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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부르크의 여름'에 해당되는 글 95

  1. 2016.11.25 엽님이랑 함께 본 파란 하늘 아래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 6
  2. 2016.10.20 흑해의 여름, 춤추는 아이, 달빛 아래의 레나 46
  3. 2016.10.18 아끼고 있었죠, 평온과 위안을 위해 4
  4. 2016.10.15 비둘기야 너는 아니? 6
  5. 2016.10.11 타브리체스키 공원 4
  6. 2016.08.17 보라색 풍선 동동동 10
  7. 2016.08.15 요리의 예술 샌드위치라고요? 6
  8. 2016.08.15 흐린 날, 공연 보고 운하 따라 걸어오며 찍은 사진들 8
  9. 2016.08.03 수도원 고양이와 꽃들
  10. 2016.07.23 빛, 깃털, 레냐를 닮은 아이, 선명한 색채들, 새
  11. 2016.07.20 붉은색, 파란색, 남자, 여자 6
  12. 2016.07.15 길 잃고 발견한 타브리체스키 공원 6
  13. 2016.07.14 레트니 사드의 우아하지 못한 백조 한 쌍 4
  14. 2016.07.12 창문 안쪽에서 4
  15. 2016.07.12 아주 많은 빛 2
  16. 2016.07.06 버리고 간 병과 컵들 2
  17. 2016.07.02 하늘의 세 가지 푸른 빛 2
  18. 2016.06.29 6.28 화요일 밤 : 또 찻잔 삼, 블린 아점, 로툰다에서 차 한잔, 트로이츠키 사원, the repa, 내일 떠난다 2
  19. 2016.06.26 6.25 토요일 밤 : 수프 비노와 알렉세이 재회, 첨 보는 공원에 감, 네프스키 대로에 드러누워봄, 카잔 성당 분수 앞에서 료샤와 레냐에게 해준 이야기, 아이스크림 2
  20. 2016.06.25 6.24 금 : 소포 성공, 마귀할멈 포진 우체국, 돔 끄니기, 카톨릭 성당, 아이스크림, 빛나는 운하, 방 또 옮김, 마린스키 지젤(슈클랴로프, 마트비옌코) 보고 옴
  21. 2016.06.24 6.23 목요일 밤 : 이것이 러시아(우체국에서 열받음), 레트니 사드, 다샤, 빛나는 하늘과 물, 아폴로,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 내일 또 옮김 8
  22. 2016.03.01 백야의 황금빛 석양
  23. 2016.02.23 거울 같은 운하 2
  24. 2016.02.19 아틀라스들의 애환 - 우리도 나름대로 엄청 힘들다!! 2
  25. 2016.02.08 판탄카 뒤쪽, 리체이느이 거리 쪽으로 걸어가면서

 

지난 6월. 페테르부르크.

 

이날은 페테르부르크에 짧게나마 놀러오셨던 엽님과 함께 판탄카 운하를 지나 레트니 사드에 갔다가 마르스 광장을 가로질러 이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이 있는 그리보예도프 운하로 걸어왔다. 날씨가 굉장히 좋았다. 그 며칠전까진 계속 비왔는데 엽님은 정말 날씨 운이 좋으셨다. (그다음날 귀국하신 후 다시 페테르부르크엔 비가 왔음 ㅋㅋ)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 사진이야 전에도 여러번 올렸지만... 오늘은 좀 부분부분 찍은 사진들. 근데 내 키가 작아서... 구도가 다들 좀 삐꾸임. 어쩔수 없어 흐흑...

 

 

 

먼저 젤 전형적인 관광엽서 구도로 한컷~ 이 구도는 전에도 몇번 올렸음. (뭐 갈때마다 이 구도로 몇장씩 찍는다 ㅎㅎ)

 

 

 

 

 

 

이건 마르스 광장 걸어가며 찍은 사진. 하늘이 저토록 파랬다.

페테르부르크에서 함께 보낸 건 이틀이란 짧은 시간이었지만 엽님, 즐거웠어요 :)

 

:
Posted by liontamer

 

 

 

전에 미샤와 트로이, 그들의 친구들이 여름에 여럿이 모여 기차를 타고 흑해에 놀러가는 장면을 발췌한 적이 있다. 그 이야기에서 그들은 기차 안에서 왁자지껄 떠들고 술을 마신다. (http://tveye.tistory.com/4671)

 

흑해로 놀러간 이 친구들은 이 장편의 도입부에서부터 함께 등장하는데, 모두들 비밀 문학 서클의 일원이다. 이 서클은 트로이와 그의 절친 알리사, 그리고 두어명이 주도하여 만든 것으로 금지된 외국 문학을 번역해 돌려 읽거나 반체제 작가, 지하출판물 등을 읽는 모임인데 주로 레닌그라드 국립대학교와 여타 다른 대학들의 외국어 전공 학생, 문학 전공자 등이 참여하고 있다. 미샤는 지인의 소개로 이 서클에 들렀다가 트로이와 친해지게 되었다.

 

그중 소설에 꾸준히 등장하는 인물들은 트로이와 친한 친구들로 료카와 갈랴(둘은 부부이다. 주로 둘의 집에서 모임이 개최된다), 이고리(영화학교 출신. 렌필름 촬영기사), 코스챠, 스베타(미샤를 처음에 데리고 온 친구), 타냐(발레 애호가) 등이다. 그리고 미샤의 팬이라서 억지로 서클에 끼어든 레나라는 소녀가 있다. 이 친구들이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은 전에 몇번 발췌한 적이 있다. 다같이 썰매타러 가서 논다든지, 표절작가 쥬진스키에게 이고리가 시비를 걸어 싸우는 이야기라든지, 갈랴와 료카의 어린 딸이 메밀죽 먹기 싫다고 트로이에게 떠넘긴다든지...

 

여기 올리는 이야기는 전에 올렸던 흑해 가는 기차 이야기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에피소드이다. 이야기의 주역은 미샤를 짝사랑하던 소녀 레나와, 물론, 주인공인 미샤이다. 그리고 다른 여인이 하나 더 있다. 그건 이야기 속에서.

 

 

시간적 배경은 1973년 여름. 미샤는 발레학교를 막 졸업하고 키로프 발레단에 입단해 데뷔를 앞둔 시점이다. 친구들과 함께 잠깐 흑해에 헤엄치러 놀러 갔을 때이다. 흑해는 예로부터 러시아 최고의 여름 휴양지였다.

 

 

** 위의 사진은 흑해가 아니고 페테르부르크(옛 레닌그라드)의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강변 풍경이다. 작년 여름에 내가 찍은 것이다. 흑해는 안 가봐서 ㅠㅠ

 

 

** 이 에피소드는 아주 약간 15금 정도의 묘사가 있는데 그나마 그것도 여기 올리면서 내가 자체검열로 좀 수정했음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그들은 알리사 아버지의 인맥으로 해변 근처의 방 세 개 달린 아파트를 싸게 빌렸다. 임신한지 얼마 안 된 갈랴와 료카 부부에게 방을 하나 주고 나머지는 기차를 타고 왔을 때처럼 남녀로 나눴다. 날씨는 아주 좋았고 해변은 사람들로 붐볐지만 그래도 수영을 하고 노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매일매일이 레닌그라드에서는 백야의 여름 중 운 좋은 며칠 동안만 누릴 수 있는 찬란하고 뜨거운 날씨였다.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다들 실컷 헤엄을 치고 일광욕을 했다. 알리사는 약한 피부를 보호하려고 어마어마한 양의 수입산 선크림을 발랐지만 별 소용이 없어서 사흘 째 되는 날 코끝이 홀딱 벗겨지고 어깨와 팔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물집이 잡히고 말았다. 갈랴가 속상해 하는 알리사를 욕실로 데려가 얼음으로 마사지를 해주고 시장에서 구한 연고를 발라주었다. 미샤는 알리사만큼 피부가 흰 편이었지만 선크림 덕분인지 타고 난 것인지 조금 그을렸을 뿐 아무리 햇볕을 쬐고 다녀도 전혀 화상으로 고생하지 않아 여자들의 부러움을 샀다.

 

 

 긴 금발의 인형 같은 레나는 해변에서 인기가 좋았다. 또래 소년들부터 2~30대 남자들까지 다채로운 유혹이 쏟아졌다. 레나는 밀려드는 데이트 신청을 도도하게 거절하기도 하고 가끔은 보란 듯이 잘생긴 남자를 골라 팔짱을 끼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한번은 적어도 서른 살은 된 것 같은 콧수염 기른 남자의 추근거림을 받아들여 바에서 시끄러운 재즈 음악에 맞춰 춤까지 췄다.

 

 

 그 바에는 트로이 일행도 모두 와 있었다. 물론 미샤도 있었다. 레나가 왜 그러는지는 뻔했고 타냐와 갈랴는 애가 타서 미샤를 들들 볶았다. 네가 리드를 하지 않으니 레나가 저런 사기꾼 같은 남자와 춤을 추고 있지 않느냐, 분명 유부남일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레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  등등 수다스러운 어미새 두 마리처럼 떠들어댔다. 트로이는 그들의 입을 막고 싶었지만 그보다 먼저 미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좀처럼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는 적이 없는 애였지만 몹시 귀찮았는지 입술이 가느다랗고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일행은 미샤가 콧수염 기른 남자로부터 레나를 데리고 나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곧장 연주자들 곁에 앉아 있던 거구의 여자에게 가서 춤을 청했다. 여자는 짙은 화장에 유행이 지난 얼룩덜룩하고 폭이 넓은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아무리 적어도 마흔 살은 넘어 보였다.

 

 

 친구들이 어이가 없어 입을 딱 벌리고 있는 동안 미샤는 그 여자와 시끄러운 재즈 연주에 맞춰 키로프 무대에서는 결코 볼 일이 없을 춤을 췄다. 알고 보니 여자는 연주자들의 매니저였고 몇 년 전까지 바와 클럽을 전전하며 춤을 췄던 경력이 있었다. 자신들의 매니저가 오랜만에 젊은 파트너를 만나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연주자들은 신이 나서 모든 박자를 무시하고 씽씽 달리는 즉흥 연주를 시작했다. 그건 더 이상 재즈가 아니라 소러시아 민요와 고파크와 소련 군가를 합쳐놓은 듯한 미친 소음으로 변했고 홀은 귀를 찢는 음악과 마루를 걷어차는 발소리와 박수와 휘파람과 고함 소리로 광란과 혼돈의 도가니에 빠졌다. 미샤는 90킬로는 너끈히 나갈 것 같은 거구의 여자를 발레리나 파트너를 다루듯 가볍게 빙글빙글 돌렸고 서너 차례는 공중으로 띄웠다. 감탄과 비명, 환호와 갈채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짙은 화장으로 얼굴 윤곽을 제대로 알아보기도 힘든 여자는 연신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고 소리를 지르며 미샤의 리드에 맞춰 미친 듯이 춤을 췄다.

 

 

 한참 춤이 격렬해졌을 때 여자의 구두 한 짝이 벗겨져 트로이가 앉아 있는 의자 앞까지 날아왔다. 갈랴가 얼굴이 창백해져서 트로이의 어깨를 두들겼다.

 

 

 “ 그만, 그만하라고 해. 빨리 데리고 나와. ”

 

 

 트로이는 갈랴가 레나에 대해 얘기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레나는 이미 테이블에 돌아와 있었고 타냐의 팔에 안긴 채 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 광란의 춤을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콧수염 기른 남자는 어디론가 쫓아버린 후였다.

 

 

 “ 왜? 잘 추고 있는데. ”

 

 “ 잘 추고 있다니, 어떻게 그런 소릴 해. 어디서 굴러먹었는지도 모르는 저런 늙은 여자랑... 레나 때문에 저러는 거잖아. 이제 됐으니까 빨리 끌고 나와. ”

 

 “ 레나 때문이라니, 쟤는 그냥 춤을 추는 거야. 가만히 놔둬. ”

 

 

 트로이는 미샤를 끌고 나올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취해 있었고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그는 광녀처럼 웃고 소리치며 홀에서 춤추고 있는 그 거구의 여인이 되고 싶었다. 저 여자는 자기 손목을 낚아채 회오리처럼 빙빙 돌리고 허공으로 밀어붙이는 저 낯선 상대가 누구인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맞고 있다는 걸 알기나 할까? 그런 춤의 상대가 될 수 있다면 알량한 연주단 매니저 따위, 공동아파트의 방 몇 칸 따위, 배급표 따윈 헌신짝처럼 내팽개쳐도 아깝지 않다는 걸 알고 있을까?

 

 

 알리사가 트로이의 뺨을 가볍게 찰싹 때리고 물을 한 잔 주었다.

 

 

 “ 너 완전히 취했어. 물 좀 마셔. ”

 

 

 트로이는 컵을 제대로 잡지 못해 바닥에 떨어뜨렸다. 유리컵이 소리를 내며 깨졌지만 이미 다른 테이블 손님들 몇몇도 취해서 술잔을 내던져 깨며 흥분해 노래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눈에 띄지도 않았다.

 

 

 거구의 여자가 차오르는 숨을 견디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미샤는 여자가 자빠지지 않도록 재빨리 한 팔로 그녀의 허리를 받치더니 공주님을 모시듯 피아노 옆 의자로 데려갔다. 연주자들이 색소폰으로 흐느끼는 듯한 신파 멜로디를 연주하는 동안 그는 여자를 의자에 앉히고 두툼한 손등에 열성적으로 키스를 했다. 휘파람과 박수와 고함 소리가 더 커졌다. 화장이 다 녹아내려 얼굴이 온통 시커멓고 새빨갛게 얼룩진 여자가 미샤를 껴안고 입술이 달아날 정도로 세게 키스를 퍼부었다. 트로이는 여자가 그 자리에서 미샤의 무릎에 올라앉아 치마를 걷어 올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정신이 혼미했다. 그가 알리사가 준 물을 마셨었나? 아니, 컵을 떨어뜨려 깨버렸지.

 

 

 여자가 미샤를 놔주었다. 그녀는 욕정으로 몸을 떨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황홀하게, 믿을 수 없을 만큼 행복에 겨워서. 트로이는 여자가 미샤를 다시 한 번 끌어당겨 안았을 때 귓가에 하염없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 착하기도 해라... 고마워. 정말 고마워. ”

 

 

 미샤가 녹초가 된 여자에게 정중한 인사를 하고 홀에서 걸어 나왔다. 테이블 쪽으로는 오지도 않고 곧장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레나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

 

 

 

 트로이는 그 날 어떻게 숙소로 돌아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아마 친구들이 그를 부축해 데려온 것 같았다. 그렇게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취했던 것이다.

 

 

 그는 너무 목이 말라서 새벽에 깨어났다. 트윈 침대 위에 코스챠와 료카가 신발도 벗지 않고 엎드려 자고 있었다. 카펫 위에는 담요로 몸을 둘둘 만 이고리가 누워 코를 골고 있었다. 자신은 소파 위에 누운 채 바닥에 다리를 반쯤 늘어뜨리고 있었다. 아마 그가 너무 커서 침대에 눕히기에는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미샤는 없었다.

 

 

 그는 물을 마시러 어두컴컴한 부엌으로 나갔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두통약이라도 한 알 삼키고 싶었지만 그러려면 갈랴를 깨워야 했다. 포기하고 테이블 위에 있는 주스 팩을 뜯어서 단숨에 마시고 나자 갈증과 두통이 조금 가시는 것 같았다. 화장실에 가려고 거실 쪽으로 나왔다가 그는 반쯤 열려 있는 안쪽 방문 사이로 울음 섞인 목소리가 새어나오는 것을 들었다. 갈랴와 료카의 방이었다. 혹시 임신 초기의 갈랴에게 어딘가 이상이 생긴 건 아닐까? 그러고 보니 그녀는 바에서도 안색이 좋지 않았었다. 걱정이 된 트로이는 문가로 다가갔다. 막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찰나 그는 료카가 자기들 방에서 자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료카는 갈랴와 함께 있지 않은 거지?

 

 

 그는 문 뒤에 멈춰 섰다. 갈랴가 아니었다. 울고 있는 건 레나였다. 작은 침실 한가운데, 카펫도 깔려 있지 않은 마루 위에 서서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커튼이 없는 방이었기 때문에 창문으로 달빛이 쏟아져 들어와 램프를 켜놓은 듯 환했다. 침대 곁 의자에 미샤가 앉아 있었다.

 

 

 그는 자신이 너무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갈랴는 아픈 것이 아니었다. 료카와 짜고 방을 내준 것이다. 레나와 미샤를 위해.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그는 빨리 몸을 돌려 방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발이 딱 붙어 버린 것처럼 꼼짝달싹도 할 수가 없었다. 어둠 속에 가려진 채 열린 문 너머로 멍하게 침실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레나는 하얀색의 짧은 원피스 잠옷을 입고 긴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린 채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이따금 밀려나오는 울음 때문에 어깨가 들썩거렸다. 하지만 트로이는 레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의 시선은 미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미샤는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머리는 엉망으로 뒤엉켜 검은색으로 물들인 월계관이라도 씌워놓은 것 같았다. 바에서 입고 있던 옷차림 그대로였다.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얼굴과 목은 시커멓게 번진 마스카라와 붉은 립스틱 자국으로 온통 얼룩져 있었다. 바에서 춤췄던 여자가 남겨놓은 흔적이었다. 그 얼굴을 닦지도 않고 어디를 쏘다니다 들어왔는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구겨진 얇은 셔츠 소매는 어깨 바로 아래까지 걷어 올리고 있었다.

 

 

 레나는 그를 나무라고 있었다. 화를 내다가 울다가 또 낮게 웃기도 했다. 트로이는 레나가 그렇게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었다. 그렇게 달빛 아래 하얀 잠옷을 입고 조그맣게 속삭이고 있으면 인어처럼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도. 그 침실 마루 위에서 달빛을 받으며 서 있는 작은 소녀는 너무나 매혹적이어서 빨간 머리와 에메랄드 눈동자의 지나이다 세도바조차도 아무런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얇은 잠옷 사이로 날씬한 몸매의 윤곽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미샤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레나에게 뭐라고 한두 마디 했지만 언제나처럼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였기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레나가 고개를 저으며 달려가 미샤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한 팔을 허리에 두르며 몸을 밀착시켰다. 다른 손을 들어 미샤의 지저분한 얼굴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어쩌면 화장품 얼룩을 닦아주려고 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미샤가 얼굴을 옆으로 돌리자 레나는 어깨를 세차게 튀기더니 반쯤 뛰어오르듯 발끝으로 서서 그의 턱을 감싸 쥐고 입술에 키스를 했다. 절망적이고 서툰 키스였다. 레나는 키스를 해 본 적이 별로 없는 애였다. 하지만 미인이었고 인어였다. 미샤는 레나를 떠밀지 않고 입맞춤을 받아주었다. 트로이는 그 애가 여자를 품에 안고 제대로 된 키스를 하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로미오가 아니었다. 무대 위의 순진해빠진 소년은 절대로 그런 키스를 할 수 없었다.

 

 

 입술을 뗀 후 미샤는 레나의 포옹을 풀지도 않고 그녀의 귓가에 조용히 뭐라고 속삭였다. 레나가 몸을 떨었다. 그녀는 팔을 풀고 미샤에게서 두 발짝 물러났다. 날카롭게 숨을 몰아쉬더니 발을 한번 굴렀다. 그리고 긴 머리채를 두 손으로 흐트러뜨리며 격하게 외쳤다.

 

 

 “ 나도, 나도 다른 애들 못지않게 해줄 수 있어! 나하고 사귀어 달라는 것도 아냐. 그래달라는 게 아니라구! ”

 

 

 레나가 숨을 쌕쌕거리면서 팔을 들어 올려 잠옷을 벗었다. 하지만 단추가 머리에 걸려 잘 벗겨지지 않았다. 흐느껴 울면서 레나는 머리에 걸린 잠옷 단추를 거칠게 잡아 뜯었고 술 취한 여자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옷을 벗어 내팽개쳤다. 달빛 때문에 작고 날씬한 레나가 은백색 조각상처럼 반짝거렸다. 트로이는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레나가 조그만 체구치고는 몸매가 좋다고 생각했다.

 

 

 레나는 다급한 나머지 부끄러움도 잊어버렸다. 그녀는 발레리나라도 된 양 두 팔을 앞으로 길게 뻗으며 미샤에게 다가가 목을 감고 매달렸다. 어깨와 가슴을 미샤의 셔츠 앞자락에 문지르며 귀 아래와 목덜미에 뜨겁게 입을 맞췄다. 트로이는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왜 몸을 움직일 수 없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지러웠고 온몸이 불덩어리처럼 타들어갔다.

 

 

 그때 미샤의 목소리가 들렸다.

 

 

 “ 이러지 마, 후회하게 될 거야. ”

 

 “ 아니야. 그렇지 않아. ”

 

 “ 크세니야. 그 여자 이름이야. 아까 홀에서 춤춘 여자. 같이 있었어. 내일도 같이 있을 거야. 그러니까 이러지 말자. ”

 

 

 레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갑작스럽게 또렷한 목소리로 물었다.

 

 

 “ 그 여자? 그 코끼리 같은 여자? 그 늙은 여자? 같이? 같이 있었다니? 그 여자랑 뭘 어쨌는데? ”

 

 “ 크세니야랑 잤어. 내일도 갈 거야, 그 여자가 원하면. ”

 

 

 레나가 미샤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두 손으로 가슴팍을 떠밀며 발로 걷어찼다.

 

 

 “ 나가! 꺼져버려! ”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찢어진 잠옷으로 몸을 가리며 비극 여배우처럼 울부짖었다.

 

 

 “ 그냥 싫다고 할 수도 있었잖아! 왜 그런 지저분한 말을 하는 거야? 넌 감정도 없어? 끔찍해! 끔찍하고 더러워! ”

 

 

 미샤는 잠시 아무 말 없이 레나를 내려다보았다. 그 얼굴에는 연민이나 미안함, 혹은 분노 따위의 감정이 전혀 떠올라 있지 않았다. 하지만 검은 마스카라와 붉은 립스틱으로 온통 얼룩져 있었으므로 설령 울고 있다 해도 보이지 않을 터였다. 그는 한숨조차 쉬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미안해. ”

 

 

 그리고는 침대 위로 올라가 창문을 열더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

 

 

재즈 밴드 매니저이자 옛 댄서 크세니야와 미샤의 이야기는 이 흑해 에피소드 후반부에 좀더 이어지는데 레나의 이야기와는 좀 별개라서 올리지 않았다.

 

..

 

 

(가엾은) 레나가 등장했던 이야기들은 아래 링크. 소설 속에서 아래 순서대로 전개된다.

 

http://tveye.tistory.com/4050 : 썰매를 타러 간 미샤와 트로이, 그리고 친구들

http://tveye.tistory.com/4947 미샤와 지나이다의 졸업 무대

http://tveye.tistory.com/4671 흑해로 가는 기차, 새로 온 인간, 새로 온 천사

 

 

 

..

 

 

무용수들 사진 몇장.

 

 

 

아르춈 옵차렌코

 

 

디아나 비슈뇨바

 

이반 바실리예프

 

 

아래 세장은 밴드 즉흥 연주에 맞춰 신나게 팔짝거리며 춤추는 미샤와 크세니야를 생각하며 올려봄. (하긴 크세니야는 많이 팔짝거리진 못했겠지만 ㅠㅠ)

 

 

파루흐 루지마토프.

사진은 nina alovert.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이게 위 에피소드에서 잠깐 언급된 고파크.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지 민속춤)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예브게니야 오브라초바. 돈키호테.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
Posted by liontamer
2016. 10. 18. 20:41

아끼고 있었죠, 평온과 위안을 위해 2016 petersburg2016. 10. 18. 20:41

 

지난 6월. 페테르부르크.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수도원.

저 당시 나는 무척 피폐해져 있었다.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비행기를 타고 페테르부르크로 날아갔다. 도망친 것이다. 아마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무의식적으로. 본능적으로.

 

며칠이 지났지만 여전히 제대로 먹지 못했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마음속은 황량하고 고통스러웠다.

 

이날 페테르부르크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 중 하나인 네프스키 수도원에 갔다. 그리고 이날 료샤가 출장에서 돌아왔고 레냐와 함께 나를 보러 왔다.

 

이날 수도원에서 종소리를 들었다. 사원 안으로 들어가 이콘을 보았고 초에 불을 켰다. 한가롭게 조는 고양이를 보았고 무덤들 사이를 걸었다. 꽃을 보았고 오래된 쇠종을 만졌다. 수도원 지하 카페에서 사과빵을 먹었다. 차를 마셨다.

 

그리고 먼발치에서 사제 두분을 보았다.

 

수도원 안에서는 카메라 촬영을 하는 것이 사실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래서 꼭 찍고 싶을때만 소리 안나는 앱으로 폰 몇장만 찍었다. 아마 나는 저때 폰으로도 사진을 찍지 않았어야 했을 것이다. 너무나도 고요하고 평온한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저 평온과 고요, 적막과 부드러운 공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살짝 찍었다. 두장.

 

이 사진 두장은 아껴놓고 있었다. 소중한 사진이다. 평온과 위안. 고요와 적막. 부드러움. 한없는 부드러움. 저날 나는 처음으로 다시 편하게 숨을 쉴수 있었다. 완전히는 아니었다. 하지만 훨씬 더 쉽고 훨씬 더 부드럽게.

 

 

고마워요,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수도원. 페테르부르크. 그리고 이름 모를 두분의 사제들. 햇살. 바람. 파란 하늘. 녹음. 사원. 그림자. 포석.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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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0. 15. 23:15

비둘기야 너는 아니? 2016 petersburg2016. 10. 15. 23:15

 

 

그리보예도프 운하.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피의 구세주 사원) 앞 운하 난간에 도도하게 혼자 내려앉아 있던 비둘기.

 

비둘기야, 넌 여기가 어딘지 아니? 여기는 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야. 관광객들이 전부 여기로 몰려들어 사진을 찍어.

 

 

비둘기 : 나랑 무슨 상관~ 몸치장이나 하련다~ 빵이나 좀 주지..

 

 

비둘기 : 아이 발 저려..

 

 

..

 

그건 그렇고 비둘기도 페테르부르크의 조그만 상징 중 하나다. 페테르부르크 그림엽서나 만화엽서에 종종 등장한다. 비둘기가 많긴 하지.. 근데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도 비둘기는 많다...

 

그래도 한두마리만 있으면 괜찮아... ㅠㅠ 특히 가만히 앉아 있거나 걸어다닐땐 괜찮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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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0. 11. 00:05

타브리체스키 공원 2016 petersburg2016. 10. 11. 00:05

 

전에 쓴적 있지만... 네프스키 수도원 다시 가려다 버스 잘못 타서 듣도보도 못한 동네에 내려서 들어가게 되었던 타브리체스키 공원. (길 잃었다고 료샤에게서 관광객이냐고 놀림받았음 ㅠㅠ 그럼 내가 관광객이지 주민이냐!)

 

공원 개장 시간 : 7시부터 23시까지.. 라고 씌어 있다.

 

 

목욕탕도 해변도 아닙니다... 북방 도시에서 가장 소중한 여름 햇볕을 즐기려고 다들 잔디 위에 누워 뒹굴뒹굴... 나는 유행성출혈열 ㅠㅠ 하며 걱정하지만...

료샤랑 레냐도 '당연하지~ 햇살은 즐겨야지~' 라고 했다. 나 혼자 열심히 선크림 바르고 긴소매 입고 모자 쓰거나 선글라스 쓰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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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8. 17. 22:44

보라색 풍선 동동동 2016 petersburg2016. 8. 17. 22:44



아마도 크류코프 운하였던 듯. 마린스키 근방. 숙소로 돌아가던 길에.


수면 위에 아른거리는 저 보라색이 보이시는지...



보라색 풍선이 동동 떠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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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8. 15. 23:45

요리의 예술 샌드위치라고요? 2016 petersburg2016. 8. 15. 23:45



여기가 보즈네셴스키 대로인지, 림스키 코르사코프 거리인지, 그것도 아니면 사도바야 거리였는지는 좀 헷갈리는데 아마 전자가 맞는 것 같다. 가물가물... 이날 워낙 많이 걸었고 버스 잘못 타서 수도원 가려다 타브리체스키 공원에도 갔고 나중엔 료샤랑 레냐랑 차 없는 네프스키 대로에서 노는 등 워낙 여기저기 다녀서... 근데 하여튼 이때 숙소에서 나와 쭉 걸어오다 찍은 거니까 아마 보즈네셴스키 대로일듯.


어느 카페 문에 붙어 있는 포스터 색감이랑 느낌이 좋아서 찍어놨다. 뭐라고 써있냐면요..



RB 카페

요리의 예술

샌드위치


 

오잉... 그럼 저 샌드위치가 요리의 예술인 건가? 요리의 예술의 결정체 샌드위치????



광고 문구나 이름에 잘 혹하는 나는 무려 요리의 예술이라는 문구를 달고 있는 저 샌드위치를 떠나기 전에 가서 꼭 먹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으나... 위에서 얘기한 것과 같이 저날 너무 여기저기 쏘다니고 길을 잃고 정신없었던 나머지 요리의 예술에 대해서는 잊고 결국은 저기 못 들러보고 돌아왔다. 근데 오늘 이 사진을 발견하니 퍼뜩 생각이 났다. 앗, 못가봤네 못먹어봤네 요리의 예술 샌드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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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9일.

오전엔 비가 많이 왔었고 추웠다. 이날 숙소를 옮겨야 했고 카페인과 약 때문에 갑자기 좀 가슴이 북받치듯 아파서 고생했었다(그 이후 빈속에 카페인 절대 섭취하지 않기로 함) 그리고 오후에는 마린스키 신관에서 라두 포클리타루의 3악장 심포니와 사샤 발츠의 봄의 제전을 보러 갔었다.


이 사진들은 공연 보고 운하 따라 숙소까지 걸어오며 찍은 것들. 이날 공연은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지만 산책하며 돌아오는 길은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코스라서 그럴지도. 마음의 위안을 얻는 곳이다.



맨 위 사진은 숙소 거의 근처까지 왔을때 찍은 것. 여기는 운하변이 아니라 발샤야 모르스카야 거리의 어린이 도서관 앞이다. 간판과 안뜰을 바라보고 있던 노부인의 뒷모습이 어쩐지 가슴에 남아 찍어두었다. 어쩌면 붉은 계통의 옷차림 때문일지도(내가 좀 빨간색을 좋아해서 ㅠㅠ)












마지막은 역시 새 두 마리로 :)


그러니까 비둘기라도 푸드득 날아오지 않고 이렇게 아장아장 걷고 있으면 괜찮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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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8. 3. 00:06

수도원 고양이와 꽃들 2016 petersburg2016. 8. 3. 00:06

 

 

마음의 평온을 위해.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수도원의 예쁜 고양이와 꽃들.. 지난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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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5일. 이날 수도원 가려다 버스 잘못 타서 타브리체스키 공원까지 갔던 날.

처음엔 숙소 쪽에서부터 카잔스카야 거리를 쭈욱 따라 계속 걸어서 수프 비노에 가서 점심을 먹었었다.

걸어가다 발견한 깃털.

 

 

이건 길 잃고 잘못 들어갔던 타브리체스키 공원.

 

일광욕하고 있는 저 꼬마 소년이 꼭 레냐 더 어릴 때랑 닮아서 뒷모습만 살짝 찍어봤다. 레냐도 옛날엔 이랬는데 점점 머리색이 짙어지고 있다. 료샤한테 물어보니 자기도 어릴땐 금발이었다고 한다!!! 그럼 레냐도 크면 갈색머리 되겠구나!!

 

 

숙소에서 카잔스카야 거리 따라 계속 걸어가며 찍은 사진 몇 장. 이날 아주 더웠다.

 

 

 

난 항상 선명한 색채, 쇄도하는 색채들을 좋아한다.

 

 

 

마지막은 어정어정 걸어가던 비둘기 한 마리.

그러니까, 비둘기 한 마리만 있을 땐 별로 박테리아 생각이 안 난다고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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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20. 23:37

붉은색, 파란색, 남자, 여자 2016 petersburg2016. 7. 20. 23:37

 

 

 

 

 

지난 6월. 페테르부르크. 블라지미르스키 대로와 루빈슈테인 거리 교차로 근방.

 

햇살이 굉장히 찬란하고 뜨거운 날이었다. 모든 색채가 타올랐다.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에 대해 기록하던 날. 사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것들의 확장이다. 스쳐가는 사람들, 그리고 나, 그리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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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5일.

수도원 가려다 버스 잘못 타서 듣도보도 못한 포춈킨 거리에서 내려 발견했던 타브리체스키 공원.

 

빛이 눈부셨다. 난 빛이 많은 사진을 좋아해서.. 거닐며 사진을 여러장 찍었다. 나중에 료샤가 나보고 관광객처럼 길이나 잃느냐고 툴툴대며 이쪽으로 데리러 왔고... 이날 네프스키 대로에는 차가 없어서 나는 대로에 드러누워보기도 했었다 :) 그리고 레냐랑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빛이 많은 사진은 나에게 위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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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니 사드(여름 정원) 후문에는 연못이 하나 있는데 여기엔 갈매기 비둘기 까마귀 오리들이 날아올 뿐만 아니라 백조 한쌍이 유유히 떠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날 엽님과 함께 레트니 사드에 갔는데.. 백조를 보여드리려 했으나..

 

저놈의 백조들이 전혀 우아하지 않게 기다란 모가지를 꼬며 저러고 있었음 ㅠㅠ 우아하고 유유히 수면을 유영하는 백조따윈 간곳 없고... 백조의 호수는 어데로...

 

 

앗, 이제 좀 헤엄쳐보려나??

 

 

하지만 다시 모가지를 쭉 빼고..

 

백조 이러기야!

 

 

그래, 난 백조보다 갈매기 오리가 더 좋앗~

갈매기가 훨씬 우아하다!!!

 

 

심지어 박테리아 온상 비둘기가 더 낫네!!! (사진발도 잘 받고 ㅋㅋ)

백조! 너희는 우리를 실망시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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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12. 21:20

창문 안쪽에서 2016 petersburg2016. 7. 12. 21:20

 

 

이건 6월 19일. 두번째 숙소를 체크아웃하고 세번째 숙소로 옮기기 전 시간이 남아서... 비오고 추운 날이었다. 아프고 추워서 헤매다 근처 어느 카페에 들어가 비를 피하고 달콤한 뭔가를 먹어서 가슴 통증을 달랬던 날이다.

 

창 너머로 사람들이 비를 맞으며 지나갔다. 비가 많이 왔다.

 

 

 

 

 

 

이건 6월 18일. 두번째 숙소에는 하루만 머물렀었다.

근처 어느 가게 안에서 바라본 창밖 풍경. 횡단보도 건너 공연매표소가 보인다.

 

모든 창문은 각각의 액자이다.

 

 

이건 다시 6월 19일. 세번째 숙소에 들어와서...

 

..

 

한국에 돌아오니 창밖을 볼 일이 그리 많지 않다. 일단 너무 더워서 커튼을 젖혀 놓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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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12. 00:05

아주 많은 빛 2016 petersburg2016. 7. 12. 00:05

 

 

지난 6월 24일.

세번째 숙소로 옮긴 날. 저녁에는 마린스키에서 슈클랴로프의 지젤을 본 날.

빛이 아주 찬란했고 뜨거웠던 날.

 

내 안에도 빛이 아주 많이 들어와서 흘러넘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라 사진들 몇 장 올려봄.

 

 

 

 

새들을 많이 봤던 날.

 

 

 

 

 

빛을 받으며 운하를 따라 걸었다. 온몸에 열기가 차올랐다. 그냥 뜨거워지는 열기였다. 땀이 나는 열기가 아니라.

 

 

 

 

여기는 전에 포스팅했던 '그' 빨간 다리 옆의 피자헛. 그 얘긴 여기 : http://tveye.tistory.com/3958

 

 

 

 

 

나는 언제나 보트나 배 위의 남자들에게 좀 끌리는 편이다. 이거 페티쉬인가, 흰 가운 입은 과학자에게 끌리는 것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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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6. 23:05

버리고 간 병과 컵들 2016 petersburg2016. 7. 6. 23:05

 

 

아마 사람마다 사진 찍을 때 취향이 있을텐데 나도 좋아하는 소재가 몇개 있다. 이 블로그에 여태 올린 포스팅을 보신 분들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난 창문과 문양, 간판, 메뉴 찍는 걸 좋아하고 이따금 새를 찍는 것도 좋아한다. 그리고... 버려진 컵이나 술병 따위를 찍는 것도 좋아한다. 마지막 취향은 좀 웃겨서 료샤에게 항상 '너 이상해!'란 구박을 받았다.

 

이번에 페테르부르크에서 머물며 찍었던 버려진 컵과 병들 사진 몇 장.

 

이건 네바 강변.

 

 

 

 

이건 아마 루빈슈테인 거리나 블라지미르 대로 쪽이었던 듯.

 

 

이것부터 아래는 그리보예도프와 모이카 운하변...

 

 

 

 

 

 

 

 

 

마지막은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 바라보는 그리보예도프 운하 돌난간의 커피컵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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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2. 22:58

하늘의 세 가지 푸른 빛 2016 petersburg2016. 7. 2. 22:58

 

 

써놓고 나니 뭔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생각나는 제목이네...

 

루빈슈테인 거리에서 찍은 하늘.

 

 

 

여기도 루빈슈테인 거리. 그러나 좀 다른 건물, 다른 시간대.

 

 

이건 밤중. 11시 넘어 해 진 후. 이삭성당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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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부르크에 머무는 마지막 날.

 

어제부터 비가 오더니 오전에도 내내 그치지 않고 내렸다. 비가 오니 행동반경에 제약이 온다. 1시쯤 숙소를 나섰다. 비가 생각보다 많이 왔다. 남은 달러를 다 바꿔서 마지막 탕진을 하기로 했다. 네프스키 대로에 있는 로모노소프 가게에 가서 찻잔을 두개 더 샀다. 망했음.

 

그 로모노소프 가게 위에 블린 가게인 쩨레목이 있었기 때문에 아점을 거기서 스메타나 소스와 닭가슴살 든 블린인 '알료샤 뽀뽀비치'와 블랙베리 모르스로 해결했다.

 

 

 

 

비가 계속 왔다. 버스를 타고 이삭 성당 앞에서 내렸고 아스토리야 로툰다에서 차를 한잔 마셨다. 어차피 이제 돌아가야 하니 이번 여행에서 제일 좋아했던 카페 중 하나에서 차 마시고 가려고. 여기는 bravebird님과 왔었고 나 혼자서도 두번 왔었다. 이 호텔에서 못 자니 차라도 실컷 마시고 가자 ㅠㅠ

 

여기 메도빅이 매우 맛있었다! 새로운 발견! 고스찌만큼 맛있다!!! (하지만 비싸 ㅠㅠ)

 

..

 

차 마시며 앉아 있다보니 늦은 오후가 되었고 비가 그쳤다. 여전히 흐리고 쌀쌀했다. 일단 버스를 타고 마린스키 앞에서 내린 후 숙소까지 걸어갔다. 찻잔을 내려놓고 옷을 갈아입은 후 다시 나갔다. 그래도 비가 안 오니 트로이츠키 사원에 가려고.

 

 

 

트로이츠키 사원은 내가 머무는 림스키 코르사코프 거리에서 좀더 올라가 보즈네셴스키 대로를 따라 쭉 내려가다가 판탄카 운하를 건너 이즈마일로프 대로로 내려가야 나온다. 원래 이름은 이즈마일로프 사원이지만 성삼위일체를 모셨다고 해서 트로이츠키 사원이라고도 불린다. 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아름답고 특이한 사원 중 하나로, 내부보다는 외부의 금별 그려진 파란색 세개의 돔이 워낙 유명하다. 2006년인가 화재가 나서 재건축을 해서 그런지 금별이 옛날보다 훨씬 번쩍번쩍거린다.

 

이 사원에서 도스토예프스키가 두번째 부인인 안나 그리고리예브나와 결혼했다.

 

몇년 전 쓴 본편 우주에 속한 소설에서 나는 심리적 화자에게 트로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그의 본명은 안드레이 트로이츠키이다. 바로 이 성당에서 따온 성이었다. 안드레이라는 이름도 어딘가에서 따왔지만 그건 나중에... 그래서 미샤는 항상 트로이를 '사원 같은 사람', '교회 종탑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바깥에서 구경만 했지 실제로 들어가본 건 이번이 놀랍게도 처음이었다. 내부는 생각보다 휑하고 넓었다. 루블료프 풍의 삼위일체 이콘들이 가장 많았다. 나는 성 게오르기 이콘 앞으로 갔다. 가족과 나를 위해 초를 켜고 기도를 했다. 나는 정교 신자도 아니고 제대로 된 신앙을 가져본 적도 이미 오래전인 것 같지만, 나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덕목은 어쩌면 용기일지도 모르기에.

 

..

 

사원에서 나왔는데 술에 취한 러시아 아저씨 한명이 와서 정교 신자냐 부터 시작해 사원의 역사와 건축가에 대해 줄줄이 설명을 했다. 아마 날 데리고 다니며 열심히 가르쳐주고 싶은 모양이었는데 난 약속도 있었고 또 좀 무섭기도 해서 '고마운데 난 약속이 있어요' 라고 한 열번은 말한 후 간신히 도망쳤다. 아저씨가 악인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불편하긴 했어요 ㅠㅠ

 

..

 

마린스키 구관과 신관 사이 크류코바 운하변에 the repa라는 레스토랑이 새로 문을 열었다. 예전엔 '자 스쩨노이'란 이름(백스테이지란 뜻)의 유명한 식당이 있었는데 극장 사람들이 드나들던 곳이었다. 이번에 긴자프로젝트 체인에서 새로 인수해 유명 디자이너에게 디자인을 맡겨서 새로 오픈했다고 한다. 가본 적이 없었고 트위터에서만 보며 궁금해했는데 료샤가 떠나기 전날이니 같이 가서 저녁먹자고 예약을 해주었다.

 

레스토랑은 근사하고 아름다웠다. 극장 느낌이 물씬 났다. 연지 얼마 안돼서 손님은 거의 없었고 막판엔 나와 료샤만 있었다. 가게 다 우리 거라고 농담하며 좋아했다.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고 이후 료샤가 숙소까지 태워다 주었다. 오늘은 짐을 싸야 해서 료샤에게 차를 못 우려줌.

 

내일 오후 2시에 공항으로 떠난다. 가기 전에 료샤랑 레냐랑 가능하면 꼭 보기로 했다. 근데 늦잠을 안 자야 할텐데...

 

..

 

돌아와서 괴로워하며 짐을 쌌다. 찻잔이랑 차가 왜 이렇게 많지 ㅠㅠ 엉엉... 뽁뽁이를 이번에 안 가져와서 면세에서 챙긴 뽁뽁이가 너무 적다... 종이랑 옷으로 잘 싸서 열심히 포장은 했다만.. 깨지면 안되는데... 내일 가방 패킹을 부탁해야겠다. 짐싸는 거 너무 힘들다.

 

..

 

나는 3주 동안 이곳에 머물렀다.

글은 하나도 쓰지 않았다. 많이 누워 있었다. 잤고 숨을 쉬었고 먹었다. 걸었고 공연을 봤다. 슈클랴로프 나오는 공연도 운좋게 4편이나 봤다. 좋은 사람 몇명을 만났다. 고민은 해결되지 않았다. 아름다운 도시, 내가 사랑하는 도시에 와서 조금은 나아졌지만 그게 일시적인 치유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좀 슬프다.

몇달 더 남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내일 돌아간다.

 

나에게 용기와 평온과 힘이 생기기를!

 

내일은 좀 일찍 일어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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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불편한 자리에 앉아 공연 보면서 너무 무리했는지 온몸이 아프고 쑤셨다. 정오 넘어서까지 멍하게 누워 있었다. 그런데 바깥 날씨가 좋았고 일기예보를 보니 내일부터 비가 온다고 해서 오늘 바리쉬니코프 전시랑 수도원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억지로 일어났다.

 

..

 

 

 

 

일어나긴 했는데 이래저래 나오니 두시 반이 넘어 있었다. 날씨가 좋다 못해 엄청 덥고 뜨거웠다. 땀이 날 정도였다. 아무것도 안 먹었기 때문에 근처 봐두었던 몇개 베이커리 카페에 들렀으나 다들 사람이 엄청 많았다. 인기 많은 곳들인가보다. 그래서 좀 걸어가다가 카잔스카야 거리로 이어지길래 수프 비노에 가기로 했다.

 

지난번에 갔을 땐 알렉세이가 없었는데 오늘은 있었다. 혼자 가게를 보고 있었다. 처음엔 아는 체는 안하고 그냥 인사를 한 후 저번에 먹었던 닭고기 수프와 루꼴라 해산물 파스타, 생강 레모네이드를 주문했다.

 

 

 

다 먹은 후 조용한 목소리가 매력적인 알렉세이에게 살며시 물었다.

 

나 : 제 실수가 아니라면, 알렉세이 맞죠?

알렉세이 : 맞아요, 알렉세이.

나 : 혹시 저 기억하세요? 작년 여름에 왔었는데.

알렉세이 : 네. 사실 들어왔을때 알았어요! 그때 와서 같이 얘기하고 블로그로 알게 된 친구 얘기하셨죠.

나 : 맞아요. 그 친구도 기억하시나요?

알렉세이 : 네, 얼마 전에 왔었어요! 기억해요!

나 : ㅎㅎ 그 친구랑 저랑 여기서 2주 전에 드디어 만났답니다.

알렉세이 : 정말요? 인터넷으로만 안다고 하셨잖아요. 만난 적 없다고.

나 : 네! 그래서 우리 만나면 꼭 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그게 이루어졌어요. 같이 여기 오고 싶었는데 시간이 안 맞아서 그 친구는 먼저 따로 오고 저도 얼마전에 왔는데 그땐 당신이 없었어요.

알렉세이 : 아, 그랬구나... 저 없을 때 오셨었군요!

나 : 네, 그때 비와서 춥고 아팠는데 저 닭고기 수프 먹고 엄마 생각이 났고 몸이 따뜻해져서 좋았어요.

알렉세이 : 그 말 들으니까 저도 기분이 좋아요.

나 : 친구는 한번밖에 못왔다고 굉장히 아쉬워했어요. 얘기 많이 나눴냐고 물어보니 별로 못했다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또다시 인사를 하며 얘기를 하기로 했어요 :)

알렉세이 : 너무나 기뻐요. 여기를 기억해준다는 것, 그리고 여기를 다시 찾아주신다는 게요. 친구분도 잘 기억해요.

나 : 그 친구의 닉네임은 독수리고 저는 토끼에요 ㅋㅋ

알렉세이 : 그래서 독수리와 토끼가 만나게 된 것이군요!

나 : 네, 우리는 이삭 성당 앞에서 만났답니다.

알렉세이 : 너무 근사한 얘기네요! 근데 당신은 어떻게 노어를 그렇게 잘 하세요?

나 : 아니에요, 많이 잊어버렸어요 ㅠㅠ

알렉세이 : 아니에요, 노어를 정말 잘해요. 어디서 배우셨어요?

(외국인이라 그렇게 생각한 것임. 진짜 잘해서 그런건 아닐듯 ㅋㅋ)

나 : 전 노어랑 노문학 전공했고 옛날에 여기서 조금 살았어요. 요즘은 1년에 한번쯤 꼭 와요. 페테르부르크가 제 2의 고향 같아요.

알렉세이 : 왜 제2의 고향이에요?

나 : 음, 여기가 너무 아름다웠고... 러시아 문학과 극장이 좋았고... 그냥 도시랑 사랑에 빠졌어요. 부러워요,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에 살고 계시는 것이.

알렉세이 : 우리 도시를 좋아해줘서 저도 기뻐요. 그리고 저를 기억해주고 여기를 기억해줘서도 기뻐요!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신다니 그래서 아까 러시아어로 책을 읽고 있었군요

나 : 네, 도블라토프 좋아해요.

알렉세이 : 우와, 좋은 작가죠.

나 :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도요. 기억하세요? 작년에 왔을때 제 친구가 당신이 알렉세이 까라마조프 연상시킨다고 했던 거

알렉세이 : (웃음) 네!

나 : 친구 얘기가 다시 나와서 말인데, 친구랑 여기서 다시 보고팠는데 시간이 안돼서 먼저 돌아갔어요. 저도 며칠 후 돌아가거든요. 그 친구가 꼭 안부인사를 전해달라고 했어요.

알렉세이 : 제 안부도 꼭 전해주세요!

나 : 그리고, 작년처럼 이번에도 저랑 같이 사진 한장만 찍어주세요 :) 친구에게 보내주려고요.

알렉세이 : 그럼요~ 좋아요.

 

그래서 우리는 내 핸드폰으로 좀 웃긴 셀카를 찍었다. 자세가 엉거주춤해서 내 얼굴이 좀 웃기게 나왔다만... 하여튼 bravebird님~ 문자로 사진 보내드렸어요 :)

그때 다른 손님이 왔다, 그래서 나는 알렉세이에게 '저 또 올게요~' 라고 인사했고 알렉세이도 '다시 오시기로 한 거예요~ 또 봐요!' 하고 인사를 나눴다.

 

이곳과 조용한 목소리의 알렉세이를 알게 해주신 bravebird님 고마워요. 다시 얘길 나눈 알렉세이는 작년보다 몇배로 더 좋았어요 ㅎㅎ

 

..

 

수프 비노에서 나와 카잔 성당 앞으로 간 후 버스를 타고 판탄카 근처 시티은행에 가서 다시 돈을 찾았다. 생각보다 돈을 많이 쓴거 같다. 근데 어차피 이번에 온 것 자체가 유리지갑 가루이므로... ㅠㅠ

 

전시 보러 갈 시간은 모자랄 것 같아서 그냥 수도원에 가기로 했다. 료샤에게 연락이 와서 수도원에서 보자고 했다. 그리고는 아무 생각없이 22번 버스를 탔는데... 아뿔싸... 22번은 트롤리버스만 수도원에 가고 나머지는 다른 버스가 가는데 생각없이 버스를 탄 것이다. 보통땐 버스가 오면 무조건 노선도를 잘 읽어보고 타는데 오늘은 좀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점점 버스는 이상한 곳으로 가고... 돌아서 가나 싶었지만 체르니셰프스카야 지하철역을 지나고 또 한번도 안와본 거리 이름이 줄줄이 나오기 시작하자 그때 깨달았다. 완전 잘못 탔네... 내려서 반대방향 차를 타고 네프스키 대로로 도로 가야 수도원 가는 버스를 타려나보다...

 

그래서 포춈킨스카야 거리(전함 포템킨 그 이름이다)에서 내렸더니 타브리체스키 공원이 있었다.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마침 공원이 있어서 거기 잠깐 들어갔다. 영국식 정원인데 토요일이라 수많은 가족들이 나와서 잔디밭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공원을 좀 거닐었는데 덥고 목마르고 엄청나게 아이스크림이 먹고팠다. (원래 공원에 오면 러시아 아이스크림이 먹고프다) 다시 네프스키 대로로 나가 수도원으로 갈 생각을 하니 갑자기 너무 힘들어서 료샤에게 연락을 했다.

 

나 : 친구야, 버스를 잘못 타서 듣도보도 못한 곳에 왔어... 무슨 포춈킨스카야 거리에서 내려서 무슨 타브리체스키 공원에 있어.

료샤 : 아이고 이 멍충아! 웬 포춈킨스카야 거리! 수도원이랑 완전 다른 쪽이잖앗!

나 : 잉 ㅜㅜ 나는 외국인이잖아 ㅠㅠ

료샤 : 바부팅이. 거기 울집에서 가까워. 레냐랑 그리로 갈게.

 

료샤는 스몰니 사원 근방에 살고 있다. 대충 지리를 보니 정말 스몰니랑 가까운 것 같긴 했다. 그래서 공원에 잠시 앉아 햇살 쬐며(좀 땀흘리며 ㅠㅠ) 친구를 기다렸다. 가만히 앉아 있자니 내가 먹을 거라도 잘 주게 생겼는지 비둘기 몇마리가 어정거리며 다가왔다. 먹을 거 없어 ㅠㅠ

 

 

..

 

료샤가 잠시 후 차를 몰고 왔다. 레냐가 막 뛰어왔다. 햇살 뜨겁다고 야구모자에 앙증맞은 선글라스까지 껴서 진짜 귀여웠다. 료샤도 모스크바 출장 다녀오느라 며칠만에 보는 거였다. 레냐가 역시나 찰싹 안기며 좋아했다.

 

레냐 : 쥬쥬우~~ 하얀 옷 입었어, 아이 좋아~

나 : 엥, 내가 하얀 옷 입는 게 좋니?

레냐 : 쥬쥬 하얀 옷 입은 거 첨 봤어. 아이 좋아 아이 예뻐~

료샤 : 거봐! 맨날 해골 티셔츠 따위 입지 말고 꽃무늬랑 그런 블라우스랑 뭔가 파진 옷을 입으라 했잖아!

나 : -_- 마지막 단어는 못 들은 것으로... (레냐의 귀를 막아라 ㅋㅋ)

(오늘 그 잔무늬가 있는 흰 블라우스를 입고 나왔었다. 근데 어깨가 헐렁해져서 안에 얇은 캐미솔을 받쳐 입었다만 좀 패여 있긴 했다. 여기서나 입지.. 하긴 돌아가면 도로 살쪄서 블라우스가 헐렁하지 않을지도 ㅋㅋ)

료샤 : 얼굴도 좀 나아졌네. 역시 너는 뻬쩨르가 몸에 맞아. 그냥 여기 계속 있지...

나 : 나도 그러고 싶네 ㅠㅠ

료샤 : 수도원 갈 거야?

나 : 아니, 나 너무 피곤해 친구야...

료샤 : 그럼 모이카 쪽에 맛있는 식당 있는데 거기 밥먹으러 가자.

나 : 그래그래~

 

..

 

 

그래서 나는 료샤 차를 타고 편안하게... 네프스키 대로로 나갔는데... (료샤가 얘기한 모이카 운하 쪽 식당으로 가기 위해서는 네프스키 대로를 통과해야 함) 편안해지려다가...

 

료샤 : 으잉? 이게 뭐야!

레냐 : 아빠! 도로에 사람들이 걸어다녀!!!

 

네프스키 중간까지 왔을 때였다. 그러니까 딱 가스찌니 드보르와 유럽호텔 부근이었는데 거기서부터 차량 통제를 하고 있었다. 알고보니 오늘이 '알릐예 빠루사'(진홍색 돛배 - 유명한 러시아 낭만소설 제목인데 여기서 연루되어 매년 진홍색 돛을 단 스웨덴 범선이 네바 강에 들어오고 그날은 여름 축제날이다) 축제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졸지에 가스찌니 드보르부터 네프스키 대로는 차 없는 거리가 되었고 사람들이 너도나도 대로로 쏟아져나와 걷고 있었다.

 

 

 

료샤가 막 짜증을 쏟아내려는데 나랑 레냐는 흥분해서 '우와! 네프스키에 차가 없어! 우와! 우리도 나가자!' 하고 뛰쳐나갈 기세였다. 료샤는 한숨을 푹푹 쉬었다.

 

료샤 : 어휴! 이게 뭐야!

나 : 료슈카!!! 나 네프스키에 사람 없는 거 첨봐!!!!

료샤 : 뭐가 그렇게 신기해! 너 옛날에 승전기념일 때 네프스키에서 깔려죽을 뻔 했다며!

나 : 아 맞다. 옛날옛날에 그런 적 있다. 그때도 차량 통제했지. 그치만 그땐 인파 때문에 무서웠는걸. 이거봐, 사람들이 너무 편하게 걸어다녀. 친구여, 차 어디 세워놓고 우리도 잠깐 도로로 나가면 안되니?

 

료샤는 뭐라뭐라 투덜댔지만 하여튼 차를 카잔 성당 뒤쪽 어딘가로 끌고 가서 댔다. 경찰 아저씨와 또 한참 뭐라뭐라 했다. 골치아픈 건 차 주인에게 맡겨두고 나는 레냐랑 뛰쳐나갔다.

 

레냐 : 쥬쥬~ 우리 아이스크림 먹어?

나 : 응, 아이스크림 먹어!

레냐 : 아이 좋아~

나 : 오늘 안 먹었어?

레냐 : 응, 아까 사달랬는데 아빠가 쥬쥬 만나면 분명히 아이스크림 먹을 거니까 그때 먹어야 한댔어.

나 : 너네 아빠가 참 나를 잘 아는구나 ㅠㅠ 가자, 아이스크림 사줄게~

 

나는 레냐 손을 잡고 아이스크림 가판대로 갔다. 레냐는 딸기가 든 마그낫 아이스크림(외제)이 맛있다며 그걸 골랐고 나는 '에스키모 레닌그라드스꼬예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료샤는 덥다면서 콜라를 골랐다.

 

레냐 : 쥬쥬는 신기해.

나 : 왜?

레냐 : 러시아 사람 아닌데 러시아 아이스크림 좋아해. 에스키모 먹어. 울 엄마아빠같아. 울 엄마아빠도 에스키모 좋아해.

(에스키모는 소련 때부터 내려오는 전통적 러시아 아이스크림임 ㅋ)

나 : 난 러시아 마로제노예(아이스크림)가 제일 좋아. 레냐가 좋아하는 마그낫이랑 하겐다즈보다 에스키모랑 다샤가 더 좋아.

레냐 : 정말? 하겐다즈보다? 진짜?

나 : 응. 제일 맛있어, 에스키모랑 다샤. 에스키모는 다 맛있어. 콘이랑 하드랑 이 세모난 레닌그라드스꼬예랑.

레냐 : 쥬쥬 옛날 사람 같아.

료샤 : 쥬쥬 옛날 사람 맞어! 아빠 또래야!

레냐 : 아빠는 아저씨고 쥬쥬는 아가씨인데! 내 약혼녀인데!!

료샤 : 쥬쥬가 나보다 두살이나 나이 많...

(내가 잽싸게 그의 입을 틀어막음 -_- 이 자식이... 사랑엔 나이도 국경도 없다고 누누이 말하지 않았느냐!)

 

 

이것이 그 에스키모 레닌그라드스꼬예. 은박지로 싸여 있으니 진짜 촌스러워 보인다 ㅋㅋ 하지만 맛있다. 너무 달지 않고 우유맛도 많이 나고.

 

 

우리는 차 없는 네프스키 대로로 나가서 햇살을 쬐며 도로를 거닐고 사진을 좀 찍었다. 나는 뜨거운 도로 위에 앉아보았다. 잠깐 눕기까지 했다. 료샤가 혀를 찼다.

 

료샤 : 어휴 너 뭐해... 왜 누워 ㅠㅠ

나 : 네프스키에 차가 없으니 좋아서... 내가 언제 이렇게 해보겠니~

료샤 : 레냐가 따라하잖아! 레냐야 눕지 마! 옷 버려!

레냐 : 쥬쥬는 하얀 옷인데도 누웠는데 ㅠㅠ

료샤 : 쥬쥬는 어른이잖아!

레냐 : 어린이 싫어, 어른 할래 엉엉...

나 : 레냐야 내 무릎에 앉아.

 

그래서 나는 네프스키 대로에 가방을 베고 누웠고 무릎에 레냐를 앉힌 채 파란 하늘과 눈부신 태양, 하늘 위로 깔려 있는 트롤리버스와 트램 전선들, 솟아오른 건물들을 잠시 바라보았다. 바닥에서 열기가 올라왔지만 누우니까 신기하게 좀 시원했다. 무릎에 앉아 있는 레냐는 따스했다. 그리고 옆에 철퍽 주저앉아 콜라를 벌컥벌컥 마시며 촌스럽니 어쩌니 하고 있는 료샤가 웃겼다. 친구야, 명품 선글라스 끼고 명품 재킷 입고 바닥에 퍼질러 앉아서 콜라 마시며 사레들리는 네가 더 웃기거든!!

 

..

 

잠시 후 우리는 일어났고 카잔 성당 분수 앞 벤치로 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벤치에 앉아 바람을 쐬며 분수를 구경했다. 레냐가 물었다.

 

레냐 : 쥬쥬, 왜 여기가 제일 좋아?

나 : 몰라. 옛날에 처음 왔을때부터 여기가 좋았어. 그래서 내가 한국에 돌아간 후에 너무너무 뻬쩨르가 그리워서 소설을 하나 썼는데 배경이 바로 이 벤치였단다.

레냐 : 우와, 정말?

나 : 응. 그리고 있잖아, 주인공 말고 주인공 친구가 있는데.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사람이거든. 그 남자 이름이 레냐였단다 :)

레냐 : 우와아! 나야? 내 이름 붙인 거야?

나 : 아니, 그때는 너네 아빠도 알기 전이었고 레냐는 태어나기 전이었어. 근데 레냐라는 이름이 좋아서 붙였어.

레냐 : (으쓱으쓱) 히히히... 레냐는 착해? 레냐는 뭐하는 사람이야?

나 : 레냐는 마린스키 극장 무용수였단다.

레냐 : 슈클랴로프처럼!

나 : 슈클랴로프처럼 ㅋㅋ

레냐 : 우와아... 그러면 주인공은? 주인공 이름은 뭐였어?

나 : 미샤. 그 사람도 마린스키 무용수였단다.

레냐 : 내 친구도 미샤 있어, 세명이나 있어.

나 : 응 그래그래. (젤 흔한 이름이니 ㅜㅜ)

레냐 : 그러면 그건 무슨 이야기야? 레냐랑 미샤가 여기서 아이스크림 먹어? 우리처럼?

나 : 음, 옛날옛날인데, 1970년대였는데, 지금처럼 여름이었어. 레냐는 우리처럼 길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었어.

레냐 : 에스키모?

나 : 아마 그랬겠지? 옛날이니까. 그래서 레냐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여기로 왔는데 이 벤치에 친구인 미샤가 앉아서 책을 보고 있었단다.

료샤 : 너처럼! 너 공원에 앉아 책보는 거 좋아하잖아.

나 : (엥, 듣고 있었던 거니?) 응, 나처럼. 미샤는 나처럼 이 자리를 좋아했단다. 그래서 분수 앞에서 책을 읽고 있었어.

레냐 : 레냐가 미샤한테도 아이스크림 나눠줬어? 친구는 나눠먹어야 되는데.

나 : 어.... 내가 그 생각은 못해서 안 썼는데... 다음에는 꼭 그렇게 쓸게. 근데 미샤는 아이스크림을 잘 안먹었어. 케익도.

레냐 : 왜애? 그건 쥬쥬랑 틀리네?

나 : 응, 미샤는 무용수라서 단 걸 안 먹었단다.

료샤 : 쳇. 나 그놈 누군지 알아. 그 배나무 거리에 사는 놈! 극장까지 걸어가는 놈, 차도 없고... 축구도 안 한다는 그 불쌍한 녀석.

나 : 어머 너 그거 기억하는구나! (예전에 거리 이름 짓는다고 료샤에게 지금 쓰는 가브릴로프 본편 얘길 잠깐 했었음. 그 얘기들은 맨 아래 링크 추가)

료샤 : 당연하지! 배나무 거리에 살고 축구도 안 하는데 얼마나 불쌍하냐! 기억하지!

레냐 : 아빠, 자꾸 끼어들지 마! 그래서 미샤랑 레냐는 뭐했어?

나 : 미샤는 그때 어딜 가야 했는데 가기가 싫었어. 그래서 안 가고 여기 앉아서 책을 보고 있었는데 레냐가 걱정이 돼서 '친구야, 거기 가보렴' 그랬단다.

레냐 : 레냐는 착해. 미샤는 나쁘다. 말 안들으면 나쁘댔는데.

나 : 미샤는 나쁜게 아니고 옳지 않은 일을 시키는 걸 좋아하지 않았을 뿐이야.

레냐 : 옳지 않은 일이 뭐였는데?

나 : 미샤는 극장에서 관객들을 위해 춤을 추는 무용수인데 높은 사람들이 불러서 자기네 집에 와서 춤을 추라고 했거든.

레냐 : 그건 나쁘다!

료샤 : 뭐가 나빠, 요즘도 다 그런데. 그게 인생인데.

나 : (애기 앞에서 참 좋은 얘기 하는구만 -_-)

레냐 : 아빠, 조용히 해! 그래서 미샤는 안가?

나 : 응, 안가고 레냐랑 미샤는 궁전광장으로 갔단다.

레냐 : 그래서?

나 : 미샤는 높은 사람 집에 가서 춤추는 대신 궁전광장의 알렉산드르 원주 아래에서 이렇게 지나가는 사람들 앞에서 멋있는 춤을 췄단다.

레냐 : 이야!! 나는 미샤가 좋아!

료샤 : 분명히 kgb가 잡아갔을거야 -_-

나 : (그건 그렇긴 하지만... 애기 앞에서 제발 ㅠㅠ)

레냐 : 그래서?

나 : 춤을 춘 다음에 미샤랑 레냐는 사도바야 거리로 걸어가서 블린을 먹었단다. 끝!

레냐 : 우와, 너무너무 좋은 이야기야! 아빠, 우리도 블린 먹어!!!

 

료샤는 모이카 운하 쪽의 근사한 레스토랑 어쩌고 하며 투덜거렸지만 레냐도 그렇고 나도 갑자기 블린이 먹고팠다. 그리고 료샤도 갑자기 '너네 때매 나도 블린 먹고 싶어지잖아!' 하고 이상해했다.

 

그래서 우리는 료샤의 고급 차는 그대로 세워놓고 근처의 체인점에 가서 블린을 왕창 시켜먹고 행복해했다 :)

 

 

.. 아이스크림 먹던 레냐와 저 벤치에 앉아 책 읽던 미샤의 이야기는 전에 writing 폴더에 올린 적 있다. illuminated wall이란 제목이다. 그 이야기는 여기서 읽을 수 있다 : http://tveye.tistory.com/3385

.. 카잔 성당 분수 앞 벤치와 미샤에 대한 얘기 추가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4059

 

.... * 배나무 거리와 미샤에 대해 료샤가 한 말들

- 그가 배나무 거리와 미샤에 대해 알게 된 경위 : http://tveye.tistory.com/3187,

- 그가 배나무 거리의 미샤와 축구에 대해 투덜댄 경위 : http://tveye.tistory.com/3249

- 그가 배나무 거리의 미샤에게 축구 대신 다른 것을 요구한 경위 : http://tveye.tistory.com/3386

 

..

 

내일 날씨가 좋으면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에 가기로 했는데... 제발 비가 안 오게 해주세요 ㅠㅠ

 

:
Posted by liontamer

 

(사진은 모이카 운하)

 

 

늦잠 자고 싶었지만 9시 알람을 맞췄다. 그 이유는 우체국 소포 문제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_- 오전까지 머문 숙소가 중앙우체국 근처라 소포를 부치려면 오늘 오전밖에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어제 가방을 싸보니 무게보다도 부피 때문에 그 망할 소포를 부쳐야 했다. 여름이고 홍차랑 책 몇권 외엔 별로 산 것도 없는데 왜 가방이 터져나가는 것일까 허헝,,,

 

10시 반쯤 중앙우체국에 다시 갔다. 어제의 그 마귀할멈 대신 다른 창구로 가서 물어봤는데 거기도 제2의 마귀할멈이 앉아 있었다. 딸론칙을 가져오라며 화를 냈다. 대체 딸론칙이 무엇인가 한참 고민했는데(보통 종이쪽지, 버스표 등을 가리킨다) 알고보니 번호표였다. 러시아도 그동안 기술발전이 물론 있었고... 번호표를 뽑아오면 스크린에 몇번 창구로 가라고 뜨는 것이다. 중앙우체국이라 워낙 크고 창구가 많으니 그런 거였다. 흠, 몰랐던 내 잘못도 있구나. 그건 그렇다치고 엄청 신경질냄. 손님도 하나도 없었는데!

 

번호표 기계로 갔는데 뭔가 엄청 복잡했다. 소포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나는 저렴한 소포를 부치고 싶었으나 도대체 몇번을 눌러야 하는지 알수가 없었다. 마침 내앞에서 번호표 뽑는 나이든 아저씨가 계셔서 물어보니 너무나 친절하게 '이건 비싼거고 저건 싼건데 어떤걸로 할거니?' 라고 물어봐줘서 '싼거요~' 했더니 그럼 이 메뉴를 누르라고 알려주심. 아저씨 복받으실 거에요 흐흑... 그래, 시민들은 친절한데 관료들만 불친절한 것이야 허헝...

 

하여튼 우여곡절 끝에 창구에 번호가 떠서 상자를 가져갔더니 새로운 마귀할멈 3이 막 화를 냈다, 왜 상자를 봉해왔냐는 것이다. 원래 여기는 소포 포장을 할때 안의 내용물을 모두 검사한다. (예전엔 CD 같은 건 반출 못했는데 아마 지금도 그러려나..) 그래서 '어제 다 검사해서 저쪽 창구 아주머니가 봉해준 거에요. 근데 쉬는 시간이라 다 놀아서 난 시간이 없어 오늘 다시 온 거에요' 라고 설명하고 다행히 어제 상자 포장해준 아줌마가 한쪽에 있어서 그분이 '응, 그거 어제 내가 다 봤어' 라고 확인해 주었다(유일하게 약간 친절했던, 마귀할멈 아닌 사람이었음 ㅠㅠ)

 

그리하여 1700루블을 내고(3만원 정도) 선박 운송을 선택하여 망할 소포를 부쳐버리니 살 것 같았다. 기껏 4킬로 더 쑤셔넣고 오버차지 내지 그랬냐고 하신다면... 가방에 자리가 없었습니다 ㅠㅠ 그리고 근력 따위 없는 나에게 4킬로 추가란 엄청난 짐!!!

 

 

 

(보기에는 아주 웅장하고 아름다운 중앙우체국. 그러나 오랜 옛날부터 나에게는 고생과 원망의 장소 -_-)

 

 

..

 

소포를 해결한 후 방에 돌아와 가방을 마저 싸고 체크아웃을 했다. 2시 반 택시 예약을 한 후 이제야 가벼운 맘으로 부셰에 가서 오믈렛 아점을 먹었다. 맛있어서 기분이 나아졌다

 

오늘도 엄청나게 날씨가 좋았고 하늘이 파랬고 햇살은 따가울 지경이었다. 진짜 눈부셨다. 돔 끄니기에나 갈까 하고 쭈욱 걸어올라갔다. 원래 목표는 돔 끄니기에서 책을 한권 사서 카잔 성당 분수 앞 벤치에서 아이스크림 먹으며 책 읽는 거였다. (내가 좋아하는 코스라서 옛날에 미샤를 초창기에 등장시켰던 illuminated wall 에서도 미샤는 처음에 카잔 성당 앞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근데 잠깐 와이파이 연결이 필요해서 유럽호텔 로비로 가서 폰을 좀 봤다.

 

그리고는 카톨릭 성당에 들러 다시 초를 켜고 기도를 했다.

 

 

 

..

 

 

돔 끄니기에 가서 새 지도를 샀다. 구글이나 앱이 있어도 나는 아날로그라 옛날부터 보던 종이 지도가 편한데 한 2~3년 쓴 지도가 너무 헐어서 찢어지고 말았다. 새 지도를 산 후 글쓰기에 필요해서 7~80년대 레닌그라드 시절 도시 현황과 거리 이름 등이 기재된 책이 필요하다고 점원에게 물었으나 원하는 답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책장을 뒤져 페테르부르크 거리 이름 유래에 대한 책을 샀다. 이건 제정시대부터 지금까지를 다 아우르는 거라 사실 내가 원하는 건 아닌데 ㅠㅠ 나중에 구글링으로 찾는 게 빠르겠다.

 

(이게 오늘 산 책과 지도 두 종)

 

 

별거 안 했는데도 카잔 성당 분수 앞 벤치에 앉아 책 읽을 시간이 없어졌다. 호텔까지 걸어내려가는 시간이 있으니(버스는 밀림) 그냥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돔 끄니기 앞 아이스크림 수레에서 에스키모 플롬비르 초콜릿 아이스크림 바를 사서 먹으면서 혼잡한 네프스키 대로와 말라야 모르스카야 거리 대신 모이카 운하를 따라 안쪽으로 걸어갔다. 햇살이 눈부셔서 운하의 수면이 타들어가는 듯했다.

 

 

 

붉은 다리와 푸른 다리를 건너 호텔로 돌아왔다. 택시를 타고 네번째 호텔(하루 묵었었으므로 실제로는 3개째의 호텔)로 와서 체크인을 했다. 근데 저번보다 방이 안 좋네... 하긴 급하게 방을 예약했고 제일 저렴한 방으로 했으니... 그때보다 좁고 침대도 트윈을 두개 붙여놓은 것이다. 그리고 지난번 방은 거리를 내다보고 있었는데 이번 방은 안쪽 마당인 중정 방향이네. 그래도 뭐...

 

이 호텔은 그래도 프린트를 공짜로 할수 있어서 오늘 지젤 티켓과 새로 끊은 항공권 이티켓을 프린트했다. 그리고는 피곤해서 좀 늘어져 있다가 컵라면 대충 먹고 원피스로 갈아입은 후 마린스키에 갔다.

 

..

 

 

 

 

 

 

 

오늘 공연이 이곳에서 머무는 3주 동안의 마지막 공연이다. 원래 매진이었는데 우연히 표가 몇개 나와서 급히 득템했던 것으로, 바로 슈클랴로프가 알브레히트를 추는 지젤이었다. 오오...

 

공연은... 사실 내가 지젤을 진짜 좋아하는데 이번 공연은 작품 자체보다는 슈클랴로프 보느라 넋을 놓아서 ㅠㅠ 지젤 보면서 안 울었던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아나스타시야 마트비옌코가 지젤로 나와서 좀 이입이 덜 되기도 했다만...

 

슈클랴로프의 알브레히트는 완벽했다... 이 남자의 타고난 기품과 동정심을 자아내는 눈빛과 애절한 춤. 10년 전 그의 알브레히트가 생각났다. 이반첸코 대신 나와서 '저거 누구야!' 하고 짜증냈던 걸 떠올리니 참 놀랍기도 하고 어쩐지 감개무량 ㅋ

 

사진은 따로 올려보겠다. 리뷰도 따로 써보겠다. 근데 이걸로 총 8개의 공연을 봤는데 제대로 리뷰 쓴 건 거의 없네 어헝...

(커튼 콜 사진과 또 짧은 메모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4835)

 

내 자리가 간신히 득템한것까진 좋은데 1층 베누아르 완전 사이드의 게다가 2열이었다. 앞사람 머리에 너무 가리고 왼쪽 무대는 잘 안보여서 진짜 괴로웠다. 슈클랴로프가 출땐 반쯤 엉거주춤하게 서서 봤다(내 뒤에는 사람이 없어 다행...) 나중엔 꼭 기합받는 듯.. 허벅지 쥐나는 줄 알았다. 흐흑... 내 앞에 앉은 사람들 다 키 크고 머리 컸어 엉엉...

 

샵에서 파루흐 루지마토프의 희귀한 옛 사진 세장(아마 베자르 작품 췄을 때인듯)과 테미르카노프가 지휘한 호두까기 CD를 샀다. 그리고 내친김에 CD 파는 아저씨에게 레인골드 글리에르의 청동기사상 음악 있느냐 물었다. 이번 마린스키에서 올린 그 발레. 아저씨는 안타까워하며 다른 작품들만 있다고 했다. 그 음악 정확한 제목이 뭐냐 물으니 청동기사상 맞다고 한다. 하긴 발레음악으로 만든 곡이니... 네프스키의 다른 샵에 한번 가보라 한다. 그 음악 구하고픈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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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클랴로프의 우아하고 애절한 알브레히트 춤과 사랑스러운 커튼 콜 인사 때문에, 그리고 마린스키 구관의 지젤이라는 것 때문에, 또 마지막 공연이란 생각 때문에 좀 감정적으로 고양되어 나왔는데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이럴줄 알고 우산 가져왔다!!!!! 요 며칠 너무 날씨가 좋았어!

 

근데 진짜 엽님 운 좋으셨습니다~ 가시자마자 비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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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쓰고 호텔까지 15분 정도 걸어야했다. 오다가 수퍼에 들러 자두 세알과 체리 300그램, 새로 나와서 궁금해진 구운 고기맛 감자칩(ㅋㅋ), 물 1.5리터를 샀다. 방에 와서는 배고파서 체리와 감자칩을 조금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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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이제 4일 남았어...

 

돌아가고 싶지 않아...

 

우울함이 다시 되살아나는 듯하다...

 

그래도 슈클랴로프의 알브레히트는 아름다웠다. 외모 얘기가 아니고(외모도 뭐 예쁘지만) 그의 춤과 표현력, 무대 자체가 아름다웠고 때로는 그런 아름다움이 마음을 뒤흔들고 감동시키고 또 위안과 평온을 주기도 한다. 그러니까, 도스토예프스키 말이 맞다. 때로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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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늘이 정말 아름다웠다. 어느 계절이든 페테르부르크의 하늘과 구름은 정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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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오래 머무른데다 긴옷과 짧은옷을 많이 싸왔고 책들도 늘어났다. 찻잔이나 홍차 등의 부피도 있고 가방도 무거워서 트렌치코트와 긴옷 몇점 책 몇권은 우체국에서 일반 소포로 부쳐버릴 생각을 하고 아침에 낑낑대며 짐을 들고 중앙우체국으로 갔다. 호텔에선 10~15분 걸어가면 되는 거리이고 옛날에 있을때도 두어번 부쳐본 적이 있다.

 

근데 오늘 운이 없었다. 여기는 아직도 무게 다는 창구, 상자 사고 포장하는 창구, 돈 내는 창구, 부치는 창구 등이 다르고 복잡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하필 내가 갔을때 15분 후 쉬는 시간이었다 ㅠㅠ 하여튼 줄을 서서 일단 상자를 샀더니 상자 주는 아줌마가 네장의 서류를 쓰라고 했다. 상자값을 낸 후 서류를 열심히 썼다. 그러나 다 쓰고 나자 쉬는 시간이 되었고... 소포 부치는 창구는 아직 쉬는 시간이 아니라서 그리로 갔더니 그 아줌마가 내걸 안 받아주겠다는 것이다 -_- 뭐냐... 그래서 그럼 어디로 가야 해요? 하고 물어보니 자기도 모른단다. 자기한테 묻지 말라 함.

 

너무 짜증이 났다. 많이 좋아졌지만 역시 이럴때면 옛날 생각이 나면서 '망할놈의 러시아!' 하고 버럭버럭 화가 나는 것이다.

 

한시간 기다렸다가 첨에 박스 받은 아줌마에게 다시 물어볼까 했는데 화도 나고 덥고 배도 고파서 그냥 상자 들고 호텔로 돌아와 컨시어지에 물어보았다. 호텔 측에 부탁해서 부쳐달라고 할수 있나 싶어서. 그러나 페덱스와 디에이치엘 이용하게만 해줄수 있다는 것이다. 근데 이 짐은 그냥 한달 걸려서 선박운송해도 되는 짐이고.. 디에이치엘로 보내느니 내가 그냥 오버차지 물고 비행기 타고 가지!!!

 

하여튼 그래서 도로 방에 상자째 갖다놓음. 내일 아침 10시쯤 우체국 도로 들고가봐야겠다. 너무 짜증이 나서 그냥 비행기에 들고 탈까 생각도 해봤는데 내일 숙소를 또 옮겨야 해서 가방을 싸다 보니 이 짐은 부치지 않으면 참 난감해질 것 같다. 아우 그 망할놈의 우체국 가기 싫어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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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때문에 좀 빈정상한 후. 그래서 밥도 못 먹고(-_-) 곧장 버스 타고 블라지미르 거리로 갔다. 오전에 부지런히 에르미타주에 다녀오신 엽님을 만나 우크라이나 식당 쉬녹에서 점심을 먹은 후 함께 판탄카 운하를 따라 쭈욱 걸어내려가 레트니 사드에 갔다. 놀랍게도 날씨가 좋아서 레트니 사드 가기 좋은 날이었다.

 

옛날에 좋아하던 아이스크림인 다샤를 팔고 있어 좋아하며 벤치에 앉아 그것을 까먹음.

 

 

(공원에선 역시 아이스크림!)

 

날씨가 참 좋았다. 후문 연못에 백조, 갈매기, 청둥오리들이 모여 있었다. 백조는 기다란 머리를 마구 꼬며 뭔가를 주워먹느라 전혀 우아하지 못해 우리를 실망시켰다.

 

눈부신 날이었다. 햇살과 하늘, 물 색깔이 환상적이었다. 아무런 필터도 보정도 없는데도 갈매기와 오리, 비둘기 사진 색감이 이렇게 나와서 좋아서 올려본다. 아마 내가 빛이 많은 사진을 좋아해서 그런가보다 :)

 

 

 

 

우리는 공원을 걸었고 분수를 보았고 크르일로프와 동물들 동상 앞 벤치에 앉아 잠시 쉬었다. 그리고 물론, 내가 좋아하는(ㅋㅋ) 아폴로도 다시 보고 인사했다.

 

(그런데 내가 아폴로 뒷모습 찍는 걸 보고 어떤 할머니가 막 웃으며 농담하셔서 난 좀 뻘쭘해지고 ㅠㅠ 하지만 뒷모습도 아름다운 아폴로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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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우리는 후문으로 나와 마르스 광장을 지나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 쪽으로 나왔다. 보통 레트니 사드 갈때 이용하는 코스이다. 날씨가 좋아서 사람이 많았고 사원의 황금빛 푸른빛 쿠폴은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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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님은 마린스키 신관에서 쥬얼즈 공연이 있었다. 버스 타고 가다 나는 먼저 내렸고 아쉬운 작별을 했다. 만나서 반갑고 즐거웠어요! 한국 잘 돌아가시고 서울에서 다시 조우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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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다 그 일본라멘집에서 대충 가라아게동과 메론소다를 먹었다. 배가 고파서라기보단 방에 와서 챙겨먹기 귀찮았다. 사실 너무 목이 말라서 평소 좋아하지도 않는 메론소다를 정신없이 마셨다.

 

방에 와서는 갑자기 피곤해져서 늘어져 있다가 디카페인 티를 마시고 가방을 챙겼다. 내일 숙소를 옮긴다. 여기 와서 5일을 더 연장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사실 그냥 7월까지 계속 있고 싶다만... 더 이상 있다가는 적금까지 깨게 생겼음.

 

내일의 목표는..

1. 아침에 우체국에 가서 더이상 빈정 상하지 않고 저놈의 소포를 잘 처리하는 것.

2. 숙소를 다시 잘 옮기는 것.

3. 슈클랴로프님의 지젤을 보는 것...

 

오늘은 자정 전에 자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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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 1. 21:18

백야의 황금빛 석양 russia2016. 3. 1. 21:18

 

 

작년 7월.

네바 강변에 석양 보러 나갔을 때. 료샤와 레냐가 함께 있었다. 석양을 같이 볼 사람이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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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2. 23. 18:27

거울 같은 운하 russia2016. 2. 23. 18:27

 

 

페테르부르크.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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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박물관 쪽에 있는 유명한 아틀라스 조각상들.

전에 몇번 사진도 올렸고 이들의 발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에 대한 얘기도 쓴 적 있지만(http://tveye.tistory.com/4102), 사실 여기 와서 얘네들 볼때마다 제일 처음 드는 생각은 '너희 참 고생한다'임...

얘들아, 너네도 무겁지? 엄청 팔이랑 어깨랑 저리지? ㅜㅜ

 

 

 

아틀라스 1 : 엉엉, 힘들어... 무거워...

아틀라스 2 : 엉엉, 월급도 안 주면서 중노동만 시켜...

아틀라스 3 : 밥도 안 주고 물도 안 줘.. 자꾸 인간들이 와서 발가락 만져..

아틀라스 1 : 영하 20도 내려가도 깨벗고 이러고 있어야 돼 엉엉...

아틀라스 2 : 가끔씩 비둘기가 와서 응가도 하고 가 ㅠㅠ

아틀라스 3 : 봉기하고 싶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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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레트니 사드(여름 정원) 갔다가 리체이느이 거리 쪽을 지나 블라지미르 거리로 갔다. 걸어가면서 찍은 사진 몇 장. 요즘은 내 마음의 위안을 위해서 빛이 많이 들어가 있는 사진들을 올리고 있는 편이다.

 

 

 

 

 

 

 

안나 아흐마토바 박물관 들어가는 뒷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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