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년 간 나는 숙소나 극장 등 각종 동선이 모여 있는 곳인 모이카 운하를 따라 가장 많이 걷는 편이다. 하지만 판탄카 운하는 이곳만이 갖는 정취가 있다. 나에게 판탄카는 언제나 트로이와 알리사의 운하이다. 이 운하를 따라 걷고 있으면 난간에 기대어 운하 수면을 바라보면서 어쩐지 부루퉁해져 있거나 공연히 눈물을 몇방울 떨구는, 모피 목도리를 두르고 당시로서는 상당히 유행에 잘 맞는 세련된 차림을 하고 있는 알리사를 떠올리기도 하고, 수면 가까이 돌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병나발을 불면서 상념에 잠겨 있는 트로이의 구부정한 어깨와 뒤통수 한가운데가 특히 헝클어지며 곱슬거리고 뭉치는 어두운 잿빛 금발머리를 떠올리기도 한다.
오늘 초콜릿 웨하스를 먹었더니 프라하 생각이 나서, 폰에 남아 있는 18년 겨울 프라하 사진 몇장. 카페 에벨 사진 세 장. 그리고 오른쪽 맨 아래 꿀 사진은 카페 구르망에 가서 조식 먹었을때. 둘다 추억의 장소이다. 저땐 몰랐지, 저 에벨의 창가에서 저렇게 앉아 있는 게 마지막일 줄은..
지난주에 마친 글은 1970년대 레닌그라드에서 여러 인물들이 맞이하는 새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지금은 퇴고 중이다. 몇년 전에 쓴 소설과 시간/공간/인물이 거의 겹치기 때문에 그 글을 중간중간 다시 뒤적여보면서 썼다.
아래의 짧은 이야기는 그 예전 소설의 후반부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 소설은 3인칭으로 썼지만 심리적 화자는 트로이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렌즈로 기술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심신이 소진된 미샤와 그런 그를 카를로비 바리로 데려가는 모스크바 출신 안무가이자 절친한 벗인 일린, 그리고 트로이에 대한 짧은 에피소드이다.
소피야는 미샤의 예술계 지인. 카라바노프는 미샤의 파트너인 지나이다의 약혼자이며 트로이의 동료 교수. 스타니슬라프 리보비치는 일린의 이름과 부칭이다. 카라바노프는 일린과 막역한 사이가 아니므로 예의를 갖춰 부칭까지 챙겨 부른다.
그리고10월 마지막 주에 스타니슬라프 일린이 갑작스럽게 레닌그라드로 왔다.기차나 버스,자동차가 아닌 첫 비행기를 타고 안개에 잠긴 풀코보 공항에 내렸다.그때 미샤는 이콘 복원가 소피야와 함께 자기 집 거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누워 자고 있었다.밤새 쉬지 않고 열띤 토론을 벌인 것이 분명했다.마르크 카라바노프가 지나이다를 깨울까 봐 조심하며 침실에서 나와 학교로 출근할 준비를 하고 있었을 때 일린이 초인종을 눌렀고 작은 여행 가방을 경쾌하게 끌며 안으로 들어왔다.카라바노프가 반가워하며 약혼녀를 깨우겠다고 하자 일린은 지나이다와는 어제 통화했으니 피로에 찌든 발레리나 아가씨를 조금이라도 더 자게 내버려 두라고 만류했다.그 모스크바 안무가는 곧장 거실로 갔고 소피야의 곁에서 자고 있던 미샤를 흔들어 깨웠다.그날 학교에서 트로이에게 아침에 있었던 일을 얘기해주면서 카라바노프는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자네도 알지?아침에 미하일 깨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아무리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으니까 스타니슬라프 리보비치가 이마를 찰싹 갈기던데. ‘그만 일어나지,잠꾸러기!’라고 버럭 소리쳤어.꼭 피오네르 교관처럼. ”
눈을 뜬 미샤가 멍하게 일린을 쳐다보다가 꿈이라고 착각한 듯 다시 소피야의 따뜻한 몸에 기대며 자려고 했다.일린은 그의 팔을 잡아 일으켰고 억지로 욕실까지 끌고 갔다.카라바노프가 도와주기까지 했다.
“난 이제부터 스타니슬라프 리보비치를 존경하기로 했어. 15분 만에 다 해치웠어!깨워서 칫솔을 물리고 머리랑 얼굴에 물을 끼얹게 하더니 가방에 옷만 몇 벌 쑤셔 넣은 후 데려갔어.보통 때 같으면 두 시간은 걸렸을 걸.미하일은 잠도 덜 깨고 정신도 못 차려서 신발끈 매다가 두 번이나 넘어졌어.스카프도 현관에 흘리고 갔어. ”
“어디로 갔는지 알아? ”
“어디랬더라.내가 물어봤는데... K로 시작되는 지명이었는데...키슬로보드스크?카를로비 바리?하여튼 온천 쪽이었어.스타니슬라프 리보비치가 처음에 미하일을 좀 야단쳤거든.그 상냥한 사람이 화내는 건 처음 봤어.별로 무섭지는 않았지만. ”
“왜 화를 내? ”
“아픈 줄 몰랐었나봐.휴가 받았다는 것도 안지 며칠 안 됐고.그것도 지나가 전화해줘서 알았던 것 같아.자기한테 얘기 안 했다고 야단치더니 모스크바에 열흘이나 있었으면서 연락 안 했다고 또 꾸짖고,또 뭐라고 했더라.아,몸을 혹사시킨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게 아니라고 했지.그러니까 미하일이 자기는 아픈 데도 없고 일주일 후에 다시 극장에 나갈 거라고 했어.자다 일어나서 뜬금없이 야단맞는 사람치곤 별로 화난 것 같지도 않았어.와줘서 반가워하는 것 같던데.그 친구는 심지어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도 않았어.스타니슬라프 리보비치가 시키는 대로 가방을 싸더니 얌전하게 따라가더라고.난 미하일이 그렇게 온순하게 남의 말을 잘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어. ”
트로이는 그날 자신이 맡은 수업 두 개를 모두 휴강하고 판탄카 운하 주변을 맴돌았고 집으로 들어가는 대신 이른 저녁부터 뒷골목의 어느 선술집에 처박혀 술을 마셨다.어렴풋한 기억으로는 보드카와 포트와인과 맥주를 뒤섞어 마셨던 것 같았다.몇몇 남자들과 합석했던 것 같았다.나토 뒤에서 미 제국주의자들이 꾸미고 있는 계략과 각 집단농장의 보드카 제조 기술,브레즈네프가 숨기고 있는 불치병에 대한 음모이론 따위의 얘기가 오갔던 것 같았다.
정신이 들었을 때 그는 가느다란 달빛 외에는 어두컴컴하기 짝이 없는 습기찬 운하변의 돌계단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그의 곁에는 비슷한 처지의 주정뱅이 두어 명이 콧노래를 부르며 옆으로 누워 뒹굴고 있었다.그는 악취를 풍기며 철썩이는 검은 물을 오랫동안 내려다보면서 세 가지 생각을 한꺼번에 했다.하나는 지금 몸을 일으키면 틀림없이 토하게 되리라는 것이었다.또 하나는10월 말인데도 바깥 공기가 전혀 춥지 않다는 것.마지막은 뜨겁고 무딘 살의였다.하지만 그게 누구를 향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수수께끼 같은 스타니슬라프 일린인지,따분하기 그지없는 안드레이 트로이츠키 자신인지,그것도 아니라면 그의 모든 것을 다 가져가고도 모자라 끝없이 그를 괴롭히고 그의 몸과 마음을 태워대는 남자,그 사랑스럽고 또 사랑스러운 미샤 야스민인지.아니면 셋 다인지.그는 가장 쉬운 결론부터 내렸다.억지로 몸을 일으켰고 돌계단 위에 토했다.그러자 찌르는 듯한 한기가 느껴졌기 때문에 춥지 않았던 것은 오로지 취기 때문이었다는 두 번째 결론을 얻었다.순찰 경찰들의 플래시가 다가오기 전에 그는 몸을 일으켰고 비틀거리며 운하를 따라 대로 쪽으로 나갔다.집까지 가는 길은 너무나 멀고 힘들어서 그는 세 번째 질문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렸다.
일린이 미샤를 데리고 간 곳은 카를로비 바리이다. 체코의 유명한 온천 휴양지이다. 13년에 갔을 때 찍은 사진 두 장. 나에게는 글쓰기에 있어 의미가 있는 곳이다. 그 이유는 이미 몇차례 쓴 적이 있고 사진 아래 링크의 글에도 조금 적혀 있다.
위의 이야기는 이번에 마친 글의 두번째 에피소드에서 게르만 스비제르스키가 이곳을 언급하기 때문에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발췌해 보게 된 것이다. 미샤에게 카를로비 바리는 대조적인 두가지 기억이 상존하는 장소인데, 스비제르스키가 다분히 이기적이고 정략적인 이유로 그를 데려가 휴가를 보내는 곳이기도 하고 여기 발췌한 이야기에서처럼 절친인 일린이 친구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데려가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일린은 전자의 기억에 대해서는 전혀 모름. 지난 봄에 마친 글인 '밤, 레닌그라드'에서도 미샤가 스비제르스키와 보냈던 그때의 기억을 잠시 되살리기도 했다.
예전에 위의 발췌글의 앞부분만 올리면서 카를로비 바리에 갔던 진짜 이유에 대해 적었던 적이 있다. 소설을 쓰는 과정과 카를로비 바리, 비엔나라는 장소에 대한 얘기였다. 링크는 여기 : https://tveye.tistory.com/5541
오늘 올린 발췌문에는 일린이 미샤를 데려가는 얘기에 더해 그 뒤에 이어지는 트로이의 이야기가 추가되어 있다.
판탄카 운하변 사진 몇 장 더. 판탄카 운하를 따라 걸을 때면 나는 보통 트로이와 알리사를 떠올린다. 특히 난간과 아래로 내려가는 돌계단, 오목하게 패인 작은 공간,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술병들은 내게 트로이와 결부되는 주요 이미지들에 속한다.
아점은 밥 대신 빵과 크림치즈, 아직 가을이지만 빈속에 차 마시려니 좀 따뜻한 타입이 좋을 것 같아서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티.
아점의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티는 고골 컵에 우려 마심.
거베라는 이뻐서 좋아한다만 줄기가 너무 잘 꼬부라져서 잘 사지 않는데, 어제 꽃집 언니에게 철사를 좀 대 달라고 부탁해서 한 송이 샀다. 꽃집 언니는 거베라의 목이 하늘하늘 구부러지는 모습이 이뻐서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하는데... 꼬부라지면 금방 시들어버린단 말이야 ㅠㅠ
줄일 수 있는만큼 책을 줄여보려는 중인데... 흑흑 쉽지 않다. 아침엔 대실 해밋의 추리소설 여러 권과 잘 안 넘겨보는 희곡들 몇 권을 나눔대에 내려놓고 옴. 저녁엔 러시아 잡지들을 정리할까 하는데, 그게 사실 다시 넘겨보진 않아도 버리기는 아깝고... 딱 그런 책들임 ㅠㅠ 페테르부르크 여행잡지, 요리잡지, 아스토리야나 유럽호텔에서 가져온 잡지들, 사바까 루 잡지 뭐 그런 거라서.... 서재가 없고 이사도 해야 하니 미니멀리스트가 되어보려고... 아둥바둥 중이다만 타고난 영혼이 적어도 책과 찻잔에 대해서는 미니멀리스트가 아닌 걸 어떡하란 말이야 엉엉...
몇 달 동안 써온 새해 이야기들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가장 마지막의 일곱번째 에피소드를 쓰고 있는 중인데 빠르면 이번 주말, 좀 늦으면 다음 주말 정도에는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발췌한 두 문단은 그 중 네번째 에피소드의 일부이다. 네번째 이야기는 유일한 1인칭으로 서술된다. 주인공은 지나. 전에 이 이야기의 일부를 발췌한 적이 있는데(https://tveye.tistory.com/10420) 오늘 올리는 파트가 조금 더 앞부분이다. 키로프 극장의 홀에서 새해 전야 리셉션이 열린다. 정치인들, 노멘클라투라 발레 애호가들, 업계의 귀빈들이 지나와 미샤의 테이블로 모여든다. 그리고 지나의 쫑알쫑알....
앞부분에 언급되는 인물들은 모두 미샤의 후원자들. 마이야 필리포브나는 이전에 발췌한 글들에도 몇번 이름이 등장했다. 이 사람은 본격적인 등장씬은 거의 없고 항상 이렇게 이름이 언급되는 타입의 등장인물임. 레냐는 지나와 미샤의 동기 무용수. 타마라는 발레단 코디네이터. (가브릴로프 이야기에 나오는 발레리나 타마라와는 다른 인물). 마이야가 '나타샤'라고 부르는 사람은 지나의 엄마인 나탈리야 아시모바. 나타샤는 나탈리야의 애칭이다. 지나는 엄마도 유명한 발레리나였음.
진주목걸이를 늘어뜨린 마이야 필리포브나와 문화국 책임자인 카테리나 바랸체바,거기에 알렉산드르 고르차긴 장군까지 합류하면서 우리 테이블은 순식간에 미샤의 팬 미팅 현장으로 변모했다.레닌그라드 예술계의 대모인 마이야는 발레학교 시절부터 미샤를 열렬히 후원하고 있었는데 나를 볼 때마다 미간에 우아한 주름을 잡으며‘우리 미셴카에겐 저런 빨강머리 말괄량이보단 좀 더 부드러운 인상의 파트너가 낫지 않겠어?’하고 투덜대곤 했다.극장 동료들도 다들 들은 적이 있는 불평이어서 레냐는 마이야 필리포브나가 옛날에 붉은 머리 여자에게 애인을 뺏긴 적이 있어서 그럴 거라고 농담을 했고 타마라는 마이야가 원래부터 남자 무용수들을 편애한다고 위로 비슷한 말을 건넸었다.이 업계에서는 가장 믿을만한 선배인 엄마의 얘기에 따르면 마이야는 예전에 엄마의 무대를 보고서도‘어휴,나타샤는 파트너들을 다 잡아먹을 것 같아.우아한 맛도 없고 키트리나 추면 모를까 저런 백조가 어디 있어!’하고 악담을 늘어놓았다고 하니 아무래도 레냐의 말에 신뢰가 간다.빨강머리 여자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이다!그렇게 생각하면 기분이 덜 나쁘다.
이렇게 다른 동료들은 위로를 해줬는데 막상 당사자인 미샤는 내가‘아무리 그래도 면전에서 그렇게 싫은 티를 내야 하는지’하고 투덜대자‘못 춰서 맘에 안 든다고 한 건 아니잖아.그럼 됐지 뭐’라고 대꾸해서 나에게 옆구리를 한 대 쥐어박혔다.하긴 엄밀히 말하자면 미샤의 입장에서는 그게 최선의 위로였을 것이다.마이야는 무용수들의 실력에 대해서는 정말 칼 같은 여자였고 때로는 루바노프스카야나 무라비요바 같은 유명 평론가들보다도 더 정확하게 핵심을 찔렀기 때문이다.그런 그녀가 나에게‘더럽게 춤도 못 추는 풋내기’,혹은‘파 드 부레도 제대로 못 하는 키로프의 수치’따위의 무시무시한 혹평 대신 그저‘인상 센 빨강머리 말괄량이’정도만 되풀이하는 것은 차라리 칭찬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예전 페테르부르크 사진 뒤적이다 발견. 2014년 4월 사진들이다. 14년에는 4월과 7월에 갔었다. 4월에 페테르부르크를 거닐었던 건 아주 옛날에 맨처음 가서 연수받으며 살았을 때 외에는 이때뿐이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라서 날씨가 극악이기도 하고 휴가 시즌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때는 어떻게 해선지 기억이 안 나는데 하여튼 4월 초에 갔었다. 그리고 이 날 아주 운이 좋아서 날씨가 엄청 좋았다! 싸늘한 날씨에 적당히 두툼한 옷을 입고 산책하는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이때 머물렀던 숙소는 그랜드 호텔 유럽이었다. 이 호텔에 묵게 되면 산책 코스는 항상 이렇게 시작된다. 호텔 맞은편에 예술광장, 미하일로프스키 극장, 루스키 무제이(러시아 박물관)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 한가운데 푸쉬킨 동상이 있고 그 너머로 루스키 무제이가 보인다. 여기서 시작해 시인에게 먼저 인사를 한 후, 그리보예도프 운하를 따라 걸으며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을 지나 쭉 걸어서 네바 강변으로 나가게 된다.
아스토리야에 묵으면 길을 건너서 해군성 공원을 가로질러 청동기사상을 지나 네바 강변으로, 그리고 궁전광장으로 걸어가게 되고. 그래서 항상 '유럽 호텔이면 시인에게 먼저 가게 되고 아스토리야면 황제에게 먼저 간다' 라고 되뇌임.
그러니 이 산책 사진들은 그랜드 호텔 유럽 코스. 사진 몇 장. 역시 시인으로 시작.
공원으로 들어와서 호텔 방향을 보며 찍은 사진. 왼편에 푸쉬킨 뒷모습이 보인다. 잘 보면 잔디에 덜 녹은 눈이 드문드문.
그리고는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과 그리보예도프 운하. 전형적인 페테르부르크 관광엽서 구도. 지금은 수리 중이라 저 쿠폴 한쪽은 가림막으로 둘러쳐 놔서 이런 풍경은 아니다.
하늘 색깔도 여름의 푸른색과 초봄의 푸른색은 확실히 다르다. 물론 가을과 겨울도.
운하 따라 걷다 뒤돌아서 찍은 사진. 가운데 저 멀리 돔 크니기의 지붕과 그 건너편의 카잔 성당 열주 일부가 보인다.
그는 소피야에 대한 예의로 비스킷을 쪼개서 조금 먹었다.과자는 물론 맛있었지만 위스키와는 어울리지 않았다.원래 그는 술에 안주를 곁들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술은 술,빵은 빵,고기는 고기,수프는 수프인 것이다.맛이 섞이는 것은 질색이다.예전에 그런 말을 했더니 미샤는‘그럼 왜 부체르브로드는 먹어?샐러드는 왜 먹고?’라고 말꼬리를 잡으며 늘어졌다.미샤와는 뭐가 됐든 제대로 된 대화를 하기 어려웠지만 어차피 싸가지없는 애새끼에 뇌세포가 생기다 만 놈이라고 생각하면 대충 넘어갈 수 있었다.
미샤가 나오는 글들은 원체 길기도 하고 여러 종류를 많이 써서 등장인물들도 많다. 그 중에서도 유라는 나와 공통점이 거의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건만... 가만히 보니 유라는 내 친척인 것이었음... 섞어먹는 거 싫어하는 것이.... (그러나 나는 미샤만큼이나 알콜바보인 관계로... 술에는 안주가 없으면 못 견딘다 ㅋㅋ)
코로나 때문에 올해는 페테르부르크에 가지 못했다. 내년엔 과연 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러시아는 확진자 규모가 엄청난데도 언론 통제 때문인지, 아니면 조기에 셧다운을 꽤 오랜 기간 진행했기 때문인지 우리만큼 걱정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은 분위기인 것 같다. 얼마 전에는 닫았던 레스토랑과 바, 카페들도 영업을 다시 시작했다.
2주 전엔가 료샤와 간만에 통화를 하다가...
나 : 친구야, 본치 가봤어?
료샤 : 아니. 요즘은 사무실 근처만 가. 본치는 우리쪽 동네 아니잖아.
나 : 본치도 망했으면 어떡하지... 너네도 코로나 때문에 문 닫은 데들 많잖아. 부셰도 지점 수 줄인다는 기사 봤어.
료샤 : 망하면 할수 없지 카페가 그거 하나냐?
나 : 하지만 소중한 카페인데 ㅠㅠ
그리고는 며칠 전에 료샤가 짧은 메시지를 보내왔다. '본치 안 닫았어. 손님들 받고 있는 거 봤어. 만족하냐?'
만족하고 말고! 친구야 확인해줘서 고마워~
사진은 2017년에 갔을 때 폰으로 찍은 것들.
내가 좋아하는 새빨간 테이블. 이 색깔 테이블은 홀 한가운데 이거 하나뿐임. 창가 테이블에 앉는게 좋긴 하지만 이 빨간 테이블이 비어 있을 땐 그 마력에 저항하지 못하고 여기로 간다.
이 사진은 2018년. 이건 카메라로 찍었다. 그래서 사이즈와 화질이 좀 다르다. 그리운 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