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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부르크. 앰배서더. 사도바야 거리와 림스키 코르사코프 거리 사이에 있는 호텔이다.

두번째로 옮겼던 곳이었다. 처음엔 블라지미르스키 거리의 도스토예프스키 호텔에 묵었고 그후엔 마린스키에서 좀 가깝지만 대신 중심지에선 약간 외진 곳에 있는 이 호텔에 와서 하룻밤 묵었다. 그리고는 또 다른데로 옮겼다가 며칠 후 다시 이 호텔로 왔었다. 그때 워낙 성수기라 숙소 구하기가 힘들었었다.

 

너무나 피곤한 날이었다. 이땐 몸도 아팠고 회사에서 받은 상처 때문에 심적으로도 지금보다 훨씬 고생하고 있었다. 이른 오후였지만 몸이 무겁고 추웠다. 그래서 저렇게 잘 정돈된 침대를 보자 정신이 몽롱해졌고... 심지어 옷도 안 갈아입고 그대로 침대로 들어가 누워버렸다. 오후에 료샤와 레냐를 만나 밖에 나가기로 했었기 때문에 '옷 갈아입지 말고 그냥 잠깐 누워만 있어야지' 했던 것이다.

 

 

 

근데 침대가 너무 편안해서 저 시트만 들추고 기어들어가 그대로 자버렸다.

 

 

침대 안쪽 창가에는 저렇게 의자가 두개 있었다.

 

이렇게..

 

자다가 문 두들기는 소리에 깼다. 료샤와 레냐가 나 데리고 나가려고 방에 들른 것이다. 나는 비몽사몽 상태로 문을 열어주었고 '어서 와. 잠깐만... 나 잠깐 잤어' 라고 대답했다. 근데 또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도 안 난다. 저 당시엔 사실 잠결과 꿈결에 무슨 말을 했는지, 아니, 제정신 상태에서도 무슨 말을 했는지 자세히 기억이 안 나는 시기였다.

 

료샤가 '어이구, 자라 자!' 라고 했던 건 기억난다. 뭔가 레냐가 찡찡댔던 것 같은데 하여튼 나는 도로 잤다.

 

깨어났을땐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상태였다. 한시간 쯤 완전 암흑으로 잤나보다. 근데 깨고 보니 저 양쪽 의자에 료샤와 레냐가 각각 앉아 있었다. 둘은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레냐가 '쥬쥬 깼다~' 하고 엄청 좋아했지만 료샤는 '야! 가만있어! 죽었잖아!' 하고 툴툴댔다 :)

 

레냐는 나랑 놀러나가고 싶어했지만 료샤가 '쥬쥬 피곤하니까 오늘은 방에서 놀자' 라고 했고 우리는 방에서 놀았다.

 

 

그리고 피곤하고 지친 나를 위해 '한국인은 밥이랑 김치라며' 하면서 근처 퓨전 아시아 롤집에서 우나기롤과 김치수프라는 것을 사다 놓았다... 내가 우나기 좋아하는 걸 알아서... 이것까진 엄청 고마웠는데... 친구야, 이 김치수프엔 김치가 없어 ㅜㅜ 그냥 미소랑 고춧가루, 계란 풀고 미역 넣은 미소시루야.. 엄청 짠 미소시루 ㅋㅋ 그리고 이건 우나기롤이 아니고 장어구이 소스만 넣은 그냥 롤이었다.. 장어가 없었다 :)

 

그래도 고마웠다 :) 료샤와 레냐는 저런 롤마저도 맛있다고 먹었다 흐흑...

 

 

전에 about writing 폴더에 그런 얘길 발췌한 적이 있다. 투어에 다녀온 미샤가 잠들었다 깨어났을때 친구인 트로이가 곁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자고 일어났을때 네가 책을 읽고 있으면 좋아'라고 하는 에피소드였다. 사실은 옛날에 기숙사 생활을 할때 쥬인이 낮잠 자고 일어나서 나에게 했던 말이었는데 그 기억을 살려서 쓴 글이었다. 링크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5222

 

실은 나도 그랬다. 자고 일어났는데 료샤와 레냐가 저 의자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어서 좋았다. 텅 비어 있었던 두개의 의자가 차 있었고 맛없지만 따뜻한 김치수프와 우나기 없는 우나기롤이 창가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둘은 나를 깨우지 않았다.

 

아마 저때가 이번 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 중 하나였을 것이다.

 

 

** 저날 메모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4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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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