 취사선택된 특정 순간들에 대한 기억들이겠지만.

 

 

이 소설은 여기 폴더에 여러차례 조금씩 발췌해 본 적이 있었다. 나에게는 좀 다른 면에서 소중한 소설이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가 중첩되고 변형되면서 더 밀접해졌다. 오늘 발췌한 부분은 3부의 전반부 몇 페이지이다. 약물 고문 쇼크를 일으켜 클리닉으로 옮겨진 미샤를 그의 친구인 일린이 면회를 하러 온다. 일린은 피폐해진 친구와 이야기를 조금씩 이어나가면서 동시에 최근의 기억들을 몇가지 머릿속으로 되살린다. 미샤의 발레학교 동기이자 오랜 파트너인 지나에 대한 얘기도 좀 나오고, 미샤의 어머니 율리야에 대한 얘기도 약간 나온다.

 

 

지나이다는 지나의 본명이다. 맨날 지나라고 부르지만 러시아 이름답게 본명은 좀더 길다 :) 사족이지만 이 이름은 상징파 시인인 지나이다 기피우스, 그리고 화가 지나이다 세레브랴코바에서 따왔었다. 특히 전자.

 

 

율리야가 언급하는 이름인 세료자는 율리야의 남편이자 미샤의 아버지인 세르게이의 애칭이다. 세르게이는 이 글의 시간적 배경으로부터 20년 전에 체포되어 수용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미샨카는 미샤의 또다른 애칭인데 율리야와 미샤의 주치의인 유라 외에는 이 이름을 쓰지 않는다. 벨스키는 예전에 발췌한 글들에도 자주 나왔다. 유력 정치인이고 미샤를 후원하는 인물이다. 발췌된 3부는 일린의 1인칭으로 서술된다.

 

 

사진은 예전에 페테르부르크 본치 카페에서 찍은 것이다. 그냥 눈에 들어서 올려봄. 글만 올리면 뭔가 아쉬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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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별다른 노력도 없이 그를 소파로 데리고 갔다. 미샤는 자기 발로 걸어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마침내 소파에 앉혔을 때 그는 훅 하고 숨을 내쉬더니 팔걸이에 머리를 떨어뜨리고 잠시 가만히 있었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물병의 뚜껑을 따주자 별 말도 없이 물을 두어 모금 마셨다.

 

 

 병을 내려놓은 후 미샤가 한결 또렷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 진짜 올 줄 몰랐어. ”

 

 

 “ 전에는 왔던 사람 없었어? ”

 

 

 그 말을 입 밖에 낸 후에야 그게 어리석은 질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파리에서 소환된 직후부터 그 누구도 미샤를 본 적이 없었다. 나를 비롯한 그의 지인들과 극장 동료들은 갖은 인맥을 동원해 어떻게든 면회를 해보려고 애썼고 언제 열릴지도 모르는 재판의 증인이 되기 위해 신청서를 쓰고 끊임없이 면담을 요청했지만 모두 묵살당했다. 지나이다는 아직도 세력이 꽤 남아 있는 자기 아버지와 미샤의 오랜 팬이었던 알렉산드르 고르차긴, 마이야 필리포브나 등 레닌그라드의 전통적 실력자들의 힘을 빌려 재판 날짜를 알아내고 증인 허가서까지 받았다. 그러나 당일이 되었을 때 고르차긴으로부터 우울한 전화가 걸려왔다. 재판은 이틀 전에 비공개로 진행되었으며 미샤는 이미 판결을 받고 이송되었다는 얘기였다. 지나이다는 너무 충격을 받아 다음날 예정되어 있던 무대에도 서지 못했다. 그 더러운 놈들은 심지어 미샤를 어느 교도소로 보냈는지, 형량이 얼마이며 정확한 죄목이 무엇인지조차 밝히지 않았다. 면회는 물론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미샤는 별로 내키지 않는 듯한 어조로 대답했다.

 

 “ 엄마. 어제 왔었어. ”

 

 “ 그리고는 내가 처음이야? ”

 

 “ , 벨스키가 어제 와서 두 명만 허가해주겠다고 했지. 엄밀히 말하면 엄마는 내가 부른 게 아냐. 벨스키가 이미 데리고 왔더라고. ”

 

 

 미샤의 얼굴에 희미하게 찡그린 표정이 떠올랐다. 나는 그가 율리야에게 걱정을 끼치는 것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쇼크에서 벗어난 후 지나이다는 율리야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날 지나이다의 집에는 나도 있었다. 나는 미샤보다도 더 독립적이고 더 말이 없으며 여왕처럼 도도하고 수녀처럼 침착한 율리야 야스미나가 평정을 잃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그때 처음 보았다. 그녀는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으로 가슴을 치며 몸부림쳤다. 이마와 뺨을 바닥에 비벼대며 짐승처럼 낮게 흐느껴 울었다.

 

 아, 세료자. 그놈들이 걜 끌고 갔어. 우리 아이, 우리 미샨카를 뺏아갔어, 그 천사 같은 애를, 아무 죄도 없는 앨 체포했어, 가둬버렸어. 이제 죽일 거야, 당신처럼. 그놈들이 우리 애를 죽일 거야... 절대 돌아오지 않을 거야. 사라져버릴 거야. 미샨카, 내 아들, 불쌍하고 불쌍한 우리 아이... , , 아 세료자,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해...

 

 

 “ 그래도 다행이네, 안 그랬으면 어머니가 더 걱정하셨을 거야. 많이 힘들어 하셨어. ”

 

 “ 지나에게 고맙다고 전해줘. ”

 

 “ 우셨어? ”

 

 “ 아니. 우리 엄마는 내 앞에서는 절대 울지 않아. ”

 

 그리고 넌 율리야를 그대로 닮았겠지. 

나는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침묵했다. 미샤는 어머니 얘기를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은 듯 내 쪽을 보며 불쑥 말했다.

 

 “ 미안. ”

 

 “ 뭐가? ”

 

 “ 네 이름 말해서. 귀찮은 일 생길지도 모르는데. ”

 

 

 “ 그런 말을 하다니, 한대 패주고 싶은데. 얼굴이라도 한 번 보려고 다들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알아? 지나는 마이야 필리포브나에게 찾아가기까지 했어. 그 둘이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잖아. ”

 

 

 “ ... ”

 

 

 미샤는 잠깐 입술을 살짝 벌린 채 눈꺼풀을 무겁게 깜박였다. 몸이 아파서 그런 건 아닐까 걱정도 잠깐 밀려왔지만 난 그런 표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건 전혀 모르거나 기억나지 않는 얘기를 들었을 때 짓는 표정이었다. 그는 마이야 필리포브나의 이름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토록 그를 열렬하게 후원했던 여자를, 레닌그라드의 공작부인이라는 별명을 얻은 여자를, 거의 한 달에 한 번씩은 극장 후원 모임에서 만났던 여자, 그를 아들처럼 아꼈던 그녀를. 지나는 그녀가 미샤에게 연정을 품고 있어서 항상 자신을 못살게 군다고 투덜대곤 했지만 난 그저 마이야 필리포브나가 지나와 같은 타입의 발레리나를 싫어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어쨌든 불러줘서 난 기뻤는데. 난 네가 지나를 부를 줄 알았어. 아니면 그 국립대 친구나. ”

 

 

 “ 네가 가장 안전했어. ”

 

 

 

 물론 난 그의 말을 이해했다. 벨스키가 내게 연락했을 때부터 알았다. 미샤는 키로프 동료들과 레닌그라드에 있는 지인들의 이름을 대는 것이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의 말이 옳았다. 그나마 모스크바에 있는 내가 가장 나았을 것이다. 벨스키를 비롯해 두세 명의 의원들과 잘 아는 사이이기도 했으니까. 그건 완벽하게 이성적인 행동이었다. 어쩌면 벨스키가 내게 했던 말에는 지나친 우려와 과장이 섞여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특유의 매끄럽고 침착한 어조로 미하일이 이상하게 굴어도 너무 놀라지 말게. 꽤 심하게 앓아서 아직 완전히 맑은 정신을 찾지 못했으니까라고 말했다. 정치인답게 제대로 된 해명은 해주지 않았다. 왜 앓았는지, 그것과 이상하게 구는 것, 또렷한 정신을 찾지 못하는 것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다시 말해서, 그 더러운 놈들이 내 친구에게 대체 얼마나 끔찍한 짓을 자행했는지에 대해서는 입 하나 뻥긋하지 않았다.

 

 

 나는 거의 의식적으로 농담을 섞어 말했다.

 

 

 “ 전략적으로 택해준 거라면 영광이지만 좀 섭섭하기도 한데. 난 너 정말 보고 싶었다고. 그래도 열 번째 안에는 들어야 할 텐데. ”

 

 

 “ 들어. 훨씬 더 앞에. ”

 

 

 지금껏 미샤가 그런 말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이제 정말로 말문이 막혔다. 하긴 그 애는 평소에도 가끔 내 말문을 막히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으므로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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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9. 12. 22. 22:49

계속 가는 것 + 이전의 메모 about writing2019. 12. 22. 22:49

 

 

 

 

오늘의 메모를 적고 난 후 문득 떠올라서 발췌해봄. 예전에 쓴 글에서 트로이와 미샤가 나누는 대화 일부.

 

 

...

 

 

“ 왜 그렇게 자신에게 가혹해? 넌 지금 몇 사람 몫을 하고 있는데. ”  


“ 계속 가야 해. 멈추면 안돼. ”


" 잠깐 멈춰도 돼. 조금 쉰다고 생각해. ”


 " 아니, 난 계속 가야 해. 멈추면 일어나고 싶지 않을 테니까. ”

 

 

..

 

 

 

위의 대화가 포함된 짧은 에피소드를 몇년 전 페테르부르크에 머무를 때 이 폴더에 발췌해 올렸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이런 메모를 적었었다.

 

 

< ..... 어쩌면 저때 나는 미샤의 입을 빌려 내 얘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긴 진실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어차피 소설쓰기란 거짓말하기이며 거기에 일부의 진실을 숨기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그 반대도 성립할 것이다.... >

 

 

... 노트북이 안돼서 폰으로 적느라 불편하긴 하다만. 저 메모와 소설 에피소드는 아래 링크에... 16년 여름이었다. 소설의 저 에피소드 자체는 12년 겨울에 썼다.

 

- 내가 마린스키 앞을 지날 때마다 생각하는 것, 그가 계속 가야 하는 이유 -

 

 

..

 

 

맨 위 사진은 트로이가 사는 동네에서 미샤네 동네와 극장으로 가는 길 풍경. 모이카 운하. 아래 사진 한장 더. 두 장 모두 지난 7월 밤에 마린스키에서 공연 보고 걸어오며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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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모이카 운하. 딱 3년 전. 2016년 12월. 이때는 아주 추웠다. 모든 운하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하지만 날씨가 맑아서 산책하기 좋은 날이었다. 올 겨울은 페테르부르크에서도 유례없이 따뜻한 편이라 운하가 아직 이렇게 얼지 않았다고 한다.

 

 

이 운하는 미샤의 운하이다. 이 운하를 따라 쭉 걸어가면 트로이네 집이 있는 고로호바야 거리를 관통하고 시느이 모스트(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가 건너다 운하를 내려다보는 그 다리이다)와 이삭 광장을 지나고 포나르느이 모스트(거대한 가로등 램프들이 있는 다리이다, 포나리는 램프라는 뜻임)를 지나고 또 계속해서 걸어가다 크류코프 운하 쪽으로 꺾으면 키로프 극장, 지금의 마린스키 극장이 나온다. 물론 민트 블루의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구관이다. 호박색의 화려한 신관은 2005년에 생겼으니 그 당시의 미샤는 그런 신관에 대해서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마린스키 신관은 엄청나게 자본주의적이고 물질적이고 또 아름답고 매끈하고 세련된 건물이니까.  

 

 

예전에 썼던 소설 속에서 미샤는 발레단 신입 시절 처음에는 사도바야 거리에 있는 낡은 아파트에서 극장 동료들 세명과 함께 지내고 1년이 지난 후에는 톱스타 대접을 받아 극장 바로 근처에 있는 넓고 좋은 아파트에서 지나와 둘이 살게 된다. 사도바야 거리에 살 때는 이 운하를 따라 걸어서 극장으로 출근했다. 좋은 아파트에서 지나와 살게 된 후에도 그 집에서 자는 적은 별로 없고 걸핏하면 도시 여기저기를 쏘다니고 또 툭하면 고로호바야 거리에 있는 트로이네 집에서 자고 나왔기 때문에 그때에도 역시 이 운하를 따라 극장에 가곤 했다. 차를 산 후에도 운전이 귀찮은데다 본시 산책을 좋아하는터라 그냥 걸어다니는 경우가 훨씬 많다.

 


 

 

 

페테르부르크, 당시 이름으로는 레닌그라드 토박이답게 미샤도 살을 에는 듯 춥지만 그래도 햇살이 비치는 한겨울에 꽁꽁 언 운하를 따라 걷는 것을 좋아했을 것이다.

 

 

 

그리고 저 붉은 다리(러시아어 이름은 끄라스느이 모스트)를 지나면서 다리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오리들과 갈매기들에게 흑빵을 부숴서 던져주곤 했을 것이다. 새를 좋아하는 애니까.

 

 

다리 아래는 웬만하면 꽁꽁 얼지 않는다. 그래서 새들이 여기 모여 있곤 한다. 저때 나도 저 다리 난간에 기대어 새들에게 흑빵을 좀 던져주었는데 료샤가 강 오염시킨다고 투덜거렸음 -_- 빵은 유기물인데... 그리고 새들이 한순간에 다 찾아서 먹어치우는데 그런 내 말을 잘 들어주지도 않고 막 구박했다 엉엉 ㅜㅜ 그래놓고는 내 빵을 뺏아서 자기도 새들에게 먹이를 줌. 뭐야, 지도 해보고 싶었던 것이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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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9. 12. 6. 21:52

고로호바야 거리, 이름들 about writing2019. 12. 6. 21:52

 

 

 

11월 초, 해질녘 페테르부르크 고로호바야 거리. 날씨가 흐려서 석양이나 아름다운 푸른빛은 아쉽지만 없었다. 걸어가면서 폰으로 찍었더니 조금 흔들렸는데 색감도 그렇고 어쩐지 옛날 소련 느낌이라 레닌그라드 시절이라고 최면 주문을 외며 사진 올려봄. 뭐 레닌그라드 시절엔 저런 별 모양 전선 장식은 없었을 것 같지만.

 

 

이 거리는 상당히 길게 뻗어 있다. 쭉 따라서 올라가면 사도바야 거리와 이어진다. 아래로 계속 내려가면 발샤야 모르스카야 거리와 말라야 모르스카야 거리를 가로질러 해군성 공원에 이른다. 네프스키 대로와도 가깝다. 내가 쓴 글들 몇편에 등장하는 트로이가 이 거리 어딘가의 오래된 아파트에 살고 있다. 사도바야 쪽보다는 발샤야 모르스카야 거리와 좀더 가까운 방향에. 소련 시절 이 거리는 제르진스키 거리로 불렸다. 하지만 내 입에는 고로호바야가 더 붙어 있어서 소설 속에서도 딱히 이름을 수정하지는 않았다. 알고 있으니 필요할 때는 언제든 고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고. 어떤 퇴고 버전에서는 이름을 모두 수정해놓기도 했다.

 

 

그러니 이 소설들 역시 이 거리의 지난한 역사들과 어떤 면에서는 비슷한 면을 띠게 된다. 어딘가에서는 고로호바야가 되고 또 어딘가에서는 제르진스키가 된다. 아마도 이 거리가 몇년 동안 가졌던 이름인 코미사로프스카야로 불리는 버전도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적 배경들이야 모두 달라지겠지만. 이것은 소련에 존재하는 다른 무수한 거리들과 도시들, 극장과 건물들의 이름도 마찬가지이다. 페테르부르크가 페트로그라드가 되었다가 레닌그라드가 되고 다시 페테르부르크가 되는 것처럼, 마린스키 극장이 키로프가 되었다가 다시 마린스키가 된 것처럼. 이름이 바뀌고 또 돌아오는 과정들은 너무나도 이 나라의 역사나 삶과 닮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름 또한 어떤 면에서는 렌즈이기 때문이다. 소련 시절 니넬이라는 여자 이름이 유행했던 것처럼. (니넬은 '레닌'의 철자를 거꾸로 뒤집은 것이다)

 

 

이름이 어떻든, 이 거리는 현실 속에서 내가 매년 오가며 자주 걷는 곳이다. 내가 좋아하는 산책 루트와도 겹치고 주로 묵는 숙소와도 가깝다. 동시에 이 거리는 허구의 소설 속에서 트로이와 미샤가 셀수 없이 걷는 곳이다. 트로이는 자기네 집이 이 거리에 있으니까, 미샤는 트로이네 집을 뻔질나게 드나드니까(게다가 여기서 극장까지 도보로 이동하기도 그리 어렵지 않고) 그래선지 이 거리에 대해 나도 애정을 품고 있다 :)

 

..

 

 

(사족) 그러고보니 레닌그라드 시절이라면 도로에 차가 저렇게 많지는 않았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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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9. 12. 1. 22:54

네바 강변의 석조 난간, 글쓰기 about writing2019. 12. 1. 22:54

 

 

네바 강변의 석조 난간. 강 건너편으로 바실리예프스키 섬과 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쿤스트카메라, 저 멀리로는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사원이 보인다.

 

나는 이 석조 난간을 따라 걸을 때면 갈매기에게 빵을 던져주고 이 위로 훌쩍 뛰어올라 춤을 추고 그런 그를 끌어내린 친구에게 공연히 벌컥 화를 내는 미샤에 대해 생각한다. 물론 나는 언젠가 아주 오랜 옛날, 먼저 난간을 따라 걸었고 그 이후 그 글을 썼다. 그리고 지금은 거꾸로 그 인물과 글쓰기에 이 난간이 따라온다.

 

 

..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미샤는 돌로 된 난간 위에서 몇 발짝 뛰어올랐다. 꼭 맞는 옷을 입고도 무대 위에서처럼 춤을 췄다. 빵조각을 채간 갈매기의 움직임을 그대로 모방해 추고 있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지만 트로이는 그 재능에 놀라거나 감명을 받을 겨를도 없었다. 그는 난간에 몸을 바짝 기댄 채 두 팔로 미샤의 허리와 골반을 감아 바닥으로 홱 끌어당겨 내렸다. 아마 안드레이 트로이츠키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완전히 잊은 드문 경우였을 것이다. 트로이는 균형을 잡는 데는 별 재능이 없었으므로 하마터면 미샤와 함께 돌바닥에 넘어질 뻔 했다. 미샤가 재빨리 몸을 뒤로 젖히며 한 손으로 난간을 짚고 한쪽 다리로 트로이의 무릎을 떠받쳐 넘어지는 것을 막았다. 싸늘하고 약한 바람이 불어와 미샤의 머리칼이 검은 깃털처럼 공중으로 가볍게 나부꼈다. 



 
 “ 봐, 위보다 아래가 더 위험해. 넘어질 뻔 했잖아. ”


 “ 너 그 위에서 헛디뎠으면 강으로 떨어졌을 거야. ”


 “ 강이야 헤엄치면 되지만 이건 돌바닥이잖아. ”


 “ 괜찮아, 넌 내 위로 떨어졌을 테니까. ”


 “ 미쳤어? 제대로 넘어질 줄도 모르면서. 뻣뻣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 거짓말이 아냐, 안드레이. 위보다 아래가, 강보다 바닥이 더 위험해. 넌 머리가 깨졌을 거야, 뼈가 부러졌거나. ”



 미샤는 화를 내고 있었다. 까만 눈을 뜨겁게 태우면서 입술을 떨었다. 자기는 그렇게 위험한 짓을 밥 먹듯 하는 주제에 기껏 그가 뒤로 자빠질 뻔한 것을 가지고 화를 내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트로이는 그 말을 그대로 해주었다.

 

 

...

 

 

엄밀히 말하면 미샤가 춤을 춘 난간은 이쪽이 아니고 사진 속 강 건너편인 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당시엔 레닌그라드 국립대학교) 쪽에 있다. 미샤는 트로이에게 한소리 들은 후 어쩐지 토라진 채 말도 없이 궁전 교각을 빠르게 걸어서 강을 건너고 이쪽 방향으로 걸어온다.

 

저 짧은 몇 문단이 포함된 파트를 예전에 이 폴더에 발췌해 올린 적이 있다. 앞뒤가 더 붙어 있어 맥락이 좀더 나온다.

링크는 여기 : https://tveye.tistory.com/5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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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9. 11. 28. 22:59

겨울운하, 그리고 약간 about writing2019. 11. 28. 22:59





겨울 운하. 짐냐야 까나브까(Зимняя канавка)



내가 좋아하는 장소이다. 에르미타주 겨울궁전 사이에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 로컬들도 사랑하는 장소이다. 아주 작은 운하이지만 매력이 넘친다. 겨울궁전 아치 너머로 네바 강이 보인다.



이 도시의 운하는 나에게 각별하다. 그리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곤 한다. 그래서 전에 쓴 글에 이런 대화를 넣었었다. (예전에 이 폴더에 저 대화를 포함한 파트를 좀 길게 발췌한 적이 있긴 하다. 글쓰기 메모와 함께)




...





 “ 나하고 레닌그라드는 같을지도 몰라. ”


 미샤는 트로이의 귓가에 입술을 마주 댄 채 따스한 숨결을 내쉬며 말했다.


 “ 뿌리가 없어. 돌이킬 수 없이 안이 비었어. 파이프처럼. 운하의 검은 물이 그 안으로 차올랐다가 어디론가 빠져나가. 그래서 사람들을 잡을 수가 없어. 친구를 만들기가 너무 어려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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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아래 발췌한 짧은 대화는 몇년 전 쓴 소설의 전반부이다. 열심히 쓰려 했지만 너무 업무도 과중하고 개인적으로도 많은 일들을 겪느라 결국은 100여페이지밖에 못 쓰고 중단한 상태이다. 언젠가는 다시 쓰게 될 테지만 그때가 언제가 될지 잘 모르겠다. 항상 다시 쓰고 싶다. 그런데 써보려고 해도 도저히 에너지가 나지 않는다. 물리적인 에너지도 모자라고 또 그외의 여러 이유가 있다.

 

 

발췌한 대화는 예전에 이 about writing 폴더에 좀더 긴 버전으로 올려본 적이 있다. 시골이나 다름없는 지방 소도시 가브릴로프 극장의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미샤가 그 지역의 문예지 편집장이자 노멘클라투라 가문의 유명한 미인 렐랴와 나누는 대화이다. 렐랴는 신임감독 인터뷰를 하러 가서 이것저것 묻는다. 그러다 미샤가 부임 후 백스테이지 뿐만 아니라 관객석에서 꾸준히 공연을 보는 이유에 대해서도 묻는다. 미샤가 거기 대답한다. 아래 대화는 거기 이어지는 이야기이다.

 

 

나는 미샤를 등장시킨 소설들과 에피소드를 꽤 여럿 썼지만 거기서 그가 자기 입으로 예술과 공연에 대해 어떤 가치관을 드러내게 한 적은 별로 없었다. 아주 친한 사이인 트로이와 사적인 이야기를 나눌때, 그리고 춤을 그만두기로 결심하던 무렵 외국 신문과 가졌던 인터뷰, 그 정도가 전부였다. 그리고 여기 렐랴의 인터뷰.

 

 

별 얘기는 아니다. 어떻게 보면 진부하고 또 당연하고 혹은 교과서 같은 얘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샤는 이것을 진지하게 생각하며(어디까지가 그의 진실일지는 물론 확언할 수 없다. 그는 저 멀리 있는 사람이고 소설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미샤가 이야기하는 것은 오랜 기간 동안 이쪽 일을 해오면서 내가 생각해왔던 것들, 내가 지키고자 했던 가치관 일부와도 상통한다. 물론 전부는 아니다. 나에게도 여러가지 방향과 생각들이 있고 그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미샤가 하는 이야기는 나에게도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종종 이 대사들을 입 안으로 되뇔 때가 있다.

 

 

(사진은 이번에 갔을 때 마린스키 극장 2야루스(4층) 관객석 한가운데에서 찍은 것이다)

 

 

 

...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 제가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던 것 같군요. 전 극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대를 봐야 한다고 말했죠. 그건 관객을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어요. ”

 

 “ 어떤 사람들이 우리 공연을 보러 오는지? ”

 

 “ 네. 그리고 그들이 어떤 식으로 공연을 보는지. 극장이라는 공간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이야기하고 보고 느끼는지. 그 모든 것이 중요해요. 관객과 소통하지 않는 무대는 절반만 열려 있는 공간이에요. 극장은 예술가의 자기만족과 독백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니까요. ”

 

 “ 좀 의외네요. 전 당신이 엘리트주의자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예술가들 대부분이 그렇죠. 관객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은 보통 하지 않잖아요. 관객들이 자신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슬퍼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 ”

 

 “ 관객들은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건 이성의 영역이죠. 이해하지 못하고도 사랑할 수 있고 슬퍼할 수도 있어요.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반응할 수도 있고요. 그들로 하여금 뭔가를 느끼게 만들 수 없다면 그건 실패한 공연이에요. ”

 

 “ 백조의 호수나 지젤이라면 모르지만 관객들이 호두까기 인형을 보면서 어떤 감정적 고양을 느끼지는 않잖아요. ”

 

 “ 하지만 즐거워하죠. 아기자기한 무대에 감탄하는 사람들도 있고 발레리나들의 화려한 의상과 움직임을 모방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도 있고요. 감정적 고양이란 꼭 거창하고 드라마틱한 것만은 아니에요. 예술계의 많은 사람들이 가끔 빠져드는 함정이 있죠. 장엄하고 영웅적인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추구하지 않으면 예술가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거라고 믿어버리는 것. 그건 일종의 도그마예요. 기본적으로 예술이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고 거기에는 진정성이 필요해요. ”

 

 “ 호두까기를 보면서 웃는 어린아이들과 잠자는 미녀를 보면서 그 구조적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발레 애호가들이 원칙적으로는 동일하고 평등한 관객이라는 것인가요? ”

 

 “ 네. ”

 

 “ 그건 가브릴로프 극장 예술감독으로서의 가치관인가요, 아니면 무용수이자 창작자인 미하일 야스민의 믿음인가요? ”

 

 “ 감독으로서의 저와 예술가로서의 저 사이에는 몇 가지 차이가 있겠죠. 하지만 관객에 대한 제 태도는 전자든 후자든 변함없을 거예요. ”

 

 “ 그것이 당신이 무대에서 그 수많은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비밀인가요? 그들 모두를 이해하고 동등하게 대하려고 했다는 것? ”

 

 “ 조금은요. ”


 

 

..

 

 

아래 링크로 가면 앞뒤 이야기가 좀더 붙어 있는 발췌본을 읽을 수 있다.

그 링크는 여기 : https://tveye.tistory.com/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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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9. 11. 3. 00:05

몇년 전의 글 약간 발췌 about writing2019. 11. 3. 00:05





 아래 발췌한 글은 몇년 전 썼던 중편의 일부이다. 중편이라기엔 길고 장편이라기엔 짧은 글인데 제목이 있긴 하지만 쓰는 동안은 '수용소 프리퀄'이라고 부르곤 했다. 미샤가 파리에서 체포된 후 수용소와 클리닉에서 겪는 일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총 3부로 되어 있는데 1~2부는 프라하에 머물때 썼고 3부는 돌아와서 썼다. 발췌한 글은 3부 후반부이다. 미샤의 친구이자 안무가인 일린이 그를 면회하러 와서 나누는 대화와 일린의 회상 일부. 



이 소설을 쓴지 꽤 시간이 지났고 그 사이에 나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런 일들을 겪고 나자 이 글은 나에게 더 예리하고 고통스럽게 읽히게 되었다. 쓸 때도 그랬지만 지금 읽을 때가 더 그런 것 같다. 보통은 반대이다. 자신이 쓴 글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좀더 객관적으로 읽게 되고 또 그 순간의 감정과 생각들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게 된다. 그런데 이 소설은 좀 달랐다. 나는 물론 그 이유들을 알고 있고(전부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느낌은 아마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지속될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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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다지오였다, 격정적인 사랑의 춤이었다. 2인무는 그 애가 옐레나를 추는 것보다도 더 문제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얘기해봤자 소용없는 일이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 애가 그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싶었다, 무대 위에서. 그 어느 곳에도 미샤처럼 추는 무용수는 없었다. 이전에 미샤의 그 영문학자 친구와 이야기하다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저렇게 출 수 있었다면 목숨이라도 내놨을 걸요. 그건 지금도 유효했다.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그 애처럼 출 수만 있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목숨이라도 내놨을 것이다. 나는 안무가였지만 그 이전에 무용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출 수 있었다면 결코 안무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 애에게 그때 뉴욕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왜 춤을 그만 두겠다고 선언했던 것인지 묻고 싶었다. 6월에 레닌그라드에서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우리는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도 없었다. 이미 그에게는 보안 요원들이 여럿 딸려 있었다. 아파트는 두 번이나 수색당한 후였고 전화도 도청되고 있었다. 게다가 레닌그라드 무대에 올라온 그 불새는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보는 것이 괴로울 정도였다. 물론 전후사정을 무시한다면 공연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안무를 대폭 수정해서 지나가 췄던 불새는 나름대로 매력적이었고 관객들은 백조의 호수를 연상시키는 해피엔딩에 즐거워했다. 하지만 그건 미샤가 원래 만들었던 작품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 화려하고 생기 넘치는 불새는 원본에 대한 조롱이자 끔찍한 패러디처럼 보였다.

 

그러나 내 입에서 나온 질문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무대에 올라가지 않는 것과 춤을 추지 않는 것. 네겐 그 둘이 같아? ”

 

미샤는 생각에 잠겼다. 아주 잠시였지만 그 애는 전혀 아파 보이지 않았다, 리허설 도중에 나와 함께 연습실 바닥에 앉아 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같지 않아. ”

 

그것 없이 살아갈 수 있어? 자신해? ”

 

그게 뭔데? 무대? ? ”

 

. ”

 

미샤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곁으로 다가갔지만 소파에 앉지는 않았다. 대신 에어컨을 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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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0. 20. 21:22

모이카, 미샤의 운하, 극장과 백야 about writing2019. 10. 20. 21:22

 

 

 

지난 7월, 백야의 모이카 운하 사진 몇 장.

 

페테르부르크의 여러 운하들 중 도심을 가로지르는 세개의 운하가 있는데 판탄카, 그리보예도프, 모이카 운하이다.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운하는 가운데의 그리보예도프이다. 여기에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피의 구세주 사원), 돔 크니기, 예술광장 등의 명소가 모여 있기 때문이다. 판탄카 운하를 따라가면 레트니 사드와 아니치코프 다리, 이즈마일로프 사원(트로이츠키 사원)이 나오고, 모이카 운하를 따라가면 이삭 성당과 마린스키 극장에 닿을 수 있다. 이 운하들은 도시를 가로지르고 또 얽혀든다.

 

미샤를 등장시켜 쓴 소설들에서 페테르부르크는 단순한 배경과 장소가 아니라 때로는 소설 자체이기도 했다. 이 도시를 드나들면서 나는 가끔은 오감을 열고 머리를 비운 채 걷고, 가끔은 글과 인물들에 대해 생각하고, 가끔은 그들을 불러내어 같이 걷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일이 너무 바쁘고 힘들고 에너지가 소진되어 한동안 글쓰기를 중단하고는 있지만 실제로 페테르부르크를 거닐 때면 이러한 과정들이 되풀이된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이 도시에 몸이 가 있지 않더라도, 그곳에서 찍은 사진을 뒤적이거나 혹은 그저 머릿속으로 기억을 떠올리는 동안에도 반쯤은 저절로 나는 도시의 곳곳을 재생할 수 있다. 거의 육체적인 반응에 가까운 재생이다.

 

판탄카 운하가 트로이와 알리사의 운하였다면 모이카 운하는 누구보다도, 미샤의 운하다. 극장으로 통하는 운하이기 때문이다. 극장. 사도바야 거리. 그리고 트로이가 살고 있는 고로호바야 거리. 이 모든 곳들을 관통하는 운하. 미샤는 도시의 모든 운하들을 알고 있고 눈을 감고도 그곳들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지만 그래도 그의 운하는 모이카이다.

 

 

사진은 7월, 마린스키 극장에서 발레 공연 본 후 나와서 운하 따라 걸어가는 길에 몇장 찍은 것이다.

 

 

 

 

 

마린스키 극장 이야기를 하고서 사진 한장 없이 넘어가는 건 어쩐지 아쉬우니, 천정 장식화와 샹들리에 사진 한장.

 

 

이날 보았던 발레 공연은 돈키호테였다. 알렉산드르 세르게예프의 투우사가 정말 근사했던 날이다.

 

 

 

 

모이카 운하. 백야. 밤 10시 반에서 11시 사이.

 

 

이삭 성당의 황금빛 쿠폴이 보인다.

 

 

 

 

저 너머로는 카잔 성당의 쿠폴도 보인다. 미샤는 학창 시절과 사도바야 쪽에 살던 신입 단원 시절에는 이 길을 따라 걸어서 극장에 다녔다. 이후 극장 근처 아파트를 받은 후에도 이 운하를 뻔질나게 지나다녔을 것이다(그리고 이 길을 따라 걸어가면 트로이네 집도 나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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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9. 17. 22:45

트로이와 알리사의 운하 about writing2019. 9. 17. 22:45




판탄카 운하. 지난 7월, 백야 저녁.


전에 메모에서 몇번 언급했듯, 판탄카 운하는 내가 쓰는 글의 등장인물들 중 특히 트로이와 알리사의 운하이다. 둘은 이 난간과 돌바닥을 따라 자주 걸었고 얘기도 많이 나누었다.







알리사가 떠나고 난 후에도 트로이는 계속해서 이 운하를 따라 걷는다. 판탄카 운하 난간 귀퉁이에 이렇게 나뒹구는 술병을 보면 나는 보통 트로이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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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9. 10. 23:15

담배 연기, 어둠과 뇌우 about writing2019. 9. 10. 23:15

 

 

 

비도 오고 이것저것 생각이 들어서 오늘은 담배 뻑뻑 피우는 미샤 크로키 한 장 그림.

 

 

아래 글은 몇년 전 썼던 단편의 초반부이다. 전에 이 about writing 폴더에 발췌해 올렸던 적이 있다. 파리에서 레닌그라드로 소환되는 비행기 안에서 담배 피우는 미샤와 거기 오버랩되는 과거의 에피소드에 대한 짧은 발췌문이다. 담배 연기. 어둠. 뇌우. 거장과 마르가리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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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샤는 피곤해 보였다. 얼굴은 창백했고 길게 뒤엉킨 속눈썹 아래로 어두운 그림자가 패여 있었다. 항상 제멋대로 치솟는 경향이 있던 검은 머리칼은 이마 위로 단정하게 빗어 넘겼지만 갸름한 얼굴 위로 광대뼈 윤곽이 더 날카롭게 두드러져 있었다. 파리의 더운 날씨 때문인지 소위 위험인물이라 무기를 감출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재킷은 걸치지 않았고 주머니가 없는 검은색의 긴 소매 리넨 셔츠와 짙은 회색의 슬랙스 차림이었다. 웅웅거리는 소음과 둥근 창 너머로 보이는 두터운 구름이 아니었다면 연습실에서 막 나온 것 같다고 착각할만한 모습이었다.

 

 

 미샤가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안개처럼 빽빽하고 불투명한 연기에 휩싸여 그 창백하고 지친 듯한 얼굴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  *  *

 

 


 “ 서쪽에서 다가온 어둠이 거대한 도시를 뒤덮었다. 다리도, 궁전들도 사라졌다. 마치 결코 이 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사라졌다. 실처럼 가느다란 섬광이 하늘을 가로지르며 내달렸고 천둥이 도시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울리는 천둥과 함께 뇌우가 시작되었다. 어둠 속에 휩싸여 볼란드는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

 

 

 두 번째로 만났을 때 나는 미샤를 모스크바로 데려갔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미샤는 볼쇼이나 므하트 극장보다는 트레치야코프 갤러리를 더 좋아했다. 갤러리에서 나와 저녁을 먹으러 갔을 때 나는 몇 년 전 파리에서 출간된 무삭제판 불가코프 소설을 선물했지만 그 아이는 벌써 지하 루트로 그 책을 입수해 읽은 후였다.

 

 

 “ 실망하실 필요는 없어요,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 ”

 

 

 식어가고 있는 수프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책장을 넘기면서 미샤가 말했다.

 

 

 “ 그건 갱지 복사물이었거든요. 돌려가며 읽었는데 제 차례가 왔을 땐 잉크가 번져서 여기저기 지워져 있었어요. ”

 

 

 그날 밤 잠들기 전에 나는 그에게 책에서 마음에 들었던 장면을 몇 장 읽어달라고 청했다. 마음속으로는 어느 부분을 읽어줄지 예측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마르가리타가 빗자루를 타고 모스크바 밤하늘을 날아가는 장면이나 사도바야에서 악마 무도회를 여는 장면이다. 혹은 반항심 많은 사춘기 소년답게 나를 권력과 체제의 상징으로 설정해 놓고는 보란 듯이 ‘원고는 불타지 않는다’ 라는 대사를 읊어 주리라고 생각했다.

 


 
 미샤는 밑도 끝도 없이 대여섯 문장만을 읽었다. 어둠과 뇌우에 대한 장면이었다. 왜 그 부분을 읽어주었는지에 대해서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

 

 

미샤가 낭독한 저 장면은 나도 개인적으로 거장과 마르가리타에서 무척 좋아하는 장면이다. 내용도, 그리고 문장들 자체도 무척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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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앞 버스 정류장. 네프스키 대로에서 궁전 교각을 지나 네바 강을 건너 바실리예프스키 섬으로 들어오면 '대학교'가 나타난다. 정류장 이름이 아예 '대학교'(우니베르시쩻)이다. 오래 전 나랑 쥬인은 수업을 마친 후 이정류장에서 기숙사행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는 7번, 뜨랄레이부스(트롤리버스)는 10번이었는데 둘다 무지하게 안 왔다. 게다가 퇴근 시간이 되면 네프스키에서 궁전 교각을 건너 여기로 오는 길은 정말 엄청나게 막히는 터라 한겨울엔 여기서 발을 동동 구르며 버스 기다리는 게 정말 춥고 힘들었다. 이 사진엔 강이 안 나왔지만 학교와 정류장이 네바 강변에 있는 터라 강바람도 장난 아니었고. 또 겨울이면 오후 2~3시 무렵 해가 져버리니 진짜 힘들었음.

 

이 정류장에서 나와 쥬인은 좀처럼 오지 않는 7번과 10번을 기다렸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나는 더욱 과거로 갔다. 페테르부르크로 되돌아오기 전, 레닌그라드로. 글을 쓰면서 나는 정든 도시를 다시 돌아다녔고 좀 다른 시선으로 골목들과 장소들을 바라보았다. 물론 미샤를 가장 자주 소환했다. 그는 나의 주인공이었으니까. 

 

하지만 바실리예프스키 섬으로 들어오자 이 장소는 트로이와 알리사의 공간이 되었다. 미샤의 공간들은 강 너머에 집중되어 있었다, 모이카 운하와 사도바야 거리, 조드쳬고 로시 거리와 바가노바 발레학교, 그리고 키로프 극장.. 미샤야 원체 도시 여기저기를 쏘다니는 아이였으니 바실리예프스키 섬도 뻔질나게 드나들었지만 그래도 그에게 가장 가까운 공간들은 바로 극장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실리 섬은 레닌그라드 국립대학에 다녔던(지금의 이 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이다) 트로이와 알리사, 그리고 그들의 문학서클 친구들의 공간이 되었다. 어쩌면 나에게는 훨씬 더 소중한 기억의 장소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나 역시 잠시나마 이 학교에 드나들었고 바실리 섬 안쪽의 기숙사에 살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는 트로이와 미샤가 처음으로 만나는 장소인 갈랴와 료카 부부의 아파트를 내가 지냈던 기숙사 바로 옆 건물로 정하기도 했다.

 

나와 쥬인은 이 정류장에서 기숙사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그리고 알리사와 트로이도 여기서 버스를 기다렸다. 갈랴와 료카가 사는 아파트에 가려고. 좀처럼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굴렀다. 알리사는 키큰 트로이의 어깨 뒤에 숨어 바람을 피하곤 했을 것이다. 더 오래 전, 레닌그라드 시절. 아마 저런 광고판은 없었겠지만. 꽁꽁 얼어붙은 네바 강과 칼날처럼 살을 파고들던 바람, 얼음에 반사되어 창백하게 빛나던 햇살은 동일했을 것이다. 그리고 여름. 백야 시즌의 이 찬란한 빛살도.

 

이따금 미샤도 여기서 버스를 탔을 것이다. 수업이 끝난 트로이와 함께 갈랴네 집 문학 모임에 갈때, 혹은 그와 하느님만이 아는 바실리예프스키 섬의 무수한 이곳저곳들을 쏘다니기 위해. 나는 트로이와 알리사의 경로들을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고 때로는 그렇게 했다. 하지만 미샤에 대해서라면 그냥 놔두었다. 그 아이는 그렇게 놔둬야 했다.

 

이 사진은 지난 7월에 갔을 때 찍은 것이다. 료샤는 자기도 여기서 버스를 기다린 적이 많았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둘다 '7번은 진짜 안 왔어~!' 하고 기억을 되살리며 웃었다. 나는 '근데 지금도 7번은 엄청 늦게 와' 라고 덧붙였다. 료샤는 '나는 버스 안 탄지 오래돼서 이제 몰라' 라고 부르조아다운 마무리를 하였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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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식 맑은 생선수프 우하. 엄밀하게 말하자면 원래는 우크라이나 쪽 수프이다. 여기 크림을 넣으면 핀란드식 우하가 된다. 얼마 전 써서 이 폴더에 전문을 올렸던 미니단편 '핀란드 우하'에서 미샤가 취한 채 계속해서 '나는 맑은 우하가 좋은데' 하고 알리사에게 찡찡대는 장면이 나온다. 그게 이것. 안에 든 연어와 당근, 레스토랑 조명 때문에 좀 붉게 나오긴 했는데 하여튼 맑은 국물이다.

 

사진은 페테르부르크의 유명한 러시아 음식점 '고골'의 우하. 여기 음식이 좀 비싸긴 해도 맛있는데 갈수록 유명해져서 점점 자리 잡기가 힘들어지고 있음. 이제는 가기 전에 예약을 해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 흑흑 예전이 좋았는데... 이 사진은 2016년 겨울에 갔을 때. 따끈한 생선 수프 우하를 먹으면 몸이 데워진다.

 

단편에서 미샤가 맑은 우하 타령을 하자 알리사가 '맑은 우하는 노인네 입맛이거나 보드카 마시는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거야' 하고 타박을 준다. 근데 사실 나도 미샤랑 입맛이 비슷한 편이라서 크림 넣은 핀란드 우하보단 이 맑은 우하가 더 좋다 :)

 

 

그 미니 단편 '핀란드 우하'는 여기 : https://tveye.tistory.com/8950

 

 

 

 

보드카를 곁들이면 좋겠지만 이때 나는 심신이 많이 힘들 때라 모르스 주스를 마셨다.

 

 

 

 

 

제대로 된 맑은 우하에는 이 '뽐뿌슈까'를 곁들여 먹게 되어 있다. 마늘 브리오쉬인데 폭신하고 마늘향이 감도는 게 무척 맛있다.

 

 

 

 

폰으로 찍었던 클로즈업 사진 두 컷 더.

 

 

 

비밀을 털어놓자면... 사실은 알리사도 크림 넣은 핀란드 우하보다는 이 맑은 우하를 더 좋아했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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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 9. 21:48

크림을 넣은 생선수프와 흑빵 about writing2019. 4. 9.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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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스케치 한 장. 노동노예 옥토끼나 말썽쟁이 미샤, 빨간머리 지나 대신 음식 스케치. 며칠 전 올린 미니 단편에 나오는 핀란드 우하(크림을 넣은 생선 수프)와 러시아 흑빵 두 조각. 앞발이라 대충 그려서 별로 맛있어 보이진 않는다만 사실 맛있습니다 :) 수프에는 알리사가 말한대로 연어와 대구, 파슬리와 우끄롭(딜), 그리고 감자와 당근이 들어갔습니다. 잘 찾으면 셀러리도 있음. 그리고 크림.

 

핀란드식 생선 수프와 흑빵, 보드카에 대한 그 미니 단편은 여기 : https://tveye.tistory.com/8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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