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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에 해당되는 글 451

  1. 2016.06.13 내 친구 쥬인을 위한 거대 수퍼마켓 사진 대방출!
  2. 2016.06.13 bravebird님을 위한 석양 사진 몇 장(6.10) 2
  3. 2016.06.13 6.12 일요일 밤 : 종소리, 유일한 장점, 불면 지속, 개구리 싫어, 굶고 누워 있다가, 건물 하나에서 다 해결, 난 샤워젤이 필요했는데, 차와 까르또슈까, 휴식만이 살 길 2
  4. 2016.06.06 마음의 위안 : 슈클랴로프 + 비슈뇨바 + 페테르부르크 + 고양이
  5. 2016.05.27 상트 페테르부르크 313주년 기념 사진들 몇 장 6
  6. 2016.05.20 우렁이가 없으니 저곳으로라도... 2
  7. 2016.05.13 한겨울의 찬란한 페테르부르크 하늘과 네바 강의 유빙, 새 4
  8. 2016.05.08 2년 전 페테르부르크 풍경 몇 장 2
  9. 2016.04.29 타인의 페테르부르크 5) 부드러운 빛 속의 네바 강변 4
  10. 2016.04.28 타인의 페테르부르크 4) 석양의 그리보예도프 운하와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
  11. 2016.04.27 타인의 페테르부르크 3) 에르미타주와 아름다운 커플
  12. 2016.04.26 타인의 페테르부르크 2) 흰색과 푸른색의 스몰니 사원
  13. 2016.04.25 타인의 페테르부르크 1) 별이 총총한 트로이츠키 사원 4
  14. 2016.04.24 잠시 : 산짐승 같은 아이, 레닌그라드 아이, 레닌그라드 시절 사진 등 37
  15. 2016.04.15 나의 뻬쩨르 5) 내가 언제나 초를 켜는 곳 2
  16. 2016.04.14 나의 뻬쩨르 4) 까라블 기숙사 6
  17. 2016.04.13 나의 뻬쩨르 3) 매표소 - 찌아뜨랄나야 까사
  18. 2016.04.12 나의 뻬쩨르 2) 당신은 우리의 모든 것,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4
  19. 2016.04.11 나의 뻬쩨르 1) 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앞 4
  20. 2016.04.10 잠시 : 볼쇼이로 떠나는 미샤, 슈클랴로프 소식에 덧붙여, 팬과 예술가의 거리, 그 글을 쓰던 때 40
  21. 2016.04.06 마음의 위안 3) 빠질 수 없는 슈클랴로프 + 페테르부르크의 두 남녀 4
  22. 2016.04.01 석양 무렵 청동기사상 사진 몇 장
  23. 2016.03.31 극장의 날 기념 5) 미하일로프스키 극장 내부 사진 몇 장 + 이반 바실리예프 커튼 콜 사진 두 장
  24. 2016.03.30 극장의 날 기념 4) 마린스키 신관 카페에서 공연 기다릴 때 4
  25. 2016.03.29 극장의 날 기념 3) 마린스키 신관 지하 코트 보관소 2

 

 

박물관 미술관보다 수퍼마켓과 시장 구경을 더 좋아하는 나의 친구 쥬인을 위한 스페셜.

 

여기는 네프스키 대로에 인접한 블라지미르스키 대로변에 있는 블라지미르스키 파사주 라는 쇼핑센터 지하의 '랜드'라는 거대 수퍼마켓이다. 묵고 있는 호텔 바로 옆에 있어 종소리 들리는 것과 함께 이 호텔의 두번째(이자 마지막) 장점이다.

 

이 수퍼는 작년에 료샤네 집에 밥해주러 갔을 때 들렀던 곳이다. 이 거대하고 휘황한 수퍼마켓에 들어오자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나 : 와아아, 이 수퍼마켓 좀 봐!!! 우와, 물건이 진짜 많아! 와아아!

레냐 : 쥬쥬 왜 그래?

나 : 우와...

료샤 : 야! 넌 소련인도 아니었으면서 왜 소련인처럼 구냐! 물건 많다고 감탄하고, 쪽팔리게!

나 : 나도 맨첨 왔을때 가게에 물건 없었단 말임! 그리고 너야말로! 부잣집 아들내미가 무슨 소련인 타령!

료샤 : 야! 난 졸부 아들이잖아! (졸부 = 소련 붕괴 직후 돈 긁어모아 출세한 신러시아인 = 노브이 루스끼) 나 소련 시절에 태어났어! 울아빠 벼락부자 되기 전까진 나도 똑같았어! 줄서서 전표 끊고 줄서서 돈내고 줄서서 물건받고!

나 : 아하하하하! 나도 그랬는데!

료샤 : 넌 잠깐 머물 때나 그랬던 거지만 나한텐 삶이었다고!

나 : 그래봤자 넌 노브이 루스끼 아들이잖아! 나중엔 잘먹고 잘살게 됐잖아!

료샤 : 근데 나도 물건 많은 수퍼 들어오면 가슴 설렌단 말이야, 아직도!

나 : 그렇구나, 소련인이구나 ㅋㅋ

레냐 : (어른들의 대화 이해 못함. 왜 아빠랑 쥬쥬가 배를 잡고 웃는지 이해 못함)

 

내 친구 쥬인과 나는 90년대 후반에 첨 러시아에 왔었고 그땐 진짜 가게에 물건이 별로 없었다. 나중에 2006년에 난 다시 여기 와서 몇달 머물렀는데 그때 놀러온 쥬인은 역시 수퍼에 물건 늘어난 것을 제일 좋아했다.

아아, 여기를 쥬인과 같이 왔어야 하는데... 이걸 보아라 쥬인아... 물건들의 향연을 보아라.. 스마뜨리! 스마뜨리!!! 보뜨 에따 라이!!!

쥬인아, 여기가 자본주의의 천국이다!!!

 

... 장 보면서 몰래몰래 소리 안나는 앱으로 찍은 수퍼마켓 사진들.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사진 아니냐고 하신다면... 이거 보고 설레는 사람들은 옛날 러시아에서 공부하거나 살았던 사람들.. 소련인의 영혼 ㅋㅋ (근데 그떄도 소련 시절은 아니었다고요)

 

 

 

쥬인아, 좋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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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 밤. 계속 비오고 추웠는데 이 날만은 오후부터 맑아졌다. 석양이 아름다운 날이었다. bravebird님과 함께 백야의 네바 강변과 궁전 광장을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운하를 따라 카잔 성당까지 걸어갔다.

 

입밖에 내서 얘기하진 못했지만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bravebird님.

 

그때 함께 봤던 석양 사진 몇 장 올려드립니다~

 

석양은 항상 아름답지만 혼자 볼때보다는 동행이 있을 때 더 좋아요 :)

 

 

 

덕분에 황제에게 인사도 하고..

뾰뜨르 임마, 나 왔어.

 

저는 취향 도져서 다시 물웅덩이에 비친 나무를 찍고 있었고 ㅋㅋ

 

분명히 우리 눈으로 봤을 땐 완전 멋있었는데 줌 당겨 찍으니 무슨 점 뿌려 놓은 것처럼 되어버린 원래는 멋있었던 갈매기떼 ㅋㅋ

 

 

해진 후 쿤스트카메라와 네바 강의 아름다운 수면!

 

 

 

이때 수면에 번진 빛이 너무 예쁘다며 서로 좋아했었죠

 

 

그리고 운하 따라 돌아가는 길에 제가 좋아하는 짐느이 까날-겨울 운하 한 장 잽싸게 찍고...

 

편안한 귀국 비행 하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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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호텔은 블라지미르 성당 맞은편에 있어 아침에 종소리가 들린다. 나는 언제나 사원 종소리를 좋아했다. 급하게 잡아 모든 것이 가격 대비 후진 호텔이지만 유일한 장점이다. 아침에 종소리를 듣는 것.

 

간밤에 미하일로프스키에서 사라파노프의 돈키호테를 보고 돌아왔고 2시 좀 안 되어 잠들었다. 근데 정말정말정말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계속해서 2~3시간마다 깨어나고 있다. 꿈속에선 회사와 사람들이 반복해 나오고 나는 화를 내기도 하고 답답해하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꾸짖고 소리치기도 한다. 심지어 새벽엔 회사 꿈은 아니지만 누군가가 개구리를 쥐고 있다 확 던졌는데 그 망할 개구리가 내 몸으로 확 뛰어올랐다! 너무너무너무 놀라서 '아아아악!' 하고 소리를 질렀는데 퍼뜩 깬 내 귀에 들린 내 비명이 거의 영화 사이코의 샤워 살인씬처럼 무서운 비명이었음. 아악 개구리 무서워 엉엉... 왜 꿈에 나와 흐흑..

 

4~5시간쯤 잔 후 또다시 잠이 오지 않았다. 7시부터 조식이 시작되는데 6시 반 즈음부터는 여기 묵고 있는 단체 관광객들이 부산하게 복도를 오가며 떠들기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 중국인, 일본인 순으로 많고 스페인 사람인지 멕시코 사람인지 모르겠으나 스페인어 쓰는 관광객들도 많다. 다들 목소리가 크다..

 

오늘은 공연이 없었다. 게다가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 창밖도 컴컴했다. 조식 포기하고(어차피 맛도 없어!!) 어둠 속에 멍하게 누워 있었다. 오후 3시즈음 청소하러 온 아주머니가 문을 열었다. 손잡이에 걸어놓은 '방해하지 마시오'가 떨어져 버렸던 것이다. 나는 너무 놀라 노어로 '누구세요!' 하고 소리를 질렀는데 아주머니도 놀라고 나도 놀람. 좀 미안해졌다.

 

생각해보니 6월부터는 계속 미친 듯이 일하고 또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을 연달아 겪고 심신을 혹사당한 후 연휴에도 일하고 밤중에 올라와 짐 싸고 곧장 비행기 갈아타고 여기로 날아온 후 개인적 일 두어개, 공연 두개 보는 등 전혀 쉬지 않았었다. 불면증은 여전하고 아무리 해도 안 빠지던 살도 빠졌다. 근데 좋게 빠진 게 아니어서 볼살이 없어지고 퀭해지고 하여튼 순식간에 급노화 토끼가 되었음. 모레 료샤와 레냐가 날 보면 놀랄 거 같다. 특히 레냐는 자기 약혼녀 어디 갔냐며 울지도 ㅠㅠ

 

그래서 오늘은 그냥 아무데도 안가고 쉬기로 했다. 그러나 방에는 먹을 게 없고 티포트조차 없으므로 호텔 건물에 붙어 있는 큰 쇼핑센터에 갔다.

 

여기는 전에 료샤랑 장보러 지하 큰 슈퍼만 갔는데 오늘은 1층의 리브 고쉬(우리나라 올리브 영 같은 곳)에 갔다. 너무 정신없이 날아왔고 당연히 호텔에 있을거라 생각해 안 챙겨온 게 세개 있는데 샤워젤, 린스, 빗이었다. 빗은 요청해서 플라스틱 빗 한개 받았지만 전자 두개가 없다. 그래서 저렴하고 용량 적은 헤어컨디셔너 하나와 샤워 젤을 샀는데.. 집에 와서 보니 그것은 샤워 젤이 아니라 바디 오일이었음. 망했다. 똑같이 생긴 게 되게 여러개라 향기를 보고 고른 건데 어쩐지 그것만 아몬드와 동백향이 씌어 있더라니.. 아아, 어떻게 '겔'과 '마슬로'를 안 읽고 냄새 묘사에만 눈이 멀어 덥석 집어왔단 말인가.. 호텔에 바디 로션은 있단 말이야 허헝... 그냥 이 호텔 있는 동안은 비누 써야겠다. 그나마도 친구가 줬던 자연주의 무자극 화장품 브랜드에서 나온 어성초 비누를 가져왔었다. 나쁘진 않은데 그래도 좀 건조해지는 느낌이긴 하다. 그리고 샤워하고 나면 몸에서 한약 냄새가 나, 흑흑..

 

하여튼 그후 4층으로 올라가 무슨 퓨전 아시아 음식점에 들어갔다. 4시가 넘었는데 아무 것도 안 먹은 상태라 너무 어지러웠기에 일단 쌀과 국물이 필요했다. 김치 수프란 게 있어 큰 의심을 품은 채 그것과 탕수소스 두부라는 것과 계란볶음밥을 시켰다. 김치 수프엔 김치가 없었고 두부와 미소와 미역이 들어 있고 국물만 살짝 매콤했다. 탕수소스 두부는 고수가 들어 있어 좀 괴로웠고 계란볶음밥이 의외로 맛있었다. 하여튼 다들 좀 느끼했지만 살기 위해 꾸역꾸역 먹었다.

 

먹고 나서 지하 수퍼에 갔다. 여기는 료샤가 소개해줬던 곳으로(전에 자기한테 밥해달라고 ㅋㅋ) 여태 페테르부르크에서 가본 수퍼 중 제일 크고 삐까한 곳이다. 수퍼를 박물관보다 좋아하는 쥬인이 많이 생각나서 몰래몰래 사진 많이 찍음. 나중에 쥬인을 위한 수퍼마켓 스페셜 사진들을 올려보겠다~ 기다려라 쥬인아~

 

차를 안 마셔서 더욱 머리가 아팠기 때문에 1층에 있는 베이커리에 갔다. 차와 커피, 패스트리와 케익류를 팔았다. 근데 이름이 브리티쉬 베이커리라 또다시 큰 의심을 품었다, 영국 거 맛없는데! 하면서.. 하지만 다행히 러시아식 디저트와 파이들이 있었다 ㅋㅋ

 

 

 

볶음밥과 탕수두부 때문에 너무 느끼해서 얼그레이 홍차를 주문했고 거기에 러시아 오면 항상 먹는 추억의 까르또슈까(표기법대로 하면 카르토슈카)를 시킴. 보통 까르또슈까는 세베르에서 먹곤 했지만 여기 까르또슈까는 모양이 좀더 정성들여 만든 것 같아서 시켜봄. 맛있었다. 추억의 맛... 소련 디저트.. 그래선지 료샤에게도 추억의 디저트라고 한다.

 

까르또슈까도 그렇지만 비록 티백에 지나지 않으나 차를 들이키자 좀 살것 같았다. 빈속에 차 마시면 아플것 같아서 요즘은 꾹 참고 오후에만 마셨기 때문이다. 6시가 다 되어 차를 마시자 그제서야 머리가 좀 맑아지는 것 같았다. 몸에 에너지가 돌았다. 카페인의 힘이겠지.

 

 

 

 

맛없는 조식 포기하고 그냥 여기나 근처 카페에서 아점 먹을까 생각 중이다. 티백 얼그레이 홍차와 저 까르또슈까 합쳐서 150루블 나왔다. 환산하면 3천원이 안된다.

 

..

 

그리고 나서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밀린 속옷과 양말 빨래를 좀 하고 어제 공연 사진을 좀 옮겼다. 그런데 또 졸린다. 주기가 다가오고 있긴 하다.

 

이제 전에 쓴 글 좀 들춰보고 책 좀 읽다 자야겠다.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휴식과 잠이 필요하다.

 

오늘은 제발 푹 잘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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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피곤한 상태로 사무실에 나와 일하는 중이다. 9시 출근하려 했으니 10시에 나왔다 ㅠㅠ 너무 졸리고 약을 너무 먹어서 그런지 속이 부대껴서 뭘 먹기가 힘드네.

 

마음의 위안을 위해 랜덤 사진 몇 장.

 

페테르부르크 네프스키 거리 사진. 저 자라 매장에 작년 여름에 갔었다, 너무 추워서 걸칠거 사려고... 근데 결국 맘에 드는 게 없어 사지는 못하고 우리 나라 자라가 제일 비싸다는 것만을 확인했다!

 

 

 

아름다우신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의 솔로르. 상대역 니키야는 그의 아내 마리야 쉬린키나. 이번에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췄는데 쉬린키나는 이게 니키야 데뷔. 그런데 난 아무리 생각해도 쉬린키나가 과연 1~3막의 니키야를 전부 소화할만한 파워가 됐는지 궁금하다. 니키야 역이 원체 까다로워서... 1~3막의 표현과 춤이 모두 다른데다 상당한 파워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갈라로만 나오면 괜찮았을 것 같은데.. 난 작년 마린스키에서 이 사람이 3명의 망령 중 세번째 망령 추는 것을 봤었는데 그때도 딱히 인상적이진 않았었다. (그런데 그때 솔로르 역을 춘 슈클랴로프는 자기가 받은 꽃다발을 니키야 역의 마트비옌코가 아니라 아내인 쉬린키나에게 바치는 만행을 저질렀다! 야, 네 파트너는 니키야잖아! 마트비옌코 줘야지! 이눔의 콩깍지 사랑꾼아 ㅠㅠ) 

하지만 최고의 솔로르 중 하나인 슈클랴로프와 케미스트리가 좋으니 잘 했을지도....

 

 

고양이...

 

아아, 간절하다

 

 

아아, 더 간절하다..

다 들어주마... 뭐든지 말해보라!

 

 

최근 해적을 추고 나서. 메도라 역의 빅토리야 테료쉬키나, 알리 역의 슈클랴로프

 

작년에 김기민씨 알리 버전으로 해적을 마린스키 신관에서 봤는데 무척 좋았다. 그러나 나는.. 꽃돌이 알리 슈클랴로프의 무대도 보고 싶어라 ㅠㅠ 김기민씨 알리는 뭔가 콘라드를 잘 지켜줄 것처럼 멋있었지만 저 슈클랴로프 알리는 너무나 꽃돌이라 오히려 콘라드의 보호를 받아야 될 듯한 느낌이 무럭무럭.. 이놈의 알리가 메도라와 귈나라보다 더 예쁘니 어쩌란 말인가.

 

 

 

 

아름답고 또 아름답기 그지없는 디아나 비슈뇨바

 

 

해적 3인무 화보

슈클랴로프 알리, 테료쉬키나 메도라, 코르순체프 콘라드

악, 코르순체프... 다닐라, 어찌 이런 짓을.. 그 수염을 당장 떼시오 ㅠㅠ 가뜩이나 콘라드는 뭔가 없어보이는 캐릭터거늘 ㅠㅠ

 

 

 

 

그리고 마지막은 역시 위안을 주는 고양이와 주인의 손길..

 

 

..

 

 

고양이도 있고 페테르부르크도 있어 카테고리가 불분명하지만 꽃돌이와 비슈뇨바가 있으니 일단 댄스 폴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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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3.5.27은 상트 페테르부르크가 건설된 날이다. 오늘로 313주년이 된다.


축하의 의미로, 웹에서 가져온 아름다운 도시 사진들 몇장. 나도 좋은 카메라로 이렇게 찍고 싶다!
(하긴 카메라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ㅎㅎ)


축하해요, 물과 돌과 빛과 환상의 도시!




'너를 사랑한다, 표트르의 창조물이여!'


.. 가장 유명한 푸쉬킨의 이 문구를 빼먹을 수는 없지..



사진들은 facebook, twitter, instagram의 페테르부르크 커뮤니티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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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20. 23:06

우렁이가 없으니 저곳으로라도... russia2016. 5. 20. 23:06

 

 

 

이번주는 특히 너무 힘들었다. 월요일 체육대회부터 지속된 야근과 이동, 중요한 회의까지.. 몸도 아프고 토할 것 같다. 집에 돌아오니 덥기도 하고 심지어 창문틀도 망가지고 커튼도 떨어지고...

 

청소해주고 고쳐주는 우렁이가 없으니.. 아아, 누가 돌봐주고 치워주는 곳으로 가고 싶다. 너무 피곤하구나.. 그래서 마음의 위안을 위해 아늑하던 그때를 그리워하며 사진 몇장 올려본다. 작년 2월, 페테르부르크.

 

어흑, 매일 치워주는 방. 갈아주는 시트와 베갯잇... 엉엉... 아침밥 나오는 거... 어흑...

 

 

 

 

 

 

 

 

 

 

 

 

며칠 동안 저런 데 틀어박혀 아무 것도 안하고 잠만 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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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태어나서 이른바 윈터 베이비라고 불리는 부류인 나는 여름보다 겨울을 좋아한다. 더운 나라보다는 추운 나라가 더 좋다. 아마도 그래서 러시아어를 전공했고 페테르부르크와 사랑에 빠졌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제1원인이야 수차례 말했듯 바리쉬니코프와 백야와 도씨와 죄와 벌 때문이다만... (엉엉 이 두 남자야 내 인생 책임지시오)

 

그리고 빛이 많은 사진을 좋아한다. 빛이 많고 선명한 색채를. 그런데 그것은 열대 지방의 화려하고 뜨거운 색채라기보다는 아마도 페테르부르크나 추운 나라의 얼음 위로 반사되는 눈부신 햇살이나 새파란 물결, 은백색 유빙, 빨갛게 칠한 입술이나 마가목 열매 따위의 선명함일 것이다.

 

그래서, 많이 피곤하고 힘들었던 이번주의 금요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마음의 위안을 위해 빛과 선명한 색채와 겨울이 혼재된 사진 몇 장 올려본다. 그리고 새. 날아가는 새 사진도 두 장.

 

전에 올린 사진도 두어개 있는 것 같은데 뭐가 뭔지 헷갈려서 그냥 오늘 내키는대로 몇장 올려본다. 2015년 2월,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산책갔다가 네바 강변 따라 궁전 다리로 걸어가는 길에 찍었음.

 

 

 

 

 

 

 

 

유빙이 떠다니는 새파란 수면 위로 청둥오리들이 동동 떠다니는 모습 보는 걸 좋아한다. 오리들은 나름 힘들테지만...

 

하긴 청둥오리는 언제나 좋다.

 

 

 

공원 바닥은 꽁꽁 꽝꽝 얼어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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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8. 15:26

2년 전 페테르부르크 풍경 몇 장 russia2016. 5. 8. 15:26

 

 

2014년 4월.

 

페테르부르크 운하와 네바 강변 산책하며 찍은 사진 몇 장.

 

이때 새로 산 후지 카메라를 들고 갔는데 필터 종류가 여러개라 신기해서 이것저것 넣어보며 찍어보고 있었다. 그래서 이날 찍은 건 다들 물안개에 번진 듯한 색감으로 나왔다. 이때는 재미있었으나 곧 싫증이 나서 다음날부터는 원래 쓰던 니콘으로 돌아갔고 필터는 포기했다. 원래 그냥 빛을 받아서 나오는 선명한 사진들을 좋아하는 편이라 필터는 금방 질린다.

 

내가 좋아하는 청둥오리가 떠가고 있어서...

 

 

 

하나 더 찍음

 

 

 

 

 

 

 

 

 

 

 

 

 

 

 

 

 

 

 

 

..

 

이번 백야 때 다시 가고 싶기는 한데 여력이 될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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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페테르부르크 마지막 포스팅은 네바 강변 사진.

빛을 보니 아침에 찍은 사진이다.

 

이것으로 이번주 예약 포스팅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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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예약 포스팅은 페테르부르크의 상징적 풍경 중 하나인 그리보예도프 운하와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 나도 여기서 사진 많이 찍긴 했다만 역시 전문가가 찍은 사진과는 비교가 안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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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의 '타인의 페테르부르크' 사진.

찍사는 모르겠는데 이 사진 처음 봤을 때 굉장히 가슴에 남았다. 아름다운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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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두번째 예약 포스팅은 스몰니 사원.

이것도 사진사를 잘 모르겠다. 위아래 사진이 서로 다른 사람이 찍은 것이다.

 

러시아 혁명과 볼셰비키의 역사에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들어봤을 이름이기도 하다. 스몰니 수도원.

나는 오래전에 페테르부르크 연수를 갔을때 이곳에서 수업을 듣기도 했다.

흰색과 푸른색의 아주 아름다운 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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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위안을 위한 이번주 예약 포스팅 주제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사진들. 그러나 이제껏 이 폴더에 올렸던 사진들과는 달리 내가 직접 찍은 것이 아니라 페테르부르크 사진사들이 찍은 멋있는 사진. 내 사진과는 구도나 퀄리티, 아름다움 자체가 다르다 :)

 

웹에서 가져온 사진들이라, 사진사 이름을 아는 것도 있고 모르는 것도 있다. 이 사진은 모르겠네 ㅠㅠ

 

월요일 첫번째 사진은 트로이츠키 사원. 원래 이름은 이즈마일로프 사원이지만 성삼위일체 사원이란 뜻으로 트로이츠키 사원이라고도 불린다. 파란 돔에 별무늬가 총총 박혀 있어 정말 아름답다. 2006년인가 2007년에 화재가 나서 지금은 복구된 상태이다. 그때 화재났을 때 다들 얼마나 안타까워 했는지.

 

이 사원에서 도스토예프스키가 두번째 아내인 안나 그리고리예브나와 결혼했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사원이다. 사실 글을 쓸때, 본편 우주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중 하나인 트로이의 이름도 여기서 따왔다. 그 사람의 본명은 안드레이 트로이츠키이다. 그 성은 이 사원과 네바 강에 놓여 있는 트로이츠키 교각에서 가져왔다. 후자보다는 전자에 더 가깝다. 친구들은 그의 성을 줄여서 트로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미샤는 드물게 그에게 사원이나 교회 종탑 같은 사람이라고 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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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1980년대~90년대 초의 레닌그라드, 마린스키 극장과 그 앞을 지나가는 전차의 풍경이다. 내가 90년대 후반에 처음 갔을때도 저 전차가 다녔던 기억이 난다.

 

사진은 아직 소련 시절, 페테르부르크가 아직 레닌그라드로 불리던 시절이다. 미샤를 데리고 쓰는 본편 우주는 대부분 1970년대와 80년대 초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원래 맨처음 그라는 인물을 만들어냈을 때는 90년대가 배경이었다만.. 그땐 주인공도 미샤가 아니었지.. 그리고 그 90년대는 대체 언제 쓰게 될 것인가ㅠㅠ)

 

중단된 본편을 다시 써보려고 120페이지쯤 썼던 가브릴로프 본편을 다시 읽어보고 있다. 근데 읽어보는 것만 대체 몇번이야...

 

아래 발췌한 글은 가브릴로프 본편은 아니고, 전에 여러 차례 발췌했던 트로이가 심리적 화자로 나오는 장편의 중반부이다. 아주 짧다.

 

나에게 미샤는 언제나 레닌그라드 - 페테르부르크 아이였다. 그건 트로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황제의 의지로 늪지대에 건설된 페테르부르크가 돌과 뼈와 유령과 환상과 안개와 피와 바람, 어둠과 빛과 물의 도시이듯 미샤와 트로이가 이 도시에 연계된 방식은 서로 다르고 동시에 또 같다.

 

 

이 소설을 쓸 때 나는 아주 바닥에 내려가 있었고 또 아주 급박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순간이 그립기도 하다. 지금은 역시 바닥에 있고 급박하지만 '쓸 수 있는 힘'이 딸린다. 하루하루 버티고 숨을 쉬고 나아가기 벅차서 그런가보다. 하지만 '정말로' 숨을 쉬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시 글을 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정말로' 나아질 것이고 '정말로' 위로 올라가게 될 것이다.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지나이다와 한 아파트에 살기 시작한 이래 미샤는 일 년이 넘도록 그 집에서 제대로 된 밤을 보내지 않았다. 트로이는 그가 그런 식으로 살다가는 건강을 해칠 거라고 생각했고 그냥 자기 집에 들어와 살라고 했다. 미샤는 옷이나 책, 음반 등 자기 짐 일부를 갖다놓았고 자주 와서 자고 갔지만 그렇다고 그의 제안을 완전히 받아들인 것도 아니었다.

 

 

 미샤에게는 산짐승 같은 특성이 있었다. 한곳에 얌전히 머물러 있지를 못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같은 레닌그라드 토박이인 트로이조차도 알지 못하는 도시 뒷골목들 여기저기를 밤낮으로 헤매 다녔다. 학창 시절 툭하면 기숙사를 빠져나가고 새벽에 창문으로 기어들어가던 습관도 그런 성격 때문인 것 같았다. 그건 해외 투어를 갔을 때도 변함이 없어서 감시요원들이 따라다니는 데도 불구하고 수차례 숙소를 빠져나가거나 집단에서 이탈하곤 했다. 74년 겨울 베를린 투어에서는 대사관 연말 파티에 불참하고 퇴폐적인 락 밴드들의 공연을 보러 가버렸다가 현지 KGB 지부에 소환되었다. 충격을 받은 다닐로프는 그에게 두 달 간의 감봉 징계를 내린 후 이듬해 여름의 런던 공연에서 그를 빼버렸다. 그래도 미샤는 별로 실망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계속해서 분방하게 쏘다녔고 알게 모르게 이탈을 반복했다. 하지만 공연과 리허설을 비롯해 춤과 관련된 일이라면 결코 이탈하는 일이 없었다. 그는 아주 열성적인 무용수였다. 끝없이 연습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했다. 관객들의 사랑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극장의 간판스타가 되었다.

 

 

 아마도 미샤의 실력과 재능이 아니었다면 다닐로프는 그 문제아를 내쫓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닐로프도 아사예프도 그 천재적인 젊은 애를 볼쇼이에 빼앗기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다닐로프가 폭발할 때마다 아사예프는 골칫거리라도 ‘우리’ 골칫거리인 편이 낫다고 투덜댔다.

 

 

 가끔 한밤중에 미샤가 차가운 바깥 공기를 휘감고 불쑥 들어와 공부하는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갈 때나 침대 위로 기어 올라와 그의 목에 두 팔을 감았을 때 트로이는 질 나쁜 코롱이나 싸구려 독주 냄새, 코를 찌르는 듯한 담배 연기 냄새를 맡았다. 무엇보다도 낯선 남자들의 체취를 맡았다. 팬들이 선물해준 좋은 향수를 쓰고 술도 별로 마시지 않으며 담배라면 세 개비 이상 피우지도 않는 인물에게서 그런 냄새가 안개처럼 끼쳐올 때마다 트로이는 그 숲고양이 같은 애를 잡아 흔들며 상대에 대해 묻고 싶었다. 누구와 함께 뒹굴었는지, 어떤 놈들에게 그에게 준 것과 다름없는 키스와 애무를 흩뿌리고 다녔는지 추궁하고 싶었다. 그런 밤이면 그는 자기도 모르게 운하와 네바 강을 생각했다. 깊은 바닥으로 흘러드는 검은 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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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가 심리적 화자로 등장하는 이 장편의 일부는 이 about writing 폴더에 꽤 여러번 발췌한 적이 있다. 꽤 장편이라 내킬 때마다 아주 일부를 시간 순서 없이 토막토막 올려놓은 것이긴 하지만 그 파편들에도 전체의 정서는 어느 정도 남아 있다. 그 링크들은 아래.

 

눈보라 속에서 길을 건너는 트로이와 미샤 : http://tveye.tistory.com/4421

냉동 옥수수와 썰매, 커피 : http://tveye.tistory.com/4206

리가에 간 미샤와 트로이 : http://tveye.tistory.com/4156

썰매를 타러 간 미샤와 트로이 : http://tveye.tistory.com/4050

물 속에서 글쓰기 : http://tveye.tistory.com/3985

표절에 대해, 춤추는 푸쉬킨에 대해 트로이와 이고리가 나눈 대화 : http://tveye.tistory.com/3825

모스크바로 가는 길 : http://tveye.tistory.com/3759

미샤의 첫번째 시즌, 돈키호테, 축구팀과 군대 : http://tveye.tistory.com/3594

흙탕물 색깔 재킷과 기름기 많은 수프 : http://tveye.tistory.com/3183

알브레히트로 데뷔한 미샤 : http://tveye.tistory.com/3128

릴렌카와 메밀죽 이야기 : http://tveye.tistory.com/2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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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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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그라드-페테르부르크 사진 몇장. 페테르부르크에 자주 가는 편이고 갈때마다 쏘다니며 사진도 찍지만 다른 사람들이 찍은 사진들도 많이 모은다. 특히 7-80년대 레닌그라드 사진들은 글을 쓸때 도움도 된다. 당시의 풍경을 복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시의 공기를 상상하기 위해서.

 

 

 

 

1983년, 네프스키 거리.

왼편 하단에 보면 러시아어로 '레닌그라드'라는 도시 표지가 보인다.

 

 

 

이건 요즘 사진이다만.. 거의 사라진 레닌 동상이 어딘가 남아 있는 모양이다. 그림자가 절묘해서 어쩐지 레닌그라드 생각이 나서 갈무리해두었다.

 

 

 

 

이곳은 내가 산책하기 좋아하는 길 중 하나. 네바 강변으로 나오는 길이다. 강 건너로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사원의 황금빛 첨탑이 보인다. 빛과 어둠, 그림자와 바람, 네바 강의 검고 푸른 물. 레닌그라드. 페테르부르크. 미샤의 도시. 그리고 내가 어쩌면 서울보다 더 사랑하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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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15. 08:00

나의 뻬쩨르 5) 내가 언제나 초를 켜는 곳 russia2016. 4. 15. 08:00

 

 

나의 뻬쩨르. 금요일의 마지막 예약 포스팅은 네프스키 대로 한가운데 있는 예카테리나 카톨릭 성당이다.

카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페테르부르크에 갈때마다 꼭 들르는 곳이다. 이곳에서 초를 켜고 기도를 한다. 이곳은 나의 비밀 장소 중 하나였다.

 

 

 

 

성당 앞에는 이렇게 화가들이 나와서 그림을 판다. 초상화가들도 많이 있다. 예전에 한번 여기 앉아 초상화를 그렸던 적도 있다.

 

이것으로 이번주의 '나의 뻬쩨르' 예약 포스팅은 끝. 개인적인 공간들이면서 어느 정도 개방된 공간들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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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14. 08:00

나의 뻬쩨르 4) 까라블 기숙사 russia2016. 4. 14. 08:00

 

 

목요일의 나의 뻬쩨르 4번째 예약 포스팅은... 일반 페테르부르크 관광객에게는 별 의미 없는 곳이지만 오래전 여기서 공부했던 적이 있는 사람들에겐 알만한 장소이다. 바로 바실리예프스키 섬의 바닷가 근처에 있는 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기숙사. 기숙사는 노어로 압쉐쥐찌예 라고 발음하는데 첨에 이 발음이 참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이 기숙사는 3개 동으로 되어 있는데 나는 2동에 살았다. 이 기숙사야말로 바퀴벌레와 창살과 고장난 변기, 부서지는 나무 침대 등 악조건과 사투하며 살았던 곳이지만 어쨌든 내겐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장소이다.

 

기숙사가 있는 거리 이름은 '까라블레스뜨로이쩰레이' 거리. 번역하자면 배 만드는 사람들의 거리라는 뜻이다. 근처에 바닷가도 있고... 아마 여기 조선소 같은 게 있었나보다. 근데 이 이름이 너무 길어서 우리끼리는 그냥 까라블이라 불렀고 가끔 우리끼리는 까라블에 사는 애들이라고 '까불파'라고 부르기도 했다 :)

 

2012년인가 다시 가서 찍어본 사진.

 

 

 

 

 

이것도 여기 살아본 사람들이라면 잊지 못할 건물. 이름은 '자랴'였다. (새벽 일출 직전의 부드러운 붉은 빛을 나타내는 말인데 아름다운 단어와는 달리 후진 러시아식 상점 건물이었다) 이 안으로 들어가면 빵 코너, 고기 코너, 과자 코너 등등 1층엔 식료품이 있고 2층엔 건전지, 화장지, 가전제품 비롯 사진현상하는 곳 등이 있었다. 물품들의 질은 당연히 나빴다. 여기서 맨날 싹난 감자를 반킬로그램 샀고 빵을 사고 우유를 샀다. 고기도 전혀 잘라주지 않아서 내장도 안 빼놓은 닭을 통째로 사서 룸메이트 친구가 맨날 톱질하듯 닭을 썰고 내장을 꺼냈다(나는 혼비백산...)

 

하여튼 그당시 우리에겐 그래도 꼭 필요한 곳이었지.

 

2006년에 다시 가봤을땐 그래도 안의 가게들이 좀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는데 2012년에 다시 갔더니 이렇게 건물이 황폐해져 있었다. 안에 있던 가게들도 다 철수한 것 같았다. 들어가보진 않았다. 흐흑. 자랴..

 

 

 

건너편 정거장.

 

학교에서 돌아오면 이 정거장에서 내린 후 길을 건너 기숙사로 돌아갔다. 가끔 이 정거장 옆에 있는 가판대에서 달걀이나 과일을 사기도 했다.

 

 

 

 

 

 

기숙사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청춘이 다 갔다는 생각이 갑자기 드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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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수요일의 나의 페테르부르크-뻬쩨르 예약 포스팅은 바로 찌아뜨랄나야 까사. 우리 말로 번역하면 극장 티켓 판매소.

 

지금이야 각 극장별로 사이트도 운영하고 인터넷 티켓 예매도 쉬워졌지만 옛날에는 마린스키고 미하일로프스키고 발레 티켓이든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연주티켓이든 공연 티켓은 이렇게 극장표 판매소에 가서 사야 했다. 옛날의 러시아 직원들은 불친절했고 지금처럼 자리를 확인할 수도 없으니 그냥 주는대로 티켓을 받았고 게다가 외국인이라는 슬픔으로 이따금 판매소 아주머니는 인기없는 공연 티켓을 끼워서 사지 않으면 안 팔겠다고 엄포도 놓곤 했다. 그래서 이따금 마린스키 발레표를 사러 갔다가 울며 겨자먹기로 카펠라 같은 조그만 연주홀의 연주회 표를 같이 사곤 했다(그땐 클래식 그렇게 안 좋아해서 괴로웠음) 그런데 요즘는 그 카펠라도 일단 내한하면 비싸더군..

 

그나마도 나는 학생이었으므로 학교에 가끔 표를 싸게 팔러 오는 적이 있었다. 마린스키나 미하일로프스키 표들이었는데 거기서 골라서 간적도 있다. 자리는 랜덤...

 

그나마 제대로 좀 선택의 범위를 넓히기 위해 나중엔 마린스키에 가서 극장 안 매표소에서 직접 끊곤 했었지..

 

저 찌아뜨랄나야 까사 중 제일 큰 중앙매표소는 네프스키 대로에 큼직하게 버티고 있지만, 가끔 저렇게 조그만 가판대처럼 끼오스크 형태로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이건 네프스키에 인접한 말라야 코뉴셴나야 거리(발샤야 코뉴셴나야인가.. 난 맨날 이 두 곳이 헷갈림)에 아직 남아 있는 까사.

 

가끔은 이런 까사에서 그달의 프로그램북을 사서 동그라미를 치며 어느 극장에서 뭘 하는지 열심히 체크하기도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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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의 페테르부르크 예약 포스팅은 바로 푸쉬킨 동상이 있는 예술광장..

 

페테르부르크에 갈때마다 내가 가장 처음 찾아가 인사를 하는 곳이 두 군데 있다. 숙소의 위치에 따라 어딜 먼저 가느냐가 달라지는데 유럽호텔 등 네프스키 대로 중간에 머물 때면 예술광장으로 가서 이 푸쉬킨 동상에게 인사를 하고, 앙글레테르나 근처 다른 호텔 등 이삭성당 근처에 머물때면 조금 더 가까운 청동기사상 앞으로 가서 표트르 대제에게 인사를 한다.

 

물론 나에게는 차르보다는 시인이 더 훌륭하다. 더 행복하다. 표트르에겐 그냥 '안녕, 차르. 나 왔어요.' 라고 하고 푸쉬킨에게 가면 깍듯하게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저 왔습니다' 라고 한다 :)

 

 

 

 

 

 

 

푸쉬킨, 그는 우리의 모든 것이야! 그는 전부야!

 

타치야나 톨스타야가 '키시'란 소설에서 저런 대사를 쓰기도 했는데 굉장히 가슴을 울리는 구절이다. 외국인이자 그저 전공자에 불과한 내 가슴도 울릴진대 러시아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싶기도 했다.

 

시인이 진정 영웅일 수 있었던 시대였다. 그리고 푸쉬킨은 진짜 영웅이었고 스스로도 그 사실을 알았다.

 

 

 

 

태그의 푸쉬킨이나 푸시킨을 클릭하면 예전에 이 시인에 대해 올렸던 여러 포스팅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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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위안을 위한 이번주의 예약 포스팅은 페테르부르크 시리즈. '나의 뻬쩨르'란 제목을 달아보았다. 내게 소중했던 장소 몇 군데를 월~금 오전 8시에 하나씩 올린다. 뻬쩨르는 페테르부르크를 줄여서 우리끼리 부르는 말. 보통 페테르부르크 사람들은 삐쩨르라고 하는데 한국 학생들은 대충 뻬쩨르라고 부르곤 한다. 요즘은 상트라고 부르는 유학생들도 많은 것 같은데 난 어쩐지 상트라고 하면 오글거리는 느낌이 들어서...

 

여기는 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어학부 건물 앞. 아주 옛날 처음 러시아 갔을 때 이 문을 열고 들어가 계약을 하고 수업을 들었지... 그리고 거의 10년 전 휴직하고 갔을 때도...

 

학생증이나 여권을 제시해야 들어갈 수가 있어서 지금은 들어갈 수가 없다 ㅠㅠ

 

비록 제대로 된 공부를 한것도 아니고 연수나 받고 수업이나 들었지만 그래도 내겐 중요한 곳이었다. 몇년 전 글을 다시 쓰면서 본편 중 한 소설을 쓸 때 심리적 화자인 트로이를 이 학교 졸업생이자 강사로 등장시켰다. 사실 그 소설의 도입부 초반은 트로이가 이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나와 바로 이 앞 정거장에서 트롤리버스를 기다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학교는 옛날로 치면 '엘게우'라고 불렸고 그게 더 익숙한 분들도 많을 것이다. 모스크바는 모스크바 국립대인 엠게우, 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는 레닌그라드 국립대인 엠게우. 그러나 소련 붕괴 후 다시 페테르부르크란 이름을 찾아서 지금은 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이다. 명문대학이다. 푸틴도 여기 나왔음.

 

 

 

 

 

 

이건 뒷문. 옛날에 수업 들으러 올땐 이 뒷문으로 들어가 다니곤 했지. 지금은 닫혀 있지만.

 

 

 

 

왼편에 보이는 신문잡지 가판대. 끼오스크. 오래 전 이 가판대엔 가끔 우리나라 시사저널이나 동아일보가 진열되어 있었다. 당시엔 인터넷도 그리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한국 신문잡지만 보면 눈이 뒤집혔던 우린.. 돈이 없어서 덜컥 잡지나 신문을 사지는 못하고 맨날 저 가판대 앞에 서서 1면 제목을 열심히 읽곤 했다. 그리고 나서 나중에 다시 페테르부르크에 왔을땐 인터넷으로 매일매일 뉴스를 볼수 있으니 참 세상 변했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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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젊은이와 죽음. 사진은 alex gouliaev)

 

 

며칠 전 내가 좋아하는 마린스키 무용수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가 아내와 함께 새 시즌에 뮌헨으로 옮겨갈 거라는 소문을 접했고 그게 소문이 아니라 거의 확정된 사실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http://tveye.tistory.com/4587, http://tveye.tistory.com/4592)

 

이 뉴스에 굉장히 심란했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일 때문에 힘든 와중에도 그 사람이 옮겨간다는 사실에 이렇게 마음이 심란하니 아마 내가 진짜 팬이라 그런가보다.

 

사실 무용수의 입장에서는 13년이나 마린스키에서 췄고 이미 프린시펄로 남자무용수 중에는 최고의 자리에 있는데다 해외에서 인기도 많고 기량도 가장 원숙기에 달해 있으니 늦기 전에 다른 극장, 다른 무대에 나가고 좋은 대우를 받을 때가 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사람이 마린스키에 이렇게 오래 남아준 것도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다른 동세대 무용수들을 보면...

 

게다가 러시아보다야 유럽이나 미국 쪽 대우가 훨씬 좋을 거고. 바이에른 쪽 예술감독으로 이고르 젤렌스키가 있고, 또 마린스키에서는 제2솔리스트에 머물러 있는 아내 마리야 쉬린키나도 아마 프린시펄 급으로 가는 것 같으니 아내를 매우 사랑하는 이 사람 입장에선 좋은 기회일 것이다. 똑똑한 사람이니 잘 판단해서 결정했을 것이다.

 

그래도 아쉬움과 심란함이 가시지 않는다. 아마 내가 슈클랴로프의 팬인 동시에 '마린스키'와 '페테르부르크'를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에 남아 주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름에 다시 페테르부르크에 가고 일년에 한두번은 이 사람 무대를 보는 게 낙이었는데 ㅠ 물론 뮌헨에 가볼 수도 있겠지만 마린스키란 이름과는 다르다. 그리고 그냥 개인적으로는... 이 사람이 가는 극장이 마린스키만한 이름값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서 더 아쉬운 마음이 든다.

 

하여튼 일개 애호가이자 팬인 내가 심란하든 말든 재능 넘치는 무용수이자 예술가이니 슈클랴로프는 자기 앞길을 잘 꾸려나갈 거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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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식 때문에 심란해하다 일종의 아이러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내가 쓰고 있는 미샤 야스민의 본편 우주에서 나는 비슷한 소재를 이미 다룬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설정한 세계에서 미샤는 레닌그라드 토박이로 레닌그라드 발레학교(즉 바가노바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곧장 키로프(지금의 마린스키)에서 데뷔해 곧 성공 가도를 달리다 4번째 시즌 중간쯤 모스크바의 볼쇼이로 옮겨가게 된다. 이 이야기는 몇년 전 썼던 트로이와 미샤의 장편 후반부에서 다룬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작가의 입장이었고 나와 미샤는 둘다 이유가 있었다. 그 순간의 미샤는 떠나야 했고 나 역시 그가 왜 떠나야 했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사랑하던 팬들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혹은 부정하고 싶어하거나 그저 슬퍼했다. 나는 언제나 팬과 예술가 사이의 애정과 환상, 그 거리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 아마도 그것이 오래전 내가 토드 헤인즈의 영화 '벨벳 골드마인'을 처음 보았을때 그렇게 매료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그 영화는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팬과 예술가, 혹은 우상 사이에는 분명 환상이 있고 거리가 있고 놀라울만큼 우스꽝스러운 어떤 것이 있다.

 

 

본편 우주에서 미샤는 매우 열렬한 팬덤을 거느린 무용수로 등장했다. 그의 유일무이한 재능과 사람을 끄는 자력 때문에. 그래서 미샤가 갑작스럽게 볼쇼이로 떠나게 되었을때 그의 팬들은 분노하고 경악하고 망연자실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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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래 발췌한 에피소드를 쓰던 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건 겨울이었다. 12월이었다. 춥고 쓸쓸한 날이었다. 나는 코다츠 테이블에 앉아 그 장면을 쓰고 있었다. 2012년 겨울이었다. 그날은 대통령 선거일이었다... 나는 투표를 마치고 돌아와 글을 쓰고 있었다. 그때 나는 바닥에 내려가 있었고 내게는 오직 그것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아마 그때 내가 그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나는 더욱 오랫동안 바닥에 있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몸이 아파서 잠시 직장을 쉬고 있었던 때였는데 사실 몸보다는 마음이 더 힘들었다.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한지 몇달쯤 된 시점이었고 그때 나는 중독자처럼 그 글을 썼다. 그래서 그 글의 완성도가 어떻든 내게는 매우 개인적이고 중요한 글이었다. 그리고 그 글을 쓰면서 처음으로 나는 나의 주인공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주인공을 바라보는 심리적 화자 트로이의 안으로 들어갔고 더 깊이, 더 깊이 들어갔다가 나왔다.

 

 

하여튼 그래서 그 소설은 여전히 내겐 내밀하고 고통스럽고 소중한 무언가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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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발췌한 에피소드는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미샤가 갑작스럽게 모스크바로 떠나게 되자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팬들의 이야기이다.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당시의 레닌그라드) 사이의 알력과 긴장감도 한몫 했고. (사실 모스크바가 수도이긴 하지만 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은 문화의 예술의 도시, 제국시절 수도, 봉쇄를 이겨낸 영웅도시로서 자기네 도시와 문화예술에 대한 자긍심이 아주 강하다. 그리고 지금도 좀 그렇긴 하지만 소련 시절엔 특히 키로프에서 열심히 좋은 무용수들 키워놓으면 당 차원에서 그들을 볼쇼이로 낼름 보내버리곤 했다)

 

 

이 장면을 쓸때 나는 반쯤 냉소적이기도 했고 또 그보다 더 슬프고 열렬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팬들이 아니라 미샤에게 더욱 가까이 있었다. 그래선지 이번에 슈클랴로프가 떠난다고 해서 심란해지자 이 에피소드를 쓰던 때가 생각났고 조금 씁쓸하게 웃게 되었다.  어쩌란 말이야... 작가로서의 나와 팬으로서의 나는 어쨌든 다르게 반응하고 다르게 느낄 수밖에 없지 않나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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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무용수로서의 미샤라는 인물을 만들어낼 때 여러 무용수들의 특질을 따오기는 했지만 거기 슈클랴로프는 없었다. 왜냐하면 나와 미샤의 관계는 내가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라는 무용수를 좋아하게 되기 훨씬 오래 전에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글을 쓰면서 이따금 슈클랴로프를 떠올린 적은 있었다. 사실 미샤와 닮아서가 아니라 상반된 분위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에게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는 그 드라마틱한 재능과 비극을 표현하는 능력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는 빛과 에너지의 무용수, 햇살 같은 무용수이기 때문이다. 미샤는 그 반대이다.

 

 

하지만 저 트로이가 등장하는 장편을 쓸때 나는 가끔 사진 몇 장을 보곤 했다. 소년 시절, 그리고 20대 초반의 미샤를 떠올리려고. 그때 보던 사진 중 하나는 슈클랴로프의 초창기 시절 찍은 것이었다. 바로 이것이다.

 

 

 

 

물론 나의 주인공 미샤가 이 사람과 비슷한 타입의 외모는 아니다. 하지만 이 사진을 보고 있으면 소년 시절의 미샤가 좀 떠오르곤 했다. 아마 그 소년다움, 아직 앳된 얼굴, 아직 제대로 된 남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린애도 아닌 미묘한 순간에 놓여 있는 시절, 어딘가 양성적이고 어딘가 쓸쓸해보이고 또 어딘가 결핍되어 보이지만 동시에 한없는 매력을 숨기고 있는 모습 때문일 것이다. 나는 언제나 미샤가 어떤 경계에 놓여 있고 그 선을 넘나들며 끝없이 움직이는 존재라고 생각했고 그런 그에게 분명 근육질의 강인한 남성 무용수이지만 동시에 어딘지 양성적이고 어딘지 미처 덜 자란 사춘기 소년 같은 분위기를 남겨 놓고 싶었다. 그리고 이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의 옛 사진은 내게 그런 느낌을 조금 느끼게 해준다. 물론 이 사람은 나의 미샤와는 많이 다르지만.

 

 

..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늘어놨는데, 하여튼 발췌한 이야기는 몇년 전 쓴 장편의 후반부. 미샤가 3년 반 동안 키로프 무대에 올라다가 갑작스럽게 모스크바 볼쇼이로 떠났을때 일어난 해프닝이다. 앞부분에서 발레애호가들이 분노해 떠드는 대화에 등장하는 세레브랴코프는 미샤를 싫어하는 선배 무용수로 예전에 이 사람과의 충돌에 대한 이야기도 잠깐 발췌한 적이 있다.

 

 

이반 노비코프는 미샤를 낚아채간 볼쇼이 행정감독, 게오르기 다닐로프는 키로프의 행정감독, 아사예프는 예술감독이다. 물론 다들 내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다. 극장 지도 체계도 좀 다르고. 당시 내겐 그 체계의 재구성이 좀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허구의 세계니까. 스타니슬라프 일린은 이전에 몇번 발췌한 미샤의 친구이자 볼쇼이 안무가이다. 전에 일린의 딸 라라의 관점으로 전개된 부활절 단편 jewels를 올린적이 있는데 그 이야기는 여기서 미샤가 볼쇼이로 옮겨간 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잠깐 언급되는 고르차긴과 마이야 로스포바는 둘다 레닌그라드의 유력자로 미샤의 열렬한 후원자이다. 게르만 스비제르스키와 벨스키는 서무 시리즈에도 몇번 언급되었고 발췌한 적도 있지만 미샤를 후원하는 고위직 당 간부이다. 미샤를 따라가는 타마라는 키로프 발레단 코디네이터이다. (역시 모두들 가상의 인물들이다)

 

 

이 에피소드를 쓸 때, 특히 발레애호가들이나 팬들을 묘사할 때 나는 약간은 장난을 치고 있었지만 사실은 많이 진지하고 심각했었다. 사실 이 글을 쓰는 내내 그랬다. 숨을 쉬려고 애쓰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 에피소드를 쓴 날이 대통령 선거일이었고 그 다음날부터 세상은 좀더 어두워졌다 ㅠㅠ)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미샤 야스민이 볼쇼이로 떠난다는 뉴스는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키로프 뿐만 아니라 레닌그라드 문화예술계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몇몇은 스타니슬라프 일린이 왔을 때부터, 그리고 미샤가 세레브랴코프와의 싸움으로 징계를 받고 이후 가을에 두 달이나 휴가를 얻었을 때부터 이런 결과를 예견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극장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노비코프가 미샤를 크레믈린 무대에 세웠을 때부터 이미 모든 시나리오를 짜놓고 있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심지어 극단적인 볼쇼이 혐오자인 유력 인사 하나는 이반 노비코프가 이런 상도에 어긋나는 짓을 하기 위해 일린을 빌려줬던 거라고 화를 내기까지 했다. 음모론이 들끓었다.

 

 

“ 생각해 봐! 포노마레바, 그 여자도 모스크바에서 왔지. 이건 모스크바의 음모야. 그 여자가 다닐로프를 협박해서 일린을 박아 넣었지. 그리고는 어떻게 했어. 그 런던 페스티벌에 야스민을 보낼 때 일린이 만들어준 춤을 가져가게 했지, 게다가 같이 갔던 건 누구야! 게르만 스비제르스키! 모스크바 의원이잖아. 크레믈린 축제는 또 어떻고! 볼쇼이로 빼가는 걸 벨스키가 거들었다잖아. 노비코프는 다닐로프나 아사예프 따위와는 로비 능력 차원이 달라. 그 루슬란을 볼쇼이 무대에 올린다고 했을 때 키로프에서는 으쓱해했지. 얼간이 같긴, 그게 다 노비코프의 포석이었던 거야! ”

 

 

“ 맞아. 게다가 최근 2년 동안 키로프에서 야스민을 어떻게 대했어! 제대로 대우해 줬다는 놈들은 수석으로 만들어준 것만 보고 다른 건 못 보는 거지. 무대에 서는 날과 징계로 처박혀 있는 날이 거의 비슷할 정도였을 걸! 그 세레브랴코프 서클에서 무슨 짓들을 했는지 정말 몰라? 음해와 뒷공론, 협박이 전부가 아냐. 별의별 유치한 짓들을 다 했어. 첫 시즌에는 공연 시작 직전에 소품 창고에 가뒀지. 볼고그라드에 갔을 때는 인솔자를 속여서 걜 거리에 내버리고 버스를 출발시켰어. 야스민이 지난 네 번의 시즌 동안 잃어버린 그 많은 의상과 슈즈가 전부 어디로 갔다고 생각해? 팬들이 가져갔다고? 그 절반 이상은 잘난 선배들이 쓰레기통에 처넣었을걸. 그런 게 애들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고? 페름 저수지 사건 몰라? 분장 상자 안에 양날 송곳이 잔뜩 박혀 있던 사건 기억 못해? 손가락이 잘릴 뻔 했지. 조명 나사를 풀어서 어깨를 박살낼 뻔한 적도 있었어. 그래, 그 다쳤던 어깨 말야. 그게 실패하니까 세레브랴코프가 자기 손으로 뼈를 부러뜨리려고 했지. 그런 와중에 노비코프가 미끼를 던졌는데 제정신인 무용수 치고 그걸 물지 않을 인간이 어디 있어! ”

 

 

“ 노비코프가 1월에 야스민을 곧장 백조 무대에 세운대. 거의 모스크바에 도착하자마자일 걸. 그 표 구하려고 그 바닥이 발칵 뒤집혔대. 벌써부터 그 친구가 스파르타쿠스를 출 거라고 모스크바 무용계가 시끌시끌해. 스비제르스키에 벨스키까지 고위직도 양쪽 서클에서 다 걜 밀잖아. 그런 앨 뺏기다니. 그것도 여름도 아니고 시즌 중에 데려가게 놔두다니! 키로프 위신이 땅에 떨어졌어. 멍청한 인간들. 이제 시작이야. 그놈들이 하나하나 다 빼 갈 거야. 모스크바 놈들에게 다 뺏기게 될 거야! ”

 

 

좋은 것은 모두 모스크바와 볼쇼이에 빼앗긴다는 피해의식과 뿌리 깊은 경쟁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극장과 예술계 인사들 뿐만이 아니었다. 공식적인 뉴스가 1월 초에 터져 나오자 관객들도 크게 실망했는데 특히 미샤의 팬들은 하늘이 무너질 듯한 충격에 사로잡혔다. 그 충격의 첫 번째 반응은 극장에 대한 무시무시한 분노로 나타났다. 그들은 키로프 상부의 무능함과 고참 무용수들의 텃세를 강력하게 비판하는 연판장을 써서 문화국과 지역 의회에 공식적인 항의 서한을 제출했고 리디야 포노마레바의 사무실을 급습해 한 시간이나 뜨거운 성토를 벌였다. 불행하게도 그런 점잖고 교양 있는 행동으로 그친 것만은 아니었다. 열성팬들은 극장으로 몰려갔고 게오르기 다닐로프와 울리얀 세레브랴코프의 자동차에 휘발유를 부은 후 불을 질렀다. 다행히 수위가 달려와 재빨리 불을 껐기 때문에 큰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두 대의 차는 심하게 망가지고 말았다. 다닐로프는 공포에 질려 세레브랴코프에게 미샤가 떠날 때까지 억지로 휴가를 주었고 경찰에 연락해 그 공훈예술가의 신변 보호를 요청하기까지 했다.

 

 

다닐로프의 그런 행동은 결코 과민한 반응이 아니었다. 차에 불을 지른 후 팬들은 극장 광장에 모여들기 시작했고 무시할 수 없는 숫자로 불어났을 때는 키로프 정문 앞으로 옮겨와 시위를 시작했다. 그들은 다닐로프의 이름을 소리 높여 부르며 당장 관객들 앞에 나와 제대로 된 해명을 해 줄 것을 요구했다. 점차 거기에는 보리스 아사예프의 이름도 뒤섞였다. 다닐로프는 경찰들에게 연락했지만 어째서인지 그들은 좀처럼 와주지 않았다. 아마도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팬들 배후에 지역 유력 인사가 몇 명 끼어 있었고 그들이 연줄을 동원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혹자는 고르차긴이나 마이야 로스포바의 이름을 거론하기도 했다.

 

 

시위가 점차 격화되어 작은 폭동으로 번질 조짐이 보이는 데다 저녁 공연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으므로 겁에 질린 다닐로프는 마침 서류 문제를 마무리하기 위해 들렀던 미샤를 붙들고 거의 빌다시피 소리쳤다.

 

 

“ 자네 추종자들이니까 가서 좀 해결해봐! 제발 내 기억 속에서 마지막까지 골칫거리로 남지는 말아줘. ”

 

“ 게오르기 페트로비치, 당신은 제가 어떻게 행동하든 골칫거리로 기억하실 게 뻔해요. ”

 

“ 그래, 하지만 우리 골칫거리였지. ”

 

 

그때 게오르기 다닐로프는 결코 극장 소속 예술가들에게 하지 않던 행동을 했다. 그 깐깐하고 관료적인 인물이 자리에서 일어나 미샤를 포옹하고 뺨과 입술에 세 번 입을 맞춘 것이다. 사무실 구석에 서 있었던 타마라는 그 광경에 기절할 만큼 놀랐다.

 

 

“ 다시 돌아와. 자네 자리는 항상 있을 테니까. ”

 

 

물론 그 따뜻하고 정감 넘치는 대사 후 다닐로프는 미샤의 등을 떠밀어 정문 앞으로 내보냈다. 극장 쪽 직원으로 타마라를 딸려 보내기는 했지만 그녀는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었다. 격하게 시위하고 있던 팬들은 미샤가 나왔을 때 놀라서 한동안 잠잠해졌지만 곧 다시 흥분해서 그를 에워쌌고 소리를 지르고 항의하고 울부짖고 제발 남아달라고 간청하기 시작했다. 미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문 앞에 멍하게 서 있었다. 그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그저 귀찮아서였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타마라는 미샤가 정말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얼이 빠졌던 거라고 생각했다. 떠나기로 결정하기 전부터 극장에서 미샤가 가끔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멍하게 서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타마라는 그가 너무 무리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곤 했다.

 

 

미샤가 별다른 변명도 위로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기만 했기 때문에 팬들의 슬픔은 점차 분노와 원망으로 변했다. 그들은 우상 무용수를 벌떼처럼 에워싼 채 시베리아에서 짐승을 사냥해 몰듯 소란스럽게 극장 문 앞에서 끌어냈다. 타마라는 그들이 미샤를 납치해 무서운 짓을 저지를 것 같다는 비이성적인 공포에 사로잡혀 발을 동동 구르며 뒤를 쫓아갔다. 남녀가 뒤섞인 추종자 무리는 웅성대고 소리치며 운하를 따라 이시도로프 사원 쪽으로 내려가다가 도로를 건넜고 마침내 쇼틀레로 미샤를 밀어 넣은 후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평화로운 오후의 티타임을 즐기고 있었던 몇몇 중년 여인들과 젊은이들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고 팬들은 ‘꺼져요 꺼져!’를 반복하며 그들을 내쫓았다. 타마라는 문이 닫히기 전에 간신히 안으로 달려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몇 시간은 타마라에게 끔찍한 악몽이나 다름없었다. 팬들은 카페 앞문과 뒷문을 모두 걸어 잠그고 교대로 문 안팎을 지켰으며 점원들을 협박해 안쪽의 조리실로 몰아넣었다. 전화선을 모두 뽑아버렸다. 무기만 없다 뿐이지 인질극이나 다름없었다고 타마라는 이후 공포에 떨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카페 안을 구름처럼 메운 팬들의 숫자를 세다가 100명까지 세었을 때 공포에 떨며 그 무용한 일을 그만 두었다. 100명이든 1,000명이든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너무 흥분해서 이성을 잃었고 푸치니 오페라나 드라마 극장 무대에나 나올 법한 광적인 감정 폭발과 눈물과 고성을 마구 쏟아냈다.

 

 

미샤는 한가운데 테이블 앞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팬들이 동심원을 그리며 온통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에 빠져나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타마라는 그들을 잘못 자극했다가는 미샤를 폭행하거나 말 그대로 짓눌러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벌벌 떨고 있었다. 다행히 추종자들은 미샤에게 육체적 폭력을 가하지는 않았다. 그에게 손을 댔던 것은 귀부인처럼 차려입은 중년 여인 두 명 뿐이었는데 그것도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도록 테이블 위로 올라가 앉으라고 팔을 잡으며 종용했던 것 뿐이었다. 미샤는 순순히 테이블 위로 올라가 앉았는데 그때에야 타마라도 그의 얼굴을 보고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미샤는 겁에 질려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긴 타마라는 그가 어떤 일에든 두려움에 휩싸이거나 주눅 드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다만 무척 피곤해 보였을 뿐이었다. 그는 짜증을 내거나 내보내달라고 부탁하지도 않고 테이블 위에 앉아 흥분한 팬들의 아우성을 그대로 듣고 있었다.

 

 

추종자들은 한꺼번에 소리치기도 하고 이따금 누군가의 지도에 따라 돌아가면서 성토나 항의, 분노와 슬픔을 표출하기도 했다. 과격한 팬들이 삿대질과 함께 미샤에게 모스크바와 볼쇼이에 창녀처럼 팔려갔다며 고함을 질렀을 때 타마라의 공포는 극에 달했다. 그때쯤 그녀는 미샤가 살아서 나갈 수 없을 거라는 확신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카페 전체를 불태울 듯 솟구쳤던 배반감과 노여움은 점차 크나큰 상실감으로 바뀌었는데 아마도 미샤가 침묵하면서도 그들의 말을 모두 들어주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나중에는 여자들 여러 명이 테이블 바로 앞에 몸을 던지고 통곡하면서 가지 말라고 애걸했다.

 

 

우리 죽는 걸 보고 싶어요? 제발 가지 말아요! 모스크바에 가지 말아요! ”

 

 

그러자 모여든 팬들이 콤소몰 청년가를 부르듯 한 목소리로 합창했다.

 

 

“ 가지 말아요! 모스크바에 가지 말아요! ”

 

 

그 무서운 와중에도 타마라는 미샤가 반듯하게 다물고 있는 입술 너머로 웃음을 참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더럭 들었다. 그 비현실적이면서도 너무나 러시아적인 합창에는 소름끼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주 우스꽝스러운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마라가 아는 미샤 야스민은 충분히 그런 상황에서 웃어버릴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으며 두 손을 모아쥐고 마음 속으로 열렬히 외쳐댔다.

 

 

‘ 제발, 웃지 마. 이 말썽쟁이 꼬마야, 제발 참아. 비웃는 줄 알 거야. 이 사람들이 지금 장난치는 걸로 보여? 널 갈기갈기 찢어 죽여버릴 거야. 오 하느님, 예수님. 전 몰래 세례도 받았고 고난주간에는 금식도 해요, 콤소몰 회합에는 꼬박꼬박 나가지만 그래도 신앙을 지켰다고요. 제발 제 기도 좀 들어주세요. 저 골칫거리 귀염둥이가 제발 웃지 않게 해주세요. 제발 살아서 나갈 수 있게 해주세요. 손 끝 하나 다치지 않게 해주세요! 우릴 떠나는 건 밉지만 그래도 저 애가 볼쇼이 무대에 제대로 설 수 있게 해주세요! ’

 

 

하느님이 그녀의 기도를 들어줬는지는 모르겠지만 미샤는 웃지 않았다. 대신 처음으로 입을 열었고 그 연극적인 과잉으로 흘러넘치는 합창을 일상적인 대화를 받아넘기듯 대꾸했다.

 

 

“ 돌아올 거예요. 그러니까 보내주세요. ”

 

 

아마도 너무나 침착하고 조용한 어조 때문인지도 몰랐다. 소음으로 가득하던 카페 안에 갑작스런 침묵이 내리덮였다. 잠시 후 한 여자가 날카롭게 떨리는 음성으로 소리쳤을 뿐이었다.

 

 

“ 그걸 어떻게 믿어? 결국 모스크바를 선택한 거잖아요! ”

 

 

미샤는 소리친 여자 쪽을 보지도 않은 채 낮고 부드럽게 말했다.

 

 

“ 모스크바라서 가는 게 아니에요. 새로운 뭔가를 춰보고 싶을 뿐이에요. 돌아오면 좀 더 나아질 거예요. 모든 게 나아질 거예요. 그러니까 보내주세요. ”

 

 

그때 미샤 야스민의 얼굴이 너무나 창백하고 두 눈이 깊은 터널처럼 검게 일렁이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차라리 주문처럼 그 말을 자기 자신에게 되풀이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주위를 둘러싼 팬들은 모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타마라는 미샤와 그 빽빽한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불꽃을 두른 완벽한 원형의 벽이 세워져 있다는 것을 갑작스럽게 알아차렸다. 그들 중 누구도 그를 끌어내 갈기갈기 찢어버릴 수 없었다. 키스조차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미샤에게서 그런 슬픈 얼굴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울기 시작했다.

 

 

그때 경찰들이 마침내 도착했다. 카페 문을 뜯어내고 들어와 사람들을 해산시키고 미샤를 빼내주었다. 불법 시위와 차량 방화, 납치와 감금, 협박 등등 갖다 붙일 죄목은 넘쳐났지만 놀랍게도 쇼틀레에 모여든 미샤의 팬들 중 경찰서에 연행되거나 심문을 받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대단한 사람들, 대단한 연줄이라고 타마라는 생각했다. 딱히 틀린 생각도 아니었다.

 

 

 

 

..

 

 

 

쇼틀레는 옛날에 내가 종종 들렀던 마린스키 극장 근처의 베이커리 카페 슈톨레를 모델로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이다. 피로슈카 파이와 타르트 등을 파는 곳이었다.

 

 

 

 

이건 이시도로프 사원 가는 길. 마린스키 쪽에서 찍은 건 아니고 반대편에서 찍은 것.

 

팬들은 마린스키 극장에서 이시도로프 사원 가는 쪽으로 쭉 거슬러 올라가는 길로 미샤를 몰아갔다(거기 내가 다니던 슈톨레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설정했음)

 

 

 

사진 추가) 이게 마린스키 극장에서 이시도로프 사원으로 올라가는 바로 그 길. 2010년 겨울에 내가 찍었던 사진 한 장 찾았다. 이땐 아직 마린스키 신관이 생기기 전이니 미샤의 레닌그라드 시절과 비슷한 지리적 조건이다. 왼편 멀리 보이는 게 이시도로프 사원. 이 길 아래쪽으로 내려오면 마린스키 극장이 있다. 쇼틀레는 가운데 도로 건너 오른편 어딘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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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무용수 세레브랴코프와 미샤의 악연에 대한 에피소드를 전에 짧게 발췌한 적이 있다. 애호가들의 대화에 나오는 페름 저수지 사건에 대한 것이다. 그건 여기 : http://tveye.tistory.com/3594

 

레닌그라드 애호가들이 '미샤를 낚기 위해 모스크바에서 보낸 첩자'로 매도하는 안무가 스타니슬라프 일린의 시점으로 묘사된 발췌문은 여기. 둘다 수용소에서 미샤를 면회할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 http://tveye.tistory.com/4521, http://tveye.tistory.com/4468

 

일린의 딸 라라의 시점으로 묘사된 미샤의 모스크바 시절 이야기인 jewels는 여기

1장 : http://tveye.tistory.com/3390
2장 : http://tveye.tistory.com/3391
3장 : http://tveye.tistory.com/3393 
4장 : http://tveye.tistory.com/3394
5장 : http://tveye.tistory.com/3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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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
Posted by liontamer

 

 

 

수요일의 마음의 위안 예약 포스팅은, 내 마음을 녹이는데 빠질 수 없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3.31 프리미어로 공연한 유리 스메칼로프 재안무의 청동기사상(메드느이 브사드닉)의 한 장면. 작은 배를 타고 약혼녀 파라샤에게 찾아온 예브게니 역.

 

사진은 Natasha Razina

 

 

아아, 이 사람은 짙은 녹색도 왜 이렇게 잘 어울린단 말이냐.. 게다가 저 호감가는 청년이 홍수로 약혼녀를 잃고 실성해 울부짖으며 죽어가는 장면을 어찌 눈뜨고 볼 수 있으리오 ㅠㅠ

 

그런데 보고 싶다... 영상이라도 좀 올라오면 좋으련만 다음날의 비슈뇨바 공연은 마린스키에서 생방으로 보여주고 이 공연은 안 보여줌... 관객 반응을 보니 테료쉬키나와 슈클랴로프의 듀엣은 아주 좋았고 특히 슈클랴로프가 마지막에 광란할 때 많이들 울었다고 한다. 나도 보고 싶어 엉엉...

 

 

 

 

 

좋아해마지 않는 그의 솔로르...

 

터번 쓰고 있는 걸 보니 이건 아마 2013년 자신의 베네핏 공연 때인 듯.

 

 

 

 

 

바라만 보고 있어도 기분 좋아지는 사진이라 화질은 별로 안 좋지만 올려본다. 작년 빅토리야 테료쉬키나 특별 갈라 공연 마지막 무대. 아마 다 끝나고 앙코르 공연으로 스메칼로프가 안무한 스패니쉬 댄스 추고 나서일 것이다. 테료쉬키나 매우 부럽구나!! 코르순체프가 번쩍 들어서 어깨에 앉혀주지.. 주변에 저 많은 마린스키의 내로라하는 남자 무용수들이 그녀를 받들어 모시고 있는 저 장면~~ 누구누구 있는지 한번 찾아보세요 :) 우리의 김기민씨도 있고..

 

맨 앞에서 '나 이쁘지롱~' 하는 포즈로 귀엽게 짠~ 하고 있는 것이 슈클랴로프. 역시 꽃돌이라서 장미꽃들 한가운데 앉아 포즈 취하고 계심. 그래도 네가 빅토리야보다 더 이쁘면 어떡하니 :) (완전 콩깍지)

 

 

 

 

 

마지막 사진은 최근, 디아나 비슈뇨바의 인스타그램에서.

 

블라지미르 말라호프와 디아나 비슈뇨바! 주말에 있었던 마린스키 발레 페스티벌 비슈뇨바 특별 공연(스승에게 바치는 무대였다)에 출연하기 위해 날아온 말라호프와 함께 :)

 

 

 내가 좋아하는 두 무용수도 모자라 아름다운 페테르부르크 네바 강변에서 찍은 사진이라 마음의 위안을 아니 줄 수가 없다. 게다가 둘다 어찌나 스타일리쉬하신지.. 비슈뇨바의 저 녹색 숄 너무 예쁘다! 살짝 보이는 신발도 예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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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6. 4. 1. 19:56

석양 무렵 청동기사상 사진 몇 장 russia2016. 4. 1. 19:56

 

 

 

아침에 꾼 꿈(http://tveye.tistory.com/4566)에서 청동기사상이 하늘을 활강하는 광경을 봤다. 기념으로 청동기사상 사진 몇 장. 작년 7월 백야, 해질무렵 밤에 찍은 사진들이다.

 

태그의 청동기사상이나 청동기마상을 클릭하면 푸쉬킨의 시와 이 청동기사상에 얽힌 이야기들, 사진들, 그리고 스메칼로프가 재안무한 발레 등등에 대한 포스팅들을 볼 수 있다.

 

이곳은 오래 전 페테르부르크에서 나의 두군데 비밀장소 중 하나였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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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이번의 극장 예약 포스팅은 미하일로프스키 극장. 계속 마린스키만 올려서...

 

오랜 옛날 페테르부르크에서 잠시 공부하던 시절 자주 가던 극장이었다. 당시 이름은 무소르그스키 극장이었으나 다시 옛 이름으로 돌아왔다.

 

마린스키보다 자그마하고 아기자기하다. 요즘은 후원기업 덕에 톱스타들을 많이 끌여들여서 주역으로는 사라파노프, 바실리예프, 오시포바 등등 쟁쟁한데 군무는 역시 좀 딸린다.. 아쉽지만..

 

그래도 이곳은 내게 추억의 극장이다. 첫 발레를 본 곳은 마린스키이지만 고전 발레를 처음 본 곳은 여기였다. 여기서 잠자는 미녀를 봤었지.

 

사진은 작년 2월. 이때 돈키호테 보러 갔었다. 이반 바실리예프의 바질을 보려고.

 

 

 

 

 

 

 

 

 

 

 

 

 

극장 사진만으로는 아쉬우니 그때 돈키호테 커튼콜 사진 두장

 

날아다니는 유쾌한 바질, 이반 바실리예프. 바질 역 잘 어울렸다. 코믹하고 귀엽고 펄펄 날고... 이 사람에게 잘 맞는 역이었다.

 

 

 

 

상대역이었던 키트리 역의 크리스티나 크레토바. 볼쇼이 발레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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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극장 예약 포스팅은 마린스키 신관 카페.

 

작년 7월.

이날은 다닐라 코르순체프와 아나스타시야 콜레고바가 춘 백조의 호수를 보러 간 날이었다.

마린스키 신관 카페에서 차 한잔, 딸기 타르트 한개 먹으며 기다리는 중.

 

그러나 곧 저 빈자리에 료샤가 합류.. 나의 저 조그만 딸기 타르트를 반이나 뺏아먹는 만행을 저지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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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의 예약 포스팅은 마린스키 신관 지하의 코트 보관소(가르제로브)

여기 옷을 맡기고 오페라글라스를 대여할 수 있다.

구관은 복도마다 조그맣게 보관소들이 중간중간 끼어 있는데 신관은 지하 전체가 이렇게 되어 있다. 일찍 가면 널찍하고 좋긴 한데 여기 역시 끝나고 나면 빨리 가지 않으면 사람이 드글드글... 그래서 아예 빨리 가든지 아예 커튼 콜 끝까지 다 보고 제일 늦게 나오는 게 낫다.

 

이땐 백야라서 저녁 공연이었지만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한시간 전부터 입장인데 빨리 가서 제일 먼저 입장했더니 텅 비어 있었다. 이런 순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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