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뻬쩨르 국립대학교.
다행히 오늘은 비가 그쳤고 심지어 햇살이 쨍쨍 났다. 어제 공연 보고 늦게 잠자리에 들어서 늦잠 자고 정오 다 되어 호텔을 나섰다.
호텔 앞으로 료샤랑 레냐가 왔다. 레냐는 이제 나랑 키가 같다! 아니, 약간 더 큰것 같기도. 그런데 여전히 귀엽다. 내년엔 확 달라져 있을것 같지만 아직은 귀염둥이 꼬마다. 아직도 나를 약혼녀라 칭한다. 어제 오후에 만났을때 '쥬쥬' 하고 꽥 소리를 지르며 달려와 와락 껴안고 뽀뽀를 해줌 ㅋㅋ 그런데 얘가 확실히 커서 전보단 덜 토실 덜 보들보들하다 :) 그래도 귀엽다. 목소리도 아직은 아기같다. (이제 이 귀염둥이도 얼마 안 있어서 변성기도 오고 사춘기가 되겠지 으아앙 ㅠㅠ 근데 이 얘길 하면 료샤가 더 슬퍼함 ㅋㅋ)
오늘은 추억의 여행날이라고 명명했다. 바실리예프스키 섬에 갔다. 내가 옛날에 어학연수를 했던 국립대학교가 있는 곳이다. 료샤도 첫 2년간은 거기 다니다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바실레오스트롭스카야 역으로 갔다. 역 앞 맥도날드에 갔다. 옛날에 쥬인이랑 자주 갔던 곳이다. 당시엔 엄청 힙한 곳이었다. 자본주의의 상징이었다. 료샤도 종종 갔다고 한다. 당시 여친과 데이트하러 :) 내 인생 최고의 맥도날드.
먹고 나서 근처 거리들을 걷고 성 안드레이 사원에 들어가 초를 켰다. 옛날에 뻔질나게 지나치던 곳인데 막상 들어가본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료샤도 이 사원엔 안 들어가봤다고 했다. 물론 레냐도.
7번 버스를 타고 몇정거장 가서 학교 앞에서 내림. 레냐에게 옛날에 버스 기다리던 얘기도 해주고, 학교 옆문과 그 옆에 있던 키오스크에서 한국 신문 팔던 얘기, 비싸서 차마 사지는 못하고 진열된 신문 표지만 읽던 얘기 등을 해주었다.
레냐는 그런 얘기들을 굉장히 재미있어 한다. 그리고 이미 여러번 말해줬건만 꼭 물어본다. '쥬쥬, 그때 울 아빠랑 만났어?' 하고. 아니, 안 만났어. 근데 시간대를 따져보면 접점이 있었다. 어쩌면 스쳐지나갔을 것이다. 맥도날드 옆테이블에 앉아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해주면 레냐는 '아이 아쉬워' 한다. 뭐가 아쉽냐고 물으면 나와 료샤가 더 오랜 친구가 될수도 있었을거 아니냔다.
그런데 이때쯤 되면 료샤는 항상 '야! 그때 내가 옆테이블에 있었으면 쟤가 기억을 못할리가 없지! 나는 그때도 너무 잘생겼었으니까! 그리고 쟤는 미남을 밝히거든!' 이라고 어이없는 망발을 한다!!!! 우씨 미남양반 당신 내 타입 아니셨거든요!!!
날씨가 무척 좋았다. 바람은 찼지만 해는 뜨거웠다. 학교 근처와 네바 강변을 따라 걸었다. 그리고 다시 버스를 타고 궁전교각을 건너 네프스키로 갔다.
카잔 성당 앞에서 내렸다. 레냐는 몇년전 내가 해준 이야기를 기억한다. 성당 앞 분수와 벤치들을 가리키며 '쥬쥬가 쓴 이야기! 미샤가 높은 사람들 초대를 땡땡이치고 저기 앉아 책을 읽었어! 근데 나랑 이름이 같은 레냐가 아이스크림 먹으며 산책하다가 저기 앉아 있는 미샤를 발견했어!' 하고 아주 정확하게 떠올려서 깜짝 놀라기도 하고 또 기특하기도 했다.
우리는 부셰에서 가볍게 차를 마신 후 돔 크니기에 갔다. '나랑 친구들은 여기서 옥스퍼드 미니 영러-러영 사전을 샀단다, 그땐 러한 사전이 없었단다' 라고 말해주면 레냐는 또 신나한다. 근데 료샤넘은 '너 어차피 영어도 버벅대는데 영러사전은 어떻게 썼냐'고 또 놀림 ㅠㅠ 야 임마... 영한사전은 있었단 말이다 그리고 나 책상물림이라 읽고 이해하는건 괜찮았단 말이야아아(지금도.. 크흑 ㅠㅠ)
돔 크니기에서 책을 몇권 샀다. 레냐는 '쥬쥬, 여기 쥬쥬가 좋아하는 도블라토프가 있어' 하고 알려주기도 하고 내가 이웃님 주려고 나보코프 단편집을 고르자 '쥬쥬 나보코프 안 좋아한다며' 하고 놀라운 기억력을 발휘!!!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판탄카 운하로 갔다. 산책을 했고 가게에서 마로제노예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그리고 좁은 내 방에 와서 셋이 놀았다. 이 좁은 방에서 심자어 윷놀이도 했다. 침대 위에 베드커버 깔고 살살 던짐. 료샤넘이 또 이겼다. 레냐는 2등, 나는 꼴찌 ㅋ
좀전에 둘은 돌아가고 나는 씻고 자려는 중이다. 옛날 생각이 많이 나는 하루였다. 쥬인이랑 같이 다니던 시절이 바로 어제 같았다. 그리웠다. 쥬인도 보고프고...
...
그건 그렇고 서무의 슬픔 시리즈가 만화책같은 판형으로 출간되어 있는 꿈을 꾸었다. 깨고 나니 아쉬웠다. 간만에 다시 좀 써보고 싶기도 하다. 아마 뻬쩨르에 와 있어서 그런가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