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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 페테르부르크'에 해당되는 글 943

  1. 2016.07.17 나 사실 저기 들어가보려 했는데.. 해골이 어때서요 8
  2. 2016.07.16 세베르 제과점, 그가 먹고 싶었던 모코 케익, 파트너들의 대화, 보위, 미샤의 아파트, 팬과 관객들 51
  3. 2016.07.15 길 잃고 발견한 타브리체스키 공원 6
  4. 2016.07.14 레트니 사드의 우아하지 못한 백조 한 쌍 4
  5. 2016.07.12 창문 안쪽에서 4
  6. 2016.07.12 아주 많은 빛 2
  7. 2016.07.09 백야, 밤중에 네프스키 대로에서 블라지미르스키 대로로 걸어가는 길 4
  8. 2016.07.09 체리와 창문에 비친 그림자, 프로그램과 백조와 사진들의 연결 고리는... 2
  9. 2016.07.07 빗물 웅덩이에 비친 풍경들 2
  10. 2016.07.06 버리고 간 병과 컵들 2
  11. 2016.07.04 부드러운 빛 속의 루빈슈테인 거리 4
  12. 2016.07.03 백야의 네바 강
  13. 2016.07.01 마지막 날, 산책하며 찍은 사진 몇 장 2
  14. 2016.07.01 6.29 수요일 : 떠나는 날, 아침의 짧은 만남, 마지막 산책, 레냐야 엉엉, 그리고 비행기 탐 2
  15. 2016.06.29 곧 공항으로.. 2
  16. 2016.06.29 6.28 화요일 밤 : 또 찻잔 삼, 블린 아점, 로툰다에서 차 한잔, 트로이츠키 사원, the repa, 내일 떠난다 2
  17. 2016.06.28 6.27 월요일 밤 : 다시 에스키모, 러시아 박물관 다녀옴, 아스토리야 카페에서 저녁 먹음, 료샤 합류, 나 때문에 돼지가 되고 기사가 된 친구, 내 체리와 모르스는 너의 노란 맥심! 2
  18. 2016.06.27 방에서 늦은 아점 4
  19. 2016.06.27 6.26 일요일 밤 : 여전히 고민 중, 어젯밤 있었던 일, 레냐는 바리쉬니코프가 고맙단다, 바에서 그루셴카, 친구야 고마워 6
  20. 2016.06.26 6.25 토요일 밤 : 수프 비노와 알렉세이 재회, 첨 보는 공원에 감, 네프스키 대로에 드러누워봄, 카잔 성당 분수 앞에서 료샤와 레냐에게 해준 이야기, 아이스크림 2
  21. 2016.06.25 6.24 금 : 소포 성공, 마귀할멈 포진 우체국, 돔 끄니기, 카톨릭 성당, 아이스크림, 빛나는 운하, 방 또 옮김, 마린스키 지젤(슈클랴로프, 마트비옌코) 보고 옴
  22. 2016.06.24 부셰에서 연어 오믈렛 아점, 플롬비르 아이스크림, 도시락
  23. 2016.06.24 6.23 목요일 밤 : 이것이 러시아(우체국에서 열받음), 레트니 사드, 다샤, 빛나는 하늘과 물, 아폴로,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 내일 또 옮김 8
  24. 2016.06.24 이브닝 티, 레트니 사드 2
  25. 2016.06.23 6.22 수요일 밤 : 엽님과 조우, 미하일로프스키 극장 잠자는 미녀, 파루흐 루지마토프의 카라보스! 석양 보며 엽님과 산책

 

6월 페테르부르크에 갔을때 처음 열흘은 블라지미르스키 대로에 있는 호텔에 머물렀다. 뒷길로 가면 바와 카페가 즐비한 루빈슈테인 거리가 있다(예술가들, 젊은이들이 많이 찾고 마린스키나 미하일로프스키 무용수들도 사적으로 잘 놀러오는 곳이다) 열흘 동안 저쪽에 머물면서 나도 가끔 이 거리 가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좀 쏘다니기도 했었다.

 

간지 얼마 안됐을 때 발견한 간판... 음.. 저 '가라오케'란 단어만 아니었어도 사실 무지 들어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왜냐하면 반지하 출입구에 이렇게 해골이 떡하니 그려져 있었거든요... 해골옷 입은 나는 당연히 들어가보고 싶었지요...

 

근데 여기 들어가면 어쩐지 그 불상 있는 카페에서 만났던 해골청년 만화가 고릭과 다시 마주쳤을지도..

(해골청년 고릭 얘긴 여기 : http://tveye.tistory.com/4816)

 

하여튼 이때 몸이 안 좋아서 반지하의 탁한 공기를 견딜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고 또 '가라오케'란 단어 때문에 안 가봤다. 근데 돌아오고 보니 좀 후회되네..

 

 

 

 

혼자 들어가긴 좀 뭐해서... 사실 료샤가 왔을 때 저길 가리키면서 '친구야 나랑 저기 가서 한잔만 마셔보면 안될까?' 라고 꼬드겨보았지만 료샤는 '해골 싫어!' 하며 단칼에 거절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흐흑.. 해골 멋있잖아 엉엉

 

:
Posted by liontamer

 

 

 

지금 구상하는 글은 미샤가 등장하는 본편이나 외전 우주에 속해 있지 않으니 크게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어떤 면에서는 약간은 연관되는 것 같기도 해서... 사진과 메모들 뒤지다가...

 

종종 발췌해 올렸던 본편 우주 장편(미샤의 친구이자 애인인 트로이가 심리적 화자로 나옴) 중반부에는 당시 레닌그라드에서 아주 인기많았던 제과점(..이자 지금도 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이 사랑하는 옛날식 제과점) 세베르와 그곳에서 파는 케익에 대한 얘기를 두어번 썼다.

 

세베르랑 거기서 내가 좋아하던 까르또슈까(위의 저 초콜릿 경단 같은 디저트)에 대해 떠올리다가... 아래 부분을 발췌해본다. 세베르와 케익에 대한 얘기만 있는 건 아니고... 미샤와 파트너 발레리나 지나이다의 티격태격 메모도 있고 미샤의 아파트 묘사도 있다. 그리고 미샤도 물론 등장한다.

 

미샤는 단 걸 안 먹지만... 그러나 그 역시 좋아하는 케익이 있긴 있었으니... ㅠㅠ

 

그리고 파트너이자 한 아파트 동거인인 지나이다와의 관계는 이러했으니...

 

소설 중반부. 배경은 1975년 말. 미샤는 스무살이고 키로프 수석무용수로 잘 나가고 있으며 지나이다와는 최고의 파트너쉽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은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와 알리나 소모바의 연습실 장면. 파트너들의 연습실 느낌이 좋아서 여기 올려본다. 사진은 alex gouliaev.

 

..

 

 

'세도바'는 지나이다의 성, 맨앞에 나오는 '크류코바'는 당시 키로프 최고의 발레리나로 신입이었던 미샤를 전격 자기 파트너로 발탁했던 인물이다(두딘스카야 같은 존재였음. 물론 내가 만들어낸 인물)

'코무날카'는 공동아파트이다.

 

..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12월 하순부터 미샤는 한동안 극장 근처의 자기 아파트에 머물렀다. 크류코바의 부상으로 지나이다가 비엔나와 프라하, 바르샤바 투어에도 투입되었기 때문에 집이 비었고 호두까기 인형에 캐스팅되어 연습 때문에 바빴기 때문이다. 미샤는 그 작품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역을 추는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언제나처럼 열심이었다.

 

 

그날은 공연이 없는 월요일이었다. 미샤가 아침에 극장에서 트로이에게 전화를 했는데 아침이라는 것과 전화를 했다는 것 둘 다 드문 일이었다. 그는 혹시 아파트에 자신의 노트와 파란 케이스 안에 들어 있는 필름,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 초기 단편집이 있느냐고 물었다. 트로이는 잡동사니가 쌓여 있는 부엌 식탁과 책장을 재빨리 둘러보았다.

 

 

노트랑 케이스는 찾았고, 책은 없어. 너 그 책은 우리 집에 가져온 적 없었던 것 같은데? ”

 

“ 너 혹시 ‘백야’ 있어? ”

 

“ 아, 그건 있어. 극장으로 가져다줄까? ”

 

“ 아니, 괜찮아. 금방 집에 들어갈 거라서. 저녁에 들를게. ”

 

급하게 필요한 거라면 집으로 갖다 줄게. 어차피 강의 때문에 나가야 해. ”

 

“ 아, 그럼 부탁해. 고마워. ”

 

 

트로이는 책장 구석에서 ‘백야’가 수록되어 있는 19세기 단편 모음집을 찾아냈다. 오래된 책이라 먼지가 뿌옇게 피어올랐다. 뜬금없이 왜 그 소설을 찾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미샤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해서 학창 시절에도 종종 트로이와 열띤 토론을 벌이곤 했지만 그 대상은 주로 유형 이후 발표한 작품들이었다. 백야는 그의 취향에 비해 지나치게 감상적이었다.

 

 

그는 가방에 책과 필름 케이스, 그리고 표지가 반쯤 접힌 노트를 챙겼다. 미샤는 항상 노트와 수첩을 가지고 다니면서 리허설 중인 춤의 동선을 짜고 리브레토를 재구성하는가 하면 오선도 생략한 채 음표와 기호를 휘갈겨 놓았다. 소설이나 시의 구절 몇 개를 불쑥 적어 놓을 때도 있었고 가끔은 오로지 숫자들만 써내려갔다. 트로이의 눈에 그 노트들은 2차 대전 암호 해독서나 이사악의 물리학 강의 메모보다도 더 복잡하게 보였다.

 

 

가방에 집어넣기 전에 노트를 넘겨보니 춤과 관련된 예의 그 수수께끼 같은 수많은 메모들이 빽빽했지만 중간 중간에 녹색 볼펜으로 휘갈긴 다른 사람의 글씨도 등장했다. 필체와 색깔이 계속해서 같은 것을 보니 동일인이었다. 내용을 보니 파트너인 지나이다가 분명했다. 그녀는 미샤의 메모에 동그라미를 쳐놓기도 하고 커다랗게 가위표를 슥슥 그어놓기도 했다.

 

 

이건 진짜 말도 안 돼,네가 계속 포앙트를 고집하면 아사예프가 혈압으로 쓰러질 거야,그 잘난 앙트르샤 횟수 좀 줄이시지! 따위의 메모가 힘찬 필체로 따라나왔다.

 

 

어떤 페이지에서는 춤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메모도 등장했다.

 

 

 아까 누가 세베르에서 모코를 한판 사다줬어. 빨리 끝내고 먹자 라는 어쩐지 간절하게 느껴지는 녹색 글씨 아래 평소와는 달리 인쇄체로 또박또박 적어 놓은한조각도 아니고 한판! 몸매 관리 안하시나, 여왕님? 이 이어졌다. 미샤의 반짝거리는 까만 눈이 그대로 보이는 것 같았다.

 

물론 녹색 글씨가 다시 이어졌다. 한판 다 해치우고 10킬로 쪄서 누구 허리를 분질러버릴 테야!

 

메모의 마지막은 다 먹지 말고 나도 한조각만 줘라는 하소연으로 끝났다.

 

 

 

파트너들의 대화에 매료된 트로이는 페이지를 더 넘겨보았다. 평소에 별로 장난기도 없고 애교는 더욱 없는 미샤가 지나이다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새롭고 신기했다. 어쩌면 10여 년 동안 쌓여온 친밀감 때문일지도 몰랐다.

 

 

생리 첫날이니까 알아서 잘해.

 

내가 피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다른데 피나게 해주겠어!

 

 

 

 

제발 넥타이 매고 와, 파리에 가고 싶으면 내 말 들어 !

 

타이 잃어버렸어

 

나가서 사와, 정 안되면 레냐 거 빌려.

 

정장 싫어

 

.. 들어.

 

 

마지막 페이지에는 아주 짧게 휘갈겨 쓴 메모가 있었다.

 

 

일린 오는 걸로 결정. 기뻐?

 

아주!

 

 

 

또 다시 그 이름이 있었다. 일린. 짧고 명료하게 울리는 이름.

 

 

 

그는 강의 자료도 함께 챙겨서 집을 나섰다. 극장 거리까지는 가까웠으므로 걸어갈까 했지만 다시 눈보라가 치고 있었으므로 버스를 탔다.

 

 

잠시 그는 네프스키로 나가 세베르에서 모코를 한조각 살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미샤는 케익이나 초콜릿을 기피하는 편이었지만 트로이는 라리사의 집에 가서야 그가 단 것을 정말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을 제어하는 것뿐이란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모코는 별로 달지도 않았다, 버터크림과 견과가 들어 있을 뿐이었다. 케익 한조각이 아니라 한판을 그 자리에서 다 해치워도 전혀 문제가 없을 몸을 가진 애가 그렇게 자신을 몰아세운다는 게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어릴 때부터 그랬을 것이다. 여섯 살 이후로는 썰매도 타러 간 적이 없고 스케이트나 스키는 더더욱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축구를 해보기는커녕 제니트와 스파르탁조차 구분 못할 것이다. 아무리 피곤해도 정해진 스트레칭을 마치지 않으면 잠자리에 들지 않고 음식이 싱겁더라도 결코 소금을 더 치지 않았다. 그처럼 자기 제어에 뛰어난 사람이 어째서 규율이 관련된 일이나 애인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그렇게 무모하게 행동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긴 안드레이 트로이츠키는 미샤 야스민을 샅샅이 이해해 본 적이 거의 없었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   *   *

 

 

 

 

미샤는 아직 극장에서 돌아오지 않았고 아파트 문은 잠겨 있었지만 트로이는 예비 열쇠를 한 벌 가지고 있었다. 미샤가 어머니도 아니고 자신에게 그 열쇠를 건네줬다는 데 트로이는 남몰래 깊은 자부심을 느꼈다.

 

 

미샤와 지나이다의 아파트는 19세기 건물이었지만 내부는 완전히 최신식으로 수리되어 있었다. 그 정도로 넓은 집이라면 적어도 서너 가구가 들어와 사는 코무날카여야 정상이었다. 다닐로프가 주택관리국에 수완을 발휘한 것인지, 지나이다의 막강한 부모가 실력을 행사한 것인지, 아니면 드미트리 마로조프가 배후에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원래 스타들에게는 그 정도 대접을 해주는 건지도 몰랐다. 널찍한 거실 벽에는 바와 거울이 설치되어 있었고 나무 마루가 깔려 있었다. 지나이다가 가져온 소형 피아노도 한 대 있었다.

 

 

잠시 트로이는 몇 년 전 타냐의 생일에 미샤가 늦게 도착한 벌로 노래를 불러야 했던 때를 떠올렸다. 아마 72년이었던 것 같았다, 미샤가 학교에 다닐 때였으니까. 그때 그는 지겨운 생일 축하곡 대신 타냐가 좋아하는 데이빗 보위의 불경스러운 노래를 불렀는데 기억은 흐릿하지만 ‘The man who sold the world’ 였던 것 같았다. 기타 대신 피아노를 치면서 불렀는데 그때 트로이는 그 애가 악기를 연주하는 것도, 노래를 하는 것도 처음 들었다. 학교에서 배웠는지 피아노를 꽤 잘 쳤다. 노래는 말투와 똑같았다, 나직하고 또렷하고 시를 읊는 것처럼 근사하게 불렀다. 타냐는 좋아서 반쯤 울었고 다른 친구들은 반주자를 찾아낸 게 기뻐서 족히 한 시간 가까이 미샤에게 각종 로큰롤 연주를 시켰다. 그때 트로이는 그 애를 향한 은밀한 갈망으로 몸을 태우고 있었고 한동안 보위 노래만 들으면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타냐의 집에 들르면 피아노 쪽은 쳐다볼 수도 없었다.

 

 

미샤와 지나이다는 양쪽 끝에 있는 침실을 쓰고 있었다. 호화스런 아파트답게 각각 욕실이 딸려 있었다. 두 침실 사이에도 방이 하나 더 있었는데 손님용 침실로 쓸 때도 있었지만 보통은 지나이다의 의상과 각종 물품들을 보관하고 있었다. 미샤는 현관에서 제일 가까운 쪽에 있는 방을 그런 용도로 썼다. 그는 기사도를 발휘해 지나이다에게 남향의 넓은 방들을 내주고 아파트 내부도 그녀의 강렬하고 화려한 취향대로 꾸미도록 내버려두었다. 하긴 집에 제대로 머무는 적이 없으니 신사답게 행동한 거라기보다는 그저 귀찮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천정이 매우 높은 집이었는데 나선계단을 따라 조그맣게 복층 구조로 되어 있었고 평소에는 비워두는 손님용 침실이 하나 있었다.

 

 

부엌은 넓고 밝았으며 거실 한쪽에는 조그만 방이 하나 더 있었다. 거실의 바를 제외하고는 둘이 유일하게 공동으로 쓰는 공간이었는데 일종의 서재였다. 세 개의 책장에 발레와 음악, 미술, 극장 관련 서적들과 레코드, 테이프들이 잔뜩 꽂혀 있었다. 등받이 없는 의자가 두 개 있었는데 그 중 하나에는 장식 술이 달린 꽃무늬 숄이 아무렇게나 걸쳐져 있었고 나머지 의자에는 낯익은 노트 두 권이 놓여 있었다. 지나이다와 미샤가 그 조그만 의자에 앉아 머리를 맞대고 열띠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하자 이해할 수 없는 질투심이 솟아올랐다. 그 둘 사이에는 아무런 연애 감정이나 성적 긴장감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하긴 그는 지나이다의 마음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으므로 속단할 수도 없었다.

 

 

 

거실의 티 테이블 위에 노트와 필름 케이스, 책을 내려놓고 막 나가려고 했을 때 문이 열리고 미샤가 들어왔다. 극장에서 5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였지만 온통 하얗게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는 현관에서 모자와 코트를 벗어 눈을 대충 털어냈다. 눈썹과 속눈썹, 입술 위에도 눈과 얼음이 붙어 반짝거렸다. 뺨과 턱에는 붉은색 얼룩이 있었다.

 

 

“ 목도리는 어쨌어? ”

 

“ 극장 나오는데 처음 보는 여자애들이 달려들어서 벗겨갔어. ”

 

“ 그나마 모자는 지켰네. ”

 

“ 머리 뜯길 뻔 했어. 단추는 몇 개 뜯겼어. ”

 

“ 얼굴에 묻은 건 뭐야, 립스틱이야? ”

 

 

미샤가 현관에 붙어 있는 거울을 힐끗 보더니 짜증도 내지 않고 손등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 다닐로프가 차 줬을 때 그냥 받지 그랬어. 얼굴 다 알려졌는데 그렇게 걸어 다니다간 팬들한테 진짜로 봉변당한다. ”

 

“ 그래, 차를 사긴 해야겠다. ”

 

 

순순히 동조하면서 미샤가 하품을 했다. 욕실 쪽으로 걸어가면서 스웨터를 벗고 나머지 옷들을 하나하나 벗어 떨어뜨렸다. 왼쪽 어깨와 등 사이에 달걀만한 멍이 들어 있었다. 색깔을 보니 새것이었다.

 

 

“ 등은 왜 그래? ”

 

“ 아까 스텝이 꼬여서 자빠졌어. ”

 

“ 호두까기가 그렇게 어려워? ”

 

“ 아니, 그거 말고. 나 혼자 뭐 좀 연습하다가. ”

 

“ 너도 그렇게 넘어지는구나. ”

 

연습할 땐 많이 넘어져. 그래도 지나를 떨어뜨린 적은 없어서 다행이야. ”

 

“ 지나 말고 다른 여자들은 떨어뜨린 적 있어? ”

 

음, 그때 이바누슈카 리허설 하다가 손이 미끄러져서 옥사나를 제대로 놓친 적이 있어. 안 다쳐서 정말 다행이었지. 그래서 옥사나가 날 별로 안 좋아해. ”

 

의외네, 그 여잔 지나보다 더 조그맣잖아. 난 폴리나일 거라고 생각했어. ”

 

“ 폴리나는 테크닉이 좋다니까 왜 아무도 안 믿는지 모르겠네. 키가 180센티인 건 그 사람 잘못이 아닌데. ”

 

“ 어쨌든 어깨 다쳤잖아. ”

 

“ 폴리나 때문이 아냐, 연습할 때 내가 균형을 잃어서 그랬어. ”

 

 

어깨를 한쪽으로 돌리면서 미샤가 욕실로 들어가려다 트로이 쪽을 돌아보았다.

 

 

“ 강의 언제야? ”

 

“ 아, 지금 가야 해. 티 테이블 위에 책이랑 다 놔뒀어. ”

 

“ 고마워. ”

 

“ 넌? 다시 극장에 갈 거야? ”

 

“ 아니, 연구해볼 게 있어. 좀 자고 나서. ”

 

“ 그래, 눈 좀 붙여라. 며칠 못 잔 얼굴이네. ”

 

“ 얼굴은 그 아가씨들이 쥐어뜯어서 그런 거야. ”

 

“ 그래도 다 네 관객들이니 받아들여. 네 무대를 좋아하잖아. ”

 

“ 글쎄, 그건 그냥 가수나 배우 사진을 모으는 것 같은 거야. 대부분의 관객들은 극장에 꿈을 꾸러 와. 환각을 보러 오는 거지. 원하는 걸 주지 않으면 돌변할 거야. ”

 

“ 설마 무대에 불이라도 지르겠냐. ”

 

“ 괜찮은 관객들이라면 배우를 찢어죽이겠지. ”

 

“ 그런 말 하지 마. 관객들 무시하지 말고. 어쨌든 널 보러 오는 거니까. ”

 

“ 무시하지 않아. 내가 그랬잖아, ‘괜찮은’ 관객들이라고. ”

 

 

이제 옆으로 번져버린 붉은 얼룩과 눈 아래 깊게 패인 그림자 너머 아직도 그 황폐하고 어두운 표정이 남아 있었다. 잠시 그는 강의를 빼먹고 이곳에 남아 있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미샤가 너무 피곤해 보였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자도록 내버려두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 공연 목요일이지? 타냐랑 보러 갈게. ”

 

“ 응, 그때 봐. ”

 

 

미샤가 욕실로 들어간 후 트로이는 무의식적으로 바닥에 점점이 떨어져 있는 옷가지들과 가방을 주워서 소파에 올려놓았다. 지퍼가 열린 가방에서 리본 달린 곰 인형과 캔디 상자들과 향수를 뿌린 예쁜 편지 봉투 몇 개가 쏟아졌다. 봉투에 들어 있지 않은 카드도 한 장 있었는데 호기심에 펼쳐보니 피처럼 새빨간 잉크로 무시무시한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세도바와 당장 헤어져요!

안 그러면 그년한테 황산을 끼얹을 거야!

 

 

 

그 끔찍한 카드를 내려놓은 후 그는 코트를 입었다. 왜 그 메시지를 읽었는데도 지나이다가 아니라 미샤가 걱정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 지나이다는 그런 협박을 두려워하기에는 너무나 당당한 여왕님처럼 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니콜카 이후 그는 미샤가 어디선가 칼에 찔리거나 총에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내밀한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다. 물론 그런 무서운 일이 생긴다면 정부들 중 하나의 짓이겠지만 카드를 보고 나니 극성팬도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

 

 

파트너들의 연습실 사진 두 장 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와 디아나 비슈뇨바. 신데렐라 리허설. alex gouliaev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와 도로테 질베르의 라 바야데르 리허설 사진.

 

 

 

**

 

 

미샤가 트로이에게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를 가져다달라고 하는 이유는 다음 챕터에서 볼쇼이에서 온 안무가 일린이 미샤를 위해 이 작품을 안무해주기 때문이다. 일린에 대한 이야기는 이 writing 폴더에서 여러번 발췌했으므로 생략.

 

 

**

 

 

마지막 부분에서 인용되는 극성팬의 카드 협박에 대한 얘기는, 사실 세르게이 필린 황산투척 사건보다 이전에 쓴 것이다. 광팬들이 많은 미샤의 특성상 저런 협박편지를 많이 받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후 볼쇼이에서 필린 황산 테러 사건이 일어나서 깜짝 놀랐다. 심지어 황산까지 똑같다. 역시 저 동네 무섭구나!!!

 

 

**

 

 

제니트는 페테르부르크 축구팀, 스파르탁은 모스크바 축구팀이다.

 

 

**

 

트로이가 '라리사의 집'에 대해 생각하는 장면은 전에 발췌한 이야기와 관계가 있다. 라리사는 트로이의 아버지가 재혼한 리가의 여인이다. 트로이와 미샤는 그 집에 가서 저녁을 얻어먹는다.

그 이야기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4156

 

 

**

 

 

지나이다와 미샤가 주고받은 메모와 트로이의 상념 속에 등장하는 세베르와 모코에 대한 메모는 아래... 몇년 전 따로 글에 등장하는 장소나 주요 소재에 대해 정리할때 개인용 블로그에 썼던 메모이다.

 

 

 

<'세베르'와 '모코'에 대한 메모 : 2013년 9월>

 

 

 

 

 

 

 

러시아어로 세베르(СЕВЕР), 즉 북쪽이라는 뜻의 유명한 디저트 카페이다. 올해 110년이 되었으니 소련 전환 이전에 생긴 곳인데 지금도 유명하다.
 

네프스키 대로 한복판의 어느 건물 반지하에 위치한 세베르는 딱 러시아인들이 좋아하는 디저트들과 빵, 케익, 쿠키가 가득한 곳이다.


 

지금은 리모델링을 해서 널찍하고 쾌적한 카페로 바뀌었지만 내 기억 속 90년대말 세베르는 어두컴컴한 조명과 불친절한 점원들, 높은 원탁을 둘러싸고 선 채 종이접시에 얹힌 조각 케익(삐로즈노예)이나 파이, 까르또슈까를 먹고 종이컵에 담긴 싸구려 티백 홍차나 진한 커피에 설탕을 부어먹는 러시아인들로 득실거리던 아주 소련답고 러시아다운 카페였다.
 


 

지금은 페테르부르크에도 워낙 세련되고 현대적인 카페들이 많기 때문에 아무리 리모델링을 했어도 세베르는 좀 아날로그 풍이고 '옛날 카페'란 느낌이 난다. 파는 케익이나 과자도 그렇고. 그래서인지 여전히 중년 부인들이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찾는다. 


 

나는 이 소설의 중반부에서 세베르를 한번 등장시켰다. 트로이가 할머니를 위해 까르또슈까를 사러 갔다가 카페 구석 원탁에 모여 차를 마시며 얘기 중이던 미샤와 그의 극장 동료들과 마주치는 장면이었다. 물론 트로이와 미샤는 레닌그라드 토박이였으므로 세베르는 아주 친숙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세베르에서 미샤는 트로이를 자기 친구들에게 소개해주고 그가 좋아하는 메도빅과 커피를 권해준다. 이곳에서 트로이는 그에게 아주 불편한 존재로 각인되는 볼쇼이 출신 안무가 스타니슬라프 일린을 소개받는다.

 

 

 

 

 

 

 

 

요즘은 이렇게 환하고 널찍한 카페로 바뀌었지만. 예전에는 절대 이렇지 않았다. 훨씬 좁고 어두웠으며 의자도 없이 둥글고 높은 테이블들만 몇개 늘어서 있어서 사람들이 그걸 둘러싸고 와글거리며 케익과 차를 먹었다.

 



이 사진은 작년(2012년)에 내가 갔을 때. 까르또슈까랑 홍차 먹는 중. 이젠 종이접시도 종이컵도 아니다!

 

 

 

 



이것은 모코. 세베르에서 유명한 케익 중 하나. Mokko(모코)라는 케익으로 버터크림, 커피, 코냑, 초콜릿 등이 들어간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꽤 투박하고 촌스러운 옛날 아날로그 풍 케익인데 의외로 아주 맛있다. 90년대 페테르부르크에 살 때 가끔 조각케익으로 사먹었고 생일날에는 통 크게 조그만 케익을 한 판 사기도 했다.


 
이번에도 사와보려고 했지만 어째서인지 더 이상 모코는 조각 케익으로는 팔지 않고 저렇게 한 판 단위로만 팔고 있었다 ㅠㅠ

 

소설에서 미샤와 지나이다는 둘 다 이 케익을 좋아하는데 단 것을 일단 먹고 보자 주의의 지나이다와 달리 미샤는 스파르타식으로 '단거 안먹어!' 하고 끝끝내 안 먹고 버티는 타입이다. (하지만 저 모코를 매우 먹고 싶어하는 약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이 사진들은 지금 세베르에서 팔고 있는 케익들.


 
물론 티라미수 같은 '서구식', '요즘' 케익도 있지만 대부분은 소련 시절부터 팔던 전통적 케익들이다. 모양도 그렇고 맛도 꽤나 소박하고 달콤한데 먹을수록 정감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 버터크림이 주종을 이룬다. 가격도 그렇게 비싸지 않고 딱 '옛날; '아날로그' 맛이 난다.

 

 

 

 

** 위의 메모에서 언급되는 세베르에서 트로이가 미샤의 친구들과 일린을 만나는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발췌해 보겠다 **

 

 

...

 

 

** 미샤가 타냐의 생일에 불렀던 데이빗 보위의 노래 'The man who sold the world’ 실제 노래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4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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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5일.

수도원 가려다 버스 잘못 타서 듣도보도 못한 포춈킨 거리에서 내려 발견했던 타브리체스키 공원.

 

빛이 눈부셨다. 난 빛이 많은 사진을 좋아해서.. 거닐며 사진을 여러장 찍었다. 나중에 료샤가 나보고 관광객처럼 길이나 잃느냐고 툴툴대며 이쪽으로 데리러 왔고... 이날 네프스키 대로에는 차가 없어서 나는 대로에 드러누워보기도 했었다 :) 그리고 레냐랑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빛이 많은 사진은 나에게 위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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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니 사드(여름 정원) 후문에는 연못이 하나 있는데 여기엔 갈매기 비둘기 까마귀 오리들이 날아올 뿐만 아니라 백조 한쌍이 유유히 떠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날 엽님과 함께 레트니 사드에 갔는데.. 백조를 보여드리려 했으나..

 

저놈의 백조들이 전혀 우아하지 않게 기다란 모가지를 꼬며 저러고 있었음 ㅠㅠ 우아하고 유유히 수면을 유영하는 백조따윈 간곳 없고... 백조의 호수는 어데로...

 

 

앗, 이제 좀 헤엄쳐보려나??

 

 

하지만 다시 모가지를 쭉 빼고..

 

백조 이러기야!

 

 

그래, 난 백조보다 갈매기 오리가 더 좋앗~

갈매기가 훨씬 우아하다!!!

 

 

심지어 박테리아 온상 비둘기가 더 낫네!!! (사진발도 잘 받고 ㅋㅋ)

백조! 너희는 우리를 실망시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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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12. 21:20

창문 안쪽에서 2016 petersburg2016. 7. 12. 21:20

 

 

이건 6월 19일. 두번째 숙소를 체크아웃하고 세번째 숙소로 옮기기 전 시간이 남아서... 비오고 추운 날이었다. 아프고 추워서 헤매다 근처 어느 카페에 들어가 비를 피하고 달콤한 뭔가를 먹어서 가슴 통증을 달랬던 날이다.

 

창 너머로 사람들이 비를 맞으며 지나갔다. 비가 많이 왔다.

 

 

 

 

 

 

이건 6월 18일. 두번째 숙소에는 하루만 머물렀었다.

근처 어느 가게 안에서 바라본 창밖 풍경. 횡단보도 건너 공연매표소가 보인다.

 

모든 창문은 각각의 액자이다.

 

 

이건 다시 6월 19일. 세번째 숙소에 들어와서...

 

..

 

한국에 돌아오니 창밖을 볼 일이 그리 많지 않다. 일단 너무 더워서 커튼을 젖혀 놓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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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12. 00:05

아주 많은 빛 2016 petersburg2016. 7. 12. 00:05

 

 

지난 6월 24일.

세번째 숙소로 옮긴 날. 저녁에는 마린스키에서 슈클랴로프의 지젤을 본 날.

빛이 아주 찬란했고 뜨거웠던 날.

 

내 안에도 빛이 아주 많이 들어와서 흘러넘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라 사진들 몇 장 올려봄.

 

 

 

 

새들을 많이 봤던 날.

 

 

 

 

 

빛을 받으며 운하를 따라 걸었다. 온몸에 열기가 차올랐다. 그냥 뜨거워지는 열기였다. 땀이 나는 열기가 아니라.

 

 

 

 

여기는 전에 포스팅했던 '그' 빨간 다리 옆의 피자헛. 그 얘긴 여기 : http://tveye.tistory.com/3958

 

 

 

 

 

나는 언제나 보트나 배 위의 남자들에게 좀 끌리는 편이다. 이거 페티쉬인가, 흰 가운 입은 과학자에게 끌리는 것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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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이날은 네프스키 중간쯤에 있는 알렉산드린스키 극장에서 보리스 에이프만의 '안나 카레니나'를 보고 나왔다. 알렉산드린스키 공원을 통과해 네프스키 대로로 나왔고 판탄카 운하를 건너 쭉 걸어간 후 오른쪽의 블라지미르스키 대로로 꺾어 숙소로 걸어갔다. 밤 11시 즈음이었던 것 같다.

 

천천히 걸어가며 폰으로 찍은 사진 몇 장. 해는 이미 진 후라서 어스름이 깔리고 있었다. (백야라서 2시쯤이면 다시 밝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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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별거 없다. 같은 날 점심, 저녁, 밤에 찍은 사진들이라는 것이다.

아점으로 체리랑 견과, 수도원 빵을 먹었던 날인데 저 체리가 너무너무 '체리'처럼 생겨서 찍어놨다.

두번째 사진은 마린스키까지 걸어가다 근처 건물 창문에 비친 것.

마지막 사진은 공연 보고 돌아와서. 극장에서 사온 '청동기사상' 프로그램 책자, 백조 브로치, 슈클랴로프 사진 두장(사랑의 전설과 le parc)

 

이 날 스메칼로프가 안무하고 슈클랴로프와 테료쉬키나가 춤춘 '청동기사상'을 보고 온 날이었다. 이번에 가서 본 여덟개의 공연 중 가장 마음에 남았다. 다시 보고 싶은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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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7. 22:54

빗물 웅덩이에 비친 풍경들 2016 petersburg2016. 7. 7. 22:54

 

 

 

어제 버려진 술병과 컵 얘기도 했지만, 난 빗물 웅덩이나 수면에 비친 풍경 보는 것도 좋아한다. 고요한 수면 위에 그대로 비춰지는 풍경도 좋지만 마구 일그러지고 변형된 모습도 좋다.

 

페테르부르크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찍은 빗물 웅덩이 사진 몇장.

 

 

 

 

 

귀퉁이에 내가 좀 나왔는데... 카메라에 가려서 얼굴 안보이니 안 자름.. 저 빨간 운동화는 면세에서 지름신 강림해서 득템했었는데 나름대로 잘 신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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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6. 23:05

버리고 간 병과 컵들 2016 petersburg2016. 7. 6. 23:05

 

 

아마 사람마다 사진 찍을 때 취향이 있을텐데 나도 좋아하는 소재가 몇개 있다. 이 블로그에 여태 올린 포스팅을 보신 분들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난 창문과 문양, 간판, 메뉴 찍는 걸 좋아하고 이따금 새를 찍는 것도 좋아한다. 그리고... 버려진 컵이나 술병 따위를 찍는 것도 좋아한다. 마지막 취향은 좀 웃겨서 료샤에게 항상 '너 이상해!'란 구박을 받았다.

 

이번에 페테르부르크에서 머물며 찍었던 버려진 컵과 병들 사진 몇 장.

 

이건 네바 강변.

 

 

 

 

이건 아마 루빈슈테인 거리나 블라지미르 대로 쪽이었던 듯.

 

 

이것부터 아래는 그리보예도프와 모이카 운하변...

 

 

 

 

 

 

 

 

 

마지막은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 바라보는 그리보예도프 운하 돌난간의 커피컵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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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페테르부르크에는 3주 동안 머물렀는데 첫 열흘 동안은 블라지미르스키 대로에 있는 호텔에 묵었다. 길 뒤로 빠져나가 조금만 걸으면 루빈슈테인 거리가 나와서 한동안 그 거리에서 밥먹고 차마시고 지냈다. 사실 그 열흘 동안은 아직 아프기도 하고 여러가지로 힘든 때라 바깥에 나가는 거 절반, 방안에 누워 있는 거 절반이었던 것 같다...

 

저녁 7시 무렵. 루빈슈테인 거리 사진 세장. 매우 환했다. 11시 즈음 해가 지니까... 하지만 눈부신 빛 대신 부드러운 빛에 잠긴 사진 세 장만 올려본다.

 

 

 

 

저 원피스 맘에 들어서 지나다닐때마다 열심히 구경했음. 근데 노란색 옷은 입어본 적이 없어서 자신이 없다... (사실 가격표도 안봤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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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3. 17:55

백야의 네바 강 2016 petersburg2016. 7. 3. 17:55

 

6월 22일.

엽님과 함께 석양이 깃든 네바 강변을 산책하며 찍은 사진 두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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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오후 비행기를 타야 했기 때문에 11시에 료샤랑 레냐랑 만나 그리보예도프 운하부터 시작해 궁전광장, 네바 강변, 그리고 청동기사상, 이삭성당 쪽으로 쭉 산책했었다. 그때 찍은 사진 몇 장. 날씨가 많이 흐렸다.

 

 

 

 

 

 

 

 

 

 

 

.. 돌아오니 정말 덥고 끈적끈적해서 못살겠다. 헥헥..

하루밖에 안됐는데 벌써부터 그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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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밤 짐을 싸고 누웠는데 늦게까지 잠이 오지 않아 뒤척였다. 아마 마지막날 밤이라 그랬나보다. 새벽에도 몇번 깼고 결국 5시간쯤 자고 일어났다.

 

전날 밤 pica님이 페테르부르크에 오셨다가 우연히 나를 발견하고(!) 댓글을 남겨주셔서 이래저래 알게 된 결과! pica님과 친구분이 내가 머무는 호텔에서 10분 거리에 계셨다! 페테르고프에는 정오쯤 가신다 해서 그러면 아침에 잠깐이라도 만나 같이 밥먹기로 했다. 마침 조식 불포함 예약이라 하심((나랑 같음!)

 

그래서 마린스키 앞에서 조우하여 함께 버스 타고 돔 끄니기 징게르 카페에 갔다. 일찍 가서 창가 자리 득템!! 카잔 성당을 바라보며 한시간 정도 함께 얘기나누고 조식 메뉴와 블린 등을 시켜서 맛있게 먹었다. pica님 너무 반가웠어요. 친구분이랑 둘이 오셔서 좋아보였어요. 남은 일정 잘 보내고 돌아가세요! 그리고날씨가 매우매우매우 좋기를!!!

 

나는 11시에 료샤와 약속이 있었기에 아쉽지만 먼저 일어나야 했다. 료샤와 레냐가 돔 끄니기 앞으로 왔다.

 

..

 

 

친구와 약혼자(ㅋㅋ)와 함께 그리보예도프 운하와 궁전광장 쪽을 거닐었다. 섭섭하고 슬프기도 했다. 청동기사상 앞에 왔는데 좀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꾹 참았다. 매우 흐린 날씨였다. 사진 색감도 그렇다.

 

 

..

 

 

산책하다 중간에... 그리보예도프 운하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 앞 다리에서 웨딩 촬영이 진행되고 있었다. 신랑이 신부를 번쩍 안아들었다. 신부가 이뻤다.

 

 

 

잠시 구경하는데 레냐가 '나도! 나도 결혼하면 쥬쥬를 저렇게 안아줄거야!' 라고 소리쳤다. ㅋㅋ

 

그런데 레냐는 아직 나보다 작아서... 내가 레냐를 번쩍 안아주었다. (실은 번쩍 안아주려고 했으나 이 녀석이 이미 많이 컸기 때문에 팔 빠지는 줄 알았다. 앞으론 못 안아주겠다 ㅠㅠ 무거워...)


무거워서 후들거리고 레냐를 곧 내려놓자(ㅜㅜ) 료샤가 비웃었다 ㅠㅠ 그리고는 보란듯이 자기가 한팔로 레냐를 번쩍 안아주었다. 뭐냐!!! 그런 걸로 자랑이냐! 사내들이란 ㅠㅠ 토끼 한마리 앞에서 근력 자랑하면 뭐하냐!! 그 키에 그 덩치에!!

 

이 일의 유일한 낙은 레냐가 아빠한테 막 짜증내며 '아빠랑 내가 결혼할 것도 아닌데 왜 안아줘! 내가 쥬쥬를 안아줄거야!' 하고 대들었다는 것이다 ㅋㅋ

 

그리고는 레냐가 자못 점잖은 듯 나에게 '앞으로 내가 쥬쥬를 안아줄테니 좀만 기다려~ 원래 사나이가 여자를 안아주는 거야' 라고 말한 것이다. 어린 것이 벌써부터 어디서 저런 마초의식을 ㅠㅠ 이 녀석아, 여자가 안아줄수도 있는거야!!

 

..

 

 

 

이렇게 난 네바 강변에서 마지막 아이스크림을 먹고...

 

..

 

료샤가 차로 풀코보 공항까지 태워다 주었다. 짐도 무겁고 경유도 해야 해서 힘든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레냐는.. 나와 함께 한국에 가겠다고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던 거였다. 배낭을 메고 야구모자를 쓰고 운동화를 신고 뭔가 결연한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알고보니 같이 비행기를 타고 가겠다는 거였다 ㅠㅠ 공항에서 막 울고 떼를 써서 엄청 난감하고 섭섭했다.

 

레냐 : 아빠! 비행기 표 사와!

료샤 : 무슨 비행기 표!

레냐 : 서울 가는 거! 나도 쥬쥬랑 같이 갈 거야!

료샤 : 표 없어. 매진이야. 쥬쥬도 표 없어서 모스크바에서 갈아타고 가잖아.

레냐 : 앙앙, 아빠 돈 많으니까 표 사줘!

료샤 : 안돼!

레냐 : 앙앙, 나 쥬쥬 가방에 들어갈래!

나 : 아아, 어쩌지 ㅠㅠ 레냐야 나중에 또 올게...

 

(료샤보고 레냐 데리고 서울 놀러오라 하고 싶었지만 레냐 엄마가 반대할 게 뻔할 뻔자라 ㅠㅠ 가뜩이나 내가 놀러왔을때 레냐랑 보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한다 ㅠㅠ)

 

레냐 : 앙앙, 나도 비행기.. 앙앙, 나도 한국... 앙앙..

나 : 레냐야, 착하지. 있잖아, 레냐는 뻬쩨르 여름이랑 아이스크림 좋아하잖아. 그치? 지금 여름이지?

레냐 : 응.

나 : 한국은 여름에 되게되게 덥고 습해서 숨이 탁탁 막혀. 아이스크림도 여기처럼 맛없어. 그니까 여름엔 뻬쩨르에서 엄마아빠랑 있고 나중에 또 만나자!

 

보통 이렇게 달래면 레냐가 잘 넘어가는데... 이번에는...

 

레냐 : 앙앙, 한국 그렇게 안 좋은데 쥬쥬 왜 가! 가지 마 앙앙... 뻬쩨르 여름이 좋으니까 나랑 여기 있어, 앙앙... 쥬쥬 불쌍해, 한국 덥고 숨막히는데 아이스크림도 맛없대... 앙앙...

 

ㅠㅠ

 

그래서 레냐 달래느라 한참 땀빼고... 또 내 짐이 28킬로 가까이 나왔는데 다행히 아에로플롯이 스카이 팀 멤버라 대한항공 모닝캄인 덕분에 짐을 두개로 부치면 오버차지는 내지 않되, 짐 한개가 20킬로가 넘으면 안된다 해서 공항 바닥에 퍼질러 앉아 트렁크를 풀고 보조가방에 화장품과 책 등을 마구 쑤셔넣어 간신히 오버차지를 면하는 등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

 

훌쩍훌쩍 울던 레냐는 결국 포기를 하고, 갑자기 또 의젓하게 '가을에 내가 한국 갈거야! 그때 만나!' 하고는 뽀뽀를 쪽 하고 헤어졌다. 료샤는 내가 들어갈때까지 레냐랑 지켜보면서 마지막으로 '밥 좀 잘 챙겨먹어!' 라고 소리쳤다. 한국이나 러시아나 밥 먹으라는 건 똑같구먼...

 

고마워 친구야... 진짜로.

 

그리고 고마워요, 나의 마음 속 도시...

 

..

 

그래서 나는 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를 탔고, 모스크바 공항에서 짧은 환승 시간을 극복하고 다시 모스크바에서 인천으로 오는 아에로플롯을 탔다.

 

그렇게 나의 3주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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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6. 29. 19:35

곧 공항으로.. 2016 petersburg2016. 6. 29. 19:35




이제 잠시 후 공항으로 떠난다..

3주 동안 잘 있었어요, 사랑해요 물과 돌과 빛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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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페테르부르크에 머무는 마지막 날.

 

어제부터 비가 오더니 오전에도 내내 그치지 않고 내렸다. 비가 오니 행동반경에 제약이 온다. 1시쯤 숙소를 나섰다. 비가 생각보다 많이 왔다. 남은 달러를 다 바꿔서 마지막 탕진을 하기로 했다. 네프스키 대로에 있는 로모노소프 가게에 가서 찻잔을 두개 더 샀다. 망했음.

 

그 로모노소프 가게 위에 블린 가게인 쩨레목이 있었기 때문에 아점을 거기서 스메타나 소스와 닭가슴살 든 블린인 '알료샤 뽀뽀비치'와 블랙베리 모르스로 해결했다.

 

 

 

 

비가 계속 왔다. 버스를 타고 이삭 성당 앞에서 내렸고 아스토리야 로툰다에서 차를 한잔 마셨다. 어차피 이제 돌아가야 하니 이번 여행에서 제일 좋아했던 카페 중 하나에서 차 마시고 가려고. 여기는 bravebird님과 왔었고 나 혼자서도 두번 왔었다. 이 호텔에서 못 자니 차라도 실컷 마시고 가자 ㅠㅠ

 

여기 메도빅이 매우 맛있었다! 새로운 발견! 고스찌만큼 맛있다!!! (하지만 비싸 ㅠㅠ)

 

..

 

차 마시며 앉아 있다보니 늦은 오후가 되었고 비가 그쳤다. 여전히 흐리고 쌀쌀했다. 일단 버스를 타고 마린스키 앞에서 내린 후 숙소까지 걸어갔다. 찻잔을 내려놓고 옷을 갈아입은 후 다시 나갔다. 그래도 비가 안 오니 트로이츠키 사원에 가려고.

 

 

 

트로이츠키 사원은 내가 머무는 림스키 코르사코프 거리에서 좀더 올라가 보즈네셴스키 대로를 따라 쭉 내려가다가 판탄카 운하를 건너 이즈마일로프 대로로 내려가야 나온다. 원래 이름은 이즈마일로프 사원이지만 성삼위일체를 모셨다고 해서 트로이츠키 사원이라고도 불린다. 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아름답고 특이한 사원 중 하나로, 내부보다는 외부의 금별 그려진 파란색 세개의 돔이 워낙 유명하다. 2006년인가 화재가 나서 재건축을 해서 그런지 금별이 옛날보다 훨씬 번쩍번쩍거린다.

 

이 사원에서 도스토예프스키가 두번째 부인인 안나 그리고리예브나와 결혼했다.

 

몇년 전 쓴 본편 우주에 속한 소설에서 나는 심리적 화자에게 트로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그의 본명은 안드레이 트로이츠키이다. 바로 이 성당에서 따온 성이었다. 안드레이라는 이름도 어딘가에서 따왔지만 그건 나중에... 그래서 미샤는 항상 트로이를 '사원 같은 사람', '교회 종탑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바깥에서 구경만 했지 실제로 들어가본 건 이번이 놀랍게도 처음이었다. 내부는 생각보다 휑하고 넓었다. 루블료프 풍의 삼위일체 이콘들이 가장 많았다. 나는 성 게오르기 이콘 앞으로 갔다. 가족과 나를 위해 초를 켜고 기도를 했다. 나는 정교 신자도 아니고 제대로 된 신앙을 가져본 적도 이미 오래전인 것 같지만, 나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덕목은 어쩌면 용기일지도 모르기에.

 

..

 

사원에서 나왔는데 술에 취한 러시아 아저씨 한명이 와서 정교 신자냐 부터 시작해 사원의 역사와 건축가에 대해 줄줄이 설명을 했다. 아마 날 데리고 다니며 열심히 가르쳐주고 싶은 모양이었는데 난 약속도 있었고 또 좀 무섭기도 해서 '고마운데 난 약속이 있어요' 라고 한 열번은 말한 후 간신히 도망쳤다. 아저씨가 악인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불편하긴 했어요 ㅠㅠ

 

..

 

마린스키 구관과 신관 사이 크류코바 운하변에 the repa라는 레스토랑이 새로 문을 열었다. 예전엔 '자 스쩨노이'란 이름(백스테이지란 뜻)의 유명한 식당이 있었는데 극장 사람들이 드나들던 곳이었다. 이번에 긴자프로젝트 체인에서 새로 인수해 유명 디자이너에게 디자인을 맡겨서 새로 오픈했다고 한다. 가본 적이 없었고 트위터에서만 보며 궁금해했는데 료샤가 떠나기 전날이니 같이 가서 저녁먹자고 예약을 해주었다.

 

레스토랑은 근사하고 아름다웠다. 극장 느낌이 물씬 났다. 연지 얼마 안돼서 손님은 거의 없었고 막판엔 나와 료샤만 있었다. 가게 다 우리 거라고 농담하며 좋아했다.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고 이후 료샤가 숙소까지 태워다 주었다. 오늘은 짐을 싸야 해서 료샤에게 차를 못 우려줌.

 

내일 오후 2시에 공항으로 떠난다. 가기 전에 료샤랑 레냐랑 가능하면 꼭 보기로 했다. 근데 늦잠을 안 자야 할텐데...

 

..

 

돌아와서 괴로워하며 짐을 쌌다. 찻잔이랑 차가 왜 이렇게 많지 ㅠㅠ 엉엉... 뽁뽁이를 이번에 안 가져와서 면세에서 챙긴 뽁뽁이가 너무 적다... 종이랑 옷으로 잘 싸서 열심히 포장은 했다만.. 깨지면 안되는데... 내일 가방 패킹을 부탁해야겠다. 짐싸는 거 너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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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주 동안 이곳에 머물렀다.

글은 하나도 쓰지 않았다. 많이 누워 있었다. 잤고 숨을 쉬었고 먹었다. 걸었고 공연을 봤다. 슈클랴로프 나오는 공연도 운좋게 4편이나 봤다. 좋은 사람 몇명을 만났다. 고민은 해결되지 않았다. 아름다운 도시, 내가 사랑하는 도시에 와서 조금은 나아졌지만 그게 일시적인 치유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좀 슬프다.

몇달 더 남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내일 돌아간다.

 

나에게 용기와 평온과 힘이 생기기를!

 

내일은 좀 일찍 일어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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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어젠 자정 되기 전에 누웠는데 새벽에 몇번 깬 후 오늘도 늦게 일어났다. 계속계속 졸렸다.

 

돌아가기 전까진 오늘만 날씨가 좋다고 해서 원래 오늘 수도원이나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에 갈까 했지만 생각보다 날씨가 좋지 않았고 다리도 많이 아팠다. 어제 바리쉬니코프 전시를 보고 와서 그런가 오늘은 어쩐지 러시아 박물관 생각이 나서 거기 가기로 했다. 며칠 전 사다놨던 에클레어와 체리로 아점을 때우고 나와서 버스를 탔다.

 

오늘은 월요일이라 그런지 사도바야 거리에서 판탄카로 돌아나가는 길이 굉장히 밀렸다. 버스 안에서 고생한 후 내렸는데 날이 싸늘했다. 그래도 판탄카 쪽 가판대에서 아이스크림 한개 사먹었다. 이제 마로제노예 먹을 수 있는 날도 거의 없네... 한국 돌아가면 다시 아이스크림은 쳐다보지도 않는 생활이 시작되겠지. (원래 유지방 소화를 못시켜서 아이스크림을 못먹는데 페테르부르크에선 많이 돌아다녀서 그런지 아니면 여기 아이스크림이 유지방 함량이 낮은지-맛은 안 그런데- 배가 안 아픈 편이다)

 

 

오늘 먹은 건 에스키모 크렘 브륄레.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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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만에 러시아 박물관에 다시 왔다. 박스트는 올해 150주년인가 뭔가여서 투어를 갔기 때문에 그림이 아예 통째로 없어 슬펐지만 니콜라이 게의 못봤던 그림이 몇점 나와 있는 등 또 나름대로의 수확이 있었다.

 

금발의 가브리엘과 브루벨의 악마를 다시 봐서 행복했다.

 

두어시간 쯤 전시를 본 후 나왔다. 날씨가 싸늘했다. 카톨릭 성당 뒤에 있는 클래식 음반가게에 가서 글리에르의 청동기사상이 있느냐 물었지만 주인 남자는 자기가 이 가게를 하는 동안 그 음반이 들어온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는 컴퓨터로 모든 카탈로그를 검색해본 후 매우 유감스럽게도 없다고 했다. 어디서 이 음반을 구한다지... 나중에 네프스키로 나가서 다른 클래식 음반 가게에도 갔지만 없었다. 후자는 전보다 음반이 더 줄어들어 있었다. 전에는 지휘자별로 되어 있어 페도토프와 테미르카노프도 종종 득템했건만 왜 퇴행한거야...

 

자리가 있으면 징게르 카페에서 이른 저녁이나 먹을까 했지만 역시 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하긴 성수기니 이른 아침 아니고서는 이 카페에서 자리 잡기가 쉽지 않다... 올해는 포기해야 하려나싶다.

 

그냥 우리 호텔 9층 식당에서 전망이나 보며 저녁먹어야지 하고 버스를 탔는데 사람이 너무너무 많은데다 너무 피곤했다. 갑자기 너무 어지럽고 피곤해서 그냥 이삭 성당 앞에서 내렸다. 곧 집에 돌아가니까 아스토리야에 가서 밥을 먹고 말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아스토리야 호텔에 갔다. 마침 그때 료샤가 전화를 해왔다. 일끝났다면서 박물관에 있으면 데리러 온다 해서 '배고파서 아스토리야에 가고 있었어'라고 하자 되게 신기해했다.

 

료샤 : 나 지금 아드미랄쩨이스까야 지나고 있어.

(이삭성당에서 제일 가까운 지하철역임)

나 : 엥, 너네 사무실 그쪽 아니잖아.

료샤 : 미팅이 W호텔 쪽이었어. 마치고 나가고 있었어. 도로 간다.

 

(W호텔도 이삭성당 근처에 있음)

 

나는 너무 피곤해서 먼저 아스토리야 카페에 들어갔다. 아스토리야 호텔은 얼마 전인지 재단장을 해서 로비의 카페 로툰다와 다비도프 바, 그리고 안쪽의 아스토리야 카페로 구분이 되었는데 후자는 이름이 카페인 것이지 하얀 테이블보와 초, 꽃이 깔려 있는 레스토랑이다. 나도 로툰다에만 가보고 후자엔 가본적이 없었다. 어쩐지 테이블보가 좍 깔려 있는게 좀 부담스러워서. 그런데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그냥 가봐야지 했는데 마침 료샤가 와서 덜 뻘쭘... (왜냐면... 난 오늘 박물관 가려고 빨간 운동화를 신고 왔기 때문이지... ㅠㅠ)

 

(아스토리야는 마린스키와 행사를 많이 하고 그랜드 호텔 유럽은 미하일로프스키와 행사를 많이 하는 편이다)

 

 

 

다행히 빨간 운동화와 파랑하양 체크무늬 로브 원피스를 대충 입은 나 대신 내 친구 료샤는 무슨 미팅에 다녀오느라고 양복을 잘 빼입고 민망하기 짝이 없는 번쩍번쩍 시계를 차고 있었다. (제발 그런 시계 좀 차지 마 엉엉...) 나는 보르쉬와 처음 보는 생선인 깜발라(지중해에 사는 하얀 고기라고 해서 시켜봄) 구이, 크랜베리 모르스를 주문했고 료샤는 뭘 잔뜩 먹고 왔다면서 탄산수만 주문하려고 해서 내가 눈치를 줬다.

 

나 : 야아, 뭐라도 하나 먹어야지 ㅠㅠ

료샤 : 나 배부른데... 손님들이랑 이것저것 먹었어.

나 : 나 혼자 먹는 거 뻘쭘하잖아 ㅠㅠ

료샤 : 뭐가 뻘쭘해. 아무데나 들어가서 혼자 잘 시켜먹으면서!

나 : 동행 있는데 혼자 먹는 건 싫단 말이야 ㅠㅠ 빨랑 아무거나 하나 골라. 케익이라도...

료샤 : 독재자! 그러면 나는 햄버거 먹을거얏!

나 : 엥, 배부르다며!!

료샤 : 그래도 먹고 말겠다! 여기 햄버거 맛있단 말임...

 

그리하여 나의 독재로(ㅜㅜ) 료샤는 수제버거와 탄산수를 시키고(ㅋㅋ 다 먹고 배터졌을 거야 ㅠㅠ)...

 

이곳 보르쉬도 맛있었다. 빵도 맛있었고 깜발라 구이는 감자 퓨레와 짭짤한 양송이 구이가 올라가 있어 맛있었다. 고수만 없었음 딱 좋았을텐데 왜 자꾸 고수를 넣어주나요 허헝..

 

료샤는 배부르다더니 자기 버거를 몇입에 다 해치우시고는 내 깜발라 구이도 뺏아먹고, 짠 거 먹었더니 단 게 먹고 싶다면서 내 모르스도 반이나 뺏아 마셨다. 뭐냐 너!!! 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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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고 나서 료샤가 호텔까지 데려다 주었다. 내가 좀 걷고 싶어해서 차는 아스토리야 쪽에 놔두고 운하를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날이 싸늘했다. 빗방울이 곧 떨어질 것 같은 날씨였다. 체크무늬 로브 원피스는 7부 소매이긴 한데 얇은 편이라 바람 불어 좀 추웠다. 그래서 친구가 기사도 정신을 발휘해 재킷을 벗어주었는데 나는 평소같으면 '됐어!' 할 것을 오늘은 추워서 냉큼 받아 입었음. '엥, 너 왜 오늘은 거절 안해!' 하고 료샤가 눈을 둥그렇게 뜸. 미안하다 친구야 나도 추워서 살고 보려고 그랬어 ㅠㅠ 그래도 너는 80킬로 넘으니까 좀 괜찮겠지??

 

그래도 재킷 빌려준게 고마워서 방에 같이 와서 친구에게 따뜻한 차 한잔 우려줌. 새로 산 로모노소프 그젤 찻잔에 ㅋㅋ 아스토리야에서 준 초콜릿 곁들여서 우려주니 좋다고 잘 마셨다. 체리를 씻어 컵에 쏟아놓으니 나보고 대체 여기 와서 체리를 얼마나 많이 먹은 거냐고 묻는다. 그래서 '몰라, 매일매일 먹고 있어. 아침저녁으로...'라고 대꾸했다.

 

 

 

밤이라서 나는 잠 안 올까봐 차 대신 근처 베이커리에서 사왔던 모르스를 마시고 있다. 냉장고에 넣어두어서 시원하다. 모르스를 꺼내는 나를 보고 료샤가 또 혀를 찼다. 모르스는 대체 얼마나 많이 마시고 있는 거냐고 한다. 그래서 '체리처럼 하루에 한번 이상씩 먹어'라고 대꾸했다. 그러고보니 나는 여기 와서 매일매일 체리랑 모르스를 먹고 있나보다... 돌아가면 못먹잖아...

 

그 얘길 했더니 료샤가 '음, 나도 한국에 가면 노란색 맥심만 맨날 마실지도 모르니 이해해주마' 라고 했다. 그래, 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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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모레 돌아간다... 자고 나면 하루 남는 거네... 근데 내일 뇌우가 치고 비 오고 바람 분다고 한다...

 

** 이번 페테르부르크 얘기들을 '2016 페테르부르크' 폴더를 만들어 거기 옮겨놨다. 중간중간 끼어 있었던 공연과 춤 얘긴 그대로 DANCE 폴더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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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6. 6. 27. 18:56

방에서 늦은 아점 2016 petersburg2016. 6. 27. 18:56




비가 오고 흐려서 늦잠 자고 방에서 아점 먹는 중. 이틀 전 사와서 굳어버린 에클레어, 체리, 자두 한알, 디카페인 홍차.





며칠전 산 로모노소프 그젤 문양 찻잔. 신상품인데 할인중이라 급히 득템..




오늘은 비는 안온다 하고 낼은 내내 비온다는데.. 비 안오면 원래 요새나 수도원에 가야 하지만 오늘은 웬지 러시아 박물관에 가고 싶다. 이거 먹고 머리 말린 후 나가야겠다. 운동화 신고 가야겠다. 어제 샌들 신었더니 허리가 아팠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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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이탈리얀스카야 거리에 있는 어느 공원. 햇빛 쬐며 한가롭게 책 읽는 모습이 좋아서 찍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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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몸이 많이 힘든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여기 와서도 매일 게으름피운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하루에 한번 이상은 꼭 나다녔기 때문인지 아침엔 참 피곤하고 몸이 무겁다. 여전히 자다가 3~4시간 후면 반드시 깨어나고 그 이후에도 1~2시간마다 깨고 있다. 자고나면 머리도 아프다.

 

 

돌아갈 때가 거의 다 되었다. 수요일 오후 비행기로 떠난다. 이곳으로 떠나올때는 정말 아무 생각도 할수 없었다. 그때는 떠나와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견딜수가 없었다. 너무 괴로웠고 숨이 막혀 미칠 것 같았다.

 

이곳에서 어느 정도 숨도 쉬고 자가치유를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오늘 비오는 거리를 잠깐 걸어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글쎄, 나는 7월말까지 병가를 얻었고 이제 그건 한달밖에 남지 않았다. 한달은 금세 지나갈 것이다. 그러면 나는 돌아가게 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 그런데 또 어떻게 생각하면 당시 나의 행동으로 인해 향후의 입지나 상황이 그닥 좋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 뭐 어떤가 싶지만 하여튼 기분이 좋은일은 아니다. 돌아간다고 생각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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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호텔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료샤가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레냐는 오후 내내 나랑 노느라 잠들어 있었다) 그 정도로 너를 힘들게 하고 피를 말리고 괴롭게 하는 회사에 왜 돌아가야 하느냐고.

 

그래서 나는 모르겠다고, 아마 돈을 벌어서 자신의 삶을 지탱하고 아마 곧 나이드실 부모님에 대한 책임감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그리고 아마도 나는 다른 일을 시작하기가 두려운 것 같다고 대꾸했다. 나와 다른 인생을 살아온 료샤로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그는 내게 무엇을 하든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자신에 대해 좀더 관대해지라고, 자신의 능력을 좀 믿어보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경제적'으로서의 내 능력에 대해서는 아무 자신이 없고 그것때문에 회사를 그만둘 수가 없는 것 같다고 대꾸했다.

 

료샤는 다시 한번 나에게 회사를 떠나라고 했다. 뻬쩨르에 남든지 다른 곳으로 가든지 뭘 하든지 그건 내 선택이겠지만 하여튼 그 망할놈의 회사에 남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정말 모르겠다. 갑자기 속상하기도 하고 우울해져서 좀 울었다. 료샤가 매우 당황했고 사과를 했다. 여자 울리는 나쁜 놈아 엉엉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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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함과 피곤함의 여파로 몸살이 나서 늦게 일어났고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에 가는 건 너무 더워서 실패했다.

 

 

대신 오후에 판탄카로 나가 바리쉬니코프 사진전시를 봤다. 료샤와 레냐도 같이 갔다. 레냐는 아직 전시를 보기엔 어리지만 내 손을 꼭 잡고 들어갔는데 직원은 별 말 안했다.

 

오히려 료샤는 '흠, 이 사람은 늙었구만. 그래서 타이츠 안 입었구나' 라는 망발을 하고 레냐는 '이 사람이 그렇게 유명해? 쥬쥬는 이 사람 좋아해?' 하고 물어보는 등 진지했다 :) 그래서 나는 레냐에게 '난 옛날에 이 사람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러시아에 가보고 싶게 됐고 러시아어를 배우고 싶게 됐단다. 그래서 뻬쩨르에 오게 되었어'라고 대답해주었고 레냐는 무지 좋아했다. '우와 이 사람이 아주 고마운 사람이구나!' 하면서 기뻐했다 ㅋㅋ

 

 

전시를 보고 나왔는데 너무 후덥지근했다. 산책을 좀 하고 싶었지만 내가 너무 피곤해해서 료샤가 우리를 데리고 유럽호텔에 갔다. 내가 좋아하는 로비 바에 갔다. (전에 여기서 료샤랑 낮에 벨리니 마신 후 취해서 꿈나라로 간 적 있음 ㅠㅠ) 술 마시는 바라서 레냐 같은 어린이는 못 들어갈텐데 하고 걱정했지만 보호자가 있어서 괜찮다고 했다. (괜찮은 건지 료샤가 뭐라뭐라 설득을해서 괜찮아진건지 도통 모르겠음)

 

 

 

 

 

술 마시면 안되는데 바에 왔더니 너무너무 뭔가 마시고 싶었다. 날씨가 더워서 그랬던 것 같다. 바텐더에게 독하지 않고 좀 달콤하고 약한 칵테일 추천을 받았다. 내가 원했던 건 안나 아흐마토바. 마야코프스키, 그루셴카 중 하나였는데(전부 작가나 시인, 문학 캐릭터 이름 따서 만든 이 바의 메뉴들이다) 아흐마토바는 독하고 마야코프스키는 보드카에 후추가 들어가서 맵고 시다고 했다. 그래서 서양배와 라임이 들어간 달콤하고 약한 그루셴카를 마셨다.

 

(그루셴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중 하나이다.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료샤는 내가 적극 권하여 블루 벨벳 마가리타를 마셨다(내가 마가리타를 좋아하는데 요즘은 데킬라 때문에 독해서 못 마시니 그가 마시는 것을 보고 대리만족 ㅋㅋ) 그리고 레냐는 산딸기와 크랜베리로 만든 모르스를 마셨다.

 

 

 

 

내가 아점으로 크루아상 한조각 밖에 먹고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비프 스트로가노프도 먹었다. 레냐는 어린이용 치즈버거를 드심 ㅋㅋ 그리고는 나의 그루셴카를 너무나 궁금해하며 탐내서 심히 괴로웠다. 냄새만 맡게 해주자 '엑 술냄새 나' 하면서 다행히 고개를 돌려버렸음. 참 다행이다 ㅠㅠ

 

그루셴카는 달콤하고 약하고 시원했다. 끝맛이 슬며시 독했지만 그래도 취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살짝 나른해질 뿐이었다.

 

다 먹은 후 나오자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레냐를 엄마네 집에 데려다 줘야 할 시간이었다. 레냐는 안 가려고 했다. 엄청 툴툴댔고 찡찡댔다. 급기야 날 따라 한국에 가겠다고 했다 ㅠㅠ 그래서 내가 수요일에 돌아가기 전에 또 보기로 약속하고 어르고 달랬다.

 

레냐를 먼저 데려다 준 후(그 동안 나는 근처 카페에서 쉬고 졸고 있었다) 료샤가 다시 나를 호텔까지 데려다주었다. 호텔 바에서 차 한잔 더 마시고 들어왔다.

 

친구야,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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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답이 있으면 좋을텐데 인생에 답이 없는게 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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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불편한 자리에 앉아 공연 보면서 너무 무리했는지 온몸이 아프고 쑤셨다. 정오 넘어서까지 멍하게 누워 있었다. 그런데 바깥 날씨가 좋았고 일기예보를 보니 내일부터 비가 온다고 해서 오늘 바리쉬니코프 전시랑 수도원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억지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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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긴 했는데 이래저래 나오니 두시 반이 넘어 있었다. 날씨가 좋다 못해 엄청 덥고 뜨거웠다. 땀이 날 정도였다. 아무것도 안 먹었기 때문에 근처 봐두었던 몇개 베이커리 카페에 들렀으나 다들 사람이 엄청 많았다. 인기 많은 곳들인가보다. 그래서 좀 걸어가다가 카잔스카야 거리로 이어지길래 수프 비노에 가기로 했다.

 

지난번에 갔을 땐 알렉세이가 없었는데 오늘은 있었다. 혼자 가게를 보고 있었다. 처음엔 아는 체는 안하고 그냥 인사를 한 후 저번에 먹었던 닭고기 수프와 루꼴라 해산물 파스타, 생강 레모네이드를 주문했다.

 

 

 

다 먹은 후 조용한 목소리가 매력적인 알렉세이에게 살며시 물었다.

 

나 : 제 실수가 아니라면, 알렉세이 맞죠?

알렉세이 : 맞아요, 알렉세이.

나 : 혹시 저 기억하세요? 작년 여름에 왔었는데.

알렉세이 : 네. 사실 들어왔을때 알았어요! 그때 와서 같이 얘기하고 블로그로 알게 된 친구 얘기하셨죠.

나 : 맞아요. 그 친구도 기억하시나요?

알렉세이 : 네, 얼마 전에 왔었어요! 기억해요!

나 : ㅎㅎ 그 친구랑 저랑 여기서 2주 전에 드디어 만났답니다.

알렉세이 : 정말요? 인터넷으로만 안다고 하셨잖아요. 만난 적 없다고.

나 : 네! 그래서 우리 만나면 꼭 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그게 이루어졌어요. 같이 여기 오고 싶었는데 시간이 안 맞아서 그 친구는 먼저 따로 오고 저도 얼마전에 왔는데 그땐 당신이 없었어요.

알렉세이 : 아, 그랬구나... 저 없을 때 오셨었군요!

나 : 네, 그때 비와서 춥고 아팠는데 저 닭고기 수프 먹고 엄마 생각이 났고 몸이 따뜻해져서 좋았어요.

알렉세이 : 그 말 들으니까 저도 기분이 좋아요.

나 : 친구는 한번밖에 못왔다고 굉장히 아쉬워했어요. 얘기 많이 나눴냐고 물어보니 별로 못했다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또다시 인사를 하며 얘기를 하기로 했어요 :)

알렉세이 : 너무나 기뻐요. 여기를 기억해준다는 것, 그리고 여기를 다시 찾아주신다는 게요. 친구분도 잘 기억해요.

나 : 그 친구의 닉네임은 독수리고 저는 토끼에요 ㅋㅋ

알렉세이 : 그래서 독수리와 토끼가 만나게 된 것이군요!

나 : 네, 우리는 이삭 성당 앞에서 만났답니다.

알렉세이 : 너무 근사한 얘기네요! 근데 당신은 어떻게 노어를 그렇게 잘 하세요?

나 : 아니에요, 많이 잊어버렸어요 ㅠㅠ

알렉세이 : 아니에요, 노어를 정말 잘해요. 어디서 배우셨어요?

(외국인이라 그렇게 생각한 것임. 진짜 잘해서 그런건 아닐듯 ㅋㅋ)

나 : 전 노어랑 노문학 전공했고 옛날에 여기서 조금 살았어요. 요즘은 1년에 한번쯤 꼭 와요. 페테르부르크가 제 2의 고향 같아요.

알렉세이 : 왜 제2의 고향이에요?

나 : 음, 여기가 너무 아름다웠고... 러시아 문학과 극장이 좋았고... 그냥 도시랑 사랑에 빠졌어요. 부러워요,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에 살고 계시는 것이.

알렉세이 : 우리 도시를 좋아해줘서 저도 기뻐요. 그리고 저를 기억해주고 여기를 기억해줘서도 기뻐요!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신다니 그래서 아까 러시아어로 책을 읽고 있었군요

나 : 네, 도블라토프 좋아해요.

알렉세이 : 우와, 좋은 작가죠.

나 :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도요. 기억하세요? 작년에 왔을때 제 친구가 당신이 알렉세이 까라마조프 연상시킨다고 했던 거

알렉세이 : (웃음) 네!

나 : 친구 얘기가 다시 나와서 말인데, 친구랑 여기서 다시 보고팠는데 시간이 안돼서 먼저 돌아갔어요. 저도 며칠 후 돌아가거든요. 그 친구가 꼭 안부인사를 전해달라고 했어요.

알렉세이 : 제 안부도 꼭 전해주세요!

나 : 그리고, 작년처럼 이번에도 저랑 같이 사진 한장만 찍어주세요 :) 친구에게 보내주려고요.

알렉세이 : 그럼요~ 좋아요.

 

그래서 우리는 내 핸드폰으로 좀 웃긴 셀카를 찍었다. 자세가 엉거주춤해서 내 얼굴이 좀 웃기게 나왔다만... 하여튼 bravebird님~ 문자로 사진 보내드렸어요 :)

그때 다른 손님이 왔다, 그래서 나는 알렉세이에게 '저 또 올게요~' 라고 인사했고 알렉세이도 '다시 오시기로 한 거예요~ 또 봐요!' 하고 인사를 나눴다.

 

이곳과 조용한 목소리의 알렉세이를 알게 해주신 bravebird님 고마워요. 다시 얘길 나눈 알렉세이는 작년보다 몇배로 더 좋았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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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프 비노에서 나와 카잔 성당 앞으로 간 후 버스를 타고 판탄카 근처 시티은행에 가서 다시 돈을 찾았다. 생각보다 돈을 많이 쓴거 같다. 근데 어차피 이번에 온 것 자체가 유리지갑 가루이므로... ㅠㅠ

 

전시 보러 갈 시간은 모자랄 것 같아서 그냥 수도원에 가기로 했다. 료샤에게 연락이 와서 수도원에서 보자고 했다. 그리고는 아무 생각없이 22번 버스를 탔는데... 아뿔싸... 22번은 트롤리버스만 수도원에 가고 나머지는 다른 버스가 가는데 생각없이 버스를 탄 것이다. 보통땐 버스가 오면 무조건 노선도를 잘 읽어보고 타는데 오늘은 좀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점점 버스는 이상한 곳으로 가고... 돌아서 가나 싶었지만 체르니셰프스카야 지하철역을 지나고 또 한번도 안와본 거리 이름이 줄줄이 나오기 시작하자 그때 깨달았다. 완전 잘못 탔네... 내려서 반대방향 차를 타고 네프스키 대로로 도로 가야 수도원 가는 버스를 타려나보다...

 

그래서 포춈킨스카야 거리(전함 포템킨 그 이름이다)에서 내렸더니 타브리체스키 공원이 있었다.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마침 공원이 있어서 거기 잠깐 들어갔다. 영국식 정원인데 토요일이라 수많은 가족들이 나와서 잔디밭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공원을 좀 거닐었는데 덥고 목마르고 엄청나게 아이스크림이 먹고팠다. (원래 공원에 오면 러시아 아이스크림이 먹고프다) 다시 네프스키 대로로 나가 수도원으로 갈 생각을 하니 갑자기 너무 힘들어서 료샤에게 연락을 했다.

 

나 : 친구야, 버스를 잘못 타서 듣도보도 못한 곳에 왔어... 무슨 포춈킨스카야 거리에서 내려서 무슨 타브리체스키 공원에 있어.

료샤 : 아이고 이 멍충아! 웬 포춈킨스카야 거리! 수도원이랑 완전 다른 쪽이잖앗!

나 : 잉 ㅜㅜ 나는 외국인이잖아 ㅠㅠ

료샤 : 바부팅이. 거기 울집에서 가까워. 레냐랑 그리로 갈게.

 

료샤는 스몰니 사원 근방에 살고 있다. 대충 지리를 보니 정말 스몰니랑 가까운 것 같긴 했다. 그래서 공원에 잠시 앉아 햇살 쬐며(좀 땀흘리며 ㅠㅠ) 친구를 기다렸다. 가만히 앉아 있자니 내가 먹을 거라도 잘 주게 생겼는지 비둘기 몇마리가 어정거리며 다가왔다. 먹을 거 없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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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샤가 잠시 후 차를 몰고 왔다. 레냐가 막 뛰어왔다. 햇살 뜨겁다고 야구모자에 앙증맞은 선글라스까지 껴서 진짜 귀여웠다. 료샤도 모스크바 출장 다녀오느라 며칠만에 보는 거였다. 레냐가 역시나 찰싹 안기며 좋아했다.

 

레냐 : 쥬쥬우~~ 하얀 옷 입었어, 아이 좋아~

나 : 엥, 내가 하얀 옷 입는 게 좋니?

레냐 : 쥬쥬 하얀 옷 입은 거 첨 봤어. 아이 좋아 아이 예뻐~

료샤 : 거봐! 맨날 해골 티셔츠 따위 입지 말고 꽃무늬랑 그런 블라우스랑 뭔가 파진 옷을 입으라 했잖아!

나 : -_- 마지막 단어는 못 들은 것으로... (레냐의 귀를 막아라 ㅋㅋ)

(오늘 그 잔무늬가 있는 흰 블라우스를 입고 나왔었다. 근데 어깨가 헐렁해져서 안에 얇은 캐미솔을 받쳐 입었다만 좀 패여 있긴 했다. 여기서나 입지.. 하긴 돌아가면 도로 살쪄서 블라우스가 헐렁하지 않을지도 ㅋㅋ)

료샤 : 얼굴도 좀 나아졌네. 역시 너는 뻬쩨르가 몸에 맞아. 그냥 여기 계속 있지...

나 : 나도 그러고 싶네 ㅠㅠ

료샤 : 수도원 갈 거야?

나 : 아니, 나 너무 피곤해 친구야...

료샤 : 그럼 모이카 쪽에 맛있는 식당 있는데 거기 밥먹으러 가자.

나 : 그래그래~

 

..

 

 

그래서 나는 료샤 차를 타고 편안하게... 네프스키 대로로 나갔는데... (료샤가 얘기한 모이카 운하 쪽 식당으로 가기 위해서는 네프스키 대로를 통과해야 함) 편안해지려다가...

 

료샤 : 으잉? 이게 뭐야!

레냐 : 아빠! 도로에 사람들이 걸어다녀!!!

 

네프스키 중간까지 왔을 때였다. 그러니까 딱 가스찌니 드보르와 유럽호텔 부근이었는데 거기서부터 차량 통제를 하고 있었다. 알고보니 오늘이 '알릐예 빠루사'(진홍색 돛배 - 유명한 러시아 낭만소설 제목인데 여기서 연루되어 매년 진홍색 돛을 단 스웨덴 범선이 네바 강에 들어오고 그날은 여름 축제날이다) 축제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졸지에 가스찌니 드보르부터 네프스키 대로는 차 없는 거리가 되었고 사람들이 너도나도 대로로 쏟아져나와 걷고 있었다.

 

 

 

료샤가 막 짜증을 쏟아내려는데 나랑 레냐는 흥분해서 '우와! 네프스키에 차가 없어! 우와! 우리도 나가자!' 하고 뛰쳐나갈 기세였다. 료샤는 한숨을 푹푹 쉬었다.

 

료샤 : 어휴! 이게 뭐야!

나 : 료슈카!!! 나 네프스키에 사람 없는 거 첨봐!!!!

료샤 : 뭐가 그렇게 신기해! 너 옛날에 승전기념일 때 네프스키에서 깔려죽을 뻔 했다며!

나 : 아 맞다. 옛날옛날에 그런 적 있다. 그때도 차량 통제했지. 그치만 그땐 인파 때문에 무서웠는걸. 이거봐, 사람들이 너무 편하게 걸어다녀. 친구여, 차 어디 세워놓고 우리도 잠깐 도로로 나가면 안되니?

 

료샤는 뭐라뭐라 투덜댔지만 하여튼 차를 카잔 성당 뒤쪽 어딘가로 끌고 가서 댔다. 경찰 아저씨와 또 한참 뭐라뭐라 했다. 골치아픈 건 차 주인에게 맡겨두고 나는 레냐랑 뛰쳐나갔다.

 

레냐 : 쥬쥬~ 우리 아이스크림 먹어?

나 : 응, 아이스크림 먹어!

레냐 : 아이 좋아~

나 : 오늘 안 먹었어?

레냐 : 응, 아까 사달랬는데 아빠가 쥬쥬 만나면 분명히 아이스크림 먹을 거니까 그때 먹어야 한댔어.

나 : 너네 아빠가 참 나를 잘 아는구나 ㅠㅠ 가자, 아이스크림 사줄게~

 

나는 레냐 손을 잡고 아이스크림 가판대로 갔다. 레냐는 딸기가 든 마그낫 아이스크림(외제)이 맛있다며 그걸 골랐고 나는 '에스키모 레닌그라드스꼬예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료샤는 덥다면서 콜라를 골랐다.

 

레냐 : 쥬쥬는 신기해.

나 : 왜?

레냐 : 러시아 사람 아닌데 러시아 아이스크림 좋아해. 에스키모 먹어. 울 엄마아빠같아. 울 엄마아빠도 에스키모 좋아해.

(에스키모는 소련 때부터 내려오는 전통적 러시아 아이스크림임 ㅋ)

나 : 난 러시아 마로제노예(아이스크림)가 제일 좋아. 레냐가 좋아하는 마그낫이랑 하겐다즈보다 에스키모랑 다샤가 더 좋아.

레냐 : 정말? 하겐다즈보다? 진짜?

나 : 응. 제일 맛있어, 에스키모랑 다샤. 에스키모는 다 맛있어. 콘이랑 하드랑 이 세모난 레닌그라드스꼬예랑.

레냐 : 쥬쥬 옛날 사람 같아.

료샤 : 쥬쥬 옛날 사람 맞어! 아빠 또래야!

레냐 : 아빠는 아저씨고 쥬쥬는 아가씨인데! 내 약혼녀인데!!

료샤 : 쥬쥬가 나보다 두살이나 나이 많...

(내가 잽싸게 그의 입을 틀어막음 -_- 이 자식이... 사랑엔 나이도 국경도 없다고 누누이 말하지 않았느냐!)

 

 

이것이 그 에스키모 레닌그라드스꼬예. 은박지로 싸여 있으니 진짜 촌스러워 보인다 ㅋㅋ 하지만 맛있다. 너무 달지 않고 우유맛도 많이 나고.

 

 

우리는 차 없는 네프스키 대로로 나가서 햇살을 쬐며 도로를 거닐고 사진을 좀 찍었다. 나는 뜨거운 도로 위에 앉아보았다. 잠깐 눕기까지 했다. 료샤가 혀를 찼다.

 

료샤 : 어휴 너 뭐해... 왜 누워 ㅠㅠ

나 : 네프스키에 차가 없으니 좋아서... 내가 언제 이렇게 해보겠니~

료샤 : 레냐가 따라하잖아! 레냐야 눕지 마! 옷 버려!

레냐 : 쥬쥬는 하얀 옷인데도 누웠는데 ㅠㅠ

료샤 : 쥬쥬는 어른이잖아!

레냐 : 어린이 싫어, 어른 할래 엉엉...

나 : 레냐야 내 무릎에 앉아.

 

그래서 나는 네프스키 대로에 가방을 베고 누웠고 무릎에 레냐를 앉힌 채 파란 하늘과 눈부신 태양, 하늘 위로 깔려 있는 트롤리버스와 트램 전선들, 솟아오른 건물들을 잠시 바라보았다. 바닥에서 열기가 올라왔지만 누우니까 신기하게 좀 시원했다. 무릎에 앉아 있는 레냐는 따스했다. 그리고 옆에 철퍽 주저앉아 콜라를 벌컥벌컥 마시며 촌스럽니 어쩌니 하고 있는 료샤가 웃겼다. 친구야, 명품 선글라스 끼고 명품 재킷 입고 바닥에 퍼질러 앉아서 콜라 마시며 사레들리는 네가 더 웃기거든!!

 

..

 

잠시 후 우리는 일어났고 카잔 성당 분수 앞 벤치로 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벤치에 앉아 바람을 쐬며 분수를 구경했다. 레냐가 물었다.

 

레냐 : 쥬쥬, 왜 여기가 제일 좋아?

나 : 몰라. 옛날에 처음 왔을때부터 여기가 좋았어. 그래서 내가 한국에 돌아간 후에 너무너무 뻬쩨르가 그리워서 소설을 하나 썼는데 배경이 바로 이 벤치였단다.

레냐 : 우와, 정말?

나 : 응. 그리고 있잖아, 주인공 말고 주인공 친구가 있는데.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사람이거든. 그 남자 이름이 레냐였단다 :)

레냐 : 우와아! 나야? 내 이름 붙인 거야?

나 : 아니, 그때는 너네 아빠도 알기 전이었고 레냐는 태어나기 전이었어. 근데 레냐라는 이름이 좋아서 붙였어.

레냐 : (으쓱으쓱) 히히히... 레냐는 착해? 레냐는 뭐하는 사람이야?

나 : 레냐는 마린스키 극장 무용수였단다.

레냐 : 슈클랴로프처럼!

나 : 슈클랴로프처럼 ㅋㅋ

레냐 : 우와아... 그러면 주인공은? 주인공 이름은 뭐였어?

나 : 미샤. 그 사람도 마린스키 무용수였단다.

레냐 : 내 친구도 미샤 있어, 세명이나 있어.

나 : 응 그래그래. (젤 흔한 이름이니 ㅜㅜ)

레냐 : 그러면 그건 무슨 이야기야? 레냐랑 미샤가 여기서 아이스크림 먹어? 우리처럼?

나 : 음, 옛날옛날인데, 1970년대였는데, 지금처럼 여름이었어. 레냐는 우리처럼 길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었어.

레냐 : 에스키모?

나 : 아마 그랬겠지? 옛날이니까. 그래서 레냐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여기로 왔는데 이 벤치에 친구인 미샤가 앉아서 책을 보고 있었단다.

료샤 : 너처럼! 너 공원에 앉아 책보는 거 좋아하잖아.

나 : (엥, 듣고 있었던 거니?) 응, 나처럼. 미샤는 나처럼 이 자리를 좋아했단다. 그래서 분수 앞에서 책을 읽고 있었어.

레냐 : 레냐가 미샤한테도 아이스크림 나눠줬어? 친구는 나눠먹어야 되는데.

나 : 어.... 내가 그 생각은 못해서 안 썼는데... 다음에는 꼭 그렇게 쓸게. 근데 미샤는 아이스크림을 잘 안먹었어. 케익도.

레냐 : 왜애? 그건 쥬쥬랑 틀리네?

나 : 응, 미샤는 무용수라서 단 걸 안 먹었단다.

료샤 : 쳇. 나 그놈 누군지 알아. 그 배나무 거리에 사는 놈! 극장까지 걸어가는 놈, 차도 없고... 축구도 안 한다는 그 불쌍한 녀석.

나 : 어머 너 그거 기억하는구나! (예전에 거리 이름 짓는다고 료샤에게 지금 쓰는 가브릴로프 본편 얘길 잠깐 했었음. 그 얘기들은 맨 아래 링크 추가)

료샤 : 당연하지! 배나무 거리에 살고 축구도 안 하는데 얼마나 불쌍하냐! 기억하지!

레냐 : 아빠, 자꾸 끼어들지 마! 그래서 미샤랑 레냐는 뭐했어?

나 : 미샤는 그때 어딜 가야 했는데 가기가 싫었어. 그래서 안 가고 여기 앉아서 책을 보고 있었는데 레냐가 걱정이 돼서 '친구야, 거기 가보렴' 그랬단다.

레냐 : 레냐는 착해. 미샤는 나쁘다. 말 안들으면 나쁘댔는데.

나 : 미샤는 나쁜게 아니고 옳지 않은 일을 시키는 걸 좋아하지 않았을 뿐이야.

레냐 : 옳지 않은 일이 뭐였는데?

나 : 미샤는 극장에서 관객들을 위해 춤을 추는 무용수인데 높은 사람들이 불러서 자기네 집에 와서 춤을 추라고 했거든.

레냐 : 그건 나쁘다!

료샤 : 뭐가 나빠, 요즘도 다 그런데. 그게 인생인데.

나 : (애기 앞에서 참 좋은 얘기 하는구만 -_-)

레냐 : 아빠, 조용히 해! 그래서 미샤는 안가?

나 : 응, 안가고 레냐랑 미샤는 궁전광장으로 갔단다.

레냐 : 그래서?

나 : 미샤는 높은 사람 집에 가서 춤추는 대신 궁전광장의 알렉산드르 원주 아래에서 이렇게 지나가는 사람들 앞에서 멋있는 춤을 췄단다.

레냐 : 이야!! 나는 미샤가 좋아!

료샤 : 분명히 kgb가 잡아갔을거야 -_-

나 : (그건 그렇긴 하지만... 애기 앞에서 제발 ㅠㅠ)

레냐 : 그래서?

나 : 춤을 춘 다음에 미샤랑 레냐는 사도바야 거리로 걸어가서 블린을 먹었단다. 끝!

레냐 : 우와, 너무너무 좋은 이야기야! 아빠, 우리도 블린 먹어!!!

 

료샤는 모이카 운하 쪽의 근사한 레스토랑 어쩌고 하며 투덜거렸지만 레냐도 그렇고 나도 갑자기 블린이 먹고팠다. 그리고 료샤도 갑자기 '너네 때매 나도 블린 먹고 싶어지잖아!' 하고 이상해했다.

 

그래서 우리는 료샤의 고급 차는 그대로 세워놓고 근처의 체인점에 가서 블린을 왕창 시켜먹고 행복해했다 :)

 

 

.. 아이스크림 먹던 레냐와 저 벤치에 앉아 책 읽던 미샤의 이야기는 전에 writing 폴더에 올린 적 있다. illuminated wall이란 제목이다. 그 이야기는 여기서 읽을 수 있다 : http://tveye.tistory.com/3385

.. 카잔 성당 분수 앞 벤치와 미샤에 대한 얘기 추가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4059

 

.... * 배나무 거리와 미샤에 대해 료샤가 한 말들

- 그가 배나무 거리와 미샤에 대해 알게 된 경위 : http://tveye.tistory.com/3187,

- 그가 배나무 거리의 미샤와 축구에 대해 투덜댄 경위 : http://tveye.tistory.com/3249

- 그가 배나무 거리의 미샤에게 축구 대신 다른 것을 요구한 경위 : http://tveye.tistory.com/3386

 

..

 

내일 날씨가 좋으면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에 가기로 했는데... 제발 비가 안 오게 해주세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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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모이카 운하)

 

 

늦잠 자고 싶었지만 9시 알람을 맞췄다. 그 이유는 우체국 소포 문제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_- 오전까지 머문 숙소가 중앙우체국 근처라 소포를 부치려면 오늘 오전밖에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어제 가방을 싸보니 무게보다도 부피 때문에 그 망할 소포를 부쳐야 했다. 여름이고 홍차랑 책 몇권 외엔 별로 산 것도 없는데 왜 가방이 터져나가는 것일까 허헝,,,

 

10시 반쯤 중앙우체국에 다시 갔다. 어제의 그 마귀할멈 대신 다른 창구로 가서 물어봤는데 거기도 제2의 마귀할멈이 앉아 있었다. 딸론칙을 가져오라며 화를 냈다. 대체 딸론칙이 무엇인가 한참 고민했는데(보통 종이쪽지, 버스표 등을 가리킨다) 알고보니 번호표였다. 러시아도 그동안 기술발전이 물론 있었고... 번호표를 뽑아오면 스크린에 몇번 창구로 가라고 뜨는 것이다. 중앙우체국이라 워낙 크고 창구가 많으니 그런 거였다. 흠, 몰랐던 내 잘못도 있구나. 그건 그렇다치고 엄청 신경질냄. 손님도 하나도 없었는데!

 

번호표 기계로 갔는데 뭔가 엄청 복잡했다. 소포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나는 저렴한 소포를 부치고 싶었으나 도대체 몇번을 눌러야 하는지 알수가 없었다. 마침 내앞에서 번호표 뽑는 나이든 아저씨가 계셔서 물어보니 너무나 친절하게 '이건 비싼거고 저건 싼건데 어떤걸로 할거니?' 라고 물어봐줘서 '싼거요~' 했더니 그럼 이 메뉴를 누르라고 알려주심. 아저씨 복받으실 거에요 흐흑... 그래, 시민들은 친절한데 관료들만 불친절한 것이야 허헝...

 

하여튼 우여곡절 끝에 창구에 번호가 떠서 상자를 가져갔더니 새로운 마귀할멈 3이 막 화를 냈다, 왜 상자를 봉해왔냐는 것이다. 원래 여기는 소포 포장을 할때 안의 내용물을 모두 검사한다. (예전엔 CD 같은 건 반출 못했는데 아마 지금도 그러려나..) 그래서 '어제 다 검사해서 저쪽 창구 아주머니가 봉해준 거에요. 근데 쉬는 시간이라 다 놀아서 난 시간이 없어 오늘 다시 온 거에요' 라고 설명하고 다행히 어제 상자 포장해준 아줌마가 한쪽에 있어서 그분이 '응, 그거 어제 내가 다 봤어' 라고 확인해 주었다(유일하게 약간 친절했던, 마귀할멈 아닌 사람이었음 ㅠㅠ)

 

그리하여 1700루블을 내고(3만원 정도) 선박 운송을 선택하여 망할 소포를 부쳐버리니 살 것 같았다. 기껏 4킬로 더 쑤셔넣고 오버차지 내지 그랬냐고 하신다면... 가방에 자리가 없었습니다 ㅠㅠ 그리고 근력 따위 없는 나에게 4킬로 추가란 엄청난 짐!!!

 

 

 

(보기에는 아주 웅장하고 아름다운 중앙우체국. 그러나 오랜 옛날부터 나에게는 고생과 원망의 장소 -_-)

 

 

..

 

소포를 해결한 후 방에 돌아와 가방을 마저 싸고 체크아웃을 했다. 2시 반 택시 예약을 한 후 이제야 가벼운 맘으로 부셰에 가서 오믈렛 아점을 먹었다. 맛있어서 기분이 나아졌다

 

오늘도 엄청나게 날씨가 좋았고 하늘이 파랬고 햇살은 따가울 지경이었다. 진짜 눈부셨다. 돔 끄니기에나 갈까 하고 쭈욱 걸어올라갔다. 원래 목표는 돔 끄니기에서 책을 한권 사서 카잔 성당 분수 앞 벤치에서 아이스크림 먹으며 책 읽는 거였다. (내가 좋아하는 코스라서 옛날에 미샤를 초창기에 등장시켰던 illuminated wall 에서도 미샤는 처음에 카잔 성당 앞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근데 잠깐 와이파이 연결이 필요해서 유럽호텔 로비로 가서 폰을 좀 봤다.

 

그리고는 카톨릭 성당에 들러 다시 초를 켜고 기도를 했다.

 

 

 

..

 

 

돔 끄니기에 가서 새 지도를 샀다. 구글이나 앱이 있어도 나는 아날로그라 옛날부터 보던 종이 지도가 편한데 한 2~3년 쓴 지도가 너무 헐어서 찢어지고 말았다. 새 지도를 산 후 글쓰기에 필요해서 7~80년대 레닌그라드 시절 도시 현황과 거리 이름 등이 기재된 책이 필요하다고 점원에게 물었으나 원하는 답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책장을 뒤져 페테르부르크 거리 이름 유래에 대한 책을 샀다. 이건 제정시대부터 지금까지를 다 아우르는 거라 사실 내가 원하는 건 아닌데 ㅠㅠ 나중에 구글링으로 찾는 게 빠르겠다.

 

(이게 오늘 산 책과 지도 두 종)

 

 

별거 안 했는데도 카잔 성당 분수 앞 벤치에 앉아 책 읽을 시간이 없어졌다. 호텔까지 걸어내려가는 시간이 있으니(버스는 밀림) 그냥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돔 끄니기 앞 아이스크림 수레에서 에스키모 플롬비르 초콜릿 아이스크림 바를 사서 먹으면서 혼잡한 네프스키 대로와 말라야 모르스카야 거리 대신 모이카 운하를 따라 안쪽으로 걸어갔다. 햇살이 눈부셔서 운하의 수면이 타들어가는 듯했다.

 

 

 

붉은 다리와 푸른 다리를 건너 호텔로 돌아왔다. 택시를 타고 네번째 호텔(하루 묵었었으므로 실제로는 3개째의 호텔)로 와서 체크인을 했다. 근데 저번보다 방이 안 좋네... 하긴 급하게 방을 예약했고 제일 저렴한 방으로 했으니... 그때보다 좁고 침대도 트윈을 두개 붙여놓은 것이다. 그리고 지난번 방은 거리를 내다보고 있었는데 이번 방은 안쪽 마당인 중정 방향이네. 그래도 뭐...

 

이 호텔은 그래도 프린트를 공짜로 할수 있어서 오늘 지젤 티켓과 새로 끊은 항공권 이티켓을 프린트했다. 그리고는 피곤해서 좀 늘어져 있다가 컵라면 대충 먹고 원피스로 갈아입은 후 마린스키에 갔다.

 

..

 

 

 

 

 

 

 

오늘 공연이 이곳에서 머무는 3주 동안의 마지막 공연이다. 원래 매진이었는데 우연히 표가 몇개 나와서 급히 득템했던 것으로, 바로 슈클랴로프가 알브레히트를 추는 지젤이었다. 오오...

 

공연은... 사실 내가 지젤을 진짜 좋아하는데 이번 공연은 작품 자체보다는 슈클랴로프 보느라 넋을 놓아서 ㅠㅠ 지젤 보면서 안 울었던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아나스타시야 마트비옌코가 지젤로 나와서 좀 이입이 덜 되기도 했다만...

 

슈클랴로프의 알브레히트는 완벽했다... 이 남자의 타고난 기품과 동정심을 자아내는 눈빛과 애절한 춤. 10년 전 그의 알브레히트가 생각났다. 이반첸코 대신 나와서 '저거 누구야!' 하고 짜증냈던 걸 떠올리니 참 놀랍기도 하고 어쩐지 감개무량 ㅋ

 

사진은 따로 올려보겠다. 리뷰도 따로 써보겠다. 근데 이걸로 총 8개의 공연을 봤는데 제대로 리뷰 쓴 건 거의 없네 어헝...

(커튼 콜 사진과 또 짧은 메모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4835)

 

내 자리가 간신히 득템한것까진 좋은데 1층 베누아르 완전 사이드의 게다가 2열이었다. 앞사람 머리에 너무 가리고 왼쪽 무대는 잘 안보여서 진짜 괴로웠다. 슈클랴로프가 출땐 반쯤 엉거주춤하게 서서 봤다(내 뒤에는 사람이 없어 다행...) 나중엔 꼭 기합받는 듯.. 허벅지 쥐나는 줄 알았다. 흐흑... 내 앞에 앉은 사람들 다 키 크고 머리 컸어 엉엉...

 

샵에서 파루흐 루지마토프의 희귀한 옛 사진 세장(아마 베자르 작품 췄을 때인듯)과 테미르카노프가 지휘한 호두까기 CD를 샀다. 그리고 내친김에 CD 파는 아저씨에게 레인골드 글리에르의 청동기사상 음악 있느냐 물었다. 이번 마린스키에서 올린 그 발레. 아저씨는 안타까워하며 다른 작품들만 있다고 했다. 그 음악 정확한 제목이 뭐냐 물으니 청동기사상 맞다고 한다. 하긴 발레음악으로 만든 곡이니... 네프스키의 다른 샵에 한번 가보라 한다. 그 음악 구하고픈데...

 

..

 

슈클랴로프의 우아하고 애절한 알브레히트 춤과 사랑스러운 커튼 콜 인사 때문에, 그리고 마린스키 구관의 지젤이라는 것 때문에, 또 마지막 공연이란 생각 때문에 좀 감정적으로 고양되어 나왔는데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이럴줄 알고 우산 가져왔다!!!!! 요 며칠 너무 날씨가 좋았어!

 

근데 진짜 엽님 운 좋으셨습니다~ 가시자마자 비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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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쓰고 호텔까지 15분 정도 걸어야했다. 오다가 수퍼에 들러 자두 세알과 체리 300그램, 새로 나와서 궁금해진 구운 고기맛 감자칩(ㅋㅋ), 물 1.5리터를 샀다. 방에 와서는 배고파서 체리와 감자칩을 조금 먹었다.

 

..

 

아아, 이제 4일 남았어...

 

돌아가고 싶지 않아...

 

우울함이 다시 되살아나는 듯하다...

 

그래도 슈클랴로프의 알브레히트는 아름다웠다. 외모 얘기가 아니고(외모도 뭐 예쁘지만) 그의 춤과 표현력, 무대 자체가 아름다웠고 때로는 그런 아름다움이 마음을 뒤흔들고 감동시키고 또 위안과 평온을 주기도 한다. 그러니까, 도스토예프스키 말이 맞다. 때로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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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우체국 가서 우여곡절 끝에 4킬로 소포 보내기 성공 후 체크아웃, 2시 반 택시 예약해놓고 근처 빵집 부셰에서 아점 먹었다. 오믈렛 아침식사가 있어 늘 궁금했다. 연어오믈렛 + 홍차 세트가 270루블, 난 여기에 크루아상 1개를 추가했다. 난 아점이니까 ㅠㅠ 합치면 340루블 정도. 6-7천원 가량의 꽤 괜찮은 아점이다.





오믈렛 기다리는 중




번호표





여기 오믈렛 아주 맛있었다. 달걀은 부드럽고 속의 치즈와 연어도 맛있고 비리지 않았다. 연어가 좀 짜서 내 입맛엔 간간했지만 크루아상 곁들여 먹으니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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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 끄니기 갔다가 운하 따라 걸어오면서 에스키모 플롬비르 아이스크림 사먹었다. 역시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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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다시 숙소 옮김.



가방 풀고 배고파서 어제 가게에서 득템한 도시락 컵라면 먹는 중. 느끼함이 가시는구나 ㅠ





마린스키 가기 전에 컵라면 먹어 ㅠㅠ 안 우아해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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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늘이 정말 아름다웠다. 어느 계절이든 페테르부르크의 하늘과 구름은 정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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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오래 머무른데다 긴옷과 짧은옷을 많이 싸왔고 책들도 늘어났다. 찻잔이나 홍차 등의 부피도 있고 가방도 무거워서 트렌치코트와 긴옷 몇점 책 몇권은 우체국에서 일반 소포로 부쳐버릴 생각을 하고 아침에 낑낑대며 짐을 들고 중앙우체국으로 갔다. 호텔에선 10~15분 걸어가면 되는 거리이고 옛날에 있을때도 두어번 부쳐본 적이 있다.

 

근데 오늘 운이 없었다. 여기는 아직도 무게 다는 창구, 상자 사고 포장하는 창구, 돈 내는 창구, 부치는 창구 등이 다르고 복잡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하필 내가 갔을때 15분 후 쉬는 시간이었다 ㅠㅠ 하여튼 줄을 서서 일단 상자를 샀더니 상자 주는 아줌마가 네장의 서류를 쓰라고 했다. 상자값을 낸 후 서류를 열심히 썼다. 그러나 다 쓰고 나자 쉬는 시간이 되었고... 소포 부치는 창구는 아직 쉬는 시간이 아니라서 그리로 갔더니 그 아줌마가 내걸 안 받아주겠다는 것이다 -_- 뭐냐... 그래서 그럼 어디로 가야 해요? 하고 물어보니 자기도 모른단다. 자기한테 묻지 말라 함.

 

너무 짜증이 났다. 많이 좋아졌지만 역시 이럴때면 옛날 생각이 나면서 '망할놈의 러시아!' 하고 버럭버럭 화가 나는 것이다.

 

한시간 기다렸다가 첨에 박스 받은 아줌마에게 다시 물어볼까 했는데 화도 나고 덥고 배도 고파서 그냥 상자 들고 호텔로 돌아와 컨시어지에 물어보았다. 호텔 측에 부탁해서 부쳐달라고 할수 있나 싶어서. 그러나 페덱스와 디에이치엘 이용하게만 해줄수 있다는 것이다. 근데 이 짐은 그냥 한달 걸려서 선박운송해도 되는 짐이고.. 디에이치엘로 보내느니 내가 그냥 오버차지 물고 비행기 타고 가지!!!

 

하여튼 그래서 도로 방에 상자째 갖다놓음. 내일 아침 10시쯤 우체국 도로 들고가봐야겠다. 너무 짜증이 나서 그냥 비행기에 들고 탈까 생각도 해봤는데 내일 숙소를 또 옮겨야 해서 가방을 싸다 보니 이 짐은 부치지 않으면 참 난감해질 것 같다. 아우 그 망할놈의 우체국 가기 싫어 -_-

 

..

 

우체국 때문에 좀 빈정상한 후. 그래서 밥도 못 먹고(-_-) 곧장 버스 타고 블라지미르 거리로 갔다. 오전에 부지런히 에르미타주에 다녀오신 엽님을 만나 우크라이나 식당 쉬녹에서 점심을 먹은 후 함께 판탄카 운하를 따라 쭈욱 걸어내려가 레트니 사드에 갔다. 놀랍게도 날씨가 좋아서 레트니 사드 가기 좋은 날이었다.

 

옛날에 좋아하던 아이스크림인 다샤를 팔고 있어 좋아하며 벤치에 앉아 그것을 까먹음.

 

 

(공원에선 역시 아이스크림!)

 

날씨가 참 좋았다. 후문 연못에 백조, 갈매기, 청둥오리들이 모여 있었다. 백조는 기다란 머리를 마구 꼬며 뭔가를 주워먹느라 전혀 우아하지 못해 우리를 실망시켰다.

 

눈부신 날이었다. 햇살과 하늘, 물 색깔이 환상적이었다. 아무런 필터도 보정도 없는데도 갈매기와 오리, 비둘기 사진 색감이 이렇게 나와서 좋아서 올려본다. 아마 내가 빛이 많은 사진을 좋아해서 그런가보다 :)

 

 

 

 

우리는 공원을 걸었고 분수를 보았고 크르일로프와 동물들 동상 앞 벤치에 앉아 잠시 쉬었다. 그리고 물론, 내가 좋아하는(ㅋㅋ) 아폴로도 다시 보고 인사했다.

 

(그런데 내가 아폴로 뒷모습 찍는 걸 보고 어떤 할머니가 막 웃으며 농담하셔서 난 좀 뻘쭘해지고 ㅠㅠ 하지만 뒷모습도 아름다운 아폴로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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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우리는 후문으로 나와 마르스 광장을 지나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 쪽으로 나왔다. 보통 레트니 사드 갈때 이용하는 코스이다. 날씨가 좋아서 사람이 많았고 사원의 황금빛 푸른빛 쿠폴은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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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님은 마린스키 신관에서 쥬얼즈 공연이 있었다. 버스 타고 가다 나는 먼저 내렸고 아쉬운 작별을 했다. 만나서 반갑고 즐거웠어요! 한국 잘 돌아가시고 서울에서 다시 조우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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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다 그 일본라멘집에서 대충 가라아게동과 메론소다를 먹었다. 배가 고파서라기보단 방에 와서 챙겨먹기 귀찮았다. 사실 너무 목이 말라서 평소 좋아하지도 않는 메론소다를 정신없이 마셨다.

 

방에 와서는 갑자기 피곤해져서 늘어져 있다가 디카페인 티를 마시고 가방을 챙겼다. 내일 숙소를 옮긴다. 여기 와서 5일을 더 연장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사실 그냥 7월까지 계속 있고 싶다만... 더 이상 있다가는 적금까지 깨게 생겼음.

 

내일의 목표는..

1. 아침에 우체국에 가서 더이상 빈정 상하지 않고 저놈의 소포를 잘 처리하는 것.

2. 숙소를 다시 잘 옮기는 것.

3. 슈클랴로프님의 지젤을 보는 것...

 

오늘은 자정 전에 자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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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6. 6. 24. 02:38

이브닝 티, 레트니 사드 2016 petersburg2016. 6. 24. 02:38




날씨가 좋았고 엽님과 판탄카 따라 내려가 레트니 사드 산책하고 마르스 광장과 그리보예도프 운하 따라 네프스키로 나왔다.


엽님은 공연 보러 가시고 난 간단히 저녁 때운 후 방에 돌아왔다. 내일 또 숙소를 옮기므로 가방 좀 싸다가 너무 피곤하고 졸려서 디카페인 티를 우려 한잔 마시며 늘어져 있다. 핵헥..


디저트는 며칠전 아스토리아 카페에서 먹고 남은거 싸온 것.. 맛있네.


너무 졸린다. 지금 자버리면 안되는데..







레트니 사드. 크르일로프와 동물들 조각상 앞 의자에 앉아 쉬면서 찍은 사진 한장.


레트니 사드 오면 항상 쥬인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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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시간이 많이 늦어서 오늘은 짧은 메모만..

늦게 일어나 어제 부셰에서 사온 빵과 체리로 아점 먹고 오후 2시쯤 버스 타고 판탄카 근방의 시티은행에 가서 돈을 좀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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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이삭성당 근처 아스토리야 호텔 앞에서 블로그 이웃님이신 엽님과 반갑게 조우했고 함께 청동기사상을 보러 간 후 어제 예약해둔 고스찌에 가서 점심 겸 저녁을 먹고 차를 한잔 마셨다.

 

엽님은 페테르부르크에 처음 오셨기 때문에 운하 따라 마린스키까지 데려다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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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버스를 타고 미하일로프스키 극장으로 갔다. 나는 오늘 잠자는 미녀 공연이 있었다.

 

 

 

안젤리나 보론초바와 이반 자이체프가 주역이었는데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파루흐 루지마토프가 카라보스를 추심!!! 그런 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기원했는데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짐 :)

 

 

 

 

리뷰는 나중에 따로 쓰려고 한다만... 일단 아주 짧은 메모만 남기자면.

나초 두아토 안무의 잠자는 미녀는 동작이나 안무가 꽤 다른 부분도 많았다. 오로라의 춤이 특히 그랬는데 의외로 난 나쁘지 않게 봤다(원래 오리지널 잠자는 미녀의 오로라 춤을 별로 안 좋아함 ㅜㅜ) 다만 데지레 왕자가 조금 더 병풍처럼 처리되고 결혼식 솔로도 덜 화려해서 그건 아쉬웠다. 두아토의 잠자는 미녀는 오로라가 소녀에서 성인 여성이 되는데 더 초점을 맞추었고 그래선지 오로라가 완전히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서 가뜩이나 분량 적고 병풍 같은 왕자는 더 병풍이 되어 아쉬웠고... 제일 아쉬운 건 파랑새 솔로를 대폭 축소하고 그냥 2인무로 만든 거였다. 이럴수가.. 파랑새를 그렇게 만들면 어떡합니까 허헝...

 

하지만 다 떠나서 어깨 드러나는 드레스 입고 카라보스 추신 파루흐 루지마토프!!!! 당신을 다시 무대에서 보게 되어 너무나 영광이고 행복했어요... 어흑, 너네 카라보스 왜 초대 안했니! 저렇게 멋있는 카라보스를 초대 안했으니 오로라 따위 물레바늘에 찔려도 괜찮앗!

 

 

 

루지마토프를 거의 십년만에 다시 무대에서 보니 너무 반갑고 행복했다. 고마워요 파루흐... 엉엉..

 

그래서 커튼콜 때도 왕자고 공주고 다 필요없이 오로지 루지마토프만 열심히 찍음. 1야루스(3층) 사이드라 멀긴 했지만... 아아, 저분이 나오는줄 알았다면 유리지갑 먼지가 되어도 앞줄 끊었을 것을 허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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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끝나고 나와서 그리보예도프 운하와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 쪽으로 쭉 걸어서 호텔 쪽으로 갔다. 엽님도 공연 끝나고 청동기사상 쪽으로 가셔서 석양 보신다 해서 나도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함께 네바 강변을 거닐고 궁전광장을 지나 네프스키 초입으로 갔다. 전에 bravebird님이랑 같이 산책하던 기억이 났다. 엽님은 숙소가 네프스키 위쪽이라 트롤리버스를 태워드린 후 나도 호텔로 돌아왔다. 돌아오니 자정이 좀 넘었다.

 

(석양 사진은 오늘 딱 두 장만. 맨 위 사진까지 세 장. 나중에 석양 스페셜로 한번 올려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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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파서 남은 체리 다 까먹었다. 이제 자야겠다. 즐겁고 알찬 하루였다.

 

내일도 날씨가 좋기를...

 

.. 근데 너무 걸어서 그런가 오른쪽 발가락 사이에 물집이 잡혀 피얼룩이 져 있었다. 깜놀! 악 ㅠㅠ 연고 바르고 자야겠다. 하긴 구두 신고 돌바닥 많이 걷긴 했지. 내일은 공연도 없으니 운동화 신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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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