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냑과 카르토슈카 + 우정의 증거 + about writing2020. 10. 1. 21:54
추석이 다 지나가기 전에, 명절 기분과 함께 얼마 전 끝낸 글에서 몇 문단 발췌해봄. 비록 추석은 아니지만 새해를 다루고 있는 글이었고 그 중에서도 가장 즐겁고 알콩달콩한 명절 파티 분위기인 여섯번째 에피소드에서 조금 가져와봤다. 우리와는 달리 가족친지가 모이는 명절이 아니고 절친들끼리 모여 술 마시고 노는 분위기의 얘기긴 하지만 :)
여섯번째 이야기에서는 트로이와 그의 문학 서클 친구들이 아지트인 갈랴와 료카 부부의 아파트에 모여 새해 파티를 하고 있다. 미샤가 뒤늦게 합류한다. 아래는 미샤가 갈랴에게 가져다 준 코냑에 대한 묘사로부터 이어진다.
카르토슈카는 소련 시절부터 지금까지 러시아 사람들이 좋아하며 즐겨 먹는 디저트이다. 쫀득한 초콜릿 경단 같은 맛이다.
발췌문은 접어두었음.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 그러나 코냑은 아무런 설명 없이도 훌륭했다. 보드카와 싸구려 샴페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몸이 금세 따뜻하게 달아올랐고 달콤하고 강렬한 향이 코와 목을 부드럽게 훑고 지나갔다. 미샤는 코냑 대신 갈랴가 가져다준 나무열매 모르스를 마시고 올리비에 샐러드를 먹었다. 트로이는 이고리의 손에서 병을 빼앗아 마지막 남은 코냑을 따랐다. 반 잔 정도 나왔다. 그는 코스챠와 이고리의 애절한 시선을 무시하면서 잔을 미샤에게 건네주었다.
“ 자기가 가져온 건데 한 방울도 입에 안 대면 섭섭하잖아. ”
미샤는 고개를 저었다. 극장에서 이미 한도 초과로 마셨기 때문에 자신의 알콜 저항력은 열두 시 종 칠 때 마실 샴페인 딱 한 잔만큼만 남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이고리가 뒤에서 손을 쭉 뻗어서 잔을 낚아채더니 코스챠에게 뺏길세라 훌쩍 마셔버렸다. 코스챠는 ‘누가 코냑을 그렇게 교양 없게 꿀꺽꿀꺽 들이키냐!’하고 투덜대면서도 미샤에게 크림과 잼이 없는 카르토슈카를 가져다주었다. 미샤는 별로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갈린카가 너 먹으라고 고른 거란 말이야. 이건 안 달아서 너 말고는 먹을 사람도 없어’라는 코스챠의 말에 졌다는 표정을 지으며 포크로 초콜릿 카르토슈카의 귀퉁이를 잘라서 먹었다. 그리고는 친구들의 시선이 다른 쪽으로 향했을 때 트로이의 소매를 잡아당기면서 남은 카르토슈카를 빨리 먹어치워 달라고 했다.
“ 네 거잖아. 난 아까 메도빅 먹었어. 갈랴에게 성의를 보여 봐라. ”
“ 그래서 반이나 먹었잖아. 너도 우정의 증거를 대봐. ”
“ 반은 무슨. 병아리 눈물만큼 잘라 먹었네. ”
어쨌든 트로이는 미샤가 떠맡긴 카르토슈카를 두 입 만에 먹어치웠다. 쫀득하고 맛있었다. 코스챠와 갈랴의 말대로 별로 달지도 않았다. 코냑을 마신 직후라 더 그런지도 몰랐다.
..
사진의 카르토슈카는 페테르부르크의 오래된 명소인 '세베르' 카페의 역시 유명한 그 카르토슈카. 위에 얹혀 있는 노란 크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물론 모양도 맛도 북극곰 그려진 저 파란색 종이 포장지도 그대로. 나랑 쥬인은 저것을 매우매우 좋아했다. 몇년 전 세베르에서 테이크아웃해 와 호텔 방에 앉아 티백 차 우려 마시며 같이 먹을 때 찍어놓은 사진이다. 사진 속 방은 그랜드 호텔 유럽.
갈랴가 미샤를 위해 골라온 카르토슈카는 세베르의 저 녀석이 아니고 진한 다크 초콜릿 맛의 당도가 낮은 카르토슈카였지만... 미샤는 그것도 달다고 트로이에게 떠넘기고... 정통 카르토슈카에는 잼이 안 들어가는데 이 소설의 에피소드 중 하나에서 갈랴가 두 종류의 카르토슈카를 사면서 '노란 크림 올라가 있고 잼 든 거는 너네들 거, 이쪽 건 달지 않으니까 미샤 거' 하고 고르는 장면을 넣었다. 그래서 코스챠가 '이건 안 달아서 너 말고는 먹을 사람도 없어' 라고 하는 것임.
이거 쓰면서 무지무지 카르토슈카 먹고 싶었음 크흑... 옛날에 저 레시피까지 구해서 집에서 도전해보았으나 보기좋게 실패했던 아픈 기억도 있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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