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9 금요일 밤 01 : 조식, 모스크바와 명동, 궁전과 시장, 어려운 폴란드어, 지하철과 버스, 우하 비슷한 것 2023 warsaw2023. 9. 30. 04:10
곤하게 잤는데 새벽에 깨버려서 다시 한시간 정도 잤다가 결국 여섯시 전후 더 잠들지 못하고 계속 뒤척이기만 했다. 침대는 굉장히 편했다. 바닥에 뭔가가 없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배기는 느낌이 전혀 없었고 푹신하지 않아서 좋았다. 그런데 이 편한 침대에서 왜 많이 못 잤는지 ㅠㅠ 그래도 새벽에 깼을 때 너무 곤하게 자서 그런지 내가 어디 있는지 한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여기 시간으로 일요일 정오 비행기를 타야 하기 때문에 여행이 오늘과 내일 이틀밖에 남지 않아 무척 아쉬웠다. 그래서 오늘은 여태 안 가본 곳, 안 해본 것들을 해보았다. 어제의 인어상과 좀 비슷하려나. 즉, 도착한 날 시내 진입하면서 실루엣을 보고는 '아아 소련 같다' 라고 생각했던 문화과학궁전, 그리고 시장에 가보기로 한 것이다. 그외 멋진 호텔에 머무르고 있으니 티타임도 즐기기로 했다. 결과적으로는 이 셋은 그저 그런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이 호텔은 조식 포함 요금밖에 없었기 때문에 조삼모사로 좋아하며(더 비싸진 것은 생각하지 않음) 아침을 먹으러 내려갔다. 뷔페는 아주 간소했고 주로 달걀 위주의 메인 조식 하나와 사이드 하나를 주문받아서 가져다주었다. 주문하면 갖다주는 건 좋은데 나처럼 가리는 게 많은 사람은 뭐가 이것저것 있는 게 더 좋을 때도 있어서... 달걀 요리의 대부분은 수란이었기 때문에 반숙이나 안익은 계란 안 먹는 나로서는 오믈렛 외엔 선택지가 없음 ㅠㅠ 내일은 프렌치 토스트를 주문해봐야지. 어쨌든 에그화이트 오믈렛과 아보카도 사이드를 주문했는데, 나는 원래 아보카도를 딱히 좋아하지 않지만 식초와 후추 등 간이 잘되어 있어서(조금 과카몰리 같은 느낌으로 간을 해주었다) 오믈렛과 함께 먹으니 맛있었다(떠나오던 날 공항의 에그드랍에서 먹었던 맛없고 달달한 아보카도 계란 샌드위치와는 하늘과 땅 차이) 오믈렛도 생긴 건 좀 안 예뻐보였지만 실제로 먹어보니 폭신하고 맛있게 잘 만들어주었고 아래 깔린 토스트도 바삭했다. 그것과 홍차를 주문하고, 샐러드와 과일을 조금 가져다 먹었다.
조식을 먹은 후 호텔을 나섰다. 오늘도 아침부터 쨍쨍했고 후드티 원피스를 입었음에도 더웠다. 볼트로 택시를 불러서 문화과학궁전에 갔다. 이것은 소련 시절 만들어진 건물로, 박물관, 전망대, 극장 등이 모여 있다(무슨무슨 궁전이란 소련 시절에 잘 붙이던 용어이다. 왕이 사는 궁전이 아니고 ~센터 비슷한 개념이다) 소련에서 소위 '선물'로 만들어준 건물이라는데 폴란드인들이 이 건물을 보면 느낌이 묘할 것 같다. 내려서 보니 정말 어마어마하게 크고 높고 육중하고 꼴보기 싫었다(ㅜㅜ) 내가 모스크바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모스크바국립대학교 건물을 비롯해 각종 건물이 너무 크고 무겁고 잿빛으로 내리누르는 느낌 때문인데 바르샤바 한복판에 모스크바의 일부를 이식해놓은 것 같았다. 전망대는 심지어 30즈워티를 넘게 내야 했는데 원래부터 높은 것도 싫어해서 전망대에도 취미가 없고 바르샤바 시내가 그렇게 아름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서(이것저것 재밌긴 한데 아름다움과 매력 쪽은 좀 덜함) 그냥 입구 로비만 들어갔다가 나옴. 이러려고 내가 택시를 타고 왔는가 싶었지만 그래도 또 안 가봤으면 아쉬웠을테니, 그리고 계속 구시가지와 노비 쉬비아트, 대학가와 대사관, 그 뒷길 등만 다니고 막상 현대적 시내는 별로 안 가봤으니 오늘 다녀온 건 후회하지는 않는다.
너무 높고 육중해서 간신히 전체 높이를 잡고 찍은 사진. 이거 말고는 다 구도가 찌그러짐.
그런데! 인어 광장도 원주 광장도 그랬지만 여기도 광장이고! 그늘 하나도 없고 엄청 덥고! 게다가 여기는 중앙역 맞은편이라 엄청나게 번잡하고 크고 난리였다. 너무 더웠다. 게다가 여기서 시장에 가려고 첨엔 걸어가보려 했지만 나의 방향치 특기가 되살아나면서 구글맵이 너무 헷갈렸다. 그래서 택시를 잡으려고 볼트를 불렀더니 내 위치가 정확하지 않다고 해서 취소하고는 다시 구글맵 검색을 해서 지하철을 한정거장 타고 가서 걸어가기로 했다(전체 다 걸어가기엔 방향도 헷갈리고 다리도 아프고 더워서) 이리하여 나는 바르샤바에서 지하철을 처음으로 타보게 되었다.
나는 중앙역에서 지하철을 탔는데... 눈에 보이는 입구로 개찰해 들어갔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 개찰해 내려가자마자 곧장 지하철 플랫폼이 나왔는데 내가 타야 하는 방향은 반대쪽이었던 것이다. 건너가는 계단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뭔가. 이때 지하철이 들어왔고 나는 반대방향임을 알면서 그냥 탔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면 혹시나 반대로 올라가는 플랫폼이 같이 붙어있지 않을까 하고. 다행히 다음 정거장은 정말로 그렇게 되어 있어서 얼른 내려서 반대방향 지하철을 다시 타고 스비아토크리지스(? 성 십자가 교회 역인데 단어가 맞는지 헷갈림. 일주일째인데 여전히 폴란드어를 제대로 읽을 수가 없다. 일단 단어가 너무 길고 자꾸만 w가 나와서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 이게 노어를 알기 때문에 더 헷갈리는 건가 싶고... 작년에는 폴란드항공과 공항에서 폴란드어 들으면서 조금만 배우면 금방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와보니 '아 안되겠구만' 싶다)에서 내려서 구글맵을 보며 시장(hala mirowska)을 찾아갔다. 다행히 그리 멀지 않았고 찾기가 쉬웠다.
시장 찾아가는 길에 찍은 풍경. 이게 아마 krolewska 거리였을 것이다. 이 풍경은 딱 명동 근방 같다. 첫날에 택시로 숙소 들어올때 이 길과 문화과학궁전 쪽을 지나왔기 때문에 바르샤바의 첫인상은 명동과 모스크바를 섞은 느낌이 되었던 것이다. 혹은 도쿄 같기도 했다. 대도시의 현대식 중심가는 비슷비슷하다.
시장에 도착했다. 도심에 있는 시장으로는 가장 유명한 곳인데, 정오 즈음 도착했으나 이미 로컬들로 우글거렸다. 뻬쩨르의 블라지미르스키 시장이나 빌니우스의 시장이 떠올랐다. 기억을 되살려보니 헬싱키 시장도 좀 비슷했다. 여기는 농산물이 제일 많았고 너도나도 줄을 서서 과일과 야채를 사고 있었다. 여러 종류의 자두가 정말 많았다. 폴란드는 자두가 유명한 듯 자두가 들어가는 음식도 많고 여기저기서 자두를 판다. 그러다 드이냐를 파는 좌판을 발견해서 너무 먹고 싶었지만 그 한 통을 먹을 재간이 없으니 그냥 포기. 대신 사람들이 줄서 있는 빵집에서 포피씨드 빵 한 덩어리를 샀다. 그런데 사고 나서 보니 그 가게가 '글루텐 프리'라고 적혀 있었다. 글루텐 프리까진 괜찮은데 그럼 비건인가... 비건 빵은 맛없는데 흐흑... 기껏 여기까지 와서 빵을 샀는데 비건이라 맛없으면 슬플 것 같다. 평소 비건 음식이나 빵을 싫어하진 않는다만 여행와서까지 그러고 싶지는 않고... 어쨌든 빵과 케익에는 버터가 들어가야 맛있는데!
사진 왼편 가운데는 시장 건물 내부에 있던 어떤 제과점 진열대. 블리클의 박력 있는 에클레어보다 더욱더 박력 있는 크림 범벅 비주얼이라 찍어두었다.
시장을 다 구경하고 나오니 너무 배고프고 더웠다(결국 빵 한덩어리 산 게 전부) 도저히 걸어갈 수가 없어서 구글맵 검색을 해서 근처 정거장에서 106번 버스를 타고 5정거장을 가서 노비 쉬비아트 거리에서 내렸다(이제 버스도 마스터함~) 그리고 며칠 전부터 찍어둔 우크라이나 해산물 식당 czarnomorka에 갔다. 지나가다 생선수프 간판을 보고는 '오오 우하 아닌가' 하며 계속 가고 싶어했던 곳이다.
미리 메뉴를 검색해서 우하 수프와 새우 올리비에 샐러드만 먹을 생각이었다. 생선구이 시키면 너무 오래 걸린다고 하고 비싸서. 그런데 우하는 공짜라고 했다. 이게 웬일인가 했는데 뭔가 미끼용으로 공짜 수프를 셀프로 퍼갈 수 있게 하고 있었다.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했다. 나는 생선과 해물이 많이 든 진짜 우하를 먹고 싶었는데 들통 가득 들어 있는 우하는 그냥 연어가 아주 얄팍한 부스러기로 둥둥 떠있고 감자와 당근만 가득했다. 국물을 먹으니 좋긴 했지만 제대로 된 우하는 아니었고 그냥 횟집에서 서더리로 대충 끓여주는 매운탕이랑 비슷했다. 물론 맵지는 않았지만. (횟집 매운탕 특유의 그 맛을 기름져서 안 좋아하는 1인)
하여튼 공짜 생선수프(... 국물) 한 그릇, 그리고 새우가 든 올리비에 샐러드에 논알콜 아페롤 스피리츠를 시켜서 먹었다. 너무 적게 시킨 거 아닌가 했지만 먹고 나니 배불렀다. 올리비에는 맛있었다. 올리비에 한 접시에 만원이나 하다니 너무하다 싶었지만 어쨌든 자잘한 칵테일 새우가 들어있긴 해서 내륙국가니 어쩔수 없으려니 했다 ㅠㅠ (역시 바다가 있는 나라들이 음식이 맛있고 풍부한 듯함. 여기 와서 제대로 된 폴란드 음식은 첫날 피에로기 외엔 딱히 찾지 않았음)
생선국물... 수프. 연어 부스러기는 아주아주 얄팍했다.
새우 올리비에 샐러드.
이렇게 먹고 나서 일단 방으로 돌아갔다. 이미 너무 녹초가 되어 있었다. 걸어가는 것도 엄청 힘들었다. 가는 길에 다시 비에드론까에 들러 물을 샀다. 아아 아직 01밖에 안썼는데 왜 메모가 이렇게 길고 안 끝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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