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번 여름 휴가엔 호캉스를 가거나 시내로 나가 맛있는 것도 먹고 쇼핑도 해볼까 했지만 과로로 너무 지친데다 몸이 너무 힘들어서, 그리고 너무 더워서 그냥 집에서 뻗었다. 그런데 매일 너무 흉흉한 사건이 벌어지니 나가는 것도 무서움. 어쨌든 그래서 집에서 차를 마시며 쉬었다. 오랜만에 꺼낸 페테르부르크 네바 강 찻잔.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가 보인다. 이 찻잔은 러시아에서 사와서 잘 쓰다가 일년쯤 전에 깨뜨려서 국내 사이트에서 (비싸게) 다시 샀다 ㅠㅠ 한번 깨면 웬만하면 다시 사지 않는데 이건 좋아하는 찻잔이라. 언제 다시 가게 될지 모르겠다. 빨리 전쟁이 끝나야 할텐데. 저 강변을 따라 걷고 싶다.
계속 비가 내리다가 한시간쯤 전에 비가 그쳤다. 몸이 무겁고 축 처지는 오후였다. 일요일 오후 티타임. 잠을 못 잘까봐 오늘도 홍차 대신 대추차. 다시 한 냄비 끓여야 하는데 만사가 귀찮다.
어제 도착한 새 장미. '서머 로사'라는 이름의 연핑크 아이보리 스프레이 장미이다. 지난주 꽃들 남은 것과 같이 꽂았는데 얘들은 거의 다 시들어서 저녁엔 장미만 남겨놔야 할 것 같다.
엄마가 목요일에 놓고 가신 두 알의 황도 복숭아 중 한 알을 먹었다. 맛있긴 한데 내 입맛엔 대극천이 더 맛있었다(그런데 그놈은 매우 비싸서 다시 사먹을 엄두가 안났다) 이 책은 지난 일주일 동안 손에 대지 않았다. 너무 바쁘고 피곤하게 일했던 터라 찬찬히 머리를 쓰며 읽어야 하는 두꺼운 책을 꾸준히 읽기가 힘들다. 그래도 후반부까지 읽어서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번주는 월요일부터 내내 토요일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온몸이 너무 쑤시고 저리고 아프고 무겁다. 늦게 일어났고 느지막하게 오후의 차를 우려마셨다. 과로가 지속되고 나이도 한살두살 먹으면서 위염을 비롯해 몸이 딱히 좋지 않아진 관계로 거의 항상 첫물을 버리고 카페인을 최소화해 마시는데, 사실 이러면 차의 향이 많이 사라진다. 오늘은 그냥 제대로 우려 마셨다. 확실히 향이 더 강하고 차 본연의 맛이 잘 느껴져서 좋긴 했다.
오늘은 피콜리니 거베라를 한 단 주문해 받았다. 아주 좋아해서는 아니고 가장 저렴했기 때문이다. 강렬한 오렌지색이 왔다. 동글동글 귀엽다. 지난주에 왔던 꽃들 중 유일하게 남은 시넨시스(이것은 살아남았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말라버렸는데 드라이플라워로도 버틸 수 있는 꽃이고 별로 티가 안나는 장점이 있음)와 함께 꽂아두었다.
거베라는 손질할 게 별로 없어 좋긴 한데, 원체 더위에 약하고 대가 가늘어서 항상 줄기가 확 꼬부라진다. 그래서 한송이 한송이 플라스틱 캡이 씌워진 채 도착. 꽃이 상하지 않은 건 좋은데 이렇게 과다포장으로 환경오염에 일조하는 게 아닌가 싶어 맘이 불편했다. 캡들은 모두 떼어내 분리수거 버리고는 왔다만. 하여튼 캡을 잘라내다가 이 녀석 하나는 꽃송이 바로 아래 줄기를 가위로 건드려서 톡 잘라져버림. 아까워서 제일 작은 찻잔인 카페 에벨 에스프레소 잔에 띄워두었다. 이 에스프레소 잔을 보면 항상 영원한 휴가님과 무척 더웠던 드레스덴의 오후가 생각난다. (이것과 똑같은 것을 프라하의 카페 에벨-지금은 사라져버린 그 레테조바 골목의 에벨이다-에서 원두와 함께 사서 드레스덴에 갔었음)
이번의 엄마와의 프라하 여행에서 나를 위해 건져온 거의 유일한 기념품. 카프로바 거리의 에벨에 잠깐 들렀는데 이런 것이 있었다. 티타월인가 했는데 에코백이었다. 두 개 건져옴. 아직 포장도 뜯지 않았다. 하나는 내거, 하나는 쥬인거라 생각하며 사왔는데 아직 쥬인 얼굴도 못 봄. 흑흑...
부활절에는 어울리는 찻잔을 꺼낸다. 내가 가진 부활절 달걀 그림 찻잔들 몇개는 모두 로모노소프니까 엄밀히 말하면 전부 러시아 정교 부활절 찻잔이다만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며 개신교와 카톨릭 부활절에도, 그리고 조금 늦게 오는 정교 부활절에도 이런 달걀 찻잔을 꺼낸다.
일요일 오후 티타임. 거실에서 차 마시다가 햇볕을 쬐면 가라앉은 마음이 나아질 것 같아서 베란다로 티테이블을 옮겼다. 선크림 안 발라서 얼굴은 좀 탔을 것 같다만, 그래도 창문 열고 볕을 좀 쬐었다. 햇볕 쬐면서 책을 읽었다. 한시간 만에 해가 저만치 움직여서 테이블과 의자도 같이 움직였는데 이제 볕이 들어오는 시간은 지났고 바람이 차가워져서 다시 거실로 들어왔다.
이건 거실에서. 빛과 느낌이 많이 다르다.
베란다가 좁아서 창가에 테이블을 딱 붙여야 한다. 좀 작은 이동식 테이블을 하나 살까 싶다. 예전에도 하나 사려다 귀찮아서 포기했었음.
볕과 빛.
아마도 이번 시즌의 마지막 라넌큘러스들. 햇살 속에서 꽃잎들은 좀더 투명하고 연약하고 미묘하게 보인다.
이미 오래전의 일이지만, 도쿄 여행을 갈 때마다 돌아오는 공항에서 이걸 사왔었다. 맨 마지막 여행을 제외하고는 쥬인과 함께 살 때였다. 우리는 도쿄 바나나를 사와서 하나씩 줄어들때마다 아까워하며 티타임 때 이것을 먹으며 여행의 추억을 되살리곤 했었다. 컬리에 들어와 있어서 한번 사보았다. 매우 비쌌지만 여행 대신이라고 스스로를 기만해보았다. 맛은 사실 그리 특별하진 않다. 식빵 같은 얇은 빵 안에 바나나잼 같은 것이 들어 있는 것이 전부라서 오로지 디자인과 마케팅의 힘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니 이것은 정말로 여행의 맛, 기억의 맛이다. 이것을 먹으면 쥬인과 함께 지냈던 예전 동네 집들이 생각난다. 그리고 나리타나 하네다 공항, 혹은 도쿄 지하철역도. 일본에 다시 놀러가고 싶긴 한데, 그것과는 별개로 요즘 정치 돌아가는 걸 보면 울화가 치밀어서 가는 게 맞는 건지, 별로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어디가 됐든 요즘은 정말 떠나고 싶다만 현실은 너무 바쁘고 온갖 일과 문제들과 제반 상황들이 이것저것 뒤엉켜 있어 다시 어디론가 여행을 갈수 있는 시기가 언제일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 찻잔은 2012년 여름 쥬인과 프라하에 갔을 때 나메스티 레푸블리키 광장에 섰던 시장의 폴란드 도자기 노점상에서 산 것이다. 받침접시는 없고 컵 단품이었는데 아마 찻잔이라기보다는 커피잔에 가까운 것 같다. 나는 받침접시 없이 차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찬장에서 색깔과 무늬가 어울리는 다른 폴란드 도자기 접시를 꺼냈다. 이 접시는 2016년 가을에 역시 프라하에서 머무를 때 말라 스트라나의 고갯길 어딘가에 있던 폴란드 도자기 가게에서 샀던 찻잔 세트에 딸려 있는 것이다. 내가 가진 폴란드 찻잔이나 종지는 모두 프라하 아니면 우리 나라 가게, 사이트에서 샀다. 폴란드는 작년 여름 빌니우스에 갈 때 폴란드항공 연착으로 어이없이 바르샤바에서 하룻밤 잤던 게 전부인데, 그때는 도자기는 생각도 못했음. 공항과 호텔, 호텔 뒤의 마을 20여분 산책이 전부였다.
토요일 오후 티타임. 기온이 20도까지 올라서 매우 따스한 날인데 어째서인지 종일 오한이 들어서 지금은 니트 짚업을 하나 더 걸치고 있다. 해가 쨍하지 않아서 그런가. 내내 너무 현실적인 <일>과 관련된 꿈을 꾸고 또 꿔서 많이 잤는데도 전혀 잔 것 같지가 않고 피곤하다. 어쨌든 티타임 사진과 새로 도착한 라넌큘러스 사진 여러 장.
기분 전환을 하고 싶어서 핫핑크 라넌큘러스를 주문했다. 라넌큘러스 중에는 연분홍 하노이가 제일 이쁘긴 한데 조금 더 비싸다. 이 진핑크는 나중에 활짝 피고 나면 색깔이 옅어지면서 나름대로의 매력이 많은 꽃이라 그냥 이것으로 골랐다. 라넌큘러스들 중 이 색채가 가장 쉬폰 드레스 같은 느낌이 드는 꽃이다. 티타임과 꽃들 사진 여러 장.
너무나 보물 같은, 주중의 휴일. 지나친 과로로 몸이 너무 피곤하고 아팠던 터라 정말 보물 같은 휴식이 아닐 수 없다.
푸른난초님께서 어제 보내주셨던 프리지아들이 조금씩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프리지아 사진들은 티타임 사진들 아래에 여러 장. 노란색이 주종이지만 자주색도 몇 대 있고 보라색도 딱 한 대 있어 아기자기 다양하고 예쁘다. 자주색 보라색 꽃망울에 맞춰 오늘은 좋아하는 '밤' 찻잔을 꺼냈다.
그리고 역시 어제 선물받은 석류. 3분의 1만큼 잘라서 석류알들을 이렇게 발라내서 먹었다. 석류를 좋아하는데 손질하는 것이 귀찮아서 사먹지 않은지 아주 오래됐다. 석류즙이나 이따금 마실 뿐. 석류알들을 발라내고 있으면 예전에 러시아 기숙사에서 혼자 지낼 때(처음 갔을 때는 아니고 이후 두번째로 가서 머무를 때였다) 생일날 석류와 단감을 사다 먹었던 것이 기억난다.
밤 찻잔. 우리 나라에 수입되었을 땐 '가을 밤 찻잔'이라고 들어왔던 것 같은데 이것이 처음 나왔던 무렵 네프스키의 로모노소프 매장에서 발견해 샀을 땐 그냥 심플하게 '밤'이란 이름이 붙어 있었다. 노어로는 Ночь(노치) 거의 50%는 이름 때문에 샀던 찻잔인데 지금도 많이 아낀다. 금박이 벗겨질까봐 자주 쓰지는 못함.
헤드 샷 커피를 그리워하며 그 카페에서 쓰는 것과 같은 러브라믹스 컵을 사보았다. 컬러도 똑같은 색으로 골랐다. 컵 안쪽에 그 이쁜 로고만 추가되면 딱 좋을텐데. 라떼 컵이 더 크고 예쁘지만 내 손에는 너무 무거울 것 같아서 카푸치노 컵으로 골랐다. 이미 이 컵도 무겁다. 사실 러브라믹스는 커피를 위한 컵들이라 차 마시기엔 손에 딱 맞지 않고 또 무겁기도 하다만 그래도 기분 전환과 여행의 추억을 위해.
요즘은 주말이면 항상 흐리고 미세먼지가 심해서 밝고 따스한 햇살과 아늑한 오후의 느낌이 영 나지 않는다. 이런 날씨엔 절로 몸이 축 처진다.
감자수프와 버섯 오믈렛으로 아점. 감자수프는 직접 만든 거라면 좋았겠지만 냉동실에 묵혀뒀던 레토르트 봉지를 데웠다. 오믈렛만 만들었다. 오믈렛을 예쁘게 만들려면 좀 조그만 팬이 필요한데(손재주가 좋은 분들이야 도구 탓을 하지 않겠지만 나는 성질도 급하고 대충대충이라), 이 집에 이사와서 인덕션으로 바꾼 후 엄마가 가져다준 커다란 프라이팬 두 개만 쓰게 된 데다 자주 요리를 하지도 않고 게으름이 발동되어 '오믈렛이고 계란말이고 뭐고 어쩌다 가뭄에 콩나듯인데 뭐하러' 라는 마음에 새 팬을 사지 않았다.
그래서 거대한 프라이팬으로 모든 걸 해결하다 보니 예쁜 오믈렛 따윈 꿈도 꿀 수 없고 결국은 스크램블드 에그 아니면 대충대충 척척 접어서 지단+계란말이 비슷한 이상한 형체의 오믈렛이 나온다. 양송이 한 팩을 뜯어 그것과 선드라이드 토마토 약간을 볶아 속을 만들어서 대충 싸서 만들었더니 이번에는 뭔가 오믈렛은커녕 부리또 비슷한 물체가 나왔음. 여기 치즈가 들어갔어야 하는데 냉장고에 치즈고 버터고 떨어진지 오래되어 그냥 버섯과 선드라이드 토마토만 넣어서 만들었다.
꽃으로 가려봐도 부리또 모양 요상한 오믈렛 ㅎㅎ
속에는 버섯과 선드라이드 토마토. 모양새는 이래도 맛은 괜찮았음. 사실은 속 들어간 블린을 생각하며 척척 접었던 건데 하여튼 뭐 맛있기만 하면 그만이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