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나는 그가 제냐의 방에 있었을 거라고, 창문을 열어서 찬바람이 들어오면 제냐가 깰까 봐 신경이 쓰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냐와 내 방은 거의 완전히 똑같거든요. 기다란 직사각형 모양의 원룸 끝에 아주 좁은 베란다로 나가는 창문이 달려있어서 창을 열면 그대로 바람이 들어와요. 우리 층이랑 걔네 층은 주인이 같으니까요. 방 다섯 개짜리 코무날카 두 개를 조각조각 쪼개서 세를 놨는데 당연히 화장실과 샤워부스가 딸린 쪽이 더 비싸죠. 나는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샤워부스가 딸린 방에 살고 있어요. 차를 권하러 들렀을 때 보니 제냐네 방도 나랑 똑같았어요. 훨씬 더 썰렁하긴 했지만요. 아무래도 사내애가 사는 곳이고 제냐는 집에 자주 들어오는 것 같지도 않았으니까. 침대도 내 것보다 작았어요. 제냐는 그렇게도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데. 그 방에는 소파도 없었어요. 의자 몇 개랑 식탁만 있었죠. 아마 제냐는 그 좁은 침대에서 그 금발머리 리디야를 꼭 끌어안고 자곤 했겠죠. 어쩌면 이 사람도. 하지만 성인 남자 둘이 그 좁은 침대에서 자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아마 제냐 몸 위에 반쯤은 올라탄 채 자야 할 거예요. 그러니까, 이 둘이 바냐 말대로 정말 그런 사이라면. 그러자 나는 정말로 궁금했던 질문을 불쑥 내뱉고 말았어요.
“ 바냐가 그랬어요, 당신이 제냐 애인이라고. 정말이에요? ”
“ 바냐가 누구예요? ”
“ 제냐 동생. 본 적 없어요? ”
“ 동생이 있는 건 알아요. ”
그는 화를 낼 수도 있었고 모른 척할 수도 있었어요. 사실 화를 내는 쪽이 더 그럴싸하죠. 스트레이트라면 꼭지가 돌 거고 진짜로 ‘그런’ 취향이라면 들키지 않기 위해 더욱 화를 낼 테니까. 바냐는 그런 게 유행이라 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그건 그저 영화나 방송, 잡지랑 신문에서나 뻔뻔하게 떠드는 거죠. 아니면 내가 호객하러 가는 거리 한켠에 있는 ‘그쪽 구역’ 애들이나 가능한 거죠. 이렇게 번듯한 남자들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아요.
미샤는 여전히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있는 담배를 입술 가까이 가져갔다가 도로 내려놓으면서 말을 이었어요.
“ 글쎄요. 애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좋아하죠. ”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을 했어요. 지하철에서 나오는 안내방송처럼, 1 더하기 1은 2라고 아주 명백한 사실을 읽어주는 것처럼. 반쯤은 짐작했고 믿고 있었으면서도 가슴 한가운데를 바늘 같은 걸로 콱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이 사람은 나랑 절대 안 자 줄 거야’라는 생각에 아주 잠깐 울고 싶었어요. 아니, 아니에요. 나는 자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었어요. 내가 그랬잖아요, 직업이 그렇다고 해서 그걸 정말로 밝히는 여자는 아니라고. 그런 건 아닌데 좀 울고 싶어진 건 맞아요. 솔직히 말하면요, 이 남자가 ‘그런 쪽’이 아니라 하더라도 나와 잘 것 같지는 않았어요. 이 짓거리로 십 년 동안 밥벌이를 해왔다면 그런 것 정도는 알 수 있어요. 그러니까 실망하고 말고 할 것도 없지요. 맞아요, 난 실망하거나 속상한 게 아니었어요. 하지만 가슴이 뜨끔거리며 철렁한 느낌은 남아 있었어요. 그러다 또 궁금해서 물었어요.
“ 왜 ‘나는’이죠? 제냐는 당신을 안 좋아해요? ”
“ 음, 그런 건 잘 모르겠어요. 난 옛날부터 사람들 마음 같은 건 전혀 모르는 놈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
“ 그럼 물어보면 되잖아요. ”
“ 그런가. ”
미샤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어요. 이번에는 상당히 길게 빨아들였고 연기도 멋지게 뿜어냈어요. 마치 그 사람이 몸 전체로 담배를 피우는 것 같았어요. 연기를 뿜어내면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가볍게 떠는 느낌이었지요. 그러면서 그 사람이 눈으로 웃었는데 그 한 모금으로 말보로 한 갑을 다 피운 것처럼 행복해 보였어요. 1초도 안 돼서 다시 기침을 하기 시작했지만요. 이번 기침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어요. 나는 그의 손에서 담배를 다시 빼앗아서 바닥과 벽 사이에 비벼서 껐어요. 그리고는 그 사람이 또 아까워하는 눈으로 쳐다볼까 봐 선수를 쳤어요.
“ 이제 됐어요. 말보로는 당신한테 안 맞는 거예요. ”
“ 안 맞는 것치곤 너무 좋은데. ”
“ 마지막으로 담배 피운 게 언제예요? ”
“ 3년쯤 됐나? 아, 아니다. 작년 가을. 그건 별로였어요. ”
“ 왜요? 그때도 감기에 걸렸나요? ”
“ 사진 찍으려고 피운 거라서. 그런 사진을 찍을 때는 멋있는 척하라고 하거든요. ”
그래요, 생각났어요. 바냐가 잡지들이랑 영화에 대해서도 말해줬네요. 나는 이 사람이 조명 아래에서 값비싼 명품 옷을 걸치고 외제 담배를 피우며 멋있는 사진들을 찍는 모습을 상상했어요. 텔레빅이나 리자 같은 촌스러운 잡지 말고, 코스모폴리탄이나 보그 뭐 그런, 뉴라가 훔쳐 와서 같이 돌려봤던 그 번쩍번쩍 광이 나는 잡지 말이에요. 우리는 그 잡지에서 떠드는 소리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하여튼 거기 나오는 옷들이랑 화장품은 전부 다 참 근사했어요. 사진마다 가격표가 붙어 있는데 눈이 튀어나올 만큼 비싸서 그저 웃음이 나올 정도였지만요. 그 비싼 것들을 걸친 화보 속의 여자들은 쭉쭉빵빵했고 남자들은 섹시했죠. 그런 남자가 이 옥상에 올라와 말보로를 제대로 피우지도 못하고 기침을 하고 있다니 우스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