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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쓰고 있는 글은 새해에 블라디보스톡에 갔을 때 간단히 구상했고 중간에 좀 미뤄두다가 여름이 되기 전에 쓰기 시작했다. 일곱 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금은 여섯번째 에피소드를 쓰고 있다. 여름이 다 가기 전에 완성하고 싶지만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전에 이 폴더에 몇번 각 에피소드의 파편들을 발췌한 적이 있다.

 

 

아래 세 개의 문단은 다섯번째 에피소드에서 발췌했다. 다섯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유리 아스케로프라는 의사이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보통 유라로 불린다. 미샤와는 오랫동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사람은 전에 발췌한 여러 이야기들에서 조금씩 등장한 적이 있고 서무 시리즈의 한 에피소드에도 나왔었다. (레닌그라드에 출장간 단추 베르닌을 진찰해주고 '서무 따위가 모든 일을 책임질 필요 없다', '네 몸 네가 챙겨라', '운동 좀 해라' 등등 뼈때리는 말을 늘어놓았음 ㅋ) 미샤 역시 평소 그를 유라라고 부르지만 의사 선생이라고 부를 때도 많다. 절반쯤은 애정, 절반은 농담을 섞어서.

 

 

 

사족. 이 사람의 성인 아스케로프는 옛날에 등장인물들 이름 지을 때 너무 피곤해져서 마린스키 극장의 발레, 오페라, 오케스트라 단원들, 행정직원들 성을 쫙 펴놓고 리듬과 어감을 생각하며 골라낼 때 붙인 것이다. 그런데 순전히 발음과 리듬이 좋았을 뿐 이 성의 진짜 소유자인 무용수는 별로 내 맘에 드는 타입이 아니었건만, 그 무용수는 이후 프린시펄이 되었다 ㅋㅋ 그래서 아래 글에 언급했듯 발레에는 거의 무지한 상태인 이 의사 선생은 마린스키 수석무용수의 성을 달고 있게 되었다 흐흑... (마린스키 발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금세 눈치챘겠지만 그 무용수 이름은 티무르 아스케로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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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상 위에 지저분하게 널려 있는 잡동사니들을 대충 정리하면서 그는 텔레비전을 힐끗 보았다. 연말이라 그런지 키로프 극장의 발레 공연이 방영되고 있었다. 눈에 익은 모습이 어른거리는 것 같아서 안경을 추켜올리고 자세히 봤더니 화면 안에서 미샤가 예쁜 빨강머리 아가씨를 두 팔로 안고 춤을 추고 있었다.

 

 

 그는 발레나 클래식 음악, 연극 등 극장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호두까기 인형과 백조의 호수를 구분하지도 못했다. 미샤는 학생 시절 그의 집에 발레 음악 테이프를 가져와서 틀어놓고 팔짝팔짝 뛰고 몸을 꺾고 빙글빙글 돌면서 연습을 한 적이 몇 번 있었지만 그건 콩쿠르 직전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이었고 평소에는 브이소츠키나 외국 음반들을 가져왔다. 아스케로프는 브이소츠키는 괜찮았지만 외국 음악에는 관심이 없었다. 미샤의 공연을 보러 간 적도 없었다. 미샤는 기분 상해하지도 않았다. ‘상관없어. 나한테만 관심 있으면 되니까 라고 말했다. 그러니 전문 분야에 대해서라면 서로 공평하게 무관심해 주면 좋으련만 미샤는 아스케로프의 집에 오면 화보가 많은 해부학 서적과 주해도 따위를 지치지도 않고 눈을 반짝이며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이건 뭐고 저건 뭔지, 저 근육이 뒤틀리면 이 뼈는 어떻게 되는지, 그쪽 신경은 이쪽 근육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달라고 아주 하잘것없는 질문들로 유치원생처럼 그를 들들 볶아댔다. 선생 노릇은 질색이니 그런 건 국립대학 의학부에 가서 청강이라도 하라고 벌컥 화를 내면 미샤는 뭐하러, 눈앞에 진짜 의사 선생이 있는데 라고 대꾸하며 결국은 궁금증에 대해 전부 대답을 얻어내곤 했다.

 

 

 

 텔레비전 화면 속의 미샤는 조명 때문인지 실제보다 뿌옇고 창백하고 심지어 거의 공기처럼 투명하게 보였다. 지치지도 않고 빨강머리 소녀를 들어 올리고 빙그르르 돌리고 바닥에서 허공을 오갔다. 푸르스름한 나비 두 마리가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그는 텔레비전에서 시선을 돌려 아가뇩 잡지를 읽기 시작했고 이따금 술을 한 모금씩 마셨다.

 
 

 

 


 

 

 

 

 

 

 

 

 

 

 

 맨 위와 아래의 사진들은 디아나 비슈뇨바와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의 로미오와 줄리엣 화보. Alex Gouliaev의 사진. 유라는 구분하지 못했지만, 그가 보고 있던 미샤의 공연이 바로 로미오와 줄리엣이라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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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