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속이 좀 나아졌다. 그래도 혹시나 하여 첫물을 버리고 카페인을 최소화해 차를 마셨다.
버터플라이 라넌큘러스를 할인하고 있어서 안 사본 색깔을 골라 사보았다. 사진은 분홍색이 많이 도는데 실제로는 라일락 보랏빛이 도는 분홍색이다. 이 품종의 이름은 헤라. 전에 주문했을 때 들어있었던 피치 연핑크는 아리아드네, 그리고 내가 좋아하지만 좀처럼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고 품절되어버리는 금빛 도는 붉은 오렌지색은 하데스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거창한 이름들이다 :)
담에 뻬쩨르에 가면 이번엔 그젤 찻잔과 접시도 사와야지... 라고 생각하다 슬퍼짐. 대체 언제 다시 갈 수 있는 것인가...
원래는 잎사귀들이 붙어 있는데 내가 다듬었다. 라넌큘러스는 대가 약해서 금방 축 처져버리기 때문에 가능한한 빨리 물올림이 되어야 하고 무게를 줄여줘야 해서. 잎이 없으면 좀 휑해보이긴 하지만 ㅠㅠ 근데 라넌큘러스의 잎사귀들은 별로 예쁘지 않아서 그대로 붙어 있다고 딱히 근사해보이진 않는 것 같다.
조그만 줄기는 잘라내어 미니 화병에 꽂아둠. 짝수라서 뭔가 찜찜. 하지만 이 화병은 정말 손가락만한 크기라 세송이는 안들어가고... 한송이만 꽂자니 나머지 한송이를 꽂을 데가 마땅치 않음. 꽃이 그래도 활짝 피고 있으니 내일쯤 조그만 것은 보드카잔에 옮겨놔야겠다.
며칠 전 도착한 로네펠트 다즐링 중 하나. 이 Barnesbeg 다즐링은 처음 마셔보는 것이었는데 같이 주문했던 마가렛의 호프나 서머 골드보다 가격이 조금 더 비싼 편이었다. 위염을 생각해 차를 마시지 말까 했으나 새 차의 유혹에 굴복해 결국 토요일 오후에 차를 우려 마심. 마셔보니 수색이 연하고 풀향과 좀 구수한 뒷맛이 있는 차였다. 맘에 들긴 했는데 나는 다즐링은 세컨드 플러쉬 계열의 좀 진한 맛을 더 좋아하는 편이라 다른 거 사볼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좀 함. 서머 골드와 마가렛의 호프 둘 다 가벼운 스타일이라서. 어쩌다보니 이번에 주문한 세가지 다즐링은 모두 가벼운 애들이 되었다.
지난주 금요일에 도착했던 장미들이 완전히 활짝 피어 이제 서서히 시들고 있다. 꽃송이가 커져서 여기저기 나눠 꽂아 두었다. 온 집안에 있는 꽃병과 유리컵들을 다 세어보니 여덟개나 된다.
이건 꽃의 절반 정도.
얼마 전 할인 기간에 질렀던 로모노소프 바실리사 찻잔. 이건 예전에 뻬쩨르에 놀러가면 로모노소프 샵에 갈 때마다 들었다놨다 하던 애였는데 결국은 이렇게 사게 될 줄 알았다면 그냥 그때 살걸.... 그랬으면 조금 더 싸게 샀을텐데 ㅎㅎ
휴가를 내고 쉬었던 금요일 오후. 티타임. 몸이 안 좋아서 차는 첫물을 버리고 카페인을 최소화해서 마셨다.
이번 주말은 장미 :)
제목의 '가짜 찻잔'. 인터넷 쇼핑의 폐해로 사기당함 ㅜㅜ
웨지우드의 이 시리즈를 좋아해서(화려한 것이 딱 내 취향) 두세 가지를 가지고 있는데, 얼마 전 한참 일과 윗분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때 찻잔을 이것저것 지르면서 이것도 주문했었다. 예전엔 백화점이나 믿을 수 있는 쇼핑몰에서 샀었는데 이때는 쿠팡에서 검색해보니 다른 곳과 대비해 2만원 이상 저렴하게 파는 곳이 있었다. 해외직구라서 그런가보다 하고 혹해서 주문했는데 몇주 전 물품이 도착해서 풀어봤더니 이런 것이 나왔다.
포장 상자도 아주 흡사하게 만들어놨지만 재질이 좀 다른 느낌이었고 상자를 열어보니 이 찻잔이 나왔는데, 정품 카드도 없고, 심지어 문양은 2차 복사한 것처럼 흐릿하고 조잡하고, 원래 웨지우드 이 시리즈 찻잔에 있어야 할 두줄의 금테두리도 없고, 받침접시 밑바닥에는 원래 어디에서 만들었다고 적혀 있어야 하는데(메이드 인 잉글랜드, 메이드 인 타일랜드 등등) 그 문구만 없었다. 중국에서 카피로 만든 가짜 찻잔이었다!
빡쳐서 항의하고 환불을 받을까 했는데 그때 너무 바쁘기도 하고 싼 가격에 눈이 멀었던 내가 바보같기도 해서 그냥 놔뒀다. 찻잔은 잘 씻어서 말려두긴 했지만 '에잇 가짜 찻잔 사기당했어!" 란 맘에 개시도 안 하고 있다가 오늘은 '그래도 아까우니까 한번 써보기나 하자' 하고 꺼냄. 자세히 보지 말고 그냥 파란 색깔만 힐끗 보면서 그러려니 하기로 함. 힝...
엉엉... 일단 손에 들어온 찻잔이니 그래도 너무 미워하지 말아야지
그치만.. 특히 저 받침접시의 꽃무늬를 보면 화가 치밀어오르고... (그냥 이것만 보면 원래 그런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지만 정품의 문양을 생각하면....)
최근 지른 찻잔 하나 더. 그젤과 로모노소프에 이어 자잘한 꽃무늬의 노리다케 찻잔. 나는 원래 이런 아기자기한 스타일은 취향에 딱 들어맞지 않는 편이고 노리다케는 디자인이 좀 간질간질한 타입이라 생각해 사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티룸에서 이 시리즈를 쓰고 있는데 거기 가본지 이미 한참 지난데다, 또 넓적하고 둥그런 모양 때문에 홍차 수색이 예쁘게 보인다는 장점이 있어서 '그래 고전적으로 한번~' 하면서 주문해보았다.
두개 세트로 주문해서 하늘색의 이 하나사라사는 내가 갖고 노란색의 젠플라워는 홍차와 꽃돌이 슈클랴로프님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는 이웃님께 선물로 보내드렸다. 만나지를 못하니 자매 찻잔으로 원격티타임이라도 하자는 마음에 :) 오늘 개시해봤는데 역시 수색이 예쁘게 보인다 + 차 향이 잘 퍼진다는 장점이 있고 너무 넓고 둥그렇기 때문에 찻물이 금방 식는다는 단점이 있다. 뭐 그래도 맘에 든다 :) 종일 비가 주룩주룩 내려서 사진이 어둡게 나와 아쉬움. 밝아야 더 예쁜 찻잔인데.
아기자기, 간질간질(ㅋㅋ) 역시 노리다케는 나에겐 좀 부담스러운 스타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어도 괜찮은 찻잔임.
가장 좋아하는 봄꽃인 라일락을 주문해보았다. 아직 꽃봉오리 상태인데 그래도 향이 이미 진하게 퍼지고 있다. 스프레이 델피늄은 이것이 마지막 남은 꽃. 차 마시는 동안에도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다 ㅠㅠ
새 찻잔이니까 요리 보고 조리 보고 여러 장 찍어봄.
라일락 사진들 몇 장. 잎은 내가 3분의 2 정도 따서 다듬었다. 근데 아직 봉오리 상태라 그렇긴 하지만 가격 대비 양이 좀 적어서 쫌 실망함 ㅜㅜ 원래 여기서 보내주는 꽃들은 양이 풍성하고 나름대로 싱싱한 게 장점인데. 라일락은 물올림이 잘 안되는 편이라 관리가 어렵다는데 일단 아침에 정리해 꽂아놓고 분무기로 물을 잔뜩 뿌려 주었다.
일요일 오후 티타임. 막 차를 마시려는데 너무 흐리고 어두워져서 슬펐다. 근데 차를 다 마시고 났더니 다시 좀 밝아짐. 뭐야 ㅠㅠ
기분 전환을 위해 장만한 그젤 찻잔 개시 :) 사람의 취향이란 게 나이 먹으면서 변하는 게 확실하다. 어릴 때 맨첨 러시아 갔을 땐 이런 그젤 도자기가 뭐가 이쁜지 이해도 안 가고, 알록달록 꽃무늬도 촌스럽다 생각했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저런 것이 이뻐보임. 로모노소프는 옛날부터 이쁘다고 생각했지만 그젤은 취향이 아니었는데.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코로나가 잦아들고 다시 뻬쩨르에 가게 되는 날이면 이제 로모노소프에 이어 그젤마저도 사게 될지도... 지금은 러시아에 못 가는 아쉬움을 이렇게 쇼핑으로 달래고...
델피늄이 좀더 피었다. 파란색 하늘색.
알스트로메리아도 여전히 활짝. 어쩐지 얘가 델피늄보다 더 오래 갈 것 같다.
테이블에 올려놓기엔 화병이 너무 커서 델피늄 중 몇 대를 솎아내 가느다란 꽃병에 따로 꽂았다.
일요일 오후 티타임. 카페인 없는 차를 우려 마셨더니 만족도가 덜하다. 아침에 너무 몸이 쑤시고 아파서 빈속에 진통제를 먹었더니 속이 쓰려서 또 한참 괴로워하느라 결국 양질의 수면을 취하지 못했다.
알스트로메리아는 아직 봉오리 상태이다. 두어 송이 정도는 조금씩 피어나는 중임. 꽃송이가 벌어지기 시작한 애들을 찬찬히 쳐다보니 안쪽의 일부는 노란색이고 검정반점이 있다. 그리고 아무리 봐도 빨간색이라기보단 자줏빛 빨강이다. 하지만 자주색 치고는 안쪽의 노란색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오렌지 기운이 살짝 돌아서 묘하게 웜한 느낌이다.
일요일 오후 티타임. 오늘은 어제보다 침대에서 일찍 기어나와서 정오를 좀 지난 이른 시각에 차를 마셨다. 차를 다 마시고 나서도 2시 반 무렵이었으므로 느긋하게 글을 쓸까 했는데 친구가 논문 때문에 도와달라는 연락을 해와서 그거 통화하고 또 자료를 좀 검색해 주고 나니 어느 새 네 시가 다 되어 가고 있다. 이제 느긋한 오후는 이미 지나간 것 같고... 이렇게 된 거 어제 게으름 피우며 미뤘던 머리 감기를 먼저 해야겠다. 흑흑 그냥 뿅~ 하고 주문을 외면 머리가 다 감겨지고 말려져 있으면 좋겠다옹.
지난 주말에 도착했던 버터플라이 라넌큘러스 중 아직 살아 있는 애들로 티타임 장식.
기분 전환을 위해 간만에 엘러리 퀸의 추리소설 관련 미니 에세이들을 다시 읽는 중.
저 꽃분홍 라넌큘러스는 푸른난초님이 보내주신 애들 중 줄기가 뚝 꺾어져서 짧게 잘라내 따로 꽂은 것이다. 라넌큘러스는 색채, 우아함, 미모, 다양한 화형 등등 다 갖췄지만 유일하게 튼튼한 꽃대는 못 갖춰서(대롱처럼 속이 비어 있다) 잘 꼬부라지고 운 나쁘면 무르고 똑 꺾어져버린다. 그래도 악착같이 짧게 잘라내어 이렇게~ 하여튼 그래서 라넌큘러스들은 시간이 갈수록 조그만 병이나 보드카 잔 같은 데 한송이씩 들어가 집안 여기저기 버섯처럼 분포하게 됨 :))
살구 타르트를 먹을 때면 료샤가 생각난다. 걔가 달콤하게 절인 살구와 서양배로 만든 디저트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과와 무화과, 체리 종류가 들어간 걸 더 좋아하고 살구나 서양배는 딱히 선택지가 없을 때 고르는 편이지만. 일년도 훨씬 넘게 뻬쩨르에 못 갔고 친구와 만나 차를 마시며 서로 디저트를 뺏아먹으며 '야, 살구는 원래 내가 좋아하는 건데 왜 네가 시켰냐. 그러니까 나 줘~' 하고 투닥거리던 것도 그리워져서 아쉬운 김에 미니 살구 타르트를 사서 오늘 티타임에 곁들여 먹음. 친구야 보고 싶다.
비가 종일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공휴일이라 이런 날씨에 집에 있을 수 있어 다행이다. 이런 날씨에는 기분이 차분해지고 또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사실 뭔가를 집중해서 쓰기 좋은 날씨이다. 이것도 때에 따라 다르지만.
베란다 창의 방충망에 빗방울이 커다랗게 송알송알 맺혀 있어 찍어봄. 그런데 오래된 아파트라 베란다의 파이프 사이로 약간씩 물이 새는 것을 발견했다 ㅠㅠ 일단 타월로 물이 스며나오는 쪽을 덮어두었다.
비 때문에 너무 어두워서 오전부터 내내 불을 켜고 있어야 했다. 그래서 티타임 사진은 어두침침하게 나옴. 연휴 동안 기분 전환으로 오랜만에 반지의 제왕 다시 읽는 중. 최근 3인공역본이 재단장해 출간됐는데 너무 비싸서 그건 살 엄두가 안 난다. 좋아하는 소설이긴 하지만 그 정도로 좋아하는 건 아니어서. 그래도 옛날에 그 번역자들의 초기 버전으로 제일 처음 읽었는데 좀 아쉽긴 하다. (반지전쟁 시절)
이 소설 읽을 때마다 눈물 찔끔하는 장면이 두 개 있는데 1. 보로미르 죽을 때 2. 세오덴 왕 죽을 때. 흐흑 보로미르... 나는 보로미르를 좋아했건만... 불쌍한 인간... 그리하여 오늘도 보로미르가 화살 맞아 죽어가며 아라고른과 마지막 대화를 나눌 때 눈물이 났음. 아라고른은 너무 고결하고 완벽한 영웅이라 나로서는 별로 맘이 안 가고, 오히려 참으로 인간답고 욕망에 흔들리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마지막까지 싸우다 죽은 보로미르가 항상 맘에 밟혔다. 그에 비해 이 사람의 동생 파라미르는 너무 흐릿해서 별로 맘에 안 들었음. 게다가 영화판에서도 보로미르를 연기하신 분이 무려 숀 빈이라 더더욱 멋있게 보정되어버렸음(흑흑 영화 볼 때도 보로미르 죽을 때만 울었지...) 그리고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예나 지금이나 펠렌노르에서 에오윈이 악령 영주와 대결하는 장면이다. (영화에선 그 장면이 내가 원하는 만큼 멋있지 않아 매우 실망했음) 그리고 반지 들고 왕고생하는 프로도에게는 맨날 대왕 이입이 되고... 프로도 쫓아가며 온갖 충성 다 바치는 샘을 언제나 좋아했다. (뭐야, 결국 나는 충실한 집사를 원하는 것인가!)
... 그런데 MBTI도 그렇고 심리테스트, 영화 테스트 같은 거 하면 맨날 간달프가 나옴. 나 간달프 별로 안 좋아하는데 흐흑... 난 메리나 피핀이 되고픈데 ㅜㅜ
조드쳬고 로시 거리와 바가노바 발레학교 그려진 찻잔 꺼내서 차 우려 마심. 어젯밤에 첫문단부터 완전히 새롭게 고쳐 쓰기 시작했는데 그러고 나자 인물도 이야기도 손에 잘 붙어서 기분이 좋아졌다. 차 마신 후 잠시 반지의 제왕을 미뤄두고 페테르부르크 운하와 강을 다룬 여행서 두 권을 뒤적여보았다. 쓰기 시작한 글 때문에 지도 보느라고. 나는 그렇게도 자주 페테르부르크를 드나들었고 두번이나 살았는데 아직도 머릿속에 전체 지도가 잘 안 그려짐. 그렇게 복잡한 도시도 아닌데! 하긴 서울을 머릿속에 그려봐도 강서 강북 강남 강동이 마구 뒤엉키니 애초부터 지리 감각이 형편없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줄기가 짧아서 따로 잘라내어 작은 화병 두개에 소분해 서재에 가져다 둔 버터플라이 라넌큘러스들도 이제 활짝 피기 시작했다.
과로와 무리 때문인지 콧물/재채기 증세가 있음. 열은 없어서 다행이다만 하여튼 쉬고 있다. 아침에 도착한 라넌큘러스들과 함께. 겨울 꽃이니 이제 마지막이겠거니 하고 한번 더 주문해 보았다. 오늘은 노란색 버터플라이 라넌큘러스도 끼어 있어 좋다. 사진은 꽂은지 얼마 안돼서 물올림이 아직 덜 되었을 때라 꽃들이 좀 구겨져 있는데 지금은 좀더 반듯하게 활짝 피어오르고 있다.
오랜만에 꺼낸 밤 찻잔. 찻잔 이름이 밤(nochi)이다. 예전에 네프스키 거리의 로모노소프 가게에서 이거 사면서 '이름마저 너무나 낭만적이다' 하고 생각했었다.
꽃은 화병 세 개에 나눠서 꽂아두었다. 다 피고 나면 아마 유리잔과 작은 꽃병을 두어개 더 꺼내야 할 것이다.
아직은 꽃잎이 쫌 꾸깃꾸깃.
오랜만에, 타마라 카르사비나의 회상록 읽음 :) 이 책을 꺼내면 이미 오래 전이 되어버린 2006년 즈음, 뻬쩨르의 기숙사 방에 앉아 조금 추위에 떨며 이 책을 열심히 읽던 기억이 떠오른다.
새벽에 깼다가 '아, 토요일이구나. 늦잠 잘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과 함께 굉장히 안도하며 도로 잤다. 그래서 늦잠 자고 토요일 오후 티타임은 이렇게. 오늘은 스토크와 라넌큘러스에 맞춰 찻잔도 분홍색 계열로.
기분 전환을 위해 가벼운 읽을거리 계속. 삼총사를 다시 읽었으니 당연한 순서로 이 책으로 넘어옴. 그런데 나는 항상 이 소설보단 삼총사를 더 좋아했다. 이 소설은 보물 찾고 은혜갚는 파트까지만 좋아하고 정작 복수를 다루는 기나긴 이야기들은 딱히 내 취향이 아님. 그래도 한번 잡으면 머리 아프지 않게, 기분 좋게 편하게 읽어나갈 수 있기 때문에 1~2년에 한번쯤은 다시 읽게 됨.
맨 위 사진과 다른 점 : 만개한 라넌큘러스가 꽂힌 화병을 하나 더 올려둠. 꽃들은 아직 이렇게 살아 있음.
연휴는 끝났지만 오늘 하루 휴가를 낸 덕분에 집에서 쉬며 오후의 차를 우려 마셨다. 이 한가로움도 이제 오늘로 끝. 간밤에 너무 늦게 잠이 들어버렸고 아침에도 늦게 일어나서 내일부터의 노동 리듬이 걱정되어 홍차는 디카페인 70%, 다즐링 30%로 배합했다. 그랬더니 두통이 제대로 가시지 않음 ㅜㅜ
어슐러 K. 르 귄의 강연과 서문, 서평 모음집이 나와서 얼마 전 주문했는데 틈나는 대로 읽고 있음. 나는 이 작가를 매우 좋아하지만, 사실 에세이에서는 좀 선생님 같은 느낌이라(너무너무 진지하셔서) 이분은 소설을 읽는 쪽이 더 마음에 드는 타입이다. 그건 그렇고 이 책 표지는 별로 내 취향이 아님... 너무 알록달록...
소분해 놓은 꽃들을 한 자리에 모아 보았다. 이제 꽃들이 활짝 펴서 화병 네 개에 나눠 꽂아야 한다. 튤립들 중에서도 오렌지 튤립은 완전히, 꽃잎이 바깥으로 뒤집어질 정도로 피어버려서 오래 가지 못할 것 같다. 오렌지 튤립은 활짝 피니까 쫌 호박꽃을 연상시키는 구석마저 있다 ㅋㅋ
사진을 제일 잘 받는 건 바로 이 노랑 빨강 두겹 튤립 :) 실물보다 사진에서 더 이뻐보임. 색채 대비 때문에 흰 벽을 배경으로 하면 그림처럼 보여서 그런 것 같다.
연분홍 튤립이 제일 여리여리하고 대도 쉽게 꼬부라지고 처져서 한 송이는 라넌큘러스와 스토크 사이에 꽂아두었다. 나름대로 색깔을 맞춰줌.
프리지아들도 많이 피어서 따로 꽂아두었다. 그리고 호박꽃 쫌 닮은 오렌지 튤립 한 송이 같이.
일요일 오후 티타임. 어제 일리아스를 다 읽은 후(역시나 헥토르의 죽음과 프리아모스 왕이 아킬레우스 찾아가 흐느끼는 장면에서 눈물이 ㅠㅠ), 오늘은 오디세이아를 마저 읽고 있다. 이 책도 역시 옛날옛날에 산 거라 엄청 바랬음. 당시엔 인터넷 책 주문 그런 게 없었고 그저 동네 서점들이나 시내의 큰 서점에 가서 발견하는대로 샀던 터라 출판사나 번역을 따질 여유가 별로 없었는데, 사실 이 판본은 번역이나 인쇄 상태가 별로 안 좋아서 새로 살까 생각도 든다.
일리아스에서 심금을 울리는 장면이 헥토르와 프리아모스 왕인 것과 마찬가지로 오디세이아에서도 내 가슴을 울리고 눈물을 흘리게 하는 장면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천신만고 끝에 귀향한 오디세우스가 거지꼴로 몰래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가 사랑했던 사냥개 아르고스가 주인을 알아보는 장면이다. 너무 늙고 기력이 없어 주인에게 달려가지도 못하고 그저 반가워하다 곧 세상을 떠나는 아르고스에 대한 짧은 묘사를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나옴.
오늘도 미세먼지 때문에 날씨가 너무 흐리고 어두컴컴하다. 이른 오후부터 차를 마셨는데 빛이 잘 들지 않아 속상했다. 티타임 사진 몇 장 + 그리고 활짝 핀 튤립 사진들도 몇 장.
튤립은 정말 화려하고 그림처럼 예쁘다. 그리고 장미처럼 가시나 잎사귀 손질이 까다롭지 않아서 편하다.
토요일 오후 티타임은 이렇게 보냈다. 저 책은 무려 중학생 때인가 고등학생 때 샀던 것인데 부모님댁에 있던 것을 들고 왔다. 책이 너무 오래되어 누렇게 바랬고 글씨도 흐려짐. 되게 오랜만에 다시 읽고 있는데 역시 한번 잡으면 놓을 수가 없다. 이거 다 읽으면 당연히 오디세이아를 이어 읽어야 함. 학창 시절부터 닳도록 읽었던 책들인데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마지막으로 읽었던 건 10년도 훨씬 전이었던 것 같다.
일리아스에는 무수한 누구의 아들인 a와 또 누구의 아들 b가 맞붙는 순간들이 이어지고 상대방 중 하나는 창이든 칼이든 화살이든 돌멩이든 하여튼 맞아서 죽는 장면들이 끊임없이 나온다. 특출난 영웅들은 물론 예외지만, 수많은 인물들이 파도치듯 밀려오고 스러지며 나아간다. 누구의 아들, 어느 가문, 어느 왕국, 또 누구의 아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이기고 죽는다. 재미로 따지자면 오디세우스 1인에 집중되고 각종 아기자기한 모험들이 이어지는 오디세이아가 더 재미있겠지만 일리아스 안에는 정말이지 모든 것이 다 있다.
그건 그렇고 이 책은 읽을 때마다 '우와... 엄청 간결한 문구들이지만 진짜 정곡을 찌르게 잔인한 묘사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듬. 창을 던졌더니 눈으로 들어가 혀를 꿰뚫고 턱으로 나왔다느니, 화살이 엉덩이뼈를 부수고 방광을 꿰뚫었다느니, 무릎이 꺾어지기 전에 머리와 코와 입이 먼저 아래로 떨어졌다느니 등등... 한 문장 안에서 공격과 파괴, 죽음이 동시에 다 일어나고 완결된다.
그리고 이 완역본을 읽기 앞서 초등학생 때 어린이문고로 읽었던 '트로이의 목마'나 역시 어린이 판본의 그리스 신화까지 거슬러올라가봐도 나는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트로이를 응원했었다. 트로이 쪽이 너무 불쌍했다. 그리고 파리스가 뭐 그리 잘못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운명의 장난! 그저 여신들 싸움에 등터진 거 아닌지... 권력과 재물, 지혜, 아름다움 이 세가지 중 고르라고 했을 때 아름다움을 고른 것이 뭐 그리 잘못인가! 뭐 별로 용감한 인물이 아니어서 파리스는 딱히 좋아하진 않았지만 고결한 헥토르를 좋아했었음. 헥토르 죽을 때랑 목마 들어와서 트로이 망할 때 눈물 흘렸었다 흐흑...
오후에 차 마시면서 열심히 읽어서 이제 파트로클루스의 출전 장면을 앞두고 있다. 이 사람이 또 불쌍하다. 아킬레우스라는 인간은 딱히 정이 안 가는데 파트로클루스는 훨씬 인간적인데다 비극적으로 죽게 되니 불쌍함. (생각해보니 비극적으로 죽는 등장인물들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 것인가... 하다가, 일리아스에서 안 죽는 사람이 별로 없고 이 책엔 안나와도 트로이 전쟁 막바지부터 귀국 후까지도 왕창 죽어나가니 꼭 그래서도 아닌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