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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 페테르부르크'에 해당되는 글 943

  1. 2016.11.07 마린스키 신관 2층 홀에서 4
  2. 2016.11.05 그 여름의 체리와 서양 자두 8
  3. 2016.11.05 미샤의 신입 시절, 싸움의 이유, 붉은 장미와 하얀 눈 44
  4. 2016.11.02 루빈슈테인 거리를 스쳐 지나가던 사람들 8
  5. 2016.11.01 카잔스카야 거리 따라 걷다가 2
  6. 2016.10.26 주황빛 미하일로프스키 극장에서 2
  7. 2016.10.26 극장이 있는 그곳 2
  8. 2016.10.25 어둠 속에 머물며, 오래 전의 글, 아스토리아 호텔 42
  9. 2016.10.22 그 수도원 빵을 내놓아라! 4
  10. 2016.10.21 불타는 나비처럼 북방 도시의 하늘을 날아갔지 8
  11. 2016.10.20 흑해의 여름, 춤추는 아이, 달빛 아래의 레나 46
  12. 2016.10.18 아끼고 있었죠, 평온과 위안을 위해 4
  13. 2016.10.15 비둘기야 너는 아니? 6
  14. 2016.10.15 비어 있던 의자를 채워준 친구와 레냐, 자고 일어났을 때 8
  15. 2016.10.12 해골소년 고릭을 만났던 그 카페 6
  16. 2016.10.11 이웃님들 조우의 장소들 : 아스토리아 빨간 지붕, 니콜스키 사원 앞 다리, 다스베이더 앞 12
  17. 2016.10.11 타브리체스키 공원 4
  18. 2016.10.09 알렉산드린스키 극장, 안나 카레니나 보러 갔던 날 2
  19. 2016.10.08 어디로 갔니 파란 팔찌, 페테르부르크인데 카페 이름은 프라하였음 6
  20. 2016.09.05 날아가는 꿈 기념 등, 엽님이랑 낮에 산책하며 찍었던 사진 몇장
  21. 2016.09.05 백조만 사고 토슈즈는 못 사왔지 6
  22. 2016.09.02 태양아 와줘!!! 3
  23. 2016.08.31 검은 말의 그림자 6
  24. 2016.08.30 지금은 없는 체리를 그리며 2
  25. 2016.08.29 순간 설렜는데 8
2016. 11. 7. 21:24

마린스키 신관 2층 홀에서 2016 petersburg2016. 11. 7. 21:24

 

 

몇년 전 개관한 마린스키 극장 신관. 물론 오리지널 마린스키 극장이 갖는 '극장'으로서의 아우라는 아직 부족하지만, 공연장으로서는 더할나위 없다. 그리고 몇년 동안 여러번 들르다 보니 어느새 나는 이 신관에도 정이 많이 들었다.

 

신관은 미로 같고 좁은 구관에 비해 널찍널찍하고 밝다. 카페는 2층의 커다란 홀에 자리잡고 있다. 카페 안쪽에는 스트라빈스키의 이름을 딴 강의실 같은 공간이 있는데 여기서 종종 여러가지 프로그램이 개최된다. 이따금 전문가가 나와서 발레 이야기도 해주고 피아노 연주도 해주고... 전에 좀 빨리 와서 백조의 호수와 차이코프스키에 대한 얘기를 들었는데 즐거웠다.

 

구관도 그렇지만 신관도 카페에서 한적하게 차를 마시려면 공연 시작 한시간 전부터 미리 줄을 서 있다가 극장 문이 열리면 잽싸게 입장해서 코트를 맡기고 카페로 달려가야 한다. 안 그러면 금방 자리가 다 차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공연 시작 한시간 십여분 전에 가서 줄서서 기다리다가 문열면 거의 첫번째로 들어가곤 한다. (한시간 전부터 문 열어줌)

 

들어가자마자 프로그램을 사고, 코트나 스카프, 무거운 짐을 맡긴 후 가벼워진 몸으로 아직은 텅 빈 카페로 올라가는 기분은 정말 좋다. 공연에 대한 기대감, 극장에 왔다는 설렘, 새로운 세계로 들어왔다는 기쁨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극장에 가는 커다란 이유 중 하나이다. 새로운 세계로 잠깐이라도 들어가는 것.

 

 

 

2층 카페 안쪽, 스트라빈스키 홀 쪽에는 이렇게 피아노가 한대 있다. 나처럼 빨리 온 관객 두분이 행복해하며 인증샷을 찍고 있었다. 페테르부르크 주민이라 해도 마린스키에 오는 건 특별한 날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공연 보러 올때 예쁘게 차려입고 오고 특히 신관은 화려한 인테리어 때문에 다들 포즈 취하며 사진찍기 바쁘다. 셀카도 엄청 많이 찍는다. 이 두분은 모녀로 추정됨. 빨간옷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어머니로 보이는 중년여인에게 이렇게 저렇게 서봐요~ 하면서 사진 찍어주고 있었다 :)

 

 

 

이게 그 카페 안쪽 스트라빈스키 홀.

 

 

마린스키 신관의 계단은 이렇게 되어 있다.

 

 

호박색 금빛이 아름답고 화려한 마린스키 신관의 매끄러운 벽. 마린스키 신관은 호박색, 구관은 하늘색이다 :)

 

:
Posted by liontamer
2016. 11. 5. 22:45

그 여름의 체리와 서양 자두 2016 petersburg2016. 11. 5. 22:45

 

6월. 페테르부르크. 내가 세번째로 머물렀던 호텔 창가.

 

벌써 몇달이 흘렀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저때 내가 가장 많이 먹었던 건 체리였다. 그리고 모르스. 크랜베리 주스의 일종인 시원한 모르스와 달콤한 검은 체리. 러시아어로는 체레슈냐. 그리고 이따금 슬리바, 즉 서양 자두. 그리고 수퍼에서 사온 봉지에 들어 있던 혼합 견과. 저 당시 뭔가를 먹기가 힘들었다. 료샤 덕에 그래도 식사를 많이 거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말 먹고 싶은 건 저것들 뿐이었다. 체리. 서양 자두. 모르스. 이따금 에스키모 아이스크림.

 

아마 내가 체리를 가장 많이 먹었던 때가 아닐까 싶다. 원래 체리를 좋아하긴 하지만... 페테르부르크에서 사먹는 체리는 가격이 더 쌌다. 나는 이틀에 한번씩 수퍼에서 체리를 사왔다. 그리고 매일 먹었다.

 

 

체리. 서양 자두 한 알.

 

아침에 먹기도 하고. 저녁에 먹을 게 없으면 또 체리를 먹었다.

 

 

레냐마저도 내가 돌아갈때 한국에 체리 없는데 어떡하냐고 징징댔다. (있긴 있어, 비싸서 그렇지 ㅠㅠ)

 

지금이야 저때보다는 훨씬 잘 먹고 있는데다 심신 양쪽 모두 훨씬 좋아졌다만... 추워서 체리 안 팔아 ㅠㅠ 체리 먹고 싶다 흐흑... 나는 체리 농장주와 결혼하고 싶다!

 

 

 

6월에 샀던 로모노소프 찻잔.

 

 

 

호텔 근처 빵집에서 사왔던 에클레어와 체리, 서양 자두와 차 한잔으로 점심 때웠던 듯하다. 료샤랑 레냐 만나러 나가기 전에.

 

흑, 체리랑 서양 자두 먹고프다.

 

:
Posted by liontamer

 

 

 

 

전에 이 about writing 폴더에 트로이의 관점에서 기술된 미샤의 첫 시즌과 그의 돈키호테 무대 데뷔, 폐렴으로 인한 입원 등에 대한 에피소드를 발췌한 적이 있다. 아래 이야기는 같은 사건에 대한 미샤의 오랜 후원자이자 애인인 고위직 당 간부 드미트리 마로조프의 회상이다.

 

물론 트로이와 마로조프는 서로 다른 곳에 존재하고 또 다른 식으로 미샤와 관계를 맺고 있으며 다른 방식으로 이 해프닝을 마주한다. 트로이가 아는 것을 마로조프는 모르고 마로조프가 아는 것을 트로이는 모른다. 미샤는 당사자이므로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언제나처럼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이 다 그럴테지만.

 

시간적 배경은 1974년 4월. 미샤가 키로프 극장에 들어간지 반년이 조금 넘은 시기이다. 그는 이미 해적의 알리와 지젤의 알브레히트로 공전의 성공을 거두고 이른바 원더키드로 관객들과 평론가들을 사로잡기 시작했을 무렵이다. 키로프 발레단의 유명 무용수들은 소련 각 도시를 도는 국내 투어를 떠나고 미샤도 거기 합류한다. 아래 이야기는 투어에서 돌아온 미샤를 레닌그라드 근방의 도로에서 자기 고급차에 태워주는 드미트리 마로조프의 회상으로 시작한다.

 

세레브랴코프와 마할린은 모두 가상의 인물이다. 세레브랴코프와 미샤의 악연에 대해서는 몇번 발췌한 적이 있다.

니나 크류코바 역시 가상의 인물로 당시 키로프 극장의 톱스타 프리마 발레리나이다. 옛날로 따지면 나탈리야 두딘스카야나 갈리나 울라노바, 요즘으로 따지면 스베틀라나 자하로바나 울리야나 로파트키나, 디아나 비슈뇨바처럼 극장을 대표하는 발레리나인데 소련 시절이라 지금의 자하로바나 로파트키나보다 위상이 더 높았다.

율리야 야스미나는 미샤의 어머니이다.

 

 

맨 위 사진은 마린스키 극장 무대에 드리워진 막. 아래 사진은 차이코프스키 파 드 두를 추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를 백스테이지에서 찍은 것. 돈키호테 사진들은 전에 많이 올려서.

 

 

..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 다리 좀 뻗어도 되나요? 누워도 되면 더 좋겠는데... ”

 

 

 그건 미샤의 키로프 첫 시즌 봄이었다. 그때 그는 키예프와 사라토프를 거쳐 페름까지 이어진 3주 동안의 국내 투어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나는 레닌그라드 진입로에서 미샤를 태웠다. 커다란 가방을 들고 버스에서 내린 그 아이의 옷은 먼지투성이에 온통 구겨져 있었다. 투어 도중에 독감에라도 걸렸는지 연신 기침을 하고 있었다. 발레학교 시절부터 그 아이는 대놓고 자존심을 세우며 내가 보낸 차를 타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 날만은 예외였다. 물론 그는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넓고 푹신한 뒷좌석에 몸을 눕히더니 두 다리를 쭉 뻗고 두 손으로 무릎을 이리저리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 꽤 지쳤나보군. ”

 

 “ 3주 내내 버스로 끌려 다녔거든요. 엔진이 세 번 고장나고 타이어가 네 번 터졌어요. 페름에선 공연 30분 전까지도 그 고물 버스 안에 처박혀 있어야 했죠. ”

 

 “ 어쩌겠나, 인민예술가 정도 되면 대우가 좀 나아지겠지. ”

 

 

 건방진 꼬마는 코웃음을 치려고 했지만 꼴사납게 밀려오는 기침 때문에 때를 놓쳤다. 충혈된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머리는 이미 까치집처럼 헝클어져 있었고 뺨은 열에 들떠 사과처럼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왼쪽 광대뼈 언저리는 파랗게 멍이 들어 부풀어 있었다.

 

 간신히 기침이 멎었을 때 나는 그에게 손수건을 주었다. 미샤는 눈과 코를 닦은 후 손수건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쳤다.

 

 

 “ 그 버스 안에는 인민예술가 한 명에 공훈예술가 두 명이 있었다고요. ”

 

 “ 그럼 불평하지 말아야지. ”

 

 

 더워서 벗어놓았던 캐시미어 스웨터를 그 아이의 목과 가슴 위로 덮어준 후 나는 광대뼈의 상처에 대해 물었다. 이미 반쯤 졸고 있었던 미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후 차에서 내릴 때가 되었을 때에야 내키지 않는 어조로 대꾸했다.

 

 

 “ 존경하는 인민예술가께서 남겨주신 흔적입니다. ”

 

 “ 이런 짓을 할 만한 건 세레브랴코프인 것 같은데. ”

 

 “ 그깟 공훈예술가 따윈 그럴 배짱이 없죠. ”

 

 

 싸움을 건 쪽은 세레브랴코프였다. 단순한 선배들의 위계 잡기일 수도 있었고 들어온지 일 년도 되지 않아 주역을 독차지하다시피 한 경쟁 상대에 대한 질투일 수도 있었다. 미샤는 선배 무용수의 도발에 모욕적인 발언으로 맞섰고 과히 우아하지 못한 싸움이 벌어졌다. 그들을 떼어놓은 건 대선배인 알렉세이 마할린이었다.

 

 

 “ 마할린이 자넬 쳤다고? 그 온순한 친구가? ”

 

 “ 발레단에 온순한 인간 같은 건 없어요. ”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 어쨌든 불평하지 말아야겠군. 인민예술가에게 맞은 거라면. ”

 

 “ 불평 같은 건 안 해요. 별로 아프지 않았거든요. ”

 

 

 그날 밤 미샤는 스몰니의 내 아파트에 머물렀다. 다음날 아침 돌아갈 때는 내 스웨터를 입고 갔다. 모자까지 받아 썼다. 아마 외투를 줬다면 그것도 망설임 없이 입고 갔을 것이다.

 

 잠시 후 나는 산책을 하려고 나왔다가 현관에서 몇 발짝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그 아이를 발견했다. 이른 봄이었지만 변덕스러운 레닌그라드 날씨답게 새벽부터 폭설이 쏟아졌기 때문에 미샤는 발목까지 차오른 눈 위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미끄러져 넘어진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새하얀 눈 위로 새빨간 핏방울이 루비처럼 점점이 흩뿌려져 있었다. 페름에서 싸움이 붙었을 때 마할린은 그 아이의 코와 광대뼈 사이를 가격했던 것이다. 요행히 코뼈가 부러지거나 내려앉지는 않았다. 심지어 콧등이 부어오르지도 않았다. 그저 눈 위에 앉아 코피를 펑펑 흘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 이런데도 아프지 않았다고? ”

 

 “ 아프지는 않아요. 숨쉬기가 불편할 뿐이지. ”

 

 

 그나마 얼굴이 망가지지 않았으니 다행이었다. 물론 알렉세이 마할린에게는 더욱 더. 며칠 동안 나는 그 작자를 고별 공연도 없이 은퇴시키고 말겠다는 충동에 시달렸다.

 

 

 나는 오전 연습에 가야 한다고 우기는 미샤를 기사의 차에 태워 병원으로 보냈다. 간단한 치료로 끝날 줄 알았지만 검사가 이어졌고 병원에서는 그 자리에서 미샤를 입원시켰다. 마할린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코 때문이 아니라 폐렴 때문이었다.

 

 이틀 째 되던 날 그는 간호사에게는 말도 하지 않고 병실에서 기어나가 리허설과 정례 수업에 참석하고 그 다음날 밤에는 예정대로 무대에 올라가 춤을 췄다. 돈키호테였고 파트너는 니나 크류코바였다. 그녀는 미샤의 표현대로라면 ‘존경하는 인민예술가’였고 오랫동안 세레브랴코프의 파트너였다.

 

 

 무용계에서는 한동안 크류코바가 미샤를 낙점한 것에 대해 떠들어댔지만 그날 돈키호테 공연에서 그녀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아직도 그날 밤 관객들의 환호와 충격 어린 열광을 기억한다. 그랑 파이널의 코다 무렵에는 천둥처럼 울려대는 갈채와 신음 소리, 숨이 멎는 듯한 비명들 때문에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전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미샤가 솔로를 마쳤을 때 무대로 날아든 꽃들 때문에 크류코바는 하마터면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 했다. 커튼콜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나는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야 했다.

 

 

 극장 밖은 꽃다발과 편지와 선물을 한 아름 안고 진창으로 부츠를 더럽히며 줄지어 있는 팬들로 가득했다. 주차장 한켠에는 얇은 봄 코트를 입고 머리를 스카프로 감싼 율리야 야스미나가 그 열광적인 남녀들을 힐끗거리며 서 있었다. 아들을 보러 온 모양이었다. 나는 그녀를 서류의 사진으로밖에 본 적이 없었지만 흐릿한 가로등 램프 불빛 아래에서도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창백한 얼굴과 빛나는 검은 눈, 길고 미끈한 목과 호리호리한 실루엣, 초조함과 행복감이 뒤섞인 표정.

 

 

 그날 밤 팬들도 율리야도 그를 만나지 못했다. 투우사를 췄던 동료가 분장실에 갔다가 고열로 의식을 잃은 채 바닥에 뒹굴고 있는 미샤를 발견했다. 그 고집쟁이는 40도까지 열이 치솟는 것도 모르고 춤을 추러 올라갔던 것이다. 혼비백산한 다닐로프가 자기 차로 그를 병원에 싣고 갔다고 들었다.

 

 

 나는 다음날 병원에서 율리야를 보았다. 그녀는 내가 누구인지 몰랐고 나도 굳이 인사를 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복도에 선 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담배를 감싸고 있는 긴 손가락 사이로 결혼반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잠시 나는 그녀에게 세르게이 야스민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침묵했다. 그녀가 과거 속에서 살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니 어쩌면 그건 미샤가 얘기하는 어둠이었을지도 모른다.

 

 

 미샤는 폐렴으로 입원해 있던 열흘 동안 일곱 번 병원을 빠져나가 연습과 수업에 참석했고 심지어 지젤 무대에도 예정대로 올라갔다. 단 한 번도 너그럽다는 평을 들어본 적이 없는 크류코바는 자신의 스포트라이트를 빼앗아간 어린 파트너를 질투하기는커녕 지젤을 비롯해 이후 백조의 호수까지 같이 췄다. 광대뼈의 멍은 얼마 가지 않아 사라졌고 콧대는 멀쩡했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나는 그에게 대체 왜 세레브랴코프의 도발에 화를 내며 싸움으로 맞섰느냐고 물었다. 고분고분하거나 얌전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상대에게 언성을 높이거나 화를 내는 적이 거의 없는 애였으니까.

 

 

 “ 제가 배역을 얻으려고 니나와 잤다고 몰아붙여서요. 정말로 화가 났던 건 아니에요. 화를 내야 정상인 상황이라 그랬던 거죠. ”

 

 

 나는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그에게 정말 크류코바와 잤느냐고 물었다.

 

 

 “ 파트너와 자면 신뢰가 깨져요. 그런 식으로 춤추고 싶지는 않아요. ”

 

 “ 신뢰 대신 다른 게 생길 수도 있지. 이를테면 사랑이라든가. 키로프에도 커플 무용수들 여럿 있지 않나. ”

 

 “ 전 사랑으로 춤추는 인간이 아니에요. ”

 

 

...

 

 

 

폐렴에 걸린 미샤가 병실을 빠져나가 돈키호테 무대에 올라갔다가 쓰러져 도로 실려간 이야기와 세레브랴코프와의 싸움 얘기는 트로이의 이야기에 다른 식으로 좀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 얘기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3594 (미샤의 첫 번째 시즌, 돈키호테, 축구팀과 군대처럼 등)

 

여기 발췌한 에피소드의 일인칭 화자인 드미트리 마로조프와 미샤의 이야기는 전에 두어군데 다른 내용을 발췌한 적이 있다. 사실 나는 몇년 전 다시 글을 쓰고 미샤를 되살려내면서 바로 이 이야기를 쓰는 것으로 시작했었다. 그래서 이 단편은 내겐 좀 특별하다.

 

전에 발췌했던 마로조프의 이야기들은 아래 :


마지막 동작이 완성되지 않은 춤, 운하를 건너는 미샤 : http://tveye.tistory.com/4485 

그가 읽었던 불가코프의 문장, 비행기에서, 거장과 마르가리타 :  http://tveye.tistory.com/4572

 

..

 

 

 

마린스키 극장(소련 시절 키로프 극장)

 

 

 

난 사실 여기 발췌한 저 소설을 쓸때 이런 이미지로 시작했다. 그건 아주 붉은 장미와 하얀 눈이었다.

하얀 눈 위에 쏟아진 붉은 피에 대해 쓸때도 마찬가지였고 저 단편 전체를 쓰는 내내 나는 장미에 대해 생각했다. 장미와 눈. 그래서 원래 이 단편의 에피그라프를 장미나 눈에 대한 시로 할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그렇게는 하지 않았다.

아쉽게도 하얀 눈 위에 핀 빨간 장미 사진은 찍어본 적이 없어서... 이번 페테르부르크 갔을때 찍었던 이삭 광장의 붉은 장미 사진으로... :)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미하일 바리쉬니코프. 사진은 nina alovert.

 

 

돈키호테를 추는 파루흐 루지마토프. 사진은 nina alovert.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
Posted by liontamer

 

6월. 페테르부르크. 루빈슈테인 거리.

맛있는 음식점과 카페, 바들이 모여 있는 곳이고 예술가들과 청년들이 많이 모이는 동네이다.

이 거리는 언제나 살짝 산만하고 시끌시끌하고 젊은이들로 가득차 있고 또 다채롭다. 해골소년 고릭도 이 거리의 어느 카페에서 마주쳤다(ㅋㅋ) 이 거리에는 유명한 레프 도진의 말르이 드라마 극장도 있다. 그리고 세르게이 도블라토프가 망명 전까지 살았던 공동아파트도 있다.

 

저녁 무렵 거리 산책하다 찍은 사진 한장. 거리와 사람들의 색채가 맘에 들어서.

 

:
Posted by liontamer
2016. 11. 1. 21:10

카잔스카야 거리 따라 걷다가 2016 petersburg2016. 11. 1. 21:10

 

6월. 페테르부르크. 중간의 한두 장은 블라지미르스키 대로 쪽인 것 같기도 한데 긴가민가.. 하여튼 거의 카잔스카야 거리 쪽 걸어가면서 찍은 사진들이다. 이날 날씨가 흐렸고 중간에 비도 좀 왔다. bravebird님이 이쪽 근방에 있는 숙소에 묵으셔서 근처에 있는 맛집인 수프 비노를 알려주셨었다. 그래서 작년이랑 올해 수프 비노 가느라 이 길을 자주 걸었다 :)

 

흐린 날 페테르부르크의 카잔스카야 거리 풍경 몇 장.

 

 

 

 

 

 

 

 

:
Posted by liontamer
2016. 10. 26. 22:54

주황빛 미하일로프스키 극장에서 2016 petersburg2016. 10. 26. 22:54

 

지난 6월. 나초 두아토 안무의 잠자는 미녀 보러 갔을 때. 페테르부르크 미하일로프스키 극장.

 

내가 제일 처음 봤던 '고전 발레'가 바로 이 극장에서 본 잠자는 미녀였다(물론 그 전에 마린스키에서 봄의 제전이나 포킨 발레를 보긴 했지만 그건 클래식 발레는 아니니까) 그래서 이 극장과 잠자는 미녀는 둘다 추억의 무게를 지니고 있다.

 

나초 두아토 안무의 미하일로프스키 버전 잠자는 미녀는 딱히 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만... 이날 카라보스를 파루흐 루지마토프가 췄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다 용서되는 날이었다. 그분은 역시 아직도 너무나 근사하셨다.

 

사진 왼쪽의 금빛 카드는 좌석 칸막이 방으로 들어가는 키 카드이다. 마린스키 구관은 아직 베누아르나 벨에타쥐 등의 좌우 윙 쪽에 있는 칸막이 방들로 들어가려면 안내원 할머니들이 종이 친 후 열쇠로 열어줘야 들어갈 수 있는데 미하일로프스키는 이번에 가보니 아예 그쪽 좌석 앉는 손님들에게 저렇게 키 카드를 주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최근 몇년 동안 이 극장에 갔어도 칸막이 자리는 진짜 오랜만에 앉은 거라서.

 


막간 휴식 끝나고도 저걸로 열고 들어갈 수 있는데...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가져가버리는 손님들도 많을 것 같다... 공연 끝나면 쓰나미처럼 관객들이 빠져나와 좁은 계단으로 물밀듯 내려가는데 누가 칸막이에서 나왔는지 어떻게 알아.... 사실 나도 기념으로 갖고팠지만 그래도 나는 원칙적인 관객이므로(ㅋㅋ) 그 쓰나미 사이에서도 안내원을 찾아 카드를 반납하고 나왔음.

 

 

극장 내부 사진 한장. 내 자리가 윙 쪽이라서 한쪽만 나왔다. 미하일로프스키는 극장이 작다. 그래도 알렉산드린스키보다야 크지만.

 

:
Posted by liontamer
2016. 10. 26. 00:28

극장이 있는 그곳 2016 petersburg2016. 10. 26. 00:28

 

 

페테르부르크. 극장 광장. 찌아뜨랄나야 쁠로샤지.

마린스키 극장과 신관이 있는 동네.

 

이 바닥 이제 꽤 정나미가 떨어지긴 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극장을 좋아하고 어디든 극장과 무대를 생각하면 가슴 한구석이 뛰긴 하지... 그림보다는 극장이 더. 하긴 어쩌면 내가 극장에서는 직접 일해본 적이 없어서일지도.

 

 

마린스키 신관 카페. 이날 슈클랴로프의 지젤을 보러 갔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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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0. 22. 23:21

그 수도원 빵을 내놓아라! 2016 petersburg2016. 10. 22. 23:21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수도원 들어가는 길.

수도원 들어갈때까진 카메라를 썼고 들어가서는 큰 카메라 촬영이 예의에 어긋나서 이따금 살짝 폰으로만 몇장 찍었다.

 

 

 

이건 수도원 나오면서 찍은 사진들.

날씨 엄청 좋았다. 레냐랑 료샤랑 수도원 뒤뜰에서 열린 시장에도 들러서 나는 꿀과 차를 샀었지.

 

 

 

여기 비둘기 엄청 많다. 우글우글~~

 

 

 

비둘기들 : 토끼, 다 들켰어! 그 수도원 빵을 냉큼 내놓아라! 맛있는 거 너 혼자 먹냐!!!! 수도원이니 새들에게 자비를 베풀라!! 사과빵 버섯빵을 내놓으라!!!

 

토끼 : 헉... 어떻게 알았지... 싫어, 내가 먹을 거야... 나 이거 일년 내내 먹고 싶어하던 거란 말이야 ㅜㅜ

 

 

그래서 비둘기 안 주고 호텔까지 가져온 수도원 카페의 사과빵과 버섯빵 :) 이곳 빵들 담백하고 맛있다. 싸고...

 

수도원 카페랑 빵 얘긴 여기 :

http://tveye.tistory.com/4810
http://tveye.tistory.com/4359
http://tveye.tistory.com/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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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페테르부르크 네바 강변.

이날 bravebird님과 하루종일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백야의 석양과 황혼을 보기 위해 네바 강변을 함께 산책했다. 그리고 금빛과 붉은빛을 내뿜으며 날아가는 연등을 보았다.

 

카메라 줌을 당겨도 원체 멀어서 콩알만하게 나왔지만... 변화무쌍하게 물든 페테르부르크 백야의 하늘과 네바 강물 위로 날아가는 연등은 불타는 나비처럼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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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미샤와 트로이, 그들의 친구들이 여름에 여럿이 모여 기차를 타고 흑해에 놀러가는 장면을 발췌한 적이 있다. 그 이야기에서 그들은 기차 안에서 왁자지껄 떠들고 술을 마신다. (http://tveye.tistory.com/4671)

 

흑해로 놀러간 이 친구들은 이 장편의 도입부에서부터 함께 등장하는데, 모두들 비밀 문학 서클의 일원이다. 이 서클은 트로이와 그의 절친 알리사, 그리고 두어명이 주도하여 만든 것으로 금지된 외국 문학을 번역해 돌려 읽거나 반체제 작가, 지하출판물 등을 읽는 모임인데 주로 레닌그라드 국립대학교와 여타 다른 대학들의 외국어 전공 학생, 문학 전공자 등이 참여하고 있다. 미샤는 지인의 소개로 이 서클에 들렀다가 트로이와 친해지게 되었다.

 

그중 소설에 꾸준히 등장하는 인물들은 트로이와 친한 친구들로 료카와 갈랴(둘은 부부이다. 주로 둘의 집에서 모임이 개최된다), 이고리(영화학교 출신. 렌필름 촬영기사), 코스챠, 스베타(미샤를 처음에 데리고 온 친구), 타냐(발레 애호가) 등이다. 그리고 미샤의 팬이라서 억지로 서클에 끼어든 레나라는 소녀가 있다. 이 친구들이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은 전에 몇번 발췌한 적이 있다. 다같이 썰매타러 가서 논다든지, 표절작가 쥬진스키에게 이고리가 시비를 걸어 싸우는 이야기라든지, 갈랴와 료카의 어린 딸이 메밀죽 먹기 싫다고 트로이에게 떠넘긴다든지...

 

여기 올리는 이야기는 전에 올렸던 흑해 가는 기차 이야기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에피소드이다. 이야기의 주역은 미샤를 짝사랑하던 소녀 레나와, 물론, 주인공인 미샤이다. 그리고 다른 여인이 하나 더 있다. 그건 이야기 속에서.

 

 

시간적 배경은 1973년 여름. 미샤는 발레학교를 막 졸업하고 키로프 발레단에 입단해 데뷔를 앞둔 시점이다. 친구들과 함께 잠깐 흑해에 헤엄치러 놀러 갔을 때이다. 흑해는 예로부터 러시아 최고의 여름 휴양지였다.

 

 

** 위의 사진은 흑해가 아니고 페테르부르크(옛 레닌그라드)의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강변 풍경이다. 작년 여름에 내가 찍은 것이다. 흑해는 안 가봐서 ㅠㅠ

 

 

** 이 에피소드는 아주 약간 15금 정도의 묘사가 있는데 그나마 그것도 여기 올리면서 내가 자체검열로 좀 수정했음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그들은 알리사 아버지의 인맥으로 해변 근처의 방 세 개 달린 아파트를 싸게 빌렸다. 임신한지 얼마 안 된 갈랴와 료카 부부에게 방을 하나 주고 나머지는 기차를 타고 왔을 때처럼 남녀로 나눴다. 날씨는 아주 좋았고 해변은 사람들로 붐볐지만 그래도 수영을 하고 노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매일매일이 레닌그라드에서는 백야의 여름 중 운 좋은 며칠 동안만 누릴 수 있는 찬란하고 뜨거운 날씨였다.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다들 실컷 헤엄을 치고 일광욕을 했다. 알리사는 약한 피부를 보호하려고 어마어마한 양의 수입산 선크림을 발랐지만 별 소용이 없어서 사흘 째 되는 날 코끝이 홀딱 벗겨지고 어깨와 팔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물집이 잡히고 말았다. 갈랴가 속상해 하는 알리사를 욕실로 데려가 얼음으로 마사지를 해주고 시장에서 구한 연고를 발라주었다. 미샤는 알리사만큼 피부가 흰 편이었지만 선크림 덕분인지 타고 난 것인지 조금 그을렸을 뿐 아무리 햇볕을 쬐고 다녀도 전혀 화상으로 고생하지 않아 여자들의 부러움을 샀다.

 

 

 긴 금발의 인형 같은 레나는 해변에서 인기가 좋았다. 또래 소년들부터 2~30대 남자들까지 다채로운 유혹이 쏟아졌다. 레나는 밀려드는 데이트 신청을 도도하게 거절하기도 하고 가끔은 보란 듯이 잘생긴 남자를 골라 팔짱을 끼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한번은 적어도 서른 살은 된 것 같은 콧수염 기른 남자의 추근거림을 받아들여 바에서 시끄러운 재즈 음악에 맞춰 춤까지 췄다.

 

 

 그 바에는 트로이 일행도 모두 와 있었다. 물론 미샤도 있었다. 레나가 왜 그러는지는 뻔했고 타냐와 갈랴는 애가 타서 미샤를 들들 볶았다. 네가 리드를 하지 않으니 레나가 저런 사기꾼 같은 남자와 춤을 추고 있지 않느냐, 분명 유부남일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레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  등등 수다스러운 어미새 두 마리처럼 떠들어댔다. 트로이는 그들의 입을 막고 싶었지만 그보다 먼저 미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좀처럼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는 적이 없는 애였지만 몹시 귀찮았는지 입술이 가느다랗고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일행은 미샤가 콧수염 기른 남자로부터 레나를 데리고 나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곧장 연주자들 곁에 앉아 있던 거구의 여자에게 가서 춤을 청했다. 여자는 짙은 화장에 유행이 지난 얼룩덜룩하고 폭이 넓은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아무리 적어도 마흔 살은 넘어 보였다.

 

 

 친구들이 어이가 없어 입을 딱 벌리고 있는 동안 미샤는 그 여자와 시끄러운 재즈 연주에 맞춰 키로프 무대에서는 결코 볼 일이 없을 춤을 췄다. 알고 보니 여자는 연주자들의 매니저였고 몇 년 전까지 바와 클럽을 전전하며 춤을 췄던 경력이 있었다. 자신들의 매니저가 오랜만에 젊은 파트너를 만나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연주자들은 신이 나서 모든 박자를 무시하고 씽씽 달리는 즉흥 연주를 시작했다. 그건 더 이상 재즈가 아니라 소러시아 민요와 고파크와 소련 군가를 합쳐놓은 듯한 미친 소음으로 변했고 홀은 귀를 찢는 음악과 마루를 걷어차는 발소리와 박수와 휘파람과 고함 소리로 광란과 혼돈의 도가니에 빠졌다. 미샤는 90킬로는 너끈히 나갈 것 같은 거구의 여자를 발레리나 파트너를 다루듯 가볍게 빙글빙글 돌렸고 서너 차례는 공중으로 띄웠다. 감탄과 비명, 환호와 갈채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짙은 화장으로 얼굴 윤곽을 제대로 알아보기도 힘든 여자는 연신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고 소리를 지르며 미샤의 리드에 맞춰 미친 듯이 춤을 췄다.

 

 

 한참 춤이 격렬해졌을 때 여자의 구두 한 짝이 벗겨져 트로이가 앉아 있는 의자 앞까지 날아왔다. 갈랴가 얼굴이 창백해져서 트로이의 어깨를 두들겼다.

 

 

 “ 그만, 그만하라고 해. 빨리 데리고 나와. ”

 

 

 트로이는 갈랴가 레나에 대해 얘기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레나는 이미 테이블에 돌아와 있었고 타냐의 팔에 안긴 채 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 광란의 춤을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콧수염 기른 남자는 어디론가 쫓아버린 후였다.

 

 

 “ 왜? 잘 추고 있는데. ”

 

 “ 잘 추고 있다니, 어떻게 그런 소릴 해. 어디서 굴러먹었는지도 모르는 저런 늙은 여자랑... 레나 때문에 저러는 거잖아. 이제 됐으니까 빨리 끌고 나와. ”

 

 “ 레나 때문이라니, 쟤는 그냥 춤을 추는 거야. 가만히 놔둬. ”

 

 

 트로이는 미샤를 끌고 나올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취해 있었고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그는 광녀처럼 웃고 소리치며 홀에서 춤추고 있는 그 거구의 여인이 되고 싶었다. 저 여자는 자기 손목을 낚아채 회오리처럼 빙빙 돌리고 허공으로 밀어붙이는 저 낯선 상대가 누구인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맞고 있다는 걸 알기나 할까? 그런 춤의 상대가 될 수 있다면 알량한 연주단 매니저 따위, 공동아파트의 방 몇 칸 따위, 배급표 따윈 헌신짝처럼 내팽개쳐도 아깝지 않다는 걸 알고 있을까?

 

 

 알리사가 트로이의 뺨을 가볍게 찰싹 때리고 물을 한 잔 주었다.

 

 

 “ 너 완전히 취했어. 물 좀 마셔. ”

 

 

 트로이는 컵을 제대로 잡지 못해 바닥에 떨어뜨렸다. 유리컵이 소리를 내며 깨졌지만 이미 다른 테이블 손님들 몇몇도 취해서 술잔을 내던져 깨며 흥분해 노래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눈에 띄지도 않았다.

 

 

 거구의 여자가 차오르는 숨을 견디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미샤는 여자가 자빠지지 않도록 재빨리 한 팔로 그녀의 허리를 받치더니 공주님을 모시듯 피아노 옆 의자로 데려갔다. 연주자들이 색소폰으로 흐느끼는 듯한 신파 멜로디를 연주하는 동안 그는 여자를 의자에 앉히고 두툼한 손등에 열성적으로 키스를 했다. 휘파람과 박수와 고함 소리가 더 커졌다. 화장이 다 녹아내려 얼굴이 온통 시커멓고 새빨갛게 얼룩진 여자가 미샤를 껴안고 입술이 달아날 정도로 세게 키스를 퍼부었다. 트로이는 여자가 그 자리에서 미샤의 무릎에 올라앉아 치마를 걷어 올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정신이 혼미했다. 그가 알리사가 준 물을 마셨었나? 아니, 컵을 떨어뜨려 깨버렸지.

 

 

 여자가 미샤를 놔주었다. 그녀는 욕정으로 몸을 떨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황홀하게, 믿을 수 없을 만큼 행복에 겨워서. 트로이는 여자가 미샤를 다시 한 번 끌어당겨 안았을 때 귓가에 하염없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 착하기도 해라... 고마워. 정말 고마워. ”

 

 

 미샤가 녹초가 된 여자에게 정중한 인사를 하고 홀에서 걸어 나왔다. 테이블 쪽으로는 오지도 않고 곧장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레나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

 

 

 

 트로이는 그 날 어떻게 숙소로 돌아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아마 친구들이 그를 부축해 데려온 것 같았다. 그렇게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취했던 것이다.

 

 

 그는 너무 목이 말라서 새벽에 깨어났다. 트윈 침대 위에 코스챠와 료카가 신발도 벗지 않고 엎드려 자고 있었다. 카펫 위에는 담요로 몸을 둘둘 만 이고리가 누워 코를 골고 있었다. 자신은 소파 위에 누운 채 바닥에 다리를 반쯤 늘어뜨리고 있었다. 아마 그가 너무 커서 침대에 눕히기에는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미샤는 없었다.

 

 

 그는 물을 마시러 어두컴컴한 부엌으로 나갔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두통약이라도 한 알 삼키고 싶었지만 그러려면 갈랴를 깨워야 했다. 포기하고 테이블 위에 있는 주스 팩을 뜯어서 단숨에 마시고 나자 갈증과 두통이 조금 가시는 것 같았다. 화장실에 가려고 거실 쪽으로 나왔다가 그는 반쯤 열려 있는 안쪽 방문 사이로 울음 섞인 목소리가 새어나오는 것을 들었다. 갈랴와 료카의 방이었다. 혹시 임신 초기의 갈랴에게 어딘가 이상이 생긴 건 아닐까? 그러고 보니 그녀는 바에서도 안색이 좋지 않았었다. 걱정이 된 트로이는 문가로 다가갔다. 막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찰나 그는 료카가 자기들 방에서 자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료카는 갈랴와 함께 있지 않은 거지?

 

 

 그는 문 뒤에 멈춰 섰다. 갈랴가 아니었다. 울고 있는 건 레나였다. 작은 침실 한가운데, 카펫도 깔려 있지 않은 마루 위에 서서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커튼이 없는 방이었기 때문에 창문으로 달빛이 쏟아져 들어와 램프를 켜놓은 듯 환했다. 침대 곁 의자에 미샤가 앉아 있었다.

 

 

 그는 자신이 너무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갈랴는 아픈 것이 아니었다. 료카와 짜고 방을 내준 것이다. 레나와 미샤를 위해.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그는 빨리 몸을 돌려 방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발이 딱 붙어 버린 것처럼 꼼짝달싹도 할 수가 없었다. 어둠 속에 가려진 채 열린 문 너머로 멍하게 침실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레나는 하얀색의 짧은 원피스 잠옷을 입고 긴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린 채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이따금 밀려나오는 울음 때문에 어깨가 들썩거렸다. 하지만 트로이는 레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의 시선은 미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미샤는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머리는 엉망으로 뒤엉켜 검은색으로 물들인 월계관이라도 씌워놓은 것 같았다. 바에서 입고 있던 옷차림 그대로였다.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얼굴과 목은 시커멓게 번진 마스카라와 붉은 립스틱 자국으로 온통 얼룩져 있었다. 바에서 춤췄던 여자가 남겨놓은 흔적이었다. 그 얼굴을 닦지도 않고 어디를 쏘다니다 들어왔는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구겨진 얇은 셔츠 소매는 어깨 바로 아래까지 걷어 올리고 있었다.

 

 

 레나는 그를 나무라고 있었다. 화를 내다가 울다가 또 낮게 웃기도 했다. 트로이는 레나가 그렇게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었다. 그렇게 달빛 아래 하얀 잠옷을 입고 조그맣게 속삭이고 있으면 인어처럼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도. 그 침실 마루 위에서 달빛을 받으며 서 있는 작은 소녀는 너무나 매혹적이어서 빨간 머리와 에메랄드 눈동자의 지나이다 세도바조차도 아무런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얇은 잠옷 사이로 날씬한 몸매의 윤곽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미샤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레나에게 뭐라고 한두 마디 했지만 언제나처럼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였기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레나가 고개를 저으며 달려가 미샤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한 팔을 허리에 두르며 몸을 밀착시켰다. 다른 손을 들어 미샤의 지저분한 얼굴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어쩌면 화장품 얼룩을 닦아주려고 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미샤가 얼굴을 옆으로 돌리자 레나는 어깨를 세차게 튀기더니 반쯤 뛰어오르듯 발끝으로 서서 그의 턱을 감싸 쥐고 입술에 키스를 했다. 절망적이고 서툰 키스였다. 레나는 키스를 해 본 적이 별로 없는 애였다. 하지만 미인이었고 인어였다. 미샤는 레나를 떠밀지 않고 입맞춤을 받아주었다. 트로이는 그 애가 여자를 품에 안고 제대로 된 키스를 하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로미오가 아니었다. 무대 위의 순진해빠진 소년은 절대로 그런 키스를 할 수 없었다.

 

 

 입술을 뗀 후 미샤는 레나의 포옹을 풀지도 않고 그녀의 귓가에 조용히 뭐라고 속삭였다. 레나가 몸을 떨었다. 그녀는 팔을 풀고 미샤에게서 두 발짝 물러났다. 날카롭게 숨을 몰아쉬더니 발을 한번 굴렀다. 그리고 긴 머리채를 두 손으로 흐트러뜨리며 격하게 외쳤다.

 

 

 “ 나도, 나도 다른 애들 못지않게 해줄 수 있어! 나하고 사귀어 달라는 것도 아냐. 그래달라는 게 아니라구! ”

 

 

 레나가 숨을 쌕쌕거리면서 팔을 들어 올려 잠옷을 벗었다. 하지만 단추가 머리에 걸려 잘 벗겨지지 않았다. 흐느껴 울면서 레나는 머리에 걸린 잠옷 단추를 거칠게 잡아 뜯었고 술 취한 여자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옷을 벗어 내팽개쳤다. 달빛 때문에 작고 날씬한 레나가 은백색 조각상처럼 반짝거렸다. 트로이는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레나가 조그만 체구치고는 몸매가 좋다고 생각했다.

 

 

 레나는 다급한 나머지 부끄러움도 잊어버렸다. 그녀는 발레리나라도 된 양 두 팔을 앞으로 길게 뻗으며 미샤에게 다가가 목을 감고 매달렸다. 어깨와 가슴을 미샤의 셔츠 앞자락에 문지르며 귀 아래와 목덜미에 뜨겁게 입을 맞췄다. 트로이는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왜 몸을 움직일 수 없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지러웠고 온몸이 불덩어리처럼 타들어갔다.

 

 

 그때 미샤의 목소리가 들렸다.

 

 

 “ 이러지 마, 후회하게 될 거야. ”

 

 “ 아니야. 그렇지 않아. ”

 

 “ 크세니야. 그 여자 이름이야. 아까 홀에서 춤춘 여자. 같이 있었어. 내일도 같이 있을 거야. 그러니까 이러지 말자. ”

 

 

 레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갑작스럽게 또렷한 목소리로 물었다.

 

 

 “ 그 여자? 그 코끼리 같은 여자? 그 늙은 여자? 같이? 같이 있었다니? 그 여자랑 뭘 어쨌는데? ”

 

 “ 크세니야랑 잤어. 내일도 갈 거야, 그 여자가 원하면. ”

 

 

 레나가 미샤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두 손으로 가슴팍을 떠밀며 발로 걷어찼다.

 

 

 “ 나가! 꺼져버려! ”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찢어진 잠옷으로 몸을 가리며 비극 여배우처럼 울부짖었다.

 

 

 “ 그냥 싫다고 할 수도 있었잖아! 왜 그런 지저분한 말을 하는 거야? 넌 감정도 없어? 끔찍해! 끔찍하고 더러워! ”

 

 

 미샤는 잠시 아무 말 없이 레나를 내려다보았다. 그 얼굴에는 연민이나 미안함, 혹은 분노 따위의 감정이 전혀 떠올라 있지 않았다. 하지만 검은 마스카라와 붉은 립스틱으로 온통 얼룩져 있었으므로 설령 울고 있다 해도 보이지 않을 터였다. 그는 한숨조차 쉬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미안해. ”

 

 

 그리고는 침대 위로 올라가 창문을 열더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

 

 

재즈 밴드 매니저이자 옛 댄서 크세니야와 미샤의 이야기는 이 흑해 에피소드 후반부에 좀더 이어지는데 레나의 이야기와는 좀 별개라서 올리지 않았다.

 

..

 

 

(가엾은) 레나가 등장했던 이야기들은 아래 링크. 소설 속에서 아래 순서대로 전개된다.

 

http://tveye.tistory.com/4050 : 썰매를 타러 간 미샤와 트로이, 그리고 친구들

http://tveye.tistory.com/4947 미샤와 지나이다의 졸업 무대

http://tveye.tistory.com/4671 흑해로 가는 기차, 새로 온 인간, 새로 온 천사

 

 

 

..

 

 

무용수들 사진 몇장.

 

 

 

아르춈 옵차렌코

 

 

디아나 비슈뇨바

 

이반 바실리예프

 

 

아래 세장은 밴드 즉흥 연주에 맞춰 신나게 팔짝거리며 춤추는 미샤와 크세니야를 생각하며 올려봄. (하긴 크세니야는 많이 팔짝거리진 못했겠지만 ㅠㅠ)

 

 

파루흐 루지마토프.

사진은 nina alovert.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이게 위 에피소드에서 잠깐 언급된 고파크.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지 민속춤)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예브게니야 오브라초바. 돈키호테.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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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6. 10. 18. 20:41

아끼고 있었죠, 평온과 위안을 위해 2016 petersburg2016. 10. 18. 20:41

 

지난 6월. 페테르부르크.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수도원.

저 당시 나는 무척 피폐해져 있었다.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비행기를 타고 페테르부르크로 날아갔다. 도망친 것이다. 아마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무의식적으로. 본능적으로.

 

며칠이 지났지만 여전히 제대로 먹지 못했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마음속은 황량하고 고통스러웠다.

 

이날 페테르부르크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 중 하나인 네프스키 수도원에 갔다. 그리고 이날 료샤가 출장에서 돌아왔고 레냐와 함께 나를 보러 왔다.

 

이날 수도원에서 종소리를 들었다. 사원 안으로 들어가 이콘을 보았고 초에 불을 켰다. 한가롭게 조는 고양이를 보았고 무덤들 사이를 걸었다. 꽃을 보았고 오래된 쇠종을 만졌다. 수도원 지하 카페에서 사과빵을 먹었다. 차를 마셨다.

 

그리고 먼발치에서 사제 두분을 보았다.

 

수도원 안에서는 카메라 촬영을 하는 것이 사실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래서 꼭 찍고 싶을때만 소리 안나는 앱으로 폰 몇장만 찍었다. 아마 나는 저때 폰으로도 사진을 찍지 않았어야 했을 것이다. 너무나도 고요하고 평온한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저 평온과 고요, 적막과 부드러운 공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살짝 찍었다. 두장.

 

이 사진 두장은 아껴놓고 있었다. 소중한 사진이다. 평온과 위안. 고요와 적막. 부드러움. 한없는 부드러움. 저날 나는 처음으로 다시 편하게 숨을 쉴수 있었다. 완전히는 아니었다. 하지만 훨씬 더 쉽고 훨씬 더 부드럽게.

 

 

고마워요,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수도원. 페테르부르크. 그리고 이름 모를 두분의 사제들. 햇살. 바람. 파란 하늘. 녹음. 사원. 그림자. 포석.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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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6. 10. 15. 23:15

비둘기야 너는 아니? 2016 petersburg2016. 10. 15. 23:15

 

 

그리보예도프 운하.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피의 구세주 사원) 앞 운하 난간에 도도하게 혼자 내려앉아 있던 비둘기.

 

비둘기야, 넌 여기가 어딘지 아니? 여기는 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야. 관광객들이 전부 여기로 몰려들어 사진을 찍어.

 

 

비둘기 : 나랑 무슨 상관~ 몸치장이나 하련다~ 빵이나 좀 주지..

 

 

비둘기 : 아이 발 저려..

 

 

..

 

그건 그렇고 비둘기도 페테르부르크의 조그만 상징 중 하나다. 페테르부르크 그림엽서나 만화엽서에 종종 등장한다. 비둘기가 많긴 하지.. 근데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도 비둘기는 많다...

 

그래도 한두마리만 있으면 괜찮아... ㅠㅠ 특히 가만히 앉아 있거나 걸어다닐땐 괜찮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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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부르크. 앰배서더. 사도바야 거리와 림스키 코르사코프 거리 사이에 있는 호텔이다.

두번째로 옮겼던 곳이었다. 처음엔 블라지미르스키 거리의 도스토예프스키 호텔에 묵었고 그후엔 마린스키에서 좀 가깝지만 대신 중심지에선 약간 외진 곳에 있는 이 호텔에 와서 하룻밤 묵었다. 그리고는 또 다른데로 옮겼다가 며칠 후 다시 이 호텔로 왔었다. 그때 워낙 성수기라 숙소 구하기가 힘들었었다.

 

너무나 피곤한 날이었다. 이땐 몸도 아팠고 회사에서 받은 상처 때문에 심적으로도 지금보다 훨씬 고생하고 있었다. 이른 오후였지만 몸이 무겁고 추웠다. 그래서 저렇게 잘 정돈된 침대를 보자 정신이 몽롱해졌고... 심지어 옷도 안 갈아입고 그대로 침대로 들어가 누워버렸다. 오후에 료샤와 레냐를 만나 밖에 나가기로 했었기 때문에 '옷 갈아입지 말고 그냥 잠깐 누워만 있어야지' 했던 것이다.

 

 

 

근데 침대가 너무 편안해서 저 시트만 들추고 기어들어가 그대로 자버렸다.

 

 

침대 안쪽 창가에는 저렇게 의자가 두개 있었다.

 

이렇게..

 

자다가 문 두들기는 소리에 깼다. 료샤와 레냐가 나 데리고 나가려고 방에 들른 것이다. 나는 비몽사몽 상태로 문을 열어주었고 '어서 와. 잠깐만... 나 잠깐 잤어' 라고 대답했다. 근데 또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도 안 난다. 저 당시엔 사실 잠결과 꿈결에 무슨 말을 했는지, 아니, 제정신 상태에서도 무슨 말을 했는지 자세히 기억이 안 나는 시기였다.

 

료샤가 '어이구, 자라 자!' 라고 했던 건 기억난다. 뭔가 레냐가 찡찡댔던 것 같은데 하여튼 나는 도로 잤다.

 

깨어났을땐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상태였다. 한시간 쯤 완전 암흑으로 잤나보다. 근데 깨고 보니 저 양쪽 의자에 료샤와 레냐가 각각 앉아 있었다. 둘은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레냐가 '쥬쥬 깼다~' 하고 엄청 좋아했지만 료샤는 '야! 가만있어! 죽었잖아!' 하고 툴툴댔다 :)

 

레냐는 나랑 놀러나가고 싶어했지만 료샤가 '쥬쥬 피곤하니까 오늘은 방에서 놀자' 라고 했고 우리는 방에서 놀았다.

 

 

그리고 피곤하고 지친 나를 위해 '한국인은 밥이랑 김치라며' 하면서 근처 퓨전 아시아 롤집에서 우나기롤과 김치수프라는 것을 사다 놓았다... 내가 우나기 좋아하는 걸 알아서... 이것까진 엄청 고마웠는데... 친구야, 이 김치수프엔 김치가 없어 ㅜㅜ 그냥 미소랑 고춧가루, 계란 풀고 미역 넣은 미소시루야.. 엄청 짠 미소시루 ㅋㅋ 그리고 이건 우나기롤이 아니고 장어구이 소스만 넣은 그냥 롤이었다.. 장어가 없었다 :)

 

그래도 고마웠다 :) 료샤와 레냐는 저런 롤마저도 맛있다고 먹었다 흐흑...

 

 

전에 about writing 폴더에 그런 얘길 발췌한 적이 있다. 투어에 다녀온 미샤가 잠들었다 깨어났을때 친구인 트로이가 곁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자고 일어났을때 네가 책을 읽고 있으면 좋아'라고 하는 에피소드였다. 사실은 옛날에 기숙사 생활을 할때 쥬인이 낮잠 자고 일어나서 나에게 했던 말이었는데 그 기억을 살려서 쓴 글이었다. 링크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5222

 

실은 나도 그랬다. 자고 일어났는데 료샤와 레냐가 저 의자에 앉아 게임을 하고 있어서 좋았다. 텅 비어 있었던 두개의 의자가 차 있었고 맛없지만 따뜻한 김치수프와 우나기 없는 우나기롤이 창가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둘은 나를 깨우지 않았다.

 

아마 저때가 이번 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 중 하나였을 것이다.

 

 

** 저날 메모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4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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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0. 12. 22:46

해골소년 고릭을 만났던 그 카페 2016 petersburg2016. 10. 12. 22:46

 

페테르부르크 루빈슈테인 거리에는 근사한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많다. 젊은이들과 예술가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지난번 갔을때 첫번째 숙소가 이 거리 근처여서 종종 갔었다.

 

전에 어느 카페에서 밥먹다가 음식 주문을 잘한다는 어이없는 이유로(ㅋㅋ) 말을 걸어왔던 해골옷 펑크 청년이 있었다는 얘길 쓴 적이 있다. 이 카페가 그 해골청년 고릭을 만났던 곳이다.

 

그야말로 북카페로 온갖 책들이 잔뜩 널려 있고 역시나 '힙'한 유행대로 불상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아아, 나는 유럽이나 러시아 카페, 식당에서 불상 보면 좀 웃긴데ㅜㅜ)

 

 

 

 

 

 

 

 

이렇게 조명이 어두웠기에... 해골소년 고릭은 나를 자기 또래로 착각하고 헌팅을 시도하엿던 것이다 ㅋㅋ

 

아래는 폰으로 찍은 사진 두장.

 

 

* 해골소년 고릭과의 짧은 만남 얘긴 여기 : http://tveye.tistory.com/4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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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번 페테르부르크와 프라하에서 반가운 분들과 조우했던 장소들을 올려본다.

 

먼저 페테르부르크. 여기는 이삭 성당 맞은편, 아스토리아 호텔의 빨간 차양 지붕 아래. 빨간색이 눈에 잘 띄어서 bravebird님과 엽님을 각각 여기서 처음 뵈었다 :) 브레이브버드님 뵐땐 너무너무 춥고 바람이 불어서 나는 스카프로 머리를 칭칭 감고 ㅠㅠ

 

사, 사실은 빨간색 차양이라서 제가 여기를 조우의 장소로 조금살짝 선호합니다 ㅋㅋ 가끔 료샤와도 여기서 만나고...

 

 

브레이브버드님과 엽님 두분 모두 너무 반가웠고 처음 뵙는데도 무척 친근했다. 블로그 덕분에 좋은 분들을 알게 되고 심지어 페테르부르크에서 조우하게 되어 신기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했다 :)

 

 

여기는 페테르부르크 니콜스키 사원 앞의 교각. 마린스키 구관과 신관 사이 운하 끼고 걸어가다 보면 나온다. 여기는 떠나던 날 아침에 pica님과 친구분을 만났던 곳이다. pica님이 신기하게도 여행오셨다가 전날 저녁에 이 근처에서 나랑 료샤가 저녁 먹으러 왔을떄 날 목격하시고는... 우연히 어 저거 토끼 아닌가.. 하다가(ㅋㅋ) 놀라운 인연으로 떠나는 날 아침에 여기서 만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놀라움. pica님도 무지 반가웠어요 :) 친구분도요!

 

심지어 놀라운 것은... 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나뵌 네분 모두 초면이었으나 다들 하나같이 너무 좋으셨고.. 다 미인이셨다는 것이다~ 두둥!!! 미모지상주의자 토끼는 행복... ^ㅇㅅㅇ^

 

이건 보너스.

 

전에 프라하에서 올린 메모에 내가 한번 이런 얘기 쓴 적 있다. 차 대기 복잡하니 료샤랑 구시가지에서 만날 때 '다스 베이더 앞에서 만나자'라고 했다고.

 

그 다스 베이더가 이것임 :) 사실은 다스 베이더는 아니고 체코 전설 속에 나오는 무슨 기사와 처녀 이야기에 얽힌 기사 동상이다. 이 동상은 구시가지 광장과 카를로바 거리 근처의 마리안스케 광장에 있다. 로컬들도 종종 다스 베이더라고 부르는데 료샤랑 나도 그렇게 부른다. 심지어.. 좀 창피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만났을때 약속이나 한 것처럼 '빰빰빰빰빠밤 빰빠밤...' 하고 스타워즈 제국군 테마 음악을 흥얼거렸다 ㅠㅠ(엉엉)

 

실루엣만 보면 진짜 다스 베이더 같아 ㅎㅎ

 

 

맘같아선 여기서 막 손가락 삐리삐릿하며 포스 대결도 펼쳐보고 싶었지만 성숙한 어른답게 우리는 꾹 참았다... ㅋㅋ(해보고 싶어.. 광선검도.. ㅎㅎ)

 

근데 페테르부르크도 있고 프라하도 있으니.. 그래도 페테르부르크에서 조우한 분들이 더 많으니 이것은 페테르부르크 폴더로!!

 

bravebird님, 엽님, pica님~ 다들 보고 싶습니다.

료샤 너도 ㅋㅋ (약혼자 레냐는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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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0. 11. 00:05

타브리체스키 공원 2016 petersburg2016. 10. 11. 00:05

 

전에 쓴적 있지만... 네프스키 수도원 다시 가려다 버스 잘못 타서 듣도보도 못한 동네에 내려서 들어가게 되었던 타브리체스키 공원. (길 잃었다고 료샤에게서 관광객이냐고 놀림받았음 ㅠㅠ 그럼 내가 관광객이지 주민이냐!)

 

공원 개장 시간 : 7시부터 23시까지.. 라고 씌어 있다.

 

 

목욕탕도 해변도 아닙니다... 북방 도시에서 가장 소중한 여름 햇볕을 즐기려고 다들 잔디 위에 누워 뒹굴뒹굴... 나는 유행성출혈열 ㅠㅠ 하며 걱정하지만...

료샤랑 레냐도 '당연하지~ 햇살은 즐겨야지~' 라고 했다. 나 혼자 열심히 선크림 바르고 긴소매 입고 모자 쓰거나 선글라스 쓰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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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페테르부르크.

알렉산드린스키 극장에서 보리스 에이프만의 발레 안나 카레니나를 보러 갔을 때이다. 저날 붉은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갔는데 극장 카펫도 붉은색이라 구분이 잘 안 가네... 안나 카레니나 발레 팸플릿 올려놓은 내 원피스, 그리고 카펫이다.

 

알렉산드린스키 극장은 사실 발레보다는 드라마에 더 특화된 극장이다. 무대도 작고 규모도 작다. 하지만 마린스키나 미하일로프스키 다음으로는 그래도 중심가에서 발레를 올릴만한 무대이고 또 유서깊은 극장이기도 해서 종종 에이프만 등 외부발레단이 공연을 하기도 하고 발레축제를 대관하기도 한다.

 

여긴 정말 오랜만에 갔는데 거의 변함이 없었다. 진짜 옛날 극장 느낌이 물씬 난다.

 

 

 

 

 

 

 

극장이 꽤 작다. 미하일로프스키보다 작다. 극장이 작다는 것을 고려해 2층 벨에타쥐 사이드칸의 두번째 열을 끊었는데(돈 좀 아껴보려고) 그럭저럭 무대도 잘 보이고 괜찮았다. 하여튼 내 자리가 레프트 윙이었기에.... 극장 내부 사진은 가운데에서 예쁘게 찍은 건 없다...

 

 

 

이게 2층의 홀. 여기를 통과하면 알렉산드린스키 공원과 예카테리나2세 동상이 보이는 야외 발코니가 나온다.

 

 

발레는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후반부는 아주 좋았었다.

(그날 이 발레 보고 쓴 메모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4819)

커튼콜때 찍었는데 자리도 멀었고 또 조명 때문에 번져서 제대로 건진 사진이 없었다. 슈클랴로프 나오는 공연이었으면 1층 앞으로 가서 찍었겠지만 그렇지 않아서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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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에 회사 때문에 정말 너무나 힘들었던 주였다. 토요일에 홍대에 가서 머리를 했고 쥬인을 만나 오후에서 저녁 늦게까지 놀았다. 플리마켓 같은 곳에 가서 팔찌를 세개나 샀다.

 

그때 산 팔찌 중 하나. 이거 밴드 형태라 편한데다 의외로 저 파란 사각형 돌멩이(ㅋ)가 예쁘고 심플해서 좋아했는데... 분명 페테르부르크에서 자주 하고 다녔는데 돌아와서는 아무리 찾아봐도 다른 두개만 보이고 이게 안 보인다. 어디로 갔니 파란 팔찌야 흑흑...

 

이 사진은 비가 무척 많이 오고 추웠던 날 아침에 사도바야 거리와 림스키 코르사코프 거리 근방의 어느 카페에서 찍은 것이다. 너무 추웠는데 갈곳은 없고, 또 이때 아침에 먹은 약이 잘못되었는지 너무 심장이 북받치고 아파서 좀 무서웠던 때였다. 그래서 마침 발견한 이 카페에 들어갔는데 카페 이름이 프라하 어쩌고였음.

 

 

 

그래서 프라하 카페라고 되어 있어 메도빅을 먹었음(러시아에선 메도빅이라 부르고 체코에선 메도브닉이라 부른다) 여기 메도빅 맛있었다. 그리고 카페인을 먹으면 절대 안될것 같아 히비스커스로 추정되는 베리 티를 시켰었다.

 

비가 많이 왔었다. 메도빅을 먹으니 북받치는 건 좀 가셨었다.

 

나중에 이 카페에 다시 한번 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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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 note에 올렸듯 아침에 복잡하고 정신없는 꿈을 꿨는데 그 와중에 간만에 하늘을 날기도 해서 기념으로 날아가는 새 사진 한 장. 레트니 사드. 근데 사진은 흔들렸다 ㅠㅠ

 

이날 페테르부르크에서 엽님과 만난 둘째날이었고 우리는 우크라이나 식당에서 밥을 먹은 후 판탄카 운하를 따라 산책해 레트니 사드에 갔다. 그리고 돌아올 땐 마르스 광장과 그리보예도프 운하, 예술광장을 지나쳐 왔다.

 

 

 

판탄카 운하 따라 걷다가.

 

이날 하늘이 정말 근사했다.

 

 

 

이건 마르스 공원에서 찍은 사진. 역시 하늘 때문에... 나무들 너머로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의 쿠폴이 보인다.

 

 

 

이것은 내가 항상 '전형적인 뻬쩨르 관광엽서 구도'라고 부르는 구도의 사진 :) 그리보예도프 운하와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 이 도시 여행객이든 주민이든 이 구도로 사진 안 찍어본 사람 없고 엽서들 중에도 항상 이 구도는 들어 있다 :)

 

 

마지막은 예술광장의 푸쉬킨 동상으로..

 

안녕하세요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언제나 볼때마다 반가워요!!

 

푸쉬킨 : 또 오너라~~

토끼 : 저에게 화수분을 내려주세요...

(..어려우면 체리농장주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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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마린스키 극장 신관의 기념품샵.

 

전에 여기서 오페라글라스를 비롯해 후드티나 에코백, 엽서, 음반 등 이것저것 사곤 했는데 이번에 갔을땐 액세서리 코너에서 예쁜 백조 브로치를 샀다. 실은 백조와 토슈즈 중 뭘 살까 고민하다가 백조를 산 거였다.

 

이 얘기를 하자 쥬인이 토슈즈 브로치를 궁금해했다. 그래서 며칠 후 다시 극장에 갔을때 샵에 들러 이렇게 진열장 사진을 찍은 후 쥬인에게 보내주었다.

 

너무 많아서 헷갈리나...

 

 

 

클로즈업..

 

실제로 보면 굉장히 앙증맞고 예뻤다. 쥬인은 예쁘긴 한데 브로치를 자주 하는 편이 아니고 옷에 맞추기 힘들것 같으니 안 사다 줘도 된다고 했다. 사실은 나도 이 브로치는 코디를 잘 할 자신이 없었다.. 그냥 브로치 자체만 장식해놓으면 예쁠 것 같다...

 

맨위 진열장 사진에서 아래에서 두번째 줄, 가위와 발레리나 사이에 있는 하프 브로치도 좀 갖고 싶었음...

 

 

 

이게 내가 산 백조 브로치. 큐빅이 박혀 있다.

 

진열장 사진을 자세히 보면 파란 큐빅 박혀 있는 것도 있는데 난 그냥 투명큐빅 백조를 고름.

 

 

그래서 이렇게 달고 극장에 갔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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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9. 2. 23:20

태양아 와줘!!! 2016 petersburg2016. 9. 2. 23:20

 

 

지난 6월 페테르부르크.

산책하다 길바닥에 분필로 그려진 노란색 태양과 낙서 발견...

 

태양아, 이리로 와줘!!!!

 

저 태양 좀 선풍기처럼 생겼어 :)

 

근데 아 참 간절하다... 하긴 이 동네 사람들이야 간절할 수 밖에 없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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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8. 31. 20:48

검은 말의 그림자 2016 petersburg2016. 8. 31. 20:48

 

 

이 초현실적인 사진은... 실은 내 촬영 능력 미숙으로 인해 나온 것이다 :)

 

미하일로프스키 극장에서 공연을 본 후 밤늦게 엽님을 만나러 청동기사상 쪽으로 막 걸어가던 길이었다. 네프스키 거리를 지나 길을 꺾는데 관광용 마차와 말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찍었는데 내가 사진찍을 때 플래쉬 터뜨리는 것을 기피하는 데다 말이 막 따가닥거리며 움직이고 있어서 나중에 찍힌 걸 봤더니 말은 검은 그림자만 남겨놨다.

 

근데 백야의 황혼녘에 진짜 말이 환상의 검은 그림자를 남기고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딱 이 도시랑 어울리는 것 같아 사진은 간직하기로 했다. 심지어 좋아하기까지 했다.

 

(못찍은 사진이라도 좋아하면 된다고 우기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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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8. 30. 21:16

지금은 없는 체리를 그리며 2016 petersburg2016. 8. 30. 21:16

 

 

지난 6월.

페테르부르크에 머무는 몇주 동안 내가 가장 많이 먹었던 건 아마 체리와 모르스였을 것이다. 매일 체리를 먹었다. 행복했다.

 

우리나라에 돌아와서도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체리를 꼬박꼬박 사먹었는데 이제 체리 철이 완전히 갔다. 눈물을 머금고 백화점 수퍼까지 가보았지만 없었다. 체리 이제 안 나온다... 냉동 체리밖에 없다. 냉동 체리는 체리에 대한 모독이다...

 

지금은 없는 그때 그 체리를 그리며 ㅠㅠ

 

저날 늦은 아점 저렇게 챙겨먹고 공연 보러 갔던 날이었던 것 같다. 체리랑 중국 찻잔이랑... 그리고 맛있는 빵집 부셰에서 사온 초콜릿 플레이따 라는 빵. 땋은 머리처럼 꼬아놓은 패스트리에 초콜릿 칩이 박혀 있는 빵인데 뺑 오 쇼콜라보다는 조금 더 단단한 패스트리였다. 부셰야 검증된 빵집이니 저 빵도 괜찮았다.

 

 

 

하지만 그립고 그리운 체리들아...

 

체리 농장주와 결혼하면 맨날맨날 체리를 실컷 먹을 수 있을텐데... 누가 나한테 체리 농장주 좀 소개시켜 주세요!

 

 

 

 

 

 

 

나도 대리석 티 테이블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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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8. 29. 23:15

순간 설렜는데 2016 petersburg2016. 8. 29. 23:15

 

 

페테르부르크. 6월. 루빈슈테인 거리 산책하다가..

 

왼편 환기구 주목. 첨엔 붉은 입술 장식인줄 알고 와~ 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그냥 귀퉁이가 찢어진 채 접혀 있는 빨간색 전단지였다.

 

때로는 그냥 멀리서 스쳐지나가야 더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니까...

 

그래도 사진으로 보니 또 입술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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