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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홍의 3분의 1은 대가 구부러져 시들었고 여기 멀쩡해 보이는 녀석들도 사실은 모두 이미 드라이 상태로 바뀌고 있는 단계이다. 그래서 딱히 이 꽃을 좋아하진 않는데 나름대로 겨울 분위기가 나서 이 조합은 나쁘지 않게 보았다. 내일 새 꽃이 오면 좀 색채들이 더해지겠지. 

 

 

오늘도 새벽같이 집을 나섰는데 지하철 한 대가 고장났다는 방송이 나왔다. 그래서 내가 탈 차례의 지하철은 사람이 꽉꽉 들어차 있었다. 새벽 6시 반에 지하철을 타도 자리가 없고 심지어 만원이라니 곰곰 생각하니 우리 나라는 참 노동자들에게 가혹하고 서글픈 사회이다. 

 

 

오늘은 휴가낸 직원들이 많았고 윗분도 아침에 갑자기 오전 출장을 다녀온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오후에 진료 때문에 반차였는데 그래선지 갑자기 느긋해졌다. 아마 윗분과 오늘 얼굴을 맞댈 일이 없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인간적으로 막 밉고 싫고 그런 것까진 아닌데 업무적으로는 너무 답답하기 그지없고 매일같이 나에게 허탈감을 안겨주는데다 자기 분야에서야 훌륭하시지만 이 회사 내에서 '일'이라는 것을 하시는데 너무 서툰 분이라 내 스트레스의 원천 중 하나라 그런가보다. 아침 열시까지는 내내 혼자 사무실에서 일했다. 유연근무제 때문에 직원들 대부분은 10시에 출근하고 나는 8시도 안되어 도착하니 이 이른 아침이 그나마 내가 집중해 일할 수 있는 시간이다. 사실 나도 본시 야행성 인간이었는데 진짜 노동이 뭔지 먹고사는 게 뭔지 ㅠㅠ 

 

 

그 느긋함 때문에 '에이 몰라 다음주에 하면 되지' 모드에 좀 젖어서 일을 대충대충 했다. 그래서 원래 하려던 일의 3분의 1 정도밖에 못한 채, 점심은 편의점에서 사온 닭죽을 데워 대충 때우고 이른 오후에는 사무실을 나서서 지하철을 타고 멀리 진료를 받으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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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 받으면서 월요일 검진 이후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느라 불안감이 많이 든다고 얘기하면서 마음속으로는 '걱정할 필요없다 웬만하면 다 별거 아니다' 라는 말을 듣고 싶었는데 과연 의사선생님이라서 그런지 그런 희망을 주지 않고 그냥 '누구나 조직검사 같은 거 하고 나면 다 불안한 법이다, 불안한 마음이 안 드는 사람은 없을 거다. 결과가 나오면 거기 맞게 대처하면 되는 거다' 라고만 말씀해주심. 아니 그건 나도 아는데... 이게 심리적으로 그래도 의사가 '괜찮을 것이오' 라고 말해주면 좀 입에 발린 말일지라도, 조삼모사 눈가리고 아웅이라도 마음은 좀 안정될 것 같아서 그런 말이 듣고 싶었다고요 흑흑. 분명 나의 이런 마음을 간파하고 저렇게 얘기하신 듯함. 오랫동안 봐온 분이라 나에 대해 매우 잘 알고 계심. 

 

 

 

하여튼 진료를 마치고 머나먼 대륙 횡단을 거쳐 화정으로 돌아왔다. 지하철만 꼬박 한시간 넘게 쭉 타고 와야 하니 그야말로 횡단이다. 사무실까지 생각하면 완전한 트라이앵글 횡단임. 지하철에선 30분 가량 진짜 정신없이 졸았다. 그나마 지하철 안에서 또 불안한 마음에 이것저것 검색하다가 나 같은 경우가 많은데 조직검사 결과 거의 대부분은 별 일 없다는 무슨 의사의 답변 하나를 읽고 눈가리고 아웅으로 약간 마음의 안정을 찾음. 하지만 역시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계속 이렇게 불안하고 조마조마하겠지 ㅜㅜ

 

 

 

 

 

 

 

그리고 귀가한 게 아니고, 집 앞 병원에 손목 치료를 받으러 갔다. 조금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통증이 있다고 얘기하자 이게 금방 낫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요즘 느끼고 있던 점을 딱 집어서 얘기해주시는 의사 선생님. 즉, 의외로 왼쪽 손목에 통증이 오는 경우가 많고 특히 여성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왼쪽 손목을 많이 쓴다, 왜냐하면 대부분은 오른손잡이이기 때문에, 보통 오른손으로는 문을 연다든지 그런 동작을 하고 힘을 주거나 받치거나 짚는 건 왼쪽으로 많이 한다는 것이다. 아 그렇구나. 나는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손목이 아프고 나서 지난 며칠 동안 보호대를 대충 감아놓고는 가급적이면 왼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노력을 했다. 그러나 이렇게 해보니 정말 의외로 내가 무의식적으로 왼손으로 컵을 든다든가 꽃병을 든다든가 힘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왼손을 쓰지 않으려고 하니 엄청 불편했다. 오늘 의사가 얘기한 것이 딱 와닿았다. 그렇군, 오른손으로는 물병에서 물을 따라야 하고, 수도꼭지를 틀어야 하고, 가위를 써야 하니 결국 힘을 주는 건 왼손이 되는구나. 오른손잡이라서 그런 거구나. 아픈 와중에도 뭔가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사실에 약간 뿌듯해짐. 모든 나쁜 일에 최소의 좋은 일..까진 아니더라도. 하여튼 나는 뭐든 새로운 것을 알거나 배우는 걸 좋아하는 인간이긴 한 것 같다. 

 

 

물리치료를 한참 받은 후 병원을 나와 약을 받아서 집에 돌아왔더니 어느새 저녁이 다 되어 있었다. 반나절이 이렇게 그냥 갔다. 뭐 그냥은 아니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실내자전거를 20분 타고(이제 30분으로 늘리고, 그 다음엔 한시간으로 늘려야겠다 ㅠㅠ),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목욕을 했고 부모님과 통화를 했다. 아버지가 디스크가 악화되어 다시 수술을 받으셔야 해서 가족 모두 심란하다. 예전에도 두번이나 수술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이제 연세도 많으시니 당연히 걱정이 된다. 우리 집안 사람들은 다들 몸이 부실하다 ㅠㅠ 월요일에 수술 대신 시술을 타진해보시려고 다른 병원에 가보신다기에 좀 알아봐드렸다. 마음 같아선 당연히 좀더 간단하고 몸에 무리도 덜 가는 시술을 받으시면 좋겠지만 이런 종류의 병원들이 많아서 신뢰감이 별로 안 생기니... 부디 괜찮은 병원이어야 할텐데. 

 

 

오후 반차를 냈으니 진료받고 집에 그래도 평소보다 좀 일찍 돌아와 쉬고 글도 좀 써야지~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으나 역시 병원 두 탕은 쉽지 않았다. 이미 밤이 되었다. 피곤하기도 하고 손목에 무리가 가면 안되니 그냥 늦지 않게 자야 할 것 같다. 이미 오늘의 이 메모도 길어져서 손목이 지쳤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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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