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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내 러시아 친구와 그의 어린 아들에 대한 얘기 중 야채 먹기 싫어하는 에피소드에 대해 fragments 폴더에 쓴 적이 있다. 비트 샐러드 먹기 싫어하는 레냐에 대한 얘기였다. 링크는 아래.

 

http://tveye.tistory.com/2915

 

그때 철없는 아빠와 아들이 귀여워서 웃었는데, 돌아와서 생각해보다 재미있는 사실을 떠올렸다. 실은 작년 초에 마쳤던 소설에 비슷한 에피소드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건 레냐랑 비트 샐러드 먹으러 갔을 때보다 더 전에 쓴 거였다. 때로는 현실이 허구를 따라가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그건 내가 만들어낸 허구가 현실 속에서 일어날 법한 보편적인 상황을 끌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 부분 발췌해본다. 사실 그렇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그래도 필요한 부분이다. 그 장편은 꽤나 뒤틀린 구석이 있었지만 이 부분은 그렇지 않다.

 

배경은 1977년 봄. 소련 시절 레닌그라드. 등장인물들 이름이 생소하니 잠깐 소개하면

 

갈랴(여), 료카(남) : 부부. + 릴렌카(여) : 이들의 어린 딸

트로이(남) : 주인공

코스챠 : 주인공의 친구

 

.. 이고 이들은 대학 때부터 아주 절친한 사이로 지하 문학을 읽는 서클을 운영하기도 했고 이때도 주말에 모여 실컷 놀고 술 마신 후 갈랴네 집에서 잠들었음... 정도가 이 에피소드의 배경이다. 연령대는 대부분 20대 후반. 릴렌카는 만 세 살.

 

* 이 글을 무단전재, 발췌,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그날 그는 술에 취해 갈랴의 집 소파에서 잠들었다. 토요일 아침에 깨어났을 때 릴렌카가 그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두 손으로는 뭔가 회색빛의 걸쭉한 것이 가득 들어 있는 사발을 들고 있었다.

 

 “ 술 냄새 나. ”


 “ 미안. ”


 “ 우리 아빠랑 틀려, 턱이 까끌까끌해. ”


 “ 면도를 안 해서 그래. 너희 아빠는 부지런하구나. ”


 “ 늦잠 안돼! 일찍 일어나야지! ”

 

 숙취에 시달리며 세 살짜리 꼬마로부터 설교를 듣는 아침은 결코 상쾌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트로이는 비좁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릴렌카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가 구부러져 있던 팔과 다리를 길게 펴는 것을 지켜보았다.

 

 “ 어떻게 하면 그렇게 쭉쭉 늘어나? ”


 “ 어른이 되면. ”


 “ 우리 아빠는 안 그러는데. ”


 “ 콩나무 같은 어른이 되면. ”

 “ 이거 먹어. ”

 “ 그게 뭐야? ”

 “ 이거는 어른이 먹는 거야. ”

 

 그때 갈랴가 나타나 엄한 목소리로 딸을 불렀다.

 

 “ 누가 삼촌한테 아침밥 떠넘기래! 빨리 식탁으로 돌아와! 다 먹기 전까지는 만화 못 볼 줄 알아. ”

 

 릴렌카가 칭얼거리면서 그릇을 들고 부엌으로 갔다. 갈랴가 고개를 저으며 트로이에게 와서 오렌지 주스가 담긴 컵을 주었다.

 

 “ 딴 애들은 새벽에 다 갔어? ”

 “ 코스챠랑 너 빼고. 걔 지금 샤워하고 있어. ”

 “ 릴렌카가 나한테 먹이려고 했던 게 뭐야? ”

 “ 메밀죽. ”

 “ 윽, 어린애한테 좀 맛있는 걸 먹일 수는 없어? 토요일 아침인데! ”

 “ 료카랑 똑같은 소릴 하고 있네. 남자들이란 정말 왜 그러는 거야! 네 것도 있으니까 와서 한 그릇 먹어. 몸에 좋으니까. ”

 “ 갈린카, 제발 봐줘. 숙취 때문에 죽겠는데 메밀죽까지 먹으라고 하는 건 고문이야. ”

 “ 까다롭게 굴지 마. 미샤는 내가 주는 건 다 먹었는데. 우리 집에 오는 남자들 중 제일 착했지. 그립다. ”

 “ 설마. 네가 만드는 음식은 전부 엄청 달잖아. 그걸 먹었을 리가 없어. ”

 “ 무슨 소리야, 내가 주는 아침밥은 다 먹었어. 메밀죽도 얼마나 잘 먹었는데, 릴류슈카가 안 먹고 있으면 무릎에 앉혀 놓고 같이 먹었어. ”
 

 샤워를 하고 나와 인간의 몰골을 되찾은 코스챠가 끼어들었다.

 

 “ 그건 네가 여자라서 그랬던 거야. 미슈카는 여자들에겐 절대 기분상할 짓 안해. 나도 배워보고 싶었는데 잘 안되더라, 그 기사도 정신. ”
 

 트로이는 그 화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스를 재빨리 마신 후 욕실로 갔다. 잠시 후 부엌으로 가보니 릴렌카가 엄마보다는 훨씬 만만한 아빠에게 떼를 쓰고 있었다.

 

 “ 이제 다 먹었어. 만화 볼래. ”

 “ 반이나 남았잖아. ”

 “ 남은 거 아냐. 이거 삼촌 거야. ”

 

 릴렌카가 금발 곱슬머리 사이로 파란 눈을 인형처럼 깜박이면서 간절하게 트로이를 쳐다보았기 때문에 그는 결국 마음이 약해져서 메밀죽이 반쯤 남아 있는 그릇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 알았다, 내가 먹어줄게. 가서 만화 봐. ”

 

 릴렌카가 좋아하며 거실로 내닫자 료카가 한숨을 쉬었다.

 

 “ 야, 빨리 긁어먹어. 갈랴한테는 비밀이야. ”

 “ 아빠가 대신 먹어줘야 하는 거 아냐? 난 해장이 필요한데! ”

 “ 난 메밀죽이 정말 싫단 말야. 토요일 아침마다 꼬박꼬박 한 그릇씩 먹고 있다고. 너 알잖아, 옛날에 우리 집단농장에 파종하러 갔을 때 자꾸 메밀죽만 줘서 내가 식사 거부하다가 자아 비판할 뻔한 거. ”

 “ 아, 기억난다. 난 네가 화내는 거 그때 처음 봤어. 그것도 먹을 걸로. ”

 “ 지금은 화내면 큰일 나. 갈랴가 주는 대로 안 먹으면 뼈도 못 추려. ”

 “ 그러면서도 빨리 결혼하라고 날 들들 볶아? ”

 “ 그래도 좋은 점이 훨씬 많으니까 그렇지. ”

 

 갈랴가 들어오려는 기색이 보였기 때문에 트로이는 괴로워하면서 릴렌카가 남긴 메밀죽을 두어 숟갈 만에 억지로 입안에 모두 밀어 넣었다.

 

...

 

 

분명히 쓸 때는 레냐나 료샤에 대한 생각은 1%도 안 했지만... 어쩐지 지금 보니 릴렌카와 료카는 성별만 다를 뿐 걔들과 좀 닮았다. (심지어 료캬는 얘랑 이름마저 비슷하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어린아이들은 몸에 좋지만 맛없는 음식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자들이란 개별적인 차이는 있지만 어쨌든 어른이 돼도 어린애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나중에 다시 만나면 이 얘기 해줘야지 :)

 

 

예약 포스팅 올라가는 동안은 저를 개인적으로 아는 분들은 댓글 다실 때 비밀 댓글 체크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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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