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경우 여행을 다녀오면 가장 오랫동안 남는 것은 짧지만 부드럽고 따스했던 휴식의 순간들인 것 같다. 특히 스며드는 햇살과 나무 테이블, 카페의 빨간색, 적당히 진하게 우려진 차와 달콤한 케익 같은 것들. 혹은 잎사귀들 사이로 거미줄처럼 빛이 일렁이는 공원 벤치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쐬며 새들을 보는 것. 뭐 그런 것들. 게으른 천성이라 그런가보다.
5월에 번개치기로 블라디보스톡에 갔을때 별로 쉬지는 못했다. 너무 시간이 짧아서 계속 여기저기 쏘다녔다. 하루에 카페도 여러군데 갔는데 실은 시간이 아까워서 그랬다. 원래같으면 하루에 카페 한두곳만 잡아서 느긋하게 늘어져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원에도 가고 바닷가에도 가고 이것저것 먹고 물건도 사고 하여튼 시간없어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느라 정작 제대로 쉰 순간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와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런 순간들이다. 이를테면 아침에 나가기 전에 잠깐 호텔 방 창가에 앉아 방에 비치된 유리잔에 티백 차 우려마시면서 에클레어 먹고 창 너머로 바다를 좀 보고 책을 읽었던 아주 짧은 시간(20분 가량밖에 안됐던듯) 같은 거. 이 순간이 너무 좋아서 그냥 오늘 나가지 말고 방에서 내내 뒹굴까 하는 생각마저 했었다. 그런데 사흘 반밖에 안 있으면서 하루를 통으로 호텔방에서 보내기는 너무 아까워서 결국 나가긴 했지.
(이런 말을 했더니 료샤가 '너는 원래 집순이잖아! 게으르고 또 게으른 방콕 집토끼~' 하고 놀렸음. 반박 안됨. 맞는 말임 ㅋㅋ)
카페마.
판탄카 카페.
블라디보스톡에서 맘에 드는 카페를 발견할 때마다 '어 여기도 잠깐 와서 지낼만한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시내에 바글거리는 한국사람들을 보면 금세 '아니야 아니야'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